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구당 침뜸

 

 

최ㅇㅇ(정회원 31기)

 

• 위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

2010년 4월경 몸에 이상 증세가 시작되었다. 등에서는 전기가 오듯이 저릿저릿한 증상이 계속 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밤새도록 뱃속에서 나는 꾸룩꾸룩 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은 아직 날짜가 더 있어야 했다. 내 돈을 들여 병원을 가자니 아까워 6개월초까지 기다리던 중 별안간 몸무게가 3kg 빠졌다. 그래도 6월 검진까지 버틴 끝에 검사를 하게 되었다.

내시경 검사 도중 의사가 나에게 위장을 절제하면 많이 불편하니 약 좀 먹고 관리 좀 하라는 충고를 하며 위에서 조직을 떼어 냈다. 나는 별일 아니겠지 하며 한 귀로 흘려버렸다.

 

• 암 진단을 받다

일주일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빨리 방문하란다. 나는 다음날 방문하기로 하고 이유를 물었다. 병원 쪽에서는 암이란다.

난 잠시 멍해졌다. 집사람이 왜 그러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다. 조그만 목소리로 "암이래

!"했다. 순간 아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다음날 병원에서 달려가 검사 결과를 들었다. 결과는 胃癌 初期라 하였다.

믿을 수 없어 검사 결과가 담긴 CD를 가지고 큰 병원을 찾기로 했다.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를 찾아가 다시 검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위장을 전부 절제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 무책임한 위장절제 수술

TV에 나왔던 유명하신 의사가 나에게 위장을 절제해도 정상인 사람과 똑같이 먹을 수 있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안심을 시켰다. 수술을 결심하고 병원에서 제일 첨단 수술인 로봇 수술을 하자고 하니 의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보통 복강경이나 절개수술은 2시간 정도면 끝나는데 의사의 실수로 인하여 6시간 30분이나 걸려 수술이 끝났다. 그럼에도 의사는 나나 내 아내에게 한 마디 설명도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떼어낸 암덩이도 보호자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의사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다음날 학회를 핑계로 내 앞에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더니 퇴원 전날 나타나 수술이 잘됐다는 얘기만 하고 사라졌다.

퇴원 후 저혈압으로 119에 실려 갔다. 병원에 가서 CT를 찍으니 수술을 두 번 했냐고 이곳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잊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 주말 약초꾼, 오지 어르신 위해 침뜸 공부

암 수술 후 더 열심히 藥草를 찾으러 산으로 들로 주말이면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오지 마을에 갔더니 어르신들만 계셨는데 모든 아픈 분들이었다.

이곳 강원도 오지는 면소재지라도 병원이 없는 곳이 있어 몸이 아프면 약초를 먹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것이 안타까워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TV에서 灸堂(구당) 선생님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침뜸을 배워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오지의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요반 접수를 하였다.

 

• 원주 무료진료실, 주말 오지 무료진료

졸업 후에도 무료진료실을 나가긴 해도 직장인이라 평일 무료진료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에 매주 휴가를 내기도 어려웠다. 주말에 오지로 산행을 가서 그곳 이장님께 침뜸 무료진료 한다 말씀 드리면 마을 회관으로 아픈 환자들 오시라는 방송을 하셨다.

토요일 하루는 무료진료하고 일요일은 약초 산행을 하였다. 물론 지금도 종종 하고 있는데 마을에서 인기가 좋아 다른 마을의 환자들도 치료를 받으러 찾아오신다.

 

• 동기들과 함께 무료진료, 임상실험 나눔

원주 무료진료실을 자주 못 가던 차 원주 무료진료실을 만든 우리 선배이신 김창수 신부님께서 충북 제천 백운성당으로 부임하여 가시며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백운성당에 무료진료실을 마련할 테니 일요일무료진료가 가능하냐고 말씀을 하시기에 난 두말없이 감사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2016년 10월 2일 제천 백운성당 무료진료실 개원을 하게 되었다.

 

• 제천 백운성당 무료진료실

제천 백운면에는 병원이 없다. 아프면 제천 시내나 원주로 가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이곳에서도 무료진료실은 인기가 좋다. 아프신 분들도 아무 의심 없이 우리 무료진료자들을 받아들여 치료 효과도 매우 빠른 편이다. 이곳의 여성 신도들이 뜸뜨는 것을 배워 동네를 매일 돌며 우리 무료진료자들이 자리 잡은 환자들의 뜸자리에 뜸을 떠드리니 이곳의 환자분들은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김창수 신부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곳 백운 무료진료실도 침상 두 개로 시작하여 지금은 4개가 되었고 무료진료하시는 선생님도 소현 선배님과 나 포함 4명이다.

 

• 침뜸으로 요통, 비염 치료

침뜸을 배우고 나서 나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찾아온다.

나는 암환자란 생각으로 늘 불안한 마음이 있었고 삶에 대한 애착은 많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늘 재발에 대한 남모르는 두려움이 있었다. 침뜸을 배우기 전에 건강검진을 하면 요산수치도 높고 비염 때문에 호산구수치도 높게 나왔으며 요통도 25년 동안 앓고있었다.

비염 때문에 냄새를 맡지 못한지도 몇 년 되었다.

위가 없으니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깡말랐다. 수업시간에 혈자리 잡기가 다른 사람보다 좋다고 모델로 많이 나가서 교수님들께 아픈 곳에 뜸자리도 잡고 치료도 많이 받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뜸을 떴다.

어느 날부터인가 코에서 냄새가 맡아지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를 보니 모든 수치들이 정상으로 나왔다. 특히 지긋지긋한 요통에서 해방되었다.

 

• 회사 동료 침뜸 치료

나는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을 다니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꽤 알려진 회사다.

이곳 원주에는 1500명 정도가 근무 하는데 침뜸을 배우며 회사동료들에게 임상실습도 많이 한다. 근골계 질환이 심한 직원들이 많아 치료도 많이 한다. 회사의 윗분들도 아프면 나를 찾아온다.

 

• 원형탈모 후배 치료

한번은 머리에 500원짜리 만한 원형탈모가 10개정도 있는 후배가 한방대학병원을 3년 다녔는데 돈만 수억 버리고 효과가 없다고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에게 집으로 오라하여 배운 대로 진단과 변증을 하여 치료를 시작하였다. 이틀에 한 번씩 집으로 오라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로 水昇火降이 안 되어 생긴 것으로 판단되었다. 무극보양뜸을 기본으로, 침과 뜸으로 火氣는 내리고 원형탈모가 있는 곳에는 쌀알 크기로 뜸을 떴다. 10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약 3개월 15일 후 그 친구는 원형탈모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원형탈모도 치료했지만 精神的인 문제도 함께 치료했던게 치료의 핵심이었다. 술자는 환자의 마음도 헤아리며 치료를 해야 기간도 짧아지고 효과도 아주 좋아짐을 늘 느낀다.

 

• 지인 장인 변비 치료

또 한 번은 지인의 장인이 평생 변비로 고생하시는데 아주 심할 땐 장갑을 끼고 파내신다고 들었다. 나 보고 혹시 변비도 치료하느냐고 묻기에 한번 만나나 보자며 지인 집으로 찾아가 그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께 그 동안 변비로 고생한 이야기를 듣고 무극보양뜸과 황유 대장유 신유 이신문 그리고 변이 만져지는 변비점과 요안에 뜸을 5장씩 해드렸다. 그 어르신 따님에게 매일 뜸을 해드리라고 하고는 돌아왔다.

다음날 저녁 지인에게서 집으로 급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그 어르신이 너무 반갑게 맞으시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변을 시원하게 보았다며 아주 고마워하셨다. 꾸준히 뜸을 뜨시면 완쾌도 가능하다고 하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셨다.

 

• 백운성당에 오신 다리 저는 할머니

오늘도 백운성당 무료진료실에 다녀왔다. 75세 된 여자 어르신 두 달 째 오시는데 처음에 오실 때 절룩거리며 몇 걸음 못 걸으셨으며 겨우 무료진료실에 들어오셨다.

온몸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셨으며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뜸자리를 잡고 침과 같이 뜸을 정성껏 해드리고 집에 가셔셔도 매일 뜸을 하시라 말씀드렸다. 꼭 그러마 답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오늘은 오시더니 여기오기 전 병원에 다니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외과, 한의원을 15년 동안 다녔는데도 효과가 없었는데 백운 무료진료실에 와서 큰 효과를 보셨다고 칭찬을 하시고는 점심을 사주신다고 같이 나가시자고 하셨다. 무료진료자 모두가 점심 대신 아픈 환자분들 많이 모시고 오라 부탁 드렸더니 많이 아쉬워하셨다.

 

• 초심을 생각하며 공부, 노력

나는 늘 初心을 생각하며 공부를 하고 노력한다. 침뜸은 내 아픈 육체와 오지에서 살아 아파도 치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배운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훌륭하고 우수한 구당 선생님의 침뜸을 배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음지에서라도 열심히 무료진료하고 우리 제자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뭉쳐 싸우다 보면 곧 밝은 양지로 활짝 웃으며 나을 수 있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나는 이제껏 살며 잘 한 것이 3개 정도 있는데 하나는 현재 직장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여 처자식을 먹여살린 것이고, 두 번째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고, 세 번째로 잘한 것은 구당 침뜸을 배운 것이다. 살아가며 내 손으로 아픈 사람을 위해 무료진료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자랑스럽다.

정년이 4년 정도 남았다. 정년퇴직후의 내 인생은 어느 누구보다도 침과 뜸이 있기에 행복할 거라 믿고 있다. 나는 구당 침뜸이 있기에 누구보다 더 건강할 수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내는 내가 무료진료한 모든 환자들이 구당 침뜸이 있기에 건강할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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