스승님 뵈러 가는 날의 설레임

 

김의식

정회원 23기, 정통침뜸교육원 교수

 

스승님을 만나는 일은 옛삿날과 다르다

 

선생님을 뵈러가는 날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33기 연수 때 水安堡(수안보)에서 뵈었는데도 몇 년 만에 찾아뵙는 듯 마음이 설렌다. 珠玉같은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기 위해 마음속에 준비한 큰 주머니는 선생님을 뵙기도 전에 벌써 입을 벌리고 있다. 스승님을 뵈러 가는 날이 옛삿날과 다른 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의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리라.

뜸집은 크고 의연하다. 담 밑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작은 화초들과 재잘거리는 새들이 우리를 반기지만 왠지 허전하고 휑한 느낌이 드는 건 선생님이 계시는 뜸집이 너무나 커서일까, 아니면 세속에 굴하지 않는 선생님의 의기가 고고하셔서 홀로 우뚝 서 계시는 탓일까?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을 뵙는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오전에 많은 제자가 왔다 갔겠지 생각하고 뜸집에 가 있는데 선생님 방에서 손님 몇 분이 나온다. 선생님은 김지하 시인과 가족이라고 소개를 하신다. 시인에게 기념비 서문에 새길 문구를 부탁했다고 말씀하신다.

구당 선생님처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정도를 외친 사람이다. 시인의 시 '두타산'이 외워졌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산이 산을 그리워하던가

된장이 된장을 그리워하던가

양파가 양파를 그리워하던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

 

 

잘 만저 침 놓으면 아프지 않아

 

선생님의 피부는 지금도 뽀얗다. 하시는 말씀의 내용도 대부분 전과 같다.

선생님을 자주 뵙는 분들은 선생님께서는 항상 같은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열 번 백 번 들어도 싫지 않은 말씀이다. 듣는 사람 모두가 네 네 하고 대답은 해도 선생님의 눈빛은 "멍청한 제자들아 너희가 무얼 안다고 네네 하느냐"고 나무라시는 것 같다.

오늘도 전깃줄 이야기가 주된 가르침이었다.

"經絡은 전깃줄이요, 經穴은 접촉점이다. 스위치를 잘 만지고 鍼을 놓으면 아프지 않다. 우리 몸 어디에 鍼을 놓아도 電氣는 통한다. 비행기, 고속버스, 전철, 국도, 지방도 어느 길로도 서울에 갈 수 있듯이 시간의 차이일 뿐 通하는 것은 같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경혈의 선택, 초인종의 선택, 접촉점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잘 만져 침을 놓으면 아프지 않다는 말씀은 또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만져야 잘 만지는 것일까? 선생님의 당당함과 활기 넘치는 미래설계는 어디에 근거하며 기죽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기백은 어디가 원천일까? 답들이 언뜻 떠오르지 않기에 선생님의 말씀은 들어도 들어도 신비로울 뿐 싫지가 않다.

 

효과 있을 뿐 탈이 없다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鍼을 쉽게 배우고 익혀 내 몸, 가족, 이웃, 약자에게 한 줄기 빛을 줄 수 있게 하신 선생님이 한없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보사 균형요법에 어려움이 없다', '침 사고는 굵은 쇠를 가늘게 다듬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나 있었다.' '옛날 毫鍼(호침) 하나 구하면 꿈에 나타난 신령님의 계시로 얻었다 할 정도로 큰 횡재로 여겼다.' '침을 아무리 찔러봐라. 병신 된 사람 있는가. 있었으면 지금 침술은 사라졌을 것이다. 효과가 있고 탈이 없으므로 지금까지 삼천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등등의 말씀은 子子孫孫 영원히 침뜸을 남기려는 염원의 말씀으로 들린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어떻게 달 것인가

 

침뜸은 의술의 故鄕과 같이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래전에, 침을 맞아본 경험이나 뜸으로 치료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침뜸이 자유로웠던 옛날을 추억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 우리의 추억까지 뺏앗으면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개혁집단일까? 보수집단일까? 그 사람들의 행태는 의술로도 우리 사회를 분류해 놓았다.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 아니라 이익집단의 영리와 정치 논리에 의해서다.

선생님께서는 침뜸 의학과 현대 의학을 접목해 하나의 의술로 統合해야 하며 이를 위해 "醫는 하나다"라고 외치면서 당당히 맞서라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5천 명의 입과 두뇌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가는 대전지부 비약적 발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서 못 할 수도 있는가 하면 섣부른 나의 언행이 자칫 목표에 역행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짐작으로 행동을 포기하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참여하고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행동지침이나 가이드라인 같은게 빨리 마련됐으면 좋겠다.

참고로 우리 뜸사랑 대전지부는 지부장의 적극적이고 진취적 리드와 운영진의 헌신적 참여, 그리고 회원들의 협조와 동참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교육반이 3개로 늘어났다. 또한, 대전 대덕구청으로부터 봉사단체 가입을 요청받아 회원 100여 명이 행정기관의 봉사 요원으로 임명되었다. 7월부터는 100곳의 공공장소에서 tv 자막을 통해 뜸사랑을 홍보하고 교육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권익이 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의료법 59조와 61조의 조항을 메꿔라

 

지난번 설 인사 때 선생님께서는 침뜸에 대한 교육제도가 도입돼야 함을 강조하셨다. 5천 제자들이 앞장서서 침뜸 검정고시 시행을 강력히 요구하라고 하셨다. 朴正熙 시대에도 井邑(정읍)의 라용균 보사부장관이 침구사 자격 정부 고시를 치르려 하자 보사부에서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음을 소개하시고, 백지 상태로 있는 59조항은 침뜸 자격검정에 대한 것이 들어가야 할 조항이라고 하셨다.

옳으신 말씀이다. 다른 침술 단체들이 있지만 우리 만큼 체계적이고 후진 양성을 한 기관은 없다. 5천 명이나 되는 제자가 있고 실제 거쳐 간 사람은 더 많은 우리 뜸사랑이 잘못된 제도와 도전받는 현실을 타파할 십자군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과 조치법을 적용하여 시험을 시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우리 침뜸이 세계로 나가고 있는데 왜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는 제한을 받고 있는가? 자유로운 침뜸은 나라의 일이자 국민의 주권이고, 경제적 가치 또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보물이다. 이제는 정치인을 만나 설득하고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큰 틀의 행동지침이다. 법의 판결로 교육이 떳떳해졌지만 103세 선생님께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침뜸을 이어 갈 사람들

 

선생님은 지금 5천 제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 건립을 진행하고 계신다. 침뜸 보급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제자들을 고마워하시고 제자들의 이름을 만세에 전하자는 목적에서다. 2013년 돌에 명패를 새기는 방법을 추진했는데, 선생님의 기대와 명패의 작품성이 일치하지 않아 일단 보류하고 대신 비석에 이름을 새기는 방향으로 정하신 것이다. 현재 비석 건립 위원회를 구성하고 1차로 건립기금을 낸 800여 회원의 이름을 비석에 새기는 작업에 착수하셨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찾아와 예술성과 보존성있는 비석 앞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도 있네 하며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그 이름이 만대에 전해지는 것을 상상해 본다. 지금부터 가슴이 뿌듯해진다. 침뜸의 발전과 침뜸에 몸담은 우리와 그리고 후학들을 위해 쉬지 않고 연구시고 행동하시는 老스승님의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면서 선생님의 숭고한 정신을 더 충실하게 따라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5천 회원 모두가 참여할 것을 기대해 본다.

 

구당 스승의 관심으로 대전지부 변화 바람

 

선생님께서는 특이한 자랑거리들이 있다. 첫째는 5천명이 넘는 제자들이 있다. 둘째는 부처상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돌로 된 전신상이 있다. 하나의 바위를 깍아 만든 높이 8m의 표지석 돌탑도 있다. 거대한 조형물들은 침뜸의 영원성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새 정부는 침뜸이 편히 살아가도록 고향을 찾아주고 우리 뜸사랑이 온 국민을 위해 날개를 펴게 하여 長城 뜸집이 빛나고, 선생님이 환한 미소로 여생을 보내시도록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특히 대전지부는 지부장 김기건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활동과 운영진의 헌신적 참여, 정회원들의 동참으로 지난 5월 大田 대덕구청으로부터 봉사단체 회원 가입 신청을 받아 100여 명이 국가 기관이 인정하는 봉사 참여 시간을 인정,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침뜸 허용 요청을 光化門 일번가에 정회원 선생님들 모두 참여토록 하고, 교육 홍보를 100곳의 지정된 공공장소에 있는 'TV속으로'와 자막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7월부터 '구당 침뜸 교육생 모집' 광고를 대전, 세종시, 충북 청주시 터미널, 병원, 찜질방, 식당, 골프장 등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구당 선생님, 감사합니다.

 

 

"스승님, 뜸향처럼 향기나는 그런 사람 되겠습니다"

 

이정자

정회원 16기, 정통침뜸평생교육원 교수

 

 

스승을 찾아가는 행복한 시간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灸堂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서울교수회에서 버스를 한 대 빌렸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결혼식에 더 이상 주례 선생님을 모시지 않는데 그 이유가 그들에게 존경할 만한 참 스승이 없다는 것이라고 어디에선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스승이 계서서 이렇게 스승의 날을 맞아 찾아갈 수 있으니 진정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는 아침 6시에 청량리에서 출발했습니다. 長城(장성)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내 스승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정통 뜸을 기득권층의 온갖 박해 속에서도 뚝심 하나로 이어오신 구당 선생님. 火傷鍼(화상침)과 '무극보양뜸'을 일반에 공개하고 침뜸 봉사를 말없이 해오느라 한의사들의 고소고발로 전과 43범이 되었다는 구당 선생님.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버스 안에서 어떤 교수님이 대학생 시절 東海岸(동해안)에서 보았던 광경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黃布(황포) 돛단배가 항구로 한꺼번에 들어오는 광경은 정말 멋졌답니다. 동력이 발달하기 전이라 사람들이 밧줄로 배를 끌어올렸다는군요. 배에서 오징어를 내리면서 먹어보라고 주기에 받아서 먹고 있는데 바로 옆 배에서 시체 하나를 내리고 있더랍니다. 밤사이에 오징어를 잡으면서 시장해서 먹다가 急滯(급체)가 되었는데 고생하다가 그냥 숨을 거두었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鍼을 배운 사람이 옆에만 있었더라도 몇 군데만 따주었으면 되었을 것을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구당 선생님의 건강비법은 뜸

 

나는 버스 안에서 '스승의 은혜'를 마음속으로 불러보았습니다. 그런데 노래 가사가 스승의 은혜로 시작했는데 자꾸 어머니 은혜로 바뀌어 갔습니다. 스승에 대한 노래를 안 부르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12시에 長城에 도착했습니다. 구당 선생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방금 전에도 몸에 뜸을 뜨고 계셨답니다. 구당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지요. 본인의 건강비결은 뜸을 뜨는 것이라고요. 좋은 보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루에 한 번씩 뜸을 뜨는 것만이 건강비법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구당 선생님의 말씀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당 선생님은 우리에게 뜸쑥을 만드는 공장도 구경시켜주셨고, 뜸쑥도 한 주먹씩 선물로 주셨습니다. 쑥은 우리나라, 日本, 中國 이렇게 동양 3國에서 난다. 일본은 세계에서 뜸을 제일 많이 했던 나라였는데 돈 잘 버는 길로 가다 보니 지금은 많이 안 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뜸사랑

 

구당 선생님의 따님이 우리를 위해 토종닭 백숙과 녹두죽을 해 주셨습니다. 구당 선생님이 長城에 내려오던 그해에 담갔다는 3년 묵은 김장김치는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따님 말씀이 배추를 심고 약을 치지 않고 그대로 둔답니다. 벌레가 먼저 다 먹고 나면 그 후에 남은 것으로 김치를 담그신다는군요.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습니다. 지방에서 오신 여러교수님이 손수 준비해 오신 맛있는 떡도 있어서 뜸사랑은 역시 사랑이 많은 곳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회의실에서 조촐하게 스승의 날 날 행사를 했습니다. 꽃다발도 드리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습니다. 103세 선생님께 노래를 불러드릴 때 괜스레 가슴 뭉클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뜸사랑을 만나서 이곳에 있을까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붕어빵을 기대하시는 구당 선생님

 

구당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멍청이는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구당 자신도 멍이가 된 것 같답니다. 하도 사람들이 안 들어주니까 본인 주장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답니다.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신음을 없애는데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냐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붕어빵이 나와야 하는 데 간혹 눈 없는 것이 나오기도 하고 꼬리 없는 것이 있기도 해서 이런 강의를 하신답니다.

火傷鍼의 3가지 특징은 통증을 없애는 것, 빨리 낫게 하는 것, 흉터 없이 낫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피는 쇳가루인데 쇳가루가 흩어지기 때문에 血管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뜸은 피를 만드는 것이고 鍼은 통하는 것, 氣가 통하는 것인데 電氣는 쇠가 있어야 통할 수 있답니다. 脈이란 살아있으면 수시로 變化가 있어서 잘 모를 수밖에 없대요.

또 옛날에는 "밤새 안녕하셨나?"라는 인사를 많이 했고 또한 측간 귀신을 제일 무섭다고 했는데 측간에서 쓰러지면 즉사했기 때문이랍니다. 대부분 혈압이 높은 사람이 변비도 있는데 쪼그리고 앉아 힘을 주다보니 쓰러질 수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측간에 가서 "에헴"하고 인기척을 했답니다. 특간 귀신에게 고하기 위해서요.

 

환자를 대하는 자세

 

디스크는 삔 것이라고 합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무거운 것을 들다가 삐끗했다 하는데 즉, 삔 것을 말하는 거래요. 디스크가 재발했다고 하는데 또 삔 것이랍니다. 뼈마디는 언제든 삘 수 있고 또 삔답니다. 손가락 중 엄지가 아픈 것은 頸椎(경추)를 치료해야 하고 나머지 세 손가락이 아프면 胸椎(흉추)3, 4, 5를 치료해야 한대요. 씨를 운반하는 것이 전립선인데 오줌누는 것과 상관이 없답니다. 양의들이 전립선에 소변 얘기를 하는 것은 바른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오세요."라고 환자에게 인사하는 대신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이렇게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료카드에 환자의 署名(서명)을 꼭 받아야 하고 환자의 住所(주소)와 전화번호도 꼭 적어야 하는데 혹시 걱정되는 사람이 있을 때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록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主호소증을 쓰고 소개자, 참고사항도 쓰고 현재 증상이 왜 생겼는지 다쳐서인지 병으로 온 것인지 약으로 온 것인지를 꼭 묻고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갈 데가 없어진 환자들이 찾는 침뜸

 

의학계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구당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얼마 전에도 돌아 엎드리지도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치료를 받았는데 갈때는 휠체어를 안 타고 갔답니다. 그렇게 버리고 가는 휠체어가 꽤 된다고 하셨습니다.

장성 무극보양뜸센터에 암으로 오는 환자는 줄었다고 합니다. 서울역에서 하실 때는 10명 중 7명이 암 때문에 왔는데 이곳엔 12명 중 8명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예전엔 의사들이 유사한 것도 암이라고 했던 것이 조금 줄어든 것 같답니다. 암이라고 마구 말했던것을 의사들이 그만할 때도 되었답니다.

이제 환자들은 갈 데가 없어졌으니 그들은 우리 뜸이라고 했습니다. 2017년 4월 3일 한국정통침구학회 정통침뜸평생교육원이 인가를 획득한 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평생교육법으로 가르쳐도 된다고 나라에서 허락해준 것입니다. 이 법의 통과를 항의하는 기득권층에 법원에서는 못하게 하려면 못하게 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지요.

 

"배워서 남주자"라는 구당 선생님의 구호를 항상 간직해야 겠습니다. 구당 선생님이 환자들을 치료할 때 '20여 개 鍼 자리'를 쓰는데 害(해)된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편하려고 숫자를 덜 쓰면 안 된다고 하셨지요.

구당 선생님은 얼마 전에 광주의 대학에 계시는 분이 아드님을 데리고 왔는데 이빨 가는 게 걱정이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하셨지요. 구당 선생님은 열화의 같은 우리의 요청에 의하여 교수회장님을 모델로 하여 鍼 시범도 보여주셨습니다. 이빨 가는 데에는 下關(하관)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열심히 동영상을 촬영했는데 나중에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고 없어져 버려 아쉬움이 컸습니다.

구당 선생님은 장성 뜸집에 회원기념비가 세워지게 된 것도 참 기뻤습니다. 1차 기념비가 세워지고 오천여 회원의 이름이 모두 새겨지는 그날이 곧 올 것으로 보입니다.

 

향기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

 

長城에서 구당 선생님을 뵙고 오면서 구당 선생님과 봉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봉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여자 봉사자 한 분이 오늘은 유난히 냄새가 심한 분들이 자신의 침상으로 많이 와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중풍 환자만 계속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리 아픈 분만 계속 보게 되더랍니다. 오늘은 여자 봉사자에게 그런 분들이 오는 날이었나 봅니다.

한 분은 젊은 분인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분이라 씻는 데 관심조차 없었고 한 분은 췌장암 말기 환자인데 살고자 하는 희망의 끈을 놓은 듯 했습니다. 내가 백회에 뜸뜨는 것을 돕기 위해 그분의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하얀 비듬이 수북이 내 손등으로 떨어졌습니다. 우울증이나 치매 등 정신적인 부분을 앓고 있는 분들과 말기 암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드물게 가끔 있는데 오늘은 그런 분들이 그 봉사자께 몰리는 날이었나 봅니다.

우리가 수다처럼 나눈 이야기를 지나가던 팀장님이 들으신 모양입니다. 종례시간에 한 말씀 하셨습니다. 성당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염을 해주는 봉사자들도 있는데 그분들은 돌아가신 분한테서 나는 냄새를 향기로 생각하고 염을 한답니다. 혹시 우리 봉사실에 오시는 분들이 조금 냄새나는 분일지라도 돌아가신 분들에게서 나는 냄새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냄새가 나더라도 우리는 그 냄새를 향기로 생각하고 봉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냄새란 무엇이고, 향기란 무엇일까

 

냄새란 무엇일까, 향기란 무엇일까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 우연히 김삿갓의 시를 읽다가 한 구절이 내 가슴에 풍덩 떨어졌습니다.

 

"落花入室老妻香(낙화입실노처향),

꽃잎 떨어져 방으로 들어오니 늙은 아내도 향기로워진다."

 

나는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마침 꽃잎이 떨어지는 봄날이었고 내가 늙은 아내이기때문이겠지요.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이기도 하니까요.

나에게 날아 들어온 꽃잎은 어떤 것이 있을 까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뜸사랑이 아닐까요. 구당 선생님은 거대한 나무로 무수히 많은 꽃을 피우셨습니다. 그중에 꽃잎 한 잎이 떨어져서 나에게로 왔기에 내가 뜸사랑을 알게 된 것이겠지요. 봉사실에 나오는 많은 봉사자들도 그 꽃잎을 하나씩 받은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뜸사랑에 있으면 우리 모두 香氣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뜸사랑 봉사대원 대상, 구당의 특강과 시연(2017. 4. 21)

 

 

⚫구당 선생의 열정에 탄복

⚫막연하게 알던 구당 선생의 시연을 보고 감탄과 환희

⚫스승과 제자들의 아름다웠던 240분의 침뜸 사랑

 

지난 4월 21일 저녁, 서울 뜸사랑에서는 현재 봉사실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를 중심으로 灸堂 선생의 침뜸 강의와 취혈, 자침 시연이 있었다. 강의실은 가득 차고 넘쳐 구당 선생의 침뜸 시연에 목말라 있음이 입증되었는데 강의 내내 힘겹게 서있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봉사자들은 하나라도 놓칠새라 메모하고 사진과 동영상 촬영에 강의실은 후끈 달아올랐다. 구당 침뜸을 바로 알도록 이해를 돕기 위해 이날 있었던 구당 선생의 특강을 녹취 게재한다.

 

구당 선생은 4시간에 걸친 특강과 시연을 지친 기색하나 없이 열정적으로 이끌어 갔다. 삼십대 청년도 도저히 딸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참석자들의 異口同聲이다. 그것도 100세를 훌쩍 넘긴 연륜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들은 진단과 치료에 관해 막연하게 알던 구당 선생의 시연을 보고 노스승에게 진정한 감사를 표했다.

 

● 구당 침뜸, 통합 의학의 초석

 

•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서양의학은 기구를 통한 진단에는 뛰어나나 치료에는 약하다. 서양의학은 정상 아닌 것은 정상으로 만드는 치료는 하지 못한다. 반면 동양의학은 털 하나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며 치료한다.

서양의학의 진찰에는 엑스레이와 현미경을 사용한 보는 진찰, 청진기를 이용한 듣는 진찰이 있다. 치료를 위해 필요한 진찰이 아니라 죽이고 자르는 데 필요한 진찰이다. 대표적인 치료라고 하는게 癌 치료인데, 소위 항암제로 치료하다가 사람이 먼저 굶어서 죽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자가 죽어도 의사의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양의학은 傳染病(전염병) 치료를 했기 때문에 그나마 대우받고 있다. 만일 鎭痛劑(진통제)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서양의학은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자르고 죽이는데 진통제가 없으면 치료가 가당하거나 하겠는가.

 

동양의학은 根本을 치료하기 때문에 털 하나도 손상시킬 필요가 없다. 털이 있는 곳에 뜸을 뜨면 더욱 잘 자란다. 단, 자르고 죽이는 것은 서양의학이 뛰어나므로 통합 치료가 되어야 한다. 醫는 하나이기 때문에 醫者에게 중요한 것은 동서양이 문제가 아니고, 환자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다. 내 것 네 것 다툼으로 환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서양의학과 특히 침뜸의학을 統合한 치료가 가장 우수한 치료 방법이 될 것이다.

 

• 침과 뜸의 원리

 

工學者로 인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잘못된 치료를 없게 하려고 교육을 해왔다. 침뜸은 변함이 없는 것이고 어렵지 않다. 이제 침뜸이 쉬워져서 누구나 똑같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침뜸 때문에 죽은 사람은 결코 없다. 침뜸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 말고는 침뜸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鍼은 몸속의 氣를 통하게 하는 쇠꼬챙이다. 몸속의 氣는 電氣이고, 전기는 쇠줄이어야만 통한다. 뜸은 피를 만드는 것이고, 피는 쇠가루이며, 뜸은 氣가 통하는 쇠줄을 만든다. 뜸은 쑥에서 빼낸 纖維(섬유)를 가지고 불을 이용해 상처를 내는 것이다.

몸 안의 발전소, 제약공장의 원료가 되는 게 뜸이다. 원료가 몸 안으로 흡수되어 피를 생성해 전깃줄을 만든다. 서양의학은 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므로 피가 필요하면 헌혈한 피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건선은 건조해서 생긴 병이고 습진은 아토피이다. 침뜸으로 좋은 피가 돌면 피부병은 자연히 치료된다. 약 성분 때문에 치료되는 게 아니다. 상처에 생긴 물질이 제약공장인 五臟六腑에 원료로 보내지면서 완전히 낫게 되는 것이다.

 

• 침뜸의 효과의 부작용

 

침뜸에는 부작용이 없다. 현재 鍼으로는 죽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없다.

과거에 사고가 있던 것은 침이 굵어서였다. 그런데도 그런 침을 쓰는 것은 가는 침 만드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현대는 0.1mm 침이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죽이려 해도

죽일 수가 없다.

무극보양뜸을 창안하고 나서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려고 했으나, 자신이 창안했다고 주장하는 한의사가 있어 특허 등록을 하게 도었으며, 중국에서는 무극보양뜸국제연맹을 자신들이 만들어 나를 총재 자리에 앉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잘 알 것이다. 또, 美國의 사우스베일로대학교에서는 구당 침뜸으로 博士課程(박사과정)을 개설해 교육하고 있어 내가 거기 가서 시연도 하곤 했는데 참으로 좋아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그런데 유독 韓國에만 오면 뜸이 홀대받고 찬바람이 분다.

요즘은 침뜸을 한다고 한의사가 고발하거나 의사가 치료 방해를 하면 오히려 환자가 의사들을 혼내는 세상이 되었다. 환자들이 병에 대해 먼저 알아 병원에 안가게 된자 서양의학이 갈 곳이 없게 된 것이다. 환자들이 癌 진단을 받을까 무서워 병원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갈 데가 없어진 환자가 뜸집으로 온다. 공짜여서 찾는게 아니라 효과가 있으니까 찾아온다.

 

● 대법원의 침뜸 교육 허용, 교육청의 평생교육시설 인정

 

우리 평생교육시설에서 침뜸을 교육해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이에 반발한 한의사들은 일부 의원들을 부추겨 평생교육시설에서 침뜸 교육을 금지하도록 평생교육법의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특별시로부터 평생교육시설 신고중을 교부받아 정상적인 "정통침뜸평생교육"을 할 수 있는 평생교육시설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평생교육법 4조 4항에 따라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인증서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회원 시험에서 앞으로는 자격시험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미 정회원이 된 사람들은 재교육 등을 거쳐 資格證(자격증)을 발급받게 될 것이다.

 

● 診斷法(진단법) 다시 익히기

 

• 치료카드 작성

 

1. 인사: "어서 오세요" 하며 방문 목적을 들어보고, 항상 낮은 자세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

2. 치료카드 작성

1) 주소: 사는 곳, 거주지를 기록한다.

2) 주 호소: 제일 많이 아픈 곳을 기록한다.

3)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묻거나 직접 적는다.

4) 전화번호: 환자에게 연락하기 위해 기록혼다.

5) 직업: 일때문에 생긴 병인지 알고자 기록한다. 서양의학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처음 온 환자를 대하는 태도

 

환자에게 왜 왔는지, 어디가 아픈지 질문하면서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초창기 서양의사들은 우리보다 診察(진찰)을 자세히 했었다. 맥도 짚고, 두들기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은 이런 행동을 컴퓨터가 다한다.

우리 침뜸 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봄가을과 같은 가운을 입어야 한다. 그것은 치료실의 상태를 알고, 환자가 추위에 노출되어 맥이 제대로 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맥을 보는 이유는 보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心臟의 활동력을 알기 위해서이다.

 

• 보는 진찰, 만져보는 진찰

 

보는 진찰과 만져보는 진찰을 한다. 진찰을 통해 환자의 뜨겁고 차가움을 느껴야 한다. 진찰을 통해 正常과 정상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릎이 아픈 환자는 양쪽 무릎을 만져 볼 수가 있는데 손이 무릎을 딱 덮도록 만져보면 상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만져보면 물주머니 2개가 잡힌다. 이 경우에는 알코올 솜뭉치를 왼손에 쥐고, 침놓을 자리를 잡고 內斜刺(내사자)한다. 가다가 막히면 잘 들어가는 쪽으로 천천히 넣어도 된다. 슬안에 침을 꽂아놓고 뜸을 뜬다.

무릎이 아픈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만져보고 맥을 짚는다. 허실을 위해 맥을 보는 것은 아니라 心臟의 활동을 보기 위해 맥을 짚는다. 심장에 피가 못 가면 피를 보내려 압력을 가하고, 열을 식히려 뜸을 내면 심장이 많이 뛰게 된다. 어디에 이상이 있어서 심장이 뛰는지 알아야 한다. 위쪽 두 손가락이 저리면 頸椎(경추)에, 아래쪽 세 손가락이 저리면 胸椎(흉추)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한다.

肝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이상이 있으면 딱딱해지고 통증이 있다. 脾臟은 왼쪽에 위치하고 갈빗대 밑에 만져진다. 胃는 중완에 딱딱한 게 만져진다. 心臟은 명치 밑에 만져진다. 肝이 안 좋으면 과거에 황달을 앓았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 좌골신경통 환자 취혈 자침 시연

 

• 주요 취혈 부위

 

족삼리는 다리에 힘이 없을 때 뜸뜨는 곳이다. 비골두소두를 만져서 수평으로 1치 올라가면 들어가는 곳 가장 높은 곳에서 밑으로 1치 또 뒤로 1치 되는 움푹한 자리에서 취한다.

곡지는 뜸자리 잡기 제일 좋은 곳이다. 주횡문과 손바닥을 아래로 했을 때의 가장 높은 능선이 만나는 곳이다.

중완은 기골 끝과 배꼽 한가운데의 중간을 잡는다. 한 번 뜸뜨면 백선이 확실히 나온다.

중극은 여자라면 누구든지 취한다. 배꼽 아래 4촌 곡골 위 1촌에서 취한다. 수도는 여자가 월경할 때만 주로 취한다. 월경을 안하면 천추에 취한다. 배꼽 아래 3촌인 관원에서 옆으로 2촌 나간 지점에서 취한다.

전중은 누운 자세에서 양 유두를 이은 선의 한가운데서 취한다.

천돌은 가래 많이 끓을 때, 에헴 하는 헛기침할 때 쓴다. 한 번만 뜨고 끝낸다. 흉골병 위로 0.5촌 올라간 오목한 곳에서 취한다.

신유는 양관을 먼저 잡고, 그다음 다음 마디를 잡는다. 제2요추 극돌기 아래에서 옆으로 1.5촌 되는 지점에서 취한다.

양관은 제4요추 극돌기 아래로 장골릉 위 수평선과 만나는 지점에서 약간 아래로 함몰되는 곳에서 취한다. 양관에 탈이 나면 좌골신경통이 온다.

환도는 환자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환자가 모르게 침을 놓아야 한다. 침이 길기 때문에 양수법을 사용한다. 만져보면 한쪽 엉덩이가 높은 쪽에 대퇴골 대전자 뒤 위쪽 오목한 곳으로 대전자 최고점과 천골 밑의 요유혈을 이은 선의 밖 1/3 되는 지점에서 취한다.

폐유는 제3흉추 극돌기 아래 옆으로 1.5촌 되는 지점에서 취한다.

고황은 제4흉추극돌기 아래에서 옆으로 3촌 되는 지점에서 취한다.

백회는 전발제와 후발제의 한가운데서 앞으로 1촌 되는 곳에서 취한다. 전발제에서 5촌, 후발제에서 7촌되는 지점이다.

풍지는 후발제 위쪽 쑥 들어간 곳이다. 어지럽고 머리 아플 때 사용한다. 흉쇄유돌근과 승모근 사이의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으로 풍부혈에서 수평으로 2.25촌 되는 부위에서 취한다.

견우는 어깨가 많이 아플 때 쓴다. 팔을 들었을 때 나타나는 어깨의 움푹한 곳 두 개 중 앞의 오목한 지점에서 취한다.

천주는 어지럽고 머리 아플 때 사용한다. 후발제에서 후정중선을 따라 수직 위로 0.5촌(아문), 다시 옆으로 1.3촌 되는 지점이 만나는 곳에서 취한다.

둔압은 다리, 허리 아플 때 사용한다. 엎드린 자세에서 천골과 미골의 접합부인 요유의 외방 2촌쯤 쑥 들어간 곳에 취한다.

 

• 발침할 때 주의점

침을 뺄 때는 침을 꼭 잡고 침 놓은 부위 양쪽 근육을 누르면서 빼야 피가 안 나온다. 뽑은 침은 왼손가락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계속해서 나머지 침을 뽑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기회를 갖도록 하자.

(권두언) 침과 뜸이 대체 무엇이기에...(계간 구당 2017 여름)

 

金 南 洙

본지 발행인, 한국정통침구학회 회장, 정통침뜸평생교육원장

 

 

"침뜸으로 百 年을 넘게 산 이 늙은이가 저 세상에 가기 전 간절한 바람이 있다. 국민의 대통령과 환자의 보건복지부 장관께서 [구당침술원]에 직접 오셨으면 하는 것이다."

 

自然은 하나다. 陰陽은 둘이다. 둘은 구분이다.

구분은 해와 달, 男子와 女子, 사람의 몸도 上下,

앞뒤, 左右 구분 상대이다.

구분은 바꿀 수가 없는 것.

바꿀 수가 없는 것이 하나 속에 둘이기 때문에

도로 하나인 것이다.

사람도 하나, 醫도 하나, 함께도 하나다.

 

침뜸은 죽이지 못하고, 자르지 못한다.

한의사가 醫療人일까?

서양의학은 죽이고 자르지만, 살리지 못한다.

서양의학이 醫學일까?

 

 

• 전기는 하나다.

음양 둘이 합하여 하나인 전기(氣)로 발전소에서 부터 스위치까지 하나의 전기다.

구당이 알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몸속에 전깃줄인 쇠줄이 있고, 쇠줄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 쇠줄이 形成하는지 확실하게 알고자 함이다.

 

인체 전기를 氣血이라고 하였다. 기혈은 끊임없이 通하는 것이다.

기혈을 통하게 하는 것이 침뜸인 것이다.

사람 몸속의 전기를 氣라고 하였다. 기를 통하게 하는 것이 鍼(침)이다.

전기는 金屬性인 쇠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 것을 알려면 사람 몸통보다 더 큰 나무나 섬유를 줄로 하여 보아라, 전기인 기가 통하는가?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것이라도 금속의 쇠줄은 宇宙도 움직인다.

쇠줄이라고 해도 고체의 줄이 있고, 가루로 하여 연한 줄로 있으며, 소우주의 사람의 몸과 큰 우주인 지구는 금속성 가루인 쇠가루로 되어 있는 것이 기에 부딪침 없이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 이것을 알아보자.

고체인 쇠줄은 보여도, 가루인 쇠줄은 안 보여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멀리는 별과 달이고, 가깝게는 TV를 볼때 리모컨으로 한곳만 눌러주면 줄이 연결되어 조직되는 것으로 전깃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줄이 맞지 않으면 조작이 안 되는 것으로 안 보여도 줄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줄, 쇠줄은 확실한 쇠가루인 것이다.

 

鍼이란 보이지 않는 전깃줄을 연결시키는데, 리모컨에서 목적인 자리를 누르면보이지 않는 줄이 이어지는 것과 같이 사람 몸속의 氣(전기)가 통하지 않을 때 통하게 하는 자리에 금속인 침을 찌르면 TV가 작동하는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전깃줄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鍼이다.

 

• 뜸이란, 전깃줄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전기를 발전소에서 생산했어도 전깃줄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침뜸을 음양철학으로 말하면 虛實을 말한다.

작은 것, 즉 균형조절을 말하는 것으로 적으면 많게, 많으면 적게 해주는 손재주를 부리는 것을 鍼術이라고 하고 긴 세월 동안 형이상학적으로 실행하여 온 것이 부작용 없고 효과가 있었기에 전해져 사용되어 왔고, 다만 부작용이 없었다 하는 것은 침이었다.(당시엔 굵은 침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는 신경이 끊어지거나 내출혈이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침과 뜸만으로 가장 긴 세월 병이 있어도 병이 없어도 안 한 사람 없고, 안 간 곳도 없고, 안 만난 사람 없이 침뜸만으로 살아온 사람이 나 灸堂 하나뿐이고, 똑같이 6000명이라는 붕어빵들이 수백만 명에게 침뜸만을 하게 하여 침뜸이 건강 지킴이가 되면서 아직까지 손가락 하나 구부려 놓은 사람 없이 모두가 건강하며 죽을 때까지 걸림 없이 활동하는 것이 정통 침뜸으로 확인되었다.

 

• 2017년에 103세의 몸으로

하루도 쉼 없이 활동하면서 나 혼자만 그러하다면 침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나 우리 뜸사랑 회원들은 고령의 남녀가 모두 하나 같아서 붕어빵이라고 한다.

침뜸을 하는데 어려운 허실보사 없이 鍼은 통하게 하고, 뜸은 뜸쑥에 불을 사용하여 피 만들어 전깃줄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다.

어려움 없이 생활로 쓸 수 있는 것을 누구나 할 수 있게 [정통침뜸평생교육]으로 온 세상 생명에게 알리는 것이다. 나 灸堂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후대에 남겨주고, 저 세상에 가서도 이 일로 살아보려 한다.

 

그리고, 침뜸으로 백 년을 넘게 산 이 늙은이가 저 세상에 가기 전 간절한 바람이 있다. 국민의 大統領과 환자의 보건복지부 長官께서 [구당침술원]에 직접 오셨으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 오는 환자들의 아픔과 간절함을 직접 보시게 된다면 침과 뜸이 왜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지 아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중국 조선족의 구당침뜸 - 한국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

 

오ㅇㅇ(정회원 32기)

 

나는 꿈을 안고 2003년 한국에 온 중국 조선족이다. 이제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10여 년의 한국생활을 돌이켜 보면, 지금은 별 문제 없이 무난히 생활하고 있는 내 몸을 보면서 참말 感悔(감회)가 깊다. 한국에서 뜸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요양 병원에 누워 고통스럽게 연명하고 있지 않을까?

 

•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몸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해 많은 잔병을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이염을 앓았고 오른쪽 무릎이 아파 침을 맞았으며, 평생 설사를 안고 살았다. 처녀 때부터 요실금이 있었고, 허리늘 늘 시큰거리고 잘 삐곤 하였다.

겨울철만 되면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겨울은 물론 한여름에도 감기에 잘 걸렸으며 목에는 항상 이물질이 낀 것처럼 아프고 불편했다.

아랫배를 조금만 걸어도 가스가 팽팽 차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머리가 터질 듯 아파 항상 중국산 개보린(去痛片)을 달고 살았다. 한국에 올때도 개보린을 한 보따리 사가지고 왔다.

 

• 한국 가정부 생활로 옮은 병

이런 몸으로 한국에 와서 가정부로 들어가 갓난아기를 돌보았다. 그럭저럭 아픈 몸을 지탱하면서 일하다가 2008년 내가 돌보던 아이가 폐렴에 걸리면서 나는 감염되어 중한 감기에 걸리게 되었다.

약을 일주일 먹고 낫는가 싶어 약을 끊었더니 재발이 되었다. 그 후로는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코가 퉁퉁 부어오르며 피가 났다.

김치, 된장 같은 조금만 짜고 매운 것만 들어가도 목이 쓰리고 아팠다. 입안이 너무 마르고 침이 생기지 않아 목캔디를 달고 살아야 했다.

 

• 높은 백혈구 수치

눈도 모래알이 낀 것처럼 쓰리고 아프고 햇빛만 보면 눈물이 줄줄 흘렀다. 거기에다 방광염은 날이 멀다 하고 도지고 변비와 설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곤 하였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이비인후과와 비뇨기과를 반년 넘게 다녔는데 조금 나았다 싶어 약을 끊으면 또 다시 재발하곤 하였다. 6, 7개월 치료하다 의사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서 그런다며 다른 방법을 써보라고 하셨다.

 

•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

이 상황에서 죽지도 않고 살기도 너무 고통스러운 나날을 절망 속에서 보내던 중 2008년 秋夕(추석)에 灸堂 金南洙(구당 김남수) 선생님께서 KBS 채널에 출연하시어 이틀 동안 침과 뜸에 대해 강의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 이 방법 밖에 없구나. 나는 그 길로 서점에 가서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등 구당 선생님의 책을 보이는 대로 몇 권 사가지고 왔다.

 

• 구당 선생님을 찾으러 나서다

책에 적혀진 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는 이가 없었다. 그 후에도 열 번도 더 걸었지만 여전히 받는 이가 없었다. '남수침술원'을 어떻게 찾지? 초조한 마음으로 몇 달을 지내다가 어느 날 지하철을 타면서 우연히 "서울의 모든 것 120에 물어보세요"란 공익광고를 보게 되었다. 120에 전화를 걸었더니 찾아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래서 일요일날 남편과 함께 淸凉里(청량리) '남수침술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구당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고 침술원은 진료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중국에서 온 僑胞(교포)라고 하니 구당 선생님 아드님께서 동묘 봉사실을 알려주시면서 그곳에 가서 치료 받아보라고 하셨다.

 

• 동묘 봉사실에서 받은 치료

그 길로 동묘 봉사실에 찾아가 나의 정황을 말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봉사실 선생님께서 침을 놓고 뜸자리를 잡아주면 집에 돌아가 매일 한 번씩 꾸준히 뜸을 뜨고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실에 나와 침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 날이 내 평생 잊지 못할 2009년 1월 18일이다. 내 건강의 길을 찾은 날이다.

침뜸 공부를 하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무극보양뜸에 상성 신유 요추345 삼음교 대장유 천추 거궐 좌양문 등의 혈자리를 잡아주었던 것이다.

 

• 동생의 도움을 받아 뜸 뜨다

물이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방법 아니면 나의 몸은 다른 방도가 없다. 생각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뜸을 떴다. 앞에는 나 혼자 뜨고, 등은 내가 보는 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버스 타고 동생한테 가서 떠달라고 했다. 하루라도 뜸을 뜨지 못하면 병이 원래대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다.

 

• 4개월 만에 나타난 뜸의 효능

그렇게 끈질기게 4개월 남짓 떴을까? 하루는 일요일 휴무하고 일하는 집으로 가는데 그렇게 힘들던 오르막길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고 다리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 뜸의 효능이 드디어 나타나는구나! 나는 너무도 기뻤고 희망이 생겼다.

1년 남짓 뜨니까 불던 코가 점점 가라않고 피나는 것도 멎기 시작했다. 점차 김치, 된장도 먹을 수 있게 목도 좋아지며 입 안에 침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에 모래알 낀 느낌도 없어졌으며 눈약을 넣지 않아도 되었다. 방광염도 도지지 않았다.

 

• 9년 동안 매일 뜸

나는 오늘날까지 9년째 매일 뜸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지금 나는 그렇게 잘 삐던 허리도 이제는 삐지 않고 시큰거리던 증상도 없어졌다. 겨울이 되어도 다시는 콧물이 흐르지 않는다.

긁어도 없어지지 않던 혀의 누런 태도 언제 없어졌는지 지금은 담홍색의 깨끗한 혀가 되었다.

소화가 되지 않아 머리가 터질 듯 아파 고생했던 위도 증상이 사라져 지금은 두통을 모르고 산다. 물론 중국에서 가지고 온 개보린을 모두 버렸다.

아랫배에 차던 가스도 언제 없어졌는지 지금은 몸이 가볍고 그렇게 많이 빠지던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는다.

 

• 요실금 수술 후 10년

10년 전에 나는 한국 적십자병원에서 무료로 요실금 수술을 했고, 그 후에는 하지정맥류 수술도 했다. 이 두 가지 병 모두 시간이 지나면 재발하기 쉽다고 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재발 없이 편히 지내고 있다. 나는 이것을 중극, 수도 등에 놓았던 뜸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뜸은 나는 큰 돈도 들이지 않고 그 지극한 공통에서 탈출시켜 주었다. 지금 나는 만성병에는 뜸이 최고라는 말을 크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가족 건강 위한 침뜸 공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좋은 의술을 공부하여 최소한 우리 가족의 건강이라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며 2014년 10월부터 침뜸공부를 시작한다.

이 공부를 하면서 내가 왜 그렇게 잔병이 많았는지 알게 되었다. 원래 나는 선천적으로 오장육부를 허약하게 가지고 태어났던 것이다.

腎氣가 약해 중이염과 요실금을 앓았으며, 허리가 시큰거리고 잘 삐었던 것이다. 脾氣가 약해 설사를 달고 살았고, 胃氣가 소화가 되지 않았으며, 肺氣가 약해 코와 목이 아팠고, 心氣가 약해 하지정맥류와 고혈얍을 앓았던 것이다. 정말 이 공부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 남편 습진 치료

나는 이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 와서 몇 년 동안 고생하게 만든 남편의 濕疹(습진)도 치료했다. 무극보양뜸에 비유 신유 대장유 삼음교 축빈 혈해 견우 여구 등 혈자리를 취해 4~5개월 뜸을 떴다. 그렇게 몇 년간 약을 먹고 바르고 해도 근치가 되지 않던 습진이 진물이 서서히 마르면서 깨뜻이 치료가 되었다.

불로 살을 태워서 무슨 병을 고치냐며 의심하던 남편은 이제 적극적으로 뜸을 떠다라고 한다.

남편의 가족은 치매 가족력이 있다길래 몹시 걱정했는데 뜸이 치매, 중풍, 암까지 豫防(예방)한다니 이 보다 더 좋은 의술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나와 남편은 짬만 나면 서로 뜸을 떠주면서 노년의 건강한 삶을 지키고 있다.

 

• 한국에서 얻은 갚진 보물, 구당 침뜸

14년 전 나는 돈 벌러 한국에 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에서 얻은 수확은 돈이 아니다. 그 보다 몇 곱이나 값진 침뜸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건강을 찾았다.

그 醫術(의술)을 기초 지식이나마 배웠다는 것이 최고의 수확이고 한국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침뜸 덕분에 體質(체질)을 개선시켰고 건강을 찾았다.

구당 선생님의 책 이름과 같이 이제 뜸은 정말 내 사랑이 되었다.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나와 나의 가족은 뜸으로 건강을 지킬 것이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뜸을 널리 전파할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꾼 구당 침뜸

 

 

최ㅇㅇ(정회원 31기)

 

• 위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

2010년 4월경 몸에 이상 증세가 시작되었다. 등에서는 전기가 오듯이 저릿저릿한 증상이 계속 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밤새도록 뱃속에서 나는 꾸룩꾸룩 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은 아직 날짜가 더 있어야 했다. 내 돈을 들여 병원을 가자니 아까워 6개월초까지 기다리던 중 별안간 몸무게가 3kg 빠졌다. 그래도 6월 검진까지 버틴 끝에 검사를 하게 되었다.

내시경 검사 도중 의사가 나에게 위장을 절제하면 많이 불편하니 약 좀 먹고 관리 좀 하라는 충고를 하며 위에서 조직을 떼어 냈다. 나는 별일 아니겠지 하며 한 귀로 흘려버렸다.

 

• 암 진단을 받다

일주일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빨리 방문하란다. 나는 다음날 방문하기로 하고 이유를 물었다. 병원 쪽에서는 암이란다.

난 잠시 멍해졌다. 집사람이 왜 그러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다. 조그만 목소리로 "암이래

!"했다. 순간 아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다음날 병원에서 달려가 검사 결과를 들었다. 결과는 胃癌 初期라 하였다.

믿을 수 없어 검사 결과가 담긴 CD를 가지고 큰 병원을 찾기로 했다.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를 찾아가 다시 검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위장을 전부 절제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 무책임한 위장절제 수술

TV에 나왔던 유명하신 의사가 나에게 위장을 절제해도 정상인 사람과 똑같이 먹을 수 있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안심을 시켰다. 수술을 결심하고 병원에서 제일 첨단 수술인 로봇 수술을 하자고 하니 의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보통 복강경이나 절개수술은 2시간 정도면 끝나는데 의사의 실수로 인하여 6시간 30분이나 걸려 수술이 끝났다. 그럼에도 의사는 나나 내 아내에게 한 마디 설명도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떼어낸 암덩이도 보호자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의사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다음날 학회를 핑계로 내 앞에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더니 퇴원 전날 나타나 수술이 잘됐다는 얘기만 하고 사라졌다.

퇴원 후 저혈압으로 119에 실려 갔다. 병원에 가서 CT를 찍으니 수술을 두 번 했냐고 이곳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잊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 주말 약초꾼, 오지 어르신 위해 침뜸 공부

암 수술 후 더 열심히 藥草를 찾으러 산으로 들로 주말이면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오지 마을에 갔더니 어르신들만 계셨는데 모든 아픈 분들이었다.

이곳 강원도 오지는 면소재지라도 병원이 없는 곳이 있어 몸이 아프면 약초를 먹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것이 안타까워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TV에서 灸堂(구당) 선생님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침뜸을 배워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오지의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요반 접수를 하였다.

 

• 원주 무료진료실, 주말 오지 무료진료

졸업 후에도 무료진료실을 나가긴 해도 직장인이라 평일 무료진료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에 매주 휴가를 내기도 어려웠다. 주말에 오지로 산행을 가서 그곳 이장님께 침뜸 무료진료 한다 말씀 드리면 마을 회관으로 아픈 환자들 오시라는 방송을 하셨다.

토요일 하루는 무료진료하고 일요일은 약초 산행을 하였다. 물론 지금도 종종 하고 있는데 마을에서 인기가 좋아 다른 마을의 환자들도 치료를 받으러 찾아오신다.

 

• 동기들과 함께 무료진료, 임상실험 나눔

원주 무료진료실을 자주 못 가던 차 원주 무료진료실을 만든 우리 선배이신 김창수 신부님께서 충북 제천 백운성당으로 부임하여 가시며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백운성당에 무료진료실을 마련할 테니 일요일무료진료가 가능하냐고 말씀을 하시기에 난 두말없이 감사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2016년 10월 2일 제천 백운성당 무료진료실 개원을 하게 되었다.

 

• 제천 백운성당 무료진료실

제천 백운면에는 병원이 없다. 아프면 제천 시내나 원주로 가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이곳에서도 무료진료실은 인기가 좋다. 아프신 분들도 아무 의심 없이 우리 무료진료자들을 받아들여 치료 효과도 매우 빠른 편이다. 이곳의 여성 신도들이 뜸뜨는 것을 배워 동네를 매일 돌며 우리 무료진료자들이 자리 잡은 환자들의 뜸자리에 뜸을 떠드리니 이곳의 환자분들은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김창수 신부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곳 백운 무료진료실도 침상 두 개로 시작하여 지금은 4개가 되었고 무료진료하시는 선생님도 소현 선배님과 나 포함 4명이다.

 

• 침뜸으로 요통, 비염 치료

침뜸을 배우고 나서 나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찾아온다.

나는 암환자란 생각으로 늘 불안한 마음이 있었고 삶에 대한 애착은 많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늘 재발에 대한 남모르는 두려움이 있었다. 침뜸을 배우기 전에 건강검진을 하면 요산수치도 높고 비염 때문에 호산구수치도 높게 나왔으며 요통도 25년 동안 앓고있었다.

비염 때문에 냄새를 맡지 못한지도 몇 년 되었다.

위가 없으니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깡말랐다. 수업시간에 혈자리 잡기가 다른 사람보다 좋다고 모델로 많이 나가서 교수님들께 아픈 곳에 뜸자리도 잡고 치료도 많이 받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뜸을 떴다.

어느 날부터인가 코에서 냄새가 맡아지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를 보니 모든 수치들이 정상으로 나왔다. 특히 지긋지긋한 요통에서 해방되었다.

 

• 회사 동료 침뜸 치료

나는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을 다니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꽤 알려진 회사다.

이곳 원주에는 1500명 정도가 근무 하는데 침뜸을 배우며 회사동료들에게 임상실습도 많이 한다. 근골계 질환이 심한 직원들이 많아 치료도 많이 한다. 회사의 윗분들도 아프면 나를 찾아온다.

 

• 원형탈모 후배 치료

한번은 머리에 500원짜리 만한 원형탈모가 10개정도 있는 후배가 한방대학병원을 3년 다녔는데 돈만 수억 버리고 효과가 없다고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에게 집으로 오라하여 배운 대로 진단과 변증을 하여 치료를 시작하였다. 이틀에 한 번씩 집으로 오라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로 水昇火降이 안 되어 생긴 것으로 판단되었다. 무극보양뜸을 기본으로, 침과 뜸으로 火氣는 내리고 원형탈모가 있는 곳에는 쌀알 크기로 뜸을 떴다. 10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약 3개월 15일 후 그 친구는 원형탈모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원형탈모도 치료했지만 精神的인 문제도 함께 치료했던게 치료의 핵심이었다. 술자는 환자의 마음도 헤아리며 치료를 해야 기간도 짧아지고 효과도 아주 좋아짐을 늘 느낀다.

 

• 지인 장인 변비 치료

또 한 번은 지인의 장인이 평생 변비로 고생하시는데 아주 심할 땐 장갑을 끼고 파내신다고 들었다. 나 보고 혹시 변비도 치료하느냐고 묻기에 한번 만나나 보자며 지인 집으로 찾아가 그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께 그 동안 변비로 고생한 이야기를 듣고 무극보양뜸과 황유 대장유 신유 이신문 그리고 변이 만져지는 변비점과 요안에 뜸을 5장씩 해드렸다. 그 어르신 따님에게 매일 뜸을 해드리라고 하고는 돌아왔다.

다음날 저녁 지인에게서 집으로 급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그 어르신이 너무 반갑게 맞으시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변을 시원하게 보았다며 아주 고마워하셨다. 꾸준히 뜸을 뜨시면 완쾌도 가능하다고 하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셨다.

 

• 백운성당에 오신 다리 저는 할머니

오늘도 백운성당 무료진료실에 다녀왔다. 75세 된 여자 어르신 두 달 째 오시는데 처음에 오실 때 절룩거리며 몇 걸음 못 걸으셨으며 겨우 무료진료실에 들어오셨다.

온몸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셨으며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뜸자리를 잡고 침과 같이 뜸을 정성껏 해드리고 집에 가셔셔도 매일 뜸을 하시라 말씀드렸다. 꼭 그러마 답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오늘은 오시더니 여기오기 전 병원에 다니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외과, 한의원을 15년 동안 다녔는데도 효과가 없었는데 백운 무료진료실에 와서 큰 효과를 보셨다고 칭찬을 하시고는 점심을 사주신다고 같이 나가시자고 하셨다. 무료진료자 모두가 점심 대신 아픈 환자분들 많이 모시고 오라 부탁 드렸더니 많이 아쉬워하셨다.

 

• 초심을 생각하며 공부, 노력

나는 늘 初心을 생각하며 공부를 하고 노력한다. 침뜸은 내 아픈 육체와 오지에서 살아 아파도 치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배운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훌륭하고 우수한 구당 선생님의 침뜸을 배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음지에서라도 열심히 무료진료하고 우리 제자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뭉쳐 싸우다 보면 곧 밝은 양지로 활짝 웃으며 나을 수 있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나는 이제껏 살며 잘 한 것이 3개 정도 있는데 하나는 현재 직장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여 처자식을 먹여살린 것이고, 두 번째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고, 세 번째로 잘한 것은 구당 침뜸을 배운 것이다. 살아가며 내 손으로 아픈 사람을 위해 무료진료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자랑스럽다.

정년이 4년 정도 남았다. 정년퇴직후의 내 인생은 어느 누구보다도 침과 뜸이 있기에 행복할 거라 믿고 있다. 나는 구당 침뜸이 있기에 누구보다 더 건강할 수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내는 내가 무료진료한 모든 환자들이 구당 침뜸이 있기에 건강할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무극보양뜸, 20년 어지러움증 해방되다

 

 

신ㅇㅇ(뜸사랑 정회원 31기)

 

• 이명과 함께 시작된 어지러움증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가장 큰 고통은 20년 동안 나를 괴롭혀온 심각한 어지러움증이었다. 30대 후반이었던 90년도 후반부터 耳鳴(이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이명이 생기고 나면 그것이 어지러움증으로 이어지는데,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듯한 구토를 동반했다. 응급실에 가서 진정제를 맞아도 몇 시간은 고통을 겪어야 진정이 되곤 했다.('환장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 몇 년은 일 년에 서너 번 오던 것이 2012년경부터는 수시로, 때로는 일주일에 두세 번까지도 이런 증상이 생겼다. 한번 어지럼증이 찾아오면 바로 옆에 있는 물컵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온 세상이 빙빙 도는 증상이 몇 시간씩 지속되었다.

 

• 불가능해진 일상생활

처음엔 '이명'이라는 전조증상이라도 있어서 외출을 자제하는 등 조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이명은 항상 따라다녔고, 심한 증상이 언제올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10여 초 사이에 시야가 거꾸로 뒤집히며 위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곤 했다.

한 번은 운전 중에 증상이 와서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에 운전도 할 수가 없었다. 더 심해져서는 잠을 자다가도 새벽녘에 어지러움이 생기곤 하였는데, '사람이 이렇게 죽기도 하겠구나'싶었다.

한번 이 증상이 오면 장이 뒤집어질 만큼 토하기 때문에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후유증으로 누어있어야 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체중도 1년 사이에 약 7kg 정도 줄었다. 또 이명이 있는 왼쪽 귀는 청력도 저하되어 전화도 받을 수가 없었다.

 

• 뚜렷한 답을 못 주는 병원 진료

이비인후과 진단도 받아봤고, 이런 증상이 올 때마다 병원 진단도 받았다. 한의원에서는 화병이다, 또는 기력이 쇠했다 하고, 이비인후과에선 이석증 또는 메니에르병, 양방에선 히스테리발작증세라기도 하고, 어떤 곳은 두고봐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중 내가 가장 신뢰하는 단골 내과선생님께서는 "장과 위의 연동운동이 맞지 않아서 오는 증상이지만, 이 어지러움증이라는 것이, 수십 가지나 되는 원인 중 몇 가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조합을 완전히 찾기 어렵다. 더 이상 검사해봐야 별 소득이 없을 거다."라며, 증상이 올 때마다, 진정제를 미리 조제 해두었다가 먹는 방법이 나을 거라고 하셨다. 그나마 이곳 내과 선생님이 가장 양심적인 셈이다.

 

• 검사는 하되 치료는 못하는 병원

다른 곳은 이 검사 저 검사로 한번 가면 몇 십 만원 병원비가 나와도, 귀를 검사해 보고는, "아무 이상이 없네요... . 피검사에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한다. 초음파로 들여다보고는, "여기엔 특별한 증후가 없습니다." 한다. 혹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병명을 내놓기는 하는데, 그 진단이 맞다면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병이 나아야 하지 않는가. 한의원을 다니든 양방병원을 다니든 병은 더 심해져 가고만 있었다.

나중엔, '도대체 뭘 알고 하는 건가. 그냥 병원 수입올릴려고 여기저기 찔러보기 식으로 잡아두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내과에서 조제해준 진정제를 먹고 버텼지만, 나중에는 진정제마저 듣지 않게 되었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가서 좀 더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지만, 그동안 병원에서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감이 없었다.

 

• 신문기사로 만난 구당 선생

2008년인가, 신문에 배우 장진영 씨가 구당 선생님께 치료를 받고 있는데, 구당 선생님의 자격증 문제로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때는, 불법이라기보다는, 뜸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뭔가 좀 특별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분이 연세가 많으신데 돌아가시기 전에 이걸 배워둘 순 없을까...'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어지러움증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정도였다. 또 사라지는 유산을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 침뜸이 내 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 면역글로블린 주사

그러다 2012년부터 증상이 심해져서 일하는 도중에도 몇 번씩 쓰러졌고, 2013년부터는 하던 일도 내려놓게 되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와중에 집안에 큰일까지 겹쳤다. 주변 소개로 면역글로블린이라는 주사를 일주일 간격으로 맞으며 버틸 수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진액 보충 정도가 아니었을까... .) 하지만 이것도 끊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니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다.

 

• 지식으로만 배워두려던 뜸

어쨌거나 더 이상 하는 일도 없겠다 남는게 시간이라, 전에 신문에서 봤던 구당 선생님을 떠올리고는, 인터넷을 뒤져서, 2014년 5월에 335차 초급반을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엔 뜸만 뜨는 간단한 과정인줄 알았는데 1년 과정인 걸 알고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초급반 3개월만 투자해서 뜸뜨는 것만 배우려는 생각이었는데, 동기 선생님들이 밀어주고 당겨주셔서 1년 과정을 다 수료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뜸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해지던 것이라 생각했기에, 상식차원에서 배워두면 좋겠다 싶은 것이지, 내 병을 고칠 것이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에 화상자리가 남는 것도 싫고, 더구나 머리털을 태워가면서 백회 자리 남는 것도 꺼려졌다. 강의 내용은 음양오행도 따지는데, 동양사상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음양오행이란 점이나 수주팔자를 보는 데에 쓰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이해도 잘 되지 않았고, 개념 정리가 안 되어 있어 강의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쓰러지는 바람에 무료진료실에서 치료 받다

이런 이유로, 뜸사랑 교육원에 등록한 초기에는 지식으로 배워두긴 하되, 내 몸에 뜸을 뜰 생각은 없었다. 몸이 냉해서 삼복더위에도 핫팩을 윗배 아랫배에 두 개씩 붙이고 다니면서도... .

그러다 어느날 또 쓰러져 집에 누워있는데 짝꿍선생님이 우연히 안부 전화를 주셨다. 내 상황을 아시고는 놀라셔서 당시 담당교수님이신 김모 교수님과 연결해 주셨다.

마침 월요일이라 동묘 무료진료실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교수님께 혹시 누가 될까 심명은 밝히지 않는다) 그 꺼려지던 화상 자리도 십여 군데 나고... .

몸이 너무 쇠약하여 침도 잘 못 맞겠다며 뜸이나 열심히 뜨라고 하셨다.

 

• 일 년간만 꾸준히 뜸하기로 마음먹다

그 꺼려지던 화상 자리도 생겼겠다, 교수님께서 그토록 낫는다고 권하시니, 기왕에 어차피 이리된 거 일단 한 일 년은 거르지 말고 최선을 다해보고 난 후에 차도가 없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끊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뜸자리는 무극보양뜸+좌천추, 우양문, 신유, 두유, 완골이었다. 뒤쪽은 일주일에 두 번 강의 나오는 날에 동료 선생님들이 떠주였고, 앞쪽과 백회는 매일 떴다. 남의 손을 의지하면 매일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폐유까지는 혼자 뜨신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아, 백회는 혼자 뜨는 연습을 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 계속 쓰러졌지만 희망은 뜸

그렇지만 처음 얼마간은 차도가 없었다.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쓰러졌다. 그나마 다행히 뜸사랑 교육원 가는 날은 비켜가는 바람에 총 28회 수업 중 7번 결석으로 턱걸이로 중급반에 올라갈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수업에 가려고 집에서 나오다가 쓰러져 집에 놀러 앉고, 수업 가는 도중에 전철 안에서 어지럼증이 와서 집에 돌아간 날도 있었다.

위는 돌처럼 굳어 죽조차 하루 한끼도 못 먹고, 수시로 찾아오는 늑골 밑 담 결림과 다리와 발에 쥐가 나는 현상 등이 있었다. 그래도 1년은 최선을 다해보고 결론을 내리자. 어차피 화상흉터 난 거... .'라며 스스로 다랬다.

 

• 3개월 지나 증상 호전

한 3개월 지나니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1년 반이 지나고, 정회원 시험을 치를 때까지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토하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어도 여전히 아주 없어지진 않았다.

그나마 좀 희망적이었던 것은, 이전처럼 증상이 끝까지 가지는 않고 도중에 멈추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전엔 일단 어지러우면 몇 시간씩 토하고, 몇 시간씩 어지러움증이 계속되고, 이후로도 1주일은 누어서 지내야 했다.)

 

• 만 삼 년 만에 99% 치료

2017년 6월이면 무극보양뜸을 시작한지 이제 만 삼년이 되는데, 이젠 90% 치료가 되었다. 치료된 증상은 다음과 같다.

 

- 2016년 1월 이후 2017년 2월 중순까지 일 년간 한 번도 증상이 찾아오지 않았다.

- 위장도 회복되어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다.(단, 찬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따뜻하게 데워 먹는다.)

- 뜸 뜬지 2년 정도 지나니 이명이 사라졌다.

- 2년 8개월이 되는 요즘, 청력도 회복되어 왼쪽 귀로 전화도 받을 수 있다.

- 늘 얼음장 같던 손발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 쥐가 나거나 담 결림도 거의 사라졌다.(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남들도 겪는 일반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 주변 사람들 뜸자리 잡기

하도 요란하게 아팠기 때문에, 무극보양뜸이 어떤것인지 설명할 필요도, 불법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나 자신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교회나 친구 가족들에게 무극보양뜸의 효능을 입증하는 셈이 되었다.

며칠 전 큰 딸이 뜸을 떠 주면서, "구당 선생님이 우리 엄마에겐 은인이시오. 참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작년 봄에 지인 중에, 시동생이 평소에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뜸자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해서, 만나서 뜸 자리를 잡아준 적이 있다.

시동생의 딸(5학년)도 심한 아토피로 스테로이드의 약을 바르고 복용하고 있다면서 팔다리에 딱지가 심한 채로 아빠를 따라왔다. 아이 아빠인 시동생은 무극보양뜸+ 신유를 잡아주었고, 딸아이는 폐유, 중완, 곡지, 축빈, 여구, 대장유를 잡아주었다. 몇 달 후 만나니, 아이도 아빠도 깨끗해졌다고 인사를 했다. 시동생이 꼼꼼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뜸을 떴다고 한다.

 

• 3개월간 집중 교육

정회원 시험 합격 후 현재 무료진료실에 나가고 있다. 초기에는, 수료는 했으나 실전은 자신이 없었다. 적극적인 동기 선생님의 수고로 남 교수님께 우리의 심정을 말씀드렸다. 배우고자 하는 우리의 맘을 어여삐 봐주신 교수님께서 조건없이, 약 3개월간 집중교육을 해주였다.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이 기회를 빌려 치료해 주시고 가르쳐주신 두 분 교수님께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무료진료실이 있어서 참 좋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손을 놓으면 잊어버리게 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무료진료함으로 관심을 꾸준히 가질 수 있고, 앞서 배우신 선배 선생님께 지도 받을 수 있음도 참 감사하다. 이 모든 무엇보다 앞서, 무극보양뜸을 개발하시고 전수해주신 구다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시술 금지시 무료진료실 운영

개인적으로 뜸사랑 무료진료실 운영에 대해 소박한 바람이 있다. 무료진료실에 다니다 보면 외부와의 분쟁으로 시술 금지를 가끔 격는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담이나 중풍 등 꼭 시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지만, 이런 시기엔 그분들께도 도움을 드릴 수가 없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뜸사랑 내부의 결정으로 시술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는데, 두 번째의 경우엔 약간의 배려가 아쉽다.

환자는 대부분 연령대가 60~80대이시고, 1인 가구이다. 이곳을 찾느라 새벽부터 홀로 일어나 힘든 몸을 이끌고 오신다. 몸이 불편하니 옷을 챙겨 입는 것부터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 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멀게는 3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힘들여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시술계획이 변경되었다는 일방적 설명을 들으면 그처럼 허탈한 일이 없으실 것이다.

 

• 마음의 치료도 함께하는 무료진료

더구나 무료진료실에 오시는 분들은 생활보호 대상자다. 그나마 뜸사랑 무료진료실이 그 분들에겐 큰 의지가 되는데, 여기서 도움을 못 받게 되니 사정하시는 분들께 우리도 안타깝지만 도리가 없다.

아무리 무료진료라지만 그 분들을 존중해 드리고는 차원에서 한 주 정도의 예고기간을 두어, 변경된 시술 조치에 대해 내원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으면 좋겠다.

의술이란 몸 치료뿐 아니라 마음의 치료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에는 배려 받고 존중 받고 사랑 받는다는 느낌도 포함된다. 어차피 좋은 것을 나누려 시작한 무료진료실인데,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싶다.

 

• 20년 된 병, 완치되려면 꾸준한 노력

그동안 잘 지냈는데, 약 보름 전부터 머리가 띵해지고 귀에서도 약간의 바람소리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내 병은 20년 된 병이다. 3년 동안 이만큼 진척을 본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오래 된 병이니만큼, 완치까지는 좀 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구당침뜸, 내인생의 새로운 시작

 

조ㅇㅇ(412차)

 

팀원들에게뜸을받다가 생긴 배움의 욕구

구당 침뜸과 因緣은 5년 전으로 올라간다. 당시에 나는 문화단체에서 인터넷신문 記者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 단체에서는 문화행사팀과 인터넷 신문팀이 있었는데, 나는 글을 쓴 경력이 있어서 인터넷 신문팀에 들어갔다.

기자는 現場을 찾아가서 기본적인 寫眞을 찍고 記事를 올리는 일로 빡빡한 일정 속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나날을 살아간다. 그때 당시 우리 단체에서는 유행을 타듯이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구당 침뜸 기본교육을 받고 있었다.

가끔 교육을 받은 팀원들에게 뜸을 받아보면, 처음엔 뜨거웠지만 갈수록 몸이 시원하고 原氣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배우고 싶은 의욕이 있었다.

 

 

'구당 선생님과 이상호 기자의 강연' 취재

2011년 1월에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MBC 이상호 기자, 구당 김남수 옹과 함께하는 특별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灸堂 선생님과 이상호 기자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데스크에 취재를 자청하였다. 당일, 조금 일찍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계단에서부터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앞자리에는 갈 수 없었고 뒷자리에서 촬영 각도를 잡고 녹음기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구당 선생님을 멀리서나마 직접 뵈었다. 물론 이상호 기자도 보았는데, 당시 인터넷 신문사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신입기자로서 이상호 기자는 그야말로 大記者였다. 이상호 기자의 자본주의 세계관에 대한 열렬한 비판에 "역시, 이상호 기자야!"라는 말이 여기저기 들여왔다.

 

 

자본주의 의료체계의 대안, 구당 침뜸

그리고 자본주의 의료체계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구당 선생님의 구당 침뜸을 역설하는 장면은 설득력이 있었고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켜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이상호 기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몇몇 안 되는 기자들에게 이 대열에 함께 하자는 의미의 제안을 하였다. 당시에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제안에 선뜻 나서는 기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뒤편에서 취재하고 있는 나를 계속 바라다보았다.

 

물론 나도 함께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신입기자로서 업무를 익히기에 바빴을 뿐만 아니라, 함께하자는 말에 기자로서의 고단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날의 강연은 사진을 찍고 기사를 올리는 일만으로 마무리지었지만, 마음속엔 이상호 기자의 눈빛이 계속 아른 거렸다.

 

침뜸 교육, 시간 문제로 중도 포기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우리 단체 직원들이 교육을 받았듯 나에게도 구당 침뜸 교육을 받을 기회가 왔다. 당시 초급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동양의학과 우리의 신비한 鍼灸에 매료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었으나, 직장인으로서 시간을 쪼개면서 다니는 것이라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애로사항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자의 업무상, 갑작스런 取材를 하고 밤늦게까지 記事를 써야했기에 잠을 못 자서 수업시간에 조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빠지는 날도 하루 이틀 생기다보니 진도 따라가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은 수업시간에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것으로 연결되었고, 겉핥기식 공부가 되어버려 스스로도 싫증이 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당시에 같이 공부하던 선생님들도 공부 시간 여건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중급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해서는 올라가도 큰 진전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동료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급시험만 통과하고는 중급과정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일상의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망막박리로 컴퓨터일 못하게 됨

몇 년 후, 회사는 재정적인 여건으로 문화행사팀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고, 나는 사진과 영상, 홈페이지 관리를 맡게 되었다. 사진과 영상, 홈페이지를 다루는 일이라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눈이 피곤하고 허리도 조금씩 휘어지게 되었다. 작년 말에는 눈에 망막박리 현상이 일어나 급 수술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어 시력은 회복되었지만 며칠만 늦었어도 시력을 상실할 뻔했다.

원래 망막박리는 눈이 많이 나쁜 고도근시에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수술 후에도 시력은 원래처럼 회복되지 않고 더 나빠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력도 더욱 나빠지게 되었고 평상시처럼 모니터를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시력저하와 눈의 급격한 피로증상 때문에 컴퓨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래의 직업을 위해 침뜸 다시 공부

현대에 필수적인 보조기계 컴퓨터뿐만 아니라 핸드폰을 오래도록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니, 미래의 직업데 대한 과감한 변화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래의 직업군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가급적이면 컴퓨터 일을 하지 않는 업종으로, 선택한 것을 몇 가지로 좁힌 결과, 실버산업과 관련된 업종과 헬스케어에 관련된 업종이었다.

그래서 구당 침뜸을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처음 직업군을 조사할 때 업종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선택하였는데 구당 침뜸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선택하였다. 마흔 후반이 되어 직업을 다시 선택한다는 것은 인생의 후반을 준비한다는 것이었고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나의 적성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여건, 가족에 대한 생각, 노후의 삶의 여정,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펼칠 수 있는 업종,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중도에 그만 두지 않기 위한 노력

그렇게 해서 교육원의 문을 다시 두드리게 되었고, 예전과 같이 스스로 그만 두는 결과를 얻지 않기 위해서 등록하기 한 달 전부터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인체에 대한 醫術은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오하기 그지없고, 또한 그 펼쳐짐은 신비로울 정도로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에 겸손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리고 꾸준히 공부하려는 의도였다.

 

서양 의술, 동양 의술 상생의 길

서구 유럽과 중국, 기타 국가들은 서양의술뿐만 아니라 자연요법, 침법, 구법, 마사지, 기공 등 다양한 의료 방법들을 오픈하고 연구하여 경제적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기저기 얽히고 설킨 제약이 너무 많아, 先祖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보물과 지혜들을 사장시켜 가고 있는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짧은 지식이지만 감히 말해본다면, 서양의 의술보다 東北亞 지역의 醫術들이 이미 앞서 존재해 있었고 게다가 서구의술의 원조가 우리 동양의술인 것이 많은데다 그 치료효과도 우리 것이 훨씬 탁월하다. 현실처럼 약화된 원인은 19세기부터 시작된 서양제국주의의 동양지배 논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지금은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정치적 논리로 해결

그래서 작게 보면 한의사들의 반대의견도 그 내막엔 생존논리에 기반한 것이기에,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치적인 논리로서 풀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의도 살고 鍼灸도 살 수 있는 정치력, 더 크게는 서구의료와 동양의료 그리고 대체의료들이 서로서로 상생해서 국민들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구에서는 아니, 우리나라를 제외한 아시아의 나라들은 그렇게 가고 있는데 우리만 지체되는 까닭은 크게 볼 수 있는 정치력의 부재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런 현상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인터넷을 통해 보는 눈들이 있고 국민들의 열망이 있다. 비단 의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깨어 있는 意識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술의 논리가 승리할 것

말이 길어졌다. 季節의 변화가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나는 구당 선생님의 仁術의 논리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구당 선생님의 삶의 역정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온 환자에게 손수 고개 숙이며 뜸을 놓아드렸다는 여담을 들으면서 가슴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구당 선생님의 침구를 배우는 제자들은 선생님의 큰 뜻을 새기고, 의술을 갈고 닦는데 정진하면서 의술이 오래도록 후대에 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본다.

 

침뜸, 구급활명에 보탬

자신의 평생에 걸친 임상경험을 후대 사람들이 널리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 침구 전문서의 효시인 '침구경험방'을 저술한 허임 선생의 서문 내용 발췌로 마무리하겠다.

 

"이제는 늙어서 그나마 올바른 법이 전해지지 못할까 근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궁리해서 구급활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무극보양뜸 목록

1장. 소화기 질환
1. 급성위염
2. 만성위염
3. 위궤양
4. 위경련
5. 위산과다
6. 위암
7. 급성장염
8. 만성장염
9. 변비
10. 간염
11. 간경화
12. 황달
13. 담석증
14. 간암
 
2장. 호흡기 질환
1. 감기
2. 급성후두염 및 기관염
3. 만성기관지염
4. 기관지천식
5. 폐렴
6. 폐결핵
7. 늑막염
8. 폐암
 
3장. 순환기 질환
1. 심내막염
2. 심장판막증
3. 심부전
4. 협심증
5. 심근경색
6. 심장성천식
7. 동맥경화증
8. 본태성고혈압
 
4장. 신경질환
1. 뇌출혈
2. 뇌연화증
3. 반신불수
4. 전간
5. 파킨슨(진전마비)
6. 두통
7. 안면신경마비
8. 심차신경통
9. 늑간신경통
10. 좌골신경통(좌골신경마비)
11. 요통
12. 정신신경증(히스테리)
13. 불면증
14. 우울증
15. 화병
 
5장. 근골격 질환
1. 견관절주위염(견비통)
2. 관절염(류머티스관절염)
3. 건초염(활막염)
4. 관절염좌(삠)
5. 주관절통(테니스엘보)
 
6장. 내분비 질환
1. 당뇨병
2. 갑상선기능항진
3. 갑상선기능저하
 
7장. 외과 질환
1. 치핵
2. 탈항
3. 타박증
4. 독충자상
5. 동상
6. 급성임파선염(임파관염)
7. 습진
8. 백선(무좀, 버짐)
9. 사마귀(우췌)
10. 티눈(못)
11. 원형탈모증
12. 피부소양증(가려움증)
13. 담마진(두드러기)
 
8장. 비뇨기 질환
1. 급성신장염
2. 급성신우염
3. 부종
4. 요독증
5. 신장결석
6. 혈뇨
7. 방광염
8. 방광결석
 
9장. 생식기 질환
1. 전립선비대증
2. 음위
 
10장. 부인과 질환
1. 무월경
2. 과다월경
3. 과소월경(희발월경)
4. 자궁근종
5. 자궁부속기염
6. 대하
7. 자궁후굴
8. 자궁하수(자궁탈)
9. 자궁암
10. 불임증
11. 냉증
12. 갱년기장애
13. 임신오조
14. 임신부종
15. 유즙부족
16. 유선염
 
11장. 소아과 질환
1. 토유(습관성토유)
2. 소아소화불량
3. 소아발열
4. 소아천식
5. 소아급간
6. 야뇨증
7. 선병질(허약체질)
 
12장. 안과 질환
1절. 이과 질환
1. 중이염
2. 이통
3. 이관폐색
4. 이명
2절. 비과 질환
1. 급성비염
2. 만성비염
3. 만성부비강염(축농증)
4. 후각감퇴(무후각)
3절. 인후과 질환
1. 인두염
2. 후두염
3. 편도선염
 

14장. 치과 질환
1. 치통
• 상치통
삼리 해계 권료 화료 예풍

• 하치통
합곡 곡지+환측에 협차 하관 예풍 (심하면 수족혈에 다장구)
 

'무극보양뜸'(머리말)

 

구당 김남수

(목동균 교수 정리)

 

 

"인류의 영원한 보물인 '무극보양뜸'을 펴내며"

 

 

내 人生에서 침뜸을 빼면 할 말이 별로 없다. 침뜸에 쏙 빠져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침뜸으로환자 치료를 하면서 보람을 얻었고, 醫者로서 봉사하는 기쁨도 누렸다. 또한, 환자의 신음을 없애는데 침뜸이 최고의 의학이라는 확신도 얻었다. 그 사이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나이는 100살이 되었다. 지나고 보면 刹那인데 제법 긴 세월을 산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침술원에서 환자 치료에 바쁜 나를 보고 '現業에 가장 오래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면서 뒤따라 '그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주저 없이 '뜸 뜨면' 이라고 대답해준다. 사실이 그렇다. 뜸은 정말 최고의 건강장수 비법이자, 우리나라의 의료비 대란을 잠재울 최고의 의술이다. 특히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12%에 이르고 老人 진료비는 무려 35%까지 치솟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병이 있거나 없거나 효과가 뛰어난 뜸이야 말로 최적의 突破口가 아닐 수 없다. 한의사들이 하는 營利 목적의 뜸 시술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전해온 뜸을 국민 누구나 쉽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規制를 풀어야 한다. 아직 當國은 뜸의 가치를 모른다. 뜸사랑에서 '뜸 시술 자율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정책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일부 이익 단체의 방해공작에 아직도 결정을 못내리고 戰戰兢兢하고 있을 뿐이다.

 

서양의학은 주사기와 메스로 상징되는 죽이고 자르는 의술이기 때문에 法에 의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고친다'라기 보다 '없앤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반대로 침과 뜸으로 대변되는 동양의학은 살리는 醫術이다. 털 하나 손상 없이 치료를 하므로, '고친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으며,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규제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에서 뜸을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韓國과 日本밖에 없다. 1962년 군사정부가 침구사 제도를 없앨 때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의료 현장까지 침투한 것으로 이러한 과도한 규제는 하루빨리 혁파되어야 한다. 쑥에서 빼낸 섬유를 이용해 예방과 치료를 하는 뜸은 부작용이 전혀 없으므로 규제 대상도 아니다.

 

뜸 시술이 자율화되면 누구나 아주 쉽고 편하게 익히고 이용하게 될 것이며, 행복권과 건강 선택권을 국민이 다시 갖게 되어 국민 복지에 엄청난 효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일찍 깨닫고, '뜸사랑'을 만들어 뜸 보급을 시작했다.

 

돈도 거의 들지 않고, 예방과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세계 최초이자 최후의 의학인 뜸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좌고우면 하지 않고 정통으로 뜸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가혹했다. 구당을 찾는 환자들이 줄을 서자 한의사들은 鍼師 자격으로 뜸을 뜨면 안 된다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구당은 뜸을 떠도 된다'라며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것도 8인의 헌재 재판관 중 7명이 위헌결정을 내렸다.(2008헌마627)

 

이렇게 우여곡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뜸사랑의 뜸 교육은 벌써 정회원 제자만 해도 5천 명이 넘게 배출 되었다. 이들은 지금 세계 각지에서 뜸 치료사로 봉사자로 환자를 돌보며 '무극보양뜸'을 전파하고 있다.

 

'무극보양뜸'은 小宇宙인 인체의 기혈과 음양오행의 평형 원리를 조화시킨 8개 경혈에 뜸을 뜨는 免疫(면역)요법이다. 병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예방과 치료의 뜸 요법이다. 나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제자들과 함께 150만 명에 이르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무극보양뜸'을 시술해 왔다. 그러나 일부 한의사들의 잘못된 판단과는 반대로 단 한 명의 환자들고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에 병이 완치되거나 호전된 사례는 너무 많아 열거할 수도 없다.

 

지금도 내가 시술하는 '구당침술원'에서 병을 치료하려는 환자들로 인터넷 예약 사이트는 늘 폭주 상태다. 진료 예약이 너무 힘들다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국가에서 뜸 시술 자율화를 단행하면 누구나 쉽게 배워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보살 필 수 있는데... .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모든 국민이 '무극보양뜸'을 배워 국민 건강과 경제 그리고 일자리 창출까지 해결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 내 나이 100세를 넘긴 노구임에도 내 손에 뜸 뜨기를 바라는 무수한 환자가 줄을 서고 있다는 것은 바로 '무극보양뜸'의 신묘한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창안해 오랫동안 시술해온 '무극보양뜸'을 책으로 펴내 우리국민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특히 의사들이 병원에서 꼭 시술하기를 바라는 마음 절실하다. 또한, 나를 만나지 못해도 이 책을 통해 같은 효험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며, 건강을 지키는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맨 처음 족삼리에서 시작한 '무극보양뜸'을 환자치료에 적용한지 실로 60여 년 만의 일이니 기쁠 법도 하지만 가슴에는 회한이 적지 않다. 지금 중국,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무극보양뜸'을 받아들여 보급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무극보양뜸'으로 봉사하는 봉사자들을 중죄인 취급하듯 수갑 채워 잡아가기도 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뜸 보급에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이렇게 좋은 뜸을 외면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晩時之歎이지만 '늦었다 할 때가 빠른 것이다'라는 평범한 진리처럼 뜸 시술 자율화를 단행해 모든 국민이 뜸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무극보양뜸'은 인류에게 永遠히 남을 보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서 발간을 준비해 왔고,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내놓게 되었어다. 특히 본서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준 정통침뜸교육원 목동균 교수의 11대조 睦性善 (목성선)공은 1644년(인조22년) 전라도 관찰사로서 조선 최고의 침의인 허임 선생의 '침구경험방'을 刊行하여 가난한 백성들이 스스로 집에서 치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37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의 '무극보양뜸'이 모든 家庭의 무병장수를 위한 醫書가 될 수 있도록 정리했으니 목 씨와 침뜸 의술 간의 인연도 범상치가 않은 것 같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극보양뜸'을 이용해 치료와 봉사를 해온 뜸사랑 회원을 비롯한 모든 분에게 경의를 표하고, 병없는 세상, 의사없는 세상을 꿈꾸며 이 책을 드린다.

 

2014년 5월

장성 무극전에서

灸堂 金 南 洙

 

 

 

 

해외 무료진료 / 탄자니아(계간구당 2017 봄)

 

<침뜸 들고 떠난 검은 대륙, 아프리카>

 

 

신ㅇㅇ

뜸사랑 정회원 27기

 

 

⚫옮겨 다니며 마친 침뜸 공부

2012년 서울 청량리 구당 빌딩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충청도로 이사를 하게 되어 대전 지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공부를 마ㅣ기도 전에 애들 사업관계로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또 옮겨왔다. 2013년 2월 수료하기까지 눈 속을 뚫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토요일마다 나주에서 대전지부 교육실로 공부하러 다니던 생각이 새삼 난다.

 

정회원이 된 후에는 광주지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길에다 돈도 많이 깔고 다닌 공부 과정이었기에 내심 열심히 한다고 한 침뜸공부였다.

 

⚫큰사위의 해외 무료진료 요청

구당 선생님이 계시는 정통침구학회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5년 만에 해외 무료진료를 계획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 머리가 벗겨지게 더웠던 어느날, 큰 사위가 교회 선교봉사팀이 탄자니아갈 예정인데 장모님께서 침뜸을 하시니 같이 동행해 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탄자니아!

 

가수 조용필 씨의 노래 가사 속에 나오는 킬로만자로산 밑으로, 표범과 하이에나가 사는 그 뜨거운 나라에 나더러 가서 침뜸 무료진료를 하란다. 생각해 볼 테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말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오호! 나에게도 해외무료진료의 길이!

 

⚫탄자니아 공부

인터넷으로 탄자니아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1년에 독립했다. 언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땅덩어리는 대한민국의 10배정도이고, 적도 바로 아래에 있는 나라다. 가겠다고 대답도 하기 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고는 탄자니아에 갈 욕심으로 교회도 다니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여비며 호텔 숙박비까지 대준다는데 그 정도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은 생각에... . 딸을 잘 키우면 비행기 탄다는 말이 맞는다고 은근히 사위를 칭찬하면서... .

 

⚫무료진료 위한 물품 준비

자! 그러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할까? 서울에 계신 강민숙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며 영어로 된 침뜸에 관한 자료를 부탁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무극보양뜸 영어소개 책자를 두 권을 바로 보내 주셨다. 대전지부에 탄자니아 무료진료를 가려는데 침뜸 후원을 부탁 드린다 했더니 김기건 지부장님 이하 임원들께서 흔쾌히 승낙하시고 침 4박스 뜸 20박스 향 8박스를 후원해 주셨다.

 

침뜸은 미리 국제택배로 탄자니아로 부쳤다.

그리고 무극보양뜸을 보급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뜸쑥을 나누어 줘야 할 것 같아서 한국의 청심환 같은 환약을 넣은 청병 200개를 주문했다. 그 청병 속에 뜸쑥을 하나씩 담아 주면 한 달은 뜸을 뜰 수 있는 양이 되기에... .

 

⚫현지인 교육 위한 침뜸 자료

탄자니아에서 선교활동을 11년째 하고 있다는 선교사를 통해 물어보니 거기 사람들은 침뜸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침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 사람들한테 침뜸을 무어라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무조건 침뜸을 하면 좋아진다고 침을 찌르고 살을 태우는 뜸을 떠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침이 무엇인지 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자료를 간단하게 한글-영어- 스와힐리어를 넣어 만들어 가지고 가기로 했다. 탄자니아에서는 중학교부터는 영어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중학교 이상 공부를 한 사람이면 영어를 다 한다고 한다. 탄자니아는 128개 부족을 통합하여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쓰는데 말만 있고 문자가 없기 때문에 알파벳으로 스와힐리어를 표기한다.

 

⚫카타르 도하 공항

2016년 12월 5일 0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희망과 꿈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탄자니아 도착까지 비행시간만 15시간이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 갈아타고 킬리만자로 공항까지 5시간 걸리는 긴 여정.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비행기 정비가 덜 끝났다며 출발시간이 지연되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리저리 몸이 꼬이는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하에 도착했다. 당연히 갈아타야 할 비행기는 떠나고 없고.

카타르는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가? 다음날 같은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서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하도록 해 주었다. 얼결에 카타르라는 나라에서 하루르를 보내게 되어 도하 구경도 하게 되었다. 부자나라는 뭐가 달라도 달라 하면서.

 

⚫탄자니아 킬로만자로 국제공항

다음날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우리나라 국내선 공항보다 더 작은 규모다.

얼마나 더울까 하는 걱정과 함께 아프리카 땅을 밟았는데 생각보다 덥지 않아 은근 놀랐다. 섭시 32도! 건기라서 습도가 높지 않았고 햇볕이 따갑기는 했지만 그늘은 시원했다. 흠~ 견딜만한데?

 

⚫킬로만자로 근처에 잡은 숙소

마중 나오신 선교사님 교통편으로 우리 일행은 모쉬라는 도시에 있는 킬리만자로산을 향해 출발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가에 있는 마을들은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곳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내 기준으로, 우리의 기준으로 보지 말자.

 

우리 숙소는 바로 킬리만자로산이 잘 보이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루터란 우후루 호텔이었다. 정원이 아름답게 가꿔져 있었고 망고 나무에 망고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호텔 내부는 우리나라 80년대 여관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욕실에는 전기온수기가 달려 있었다. 적도 밑 아프리카에 왠 온수? 작지만 깔끔한 호텔방에 침대는 두 개, 매트리스는 스펀지, 침대마다 천정엔 모기장이 달려 있다.

 

⚫예방주사와 예방약

아프리카 여행을 하려면 필수인 황열병, 장티푸스, 콜레라 이렇게 3종 세트 예방주사를 맞고 말라리아 예방은 약으로 처방 받아 가지고 갔다.

 

탄자니아에서의 첫 식사는 선교사 부인께서 순한국식으로 비빔밥을 준비해 놓으셨서 여기가 아프리카가 이닌 줄 착각할 정도였다. 탄자니아에도 무, 배추, 마늘, 파 다 있단다. 젓갈과 고추가루만 가져가면 감치도 담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전기 온수가 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해가 지고 나니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저녁을 서늘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 찬물로는 도저히 샤워를 할 수 없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특징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겨울이었는데 이틀 만에 여름 날라로 왔다. 1100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거리를 날아서. 쾌적한 하룻밤을 보내고 선교 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언제 환자를 볼 수 있을 지 생각하며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55세 정도이고 미혼모가 많고 에이즈 환자도 많단다. 그곳 아아딜을 보니 똑같이 머리가 짧고 내가 보기에 비슷비슷해 보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되었는데 여자 아이들은 바지 위에 꼭 치마를 덧입는다.

 

⚫유치원 여름 성경학교, 함께 한 크리스마스

선교사 부부는 유치원 두 곳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 곳에는 3세에서 7세 아이들 100명 정도를, 다른 한 곳에는 7세 이상 중학생 정도까지 200명을 교육하고 계셨다. 모두 무료다.

 

근처에 집도 몇 채 없는 것 같은데 웬 아이들이 이렇게 많아요? 하니 움막 같은 집이라도 그 속에 아이들이 너덧은 다 있단다.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도 부지가수이고, 여자아이로 예쁘게 태어나면 불행일 정도로 성폭행이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볼 땐 불행인 것 같은데 막상 그네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미혼모도 많고 에이즈 환자도 많다.

 

우리가 준배해 간 티셔츠 300벌을 그곳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고 여름성경학교의 마지막 일정을 우리 일행과 함께 했다. 우린 겨울인데 거긴 여름성경학교라니, 12월에. 차선 없는 도로변에는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만큼 큰 나무에 붉은 꽃이 만발해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침뜸을 한국말로 가르치다

모든 인원이 의료선교를 하러 간 것은 아니었으므로 환자를 치료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선교사 부인의 주선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치료를 받으러 왔다. 침뜸이 뭔지 전혀 모르는 그들이 흑진주처럼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긴장하며 궁금해 했다.

 

그들에게 어큐평춰, 먹시부스쳔 해봐야 알아듣지 못하겠다 싶어 침과 뜸을 꺼내어 한국말로 침! 뜸! 하고 따라하게 했다. 태권도 용어를 국제 시합에서도 한국말로 하듯이. 그래서 아이들도 금방 침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치통으로 고생하는 성인들

성인들 대부분은 특별히 아픈 곳은 별로 없지만 치통이 주로 있다고 호소했다. 평균수명도 짧거니와 우리에게나 익숙한 잘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면 걸릴 기회도 없었다. 물이 귀하고 좋지 않아 그곳 사람들은 치아가 많이 망가지고 있었다.

 

연중기온차가 별로 안 나는 더운 지역인데다가 습도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이 주로 호소하는 관절통이나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거의 없었다.

대신 독충에 물린 아이들이 있었고, 아프다고 온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통을 호소했는데 빈혈에서 온 것 같았다. 눈을 내려 보내 붉은 기운이 거의 없고 영양실조인 아이들도 많았다.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

침뜸을 신기해하며 아프다고 치료 받으러 온 아이들과 어른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 지 처음에는 난감했다. 침 맞는 것을 보며 아이들의 반은 도망 가벼렸다. 그래도 정말 아픈 아이들은 침을 맞아 보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맥을 짚으려고 손을 만져 보니 바늘로 찌르는 것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겁을 먹었는지 아이의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그런데도 치료를 받겠다고 무서움을 참고 기다렸다. 침을 맞겠냐고 다시 물어 보니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침상도 없이 의자에 앉혀 놓고 침을 놓았다. 두통이 있다는 아이에게 백회, 신주, 중완에 천침을 놓고 물어 보니 안 아프단다. 그리고 친구들 한테 안테나 꽂았다고 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발등 염증 있는 아이

한 아이는 맨발로 다니는지 발이 흙투성이였는데 양쪽 발가락 위 발등 부분에 생긴 염증이 보통을 넘어 보였다. 눌러보니 딴딴하게 부어 터져서 상쳐가 벌어져 있는데 안 아프다고 한다. 염증이 생겨 세게 누르면 고름이 나오는 발이 안 아프다니.

한숨이 나오면서 이 발을 어찌해야 되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한두 번 침뜸으로 치료해 주고 간다고 금방 나을 것도 아니고, 저대로 방치해 놓으면 조만간 양쪽 발을 다 절단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 뒤 염증 있는 남자

다른 남자 환자 하나는 귀 뒤에 심각한 염증이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나이로비 플라이라는 파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단다. 무는 파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파리가 물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파리가 앉았는데 귀 뒤라 뭔지 몰라 손으로 문질렀더니 파리가 터지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아프고 가려운 부위가 점점 번지고 있다고 하며 치료를 원했다. 아시혈에 자침하고 심한 부위에 뜸을 떠주었다. 여러 날 치료를 지속해야 효과를 볼 텐데 거리가 멀고 일정이 안 맞아 한 번의 치료로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치료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생리불순 호소하는 여자들

여자들은 대부분 생리불순을 호소했다. 그래서 뜸자리를 잡아 주고 준비해간 청병 속에 뜸쑥을 담아 향과 함께 나누어 주고 뜸을 뜨라고 일러 주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태어나서 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은 축복 받은 아이들이다. 예전에 우리가 백일잔치, 돌잔치 했듯이 낳다가 죽고 태어나서도 죽고... . 무사히 자라서 유치원에 온 아이들은 건강하게 축복받은 아이들이라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하던 선교사 부인. 아프리카에 가서 천사를 보았다면 그 선교사 부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치료보다 더 좋은 일

탄자니아에서 여러 곳을 다니며 굳이 환자를 치료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나 혼자 침뜸 치료를 한다고 하루에 몇 명이나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열흘 남짓한 시간에 그 비싼 비행기 값 들여서 간 곳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를 모르고 생활 습관도 모르고 우리와 전혀 다른 기후에 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픈 곳을 치료 한다고 침뜸을 들고 설치는 것 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은 선교사 부인께 뜸뜨는 방법과 뜸자리 잡는 방법을 가져간 책자를 참고해서 해보시라고 이틀을 가르쳤 드렸다. 그분은 거기서 계속 선교를 하고 아이들과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에.

 

⚫비염, 근육통이 없었던 탄자니아 생활

그곳에 있는 동안 내 몸이 색다른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코가 마르고 鼻炎(비염)이 시작되고 노동으로 인한 筋肉痛(근육통) 등 서너 가지 증상이 있었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는, 먼지 풀풀 나는 건기에 물은 꼭 사먹어야 하는 곳인데도 코딱지 한번 안 생겼다. 하루 종일 흙먼지 속을 돌아다니다 들어와 씻으며 코를 풀어도 깨끗했다.

 

한국에서 쏙쏙거리던 근육통은 어디 갔는지... . 자고 일어나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 빡빡한 일정에도 한 번도 피곤함을 못 느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교육원에서 공부할 때 이해가 인 되었던 그 濕(습)이라는 것이 얼마나 痛症(통증)을 주고 疲困(피곤)하게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철 따뜻한 곳에 사는 그들이 關節痛(관절통)이나 筋肉痛(근육통)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의술이 발달한 나라라는 건 상대적으로 환자가 많다는 이야기 아닐까? 四季節에 맞추어 적응해야 하는 우리 몸이 그네들보다는 훨씬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 혜택이 부족한 나라

국민소득이 1000달러 남짓한 나라, 복지 혜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 전기가 부족해 호텔방에도 성냥과 초가 있는 나라, 가로등도 신호등도 없는 나라, 내가 가본 곳은 그랬다. 그런 나라에서 의료 혜택이라고 다를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년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침뜸을 할 수 있게 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침뜸을 가르치려 영어 공부

우리가 구당 선생님께 배워 남 주는 것처럼 침뜸에 관심 있는 탄자니아人을 가르쳐서, 공부하고 연구해서 의료혜택 못 받는 자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일이 훨씬 더 값지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나이에 새삼 영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으면 혹시 기회가 생겨 아프리카에 침뜸 교재를 들고 가서 가르쳐 주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돈도 벌어서 모을 작정이다.

목표가 생겼다. 아프리카에 灸堂 선생님 제자가 생긴다면 침과 뜸을 공수해 줘야 치료를 할 것 아닌가? 후원회라도 결성해야 하나?

 

구당 침뜸 박사 과정 도전자와 뜸사랑 회원을 위한 시연

 

구당 김남수 선생께서 미국을 방문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뜸사랑 미주지부 회원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침뜸교육도 받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작년 사우스베일로 대학교 방문때 구당 침뜸 박사에 도전하는 학생들을 위한 특강과 시연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시연을 선보여 그가 왜 세계 최고의 침구사인지 알게 한 일을 기억하는 회원들은 잔뜩 기대를 가지고 ROTEX호텔 세미나룸으로 모여들었다.

이번에도 회원 뿐 아니라 사우스베일로대학교 의료원 부속 구당침뜸클리닉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침구사 박사과정 중인 침구사가 새로이 가세해 회원들과 같이 특강과 시연을 하기로 해 다욱 관심을 모았다.

 

단상에 오른 구당 선생은 "침뜸은 정상 아닌 것을 정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침뜸은 털 하나 손상 안 시키고 치료합니다 예전엔 침뜸에 관해 막연히 알고 신비롭게 여겼었는데, 이제는 공학자들이 밝혀 낸 것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뜸으로 인한 피해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침으로 인해 죽기도 하고 병신도 되었지만 지금 침으로는 절대 안 죽습니다. 잘못 맞으면 큰일 난다는 말은 양의사들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침은 통하는 것인데 쇠줄이 아니면 통하지 않습니다. 우주만물에는 전기가 통하듯 소우주인 사람 몸에도 전기가 통합니다. 지금이 자리에서 이러한 내용을 시연으로 보여드릴 겁니다." 라고 운을 뗀 뒤 시연에 들어갔다.

 

시연에 참가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와 치료방법을 하나씩 자세하게 교육하기 시작했다. 80년 임상을 통한 체험 진단과 치료방법을 알려주고, 무극보양뜸 자리잡기의 정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먼저 환자가 기록한 진료카드를 통해 상태를 살핀 다음 망진 등 사진을 통해 진단을 할 때의 주의할 사항과 신체 중에서 주의해서 볼 자리 등을 자세한 시연을 통해 교육해 나갔다.

 

특히 침으로 치료할 때 주의할 사항과 환도침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어느 자리, 어떤 방법, 잘 되지 않을 때 대처 요령, 환자 안심시키는 노하우까지 실전과 똑 같이 지도해 나갔다. 어느 새 장내는 조용해진 가운데 촬영과 메모하는 침구사들의 집중력만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교육장이 되었다.

 

구당 선생의 침뜸 교육은 미국의 LA 지역을 시작으로 남부 샌디에고 동부 버지니아를 거쳐 남미 볼리비아를 통해 아메리카 전 대륙으로 점차 탄력을 받아가는 모양새이다.

 

권두언ㅡ 의사가 침뜸하는 통합의학의 길(계간 구당 2017 봄)

 

金南洙(본지 발행인, 한국정통침구학회 회장)

 

 

- 침뜸은 부작용없고 효과는 최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근본을 살리는 침뜸의학과 서양의학은 반드시 통합해야

 

 

세계는 통합의학의 시대

세계는 統合의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부분의 의료 선진국에서도 서양의학의 한계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안정성이 증명된 補完(보완)의학과 접목하여 환자를 치료한다. 補完의학의 중심에는 동양의학인 鍼과 뜸이 있다. 독일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임상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서양의학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는 鍼 요법이 癌 치료에 뛰어난 효과가 있으며, 특히 암 환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嘔吐(구토)와 慢性(만성) 통증을 진정시키는 데 아주 탁월하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하였다. 최근에도 손목 통증 임상 사례를 보고하면서 '침은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치료법으로 神經조절작용을 통해 腦의 감각 영역에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가 뛰어나다.'라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현대인의 난치병은 늘어가고, 치료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환자들은 병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결국 아까운 생명을 마감하게 되는 경우가 非一非再하다. 어디 환자만인가. 그의 가족이나 동료들도 환자가 느끼는 고통과 다름이 없는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가.

 

 

서양의학과 共存(공존)하는 동양의학

이렇게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이 되고, 국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의료인들은 하나가 되어 치료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서양의학이면 어떻고, 동양의학이면 어떤가? 예전에는 巫俗(무속)도 치료 방법으로 이용된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정통침구학회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몸이 아플 때 찾게 되는 곳은 조사 대상자의 94%가 병의원이라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서양의학이 앞장서서 統合의학을 이용한 환자치료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서양의학은 메스와 현미경으로 자르고 죽이는 의학이지만, 동양의학은 털끝 하나도 살리는 의학이기 때문에 서로 보완해서 통합의학의 길로 가야 한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통합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우리나라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속한 분야만 챙기는 小貪大失의 길로 가고 있다. 결국, 실력은 하향 평준화 되고 환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며, 우리의 의술은 퇴보하게 된다.

 

돈이 되는 한약장사에 맛이 들었으니 침뜸을 이용한 연구나 임상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하물며 침뜸만 연구하는 재야의 침구인들도 무면허로 몰아 손발을 묶고 있지 아니한가?

 

 

許浚도 인정한 침의 許任

지금 서양의학은 醫와 藥이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 동양의학도 의약이 분리되어야 한다. 서양의학은 분리하고 동양의학은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의약이 분리되어야 의존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연구와 임상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이 기회다.

 

조선시대의 우리나라는 의약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었다. 의는 침뜸을 하는 醫員(의원)을 말함이었고, 약은 침뜸을 하지 않고 약을 짓는 藥房(약방)이었다. 東醫寶鑑(동의보감)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許浚(1539~1615)은 스스로 침을 모른다면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鍼灸經驗方(침구경험방)의 저자인 許任(1570~1647)을 조선의 으뜸가는 鍼醫(침의)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약이 공존하며 발전해가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우리 조상들도 이렇게 의, 약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전문성을 살렸는데 현대에 와서 분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의사들의 과욕이자 국가 정책의 잘못이다. 당연히 침과 뜸은 전문 鍼灸師가 해야 하고, 약은 韓藥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韓醫師가 限擬死가 되지 않는 길

동양의학에서도 서양의학처럼 의약 분업이 이루어지면 통합의학의 길이 그만큼 빨라지게 된다. 의약 분업이 되지 않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처럼 한의사집단의 패거리 욕심 때문이다. 그들은 약도 하고 서양의학도 하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억지, 고소, 시위 등 환자 보살피는 일은 뒷전이고, 남이 하는 일마저 자신들이 하겠다는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된다면 환자는 더 줄게 되어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나라 한의사들은 환자 없는 것이 자신들의 치료 실력이 부족해서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연구하고 노력해서 환자 잘고친다는 소문나면 온종일 환자가 줄을 잇는다.

 

왜 환자가 줄고, 한의대에 지원자도 줄어들고 미달까지 되는다. 중의학을 보라. 그들은 세계 곳곳에 중의약대학을 세우고 연구하며 중의학의 세계화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창안한 무극보양뜸으로 중국인들이 단체를 만들어 역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다가 韓醫師가 限擬死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의사가 침뜸을 해야 한다

욕심 그릇을 내려놓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醫道를 깨우치고, 서양의학과 함께 통합의학의 길로 나가야 한다. 그것은 결국 의사들이 침과 뜸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침뜸을 하는 의사들을 무면허라고 고소고발하지 말고, 메스를 든 손에 침과 뜸을 쥐여 주어야 한다.

 

수술 전후, 심지어 수술 도중이라도 침뜸을 하면 효과가 있다. 침뜸은 환자의 통증을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증가시켜 수술과 치료, 회복 모두에 도움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수년 전 의사들에게 집단으로 침과 뜸을 오랫동안 가르친 일이 있다. 의사들은 解剖學(해부학)을 했기 때문에 배우는 속도가 아주 빨랐다. 그러나 고소고발을 일삼는 한의사들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는 의사들을 많이 보았다.

 

환자의 신음이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같이 협업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 행복을 위한 지름길이다. 인간의 행복은 멀리 있는 신기루가 아니다. 바로 발치에 와 있는 것을 알고, 욕심 그릇을 비울 때 幸福은 우리에게 미소 짓게 된다.

(펌)瀉血鍼(사혈침)의 유용성

 

 

드라마에서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일을 당한 사람이 뒷목을 거머쥐면서 쓰러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당황하여 “괜찮아요?”를 연발하면서 119에 연락하느라고 법석을 떨곤 한다.

 

水昇火降(수승화강).. 冷氣(냉기)는 머리로 올라가고 熱氣(열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충격을 받으면 熱氣가 머리로 올라가 갑작스럽게 血壓(혈압)이 높아지게 되어 위험해질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 瀉血鍼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술을 먹은 친구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면서 쓰러지려고 하여 내가 瀉血鍼으로 친구의 손가락을 따게 되었는데 피가 30cm나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나는 그처럼 피가 솟구쳐 나오는 것을 처음 보았다. 친구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다. 친구는 곧바로 정상이 되었는데 그 때 손가락을 따지 않았다면 친구는 구급차에 실려갔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또 한번은 갑작스럽게 腹痛(복통)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약을 사서 먹었는데도 복통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瀉血鍼으로 5손가락 끝을 따고 피를 짜내자 이내 잠이 들었고 1시간이 지나자 정상으로 회복된 일도 있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쥐가 습관적으로 잘 나서 그 후부터는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을 가 본 적이 없다. 원인을 모르겠으나 다리의 자세가 비틀어지면 쥐가 곧잘 나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저절로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水泳(수영)선수들 중에는 옷핀을 휴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수영 중에 쥐가 났을 때 신체의 아무 곳이나 옷핀으로 찔러서 피를 내면 쥐의 현상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험을 해 보려고 사혈침을 常備(상비)해 두고, 쥐가 났을 때 손가락 끝을 따 보게 되었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그 이유를 갑작스럽게 나타는 현상은 氣血이 막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氣血이 갑작스럽게 막혀서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증상은 아무 곳이나 찔러서 피를 뽑으면 막혔던 氣血이 풀어질 수 있다는 것으로 그것은 火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산이 폭발하는 이유는 壓力(압력)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파이프를 박아서 압력을 빼주면 화산이 폭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질발작과 같은 갑작스러운 증상에서의 瀉血鍼은 의사가 필요 없는 즉석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방법을 활용하지 않고 허둥대고 시간을 천연시키면 머리의 血管(혈관)이 압력으로 터지게 되어 中風이 되고 半身不隨(반신불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사혈침 전문가가 아니다. <따주기>의 책을 읽고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혈침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 뿐이다. 사혈침은 의료기구를 파는 곳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가격 5,000-1만원)

 

瀉血鍼은 조금도 위험한 것이 아니다. 상비품으로 지니고 다니면서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고생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奉仕(봉사)하기를 권하며, 의사와 보건당국이 왜 사혈침 같은 간단한 치료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환자들을 병원으로 몰리게 하는지 그 이유를 惠諒(혜량)하기 바란다.

침뜸정신과 무극보양뜸(계간 구당 2016 가을)

 

 

김봉석(정회원 20기, 정통침뜸교육원 대구지부 교수)

 

 

 

●구당침뜸법의 창안 정신

 

침뜸의학은 실천학문이다. 뜸사랑 회원들은 정통침뜸의 계승, 발전 및 구당침뜸법과 무극보양뜸의 연구, 교육, 보급을 통하여 仁術을 회복하고 국민 복지와 인류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구당침뜸법은 정통침구의학에 바탕을 둔 실천학문으로서 한 세기에 걸쳐 침뜸의학과 함께 해 온 구당 선생님의 침뜸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무극보양뜸, 구당 기본침 및 구당 화상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그 내용은 저서, 강연, 논문 및 임상자료 등에 폭넓게 담겨있다.

구당침뜸은 침보다는 뜸을 위주로 치료하며, 구당 선생님은 이미 29년 전에 230여 가지의 질병에 대한 원인과 증상을 인체 계통별로 분류하고 이에 대한 뜸치료법을 제시하였다.

무릇 한 세기를 침뜸과 삶을 같이 해 온 구당 선생님의 어록이나 저서에 나타난 침뜸정신을 통하여 구당침뜸법의 창안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구당 선생의 철학에 담긴 침뜸정신

1) 애환정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최선을 다한다. (뜸사랑 봉사수칙의 첫째 항목)

•침뜸을 통한 각종 통증 치료 설명(저서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 외 다수)

•구당 화상침 치료법(통증감소를 중시)

2) 봉사정신

•배워서 남주자(뜸사랑 구호)

•무극보양뜸을 인류의 자산으로 할 것을 주장함.(특허등록을 통한 사유화 거부)

•'돈과 명예 자랑 말고 봉사정신 계승하자. 장사꾼이 되지 말고 고통 없앤 침쟁이로'(구당 어록)

•'환자가 부르면 어디든지 가야 한다'는 선친의 말씀을 실천함

3) 화평정신

•몸의 음양조화로 정신적, 육체적 화평을 도모(陰陽和平之人)하고,

•가족과 단체 구성원들과 상호간 뜸떠주기를 통해 화평 정신을 고양하고,

무극보양뜸 보급, 확산으로 전 인류의 화평을 실현코자함.(무극보양뜸의 생활화로 개인, 가족, 인류의 화평을 구현)

4) 실용주의

•뜸시술은 부작용이 전혀 없으며, 뜸쑥과 향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시술이 가능함(구당뜸법)

•간단한 뜸시술 교육만으로 누구나 무극보양뜸 시술이 가능함

•平補平瀉(평보평사)의 적용으로 자침이 간편함(구당침법)

•구당기본침법을 통하여 짧은 기간에 자침술 습득이 가능함

•뜸의 보급, 확산을 복지의료정책에 반영하여 국가예산을 절감함(무극보양뜸)

 

 

●무극보양뜸의 의의

 

무극보양뜸은 구당침뜸의 진수라고할 수 있다. 구당 선생님은 무극보양뜸이란 '수천 년 이어져 온 쑥뜸술을 이용하여 인체의 8개 경혈에 시술함으로써 육체적, 정신적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종합의술이다.' 라고 정의한다.

또한 무극보양뜸은 구당침뜸의 핵심이며 정통침구의학이 낳은 인류의 자신이다. 구당침뜸은 잘 정제된 3년묵은 뜸쑥을 사용하는 정통뜸으로 직접구 방식이며 반미립대 크기로 뜬다. 뜸자리는 8개 경혈 12(女子는 13자리)로 누구나 쉽게 시술할 수 있도록 창안하였으며 그 실용성이 無限하다.

 

 

●무극보양뜸 경혈의 구성

1. 음양오행의 원리

음양오행은 우주의 작용원리이다. 우리 몸의 구성이나 작용이 소우주라고 할 만큼 음양오행의 이치와 원리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즉, 우주에 木 火 土 金 水의 다섯 가지 변화를 주관하는 오행이 있듯이 인체에도 오행에 상응하는 五臟의 기능이 있어 이를 통하여 均衡과 調和를 이루는 것이다.

 

무극보양뜸은 하늘의 陽은 百會를 배치하여 天氣를 받아들이고, 땅의 陰은 中脘을 배치하여 地氣를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인체 상하의 음양조화와 아울러 복부와 背面, 좌측과 우측의 경혈을 배합하여 전후와 좌우의 음양조화를 이루었다.

오행론에서 보면 중앙의 土를 중심으로 四肢의 曲池와 足三里를 배합하여 木 火 金 水의 작용으로 肝 心 肺 腎의 기능을 도와 상하 음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2. 氣血의 조화: 先天之氣와 後天之氣

기혈은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근본이며, 기는 혈을 생성하고 혈은 기의 근원이다. 즉, 기의 작용으로 혈이 생성되고 혈은 기에 영양을 공급한다.

생명활동의 근본이 되는 元氣는 선천지기 즉, 腎의 精氣에서 發源한다. 氣海와 關元은 선천의 원기가 모이는 곳으로 丹田이라고도 하며, 생장, 발육과 생식의 근원인 腎臟기능을 강화한다. 또한 이 두 경혈은 腎陽을 북돋우고[壯陽(장양)] 잃어버린 양기를 회복하며[回陽(회양)], 생식기 관련 질병의 主治穴이기도 하다.

 

여성의 경우 기해와 관원 대신에 中極과 水道를 사용한다. 중극은 방광경의 募穴(모혈)이며, 수도는 소장과 방광경만 아니라 몸 전체의 물[水] 관리에 관여하고 利尿작용과 子宮기능을 돕는다. 또한 중극은 本經脈이 임맥이지만 간, 비, 신경맥과도 교회하는 중요한 혈이다.

한편 인체는 先天의 기 즉, 元氣를 끊임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항상 부족한 상태이므로 脾胃와 肺기능이 중심이 되어 생성되는 後天之氣의 보충이 필요하다.

 

3. 오장기능 강화: 오행의 조화

무극보양뜸은 五臟의 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기해, 관원은 신장 기능을, 폐유는 호흡기능을 각각 강화한다. '환자는 잘 먹으면 산다'는 평소 구당 선생님의 말씀은 脾胃 기능을 중시하는 것이다.

무극보양뜸 8혈 중 中脘, 足三里, 曲池가 모두 脾胃를 보양하는 혈이다.

수도는 위경맥이 본경맥이며, 관원과 기해는 위경맥과 교회화고, 중극은 비경맥과 교회함으로써 모두가 비위기능에 관여한다. 膏肓(고황)은 心臟기능을 강화하고 몸 속 깊은 병을 치료하며, 心神기능은 百會가 맡아 정신의 사령탑 역활을 하는 것이다.

 

4. 경락경혈학적 의미

무극보양뜸 경혈의 본경맥, 표리경맥 및 교회경맥

무극보양뜸 경혈은 경락경혈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男女 10개의 무극보양뜸 경혈은 임독맥, 수족양명경 및 족태양경의 5개 경맥에 각각 소속되며, 이들은 다른 3개 경맥과 표리관계에 있고 8개 경맥과 교회한다. 이와 같이 무극보양뜸 경혈의 본경맥, 표리경맥, 교회경맥은 14경맥 중 수소음경과 수궐음경을 제외한 모든 경맥을 포함하고 있다.

 

'내경 靈樞 本神'에서는 '心은 脈을 저장하고, 맥은 神이 머무는 집이다(心藏脈, 脈舍神).'라고 하여 心神을 주관하는 심을 君主之官'이라 하고, 心包는 심의 대행기관으로 전신 조절작용에 관여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소음심경과 수궐음심포경은 무극보양뜸 穴의 본경맥, 표리경맥 및 교회경맥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膏肓과 百會로 하여금 각각 心과 心神의 기능을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무극보양뜸은 기혈의 생성, 순환과 장부의 기능을 돕거나 그 불균형으로 초래되는 증상들을 치유하는 등의 다양한 혈성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폭넓은 경락치료를 통한 본치와 아울러 이러한 다양하고 조화로운 혈성들을 통한 국소치료로서 치료의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무극보양뜸 경혈의 穴性 분류

氣血: 보혈 어혈 보기 이기 청열 온중회양 제탁

肝膽: 서근 거황 거풍 진경

心, 心包: 통맥 강혈압 성뇌 진정 안신

脾胃: 지구 최토 소화 위통 복통

肺大: 지해 정천 거담 항결핵

腎膀胱: 통유 이뇨 장양 월경통

기타: 소염 거한 항학 주관절 통증, 하지 통증

 

●무극보양뜸의 특장점

 

뜸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중국, 일본 및 서구에서도 오랫동안 행해지고 있으나 아직 그 효능을 충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구당 뜸법은 열자극을 통하여 자율신경과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며 피부 표면에 화상을 입혀 생성된 특수단백체가 혈액에 흡수되어 생체반응이 일어나게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뜸의 효능으로는 1) 세포의 활발한 움직임, 2) 혈액순환 개선, 3) 적혈구와 백혈구 증가, 혈액 산성화 방지 등의 혈액 성분 개선, 4) 면역력 증가, 5) 호르몬 분비 조절, 6) 신경과 내장기능 조정, 7) 진통작용 등이 있다. 무극봉양뜸은 이러한 뜸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류의 무형자산인 것이다. 무극보양뜸의 효능과 사용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전조작용(전조작용)이다

전조작용은 무극보양뜸 경혈의 구성이 음양오행 원리에 바탕을 두고 14경맥 중 12경맥을 유주, 교회하며 기혈의 생성과 순환을 돕고 五臟의 기능을 강화하는 다양한 혈성을 포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조작용이란 인체 내부기관이 장기간 조화를 이룸으로써 체질이 개선되는 작용으로 그 증상은 체중절감, 수면습관, 허약체질, 월경불순, 배변습관 등의 개선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전조작용은 장기간 구당뜸법을 실천한 결과 호르몬 분비조절, 자율신경기능 조절 및 혈액성분 개선 등 체질개선 효과를 가져오는 인체 기관의 총체적 작용으로서 무극보양뜸의 특징이며 장점이다.

 

둘째, 무극보양뜸의 實用性이다

침뜸의학은 실천학문이며, 실용주의는 구당침뜸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무극보양뜸을 통해 실현한 가장 큰 덕목이기도 하다.

 

무극보양뜸 자리를 취혈 해 주면 누구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뜸을 뜰 수 있다. 또한 뜸시술을 자율화하게 되면 질병예방으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고, 점차 증가하는 은퇴자들의 무극보양뜸 봉사를 통하여 국민건강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등, 그 직,간접적 효과는 실로 무한하다고 할 것이다.

 

셋째, 무극보양뜸을 위주로 치료하고 침은 보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제고한다

구당침법에서는 1)자침 수를 줄이고, 2)淺刺(천자)를 원칙으로 하며, 3)현대인의 각종 약물복용, 음식물 및 스트레스 등으로 장부의 허실 분별이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자시 인체에서 보사작용이 이루어지므로 일반적으로 보사법을 쓰지 않는다(平補瀉法).

 

넷째, 무극보양뜸을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루어 주는 '根本치료' 방법으로 사용한다

구당 선생의 역저인 '무극보양뜸'에서는 인체계통별 '122개의 질환'을 분류하여 각 질환에 대한 '基本치료와 '選擇치료' 방법을 설명하면서 무극보양뜸을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근본치료법으로 채택하였다.

 

다섯째, 무극보양뜸은 병을 豫防하는 뜸요법이다

무극보양뜸의 포괄적인 경맥 유주와 다양한 혈성들은 인체의 항상성을 제고하여 자연치유력을 높임으로써 근본치료를 가능케하고, 면역력 강화와 체질개선을 통하여 병을 예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 무극보양뜸은 癌을 포함한 난치병 치료에 효과가 크다

현대의학으로 치유가 쉽지 않은 아토피 질환을 치유한 사례가 많으며 암을 포함한 난치병 치료시 인체 저항력을 높여 치료를 용이하게 한다.

대부분 난치병은 그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하여 국소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침구의학의 기본 관점인 均衡조절요법을 통하여 자연치유력을 회복하여야 한다. 무극보양뜸은 이러한 관점에서 난치병 치료효과를 기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일곱째, 구당 선생님은 무극보양뜸 치료시 募穴과 背兪혈을 배합하여 다수 사용하며 아시혈을 중요시 한다

무극보양뜸의 구성이 陰陽오행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오행의 木 火 土 金 水가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담고 있듯이 오장도 오행에 상응하여 그 작용과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구당침뜸법에서는 복부에 취치하면서 각 장부의 기가 모이는 募穴을 진단과 치료의 중심으로 하여 무극보양뜸으로 근본치료를 하는 것이다. 아래는 남수침술원 내원 환자 500명에게 처방한 뜸혈 가운데 독맥상의 치료혈을 제외한 무극보양뜸, 당뇨 치료 및 근골격계 질환 치료에 사용한 숫자이다.

 

<구당 침뜸치료 시 많이 처방하는 혈>

兪혈: 심유 간유 격유 비유 대장유 담유 삼초유 위유 240회(28%)

募혈: 거궐 전중 천추 276회(33%)

기타: 양문 대추 삼음교 음교 활육문 대거 두유 330(39%)

 

背兪혈은 장부의 기가 배부에 있는 방광경 제1선에 모여 있는 경혈이다. 장부의 병변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각 장부의 배유혈에 나타나는 압통감과 예민감의 이상 반응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시혈은 눌러서 아픈 부위를 진단하고 치료점으로 삼은 국소혈(국소혈)이며 이를 천응혈(천응혈)이라고도 한다. 척추가 있는 배부에서 경혈 반응이 잘 나타나며 진단점으로 사용되는 아시혈은 五方뜸을 많이 사용하는 치료점이기도 하다.

침뜸치료에서 전체의 본질을 치료하는 본치와 국소의 현상을 치료하는 표치는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통증치료나 국소의 응급조치로 증세가 수그러든 후에 경락치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본치는 經絡치료로만 가능하므로 아시혈은 표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끝맺는 말

 

뜸사랑에는 한국정통침구학회가 주관하는 1년 과정의 교육을 마치고 정회원 시험에 합격한 5천명 이상의 회원들이 있다. 이들은 구당침뜸법의 실천을 통하여 정통침뜸의 脈을 잇는 '붕어빵'이 되고자 노력해 왔다.

무극보양뜸을 전 세계에 보급하여 인류의 건강과 복리를 실현하는 것이 구당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뜸사랑인들의 목표이자 꿈이다.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무극보양뜸의 무한한 가치와 창안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고 이를 보존, 확산하는 의지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직 소아과 전문의의 침뜸 사랑(계간 구당 2016 겨울)

 

"일단, 직접 해보겠습니다"

 

신영섭(32기, 소아과 전문의)

 

 

[뜸사랑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醫師가 왜 여기 와있냐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다을 많은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내가 한 답은 "일단 공부하면서 직접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회원 시험을 마치고 원고 청탁을 받은 지금도 할 수 잇는 답은 "일단 직접 해보고 있다" 이다. ]

 

 

의사라는 직업에 懷疑(회의)가 생기고 몸과 마음이 지쳐

 

뜸사랑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 반이 지났다. 기초반 첫 달, 너무도 생소한 내용에 멍하니 앉아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솔직히 2년 전만 해도 나는 뜸사랑도 灸堂 선생님도 전혀 몰랐다. 그런데 그 당시 뜸사랑에서 수업을 듣던 분에게 소개를 받자마자 무엇에 이끌리듯 바로 등록을 했다.

지난 몇 년간은 醫師라는 직업에 懷疑를 느끼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방황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하루 200명 많게는 300명까지 정신없는 진료하는, 10년 넘게 개업한 小兒科 전문의라는 나의 능력으로도 스스로에게는 만족할 수 없고, 교과서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고 있는 길이 정말 옳은 길인지 뿌옇기만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방황은 오래 전 처음 진료실에 앉아 진료할 때부터 싹튼 것일지도 모른다. 소아과에서는 질료로, 집에서는 집안일과 아이들 키우는 일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익숙한 채 마음 속 깊이 숨겨두고 있었을 뿐. 그 싹에 물을 주어 조금씩 키우던 때를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너무도 많은 환자에 지쳐 소아과의사라는 단어가 나에게 유난히 작게 느껴지던 때였다.

 

배가 아프다며 진료실을 자주 오던 아이

 

그즘에 그 아이는 자주 배가 아프다며 조퇴를 하거나, 하교하자마자 진료실을 찾았다. 매우 괴로운 표정으로 배를 감싸 안고 힘든 걸음걸이로 진료실을 들어왔다. 보통 체격에 잘 먹는 편이고 구토나 설사, 변비 증상이 없는데도. 주 2회나 3회에 걸쳐 계속된 복통에 이미 여러 다른 소아과도 나니며 링거도 맞아보고 약도 많이 먹어보다가, 결국 큰 병원에서 피검사와 방사선 검사들도 해봤다고 했다.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소견이 없다고 하자 엄마는 꾀병이라고 여겨 혼내기만 했고, 그 후 아이는 더 아파했다고 했다.

 

아이 친구 엄마의 소개로 내 소아과에 왔다는데 도와줄 약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아이에게 간호사 언니가 가져온 따스한 꿀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시게 한 후 침대에 눕히고 배에 핫팩을 대준 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한 10분쯤 지나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편안해질 거라고 다독이며 아이와 이 얘기 저얘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아이는 얼마간 지나자 살짝 웃는 얼굴로 조금 좋아졌다며 일어났다. 엄마에게 아이가 진짜 아픈 거니까 꾀병이라 야단치지 말고 오늘은 집에 가서 쉬게 하라며 보내는ㄷ 엄마가 자꾸 약을 달라고 했다. 약... . 결국 난 정장제와 진정제를 주면서 아프면 먹이고 미리 먹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후에도 아이는 자주 진료실을 찾아왔고 다른 환자를 볼 동안 아이는 원장실에 누워 내가 한가해지길 기다려 주었다. 아이는 점차 내 소아과가 익숙한 듯 보호자 없이도 혼자 진료실을 방문했고, 침대에 눕는 날도 약 주는 날도 줄어들면서 얘기만 하다가 가는 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진료실 컴퓨터의 진료 날짜를 보다가 아이가 월요일과 목요일에 주로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행복해 하는 아이, 싫어서 힘들어 하는 아이

 

난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幸福하고 무엇을 할 때 싫고 힘든지 물었다. 아이는 跆拳道 학원에 가는 것이 제일 싫고, 피아노 치는 것도 이제는 지겁고, 과학영재교실 다니는 게 제일 幸福하다고 했다. 학원 안 가고 과학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고 했다.

學院을 도대체 몇 개나 가냐고 물었더니 과학영재교실, 영어학원과 영어회화 과외, 수학, 독서논술, 태권도, 수영, 피아노, 미술대회 전에는 미술학원, 방학 때는 컴퓨터, 스키... . 아이는 학원을 전전하다가 늦게 집에 오니 숙제할 시간도 모자라고, 태권도 학원에서는 태권도가 아니라 학교 체육시험 준비로 줄넘기나 구기종목 연습을 시키는 데 잘못하면 무서운 사범이 종아리를 때리기도 한다고 했다.

 

나보다 바쁜 아이를 보니 문득 힘없는 작은 아이가 쉽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네가 만약 엄마가 된다면 어떻게 해주고 싶으냐고 하니까. 아이는 한 두개쯤 줄여줄 거라 했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영어 수학은 엄마랑 절대 타협이 안 되겠지만 4년이나 친 피아노와 태권도는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서논술도 선생님이 골라준 책만 읽다보니 책 읽기가 너무 싫어지니 방학 때만 가고 싶다고 했다.

 

뒤쳐질까 두려워하는 아이 엄마를 설득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난 아이 엄마에게 잠시 만나고 싶다고 문자를 했고, 오전 진료가 끝날 때쯤 엄마가 왔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점심시간 내내 엄마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진다며 펄쩍 뛰던 엄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잘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다.

며칠 후 되근 하면서 우연히 그 아이를 길에서 만났는데, 그 아이는 밝아진 얼굴로 내게 뛰어오며 큰 소리로 학원을 줄였다고 자랑을 했다. 난 아이에게 나랑 한 약속을 상기시켰다. 적당히 운동하고 음식 골고루먹기, 책 쳔식하지 말고 많이 읽기, 멋진 과학자가 될 준비하기.

 

그 후 그 아이를 진료실에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아이의 소식을 전해준 건 그 아이에게 내 소아과를 소개시켜주었던 그 아이 친구 엄마였다. 그 아이는 중학교에 올라가 이사를 갔고 이번에 科學高에 들어갔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씩 아이는 소아과 선생님 얘기를 하고, 그 엄마도 고마워하고 있단다. 오히려 나는 자기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그 아이에게 감사했다.

 

 

의사가 아이에게 해줄 것은 약이 아니다

 

역시 요즘 아이들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200명이 넘는 환자를 보면서 나는 소아과의사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治療했다는 걸까? 내가 준 藥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나는 나름대로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고 진료의 基準(기준)을 만들어 진료해왔다. 환자가 내 아이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면서, 그날 오는 환자 중 약 처방이 꼭 필요 없는 환자는 돌려보냈는데 그 수가 제법 많았다. 따스한 물을 많이 먹이고, 가습기를 틀어주면서 지켜보고, 혹시 열이 38도가 넘어 아이가 힘들어 하면 해열제를 먹이고 내일 아침 오라는 말과 함께 그래도 걱정되면 언제든지 내게 전화라고 했고, 걱정되는 환자들은 그날 밤 내가 직접 전화를 해주곤 했었다. 물론 이런 나에게 화내며 약을 꼭 달라거나, 약을 빨리 안 줘서 더 나빠진 것 아니냐며 화내는 보호자들도 있었다. 미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은 우리 몸이 우리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니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는 잘 다스려야 한다는 설득은 바쁜 보호자들에게 잘 안 먹혀들어갈 때가 많았다. 어쩌면 아픈 아이보다 보호자가 그런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살펴주는 게 힘든 건 아닐까. 아파서 짜증내는 아이를 밤새 달래기는 몹시 힘들 일이니까.

 

건강을 잃고 쉬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

 

그 후 나는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큰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정작 난, 날 위한 진찰 한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 건강에 게으름을 피운 벌을 단단히 받아야 했다. 덕분에 내 소아과를 다른 선생님에게 양도하고 쉬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 덕분에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선택한 것은 심리상담과 마음공부였다. 아동심리상담, 놀이치료, 미술치료... . 덕분에 좀 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좀 더 미리 배웠더라면 아이들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患者에게는 어떤 약보다 따뜻한 눈빛이나 말 한 마디가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내 마음공부를 위해서 택한 것은 佛經 공부였다. 중학교에서 성경 공부를 처음 접하고, 대학교 때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고 영세를 받았지만, 불경을 공부한 적은 없었다. 유명한 스님의 말씀을 책으로만 접하고 정토회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을 듣고 깨달음의 장을 갔던 적은 있지만 불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2년간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의 공부는 큰 가르침이었다. 비록 나의 종교는 불교가 아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 인생에 또 다른 빛이 되었다. 살아왔던 길과 다른 길이라고 가보지 않고 평가하면 안 된다는 큰 가르침도 받았다.

 

정토회 도반에게 뜸사랑을 소개 받다

 

그렇게 감사하던 시기에 정토회 도반에게 소개 받은 것이 뜸사랑이다. 평소 수술이나 약을 권유하기 보다 自然治癒에 대해 얘기하는 내 모습에 뜸사랑이 잘맞을 거라고 했다. 이 나이동안 침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내가 일단 배우고 나서 생각하자고 선뜻 등록을 해버렸다.

뜻밖의 내 행동에 가족들은 너무도 놀랐다. 구십 평생 침뜸 한번 하신 적 없으신 친정어머니는 막내딸의 이탈에, 소아과의사로서 아기를 직접 젖먹이며 키워봐야 한다고 3년간 일을 쉬었던 때처럼, 많이 놀라신 듯했지만,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 하고 또다시 믿어 주셨다.

 

의대를 떨어졌을 때 후기에 있는 한의대에 가보라던 주위 분들에게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라며 거부하고 결국 재수해서 의대에 진학했었는데,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해보지 않고 틀리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다시 되새겨 본다. 그리고 진정한 醫術이 어떤 것인지 진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이다.

 

환자와 병을 바라보는 선조들의 눈

 

뜸사랑에 온 후, 지금까지 별로 관심이 없던 책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한의학의 성전이라 하는 '동의보감'에 보면, 患者가 책을 펼친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을 비친 듯이 명확하니 함부로 치료하여 요절하는 우환이 없을 거라 했다.

여기서 주어가 의사가 아니라 患者라는 사실이 놀랍다. 즉 전문 의료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自身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선조가 당부했듯 동의보감은 백성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경편을 앞쪽에 배치하여 질병이 아닌 生命과 養生을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연암의 '민옹전'을 읽다보면 그 시절 병을 바라보는 관점도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울증에 걸렸던 청년 연암은 전문적인 의원이 아닌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거리로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약이나 의원이 귀했겠지만. 이 책은 병이란 무엇인지 치유란 무엇인지를 다양한 차원에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렇듯 옛 선조들이 펼친 현명한 의술을 여러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허준과 구당 선생의 정신은 통한다

 

뜸사랑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이 구당 선생남과 뜸사랑의 정신과 통한다는 것을 느꼈고, 이렇게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가르쳐주신 무극보양뜸으로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살핀다. 더 나아가 '배워서 남 주자'라는 말씀은 얼마나 멋진가. 과잉진료와 과잉치료, 엄청난 의료비 부담으로 허덕이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보다 좋은 대책이 있을까?

 

현대인은 무수한 지식의 바다에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自身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헤매고 있다. 조금만 아파도 양약을 쉽게 사용하고, 수술과 처치도 쉽게 권하고 또 두려움 없이 선택하고 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외국에서 마구 수입해서 먹고, 그것도 귀찮아 약 형태로 만들어 비싼 값에 사먹고 있고, 그것을 부추기기 위해 많은 의사와 한의사가 여러 방송에서 열을 올리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이용해서 약의 양과 수를 대폭 조절하여 처방은 간결하고 약효는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허준과, 평생을 진료하시면서 그 효능을 입증하신 무극보양뜸을 아낌없이 가르쳐주신 구당 선생님께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몸과 마음을 자연에 맞추어 치유하는 의술

 

그러나 내 주위에서 있는 전문가나 인텔리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묻는다. 네가 배우는 침뜸으로 진짜 좋아지냐고, 과학적 증거가 있냐고, 환자와 대조군을 비교한 제대로 된 논문이 있냐고, 함부로 사용하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어쩔 거냐고... . 자신만의 論理에 빠져 다른 길은 틀리다며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제 시작인 난 아직 잘 모른다. 앞으로 배울 게 훨씬 더 많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직접 해보고 말하자는 것이다. 하지 않은 길, 모르는 것이라고 무조건 틀린 것이 아니니 난 일단 직접 해보고 직접 보여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난 함께 공부하고 봉사하는 선생님들과 봉사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 빠른 결과를 보여주려고 무리하게 우리 몸과 마음에 해를 가하는 현 의료보다는 느리지만 우리 몸과 마음을 自然의 흐름에 맞추어 치유하는 진정된 의술을 언젠가 모두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나의 남은 삶은 나무만을 보지 않고 숲을 볼 수 있는, 배워서 남 주는 의료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新年詞 구당의 새해 구상

<새 침뜸 교재 편찬과 침뜸 세계화의 원년>(계간 구당 2016 겨울)

 

金 南 洙(본지 발행인)

 

 

사랑하는 뜸사랑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정치, 사회적으로 우리 가슴을 시커멓게 물들게 한 丙申年을 보낸고, 침뜸 교재의 새로운 편찬과 우리 침뜸의 세계화를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겨야 할 丁酉年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우리에게 지난 한 해는 힘들었지만 새로운 希望을 갖게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침뜸 교육의 新紀元을 열 교재를 새롭게 만들어갈 교재편찬위원회의 태동, 뜸사랑 평생교육원의 침뜸 교육을 許可한 대법원 판결, 이어진 서울고등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 美國 사우스베일로대학교의 구당 침뜸 博士과정 개설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회원 여러분, 올해는 이런 일들이 다듬어져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교재 편찬은 과학자들이 밝혀낸 電氣論과 내가 經驗해 온 침뜸 이론을 바탕으로 침뜸의학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기존 교재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일입니다.

 

몸은 작은 發電所로 그 안에서 電氣가 만들어 집니다. 사람의 몸은 작은 宇宙이고 우주는 전기적 磁力으로 활동합니다.

 

침뜸도 같은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그동안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한 여러 연구가 있었지만, 이론으로 정립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뜸은 피를 만들고, 침은 통하게 하는 원리와 확실한 경험을 토대로 학술 가치가 있는 醫學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鍼은 줄이 있어야 통하고, 그 줄은 통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며, 쇠가 아니면 통하지 않습니다. 허실보사가 아니라 通하게 하는 것입니다. 뜸은 통하게 하는 피를 만드는데 그 피가 바로 쇠줄을 만들게 됩니다.' 올해는 이러한 原理를 학술적으로 승화시켜 敎材로 탄생하게 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성원과 격려를 기대합니다.

 

교재 편찬이 완료되면 이에 기초하여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회원 시험을 資格試驗으로 개편하고 우리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것입니다.

 

미국 사우스베일로대학교에 구당 침뜸 박사학위 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어느 한 개인이 연구한 의술이 博士 과정에 정식으로 등록된 사례는 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영예에 앞서 우리 회원들의 노력이 이제야 하나 둘 결실을 맺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동안 實定法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정부 당국의 무책임으로 홀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의료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美國에서 구당 침뜸을 세계 의학으로 인정하고 그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침뜸이 洋醫學과 결합하여 敎育과 硏究와 臨床을 해나가며, 체계화되고 입증된 논문들을 발표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명 애니깽(Anniguin)으로 불리던 우리 선조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멕시코 유카탄 半島 지역의 산타 몬타나大學에 무극보양뜸이 정규 의학 코스로 개설되며, 南美의 중심지인 볼리비아에 거점을 두고 구당 침뜸을 세계 도처에 확산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奉仕라는 이름으로 침뜸을 시술해왔습니다. 줄곧 봉사라고만 하니까 받는 사람들이 우리의 구당 침뜸은 당연히 봉사만 하는 것으로 알고, 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이 구당 침뜸을 유료로 시술할 때를 대비하여 '봉사'라는 말을 '무료' 라는 말로 바꾸어 쓰고자 합니다. '봉사실'도 '무료 뜸집'으로 바꾸려 합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존재 가치가 없는 게 하니라 자신의 力量을 인정받고 환자 치료에서 보람을 느끼는 회원들이 되었으면 하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西洋醫學이 해결 못하는 문제들은 많습니다. 공학자들이 만든 기계를 통해 診斷하고 잘라내고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양의학은 한계에 봉착한 것입니다. 서양의학과 우리의 침뜸이 서로 補完해 함께 하면 살리는 치료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醫學이며 丁酉年 새해에 우리가 함께 해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새해에는 큰 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새해

 

灸堂 金南洙

 

 

구당 무극보양뜸, 중국 칭하이성 제5인민병원과 교류협력 맺다(계간 구당 2016 가을)

 

 

칭하이성(靑海省)은 중국 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광활한 면적과 중국 제1의 호수인 칭하이호로 유명한 곳이며 성도는 시닝(西寧, 서녕)이다.

 

칭하이 제5인민병원은 1960년에 의료, 교육, 과학연구 및 예방의학의 일체화를 위해 설립되어 2004년 칭하이성 위생청에 정식 이관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양의사와 중의사가 혼합해 치료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수가 약 550명에 이르는 대형 종합병원이다. 특히 칭하이성은 高原(고원)이라는 특수환경에 따른 암 환자 다발 지역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줄곧 종양치료에 심혈을 기울여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암은 종양일뿐 무서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구당 김남수 선생 강연

 

"여러분은 이미 癌(암)을 종양이라 부르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手術하거나 藥物치료를 이용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다. 그들은 모든 병을 자르고 죽인다. 그 방법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암치료를 하면서 대개 항암제라는 것을 환자에게 주입한다. 이것이 환자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다. 우선 먹지를 못해 비쩍 마르게 된다. 그러나 무극보양뜸을 이용하면 우선 먹을 수 있으며 견딜 수가 있다. 그때 치료를 할 수 있다. 암은 무서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이것이 내 80년 臨床(임상)에서 체득한 사실이다."

 

"나는 여러분께 내가 개발하고 연구해온 침법과 뜸법을 다 가르쳐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을 병에서 구원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곳 칭하이성(靑海省)에 오니 뭔가 활력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결과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이승남 요법사 인터뷰(중국 칭하이성병원 침뜸요법사)

 

중국 생활을 하면서 구당 침뜸의 놀라운 효과를 늘 경험하며 내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무극보양뜸 최고'라며 그 효과를 인정하고 있지요.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구당 침뜸으로 이곳 중국에서 충분히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으나 言語(언어) 장벽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곳에 오려는 뜸사랑 회원들이 있다면 반드시 中國語를 어느정도 익히고 왔으면 합니다. 좀 늦게 오는 경우라 하더라도 의사표시와 환자 다루는 어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향수병(?)에 시달리지 않고 실력 발휘도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상하이뜸사랑협의회 초청 특강(계간 구당 2016 가을)

 

 

구당 선생 특강

 

여러분의 歡迎(환영)에 감사하다. 이곳 상하이에서 정 회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이 지속적으로 奉仕를 하고 있는 사실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中國에서 구당 침뜸으로 公式的인 봉사를 하고 있는 곳은 이곳 상하이(上海)가 유일하다. 정말 모두의 건강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속해서 한다고 하니 참 감사한 일이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말을 하면 자랑이 되는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21세기에 한 분야에서 가장 오래 일을 한 사람이 저 하나밖에 없다고 中國에서 먼저 말을 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올해 백하고도 두 살이니 한 분야에서 제법(?) 오랫동안 일을 한 것 아니냐. 그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오직 침뜸 밖에 없다. 우선 침뜸은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韓國에서만 걸리는데(?) 그래도 다 해왔다. 그랬더니 이번 大法院에서 판례를 남겨 '침뜸 교육을 해도 된다'고 하더라.

 

이제는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교육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침뜸이 서양의학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내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나는 늘 '침뜸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펼쳐오고 또 행동해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갖 中傷謀略과 은행 계좌까지 뒤지는 협박도 당했다. 나는 이런 짓에도 눈도 한 번 껌벅거리지 않고, 꺽이지도 않고 오로지 침뜸을 지켜오고 교육해 왔다. 그랬더니 전과 43범이 되었더라.

 

그리고 이번에는 교육해도 된다는 선물을 주었다. 이것은 43범 모두 침뜸 교육과 연관이 있으니 이제 나도 전과가 없는 선량한 시민이 된 것 아닌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대법원 판결에 우리 모두 감사해 하자.

 

 

상하이뜸사랑협의회에서 이렇게 봉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참 감동했다. 정한영 회장를 비롯한 봉사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참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다.

 

여기 오신 분들은 幸運(행운)이 있는 분들이다. 여러분들도 꼭 뜸을 해보기 바란다. 반드시 대가가 있다. 왜냐하면 뜸을 뜨면 健康은 따라서 오기 때문이다. 뜸을 배워놓으면 봉사를 하기도 좋다. 뜸은 국경도 민족도 종교도 시간도 장소도 남녀노소 빈부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에 나를 보면 건강백세의 祕訣을 묻곤 한다. 나는 뜸 때문이라고 말하는데도 믿음이 안 가는지 우리 집 부근에서 나를 감시한다.

 

내가 먹는 것, 잠자는 것, 생활습관 등 오만가지를 알려고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뜸만은 매일 뜸다.

 

그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나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동양의학은 자르고 죽이는 서양의학과는 달리 털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根本을 치료한다.

 

비싼 韓藥 먹는다고 만사형통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값이 싼 뜸은 여러분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여러분도 반드시 뜸을 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곳 뜸 봉사단의 정회장과 이은화 박사 등 회원들이 열심히 봉사하고 있으니 서로 협조해서 '배워서 남주는 아름다운 생활'의 표본을 만들어 주기를 부탁한다.

 

 

 

정한영 상하이뜸사랑협의회장 인터뷰

 

저 역시 뜸 덕분입니다. 거의 매일 앞부분은 뜹니다. 그래선지 건강이 아주 좋습니다.

 

늘 뜸 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틈을 내 무극보양뜸을 뜹니다. 손이 닿는 곳만 뜨지만 그래도 효과는 아주 좋습니다. 身體도 건강하지만 精神的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유지를 뜸으로 하는 나를 보고 주위에서 뜸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지요. 灸堂 선생님의 철학인 '배워서 남주자'라는 말이 너무 좋아 시작된 뜸에 대한 사람이 저도 이제는 거의 마니아(mania)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이렇게 쉽고 좋은 뜸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으련만 아직도 그러지 못하는 한국의 사정이 안타깝습니다. 중국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뜸을 할 수 있는데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大法院에서 구당 선생님을 묶어놨던 족쇄를 풀었으니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중국 蘇州(소주, 쑤저우) 제4회 국제구법(灸法)대회(계간 구당 2016 가을)

 

 

특강내용 발췌

 

癌(암)은 종양이라고도 부른다. 癌이란 人體에 고름이 생기는 것으로, 그 고름이 인체 밖으로 排出(배출)되지 못하고 體內에 장시간 남아있어서 생기는 病이다. 癌은 최근에 생긴 병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癌이라는 병은 있었다. 그러나 表現(표현)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癌이라면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말하고, 인생의 마침표를 미리 찍어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癌을 아주 무섭게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手術하거나 藥物치료를 이용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다. 그들은 모든 병을 자르고 죽인다. 그 방법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학을 가진 우리나라 우리 선조의 지혜는 아주 대단하다. 오래전부터 침뜸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암 치료에 활용하지 못해왔다.

 

침뜸은 癌(암) 치료법에 있어서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 또한 나의 80년 臨床(임상)에서 증명해온 사실이다. 침뜸의 원리를 말하자면 신체를 電氣(전기)와 發電所(발전소)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다.

 

인체에도 電氣가 있고 전기가 흐른다. 피가 전기라면 혈관은 전기줄이다. 인체에 피가 충분하고 혈관이 좋아야만 循環(순환)이 잘 된다. 뜸(灸)은 인체에 피를 '만들어주는' 작용을 한다. 鍼은 피가 잘 循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癌을 침뜸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鍼으로 통하게 하고, 뜸으로 고름을 인체 밖으로 빼주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피를 만들어 주어 건강을 전면적으로 회복시켜주어야 한다.

이제 癌이라 해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102살이 된 오늘날 여러분께 암의 침뜸 原理를 설명해 줄 수 있어서 人生에 여한이 없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이 암의 침뜸 治療法(치료법)에 대해서 잘 배우고 나서 주변 사람에게, 나아가 전 世界 사람들에게 '癌은 '침뜸'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原理를 널리 알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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