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일찍 뜸을 알았더라면... '엄마, 사랑합니다'(계간 구당 2017 여름)
ㅇㅇㅇ 정회원 33기
췌장암 진단받은 엄마
2년 전 봄, 엄마의 췌장암 4기 초라는 진단은 엄마와 우리 가족을 끔찍한 정말과 충격에 빠트렸다. 진단받기 두 달 전부터 엄마가 복통으로 괴로워했으나, 우리는 여느 췌장암 환우처럼 위장의 문제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췌장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동네 병원 약만 드시게 했던 우리의 안일함과 무지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맹신했던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면, 마약성 진통제만 처방해준 채 퇴원을 종용했다. 평새을 자시글 위해 헌신하였던 엄마에게 왜 이리도 세상은 잔혹한 건지... . 그 모든 것에 대해 원망하고 분노하던 시간이었다.
통증의 절망, 뜸으로 희망을 품다!
엄마는 통증으로 잠을 잘 수도 먹을수도 없었다. 너무 괴로워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했다. 그러나 구토, 어지럼증, 신경과민 등으 부작용을 겪으며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이 끔찍한 통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만 있기를, 밥 한 숟가락이라도 제대로 드실 수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뜸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곳에서 간접구인 왕뜸을 뜨게 되었다. 뜸을 뜬 첫날, 오랜만에 편안함을 찾으신 엄마는 식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두 달간 식욕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억지로 한 수저 라도 드시고 나면 곧바로 다 토해 버리셨던 엄마가 밥을 1/3 공기나 드셨고, 토하지도 않으셨다. 두 달 만에 온전한 식사를 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뜸으로 이 절박한 상황을 벗어 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나는 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췌장암의 통증이 사라지다
수소문 끝에 뜸사랑을 알게 되어 바로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일요일반에 수강신청을 하여 침과 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침과 뜸의 신비로운 효능에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암 통증 중 가장 심하다는 췌장암의 통증이 거의 사라지면서, 엄마는 일상생활을 다시 찾으셨다. 진통제도 끊고, 식사도 하시게 되었으며, 일과 중 뜸 뜨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실 만큼 뜸에 많이 의지하셨다.
대식구가 모여 사는 우리 집 환경상 감기, 식체, 요통, 생리통, 변비, 불면증, 족저근막염, 대상포진 등 크고 작은 병이 끊이지 않았다. 아직은 서툴지만, 병증을 호소하던 가족들을 침과 뜸으로 치료했다. 그 효능을 몸소 느끼게 되니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침과 뜸에 감사하고 고마워하게 되었다.
구당 선생의 말에 용기를 얻은 엄마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장성에 가서 구당 선생에게 진료를 받던 날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구당 선생은 엄마의 등과 배를 쓰다듬으시며 "괜찮다". 잘하고 있다."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을 들으신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구당 선생의 한 마디가, 치병 기간 동안 불안에 떨고 있던 엄마에게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것이다. 그렇게 구당 선생은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선물해 주셨다.
매일 무극보양뜸을 기본으로 하고, 양문 활육문 천추 간유 비유 신유 대장유 등의 혈 자리를 그 날의 컨디션에 맞게 배합하여 뜸을 떴더니 거짓말처럼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췌장암 환자의 또 다른 고통인 섭식! 소화효소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식사를 못 하는 다른 췌장암을 환자와는 달리 매끼 본인이 드시고 싶은 음식들을 드시게 되었고, 매일 같이 운동도 하시는 등 원기를 되찾으셨다.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시고, 취미 생활로 난타 수업도 들으시는 등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시게 되었다.
뜸으로 되찾은 엄마의 소중한 일상
놀라웠던 것은 췌장암 발병 전, 약 3년간 엄마를 괴롭혔던 기관지 확장증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엄마는 토할 듯한 기침, 멈추지 않았던 가래로 3년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몇 달에 한번씩 심한 각혈로 인해 위급한 상황도 여러번 격으셨다.
색전술로 그때그때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늘 위태롭게 지내던 시간이었다. 최악의 경우 폐 절제를 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어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기에 , 늘 긴장속에 지내던 엄마였다.
그런데 3개월 동안 매일같이 폐유와 고황에 뜸을 뜨자, 어느새 기침, 가래, 각혈이 모두 사라졌다. 밤이면, 잦은 기침으로 제대로 잠을 못 주무시던 엄마가 이제는 곤히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췌장암 통증 완화를 위해 시작한 뜸이 생기지도 못했던 기관지 확장증을 고치다니! 뜸의 효능을 다시 한번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잠을 편히 잘 수 있다는 것! 남들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엄마에게는 간절 했던 그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엄마와 이별, 그리고 뜸이라는 선물
췌장암 진단 후, 네 남매와 사위들, 그리고 손주들까지 모두 한집에서 오순도순 살아보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우리 가족을 비웃기라도 하듯, 훅~ 다시 병마가 찾아왔다. 이번엔 어찌 손도 써 보지 못할 만큼 잔인하고 참혹하게... .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그동안 잘 버텨 주셨던 엄마도 크게 흔들리셨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니 병마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엄마를 집어삼켰고, 지난해 봄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되셨다.
고통 없는 곳에 엄마를 보내 드리고, 나는 크나큰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만약 좀 더 빨리 뜸사랑을 알았더라면, 엄마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치병 기간 동안 좀 더 극진히 보살펴 드렸다면 덜 고통스러우셨을까? 끝없는 죄책감에 나 자신을 몰아넣으며 한없이 괴로워하던 나였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낼수는 없었다. 엄마는 떠나셨지만, 뜸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고 소소한 일상을 되찾았던 엄마와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나도 병마에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있기를 바라며, 다시 힘을 내어 교육원에 복학하였다.
구당 침뜸, 제도권에 의료에 상처받은 환자의 큰 희망
그렇게 1년여의 시간 동안 침과 뜸을 공부한 끝에 드디어 정회원이 되었다. 뜸을 안 지 2년,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침과 뜸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렸던 내가, 이제는 제도권 의료시스템에 상처를 받은 환자에게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가장 큰 행운이다.
특히, 뜸 뜨는 것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렸던 조카녀석들이, 이제는 내가 뜸을 뜨고 있을 때 옆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뜸 자리를 눌러 주며 "이렇게 눌러줘야 안 뜨겁죠?"하며 씩 웃곤 한다. 또, 내가 침을 놓고 있을 때, 삽관 연습을 하게 침 하나만 달라고 졸다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툭하고 웃음이 터진다. 준비된 구당 침뜸의 후예들! 이 어린 조카들이 침뜸으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본다.
암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는 삶을 소망
이제는 가족만이 아닌, 질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나의 손길을 전하고 싶다. 특히, 엄마와 같은 암 환자들의 통증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 구당 선생의 따스한 손길에 위로 받으며 미소 지었던 엄마를 생각하며, '배워서 남 주자'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
끝으로, 386차 동기들과, 뜸부기 스터디 모임을 만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서로 교류하며, 더 깊이 공부해서, 이제는 배움만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손길을 필요한 그곳에서 봉사의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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