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뜸향처럼 향기나는 그런 사람 되겠습니다"
이정자
정회원 16기, 정통침뜸평생교육원 교수
스승을 찾아가는 행복한 시간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灸堂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서울교수회에서 버스를 한 대 빌렸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결혼식에 더 이상 주례 선생님을 모시지 않는데 그 이유가 그들에게 존경할 만한 참 스승이 없다는 것이라고 어디에선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스승이 계서서 이렇게 스승의 날을 맞아 찾아갈 수 있으니 진정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는 아침 6시에 청량리에서 출발했습니다. 長城(장성)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내 스승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정통 뜸을 기득권층의 온갖 박해 속에서도 뚝심 하나로 이어오신 구당 선생님. 火傷鍼(화상침)과 '무극보양뜸'을 일반에 공개하고 침뜸 봉사를 말없이 해오느라 한의사들의 고소고발로 전과 43범이 되었다는 구당 선생님.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버스 안에서 어떤 교수님이 대학생 시절 東海岸(동해안)에서 보았던 광경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黃布(황포) 돛단배가 항구로 한꺼번에 들어오는 광경은 정말 멋졌답니다. 동력이 발달하기 전이라 사람들이 밧줄로 배를 끌어올렸다는군요. 배에서 오징어를 내리면서 먹어보라고 주기에 받아서 먹고 있는데 바로 옆 배에서 시체 하나를 내리고 있더랍니다. 밤사이에 오징어를 잡으면서 시장해서 먹다가 急滯(급체)가 되었는데 고생하다가 그냥 숨을 거두었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鍼을 배운 사람이 옆에만 있었더라도 몇 군데만 따주었으면 되었을 것을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구당 선생님의 건강비법은 뜸
나는 버스 안에서 '스승의 은혜'를 마음속으로 불러보았습니다. 그런데 노래 가사가 스승의 은혜로 시작했는데 자꾸 어머니 은혜로 바뀌어 갔습니다. 스승에 대한 노래를 안 부르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12시에 長城에 도착했습니다. 구당 선생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방금 전에도 몸에 뜸을 뜨고 계셨답니다. 구당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지요. 본인의 건강비결은 뜸을 뜨는 것이라고요. 좋은 보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루에 한 번씩 뜸을 뜨는 것만이 건강비법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구당 선생님의 말씀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당 선생님은 우리에게 뜸쑥을 만드는 공장도 구경시켜주셨고, 뜸쑥도 한 주먹씩 선물로 주셨습니다. 쑥은 우리나라, 日本, 中國 이렇게 동양 3國에서 난다. 일본은 세계에서 뜸을 제일 많이 했던 나라였는데 돈 잘 버는 길로 가다 보니 지금은 많이 안 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뜸사랑
구당 선생님의 따님이 우리를 위해 토종닭 백숙과 녹두죽을 해 주셨습니다. 구당 선생님이 長城에 내려오던 그해에 담갔다는 3년 묵은 김장김치는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따님 말씀이 배추를 심고 약을 치지 않고 그대로 둔답니다. 벌레가 먼저 다 먹고 나면 그 후에 남은 것으로 김치를 담그신다는군요.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습니다. 지방에서 오신 여러교수님이 손수 준비해 오신 맛있는 떡도 있어서 뜸사랑은 역시 사랑이 많은 곳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회의실에서 조촐하게 스승의 날 날 행사를 했습니다. 꽃다발도 드리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습니다. 103세 선생님께 노래를 불러드릴 때 괜스레 가슴 뭉클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뜸사랑을 만나서 이곳에 있을까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붕어빵을 기대하시는 구당 선생님
구당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멍청이는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구당 자신도 멍이가 된 것 같답니다. 하도 사람들이 안 들어주니까 본인 주장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답니다.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신음을 없애는데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냐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붕어빵이 나와야 하는 데 간혹 눈 없는 것이 나오기도 하고 꼬리 없는 것이 있기도 해서 이런 강의를 하신답니다.
火傷鍼의 3가지 특징은 통증을 없애는 것, 빨리 낫게 하는 것, 흉터 없이 낫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피는 쇳가루인데 쇳가루가 흩어지기 때문에 血管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뜸은 피를 만드는 것이고 鍼은 통하는 것, 氣가 통하는 것인데 電氣는 쇠가 있어야 통할 수 있답니다. 脈이란 살아있으면 수시로 變化가 있어서 잘 모를 수밖에 없대요.
또 옛날에는 "밤새 안녕하셨나?"라는 인사를 많이 했고 또한 측간 귀신을 제일 무섭다고 했는데 측간에서 쓰러지면 즉사했기 때문이랍니다. 대부분 혈압이 높은 사람이 변비도 있는데 쪼그리고 앉아 힘을 주다보니 쓰러질 수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측간에 가서 "에헴"하고 인기척을 했답니다. 특간 귀신에게 고하기 위해서요.
환자를 대하는 자세
디스크는 삔 것이라고 합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무거운 것을 들다가 삐끗했다 하는데 즉, 삔 것을 말하는 거래요. 디스크가 재발했다고 하는데 또 삔 것이랍니다. 뼈마디는 언제든 삘 수 있고 또 삔답니다. 손가락 중 엄지가 아픈 것은 頸椎(경추)를 치료해야 하고 나머지 세 손가락이 아프면 胸椎(흉추)3, 4, 5를 치료해야 한대요. 씨를 운반하는 것이 전립선인데 오줌누는 것과 상관이 없답니다. 양의들이 전립선에 소변 얘기를 하는 것은 바른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오세요."라고 환자에게 인사하는 대신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이렇게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료카드에 환자의 署名(서명)을 꼭 받아야 하고 환자의 住所(주소)와 전화번호도 꼭 적어야 하는데 혹시 걱정되는 사람이 있을 때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록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主호소증을 쓰고 소개자, 참고사항도 쓰고 현재 증상이 왜 생겼는지 다쳐서인지 병으로 온 것인지 약으로 온 것인지를 꼭 묻고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갈 데가 없어진 환자들이 찾는 침뜸
의학계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구당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얼마 전에도 돌아 엎드리지도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치료를 받았는데 갈때는 휠체어를 안 타고 갔답니다. 그렇게 버리고 가는 휠체어가 꽤 된다고 하셨습니다.
장성 무극보양뜸센터에 암으로 오는 환자는 줄었다고 합니다. 서울역에서 하실 때는 10명 중 7명이 암 때문에 왔는데 이곳엔 12명 중 8명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예전엔 의사들이 유사한 것도 암이라고 했던 것이 조금 줄어든 것 같답니다. 암이라고 마구 말했던것을 의사들이 그만할 때도 되었답니다.
이제 환자들은 갈 데가 없어졌으니 그들은 우리 뜸이라고 했습니다. 2017년 4월 3일 한국정통침구학회 정통침뜸평생교육원이 인가를 획득한 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평생교육법으로 가르쳐도 된다고 나라에서 허락해준 것입니다. 이 법의 통과를 항의하는 기득권층에 법원에서는 못하게 하려면 못하게 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지요.
"배워서 남주자"라는 구당 선생님의 구호를 항상 간직해야 겠습니다. 구당 선생님이 환자들을 치료할 때 '20여 개 鍼 자리'를 쓰는데 害(해)된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편하려고 숫자를 덜 쓰면 안 된다고 하셨지요.
구당 선생님은 얼마 전에 광주의 대학에 계시는 분이 아드님을 데리고 왔는데 이빨 가는 게 걱정이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하셨지요. 구당 선생님은 열화의 같은 우리의 요청에 의하여 교수회장님을 모델로 하여 鍼 시범도 보여주셨습니다. 이빨 가는 데에는 下關(하관)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열심히 동영상을 촬영했는데 나중에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고 없어져 버려 아쉬움이 컸습니다.
구당 선생님은 장성 뜸집에 회원기념비가 세워지게 된 것도 참 기뻤습니다. 1차 기념비가 세워지고 오천여 회원의 이름이 모두 새겨지는 그날이 곧 올 것으로 보입니다.
향기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
長城에서 구당 선생님을 뵙고 오면서 구당 선생님과 봉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봉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여자 봉사자 한 분이 오늘은 유난히 냄새가 심한 분들이 자신의 침상으로 많이 와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중풍 환자만 계속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리 아픈 분만 계속 보게 되더랍니다. 오늘은 여자 봉사자에게 그런 분들이 오는 날이었나 봅니다.
한 분은 젊은 분인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분이라 씻는 데 관심조차 없었고 한 분은 췌장암 말기 환자인데 살고자 하는 희망의 끈을 놓은 듯 했습니다. 내가 백회에 뜸뜨는 것을 돕기 위해 그분의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하얀 비듬이 수북이 내 손등으로 떨어졌습니다. 우울증이나 치매 등 정신적인 부분을 앓고 있는 분들과 말기 암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드물게 가끔 있는데 오늘은 그런 분들이 그 봉사자께 몰리는 날이었나 봅니다.
우리가 수다처럼 나눈 이야기를 지나가던 팀장님이 들으신 모양입니다. 종례시간에 한 말씀 하셨습니다. 성당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염을 해주는 봉사자들도 있는데 그분들은 돌아가신 분한테서 나는 냄새를 향기로 생각하고 염을 한답니다. 혹시 우리 봉사실에 오시는 분들이 조금 냄새나는 분일지라도 돌아가신 분들에게서 나는 냄새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냄새가 나더라도 우리는 그 냄새를 향기로 생각하고 봉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냄새란 무엇이고, 향기란 무엇일까
냄새란 무엇일까, 향기란 무엇일까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 우연히 김삿갓의 시를 읽다가 한 구절이 내 가슴에 풍덩 떨어졌습니다.
"落花入室老妻香(낙화입실노처향),
꽃잎 떨어져 방으로 들어오니 늙은 아내도 향기로워진다."
나는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마침 꽃잎이 떨어지는 봄날이었고 내가 늙은 아내이기때문이겠지요.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이기도 하니까요.
나에게 날아 들어온 꽃잎은 어떤 것이 있을 까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뜸사랑이 아닐까요. 구당 선생님은 거대한 나무로 무수히 많은 꽃을 피우셨습니다. 그중에 꽃잎 한 잎이 떨어져서 나에게로 왔기에 내가 뜸사랑을 알게 된 것이겠지요. 봉사실에 나오는 많은 봉사자들도 그 꽃잎을 하나씩 받은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뜸사랑에 있으면 우리 모두 香氣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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