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보양뜸, 20년 어지러움증 해방되다

 

 

신ㅇㅇ(뜸사랑 정회원 31기)

 

• 이명과 함께 시작된 어지러움증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가장 큰 고통은 20년 동안 나를 괴롭혀온 심각한 어지러움증이었다. 30대 후반이었던 90년도 후반부터 耳鳴(이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이명이 생기고 나면 그것이 어지러움증으로 이어지는데,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듯한 구토를 동반했다. 응급실에 가서 진정제를 맞아도 몇 시간은 고통을 겪어야 진정이 되곤 했다.('환장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 몇 년은 일 년에 서너 번 오던 것이 2012년경부터는 수시로, 때로는 일주일에 두세 번까지도 이런 증상이 생겼다. 한번 어지럼증이 찾아오면 바로 옆에 있는 물컵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온 세상이 빙빙 도는 증상이 몇 시간씩 지속되었다.

 

• 불가능해진 일상생활

처음엔 '이명'이라는 전조증상이라도 있어서 외출을 자제하는 등 조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이명은 항상 따라다녔고, 심한 증상이 언제올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10여 초 사이에 시야가 거꾸로 뒤집히며 위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곤 했다.

한 번은 운전 중에 증상이 와서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에 운전도 할 수가 없었다. 더 심해져서는 잠을 자다가도 새벽녘에 어지러움이 생기곤 하였는데, '사람이 이렇게 죽기도 하겠구나'싶었다.

한번 이 증상이 오면 장이 뒤집어질 만큼 토하기 때문에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후유증으로 누어있어야 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체중도 1년 사이에 약 7kg 정도 줄었다. 또 이명이 있는 왼쪽 귀는 청력도 저하되어 전화도 받을 수가 없었다.

 

• 뚜렷한 답을 못 주는 병원 진료

이비인후과 진단도 받아봤고, 이런 증상이 올 때마다 병원 진단도 받았다. 한의원에서는 화병이다, 또는 기력이 쇠했다 하고, 이비인후과에선 이석증 또는 메니에르병, 양방에선 히스테리발작증세라기도 하고, 어떤 곳은 두고봐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중 내가 가장 신뢰하는 단골 내과선생님께서는 "장과 위의 연동운동이 맞지 않아서 오는 증상이지만, 이 어지러움증이라는 것이, 수십 가지나 되는 원인 중 몇 가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조합을 완전히 찾기 어렵다. 더 이상 검사해봐야 별 소득이 없을 거다."라며, 증상이 올 때마다, 진정제를 미리 조제 해두었다가 먹는 방법이 나을 거라고 하셨다. 그나마 이곳 내과 선생님이 가장 양심적인 셈이다.

 

• 검사는 하되 치료는 못하는 병원

다른 곳은 이 검사 저 검사로 한번 가면 몇 십 만원 병원비가 나와도, 귀를 검사해 보고는, "아무 이상이 없네요... . 피검사에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한다. 초음파로 들여다보고는, "여기엔 특별한 증후가 없습니다." 한다. 혹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병명을 내놓기는 하는데, 그 진단이 맞다면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병이 나아야 하지 않는가. 한의원을 다니든 양방병원을 다니든 병은 더 심해져 가고만 있었다.

나중엔, '도대체 뭘 알고 하는 건가. 그냥 병원 수입올릴려고 여기저기 찔러보기 식으로 잡아두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내과에서 조제해준 진정제를 먹고 버텼지만, 나중에는 진정제마저 듣지 않게 되었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가서 좀 더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지만, 그동안 병원에서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감이 없었다.

 

• 신문기사로 만난 구당 선생

2008년인가, 신문에 배우 장진영 씨가 구당 선생님께 치료를 받고 있는데, 구당 선생님의 자격증 문제로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때는, 불법이라기보다는, 뜸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뭔가 좀 특별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분이 연세가 많으신데 돌아가시기 전에 이걸 배워둘 순 없을까...'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어지러움증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정도였다. 또 사라지는 유산을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 침뜸이 내 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 면역글로블린 주사

그러다 2012년부터 증상이 심해져서 일하는 도중에도 몇 번씩 쓰러졌고, 2013년부터는 하던 일도 내려놓게 되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와중에 집안에 큰일까지 겹쳤다. 주변 소개로 면역글로블린이라는 주사를 일주일 간격으로 맞으며 버틸 수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진액 보충 정도가 아니었을까... .) 하지만 이것도 끊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니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다.

 

• 지식으로만 배워두려던 뜸

어쨌거나 더 이상 하는 일도 없겠다 남는게 시간이라, 전에 신문에서 봤던 구당 선생님을 떠올리고는, 인터넷을 뒤져서, 2014년 5월에 335차 초급반을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엔 뜸만 뜨는 간단한 과정인줄 알았는데 1년 과정인 걸 알고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초급반 3개월만 투자해서 뜸뜨는 것만 배우려는 생각이었는데, 동기 선생님들이 밀어주고 당겨주셔서 1년 과정을 다 수료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뜸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해지던 것이라 생각했기에, 상식차원에서 배워두면 좋겠다 싶은 것이지, 내 병을 고칠 것이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에 화상자리가 남는 것도 싫고, 더구나 머리털을 태워가면서 백회 자리 남는 것도 꺼려졌다. 강의 내용은 음양오행도 따지는데, 동양사상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음양오행이란 점이나 수주팔자를 보는 데에 쓰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이해도 잘 되지 않았고, 개념 정리가 안 되어 있어 강의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쓰러지는 바람에 무료진료실에서 치료 받다

이런 이유로, 뜸사랑 교육원에 등록한 초기에는 지식으로 배워두긴 하되, 내 몸에 뜸을 뜰 생각은 없었다. 몸이 냉해서 삼복더위에도 핫팩을 윗배 아랫배에 두 개씩 붙이고 다니면서도... .

그러다 어느날 또 쓰러져 집에 누워있는데 짝꿍선생님이 우연히 안부 전화를 주셨다. 내 상황을 아시고는 놀라셔서 당시 담당교수님이신 김모 교수님과 연결해 주셨다.

마침 월요일이라 동묘 무료진료실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교수님께 혹시 누가 될까 심명은 밝히지 않는다) 그 꺼려지던 화상 자리도 십여 군데 나고... .

몸이 너무 쇠약하여 침도 잘 못 맞겠다며 뜸이나 열심히 뜨라고 하셨다.

 

• 일 년간만 꾸준히 뜸하기로 마음먹다

그 꺼려지던 화상 자리도 생겼겠다, 교수님께서 그토록 낫는다고 권하시니, 기왕에 어차피 이리된 거 일단 한 일 년은 거르지 말고 최선을 다해보고 난 후에 차도가 없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끊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뜸자리는 무극보양뜸+좌천추, 우양문, 신유, 두유, 완골이었다. 뒤쪽은 일주일에 두 번 강의 나오는 날에 동료 선생님들이 떠주였고, 앞쪽과 백회는 매일 떴다. 남의 손을 의지하면 매일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폐유까지는 혼자 뜨신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아, 백회는 혼자 뜨는 연습을 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 계속 쓰러졌지만 희망은 뜸

그렇지만 처음 얼마간은 차도가 없었다.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쓰러졌다. 그나마 다행히 뜸사랑 교육원 가는 날은 비켜가는 바람에 총 28회 수업 중 7번 결석으로 턱걸이로 중급반에 올라갈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수업에 가려고 집에서 나오다가 쓰러져 집에 놀러 앉고, 수업 가는 도중에 전철 안에서 어지럼증이 와서 집에 돌아간 날도 있었다.

위는 돌처럼 굳어 죽조차 하루 한끼도 못 먹고, 수시로 찾아오는 늑골 밑 담 결림과 다리와 발에 쥐가 나는 현상 등이 있었다. 그래도 1년은 최선을 다해보고 결론을 내리자. 어차피 화상흉터 난 거... .'라며 스스로 다랬다.

 

• 3개월 지나 증상 호전

한 3개월 지나니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1년 반이 지나고, 정회원 시험을 치를 때까지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토하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어도 여전히 아주 없어지진 않았다.

그나마 좀 희망적이었던 것은, 이전처럼 증상이 끝까지 가지는 않고 도중에 멈추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전엔 일단 어지러우면 몇 시간씩 토하고, 몇 시간씩 어지러움증이 계속되고, 이후로도 1주일은 누어서 지내야 했다.)

 

• 만 삼 년 만에 99% 치료

2017년 6월이면 무극보양뜸을 시작한지 이제 만 삼년이 되는데, 이젠 90% 치료가 되었다. 치료된 증상은 다음과 같다.

 

- 2016년 1월 이후 2017년 2월 중순까지 일 년간 한 번도 증상이 찾아오지 않았다.

- 위장도 회복되어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다.(단, 찬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따뜻하게 데워 먹는다.)

- 뜸 뜬지 2년 정도 지나니 이명이 사라졌다.

- 2년 8개월이 되는 요즘, 청력도 회복되어 왼쪽 귀로 전화도 받을 수 있다.

- 늘 얼음장 같던 손발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 쥐가 나거나 담 결림도 거의 사라졌다.(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남들도 겪는 일반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 주변 사람들 뜸자리 잡기

하도 요란하게 아팠기 때문에, 무극보양뜸이 어떤것인지 설명할 필요도, 불법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나 자신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교회나 친구 가족들에게 무극보양뜸의 효능을 입증하는 셈이 되었다.

며칠 전 큰 딸이 뜸을 떠 주면서, "구당 선생님이 우리 엄마에겐 은인이시오. 참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작년 봄에 지인 중에, 시동생이 평소에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뜸자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해서, 만나서 뜸 자리를 잡아준 적이 있다.

시동생의 딸(5학년)도 심한 아토피로 스테로이드의 약을 바르고 복용하고 있다면서 팔다리에 딱지가 심한 채로 아빠를 따라왔다. 아이 아빠인 시동생은 무극보양뜸+ 신유를 잡아주었고, 딸아이는 폐유, 중완, 곡지, 축빈, 여구, 대장유를 잡아주었다. 몇 달 후 만나니, 아이도 아빠도 깨끗해졌다고 인사를 했다. 시동생이 꼼꼼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뜸을 떴다고 한다.

 

• 3개월간 집중 교육

정회원 시험 합격 후 현재 무료진료실에 나가고 있다. 초기에는, 수료는 했으나 실전은 자신이 없었다. 적극적인 동기 선생님의 수고로 남 교수님께 우리의 심정을 말씀드렸다. 배우고자 하는 우리의 맘을 어여삐 봐주신 교수님께서 조건없이, 약 3개월간 집중교육을 해주였다.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이 기회를 빌려 치료해 주시고 가르쳐주신 두 분 교수님께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무료진료실이 있어서 참 좋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손을 놓으면 잊어버리게 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무료진료함으로 관심을 꾸준히 가질 수 있고, 앞서 배우신 선배 선생님께 지도 받을 수 있음도 참 감사하다. 이 모든 무엇보다 앞서, 무극보양뜸을 개발하시고 전수해주신 구다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시술 금지시 무료진료실 운영

개인적으로 뜸사랑 무료진료실 운영에 대해 소박한 바람이 있다. 무료진료실에 다니다 보면 외부와의 분쟁으로 시술 금지를 가끔 격는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담이나 중풍 등 꼭 시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지만, 이런 시기엔 그분들께도 도움을 드릴 수가 없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뜸사랑 내부의 결정으로 시술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는데, 두 번째의 경우엔 약간의 배려가 아쉽다.

환자는 대부분 연령대가 60~80대이시고, 1인 가구이다. 이곳을 찾느라 새벽부터 홀로 일어나 힘든 몸을 이끌고 오신다. 몸이 불편하니 옷을 챙겨 입는 것부터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 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멀게는 3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힘들여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시술계획이 변경되었다는 일방적 설명을 들으면 그처럼 허탈한 일이 없으실 것이다.

 

• 마음의 치료도 함께하는 무료진료

더구나 무료진료실에 오시는 분들은 생활보호 대상자다. 그나마 뜸사랑 무료진료실이 그 분들에겐 큰 의지가 되는데, 여기서 도움을 못 받게 되니 사정하시는 분들께 우리도 안타깝지만 도리가 없다.

아무리 무료진료라지만 그 분들을 존중해 드리고는 차원에서 한 주 정도의 예고기간을 두어, 변경된 시술 조치에 대해 내원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으면 좋겠다.

의술이란 몸 치료뿐 아니라 마음의 치료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에는 배려 받고 존중 받고 사랑 받는다는 느낌도 포함된다. 어차피 좋은 것을 나누려 시작한 무료진료실인데,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싶다.

 

• 20년 된 병, 완치되려면 꾸준한 노력

그동안 잘 지냈는데, 약 보름 전부터 머리가 띵해지고 귀에서도 약간의 바람소리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내 병은 20년 된 병이다. 3년 동안 이만큼 진척을 본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오래 된 병이니만큼, 완치까지는 좀 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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