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무료진료 / 탄자니아(계간구당 2017 봄)

 

<침뜸 들고 떠난 검은 대륙, 아프리카>

 

 

신ㅇㅇ

뜸사랑 정회원 27기

 

 

⚫옮겨 다니며 마친 침뜸 공부

2012년 서울 청량리 구당 빌딩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충청도로 이사를 하게 되어 대전 지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공부를 마ㅣ기도 전에 애들 사업관계로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또 옮겨왔다. 2013년 2월 수료하기까지 눈 속을 뚫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토요일마다 나주에서 대전지부 교육실로 공부하러 다니던 생각이 새삼 난다.

 

정회원이 된 후에는 광주지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길에다 돈도 많이 깔고 다닌 공부 과정이었기에 내심 열심히 한다고 한 침뜸공부였다.

 

⚫큰사위의 해외 무료진료 요청

구당 선생님이 계시는 정통침구학회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5년 만에 해외 무료진료를 계획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 머리가 벗겨지게 더웠던 어느날, 큰 사위가 교회 선교봉사팀이 탄자니아갈 예정인데 장모님께서 침뜸을 하시니 같이 동행해 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탄자니아!

 

가수 조용필 씨의 노래 가사 속에 나오는 킬로만자로산 밑으로, 표범과 하이에나가 사는 그 뜨거운 나라에 나더러 가서 침뜸 무료진료를 하란다. 생각해 볼 테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말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오호! 나에게도 해외무료진료의 길이!

 

⚫탄자니아 공부

인터넷으로 탄자니아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1년에 독립했다. 언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땅덩어리는 대한민국의 10배정도이고, 적도 바로 아래에 있는 나라다. 가겠다고 대답도 하기 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고는 탄자니아에 갈 욕심으로 교회도 다니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여비며 호텔 숙박비까지 대준다는데 그 정도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은 생각에... . 딸을 잘 키우면 비행기 탄다는 말이 맞는다고 은근히 사위를 칭찬하면서... .

 

⚫무료진료 위한 물품 준비

자! 그러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할까? 서울에 계신 강민숙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며 영어로 된 침뜸에 관한 자료를 부탁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무극보양뜸 영어소개 책자를 두 권을 바로 보내 주셨다. 대전지부에 탄자니아 무료진료를 가려는데 침뜸 후원을 부탁 드린다 했더니 김기건 지부장님 이하 임원들께서 흔쾌히 승낙하시고 침 4박스 뜸 20박스 향 8박스를 후원해 주셨다.

 

침뜸은 미리 국제택배로 탄자니아로 부쳤다.

그리고 무극보양뜸을 보급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뜸쑥을 나누어 줘야 할 것 같아서 한국의 청심환 같은 환약을 넣은 청병 200개를 주문했다. 그 청병 속에 뜸쑥을 하나씩 담아 주면 한 달은 뜸을 뜰 수 있는 양이 되기에... .

 

⚫현지인 교육 위한 침뜸 자료

탄자니아에서 선교활동을 11년째 하고 있다는 선교사를 통해 물어보니 거기 사람들은 침뜸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침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 사람들한테 침뜸을 무어라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무조건 침뜸을 하면 좋아진다고 침을 찌르고 살을 태우는 뜸을 떠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침이 무엇인지 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자료를 간단하게 한글-영어- 스와힐리어를 넣어 만들어 가지고 가기로 했다. 탄자니아에서는 중학교부터는 영어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중학교 이상 공부를 한 사람이면 영어를 다 한다고 한다. 탄자니아는 128개 부족을 통합하여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쓰는데 말만 있고 문자가 없기 때문에 알파벳으로 스와힐리어를 표기한다.

 

⚫카타르 도하 공항

2016년 12월 5일 0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희망과 꿈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탄자니아 도착까지 비행시간만 15시간이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 갈아타고 킬리만자로 공항까지 5시간 걸리는 긴 여정.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비행기 정비가 덜 끝났다며 출발시간이 지연되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리저리 몸이 꼬이는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하에 도착했다. 당연히 갈아타야 할 비행기는 떠나고 없고.

카타르는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가? 다음날 같은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서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하도록 해 주었다. 얼결에 카타르라는 나라에서 하루르를 보내게 되어 도하 구경도 하게 되었다. 부자나라는 뭐가 달라도 달라 하면서.

 

⚫탄자니아 킬로만자로 국제공항

다음날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우리나라 국내선 공항보다 더 작은 규모다.

얼마나 더울까 하는 걱정과 함께 아프리카 땅을 밟았는데 생각보다 덥지 않아 은근 놀랐다. 섭시 32도! 건기라서 습도가 높지 않았고 햇볕이 따갑기는 했지만 그늘은 시원했다. 흠~ 견딜만한데?

 

⚫킬로만자로 근처에 잡은 숙소

마중 나오신 선교사님 교통편으로 우리 일행은 모쉬라는 도시에 있는 킬리만자로산을 향해 출발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가에 있는 마을들은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곳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내 기준으로, 우리의 기준으로 보지 말자.

 

우리 숙소는 바로 킬리만자로산이 잘 보이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루터란 우후루 호텔이었다. 정원이 아름답게 가꿔져 있었고 망고 나무에 망고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호텔 내부는 우리나라 80년대 여관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욕실에는 전기온수기가 달려 있었다. 적도 밑 아프리카에 왠 온수? 작지만 깔끔한 호텔방에 침대는 두 개, 매트리스는 스펀지, 침대마다 천정엔 모기장이 달려 있다.

 

⚫예방주사와 예방약

아프리카 여행을 하려면 필수인 황열병, 장티푸스, 콜레라 이렇게 3종 세트 예방주사를 맞고 말라리아 예방은 약으로 처방 받아 가지고 갔다.

 

탄자니아에서의 첫 식사는 선교사 부인께서 순한국식으로 비빔밥을 준비해 놓으셨서 여기가 아프리카가 이닌 줄 착각할 정도였다. 탄자니아에도 무, 배추, 마늘, 파 다 있단다. 젓갈과 고추가루만 가져가면 감치도 담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전기 온수가 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해가 지고 나니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저녁을 서늘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 찬물로는 도저히 샤워를 할 수 없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특징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겨울이었는데 이틀 만에 여름 날라로 왔다. 1100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거리를 날아서. 쾌적한 하룻밤을 보내고 선교 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언제 환자를 볼 수 있을 지 생각하며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55세 정도이고 미혼모가 많고 에이즈 환자도 많단다. 그곳 아아딜을 보니 똑같이 머리가 짧고 내가 보기에 비슷비슷해 보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되었는데 여자 아이들은 바지 위에 꼭 치마를 덧입는다.

 

⚫유치원 여름 성경학교, 함께 한 크리스마스

선교사 부부는 유치원 두 곳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 곳에는 3세에서 7세 아이들 100명 정도를, 다른 한 곳에는 7세 이상 중학생 정도까지 200명을 교육하고 계셨다. 모두 무료다.

 

근처에 집도 몇 채 없는 것 같은데 웬 아이들이 이렇게 많아요? 하니 움막 같은 집이라도 그 속에 아이들이 너덧은 다 있단다.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도 부지가수이고, 여자아이로 예쁘게 태어나면 불행일 정도로 성폭행이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볼 땐 불행인 것 같은데 막상 그네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미혼모도 많고 에이즈 환자도 많다.

 

우리가 준배해 간 티셔츠 300벌을 그곳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고 여름성경학교의 마지막 일정을 우리 일행과 함께 했다. 우린 겨울인데 거긴 여름성경학교라니, 12월에. 차선 없는 도로변에는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만큼 큰 나무에 붉은 꽃이 만발해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침뜸을 한국말로 가르치다

모든 인원이 의료선교를 하러 간 것은 아니었으므로 환자를 치료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선교사 부인의 주선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치료를 받으러 왔다. 침뜸이 뭔지 전혀 모르는 그들이 흑진주처럼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긴장하며 궁금해 했다.

 

그들에게 어큐평춰, 먹시부스쳔 해봐야 알아듣지 못하겠다 싶어 침과 뜸을 꺼내어 한국말로 침! 뜸! 하고 따라하게 했다. 태권도 용어를 국제 시합에서도 한국말로 하듯이. 그래서 아이들도 금방 침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치통으로 고생하는 성인들

성인들 대부분은 특별히 아픈 곳은 별로 없지만 치통이 주로 있다고 호소했다. 평균수명도 짧거니와 우리에게나 익숙한 잘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면 걸릴 기회도 없었다. 물이 귀하고 좋지 않아 그곳 사람들은 치아가 많이 망가지고 있었다.

 

연중기온차가 별로 안 나는 더운 지역인데다가 습도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이 주로 호소하는 관절통이나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거의 없었다.

대신 독충에 물린 아이들이 있었고, 아프다고 온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통을 호소했는데 빈혈에서 온 것 같았다. 눈을 내려 보내 붉은 기운이 거의 없고 영양실조인 아이들도 많았다.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

침뜸을 신기해하며 아프다고 치료 받으러 온 아이들과 어른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 지 처음에는 난감했다. 침 맞는 것을 보며 아이들의 반은 도망 가벼렸다. 그래도 정말 아픈 아이들은 침을 맞아 보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맥을 짚으려고 손을 만져 보니 바늘로 찌르는 것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겁을 먹었는지 아이의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그런데도 치료를 받겠다고 무서움을 참고 기다렸다. 침을 맞겠냐고 다시 물어 보니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침상도 없이 의자에 앉혀 놓고 침을 놓았다. 두통이 있다는 아이에게 백회, 신주, 중완에 천침을 놓고 물어 보니 안 아프단다. 그리고 친구들 한테 안테나 꽂았다고 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발등 염증 있는 아이

한 아이는 맨발로 다니는지 발이 흙투성이였는데 양쪽 발가락 위 발등 부분에 생긴 염증이 보통을 넘어 보였다. 눌러보니 딴딴하게 부어 터져서 상쳐가 벌어져 있는데 안 아프다고 한다. 염증이 생겨 세게 누르면 고름이 나오는 발이 안 아프다니.

한숨이 나오면서 이 발을 어찌해야 되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한두 번 침뜸으로 치료해 주고 간다고 금방 나을 것도 아니고, 저대로 방치해 놓으면 조만간 양쪽 발을 다 절단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 뒤 염증 있는 남자

다른 남자 환자 하나는 귀 뒤에 심각한 염증이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나이로비 플라이라는 파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단다. 무는 파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파리가 물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파리가 앉았는데 귀 뒤라 뭔지 몰라 손으로 문질렀더니 파리가 터지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아프고 가려운 부위가 점점 번지고 있다고 하며 치료를 원했다. 아시혈에 자침하고 심한 부위에 뜸을 떠주었다. 여러 날 치료를 지속해야 효과를 볼 텐데 거리가 멀고 일정이 안 맞아 한 번의 치료로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치료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생리불순 호소하는 여자들

여자들은 대부분 생리불순을 호소했다. 그래서 뜸자리를 잡아 주고 준비해간 청병 속에 뜸쑥을 담아 향과 함께 나누어 주고 뜸을 뜨라고 일러 주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태어나서 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은 축복 받은 아이들이다. 예전에 우리가 백일잔치, 돌잔치 했듯이 낳다가 죽고 태어나서도 죽고... . 무사히 자라서 유치원에 온 아이들은 건강하게 축복받은 아이들이라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하던 선교사 부인. 아프리카에 가서 천사를 보았다면 그 선교사 부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치료보다 더 좋은 일

탄자니아에서 여러 곳을 다니며 굳이 환자를 치료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나 혼자 침뜸 치료를 한다고 하루에 몇 명이나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열흘 남짓한 시간에 그 비싼 비행기 값 들여서 간 곳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를 모르고 생활 습관도 모르고 우리와 전혀 다른 기후에 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픈 곳을 치료 한다고 침뜸을 들고 설치는 것 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은 선교사 부인께 뜸뜨는 방법과 뜸자리 잡는 방법을 가져간 책자를 참고해서 해보시라고 이틀을 가르쳤 드렸다. 그분은 거기서 계속 선교를 하고 아이들과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에.

 

⚫비염, 근육통이 없었던 탄자니아 생활

그곳에 있는 동안 내 몸이 색다른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코가 마르고 鼻炎(비염)이 시작되고 노동으로 인한 筋肉痛(근육통) 등 서너 가지 증상이 있었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는, 먼지 풀풀 나는 건기에 물은 꼭 사먹어야 하는 곳인데도 코딱지 한번 안 생겼다. 하루 종일 흙먼지 속을 돌아다니다 들어와 씻으며 코를 풀어도 깨끗했다.

 

한국에서 쏙쏙거리던 근육통은 어디 갔는지... . 자고 일어나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 빡빡한 일정에도 한 번도 피곤함을 못 느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교육원에서 공부할 때 이해가 인 되었던 그 濕(습)이라는 것이 얼마나 痛症(통증)을 주고 疲困(피곤)하게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철 따뜻한 곳에 사는 그들이 關節痛(관절통)이나 筋肉痛(근육통)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의술이 발달한 나라라는 건 상대적으로 환자가 많다는 이야기 아닐까? 四季節에 맞추어 적응해야 하는 우리 몸이 그네들보다는 훨씬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 혜택이 부족한 나라

국민소득이 1000달러 남짓한 나라, 복지 혜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 전기가 부족해 호텔방에도 성냥과 초가 있는 나라, 가로등도 신호등도 없는 나라, 내가 가본 곳은 그랬다. 그런 나라에서 의료 혜택이라고 다를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년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침뜸을 할 수 있게 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침뜸을 가르치려 영어 공부

우리가 구당 선생님께 배워 남 주는 것처럼 침뜸에 관심 있는 탄자니아人을 가르쳐서, 공부하고 연구해서 의료혜택 못 받는 자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일이 훨씬 더 값지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나이에 새삼 영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으면 혹시 기회가 생겨 아프리카에 침뜸 교재를 들고 가서 가르쳐 주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돈도 벌어서 모을 작정이다.

목표가 생겼다. 아프리카에 灸堂 선생님 제자가 생긴다면 침과 뜸을 공수해 줘야 치료를 할 것 아닌가? 후원회라도 결성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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