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에 대한 중대한 誤解(오해)

- 韓國兒童의 思考能力 低下現象(저하현상)과 그 原因에 대한 考察(1971) 下

 

 

11. 「센서스」라는 말의 來歷

 

우리나 일본인은 對話에 있어서나 문장에 있어서, 한자어로나 고유어로 충분히 번역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언어까지도 즐겨 英語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요새 것으로는 「에티켓」, 「브리핑」, 「심포지엄」, 「세미나」, 「센서스」, 「마이 리빙」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것은 지극히 적은 일례에 불과하거니와 요새, 신문기자나, 아나운서들은 무척 많은 영어를 우리말에 섞어 쓰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위의 例 가운데, 「센서스」라는 말이 있는데 언젠가, 국가가 하는 인구조사표의 表題(표제)에서 필자는 처음 보는 말이었다. 지금도 필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여, 그 때 필자는 이것을 보고 심한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이 나라의 정치를 하고 행정을 한다는 이른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判斷力이 얼마나 흐려져 있는가를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인구조사」라면 적어도 3천만 國民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표제가, 그래도 글줄이나 읽은 바 있는 필자도 모르는 외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인구조사가 미국이나 俄羅斯(아라사)의 식민지로서 본국에 보고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면 모르되,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 표제를 국민의 절대다수가 모르는 외국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저의가 那邊(나변 : 어느 곳에)에 있는 것인가?

 

언어나 문자는 인간과 인간간의 의사소통이 그것의 유일 절대의 존재 이유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가 중국에서 온 漢字語를 사용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과 同樣으로 우리가 그밖의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결코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민이 모르는 이와 같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조상의 빛난 얼」이라든가 「主體意識」(주체의식) 등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함이다. 또, 「우리말 도로 찾기」와 「우리말 갈고 닦기」와는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 것인가? 또, 국민에게 대하여,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事大思想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主體思想(주체사상)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엄숙히 묻고자 한다.

 

1) 外國語 사용 않는 중국인

중국인은 어떤 외국어라도 그대로 사용하는 법이 없고, 완전히 漢字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例를 들면, 化學(화학)에 있어서의 元素(원소)의 명칭은 말할 것도 없고 分子構造式(분자구조식)의 부호까지도 완전히 漢字를 사용한다. 그들은 「올림픽」을 「世界運動大會」(세계운동대회)라고 한다. 이와 같이 중국인이 외국어를 완전히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은 중국어의 어휘가 유럽어보다도 더 豊富(풍부)하고 더 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어의 어휘가 그렇게 풍부하고 또 그렇게 완전할 수 있는 것은 漢字 造語의 萬能性(만능성)에 연유하는 것이요, 이 造語의 만능성은, 위에서 본 바, 漢字가 갖는 고도한 기능에 原因(원인)한다.

 

2) 二重文字 사용하는 韓國人의 행복

漢字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글자 한 字 한 字가 다 저마다 뜻을 가지고 있는 너무도 완벽한 문자이기 때문에, 순 한문 문장을 읽을 때 우리 마음은 一刻(일각)의 여유도 가질 수 없는 중압감으로 고통마저 느끼게 된다. 또 이와는 반대로 순한글 문장을 읽을 때는 그것이 너무도 미련하고 더뎌서 완행열차라도 탄 것처럼 또한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國漢文 混成(혼성) 문장을 읽을 때는 우리의 마음은 긴장과 이완이 쾌적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舞踊(무용)을 할 때와도 같은 율동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부담이 거의 없이 쾌속조로 독서를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인류가 발명한 모든 문자 중 가장 좋은 表音文字와 가장 슬기로운 表意文字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과분한 幸福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도 작년 「讀書週間」의 조사인데, 세계의 연평균 일인당 독서량은 일본인이 최고로 年 3천面, 서구인이 年 1천80面, 한국인이 年 60面으로 되어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일본의 「石井式 漢字敎育」(석정식 한자교육)의 창안자 石井勳(석정훈)은 그 원인은 오로지 그들이 漢字와 「가나」의 混用文(혼용문)을 사용하는 데 있다고 하였고, 또 일본인의 이와 같은 위대한 독서력에 대하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데보노 박사는 『이 독서력은 장차 日本을 세계제일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12. 漢字習得의 容易性

1) 3천字가 60만語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漢字는 2천字를 별로 넘지 않는 것이요, 만일 3천字만 있다면 쓰고도 남을 것이다. 中國에 있어서도 담화나 문서상에서 보통 사용하는 漢字는 3천字 정도하고 한다.

英語는 우리나라에 있어, 대학입시를 치르려면 단어 5천 개는 알아야 하고, 歐美(구미)에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자면 최소한 단어 1만 개가 필요하고, 학술을 연구하자면 단어 3~4만 개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漢字는 왜 이렇게 소수로 足한 것인가. 그것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자 2개를 연결함으로써 무제한 造語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 3천字를 2개씩 연결하면 60만 단어가 된다고 한다. 그 결과 基本漢字(기본한자) 3천 개를 알면 60만 단어를 不學而解(불학이해 :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음)하게 된다. 그러니까 漢字 한 字를 안다는 것은 한자어 수백 수천 개를 안다는 결과가 된다. 例를 들면, 「論」자 한 字를 습득하면 「論」자가 들어가서 된 말, 論文(논문), 論法(논법), 論說(논설), 論述(논술), 論議(논의), 論評(논평), 論究(논구), 論告(논고), 論難(논란), 論理(논리) 등, 또 輿論(여론), 議論(의론), 立論(입론), 異論(이론), 正論(정론), 衆論(중론), 討論(토론), 總論(총론), 通論(통론), 公論(공론), 空論(공론), 國論(국론), 世論(세론), 時論(시론), 言論(언론) 등 50여 단어를 배우지 않고 그 단어의 절반의 뜻을 알고 들어가는 것이요, 만일 「論」자의 짝이 되는 문자까지 알면 그 단어는 배우지 않고 알게 된다.

 

여기서 漢字는 인간의 추리력과 상상력을, 정신능력의 밑바탕에서 길러주게 된다. 漢字語의 기억은 기계적 暗記(암기)가 아니요, 事理의 이해로 성립되는 정신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현재 「漢字에 의한 才能開發」이라 하여 유치원의 兒童에서부터 한자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괄목할 교육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영어는 그것을 解得하자면, 단어 만 개면 만 개, 십만 개면 십만 개를 한 개씩 따로 암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래서 영어 학습이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위에서 본 바, 「論」자가 들어가서 된 어휘를 한글로 적으면, 논문, 논법, 논설, 논술, 논의, 논평, 논구, 논고, 논란, 논리, 여론, 의론, 입론, 이론, 정론, 중론, 토론, 총론, 통론, 공론, 공론, 국론, 세론, 시론, 언론 등으로 적으면, 이 50여 개의 어휘를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처럼 한 개씩 따로따로 암기하여야 한다.

 

2) 音記漢字語(음기한자어) 暗記 不可能性

어떻게 하여서라도 암기만 할 수 있다면 문제는 또 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形態(형태)와 發音(발음)이 동일하거나, 근사한 이 많은 2음절어의 뜻을 따로 따로 암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글주의자는 표음문자로 기록된 영어 단어를 암기할 수 있다면, 한글로 音記된 한자 단어도 암기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그들의 두뇌의 劣等性(열등성)을 증명하는 것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다.

 

그들은 알파벳과 한글을 혼동 내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양자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목적을 달리하는 것이다. 알파벳의 音素는 한 개의 단어를 형성할 때만 결합한다.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결합과 동시에 表意化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漢字와 同樣으로 表意文字가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영어 단어는 아무리 개수가 많더라도 노력하면 암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의 音素는 결합함으로써 한 개의 音을 표현하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表意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것만 가지고는 如何(여하)히 뜯어 맞춰보아도 表意化되지 않는다. 과거 50여년간의 한글학자의 노력은 한마디로 말하면 「한글의 表意化(표의화)」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성공하지 못하였고 또 성공할 수도 없는 것은 이 까닭이다. 더욱이 앞으로 밝혀질 바와 같이, 우리 국어에는 고유어가 30%이상, 한자어가 80%이상의 異義同音語가 있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의 암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13. 漢字廢止論의 기본 이론

한글주의자가 말하는 漢字廢止(한자폐지)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漢字는 남의 것이니까 없애야 한다는 것이요, 그 둘째는 漢字는 어려우니까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의 이유는 名分論(명분론)이라고 한다면, 둘째의 이유는 實利論(실리론)이라 할 것이다. 첫째 명분론은 그 생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린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위에서 밝혀졌으니, 여기서는 둘째의 실리론인 漢字는 어려운 물건이라는 사상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漢字는 한글주의자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결코 어려운 문자가 아니다. 漢字는 세계의 문자 중 가장 습득하기 쉬운 문자다. 필자의 실험에 의하면, 보통의 정신능력을 가진 성인(실험대상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은 2천개의 漢字 (시중에서 파는 「二千字文」)를 2개월간에 완전히 습득하였다. 일본인의 실험에 의하면, 漢字의 기억은 3~4세 때가 가장 빨라서 유치원의 아동에게 漢字 천字 정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한다. 필자 자신의 유년시절의 경험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면 한자는 왜 이렇게 기억이 쉬운 것인가.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① 漢字는 문자 개개에 따로따로 의미가 하나씩 들어 있는 것

② 字劃(자획)의 구성이 저 혼자서 어느 정도의 의미를 표시하고 있는 것

③ 文字 개개가 서로 다른 형태를 가졌고 또 그 형태가 變化無雙(변화무쌍)하여 개성적이고 예술적인 것

그래서 漢字를 기억하는 것은 암기하는 일이 아니요, 理解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漢字는 기억이 용이하고, 개념 파악이 정확하고 또 그 기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이 까닭이다. 그래서 漢字를 사용하고 한자어가 國語가 된 나라에 있어서 漢字를 기억하는 것은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것의 10분의 1, 혹은 1백분의 1의 노력도 要(요)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바의 이유로, 漢字는 습득한 字數가 증가하면 할수록 문장을 이해하는 범위와 심도가 자동적으로, 또 가속적으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한글주의자가 말하는 「漢字는 어려운 문자」라고 하는 주장은, 善意로 해석하면 그들의 無知의 소산이라 할 것이요, 惡意로 해석하면 그들의 非理(비리)를 貫徹 實現(관철 실현)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私利(사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국민을 기만하는 수작이라 할 것이다.

 

14. 異義同音語

1) 80%가 異義同音

고급 개념을 갖는 한자어는 2음절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3천字가 서로 합하여 60만 單語가 되는 까닭으로, 낱개의 한자의 경우와 같이 한자어는 異義同音語가 많게 될 수 밖에 없다. 例를 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전기」, 「수도」가 있는데, 「전기」는 電氣, 前期, 全期, 傳記, 戰機, 戰記 등 15~16개의 「전기」가 있고, 「수도」도 首都, 水道, 水稻, 修道, 受渡, 등 7~8개의 「수도」가 있다. 이와 같이 漢字語는 한 개의 발음이 한 개의 단어에 한정된 것은 전 어휘의 20%가 되지 못하고, 그 80% 이상이 이의동음어로 되어 있다.

 

한글학회 「큰사전」에는 8만8천여 개의 漢字語가 있는데, 그 가운데 6만8천여字가 異義同音이다. (一國의 국어 대부분이 이의동음이라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한자어를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에도 공통된 현상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는 없는 일이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어는 낱글자의 경우와 같이 그 音만을 표음문자로 표기하면 그 뜻을 모르는 것이 원칙이다. 例를 들면, 「한자」라고 기록된 文字가 있다면 이것만으로는 그것이 무슨 뜻의 말인지 알 수 없다. 하나의 사물의 뜻을 나타내는 文字가 그것 하나만으로는 그 의미의 解得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넌센스」다.

 

한글로 된 한자어의 의미를 解得하는 방도가 오직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문장으로 되었을 때 그 단어의 前出語(전출어)와 後續語(후속어)의 관계로 미루어, 「이때는 그 뜻일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포목가게에 가서 광목 한 자만 떠 오너라』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한 자」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추측이라는 것도 언어 환경에 의하여 解得한다는 원시적 방법에 불과한 것으로서 일방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요, 그 發音은 꼭 그 뜻이 아니면 안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한글 문서를 이렇게라도, 즉 경험과 눈치로 判讀(판독)할 수 있는 것은 書簡(서간)이나, 한국산 소설 나부랭이의 下等 문서에 한하는 것이요, 哲學, 藝術(예술), 科學(과학), 醫學, 法學 등 高等 문서의 解得은 불가능한 것이다.

 

일개의 단어를 기록한 문자를 보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의 「聲音」(성음)이요 언어가 아니다. 즉, 그것은 意思의 전달수단이 될 수 없는 하나의 傀儡(괴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한자어를 한글로 음기하면 漢字 낱개의 경우와 같이 그것은 「非言語」로 化한다. 漢字語는 漢字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가 여기 있다.

 

2) 「可」는 말이고 「가」는 말이 아니다

이 사실을 다음 實例(실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자.

국민학교의 성적통지표에는 행동면과 학과면을 둘로 나누어 그 성적이 기입되어 있다. 첫째, 행동면에 있어서는 제일 우량한 것을 「가」라고 적었고 과학면에서는 제일 불량한 것을 「가」라고 적었다.

 

첫 번째의 「가」는 「가나다」順位(순위)의 「가」이고 두 번째의 「가」는 「秀優美良可」(수우미양가)의 「가」라고 한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이 설명을 들으면 『아마 그런 것인가 보다』하고 납득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漢字를 모르는 아동들에게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같은 물건인데, 위에 있을 때는 제일 좋은 것이 되고, 아래 있을 때는 제일 나쁜 것이 되는 물건이 무엇이냐?』 동일한 지면 위에 「가」字를 똑같이 써놓고 위에 있는 「가」는 제일 좋은 것이고 아래 있는「가」는 제일 나쁜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아동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동은 理性이 발달하지 못하여 이와 같이 不合理(불합리)한 사실에 대하여 抗議(항의)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선생의 말이니까 억지로 아는 것처럼 체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字가 일단 성적표를 떠나면 아동들에게는 완전히 알 수 없는 文字로 化한다. 그래서 「가」라는 어휘는 아동들의 머리 속에 남지 않는다. 이것은 단음절어의 경우이거니와 2음절어의 경우도 이와 같다.

여기 「사전」이라는 말이 있어, 漢字를 모르는 아동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고 치자. 국어사전에는 「사전」이 辭典, 事前, 史前, 史傳, 私錢, 私田, 寺田, 沙田, 등 14~15개의 「사전」이 있다. 그러면 아동이 이 14~15개의 「사전」 중에 어느 것을 取(취)하고 어느 것을 捨(사)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면 아동이 열심히 공부를 하면, 이 14~15개의 「사전」의 「풀이」를 다 암기할 수 있고 또 14~15개의 「사전」을 경우에 따라서 다 구별하여 해석할 수 있고 또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동들에게는 「사전」이라는 물건은 「소리」일 뿐이요, 「언어」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머리 속에 「사전」이라는 어휘는 들어가 박힐 수 없다.

 

3) 「사전」이라는 두 글자

「사전」두 글자를 가지고 좀 더 파헤쳐 보자. 「사전」의 위아래를 바꾸면 「전사」가 된다. 「전사」에는 前史, 前事, 田舍, 傳寫, 戰士, 戰死, 戰史, 殿舍 등 10여개의 「전사」가 있다. 그런 까닭으로 「전사」라는 어휘도 아동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박힐 수 없다.

「사」字 하나는, 事, 仕, 似, 寫, 舍, 史, 司, 四, 寺, 思, 등 1백여개의 「사」字가 있다. 그러면 아동들이 이 많은 단음절어를 「사」하나의 음으로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또 「사」음이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私家, 査家, 史家, 四角, 私感, 舍監, 死去, 辭去, 事件, 死境, 斯界, 四季, 社告, 思考, 事故, 社交, 謝過, 史觀, 詐欺, 社旗, 沙器, 死期, 士氣, 史記 등 2천여 단어가 있다. 그러면 이 단어들을 한글로 써 놓으면, 동일하거나 근사한 이 많은 2음절어들을 아동이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전」音을 보자. 「전」音의 글자는, 全, 田, 前, 典, 專, 展, 電, 傳, 戰, 轉, 銓 등 1백 50여개의 「전」字가 있고 또 이 「전」字가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電氣, 電機, 戰記, 前期, 全期, 轉機, 戰機, 轉記, 電話, 戰化, 田舍, 田家, 傳家, 轉嫁, 殿閣, 篆刻, 傳喝, 錢渴, 前職, 轉去, 典據, 電擊, 前景, 前古, 戰士, 戰史, 戰死, 前史, 錢穀, 戰功, 前功, 全科, 戰果, 戰科 등 2천5백여 단어가 있다. 그러면, 이 많은 1음절어와 2음절어를 한글로 암기를 하여 놓으면 漢字를 완전히 모르는 아동들이 이것들의 뜻을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고 또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실은, 아동들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요, 여하한 天才도 불가능하다.

 

이상은 常用漢字 2천字 가운데 다만 두 개의 발음 「사」音과 「전」音을 가진 문자에 대하여 본 것이요, 2천개의 漢字와 8만5천개의 漢字語가 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동들은 우리 국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고등개념을 가진 한자어를 하나도 모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도 모른다는 말은, 사용 빈도가 많은 한자어는 그들이 아는 것처럼 보이고, 또 사용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언어의 개념은 지극히 애매하고 부정확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恐喝(공갈)」과 「거짓뿌렁」, 「夫人(부인)」과 「師母(사모)님」을 같은 말로 알고 있다. 즉 그들은 한자어를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해방 이후의 國民敎育(국민교육)은 한마디로 말하여 「낱말 풀이」교육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算數, 自然, 社會生活(사회생활) 등 학과목의 전부를 그 內容(내용)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더 많이 거기에 나오는 단어의 「낱말 풀이」를 가르치는 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자가 없는 한자어, 즉 내용이 없는 껍데기, 다시 바꿔 말하면 뜻이 없는 소리만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렇게 백년이 아닌 천년을 배워보아도 단 한 개의 단어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어를 모르는 原始人이 되었다.

 

4) 漢字 제거가 思考力 제거

결론은 해방 이후의 한글專用 교육은 한국아동으로부터 言語能力을 제거하였다. 이것이 한국 아동의 思考能力 저하의 근본적이요 절대적 원인이다.

무릇, 인간의 사고활동은 言語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언어 없이는 思考할 수 없다. 思考活動과 언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요, 이 양자는 상호작용에 의하여 발달한다. 즉, 사상이 보다 고급하여지면 언어가 보다 고급하여지고, 보다 고급하여진 언어는 또 보다 고급한 思考를 가능케 한다. 이것이 사고능력의 발달법칙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은 자기의 言語能力밖에는 思考할 수 없다. 한국 아동이 推理力(추리력), 創意力(창의력), 理解力(이해력), 解釋力(해석력), 응용력(應用力), 作文力(작문력), 한 말로 하면 思考能力이 열등하게 된 것은, 그들이 고등한 사고활동에 필요한 文明語彙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要(요)하면, 학교교육으로부터의 漢字의 제거는 漢字語의 제거를 결과하였고, 漢字語의 제거는 아동들로부터 言語能力을 제거하였고, 언어능력의 제거는 그들로부터 思考能力을 제거하였다.

아동들로부터 언어능력을 제거하여 놓고, 학부모들은 그들더러 공부만 못한다고 성화를 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마치, 性能力이 없는 자식더러 아이만 못 낳는다고 안절부절 못하는 어리석은 어버이를 보는 것과도 같은 안타까움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아이 못낳는 원인을 교접 체위가 잘못되어 그러는가, 포옹기술이 부족하여 그러는가, 혹은 그 일에 대한 성의가 없어 그러는가, 하고 온통 딴곳에서만 그 까닭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내가 이런 억지 비유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어버이와 미련한 스승의 틈바구니에 끼여 헤어날 길 없는 곤욕을 겪고 있는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하도 불쌍하고 딱하여 그러는 것이다.

 

15. 중고등학생의 言語能力

1) 중학생의 言語能力 국교생과 같다

이렇게 하여, 한국 아동은 6년을 배워도 國語를 모르고, 算術四則을 解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중고등학교 학생은 어떤가.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의 언어능력은 국민학교 6년생으로부터 고등학교 3년생까지 質的으로는 大差(대차)가 없고, 양적으로 어휘를 좀더 알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質的이라 함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이 알고 있는 단어는 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아마 그런 뜻이겠지 하는 짐작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祝杯(축배)」와 「乾杯(건배)」를 같은 말로 알고 있고 「祝福(축복)」과 「冥福(명복)」도 비슷한 말로 알고 있다.

 

얼마 전에 「漢字敎育의 必要性」이라는 제목으로 중고등학교의 뜻있는 국어과 교사들의 연구발표회가 있었다. 다음은 발표자들이 말한 「漢字가 없이는 완전한 國語 敎育은 불가능하다」는 체험담 중의 몇 가지다. 고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필(隨筆)」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필은 방향이 있는 글」이라는 의미의 말이 있는데, 학생들은 여기 있는 「방향」을 전부가 「方向(방향)의 「방향」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의 「방향」은 「方向」의 「방향」이 아니고, 「芳香」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해 보아도 납득이 잘 가지 않고, 또 설명할 도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설명이란 것이 결국 漢字를 가지고 語源(어원)을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한자를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그 설명은 우이독경(牛耳讀經) 밖에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2) 音記漢字語(음기한자어)는 알 듯하다 만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때는 울면서 겨자 먹기로 좀 알 듯하지만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중학교 1학년 과학교과서에 「단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 「단체」는 物理․化學 용어로 「單體」의 「단체」이다. 이 「單體」의 「단체」를 「團體」의 「단체」와 어떻게 구별하여 가르치겠는가? 「綠陰(녹음)」과 「錄音(녹음)」, 「綠化(녹화)」와 「錄畫(녹화)」, 「週間(주간)」과 「晝間(주간)」, 「鄕愁(향수)」와 「香水(향수)」, 「敎師(교사)」와 「校舍(교사)」, 「考査(고사)」와 「枯死(고사)」를 어떻게 구별하여 가르치겠는가.

 

이와 같이 同一音의 단어 2개씩만 가지고도 가르칠 수가 없는데, 위의 例에서 본 바, 전기, 수도, 사전, 전사, 사고, 사상, 사기, 전공, 전과 등과 같이 5~6개로부터 15~16개의 同音語가 있는 단어들을 어떻게 구별하여 가르치겠는가. 가르치면 아이들이 구별하여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은 同一音의 단어의 경우를 보았다. 단어의 발음이 부분적으로 동일한 단어의 경우가 또한 그러하다. 例를 들면, 顯忠祠(현충사), 秉天祠(병천사), 松廣祠(송광사), 海印寺(해인사), 窒息祠(질식사), 腹上死(복상사), 雜誌社(잡지사), 新聞社(신문사), 鷄舍(계사), 豚舍(돈사), 餓死(아사), 橫死(횡사), 名士(명사), 志士(지사), 祝辭(축사), 弔辭(조사), 歷史(역사), 女史(여사) 등을 한글로 암기하여 놓으면, 여기 수많은 「사」字의 뜻을 일일이 구별하여 가르칠 수 있겠는가. 가르치면 학생들이 納得(납득)이 가고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렇게 부분적 同一音의 단어가 수만 개가 있는 까닭이다.

 

동일하거나 근사한 발음의 단어가 몇 십 개나 몇 백 개만 같으면, 어떻게 앞뒤를 뜯어 맞춰서 쐐기 박듯이 學生들의 머리 속에 억지로 틀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큰사전」에 있는 8만5천 개의 漢字語는 전부가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하면, 한글로 표기된 漢字語는 배울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학교 6학년으로부터 고등학교 3년생까지의 언어능력은 大同小異한 것이요, 그들도 또한 원시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과 事理에 대하여 독자의 완전 인식을 돕기 위하여 다음에 실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16. 『수지류는 뭐예요?』라는 이야기

1) 할아버지도 모르는 말

중학교 일년생인 孫子 아이가, 原稿(원고)를 쓰고 있는 필자에게 갑자기 『할아버지, 수지류는 뭐예요?』라고 묻는다. 「수지류」가 무슨 뜻의 말이냐는 말이다. 그는 지금 1학기 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필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까닭이 없다. 이런 質問을 가끔 당하는데, 필자는 이럴 때마다, 문제의 出處인 교과서를 보고 글의 내용을 읽어보고 나서 설명을 해 주곤 한다. 이 때도 필자는 그 말이 쓰여 있는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기술」이라는 책이었다. 그 가운데 「칠감」이라는 小題(소제)하에 「수지류는 휘발성 용제로 녹여 만든 것으로 피막이 강하여 내수성과 내구성이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前後를 모두 읽어보고 나서 간신히 이 말을 化學 용어의 「樹脂類」의 「수지류」인 줄을 알았다 (알았다고는 하였지만, 그것이 꼭 「樹脂類」의 「수지류」인지 필자는 지금도 단언할 수는 없다).

 

필자는 그것이 「樹脂類」의 「수지류」라는 것을 그에게 說明해 주고 나서, 그래도 자신이 없어, 『선생님은 이 말을 뭐라고 말씀하시던?』하고 물었더니 아이 말이 『선생님은 칠판에다 한문 글자를 마구 써놓고 설명하시는데 뭔지 모르겠어요』하고 웃었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제목인 「칠감」으로부터 「휘발성, 용제, 피막, 내수성, 내구성」을 차례로 물어보았더니 어름어름하고 똑똑한 대답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 비교적 자신 있게 말한 것은 「휘발성」은 『날아가는 거예요』라는 말 하나였다.

 

이 아이는 머리가 과히 나쁘지 않은 편으로 그 成績(성적)이 제 반에서도 10등 이내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아이다. 그러나 머리가 좋고 나쁘고가 문제가 아니다. 漢字를 모르는 그들에게 漢字로 어원을 설명해 보아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것은 明白한 일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설명을 하여야 선생 혼자의 답답증이 좀 풀릴 것이다.

이와 같은 學術的 어휘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물론, 「기술」교과서 하나가 아니요, 物理, 化學, 地理, 歷史 등 전부의 교과서가 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중학교 3년이나 고등학교 3년을 마쳐도 그들은 學術用語는 단 한 개의 어휘도 정확한 槪念(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2) 「수지류」를 「樹脂類」로 쓰면

이상의 어휘를 漢字로 바꿔 써보자. 그러면, 「漆의 材料, 樹脂類, 揮發性, 溶劑, 皮膜, 耐水性, 耐久性」이 된다. 독자가 보다시피, 이 글자들은 글자 자체가 「뜻 풀이」를 저 혼자서 다하고 있기 때문에, 이 어휘들에 대한 「낱말 풀이」라는 것을 애써 가르칠 필요도 없고, 또 애써 배울 필요도 없이 아이들은 혼자서 그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漆黑(칠흑)의 地獄(지옥)에서 光明天地(광명천지)로

 

위에서 우리는, 한글만으로는 완전한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래서 해방 후의 아동들은 언어를 모르는 原始人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래서 여하한 미국식 최신, 超최신의 교육기술을 흉내내 보아도 결코, 교육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이치를 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도 어려운 문제가, 解決(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이들에게 漢字만 가르치면 당장 그 자리에서 완전무결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도 크나큰 문제를, 16만 한국교사 전체의 힘으로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또 이렇게도 쉽게 말을 하니까 독자는 좀 어리둥절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말은 眞理다.

 

그들에게 漢字만 가르치면 漆黑(칠흑)의 暗黑(암흑) 속을 헤매이는 工夫地獄(공부지옥) - 한국 아동들에게는 學校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의 터전이 아니요,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깎아내는 生地獄(생지옥)이다 - 으로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을 손쉽게 구출할 수 있고, 또 나아가서 그들로 하여금, 밝은 태양 아래서 生과 학문을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17. 한글 大學生의 독서력

1) 書店(서점)대신 막걸리집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은 못 되지만 한국 대학생은 독서를 하지 않기로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갑자기 많은 대학이 생겼고, 그 대학들의 주변에는 당연한 일로, 상당수의 書店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4․19를 고비로 하여 대학가의 서점수는 해마다 감소되다가, 현재는 거의 완전히 서점이 없는 대학가가 되었다. 그리고 서점 대신 여자대학의 주변에는 몇십개의 양장점들이 있고, 남자대학의 주변에는 수많은 막걸리집이 흥취를 돋우고 있다.

 

작년(1970년) 가을 「讀書週間(독서주간)」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대학교 圖書館에는 藏書(장서)가 63만여 권이 있는데, 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은 全학생의 2%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장서를 이용하는 학생은 그 2%의 또 몇 %라고 한다. 대학생이 서점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책을 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책을 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을 그냥 빌려주는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 그들이 책도 사지 않고,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讀書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학이라 하는 것은 학문의 전당이요, 文明의 산실이다. 또 학문과 書冊이 불가분의 일체라면, 「대학생과 讀書」 또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事理는 이러한데, 그들은 왜 그렇게도 철저히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나 實相은, 그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요, 독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독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한글 大學生」이라는 말이 잘 표현하고 있듯이 그들은 한글 밖에 모른다. 그런데, 그들이 대학에서 접하는 書冊, 즉, 哲學, 藝術, 科學, 政治, 經濟, 社會, 醫學, 法學 등의 학술에 관한 서책은 그 전부가 漢字와 漢字語로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독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또 외국어도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외국 서적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한국 대학생의 외국어 실력은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의 대학생에 비하여 同一을 論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한국인의 發音能力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보통의 會話 정도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에서 쓰이는 고등개념의 어휘는 그 참뜻을 이해하기가 極難(극난)하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그것을 국어로 번역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외국어를 그들이 가진 국어능력 정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외국어 실력은 어느 한계를 가면 정지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필자의 의견으로는, 한글주의를 앞으로 계속 강행한다면, 외국어를 국어로 번역하여 가르칠 것이 아니요, 필리핀이나 인도에서와 같이 직접 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이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고, 또 외국어에 의해서라도 그들을 文盲(문맹)으로부터 구출 할 수 있을 것이다.

 

2) 性能力 없는 新郞

결론하면, 한국 대학생은 과거 25년간의 한글 교육에 의하여 국어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독서능력이 없는 것이다. 「독서능력이 없는 대학생」이라는 말은 「性能力이 없는 新郞(신랑)」이라는 말과 같이 하나의 「넌센스」요 비극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書冊을 외면하고 학문을 등지게 되었고, 그 필연적 결과로 소수의 총명하고 自覺하여 노력하는 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이나라 대학생은, 한글주의자가 말하는 바, 조상의 얼을 되살리고, 주체의식을 드높인다는 그 애국적이고 고매하고 원대한 사상과는 정반대의 방향-히피 類似(유사)의 족속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한글專用 敎育」 25년의 총결산이다.

 

3) 迷信(미신)의 祭物(제물)이 된 한국 대학생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이와 같은 엄중한 사실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다음에 그 證據(증거)를 또 하나 든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재작년(1969년) 정부에서 法官 채용시험을 실시하였는데, 응시자격은 법과대학 4년 졸업자와 同 3년 수료자이고, 채용 예정인원은 80명이었다. 여기에 應試(응시)한 법관 지망자수는 3천2백명이었고, 시험 결과 합격한 자의 수는 20명이었다.

 

이 결과에 당황한 당국은 그 이듬해(1970년) 객관식 出題(출제)로 하고, 커트라인이 없는 성적순위로 80명을 뽑겠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방침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필자는 그 후 다시 알아볼 흥미를 잃었다).

이상의 사실을 분석하면, 3만2천명 대 20명이니까, 1백60 대 1의 비율이 된다. 즉, 1백60명 중 쓸 만한 것은 단 1명이고 나머지 1백59명은 다 못 쓸 것들이라는 말이다. 한 개의 法科大學에서 한 回(회) 졸업생을 1백명으로 친다면 그 중 0.6명이 겨우 쓸 것이고 나머지 99.4명이 못 쓸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小數로 分割(분할)할 수 없으니까, 두 개 대학 한 回 졸업생을 합친 2백명 중에 법관이 될 만한 자는 1명꼴로 산출이 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 나머지 1백99명은 어디가 쓸 것인가, 세상에 장사치고는 막 되어먹은 놈의 장사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위의 應試者는 하나도 빠짐없이 15~16년을 공부한 청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다면 교육자나 학부모는 그 원인에 대하여 좀 생각하여 볼 필요는 없겠는가.

또 하나 희한한 일은 시험 결과에 대한 당국자의 태도다. 적어도 法官이라면, 국민의 생명․재산의 死活得失(사활득실)을 판가름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者다. 그 法官을 採用(채용)하는 데 있어, 연필을 굴려 가지고 하는 O, X 시험에 의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닌가. 선醫員(의원)이 사람 죽인다는 말이 있다. 제 나라 말로 된 제 나라 新聞 한 장 똑바로 읽을 수 없는 법관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것이요, 法官이 정히 없으면 재판소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 국민의 피해를 보다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16년간의 공부를 하고도 제 나라 말로 된 제 나라 신문 한 장 똑바로 읽을 수 없다는 현상은 과거의 인류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요, 현재에 있어서도 지구 표면 어느 곳에 가 물어 보아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실로,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는 수백만 한국 청소년들은, 다만 몇 사람 한글주의자의 無知와 偏見(편견)과 迷信(미신)과 私利(사리)의 祭物(제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제물이 된 줄도 모르고, 배우고서도 글을 모르는 답답한 삶을 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文明社會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또 있어본 일도 없다.

 

18. 中國과 日本의 漢字廢止 運動

1) 中國人의 錯覺(착각)

중국인이 漢字에 대하여 疑念(의념)을 갖고 이것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妄想(망상)을 갖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 소위 아편戰爭(전쟁) 이후, 백인에 의하여 본격적 침략을 당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1890년대부터 실질적인 漢字改革(한자개혁)이 시도되었다. 이 시도에서 최초로 나온 것이 音標文字(음표문자)인 「傳音快字(전음쾌자)」이고 계속하여 「官話合聲字母(관화합성자모)」, 「合聲簡字譜(합성간자보)」, 「主音字母(주음자모)」 등을 고안하여 중국어의 表音文字化에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리고 이렇게하여도 되지 않으니까 「國語羅馬字撰音法(국어라마자찬음법)」 혹은 「羅典化新文字(나전화신문자)」 등 한자 형식의 표음문자 대신 로마字를 이용하는 방안도 案出(안출)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漢字 廢止 운동은 民 官에 의하여 光緖淸國(광서청국)으로부터 孫文(손문) 중국과 蔣介石(장개석) 중국을 거쳐 毛澤東(모택동) 중국에 이르기까지 일백년의 세월을 두고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를 표음문자화한다는 것은, 위에서 본 바의 이유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자폐지론의 急先鋒(급선봉)이었던 北京大學 교수 錢玄同(전현동)은 1918년에 드디어 한자폐지의 불가능을 선언하였고, 공산독재자 毛澤東도 한자폐지를 완전히 단념하였다. 그 후 그들은 1958년 全國人民代表大會(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漢字撰音案(한자찬음안)」을 제정하여 이것을 초등학교 교육에서 권장하고 있는데, 이 안은 漢字音을 로마字로 표기하는 법으로써, 周恩來(주은래)가 그의 보고에서 말하였듯이, 이것은 漢字音 표기와 共通語(공통어) 보급을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된 것이요, 한자의 폐지를 목적으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생각건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그들의 나라를 中國, 中原, 혹은 中華(중화)라고 하여 천하에 제일 가는 文明國으로 자처하고 있던 중국인이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던 洋夷(양이)에게 一朝(일조)에 여지없이 유린당함으로써 그들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뿌리깊게 박혀 있던 그들의 尊大(존대)와 自尊(자존)과 傲慢(오만)은 一朝(일조)에 철저한 열등의식과 卑屈(비굴)과 事大思想으로 1백80도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들 자신의 나라가 문명국 아닌 야만국이요, 그들이 洋夷(양이)라고 멸시하였던 백인이 진짜 문명국인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유럽에 유학한 중국인이 쓴 소설 등에 그 때의 중국 젊은 지식인의 이와 같은 정신상태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 그들이 表音文字를 사용한 데에 있었다고 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와 같은 하나의 妄想(망상)이었다. 즉, 그들의 과거의 고도한 정신 문명이 현대적 과학문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 현상은, 그 원인이 漢字 사용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현재 중국 본토의 과학문명의 초고속적 발달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2) 亡國論 용납 않은 日本 국민

중국인에 이어 한자 폐지를 云謂(운위)한 것이 일본인이었다. 일본에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어리석은 무리들이 있어 상당히 장구한 세월을 두고 한자 폐지를 끈질기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극소수 정신도착자들이 주장하는 이와 같은 亡國論(망국론)을 文明한 일본 국민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가 발명한 문자 중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간결하고 가장 기억이 용이하고 가장 경제적 문자인 한자의 뒷받침을 얻어 그들의 문화는 지금 그들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19. 天涯無依의 문화적 孤兒

1) 自然에의 反逆(반역)

언어와 문자는 생활에서 나왔고, 생활 속에서 살고, 생활과 더불어 변천하는 일종의 生物이다. 그런 까닭으로, 언어와 문자의 발생, 발전과 소멸은 自然淘汰의 법칙하에 있는 것이요, 몇 사람 마음대로 없앨 수도 없는 것이요, 만들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래서 인류의 文明史에는 그들의 언어나 문자를 인위적으로 一朝에 改廢(개폐)한 예가 없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한자폐지론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한글학자의 발명품이 아니요, 중국과 일본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다. 무릇, 비진리를 진리로 착각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두뇌의 低劣性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저열한 것은, 두뇌가 저열한 자가 주장하는 非진리를 진리로 잘못 알고, 다시 그것을 모방하는 자의 두뇌다.

 

한자폐지론의 先唱者(선창자)인 중국인과 그 아류인 일본인은 그들 자신의 非를 깨닫고 이미 오래 전에 이 생각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한글주의자만은 그들 자신의 愚劣(우열)을 지금까지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많이 길러본 사람이면 아는 일인데, 聰明(총명)한 아이는 울다가도 그 울게 된 원인이 제거되면 울음을 즉각 그친다. 그런데 미련한 놈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그 원인이 제거된 후에도 계속 운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물고 늘어지면 죽어도 놓지 못하는 그들의 뱀같은 執拗性(집요성)에 의하여, 자연에 反逆(반역)하는 이 무서운 非理(비리)가 오늘 현재 이 강토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 무서운 사실은 이 나라의 3천만 국민은 이 戰慄(전율)할 사태 발전에 대하여 산천초목들처럼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있다.

 

2) 漢字 消滅(소멸) 후에 오는 것

그러면, 이 땅에서 漢字가 깨끗이 消滅(소멸)한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야기될 것인가.

① 소수의 特殊知識人(특수지식인)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언어능력의 원시화에 의한 思考能力의 퇴화로 말미암아 국민의 정신상태는 漢字 수입 이전의 저급한 단계로 환원될 것이다.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② 학술을 연구한는 자는 필리핀이나 인도에서와 같이 순전히 유럽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은 백인화한 소수의 知識貴族(지식귀족)과 한글밖에 모르는 다수의 원주민 低知識族(저지식족)의 두 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③ 인류문명은 지금까지 地表(지표)의 東과 西에서 크게 나누어 두 갈래로 발전하여 왔다. 알파벳 문자와 라틴어를 기초로 하는 「白人文明」과 한자와 한자어를 근간으로 하는 「黃人文明」이 그것이다.

우리의 民族文化는 황인문명의 일환으로서 한자와 한자어를바탕으로 하여 생성되고 발전하여 왔다. 우리는 한자를 없앰으로써 이 강토에서 수천년 동안 連綿(연면)히 계속되어온 우리의 고유문화는 그 전통이 단절될 것이다.

그 불가피한 결과로서 국민의 생활감정과 사고방식은 外形的(외형 적), 또 末梢的(말초적) 면에서 歐美化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앞으 로의 문화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과 같은 無性格(무성격)한 하나의 植民地문화로 추락할 것이다.

 

④ 아시아 대륙의 십억 황인종이 향유하고 있는 동양문화권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함으로써 韓民族은 天涯無依(천애무의)의 문화적 孤兒(고아)가 될 것이다.

 

20. 結 論

1) 民族精神과 한글

한글을 專用하고 한자를 全廢한다는 교육정책은 생각건대, 「국민교육헌장」의 冒頭(모두)에 명시된 바 있는,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라는, 이 나라 정치의 最高理念(최고이념)을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 방법의 하나로서 채택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글專用 교육」이라는 방법은 국가의 최고이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결코 좋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좋은 방법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미 본론에서 밝혀진 바의 이유로 국가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지금 현재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을 다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忠武公(충무공)의 精神 - 그 天才와 愛國丹誠(애국단성)과 科學과 情熱이 渾然(혼연)히 일체가 된 그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얼이 具體(구체)로써 표현된 극치의 세계라 할 것이다. 이 위대한 정신은 知만으로써는 解할 수 없는 것이요, 覺으로 悟함으로써 비로소, 知와 情이 합쳐진 그 심오한 사상을 피로써 느끼고 마음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漢字를 통하여 이루어진 그의 이와 같은 사상을 한자를 떠나서는 완전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정신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계승될 수도 없고, 되살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만일 우리가 祖上의 얼을 되살리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漢字를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2) 主體意識(주체의식)과 한글

언어나 문자는 手段(수단)이요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意思를 전달하는 한낱 方便(방편)이요, 그것 자체가 정신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영어를 쓴다고 영국인이 되고, 에스키모어를 쓴다고 에스키모인이 되고, 한자어를 쓴다고 중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主體意識이라 하는 것은, 외적 조건에 따라 아무렇게나 변할 수 있는 허울이 아니요, 내가 내 스스로를 알고, 남에게 끌려가지 않고, 내가 갈 길을 내가 간다는 內的 정신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양복을 입든, 한복을 입든, 倭食(왜식)을 먹든, 韓食을 먹든, 洋屋(양옥)에 살든, 韓屋(한옥)에 살든, 그런 것과 우리의 주체의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이치에서 설사, 漢字와 漢字語가 한글주의자의 주장대로 남의 것이라 치더라도, 우리가 한자와 한자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우리의 주체의식이 약화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한자를 사용하는 日本人이 한글을 전용하는 한국인보다 주체의식이 확고하지 못하다고 보는가.

 

3) 人類共榮(인류공영)과 한글

인류 서로가 피차의 共榮(공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이 피차의 意思疏通(의사소통)일 것이다. 이 의사소통을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피차의 언어의 공통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한글은 설사, 그것이 우리의 고급한 사상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완전한 문자라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구 표면의 적은 일점에 불과한 韓半島내의 오천만 인구에 국한된 文字다. 그런 까닭으로, 이런 문자만을 가지고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漢字는 우리도 살고 있는 아시아라는 광대한 지역에서 세계인구의 3분의 1인 10억의 주민에 의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만일 지금까지 漢字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어보다도, 독어보다도 먼저 배워야 할 것이 한자일 것이다. 그런데, 영어 등 외국어는 현재, 막대한 시간과 체력과 금력을 낭비하면서까지 수백만 중고등학교 전체 학생에게 그 학습을 강제하고 있으면서, 옛날부터 우리말이 되어 있고 우리 글자가 되어 있는 漢字만은 굳이 없애자는 것이다.

 

그러면, 漢字를 없애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韓民族은 동일 종족인 10억의 이웃 주민과의 유대가 단절될 것이다 - 한글세대에서는 이 連繫(연계)가 이미 끊어져 가고 있다. 가까운 이웃 사람들과의 정신적 통로를 절단하여 놓고 그들과 共榮하는데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다.

생각건대, 白人의 言語는 死力을 다하여 배워야 한다고 하고, 또 이와는 반대로 黃人族의 言語는 필사적으로 배워서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은 바꿔 말하면, 가까운 곳에 사는 同人種과는 인연을 끊고 먼 곳에 사는 異人種(이인종)만을 따르자는 말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한글주의자의 精神을 분석하면, 이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백년 전에 가졌던 바로 그 白人崇拜思想(백인숭배사상)이다.

 

4) 爲政者에게 呼訴(호소)한다.

언어와 문자의 인위적 改廢는 이미 위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의 民族文化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爲政者(위정자)들은 불행히도, 절대다수의 이 나라 知性人의 의견에는 완전히 귀를 막고, 극소수 한글주의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받아들여 드디어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國策化(국책화)하고, 지금 그것을 시행하고 있다. 때는 지금도 결코 늦지 않다.

 

한국 지성의 總和(총화)인 31개 학술단체가 連署(연서)하여 건의한 바 있는 학교 교육에 있어서의 「漢字敎育의 復活(부활)」을, 새로 개편되는 교육과정에서부터 실시하여, 조국의 앞날을 맡을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저능화와 文盲(문맹)으로부터 구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文明人으로서의 창조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대 英斷(영단)을 내려 줄 것을 나는 그대들에게 내 丹誠(단성)을 다하여 呼訴(호소)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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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津春繁(고진춘번) ≪比較言語學(비교언어학)≫

高橋龍雄(고교용웅) ≪應用言語學(응용언어학)≫

倉石武四郞(창석무사랑) ≪漢字의 運命(운명)≫

金田一春彦(금전일춘언) ≪日本語≫

大野晋(대야진) ≪日本語의 起源(기원)≫

A.C. Moorhouse ≪文字의 歷史≫

Louis Hjelmslew ≪言語學槪論(언어학개론)≫

Samuel E.Martin ≪韓國語形態音素論(한국어형태음소론)≫

加藤一郞(가등일랑) ≪象形文字入門(상형문자입문)≫

朴定緖(박정서) ≪國語의 將來(장래)와 漢字의 再認識(재인식)≫

柳正基(류정기) ≪漢字問題(한자문제)의 科學的 再檢討(재검토)≫

南廣祐(남광우) ≪朝鮮漢字音硏究(조선한자음연구)≫

金敏洙(김민수) ≪共産圈(공산권)의 言語政策(언어정책)≫

B. Bloch, G.L. Trager (金泰洪 역) ≪言語分析槪論(언어분석개론)≫

石井勳(석정훈)(南廣祐 譯) ≪漢字에 依(의)한 才能開發(재능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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