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心理學을 읽는 밤'

기시미 이치로 지음

 

들어가는 말

제1부 아들러에게 듣는 勇氣의 心理學

1장 미움받을 용기

2장 평범해질 용기

3장 행복해질 용기

제2부 아들러의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4장 용기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5장 아들러 심리학 강의

 

들어가는 말 '어떻게 살면 좋을까?'

프로이트, 융과 동시대에 살았던 오스트리아 精神科 醫師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년)라는 이름은 비교적 생소하다. 아들러는 심리학의 3大 거장으로 꼽힌다. 育兒와 敎育은 아들러 심리학의 核心이라 할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힘으로 아이들을 윽박지르지 말고 '전폭적인 信賴로 아이들을 대하라'고 가르친다.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고 난 뒤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들러 심리학은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매우 유익한 洞察力을 준다.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가 삶에 자기 나름의 意味를 부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는 데 있어서 아들러 심리학만큼 도움이 되는 이론도 드물다.

 

기시마 이치로

 

 

제1장 미움받을 용기

인생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없습니다. 人生의 意味는 당신 스스로가 自己 自身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원래 상대방을 理解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상대를 대할 때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

 

제2장 평범해질 용기

문제의 原因을 찾지 마라

아이가 일으키는 문제의 워인을 과거나 외적인 데서 찾는다면, 그 문제 행동을 바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벌주지 마라

적절한 행동에 주목하되 '칭찬하지 마라'

부적절한 행동을 주목하는 대신 적절한 행동에 注目해야 한다. 그러면 차츰 부적절한 행동은 줄어든다.

 

평범해질 용기

'고맙다'는 말의 힘

칭찬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共有하면 된다.

 

제3장 幸福해질 용기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便安해진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벌을 주거나 꾸짖지 말라고 제안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칭찬한는 것도 권하지 않는다. 칭찬한다는 것은 '잘한다'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관계를 종적인 '수직관계'로 보는 것이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 간주 한다. 칭찬하는 것과는 반대로 勇氣를 주는 것은 인간 관계를 '水平관계'로 바라볼때 가능하다.

 

모든 사람들을 수평적인 관계에서 대한다면 더 이상 남에게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때 과도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라

아들러 심리학은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 지적한다.

드레이커스는 크리스텐센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라. 오늘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지금 이순간부터 바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고는 행복해질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때 幸福해진다.

 

 

제2부 아들어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제4장 용기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아들러는 1870년 빈 근교에서 여섯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 곡물상으로 비교적 유복했다. 아들러는 1904년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기까지 했다.

어린동생의 죽음은 아들러가 구루병이었던 것과 다섯살 무렵에 폐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등과 어우러져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들러의 자녀중 알렉산드라에 따르면 아들러는 집에 찾아온 손님과 토론할 때 아이들이 주변에서 놀아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학교에 제시간에 등교한다는 조건하에 아이들은 언제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고 한다. 훗날 알렉산드라와 쿠르트는 정신과 의사가 됐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달리 의학을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료를 위해 선택했고 진찰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또 아들러가 관심을 가진 사회주의에 대해 프로이트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들러가 자신이 창시한 심리학 체계를 '개인심리학'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는 인간을 분할 할 수 없는 全體로 파악하고 인간은 統一된 존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계대전 후 아들러는 황폐해진 빈으로 달려가 公立학교 내에 兒童상담소를 설립했다. 그곳에서 아들러는 자신의 상담 장면을 公開的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모든 상담이 공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상담을 보고 듣다보면 자신의 문제와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해결방향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개 상담은 상담받는 사람에게도 이점이 있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선 아이는 거기서 강한 감명을 받곤 했다. 타인이 자신의 문제에 共感하고 關心을 가져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자신이 보다 큰 全體의 일부라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을 위한 심리학자, 아들러

아들러는 빈에서 병원을 개업했을때도 진료비를 비싸게 받지 않았다. 진료비를 받지 않고 환자를 치료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아들러는 잘난 척 거드름을 피우거나 오만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정겨운 빈 사투리로 말했다. 또 빈을 각별히 사랑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카페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빈에서 미국으로 거점을 옮긴 아들러가 활동 중심지로 삼은 곳은 뉴욕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시간이 날때마다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에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데 관심이 컸던 까닭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긴장을 풀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은 지적인 엘리트가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이며, 결코 간단하지 않지만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생각을 간결하고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제5장 아드러 심리학 강의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

아들러 심리학에는 두 가지ㅣ 전제가 있다. 하나는 우리는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인지론이다. 그리고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이다.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들러는 우리가 겪는 어떤 경험도 그 자체만으로는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어떤 意味를 부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트라우마는 우리가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드는 辨明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아들러의 친구였던 필립스 보톰은 아들러가 창시한 심리학이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아들러 심리학은 '마음의 態度'에 관한 학문이라고 했다.

아들러 심리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들러 심리학은 이론과 實踐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을 가르치려면 몸소 끊임없이 '자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음미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가바드기타- 간디解說

 

[간디는 '바가바드기타'를 無我行의 복음서로 여기고 아하메다바트, 사티아그라하 아슈람에서 1926년 2월 25일에 시작하여 11월 27일까지 9개월 동안 날마다 解說하였다. 이 책은 두 充實한 필기자의 기록에 의해 世上에 태어나게 되었다.]

 

머리말

내가 '기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889년, 그때 나이 스무 살이었다. (英國人)그들은 에드윈 아놀드경의 훌륭한 번역판을 가져왔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제2장의 마지막 19줄은 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 19줄 속에 다르마의 알속이 다 들어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지식은 經驗의 결실이다. 제2장의 19줄은 '기타'를 理解하는 데 열쇠가 된다.

경전을 제대로 이해 하려면 잘 성숙된 道德的 감수성과 경전이 말하는 진리를 좇아서 살아보는 經驗이있어야 한다. 眞理를 실현코자 한다면 '타파스차리아'(修練의 하나로 자발적으로 自己 몸을 괴롭힘)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타의 주제는 단순히 브라만의 체현과 그 방법들이다. 싸움은 그 가르침을 위한 手段으로 사용되었다. 나는 두료다나와 그 측근들은 우리 속에 있는 악마적 衝動(충동)을 드러내 보여주고 아르주나와 그의 지지자들은 신적 衝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전쟁마당은 우리의 몸이다. 그와 같은 문제를 經驗으로 알고 있는 시인- 선지자가 우리 안에서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투쟁을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제1장

'마하바라타'는 歷史가 아니다. 그것은 '다르마- 그란타'(종교 윤리 문제를 다룬 저작)다. 서사시는 우리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카우라바와 판다바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폭력과 비폭력 문제를 밀쳐두고, 이 위대한 '다르마- 그란타'가, 人間이 자기 內部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어떤 義務와 責任을 져야 하는지 그것을 說明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임을 말해야겠다. 이것은 수천년 전에 있었던 전쟁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왔고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다.

 

'기타' 스스로 여자든, 바이샤든 수드라든 누구든지 神에게 자기를 바치기만 하면 靈的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혀놓았다. '기타'는 육체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에서 서술된 육체의 싸움은 다만 人間肉身의 전쟁터를 描寫(묘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이름들은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代表하고 있는 性格의 이름이다. 여기서 묘사된 것은, 뚜렷이 구분되는 인물로 形像化된, 서로 반대되는 정신적 경향이 인간의 몸 속에 葛藤(갈등)하고 있는 모습이다.

 

악은 어떤 선이 한편이 되어줄 때 비로소 악할 수 있는 것이다. 政府가 대변하는 악한 체제는 선한 민중의 支持를 받음으로써만 지탱된다. 이것이 비협조(non- cooperation) 투쟁을 밑받침하는 原理였다.

 

제 2장

'마하바라타'자체가 戰爭을 묘사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니다. '기타'에서 저자는 위대한 眞實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이하여 그 事件을 현명하게 이용한다.

'기타'는 행위 혹은 지식 혹은 헌신의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잘 '바이라기아'를 開發하고 선한 행실을 이루는데 아무리 부지런하고 아무리 정성껏 '바크티'를 실천해도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는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自我에 대한 執着을 떨쳐버릴때 비로소 사람은 自己實現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그렇게 成功한 사람한테만 가능하다. 자신의 오만한 固執을 버리고 謙遜하게 몸을 낮추는 정도를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神께 자기를 바치는지가 判斷되어야 한다. '기타'는 행위나 지식이나 헌신의 방법 따위를 가르치지 않는다. '기타'는 방금 내가 말한 이 하나의 眞理를 가르치기 위해 씌어졌다. 이것은 經驗을 통해 내린 나의 結論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執着을 떨쳐버리는 그 만큼만 眞理를 좇아 살아갈수 있다.

 

스리 크리슈나가 '기타'의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討論을 진행시킨 것은 바로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밧줄을 뱀으로 보아서 두려워하는 것이다.

바이사는 어린이들도 자기 冊을 읽어서 거기 등장하는 有德한 인물들을 기억하고 사악한 등장인물과 비슷한 사람들을 멀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하바라타'를 썼다.

크리슈나는 우리속에 있어서 우리의 수레를 몰고 있는 '아트만'이다. 우리는 수레의 고삐를 그에게 넘져줄 때만 勝利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父母를 믿듯이 神을 믿어야 한다.

 

기타는 우리를 편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정신적 문제를 만날 때마다, 自己에 대한 執着을 버리고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한다면 그대들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리 크리슈나가 열여덟 장에 걸쳐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內容이다.

 

'멕시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우리 민족의 침뜸술'

- 톡과 훕으로 불리는 마야문명의 침뜸술은 우리 선조가 전파한 것이다.

 

강민숙(뜸사랑 정회원 5기, 정통침뜸교육원 교수)

 

[이번 여름에 친지가 보내준 人類學 연구내용 중 멕시코 마야문명의 침뜸술 편을 보고 현기 넘치는 우리 선조先祖들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들이 남긴 우수한 文化遺産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과 함께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껴 침뜸의학을 工夫하는 모두와 함께 共有하고자 이 글을 기고한다.]

 

오늘날 전 세계 學者들은 멕시코 마야문명의 특징으로 달력, 의술, 0을 포함한 숫자와 그림문자라고 한다. 멕시코 마야인들이 占을 칠때 사용하던 '토날보왈리(Tonalpohualli)'달력이 우리의 陰曆 체계와 같으며 지금도 일부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傳統醫術에도 우리 민족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들의 전통의술에는 鍼을 사용하는 것과 (한약의 기본원리와 같은) 藥草를 사용하는 것이다.

 

鍼術의 '톡'(tok)과 '훕'(jup)

멕시코 마야인들의 鍼術에는 두 가지 치료법이 있었다. 경혈에 따라 침을 놓는 치료법과 통증이 있는 주위를 얕게 여러 번 찔러서 피를 내는 치료법이다. 침뜸의 치료원리는 陰陽의 균형조절이다. 鍼으로 막힌 氣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어혈로 막힌 피를 빼줌으로 氣血循環을 도와준다는 우리 침술의 기본원리와 같다.

침으로 사용한 것은 돌침이나 동물의 가는 뼈, 식물의 가시, 생선가시 등이었고 피를 뺄때는 침으로 여러번 찔러 입으로 빨았다.(지금도 우리네 할머니들은 孫子의 체기를 치료할 때 소상穴을 바늘로 찔러서 입으로 빨아 피를 낸다.) 경혈을 따라 침을 놓는 치료법을 '톡tok'라고 불렀고 정체된 피 즉 어혈을 뽑는 방법을 '훕jup'이라 한다.

 

'톡tok'이란

우리가 전통적 방법으로 刺鍼할 때 피부에 살짝 대고 침병을 손가락으로 톡 톡 치는데, 그러면 적당한 깊이로 침이 꽃힌다. 국어사전을 보면 '톡'이란 어태어로서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볍게 살짝 치거나 건드리는 行爲를 말하는 것이다.

言語의 일치는 발음과 뜻의 일치를 의미한다. 멕시코 마야인들이 자침할 때 사용한 '톡'은 그 발음과 뜻에서 일치하며 우리 선조들이 아메리카로 갈 때 鍼術과 함께 가져간 순수한 우리말이다. 우리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동물이나 사물의 흉내를 내는 의성어와 그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가 發達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꼬꼬'는 닭, '멍멍'은 개, '음매'는 소, '칙칙폭폭'은 기차라는 것을 우리나라의 어린 아이들까지도 다 알고 있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스페인 사람들이 스페인어로 '끼끼리끼'라고 운다는 닭을 가져오기 전에는 멕시코에 닭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멕시코 고대 文獻을 보면 '꼬꼬'라는 새는 '해가 뜨는 것을 알려주는 새'라고 기록되어 있다.닭을 본 적도 없는 에 닭의 습성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것은 祖上들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지식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3천 개 이상 되지만 의성어와 의태어가 함께 발달한 언어는 우리말 밖에 없다. 고대 우리 선조들은 동물의 울음소리나 사물의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여 그것을 명사 대신으로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우리말의 특징이자 우리 民族의 중요한 언어 습관이기도 하다.

 

'훕jup'이란

통증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얕게 침을 놓아 막힌 피를 뽑아주는 방법으로, 아픈 부위의 피를 뽑기 위해서 입으로 훕~훕 하면서 빨았다. 이는 우리말 의성어 '훕'~으로 발음과 뜻에서 일치한다. 멕시코 마야 문명의 침술이 우리 침술의학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톡tok'과 '훕jup'이라는 의태어와 의성어가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 뿐 아니라 경혈이 우리 침뜸의학의 經穴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또한 매우 특이하며 이로써 우리 民族의 의술임을 더확고히 해주는 것 같다.

 

經穴의 일치

우리 몸의 경혈은 361개 정혈과 많은 기혈이 있으며 새로운 신혈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데 비해 멕시코 마야침술에는 약 50여 개 경혈자리만 있는데 이 현저히 적은 경혈자리는 많은 歲月이 지나면서 鍼術臨床을 통하여 새로운 혈자리를 발견하기 전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선조들이 아메리카로 갔음을 의미한다.

침술치료의 核心은 보이지 않는 경혈자리에 침을 꽃음으로써 氣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데 있다.

현대 서양의학에서조차 모르는 경혈자리를 멕시코 마야침술에서 정확히 알고 있고 그 경혈자리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침술의 경혈자리와 일치한다면 우리는 이 不可思議한 일치를 우리 민족이 이동했다고 하는 설명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 경혈자리와 멕시코 마야침술의 경혈자리를 비교하면 팔의 혈은 액문 중저 후계 완골 사독 소해 곡택 척택 천부혈이 정확히 一致하며 다리의 혈 중에서는 곤륜 신맥 복삼 지음혈이 일치한다.

 

특히 지음혈은 産母에게 매우 중요한 혈이다. 지음혈은 산모가 出産할 때 子宮을 자극하여 분만촉진과 無痛分娩을 위해 사용하며 胎兒가 거꾸로 있을 때 바로 誘導해 주는 혈이고 또한 난산일때 순산하게 해주는 혈이다. 멕시코 마야침술에서도 정확하게 지음혈을 표시하고 그 효능에 대한 설명이 우리와 같다.

 

''마야의 産婆들은 회반죽을 뜨겁게 하여 새끼발가락에 발랐는데 子宮의 收縮운동을 刺戟하여 出産을 순조롭게 해 주기 위함이다.

A Mayan midwife might use a hot plaster placed on the little toe to stimulate uterine contractions and facilitate birth.''

 

현재도 우리는 산모의 無痛分娩과 順産을 위해 지음혈에 뜸을 뜨고 있는데 그 原理가 신기하게도 정확히 같다. 멕시코 마야침술과 우리 침술은 똑같이 산모의 순산을 위해 새끼발가락 지음혈을 뜨겁게 刺戟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새끼발가락에 자극을 준다는 지식은 매우 특별한 것으로 침술이 고도로 발전하였다는 것과 오랜 세월 수많은 임상경험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를 아메리카로 갈 때 가져간 것이라고 보며 지음혈은 고대 때부터 임산부에게 사용하여 왔던 穴이라는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神技에 가까운 이 지식이 太平洋을 사이에 두고 1950년대까지 교류가 전연 없었던 두 지역의 사람들이 共有하고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衣服과 상투가 같고 風習에 사용되는 용어도 같고 천문학을 바탕으로 만든 달력의 기본원리가 같으며 또한 사용한 언어와 이제 침술까지 같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아메리키로 건너가 우리 풍습과 언어로 살아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鍼術의 종주국'

침술은 우리 先祖들이 창안했으며 우리가 종주국이라는 것을 소수의 사람들은 알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국으로 잘못 알고 있다. 고유문화는 주변 민족과 交流하면서 퍼져 나가는데 문화전파에는 한 가지 불변의 眞理가 있다. 문화가 전파될 때는 항상 그 名稱이 함께 퍼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우리의 '跆拳道'가 世界로 퍼져 나가면서 '태권도'라는 명칭도 함께 퍼졌다. 스페인에도 '태권도', 미국에서도 태권도, 다른 나라에서도 태권도라 한다. 컴퓨터는 미국이 발명하여 전 세계에 퍼졌기에 어떤 나라에서도 컴퓨터라고 한다.

이 진리를 고대 침술에 적용해 보면 만약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 선조들이 침술을 배운 것이라면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은 '톡'이라고 하지 않고 중국명칭 그대로 '침'이라 했을 것이다. 중국의 한자어로는 혈자리에 놓는 '침'과 아픈 부위의 피를 빼기 위한 '침'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침이라 하지만 멕시코 마야 원주민들은 '톡'과 '훕'으로 구별하여 우리말로 불렀다는 사실은 침뜸술이 우리 先祖들에 의해서 처음 창안된 醫術임을 뜻한다.

 

漢字가 있는 중국은 우리 先祖들로부터 침술을 전해 받고 바늘, 침이라는 글자가 있었으므로 記錄하였을 것이다. 중국의 漢字가 우리 民族에게 대거 주입되어 기록하였을 것이다. 중국의 한자가 우리 민족에게 대거 주입되어 사용되면서 우리 민족 固有의 명칭인 톡과 훕이라는 명칭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순우리말 가람과 뫼가 사라지고 江과 山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문화 전파는 그 內容과 名稱이 함께 전파한다는 진리에서 보면 멕시코 마야 원주민들이 순우리말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볼 때 침술은 분명히 우리 선조들이 창안한 醫術이다.

문헌적 증거로 황제내경 중 '소문 이법방의론'에 의하면 '東쪽 지역은 天地가 시작되는 곳으로서...病은 대부분 옹양인데 그것을 治療할 때는 폄石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폄석은 東方에서 전래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멕시코 마야인들은 흑요석이라는 옥돌을 깨어 날카로운 칼과 크고 작은 돌침을 만들어 使用했다고 한다.

 

돌침에 대해서 중국의 고서인 '山海經'에는 '고씨(고주몽)의 山에는 鈺이 많고 그 아래에는 돌침이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흑요석은 火山지역에서만 나오는 돌로 동북아시아에서 흑요석이 생산되는 지역은 白頭山으로 백두산은 고대부터 우리 민족의 땅이며 우리의 靈山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황하강 중상류에 살았고 하류인 동쪽 지역 즉 발해만과 산동반도에는 동이族이 살고 있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 선조들을 동이족이라 불렀다.

그때 우리 선조들은 요동과 요서뿐 아니라 발해만 유역과 산동반도까지 퍼져 살았다. 기원 전 아득한 시대부터 기원 후 10세기까지 우리 민족의 근거지는 만주대평원이었다.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까지도 침술이 중국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미국이나 멕시코 학자들도 멕시코 마야침술이 중국과 비슷하다고 잘못 알고 있으며 마야문명이 중국고대문명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잘못 추정하기도 한다.

 

언젠가 우리 藥草를 연구하는 분이 인디언의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南美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쓰는 止血, 止痛과 抗癌작용에 좋다는 약초를 어렵게 구해서 合法的으로 가져왔는데 어느 날 아침에 무심코 마당을 쳐다보니 마당 한쪽에 그 藥草가 자라고 있어 虛脫했다는 글도 보았다. 약초 또한 연구해볼 과제인 것이다. 멕시코 마야문명은 우리 선조들의 문화 즉 우리의 文明인 것이다.

現代에 와서는 보이지 않는 經絡이 있다는 것도 최초로 우리(김봉한)가 연구 발표했고, 마취혈을 발견하여 獨逸세계학회에 알린 사람(송태석)도 우리나라 사람임을 알았으므로 침뜸을 공부하는 우리들은 自負心을 가져야 한다.

유달리 현기가 넘쳤던 위대한 우리 선조들이 남긴 숭고한 문화유산의 하나인 鍼術로 인해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알게 되었고 또한 침술의 종주국임을 理解하게 되었으며 後孫들을 위해서라도 잃어버린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문명을 더 많이 되찾아 세계만방에 우수한 민족임을 알려야 할 때라고 본다.

제1장 국선도의 연원(國仙道1)

 

제1절 계보

제2절 국선도 수련의 요지

제3절 국선도의 由來

제4절 국선도 명칭의 由來

제5절 국선도와 밝돌

제6절 고증文

 

 

제1절 계보

이상과 같은 前提를 걸어 놓고 앞으로 여러 방면으로 解說을 시도하겠거니와 독자들에게 이해하는 데 便利를 드리기 위하여 복잡한 이론 전개 속에서 들어 있는 사상적 根據(근거)와 그 줄거리를 하나의 系譜的(계보적) 形式으로 미리 제시하여 놓고 그 내용을 여러 갈래로 여러 장으로 分類하여 서술하려 한다.

 

먼저 中國을 중심으로 한 사상적 체계를 보면 丹學의 위치는 특이하다.

동양철학이나 사상을 아는 이들에게도 丹學이란 말은 생소할 것이다.

춘추전국시에 제자백가가 있어 구가니 구류니 하는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잡가 등의 구가로 분류하였으나 단학에 대한 뚜렷한 일가는 보이지 아니한다. 그 중에 잡가 속에 의학이 들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를 볼 때 의과는 역시 잡과 속에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丹理 속에는 陰陽思想, 五行思想 그리고 醫學的 사상들이 내포되어 있으 그 原理를 떠나서는 丹學이 성립되지 못하나 단학은 그 모든 원리를 이용하되 철학적인 이해나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의 이해나 의학적인 원리나 그 처방의 응용같은 것은 주안으로 하지 않고 그 모든 原理를 直接 인간生命體에서 自然的으로 作用하도록 修練하는 方法이라고 말할수 있다.

 

즉 丹理는 다름 아닌 陰陽五行의 원리에 근거하였으므로 修練의 원리를 설명할 때에 언제나 음양오행의 周易原理를 가지고 설명하지만 단리적인 연단법은 소우주적 지위에 있는 인간을 기초로 하여 '精氣神'의 相生原理를 土臺로 해설 하고 修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精氣神이라는 槪念으로 설명이 있을 때는 丹學的인 특유한 體系인 것을 알아야한다.

중국 철학사상가에서도 단리를 위주로 한 사상에는 위백양의 참동계와 內經이 있다. 그외에도 단리적인 글이 많이 있으나 연단법까지 해명된 글은 극히 드물다.

 

다음으로 '國仙道 수련의 방법은 우리 民族 固有의 傳統的인 道'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점을 敍述(서술)할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 상고시대의 古神道 의식에 있어서는 祭政一致시대이므로 군주가 곧 제주이며 제주는 곧 하늘님과 통하는 신인격인바 개인으로서

그 신인적 修練을 쌓은 사람이 다름 아닌 仙人이다. 그 선인이 되기 위한 수련이 전승하여 최후에는 天人合一地境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의 체계가 확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自然發生的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오랜 體驗과 行動으로 體得한 것이다.

이상으로 중국사상가에서 발전한 丹理에 대한 말과 우리 민족적 전통으로 발전해 내려오는 수련방법의 체계를 간단히 말하였거니와 앞으로 그 이론과 방법을 아울러 설명한 것이 이 저술의 내용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구절 引用하고 싶은 말이 있다. 達磨禪師(달마선사)의 사행관 첫머리에,

'부 입도다도 요이언지 불출이종 일시이입 이시행입'

'夫 入道多道 要而言之 不出二種 一是理入 二是行入'

이러한 말이 있다. 대개 道에 들어가는 방법이 많이 있으나 요약하면 두 가지 種類밖에 없으니 하나는 理論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하나는 行動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상가들은 理入코저 하였고 우리의 선조는 行入으로 볼 수 있으나 우리는 현재 이론으로 또는 수련행동으로 이 極致를 목표로 한 生命充實의 수련을 하게 되는 셈인 것이다. 그러나 理入은 難하고 行入은 易한것이다.

이로서는 아직 天理에 접근하기 難하나 우리의 修練으로는 天地變化에 直接 참여하기 쉬운 것이니 體驗으로 이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天理는 논증은 어려우나 實證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국선도 수련은 하나의 몸으로 이루어지는 實證科學 인것이다.

 

 

제2절 국선도 수련의 요지

仙法은 국선도법의 약칭이며 丹理이다.

丹理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발상지가 우리나라인 것은 다음 장에서 밝히겠거니와 仙法과 丹理에 대한 단어풀이부터 하면, '仙'이란 山人을 말함이니 옛부터 修道者는 深山幽谷에 들어가 道를 닦으므로 나온 말이다.

'道'란 자연의 道理로서 변화하지도 않으며 모든 事物을 生成死滅 변화케 하는 眞理요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유는 도리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丹'이란 火色이요, 화는 형질이니 아닌 氣體이니 肉眼으로 볼 수 없고, 단지 공리이므로 무하유의 명이요, 일기의 원이 된다. 火가 生動함에 萬有가 力이 生發하는 것인즉 萬有가 力으로 나타남에는 필히 火動하고야 나타나는 것인즉 火 없는 力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속어에 火力이라 한다.

 

이는 이치의 약칭이요, 전은 모이는 장소 위치의 뜻이니 丹田이란 말은 氣運이 모이는 장소란 뜻이며, 丹에는 外丹과 內丹이 있으니 주로 금석지재와 藥草를 사용한 환약을 복용하여 단리의 효력을 얻으려는 방법 등을 외단이라 한다.

외단 조제법과 약초는 다음 장에서 밝히겠거니와 외단으로써 역사속에서 성도한 사람은 없으며 오직 강장제로써 복용하였을 뿐임을 밝혀둔다.

그런데 靑山이 청운도사[본명 이송운 경상북도 안동 출신]로부터 傳受한 法通은 동방단리의 전통적 정수인 精氣神三段, 丹田二段呼吸으로부터 大氣와 合一하는 경지 까지 승화시키는 묘법이다. 이것은 內丹이며 정통적 丹理인 것이다.

자고로 허다한 사람들이 東西古今을 통하여 入山하여 修道하였으나 得道하는 이가 극히 적음은 이러한 전통적인 丹理의 방법을 解得하지 못한 까닭이요, 간혹어떤 정도의 수도가 도었다 할지라도 올바른 방법의 지도가 없이는 道法 極致에 到達(도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본 국선도의 性格은 특이한 바가 있다.

제일의적으로는 일반宗敎가 아니며 神이나 靈을 직접 위하지도 아니한다.

이 국선도는 인간의 實存을 그대로 대상으로 삼는 실존生命의 자연科學이라고도 볼 수 있다. 生命이 있은 후에 모든 問題가 문제될 것으로 보는 養生之道다.

그렇다고 하여 生理學과 같이 분석적이요 해부학적인 입장에서 다르는 것이 아니라 동양사상적인 방법으로 綜合的이요 全體的인 입장에서 體驗과 自覺과 自證의 체득적 방법에 서는 도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선도법이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世間에는 仙을 잘 이해치 못하여 망상과 환상과 욕망으로 시종일관 하다가 끝내는 迷信으로 패가망신한 얘가 많이 있었던 것이 事實이다. 그리고 仙에 대한 허다한 서적에는 본래부터 비유와 가탁을 성문으로 했기 때문에 이해불능으로 된 것이 많았는데 이러한 것을 맹신하다 촉사망신하게 되었다.

 

한때는 또 도교란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라 칭하고 우매한 자들을 사기하며 혹은 요술로써 선이라 칭하며 혹은 황백술이 선이라 하여 금전을 사취하는 등 사기가 있었던 것으로서 그 까닭은 仙의 丹理를 닦아서 成道하면 後繼者에게 直接 指導하고는 세수를 거쳐서 자기들의 本鄕인 어딘가로 가고 痕跡(흔적)을 남기지 않으므로 종적이 묘연하므로 世人이 혹 국선도를 부인하거나 정통적 선단을 모르므로, 자기 나름대로 조작하여 선도 또는, 국선도라 한 까닭이다.

 

국선도는 오직 衛生을 잘하고 正心 正坐로써 丹田呼吸을 하여 氣血流通으로 질병을 멀리하고 성명을 닦아, 기혈의 노쇠를 방지하고 生命을 永久하게 자연의 도리에 합일하여 死가 있으면 不死가 있고 有形이 있으면 無形이 있는 것과 같이 불사방으로 永生하려는 道인즉 자신의 健康을 위해서 직접 行功하는데 무슨 종교류와 미신 등이 필요있단 말인가.

오직 인류생존의 基本이 되므로 성실하여 근이행지하면 成하고 태만무성하면 불성이 있을 뿐이다.

 

 

제3절 국선도의 由來

항간에는 선의 단리를 정확히 기록한 문헌은 없고 그저 선적인 의식이 있을 뿐이다. 仙은 수천 수만년 전 상고시대부터 전래하온 비전이 있었다고 봐야하나 기록이 남지 않았음은 심히 유감이다.

그러나 문자로 선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산 生命體로서 보고 듣고 지도를 받아 실행하여 체득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신선사상이 전래하여 왔으며 옛 중국에서는 신선을 우리나라에 와서 찾으려 했으며 중국상대 문헌에는 신선설이 없다. 노자에도 없었고 莊子에 이르러 비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생활과정에서 고대신관들이 入山하여 修道하였고 그 산을 神山이라 하여 숭앙하였고 산에 들어가 수도하는 자를 神仙이라 하였으며 山에 들어가는 이유는 산이 高하므로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생각에서였으며 이는 제천 또는 경천사상에서 발생한 것이며 월성과 태양신을 신봉하는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곧 우리민족의 思想으로 신적인 생활화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신선사상이 전래하여 왔으며 신관 아닌 사람도 入山하여 선의 도법을 닦으면 기인적인 仙人이 되는 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의 修行은 숨을 고르는 조식법인 丹理修行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敬天사상에서 하늘과 통하고 있는 공기를 많이 마시고 잘 調和하는 것이 하늘과 相通한다는 판단에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공호흡은 물론이려니와 전신의 기를 유통시키는 법까지 체득케 되어 자연과 상통하는 문이 열리며 奇蹟이 일어나 成道를 하게되었던 것이므로 비전으로서 구전심수하게 된 것이니 고증이 없이 實證으로서 산 역사는 흐르는 것이다.

 

世上에 이름이 밝혀진 고선인만 해도 천기도인 이하 환인, 단군, 영량, 옥룡자, 최고운, 백우자, 청학진인, 운학도인, 청운도인이며 백우자는 이혜손이요, 청학진인은 위한조이니 모두 이조 성종시의 사람이요 靑雲도인은 현존하고 계시며 靑山의 사부이다.

중국의 선파의 고선은 광성자 이하 황제, 노자, 위백양, 장자양, 여순양, 장삼봉이라 하나 정통적 한민족의 丹理로써 성도하였는 지는 의문이 있다.

이러한 신선사상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선적 의식이 있게된 것으로서 그의 명은 변천과정에서 밝(밝고 깨끗한 사람의 뜻), 산(하늘과 땅의 새사람), 사이(하늘과도 통하고 사람과도 통하는 사이사람), 삶(사람을 살리는 사람의 뜻), 선인(모든 사람보다 앞선사람), 천기도(하늘기운의 뜻)라 하였고 후에 입산한다 하여 선인이라 하고 진리의 법을 닦는다 하여 선도법이라 호칭하게 되었다.

 

차후에는 현묘지도니 풍류도, 단기법, 풍월도, 국선, 단도, 정각도니 하였으나 오직 그의 目的은 전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선도는 진실무위하고 청정독립하여 소요자재하며 관규수진으로 자신의 健康을 위해서 직접 행功하여 우주의 정이 단전에 집적이 되게 하여 기장신명하게 되는 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선도는 양생지도며 양기법으로서 전인적 인간수련에 서 있는 도법이다. 전인적 인간수련이란 다른 도법과 국선도가 다른 점이기도 하다.

고증적 선인이 있었다는 입증문헌과 의식의 자료는 많으나 책명만 있지 변란을 당할 적마다 없어진 탓으로 현재는 한 권도 찾을 길 없는 것이 통분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가 땅에서 출토되고 우리 이웃 나라의 문헌속에서 타나나므로 다소 열거하며 고증을 들겠다. 1971년 百濟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동경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상방 작의진대호 상유선인부지노 갈음옥천 기식조수 여금석혜'

하였으니 상방이라는 당시 관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쓴 글로서 선인이 있었음을 고증적 기록을 하였다.

'일본서기'에 보면 흠명천황조에 百濟가 日本에 원군을 청하니 일본에서 답하기를,

'너희 나라에는 옛부터 고유의 道가 있으나 불교가 들어와 그 도를 돌보지 않으니 이제라도 그 道를 부활하여 닦으면 스스로 强大國이 될 것이다.'

하였으니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道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 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옛 역사의 기옥인 '삼국사기'에서 선에 관한 사실을 찾아보기로 한다. 나아가서는 그 선이라고 표현된 말의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 선 사상의 연원인 고유의 사상은 무엇이었는가를 탐색해 봐야 하겠다.

따라서 선적 수련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경로로 발생하였는가를 알아봐야 하겠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을 보면,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설교지원 상비선사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

'이 나라에 현묘지도가 있으니 가로되 '風流'라 실로 이 도는 삼교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民衆과 접촉하여 이들을 敎化하였다.'

이러한 뜻으로 그 포함되어 있는 삼교 즉 공자, 노자, 석가의 교리를 약기하여 놓은 것이 그 서문으로서 주목되는 문구로 우리 나라에 있었던 현묘한 도를 風流라고 한 말이다.

 

이 풍류지도는 무엇일까?

그 내용이 선사에 상기되어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풍류도가 선사에 있을까?

선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삼국유사'에 보면 진흥王이 천성이 멋이 있어 神仙을 크게 숭상했다는 말이 있고 또 花郞道를 풍류도라고 하니 화랑의 최고지위자를 國仙이라 하였으니 풍류나 화랑은 선이라는 말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국유현묘지도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권위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육당 최남선 선생의 硏究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의 고대사 연구중 고신도 분야의 문헌 가운데 저서 조선역사상고편, 고사통상고편, 심춘순례, 백두산근찬기, 현시조선, 檀君論, 불함문화론 등은 民族固有의 사상을 解明하는데 主力한 것이다.

일례를 들어 한 구절만 소개하면 백두산근참기에,

 

'조선신전에 나타나는 고道의 요의는 극히 간명직재한 것이다.

그 철리의 정수는 光明의식이었다. 일광명의 중에 人天이 융섭하고 物我가 혼일됨이 그 이론인데 그 계기를 밝이라 하고 그리하는 實現過程을 ㅅ`ㄹ(역하여 선 혹은 선)이라 하고 그리하는 實現方法을 돌(역하여 복 혹은 귀)이라 하니...'

 

이렇게 그는 여러 논문과 여러 저서 중에 민족고유의 道에 대한 설명을 요약한 곳이 허다히 많다. 지금 열거한 구절도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나 그의 저서는 상시한 한 구절의 하나하나를 解說한 내용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광명, 천, 밝, ㅅ`ㄹ, 돌 등의 語源的 해설로 우리민족의 고유사상과 그 특이성, 그 우월성을 해명하기에 힘쓴 것이다.

그 요약된 문구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면 고도의 신봉대상은 天이요, 숭배하는 제단은 산봉이요, 숭배자는 우리민족이요, 숭배로 얻는 효과는 天人合一이요, 숭배방법은 제천과 선적 수행이요, 효과적 원리는 귀본이다.

여기에서 다소 해설이 필요한 것은 天에 대한 의미와 仙에 대한 의미일 것이다.

 

숭배의 대상인 天은 하늘로서 하늘을 인격화한 개념이 하늘님일 것이다. 그리고 하늘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해요 빛이다. 太陽과 光明은 하늘과 하느님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태양과 광명은 곧 밝은 것으로서 '밝'을 숭앙하는 동시에 대낮을 백주라 하는 것처럼 힌 것이 숭앙되어 백을 신성시 한다.

그리고 고산의 산정은 천에의 통로로 생각되어 그들은 고산숭앙의 심리에서 천제를 드린 산에 언제나 백자를 붙였다. '밝'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檀君성조가 신정을 베풀고 하늘을 숭배한 곳을 白頭山이라 했다. 태백도 같은 뜻이다.

언제나 백산상에 제단을 쌓고 천(하늘, 하느님, 태양, 밝)에 祭祀한 것이다.

 

그리고 천제를 드리는 제주는 天 또는 하늘님과 통하는 신인이어야 한다. 그러한 靈通者를 'ㅅ`ㄹㅇ`ㄴ'이라 한 것이다. 그 어원을 가지 것이 오늘에까지 傳承하였으니 지금도 영통자를 'ㅅ`ㄴ' 또는 '산이'(무)라고 한다. 무는 고대에 있어서 신정시대는 군주요 제주로서 그 지위는 군장이었으나 현재는 한갖 巫堂으로 전락하고 만것이다. 이 'ㅅ`ㄴ'이라는 고어가 음사하여 한자로 仙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고대민족적으로 수행되던 선관의 도가 한편으로는 그대로 전래하여 國家的 宗敎로 仙風이 되고, 한편으로는 그 仙의 道가 개인적 천인합일修練의 방편으로 仙道의 수련이 되었으니 예를 들면 '高麗史' 곳곳에 나오듯이 그때마다 君王들이 고선도를 다시 부흥시켜야 하겠다고 번번히 調書를 내린 것은 國家的인 신봉의 대상으로서의 민족적 종교행사인 고선도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修練의 방법으로서의 국선도는 天과 先靈을 받들고 천인융합의 수련의 방법으로서의 道인 바 우주생성의 근원에 접근하는 방편으로서 大生命體인 天에 돌아가는(復元) 합치의 도(方法)인 것이다.

그러나 이 도의 원류는 다름아닌 우리 고선도 또는 고신도인 고대성조때로부터 전래하는 하늘도에 있는 것이다.

'ㅅ`ㄹ'의 어의는 生으로서 모든 생의 원천은 天이요, 태양이요, 광명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 도는 곧 生命의 道였던 것으로서 生을 귀중히 여기는 生命道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상윤 선생의 '조선문화사'에서도 역시 제천사상과 경천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임을 밝히면서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등이 동일 사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경천숭배사상은 곧 태양숭배 사상임을 뜻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 선생은 仙史에 대하여 그 선이란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에 대한 개념과는 다르다 했다.

선인 또는 국선이라 할 때의 선은 선인이라는 말 또는 '선인'이라는 우리 나라 말의 한자로 음역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실례로써 '최형전', '고려도경', '통전', '신당서' 등에 나오는 조의선인이란 낭도들을 가리킨 말이라고 했다.

高句麗의 조의선인이 바로 선인이며 국선이요,

그 정신을 계승한 것이 바로 新羅의 화랑으로서 다 같이 고신도를 숭상하는 민족정신의 고유한 주체 세력임을 그의 '朝鮮상고사'에서 밝혀 놓은 것이다.

그리고 단재선생은 그 도를 선비도라고 했으며, 후에 풍류도라고 했다고 한 것이다.

要約해보면 우리 민족정신 속에 잠재해 있고 우리 언어 속에 깃들어 있는 천, 즉 하늘님 또는 하느님을 숭앙하는 생각은 우리 생활을 지배해온 고유의 사상이다. 그리고 그 하늘을 숭배하는 제주는 우리 고유의 말로 'ㅅ`ㄹ ㅇ`ㄴ'으로서 한자로 음사된 선이다.

그러므로 고신도를 선풍이니 선도라고 후세에 稱(칭)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國家 民族的으로 계승하여 민족적 종풍이 되었고 따라서 개인적으로 선적인 수련으로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할 목적을 가진 사람이 다름아닌 선도수련자인 것이다.

앞으로 이 두 갈래의 傾向(경향)을 따라 설명해 보겠다.

먼저 전자 즉 國家的인 고신도의 전승적인 노력을 '高麗史' 등에서 엿보면 처처에서 그 염원의 사실이 발견된다.

'高麗史 권십팔권' 의종 2년 調書를 내려

 

'옛날 新羅시대 선사상(仙風)이 크게 발전하여 天이 즐기고 人民이 安寧(안녕)하였다. 우리 高麗도 왕건 태조로부터 오랫동안 선사상을 믿어왔다. 그런데 근일에 이 사상이 쇠퇴하였으니 다시 復興(부흥)시켜야 한다.'

 

는 말이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이같이 민족적인 고도를 선사상이라 칭한 것이다.

의종은 다시 조서를 내려

 

'왕건태조로부터 선사상을 숭상하여 왔는데 최근에 양경(평양, 개성)에서 선가 의식인 팔관회가 옛모습을 잃고 있다. 다시 선가를 정하고 옛 풍습을 따라 행하도록 하라.'

 

고 하였으니, 여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선사상이 다름아닌 고유의 도요, 그리고 팔관회라는 것이 선도의 행사임을 알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고유정신이 담기어 있는 선도의 한 의식인 팔관회에 특히 유의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으므로 팔관회에 대한 고서를 몇 가지 더듬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만일 팔관회가 우리의 고유한 선도사상과 직접 관계가 있는 국가적 행사라 하면 선사상의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팔관회라는 민족적 의식에 불교적 의식과 혼동이 된것도 우리의 선 사상이 도교와 혼동된 것과 흡사한 점이 없지 않다. 팔관회가 불교적 행사와 혼동된 것은 불교적 의식의 팔관재가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팔관회와 팔관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의 팔관재는 불교의 팔계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살생, 불도, 불음, 불망언 등 팔계를 위한 것으로서 불공의계라 한다. 그 재는 재계로서의 불공의계임이 뚜렷하다. 그러나 팔관회는 국가의식으롯 천신 군신 등에 대한 축제행사임에서부터 그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

'송사 高麗전'에 보면

 

'고려가 천에 제하고 숭신에 제하는 제전을 팔관회라 칭한다.'

 

하였고 '동문선'에 보면

 

'팔관회는 팔선의 관문의 뜻'

 

이라 했고

 

'新羅 진흥왕 33년에 군신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팔관회를 설하였다.'

 

이러한 말들만 종합해보더라도 팔관회는 우리들의 고유한 의식이요, 선도에 관계있는 의식이요, 민족적 의식임을 알수 있는 것이다.

'高麗史 권십사' 세가 예종 11년의 조서 중에

 

'고시 영랑, 술랑, 안상, 남석행 등 사선의 행적에 영광을 가할, 그 사선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라, 근일에는 국선의 도를 구하는 자 없다. 태관의 자손으로 하여금 국선의 도를 행케하라.'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국선의 도, 선가의 의식인 팔관회, 이러한 것이 다름 아닌 우리 고유의 국선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고려도경'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宋나라 선화봉사 서긍이 高麗에 와서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高麗견문록인데 그 책 가운데

 

'팔관회는 高句麗의 동맹을 계승한 것이다.'

 

하고 써 있다.

'위지 동이전'에도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新羅의 팔관, 高句麗의 동맹'은 다같은 제천의 우리 민족의식임을 밝힌 바 있다.

高麗 6대 성종이 유교를 억지로 보급하려 하니 이지백이

 

'국민 전체가 선왕의 도인 팔관회, 연등, 선랑 등 고유한 사상을 신봉하고 있어 외래적인 유교를 반대하니 옛 사상을 발전시킴이 가하다.'

 

고 한 말이 '高麗史'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한 고유의 우리 사상은 결코 외래적인 유나 불이나 도교는 아니었으니 그 팔관, 연등, 동맹 등의 선사상의 도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화랑도를 창설한 진흥왕의 花郞道 창설의 진의를 분명하게 엿볼 수가 있다.

 

'王은 천성이 풍미하여 신선을 섬기고 아름다운 자를 택하여 원화를 삼고 선비를 뽑아 효제충신을 가르치고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나 뜻같이 되지 않아 중단이 되었으나 그후 다시 시작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王의 마음에는 나라를 흥케 하려면 먼저 風月道를 興케 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있어 다시 令(영)을 내려 양가의 남자 중에서 德行이 있는 자를 뽑아 國仙을 삼으니 이것이 花郞과 國仙의 始初다. 이로부터 풍습이 개선되고 상경하순하여 오상육예며 삼사육정이 세상에 널리 행케 되었다.'

 

하였으니 仙의 道를 숭앙하여 花郞道를 창설하여 국정이 바로 잡히고 풍습순화되고 오상육예 등이 선양 되었으니 우리도 그 선의 도가 한갖 우화등천적인 미신적 도교의 신선사상을 그렇게 보급시켰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여담이지만 국선도 혹은 선도라 하면 무슨 신선적인 종교같이 생각되어 우리 생활과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고 또는 이조말년에 잡종종교가 많이 생겨날 적에 일어났던 선도교 같은 것으로 도 오인할 수도 있다.

융희 3년(1909) 차경석이라는 사람이 선도교를 만들었덕 일이 있다. 이것은 강일순(증산)이가 세웠던 훔치교의 후신으로서 후에 보화교로 다시 보천교로 개칭한 것으로서 하나의 영술적인 주문을 가진 신앙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선道의 사상은 도교의 사상도 아니요, 도교에서 파생된 도도 아니요, 하나의 민간사상으로서의 신비사상도 아니요, 잡종신앙으로 다룰수 있는 차원 낮은 신앙도 아니다.

 

우리 나라 民族 속에서 성장한 神仙思想은 하늘과 하느님을 숭항하고 人類道德을 중히 여기며 올바른 풍습을 따르며 동시에 극치의 인간상을 수련코저 하는 민족예지의 결정체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민족고유의 숭천사상이며 국가적 숭앙의 사상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그 도에 접근하기 위한 心身修練者로서 그 명칭이 곧 선으로서 'ㅅ`ㄹ' 도의 수행자를 말함이다.

다음으로는 소설적 서술이 아니요, 역사적 서술도 아닌 하나의 野史的 서술인 '花郞外史'의 한 토막을 다시 독자 앞에 소개하려 한다.

花郞道연구에 가장 조예가 깊은 범부선생은 新羅의 옛문화를 찾고 아끼는 분이다.

이제 그이가 저술한 '花郞外史' 중에서 모든 花郞들과 또는 당시 高僧 원광대사, 원효대사 등의 스승이요 숭앙의 대상이던 물계자에 대한 기록을 간단히 보여줌으로써 고도수련의 정신을 참고케하려 한다.

긴 글을 그대로 引用할 수 없음이 유감이나 필요한 구절을 띄엄띄엄 약기하여도 그 진의를 大綱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물계자에 대한 사적은 '삼국유사' 속에 약 삼백 자 정도로 기록되었으나 그에 대한 說話는 수많이 전래해 온다.

 

['그는 新羅 제10세 내해王때 사람이다. ...

물계자가 중년이 되었을 때는 劍術, 음악 그리고 검을 섬기는 묘리는 말할 것 없고, 혹은 처세법 혹은 政治 軍事를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자기 지망대로 修練을 쌓고 있는 靑年들이 묵고 있었다. ...

오랜 세월을 두고 수련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과목 수련의 준비 과정으로 精神의 修練부터 먼저 시켰다. ...

''검술이나 음악이나 그밖에 무엇이나 열 가지고 백 가지고 간에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꼭 바른 도리이기만 하면 반드시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근본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을 사람의 얼(精神)이라고 해 두자. 천만 가지 도리가 다 이 얼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 얼을 떼어 놓고는 이것이니 저것이니 하는 것은 소 그림자를 붙여다가 밭을 갈려고 하는거나 마찬가지로 허망한 소견이야.''

그래서 수련을 시킬 때 먼저

''너 숨을 쉴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숨이란 만들어 쉬는 것이 아니라 절로 쉬는 것이다. ... 숨을 고루는 것이 얼의 앉을 자리를 닦는 것이니 얼의 자리가 임의롭고 난 뒤에야 무슨 修行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숨을 고룬다 얼의 자리를 닦는다. 천만가지 일과 천만가지 이치가 여기서 시작되는 法이거든. 여기서 始作된 것이 아니면 참된 경지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설령 모르는 사람의 눈을 얼핏 속여 넘기는 수 있으라 하고라도 검님(신령님)이 그런 사람의 눈에 그물(망)을 덮어 버리는 거야.''

이러한 방법의 修練으로 얼마를 지내고 나서는 누구나 대선인의 신통한 교육법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빛깔이 있는 법이어서 그것을 잃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 제 빝깔을 지닌 사람만이 제 길수(自然의 妙理)를 찾게 되는 법이야. ...그러나 제 빛깔이라는 것은 제 멋(自己趣向)과는 다른 것이야. 누구나 제 멋이 있어야 하지만 제 멋대로 논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것이 아니야. ...아무에게나 맞을 수 있는 제 멋은 먼저 제 빛깔을 지녀서 제 길수를 얻은 그 멋이고 한 사람에게도 맞을 수 없는 제 멋이란 제 길수를 얻지 못한 것이야.

 

말하자면 제 빛깔과 절로(자연)와가 한데 빚어서 함뿍 괴고 나면 제작(天人妙合)에 이르는 법인데 이 제작이란 검님이 사람의 마음에 태이는(和合) 것이요, 검님의 마음이 사람의 생각에 태이는 강이니 말하자면 사람이 무엇이나 이루었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이 제작에 이르렀다는 것이야.''

 

이렇게 歲月이 흘러가는 동안 저절로 물계자를 중심으로 한 개의 風氣가 생겼다.

그 풍기란, 물계자 문인치고는 빽빽하거나 인색하거나 설멋지거나 까불거나 설넘치거나 고리거나 비리거나 얄밉거나 젠체하거나 따분하거나 악착한 사람은 아주 없는 것이다.

누구나 척 대하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은 물계자의 문인들을 모두 참 멋쟁이(風流)라고 말하게 되었다.

''멋 풍류! 하늘과 사람 사이에 서로 통하는 것이 멋이야. 하늘에 통하지 아니한 멋은 있을 수 없어. 만일 있다면 그야말로 설멋이란 말이야. 제가 멋이나 있는 체 할 때 벌써 하늘과 통하는 길이 막히는 법이거든.''

...''참 멋과 제작은 마침내 한지경이니 너희는 여기까지 알는지? 사우(調和) 맞지 않은 멋은 없는 것이며 터지지 안은 멋도 없는 것이니 사우 맞지 않고 터지지(融通透徹융통투철) 않은 제작이 있는가?''

이런 말을 들을 때 歡喜(환희)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절하는 제자도 있었다.

 

물계자는 칼을 쓸 적마다 언제든지 먼저 숨을 고루었다. 그리고는,

''살려지이다.''

라는 祈禱詞(기도사)를 몇 번이든지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精誠을 다하여 기도를 올린 다음에 의례히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이어 춤을 추었다. 춤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칼을 쓰는 것이 언제나 변함없는 순서였기 때문에 물계자의 문인들은 으레 대선인의 하는 순서대로 따랐다.]

 

민족고유의 道를 찾아 보는 탐색은 이것으로 만족하겠다. 독자는 반문할는지 모른다. 하늘님 숭앙한다는 사실밖에 더 찾은 것이 없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滿足한다는 말이다.

그 원시적이요 原初的인 하나의 종교적 숭앙심은 그것 대로 최고 최상의 종교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극히 역설적인 의견같지만 그 原初的인 신앙심 이후로 발전한 잡다한 신앙형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실정이다.

문화는 분화 발달한다고 하지만 종교적 信心만은 분화발전이 오히려 原初的인 심리에서 이탈한다고 본다.

 

基督敎는 2천년 간이나 분화발전했다고 하나 그 많은 신학 그 많은 교파속에서 많은 신자는 방황한다. 예수님의 진정한 종교적 심정을 찾으려면 오직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고 그 뜻대로 살고 그 뜻대로 죽는데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마음이 곧 그의 宗敎心이요 生死의 지도이념이다. 이 原初的 근본사상을 떠나면 예수교는 없다.

佛敎도 마찬가질 것이다. 佛 가신 후 백년이 못되어 부파가 생기기 시작하여 2천여 년 수많은 宗波가 생기고 논과 소가 나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仙波에서는 불립문자로 모든 이론을 배제하기도 하나 그들도 理論 아닌 理論으로 역시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釋家가 得道한 唯一의 심경은 결국 無我의 경에 출발하여 無我的 行에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이론은 다 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無我的 慈悲行'을 제외하고 무슨 佛敎가 성립될 것인가.

 

우리는 종교의 原初的인 심경에서 살고 죽을 뿐이지 學과 說이 필요없다. 종교는 학도 아니요, 설도 아니다. 그런 것은 과학이나 철학에는 필요할는지 모르나 信仰心에는 소용이 없다. 있으면 오히려 妨害(방해)가 된다.

이렇게 종교에 대하여 原初的인 심리현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어떤 오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모든 原初的 종교들은 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형태의 원시종교도 그 원초적인 심리중에는 인간이상의 힘과 德을 가진 존재를 숭앙하고저 하는 생각은 하나의 종교적 정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미개하여 힘만 생각하고 높은 덕을 생각하지 못한 원시인의 종교심은 그것이 발전하여 소위 현재 우리가 말하는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사욕으로 더불어 주술적인 기괴망측한 무격적 민간 신앙형태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것을 원시적 종교라고 하면 이는 무가치한 것이지만 그 숭앙의 대상이 힘이 있는 동시에 인간이 생각하는 사회 윤리적 덕이 있다고 믿는 숭배의 대상일 때는 그 신앙심은 반드시 사회적 德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가치판단의 기준은 그 신비적인 근거보다도 오히려 社會的 倫理形態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신을 신봉한다고 하여도 그 신앙심이 비현실적이요 비도덕적일 때는 그 신앙심조차 높이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은 단순하여도 좋으나 그 신앙심에서 나타나는 社會的 實踐은 높은 차원의 道德心이 있어야 한다.

 

높은 차원이라 함은 我利보다 公利를 중시하는 이른바 弘益人間과 같은 이념을 말하는 것이다.

종교는 나의 문제를 떠나, 아니 나의 문제를 超越하여 우리들의 문제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든지 소승적인 自己救濟인 것인 동시에 대승적인 衆生救濟가 아울러 중시되는 것이 아니면 참 종교라고 생각할 수 없으니 비록 原始宗敎의 형태라 할지라도 그 原初的인 정신이 처음부터 그러한 양면구전한 것이었다면 그 原初的 신앙의 태도만은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우리 민족의 신앙의 原初的인 형태인 오로지 '하늘님'을 숭앙한 그 정신 자체로서 높이 평가할 수 있고 그 신앙의 대상인 하늘님의 속성이 광명, 생육, 자의 등등이 도덕적 생명적 源泉으로 본것은 더욱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 고대 宗敎는 샤머니즘적이라고도 하는 이가 있으나 이는 먼저 分化되고 변형되고 달리 발전된 형태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原初的인 광명정대한 숭앙의 하늘의 道를 떠나 인간 사리사욕을 채워보려는 무축이 변화한 것이 모든 샤머니즘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잡생각을 버리고 原初的인 심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다름아닌 환본이다. 삼일신고 진리훈 끝에 반망즉진이란 말이 있다. 망상을 버리고 根本에 돌아가 참에 나아간다고 주해하였다.

하늘도 좋고 하늘님도 좋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恭敬하는 정신이 있으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도요, 또 그것으로 족하다. 그 마음은 틀림없이 弘益人間의 도덕적 원천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을 수련하여 마음과 몸을 닦고저 하는 사람은 후세에 선수도자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항상 原初的인 정신을 마음에 지녀야 할 것이다.

 

이 原初的인 심리는 종교적이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민족이 지녀온 정신적 자세라고 함이 좋은 것이요, 그 개인적 수련은 生命과 생활의 道와 아울러 그 민족적 고유의 德性과 밝은 정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花郞道의 수련도 이러한 思想밑에서 國家의 요청을 감당할 人材의 수련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국선도 수련에 入門하려는 이들도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덧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檀君하면 전설적인 왕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사실들을 전설로만 흘려 버리는 思考의 시대는 지나 갔다.

 

4~5천 년 전 檀君 때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 약 60萬 년 전 舊石器시대의 유물이 忠南 공주군 장기면 석장리의 하안에서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전기 구석기와 중기 후기 구석기층과 중석기층까지의 각시대의 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1964년 11월 연세대학교에서 발굴작업을 했고 1973년 6월에 濟州島(제주도) 동굴에서 홍적세(구석기 약 60만년 전)의 층의 유물이 발굴되고 1934년과 1935년 두만江에 연해 있는 동관진의 연대봉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다.

1933년부터 35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동물의 화석과 두편의 흑요석기 그리고 골각기들을 가지고 구석기 유적이 있음을 입증하였고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의 언덕 사면에 있는 패총에는 신석기와 청동기의 두 개를 발굴하였고 1963년 平陽 남쪽 상원군 상원읍에서 서쪽으로 십여 리 정도 되는 검은 모루봉의 南麓(남록: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여 있는 곳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코뿔소와 사슴의 화석이 섞여 있고, 黃海道 봉산군 지탑리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철촉, 철조針, 청동環, 토기 전와片, 오주錢, 관玉, 토기片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니 우리민족은 60萬 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음이 역력히 세상에 밝혀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민족이야말로 유구한 歷史를 가진 민족이며 탄생과 더불어 仙的인 사상이 자연히 생활의 필요에 의하여 傳來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수천萬 년 또는 수億 년 전부터 敬天사상에서 전래한 우리 민족의 仙은 외래사상에 의해여 산중에서만 秘傳하여 오다가 自然乘時(자연승시)로 청산이 청운도사를 만나 수련하고 하산하여 세상에 그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전인류는 사상과 빈부기천과 남녀노소와 국경을 초월한 一和統一과 孝根理念으로 전인류의 先祖를 모시고 완전무결한 宇宙道德과 慈悲와 博愛가 충만한 宇宙玉室 제도를 수반하는 完全調和仙人의 경지에서 생활하기 바란다.

 

 

제4절 국선도 名稱(명칭)의 유래

전 절에서 국선도의 유래를 고증적으로 다소 밝혀 놓았거니와 이 장에서는 고증적 仙的 수련자의 명칭을 밝히려 한다.

자기를 모르며 남을 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인 것 같이 자기 민족의 주체사상을 모르고 남의 민족의 주체사상을 따른다는 것은 더욱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민족의 고유한 정신(理念)과 사상은 꼭 알아야 한다.

 

옛날 우리 민족의 '古記', '史記', '本記', '仙史'와 이외에 무수한 역사책들과 문헌은 漢무제와 唐나라 장군 李積의 손에 수많은 책들이 불살러 지고 또는 日本사람의 손에 의하여 말살되고 나머지는 사대주의 자들 손에 의하여 거의 없어졌으나 오늘날 땅속에서 또는 이웃나라 고서 중에서 우리 민족의 史記와 仙的 의식의 문헌이 단편적으로 남아있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福音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仙에 관한 수행도의 이름을 자세히 알아보면 밝음을 하나님이 준다는 생각에서 이에서 밝음은

太陽으로서 '밝'이라고 하고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은 산봉우리라 하여 입산하여 하늘이 준 空氣를 많이 마셔야 된다는 생각에서 呼吸을 깊게 하기 시작한데서부터 선적 수련이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수행자를 ㄷ`ㄹ사람 또는 ㅅ`ㄴ사람이라 'ㅅ`ㄹㅇ`ㄴ'하다가 '山人', '先人'등으로 부르다가 漢字가 나오며 '仙人', '神仙' 등으로 부르게 된 것이며 후에

'삼국사기'에는 '風月', '風月主', '風月徒'라고 하고

'삼국유사 竹旨郞(죽지랑)'에는 '風流徒', '花郞', '原花'라고 하고

'朝廷花主之間(조정화주지간)', '花徒', '香徒', '國仙花郞', '國仙', '國仙徒', '仙花', '仙郞', '仙徒', '仙人', '先人' 이라 하고

후에는 '實', '씨알(核)', '造化道', '氣道', '丹道', '花郞道' 등으로 불려 내려왔으므로 그 이름을

오늘날에는 '정각도', '선단', '선법', '선도법', '국선도', '밝돌법', '밝받는법', '국선(하늘사람선)도'니 하게 된 것이다.

 

 

제5절 국선도와 밝돌

靑山의 사부님께서는 항시

''밝을 받아 돌에 참여 하여야 정말 사람인 거야.''

하시고 가르침을 주시었다.

그러므로 우선 밝돌에 대하여 간단히 밝혀 보면 먼저 '밝'을 밝혀 보면 밝은 해, 太陽, 일(日), 光明, 天 등을 나타낸 말이다.

先人들이 붉을 높이어 받은 것은 그 위력이 무섭고, 한편 그 은덕이 큰 까닭인 동시에 고마운 대상이므로 밝을 하늘같이 공경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생활과 生命의 源泉이 되는 높고 큰 덕을 높이 받들고 절하고 공경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대한 힘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는 수도의 방법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이를 후대에 漢字가 나오며 仙 또는 하늘(하늘사람선)이라 하였으며, 우주를 한나라(國)로 보고 사람과 하늘(하늘사람선)이 妙合하니 이러한 대자연의 길(道)을 모아 이름하여 國仙道라 하게 된 것이므로 밝돌과 국선도는 같은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 비로소 밝(太陽)의 큰 혜택을 증명하고 있다.

우주 창조 또는 천지창조의 근원이 밝의 광선에 있다고 한다. 그 빛의 실체를 光子라고 하는 물체임을 최근에 알았다고 한다. 이것의 작용으로 모든 물리적,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光子야말로 우주창조의 주역을 한 창조주다.

우리는 그 창조주를 숭배하였고, 또 그 생성 변화의 힘을 몸에 받아 작용시키는 방법을 체험으로 체계를 세운 것이 국선도 또는 밝돌법인 것이다.

 

다음으로 '돌'이란 명사로서의 돌(石)이 아니라 동사로서의 '돌고 돈다', '돌아간다', '돌아온다'의 돌인 동시에, 氣의 음양운동도 말뜻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의 生成原理인 것이다.

만물은 유동한다는 뜻도 있지만, 현대의 우주 생성론으로 보아도 광대하고 무변한 우주 공간에는 아직도 이름을 짖지 못하고 있는 가칭 宇宙本質만이 꽉 차 있으며 그것이 어떤 法則으로 유동함에 따라 전자, 광자, 단자 같은 것이 생겨 나고 또 생물이 생겨나고, 천체들이 생기고, 원소들이 생겨나고, 생물과 사람이 생겨 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성 과정뿐 아니라 그 모든 생성과정이 늙어 파멸되면 다시 창조 이전의 형태인 우주의 본질로 돌아 갔다가 다시 운동을 계속하여 물리적, 화학적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차원 높은 창조물로 창조된다.

이와 같이 우주 공간은 끊임없는 생성변화의 돌고 돌아감을 거듭하는 창조의 회전장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돌며 돌아가고 돌아 오는 존재의 형상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생성사멸이 거듭되는 원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원리를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거니와 그 법칙 내용은 대개 세 가지가 있다.

物理, 化學, 數學의 세 가지 법칙에 맞으며 그것이 여러가지 소립자들로 변하고 元素, 分子, 細胞 등으로 생성하고 그것이 그 세 가지 법칙에서 조화를 상실하면 파멸하여 본질로 돌아 갔다가 다시 생성 과정을 밟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떤 방법으로 자연의 도리를 따라 몸과 마음을 닦는 까닭은 우주 생성 법칙을 깨달아 그 돌아가는 우주 대자연의 생성법칙에 올바로 參與 하자는 것이다.

동양의 철학적 용어로 말하면 우주의 창조 이전의 상태는 太極의 시기며, 돌아 가기 시작하는 상태는 陰陽이 動하는 때로서 음양의 상반작용으로 그 힘을 받아 만물이 生成한다는 이치다.

 

국선도의 수련 방법도 다름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의 陰陽調和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의 이치를 알고 따라서 참여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은 스스로 기계적으로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대자연의 법칙에 順應하게 되어 있어서 그들의 천수를 다 하지만 사람만은 자유 의지와 짧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天理를 거역하는 일이 많아 스스로 그 법책에서 이탈하여 천명을 다 누리지 못한다.

이상과 같이 이 밝돌법을 닦아 나가는 것은 無窮無盡한 대자연의 창조적 순환의 원리다.

즉 '돌'의 이치를 알아 '밝'을 받아 몸과 마음을 닦아 몸은 맑고, 마음은 밝아 있어 '돌'에 참여하는 독특한 방법이므로 국선도를 '밝돌'이라 호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제6절 고증문

조선 영조 임금 때 학자인 북애자의 '규원사화'에는

[아득한 한 옛적에 南, 北의 만주와 중국의 북부와 또 몽고의 일부가 이미 우리 겨레의 농사 짓고 짐승 먹이던 곳이다. 이때 태호 복희가 東夷 겨레의 한 갈래인 風夷 겨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그 수에 의한 변하고 바꾸임의 이치(易理)를 익숙히 알고 서녘(西方)으로 中土로 나아가 수인氏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태호 복희가 동이 겨레의 갈래인 風夷의 자손인 까닭으로 성을 風氏라 하였다.

옛적엔 東夷 겨레의 갈래인 畎夷(견이)와 風夷가 밝산(白頭山)이 있는 발조선의 발숙신을 본고장으로 하였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이 나누어져 東夷의 서 남녘으로 옮아가 살면서 中土의 제후들과 늘 싸워었는데 風夷는 東夷의 사람이 요 임금인 치우와 같은 한 가지 겨례다. ...]

 

'산해경'이란 책에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북녘(北方)에 크고 넓은 땅에 한밝산(白頭山)이 있는데 이 땅이 숙신나라(숙愼국)다. 이 숙신라라가 밝겨래(白族)인 밝백성(白民), 밝산백성을 그곳에 수(나무)가 있는데 그 이름을 으뜸(웅)이라 한다. 그리고 이 숙신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제일 먼저 8대의 임금들이 일어났다.]

 

한밝산이 있는 이 숙신나라, 곧 '배달' 숙신나라에서 일어난 그 8대의 임금들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전한서'와 명나라 반광조의 '강감금단'에서 다음과 같이 똑똑히 밝혀 두었는데,

 

[태호 복희, 염제 신옹, 황제 헌원,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요임금, 순임금(제요도당씨), 제순유우씨 등 삼황과 오제다.]

 

하였으니

 

[모두 한밝산이 있는 배달 발조선(발숙신)의 임금이다.]

 

하였다. 中國 학자 서량지의 글에

 

[세석기 시대에 문화 부족이 맨 처음 시베리아 남주의 바이칼湖水(몽고성 북쪽) 근방에 살았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전설에 있는 염제 신농의 본종족이다. 그런데 그 문화종족이 서전 우공고에서 말한 東夷 겨레의 갈래인 도이(섬도), 우이, 내이, 회이, 殷나라 등의 본종까지 된다. 그 세석기시대의 문화부족이 시베리아 땅으로 옮아 왔음은 대략 舊石器시대의 끝 무렵에 해당한다. 그들은 현 산동성을 중심으로 하여 퍼져 살았다. ...]

 

日本학자 조거(鳥居)는

[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중국의 중부와 남부는 본시 東夷겨레의 갈래인 묘겨레(苗族)가 차지하고 살던 땅인데 한족이 들어온 뒤로부터 점점 접촉하게 되었다. ...]

 

현 中國학자 무봉림의 저서 '중국통사'에서 말하기를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의 시대에 東夷 겨레의 갈래인 黎族여족(=苗族)이 중국의 남부 땅을 차지하였었다. 대저 옛적에 江漢(=양자강과 협서성의 한수)의 증역이 모두 여의 땅(黎境)이었다. ...]

 

中國의 왕동령은 말하기를

 

[苗族 겨레가 벌써 4천 년 전 시대에 중국의 남부인 호북성, 호남성 및 강서성 등을 점령하고 살았었다. ...]

 

여사면은 묘와 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苗는 대개 蠻 자의 음이 변한 것이다. 苗 겨레는 그 본 이름이 黎(여)다. 苗겨레가 한족보다 중국에 먼저 들어 왔으나 뒷날에 한족으로부터 쫓겨나갔다는 말도 있다. ...]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과거 중국 사람들이 너무나 배타적 독선적으로 역사의사실을 뒤집어서 오로지 자기 나라 중심으로 역사를 꾸민 것이 적지 않다. 이것은 중국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 임금들은 선물을 받으면 조공을 바쳤다 하며 모든 나라들을 중국의 예속 나라인 것으로 하여 자칭 제후라 하고 모든 나라의 사람을 짐승같이 여겨 나라 이름도 짐승에 비유하여 우리나라도 新羅를 시라(죽은나라), 高句麗를 구려, 구려하여 개나라, 당나귀나라 등으로 불렀다.

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말인가.

朝鮮이라는 말의 옛글엔 식신, 숙신조선, 직신 등으로 쓰여 졌으나 이는 오늘날 각 도의 명이 바뀌듯 발조선 발식신 발숙신이 모두 같은 말이다.

 

역대 신선통감에는 지황씨가 동아땅 전체를 비로소 9주들로 나눴다 하였고 檀君 때에도 9주들이 남아 있었다.

 

中部原(중부원), 中原(중원)이라 하였으므로 한족이 침범하여 차지하고 中자를 따서 中國이라 하였다.

古證書(고증서)는 북애자의 '규원사화 태시기' ...'산해경' ...'해외서경'... '대황동경'... '북경'... '서전 우공편'... 반고의 '전한서 고금인표'... 반광조의 '강감금단'... 조거 '용세 묘족조사보고'... 임혜상의 '中國민족사, 형오계즉 한족래원지삼, 附 구려삼묘...'

왕동령의 '中國민족사' ... '예기 왕제편' ... 무봉림의 '中國통사 사이국조표'...'中華민족론' ... 여사면의 '中國민족사'

이외에도 우리나라 考證文(고증문)은 이웃나라 문헌 중에서 수없이 나오고 있으며 우리나라 땅속에서도 수없이 發掘(발굴)되어 나오고 있다.

漢族은 華族(화족)이라 華, 夏系(하계)라고 하나 옛날엔 화족이나 하족이나 '華' 또는 '華族'이란 글자나 기록이 전혀 없다.

 

중국의 학자들은 한족의 근원 종족은 華族이라 하나 화족(현 中國민족)은 몇 몇 한족이 다른 종족들을 흡수하여 混合(혼합)으로 이루어진 종족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漢族이라는 그 명칭마저 漢나라가 일어선 뒤부터 생긴 것이다.

 

 

 

제1장 끝

이재갑(뜸사랑 정회원27기)

 

청계산 등산길에 깨달은 침뜸 入門

40년 가까운 公職생활을 마감하고 뭘 할까 고민하던 어느 날 친구들과 청계산 등산길에 우연히 듣게 된 灸堂(김남수) 선생님의 침뜸 얘기는 내 남은 인생의 나침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강 후 첫 시간, '침뜸의학개론' 수업 중 침뜸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문득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最貴하니...'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이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한데...'라는 뜻이며, 漢字 공부에를 시작할 때 千字文을 배운다음 초급교재로 배우는 백세무 선생의 '동몽선습'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은 書堂에 처음 입학한 학동을 위해 지은 책으로, 어려서 한문 배우기가 싫어 나는 천자문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훈장을 하신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귀동냥을 하여 몇 구절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 중 하나다. 생략된 뒤의 문장은 원래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五倫이 있기 때문이다'이나 침뜸을 배운 후 내 생각을 가미하여 '침뜸을 배워 귀한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도 보람된 일이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풋내기 때 사고를 치다

본과정을 졸업하자면 임상실습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마침 누님이 1년 전 병원 진단 결과 양발 뒤꿈치에 足低근막염(족저통)이 의심되지만 수술이 불가능하니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診斷을 받았다며 답답해하시던 생각이 났다.

일단 내가 치료해보기로 하고 완치까지 임상보고서를 쓰는 데 도움을 받기로 약속하였다. 경락경혈학 시간에 배운 대로 우선 왼쪽 발뒤꿈치부터 치료하기로 하고 환부에 코튼볼 크기의 뜸봉을 사용하여 치료하였지만 뜸봉 과다사용으로 지름 7cm 정도의 넓이에 2~3도 화상을 입히고 말았다.

(제27기 정회원자료집, p195 참조)

 

이때 남경우 교수님과 동산봉사실의 박만옥, 박찬신 선배님의 도움과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침뜸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무극보양뜸과 화상 환부에 침 100여개를 자침하니 누님이 질려버렸다. 병원에서 가서 치료하겠다고 화를 내어 당황하기도 했다. 일단 누님의 뜻대로 침을 대폭 줄여 치료하기로 하고 화상치료에 집중하여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거의 아물었고 臨床보고서도 완성되었다.

왼쪽 발꿈치가 수난을 겪는 와중에 오른쪽 발꿈치도 치료하였는데 이번에는 족저근막염 특정혈로 널리 알려진 수천, 복삼과 아시혈을 집중적으로 치료하였고 교신도 가끔치료하여 지금은 양쪽 발이 완전히 나았다.

 

東南亞 해외여행

무극보양뜸의 매력에 반해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자랑을 했으니 주변 지인들은 내가 침뜸을 배운다는 사실으르 다안다. 몇 해 전 모임에서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경유하는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여성이고 남자는 달랑 4명. 여행을 가면 원래 예민한 여성들이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도 예외없어 가지고 간 침뜸으로 응급조치를 한 일이 있다.

 

많이 걸어 종아리가 아프다. 熱이 많이 난다. 물을 갈아 먹어 배가 아프다. 변비 기운이 있다 등등 대부분 筋肉이나 神經性 질환으로 평소 배운 지식에다 旅行중 이러저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따기 등 치료법을 사전에 들여다보고 갔기 때문에 應急처치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海外여행만 나가면 아프지나 말아야지 하는 걱정이 많은데 어설프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도 있으니 든든하다는 일행도 있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더라도 침뜸을 정규과정으로 배웠다는 자체가 사람들을 安心시키는 조건이 되는 것 같다.

 

정통의술 침뜸, 불법인가? 합법인가?

하루는 무극보양뜸에 대한 나의 설명을 들은 친구가 取材차 내가 봉사하는 종로 '동산奉仕室'을 방문하였다. 친구는 봉사 장면을 보고 정통의술인 침뜸이 왜 불법인가에 의문을 두고 이었다. 지금도 이 제목으로 네이버에 檢索하면 나온다.

기사를 좀더 소개하면 ''침과 뜸은 조상 대대로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온 우리 민족의 정통醫術이다.1962년부터 침구사 제도가 끊어져 현재까지 인정되고 있지 않은 침뜸이 아픈 서민들을 치료해 주고 있다. 우리의 뛰어난 의술이 잊혀져가는 사이 中國과 日本은 침뜸을 살려서 국민건강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서양에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北韓도 '高麗醫學'이라고 부르는 독자적인 의학체계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한다. 현대의학의 발상지라고 하는 西洋에서도 침뜸 연구에 적극적이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침뜸의학으로 고칠 수 있는 300여 疾病의 종류를 공식 발표했다. 환자들의 건강회복을 위해 무료로 봉사하고 있는 正會員들이 과연 불법의료행위를 하는지 묻고 싶다.'며 기염을 토한다.

언제까지 한국정통침구학회의 침뜸이 불법이라며 법원의 판결에 의존하며 세월을 보내야 되는지, 하루 빨리 침구사 제도가 마련되어 떳떳하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로 기사의 끝을 맺었다.(50+서울2014. 2월호)

 

수요일마다 奉仕 실행!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聖堂이나 敎會에 나가듯 나는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奉仕室로 향한다. 봉사실의 2인1조 베드에서 하루 종일 6~7명의 환자를 치료한다.

구당 선생님은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느 침과 뜸으로 병과 승부하며 병 고치는 재미로 살아온 침구사이다. 나의 마지막 승부는 침과 뜸이 최고의 의학임을 누구나 알게 되고 최고의 의술인 침과 뜸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게 되는 날 끝이 날 것이다.'

구당 선생님은 이미 백 세를 넘기셨고, 2008년 KBS추석특집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 같은 진정 국민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다.

 

일침이구삼약을 어떻게 이해 하면 좋을 것인가?

'一鍼二灸三藥에 대해 아는 바를 쓰시오'라는 주관식 문제가 주어진다면, 침뜸의학개론 예상 문제집에 나오는 이론을 인용하여 몇 가지 정답을 예측해 볼 수 있다.

A. '병을 치료하는 데는 鍼이 으뜸이고 두번째는 뜸(灸), 세 번째는 藥이다.' 또는 '효과를 보려면, 침은 한 번에 낫는 것이고, 뜸은 그 다음, 약은 적어도 세 첩이상은 써야 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重要한 것은 어느 것의 우선을 따지기 전에 세 가지 치료수단이 있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침과 뜸 그리고 약물, 이 셋은 傳統醫學의 대표적인 치료수단이다. 이것은 예상문제집에도 나오는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B. 침뜸을 먼저 쓰고 약물을 써야 한다. 침뜸을 놓고 약물을 알아야 진짜 훌륭한 醫師다. 이것은 '침뜸과 약물이 서로 돕는 作用을 한다'는 말이다. 손사막의 '천금방'에 나오는 말이다.

C. 병이 혈맥에 있으면 침이 아니면 미칠 수가 없고, 병이 주리에 있으면 뜸이 아니면 도달할 수가 없으며, 병이 장위에 있으면 약물이 아니면 건질 수 없다. 醫師에게는 침과 뜸과 약물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많은 의사들이 병을 치료함에 단지 약물만 사용하고 침과 뜸을 버리고 있는데 그래서야 어떻게 환자의 원기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양계주 '침구대성' 중의 '제가득실책'에 나오는 말이다.

 

B,C형은 한마디로 침과 뜸과 약물은 각각의 적응증이 있으며, 의사는 마땅히 질병과 필요에 따라 모든 치료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D형. 일침이구삼약이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순서나 양의 개념이 아니라 하늘, 땅,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가 되는 완전한 공동체 곧 하늘을 받들고 땅을 껴안으며 인간을 사랑하는 온전한 치료행위이다.

 

마무리 글

환자 치료시 긴급할 때는 鍼이 우선이고 침이 듣지 않거나 침으로 해결이 어려우면 뜸으로 해결을 보고 뜸으로 해결이 어려운 깊고 깊은 병은 藥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선조들이 전해주려고 한 깊은 뜻을 상기하면서 현대의학의 成果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의학지식도 충분히 活用하면서 침과 뜸을 제대로 알고 치료에 臨한다면 치료하지 못할 병은 없다고 생각한다.

ㅇㅇㅇ(뜸사랑 정회원 24기)

 

[나는 졸업한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치료했다. 고급과정 수료 중에 화상환자를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침뜸에 매혹되고 깊이 빠져들게되었다.]

 

행운

내 인생에 구당 선생님 외에 또 하나의 행운의 만남이 있다. 1982년도 수배중이던 후배에게 돈을 줄 것이 발각되어 직장에서 쫓겨나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나를 옹호하고 변호하다가 고초를 당했던 분이 당시 내 직속 상관이셨던 과장님이시다. 그분의 헌식적인 노력으로 나는 구제되었고 직장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은인

2014년 겨울. 그때 나를 구해준 선배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요새는 허리는 말할 것도 없고 잠도 잘 못자.'

 

요통

다음날 저녁 선배님이 사모님과 같이 내 집에 오셨다.

사모님은 '1987년도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2년 후에 다시 재발했었지요. 다른 병원에 가서 또 수술 했는데 5년 전에 재발 한 후로 낫지 않고 저 모양이에요. 지금 물리치료하면서 진통제로 버티고 있어요. 저이가 허리때문에 고생한지가 30년이 넘었네요.' 라고 하셨다.

 

걱정마세요

요추 4번을 누르니 아파하신다. '그래 거기야' 하신다. 이런 경우에는 요추3번과 5번을 같이 치료하면 될 것이다. 신유, 천종에도 표시했다. 폐유 천주 둔압 풍지도 위치를 확인했다. 곡지 백회혈을 표시했다. 눈처럼 들어간 요안에 뜸을 떴다.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긴장 푸시고 마음을 편하게 하십시오.'

돌아 뉘어 앞쪽 치료를 준비했다. 족삼리 관원 기해 중완을 표시했다. 갈증에 태계, 침의 분비를 촉진하는 지창, 합곡 태충 허리근육의 힘을 받쳐주는 천추, 그 아래 대거, 견우, 인당, 영향, 상성,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편안해, 그런데 허리 치료하면서 왜 손 발 어깨 머리에는 왜 뜸을 뜨나?'

'선배님, 그게 구당선생님의 독특한 의술입니다. 치료효과는 의술울 넘어 예술입니다.'

이틀 연속 치료하고, 하루 쉬고, 3번째 치료.

'통증이 크게 줄었다고 볼 수 없지만 잠자리는 아주 좋아졌어.'

 

오랜 병

이번에는 손발이 차가운 증상도 봐드려야겠다. 노궁, 용천에 뜸을 떴다. (4번째 치료)

 

5회째 치료

'오늘 치료 받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야.'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병이 오랫동안 사람 몸에서 자리잡고 살다가 빠져나갈 때 그냥 나가지 않고 화풀이를 하고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유 수평을 이루는 왼쪽 방광2선 바깥쪽 부근을 누르니 몸 전체가 움찔거린다. 가로 2센치, 세로 5센치 크기로 표시해두었다. 아시혈로 잡아 두었다. 아시혈에는 1센치 간격으로 침을 놓고 위아래 가운데 한 곳에는 3장씩 뜸을 떴다.

 

고비

다음날 쉬는 날 전화가 왔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가 유난히 부드러워. 다 나은 기분이야. 70~80정도 는 좋아진 것 같아.'

'좋아지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푹 쉬시고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6번째

방광2선 아시혈은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뜸을 5장 떴다.

'어제 오늘 몸이 확 달라진걸 느끼겠어.'

 

쇠뿔도 단김에

'목에 가래가 좀 끼는 것아. 코를 골아서 시끄럽다고 해.'

가래를 없애기 위해 천돌 염천, 코를 곤다고 했으니 하관.

 

선물

'오늘 자전거 타고 왔어. 하나도 아프지 않아.'

'선배님, 구당 선생님은 침보다 뜸을 더 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뜸이 면역력을 키워준다고 확신하고 계십니다. 무극보양뜸은 구당 선생님 의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죠. 이 보석 같은 뜸을 계속 집에서 뜨세요. 문제는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물

30년간 고장났던 허리를 고쳤습니다. 3번이나 수술한 허리였습니다. 30년 전 저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던 허리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 인생은 구당 선생님을 만난 인생이다. 나는 이 의술과 인생을 같이할 것이다.

 

 

 

김용석

(정회원4기, 미국김용석침뜸병원원장, 미주지부장)

 

[신기하게도 침뜸의사 3명은 무더운 날씨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봉사를 하는데도 모두 아무 탈이없었다. 봉사현장에서도 서로 무극보양뜸을 떠주면 건강하게 안 아프게 되어 환경에잘 적응하도록 하고 탈이 안 나게 해서 침뜸봉사를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구당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한 번 되새겨졌다.]

 

이번 봉사는 온두라스다

온두라스 가기 한 달전, 고광준 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온두라스 침뜸봉사를 해달라는 것이다. 조광환 선생님, 송동진 선생님이 가겠다고 하셨다.

침과 뜸, 장침, 알코올, 솜 등을 준비하며 침뜸봉사 가기 위한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날 LA공항에 밤 10시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온두라스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1시간 기다렸다가 온두라스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1시간 후 온두라스에 도착했다.

 

봉사현장

무더운 날씨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50분 정도가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2층으로 된 집이 우리 봉사자 세 사람 외에 21명의 팀이 같이 6일간 지낼 곳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침뜸과 물품 차트를 준비해서 교회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침뜸치료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각처에서 1시간은 기본이고 7시간을 걸려서 온 분들도 많았다.

 

치료를 위한 준비

구당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침, 뜸, 물 젖은 솜, 마른 솜, 뜸지기를 준비하고 치료를 위한 치료대 6개를 준비했는데 원탁 테이블 밖에 없어 그걸로 사용하기로 했다.

차트를 나누어 준 다음 작성하여 주는 대로 한 사람씩 차례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용혈인 곤륜 위중 요양관 신유 심유 고황 천종 천료 풍지 천주에 자침하고 다음에 합곡 태충 양릉천 기해 관원(남) 중극 수도(여) 중완 거궐 동자료에 자침하고 기혈을 보충하기 위해 무극보양뜸을 모든 분들에게 떠주었다.

그곳은 열악한 환경이기에 먹는 것이 부족해 영양 실조에 무더운 날씨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려 기진맥진한 상태이고 찬물을 많이 마시다 보니 비위가 냉해져 위장병과 두통, 어지럼증 환자가 많았다.

풍습으로 인해 관절염, 디스크, 어깨통증 환자도 많았고,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족저근막염과 발바닥 통증환자도 많았다.

 

기적

역시 구당 침뜸은 놀라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발바닥 통증으로 10년간 제대로 못 걷던 환자가 단 한 번의 치료로 통증 없이 걸어 나가고, 걷지도 못하던 관절염 환자가 슬안혈과 아시혈과 허리에 단 한 번의 치료로 뛰어 나가고, 합곡 태양혈, 아시혈에 단 한 번의 자침과 뜸으로 14년 된 편두통 환자가 완치되어 기쁨과 눈물로 감격하고, 4년간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했던 디스크 환자가 요추345번에 자침과 뜸 그리고 둔압혈에 장침 등 단 한 번의 치료로 앞으로 뒤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한 침뜸

치료가 끝나고 피로에 지친 몸으로 숙소로 돌아와서는 팀원들이 토사곽란으로 3~4명씩 쓰러졌다. 감기, 더위를 이기지 못해 탈진환자가 속출하고 몸살로 눕는 팀원들이 많았다. 그분들을 치료하느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침뜸의사 3명은 무더운 날씨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봉사를 하는데도 모두 아무 탈이 없었다. 봉사현장에서도 서로 무극보양뜸을 떠주면 건강하게 안 아프게 되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하고 탈 안나게 해서 침뜸봉사를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구당 선생님 말씀이 다시 한 번 되새겨졌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고 땀을 많이 흘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배탈 설사를 이겨 내게 해주는 것은 구당 선생님의 무극보양뜸 덕분이다.

다음날 부터는 환자들이 소문을 듣고 점점 늘어갔다. 그렇지만 하루에 220명만 치료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분은 찾아와서 어제 치료받고 나서 단 한 번의 치료에 몇 년간 잘 걷지도 못했는데 뛰어다닌다면서 감사하다고 울먹이면서 이야기한다.

 

감사한 의료봉사

어느 날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현지 목사님, 사모님께서 침뜸치료를 받으러 오셨다.

무극보양뜸과 간유 비유 지기 양문에 뜸을 떠주고 함께 오신 현지 목사님께 뜸을 매일 떠주면 합병증과 당뇨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뜸뜨는 방법을 알려주며 직접 해보시라고 했다. 마침 현장에 뜸 떠주는 분이 부족해서 애를 먹고 있던 터에 그 목사님께 부탁했더니 흔쾌히 도와주셨다.

돌아오는 날 목사님께서 배웅 나오셔서 눈물을 흘리며 선물로 준 쑥과 뜸지기로 열심히 떠주겠다 하시면서 껴안아 서로 포옹하며 눈물로 아쉬운 작별을 나눠야 했다.

매일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 4곳에서 침뜸봉사를 해서 하루에 220명, 4일 동안 총 880명을 침뜸 치료하고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왔다. 구당 선생님과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의 감사와 찬양 영광을 올립니다.

국어에 대한 중대한 誤解(오해)

- 韓國兒童의 思考能力 低下現象(저하현상)과 그 原因에 대한 考察(1971) 下

 

 

11. 「센서스」라는 말의 來歷

 

우리나 일본인은 對話에 있어서나 문장에 있어서, 한자어로나 고유어로 충분히 번역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언어까지도 즐겨 英語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요새 것으로는 「에티켓」, 「브리핑」, 「심포지엄」, 「세미나」, 「센서스」, 「마이 리빙」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것은 지극히 적은 일례에 불과하거니와 요새, 신문기자나, 아나운서들은 무척 많은 영어를 우리말에 섞어 쓰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위의 例 가운데, 「센서스」라는 말이 있는데 언젠가, 국가가 하는 인구조사표의 表題(표제)에서 필자는 처음 보는 말이었다. 지금도 필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여, 그 때 필자는 이것을 보고 심한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이 나라의 정치를 하고 행정을 한다는 이른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判斷力이 얼마나 흐려져 있는가를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인구조사」라면 적어도 3천만 國民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표제가, 그래도 글줄이나 읽은 바 있는 필자도 모르는 외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인구조사가 미국이나 俄羅斯(아라사)의 식민지로서 본국에 보고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면 모르되,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 표제를 국민의 절대다수가 모르는 외국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저의가 那邊(나변 : 어느 곳에)에 있는 것인가?

 

언어나 문자는 인간과 인간간의 의사소통이 그것의 유일 절대의 존재 이유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가 중국에서 온 漢字語를 사용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과 同樣으로 우리가 그밖의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결코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민이 모르는 이와 같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조상의 빛난 얼」이라든가 「主體意識」(주체의식) 등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함이다. 또, 「우리말 도로 찾기」와 「우리말 갈고 닦기」와는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 것인가? 또, 국민에게 대하여,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事大思想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主體思想(주체사상)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엄숙히 묻고자 한다.

 

1) 外國語 사용 않는 중국인

중국인은 어떤 외국어라도 그대로 사용하는 법이 없고, 완전히 漢字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例를 들면, 化學(화학)에 있어서의 元素(원소)의 명칭은 말할 것도 없고 分子構造式(분자구조식)의 부호까지도 완전히 漢字를 사용한다. 그들은 「올림픽」을 「世界運動大會」(세계운동대회)라고 한다. 이와 같이 중국인이 외국어를 완전히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은 중국어의 어휘가 유럽어보다도 더 豊富(풍부)하고 더 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어의 어휘가 그렇게 풍부하고 또 그렇게 완전할 수 있는 것은 漢字 造語의 萬能性(만능성)에 연유하는 것이요, 이 造語의 만능성은, 위에서 본 바, 漢字가 갖는 고도한 기능에 原因(원인)한다.

 

2) 二重文字 사용하는 韓國人의 행복

漢字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글자 한 字 한 字가 다 저마다 뜻을 가지고 있는 너무도 완벽한 문자이기 때문에, 순 한문 문장을 읽을 때 우리 마음은 一刻(일각)의 여유도 가질 수 없는 중압감으로 고통마저 느끼게 된다. 또 이와는 반대로 순한글 문장을 읽을 때는 그것이 너무도 미련하고 더뎌서 완행열차라도 탄 것처럼 또한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國漢文 混成(혼성) 문장을 읽을 때는 우리의 마음은 긴장과 이완이 쾌적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舞踊(무용)을 할 때와도 같은 율동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부담이 거의 없이 쾌속조로 독서를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인류가 발명한 모든 문자 중 가장 좋은 表音文字와 가장 슬기로운 表意文字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과분한 幸福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도 작년 「讀書週間」의 조사인데, 세계의 연평균 일인당 독서량은 일본인이 최고로 年 3천面, 서구인이 年 1천80面, 한국인이 年 60面으로 되어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일본의 「石井式 漢字敎育」(석정식 한자교육)의 창안자 石井勳(석정훈)은 그 원인은 오로지 그들이 漢字와 「가나」의 混用文(혼용문)을 사용하는 데 있다고 하였고, 또 일본인의 이와 같은 위대한 독서력에 대하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데보노 박사는 『이 독서력은 장차 日本을 세계제일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12. 漢字習得의 容易性

1) 3천字가 60만語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漢字는 2천字를 별로 넘지 않는 것이요, 만일 3천字만 있다면 쓰고도 남을 것이다. 中國에 있어서도 담화나 문서상에서 보통 사용하는 漢字는 3천字 정도하고 한다.

英語는 우리나라에 있어, 대학입시를 치르려면 단어 5천 개는 알아야 하고, 歐美(구미)에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자면 최소한 단어 1만 개가 필요하고, 학술을 연구하자면 단어 3~4만 개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漢字는 왜 이렇게 소수로 足한 것인가. 그것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자 2개를 연결함으로써 무제한 造語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 3천字를 2개씩 연결하면 60만 단어가 된다고 한다. 그 결과 基本漢字(기본한자) 3천 개를 알면 60만 단어를 不學而解(불학이해 :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음)하게 된다. 그러니까 漢字 한 字를 안다는 것은 한자어 수백 수천 개를 안다는 결과가 된다. 例를 들면, 「論」자 한 字를 습득하면 「論」자가 들어가서 된 말, 論文(논문), 論法(논법), 論說(논설), 論述(논술), 論議(논의), 論評(논평), 論究(논구), 論告(논고), 論難(논란), 論理(논리) 등, 또 輿論(여론), 議論(의론), 立論(입론), 異論(이론), 正論(정론), 衆論(중론), 討論(토론), 總論(총론), 通論(통론), 公論(공론), 空論(공론), 國論(국론), 世論(세론), 時論(시론), 言論(언론) 등 50여 단어를 배우지 않고 그 단어의 절반의 뜻을 알고 들어가는 것이요, 만일 「論」자의 짝이 되는 문자까지 알면 그 단어는 배우지 않고 알게 된다.

 

여기서 漢字는 인간의 추리력과 상상력을, 정신능력의 밑바탕에서 길러주게 된다. 漢字語의 기억은 기계적 暗記(암기)가 아니요, 事理의 이해로 성립되는 정신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현재 「漢字에 의한 才能開發」이라 하여 유치원의 兒童에서부터 한자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괄목할 교육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영어는 그것을 解得하자면, 단어 만 개면 만 개, 십만 개면 십만 개를 한 개씩 따로 암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래서 영어 학습이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위에서 본 바, 「論」자가 들어가서 된 어휘를 한글로 적으면, 논문, 논법, 논설, 논술, 논의, 논평, 논구, 논고, 논란, 논리, 여론, 의론, 입론, 이론, 정론, 중론, 토론, 총론, 통론, 공론, 공론, 국론, 세론, 시론, 언론 등으로 적으면, 이 50여 개의 어휘를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처럼 한 개씩 따로따로 암기하여야 한다.

 

2) 音記漢字語(음기한자어) 暗記 不可能性

어떻게 하여서라도 암기만 할 수 있다면 문제는 또 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形態(형태)와 發音(발음)이 동일하거나, 근사한 이 많은 2음절어의 뜻을 따로 따로 암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글주의자는 표음문자로 기록된 영어 단어를 암기할 수 있다면, 한글로 音記된 한자 단어도 암기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그들의 두뇌의 劣等性(열등성)을 증명하는 것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다.

 

그들은 알파벳과 한글을 혼동 내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양자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목적을 달리하는 것이다. 알파벳의 音素는 한 개의 단어를 형성할 때만 결합한다.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결합과 동시에 表意化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漢字와 同樣으로 表意文字가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영어 단어는 아무리 개수가 많더라도 노력하면 암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의 音素는 결합함으로써 한 개의 音을 표현하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表意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것만 가지고는 如何(여하)히 뜯어 맞춰보아도 表意化되지 않는다. 과거 50여년간의 한글학자의 노력은 한마디로 말하면 「한글의 表意化(표의화)」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성공하지 못하였고 또 성공할 수도 없는 것은 이 까닭이다. 더욱이 앞으로 밝혀질 바와 같이, 우리 국어에는 고유어가 30%이상, 한자어가 80%이상의 異義同音語가 있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의 암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13. 漢字廢止論의 기본 이론

한글주의자가 말하는 漢字廢止(한자폐지)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漢字는 남의 것이니까 없애야 한다는 것이요, 그 둘째는 漢字는 어려우니까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의 이유는 名分論(명분론)이라고 한다면, 둘째의 이유는 實利論(실리론)이라 할 것이다. 첫째 명분론은 그 생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린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위에서 밝혀졌으니, 여기서는 둘째의 실리론인 漢字는 어려운 물건이라는 사상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漢字는 한글주의자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결코 어려운 문자가 아니다. 漢字는 세계의 문자 중 가장 습득하기 쉬운 문자다. 필자의 실험에 의하면, 보통의 정신능력을 가진 성인(실험대상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은 2천개의 漢字 (시중에서 파는 「二千字文」)를 2개월간에 완전히 습득하였다. 일본인의 실험에 의하면, 漢字의 기억은 3~4세 때가 가장 빨라서 유치원의 아동에게 漢字 천字 정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한다. 필자 자신의 유년시절의 경험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면 한자는 왜 이렇게 기억이 쉬운 것인가.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① 漢字는 문자 개개에 따로따로 의미가 하나씩 들어 있는 것

② 字劃(자획)의 구성이 저 혼자서 어느 정도의 의미를 표시하고 있는 것

③ 文字 개개가 서로 다른 형태를 가졌고 또 그 형태가 變化無雙(변화무쌍)하여 개성적이고 예술적인 것

그래서 漢字를 기억하는 것은 암기하는 일이 아니요, 理解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漢字는 기억이 용이하고, 개념 파악이 정확하고 또 그 기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이 까닭이다. 그래서 漢字를 사용하고 한자어가 國語가 된 나라에 있어서 漢字를 기억하는 것은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것의 10분의 1, 혹은 1백분의 1의 노력도 要(요)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바의 이유로, 漢字는 습득한 字數가 증가하면 할수록 문장을 이해하는 범위와 심도가 자동적으로, 또 가속적으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한글주의자가 말하는 「漢字는 어려운 문자」라고 하는 주장은, 善意로 해석하면 그들의 無知의 소산이라 할 것이요, 惡意로 해석하면 그들의 非理(비리)를 貫徹 實現(관철 실현)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私利(사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국민을 기만하는 수작이라 할 것이다.

 

14. 異義同音語

1) 80%가 異義同音

고급 개념을 갖는 한자어는 2음절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3천字가 서로 합하여 60만 單語가 되는 까닭으로, 낱개의 한자의 경우와 같이 한자어는 異義同音語가 많게 될 수 밖에 없다. 例를 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전기」, 「수도」가 있는데, 「전기」는 電氣, 前期, 全期, 傳記, 戰機, 戰記 등 15~16개의 「전기」가 있고, 「수도」도 首都, 水道, 水稻, 修道, 受渡, 등 7~8개의 「수도」가 있다. 이와 같이 漢字語는 한 개의 발음이 한 개의 단어에 한정된 것은 전 어휘의 20%가 되지 못하고, 그 80% 이상이 이의동음어로 되어 있다.

 

한글학회 「큰사전」에는 8만8천여 개의 漢字語가 있는데, 그 가운데 6만8천여字가 異義同音이다. (一國의 국어 대부분이 이의동음이라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한자어를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에도 공통된 현상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는 없는 일이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어는 낱글자의 경우와 같이 그 音만을 표음문자로 표기하면 그 뜻을 모르는 것이 원칙이다. 例를 들면, 「한자」라고 기록된 文字가 있다면 이것만으로는 그것이 무슨 뜻의 말인지 알 수 없다. 하나의 사물의 뜻을 나타내는 文字가 그것 하나만으로는 그 의미의 解得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넌센스」다.

 

한글로 된 한자어의 의미를 解得하는 방도가 오직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문장으로 되었을 때 그 단어의 前出語(전출어)와 後續語(후속어)의 관계로 미루어, 「이때는 그 뜻일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포목가게에 가서 광목 한 자만 떠 오너라』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한 자」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추측이라는 것도 언어 환경에 의하여 解得한다는 원시적 방법에 불과한 것으로서 일방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요, 그 發音은 꼭 그 뜻이 아니면 안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한글 문서를 이렇게라도, 즉 경험과 눈치로 判讀(판독)할 수 있는 것은 書簡(서간)이나, 한국산 소설 나부랭이의 下等 문서에 한하는 것이요, 哲學, 藝術(예술), 科學(과학), 醫學, 法學 등 高等 문서의 解得은 불가능한 것이다.

 

일개의 단어를 기록한 문자를 보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의 「聲音」(성음)이요 언어가 아니다. 즉, 그것은 意思의 전달수단이 될 수 없는 하나의 傀儡(괴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한자어를 한글로 음기하면 漢字 낱개의 경우와 같이 그것은 「非言語」로 化한다. 漢字語는 漢字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가 여기 있다.

 

2) 「可」는 말이고 「가」는 말이 아니다

이 사실을 다음 實例(실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자.

국민학교의 성적통지표에는 행동면과 학과면을 둘로 나누어 그 성적이 기입되어 있다. 첫째, 행동면에 있어서는 제일 우량한 것을 「가」라고 적었고 과학면에서는 제일 불량한 것을 「가」라고 적었다.

 

첫 번째의 「가」는 「가나다」順位(순위)의 「가」이고 두 번째의 「가」는 「秀優美良可」(수우미양가)의 「가」라고 한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이 설명을 들으면 『아마 그런 것인가 보다』하고 납득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漢字를 모르는 아동들에게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같은 물건인데, 위에 있을 때는 제일 좋은 것이 되고, 아래 있을 때는 제일 나쁜 것이 되는 물건이 무엇이냐?』 동일한 지면 위에 「가」字를 똑같이 써놓고 위에 있는 「가」는 제일 좋은 것이고 아래 있는「가」는 제일 나쁜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아동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동은 理性이 발달하지 못하여 이와 같이 不合理(불합리)한 사실에 대하여 抗議(항의)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선생의 말이니까 억지로 아는 것처럼 체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字가 일단 성적표를 떠나면 아동들에게는 완전히 알 수 없는 文字로 化한다. 그래서 「가」라는 어휘는 아동들의 머리 속에 남지 않는다. 이것은 단음절어의 경우이거니와 2음절어의 경우도 이와 같다.

여기 「사전」이라는 말이 있어, 漢字를 모르는 아동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고 치자. 국어사전에는 「사전」이 辭典, 事前, 史前, 史傳, 私錢, 私田, 寺田, 沙田, 등 14~15개의 「사전」이 있다. 그러면 아동이 이 14~15개의 「사전」 중에 어느 것을 取(취)하고 어느 것을 捨(사)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면 아동이 열심히 공부를 하면, 이 14~15개의 「사전」의 「풀이」를 다 암기할 수 있고 또 14~15개의 「사전」을 경우에 따라서 다 구별하여 해석할 수 있고 또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동들에게는 「사전」이라는 물건은 「소리」일 뿐이요, 「언어」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머리 속에 「사전」이라는 어휘는 들어가 박힐 수 없다.

 

3) 「사전」이라는 두 글자

「사전」두 글자를 가지고 좀 더 파헤쳐 보자. 「사전」의 위아래를 바꾸면 「전사」가 된다. 「전사」에는 前史, 前事, 田舍, 傳寫, 戰士, 戰死, 戰史, 殿舍 등 10여개의 「전사」가 있다. 그런 까닭으로 「전사」라는 어휘도 아동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박힐 수 없다.

「사」字 하나는, 事, 仕, 似, 寫, 舍, 史, 司, 四, 寺, 思, 등 1백여개의 「사」字가 있다. 그러면 아동들이 이 많은 단음절어를 「사」하나의 음으로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또 「사」음이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私家, 査家, 史家, 四角, 私感, 舍監, 死去, 辭去, 事件, 死境, 斯界, 四季, 社告, 思考, 事故, 社交, 謝過, 史觀, 詐欺, 社旗, 沙器, 死期, 士氣, 史記 등 2천여 단어가 있다. 그러면 이 단어들을 한글로 써 놓으면, 동일하거나 근사한 이 많은 2음절어들을 아동이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전」音을 보자. 「전」音의 글자는, 全, 田, 前, 典, 專, 展, 電, 傳, 戰, 轉, 銓 등 1백 50여개의 「전」字가 있고 또 이 「전」字가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電氣, 電機, 戰記, 前期, 全期, 轉機, 戰機, 轉記, 電話, 戰化, 田舍, 田家, 傳家, 轉嫁, 殿閣, 篆刻, 傳喝, 錢渴, 前職, 轉去, 典據, 電擊, 前景, 前古, 戰士, 戰史, 戰死, 前史, 錢穀, 戰功, 前功, 全科, 戰果, 戰科 등 2천5백여 단어가 있다. 그러면, 이 많은 1음절어와 2음절어를 한글로 암기를 하여 놓으면 漢字를 완전히 모르는 아동들이 이것들의 뜻을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고 또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실은, 아동들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요, 여하한 天才도 불가능하다.

 

이상은 常用漢字 2천字 가운데 다만 두 개의 발음 「사」音과 「전」音을 가진 문자에 대하여 본 것이요, 2천개의 漢字와 8만5천개의 漢字語가 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동들은 우리 국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고등개념을 가진 한자어를 하나도 모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도 모른다는 말은, 사용 빈도가 많은 한자어는 그들이 아는 것처럼 보이고, 또 사용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언어의 개념은 지극히 애매하고 부정확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恐喝(공갈)」과 「거짓뿌렁」, 「夫人(부인)」과 「師母(사모)님」을 같은 말로 알고 있다. 즉 그들은 한자어를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해방 이후의 國民敎育(국민교육)은 한마디로 말하여 「낱말 풀이」교육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算數, 自然, 社會生活(사회생활) 등 학과목의 전부를 그 內容(내용)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더 많이 거기에 나오는 단어의 「낱말 풀이」를 가르치는 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자가 없는 한자어, 즉 내용이 없는 껍데기, 다시 바꿔 말하면 뜻이 없는 소리만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렇게 백년이 아닌 천년을 배워보아도 단 한 개의 단어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어를 모르는 原始人이 되었다.

 

4) 漢字 제거가 思考力 제거

결론은 해방 이후의 한글專用 교육은 한국아동으로부터 言語能力을 제거하였다. 이것이 한국 아동의 思考能力 저하의 근본적이요 절대적 원인이다.

무릇, 인간의 사고활동은 言語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언어 없이는 思考할 수 없다. 思考活動과 언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요, 이 양자는 상호작용에 의하여 발달한다. 즉, 사상이 보다 고급하여지면 언어가 보다 고급하여지고, 보다 고급하여진 언어는 또 보다 고급한 思考를 가능케 한다. 이것이 사고능력의 발달법칙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은 자기의 言語能力밖에는 思考할 수 없다. 한국 아동이 推理力(추리력), 創意力(창의력), 理解力(이해력), 解釋力(해석력), 응용력(應用力), 作文力(작문력), 한 말로 하면 思考能力이 열등하게 된 것은, 그들이 고등한 사고활동에 필요한 文明語彙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要(요)하면, 학교교육으로부터의 漢字의 제거는 漢字語의 제거를 결과하였고, 漢字語의 제거는 아동들로부터 言語能力을 제거하였고, 언어능력의 제거는 그들로부터 思考能力을 제거하였다.

아동들로부터 언어능력을 제거하여 놓고, 학부모들은 그들더러 공부만 못한다고 성화를 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마치, 性能力이 없는 자식더러 아이만 못 낳는다고 안절부절 못하는 어리석은 어버이를 보는 것과도 같은 안타까움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아이 못낳는 원인을 교접 체위가 잘못되어 그러는가, 포옹기술이 부족하여 그러는가, 혹은 그 일에 대한 성의가 없어 그러는가, 하고 온통 딴곳에서만 그 까닭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내가 이런 억지 비유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어버이와 미련한 스승의 틈바구니에 끼여 헤어날 길 없는 곤욕을 겪고 있는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하도 불쌍하고 딱하여 그러는 것이다.

 

15. 중고등학생의 言語能力

1) 중학생의 言語能力 국교생과 같다

이렇게 하여, 한국 아동은 6년을 배워도 國語를 모르고, 算術四則을 解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중고등학교 학생은 어떤가.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의 언어능력은 국민학교 6년생으로부터 고등학교 3년생까지 質的으로는 大差(대차)가 없고, 양적으로 어휘를 좀더 알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質的이라 함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이 알고 있는 단어는 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아마 그런 뜻이겠지 하는 짐작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祝杯(축배)」와 「乾杯(건배)」를 같은 말로 알고 있고 「祝福(축복)」과 「冥福(명복)」도 비슷한 말로 알고 있다.

 

얼마 전에 「漢字敎育의 必要性」이라는 제목으로 중고등학교의 뜻있는 국어과 교사들의 연구발표회가 있었다. 다음은 발표자들이 말한 「漢字가 없이는 완전한 國語 敎育은 불가능하다」는 체험담 중의 몇 가지다. 고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필(隨筆)」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필은 방향이 있는 글」이라는 의미의 말이 있는데, 학생들은 여기 있는 「방향」을 전부가 「方向(방향)의 「방향」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의 「방향」은 「方向」의 「방향」이 아니고, 「芳香」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해 보아도 납득이 잘 가지 않고, 또 설명할 도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설명이란 것이 결국 漢字를 가지고 語源(어원)을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한자를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그 설명은 우이독경(牛耳讀經) 밖에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2) 音記漢字語(음기한자어)는 알 듯하다 만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때는 울면서 겨자 먹기로 좀 알 듯하지만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중학교 1학년 과학교과서에 「단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 「단체」는 物理․化學 용어로 「單體」의 「단체」이다. 이 「單體」의 「단체」를 「團體」의 「단체」와 어떻게 구별하여 가르치겠는가? 「綠陰(녹음)」과 「錄音(녹음)」, 「綠化(녹화)」와 「錄畫(녹화)」, 「週間(주간)」과 「晝間(주간)」, 「鄕愁(향수)」와 「香水(향수)」, 「敎師(교사)」와 「校舍(교사)」, 「考査(고사)」와 「枯死(고사)」를 어떻게 구별하여 가르치겠는가.

 

이와 같이 同一音의 단어 2개씩만 가지고도 가르칠 수가 없는데, 위의 例에서 본 바, 전기, 수도, 사전, 전사, 사고, 사상, 사기, 전공, 전과 등과 같이 5~6개로부터 15~16개의 同音語가 있는 단어들을 어떻게 구별하여 가르치겠는가. 가르치면 아이들이 구별하여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은 同一音의 단어의 경우를 보았다. 단어의 발음이 부분적으로 동일한 단어의 경우가 또한 그러하다. 例를 들면, 顯忠祠(현충사), 秉天祠(병천사), 松廣祠(송광사), 海印寺(해인사), 窒息祠(질식사), 腹上死(복상사), 雜誌社(잡지사), 新聞社(신문사), 鷄舍(계사), 豚舍(돈사), 餓死(아사), 橫死(횡사), 名士(명사), 志士(지사), 祝辭(축사), 弔辭(조사), 歷史(역사), 女史(여사) 등을 한글로 암기하여 놓으면, 여기 수많은 「사」字의 뜻을 일일이 구별하여 가르칠 수 있겠는가. 가르치면 학생들이 納得(납득)이 가고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렇게 부분적 同一音의 단어가 수만 개가 있는 까닭이다.

 

동일하거나 근사한 발음의 단어가 몇 십 개나 몇 백 개만 같으면, 어떻게 앞뒤를 뜯어 맞춰서 쐐기 박듯이 學生들의 머리 속에 억지로 틀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큰사전」에 있는 8만5천 개의 漢字語는 전부가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하면, 한글로 표기된 漢字語는 배울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학교 6학년으로부터 고등학교 3년생까지의 언어능력은 大同小異한 것이요, 그들도 또한 원시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과 事理에 대하여 독자의 완전 인식을 돕기 위하여 다음에 실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16. 『수지류는 뭐예요?』라는 이야기

1) 할아버지도 모르는 말

중학교 일년생인 孫子 아이가, 原稿(원고)를 쓰고 있는 필자에게 갑자기 『할아버지, 수지류는 뭐예요?』라고 묻는다. 「수지류」가 무슨 뜻의 말이냐는 말이다. 그는 지금 1학기 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필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까닭이 없다. 이런 質問을 가끔 당하는데, 필자는 이럴 때마다, 문제의 出處인 교과서를 보고 글의 내용을 읽어보고 나서 설명을 해 주곤 한다. 이 때도 필자는 그 말이 쓰여 있는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기술」이라는 책이었다. 그 가운데 「칠감」이라는 小題(소제)하에 「수지류는 휘발성 용제로 녹여 만든 것으로 피막이 강하여 내수성과 내구성이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前後를 모두 읽어보고 나서 간신히 이 말을 化學 용어의 「樹脂類」의 「수지류」인 줄을 알았다 (알았다고는 하였지만, 그것이 꼭 「樹脂類」의 「수지류」인지 필자는 지금도 단언할 수는 없다).

 

필자는 그것이 「樹脂類」의 「수지류」라는 것을 그에게 說明해 주고 나서, 그래도 자신이 없어, 『선생님은 이 말을 뭐라고 말씀하시던?』하고 물었더니 아이 말이 『선생님은 칠판에다 한문 글자를 마구 써놓고 설명하시는데 뭔지 모르겠어요』하고 웃었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제목인 「칠감」으로부터 「휘발성, 용제, 피막, 내수성, 내구성」을 차례로 물어보았더니 어름어름하고 똑똑한 대답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 비교적 자신 있게 말한 것은 「휘발성」은 『날아가는 거예요』라는 말 하나였다.

 

이 아이는 머리가 과히 나쁘지 않은 편으로 그 成績(성적)이 제 반에서도 10등 이내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아이다. 그러나 머리가 좋고 나쁘고가 문제가 아니다. 漢字를 모르는 그들에게 漢字로 어원을 설명해 보아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것은 明白한 일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설명을 하여야 선생 혼자의 답답증이 좀 풀릴 것이다.

이와 같은 學術的 어휘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물론, 「기술」교과서 하나가 아니요, 物理, 化學, 地理, 歷史 등 전부의 교과서가 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중학교 3년이나 고등학교 3년을 마쳐도 그들은 學術用語는 단 한 개의 어휘도 정확한 槪念(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2) 「수지류」를 「樹脂類」로 쓰면

이상의 어휘를 漢字로 바꿔 써보자. 그러면, 「漆의 材料, 樹脂類, 揮發性, 溶劑, 皮膜, 耐水性, 耐久性」이 된다. 독자가 보다시피, 이 글자들은 글자 자체가 「뜻 풀이」를 저 혼자서 다하고 있기 때문에, 이 어휘들에 대한 「낱말 풀이」라는 것을 애써 가르칠 필요도 없고, 또 애써 배울 필요도 없이 아이들은 혼자서 그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漆黑(칠흑)의 地獄(지옥)에서 光明天地(광명천지)로

 

위에서 우리는, 한글만으로는 완전한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래서 해방 후의 아동들은 언어를 모르는 原始人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래서 여하한 미국식 최신, 超최신의 교육기술을 흉내내 보아도 결코, 교육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이치를 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도 어려운 문제가, 解決(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이들에게 漢字만 가르치면 당장 그 자리에서 완전무결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도 크나큰 문제를, 16만 한국교사 전체의 힘으로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또 이렇게도 쉽게 말을 하니까 독자는 좀 어리둥절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말은 眞理다.

 

그들에게 漢字만 가르치면 漆黑(칠흑)의 暗黑(암흑) 속을 헤매이는 工夫地獄(공부지옥) - 한국 아동들에게는 學校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의 터전이 아니요,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깎아내는 生地獄(생지옥)이다 - 으로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을 손쉽게 구출할 수 있고, 또 나아가서 그들로 하여금, 밝은 태양 아래서 生과 학문을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17. 한글 大學生의 독서력

1) 書店(서점)대신 막걸리집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은 못 되지만 한국 대학생은 독서를 하지 않기로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갑자기 많은 대학이 생겼고, 그 대학들의 주변에는 당연한 일로, 상당수의 書店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4․19를 고비로 하여 대학가의 서점수는 해마다 감소되다가, 현재는 거의 완전히 서점이 없는 대학가가 되었다. 그리고 서점 대신 여자대학의 주변에는 몇십개의 양장점들이 있고, 남자대학의 주변에는 수많은 막걸리집이 흥취를 돋우고 있다.

 

작년(1970년) 가을 「讀書週間(독서주간)」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대학교 圖書館에는 藏書(장서)가 63만여 권이 있는데, 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은 全학생의 2%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장서를 이용하는 학생은 그 2%의 또 몇 %라고 한다. 대학생이 서점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책을 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책을 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을 그냥 빌려주는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 그들이 책도 사지 않고,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讀書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학이라 하는 것은 학문의 전당이요, 文明의 산실이다. 또 학문과 書冊이 불가분의 일체라면, 「대학생과 讀書」 또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事理는 이러한데, 그들은 왜 그렇게도 철저히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나 實相은, 그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요, 독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독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한글 大學生」이라는 말이 잘 표현하고 있듯이 그들은 한글 밖에 모른다. 그런데, 그들이 대학에서 접하는 書冊, 즉, 哲學, 藝術, 科學, 政治, 經濟, 社會, 醫學, 法學 등의 학술에 관한 서책은 그 전부가 漢字와 漢字語로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독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또 외국어도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외국 서적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한국 대학생의 외국어 실력은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의 대학생에 비하여 同一을 論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한국인의 發音能力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보통의 會話 정도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에서 쓰이는 고등개념의 어휘는 그 참뜻을 이해하기가 極難(극난)하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그것을 국어로 번역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외국어를 그들이 가진 국어능력 정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외국어 실력은 어느 한계를 가면 정지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필자의 의견으로는, 한글주의를 앞으로 계속 강행한다면, 외국어를 국어로 번역하여 가르칠 것이 아니요, 필리핀이나 인도에서와 같이 직접 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이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고, 또 외국어에 의해서라도 그들을 文盲(문맹)으로부터 구출 할 수 있을 것이다.

 

2) 性能力 없는 新郞

결론하면, 한국 대학생은 과거 25년간의 한글 교육에 의하여 국어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독서능력이 없는 것이다. 「독서능력이 없는 대학생」이라는 말은 「性能力이 없는 新郞(신랑)」이라는 말과 같이 하나의 「넌센스」요 비극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書冊을 외면하고 학문을 등지게 되었고, 그 필연적 결과로 소수의 총명하고 自覺하여 노력하는 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이나라 대학생은, 한글주의자가 말하는 바, 조상의 얼을 되살리고, 주체의식을 드높인다는 그 애국적이고 고매하고 원대한 사상과는 정반대의 방향-히피 類似(유사)의 족속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한글專用 敎育」 25년의 총결산이다.

 

3) 迷信(미신)의 祭物(제물)이 된 한국 대학생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이와 같은 엄중한 사실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다음에 그 證據(증거)를 또 하나 든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재작년(1969년) 정부에서 法官 채용시험을 실시하였는데, 응시자격은 법과대학 4년 졸업자와 同 3년 수료자이고, 채용 예정인원은 80명이었다. 여기에 應試(응시)한 법관 지망자수는 3천2백명이었고, 시험 결과 합격한 자의 수는 20명이었다.

 

이 결과에 당황한 당국은 그 이듬해(1970년) 객관식 出題(출제)로 하고, 커트라인이 없는 성적순위로 80명을 뽑겠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방침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필자는 그 후 다시 알아볼 흥미를 잃었다).

이상의 사실을 분석하면, 3만2천명 대 20명이니까, 1백60 대 1의 비율이 된다. 즉, 1백60명 중 쓸 만한 것은 단 1명이고 나머지 1백59명은 다 못 쓸 것들이라는 말이다. 한 개의 法科大學에서 한 回(회) 졸업생을 1백명으로 친다면 그 중 0.6명이 겨우 쓸 것이고 나머지 99.4명이 못 쓸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小數로 分割(분할)할 수 없으니까, 두 개 대학 한 回 졸업생을 합친 2백명 중에 법관이 될 만한 자는 1명꼴로 산출이 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 나머지 1백99명은 어디가 쓸 것인가, 세상에 장사치고는 막 되어먹은 놈의 장사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위의 應試者는 하나도 빠짐없이 15~16년을 공부한 청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다면 교육자나 학부모는 그 원인에 대하여 좀 생각하여 볼 필요는 없겠는가.

또 하나 희한한 일은 시험 결과에 대한 당국자의 태도다. 적어도 法官이라면, 국민의 생명․재산의 死活得失(사활득실)을 판가름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者다. 그 法官을 採用(채용)하는 데 있어, 연필을 굴려 가지고 하는 O, X 시험에 의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닌가. 선醫員(의원)이 사람 죽인다는 말이 있다. 제 나라 말로 된 제 나라 新聞 한 장 똑바로 읽을 수 없는 법관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것이요, 法官이 정히 없으면 재판소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 국민의 피해를 보다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16년간의 공부를 하고도 제 나라 말로 된 제 나라 신문 한 장 똑바로 읽을 수 없다는 현상은 과거의 인류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요, 현재에 있어서도 지구 표면 어느 곳에 가 물어 보아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실로,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는 수백만 한국 청소년들은, 다만 몇 사람 한글주의자의 無知와 偏見(편견)과 迷信(미신)과 私利(사리)의 祭物(제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제물이 된 줄도 모르고, 배우고서도 글을 모르는 답답한 삶을 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文明社會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또 있어본 일도 없다.

 

18. 中國과 日本의 漢字廢止 運動

1) 中國人의 錯覺(착각)

중국인이 漢字에 대하여 疑念(의념)을 갖고 이것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妄想(망상)을 갖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 소위 아편戰爭(전쟁) 이후, 백인에 의하여 본격적 침략을 당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1890년대부터 실질적인 漢字改革(한자개혁)이 시도되었다. 이 시도에서 최초로 나온 것이 音標文字(음표문자)인 「傳音快字(전음쾌자)」이고 계속하여 「官話合聲字母(관화합성자모)」, 「合聲簡字譜(합성간자보)」, 「主音字母(주음자모)」 등을 고안하여 중국어의 表音文字化에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리고 이렇게하여도 되지 않으니까 「國語羅馬字撰音法(국어라마자찬음법)」 혹은 「羅典化新文字(나전화신문자)」 등 한자 형식의 표음문자 대신 로마字를 이용하는 방안도 案出(안출)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漢字 廢止 운동은 民 官에 의하여 光緖淸國(광서청국)으로부터 孫文(손문) 중국과 蔣介石(장개석) 중국을 거쳐 毛澤東(모택동) 중국에 이르기까지 일백년의 세월을 두고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를 표음문자화한다는 것은, 위에서 본 바의 이유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자폐지론의 急先鋒(급선봉)이었던 北京大學 교수 錢玄同(전현동)은 1918년에 드디어 한자폐지의 불가능을 선언하였고, 공산독재자 毛澤東도 한자폐지를 완전히 단념하였다. 그 후 그들은 1958년 全國人民代表大會(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漢字撰音案(한자찬음안)」을 제정하여 이것을 초등학교 교육에서 권장하고 있는데, 이 안은 漢字音을 로마字로 표기하는 법으로써, 周恩來(주은래)가 그의 보고에서 말하였듯이, 이것은 漢字音 표기와 共通語(공통어) 보급을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된 것이요, 한자의 폐지를 목적으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생각건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그들의 나라를 中國, 中原, 혹은 中華(중화)라고 하여 천하에 제일 가는 文明國으로 자처하고 있던 중국인이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던 洋夷(양이)에게 一朝(일조)에 여지없이 유린당함으로써 그들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뿌리깊게 박혀 있던 그들의 尊大(존대)와 自尊(자존)과 傲慢(오만)은 一朝(일조)에 철저한 열등의식과 卑屈(비굴)과 事大思想으로 1백80도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들 자신의 나라가 문명국 아닌 야만국이요, 그들이 洋夷(양이)라고 멸시하였던 백인이 진짜 문명국인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유럽에 유학한 중국인이 쓴 소설 등에 그 때의 중국 젊은 지식인의 이와 같은 정신상태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 그들이 表音文字를 사용한 데에 있었다고 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와 같은 하나의 妄想(망상)이었다. 즉, 그들의 과거의 고도한 정신 문명이 현대적 과학문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 현상은, 그 원인이 漢字 사용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현재 중국 본토의 과학문명의 초고속적 발달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2) 亡國論 용납 않은 日本 국민

중국인에 이어 한자 폐지를 云謂(운위)한 것이 일본인이었다. 일본에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어리석은 무리들이 있어 상당히 장구한 세월을 두고 한자 폐지를 끈질기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극소수 정신도착자들이 주장하는 이와 같은 亡國論(망국론)을 文明한 일본 국민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가 발명한 문자 중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간결하고 가장 기억이 용이하고 가장 경제적 문자인 한자의 뒷받침을 얻어 그들의 문화는 지금 그들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19. 天涯無依의 문화적 孤兒

1) 自然에의 反逆(반역)

언어와 문자는 생활에서 나왔고, 생활 속에서 살고, 생활과 더불어 변천하는 일종의 生物이다. 그런 까닭으로, 언어와 문자의 발생, 발전과 소멸은 自然淘汰의 법칙하에 있는 것이요, 몇 사람 마음대로 없앨 수도 없는 것이요, 만들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래서 인류의 文明史에는 그들의 언어나 문자를 인위적으로 一朝에 改廢(개폐)한 예가 없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한자폐지론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한글학자의 발명품이 아니요, 중국과 일본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다. 무릇, 비진리를 진리로 착각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두뇌의 低劣性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저열한 것은, 두뇌가 저열한 자가 주장하는 非진리를 진리로 잘못 알고, 다시 그것을 모방하는 자의 두뇌다.

 

한자폐지론의 先唱者(선창자)인 중국인과 그 아류인 일본인은 그들 자신의 非를 깨닫고 이미 오래 전에 이 생각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한글주의자만은 그들 자신의 愚劣(우열)을 지금까지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많이 길러본 사람이면 아는 일인데, 聰明(총명)한 아이는 울다가도 그 울게 된 원인이 제거되면 울음을 즉각 그친다. 그런데 미련한 놈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그 원인이 제거된 후에도 계속 운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물고 늘어지면 죽어도 놓지 못하는 그들의 뱀같은 執拗性(집요성)에 의하여, 자연에 反逆(반역)하는 이 무서운 非理(비리)가 오늘 현재 이 강토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 무서운 사실은 이 나라의 3천만 국민은 이 戰慄(전율)할 사태 발전에 대하여 산천초목들처럼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있다.

 

2) 漢字 消滅(소멸) 후에 오는 것

그러면, 이 땅에서 漢字가 깨끗이 消滅(소멸)한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야기될 것인가.

① 소수의 特殊知識人(특수지식인)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언어능력의 원시화에 의한 思考能力의 퇴화로 말미암아 국민의 정신상태는 漢字 수입 이전의 저급한 단계로 환원될 것이다.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② 학술을 연구한는 자는 필리핀이나 인도에서와 같이 순전히 유럽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은 백인화한 소수의 知識貴族(지식귀족)과 한글밖에 모르는 다수의 원주민 低知識族(저지식족)의 두 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③ 인류문명은 지금까지 地表(지표)의 東과 西에서 크게 나누어 두 갈래로 발전하여 왔다. 알파벳 문자와 라틴어를 기초로 하는 「白人文明」과 한자와 한자어를 근간으로 하는 「黃人文明」이 그것이다.

우리의 民族文化는 황인문명의 일환으로서 한자와 한자어를바탕으로 하여 생성되고 발전하여 왔다. 우리는 한자를 없앰으로써 이 강토에서 수천년 동안 連綿(연면)히 계속되어온 우리의 고유문화는 그 전통이 단절될 것이다.

그 불가피한 결과로서 국민의 생활감정과 사고방식은 外形的(외형 적), 또 末梢的(말초적) 면에서 歐美化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앞으 로의 문화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과 같은 無性格(무성격)한 하나의 植民地문화로 추락할 것이다.

 

④ 아시아 대륙의 십억 황인종이 향유하고 있는 동양문화권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함으로써 韓民族은 天涯無依(천애무의)의 문화적 孤兒(고아)가 될 것이다.

 

20. 結 論

1) 民族精神과 한글

한글을 專用하고 한자를 全廢한다는 교육정책은 생각건대, 「국민교육헌장」의 冒頭(모두)에 명시된 바 있는,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라는, 이 나라 정치의 最高理念(최고이념)을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 방법의 하나로서 채택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글專用 교육」이라는 방법은 국가의 최고이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결코 좋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좋은 방법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미 본론에서 밝혀진 바의 이유로 국가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지금 현재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을 다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忠武公(충무공)의 精神 - 그 天才와 愛國丹誠(애국단성)과 科學과 情熱이 渾然(혼연)히 일체가 된 그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얼이 具體(구체)로써 표현된 극치의 세계라 할 것이다. 이 위대한 정신은 知만으로써는 解할 수 없는 것이요, 覺으로 悟함으로써 비로소, 知와 情이 합쳐진 그 심오한 사상을 피로써 느끼고 마음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漢字를 통하여 이루어진 그의 이와 같은 사상을 한자를 떠나서는 완전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정신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계승될 수도 없고, 되살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만일 우리가 祖上의 얼을 되살리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漢字를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2) 主體意識(주체의식)과 한글

언어나 문자는 手段(수단)이요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意思를 전달하는 한낱 方便(방편)이요, 그것 자체가 정신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영어를 쓴다고 영국인이 되고, 에스키모어를 쓴다고 에스키모인이 되고, 한자어를 쓴다고 중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主體意識이라 하는 것은, 외적 조건에 따라 아무렇게나 변할 수 있는 허울이 아니요, 내가 내 스스로를 알고, 남에게 끌려가지 않고, 내가 갈 길을 내가 간다는 內的 정신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양복을 입든, 한복을 입든, 倭食(왜식)을 먹든, 韓食을 먹든, 洋屋(양옥)에 살든, 韓屋(한옥)에 살든, 그런 것과 우리의 주체의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이치에서 설사, 漢字와 漢字語가 한글주의자의 주장대로 남의 것이라 치더라도, 우리가 한자와 한자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우리의 주체의식이 약화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한자를 사용하는 日本人이 한글을 전용하는 한국인보다 주체의식이 확고하지 못하다고 보는가.

 

3) 人類共榮(인류공영)과 한글

인류 서로가 피차의 共榮(공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이 피차의 意思疏通(의사소통)일 것이다. 이 의사소통을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피차의 언어의 공통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한글은 설사, 그것이 우리의 고급한 사상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완전한 문자라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구 표면의 적은 일점에 불과한 韓半島내의 오천만 인구에 국한된 文字다. 그런 까닭으로, 이런 문자만을 가지고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漢字는 우리도 살고 있는 아시아라는 광대한 지역에서 세계인구의 3분의 1인 10억의 주민에 의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만일 지금까지 漢字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어보다도, 독어보다도 먼저 배워야 할 것이 한자일 것이다. 그런데, 영어 등 외국어는 현재, 막대한 시간과 체력과 금력을 낭비하면서까지 수백만 중고등학교 전체 학생에게 그 학습을 강제하고 있으면서, 옛날부터 우리말이 되어 있고 우리 글자가 되어 있는 漢字만은 굳이 없애자는 것이다.

 

그러면, 漢字를 없애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韓民族은 동일 종족인 10억의 이웃 주민과의 유대가 단절될 것이다 - 한글세대에서는 이 連繫(연계)가 이미 끊어져 가고 있다. 가까운 이웃 사람들과의 정신적 통로를 절단하여 놓고 그들과 共榮하는데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다.

생각건대, 白人의 言語는 死力을 다하여 배워야 한다고 하고, 또 이와는 반대로 黃人族의 言語는 필사적으로 배워서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은 바꿔 말하면, 가까운 곳에 사는 同人種과는 인연을 끊고 먼 곳에 사는 異人種(이인종)만을 따르자는 말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한글주의자의 精神을 분석하면, 이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백년 전에 가졌던 바로 그 白人崇拜思想(백인숭배사상)이다.

 

4) 爲政者에게 呼訴(호소)한다.

언어와 문자의 인위적 改廢는 이미 위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의 民族文化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爲政者(위정자)들은 불행히도, 절대다수의 이 나라 知性人의 의견에는 완전히 귀를 막고, 극소수 한글주의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받아들여 드디어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國策化(국책화)하고, 지금 그것을 시행하고 있다. 때는 지금도 결코 늦지 않다.

 

한국 지성의 總和(총화)인 31개 학술단체가 連署(연서)하여 건의한 바 있는 학교 교육에 있어서의 「漢字敎育의 復活(부활)」을, 새로 개편되는 교육과정에서부터 실시하여, 조국의 앞날을 맡을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저능화와 文盲(문맹)으로부터 구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文明人으로서의 창조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대 英斷(영단)을 내려 줄 것을 나는 그대들에게 내 丹誠(단성)을 다하여 呼訴(호소)한다.

 

<참고문헌>

吳主惠(오주혜) ≪支那言語組織論(지나언어조직론)≫

高津春繁(고진춘번) ≪比較言語學(비교언어학)≫

高橋龍雄(고교용웅) ≪應用言語學(응용언어학)≫

倉石武四郞(창석무사랑) ≪漢字의 運命(운명)≫

金田一春彦(금전일춘언) ≪日本語≫

大野晋(대야진) ≪日本語의 起源(기원)≫

A.C. Moorhouse ≪文字의 歷史≫

Louis Hjelmslew ≪言語學槪論(언어학개론)≫

Samuel E.Martin ≪韓國語形態音素論(한국어형태음소론)≫

加藤一郞(가등일랑) ≪象形文字入門(상형문자입문)≫

朴定緖(박정서) ≪國語의 將來(장래)와 漢字의 再認識(재인식)≫

柳正基(류정기) ≪漢字問題(한자문제)의 科學的 再檢討(재검토)≫

南廣祐(남광우) ≪朝鮮漢字音硏究(조선한자음연구)≫

金敏洙(김민수) ≪共産圈(공산권)의 言語政策(언어정책)≫

B. Bloch, G.L. Trager (金泰洪 역) ≪言語分析槪論(언어분석개론)≫

石井勳(석정훈)(南廣祐 譯) ≪漢字에 依(의)한 才能開發(재능개발)≫

국어에 대한 중대한 誤解(오해)

- 韓國兒童의 思考能力 低下現象(저하현상)과 그 原因에 대한 考察(1971) 上

 

 

吳之湖(오지호, 화가)

 

 

1. 머리말 / 11

2. 한글專用敎育 25年의 成果 / 13

加減乘除(가감승제) 모르는 中學生

3. 문교당국의 誤解 / 14

1) 低能化(저능화) 원인 잘못 알고 있다

2) 학습시간량 외국 아동의 세 배

3) 저능화는 漢字 除去(제거) 결과

4. 韓國語의 性格 / 17

1) 固有語(고유어)와 漢字語 2) 文明과 文字와의 관계

3) 라틴어 안 버리는 영국인 4) 漢字語는 국어의 척추

5. 漢字語의 존재 비율 / 21

1) 國號(국호)부터 漢字語 2) 漢字語는 中國語라는 사상

6. 變質된 한글주의 / 24

1) 번개딸딸이式 思考 2) 言語는 자연도태 법칙하에 있다

3) 原始語와 文明語 4) 성난 動物(동물)의 몸부림

7. 漢字의 意味論的 特質 / 29

1) 象形文字의 성격 2) 文字 자체가 意味 자체

8. 東洋思想의 本源 / 31

9. 漢字의 音韻論的 特質 / 32

1) 중국어의 形態的 특징 2) 異義同音語

3) 漢字 즉 中國語 4) 異義同音字

10. 漢字 造語의 萬能性 / 37

1) 漢字는 1字가 1語 / 學術語의 번역

2) 漢字 機能의 完全性

11. 「센서스」라는 말의 來歷 / 40

1) 外國語 사용 않는 중국인

2) 二重文字(이중문자) 사용하는 韓國人의 행복

12. 漢字習得의 容易性 / 42

1) 3천字가 60만語

2) 音記漢字語(음기한자어) 暗記 不可能性

13. 漢字廢止論의 기본 이론 / 44

14. 異義同音語 / 46

1) 80%가 異義同音 2) 「可」는 말이고 「가」는 말이 아니다

3) 「사전」이라는 두 글자

4) 漢字 제거가 思考力(사고력) 제거

15. 중고등학생의 言語能力 / 51

1) 중학생의 言語能力 국교생과 같다

2) 音記漢字語(음기한자어)는 알 듯하다 만다

16.『수지류는 뭐예요?』라는 이야기 / 53

1) 할아버지도 모르는 말 2) 「수지류」를 「樹脂類」로 쓰면

3) 漆黑(칠흑)의 地獄(지옥)에서 光明天地(광명천지)로

17. 한글 大學生의 독서력 / 55

1) 書店(서점)대신 막걸리집 2) 性能力 없는 新郞

3) 迷信(미신)의 祭物(제물)이 된 한국 대학생

18. 中國과 日本의 漢字廢止 運動 / 59

1) 中國人의 錯覺(착각) 2)亡國論 용납 않은 日本 국민

19. 天涯無依의 문화적 孤兒 / 61

1) 自然에의 反逆(반역) 2) 漢字 消滅(소멸) 후에 오는 것

20. 結 論 / 63

1) 民族精神과 한글 2) 主體意識(주체의식)과 한글

3) 人類共榮(인류공영)과 한글 4) 爲政者에게 呼訴한다

 

 

1. 머리말

다섯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다만 몇 사람 한글主義者의 그릇된 愛國心이 禍가 되어 지금 이 時刻, 한 民族의 아들 딸들 모두가 일제히 멍청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 무서운 現實을 보다 못하여 나는 여기 또 다시 이 글을 草(초)하는 것이다.

이 小論(소론)은 「한글主義」라는 것이 왜 틀린 생각인가 함을 科學的方法으로써 實驗(실험)과 統計(통계)에 의하여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조금도 어렵거나 골치 아픈 것은 아니다. 眞理란 본시 어려운 물건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一切衆生(일체중생)이라면 좀 과장된 말이 되겠고, 어쨌든 漢字(한자)를 아는 사람이면 이 나라의 男女老少 누구를 막론하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고 또 읽기만 하면 금방 그 자리에서 眞理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뜬소문인지는 모르되, 한글主義를 하면 돈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筆者의 경우는 이와는 정반대다. 내가 이 책을 펴내는 것은 오직 하나 祖國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一片丹心(일편단심)에서라는 것을 독자는 믿어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냄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정신적 支柱가 되어주신 一石 李熙昇(이희승)先生과 그리고 뜨거운 同志愛로써 많은 助言과 激勵를 주신 南廣祐(남광우)博士에게 마음속으로부터의 感謝를 드린다.

 

1971년 여름 8월 지은이 적음

 

 

2. 한글專用敎育 25年의 成果

加減乘除(가감승제) 모르는 中學生

K市(시)에서는 작년도 (1970년)부터 중학교 無試驗 진학제가 실시되었다. K市의 X중학교에서는 新학기초인 3월에 참고자료로 하기 위하여 추첨으로 입학한 신입생 10학급 6백명에 대하여 학력고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 算術 四則(산술 사칙 - 가감승제)을 解하지 못하는 자 131명

② 國語를 解하지 못하는 자 (국어를 읽지 못하는 자와 읽어도 그 뜻을 모르는 자) 95명

③ 算數(산수)와 국어를 둘 다 解하지 못하는 자 51명

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중학교육이 완전히 불가능 한 자가 600명 중 175명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중학교육이 불가능한 아동 175명은 발육상태가 대개 정상적이고 심한 정신박약아는 없었다고 한다. 이 학력고사는 X교가 독자적으로 施行한 것인데 그 결과의 발표가 감독 당국으로부터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그 이름을 밝히지 않거니와, X교는 低能兒(저능아)를 교육하는 특수학교가 아니고 K市에서도 유수한 중학의 하나이다.

또 재작년(1969년) 여름에 서울市 교육위원회가 서울시내 국민학교 4, 5, 6학년 35만명에 대하여 학력고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도 X교의 경우와 비슷한 것 같다. 그것이 숫자로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同위원회가 이 고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① 아동들은 暗記式(암기식) 공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② 算數 과목이 5과목 중 최저의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

③ 아동들은 해석력, 작문력, 응용력, 계산력, 이해력, 실험관찰력, 공작력 등이 현저히 부족하다.

筆者의 조사에 의하면, 위와 같은 사실들은 K市나 서울市에 국한된 특수현상이 아니요, 모든 한국 아동에 공통된 현상이다. 즉 오늘날의 한국 아동은 해방 전의 아동에 비하여, 또 현재의 외국 아동에 비하여 추리력과 창의력, 한 마디로 말하여 思考能力(사고능력)이 거의 결여되고, 지극히 애매하고 초보적인 지식의 단편만을 암기하는 하나의 정신적 불구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 신체를 가진 아동이 6년간의 교육을 받고도 더하기, 빼기를 모르고, 제이름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은 과거 인류의 敎育史(교육사)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요, 현재의 세계에 있어서도 한국을 빼놓고는 없는 일이다.

인류문명은 인간 정신의 推理力(추리력)과 創意力(창의력)에 의하여 생성되고 발달한다. 文明 生成(생성)의 이 원리에 비추어 볼 때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는 國民敎育이 인간의 문화능력이 제거되고 다만 반복에 의한 동물적 순치의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이 사실은 민족의 장래로 볼 때, 실로 그 興亡(흥망)에 관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3. 문교당국의 誤解

1) 低能化 원인 잘못 알고 있다

6년을 배워도 원시인 그대로 남는다는 이 해괴한 사실에 대해 문교당국자나 일선 교육자나 학부형은 다같이 이를 인정하고, 또 이 문제의 중대성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敎育評論」誌(1971년 4월호)는 「국교생 學力低下(학력저하)의 요인 진단」이라는 특집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중 국교생의 학력저하 현상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亡國敎育(망국교육)의 결과를 벗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 이러한 우리의 病廢(병폐)를 각성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뜻에서 이번 특집을 마련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토한 교육관계자 여러 인사들의 다음과 같은 論文(논문)을 싣고 있다.

 

無試驗(무시험)진학과 학력저하, 교수의 信念과 학력저하, 새로운 교수법과 학력저하, 학생집단구성과 학력저하, 가정환경과 학력저하, 평가방법과 학력저하, 교수 자료와 학력저하.

 

이상의 의견들을 通觀(통관)할 때, 놀라운 것은 아동의 학력저하의 참된 원인을 포착 摘出(적출)한 논설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논자들은 다만 고차적인 교육론을 펼치기도 하고,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에 그 허물을 돌리기도 하고, 교육기술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이하기도 하는 등 筆者가 볼 때, 문제의 핵심과는 거리가 먼 외곽 지대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筆者가 일선교사를 상대로 한 조사에 의하면, 그들 대다수가 학력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무시험 입학제에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문교당국은 문교당국대로 교육과정의 전면 개편, 혹은 교육시간의 연장 등을 검토하고 있고, 교육당사자는 또 그들대로 교육기술이나 교육자료의 개선 등에 부심하고 있고, 학부형은 학부형대로 소위 「과외공부」라는 것을 아동들에게 강제함으로써 그들의 저능화 현상을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2) 학습시간량 외국 아동의 세 배

그렇다면, 한국 아동의 저능화 현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들은 잘 가르치지를 못하고, 아동들은 공부를 잘하지 않는 데에 기인하는 결과일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선진한 미국의 교육체제와 교육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적어도 그 外觀(외관)에 있어서는, 필자의 小學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과학화되었다. 한편, 아동이 공부하는 시간은 필자의 小學 시절의 세 배 이상이 되는 것이요, 현재의 미국이나 일본 아동의 역시, 세 배 이상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교사는 이 이상 더 잘할 수 없을 만큼 잘 가르치고 있고, 아동은 인간의 체력으로는 이 이상 더 많이 할 수 없을 만큼 죽도록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저능화 현상의 原因(원인)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그러한 외부적, 환경적인 곳에 있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그 진실한 原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3) 저능화는 漢字 除去(제거) 결과

그 원인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이다. 그 원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해방 후의 학교교육에서 「漢字」를 제거하였다는 데에 있다. 한자를 제거함으로써 아동들로부터 言語能力(언어능력)을 박탈하였다. 그들이 언어능력이 없다는 것, 이것이 아동들의 思考能力(사고능력) 저하의 절대적 원인이다.

 

日本語는 그 문법적 구조가 韓國語(한국어)와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와 같이 옛날로부터 한자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명예로운 일은 못 되지마는, 해방 전의 한국 아동들은 그들과 같이 생활하였고 그들과 같은 語文(어문)으로 교육받았다. 그때의 한국 아동은 일반적으로 일본 아동에 비하여 知能(지능)이 우수하였다. 이 사실은 그때의 일본인도 인정하였고 필자 자신의 경험으로도 또한 그러하다.

 

敗戰(패전)후도 일본 아동들은 옛날과 같은 語文 - 한자와 한자어가 섞인 - 으로 교육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지능은 패전전보다도 현저한 향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日本人들도 敗戰(패전)후 국민교육에 있어 미국식 제도와 기술을 많이 본받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해방 후의 한국 아동이 그들과 다른 것은 「漢字」를 모른다는 것 뿐이요, 그 밖의 여건은 그들과 비등하다. 그런데 한국 아동의 지능은 일본 아동과는 정반대로, 향상이 아닌 原始化(원시화)의 계곡으로 굴러떨어져 가고 있다. 이 원인은 오직 하나, 그들이 漢字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자와 한자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있어 「漢字」를 제거하면 왜, 아동들로부터 言語能力(언어능력)이 제거되고, 언어능력이 제거되면 왜 思考能力(사고능력)의 발달이 정지되고 그 결과, 교육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는가. 그 이치를 규명하는 것이 이 小論의 목적이다.

 

 

4. 韓國語의 性格

1) 固有語(고유어)와 漢字語

내가 보는 바로는, 한글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국어학자나 국문학자의 대다수가 우리 國語의 성격에 대하여 하나의 중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자와 한자어는 우리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 그것이다.

국어에서 한자를 全廢(전폐)하고 한자어를 驅逐(구축)한다는 행동은 이 오해에 뿌리박은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우선, 우리 국어, 즉 韓國語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일로부터 내 고찰을 시작하려고 한다.

 

현재 韓民族(한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韓國語는 중국어나 유럽어 등과는 다른 특수한 성질을 가졌다. 즉, 우리 국어는 表音文字(표음문자)로 표시 될 수 있는 고유어와 또 表意文字(표의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한자어라는 異質(이질)의 두 가지 종류의 언어로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이 아니면 완전 표기가 불가능한 고유어와 한자가 없으면 그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한자어라고 하는, 성질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언어가 하나로 융합됨으로써 국어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이 同質(동질)의 언어로만 구성되어 있는 중국어나 유럽어 등과 相異(상이)한 「韓國語」의 성격이다.

 

한 종족의 언어가 異質의 두 가지 언어로 조성되어 있는 것은 中國을 제외한 한자를 사용하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종족에 공통된 현상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종족의 언어에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 국어는 어째서 이와 같은 특수한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 다시 말하면, 왜 異質의 두 가지 언어로 국어가 형성되었는가.

 

2) 文明과 文字와의 관계

중국으로부터 漢字가 수입되기 이전까지는 우리의 고대문화는 아직도 얕은 단계에 있었다. 언어의 고급한 발달은 문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요, 또 보다 고급한 사상의 발달은 보다 완전한 언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言語와 思想(사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화가 사상의 표현이라면 문자가 없는 문화가 낮은 단계에 머무르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까닭으로 記錄(기록) 수단을 갖지 못한 우리 고유어가 原始의 域(역)을 벗어날 수 없었고, 따라서 우리의 古代文化(고대문화)가 얕은 단계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情況(정황)하에서 우리 조상들은 한 걸음 앞서 높은 文明을 갖게 된 중국으로부터 中國文字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는 같은 물건이면 새로 발명하는 것보다 기왕에 발명된 것을 사용하는 것이 노력이 적게 들고 효과가 많은 것이라는 經濟法則(경제법칙)의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經緯(경위)로 우리 국어는 異質의 두 가지 언어로 형성되게 되었고 또 이러한 성격으로 발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즉, 고유어와 한자어가 합쳐서 하나가 된 것, 이것이 영어도 아니요, 아라비아어도 아니요, 에스키모어도 아니요, 중국어도 아니요, 일본어도 아닌 「한국어」인 것이다.

 

3) 라틴어 안 버리는 영국인

한글주의자는 우리 조상들이 중국에서 한자를 수입한 것을 마치 무슨 罪惡(죄악)이나 범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文化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문화법칙에 대한 無知에서 오는 하나의 착각이다.

영국인이나 독일인, 또는 프랑스인이나 러시아인들은 그들 자신의 文字를 만든 일이 없고, 그들은 이집트에 淵源(연원)하고 그리스인과 로마인에 의하여 완성된 「알파벳」 문자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말은 고유어와 한자어가 합쳐서 一切(일체)가 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국어에 있어서의 한자어는 외국어가 아니고 국어인 것이다. 이는 마치 英語가 영국의 고유어인 앵글로․색슨어와 외래어인 라틴어가 합쳐서 한 개의 국어, 「잉글리쉬」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과 같다.

하나의 國語에 있어서 어떤 말이 본래 있던 것이고 어떤 말이 外方(외방)에서 들어온 말인가를 가려내는 것은 언어학자의 연구에만 필요한 것이요, 그 밖의 경우에는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은 한자와 한자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원시어의 단계를 벗어나 文明語(문명어)로의 진화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영어나 독일어가 라틴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문명어가 된 것과 같다.

 

4) 漢字語는 국어의 척추

국어에 있어서 고유어와 한자어와의 관계는 척추동물에 있어서의 근육과 골격과의 관계와 같다. 근육은 주성분이 유기물질이요, 골격은 주성분이 무기물질이다. 이 성질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물질이 합함으로써 보다 완전한 생명체가 된 것이 척추동물이다. 우리말은 漢字語라는 골격을 얻음으로써 연체동물로부터 척추동물로 진화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말에서 漢字語를 제거하자는 말은 우리 몸에서 척추를 제거하자는 말과 같다.

 

무릇 인접한 지역의 相異한 語族(어족)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낙후된 언어는 선진한 언어의 영향을 보다 많이 받는다. 이것이 言語進化(언어진화)의 법칙이다. 한글주의자는 이와 같이 단순하고도 초보적인 언어진화의 自然法(자연법)에 대하여 완전히 無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한자어는 중국에서 온 것,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남의 것, 또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기필코 우리말에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이 幼稚(유치)하고 劣等(열등)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영국인이 라틴어는 로마에서 온 것,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남의 것, 또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마땅히 영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영국인은 우리나라의 한글주의자와 같이 어리석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알파벳 폐지 운동을 편 일도 없고, 라틴어 말살 운동을 벌인 일도 없다.

 

漢字와 漢字語가 남의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한글주의자의 머리 속으로부터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하여 여기서 다시 한번 명확히 말하려고 한다.

알파벳이 그리스의 國字인 동시에 白人 전체의 國字인 것과 같이 漢字는 중국의 國字인 동시에 黃人(황인)전체의 國字요, 라틴어가 로마의 국어인 동시에 백인 전체의 국어인 것과 같이 한자어는 중국의 국어인 동시에 황인 전체의 국어이다. 다시 바꿔 말하면, 漢字는 십억 황인의 국제문자요, 漢字語는 십억 황인의 국제어이다.

 

 

5. 漢字語의 존재 비율

1) 國號(국호)부터 漢字語

그러면 우리 국어 안에 한자 어휘는 얼마만큼의 비율로 존재하는가. 독자의 이해를 빠르게 하기 위하여 우선 실례를 몇 가지 들자.

<例 ①> 大韓民國(대한민국) 憲法(헌법) 제1장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1조 ①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민주공화국)이다.

② 大韓民國의 主權(주권)은 國民 (국민)에게 있고, 모든 權力(권력)은 國民으로부터 나온다.

제2조 大韓民國의 國民의 要件(요건)은 法律(법률)로 定(정)한다.

제3조 大韓民國의 領土(영토)는 韓半島(한반도)와 附屬島嶼(부속도서)로 한다.

이상을 고유어와 한자어로 분리하면 다음과 같다.

 

<固有語> (제1조) 제1조 ①은, 이다. ②의, 은, 에게, 있고, 모든, 은, 으로, 부터, 나온다.

(제2조) 의, 의, 은, 로, 한다.

(제3조) 의, 는, 와, 로, 한다.

<한자어> (제1조) ① 大韓民國, 民主共和國 ② 大韓民國, 主權, 國民, 權力, 國民

(제2조) 大韓民國, 國民, 要件, 法律, 定.

(제3조) 大韓民國, 領土, 韓半島, 附屬, 島嶼.

<例 ②> 신문광고에 나온 某(모)회사의 대차대조표는 다음과 같다.

<例 ③> 전화번호부의 첫 장에 나오는 靑瓦臺(청와대)의 전화설치 장소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例 ④> 전화번호부의 「전화이용 안내」에 있는 종목별 명칭을 몇 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例] ③

[例] ④

행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실

특별보좌관실

총무수석 비서관실

경제수석 비서관실

의전수석 비서관실

정무수석 비서관실

민정수석 비서관실

공보수석 비서관실

외자관리 수석비서관실

당직실

기자실

전화이용안내

전환식

직결식

공동접속식

전령장치

발착신분리장치

전용설비

급지별요금

배달일시지정전보

일시철거청구

가입승계신고

개인신고

상호변경신고

이용종별변경통지

수동즉시시외통화

 

위의 <例 ①>은 한자어에 「토」가 달렸을 뿐이다.

<例 ②>는 「받을 어음」이라는 고유어 한 개를 빼놓고는 전부가 한자어다.

<例 ③>과 <例 ④>의 전화부 기재사항은 완전히 한자어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책표지의 「전화번호부」라는 것으로부터 6백82항에 달하는 그 내용은 아라비아 숫자를 빼놓고는, 그 전부가 한자와 한자어에서 나온 말로 되어 있다.

 

2) 漢字語는 中國語라는 사상

한글주의자의 거룩한 애국사상에 의하면, 고유어만이 우리말이고 한자어는 외국어라고 한다. 이 논법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國號(국호)는 외국어로 되어 있고, 憲法(헌법)도 외국어로 만들었고, 은행이나 사회에서는 장부를 완전히 외국어로 기록하고 있고, 전화번호부는 관청, 회사의 명칭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성명까지도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의 談話(담화)에 있어서도 대부분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독자에게 묻노니, 우리는 우리 國語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우리가 현재 문서나 담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90%이상이 漢字語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 우리 국어는 한자어에 「토」를 달아가지고 성립된 언어다. 그래서 우리 국어는 한자어가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인즉 漢字語가 국어의 主軸(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英語에 있어 라틴어계 언어가 영어의 7분의 5를 차지하고 있어, 라틴어계 언어가 영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과 같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국어에서 한자어를 없애자는 말은 곧 國語를 없애자는 말이다. 만일, 우리 국어에서 한자어를 제거하면 고유어 몇 개가 남을 뿐인데, 이 몇 개의 원시어를 가지고는 문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필리핀이나 인도 등에는 물론, 그들 자신의 言語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原始語이고 그들은 文明語를 갖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유럽의 근대문명을 수입하는 데 있어 유럽서적의 번역은 처음부터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의 서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대학에서는 순전한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다. 만일 우리말에서 漢字語를 없애면 남은 고유어만으로는 유럽의 학술서적은 단 일 페이지의 번역도 불가능한 것이다.

한글專用(전용) 즉 한자 全廢라는 생각은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같은 우리 국어의 본질에 대한 완전 無知가 빚어낸 하나의 착각이다.

 

 

6. 變質된 한글주의

1) 번개딸딸이式 思考

우리나라에 있어 한글專用(전용)이라는 妄想(망상) 발생한 초기에는 그 방법으로서 改語主議(개어주의)에 의한 점진론이었다. 즉, 한자어를 하나씩 둘씩 고유어로 고쳐 만듦으로써 한자어를 조금씩 없애간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電話」(전화)를 「번개딸딸이」, 「動物」(동물)을 「옮살이」, 「副詞」(부사)를 「어찌씨」, 「資格」(자격)을 「감목」등의 식으로 改語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글학자들이 과거 오십여년을 두고 그들의 있는 지혜를 몽땅 짜내보았으나 그들은 단 한 개의 한자어도 고유어로 바꿔놓지 못하였다. 실제에 있어, 그들은 그동안 상당수의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꿨다. 다시 例(예)를 들면 「內容」(내용)을 「속살」, 「構成」(구성)을 「얼거리」, 「團體生活」(단체생활)을 「모듬살이」, 「胃」(위)를 「밥통」 등으로 고쳤다. 그러나 지금 이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급하고 다양한 개념을 갖는 漢字語를 단순하고 원시적 개념밖에 표시할 수 없는 고유어로 바꿔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는 고급하고 복잡한 사상 내용의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이 신발명한 이와 같은 愛國愛族語(애국애족어)나 主體意識語(주체의식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발명자 자신 이외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볼 때, 그들은 단 한 개의 한자어도 고유어로 바꿔놓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無限多(무한다)한 漢字語彙(한자어휘)에 비하여 고유語彙의 수효는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예를 들자. 한글학자들은 수학용어로 「三角形」(삼각형)을 「세모꼴」, 「梯形」(제형)을 「사다리꼴」, 「累乘」을 「거듭제곱」 등으로 고쳐놓고 무척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데 그러면, 代數(대수), 幾何(기하), 微分(미분), 積分(적분), 因數(인수), 函數(함수), 陰數(음수), 陽數(양수), 變數(변수), 方程式(방정식), 恒等式(항등식) 不等式(부등식) 등 수백의 수학용어는 무엇이라고 고치겠는가. 또 六法全書(육법전서)에 있는 수천 개의 法律用語(법률용어)는 무엇이라 고치고, 의학서적에 있는 수천개의 學術用語(학술용어)는 무엇이라고 고치겠는가. 고유어에는 數學의 기본이 되는 數(수)라는 말이 없다. 세는 수의 이름도 하나에서 열까지와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의 18개의 어휘가 있을 뿐이요, 百(백), 千(천), 萬(만), 億(억), 兆(조), 京(경) 등 전부가 漢字語다.

 

2) 言語는 자연도태 법칙하에 있다

한글학자들은 주장한다. 옛날에는 고유어도 많은 어휘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漢字語에 밀려나서 소멸한 것이라고. 물론 이 생각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漢字 수입 이후, 사실상 많은 고유어휘가 한자어휘로 바꿔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된 原因을 잘못 알고 있다. 실은 漢字語가 고유어에 대신하게 된 것은 愛國思想(애국사상)이 부족하거나, 事大思想(사대사상)이 철저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요, 한자어가 고유어보다 그 의미가 정확하여 사상 표현에 보다 편리한 언어이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요, 누가 法律로 명령한 것은 아니다. 즉, 이는 自然淘汰(자연도태)의 결과인 것이다.

 

한글주의자는 소위, 「우리말 도로 찾기」니 혹은 「우리말 갈고 닦기」니 하는 애국적 말을 하고 있는데, 위에서 본 바의 경위로 우리말은 지금 현재, 도로 찾을 것도 없고, 갈고 닦을 것도 없는 것이다. 그 증거를 또 하나들자. 한글학자가 해방 후 25년간에 「우리말 도로 찾기」와 「갈고 닦기」에 성공한 것은 필자가 알기로는, 일본어인 「벤또」를 「도시락」으로 고쳤고, 역시, 일본인이 만든 한자어인 「手形」(수형)을 「어음」으로 고쳤고, 「貢獻」을 「이바지」로, 「展望」(전망)을 「내다본다」로, 「解釋」을 「풀이」로 하게 하였다. 즉, 25년간에 5개의 단어를 도로 찾고 갈고 닦았을 뿐이다. 말하자면, 5년에 단어 한 개꼴의 되찾기와 갈고 닦기를 한 셈이 된다. 그러니까 가령, 1천개의 漢字語를 고유어로 되찾고 갈고 닦으려면 5천년이 걸릴 것이요, 1만개의 漢字語를 고유어로 되찾고 갈고 닦으려면 5만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3) 原始語와 文明語

그러면, 고유어의 어휘는 왜 수효가 그렇게 적은 것인가.

元始語(원시어)의 특징은 감각적 사물에 관한 어휘만 있고, 정신적․추상적 事象(사상)에 관한 어휘가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우리 고유어를 살펴볼 때, 그 대부분이 視覺的(시각적)사물에 관한 명사와 동사 및 형용사가 있고, 여기에 聽覺的(청각적), 臭覺的(취각적), 味覺的(미각적), 觸覺的(촉각적) 사건에 관한 형용사와 감정표현에 관한 어휘가 소량 있을 뿐이다.

 

例를 들면, [天地自然](천지자연) 하늘, 해, 달, 별, 땅, 흙, 메, 섬, 바위, 돌, 모래, 물, 바다, 내, 개울, 시내, 구름, 안개, 김, 비, 얼음, 눈, 바람, 번개

[動植物](동식물) 두더지, 너구리, 여우, 쌀가지, 고양이, 개, 돼지, 새, 닭, 꿩, 꾀꼬리, 기러기, 오리, 황새, 올빼미, 고래, 삼치, 가오리, 나무, 풀, 잎, 대, 뿌리, 가지, 열매, 꽃, 꽃시울, 씨 등

[人體](인체) 사람, 머리, 머리카락, 낯, 눈, 코, 입, 귀, 목, 배, 배꼽, 등, 가슴, 허리, 엉덩이, 불두덩, 팔, 손, 다리, 발, 정강이, 장딴지, 허벅지, 밥통, 창자, 허파, 염통, 콩팥, 지레, 쓸개, 오줌깨, 뼈, 갈비, 피

 

[人稱](인칭) 사내, 계집, 새끼, 아비, 어미, 할아비, 할미, 아들, 딸, 언니, 아우, 오빠, 누나, 아내, 지아비, 스승, 벗, 샛사내

[住居](주거) 집, 지붕, 기둥, 추녀, 도리, 서까래, 부엌, 아궁이, 실겅,

[衣服](의복) 저고리, 적삼, 바지, 중우, 두루마기, 소꼿, 단소꼿, 치마

[食品](식품) 밥, 떡, 국, 미음, 김치, 깍두기, 술, 엿

[器具](기구) 솥, 냄비, 그릇, 질그릇, 항아리, 오가리, 소라, 동이, 뚝배기, 종재기, 깍정, 접시, 숟가락, 젓가락, 앞eke이, 뒤지, 연장, 괭이, 소시랑, 갈퀴, 쟁기, 써레, 지게, 칼, 끌, 송곳, 까뀌, 대패, 톱, 활, 화살, 도롱태, 달구지 등의 名詞(명사).

 

가다, 오다, 걷다, 기다, 날다, 뛰다, 헤엄치다, 돌다, 앉다, 서다, 보다, 듣다, 지껄이다, 맡다, 먹다, 뱉다, 마시다, 씹다, 물다, 꾸부리다, 펴다, 타다, 내리다, 싣다, 부디치다, 자빠지다, 너머지다, 하다, 박다, 빼다, 넣다, 수시다, 뚫다, 찌르다, 물다, 뜯다, 긁다, 할퀴다, 싸다, 쌓다, 누다, 꾸다, 누르다, 밟다, 배다, 낳다, 베다, 막다, 트다, 까다, 붙이다, 떼다, 헐다, 태우다, 찟다, 째다, 파다, 묻다, 메우다, 만들다, 부시다, 깨다, 닥다, 갈다, 쓸다, 치우다, 들다, 놓다, 쫓다, 잡다, 터지다, 돋구다 등의 動詞(동사)

크다, 작다, 높다, 얕다, 깊다, 길다, 짧다, 넓다, 좁다, 가늘다, 퉁겁다, 뾰족하다, 날카롭다, 무디다, 밝다, 어둡다, 침침하다, 환하다, 빠르다, 느리다 등의 形容詞(형용사)

바시락 바시락, 쪼룩쪼룩, 철석철석, 질컥질컥, 출렁출렁 등의 聽覺的(청각적) 의성어.

 

살짝살짝, 살금살금, 성큼성큼, 훌떡훌떡, 너울너울, 벌렁벌렁 등의 시각적 의태어. 구리다, 고소하다 등의 臭覺的(취각적) 형용사. 쓰다, 달다, 맵다, 짜다, 싱겁다, 시다 등의 味覺的(미각적)형용사.

부드럽다, 매끈하다, 미끄럽다, 꺼끄럽다, 단단하다, 물렁하다, 따뜻하다, 뜨겁다, 덥다, 차다, 시원하다, 애리다, 쓰리다 등의 觸覺的(촉각적) 형용사 등의 일차어에 그쳐 있다.

정신적 事象에 관한 어휘로는 마음, 넋, 얼, 슬기, 뜻, 사랑 등의 명사. 어리석다, 미련하다, 어질다, 사납다, 예쁘다, 밉다, 불쌍하다, 좋다, 나쁘다 등의 형용사. 기쁘다, 즐겁다, 슬프다, 서럽다, 무섭다, 골나다, 부끄럽다 등 감정표현의 형용사.

 

곧, 꼭, 몹시, 무척, 반드시, 꽤 등의 부사.

언제, 어디, 무엇, 왜 등의 의문사가 소량 있고,

완전 추상명사로는 때, 곳, 보람, 자랑 몇 개가 있을 뿐이요,

언어와 문자에 관하 어휘로는 말, 글, 글씨의 3개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고급한 정신적 事象과 추상적 事物(사물)에 관한 어휘, 즉 倫理(윤리), 道德(도덕), 哲學的(철학적), 藝術的(예술적), 科學的(과학적) 事象에 관한 文明語彙(문명어휘)는 全無(전무)하다.

이상이 우리 고유어의 실상이다. 한글학자들이 「改語主義」(개어주의)라는 것으로 漢字語를 고유어로 바꿔놓으려고 하는 사업은 그 뜻은 가상한 일이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요,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계획과 행동은 뱁새가 황새 걸음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제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4) 성난 動物의 몸부림

그래서 한글주의자들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막다른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여기서 그들은 성난 동물처럼 하나의 무서운 억지를 강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漢字語를 그 발음만을 한글로 옮겨 쓴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라도 하여 漢字만은 기필코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과 漢字와는 어떻게 하여 그렇게도 徹天(철천)의 원수가 되었는지는 모르되, 이렇게 하여 한글주의 초기의 改語主義는 發音盜用主義(발음도용주의)로 변질 추락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명분을 말하되, 漢字語는 이미 우리말이 되어있으니 그 「音」(음)만을 한글로 적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라고 쓰면 그것은 중국어이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쓰면 그것은 한국어가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국민학교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모든 교과서에서 漢字를 완전히 없애고 모든 漢字語를 그 발음만을 한글로 표기하여 놓았다.

그러나, 漢字語는 漢字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言語다. 만일, 漢字語가 漢字를 떠나면 그것은 非言語(비언어)로 化(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漢字語가 국어가 된 나라에 있어서의 漢字 폐지 불가능의 근본 이유요, 中國과 日本에 있어서 漢字廢止論(한자폐지론)이 완전히 廢棄(폐기)된 근본 이유이다.

그러면 漢字語를 音記하면 왜 非言語로 化하는가. 그 까닭을 밝히는 것이 이 小論의 구체적 내용이다.

 

 

7. 漢字의 意味論的 特質

1) 象形文字의 성격

인류가 발명한 모든 문자는 象形으로부터 시작되었다. 象形文字(상형문자)는 可視的(가시적) 사물을 寫生(사생)한 하나의 圖形(도형)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 도형은 도형 자체가 사물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도형과 도형이 갖는 사물의 의미와는 불가분의 表裏(표리)의 관계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도형 자체가 의미 자체인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象形文字는 실지의 사물을 보는 것처럼, 思考의 과정을 밟지 않고, 즉, 청각을 통하지 않고, 언어와는 관계 없이 그 도형을 봄과 동시에 그 의미를 直覺(직각)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 의미의 直接性(직접성)에서 오는 表意(표의)의 정확성과 그 의미 인식의 시간적 迅速性(신속성)에 있어 문자로서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최고 이상을 구현한 문자라 할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 표현이 可視的 사물에 한정되어 있고 不가시적 사물을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象形文字의 치명적 결함이다. 이 결함 때문에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종족은 드디어 그들이 발명한 상형문자를 버리고 언어를 기호화한 「表音文字」로 바꿨다.

그런데, 여기 오직 하나 중국인만이 상형문자 본래의 성격, 즉 「表意性」(표의성)을 그대로 계승 진화시켜서 드디어 「漢字」라는 「表意文字」를 창조하였다.

 

그 형태에 있어 상형문자를 具象的(구상적) 표의문자라고 한다면 한자는 抽象的(추상적)표의문자라 할 것이다. 중국인은 상형문자의 구상적 방법을 추상적 방법으로 바꿈으로써 언어를 통하지 않고 문자 자체로써 不可視的 사물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업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不可能」(불가능)을 「可能」으로 만들었다. 이는 확실히 인류 叡智(예지)의 위대한 승리의 하나이다.

漢字는 이와 같이 문자의 원시형태인 「表意」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장 고도한 文明文字(문명문자)로 진화한 문자이다. 이것이 인류가 가진 다른 모든 문자와 다른 漢字의 특질이요 성격이다.

 

2) 文字 자체가 意味 자체

표음문자는 사물의 의미와 인식과의 사이에 놓여진 하나의 교량인 데 대하여 漢字는 상형문자와 同樣(동양)으로 문자 자체가 의미 자체다. 그런 까닭으로 漢字를 보는 것은 바로 사물 자체를 보는 것과 같은 인식효과를 가져온다. 그 결과, 漢字에 의한 사물의 의미 인식은 가장 정확하고 不變하고 또 가장 신속하다. 表音文字는 언어의 발음을 記號化(기호화)한 물건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 문자 자체나 그것이 나타내는 音(음)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요, 몇 개의 音節(음절)이 모여 한 개의 단어를 형성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표현한다. 그래서 표음문자를 통하여 사물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음 두 개의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특히 한글의 경우에는 이보다도 한 개의 절차를 더 거치게 된다.

 

1. 우리는 文字를 보아 가지고 머리 안에서 그것을 「音」으로 환산한다.

2. 音으로 환산된 몇 개의 音節을 머리 안에서 다시 연락하여 한 개의 言語를 구성한다.

3. 이 언어들 중에서 다시 異義同音語(이의동음어)를 판별한다.

이와 같은 절차를 밟고서 비로소 그 언어와 문장의 뜻을 해득하게 된다.

 

漢字는 보는 순간에 사물의 의미를 直覺한다는 것과 비교할 때 이는 지극히 원시적이고 비능률적인 작업이라 할 것이다. 순한글 문장과 한자혼용 문장과의 독해 속도의 차이는 音波(음파)와 光波(광파)의 속도차에 비유하여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글주의자는, 순한글 문장을 읽는데 시간이 걸리고 더딘 것은 漢字를 아는 사람의 습관에서 오는 현상이요, 한글 밖에 모르는 아동들은 그것을 빨리 읽는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생각인가는 독자에게는 이미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8. 東洋思想의 本源

漢字는 그것 자체가 의미를 가짐으로서 그것은 벌써 단순한 기호가 아닌, 知的요소와 情的 요소를 동시에 具有(구유)하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그것은 文字 하나하나에 따로따로 哲學(철학)이 들어 있고, 詩가 들어 있고, 체온을 느낄 수 있고, 체취를 느낄 수 있다. 「漢字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는 까닭은 여기 있다. 그 속에는 우주의 事理와 인간의 情念(정념)이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에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것이다.

동양사상의 深奧性(심오성)과 幽玄性(유현성), 즉 知로 解하는 것이 아니요, 覺으로 悟(오)하는 4차원의 세계는 실로 漢字가 갖는 이 위대한 기능의 소산이다.

 

白人의 물질문명은 이제 그 극한에 도달하였다. 이 이상 그들은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문명이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또 나아가야 하는 곳은 오직 하나, 정신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精神의 세계란 물질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요, 이 물질의 세계를 밑바닥으로 하고 그 위에 인류 叡智(예지)의 꽃을 피우는 세계를 뜻한다. 그래서 이것을 깨달은 白人들은 지금 동양의 思想과 哲學에 그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9. 漢字의 音韻論的 特質

1) 중국어의 形態的 특징

漢字는 중국어를 기록하는 문자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의 특질은 곧 中國語의 특질에 연결되어 있다. 中國語가 다른 어떤 종족의 언어와도 다른 특질은 그것이 「單音節語」(단음절어)라는 데에 있다. 즉, 한 개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한 개의 音節로 한다. 例를 들면, 「이」(一), 「얼」(二), 「쌍」(三), 「스」(四) 등, 혹은 「동」(東), 「시」(西), 「낭」(南), 「베이」(北) 등과 같다. 이것은 名詞의 경우이거니와, 動詞나 形容詞 등 언어의 전부가 단음절어이다. 즉 「취」(去), 「래」(來), 「조우」(走), 「피」(飛) 등의 동사나 「밍」(明), 「안」(暗), 「한」(寒), 「노안」 (暖) 등의 형용사가 다 그러하다. 그래서 중국어는 단음절의 단어로 대화가 성립한다. 例를 들면, 「띠이 조우 워 다」(敵走我打), 「쇼 촹 도어 밍」(小窓多明) 등과 같다.

 

중국어에도 물론 複音節語(복음절어)가 많이 있다. 복합개념을 갖는 단어는 원칙적으로 두 음절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고유어나 「유럽어」등에 있어서의 복음절어와는 그 성질을 달리한다. 중국어 이외의 복음절어는 그 음절 개개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것들이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의미를 표현하게 된다. 例를 들면, 「사내」, 「계집」, 「올빼미」, 「호랑이」등이나 「flower」, 「umbrella」, 「smooth」, 「conception」등에 있어 그 개개의 音節에는 의미가 없다.

 

여기에 대하여 중국어의 複音節語는 그 음절마다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음이 두 개나 그 이상이 모여 하나의 複合 개념을 갖는 單語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의미가 相異한 몇 개의 음절이 회동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다 하더라도 그 음절 개개가 본래 갖는 原義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음절 개개가 갖는 原義(원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 여러 개의 의미가 융합됨으로써 새로운 개념이 성립되는 것이다. 例를 들면, 「꺄딩」(家庭)은 두 음절이 모여 하나의 개념, 즉 「home」이라는 의미의 언어가 되는데, 이때의 『꺄』는 『house』『딩』은 『garden』이라는 원의를 상실하지 않고, 두 개의 의미가 융합됨으로써 『home』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단어가 된다. 즉, 중국어는 복음절어라 하더라도 종내 단음절어라는 성격을 변경하지 않는다.

 

2) 異義同音語

모든 원시어는 單音節로부터 시작되었고, 사람의 의식 내용이 복잡하여짐에 따라 그것들을 서로 구별하기 위하여 多音節語(다음절어)로 발달한다. 이것이 언어 進化의 일반적인 형태다. 그런데, 中國語는 언어 진화의 일반적인 과정을 밟지 않고, 단음절이라는 원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장 고도한 문명어로 진화하였다. 이는 漢字가 「表意」라는 원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장 고도한 文明文字로 진화하였다는 사실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은 한자를 발명함으로써 단음절어를 복음절로 바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세계의 모든 언어와 다른 中國語의 특질이다.

 

중국어는 이와 같이 전부가 單音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異義同音語(이의동음어)가 많게 되었다. 이는 언어로서 중대한 결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단음절인 한 불가피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사람의 발음 능력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많은 異義同音의 단어를 구별하여 발음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요에서 중국어의 音韻(음운)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갖게 되었다.

 

중국어에는 16개의 母音과 24개의 子音이 있다. 모음과 자음을 합하여 40개의 音素가 있는데 비하여, 우리말은 30개, 영어는 25개, 일본어는 13개의 음소가 있다. 중국어는 이와 같이 音素가 많을 뿐만 아니라, 同一音(동일음)도 「四聲」(사성․平聲, 上聲, 去聲, 入聲)이라고 하여 1음절의 발음이 高低(고저), 長短(장단)과 輕重(경중)으로 세분된다. 이렇게 하여 중국인은 異義同音의 단어를 구별하여 발음함으로써 회화가 성립된다.

 

3) 漢字 즉 中國語

중국어의 이와 같은 단음절어를 문자로 바꾸는 데 있어서는, 한 개의 의미가 한 개의 문자에 담기고, 또 그 문자의 발음이 본래의 語音(어음)인 한 개 음으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도리라 할 것이다. 漢字는 이렇게 하여 1字가 1義가 되고 또 1音이 되었다. 이래서 한자는 곧 중국어요, 중국어는 곧 한자라는 언어 對 문자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래서 언어학자 모하우스 (A.C. Moorhouse)는 중국어를 문자어라고 표현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중국인은 중국어 자체를 없애지 않고는 漢字를 없앨 수 없다. 「言語 즉 文字」라는 언어 對 문자의 관계는 중국어 對 한자에만 있는 일이요, 다른 언어에는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聲音(성음)만을 언어의 전부로 하는 유럽인이 만든 언어학의 법칙은 중국어와 한자에는 적용될 수 없다.

 

4) 異義同音字

漢字는 이와 같이 단음절어가 갖는 의미와 음을 한 字에 압축하여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중국어와 同樣으로 異義同音字가 많게 될 것은 당연한 事理이다.

우리나라의 漢字音은 물론, 중국의 原音(吳音․漢音)에 그 音韻的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나 漢字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에 그 발음이 우리 고유어의 音韻에 완전히 동화하였다. 즉, f, v 와 같은 脣齒音(순치음), g, z과 같은 濁音(탁음), l과 같은 舌捲音(설권음), ai, ei, ao, ou와 같은 複母音(복모음), erh와 같은 特殊母音(특수모음) 등이 없어지고, 또 「四聲」도 거의 소실됨으로써 中國의 漢字音보다도 훨씬 더 단순화되고 평면화되었다. 그 결과, 異義同音字가 중국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漢字字典에는 한자음이 4백80여 개가 있다. 또 이 字典에 수록된 漢字가 1만 3天여字이니까, 1音 평균 30字 가까운 異義同音字가 있는 셈이 된다. 다시 常用漢字를 2천자로 한다면 1音 평균 4字의 異義同音字가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냥, 닝, 퓨, 퉁 등과 같은 보다 중국적 발음의 文字는 同音字가 많지 않은데,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國語音 예를 들면, 가, 구, 수, 조 등은 40~50자로부터 1백70여 字의 同音字가 있다.

 

例를 들면, 「가」발음의 漢字는 字典에는 1백여字가 있고 常用漢字에만도 加, 可, 歌, 街, 佳, 價, 家, 假, 架 등 20여字가 있다.

「구」발음의 漢字는 字典에는 1백70여字가 있고, 常用漢字만도 九, 仇, 久, 丘, 狗, 句, 具, 俱, 溝, 構, 區, 口, 叩, 垢, 寇, 懼, 拘, 求, 救, 球, 歐, 究, 舊, 邱, 鳩, 鷗, 龜 등 50여字가 있다.

 

「수」발음의 漢字는 字典에는 1백60여字가 있고, 常用漢字만도 修, 收, 受, 嗾, 囚, 垂, 壽, 嫂, 守, 帥, 愁, 手, 授, 搜, 數, 樹, 殊, 水, 洙, 狩, 獸, 瘦, 睡, 秀, 穗, 竪, 羞, 袖, 誰, 遂, 酬, 隋, 雖, 需, 須, 首 등 40여字가 있다.

「조」발음의 漢字는 字典에는 1백50여字가 있고, 常用漢字만도 條, 兆, 凋, 助, 嘲, 弔, 彫, 措, 操, 早, 曹, 朝, 棗, 漕, 照, 燥, 爪, 眺, 祖, 祚, 租, 粗, 糟, 組, 調, 趙, 造, 釣, 阻, 鳥 등 역시 40여字가 있다.

 

그런 까닭으로 漢字는 한자로 쓸 때에만 그 의미를 知解(지해)하는 것이요 그 音만을 표음문자로 기록하면 그 의미의 解得(해득)은 불가능하다.

漢字語는 한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가 여기 있다. 한자 즉 언어인데 그 음만을 표기하면 「非言語」로 化하는 까닭이다. 例를 들면 「가」발음의 한자인 「可」, 「歌」, 「加」는 「옳음」, 「노래」, 「더함」이라는 언어다. 그런 까닭으로 이것을 음만 「가」로 적으면 그 「가」는 「가」라는 소리일 뿐이요 言語는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漢字를 없애자는 말은 漢字語를 없애자는 말과 같다. 그리고 한자를 없애면 한자어는 저 혼자서 저절로 없어지게 되어 있다. 漢字語를 한글로 音記(음기)하면 그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 어휘는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것은 자연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漢字語는 우리말이다. 이 사실은 3천만 동포 중 누구 한 사람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漢字語는 한자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언어라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漢字는 우리의 國字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명확히 말하면 漢字는 한글과 동일한 의미에서 우리의 國字다. 즉, 한글이 우리 국어를 기록하는 문자인 것과 同樣으로 漢字도 우리 국어를 기록하는 文字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언어에 있어서와 同樣으로 문자에 있어서도 表音文字와 表意文字라는 異質의 두 가지 國字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0. 漢字 造語의 萬能性

1) 漢字는 1字가 1語

한자는 1字가 1語이기 때문에 문자의 수효가 많게 될 것은 당연한 事理이다. 이는 영어 단어의 수효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에서이다. 그래서 「康熙字典」(강희자전)에는 4만7천여字가 있고, 우리나라 漢字字典에는 1만3천여字가 있다. 그러나 유럽어의 기십만 단어에 비하면 근소한 수효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어보다는 적은 수효라 하더라도, 4만字나 1만字를 문자생활에서 전부 사용한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文字로 최대한의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이 발명되었다. 즉, 별개의 문자 2개를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例를 들면, 의미가 서로 다른 「社」자와 「會」자를 합하면 「社會」가 되는데 이 단어는 「society」라는 의미를 갖는 새로운 언어다. 그리고 이 단어의 두 글자를 뒤바꾸면 「會社」가 되는데 이것은 「company」라는 의미를 갖는 또다른 단어가 된다. 漢字의 造語라는 漢字의 造字原理(조자원리)와 같이 「會意」의 方法으로 뜻이 다른 두 문자를 연결시킨다는 것과, 또 1字의 음이 1音이라는 이유로,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용이하게, 또 거의 무제한으로 造語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會意」인 까닭으로, 새로 만들어진 단어는 거의 완전에 가깝도록 제가 가져야 하는 의미를 제 스스로가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漢字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기능이다.

유럽에서는 고급한 문물에 대한 造語는 거의 전부를 라틴어에 의존한다. 즉, 유럽 각개 종족의 고유어로는 고급 개념의 造語는 블가능하다. 우리의 경우도 이와 같다. 學術用語(학술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생활용어도 좀 고급한 사물이면 造語는 전부 漢字에 의존한다. 例를 들면, 螢光燈(형광등), 扇風機(선풍기), 冷藏庫(냉장고), 電蓄(전축), 錄音(녹음), 녹화(錄畫), 高速道路(고속도로), 自助精神(자조정신), 自立經濟(자립경제), 自主國防(자주국방) 등과 같다.

 

2) 學術語의 번역

물론 보다 저급한 사물은 고유어로 造語할 수도 있다. 한글학자가 「아내무섬쟁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恐妻家」(공처가)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정도의 造語는 그 의미가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첫째, 언어의 음절이 많아지고, 둘째, 말이 한 개의 단어 즉 한 개의 개념으로 고정되지 못하여 의미가 산만하고, 셋째, 語義와 語感(어감)에 깊이가 없고 원시적이다.

 

「恐水病」(공수병․狂犬(광견)에 물려 나는 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라틴어로 「Hydrophobia」라고 한다. 이것은 「Hydro」(水), 「pho」(恐), 「bia」(病) 의 세 개 단어가 합쳐서 된 말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바꾼다면, 「물무섬앓음」이 될 것이요, 이것을 앵글로․색슨어로 번역하면 「Water fear sickness」가 될 것이다. 물론, 의미는 통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내무섬쟁이」와 같이 語義가 지극히 산만하고 原始的 개념밖에 나타낼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영국인들은 이것을 자기의 고유어로 바꾼다는 그런 어리석은 것을 하지 않고 라틴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下等(하등) 개념에 한하는 것이요, 高等 개념에 이르면 전연 불가능하다. 즉, 「恐妻家」를 「아내무섬쟁이」로 고치고 「Hydrophobia」를 「Water fear sickness」로 바꿀 수는 있으되 「Philosophy」, 「Sociology」, 「Ethics」 등에 이르면 우리 고유어나 앵글로․색슨어로는 손을 댈 수 없다. 그 까닭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고유어에나 앵글로․색슨어에는 文明 語彙가 없기 때문이다.

 

3) 漢字 機能의 完全性

그런데, 漢字로는 이것을 완전무결하게 바꿔 놓을 수 있다. 「Philosophy」를 「哲學」(철학), 「Sociology」를 「社會學」(사회학), 「Ethics」를 「倫理學」(윤리학)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번역된 언어가 原語보다도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 語彙가 가진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더 분명히 말하면, 언어 자체가 바로 그 언어의 定義(정의)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 어휘는 漢字만 알면 물을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이 漢字는 1) 그 의미의 正確性(정확성)에 있어, 2)그 의미 解得의 自動性(자동성)에 있어, 3) 그 의미 인식의 迅速性에 있어 4) 小數(소수)의 문자로 다수의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그 經濟性(경제성)에 있어 인간이 文字에게 바랄 수 있는 최고의 理想을 완전히 실현하여준 문자다.

 

서구 문명을 처음으로 동양으로 들여온 것이 日本人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필자가 일본 유학 시절에 들은 말인데, 만일 漢字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서구의 學術用語는 단 한 개의 언어도 번역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2천여년을 걸쳐서 이루어진 西洋文明을 단 백년이 못되는 세월로써 따라잡은 오늘의 日本文明은 오로지 그들이 한자를 가졌다는 데서 얻어진 결과요, 또 백년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그들의 고유문화도, 그들이 百濟 사람들로부터 漢字를 배움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한자가 없었더라면, 세계문명의 정상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오늘의 그들의 문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요, 문명문자를 갖지 못한 필리핀이나 인도나 아프리카 등과 같은 소위 후진국의 처지를 결코 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와 동일하다.

차례

 

서언

1장 國仙道의 연원

2장 國仙道의 정체

3장 國仙道의 原理

4장 國仙道의 행공

5장 수련 변화와 과정

6장 단법과 운동

7장 중기단법 행공

 

 

서언

1. 전제

2. 生命의 존재

3. 國仙道의 단법

 

오늘날은 物質文明이 고도로 발달되고 있는 반면에 精神文明은 점점 전락하여 가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倫理道德에 대한 관심이 근본적으로 상실된 시대라고는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각계각층에서 道義運動이 일어나고있으며, 國家에서도 여러가지 국민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그 좌증이다. 그리고 國仙道의 수도 역시 도의선양 운동의 하나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와, 국민이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깨달아 얻어 가지고 실천할 수 있을 까 하는 문제는 우리들의 급선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어떠한 자세가 가장 올바르고 착한 것인가 하는 윤리적 가치관의 문제요, 또 하나는 올바르고 착한 것을 실천케 하는 지도와 방법의 문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되어 있다.

國仙道가 해결하려는 목적도 要約하면 이 두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다.

國仙道는 윤리철학 문제인 윤리적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서 '개전일여관(個全一如觀)'을 제시할 것이요, 도의적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國仙道의 修道를 제시하려는 바이다.

 

아는 것도 어렵고 실행하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 個全一如觀 '으로 지의 난을 해결하고, 國仙道의 修道로 行의 難을 해결하려는 것을 國仙道의 사명으로 삼는 것이다.

道義運動이나 국민운동의 뜻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여도 올바로 理解되지 못하고, 올바로 實踐되지 못한다 하면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전인류는 누구나 國仙道에 들어와 國仙道에서 제시하는 윤리도덕과 독특한 수도방법에 의한 國仙道를 체득함으로써 올바른 자세를 지닌 전인적인 인간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1. 전제前提

이 책을 쓰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알기 쉽고 누구나 理解하여야 되므로 國仙道가 무엇이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를 간단히 밝히고자 함이다.

易理니 철학이니 종교니 사상이니 천지법도니 윤리도덕이니 성서 경서 유심론이니 유물론이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헌 등은 너무 분화 발전하여 사람의 머리(思考方式)로는 다 기억하고 이해하고 實踐할 수 없는 경지까지 도달하여 오히려 좋은 말, 좋은 글인 줄 아나 그것들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사상적으로도 갈라 놓았으며,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쉽게 표현하면 너무 많아서 우리의 머리로는 다 消化를 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소화 못하니 답답하여 병이 생긴다. 한평생 가만히 않아서 배우고 들어도 많은 말, 많은 글, 많은 경서나 성서, 그리고 좋은 책을 다 보고 배우고 실행하기란 힘드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또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볼 때 靑山 마저도 또 글을 남겨 놓으면 이 글을 보는 분을 역시 괴롭히는 것밖에 무엇이 더 있느냐 하는 결론적 얘기다.

그러므로 몇 마디씩 간추려서 이 책을 天道와 地道와 人道에 따라 易理와 丹理와 病理 倫理道德과 섭취와 배출을 밝힌 것이니 참고가 될 것임을 알리며,

 

修練을 희망하는 분은 수련장에 나와서 정확하게 지도를 받고 집에서나 수련장에서 수련하면 되는 쉬운 것이며, 이 도법은 우리 민족의 고래로부터 하늘을 섬기는 사상에서 부터 전래하여 발전된 것임을 밝혀두며, 누구나 수련하여 이득을 보면 되는 것이다.

修練을 하여도 이득을 볼 수 없다면 千言萬語가 다 쓸데없는(無用) 것이다.

 

 

2. 生命의 존재

전인류가 누구나 天地의 자연 조화로 부모님의 정기를 받고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生命을 이어가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입으로 먹는 것이요.

둘째는 코로 마시는 공기요.

세째는 적당한 運動이다. 이 세 가지를 잘 調和만 하면 健康이며, 충실한 生命體이다. 그러나 반대로 조화시키지 못하면 병이 된다.

 

이 세 가지가 합쳐서 生命을 유지하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조화되어 무궁한 조화를 부린다. 생각도 나게 하고, 말도 하게 하고, 행동도 하게 하고, 힘도 나게 하고, 세상만사 무엇이나 하려고 든다.

그러나 自然의 도리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서부터 병이 생긴다. 그러므로 많은 책이 나오고, 많은 종교가 수없이 생기고, 갖가지 운동법과 별의별 것이 다 쏟아져 나와서 이제 감당키 어려운 극에 도달하여 사람의 기본적 정신을 마비시키고 공포도덕이 기세를 하게 되었으니, 宇宙의 섭리가 사람을 그대로 둘 수 없어 행복도덕이며, 자연을 따라 행하는 자연의 도법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천지자연의 법도에 맞도록 생활하면 무병장수할 수 있으나 그 법도에 따르지 않으면 병약하여 夭死(요사)하게 되다는 것은 자명의 이치다. 그러나 그 원리原理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까닭이다.

 

그 자유가 자기 개인의 감정을 따라 가게 되므로 지나친 욕망이 생겨 과욕 과색으로 마음과 몸을 병들게 한다. 병약의 원인은 여러 가지 감정생활에 있겠지만 요약하여 말하면 이 두 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몸과 마음이 병들고 해로운 자유행동을 할까? 이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능과 감정보다 의지의 힘이 약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國仙道의 수련은 다름아닌 강한 意志力을 길러주는 수련법이다.

意志가 약하면 자기의 욕심과 감정을 따르므로 지나친 고민과 행동으로 천지자연의 법도를 거역하는 반역자가 되게 되니 마음에는 고통이 오고 몸에는 병이 들어 天壽를 다하지 못하고 병들어 고생하다가 일찍 사망한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의 無病長壽한 사람들의 생활을 더듬어 보면 고량진미에 호의호식하며 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몸을 너무 과격하게 쓰지도 아니했고 너무 편안하게 앉아 있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육식보다 채식을 권장하며, 또 병의 근원을 몸에서 찾지 않고 마음에서 찾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의 건강은 옛날 원시적인 인간의 생활과 같은 소박한 생활 속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먹고 마시는 섭생을 自然에 따라야 됨은 물론 행동도 자연에 맞추어야 하므로 正息 正食 正行 이란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다음으로 세 가지 섭생과 운동보다 못하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배출排出이 또한 올바른 것이 되게 하는 수련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올바른 생각(思想)을 내고 올바른 말(言語)을 내고, 올바른 행위를 내는 것이니, 이것을 思言行이라 한다.

國仙道의 수련법은 이 사언행이 올바로 나오게 하는 수련인 것이다. 私慾과 私心(사심)을 버리는 의지를 기르고 公心과 道心을 갖게 하는 수련이 바로 國仙道라는 것을 알면 된다.

요약하여 말하면 음식을 과하게 먹지(過食)도 않고, 과격한 운동(過行)도 안 하고, 과격한 욕심(過慾)도 안 내고, 과격한 생각(過思)도 안 내며 그렇다고 마시는 것을 멈추는 것(斷息)도 안 하며, 음식을 안 먹는 것(斷食)도 안 하며, 운동을 안하는 것(斷行)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연을 따라 올바르게 먹고(正食), 올바르게 마시고(正息), 올바르게 운동하고(正行), 올바른 생각(正思)과 올바른 말(正語)과 올바른 운동 또는, 행동(正行)을 하여 자연의 公道와 公心으로 자연의 도리에 맞는 도심으로 정도의 생활을 하여 충실한 생명체를 기르는 도법이 바로 다름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國仙道임을 알고 실천하면 되는 쉬운 것이다.

이 도법은 丹理와 易理로 완전히 해명할 수 있는 극치적 수련법임을 밝히며, 모두가 화합하여 하나로 모일수 있는 진법이며, 영원불멸의 영법이다.[일화통일一和統一의 眞 永法].

이 뒤에 쓰는 글은 易理와 丹理로써 밝히는 참고서이니,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만 간단히 골라 쓰겠음을 밝힌다.

 

 

3. 國仙道의 단법

國仙道는 靑山이 공개한 양생비법이다.

이 비전은 靑山이 靑雲 스승님으로부터 전수받은 비전이다. 靑山은 이 비법을 正覺道니 仙道法이니 밝돌법 또는 國仙道라 이름하였으나 그 이름은 역사 속에서도 수없이 바뀌어 전래하여 내려왔다. 그 명칭은 다음 장에 쓰겠거니와 그 이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문제는 이 도법의 實效性에 있다. 靑山은 이 비전을 스승으로부터 듣고, 보고, 배우고, 닦아 道力을 얻었다. 누구나 청산으로부터 이 비전을 듣고, 보고, 배우고, 닦아 도력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만일 누구나 이 도법을 듣고, 보고, 배우고 닦아도 도력을 얻을 수 없다면 천언만어의 설명이 무용할 것이다. 누구나 修道하여 效果로 立證하여 價値를 判斷하기 바란다.

 

이 도법의 유래는 東方文化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仙의 丹理에 근거한 것이다. 丹理의 목적은 不老長生 하든가 노익장하여 홍안백발로 元氣旺盛하여진다는 養生비결이다.

그러므로 國仙道는 깨닫고, 보고, 듣고, 하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련하면 한만치 이득을 보는 生命을 기르는 양생養生의 道인 것이다.

國仙道라 하면 神仙을 연상하여 먼 옛날 古談(고담)에서나 나오는 미신적 설화같이 생각될 것이 사실이다. 月世界를 자유로이 왕래하는 현대인 앞에 國仙道라는 어설픈 화제를 내놓는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처사라고 생각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자를 대할 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했느냐 하고, 아무 기대도 없이 흥미조로 심심풀이로 읽을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독자의 심리를 미리 짐작하므로 결론에서 나올 수 있는 하나의 명제를 먼저 한마디 쓰면 다음과 같다.

國仙道의 修練은 우화등천하거나 長生不死한다는 神仙되는 수련을 하는 도가 아니라, 동양철학적인 丹理에 의한 연단법의 수련으로 무병건강하게 되는 인간최고의 養生之道인 것이다.

이름 그대로 수련의 道가 높아지면 地上仙人과 흡사한 智力과 德力과 體力을 얻게 되는 우리 민족전래의 고유의 道이다.'

 

이와 같은 前提 밑에서 이 國仙道를 서술하여 볼까한다. 이러한 전제를 대할 때는 누구나 흥미를 기지지 않을 수 없는 동시에 修練에 대한 기대도 가져볼 줄 안다.

그렇다면 독자는 다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단리에 의한 연단법이란 무엇이며 또 그러한 道 또는 방법이 우리 민족 전래의 道란 어떤 뜻인가?

하는 생각과 또는

'그 道를 어찌하여 國仙道라고 하는가?'

하는 의문들일 것이다.

'중기단법中氣丹法 전편前篇 행공行功'

 

1. 본법本法- 일신일심법一身一心法

별법別法- 정 좌 입 측 동 正 座 立 側 動

 

2. 본법本法- 정심법正心法

별법別法- 합 신 낙 역 동 合 身 洛 力 動

 

3. 본법本法- 해심법解心法

별법別法- 합 신 낙 역 동 合 身 洛 力 動

 

4. 본법本法- 휴심법休心法

별법別法- 전 후 좌 우 동 前 後 左 右 動

 

5. 본법本法- 동심법動心法

별법別法- 상 하 중 압 동 上 下 中 壓 動

 

 

전 25동작

 

일정해휴동

정좌입측동

합신낙역동

합신낙역동

전후좌우동

상하중압동

'제4장 神經系('무극보양뜸')'

 

 

혈자리 - 두유 거궐 중완 기해 관원 중극 정영 현로 곡빈 완골 견우 풍시 양릉천 족삼리 현종 음릉천 삼음교 태계 신문 대돌공 소골공 백회 천주 대추 풍지 견정 천료견외유 신주 폐유 고황 천종 심유 신도 격유 지양 근축 간유 담유 비유 신유 요양관 대장유 차료 포황 둔압 요유 환도 승산 곤륜 곡지 양지 합곡 중봉 해계 권첨

[神經이란 인체의 생명활동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지휘 통솔하는 고도로 발달된 조직계통을 말한다.

神經에는 크게 中樞신경과 末梢신경으로 구분한다.

말초신경은 신체 내외의 상황 정보를 중추신경에 보내고 중추신경은 이를 종합, 분석, 판단 후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 말초신경에 지시하여 대응행동을 하도록 한다.]

 

 

제1절 신경의 생리

1. 中樞신경

중추신경은 인체의 다양한 감각기관들로부터 전달된 인체 내외의 정보들을 종합, 분석, 판단 후 적절한 대응을 총괄하는 인체의 중앙통제소에 해당한다. 中樞신경은 수많은 신경세포로 구성된 腦(뇌)와 脊髓(척수)로 구성되어 있다.

가) 뇌

두개골 내에 위치한 유백색 유연 기관으로 무게는 성인 기준으로 약120g이다. 뇌는 대뇌, 소뇌, 중뇌, 간뇌, 연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 大腦

대뇌는 뇌 전체의 80%에 해당하는 크기로서 좌우 두 개의 반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반구 사이는 뇌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뇌는 몸의 각 부위에서 입력되는 情報(정보)들을 기억, 분석, 판단하고 그 대응책을 말초신경에 지시 명령하는 생명활동의 최고지휘부에 해당한다.

대뇌는 담당 기능에 따라 크게 운동영역, 감각영역, 연합영역 등 3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동기능, 감각 정보 기능, 언어전달 기능, 학습과 기억 기능, 항상성 유지 기능, 호르몬의 분비 기능

 

2) 小腦

소뇌도 좌우 2개의 반구로 되어 있으며 뇌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크기로 대뇌후하부에 위치하는데 무게는 약 150g정도이다. 소뇌의 주요기능은 자세와 평형유지, 근육긴장 유지, 자발적 운동 조절 등이다.

 

3) 中腦

뇌의 한가운데 있다 해서 중외라고 한다. 대뇌 좌우 반구 사이에 끼어 있는 형상인데 위로는 간뇌와 아래로는 뇌교로 연결된다. 대뇌와 척수를 連結(연결)시켜 手足을 움직이게 해 준다. 이 부위가 변질되면 치매, 파큰슨병 등이 생긴다.

 

4) 間腦

대뇌와 중뇌 사이에 있으며 視床(시상)과 시상下部로 구성된다. 간뇌는 감각신호를 뇌에 입력하는 신경세포와 뇌의 다른 부분을 연결시켜 주는 感覺(감각)신호 전달기관이다. 간뇌의 시상에 문제가 생기면 체성감각 경로와 연관된 감각 장애, 운동 결로와 관련된 이상운동 증상, 인지기능장애 등이 생긴다.

시상이 파괴되면,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기억장애, 감각장애, 학습장애, 언어장애, 이상운동증, 시상치매, 안구운동장애 등이 생길 수 있다.

 

5) 延髓(연수)

연수는 숨뇌라고도 하는데 뇌의 최하단에 위치하며 위로는 교뇌, 아래로는 척수, 뒤로는 소뇌와 연관되어 있다. 연수는 호흡, 순환등 생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자율신경들이 모여 있으며 척수에 연계되어 및 감각의 핵심 통로가 되기도 한다. 기침을 한다든가 음식물을 삼킨다든가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등 다양한 기능에 관여한다.

 

나) 脊髓(척수)

1) 척수의 구조

척수는 척추 내에 있는 중추신경의 연장으로 감각 및 운동신경들의 통로이다. 경추에는 목척수, 흉추에는 등척수, 요추에는 허리척수, 천추에는 엉치척수로 구분된다.

 

2) 척수의 기능

척수는 腦와 말초신경의 중계 역활을 하는 중추신경의 일부로서 운동, 감각신경들의 통로이다. 뇌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운동신경은 四肢의 모든 근육 운동을 조절하며, 말단의 감각기관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감각신경은 안면부를 제외한 신체 모든 감각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또한 일부 자율신경 기능을 담당하고 다수의 신경절도 척수에 연계되어 있다. 관련 질병으로는 척수염, 척수경색증 등이 있다.

 

 

2. 末梢신경

말초신경은 인체 각부로부터 수집된 감각정보를 중추신경에 전달하고 주우신경으로부터 대응된 운동신호를 다시 말단 조직에 전달하는 기능을 갖는 신경집단 이다.

말초신경은 12쌍의 뇌신경, 31쌍의 척수신경과 자율신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뇌신경

뇌신경은 중신경인 뇌로부터 나오는 말초신경을 일컫는데, 12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안면 부위와 이비인후 등의 조절신경들이다.

 

2) 척수신경

척수신경은 척수 앞뿔 쪽에 분포한 운동신경과 뒷뿔 쪽에 분포한 감각신경, 그리고 자율신경 등이 합쳐진 신경다발이다.

 

3) 자율신경

말초신경은 기능상으로 체성신경과 자율신경으로 구분한다. 체성신경이라 함은 의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을 가리킨다. 자율신경이라 함은 뇌신경 및 척수신경과 달리 의지 작용에 전혀 영햐응ㄹ 받지 않거나 혹은 극시 작게 받는 특수 신경계통으로 생리적 기능에 따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2개 부분으로 나눈다. 신체 장기의 대부분이 자율신경의 지배하에 있으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에 의해 주재된다.

 

 

제2절 神經 질환

1. 뇌출혈

혈자리- 백회 중완 족삼리 양릉천 관원 신유 간유 태계 곡지 견우 천종 양지 음릉천 대골공 둔압 풍시 현종 풍지 견정 소골공 권첨 무극보양뜸

1)정의

뇌출혈이란 머릿속에 出血이 생겨 발생하는 모든 질환을 말하는데 출혈성뇌졸중이라고도 한다. 뇌출혈에는 외상성뇌출혈과 자발성뇌출혈이 있다. 일반적으로 뇌출혈이라 함은 자발성뇌출혈을 일켣는데 고혈압뇌출혈, 뇌동 정맥류, 뇌종양, 모야모야 출혈 등이 있다.

2)원인

주된 원인은 血壓(혈압) 항진에 있다. 갑작스런 힘쓰기, 흥분, 힘주어 변 보기, 폭음, 심한 온냉탕, 기침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 특히 추운 날씨에 머리를 차게 하여 뇌혈관이 수축하게 되면 뇌출혈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40세 이상에서 많이 나타나는 병으로 腦의 작은 혈관이 터져 출혈하는 뇌혈관 장애인데 癌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 알코올 중독, 신장염, 위축신, 백혈병, 괴혈병 등에 의해 속발성으로 발병하기도 한다.

3)증상

출혈과 동시에 돌연 卒倒(졸도) 증상을 일으킨다. 경증일 때는 두통, 현훈, 메스꺼움만 나타나지만 중증일때는 인사불성에 맥박이 느려지고 코를 심하게 곤다. 호흡은 완만해지고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입은 벌어지고 침을 흘리며 동공 반사가 소실되고 대소변을 불시에 배출한다. 손발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하고 죽지 않으면 반신불수, 언어장애 등의 심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흔히들 뇌출혈이 되기 전에 머리가 무겁고, 뒷머리가 뻣뻣하고, 어지럽고, 귀가 울리고, 말하기 어렵고, 쉽게 흥분되며, 반신의 감각이 이상하거나 운동장애 등 전구증이 1주 내지 3주 전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것을 가볍게 여겨 발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4)치료

ㅇ응급치료

예로부터 뇌출혈은 中風이라 하여 난치병으로 인정하였으며 특히 갑자기 졸도 두 다음과 같은 증상이면 오불치라 하여 치료가 급하고 어려우니 유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면- 심절

*눈을 질끈 감고 뜨지 못하면- 간절

*사지를 축 늘어뜨리면- 비벌

*코를 몹시 골면- 폐절

*대소변 조절이 불가능하면- 신절

 

위와 같은 증상이면 심한 뇌출혈이 진행 중인 증후이므로 신속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우선 갑자기 쓰러졌으므로 자세를 편안하게 눕게 하되 머리는 높고 다리는 낮게 한 다음 신속히 따기를 한다. 따기는 사혈침(삼릉침)으로 십선혈을 따서 사혈을 하는 것인데, 십선뿐 아니라 목 주위나 머리 부위에도 몇 군데 사혈하여 목과 머리로 몰리는 혈압을 낮춰 뇌출혈을 최소로 한다. 옛말에 '재수 좋은 놈은 풍을 맞아도 자갈밭에서 맞고 재수 없는 놈은 잔디밭에서 맞는다'라 했는데 이는 자갈밭에서 혼절해 쓰러지면 머리가 터져 피가 나니 사혈한 효과가 난다는 뜻이다.

 

그런 다음 구급차를 불러 충분한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일 것이다. 물론 구급차를 먼저 부르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것도 좋을 것이나 상황에 따르면 될 것이다. 뜸이 좋다 하여 이와 같은 응급 상황에 뜸을 뜰 수는 없을 것이다. 뜸은 예방과 후유증 치료에 유효하다.

 

ㅇ기본치료

병원의 응급치료 및 기본적인 치료 후에도 정도 차이는 있으나 후유증이 남게 되는데, 대소변을 받아내고 음식도 먹여 줘야 하는 중증에서부터 스스로 식사하고 거동을 할 수 있는 경증 등 다양하다. 무극보양뜸을 평소에 생활화하였다면 뇌출혈(중풍)을 예방할 수 있고 설사 발병한다 하더라도 가볍게 거쳐 갈 수가 있다. 후유증 치료를 위한 기본치료는 다음과 같다.

*백회 중완 족삼리 양릉천 관원 신유 간유 태계 음릉천에 매일 뜸을 떠서 전신의 막힌 경락을 풀어 기혈의 흐름을 순조롭게 한다.

ㅇ선택치료

팔의 움직임이 불편하면- 곡지 견우 천종

주먹이 안 펴지면- 대골공 소골공 권첨 양지

다리가 끌리고 불편하면- 둔압 풍시 현종

뒷목이 당기고 불편하면- 풍지 견정

ㅇ근본치료

무극보양뜸으로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룬다.

*뜸의 장수는 3~7장으로 하되 증후의 깊고 얕음에 따라 조절한다.

 

 

2. 뇌연화증

혈자리- 족삼리 백회 중완 곡지 폐유 지양 비유 신유 천료 심유 간유 함몰처 무극보양뜸

동일질환- 뇌경색

1) 정의

뇌혈관장애로 인해 뇌 혈행이 차단되어 뇌의 일부가 괴사되는 증상을 뇌연화라 하는데 뇌색전과 뇌혈전증 등이 주된 원인이다.

2) 원인

ㅇ뇌색전- 주로 심장판막에 생긴 혈전이 떨어져 뇌혈관으로 이동해 혈관을 막아 생긴 질환

ㅇ뇌혈전증- 뇌혈관 일부가 협착이 되어 혈류가 막히는 질환

*참고- 일반적으로 뇌경색과 주된 원인이 같아 대동소이하나 얼밀하게 보면 서로 다른 질환이다.

3) 증상

폐색된 뇌혈관이 어느 부위냐에 따라 증상이 다르지만 갑작스런 안면마비, 한쪽 팔다리 마비, 어눌한 발음 등이 발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어증 이나 실인증이 되기도 하고 시각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만 나타나기도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이러한 병증을 'FAST'라 하여

ㅇF- Face(얼굴) '안면' 신경마비가 생기고

ㅇA- Arm '팔다리' 가 불편해지며

ㅇS-- Speech(말) '말'이 어눌해지고

ㅇT- Time(시간) '시간'을 다투는 질환이라는 요약된 의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혈전의 발작은 야간, 이른 아침 등 안정 시에 많고 발작 경과도 뇌출혈처럼 급격하지는 않다. 전형적인 경우에는 먼저 다리를 못 쓰게 되며 말을 잘 못하게 되는 식으로 수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마비가 진행되는데 의식장애가 가볍기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뇌출혈의 경우와 같이 우연히 발작이 일어나서 혼수상태에 빠지는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출혈인지 연화인지 구별이 매우 곤란하다. 보통 뇌출혈일 때는 혼수 즉시 안색이 붉게 충혈되는 현상이 약간 다른 점인 것 같다. 혈전을 일으키기 전에는 혈압이 정상인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는 저혈압증인 경우도 있다.

 

4) 치료

ㅇ기본치료

백회 중완 족삼리 곡지 폐유에 뜸을 떠서 전신 기혈의 균형을 잡아 주고,

지양 비유 신유에 뜸을 떠 조혈기능을 도우며

천료 심유에 뜸을 떠서 심기를 강화하여 혈액순환을 돕고,

간유에 뜸을 떠서 간의 정혈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발병 초기 2~3주는 3장씩 가볍게 뜸을 뜨고 그 후부터는 5장씩 꾸준히 뜸을 떠준다. 꾸준히 뜸을 떠야 재발이 안 된다.

ㅇ선택치료

팔다리가 불편하다면 반대쪽 머리 부분을 설펴 특히 함몰된 곳을 찾아서 그곳에 꾸준히 뜸을 떠준다.

ㅇ근본치료

무극보양뜸을 매일 3~5장씩 떠서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룬다.

*신경계 질환은 약보다 부작용이 없는 뜸이 더 좋다. 꾸준히 무극보양뜸을 뜬 사람치료 효과 없다는 사람 본 벅이 없다.

 

 

3. 반신불수

혈자리- 족삼리 곡지 중완 기해 관원 백회 폐유 고황 간유 신유 무극보양뜸

1) 정의

안면의 반쪽과 더불어 한쪽 팔 다리 모두에 마비가 일어난 질환을 말한다. 반신마비 또는 편마비라고도 한다.

수의운동을 지배하는 추체로가 대뇌피질 피질하, 내포, 뇌간 등에 장애가 생길 때 일어난다. 마비는 연수와 척수의 경계부에서 척수로가 교차되기 때문에 장애 반대쪽에서 일어난다.

반신불수의 주원인증인 뇌출혈과 뇌연화증은 앞 1, 2항에서 기술하였으나 반신불수라는 후유증의 종합정리차원에서 재론한다.

*여기서 잠깐

동양 의학에서 말하는 中風은 병명이다. 불양생과 부적당한 생활환경으로 몸의 精氣가 약해지는 이때 몸의 내외에서 사기의 바람이 일어나 그 사기 바람에 맞았다는 것으로 가운데 중자는 뚫어 맞혔다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들 중풍을 '바람맞았다'고 말한다.

근대에 와서 양방에서는 뇌졸증이라 하여 뇌출혈, 뇌연화, 뇌막출혈 등과 같은 병으로 腦 속의 血液이 순환장애를 유발하여 그것이 원인으로서 뇌졸증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뇌졸증을 야기하는 병 중에서 가장 많고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뇌출혈이다. 다음으로 뇌연화와 뇌막출혈의 순이 되는 것이다.

 

2) 원인

ㅇ뇌출혈

뇌출혈이라 함은 뇌의 혈관이 터져서 뇌 조직에 출혈하는 것으로서 뇌일혈이라고도 말한다. 뇌혈관이 터진다고 하면 갑자기 생기는 것아 보이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 훨씬 이전부터 여러 가지 뇌 혈행 변조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뇌동맥경화, 고혈압, 내분비 이상, 뇌 소동맥의 연축, 기능적 혈행장애 등이 오랫동안 쌓였다가 터지게 되고 그 결과 뇌 피질을 지나가는 신경섬유의 전달기능이 손상을 입게 되는데 그 병변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마비증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ㅇ뇌연화

뇌연화는 뇌경색으로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는 동맥이 어느부위에 막혀서 그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이 통과하지 못하여 뇌의 한 부분이 죽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맥이 터져서 생기는 뇌출혈과는 그 진행부터가 전적으로 다르다.

뇌연화증은 동맥이 막히는 원인에 따라 뇌혈전증과 뇌색전 두 가지로 나눈다. 뇌혈전증이라 함은 막힌 동맥 그 부위에 동맥 자신의 병변이 있는 것을 말하고, 뇌색전이라 함은 동맥 자체에는 막힐 아무런 병변이 없는데 동맥 중에 흘러온 이물이 동맥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 이물은 대다수 심장판막증으로 심장 내에 생긴 핏덩어리나 다른 동맥경화 부위에 붙었던 핏덩어리가 떨어져서 흘러나온 것이지만 잘못되어 동맥 내에 들어온 공기나 지방에 의한 경우도 있다.

뇌혈전증의 원인이 되는 동맥의 병변은 대다수가 동맥경화이다. 동맥경화 중에서도 비교적 큰 동맥인 아테롬 경화이고 뇌 내의 세동맥에서는 세동맥 경화가 원인 병변이 된다. 이와 같은 변화로 좁아진 동맥 자체에 혈전이 머물러 있어서 뇌혈전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따라서 뇌혈전증은 동맥경화성 뇌괴사 또는 동맥경화성뇌연화증이라고도 하고 동맥경화가 진행되어 오는 노년기에 많이 온다. 뇌색전이라는 것은 심장판막증 등이 있으면 젊은 사람에게도 생긴다.

 

ㅇ지주막하출혈

지주막하출혈이 된 까닭은 또 다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뇌의 표면은 뇌에 가까운 순으로 연막, 지주막, 경막 등 3겹의 막으로 싸여 있는데 그 중 한가운데의 지주막하, 즉 뇌의 표면에 출혈된 것이 지주막하출혈이다. 이것은 물론 두부외상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도 많지만 보통 지주막하출혈이 라고 할때는 외상성의 것은 말하지 않는다. 외상 이외의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은 동맥류에 의한 것이다. 동정맥기형으로 된 것도 볼 수 있다.

동맥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낭상동맥류이다. 이것은 고혈압성뇌출혈에서 말한 미소동맥류와는 다른, 뇌의 저면을 지나가는 매우 큰 동맥이다. 이런 사람은 선천적으로 동맥의 벽에 거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후천적으로 혈압과 노화성 변화로 다시 거칠어지고 불룩해져 종래에는 열매 모양으로 된 동맥류가 된다. 이것이 파열하여 지주막하출혈을 일으키는 것이다.

 

3) 증상

ㅇ뇌출혈로 인한 반신불수

뇌출혈은 돌연적으로 급속히 진행하여 수 분에서 수 시간에 증상이 완성되는 점이 특징이다. 뇌경색에 비하여 급함과 동시에 발작이 주간에 활동할 때 생기는 경향이 있다. 그 신경증상은 출혈 부위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의식장애가 생기고 오심, 구토를 같이 할 때가 많고 반신마비가 생긴다.

뇌출혈에는 몇 가지 잘생기는 부위가 있는데, 가장 많고 또 뇌출혈에서 보통 예후가 좋은 것이 외측형 출혈[피각출혈이라고도 함]이다. 이것은 대뇌의 심부피각이라고 하는 부근에서 출현한 것으로 대뇌피질에서의 운동신경 섬유가 모여서 아래로 내려가는 내포라고 하는 부분보다 외측에 출혈이 되어 외측형 출혈이라 한다. 이 부분에 출혈이 되면 출혈된 반대측의 상하지가 마비되고 두통, 오심, 구토가 생긴다. 그리고 곧 의식이 혼탁하게 되는데 출혈량에 따라 깊은 혼수상태가 되기도 한다.

 

또 눈이 좌우 어느 한쪽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모양으로 고정되기도 한다. 이때 눈은 병든 쪽으로 固定(고정)되는 것이 많으나 초기에는 반대로 향하는 수도 있다. 출혈이 국한성일 때는 의식도 곧 회복되고 한쪽 마비도 회복이 잘 되는 것이 많으나 대출혈이 되면 뇌실로 터져 나와서 다음 말하는 뇌실 출혈의 증상을 보이고 죽는다.

또 痲痺(마비)된 쪽 반신의 지각 저하가 생겨 때로는 두 눈이 시야의 좌우 어느 것이나 반씩 보이지 않는 동명반맹을 나타 내기도 한다(오른쪽이 병들면 두 눈 다 시야의 왼쪽 반이 보이지 않게 된다). 우위반구[일반적으로 좌반구]에 병들면 실어증이라고 하여 말을 못하게 되거나 말을 한다 하여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기도 하지만 뇌출혈 후의 실어증의 회복은 비교적 양호하다. 더욱이 출혈이 된 부위와 반대측의 상하지가 마비되는 것은 운동을 주관하는 섬유가 대뇌 운동영역의 신경세포에서 나와서 척추에 내려가는 도중에 뇌와 척수의 경계인 연수에서 반대측으로 교차되기 때문이다.

 

뇌출혈 중에서 보통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이 내측형 출혈[시상출혈이라고도 함]이다. 이것은 뇌의 깊은 곳 시상이라는 곳에 출혈된 것이다. 외측형 출혈과 발작 상태는 동일하지만 초기에 구토하는 것이 보다 많고 의식 장애도 보다 심하고 고열을 내기도 한다.

공동편시가 없는 대신 코끝을 보는 것 같이 눈이 고정되어 위쪽을 보지 못하게 되고, 동공에 빛을 비춰도 수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외측형 출혈보다 뇌실 천파를 내기 쉽고 예후도 매우 불량하다.

 

다음에는 대뇌반구가 아니고 소뇌에 출혈하는 수가 있다. 소뇌출혈은 초기에는 의식이 있으나 분명한 고혈압으로 두통, 현훈, 구토를 하고 누워 있는 상태로 손발을 움직여 보면 마비는 안 되고, 움직이지만 일어서거나 걷거나 하려고 하면 잘 안 되는 상태를 보여 준다.

수십 분에서 수 시간이 지나면 양쪽의 손발이 마비가 되고, 의식장애가 되어가며, 눈은 병든 반대쪽을 응시하고, 한쪽 눈시울이 굳어진다. 또한 동공이 달라지고 떨리는 등 여러 가지 상태를 나타내고 곧 죽는다.

 

가장 격렬한 증상을 나타내면서 2~3일 이내에 반드시 죽고 마는 것이 교출혈이다. 교라는 것은 대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뇌간의 한가운데 있는 부분으로서 위쪽 아래쪽으로 가는 신경섬유가 조밀하게 분포하고 중요한 뇌신경의 세포와 소뇌와의 연락처이고 의식을 주관하는 중요한 부위이다.

이것은 발작과 동시에 혼수에 빠지고 편마비가 아니라 양쪽이 마비되고 고열을 나타내기도 한다. 동공이 심하게 줄어드는 것이 특징이고, 혈압이 발적 전보다 발작 직후 심히 상승하다가 곧 내려가고 호흡 상태가 문란해지게 되며 곧 사망하고 만다.

 

대뇌반구의 외측형 출혈과 내측형 출혈이 뇌실천파를 하였을 때도 교출혈과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깊은 의식장애, 양측 마비, 고열, 호흡장애, 경련 등이 나타나지만 교출혈과는 다른 것으로 이것이 일어나기 전에 한쪽 마비가 나타나는 시기가 일정 시간 이어진다.

고혈압성뇌출혈은 위에서 말한 외측형 출혈, 내측형 출혈, 소뇌출혈, 교출혈의 4군데 출혈이 대부분이고, 이외 부위의 출혈은 흔치 않다.

 

ㅇ지주막하출혈 증상

지주막하출혈은 갑자기 생기는 심한 두통으로 시작한다. 때로는 본격적인 발작의 시작 수 일 전부터 두통이 있기도 한다. 또한 동 정맥 기형이 원인인 것은 발작 전부터 경련이 수 차례 일어나는 수가 있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렸을 때, 배변, 성교 등으로 발적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구토는 발작 후에 가끔 보인다.

의식장애는 없을 때도 있지만 약간의 의식장애를 보일때가 많고 때로는 발작과 동시에 혼수상태로 이어져 그대로 죽고 마는 중증의 예도 있다.

수막이 자극되므로 머리를 타동적으로 앞뒤로 구부리면 뻣뻣하고 항부강직을 나타낸다. 드러누워서 고관절을 직각으로 구부린 채 무릎을 뻗으면 도중에 저항이 있는 경우 대퇴부에 통증이 있음을 말한다. 뇌 표면의 출혈이므로 보통 마비 등은 눈에 뜨이지 않으나 뇌 속이 터지거나 혈종 압박이 있거나 뇌혈관 연축으로 뇌의 순환장애를 일으키거나 하면 편측마비 또는 실언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 뇌신경 마비, 특히 반구 운동에 관계된 신경이 장애를 받을 때도 있고 혈종에 의한 압박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동맥류로 이들 신경이 압박당해 발작 전부터 마비되어 있을 때도 있다. 터진 부위와 크기에 따라서는 자발성이 없어지고 성격이 변화하거나 손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꽉 잡고 입술에 접근된 것은 무엇이든 먹어 버리려는 원시반사가 나타나거나 심한 경우는 전혀 입도 벌어지지 않고 손발도 움직여지지 않는 무도무언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지주막하출혈은 뇌출혈에 비해서 발병 연령이 젊다. 동맥류에 의한 것은 30~60대, 특히 50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동 정맥 기형에 의한 것은 좀 더 젊은 세대인 10~50대에 주로 나타느는 것인데 그 중 30대가 가장 많다.

 

ㅇ뇌경색 증상

뇌혈전증과 뇌색전증은 발작 증상이 좀 다르기 때문에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뇌출혈이 주간 활동 중 많이 일어나는 데 반하여 뇌혈전증은 야간, 취침 중에 일어나는 예가 비교적 많다. 또한, 전날 잘 때까지는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날이 밝아 일어나려고 할 때 한쪽 손발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뇌혈전증으로 인한 것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급격히 발작하는 것과 완만하게 진행하는 것이 있지만 수 분에서 수 시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뇌혈전증 발작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뇌출혈과 달라서 의식장애가 없고 있어도 가벼운 것이 많지만 큰 기간인 뇌동맥이 폐색되면 혼수에 이르기도 한다. 두통과 구토는 있어도 보통 약하고 때로는 경련이 있기도 한다.

 

이에 반하여 뇌색전은 너무 급격하여 수 초에서 수 분에 증상이 끝나고 만다. 의식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고 경련의 빈도도 뇌혈전증보다 많은데 이것은 색전이 그 성질상 대뇌피질에 병변을 만들기 쉬운 것과 관계된다고 생각된다. 발작은 낮에 일어나기도 하고 밤에 일어나기도 한다.

뇌혈전증이나 뇌색전이나 그 신경증상은 막힌 동맥으로 인해 혈액을 공급하고 있던 영역의 뇌가 연화(괴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므르 어떤 동맥이 막혀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증세를 나태내나 일반적으로 한쪽 마비를 나타내는 경우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또 같은 동맥이 막혀도 막힌 대로 그 영역에 혈액을 공급하여 주는 다른 동맥이 있는지 없는지 등에 따라 괴사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증상도 같지 않다.

 

뇌에 들어가는 동맥은 경부의 앞쪽을 상행하여 뇌에 들어오는 내경동맥과 뒤 경추의 가운데를 통하여 뇌에 들어오는 추골뇌저동맥으로 크게 나뉜다. 전자는 뇌에 들어가서 전대뇌동맥과 중대뇌동맥으로 나뉘어 각기 뇌의 표면에 가는 가지와 심부에 가는 가지로 나뉜다.

좌우의 추골동맥은 두개 중에 들어가 합병하여 한 개의 뇌저동맥이 된다. 뇌저동맥은 뇌간을 흐른다음 좌우 후대뇌동맥으로 나뉘어져 뇌의 뒤쪽에 혈액을 공급한다. 내경동맥과 추골뇌저동맥은 후교통동맥과 그 외의 곳을 연락하며, 또 좌우의 내경동맥은 뇌 내에서 전교통동맥 등에 연락하므로 뇌저부에서는 윌리스 환이라고 말하는 동맥의 연락로를 형성하여 뇌로 가는 동맥이 장애를 받아 혈행이 정지되더라도 뇌 기능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역활을 한다.

 

뇌는 각 부위에 따라 분담하고 있는 기능이 다르다. 또한 동맥은 뇌의 심부를 영양하는 가지와 뇌의 표면을 영양하는 가지들로 나뉜다. 뇌의 피질은 언어, 인식, 계산 등의 고차원적 신경기능을 다스리고 있고 각각은 뇌 표면에 독자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화를 어디에 일으켰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신경증상을 나타내는 것인데, 그 중 가장 혈류량이 많은 중대동맥이 흐르는 영역에 연화가 생기기 쉬우므로 반신불수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

이 영역의 피질 쪽에 가는 가지가 좌측에서 폐색되면 뇌출혈에도 말한 바와 같이 실어증이 생기고 극히 일부가 폐색되면 마비는 없으나 계산을 할 수 없게 되거나[실계산증] 글을 쓸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게 되거나 좌우 구별을 할 수 없게 된다. 우측 피질의 병변에서는 좌측의 공간을 아주 무시하는 증상이 나오기도 하고 또 광범위한 부위와 특수한 부위의 병변에서는 멍청이가 되기도 하는 정신증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 외에도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는 실조증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뇌경색의 증상은 이와 같이 다양하지만 주요하게 한쪽 마비, 같은 쪽 지각의 둔마, 실어증 등이 잘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ㅇ일과성뇌허혈발작

일과상뇌허혈발작으로 인한 증상은 뇌색전과 비슷하나 보통 뇌색전보다 가볍고 그 증상이 수 분에서 한 시간, 길게는 24시간 이내에 없어진다. 가벼운 한쪽 마비나 반신의 지각 둔마, 실어증, 동명반맹, 혹은 한쪽 눈의 시력 저하와 반대 측 편마비 등 내경동맥 영역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추골뇌저동맥의 증상으로는 역시 부전마비, 직가 둔마, 동명반맹 외에 복시, 평형장애, 연하장애, 구어장애, 회전성현훈 등 여러 가지 조합에 의하여 생겨난다. 때로는 같은 발작이 일어나서 증상이 보다 길게 계속되다가 완전 소실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은 가역성 허혈성신경학적결손이라고 하여 일과성뇌허혈발작과 구별하고 있다.

 

일과성뇌허혈발작의 빈도는 1회성에서 몇십 회 일어나는 경우 등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내경동맥 영역의 것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반면에 수 회 후에 뇌경색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데 비해 추골뇌저동맥계의 것은 자주 일어나기는 하지만 뇌경색으로 발전하는 일은 적다. 앞에서 말한 바왕 같이 일어난 원인은 다를 수 있겠지만 특히 내경동맥 영역의 것은 뇌경색의 전구 증상으로서 엄중히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ㅇ고혈압성뇌증상

고혈압성뇌증상은 주요하게 두통으로서 특히 후두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많고 안면 창백, 오심, 구토를 동반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곧 눈이 침침하여진다고 말하고 의식 상태도 저하되며 경면상태로 이행하여 경련을 일으킨다. 두통, 경련, 의식장애가 고혈압성뇌증상의 중요한 세 가지 증상이다. 때로는 일과성의 편마비를 나타내기도한다.

안저 유두라는 부위에 부종이 보이고 출혈도 가끔 보인다. 발작시 혈압은 이완기 혈압이 120mmHg 이상이고 평균혈압(수축기 혈압과 이완기 혈압의 평균)이 150mmHg 이상의 예가 대다수이나 혈압의 절대치보다도 어느 정도 속도로 이 정도의 고혈압이 되었는지의 경과가 중요하다. 대체로 급성사구체신염과 임신중독증과 같이 급히 혈압이 상승하였을 때 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고 고혈압이 지속된 예로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 이 증은 혈압을 내리는 데 따라서 후휴증 없이 쾌유되지만 혹 후유증이 남아 있다면 뇌출혈이 합병되지 않았나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4) 치료

이상 말한 바와 같이 중풍(반신불수)은 그 원인이 여러 가지다. 중풍은 증상이 생긴 후에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증상이 오기 전에 오지 않게 하는 예방이 더 중요하다. 그 중 뜸은 중풍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다. 또한 반신불가 된 후라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뜸 치료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보통 이런 중풍 증상이 처음 왔을 때는 대개가 가볍게 온다. 간혹 자신도 모르게 지나가는 수도 있는데 이때 만일 치료와 예방을 계을리하면 그 다음 두 번째 재발이 반드시 온다. 이때는 필경 팔을 들고 다리를 끌고 다니게 되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두 번째 재발까지만 해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혼자 거동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세 번째 재발이 왔을때는 죽을 때까지 거의 누워서 꼼짝 못하고 2~3년 대소변을 보다가 죽고 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반신불수로 사는 환자 대부분이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중풍(반신불수)은 빨리 죽지도 않고 빨리 낫지도 않기 때문에 동양의학에서는 병 중에 어른이라고 하였던것 같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자리에 뜸을 뜨면 자기 운명대로 중풍이 없이 혈압이 높은 사람도 한평생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80여 년 뜸을 뜬 임상 경험에서 알게 되었으니 누구나 뜸 떠서 이 무서운 중풍을 방지해야 한다. 뜸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며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또한 욕심을 내지 않는 이상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으로 최고의 의학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아픈것은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뜸뜨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중풍만은 꼭 뜸을 떠 예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중풍예방뜸을 뜨면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 식구들 고생은 덜 시킬 수 있다. 흔히 뜸으로 뇌출혈이 예방된다고 하면 믿지 않는데 성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뜸이니 자기 스스로 꼭 뜸떠서 중풍을 예방하여야 한다.

*자기가 스스로 뜸떠 예방하는 자리- 족삼리 곡지 중완 기해 관원에 매일 뜸 5장씩 한다.

*치료와 예방을 동시에 하는 자리- 족삼리 곡지 중완, 기해 관원(여성은 중극수도) 백회 폐유 고황 간유 신유에 뜸을 5장씩 뜬다.

 

중풍은 몸의 기가 부족해서 허할 때 온다. 기운이 왕성하면 혈압이 높아도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지 않다. 그러므로 중풍 치료는 기운을 북돋아주면 된다. 혈을 조절해 기운이 나게 하고 만성병을 치료하는데 역시 뜸이 최고다.

머리 위 모든 양의 기운이 만나는 백회는 양기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족삼리는 맑은 기운은 올리고 탁한 기운은 내리게 하여 다리의 힘을 기르고 곡지, 중완은 소화를 도와 전신의 기혈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기해, 관원은 맑은 기는 모으고 탁한 기는 내본낸다. 등에서 폐의 기운이 흘러드는 폐유, 간의 기가 흘러드는 간유, 신의 기가 흘러드는 신유를 취혈해 폐 간 신의 기능을 높여준다. 이렇게 전신의 기혈을 조절하게 되니 자연히 혈압이 조절되고 몸에 힘이 생겨 중풍재발을 막을 수 있으며 병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고날 때의 혈압 즉 선천성혈압은 그것이 고혈압이든 저혈압이든 자기 혈압이고 후천적으로 생긴 혈압은 고저를 막론하고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고혈압은 어디까지나 병은 아니다. 우리 몸의 어딘가에 병변이 생기면 혈압에 이상이 오는 것이므로 혈압이 높은 것은 하나의 증상이 지 병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병변의 원인이 치료가 되면 혈압은 자동적으로 조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혈압을 병이라고 보지 않는다. 혈압에 이상이 있다 하면 원인을 먼저 찾아 치료하면 되는 것이다. 본인은 많은 혈압 환자들을 치료하여 거의 중풍 없이 오래 사는 것을 보아왔다.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사람은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로 인하여 혈압이 높다든가 또는 심장이 원인이 되어 높다든가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혈압만 강하시키고 억제하게 되면 그 당시는 조절이 될 지 모르지만 곧 또다시 재발되기 마련이다. 이래서 혈압 환자는 시간이 걸려도 무엇보다 먼저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혈압 조절은 덜 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중풍 예방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기 몸은 자기가 의사가 되어야 한다. 무극보양뜸은 자기 몸의 의사가 될 수 있는 의학이다.

 

 

4. 전간

혈자리- 중완 백회 족삼리 전중 심유 신유 곡지 간유 담유 풍지 비유 지양 거궐 관원 삼음교 태계 무극보양뜸

1) 정의

갑자기 의식을 잃고 강직성, 간대성 경련을 일으키는 발작질환을 전간이라 하는데 예로부터 간질 또는 지랄병이라고도 한다. 진성전간과 증후성전간으로 구분한다.

2) 원인

ㅇ원발성인 진성전간-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특발성으로 유전적 요인 또는 대사성 요인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ㅇ속발성인 증후성전간- 심신과로, 전에 머리의 부상을 입었거나 수술을 받은 일이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과 수막염이나 뇌염을 앓은 일이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수도 있다. 또 전간 유사발작, 히스테리, 만성 알코올 중독, 요독증 등에서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3) 증상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전신경련을 일으키며 눈은 멍하고 입에서는 거품이 나오고 발적을 반복하는 병이다. 처음 발작이 아닌 사람은 미리 발작을 예측하고 장소를 가려낼 수 있지만 처음인 사람은 당황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러지기 때문에 머리를 다치거나 화상을 입거나 물에 빠지거나 차에 다치는 등의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전간의 발작 유형은 다음과 같다.

ㅇ대발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괴성을 지르며 발작을 심하게 한다. 발작이 끝나면 수면에 빠지지만 곧 깨어난다. 10세~25세 사이에 발병하는 사례가 많다.

ㅇ소발작- 수 초 내지는 수십 초의 짧은 시간 동안 의식을 잃거나 또는 잠깐 동안 근육 경련을 일으키는 약한 발작을 말한다.

ㅇ자율신경발 발작- 발열, 발한, 복통 또는 심계항진 등의 자율신경 기능에 비정상적인 발작성 증세가 나타난다.

ㅇ정신운동 발작- 의식이 맑지 않고 이상 동작을 보이는 증상으로 평소 하지 않던 행위를 한다. 예를 들면 혀를 흉하게 내민다거나, 머리를 이상하게 움직이는 등 주위 상황과는 전연 관계없는 행위를 한다.

 

4) 치료

ㅇ발작 시 응급조치

발작하였을 때 혀를 깨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무 조각 같은 것을 헝겊에 싸서 위아래 치아 사이에 끼워 주고 숨이 막히지 않도록 목에 맨 것을 풀어 주고 머리를 뒤로 젖혀 주되 의식이 회복된 후에도 환자를 흔들거나 자극하지 말고 내버려 둔다.

ㅇ기본치료

발작이 끝난면 전신 피로와 함께 기혈 순환이 여유롭지 않으므로 다음 경혈에 뜸을 약하게(3~5장) 떠서 전신 기혈의 조화를 이루어준다.

중완 백회 전중 심유 신유 족삼리 곡지

ㅇ선택치료

성격이 급하고 정서 변화가 무쌍하며 발작 후 몹시 답답해하고 불안해한다면- 간유 담유 풍지

발작 후 전신피로감과 입맛을 잃고 메스꺼워하면- 비유 지양 거궐

발작이 길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안색이 퇴색하면- 관원 삼음교 태계

ㅇ근본치료

발작이 있건 없건 매일 무극보양뜸을 3장씩 떠서 전신의 기혈이 순조롭게 한다.

* 구당 한말씀

간질 치료는 현대의학에서도 난치병으로 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말하기를 간질병은 '선조들이 큰 죄를 졌을 때 후손에게 그 대가로 하늘이 준 벌'이라고 하여 문둥병과 간질을 치료하여 주면 하늘을 거역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날 의사들이 치료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치료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필자의 친형님인 김기수 씨가 얘기해 주었다.

위에 언급한 치료혈에 꾸준히 뜸을 뜨면 의식만 약간 없다 만다거나, 약간 어지럽다마는 것, 두중, 두통, 정신불안, 기타의 전구증만 자주 있다 마는 것 등 경이증인 경우는 쉽게 낫는 것아 많다.

'심하게 자주 발작하는 것도 계속하여 몇 년이고 뜬다면 처음에는 매일 발작하던 것이 점차 간격이 멀어져 며칠에 한 번, 몇 달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점점 줄어들어 자기도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낫고 만다.'라고 하여 '아프게 되는 것은 쉬운데 몇 년 뜸 뜨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고 뜸뜨려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얘기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라 참고로 써 둔다.

또한 김기수 씨는 얘기하기를 '인술이 즉, 선이니 무릇 의자는 태어나면서 부터 선을 생명으로 알아야 한다. 분명히 낫는 병인 줄 알면서도 하늘이 벌준다 하여 겁먹고 병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의자일 수 없다.'라고 했다.

 

5. 파킨슨병

혈자리- 백회 심유 족삼리 신유 전중 간유 근축 곡지 폐유 대추 태계 비유 격유 기해 삼음교 무극보양뜸

동일질환- 진전마비

1) 개요

파킨슨병은 진전마비라고도 하는 난티성 질환이다. 중뇌의 흥분과 억제를 조절하는 흑질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소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안정 떨림, 경직, 자세 불안, 손 떨림 증상 등이 반복되는 만성 난치성 질환이다.

2) 원인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인자의 환경인자의 복합작용에 의해 발병하지 않을 까 하는 추정을 할 뿐이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많이 발생하나 가족력은 그다지 관계치 않는다고 보고 있다.

 

* 구당 한말씀

파킨슨병을 침뜸의학에서는 정혈허증으로 인한 심신불교가 주된 원인으로 본다. 사람의 뇌수를 유양하는 것이 선천지정인 신의 정혈인데 나이 들어 노쇠허면 정혈이 고갈 되어 뇌수를 유양하지 못하니 기억력이 떨어져 건망증이 심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면 치매가 되는 이치와 같다. 손발이 떨리고 머리를 흔드는 것은 심의 화가 신수를 유양을 받지 못하여 화기의 특성인 '분열 흔들림'이 발현되는 것이다.

3) 증상

처음에는 손에 흔들림이 일어나고 같은 쪽의 상하지에 까지 미치고 나중에는 반대쪽의 상하지에 까지 미쳐서 종래는 전신의 흔들림을 일으킨다. 이때부터는 근육이 때로는 보행 중 움직이지 못하고 굳은 자세로 서 있을 때가 있는데 이때는 불수의가 되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파킨슨병 환자 혼자서 차도를 보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4) 치료

ㅇ기본치료

백회 심유 신유 전중에 뜸을 떠서 수화의 조화를 이루게 하고 간유 근축 곡지 족삼리에 뜸을 떠서 관절과 근육의 기혈을 순조롭게 한다.

파킨슨병 환자는 많으느 경우 발병 전에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들의 고통은 흔들리는 것을 안 흔들려고 애쓰다 보니 심장에 무리가 더 가게 되어 생긴다. 그러므로 전중 심유를 사용하여 심신을 안정시키고 심기를 보한다. 간은 근을 주관하므로 간유와 근축을 사용하여 근육을 이완시킨다.

ㅇ선택치료

손떨림과 함께 열이 나고 바람이 싫어지면- 폐유 대추

손떨림과 함께 어지럼증, 이명, 요슬통이 오면- 삼음교 태계

손떨림과 함께 심신이 피로하고 안색이 창백하면- 비유 격유

손떨림에 가슴이 뛰고 한숨을 쉬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해

ㅇ근본치료

평소 무극보양뜸 떠서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루어 준다.

 

 

6. 두통

혈자리-두유 백회 족삼리 합곡 풍지 중완 폐유 대추 신유 중극 심유 전중 비유 간유 아시혈 무극보양뜸

1) 정의

두통은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질환이지만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아픈 부위를 중심으로 분류한다면 전두통, 미릉골통, 후두통, 편두통, 두정통 등으로 분류된다. 또 병인별로 분류로 본다면 원발성두통과 속발성두통으로 분류하는데 원발성두통은 아주 가벼운 두통으로 스트레스, 피로, 수면부족 등에 의한 경증이 두통이 있고, 조금 무거운 두통으로 편두통, 군발두통있다. 속발성두통은 뇌종양, 뇌출혈, 뇌압 상승, 뇌염, 뇌수막염 등 치명적인 질환이 원인이므로 원인 질환 치료가 우선일 것이다. 본 절에서는 원발성두통만을 대상으로 논한다.

 

2) 원인

두통의 종류와 통증의 정도가 다양하므로 그 발병 원인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두통의 부위별 분류에 맞춰 원인을 분석한다.

전두통- 주로 감기 등 외감사기에 의한 두통으로 폐경의 질환이다.

미릉골통- 주로 위의 질환으로 체기가 있거나 소화기의 질환이 주된 원인이다.

후두통- 주로 신과 방광 경락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질환이다.

편두통- 주로 간담에 문제가 있을 경우 생기는 두통이다.

두정통- 주로 간에 문제가 있을 경우 발생하는 두통이다.

3) 증상

두통의 증상은 어느 쪽이 어느 정도 아프냐만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

4) 치료

ㅇ급성실증두통인 경우

두유와 백회, 합곡, 특히 아픈 부위가 느껴지면 그 아픈 부위(아시혈)에 5~7장의 뜸을 떠서 통증을 진정시킨다.

ㅇ만성두통

백회 두유 풍지 중완 합곡에 3~5장씩 뜸을 뜬다.

ㅇ선택치료

전두통- 폐유 대추

미릉골통- 중완 족삼리

후도통- 신유 중극

좌측 편두통- 심유 전중 비유

우측 편두통- 간유 풍지

두정통- 백회 간유

이상의 경혈에 3~5장씩의 뜸을 매일 뜬다.

ㅇ근본치료

이상 치료 외에 무극보양뜸을 꾸준히 뜨면 웬만한 두통은 잘 치유된다. 급성두통은 치료가 빠르지만 오래된 두통은 그 뿌리가 깊으므로 끈기를 갖고 뜸을 떠 주면 효과가 좋다.

 

 

7. 안면신경마비

혈자리- 반대변 합곡 완골 풍지 현로 견정 폐유 고황 간유 천료 관원 신유 비유 무극보양뜸

1) 정의

안면 근육 중 턱의 운동을 관장하는 교근만이 관절운동을 하고 나머지 근육들은 모두 표정관리를 담당하는데 이들은 안면신경의 조절을 받는다. 안면의 콧날 중심선을 수직으로 하는 정중선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인 안면신경의 어느 한쪽이 마비되거나 약화됨으로써 눈과 입이 마비되지 않은 쪽으로 쏠려 안면이 일그러지는 것을 안면신경마비라 하는데 침뜸의학에서는 구안와사라 부른다.

2) 원인

감기, 외상, 전염병, 중독, 귀 질환, 뇌 질환, 신경염, 근위축 등이 원인으로 오는 안면마비는 60% 이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찬바람을 쐬었을 때와 과로나 과음으로 잠잘 때 자세가 바르지 못한 채로 춥게 자고 났을 때 귀 뒷부분에 가벼운 통증이 생겼다가 한나절쯤 지나면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다. 또 중이염이나 축농증 수술시 신경 절단으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는 잘 낫지 않는다. 반면에 수술 후 마비는 안 되었다 해도 안면에 경련발작이 오는 경우도 있다.

 

3) 증상

마지는 대다수가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에 온다. 마비된 쪽의 앞이마는 주름이 없어지고 또 표정이 일그러져서 구안와사 환자 특유의 면모가 나타난다. 눈은 충분히 감기지 않고 입은 구각이 건강한쪽으로 잡아당겨져 틀어지고 식사를 할 때는 입에서 음식물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말이 잘 안되고 맛도 잘 모르게 되며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또 눈이 잘 감기지 않기 때문에 결막염이나 각막염 등에 걸리기 쉽다.

*참고

안면신경은 12개의 뇌신경 중 하나로 귓바퀴 뒤 유양돌기 후하부인 완골부위에서 외부로 나와 한 가닥은 상행하여 앞이마 쪽으로 한 가닥은 권돌부위로, 한가닥은 아래턱과 아랫잎술 부위로 포진한다. 따라서 안면신경 마비가 오기 전에 완골 부위에 통증이 온다거나 특이 감각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안면신경마비 전구증이라 할 수 있다.

 

4) 치료

얼굴은 특수 부위로 뜸을 떠서는 안 되는 곳이다. 따라서 뜸보다는 침으로 치료하되 얼굴 이외의 부위에서는 뜸을 반드시 떠 주어야 효과가 빠르다.

ㅇ기본치료

환측의 완골 풍지 현로 및 반대편 합곡 견정에 5장씩 연 3일 뜸을 뜨고 3일 쉬었다가 다시 3일 뜸을 뜬다. 다음은 5일 쉬었다가 뜨고, 7일 쉬었다가 같은 요령으로 뜸을 뜬다.

ㅇ선택치료

발병 시 감기 기운이나 찬바람을 쐰 후 입이 돌아갔으면- 폐유 고황

발병 시 심한 스트레스나 고혈압증이었다면- 간유 천료

발병 시 과로 등으로 몹시 허약했다면- 관원 신유 비융

ㅇ근본치료

기본치료와 더불어 무극보양뜸을 쉬지 않고 매일 떠서 전신 기혈의 조화를 이루어 준다.

* 구당 한말씀

구안와서 발병 직후이면 건측 간사에 노구초(독초)를 짓이겨서 붙이면 즉시 효과가 있다는 민간요법도 있기는 하지만 대두대 뜸으로 10여 장 떠 주면 치료가 되기도 한다.

 

 

8. 삼차신경통

혈자리- 곡빈 완골 백회 풍지 천주 중완 합곡 두유 현로 정영 무극보양뜸

1) 정의

안면과 머리의 통각과 온도 감각을 인지하여 뇌에 전달하는 신경을 삼차신경이라 하여 여기에 이상이 생겨 안면과 전두부에 걸쳐 오는 통증을 삼차신경통이라 한다.

2) 원인

가장 흔한 원인은 외상의 충격으로 삼차신경에 손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기타 류마티스, 각종 중독, 빈혈, 한랭, 감기, 두부 질환 등 다양한 원인 질환이 있어 비교적 정확한 원인을 판별하기가 쉽지 안흔 질환이다.

 

3) 증상

얼굴에 나타나는 발작성극통으로 갑자기 심한 통증이 몇 초간 지속되면 그 후에 발작적으로 되풀이된다. 통증이 삼차신경가닥으로 전파되어 방산상으로 파급하는 것이 전기와 같다. 그 동통은 제1지의 것은 전주, 안구, 상안점, 제2지의 것은 하안점, 상순, 비익, 상치열, 제3지의 것은 아랫입술, 아래턱, 하치열 및 혀끝에 나타난다.

격렬한 발작이 있을 때는 운동 및 분비신경이 자극 받아 안면경련, 눈물, 콧물, 침 분비항진이 생기고 결막충혈이 보이기도 한다. 안면통은 제1지, 제2지, 제3지 모두에 나타날 때와 각각의 분지에 나타날 때도 있고 그 동통의 종류도 다르므로 치료 방법도 그에 따라 다르다.

 

4) 치료

삼치신경통의 통처가 안면이라는 특수성은 안면신경마비의 경우와 같다. 따라서 혹 안면에 통증이 온다 해도 안면에는 뜸을 떠서는 안된다.

ㅇ기본치료

곡빈 완골 백회 풍지를 주혈로 하고 천주 중완 합곡을 보조혈로 하여 뜸을 떠서 삼차신경의 안정을 취하도록 한다. 특히 곡빈 부위는 삼차신경절이 위치한 자리로서 반미립대로 3~5장 약하게 뜸을 떠 주면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ㅇ선택치료

삼차신경은 곡빈을 기점으로 해서 세 가닥으로 분기되어 안면을 뒤덮는 바 통증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뜸을 뜬다.

앞머리, 안구, 상안검이 아프면- 두유 상방 3cm

하안검, 잇입술, 비익, 윗잇몸 부위가 아프면- 현로

아랫입술, 아래턱, 아랫잇몸 부위가 아프면- 완골, 정영

위 변증에 따른 처방혈에 7~10장 정도의 뜸을 떠서 통증을 제거한다.

ㅇ근본치료

나머지 무극보양뜸으로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룬다.

*진통제로 살던 사람도 이렇게 꾸준히 뜸을 뜨면 완치된다.

 

 

9. 늑간신경통

혈자리-폐유 고황 견외유 양릉천 구허 간유 담유 무극보양뜸

1) 정의

갈비뼈 사이에 포진한 늑간신경에 염증이 생기거나 외상에 의한 손상 등으로 갈비뼈 부위에 생기는 통증을 말한다.

2) 원인

흔한 원인으로는 흉곽 부위의 수술 후유증이 많고 외상, 골절, 늑간신경 부위의 감염성 질환 또는 종양등으로 인해 늑간신경이 압박을 받아 생긴다.

3) 증상

발작적으로 생기고 대개 5~9 늑간신경에 많고 편측성으로 왼쪽에 많다. 일반적으로 옆구리 뒤쪽에서 앞가슴 쪽으로 당기는 듯 또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생긴다. 심한 경우는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할 수도 있다.

 

4) 치료

ㅇ응급치료

급성으로 발작적인 통증이 심할 뿐더러 호흡이 곤란할 정도이면 늑간신경 부위의 가장 통증이 심한 곳에 다장구(15장 이상)하고, 숨쉬기가 힘들면 폐유 고황 견외유에 5~7장의 뜸을 떠서 통증을 완화시킨다.

ㅇ기본치료

주혈- 양릉천 구허 간유 담유

보조혈- 폐유 고황

위 처방혈에 각각 5~7장의 뜸을 떠 준다.

늑간은 간경과 담경이 순행하는 부위이므로 간담을 위주로 하여 선혈한다. 먼저 담경의 토혈인 양릉천과 담경의 원혈인 구허를 취하여 막힌 기혈을 소통시키고 간담의 배유혈인 간유와 담유를 써서 간담의 기운을 풀어준다.

늑간신경통이 있을 경우 숨을 못 쉴 정도로 답답한 증상이 흔하게 나타나므로 폐유 고황을 선혈한다.

ㅇ근본치료

무극보양뜸으로 전신기혈의 조화를 맞추어 준다.

 

10. 좌골신경통

혈자리- 요양관 양릉천 신유 요유 환도 포황 천추 현종 승산 곤륜 함중 해계 음릉천 삼음교 중봉 무극보양뜸

동일질환- 좌골신경마비

1) 정의

중추신경의 요추 4, 5번과 선추 1, 2, 3번에서 분기된 말초신경 다발이 대퇴부를 지나서 종아리를 지나 발바닥에 이르는 긴 신경을 좌골신경이라고 한다. 이 좌골신경에 발생된 압박, 손상, 염증 등으로 인해 대퇴후측 또는 종아리가 저려 오는 통증을 좌골신경통이라 한다.

좌골신경통은 신경통 중에서 가장 아프고 발생 빈도가 높은 것으로 늙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청장년에게도 발병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재발이 많은 귀찮고 괴로운 병이다. 직접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일상생활에 고통을 주고 노동력을 감퇴시기는 것으로서 가볍게 볼 수 만은 없는 질병이다.

 

2) 원인

좌골신경통은 저절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고 척수, 당뇨병, 빈혈, 임신, 난소종양, 자궁 및 주위 염증, 방광 질환, 히스테리, 좌상, 감기, 과로, 치질, 상습 변비, 알코올중독 등 다양한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좌골신경이나 그 뿌리가 어떤 것에 압박을 받고 있거나 외상에 의해 상처를 입었을 꼉우에 일어난다. 특히 근성이라고 하여 척추골 사이에 있는 추간판의 변성이나 탈출로 신경근을 압박하는 헤르니아 증상 또는 유착 등으로 흔히 일어난다.

또한 전신적인 병의 예를 들면 당뇨병, 알코올 신경염과 같은 원인으로 경로 방해가 된 경우는 원인 요법이 중요하며 그 다음에 통증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3) 증상

좌골신경통증이 나타나는 유형을 발생빈도 측면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형- 발등 새끼발가락에서 하퇴 후외측에 통증이 있는 것은 제5요추와 선골간의 말초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며 이것이 1위를 차지한다.

제2형- 발등 엄지발가락 쪽에서 하퇴 전 외측에 나타는 것은 제4, 5요추간의 말초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며 이것이 2위를 차지한다.

제3형- 하퇴 전 내측에 나타나는 것은 제3, 4요추간의 말초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이것이 3위를 차지한다.

* 여기서 잠깐

침뜸의학에서 병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환자의 말인 문진과 술자 두뇌의 끝인 손끝을 만지는 안진을 빼놓으면 병도 알 수 없고 치료도 불가능하다. 환자가 느끼고 말하는 자각증세에 따른 증후군이 주증이 된다. 때로는 자발통만이 유일한 증상인 경우도 있다.

자발통의 성질은 안정 시에도 찌르는 것 같고 끊어 놓는 거 같으며 찢는 것 같은 것도 있다. 또한 몸을 움직이지도 눕지도 못할 정도로 극심한 것부터 운동할 때에만 동통이 지속되는 것 등 다양하다. 시간에 따라서 다소 증감은 있지만 중압감은 대다수가 지속적으로 삼차신경통의 경우와 같이 간헐성으로 오는 동통이 아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초현대ㅐ적 진단 장비를 동원하여 진찰해 보고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침구사들은 두뇌의 끝인 손으로 먼져서 병의 뿌리를 찾아낸다. 엄지와 시지로 척추 양쪽을 가볍게 또는 힘주엉 눌러 내려가다가 보면 나타나는 통감이 있는 그곳이 바로 이상이 있는 곳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경에 따라 너무 심한 지각장애는 척수종양, 카리에스에 의한 압박성척수염, 척수골절로 인한 척수손상일 때이다. 이와 같은 것은 신경통이라기보다는 신경염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4) 치료

ㅇ기본 및 선택치료

요양관 신유 요유 환도 포항 천추를 주혈로 하고 다음 융형별 치료 혈들을 선택하여 신경장애 또는 경로 방해를 해소하여 기혈이 잘 순환되도록 한다.

제1형- 제5요춫와 선골 사이 함중을 기점으로 하고 상하추 사이 등 세 곳과 양릉천 현종 승산 곤륜 등을 더하여 뜸을 뜬다.

제2형- 제4, 5요추 간의 함중을 기점으로 하고 상하 요추 간의 함중 등 3곳과 해계 중봉을 더하여 뜸을 뜬다.

제3형- 제3, 4요추간의 함중을 기점으로 하고 상하요추 간의 함중 등 3곳과 음릉천과 삼음교를 더하여 뜸을 뜬다.

ㅇ근본치료

무극보양뜸으로 전신기혈의 조화를 맞춘다.

 

* 구당 한말씀

'침뜸의학적으로 본 좌골신겨통'

동양의학 특히 침뜸에 있어서 진단과 치료에 대한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좌골신경통이 되기 이전에는 요통이었다. 처음 요통이 생긴 후 재차 삼차 재발되게 되면 이때부터는 요통이 아닌 좌골신경통이 되고 만다. 이것이 심하게 되면 현대의학은 디스크 또는 척수막 탈출, 척추분리증, 척추염좌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원인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학적으로는 원인이 신허에서 왔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척수막 탈출은 한쪽이 허하여 힘이 없기 때문에 허한 쪽으로 탈출된 것이라고 한다. 입이 돌아간 안면신경마비와 같이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치료에 있어서 장부의 허실보사와 침뜸의학적인 경락치료만으로 많은 환자에게 치료를 가하여 보았으나 완치를 보지 못하고 수없는 고통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현대의학적인 신경학 이론에 따라 다리로 가는 신경의 뿌리인 요추부위와 앞에서 말한 3가지 유형의 좌골신경통에 따라 경락의 요혈에 뜸을 지속한 결과 대다수가 완치되었다. 물론 뜸은 그 사람에게 알맞은 양을 선택했다.

 

* 참고

벼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선혈만큼이나 뜸의 크기와 장수를 정하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필자가 임상 경험한 바를 말한다면 뜸쑥은 최상의 것으로 사용하고 뜸봉의 크기는 항상 쌀알 반 알 크기로 하며 장수는 전체적으로 처음 일주일 가량은 3장을 넘지 않으며 가장 근원이 되는 곳, 예를 들어 제5요추와 선골 사이의 것이라면 이곳에서는 여러 장을 뜬다. 그리하여 심한 통증이 완화되면 그때부터는 전체적인 것과 동등하게 지속하되 아무런 증상이 없다 해도 6개월 이상은 지속해야 한다.

본 서적은 뜸만을 위한 처방이므로 침뜸을 동시에 할때보다 몇 개의 경혈이 더 추가 되었는 바, 환자의 증상에 따라 참작하여 취혈한다.

 

11. 요통

혈자리

1) 정의

2) 원인

* 여기서 잠깐

3) 증상

4) 치료

* 구당 한말씀

 

 

12. 정신신경증

혈자리- 신주 신도 심유 천주 백회 신문 간유 거궐 비유 신유 삼음교 무극보양뜸

동일질환- 신경쇠약, 히스테리

1) 정의

일반적으로 신경증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데 광범위한 정신질환을 일컫는다. 정신신경증은 다음 두 가지 질환으로 분류한다.

현실신경증- 불안신경증, 심기증, 신경쇠약증

정신신경증- 불안, 히스테리, 강박신경증, 전환 히스테리

2) 원인

정신신경증은 소위 신경질적인 사람에게 정신적 감정적인 요인에 따라 불쾌, 불만, 불평, 걱정, 번민, 분함, 놀람, 공포, 슬픔, 고민 등이 뒤섞여서 생긴다.

인간에게는 마음과 육체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원래 분리할 수 없는 인간의 양면이다. 육체적 질병은 모두 마음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또 이러한 마음의 문제에는 갈등과 충경이 있다. 두 가지 상반되는 욕구가 마음속에서 충돌했을 때는 갈등이나 고민이 되고 강한 자극은 충격이나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과 환경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발생하며, 또 그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므로 같은 환경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며 같은 사람이라도 환경에 따라 그 반응 정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노이로제나 심신증은 모두 마음에서 생기는 병이며 정신병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병의 결과로서의 마음은 정신증상이라고 하며 심한 것은 정신병, 가벼운 것을 신경증이라고 한다.

 

* 참고

동야의학에서는 신은 정을, 심은 신을 낳으니 정신이란 곧 심과 신의 상호작용의 산물로 본다. 따라서 심신이 상교하고 오장이 조화로우면 정신건강도 좋으나 심신불교 하고 오장이 조화롭지 못하면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된다. 오장의 조화란 음양오행의 상호 관계가 조화로워야 한다는 말이다.

3) 증상

육제적인 증상은 가지각색이다. 두통, 식욕부진, 몸이 나른한 증상 등과 같이 가벼운 것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숨이 차다, 손발이 저리다 등의 무거운 증상까지 여러 가지이다.

정신적인 증상에는 불면증, 기억력 감퇴, 초조, 자신감이 없어지는 증상 등이 있다. 흔히 정신신경증을 정신병에 가까운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정신신경증의 경우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반하여 정신병 환자는 자기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또 잘 조사해 보면 정신신경증에는 반드시 원인이 발견되나 정신병에는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4) 치료

ㅇ기본치료

신주 신도 심유 천주 백회 신문에 반미립대 뜸을 매일 3~5장씩 뜬다.

 

13. 불면증

혈자리- 삼음교 궐음유 백회 간유 심유 거궐 천주 족삼리 완골 신유 내관 무극보양뜸

1) 정의

불면증이란 잠들기 힘들고 어렵게 잠들어도 곧 깨어 숙면을 못 하는 질환을 말한다.

2) 원인

a) 내과적 질환(동통, 가려움증, 기침, 호흡곤란)

b) 정신과적 질환(신경증, 신경쇠약, 히스테리)

c) 약물중독 등

* 참고

잠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수면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식사는 육체의 영양분이요, 잠은 정신의 영양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를 하지 않아도 정신이 긴장하면 정신적인 두뇌노동은 물론 육체노동도 평소와 다름없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잠을 며칠 동안 자지 못하면 일을 해도 표가 난다.

수면의 중요성은 수면이 하루의 1/3인 8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갓난아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을 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자는 동안에도 밤이나 낮에 주기적으로 잠에서 깰 때가 몇 번 있다.

 

성인이 되면 수면은 밤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갓난아이 때의 버릇으로 주기가 파상으로 남게 된다. 한잠 잔다는 것은 알고 보면 네 번 가량의 기복이 있는 셈이다. 처음 3시간쯤은 깊이 잠들었다가 선잠이 되고 다시 20분쯤 지나서 깊이 잠들었다가 또 다시 선잠이 된다. 그러고 보면 잠은 연속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단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단락에서 보통 잠을 깨기 쉽다.

수면장애는 잠들기 힘든 입면장애와 숙수장애가 있다. 이 관계는 사람이 깨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긴장이 2시간이나 계속되면 잠깐 쉬지 않고는 더 계속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수업이나 강연 또는 장거리 운전을 할때에는 이런 점이 고려되어 쉬어야 하는 것이다. 잠을 몹시 설쳤을 때는 낮에는 계속 긴장하고 있으며 주위가 산만해져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수면에는 초저녁형과 아침형이 있다. 이는 몇 가지 주기를 초저녁과 아침의 두 가지로 나눈 이름인데 초저녁형이 물론 정상이며 건강에도 좋다. 수면의 피상적 깊이는 대개 초저녁일 수록 깊고 아침에 가까울수록 얕다. 수면은 뇌의 완전한 휴식이 아니라 부분적인 휴식에 불과하다.

불안감이 심할 때는 밤에 잘 때에도 악몽만 꾼다. 또 어린애가 딸린 어머니는 폭풍우소리에는 잠이 깨지 않아도 어린애의 사소한 몸부림이나 달라진 숨소리에는 잠이 깬다. 이와 같이 심신의 작용을 지니고 있는 것이 곧 수면이다. 잠은 뇌의 휴식에 불과하므로, 대뇌가 쉬는 것은 육체가 쉬고, 소뇌가 쉬는 것은 정신이 쉬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고 대뇌와 소뇌가 휴식과 활동 등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혼수상태인 것이다.

 

3) 치료

ㅇ기본치료

백회 간유 심유 거궐 천주 족삼리 완골

처음 2~3주는 3장씩, 다음부터는 5장씩 계속 떠 준다.

* 참고

불면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므로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한다. 불면증은 대개 간경과 심경이 흥분해서 온다. 그런 까닭에 간경의 흥분을 억제하기 위해 머리 위의 백회에 뜸을 뜬다. 한편 간의 기가 흘러드는 간유, 심의 기가 흘러드는 심유, 심의 모혈인 거궐, 머리로 치오른 기를 끌어내리는 족삼리, 심의 기둥인 천주, 안신 작용의 완골 등이 기본적인 치료점이다. 백회를 치료하면 머리 전반의 혈액순환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백회에는 간경이 지나가므로 간경을 조절하는 작용이 있다.

 

ㅇ선택치료

증상별로 다음 혈을 추가할 수도 있다.

평소 입맛이 없고 쉬 피로해 하면- 비유 간유

이명증에 오심번열이 오면- 신유 삼음교

가슴이 두근대고 꿈이 많으면- 궐음유 내관

ㅇ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무의식 상태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 불면증이 심한 환자는 거의가 초조함이 심하여 뜸을 조금 뜨다가 중지하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설득하여 지속적으로 무극보양뜸을 뜨도록 권할 필요가 있다.

* 여기서 잠깐

자연발생적 불면이 아닌 약물중독에 의한 불면은 고치기가 어렵다. 진통제와 신경안정제 등의 남용으로 인한 불면은 근치가 어려우니 그러한 약을 멀리하고 뜸으로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14. 우울증

혈자리- 백회 심유 전중 중완 신유 관원 완골 간유 폐유 고황 거궐 비유 좌양문 우활육문 무극보양뜸

1) 정의

원인이 분명치 않은 우울감과 의욕 저하가 지속되어 일상생활의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심신이 위축되는 질환을 말한다. 특히 여성의 발병률이 많아 25% 정도의 유병률을 보이는 질환으로 심할 경우 자살에 이르는 중증의 우울증도 있다.

2) 원인

현대의학으로는 아직 우울증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나 호르몬 기능의 불균형이 아닐까 하는 추정과 생활 환경의 불안정, 즉 경제적 문제나 애정 결핍, 또는 극심한 스트레스 등의 정서적 장애 등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침뜸의학적으로는 원인분석과 변증이 가능하다.

우울증은 심신불교에 의한 신명위축이 주된 원인이다. 사람의 정신활동은 심과 신의 조화, 즉 음양오행 상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건강하고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우울증은 신양, 즉 명문화가 허손되어 심화, 즉 군화를 유양치 못함으로써 신명의 발현이 위축되고 정신활동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3) 증상

주된 증상은 심한 의욕 저하와 우울감, 공허감, 비애감, 자아상실감, 심지어 자살 충동과 같은 심적 장애가 지속되고 체중의 급년, 식욕 저하, 피로감의 누적 등의 신체적 변화가 지속되는 것들이다.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정신장애 진단기준에 의하면 다음 5항목 이상이 2주간 이상 반복될 때 우울증으로 판정한다.

a) 거의 종일토록 우울감, 공허감, 비애감 등을 느낀다.

b) 거의 매일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c) 특별한 일 없이 체중이 줄거나 늘어난다.

d) 거의 매일 불면증으로 시달리거나 기면증에 빠진다.

e) 거의 매일 불안하여 안절부절 못한다.

f) 거의 매일 피로감에 시달린다.

g) 거의 매일 자기비난, 죄책감 등으로 고민한다.

h) 거의 매일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고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i)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자주 나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

4) 치료

우울증의 주된 원인이 신양허, 즉 명문화의 허손으로 인한 심기허와 심양허한증이므로 심양과 심기를 보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ㅇ기본치료

백회 심유 전중 중완 신유 관원

반미립대 뜸 5장씩 매일 떠서 신양과 심기를 붇돋아 심신의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ㅇ선택치료

불면증이 심하면- 완골 간유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밭으면- 폐유 고황

소화가 안 되고 식욕이 없으면- 거궐 비유

체중이 줄고 몸이 야위면- 좌양문 우활육문

ㅇ근본치료

무극보양뜸을 생활화하면 오래된 우울증도 완치할 수가 있다.

 

 

15. 화병

혈자리- 백회 음릉천 심유 전중 거궐 신유 간유 폐유 고황 완골 중완 비유 견정 족삼리 삼음교 무극보양뜸

1) 정의

화병은 다분히 한국적 특성의 질환이다. 따라서 병명도 한국어인 화병이다. 인적관계 및 생활환경으로부터의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의 누적과 그에 대한 심적인 저항감이 흉중에 얽혀 견디기 어려운 우울감과 분노, 심계, 불면증, 식욕 저하, 심하면 호흡장애 등의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2) 원인 및 증상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다. 견디기 어려운 노여움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간화상염과 그로 인한 심화의 항성으로 가슴이 벌렁대고 불안하며 잠을 못 이룬다. 심하면 명치 밑이 돌같이 굳어 숨이 차고 한숨을 자주 쉰다. 만사 의욕이 없고 우울감이 생기는 것은 우울증과도 유사하다.

* 참고

화병은 우울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화병은 음허양항의 양증이고 우울증은 양허음성의 음증이다. 다만 원인은 다르나 그로 인한 증상은 유사하므로 치료 대상 경혈은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우울증 치료의 처방혈에 간신의 보음을 위한 처방혈을 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치료

ㅇ기본치료

백회 심유 전중 거궐 신유 간유 삼음교 음릉천

심유 전중 거궐에 반미립대 뜸을 매일 5장씩 떠서 심화를 진정시키고 간유 신유 삼음교 음릉천에 각 5장씩의 뜸으로 허약한 음기를 보하여 간양 및 심화의 항성을 억제한다. 백회에 뜸을 떠서 정신을 맑게 하고 활성화시킨다.

ㅇ선택치료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고르지 못하면 - 폐유 고황

불면증이 심하면 - 완골

소화가 안 되면- 중완 비유

혈압이 상승하면 - 견정 족삼리

ㅇ근본치료

무극보양뜸을 생활화하고 위의 기본치료를 보강하면 오래된 화병도 완치될 수 있다.

 

 

침뜸지상강좌- 장상학(2)

이철형(뜸사랑 정회원 6기, 정통침뜸교육원 교수)

<지난 호에서 계속>

 

 

'陽은 氣로 변하고 陰은 形을 이룬다'

2. 변증논치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진단하는 과정을 크게 분류하면 변병과 변증이다.

변병이란 병의 종류나 성질을 구분하는 것이고, 변증이란 여러 증상 증후들을 질병의 원인, 종류, 부위, 성질 그리고 정기와 사기의 상태를 분석하여 개괄적으로 패턴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변병은 병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므로 질병을 변별하여 치료하는데 목적이 있고, 변증은 증후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므로 몸을 변별하여 자연치유력으로 몸을 낫게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변증논치란 변증한 것을 근거로 침을 쓸것인지 뜸을 뜰 것인지, 뜸을 뜬다면 몇 장을 얼마의 크기로 뜰 것인지 등의 치료방법을 확정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병은 증을 총괄한 것이므로 병에는 여러 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변증논치를 위해서는 병명을 알기 위한 증을 분별하는 변증을 하고 난 뒤에 또 다시 변증을 해야 한다. 따라서 변증을 강조하는 것은 변병을 포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증은 현재 나타나는 증상만을 말하는 것이고, 증은 증후, 증거로서 변증하여 얻은 결과인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외부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콧물, 코막힘, 재채기, 오한발열, 복통, 설다 등이 있다면 이들 하나하나의 증상은 증이고, 변병은 감기, 변증은 풍한증이나 풍열증으로 표현한다. 양방같으면 감기로 보고 기침, 가래, 콧물이나 코막힘, 발열, 인후통, 근육통 등에 따른 각각의 증상에 거담제, 소염진통제, 항히스타민제나 해열제 등의 약물을 처방할 것이다. 대략 2,3일 복용한 후 약이 안 맞으면 약을 바꾸거나 가감한다. 이는 증상만을 가지고 치료하는 대증요법이다.

 

하지만 침뜸의학은 문진을 포함한 사진을 통해 진찰한 내용으로 변병과 변증을 하여 치료의 원칙을 세우므로 다원적으로 분석 적용한다.

따라서 풍한증으라 가정하면 병이 체표에 있는지 체내로 들어왔는지, 체내에 있다면 경락인지 장부인지를 구별하여 병증에 맞게 선혈과 배혈을 한다. 병이 발전되어가는 과정인 병기에 근거를 두어 동일한 병이라도 증은 달리 나타날 수 있고, 전혀 병명이 다른 질환이라도 증은 같게 나타날 수 았으므로 증이 같으면 치료방법이 같고 증이 다르면 치료방법 또한 다르다는 것이 변증논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동병이치의 관점에서 상기 시사한 감기의 경우에 같은 병이지만 증이 풍한이냐 풍열이냐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이병동치의 경우에 위하수 같은 위질환과 설사, 탈홍 같은 장질환은 병명은 다르나 중기하함증이 라는 동일한 증이므로 이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면 치료원칙으로 비위기인 중기를 보하는 것이다.

 

상기 두 질환을 침뜸으로 치료하기 위한 내용을 변증논치로서 실례를 들어 보겠다.

풍한증인 경우, 우선 풍을 제거하기 위한 거풍혈로 무극보양뜸 가운데 백회, 곡지가 이에 해당되고 구당상용혈로는 풍지 곤륜 풍문 등이 이에 해당되며 한을 제거하려면 무극보양뜸 중에 중완, 기해, 관원(여자는 중극), 구당상용혈은 지기 음릉천 장문 열결 전중 온류 등에서 취혈한다. 따라서 감기바이러스와 같은 외부 풍한사가 침습시 기본적인 제양지회 경맥인 독맥과 족태양방광경의 경락이 교회하는 풍문혈에 다장의 뜸을 뜸으로서 일단의 바람은 잠재울 수 있다.

풍열증인 경우에, 풍습열이나 역병으로 인한 감기는 풍열사가 표피에 울체하여 풀리지 않은 사기 때문에 폐기의 선발숙강이 이루어지지 않아 기침, 가래가 생기게 된다. 이로 인해 폐가 있는 가슴 부위가 숨쉬기도 힘들며, 폐가 개규하고 있는 코가 막히고 콧물도 열로 인해 탁하게 되며 또한 습열이 정체되어 있으면 복통과 설사, 머리가 무겁고 아프며 고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무극보양뜸을 떠서 몸에 정기를 넣어주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고 (무극보양뜸자리 중 곡지 폐유는 혈성으로 청열혈이다) 풍한증에서 거론한 동일의 거풍혈을 취하고 표피에 울체된 사기를 풀기 위해 주리를 열어 발한을 시키는데 필요한 구당상용혈인 풍지, 대추, 합곡, 외관을 취혈하고, 폐열을 없애기 위해 척택을, 습열독이 낀 상태라면 거습해표를 위한 음릉천 족삼리를 취한다. 그리고 가래와 가슴 답답한 것을 제거하기 위해 풍륭, 태연을, 두통엔 두유와 인당, 동자료 등을 선혈하여 적용한다.

또한 중기하함증에 처진 중기를 끌어올리려면 무극보양뜸으로 비위기를 보강하여 후천지기를 양성하고(무극보양뜸 중에 특히 백회 기해 중완 관원 족삼리가 비위기를 보강한다) 구당상용혈로는 삼음교 비유에 뜸을 뜨고 위하수로 인한 오심구토 시 내관이나 거궐을 취하고 복통 설사 시에는 천추 기해를 추가하는 등 각각의 증상 질환에 따른 근린혈을 취한다.

 

독자들이 공부할 때는 질병에 따른 뜸자리를 기록한 구당의 임상서인 '무극보양뜸'을 통해 왜 그 혈자리가 그 질환에 좋은지를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해당 질병에 기재된 모든 혈자리에 일시에 뜸을 뜨라는 것이 아니다. 변병과 변증에 따라 해당혈 중에서 선택하여 자침을 하든지 쑥뜸을 뜨든지 하여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할 것이다.

윤길영은 '한방생리학의 방법론 연구'의 서문에서 한방생리학의 기초이론이 음양오행육기론으로 되어 있다 하여 상념적 ㅊ추론에 빠지지 말고 양방이론도 양방의 생리학적 체계에서만 연구하거나 무조건 배척하지도 말고 생체를 연구하는 데 있어 생명현상을 생명으로 연구 분석하고 전체성과 체질성을 상호 보완하여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것을 토대로 실제 임상에서는 변증과 변병을 복합적으로 관찰한 변증을 병정의 경중완급 및 주차를 구별하여 취혈하고 배혈하여 침뜸시술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2장 陰陽論的 生理體系

1. 음양의 기본개념

음양론이란 세상 속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 사이의 관계를 이분법적 인식의 틀로서 파악하려는 시도에서 발전된 동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다.

음양론의 사고방식은 세상을 음과 양이라는 상대적 폐턴의 구조로 인식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인식은 동아시아에서 다양한 지식체계 속의 구조적인 동일성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침뜸의학에서 학문적 대상으로 인체를 바라보는 주된 관점을 규정하여 정리해 놓은 것을 침뜸의학적 대상관이라 하는데 의학이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인체의 생명이 우주에 순응하고 종속되어 자율성을 갖는 침뜸의학적 생명관이 중요하다. 이는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개별성과 공통의 인식인 일반성이 합ㅎ여 전일성이 되는 음양론적 대상관에 기초하고 있다.

음양론적 대상관은 세상을 전일성과 동태성, 그리고 음양과 오행의 패턴으로 인식되는 요소들의 조화와 평형관의 관점을 요약한다.

 

1) 음양의 전일성

장자가 세상의 근원을 도라 보고 자연에서 그 근원을 찾는 것과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절대 선으로 순자가 절대 악으로만 보려는 시각은 일원론으로 볼 수 있지만 음양론은 우주의 실체를 이기와 같이 또는 고자가 주장한 인간의 본성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백지 상태에서 교육과 환경, 수행에 의해 다른 품성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성무선악설같이 이들은 상반된 원리로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려는 이원론이다. 하지만 전일성 즉 전체성으로서의 우주본질은 '주역 계사전'에서 '한 번 음이 주장하고 한 번 양이 주장함을 도라고 한다'라고 일체를 통한 전일성의 우주현실을 말한다.

 

노자는 '도는 영원히 이름이 없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껴안아 기를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룬다'하였다. 본디 하나는 생할 수가 없어 음양으로 나뉘고 음양이 합하여 만물이 생겨난다고 보는 우주 본체를 논하는 과정에서 도가 본체를 표현하고 음양은 현상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우리 몸의 경락 중에서 음경과 양경은 명칭은 다르나 실제는 같은 경락계통에 속하여 상하에서 만나다'거나 '양은 기로 변하고 음은 형을 이룬다', '사람이 태어나 형체가 있게 되면 음양을 벗어나지 않는다'하여 인체의 생성과 본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관찰자적 입장에서 우주의 본질을 기하학적으로 보면 공간이 되고 물리화학적으로 보면 에너지가 되고 동양철학적으로 보면 도가 되고 음양이 되고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면 생명이 된다.

 

이에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의학은 그 대상을 생명으로 국한하고 생명의 양면에서 볼때 기능은 양이고 구조는 음이므로 그 구조에서 드러나는 육체는 음이고 정신은 양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침뜸의학은 생명현상의 육체와 정신을 음양의 양면에서 기능과 구조로 관찰하는 대상관을 갖게 된다.

 

2) 음양의 동태성

동아시아 고대인들은 이 세상을 변화하는 항동적 인식체로 보아 사물과 현상을 파악하는 것을 항동관이라 하였다.

인체에 대한 기본인식으로 동태성을 생명의 중요한 징후로 인식하여 인체 내에 기의 '승강출입'이 체네에서 일어나는 물질과 현상의 전화를 주도하고 생명 존속을 위한 평형을 유지하려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모두가 무ㅡ 분화ㅡ 통일 ㅡ 공, 다시 무로 가는 음양의 순환성과 상호 호근호요하여 일체를 이루는 이원론적 음양론 입장에서 보면 우주는 끊임없는 통일과 분리로 영원한 순환의 재반복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오늘이 음이라면 내일은 음이 아니고 양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르리라 본다. 흔히 요즘 세상에 갑을관계가 이슈가 되고 있고 영원한 종속의 값은 없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 모습은 율려(태극의 물결치는 모습을 표현)의 상태로, 만일 지금 행복하다면 그 행복도 굴곡이 있을 수 있고 지금 불행해도 반드시 그 불행의 끝이 있으리라 본다.

현재 존재가 중요하지 않고 음양의 제약과 소장의 통일체인 동적 평형으로 인식하므로 현실세상을 생장수장의 틀 속에서 그 영원을 함께하고 있는 동태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음양의 조화와 평형관

'관자, 승마'에서 '춘하추동은 음양의 움직임이고 시간의 길고 짧음은 음양의 쓰임새이며 주야의 바뀜은 음양의 변화이다.'라고 하였다. '주역'에서 우주는 음과 양의 상반되는 두 가지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여 변화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음양은 상호 의존, 대립하고 소장, 전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우주만물의 속성은 서로 대립하고 의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구체적으로 음은 물질이요 양은 변화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소문, 음양응상대론'에서 '음양은 우주의 규율이고 만물의 강령이며, 변화의 근본이고, 생사의 근본으로서 신명이 모이는 곳이다. 따라서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근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자연현상과 자연법칙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우주관이요 방법론임을 설명하고 있다.

 

음양론에서 초기는 태양을 향하는 것을 '양'이라 하고 이를 등지는 것을 '음'이라 하는 태양에 대한 향배로 구분하였으나 이후 더욱 범위가 확대되어 천지, 일월, 주야, 한열, 수화, 자웅 등의 자연현상이나 상하, 좌우, 내외, 남북, 동정, 승강, 출입, 강유 등 방향, 운동 상태를 상대적인 사물과 현상의 음양 속성으로 확정하였다.

이렇게 음양은 전인성, 동태성을 그리고 조화와 평형을 갖는데 이를 인식하는 패턴으로 음양의 음평양비나 오행학설의 상생상극 이론이 대두하게 된다.

'소문, 생기통천론'에 나오는 음평양비, 정신내치란 음기는 내용을 채우고 양기는 치밀하게 해야 정기와 신기가 비로소 다스려짐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음은 내용을 이루는 구조적인 것이고 양은 음을 돕는 기능적인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상태이다.

음평은 음이 수렴이고 저장의 기인데 그 구조가 치우침없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야 평온하다는 의미이고, 양비는 양이 발산과 확대의 기인데 그 기능이 넘치지 않게 법도를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음과 양은 넘치면 안 되고 일정한 수준 내에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행학설은 상생상극에서 오행은 음양과 더불어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가운데 목화토금수의 다섯 가지 요소로 변화를 하는 것으로 각 요소들이 서로 적절하게 상생작용을 하면서 조화하기도 하고 적저한 상극작용으로 제어하면서 더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면서 변화한다.

 

 

2. 음양의 속성 및 법칙

흔히 생명이 하나인 인체는 태극체라 표현한다. 태극이란 분화하지 않은 음양의 결합체이고 그 음양은 목화토금수 오행에 의해 합쳐진 것(태극=음+양)이라는 연역의 개념과 음과 양이 합쳐진 것이 태극이 되고 그 태극에 의해 분화된 오행이 합쳐진 것이 결국 음양이 되는 (음+양=태극) 귀납적 개념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음양오행은 바로 세상 이치를 측정하는 척도이자 세상 만물의 기본 규율이며 인체를 이해하는 기본 틀이다.

 

사람을 음양으로 구분하면 인체 외부는 양이고 내부는 음이다. 등은 딱딱하므로 양이고 복부는 부드러워 음이다. 간 심 비 폐 신 심포는 음이고, 담 소 위 대 방 삼초는 양이다. 다시 연화되어 오장 중에서 오행상 목화의 장부인 간과 심은 양이고 토금수인 비폐신은 음이다. 이에 심은 양중의 양이고(태양) 폐는 양주의 음이다(소음). 신은 음중의 음이고(태음) 간은 음중의 양의 장부(소양)이다. 그리고 오장 각각은 음양을 내포하고 있어 심, 간중 하나의 장에도 심양, 심음이 있고 간양, 간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경락 또한 팔과 다리의 외측을 순행하는 경맥은 양경맥이고 내측을 순행하는 경맥은 음경맥이다. 이와 같이 인체의 생리기능이나 변화를 음양으로 개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음양, 표리로서 서로 연결되고 경락으로도 속낙관계를 거치는 등 서로 대응한다.

인체는 소우주다. '일월자는 음양지대용야'라 했다. 대우주는 천지로 음양의 체를 가지고 있고 용으로 일월이 우주의 운동을 대행한다.

최극미의 세상에서 최극대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음양으로 구성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음양은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1) 음양의 상호 의존, 대립

음양은 일원적 존재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의존과 대립의 상반되는 균형을 갖고 있다. 상하좌우, 승강출입, 한열, 수화 등의 의미는 '양근어음 하고 음근어양 하나니', 양은 음에, 음은 양에 뿌리를 내려 조화를 이루고 있어 상따로 하따로 상호 독립하여 우주가 존재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의존이란 상호 근원이 되는 호근호용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인체로 비유하자면 체내의 혈이 운행하는 것은 기가 이를 추동하기 때문이고, 기가 흩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은 혈이 내부에서 지켜주는 상호의존관계로 인체가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기는 양이요 혈은 음이다. 음은 내부에서 양을 지키고 양은 외부에서 음을 보호함으로써 상호 의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황제내경의 '생기통천론편'을 보면 '음은 정기를 저장하여 양기가 발산되지 않게 하고 양은 체표를 호휘하여 견고하게 한다' 고 하였다.

 

하늘이 없다면 땅도 없고 땅이 없다면 하늘도 없는 것이다. 이성이 있으면 감성이 있고 감성이 있으면 이성이 있기 마련이다.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어 상호 의존하여 통일체인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대립이란 음양 사이의 상대적인 평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어떤 시점에서 양이 강해지면 상대적으로 음이 약해지고 음이 강해지면 양이 상대적으로 쇠약해지는데, 하나의 일정한 주기로 살피면 상대적인 평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되어 추위가 오면 더위는 물러가고 여름이 되어 더위가 오면 추위가 물러가기 마련이다. 하루 가운데 낮에는 양이 가장 성하고 음은 쇠해 동이 정을 누르므로 정신활동이 가장 왕성해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밤은 음이 가장 성하고 상대적으로 양이 편쇠해지고 정이 동을 제약하므로 정신활동 역시 쇠약해져 휴식을 취하여야 한다.

 

결국 '음은 내부에 있어 양의 보호를 받고 양은 외부에 있어 음의 부림을 받는다'는 음양의 호근호용은 음양의 속성으로 인체 내 상대적 평형을 가져와 건강 여부의 기준으로 삼게 만든다.

인체 내 말초신경으로 살펴보면 자율신경 중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길항작용이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는 신체항상성으로 상대적 평형을 가져오며 불균형 시 병리적으로 항진증이나 저하증이 초래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체의 음양실조를 음양의 대립제약의 원리를 이용하여 '소문, 지진요대론'에서 '한 한자는 열하게 하고 열 한자는 한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음양의 실조된 부분을 평형케 하는 치료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 계 속 >

'수도정신修道精神'

'아무리 巨大한 强國이라도 國民自身의 修道精神 없이는自存할 수 없고

어떠한 강건한 民族이라도 國民自身의 修道精神 없이는 번영할 수 없고

어떠한 찬란한 文化라도 국민 각 개인의 修道精神과 道德理念 없이는 영원히 보존할 수없는 것은 天理인 것이다.'

 

 

수도강령修道綱領

오진吾眞(나는 진실로)은 國仙道를 닦아가는 사람임을 명심한다.

吾眞은 道力과 德을 겸비한 사람이 되게 努力한다.

吾眞은 우주와 인류선영을 大孝之心으로 받든다.

吾眞은 우주의 대도진리를 몸소 닦아 얻어 實踐한다.

吾眞은 우주의 영원한 永法을 정각하고 존수한다.

吾眞은 대기를 수승하고 억조의 창생을 구활한다.

吾眞은 天地調和로 선세계로 창생을 引導한다.

 

 

靑山계송(서시)

마음은 누리에 차고

누리 이 마음에 차네

누리의 도는 마음의 도

마음의 도는 누리의 도

마음 누리 둘 아닐세

 

사람은 누리의 主人

누리의 신비 사람에 찼네

精, 氣, 神 단전행공으로

누리의 힘 사람에 통하면

몸과 마음 자유자재

 

靑山은 언제나 무득청정

富貴功名 꿈밖일레라

누리의 精 배에 부르고

누리의 氣 머리에 차고

누리의 神 마음에 밝아 있네

 

각고 수업 이십여년

염원은 오로지 求活創生

스승에게 이어 받은 이 도법을

누리에 펴기전에

사바인연娑婆因緣 내 어찌 마다 하오리

 

 

'山에 올라'

심산유곡深山幽谷 거닐자니 師父님 생각 간절하고, 이끼 덮어 미끄러우니 맨발 山中 修道 하던 옛시절 그립구나. 큰 나무에 햇빛 가려도 잔숲은 우거져 있으니 그 잔숲 틈에 어린 나무들 언제 커 갈거나. 그래도 그 잔숲이 있어 산새들 쉬어 고운 노래 부르고 둥지틀어 삶을 아어가니 큰 나무밑 잔숲도 한몫일세.

힌구름 한가로이 흐른 그림자 스쳐 지나고 산새소리 산골짜기에 잦은데, 재 너머 시원한 바람 불어 넘어와 잔나무잎 흔들어 놓고, 굽어내린 숲속을 돌아서 내려오는 산골물 옥인듯 맑아라.푸르고 푸른산이 산골물을 흘러 내려 누 만년을 쉬임 없으니 무릉도원武陵桃源 예로구나.

한폭의 그림같은 그 속에 적연부동寂然不動 앉아 있는 내모습은 어떠한가. 슬픔과 괴로움을 잊은 듯도 하고, 산 짐승 같기도 하고, 대체 너는 누구냐? 고요한 가운데서 하늘과 선령을 생각하고 그 속에 들어가 몸 고르고, 맘 가라앉히고, 숨 고르고 앉았으니, 하늘과 선령님이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으리니 만고 근심걱정 사라지네. 풍진세파風塵世波뛰어넘어 호연지기浩然之氣 키워가니 '독보건곤獨步乾坤 수반아誰伴我' 읊은 고인 생각 절로 나네. 師父님 아니시면 이 맛을 어이 알았으리.

<신유 초추 무갑산 수도원에서 청산심서>

 

터- 육관도사의 風水·明堂이야기(下권) 손석우 지음

 

 

 

제1부

천하제일福地 靑瓦臺 터

노태우 前 大統領 장인墓 사연

웅비하는 西海岸(서해안) 시대와 全州

무등산 정기와 김덕령 將軍

지리와 사주와 관상의 만남

 

제2부

하회마을의 風水와 그 전설

국토비보의 사찰, 운주사와 실상사터

삼청동의 안가지기

충효세업 청백가성, 맹사성 생가

인촌 김성수 생가터

원각사터와 세조의 풍수관

보은단동, 홍순언의 집터

南山 4혈과 남산골의 명터들

염천교의 대부송과 강희맹의 집터

 

3부

우리나라 風水의 비조, 도선국사

고려왕조의 성립과 개성의 풍수

혜산스님과 낙안 오씨 이야기

무학대사와 朝鮮의 건국

태조 이성계와 활기묘의 전설

世宗大王 여주릉(영릉) 이장과 광주 이씨 문중이야기

하연 정승묘의 전설

장흥 명당과 인왕선 치마바위의 사연

묘터에 뜸 뜨는 이야기

진묵대사와 무자손 천년 향화 지지

포천 금주산과 양사언

이율곡의 잉태와 조상묘의 현몽

숙종대왕과 갈처사

祕訣편-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이야기

 

 

 

1부

 

웅비하는 서해안 시대와 全州

 

땅은 살아 있다. 그런데 육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인류학적 생태학적 유사성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땅이 움직인다, 즉 지구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곧 살아있는 生命體요, 신성하고 경외스러운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땅이 움직이는 징후를 우리 동아시아의 지각변동과 관련시켜 이야기함으로써 風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육관은 말하고자 한다.

 

 

지금은 우주의 계절이 바뀌는 시기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질서는 循環한다. 우리에게 낮과 밤이 있고 사계절이 있듯이, 우주와 지구에도 음양의 기간과 계절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쉽게 말해 換節期(환절기)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이상 기후현상이 일어난다. 환절기에 동아시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지각변도이다. 환태평양 화산대의 바깥 쪽에 위치하고 있는 日本열도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해마다 조금씩 가라앉다가 마침내 후지산이 조그만 섬으로 변하고 만다. 태풍 폭우 지진 화산 활동이 그 기간중에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우리나라는 西海가 솟아올라 국토가 확장되는 경이로운 기적을 맞이하게 된다. 평균 수심 2백미터도 안 되는 서해가 융기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 속도는 일본이 가라앉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서해는 떠오른다. 지구의 이치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서쪽으로 확장되고 지도는 나날이 바뀐다. 우리나라의 국운은 이제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리하여 위대한 서해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中國과 땅이 붙어버리는 지각변동의 일대 기적이 일어나리니 지금의 서해안 일대를 개발하여 서진 정책의 전진기지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떠맡아야 할 역사의 소임인 것이다. 서해가 서서히 솟아올라 중국대륙과 연결된다. 풍수는 큰 것을 말할 수록 더욱 믿기 어려운 법이므로 독자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천운과 지운이 함께 찾아와 위대한 서해안 시대의 서막을 여는 곳, 서해의 중심도시로 부상하여 장차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로 웅비할 그곳은 어디겠는가? 육관이 觀(관)을 해보니 全州(전주)가 으뜸이라!

 

 

지기가 서남방으로 이동하여 1995년 3월 무렵이면 全州의 대운이 열리기 시작한다. '평양의 기운이 왕성하면 전주의 지운은 쇠락하고, 전주의 지운이 흥하면 평양의 지운은 망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평양과 전주는 지맥의 기운이 시소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 곧 南北의 자유왕래가 시작되면 평양의 지운은 그 빛을 크게 잃게 된다. 대신 전주의 지운이 왕성하게 활동하여 전주는 크게 번성할 것이다. 평양이 쇠하는 것만큼 반대로 전주는 흥하게 된다. 이것이 지리의 법칙이다. 전주는 다가오는 2천 년대 서해안 시대의 중핵이 되는 도시가 될 것이다. 천운이 그렇고 지운이 또한 그렇다.

 

 

 

地理와 四柱와 觀相의 만남

'이보게, 옛부터 人傑은 地靈이라 했는데, 자네의 사주와 관상이 비록 거지이지만 이제 선친의 체백을 좋은 데 모셨으니 곧 발복이 있을걸세. 만약에 이후로 이상한 조짐이 있으면 어디어디로 연락해주게. 내가 그때 다시 한번 와 봄세.'

 

인간만사 만국의 도성 같은 영화 권위도

한갖 개미 집 속의 一場春夢인데

더러운 티끌 속에 뒤엉켜살면서도

천지분간을 모르는도다.

 

이 우주간에 가장 밝은 빛은

부모님을 받들어 모시는 孝性의 마음이요

이 천지간에 가장 지혜로운 바람은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는 氣이노니

 

밝은 효성이 이 지혜의 氣를 타면

땅이 달려와 그 앞에 열리고

하늘이 따스한 이불을 내려

인간의 허물을 감싸주네.

 

명당은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

이 우주의 보물,

꽃에 燈이 달린 향기로운 생명이니

뉘라 함부로 가질손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이 깨끗하며

선업과 적덕을 행하는 자만이

땅 속의 향기로운 바람氣을 만날 수 있나니

바라건대 부디 복을 지을 지어다.

 

더러운 티끌 속의 부귀 공명이

어찌 이 향기로운 세계의 悅樂(열락)을 알겠나

명당의 정기를 받은 밝은 공명은

紅塵(홍진)의 부귀를 까마득히 넘어가네.

 

 

 

하회마을의 풍수와 그 전설

하회의 主山은 花山인데 그 宗山 태백산의 맥을 이은 日月山이다. 화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산을 좌청룡으로, 북쪽 절벽에 이어지는 화산의 잔맥을 우백호로 하며 水口인 화천을 건너 원산지를 안산으로 하니 그 가운데 있는 화회는 곧바로 풍수상 명당이 되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인걸은 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 되어 求國의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서애 유성룡에 가문에는 흥미로운 비화가 많이 전한다.

서애 유성룡은 안동에 살았다. 그에게는 '숙'자가 셋이나 달린 가까운 인물이 있었는데, 사람됨이 어리석고 둔하여 '숙맥' 노릇밖에 못하던, 집안에서 '치숙'으로 불리는 그의 '숙부'였다. 이른바 '삼숙이' 삼촌이었던 샘이다.

 

'어찌하여 그대는 속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럭저럭 지내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되었늘 뿐이라네. 그대는 이미 출세하여 나라일에 바쁜몸이고, 나 같은 사람은 草野(초야)에 묻혀 있으니 무슨 가르칠 말이 있는가? 그러나 내일이 되면 반드시 어떤 중 하나가 찾아와서 자고 가기를 청할 것이니, 그 중이 아무리 애원을 하더라도 절대로 재우지 말고 집뒤의 망자로 보내 재우도록 하게. 이 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크게 그르칠 일이 생길 것이니, 조카님은 꼭 잊지 마시게나.'

 

 

'저는 오대산에 있는 중으로서 영남의 山川을 돌아보는 길이옵니다. 평소에 대감의 맑은 德과 높은 이름이 당대 제일이란 말을 듣고 잠시 뵙고자 왔사온데,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을 재워주시면 내일 날이 밝은 대로 일찍 떠나겠습니다.' 했다.

 

서애는 숙부의 혜안에 놀라 속으로 감탄하면서,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재워드릴 수 없으니 집 뒤의 산속 암자에 가서 쉬도록 하시구려.' 하면서 거절하였다.

 

'어디서 오시는 존사이시기에 이러한 누지에 왕림하셨습니까?' 밤이 깊어 술이 깨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왔다. 중은 눈을 떴다가 너무나 끔찍한 장면에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거사가 자신의 배를 깔고 앉아 시퍼런 비수를 들고 쏘아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한 중놈이 어찌 감히 이런 생각울 하였느냐? 네가 바다를 건너 이 땅에 오르던 날, 나는 이미 네 녀석이 이곳으로 오리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찌 나를 속이려 드는냐?'

 

'이제 소승에게 죽음이 임박했는데 터럭만큼인들 어찌속이겠습니까. 소승은 일본 중이옵니다. 토요토미가 바야흐로 군사를 내어 귀국을 치려 하는데 꺼리는 것은 오직 귀댁 대감이오. 그 때문에 여기 먼저 와서 유성룡 대감을 해치려 했던 것인데, 이제 선생의 神鑑(신감)에 탈로난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제 목숨을 살려주시면 맹세코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치숙은 말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하늘의 運數로 정해진 것이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나 역시 하늘을 어기려고 하지는 않지만 이곳만은 나의 힘으로 마땅히 지킬수 있다. 장차 왜병이 여기에 들어오면 하나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터인데, 너 같은 개미목숨을 죽여서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목숨은 살려줄 것인바 곧바로 돌아가서 토요토미에게 조선에 내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려라.' 임진왜란 중에도 안동의 한 고을이 편안히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중의 보고가 토요토미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국토비보의 사찰, 운주사와 실상사

음택의 경우는 예외가 많지만, 터의 규모를 크게 잡아야 하는 양택의 경우는 대체로 그 입지 조건이 몇 가지 조건에 한정되어진다. 상식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우선은 지반이 단단해야 하고 급격한 경사는 피해야 한다. 일광이 좋아야함은 물론이고 풍부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바람도 막아야되며 排水(배수)도 원활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사에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그터가 有情해야만 한다.

 

 

그러나 풍수지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주변 山의 형상과 기운을 참조하고, 건축물의 기능과 성격에 따라 동일한 공산 내에서도 배치를 섬세하게 하며, 지기를 잘 살펴 그 기운이 힘을 쓸 수 있도록 조영해야만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러한 '조화로운 터'의 상당부분이 寺刹터라고 하는 점은 자못 意味深長(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육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절터가 풍수상으로 매우 좋은 자리에 터잡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에 가면 운주사라고 하는 사찰이 있다. 운주사와 그 일대의 터는 매우 신비로운 곳이다. 운주사는 도선국사의 국토비보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찰이라 할 수가 있다. 도선스님은 우리나라의 지형 전체를 배(船)로 보았다. 그런데 船腹(선복)에 해당하는 호남땅이 영남에 비해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울 항상 염려 하였다. 게다가 우리나라 錦繡江山 三千里의 빼어난 정기가 배가 기울어지는 동쪽으로 흘러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몹시 꺼려하였다. 그래서 호남에서 제일 적격지를 골라 천불,천탑을 세웠던 것이다.

 

 

히로히토의 묘를 쓰러 갔을 때도 느꼈던 바이지만, 우리는 아직 일본의 위세를 당하기가 여의치 않다. 그러나 전 국민이 힘을 모아 통일을 이루면 그 옛날 중원평야를 치달리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더구나 앞으로 오랫동안 五庚明星(오경명성)이 우리나라를 비추니 國運의 대상승은 이미 보장된 것이다. 또한 머지 않아 지구의 地軸이 바로 서는 날이 오는데(정확한 날짜는 천기누설이므로 밝힐 수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천지가 개벽하고 驚天動地할 대사건이 일어난다.

 

 

서해는 솟아오르고 일본열도는 가라앉는 것이다. 후지산이 조그만 섬으로 변하고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대륙과 연결된다. 그러니 우라나라는 이제 西進政策(서진정책)을 과감히 펼쳐야만 한다. 압구정동 거라에서 철없이 일본문화를 쫓아다니는 젊은이들이여, 명심할 지어다. 일본은 망한다. 국운이 쇠하는 정도가 아니라 땅덩어라 全體(전체)가 가라앉고 마는 것이다.

 

망하는 나라의 문화를 어짜 똥강아지처럼 뒤따라 다니는가? 정신차리고 民族의 자존심과 정기를 되찾는 일에 힘을 쓸지어다. 그 옛날 花郞道의 정신을 본받고, 예의범절을 잘 지킬 것이며, 도덕성 함양에 전력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도 또한 감상적으로 일본을 배척할 게 아니라 오직 그 인품과 실력으로써 克日 해야할 것이다.

 

 

 

삼청동의 안가지기

이 동리의 지명 또한 안씨가문과 무관하지 않으니, 그 가문에 3형제의 淸白吏가 나왔음을 칭송하자는 뜻이요, 3대에 걸쳐 청백리가 대를 이어 나왔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삼청동 '안가지기'의 연유는 이와 같은것이니, 곧 음택명당과 양택명당의 중요함이 역사와 가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실증해주는 좋은 사례로써 기억해둘만하다.

삼청동의 이름 유래와 관련하여 또 다른 유력한 학설 중의 하나는 그것이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다. 三靑이란 원래 인간이 희구할수 있는 도교의 최고의 이상향으로써 옥청, 상청, 태청,을 지칭한다.

 

 

도교의 이러한 사상은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사상인 國仙道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써 역대로 그 흔적을 남겨왔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도교를 매우 존중한 인물이었고, 고려시대에도 복원궁, 대청관 등의 도관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소격서에 삼청전을 두어 그 전통을 이어온 바 있다. 따라서 삼청동의 이름은 바로 이 삼청전의 소재지라는데서 유래한다.

 

 

 

3부

혜산 스님과 낙안 오씨 이야기

 

도선국사를 따라다니며 지리를 어느 정도 전수받은 스님 중에 혜산 이란 분이 있었다. 때는 후삼국시대였다. 민심은 피폐하였다. 허기에 지쳐 쓰러진 혜산 스님. 마침 이곳을 지나던 오씨 성을 가진 노인 한 분이 그를 본 것이다. '아이구, 이를 어째, 스님께서 길에서 돌아가시다니!' 오노인댁에서 여러 날을 보낸 후 혜산스님은 쾌차할 수 있게되었다. 그동안 오노인댁의 모든 식구들은 정성을 다하여 스님을 간병하였던 터라, 모두들 너무도 기뻐하였다.

 

 

혜산스님은 길 떠날 차비를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소승이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땅을 좀 볼 줄 아오니 이후 커다란 福을 받을 명당터를 보아드릴까 하는데 어떠실지요?'

 

고려의 제2대 임금인 혜종 의공대왕의 운명의 첫 페이지는 이 한마디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것이니, 신기하고 묘하도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나니, 그 후손이 훗날 대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구나. 그래서 스님은 낙안고을 어느 산자락 아래에 이르러 훈훈한 地氣가 오르는 곳을 가리키며 '여기는 왕비가 날 자리이오니, 여기에 묘를 쓰면 후손 중에 반드시 대통일왕국의 왕비가 나올 것입니다.' 하였다.

 

'지혜롭도다, 오씨 처녀여!

먼 길을 달려 물을 청하는 지친 장수에게

완사천 수양버들 잎사귀를 그 물에 띄우나니

지혜로움은 장수의 눈에 들어

훗날에 장화왕후가 되는 구나

지금도 그 수양버들 남아 있어

왕후의 智慧(지혜)를 한들한들 노래하네.'

 

 

 

무학대사와 조선의 건국

 

무학(1327~1405)은 고려 충숙왕 14년 9월 20일에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무학은 어린나이에 근처의 절에 출가하여 동자승이 되었다. 신라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산수기'에는 이 부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양에 도읍을 정하려고 하는 이가 만약 스님의 말을 듣고 따르면 그래도 나라를 연존시킬수 있는 약간의 희망이 있도다. 그러나 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와서 시비하면 채 5세도 지나지 않아 임금자리를 뺏고 빼앗아가는 재앙이 있으며 도읍한 지 2백년 쯤 뒤 나라가 위태로운 국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스님은 곧 무학을 지칭하는 것이요, 정씨는 정도전을 말하는 것이며, 위태로운 국난이란 임진왜란을 뜻하는 것이니, 8백 년 앞을 내다 본 의상대사의 혜통함이 이와 같았다.

 

 

서울은 국도의 터다. 조선왕조의 都邑地(도읍지)이자, 오늘날 우리 大韓民國의 수도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록으로 보면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부아악(인수봉)에 올라 살 만한 곳을 찾았다 하니 이미 2천년 전부터 국역풍수의 진원지가 되는 으뜸 터다. 의상스님과 도선스님이 미리 그 길기를 보았고, 마침내는 나옹스님의 법통을 이은 무학대사에 의해 국도의 터로써 정해졌다. 그러나 국도로써 쇠운의 길에 접어들었으니 머지 않아 이전될 운명에 닥친다.

 

 

 

진묵대사와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

 

진묵화상 그는 신통자재한 큰스님이었으나 불행하게도 그가 처한 사회적 상황이 웅지를 펴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곧 떠나리니 그대들은 물을 것이 있으면 기탄없이 물으라.'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어떤 스님의 법통을 이은 것으로 할까요?'

'비록 세간의 명리에 대한 집착에서 초탈하지는 못한 스님이라 할지라도 휴정 노장의 문하로 하려므나.'

세속 나이 72세, 법랍52하였다. 때는 인조 11년(1633) 10월 28일이었다.

 

진묵스님은 이름자 그대로 우뢰와 같은 큰 목소리를 가진 스님이었으나 평생토록 沈默하며 살아가신 분이다.

이번 이야기는 진묵스님이 출가한 승려의 신분으로 속가의 부모님께 어떻게 孝道했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묵은 어느덧 세속 나이 사십을 넘기고 있었다. 전주의 일출암에 있을 때는 庵子(암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그만 집 한 채를 마련하여 불거촌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왔다. 그곳은 왜막촌으로써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아중리에 해당한다. 그는 朝夕(조석)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문안을 여쭈었다. 그로부터 5, 6년이 지나서 늙으신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중의 몸이니 대를 이어 祭祀(제사) 모실 아들을 낳을 수 없구나. 하니, 나의 자손들이 아니더라도 뭇 사람들이 향불을 피울 그런 자리에 어머님을 모셔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오늘날 성모암 옆자리에 묘를 썼다. 그자리가 연화부수형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그날 진묵대사는 목수를 불러 현판을 만들고 스스로 붓을 들어 이렇게 썼다.

 

'여기 이 묘는 만경현 불거촌에서 나서 출가 사문이 된 진묵일옥의 어머니를 보셨는 바, 누구든지 豊年(풍년)을 바라거나 疾病(질병) 낫기를 바라거든 이 묘를 잘 받들지니라. 만일 정성껏 받든 이가 영험을 못 받았거든 이 진묵이 대신 結草報恩(결초보은) 하리라.'

 

그 뒤로부터 원근의 주민들이 이 묘에 향화를 받들고서 소원을 이루지 못한 이가 없었다고 전한다. 오늘날까지도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 이유는 모두 그 영험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이 묘에 향불을 사르고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간절히 기원하면 반드시 성취하는 바가 있으리라. 자손만이 발복을 받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곳은 누구든지 발복할 수 있으니 명당 발복을 원하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이곳에 참배하라. 그로써 진묵의 영통함이 증명될 것이다. 육관은 그날 진묵스님의 어머니묘를 보고서 일행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율곡의 잉태와 조상묘의 현몽

 

율곡의 가문은 덕수 이씨의 가문이다. 이 조상의 묘는 개성군 중면 덕수리 왕대동에 있는데 지금의 休戰線(휴전선) 부근이다. 묘택의 주인공은 고려시대에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친 이소 라는 분이다.

 

이 명당터의 형국은 야자형이고 중국의 성인인 공자를 낳은 니산과 닮았다 하여 여니산이라 한다. 이 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군자, 북성인, 서대장, 남성현의 바위봉우리가 둘러져 있으니 성인군자와 문재무장의 영기를 모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6세 이후에는 반드시 중국의 공자, 제갈공명, 이태백에 비견할 만한 偉人(위인)이 나온다고 일찍이 중국의 지관들이 예언한 바 있었다. 그 소응은 예상대로였다. 6세쯤부터 동방의 군자로서 공자에 견줄만한 이율곡이 나왔고, 제갈공명에 비할 만한 李舜臣(이순신)이 나왔고, 이태백에 비견할 만한 택당 이식이 나온 것이다.

 

 

 

숙종대왕과 갈처사

 

조선시대 숙종대왕은 순행을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어느날 삼척에 도착하여 자기와 生年日時가 똑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벌을 천 통이나 치는 양봉꾼이었는데 숙종은 너무도 신기해서 그를 초대하기에 이른다.

'나는 한양 사는 이동지라는 사람인데, 우리가 기이한 因緣이니 한번 우리집으로 놀러 오시게나.' 하면서 아무날이 되어서 어디어디로 오라 말하고는 돌아왔다.

 

얼마후 이 양봉꾼은 자신을 초청해준 주수한 용모의 선비 말대로 한양 구경도 할 겸 정말로 남대문을 들어오게 되었다. 마땅한 선물이 없어서 도토리 알맹이에 꿀을 재워서 한 통을 싸들고 그 선비가 오라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아뿔사 경복궁이 아닌가?

 

王 앞에 사지를 떨며 나서니, '어이쿠, 우리 친구 어서 오시게.' 하면서 숙종은 희색이 만면이었다. 가져온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으니, 궁궐의 만조백관들은 모두 처음 보은 것이라 눈이 자못 휘둥그레졌다. 숙종임금이 먼저 맛을 보니 도토리의 떫은 맛이 약간 남아 있긴 했지만 그 속에 든 꿀은 몇 달간이나 재워져 있었던 까닭에 희한한 단맛이 입 안에 다그히 퍼지는 것이었다. 숙종은 신하들에게도 권하며, 이 음식의 이름을 '꿀밤'이라 명했다고 한다.

 

 

순행을 좋아하는 숙종이 수원 지지대 고개 쪽으로 쉬엄쉬엄 걸어내려 가는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깨끗이 쓰고 가던 중, 숙종은 고개 아래쪽 냇가 (이 냇가는 수원천으로 지금도 있다)에서 엉엉 울고 있는 어떤 총각을 발견했다. 괴이하다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총각은 물이 흘러 내려 가는 냇물 바로 옆에 관을 가져다 놓고 묘를 파고 있지 않은가. 조금 파내면 물이 그만 꽉 차, 삽만 갖다대도 물이 술술 오르니 그 더벅머리 총각은 엉엉 울면서도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것이었다. 숙종은 내심 의아스러웠다.

 

'저 사람이 아마도 묘를 쓰는 모양인데, 아무리 가난하고 땅이 없어도 有分數(유분수)지, 묘를 쓰려면 山에 써야지 어찌 송장을 물속에 넣으려고 저러는지 그것 참 희한도 하다.'

'이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 것인고?'

'제 어머니의 시신입니다.'

'여기는 왜 파고 있는고?'

'묘를 쓰려고 합니다.'

'이보게나, 여기 좀 보게. 물이 금방 이렇게 솟아나는 곳에 어찌 묘를 쓰려고 하는가?'

 

'저도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세상을 뜨셨는데 갈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이리로 데려와서는 이 자리를 무조건 파라 하셨습니다. 그분은 꽤나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높은 언덕에 살고 계십니다.' 산 언덕 높은 곳에 쬐그만 오막살이가 있었다.

 

숙종은 불현듯 차고 다니던 붓통에서 붓을 꺼내어 무엇인가르 급히 썼다. 그리고는 둘둘 말아 그 총각에게 전해주고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가지고 수원부로 급히 가거라. 수문장들이 길을 막거든 이것을 보이도록 하라.'

 

총각은 또한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와서 오후시간에 냇가에 묘를 쓰라고 하지, 묘를 쓰면서 하도 기가 막혀 엉엉 울고 있는데 갑자기 왠 선비가 나타나 수원부로 뛰어가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선비의 차림새가 워나 수려청정하고 목소리에 위엄이 있는지라, 총각은 그러리라며 수원부로 급히 가게 되었다.

 

 

그 서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御命(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3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한시 바삐 조치하라.'

수원부가 발칵 뒤집힌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수원부사는 즉시 어명을 수행했다.

'아! 상감 마마, 그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떠나자 구씨를 불러 관을 지키게 한 다음, 단단히 벼르고서는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나는 한양 사는 이동지인데 그대가 갈처사 맞소? 그대가 저 밑에(관이 보이는 냇가를 가리키며) 묘를 쓰라고 했소?' '아니, 저기 저렇게 물이 펑펑 솟아나오는 곳에 어떻게 묘를 쓰라 했소? 듣자니 당신이 지리를 좀 한다던데, 그런 엉터리로 어찌 가난한 사람을 울리고 골탕 먹이는 것이오?' '아니, 선비란 양반이 개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저 밑의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터인 줄 알기나 해?'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오?'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쌀 3백 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하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떠냐.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조금 전에 자기 손으로 서찰을 써주지 않았던가.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어찌 하여 저 아래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천지로 많은데, 게서 好衣好食하며 살지 않고 이런데서 사십니까? '

'이 양반이 또 아무 것도 모르는 이야기를 떠드네.'

'무슨 말인지...'

숙종은 아예 벌써부터 죽눅이 든다.

 

 

'저 밑에 저놈들은 말이여. 도둑질해가지고 암만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가져봐야 아무 소용 없어.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그러니 이런 좋은 터가 또 어디 있겠나? 수원부 안에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호의호식해도 임금이 찾아오는 그런 집은 없지. 여기는 비록 보잘 것 없이 누추한 집이지만 나라의 임금이 찾아오는 명당터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만나고 있는 자기 스스로가 꿈속을 헤매고나 있지 않은지 꼬집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王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오시네. 잠시 기다려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면서 옛날 보자기를 풀어서는 날 잡아놓은 종이를 찾아 먼지를 털어내어 보고는, 그만 대경실색한다. 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밖에 나와 큰절을 올리는 것이다.

 

'상감마마,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보게 갈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하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다정한 목소리로 신후지지를 부탁하니, 어느 분의 분부라고 거역하랴. 이틀 뒤에 갈처사는 정말 올라왔다. 그리고는 명당을 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서울의 서북쪽 고양시의 서오릉에 있는 명당 자리다.

 

 

''신묘神妙하도다, 갈처사여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명당은 냇가에도 있고

양택명당은 산마루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

풍수의 조화는 국법도 넘어가네

볼품없이 초라한 몸이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고

나랏님께 충성하노니

그 이름 歷史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祕訣편- 관악산, 북한산, 청계산이야기

 

옛날부터 관악산에 대명당이 있다고 전해왔다. 수년 전에 육관이 제자의 간청에 못 이겨 직접 올라가본 적이 있었다. 이 산을 올라가다보면 그 경치가 빼어나서 곳곳에 명승을 이뤄놓았는데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아 호연한 기상을 연마하고 있었다.

 

 

관악산은 차령 산맥이 끝나는 곳이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들 이 관악산이 행정구역상으로 서울 특별시에 속해 있다고 해서 삼각산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삼각산은 우리나라 모든 山의 태조가 되는 白頭山에서 뻗어내려 함경도를 거쳐 남쪽으로 곧바로 달려와서 서울 북방에서 끝나는 산이다.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의 진산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그러나 관악산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시작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올라온 차령산맥의 끝머리로써, 삼각산과는 전혀 그 뿌리가 다른 산이다. 그러므로 풍수 지리상으로 본 首都(수도) 서울은 漢江 이북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며, 한강 이남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관악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관망하니 첩첩한 산줄기가 이리꾸불 저리 꾸불 천변만화를 이루었도다. 서울 남산 쪽에서 바라보던 이 산의 봉우리는 마치 불꽃같이 생겼었는데 이곳에서 관악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흡사 관 같이 생겼구나. 산줄기의 기세가 너무나 웅장하여 사람과 귀신을 압도하는구나.

 

 

전체적인 산의 정기가 한 곳에 뭉쳐서 대명당을 맺었으니 예가 비로 '帝(제)'자 혈이 아니던가. 옛날부터 일러오기를 관악산 높은 곳에 제자혈이 있으니 28대에 걸쳐 제왕이 날 자리라고 일러왔는데, 오늘에야 그 자리를 찾으니 참으로 감회가 깊도다. 대충 계산해도 약 6백년 동안을 자손 대대로 제왕 노릇할 자리이니 한 왕조를 창건하여 유지할 대명당이 틀림없도다.

 

그 누가 복이 있어 이런 명당을 차지할꼬? 적덕한 집안에서 그 임자가 니리로다. 기묘하고 괴상한 이 혈을 무슨 수로 알아낼꼬? 동남방과 남방에 물줄기가 비치고 '帝' 자 같이 생긴 곳을 찾아라.

 

 

관악산 그 아래로는 천을 태을 이 비치는 양택 대명당터가 있으니, 오늘날 정부종합청사가 자리하여 제대로 들어섰다. 원래 종합청사터는 지금의 서울대공원 아래 부지를 마련해놓고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 왕복 8차선 도로가 계획되고 가운데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육관이 보건대 자리가 좋지 않아 古 朴正熙 大統領께 직접 건의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된 것이다. 상권에 이미 언급한 바 있으나 관악산 명을 다루는 관계로 다시 한번 다룬다.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화원은 그 당시 종합청사터로써 만들어놓은 것이며, 다만 8차선은 4차선으로 줄였다.

 

 

북악산 안쪽에 천하의 대명당이 뭉처 있으니 현무의 세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았구나. 삼각산의 굳센 기운이 한 곳에 뭉치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자리로다. 옛날 큰 명사들이 이 자리에 큰절하고 마땅히 손좌로 해야 한다고 기록해놓았으나, 이 말을 들으면 크게 그르칠 것이다. 대대로 德(덕)을 쌓아온 家門만이 이런 대명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즉 어찌 범상한 사람들이 이런 대지를 넘볼 수 있으랴! 마땅히 갑을묘 가운데 어떤 좌를 써야 할 것인지 깊이생각해보라.

 

 

'東方의 靑帝가 王座에 오르시니...

萬國의 백성들이 萬萬歲를 부르네.'

 

이상으로 육관비결 북한산 대명당을 조금 언급하였거니와 다음은 효자원에 얽힌 박효자의 지극한 효성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조선후기에 박태신 이라는 이가 있었다. 다동(지금의 서울시청 뒤쪽)에서 살았는데,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 봉양을 잘 하였고 孝性이 지극했다. 어느 날엔가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북한산 아래(오늘날의 효자원자리)에 묘를 썼다.

 

 

아들 박태신은 집이 다동인지라, 묘소까지 너무 멀어 매일 같이 찾아뵙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묘소에 찾아가 문안을 올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다동집을 출발하여 서대문 무악재 불광동 갈현동 구파발을 넘어서 그 아버지의 묘택에 문안을 드리고 돌아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장마가 오거나 태풍이 와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일은 3년간 계속되었다. 직선거리로만 쳐도 약 40여 리(약16킬로미터)나 되는데 돌아서 가는 길은 얼마나 멀었던가.

 

 

그는 매일 새벽 뛰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렸다. 그는 무악재를 넘기가 어려웠다. 지금이야 그리 가파른 언덕이 아니지만, 이전의 무악재는 험하고 높은 고개였던 것이다. 호랑이도 출몰하였고, 따라서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으려면 여럿이 모여서 창을 든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서 넘던 그런 고개였다.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 많은 험악한 고개인데, 폭설까지 내렸으니 神出鬼沒(신출귀몰)한 재주가 없고서야 어찌 넘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박태신은 무악재를 넘기로 했다. 무플과 손으로 기어오르다시피 하여 겨우 넘을 판이었는데, 그만 발을 잘못 디뎌서 절벽 아래로 구르고 만 것이다.

그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잠시 혼절하여 쓰러져 있는 동안 옆이 훈훈하여 깨어보니 황소만한 호랑이가 지기 옆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박태신이 혹여 얼어죽을까 염려하여 자신의 열기로 그를 따뜻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등을 내려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박태신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양귀를 잡으니 호랑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비호처럼 날쌔다더니, 정말로 이건 날아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달려와 멈추었는데 바로 아버님의 묘 앞이었다. 호랑이가 영물이라더니, 과연 신통하기만 했다. 박태신이 문안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호랑이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다시 올라타니 쏜살처럼 달려 무악재 아래 인가부근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하여 박태신은 호랑이를 타고 돌아가신 아버지묘에 문안드리러 다니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약 6년간을 하루도 빠짐 없이 그리했다.

 

그런 어느 날 박태신도 죽고 말았다. 시신을 어버지묘 앞에 묻었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구슬프고 애절하게 우는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열흘 이상이나 같이 애를 태웠다. 어느날 호는 소리가 그쳐 찾아보니 호랑이는 박태신묘 앞에서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사람들이 크게 감동된 바가 있었다. 호랑이가 영물이라서 효자를 따라 죽으니 동네에서는 박태신을 일러 하늘이 낸 효자라 했다. 몇몇 사람들이 호랑이 고기와 껍질을 탐하여 칼을 대고자 였으나 노인들이 크게 나무라자 잘못을 알고 물러갔다. 호랑이도 박태신의 묘 앞에 묻어주었는데 지금도 있다.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에서도 효자의 정문을 내리고 그 일대를 孝子院이라 명명하게 됐다.

 

 

과천 청계산 서쪽 기슭에 대명당 자리가 있으니 장군대좌혈이다. 옛 비결에 이르기를 '청계산 서쪽에 장군대좌혈이 뭉쳐 있는데 우측으로 돌아서 산맥이 흘러 혈이 응결되어져 있다. 이 자리 앞쪽에 펼쳐진 안산은 군마안 이며 좌향은 서쪽을 바라보고 혈의 깊이는 일곱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육관이 오래 전에 제자 몇 명과 함께 이 명당을 찾아 청계산에 올라가 보았더니 정혈이 뭉친 곳이 깊이 파헤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일행은 매우 낙담하였다. 특히 벽계는 명혈이 파손된 데 통분해 하며 육관의 논평을 부탁하였다.

 

 

'이 사람아, 내 마음도 마찬가질세. 대저 명당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고 땅이 감추어서 수억만 년을 보전해온 천하의 보물인데 한 개인의 하찮은 욕망 때문에 무참히 파괴되어 버리니 이 얼마나 아타까운 일인가? 또 우리 배달 겨레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인재들이 배출되어 三神一切(삼신일체)의 '한밝정신'으로 전세계 인류를 영도해 나가도록 태고때부터 마련해둔 명당자리를 이렇게 함부로 파헤쳐버리니, 이 아니 애석한 일인가? 그러나 청계산에는 또 하나의 명혈이 있지. 게 어진 줄 아나?'

 

 

그때 제자들은 모두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었다.

'옛 비결에 의하면 말일세, 과천 동쪽 10리 쯤에 옥녀 등 공형명당이 있다고 했네. 혈이 옥녀의 콧등에 응결되었는데 천 년 후에 道人이 나타나서 묘를 쓴다고 하였다네. 그런데 내가 직접 가서 보니 말이여, 어떤 지관이 이미 자기 자리를 미리 잡아 두었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그런 어려운 명당을 찾아 놓고도 혈처를 정확히 못 잡았으니 아마도 앞으로 크나큰 변고를 당할 걸세. 지관이 너무 좋은 자리를 탐하면 그 사람 꼴을 당할 테니 그대들도 유념하시게나.'

 

 

그로부터 얼마 후에, 육관의 말대로 옥녀등공에 가묘를 써두었던 지관은 부인과 아들들이 연달아 죽어버리는 변고를 당하고 말았다. 겉으로 보아서 아무리 정확한 혈처라 할지라도 그 속의 다른 경우가 허다한데, 어찌 스스로 도인이라 하며 천장지비의 혈처를 욕심내는 지관이 제자리를 찾겠는가? 그러니 청계산의 두 명당은 이미 욕심내는 사람들에 의하여 들키고 말았도다. 장군대좌는 파손되었고 옥녀등공은 혈처가 약간 틀렸다. 파손된 혈기가 되살아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혈처가 틀린 곳은 바로 잡으면 된다.

그리고 청계산에 또 하나의 명당이 있다.

 

 

 

雲中仙坐(운중선좌)

 

신선이 구름 속에 앉아 있는 형상이 대명혈이니 이는 지금의 정신문화연구원의 뒤쪽에 있다. 제갈공명이 날 잘리다. 운중선좌혈은 예로부터 신비한 곳이니, 일찍이 중국의 장량이 자기 손으로 운중선좌를 잡은 바 있고, 세갈공명도 열일곱 살때 황승언에게 빌어서 운중선좌를 얻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해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갈공명은 명당을 얻은 대신 지관 황승언의 딸과 결혼해만 했다. 황씨 부인은 너무도 못생겼다고 한다. 아무리 은인의 딸이라지만 신랑은 도저히 초야를 치룰 수가 없었다. 첫날밤에 도망을 쳤다. 그러나 수십리 길을 달려가도 그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 부인이 도술을 부린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여러 날이 지나고 억지로나마 초야를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나자 곧 기적이 일어났다. 초야를 지낸 신부의 흉한 얼굴이 벗겨지고 눈부시게 황홀한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하늘의 仙女였는데 황정경을 잘못 읽어 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운중선좌의 명당도 얻고 美人 아내까지 얻은 제갈공명은 이후 유비를 만나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가 각종 병법과 도술에 능통했던 까닭은 모두가 黃氏 婦人(황씨 부인)의 덕택이었다고 한다. 운중선좌에 묘를 쓰는 인연이 있는 자는 앞으로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인걸이 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 명혈의 주인공이 될꼬?

 

 

 

'甲子書堂(갑자서당)'

 

 

여는 글

2009년 우리는 四柱명리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태어난 해달일시에 의해 재구성된 '나'를 만나는 일은 낯설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그 안에 우리의 몸을 고칠수 있는 '醫'의 기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줄 '易'의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季節의 변화와 몸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 節氣가 바뀌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행로도 변한다는 것. 이것은 宇宙와 우리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해 준다.

음양오행과 漢字는 모두 옛사람들이 자연현상을 보고 그 조화의 원리를 끄집어낸 결과물이다.

 

 

차례

1. 음양

2. 사상

3. 오행

4. 천간, 지지

5. 팔괘

6. 28수

7. 24절기

8. 12경맥

9. 12율려

 

 

1. 음양

陰陽의 원리는 한 가지 事物이 두 개의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2. 四季

주역-계사전에 孔子(공자)는 '變하고 通함이 四時보다 큰 것이 없다.'

 

3. 육기

五運이란 한 해를 주관하는 하늘의 기운으로 五行 곧, 木 火 土 金 水를 의미한다. 六氣란 이에 대응하는 땅(지지)의 기운으로 궐음풍목(사해년에는 목운) 소음군화(자오년에는 화운)

소양상화(인신년에는 화운) 태음습토(축미년에는 토운)

양명조금(묘유년에는 금운) 태양한수(진술년에는 수운)

를 말한다.

육기는 風 火 暑 濕 燥 寒의 6가지 기운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하늘 땅 인간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감응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4. 오관- 얼굴에 드러나는 오장

오관은 눈혀입코귀(目舌口鼻耳)를 말한다. 실제로 의사들이 망진을 할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도 오관이다.

 

5. 정지- 七情

喜怒憂思 悲恐驚(희노우사 비공경)

 

6. 오상- '항상' 지켜야 할 오행

오상은 仁 義 禮 智 信을 말한다.

 

7. 五味(오미)- 오행의 맛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8. 오색

靑 赤 黃 白 黑

 

9. 오음

각치궁상우

 

10. 數(수)- 시공간의 상징

13579陽(양)이고, 246810陰(음)이다.

木38, 火27, 土510, 金49, 水16

 

11. 천간

甲乙 丙丁 戊己 庚辛 壬癸

 

12. 지지

子丑 寅卯 辰巳 午未 申酉 戌亥

 

13. 팔괘

八卦는 자연과 人事의 모든 현상을 여덟 가지의 像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팔괘는 乾兌離震(건태이진) 巽坎艮坤(손감간곤)으로 구성된다.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을 상징한다.

 

14. 28수

하늘에 기준이 되는 별이 '3원 28수'이다.

3원은 태미원, 자미원, 천시원이라 이름한다. 이 중 자미원은 뭇 별들의 중심축인 북극성을 포함한다. 이 북극성을 바라보고 회전하는 별들의 영역인 356.25도를 28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을 '28수'라고 한다.

 

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들 별자리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28개로 별자리들을 일곱개씩 한 묶음으로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동방칠수는 靑龍, 서방칠수는 白虎, 북방칠수는 현무, 남방칠수는 주작의 형상이다.

'티베트 그 비밀祕密의 만트라 속으로'
(이 책을 겔라 린포체와 도제 린포체, 따시 린포체와 3세 리메 법와 켄체 린포체께 바칩니다.)


시작하며
1997년 초겨울에 여러 해 동안 발행하던 문학잡지를 그만두고 티베트로 떠나기로 결심한 나는 서가에서 '히말라야의 성자 미라래빠'와 '티벳 사자의 서' 두 권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2003년 11월 황엽


1부 티베트로
2부 아라사
3부 인도로 
4부 다시 티베트로 


1부 티베트로
몇 권의 책들, 그리고 꿈

*티베트Tibet라는 말은 사실 서양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일 뿐,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나라를 '뵈'라 하고 티베트 사람은 '뵈바'라고 한다. 

미라래빠
복수는 성공했지만 죄책감이 미라래빠를 괴롭혔다. 그는 통절한 참회끝에 위대한 역경사 마르빠를 찾아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스승 곁에서 6년 8개월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허물어진 옛집에 어머니의 해골이 뒹굴고 있었고 여동생은 거지가 되어 타향을 떠돌고 있었다. 그는 고향 남쪽 지방의 동굴에서 9년을 고행하며 수행하였다. 
미라래빠는 쐐기풀로 생명을 이어 갔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과 혹한에도 무명옷마 입거나 때로는 옷도 음식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직 수행에 열중했다. 오랜 고행 끝에 붓다의 경지에 이른 그는 84세 되던 해에 그를 시기한 학자가 보낸 독을 마시고 육신의 옷을 벗을 때 까지 깨달음을 노래했는데 이것을 엮은 '미라래빠의 십만송'이 지금 까지 전해지고 있다. 

미라래빠는 숫수룡해 첫가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쓰고, 여기에 목화토금수의 오행에 암수의 음양을 조합해 만든 60진법이 쓰이는데 미라래빠가 태어난 숫수룡해는 육십갑자로 따지면 임진년이 된다. 1038년 이나 1040년 혹은 1052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세사을 떠난 것은 84세 되던 나무토끼해, 즉 을묘년 이라고 되어 있었다. 

'티벳 사자의 서'를 간략하게 말하면 '죽음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지인즉 사람이 죽으면 49일간 바르도라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데, 이 죽음과 바르도, 재탄생의 체험을 잘만 활용하면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빠드마삼바바라고 알려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흔히 그를 '구루(어둠을 몰아내는 자) 린포체(보석)' 라고 부른다. 
'티벳 사자의 서' 및 이를 설명하는 스승들의 여러 저서에 의하면 사람의 육체는 지, 수, 화, 풍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감각 의식은 이 원소들로 부터 생겨난다. 

보통 사람은 죽음이 닥쳐와 육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차례로 분해되고 두 개의 빈두가 아나하따 차끄라에서 만나 최후의 순간에 정명광이 현현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데 극도의 혼돈과 공포와 고통을 겪기 때문에 이 과정을 인식할 틈도 없다. 
그래서 근원적 광명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바로 바르도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자가 살아 생전 명상수행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그는 이런 모든 죽음의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척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볼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투명한 빛이 일어날 때 그것이 자신의 본성임을 깨닫고 그 근원적 광명과 합일해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베이징
나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갈 것인지 티베트로 갈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본토 티베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성취자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40년 가까이 티베트의 동굴에서 밀실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로상교수가  말했다. 


티비트가는 길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는 난주였다. 
'황선생, 지금 이 도시에 따시 린포체라는 분이 내려와 있는데, 그는 내가 지난번 말했던 성취자의 마음의 아들입니다. 성취자가 평생 바위동굴에서 수행만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거기까지 간다고 해도 만날수 있을지, 만난다 해도 제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그의 바위동굴까지 가는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죠. 따시 린포체는 그 성취자로부터 모든 법을 전수받았어요. 그를 만나기도 그의 스승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침 인도에서 온 성자들을 마중하기 위해 여기 와 있다는 말을 듣고 당신에게 알려주려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그를 만나 보겠어요?'

로상이 무릎걸음으로 따시 린포체 앞에 다가가 통증을 호소하며 오른쪽 어께를 내밀었다. 린포체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어께에 훅~ 하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무슨 거창한 의식도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신비한 주문을 외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전까지 움직이지도 못했던 어께가 자연스럽게 앞뒤로 돌아갔다. 로상과 닝란은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로상이 따시 린포체에게 나를 소개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소?'
'미라래빠와 같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미라래빠와 같은 스승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요?'
'바르도 퇴돌과 같은 밀교의 법을 구하고 싶습니다.'
'법을 얻으면 무얼 하고 싶은 거요?'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라싸는 높은 곳이라, 처음 가는 사람은 비행기보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하오. 게다가 당신은 지금 심한 고산반응을 겪고 있으니 비행기는 더욱 위험하오. 지금 상태로 라싸에 가면 죽지는 않겠지만 실려 내려오게 될 거요. 라싸에 갔다가 바로 실려 내려오는 외국인들을 나는 종종 보았소. 그렇지 않은가, 로상?'
'가서 표를 물러 와라. 당장!'
'내일 아침 8시에 숙소로 차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시오.'


입문
다음날 으른 아침, 나는 따시 린포체가 보낸 차를 타고 시닝 시내를 벗어났다. 차는 몇 시간을 달려 작은 암자 앞에 멈추었다. 
나는 이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서 다시 따시 린포체와 마주 앉았다. 
'그래, 당신은 어떤 수행법을 얻고자 하오?'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수행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응시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법을 줄 수는 있소. 그런데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밟아야 하오. 지금 당장 당신에게 법을 줄 수는 없고, 준다 한들 당신이 소화할 수도 없소. 네 가지의 기초 수행을 마치고 나면 당신에게 법을 주겠소.'

'밀법을 수행하려면 먼저 '귀의'를 해야 하오. 윤회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불 법 승(삼보)를 의지하는 것이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는 불법승 삼보는 스승을 통해 체현된다오. 나에게 법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스승이니 스승과 불법승에 사귀의 한다고 해야 할 것이오. 
불법승 삼보와 스승께 귀의 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본질적으로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윤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오. 불경에서는 이때 마치 개에게 쫓기던 어린이가 공포에 질린 채로 어머니의 품으로 뛰어드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오.'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려면 먼저 관정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빠드마삼바바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밀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으로부터 받는 관정이다. 관정을 받음으로써 스승에 대한 큰 믿음을 갖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입문식은 사원 안의 오래된 건물에서 치러졌다. 
상 맞은 편에 따시 린포체가 황금색 띠를 두른 굽이 높은 모자를 쓰고 노란색 가사를 두르고 앉아 있고, 그 옆에 다섯 명의 승려가 서 있었다. 두 명은 인도에서 왔다는 성자와 그의 시자였다. 나는 그 방에서 관정을 받기 위해 따시 린포체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긴 입문식이 끝나고 나는 따시 린포체가 따라주는 감로를 받아 마셨다. 
'나는 네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전생에 우리 법통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따시 린포체는 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냈다. 그리고 잘라낸 머리카락을 힌 종이 위에 얹어 나에게 주었다. 추잉뻬마 라는 법명도 함께 내려 주었다. 
'추잉은 40년째 바위 동굴 속에서 밀실수행을 하고 계시는 내 스승님의 이름이다. 스승님을 기리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따서 네 이름을 지었다. 추잉은 법계라는 뜻이고, 뻬마는 연꽃이라는 뜻이니라. 잘라낸 머리카락은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나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거라.'

'이것은 길상초라고 하니라. 오늘 밤 이것을 베개 밑에 두고 자거라.'
암자를 떠나 다시 시내로돌아갈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한참을 달려 산을 내려온 우리는 전날의 그 아파트로 갔다. 전등이 없는 아파트의 복도는 칠흑처럼 어두었다. 
집안에서는 세 명의 어린 비구니들이 희미한 램프불 아래서 소리 없이 움직이며 재빨리 음식을 차렸다. 한참만에 차려진 음식은 티베트식 수제비, 탠둑이었다. 
'네 머리속은 너무 복잡하구나, 이제 책은 그만 봐라.'

식사가 끝나고 따시 린포체는 나를 예의 텅빈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입문하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네 가지 수행법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이 네가지는 '기초수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 일정한 횟수만큼만 해 버리고 나서 수행이 높은 단계로올라가면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도제셈바 정화 수행법과 구루요가는 평생토록 해야만 하는 수행이다. 티베트의 스승님 중에는 평생 동안 구루요가를 수행하신분도 있다.'

'이 네가지 기초 수행은 각각 10만 번씩 행해야 한다. 만트라를 한번 외울 때마다 오체투지를 한 번씩 하거라. 그렇게 10만 번, 그러나까 총 40만 번이다. 네 가지 기초 수행은 1년 안에 마쳐야 한다.'



네 가지 기초 수행
베이징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네 가지 기초 수행을 시작하지 못했다. 나는 한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따시 린포체가 주신 책을 앞에 두고 절을 시작했다. 첫날 나는 1천 번의 오체투지를 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난 어느날 아침.
절의 횟수는 오만 번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통증은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속에 만트라가 녹음되어 있다. 이 테이프를 들으며 수행하면 훨씬 쉬울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 '이분은 나왕 초펠 상보 린포체이시다. 우리는 그를 겔라 린포체라고 부른단다. 훌륭한 수행자이자 학자이며 티베트에 있는 우리 사원 아라사의 교수시다. 아까 나온 오두막은 그분이 수행하셨던 곳이란다. 그분은 전생에 나의 제자였고, 금생에는 다시 나의 스승이 되셨다.'

따시 린포체는 밀실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낭시로 떠났다. 
'여기서 며칠 쉬다가 돌아가 다시 절을 계속해라.'

'내일 베이징으로 돌아가겠어요.'
무엇보다 몇년간이나 나의 꿈에 나타났던 할아버지가 스승의 스승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회의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산
비행기는 두 시간 만에 베이징 비행장에 도착했다. 36시간이나 걸려간 멀고 먼 길이었다. 
하루에 1천배 2천배 많을 때는 3천배까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절을 했다. 
절이 5만 번을 넘어가자 척추에서 가느다란 핏줄 같은 열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열은 점점 강해져서 등줄기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열기가 솟구쳐 오르고 온몸에서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 나왔다. 몇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등줄기를 타고 떠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강렬한 열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붙어 있던 살점이 모두 빠져 나갔고 정수리를 중심으로 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해서 백발이 되어 버렸다. 
나는 놀랐다. 나는 수억만 개로 분리된 개체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였다. 
이제 절은 20만 번을 넘어가고 있었다. 


불의 강을 건너서
따시 린포체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2000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기초 수행을 마칠때까지 40만번의 절을 한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내일 시닝으로 오너라.'
그날 밤 나는 비밀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빼마, 네가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 책속에는 '바르도 퇴돌'이 들어있었다. 
'명심하거라. 세상에 한번만 듣고 해탈에 이르는 법은 없단다. 살아 있을 때 부지런히 '바르도 퇴돌'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야.'
'네 딸이 귀의하지 않더라도 '바르도 퇴돌'을 듣는 것만은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된단다. 나중에 딸이 바르도에 가게 되었을 때, 살아 있을 때 들었던 '바르도 퇴돌'의 가르침을 모두 기억하고 이해하데 될 테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평상시에 '바르도 퇴돌'을 외우면 이마 죽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2부 아라사
난주
티베트 동부 캄 지방에서 높은 스승으로 추앙받던 통총 데빠는 1881년 티베트의 데게에서 태어났다. 
평생 밀실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던 그가 1954년 어느날 제자를 불렀다. 
'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난다. 나는 다음 생에 사원으로 돌아와 파괴된 사원을 복구하고 더 많은 중생과 불연을 맺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통총 데빠의 환생 따시 린포체는 그의 사원으로 돌아갔고 전생에 약속대로 파괴된 사원을 복구하는데 힘을 썼다. 2001년 5월, 내가 따시 린포체의 부름을 받고 난주로 갔을 때, 그는 복원사업의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8월이면 사원이 완공된다. 그러면 나눈 사원을 복구하는데 시주한 중국인 제자들과 시주자들을 사원으로 초대해서 개막식을 하려고 한다. 그때 너도 티베트에 있는 우리 사원에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8월이 지나면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왼쪽 손목에 감겨 있던 염주를 벗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가 수행하거나 독경을 할때 늘 그 염주를 손에쥐고 돌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라사
몇 달 뒤, 나눈 불학원 완공식에 참석하느라 따시 린포체의 초청을 받고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난주에 도착했다. ...그러고도 하루를 더 달려 '낭시'라는 작고 초라한 읍에서 이틀째 밤을 맞았다. 

'여기부터는 신의 땅이다.'
따시 린포체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엄격한 스승에게도 고향은 안도와 기쁨을 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해발 5천 미터를 넘어 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차는 6천 미터의 고갯길을 넘은 후에 비로소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장장 5일간의 고통스러운 여장 끝에 도착한 곳은 티베트 동부 캄 지방 참도에 자리한 작고 유서 깊은 사원 아라사였다. 
해발 3천 미터에 자리한 아라사는 팔을 벌리고 있는 산들의 품속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나왕 초펠 상보, 겔라 린포체
다음날 새벽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아라사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

'코리아, 코리아.'
다와는 길에서 만난 승려들에게 이렇게 나를 소개했다. 승려들은 '코리아'라는 말을 듣고는 매우 우호적인 표정으로 합장해 인사를 보내 왔다. 

'당신에게 줄 것이 있어요.'
'나왕 초펠 상보 린포체세요. 우리는 그분을 겔라 린포체라고 불렀답니다.'
'겔라 린포체는 아주 훌륭한 스님이세요. 따시 린포체의 전생의 제자였고, 금생에는 스승이었어요. 저의 스승이시기도 하고요. 그분은 60년을 밀실에서 수행하셨는데 경전의 지식과 수행과 체험을 다 갖춘 아주 훌륭한 분이셨어요. 돌아가실 무렵에는 몸이 점점 작아져서 어린애만했어요. 이분처럼 몸이 자꾸 작아지는 것은 그분의 수행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나는 직접 따시 린포체를 찾아갔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시선을 네 안으로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너는 몰랐겠지만 여기에 중국 경찰이 와 있다. 아라사에서 법회를 할 때도 경찰이 줄곧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외국인에게는 여행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 알고 있니? 그러니까 나는 법을 어기고 너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이다. 안탑깝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꿈 속의 움막
채마밭 건너편에 오두막이 있었다. 
'나는 늘 이렇게 앉아 있었어.'
그 순간에 멀고 먼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뒤늦게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고 여기까지 다시 찾아온 나와, 지난 생에 여기서 채마밭에 코스모스를 키우고 밀실수행 하시는 겔라 린포체를 시중들었던 내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와는 이렇게 말했다. 
'겔라 린포체의 여성 제자 이야기를 못 들었나요? 그분은 아주 형편없는 동굴에서 18년간 살았어요. 그 동굴에 작년에 따시 린포체와 함께 갔는데, 있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깔고 앉은 비닐과 나무를 대충 엮어서 만든 테이블뿐이었어요. 음식은 짬바가 전부였고요. 거기서 그 여성 제자는 사르바붓다 요기니 만트라를 1억 번 했대요. 그리고 성취자가 되었어요.'

그날 밤, 따시 란포체는 자신의 처소에 나를 불렀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수행할 시간도 없이 사원 복원에 전념했다. 원래 나는 사원이 복원되면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나의 스승이신 도제 린포체께 보내서 수행을 계속할수 있게 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네가 인도에 다녀오고 싶다니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다녀오너라. 그리고 인도에 가거든 근본 스승이신 잠양 켄체 법왕을 찾거라.'
'따시델레!'



3부 인도로
잠양 켄체 린포체
3대 리메 법왕은 부탄 왕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와 한 남자의 극적인 만남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는 1958년 동부 티베트 캄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병중에 있던 소년의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너는 리메 법왕이 증서를 써 준 텍충 텐빠의 화신이니라. 네가 어디에 있든 리메 법왕의 이름을 듣거든 바로 그를 찾아가라'고 말해 주었다. 

마을 큰 사원에 안도에서 온 스님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리메법왕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을 만난듯 기뻐하며 그에게 머리를 맞대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텍충 텐빠의 화신임을 확인해 주고 하루빨리 사원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자기의 사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행을 계속했다. 그 사이 그는 도제 린포체로부터 비구계를 받고 그의 제자이자 마음의 아들이 되었으며 뚤꾸의 신분을 밝히고 따시 린포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여러해가 지난후 그는 티베트에 있는 그의 사원 아라사에 돌아갔다. 그의 전신인 택충 텐빠가 입적한 지 43년 만이었다. 


다람살라
나는 3대 리메 법왕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는 채 무작정 인도로 갔다. 먼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가 볼 작정이었다. 
뉴델리 공항. 13시간을 달려 아침 무렵에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관정식이 끝나고 한국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의 왕궁으로갔다. 거기 접견실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대신해서 달라이 라마께 요청했다. 
'제가 티베트에서 만난 승려들은 성하를 너무도 사모하여 성하의 이름만 듣고도 눈물을 흘립니다. 티베트에 남아 있는 승려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다시 티베트로 돌아가면 꼭 그들에게 성하의 말씀을 전해주겠습니다.'
'수행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모든 중생,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티베트에 있더라도 열심히 수행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내가 데라둔으로 떠나는 날, 쌈뗀은 정거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데라둔
15시간 후에 버스는 데라둔에 도착했다. 
... 기차는 바라나시까지 가기 위해 24시간 동안이나 느릿느릿 달렸다. 


바라나시
한밤에 바라나시 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는 '강가(갠지스)'가 있었기 때문에 며칠머물기로 했다. 나는 그 화장터에 가 보고 싶었다.


사르나트
날이 밝자마자 강가 부근의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역전의 방갈로로 숙소를 옮겼다. 
부처님이 35세에 득도하고 아야교진여 등 5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을 하셨던 곳, 그곳에 가면 싱싱한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을 것만 같았다. 


소노우리
네팔 국경까지 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버스는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출발당일 아침에 취소되어 버렸다. 어쩔수 없이 시외버스를 탔다. 


부다나트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카트만두까지는 다시 버스로 10시간을 가야 했다. 
카트만두 부다나트에는 싸캬 티진 성하께서 이야기하셨던 대로 세상에서 제일 큰 스투파가 있었다. 스투파는 너무나 컸기 때문에 탑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였다. 

저 빛나는 지붕을 가진 사원 어딘가에 근본 스승님, 켄체 법왕께서 계실 터였다.
나는 사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3대 리메 법왕, 종사르 켄체 린포체
켄체 법왕의 시자가 전화를 해서 마을 서쪽에 있는 시첸 사원으로 오라고 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오래 된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그를 본 날로부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동굴을 깨버릴 듯이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좌중을 압도하던 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신비한 힘의 에너지. 어둠속에서 빛나던 강렬한 눈빛...

'이거 나 맞아요.'
그는 만다라 공양을 하고 있었다. 오른 손으로 좁쌀을 쓸어 담고 완손으로는 염주를 돌려 횟수를 세고 있었다. 

'...억압받아서 변형되지 않은 원래의 불교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이야가를 해주고 싶군요. 첫째 모든 복합적인 것은 변화한다. 나는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티베트 불교는 1백년 전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나는 한국에 간 적이 있었어요. '컵'이라는 영화를 알고 있나요?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바로 나에요.'
'나는 현대에는 미디어가 가장 강력한 도구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리틀 부다'라는 영화를 찍을 때 조언자로 영화에 참여했어요. 그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영화란 1백개의 사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오늘 당신을 부른 것은 헤어지기에 앞서 당신에게 조언을 해 주고 싶어서에요. 앞으로 당신이 어디에 있든 이 3가지를 기억한다면 도움이 될거에요.
첫째, 스승을 백퍼센트 믿고 의지하세요. 
당신이 스승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든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지 간에 그 스승에게 백퍼센트 헌신할수 있다면 그것은 역시 전생에 쌓은 선업 때문입니다. 
둘째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셋째 당신이 무엇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꼬라를 마쳤을 때 이렇게 기도 하세요. '나의 수행을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돌려 주십시오.'라고요. 이것이 당신에게 주는 나의 조언이에요.'
'나는 그 동안 여기서 만다라 공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것중에 고른 겁니다. 여기에 나의 축복이 들어 있어요.'
그의 섬세한 손가락 뒤에 작고 동그란 터키석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파랗고 예쁘고 따뜻했다. 법왕의 웃는 얼굴이 등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환하고 눈부셨다. 


까르마 띤레
'저는 도제 린포체의 제자에요. 따시 린포체도 도제 린포체의 제자지요.'
'린포체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 실제로는 외삼촌이시고요.'


룸비니
버스가 룸비니에 멈추었을 때 그곳은 우윳빛처럼 짙은 안개에 싸인 채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부처님의 탄생지. 


웃는 린포체
한국사람과 티베트 사람들은 아주 닮았다. 
나는 승려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고락푸르까지 가기로 했다. 


라마 쌈뗀
기차는 14시간 만에 올드델리 역에 도착했다. 일단 난민촌까지 가서 탠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람살라는 몹시 추웠다. 
내가 샹그릴라에 들어갔을 때, 쌈뗀은 부엌에서 능숙하게 칼질을 하고 있었다. 
며칠을 히말라야의 강풍에 떨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람살라를 떠났다. 떠나는 날 또 버스 정거장까지 배웅해준 쌈뗀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오랬동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4부 다시 티베트로 
성도에서
도제 린포체를 만나기 위해 티베트로 가기에 앞서 중국 서부 사천성의 성도로 갔다. 나왕이라는 승려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성도에 거쳐 가신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제 고향은 성도에서 가까운 곳이에요. 10여 년 전에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사원을 나와 히말라야를 넘었었요. 가족들에게 제가 잘 있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2년후에는 티베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겠다고도 전해주세요.'

성도는 분지라서 덮고 습기차고 그래서 매운 음식을 잘 먹기로 유명한 곳이다. 


시닝
나왕의 형과 헤어져 4일 후에 기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도시 시닝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하루 이상 들어가야 목적지 낭시에 갈 수 있다. 

따시 린포체께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하지 못했다. 결국 전화통화를 못 하고 버스터미널에서 낭시로 가는 침대 버스를 탔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도합 36시간을 달리니 낭시가 가까워졌는지 군데군데 나무가 보이고 아스팔트 길도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왔다.'
거대한 야크 해골로 장식된 문을 지나자 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렀다. 문에는 '낭시에 오시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글이 씌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흥겹고 즐거운 노래였다. 침착한 표정으로 줄담배만 피우던 사람들이 비누풍선처럼 와글와글 들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년들처럼 고향이 주는 안도감과 기쁨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낭시
버스에서 내리자 장총을 둘러멘 경찰들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승객들, 특히 남자들을 조사했다. 
저녁에 까르마의 사촌누이와 남편이 호텔로 찾아왔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도제 린포체를 만나 뵙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따시 린포체의 제자라고 밝히고 스승의 스승이신 도제 린포체께서 위험에 처했다면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내가 따시 린포체의 제자라는 말에 기뻐했다.

'언젠가 린포체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린포체가 한 그루 나무라면 당신의 가족은 나무를 감싸고 있는 화분이라고요. 옛날에 당신의 가족들이 린포체께서 수행을 계속하실 수 있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어미 양은 산 위에 
새끼 양은 산 아래에 있네
목동이여, 목동이여
어미와 새끼가 
만날 수 있게 해 주오.'
누이의 어머니가 노래를 불렀다. 

원래 린포체께서 40년 간 밀실수행을 하셨던 동굴은 바로 이 바위틈에 있었다. 
'여기에는 병에 걸려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다 환자들이에요.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해요.'

이윽고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일어나 흰 카닥을 양 손에 걸치고 어두운 입구를 향해 섰다. 그리고 도제 린포체께서 들어오셨다. 린포체는 키가 큰 데다 몹시 말랐기 때문에 거인같이 보였다. 린포체는 끊임없이 '옴, 아, 훔' 이라고 웅얼거리며 카닥을 받으시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주셨다. 
그는 맑고, 희고,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고,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빛나는 것은 그가 지어 주는 미소였다. 그 미소는 8월의 초원처럼 시원하고 환했으며 그러면서도 따뜻했다. 사람이 저처럼 웃을 수도 있다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마음 속 구비구비 감추어진 찌든 때를 녹아내리게 만들 것 같았다. 

'지금 린포체께서는 금언 중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못 하세요.'
누이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린포체께서는 말 대신 계속 진언만을 외우고 계셨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내 앞에 선 린포체는 손녀딸을 대하듯 웃음을 띤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액체를 가슴과 등에 뿜어 주시고 병을 기울여 뿌연 색깔을 띤 액체를 따라 주셨다. 
린포체는 모두에게 액체를 뿜어 주시고 다시 처음 사람에게로 가서 이번에 불붙인 향으로 상처를 지져 주셨다. 나는 절을 하다가 다친 무릎을 내밀었다. 그는 길고 홀쭉한 몸을 굽혀 나의 무릎을 약 1~2초 정도 들여보았다. 그리고 무릎의 안쪽에 천천히 향을 대어 주었다. 

'린포체께서 며칠 후에 금언을 풀고 당신을 만나 주실 거예요. 린포체를 만나고 나면 저와 어머니는 집으로 내려갈 테니 당신은 여기에 머무세요.'


따실레의 레빠
하늘은 깊은 바다를 옮겨 놓은 것처럼 짙푸렀다. 
그날 오후에 손님이 한 명 더 늘었다. 그는 곱슬머리를 어께까지 기르고 붉은 치마 대신 흰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흰색 치마를 입은 것은 그가 뚬모 수행의 대가인 '래빠'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목구비가 너무 뚜렸하고 눈빛이 매섭게 빛나서 정색하고 쳐다보면 조금 무서운 따실레의 래빠는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나에게 매운 고추기름을 가져다 주었다. 지독하게 매운 이 고추기름은 따실레의 유일한 반찬이었다. 
'저분은 원칭 라마라는 분인데 아주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하셨어요. 그는 명상중에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고 무의식중에 무드라를 짓곤 한답니다. 
린포체께서 그에게 특별히 흰색 치마 입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평상시에 그는 동굴에서 밀실수행만을 합니다. 그가 몇 년째 밀실수행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수행처를 떠나 바깥으로 나왔어요.'

까르마의 누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우리 앞을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구석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는 소녀 비구니에게 갔다. 비구니는 그의 부탁을 받고 밀가루가 발효되는 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린포체의 주방'은 금세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 찼다.


바위가 새긴 옴, 아, 훔
아침 일찍 나는 린포체께서 외우는 만트라와 종소리가 미풍처럼 간간이 들려오는 동굴 밖 소로에 서 있었다.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동굴에 가 볼래요?'

그런데 실제로 본 그곳은 동굴이라고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단지 집채만큼 큰 세 개의 바위가 겹쳐 있고, 그리고 그 밑에 겨우 생긴 약간의 틈에 불과했다. 안전한 입구나 긴 통로, 혹은 아늑한 공간 같은 것은 아예 없이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자리인지 방석이 깔려 있고 카닥이 걸려 있었다.  축축한 동굴 벽에 손을 대니 습기차고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밀려 올라왔다. 이런 곳에서, 외부와 차단시켜 주는 엉성한 문 하나없이 혹독한 티베트의 겨울을 어떻게 몇십 년 간 견디셨단 말인가?   
린포체 역시 뚬모 수행으로 내부열을 깨우신 것이 분명하다. 

'여기 글자가 보이죠?'
캠보가 벽에 어스름히 보이는 '옴, 아, 훔' 세 글자를 가리켰다. 그중에서도 '옴' 자는 가장 선명했고 글씨 표면이 다른 곳보다 밝게 보였다. 
'이 글자들은 조각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솟아난 것입니다. 작년 겨울에 이 동굴에서 물이 솟아났어요. 이런 산꼭대기에 물이 솟아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엄동설한인데 린포체의 수행동굴 주변에 꽃들이 잔뜩 피어났어요. 그리고 진동과 같은 소리도 울렸어요.'

'밀라래빠의 십만송'
그는 제자들에게 '생명 에너지와 마음의 작용을 완전히 통달한 수행자는 사람의 몸을 이루는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원소의 본질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어떤 몸으로든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티베트의 모처에 수행을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드디어 린포체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 밤이 지나면 린포체께서는 또 깊은 명상속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방은 좁고 춥고 누추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8월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때까지는 나는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7월에 제자들을 위해 이따실레에서 법회를 열 예정입니다. 그 법회가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지요.'
'불교의 수행법을 얻기 위해 티베트로 온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따시 린포체께 수행을 배웠습니다. 지금 저의 유일한 소망은 수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린포체께 수행법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살펴보니 당신은 아주 좋은 안연을 갖고 있어요. 오늘부터 나는 당신이 나의 제자로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도제 린포체의 제자가 되어 관정을 받았다. 

다음 날부터 린포체는 다시 밀실수행을 시작하셨다. 그 수행은 7월, 법회가 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동안 나는 린포체께서 특별히 마련해 주신 방에 머물렀다. 방은 린포체가 계시는 곳 바로 아래층이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계시라고 해서 미안해요.'
때에 절어 번질번질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여성이 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캠보의 누나인데 다들 공행모라고 불렀다. 그녀를 공행모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는 수행도 높고 사원에서의 지위도 높은 것 같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끄어억ㅡ' 하고 트림을 했다. 트림이라기 보다는 배의 맨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천둥이 용트림을 하면서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 거대한 진동이었다. 
공행모뿐 아니라 따실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트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천둥의 트림'에 대해 내가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무슨 말씀을 요, 여기는 호텔이나 바름없는 걸요. 내가 묵었던 어떤 호텔보다 좋아요.'

혹실히 풍경만은 최고였다. 나는 돌벽으로 쌓아올린 흙침대에 앉아 빈약한 창문으로 내다보았던 해발 4천 미터의 풍경과 5월에도 내리는 폭설과 그 폭설이 만들어 내는 설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고산반응은 어때요?'
'이것은 린포체께서 축복하신 거예요. 머리가 계속 아프면 이걸 먹어 보세요. 두통, 감기에 효과가 아주 좋아요.'
종이 안에는 엄지손톱만한 흰색 환약이 들어 있었다. 
'이건 이 지역에서만 나는 특별한 흙으로 만들었어요.'
'정말 두통이 사라졌어요.'

린포체의 동굴에 문과 창문을 새로 달았고 바닥을 골라내고 거친 카펫을 깔았다. 공사가 끝나자 린포체는 임시 거처에서 다시 동굴로 돌아가셨다. 

날씨가 풀려도 주방의 화로에 하루 종일 불을 때야 했다. 두끼의 식사 외에 차도 끓여야 하고 세숫물이며 설거지물도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의 고원에서 연료로 쓰이는 것은 야크똥이다. 야크란 짐승이 채식만 하기 때문인지 똥이라도 악취가 전혀 없고 연소도 잘 된다. 

'진짜 아름답다......'
며칠 후 나는 그의 넋을 나가게 했던 회색 티셔츠를 깨끗하게 빨아서 그를 찾아갔다. 그의 집은 2평이나 될까, 성냥갑처럼 작았는데 그 안에 작은 흙침대ㅡ그의 침대도 린포체의 침대처럼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다. 그도 밤이면 누워서 자지 않는다. 린포체의 사원에 있는 승려 중에는 누워서 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ㅡ 와 부뚝막과 몇 가지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식사했어요? 짬바 드릴까요? 아니면 양젖이나 뜨거운 물을 드릴까요?'


아름다운 아버지, 도제 린포체
7월이 되자 따실레 사람들은 법회 준비로 눈코뜰새없이 바빠졌다. 산꼭대기 평지에 커다란 차양을 설치하고 란포체가 앉으실 자리와 테이블을 준비했다. 
텐트생활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활해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법회 때 린포체께서 '바르도 퇴돌' 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첫날, '바르도 퇴돌' 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찰나, 나는 린포체의 뒤편으로 검은 구름이 허겁지겁 몰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후로도 란포체께서 '바르도 퇴돌' 에 대한 법문만 시작하시면 하눌은 정해진 순서처럼 구름이 몰려 들었고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그때까지 우산을 받치고 계시던 린포체께서 말씀을 멈추고 찢어진 차양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수염을 잡고 매달리는 철없는 장난꾸러기 손자를 보듯이 그렇게 웃음을 띤 표정을 지으시고 그날의 법문을 멈추었다. 

'미라래빠 전기'에 그가 법문을 할 때면 하늘로부터 천신과 다끼니들이 내려와 그 법문을 듣는다고 하였다. 
이상한 것은 날씨뿐이 아니었다. 나는 린포체께서 법문을 하실 때 몇몇 티베트 사람들 중에 ㅡ승려들도 있고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ㅡ 이상한 상태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 버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트랜스 상태에서 아름다운 무드라를 짓는가 하면 치솟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펄쩍펄쩍 뛰어 다니기도 했다. 고함을 지르면서 앚은자세로 차양의 천장까지 치솟으며 뛰어 오르는 이도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상태로 빠져들어 마치 광적인 마법사의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오후 법회 시간 내내 나는 몸에 떨림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한겨울에 서리맞은 것처럼 덜덜덜 떨리면서도 등줄기가 화끈거리고, 더운 열기가 치솟아 올라 온몸은 화로처럼 뜨거웠다. 

'어제 아마 린포체께서 당신에게 포와의식을 하신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람은 본디 생명의 바람 뿌라나, 빈두, 그리고 뿌라나와 빈두가 다니는 통로인 나디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다시 복잡하고 세부적인 하부구조로 나뉘어 있다. 수행이란 이 모든 뿌라나, 나디, 빈두를 정화하고 막힌 곳을 뚫어 주는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마침내 '붓다가 되는 것'이다. 

밀교수행자는 생기와 원만의 두 방편을 통해 여러 층차의 감응을 차례로 거치면서 자기 몸의 뿌라나, 빈두, 나디 등을 정화해 나가고 그 정화가 완성될 때 법신, 보신, 화신의 불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밤의 신비의식
법회 마지막 날이었다. 해가 지고 한참이나 됐는데 투도 라마가 텐트로 찾아왔다. 
'저녁에 진짜 법회가 열릴 겁니다. 다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한밤중의 법회에는 린포체의 초대를 받은 사람만 참석할 수 있었다. 
이윽고 린포체께서 짧은 법문을 하시고 만트라를 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또다시 마술에 걸린 사람들처럼 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앉은채로 2m 높이까지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가 하면, 트랜스 상태에서 무드라를 짓고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점차 린포체의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춤도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끊어내려는 듯 거샌 몸짓으로 구르고 뛰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또다시 열과 떨림이 온몸을 휩싸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온몸이 커다란 산이나 바위처럼 점점 커지고 있다는 느낌과 동시에 전기충격 같은 진동이 꼬리뼈와 정수리를 잇는 통로를 뚫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를 모두 포기하고 빛의 몸 앞에 엎드린 순간, 나는 그가 내가 모시고 있는 탱화 속 분노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음 순간 분노존은 빠드마삼바바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빠드마삼바바의 얼굴은 린포체의 자애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캠보와 따실레의 래빠가 옆에 서 있었다. 
'이런 상태에 빠졌을 때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안 되거든요.'
'내 눈앞에 글씨가 지나가요. 나는 다만 그 글씨를 보고 노래를 부를 뿐이에요.'
'투도 라마는 뗄뙨이에요. 그는 감응을 받을 때마다 신비세계로부터 숨겨진 비법을 캐온답니다. 이번 법회에서 린포체께서 가르쳐 주셨던 아미타불 만트라도 투도 라마가 새로 찾아낸 것이에요.'
뗄뙨,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굴장사이다. 그 옛날 티베트에 처음 불교를 가져온 빠드마삼바바가 세상에 공개할 때가 이르지 않은 비밀의 경전을 여러 동굴에 숨겨 놓으셨다. 

상상외로 트림은 체력을 많이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이건 몸 속에 있는 탁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예전에 린포체께서도 그렇게 트림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아주 좋은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뭐야?'
나는 꺄숑의 목에 매달려 반짝이는 작은 팬던트를 발견했다. 
'이 안에 린포체의 사리가 들어 있어요. 우리들은 다 하나씩 갖고 있는데 아말라ㅡ카르마의 동생 다섯명은 모두 나를 아말라, 어머니라고 부렀다ㅡ 는 사리를 안 갖고 있어요? 그럼 린포체께 달라고 하세요, 틀림없이 주실거예요. 
린포체의 이가 빠지면 거기서 사리가 계속 생겨나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수행을 하시다 일어난 자리에서도 사리가 나오고, 콧물을 닦는 수건에서도 나와요. 잘라낸 머리카락도 유리같은 사리로 변하는 걸요. 
사람들은 린포체를 마르빠의 화신이라고 하고, 빠드마삼바바의 화신이라고도 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린포체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만 린포체께선.ㄴ 인연을 살펴보시고 좋은 인연만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제자가 되면 꼭 사리 한 과씩 내려 주세요. 



비밀의 만트라 속으로
며칠 후 나는 린포체의 부름을 받고 2층에 있는 동굴 방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입으니 꼭 티베트 사람 같구나.'
그때 나는 공행모가 준 티베트 전통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순모ㅡ티베트에서는 흔하디 흔한ㅡ 로 만들어져 따뜻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괜찮으니 입을 막지 말아라. 트림은 몸 속의 나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아주 좋은 것이다. 나는 네가 이번 법회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밤, 비밀의 의식을 행할 때 보았던 불붙는 푸른빛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그 분노존이 왼손에 돌제를 들고 오른 손에는 굽이진 칼을 들었더냐?'
'네가 본 것은 빠드마삼바바의 분노존이다. 그 분노존은 또한 나의 호법신이기도 하다. 역시 너는 아주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구나. 또한 매우 신실하며 수행에 부지런하기 때문에 나는 네가 앞으로도 수행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따실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 확실히 여기는 매우 좋은 곳이다. 일찍이 나의 스승이신 잠공 콩튤 린포체께서도 이곳에 오셔서 '아주 좋다' 라고 말씀하셨다. 
1940년대에 쌰캬빠의 나왕 캠보가 제자들과 함께 여기에서 나로 공행모 수행을 하실때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뜨고, 꽃비가 내리고 땅이 붉은색으로 물들기도 했단다. 내가 여기에 너를 위하여 작은 집을 지어 줄 테니 매년 여름에 여기와서 내 곁에 수행을 하면 어떻겠니? 
위치는 저 샘터 옆이 어떨까 생각하는데, 마음에 드느냐? 샘터 옆이면 물을 긷기도 편하고 여기에 오기도 가까울 것이다. 지금 티베트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여름마다 여기와 와 있으면 티베트어 선생님도 찾아 주도록 하마.'

'나는 지난 40년 간 이 동굴에서 혼자서 수행을 해 왔다. 여기서 문화혁명도 겪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위험했단다. 그 동안 열심히 수행한 덕분에 지난 겨울에 내 수행이 비로소 하나의 고비를 넘어섰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넘어야 할 수행의 고비가 2개나 남아 있단다.'
10살에 출가했고 40년 이상 동굴에서 짬바만 드시며 밀실수행을 하고 계신 분이, '성취자'라고 불리며 몸에서 사리를 만들어 '이제 겨우 수행의 한 고비를 넘어섰을 뿐'이라고 말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9월에 들어서면서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있었다. 
'괜찮다. 아주 좋은 일이다. 밀법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빈두가 정수리에 있는데 그 빈두가 터져서 트림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한국에 가서도 트림이 멈추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왜 트림을 하는지 설명해주렴. 트림은 린포체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것이며 몸 속의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좋은 것이라고 말이야.'

'따시가 너에게 40만 번이나 오체투지를 시켰다고 했지?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오체투지를 하면서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 온몸의 근육과 함께 나디도 움직이게 돼서 막힌 나디를 풀어준단다. 또한 척추의 동공을 따라 중앙 에너지 통로인 수슘나가 있는데, 오체투지를 하면 뿌라나와 빈두가 이 중앙에너지가 통로로 모아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오체투지는 아주 중요하다. 힘이 들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많이 할수록 좋단다. 나는 네가 티베트 사람들을 빼고는 내 제자들중에서 가장 수행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생에도 수행을 많이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오체투지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르도 퇴돌' 의 만트라를 한 번 들려 주실 수 있을 까요?'
'응.... 어렵지 않다.'

린포체께서도 섭섭하셨단 것일까? 내가 절을 하고 동굴 방을 떠날 때 린포체는 길고 가는 손을 들어서 자꾸 '따시델레'를 외처 주었다. 

아침 일찍 따실레를 떠났다. 주방에서 일하던 어린 ㅂㅣ구니들이 잠을 자다가 내가 간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나왔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이마에 이마를 대고 '따실델레'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곳을 머릿속에 입력시키려는 듯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언덕을 넘어 밀실수행처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갔다. 
'모르세요? 여기서 수행하는 분 , 따시 린포체세요.'
'따시 린포체를 만날 수 있어?'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단호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 집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그저 서 있었다. 
나는 벽 건너편에 있는 따시 린포체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다시 언덕길을 내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까마득히 높은 벼랑 끝에서 따시 린포체의 제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기
한국으로 돌아와 3달 내내 이 책을 썼다. 책을 쓰기 전에도 그랬지만 쓰는 동안에도 줄곧 여러 스승님들께 기도를 드렸다. 
네팔에서 켄체 린포체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따시 린포체와 도제 린포체께도 이런 내용을 책으로 써도 될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스승님들은 모두 흔쾌히 '좋다' 고 말씀하셨다. 여러 스승님의 축복을 받은 이 책이 세상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뜸자리 잡아드립니다

구 당 김 남 수

 

 

뜸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灸堂이 안부를 전합니다.

나는 100년을 뜸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임상을 통해 무극보양뜸을 창안했습니다. 또, 예방과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무극보양뜸을 모든 인류에게 전파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교육을 해왔습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축적해온 무극보양뜸을 여러분에게 돌려드리려 합니다. 힘없는 손에 꼭 쥔 박하사탕을 내 가운 주머니에 살짝 넣어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나 말은 통하지 않지만 뜨거운 눈물로 나를 얼싸안았던 피부색 다른 환자의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인 전남 장성에 지은 ‘구당 뜸집’에 ‘구당 침술원’을 개원하고 남녀노소 여러분 모두에게 무료로 뜸자리를 잡아드리려 합니다.

 

뜸을 좋아하는 여러분 모두가 오셔서 이 노구의 灸堂이 잡아주는 뜸자리도 잡으시고 건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잘못된 현행 의료법으로 인해 뜸을 떠드릴 수는 없습니다. 물론 ‘뜸 시술 자율화’가 된다면 나에게서 뜸을 배운 5천여 명의 제자들이 뜸을 떠드릴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보내준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는 ‘무료 뜸자리 잡기 행사’에서 여러분을 뵙겠습니다.

 

 

www.gudang.kr

1. 여러분 모두를 대상으로 뜸자리를 잡아 드립니다.

무극보양뜸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세계 유일의 의학으로 오랜 임상에서 창안한 것이며, 달라진 오늘의 환경에 맞는 뜸 요법입니다. 무극보양뜸은 ‘환자(患者) 없는 세상, 의자(醫者) 없는 세상’을 위한 일념에 의한 것으로 남녀, 노소, 빈부, 귀천, 시간, 장소, 인종, 지역 구분 없이 쑥 한 줌으로 뜸자리를 잡아 드리겠습니다.

 

2. 뜸은 본인이 직접 뜨셔야 합니다.

무극보양뜸은 한마디로 인체의 8개 경혈, 12군데(여자 13곳) 자리에 반미립대(半米粒大) 즉, 쌀알 반 톨 만한 크기로 매일 한 차례씩 3장씩 뜸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의술이 모두 의료전문가의 것이고, 전문가라고 해야 뛰어난 의술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무극보양뜸은 병이 있든 없든 누구나 할 수 있는 뜸 요법입니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으로 인해 뜸자리만 잡아 드리면 본인이 직접 뜸을 뜨셔야 합니다.

 

3. 뜸을 떠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의료법 때문입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뜸 시술을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뜸은 개인이 판단하여 시술을 결정합니다. 의료복지 실현과 일자리 창출, 국민건강 및 농가 소득증대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뜸 시술 자율화’는 이제 국가적 책무이자, 시대적 소명입니다.

- 2016년 무료 뜸자리 잡기 일정 및 접수 방법 -

- 일정 : 매주 월요일 (2016년 1월 4일부터)

- 대상 : 뜸자리를 처음으로 잡는 사람(기존에 뜸자리가 있는 사람은 제외)

- 접수 방법 : 현장 선착순 접수 (당일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배부하여 진행)

- 장소 : 구당 침술원 (전남 장성군 서삼면 금계리 170번지)



'와(と)! 일본- 응집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해부'

성호철 지음


이 책을 쓰면서 일본인이 자신들의 사고와 행동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공을 들였다. 편견과 선입견을 지우고 차가운 理性만으로 일본, 일본인과 마주하려고 했다. 

차례
1부. 눈(視線)의 세계
2부. 뒤틀린 '와(と)'
3부. 메센(目線) 전쟁
4부. '밖의 세계'와 일본


1부. 눈의 세계

일본인은 사물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

일본인은 안과 밖으로 나눈다. '안'은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삶이 벌어지는 곳이다. 일본인은 이곳에서 최대한 예의와 도리 그리고 사회의 룰(rule)을 철저히 따른다. 반면 '밖'은 자신과는 무관한 세상이다. 어떤 무례를 저질러도 자신이 소한 '안'에서 이를 용인하면 괜찮다. '밖의 1세계'는 두차례에 걸쳐 '안의 세계'에 충격을 가했다. 1853년 쿠로후네(くろふね, 黑船. 미국 페리제독 함대의 일본에 대한 開港 요구사건)의 출현은 중세막부 체제가 유지되던 '안의 세계'에 충격을 줬으며 질서를 송두리째 바꾸게 했다. 

봉건주의 일본을 무너뜨리고 근화된 일본제국을 만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밖의 세계'가 안의 질서를 붕괴시킬 것이란 공포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안의 질서를, 즉 밖의 공포에 대응할 정도의 힘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안의 세계'를 만들려는 革命이었다. 1945년 미국 맥아더 장군이 이끈 연합국군 총사령부가 도쿄에 위치해 일본을 정렴했다. 1952년 일본이 주권을 회복할 때까지 軍 점령은 약 7년 정도 이어졌다. 

일본인을 지배하는 건 주변의 視線, 눈이다
눈이 지배하는 사회의 모습은 매뉴얼 사회, 룰(rule)의 사회. 공간에는 수 많은 눈이 서로를 주시하면서 균형을 맞추며 이런 눈의 상호 견제 속에 도출한  결론은 하나의 메센(めせん, 目線, 시선)으로 정해진다. 앞서 설명한 시선과 메센(目線)을 적용하자면 균일한 구성원이 서로의 시선을 느끼면서 균형을 맞춘 메센(目線), 즉 '안의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횡적 사회라 하기엔 너무나 一絲不亂(일사분란)하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도 그렇다. 누가 행동지침을 내린 것도 아닌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견 없이 같은 방향으로 힘을 응집시켰다. 힘을 응집시키는 기준은 '1'이다. 메이지 유신의 경우 '1'은 덴노(てんのう, 天皇)였다. 권력이 아닌 權威(권위)에 의한 지배다. '1'이 정하는게 아니라 '균일한다'가 '안의 세계'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보고, 다른 눈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空氣를 읽으면서 점차 의견 수렴이 이뤄지는 것이다. 


덴노(天皇)는 권력자가 아닌 집단을 응집시키는 기준이자 무게 중심

일본 사회로 시야를 넓히면 일본이란 '와(と)의 세계'에서 '1'은 덴노(天皇)다. 덴노(天皇)는 다른 국가나 민족의 황제나 국왕과도 다르다. 덴노(天皇)는 권력자가 아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막부 체제를 붕괴하고 다시 덴노(天皇)가 정치의 중심에서 서서 형식적으로 최고 결정권자가 되었지만 역시 덴노(天皇)가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는 구조는 아니었다. 

예컨대 滿洲事變(만주사변)은 덴노(天皇)를 비롯한 도쿄의 결정권자들의 지시에 따라 생긴게 아니라 關東軍(관동군)이 민족주의적 폭주를 하면서 터진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만주사변을 지지하는 일본 민족의 메센(目線)과 함께 이후 만주사변을 하나의 결정으로서 도쿄의 결정권자들의 밀고 나간 것 또한 사실이다. 덴노(天皇)는 만주사변을 지시한 권력자가 아니라 '안의 세계'가 결정한 메센(目線)을 인정하고 그런 메센(目線)에 權威(권위)를 얹는 역활인 셈이다. 현대 일본에서 권력자는 내각총리이며, 덴노(天皇)는 일본 정치에 직접적인 결정 권한이 없다. 하지만 덴노(天皇)는 일본 2천 6백여 년의 역사에서 줄곧 '1'로서 일본인의 무게 중심이었다. 


눈의 지배를 만든 배경... 섬

섬나라인 일본의 특성상 섬 밖으로 밀려나가는것 자체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셈의 메센(目線)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선택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룰(rule)과 空氣를 따라야 하는 절박함이나 압력은 半島나 大陸의 국가와는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눈의 지배를 만든 배경... 흔들리는 땅 위에 사는 일본인

인간이 진동을 알 수 있는 震度(진도)는 3이상이다. 2014년 진도 3이상의 지진은 189회다. 이틀에 한 번꼴로 일본의 땅이 흔들렸다. 일본의 地震을 경험하지 않고는 일본인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땅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相對的인 존재로 인식한다. 

닌겐(人間)은 자연재해라는 큰 혼란과 위협을 순식간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형성된 표현이다. 자연재해의 위기에서 '와(と)의 세계'는 하나로 뭉치고 서로 엔료(えんりょ, 遠慮(원려)하고 메이와쿠(めいわく, 迷惑, 폐)를 끼치지 않으며 조화롭게 살려고 노력한다. 

완벽한 물건을 요구하는 일본 소비자

흔들리는 땅 위에 사는 소비자는 불완전한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低價라도 완벽해야 한다. 일본 100엔숍에서 파는 저가 제품들도 싼 재료를 썼지만 제품 하나로서의 완벽성은 모두 갖추었다. 자연재해 속에 사는 일본인은 安全과 信賴(신뢰)를 중시한다. 



제2부 뒤틀린 '와(と)'

눈의 지배가 주는 압력과 병리 현상

대인공포증은 일본에 그 환자 수가 유독 많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이런 증세를 처음 발견하고 병명을 붙인게 日本이다.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눈을 항상 의식하고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메센(目線)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이것이 病으로 발전한 형태다. 


T.W.강은 2002년 저서인 "日韓동맹 vs중국"에서 일본인은 개인으로선 미국인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발한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국민임을 지적하는데 문제는 '그룹'으로 여러 일본인이 모였을 때라고 보았다. 


'와(と)'의 응집... 작아지는 개인과 강해지는 집단

졸전한 월드컵 대표팀에게 환호하는 일본 축구팬.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일본 대표팀도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 2패로 최악의 성적을 내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나리타空港에는 1천여 명의 축구팬들이 몰려 '수고했습니다'를 외쳤다. 출국 때 모인 7백 명보다 많은 숫자가 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16강은 물론이고 8강 정도의 성적을 낸 대표팀을 맞는 분위기 였다. 부진한 성적을 거둔 대표팀에게 냉대의 시선을 보내거나(잉글랜드), 달걀(이탈리아)이나 엿(韓國)을 던지는 나라보다 최악의 성적을 내고 돌아온 축구대표팀에게 우르르 몰려들어 '수고했습니다'를 연발하는 일본이 무섭다. 일본 축구팬은 단지 '일본을 대표해 고생한 축구팀'이기 때문에 박수를 보내는 다테마에(たてまえ, 建(て)前, 원칙)를 보여줬다. 



제3부 메센(目線) 전쟁

일본인은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마음이 놓인다. 메센(目線)은 이런 방향을 결정하고 강제하는 힘이다. 메센(目線)은 주로 정치적 지지를 묻는 여론과 달리 생활 전반에 걸친 행동지침이다. 메센(目線)은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일본의 3세대론... 

패전세대, 富의 향유 세대, 잃어버린 세대, 2000년 이후 일본의 세대교체. 현재의 일본을 이해 하기 위해선 2000년 이후 세대 주도권의 변화를 봐야 한다. 


전쟁을 보는 일본의 눈... 미야자키 하야오와 '영원의 제로'

'안의 세계' 입장에 서서 전쟁을 보면 일본 국민들이 스스로를 진정한 전쟁 피해자라고 보는 메센(目線)이 보인다. 도쿄 대공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空軍이 일본 本土를 폭격한 것을 일컫는다. 이중 1945년 3월 10일에 벌어진 '미팅 하우스2' 작전이 가장 큰 규모였으며, 이날 하루 동안에만 도쿄에서만 사망자 8만 3,793명, 부상자 4만 918며(당시 일본 경시청 조사)에 달했다. 단독작전에 따른 공습 피해로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이웃집 토토로'가 보여준 따뜻한 感性과 童心의 세계은 어른이 된 한국인에게 여전히 기대고 싶은 故鄕의 풍경이다. 미야자키는 그동안 작품 전편에서 '反戰' 사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독특한 특징은 善惡의 대결을 묘사하면서도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마음속엔 '침략자인 일본군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미지가 별로 없다. 줄곧 일본열도에 살았던 대다수 일본인의 입장에서 침략 전쟁은 '美軍의 공습을 받은 전쟁'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면서 '일본인이야말로 정말 가장 큰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죽은 日本人은 8백만 명이 넘는다. 반면 일본군이 한국과 중국에서 서민을 학살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본인 피해자 메센(目線)을 믿는 일본인으로선 植民地 지배에 대해 일본을 비판하는 한국인을 상대로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혐한론의 뿌리... 한국인에게 배신당했다는 일본의 패전세대

하지만 일본인은 항상 '왜 한국인은 일본을 미워하냐'고 묻는다.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양심적 일본 지식인조차도 '수백만 명이 희생된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에게 왜 共産主義에 대한 적개심보다 더 오래된 과거인 식민지를 떠올리는 반일이 더 큰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富의 향유 세대'의 무관심을 '친한'으로 본 한국인의 착각

1980~1990년대 세계의 돈줄을 쥐었던 일본에게 한국은 안중에도 없었다. 三星電子가 1970~1980년 대 일본의 전자 기업에게 많은 기술 이전을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에선 정치계와 경제계 할 것 없이 '克日(극일)'이란 기치 아래 일본과의 관계 맺기에 여념이 없었다. 


몰랐던 한국에 옛 '쇼와'(しょうわ, 昭和)의 정취를 느끼며 다가섰다가 반일 정서의 가시에 찔린 일본

1990년 대까지 일본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밖의 3세계'였다.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2002년 韓日월드컵 개최와 한국의 4강 진출은 일본에 한국을 각인시켰다. 2003년 4월 NHK의 위성방송인 BS2에서는 '겨울戀歌'를 방송했다. 2004년 11월 욘사마의 일본 방문에 나리타空港엔 5천여명의 팬들이 새벽부터 몰려 들었고,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한글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일본 민영방송사들은 '욘사마 訪日'을 생중계하기 위해 헬기를 띄웠다. 정규 프로그램 중에도 욘사마를 태운 자동차가 현재 일본의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보여줄 정도였다. 

外信(외신)들도 이런 일본 반응에 놀라 '한국의 드라마 스타가 도쿄 공항에 수천명을 운집시켰다'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겨울戀歌. 여성팬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자신들의 靑春 시절인 197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를 봤다. 일본인이 말하는 쇼와(昭和) 시대는 대략 1960년~1980년대 초반을 일컫는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인이 잃어버린 옛 鄕愁(향수)를 들고 일본열도에 들어온 것이다. 한류 팬은 한국을 일본의 쇼와(昭和) 시대로 생각했다. 


혐한은 한국을 '일본의 일부'가 아닌 '외국'의 경쟁자로 인식

반면 韓流는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있는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었고 그만큼 많이 소비되면서 하나의 문화 기류로 만들어졌다. 


한일간 새로운 관계 만들기

韓流와 혐간의 메센(目線) 전쟁에서 긍정적인 대목은 고슴도치처럼 서로를 찌르지만 이 과정이 적당한 거리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 한국과의 경쟁을 접하면서 오히려 혐한 세력이 먼저 '구시대의 식민지적 한국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사실 한국이 싫어하는 일본은 현대의 일본이 아니라 근대의 일본(1945년 종전 이전)이다. 



제4부 '밖의 세계'와 일본

1945년 8월 15일. 덴노(天皇)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침략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면책을 받은 덴노(天皇)는 여전히 '1'이었다. 미국은 이질적인 힘이자 현실적인 권력이었다. 메이지유신 이전의 幕府(막부)와 같은 존재일 따름이다. 


재등장한 '전'의 세계와 '밖의 2세계'

2010년 중국의 GDP는 5조 8786억달러를 기록해 5조 4742억 달러에 그친 일본을 제쳤다. 日本은 1968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지 42년 만에 3위로 밀렸다. 

한국의 외교를 고자질이라고 비판하는 일본인
일본 사회에선 朴槿惠 대통령에 대해 '구치츠게 가이코' 이른바 '고자질 외교'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자질은 우선 같은 '소속 집단'이어야 성립된다. 동생이 형을 엄마에게 고자질하려면 같은 가정에 소속되어야 한다. 사실 朴대통령이 해외 국가원수들에게 일본을 언급하는 것이 고자질 외교가 된다면, 중국의 習近平(시진핑) 주석도 마찬가지로 고자질 외교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고자질 외교라고 말한다. 

왜일까? 일본인 잠재의식 속에서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일본의 一部(일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누구도 현대 사회에서 이를 말하지 않지만 무의식에선 여전히 한국을 일본의 一部로 본다. 

일본에 오는 관광객 숫자로 보면 중국인에 이어 한국인이 두번째로 많다. 
실제로 '가이진(がいじん, 外人, 외국인)' 이란 단어에는 한국인이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인을 가이진(外人)으로 보세요? 라고 물어보면 다들 웃으며 대답을 회피한다.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인은 한국을 '구니'(くに, 國)로 여긴다. 구니(國)는 통일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일부분이며 地方이다. 이런 의식은 역사가 오래 되었다. 壬辰倭亂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明을 치러 갈 테니 朝鮮은 길을 비켜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전쟁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그 안쪽엔 이런 의식도 없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고자질 외교도 이런 일본인의 의식속에선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韓國은 일본의 一部인데 어찌 다른 나라 元帥를 만나서 日本을 비난하니 배신감이 드는 것이다. 일본 '안의 세계' 에서 한국은 밖이면서 밖이 아닌 존재다. 


韓日 경제 보완론과 극일 경제의 종언

소프트뱅트 회장인 孫正義(손정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내 전력 수급상황이 불안정해지자 KT와 협력해 金海에 IDC(인터넷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일본 기업 전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본인을 만나면 다들 그들의 친절함에 놀라고, 뒤돌아서면 집단주의 폭주라는 과거의 칼날을 되뇌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잃어버린 세대' 에게 한국은 외부에 있는 '국가'다. 앞선 세대와 같이 무의식 속에서 한국을 일본의 一部로 보거나 하지 않는다. 


극일 시대의 종언

"일본과의 和(화)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신 申叔舟(신숙주)는 성종(成宗, 1457~1494)에게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징비록에 따르면 成宗이 죽음을 앞둔 申叔舟에게 유언을 물었고 그의 대답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成宗은 유언대로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고 교린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1980년대 한국은 극일을 선언했다. 이후 20여년간 언론에선 한국인의 질서의식 개선을 바랄 땐 일본인의 질서의식을 보도했고, 한국의 기업경쟁력 약화를 걱정할 땐 일본의 기업 사례를 찾아 독자에게 알렸다. 한국의 문제를 고칠 때마다 항상 日本의 사례가 등장했다.

2000년 이전 까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모든 준거를 日本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시기 일본은 한국에 무관심했다. 욘사마의 등장과 2002년 韓日월드컵 개최, 케이팝의 인기 등 2000년 이후 변화가 생겼다. 일본은 고의적으로 무시했던 한국을 재발견했고, 일본과 너무 흡사한 情緖(정서)에 놀랐고 친밀감을 가졌다. 韓流(한류) 붐이 불었다. 

현대 일본의 '안의 세계'에서 한국은 특이한 '밖'이다. 한국은 일본의 '안의 세계'가 바라보는 '밖의 123세계' 어느 곳에서 고정적으로 속해 있지 않다. 한국을 바라보는 '안의 세계'의 메센(目線)이 아직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韓流 붐은 한국을 '안의 세계'의 균일한 多(다)' 중 하나로 여기는 눈이다. 한국을 타국으로 인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에 속한 一員(일원)으로 보는 것이다. 

혐한은 무의식으로 한국을 '안의 세계'의 一員으로 인정하면서 한국이 메이와쿠(迷惑, 폐)를 끼친다면서 배제하고 이지메를 가하려는 눈이다. 일부 애국론자들은 친중으로 흐르는 한국을 바라보면서 중국과 같은 편인 '밖의 2세계' 로 바라보는 눈이다. 공통점은 2000년 이전의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밖의 3세계' 로 보는 눈은 이제 '안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日本 물건이면 무조건 좋다는 1980년 대와 1990년대 인식은 한국에서 사라졌다. 극일 콤플렉스를 아직 못 버린 건 한국의 정치인들과 일부일 뿐이다. 申叔舟가 잃지 말라고 유언한 '일본과의 和', 申叔舟의 속뜻은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섬나라 일본에 마주한 半島에 위치한 국가로서 섬을 대륙과 이어주는 역활일 것이다. 섬나라 日本을 고립시키지 말고 가까이 해 交易을 주고 받으면 갈등도 그만큼 줄어줄 것이다. 

고립된 섬이 자신들만의 생각에 갇혀 잘못된 오판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라는 것도 속뜻의 하나일 것이다. 申叔舟의 유언은 戰後 70년 만에 등장한 '밖의 2세계'에 동요하는 일본 '와(と)의 세계'와 애국론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和(화)'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동오 지음

 

1. 낭독이란

어느 詩人은 '낭독문화는 택스트를 더 깊게 보고 더 많이 향유하는 것이고, 삶의 스타일을 느린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기도 무형문화제 제32호는 송서와 율창이다. 송서는 산문에 가락과 사설을 실어 읊은 것이요, 율창은 한시에 가락을 실어 노래하는 것이다.

비가 내리거나 울적할 때 반드시 소리를 내어 명심보감을 읊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 낭독은 말하기, 듣기능력을 향상시킨다.

동화 '싱잉 푸'로 널리 알려진 저자 폴 제닝스는 ''아이들이 큰소리로 冊(책)을 읽는 것은 기본이며, 큰소리로 읽는 능력은 나중에 重要한 자리에서 發表할 수 있는 能力을 갖게 한다''고 한다.

 

 

3. 낭독은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5개국어에 능통한 P씨. 그가 밝힌 외국어 공부의 비결은 수도승처럼 매일 5시에 기상에서 1시간 반 정도를 소리 내서 읽는 일이 중요한 日課(일과)였다고 한다.

 

 

4. 시 낭송하기

시를 천천히 낭독하다 보면 머릿속에 마치 그림이 그려지는 듯이 어떤 영상이 떠오른다.

노인 환자들을 위한 시낭송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S씨는 '소리내어 읽는 시낭송은 감동이 큰 만큼 치유효과도 크다'고 말한다.

 

시는 아무렇게나 흩어진 글(산문)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운)을 갖춘 글이다. 규칙을 머리에 두면 두운이요, 끝에 두면 각운이라 하여, 소리 내 읊었을 때 입안을 감싸 도는 맛이 살아서 비로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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