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소아과 전문의의 침뜸 사랑(계간 구당 2016 겨울)

 

"일단, 직접 해보겠습니다"

 

신영섭(32기, 소아과 전문의)

 

 

[뜸사랑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醫師가 왜 여기 와있냐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다을 많은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내가 한 답은 "일단 공부하면서 직접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회원 시험을 마치고 원고 청탁을 받은 지금도 할 수 잇는 답은 "일단 직접 해보고 있다" 이다. ]

 

 

의사라는 직업에 懷疑(회의)가 생기고 몸과 마음이 지쳐

 

뜸사랑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 반이 지났다. 기초반 첫 달, 너무도 생소한 내용에 멍하니 앉아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솔직히 2년 전만 해도 나는 뜸사랑도 灸堂 선생님도 전혀 몰랐다. 그런데 그 당시 뜸사랑에서 수업을 듣던 분에게 소개를 받자마자 무엇에 이끌리듯 바로 등록을 했다.

지난 몇 년간은 醫師라는 직업에 懷疑를 느끼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방황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하루 200명 많게는 300명까지 정신없는 진료하는, 10년 넘게 개업한 小兒科 전문의라는 나의 능력으로도 스스로에게는 만족할 수 없고, 교과서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고 있는 길이 정말 옳은 길인지 뿌옇기만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방황은 오래 전 처음 진료실에 앉아 진료할 때부터 싹튼 것일지도 모른다. 소아과에서는 질료로, 집에서는 집안일과 아이들 키우는 일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익숙한 채 마음 속 깊이 숨겨두고 있었을 뿐. 그 싹에 물을 주어 조금씩 키우던 때를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너무도 많은 환자에 지쳐 소아과의사라는 단어가 나에게 유난히 작게 느껴지던 때였다.

 

배가 아프다며 진료실을 자주 오던 아이

 

그즘에 그 아이는 자주 배가 아프다며 조퇴를 하거나, 하교하자마자 진료실을 찾았다. 매우 괴로운 표정으로 배를 감싸 안고 힘든 걸음걸이로 진료실을 들어왔다. 보통 체격에 잘 먹는 편이고 구토나 설사, 변비 증상이 없는데도. 주 2회나 3회에 걸쳐 계속된 복통에 이미 여러 다른 소아과도 나니며 링거도 맞아보고 약도 많이 먹어보다가, 결국 큰 병원에서 피검사와 방사선 검사들도 해봤다고 했다.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소견이 없다고 하자 엄마는 꾀병이라고 여겨 혼내기만 했고, 그 후 아이는 더 아파했다고 했다.

 

아이 친구 엄마의 소개로 내 소아과에 왔다는데 도와줄 약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아이에게 간호사 언니가 가져온 따스한 꿀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시게 한 후 침대에 눕히고 배에 핫팩을 대준 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한 10분쯤 지나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편안해질 거라고 다독이며 아이와 이 얘기 저얘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아이는 얼마간 지나자 살짝 웃는 얼굴로 조금 좋아졌다며 일어났다. 엄마에게 아이가 진짜 아픈 거니까 꾀병이라 야단치지 말고 오늘은 집에 가서 쉬게 하라며 보내는ㄷ 엄마가 자꾸 약을 달라고 했다. 약... . 결국 난 정장제와 진정제를 주면서 아프면 먹이고 미리 먹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후에도 아이는 자주 진료실을 찾아왔고 다른 환자를 볼 동안 아이는 원장실에 누워 내가 한가해지길 기다려 주었다. 아이는 점차 내 소아과가 익숙한 듯 보호자 없이도 혼자 진료실을 방문했고, 침대에 눕는 날도 약 주는 날도 줄어들면서 얘기만 하다가 가는 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진료실 컴퓨터의 진료 날짜를 보다가 아이가 월요일과 목요일에 주로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행복해 하는 아이, 싫어서 힘들어 하는 아이

 

난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幸福하고 무엇을 할 때 싫고 힘든지 물었다. 아이는 跆拳道 학원에 가는 것이 제일 싫고, 피아노 치는 것도 이제는 지겁고, 과학영재교실 다니는 게 제일 幸福하다고 했다. 학원 안 가고 과학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고 했다.

學院을 도대체 몇 개나 가냐고 물었더니 과학영재교실, 영어학원과 영어회화 과외, 수학, 독서논술, 태권도, 수영, 피아노, 미술대회 전에는 미술학원, 방학 때는 컴퓨터, 스키... . 아이는 학원을 전전하다가 늦게 집에 오니 숙제할 시간도 모자라고, 태권도 학원에서는 태권도가 아니라 학교 체육시험 준비로 줄넘기나 구기종목 연습을 시키는 데 잘못하면 무서운 사범이 종아리를 때리기도 한다고 했다.

 

나보다 바쁜 아이를 보니 문득 힘없는 작은 아이가 쉽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네가 만약 엄마가 된다면 어떻게 해주고 싶으냐고 하니까. 아이는 한 두개쯤 줄여줄 거라 했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영어 수학은 엄마랑 절대 타협이 안 되겠지만 4년이나 친 피아노와 태권도는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서논술도 선생님이 골라준 책만 읽다보니 책 읽기가 너무 싫어지니 방학 때만 가고 싶다고 했다.

 

뒤쳐질까 두려워하는 아이 엄마를 설득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난 아이 엄마에게 잠시 만나고 싶다고 문자를 했고, 오전 진료가 끝날 때쯤 엄마가 왔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점심시간 내내 엄마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진다며 펄쩍 뛰던 엄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잘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다.

며칠 후 되근 하면서 우연히 그 아이를 길에서 만났는데, 그 아이는 밝아진 얼굴로 내게 뛰어오며 큰 소리로 학원을 줄였다고 자랑을 했다. 난 아이에게 나랑 한 약속을 상기시켰다. 적당히 운동하고 음식 골고루먹기, 책 쳔식하지 말고 많이 읽기, 멋진 과학자가 될 준비하기.

 

그 후 그 아이를 진료실에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아이의 소식을 전해준 건 그 아이에게 내 소아과를 소개시켜주었던 그 아이 친구 엄마였다. 그 아이는 중학교에 올라가 이사를 갔고 이번에 科學高에 들어갔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씩 아이는 소아과 선생님 얘기를 하고, 그 엄마도 고마워하고 있단다. 오히려 나는 자기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그 아이에게 감사했다.

 

 

의사가 아이에게 해줄 것은 약이 아니다

 

역시 요즘 아이들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200명이 넘는 환자를 보면서 나는 소아과의사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治療했다는 걸까? 내가 준 藥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나는 나름대로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고 진료의 基準(기준)을 만들어 진료해왔다. 환자가 내 아이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면서, 그날 오는 환자 중 약 처방이 꼭 필요 없는 환자는 돌려보냈는데 그 수가 제법 많았다. 따스한 물을 많이 먹이고, 가습기를 틀어주면서 지켜보고, 혹시 열이 38도가 넘어 아이가 힘들어 하면 해열제를 먹이고 내일 아침 오라는 말과 함께 그래도 걱정되면 언제든지 내게 전화라고 했고, 걱정되는 환자들은 그날 밤 내가 직접 전화를 해주곤 했었다. 물론 이런 나에게 화내며 약을 꼭 달라거나, 약을 빨리 안 줘서 더 나빠진 것 아니냐며 화내는 보호자들도 있었다. 미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은 우리 몸이 우리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니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는 잘 다스려야 한다는 설득은 바쁜 보호자들에게 잘 안 먹혀들어갈 때가 많았다. 어쩌면 아픈 아이보다 보호자가 그런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살펴주는 게 힘든 건 아닐까. 아파서 짜증내는 아이를 밤새 달래기는 몹시 힘들 일이니까.

 

건강을 잃고 쉬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

 

그 후 나는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큰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정작 난, 날 위한 진찰 한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 건강에 게으름을 피운 벌을 단단히 받아야 했다. 덕분에 내 소아과를 다른 선생님에게 양도하고 쉬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 덕분에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선택한 것은 심리상담과 마음공부였다. 아동심리상담, 놀이치료, 미술치료... . 덕분에 좀 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좀 더 미리 배웠더라면 아이들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患者에게는 어떤 약보다 따뜻한 눈빛이나 말 한 마디가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내 마음공부를 위해서 택한 것은 佛經 공부였다. 중학교에서 성경 공부를 처음 접하고, 대학교 때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고 영세를 받았지만, 불경을 공부한 적은 없었다. 유명한 스님의 말씀을 책으로만 접하고 정토회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을 듣고 깨달음의 장을 갔던 적은 있지만 불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2년간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의 공부는 큰 가르침이었다. 비록 나의 종교는 불교가 아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 인생에 또 다른 빛이 되었다. 살아왔던 길과 다른 길이라고 가보지 않고 평가하면 안 된다는 큰 가르침도 받았다.

 

정토회 도반에게 뜸사랑을 소개 받다

 

그렇게 감사하던 시기에 정토회 도반에게 소개 받은 것이 뜸사랑이다. 평소 수술이나 약을 권유하기 보다 自然治癒에 대해 얘기하는 내 모습에 뜸사랑이 잘맞을 거라고 했다. 이 나이동안 침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내가 일단 배우고 나서 생각하자고 선뜻 등록을 해버렸다.

뜻밖의 내 행동에 가족들은 너무도 놀랐다. 구십 평생 침뜸 한번 하신 적 없으신 친정어머니는 막내딸의 이탈에, 소아과의사로서 아기를 직접 젖먹이며 키워봐야 한다고 3년간 일을 쉬었던 때처럼, 많이 놀라신 듯했지만,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 하고 또다시 믿어 주셨다.

 

의대를 떨어졌을 때 후기에 있는 한의대에 가보라던 주위 분들에게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라며 거부하고 결국 재수해서 의대에 진학했었는데,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해보지 않고 틀리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다시 되새겨 본다. 그리고 진정한 醫術이 어떤 것인지 진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이다.

 

환자와 병을 바라보는 선조들의 눈

 

뜸사랑에 온 후, 지금까지 별로 관심이 없던 책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한의학의 성전이라 하는 '동의보감'에 보면, 患者가 책을 펼친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을 비친 듯이 명확하니 함부로 치료하여 요절하는 우환이 없을 거라 했다.

여기서 주어가 의사가 아니라 患者라는 사실이 놀랍다. 즉 전문 의료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自身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선조가 당부했듯 동의보감은 백성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경편을 앞쪽에 배치하여 질병이 아닌 生命과 養生을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연암의 '민옹전'을 읽다보면 그 시절 병을 바라보는 관점도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울증에 걸렸던 청년 연암은 전문적인 의원이 아닌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거리로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약이나 의원이 귀했겠지만. 이 책은 병이란 무엇인지 치유란 무엇인지를 다양한 차원에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렇듯 옛 선조들이 펼친 현명한 의술을 여러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허준과 구당 선생의 정신은 통한다

 

뜸사랑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이 구당 선생남과 뜸사랑의 정신과 통한다는 것을 느꼈고, 이렇게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가르쳐주신 무극보양뜸으로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살핀다. 더 나아가 '배워서 남 주자'라는 말씀은 얼마나 멋진가. 과잉진료와 과잉치료, 엄청난 의료비 부담으로 허덕이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보다 좋은 대책이 있을까?

 

현대인은 무수한 지식의 바다에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自身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헤매고 있다. 조금만 아파도 양약을 쉽게 사용하고, 수술과 처치도 쉽게 권하고 또 두려움 없이 선택하고 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외국에서 마구 수입해서 먹고, 그것도 귀찮아 약 형태로 만들어 비싼 값에 사먹고 있고, 그것을 부추기기 위해 많은 의사와 한의사가 여러 방송에서 열을 올리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이용해서 약의 양과 수를 대폭 조절하여 처방은 간결하고 약효는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허준과, 평생을 진료하시면서 그 효능을 입증하신 무극보양뜸을 아낌없이 가르쳐주신 구당 선생님께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몸과 마음을 자연에 맞추어 치유하는 의술

 

그러나 내 주위에서 있는 전문가나 인텔리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묻는다. 네가 배우는 침뜸으로 진짜 좋아지냐고, 과학적 증거가 있냐고, 환자와 대조군을 비교한 제대로 된 논문이 있냐고, 함부로 사용하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어쩔 거냐고... . 자신만의 論理에 빠져 다른 길은 틀리다며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제 시작인 난 아직 잘 모른다. 앞으로 배울 게 훨씬 더 많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직접 해보고 말하자는 것이다. 하지 않은 길, 모르는 것이라고 무조건 틀린 것이 아니니 난 일단 직접 해보고 직접 보여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난 함께 공부하고 봉사하는 선생님들과 봉사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 빠른 결과를 보여주려고 무리하게 우리 몸과 마음에 해를 가하는 현 의료보다는 느리지만 우리 몸과 마음을 自然의 흐름에 맞추어 치유하는 진정된 의술을 언젠가 모두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나의 남은 삶은 나무만을 보지 않고 숲을 볼 수 있는, 배워서 남 주는 의료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