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국선도의 연원(國仙道1)
제1절 계보
제2절 국선도 수련의 요지
제3절 국선도의 由來
제4절 국선도 명칭의 由來
제5절 국선도와 밝돌
제6절 고증文
제1절 계보
이상과 같은 前提를 걸어 놓고 앞으로 여러 방면으로 解說을 시도하겠거니와 독자들에게 이해하는 데 便利를 드리기 위하여 복잡한 이론 전개 속에서 들어 있는 사상적 根據(근거)와 그 줄거리를 하나의 系譜的(계보적) 形式으로 미리 제시하여 놓고 그 내용을 여러 갈래로 여러 장으로 分類하여 서술하려 한다.
먼저 中國을 중심으로 한 사상적 체계를 보면 丹學의 위치는 특이하다.
동양철학이나 사상을 아는 이들에게도 丹學이란 말은 생소할 것이다.
춘추전국시에 제자백가가 있어 구가니 구류니 하는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잡가 등의 구가로 분류하였으나 단학에 대한 뚜렷한 일가는 보이지 아니한다. 그 중에 잡가 속에 의학이 들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를 볼 때 의과는 역시 잡과 속에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丹理 속에는 陰陽思想, 五行思想 그리고 醫學的 사상들이 내포되어 있으 그 原理를 떠나서는 丹學이 성립되지 못하나 단학은 그 모든 원리를 이용하되 철학적인 이해나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의 이해나 의학적인 원리나 그 처방의 응용같은 것은 주안으로 하지 않고 그 모든 原理를 直接 인간生命體에서 自然的으로 作用하도록 修練하는 方法이라고 말할수 있다.
즉 丹理는 다름 아닌 陰陽五行의 원리에 근거하였으므로 修練의 원리를 설명할 때에 언제나 음양오행의 周易原理를 가지고 설명하지만 단리적인 연단법은 소우주적 지위에 있는 인간을 기초로 하여 '精氣神'의 相生原理를 土臺로 해설 하고 修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精氣神이라는 槪念으로 설명이 있을 때는 丹學的인 특유한 體系인 것을 알아야한다.
중국 철학사상가에서도 단리를 위주로 한 사상에는 위백양의 참동계와 內經이 있다. 그외에도 단리적인 글이 많이 있으나 연단법까지 해명된 글은 극히 드물다.
다음으로 '國仙道 수련의 방법은 우리 民族 固有의 傳統的인 道'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점을 敍述(서술)할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 상고시대의 古神道 의식에 있어서는 祭政一致시대이므로 군주가 곧 제주이며 제주는 곧 하늘님과 통하는 신인격인바 개인으로서
그 신인적 修練을 쌓은 사람이 다름 아닌 仙人이다. 그 선인이 되기 위한 수련이 전승하여 최후에는 天人合一地境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의 체계가 확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自然發生的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오랜 體驗과 行動으로 體得한 것이다.
이상으로 중국사상가에서 발전한 丹理에 대한 말과 우리 민족적 전통으로 발전해 내려오는 수련방법의 체계를 간단히 말하였거니와 앞으로 그 이론과 방법을 아울러 설명한 것이 이 저술의 내용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구절 引用하고 싶은 말이 있다. 達磨禪師(달마선사)의 사행관 첫머리에,
'부 입도다도 요이언지 불출이종 일시이입 이시행입'
'夫 入道多道 要而言之 不出二種 一是理入 二是行入'
이러한 말이 있다. 대개 道에 들어가는 방법이 많이 있으나 요약하면 두 가지 種類밖에 없으니 하나는 理論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하나는 行動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상가들은 理入코저 하였고 우리의 선조는 行入으로 볼 수 있으나 우리는 현재 이론으로 또는 수련행동으로 이 極致를 목표로 한 生命充實의 수련을 하게 되는 셈인 것이다. 그러나 理入은 難하고 行入은 易한것이다.
이로서는 아직 天理에 접근하기 難하나 우리의 修練으로는 天地變化에 直接 참여하기 쉬운 것이니 體驗으로 이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天理는 논증은 어려우나 實證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국선도 수련은 하나의 몸으로 이루어지는 實證科學 인것이다.
제2절 국선도 수련의 요지
仙法은 국선도법의 약칭이며 丹理이다.
丹理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발상지가 우리나라인 것은 다음 장에서 밝히겠거니와 仙法과 丹理에 대한 단어풀이부터 하면, '仙'이란 山人을 말함이니 옛부터 修道者는 深山幽谷에 들어가 道를 닦으므로 나온 말이다.
'道'란 자연의 道理로서 변화하지도 않으며 모든 事物을 生成死滅 변화케 하는 眞理요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유는 도리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丹'이란 火色이요, 화는 형질이니 아닌 氣體이니 肉眼으로 볼 수 없고, 단지 공리이므로 무하유의 명이요, 일기의 원이 된다. 火가 生動함에 萬有가 力이 生發하는 것인즉 萬有가 力으로 나타남에는 필히 火動하고야 나타나는 것인즉 火 없는 力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속어에 火力이라 한다.
이는 이치의 약칭이요, 전은 모이는 장소 위치의 뜻이니 丹田이란 말은 氣運이 모이는 장소란 뜻이며, 丹에는 外丹과 內丹이 있으니 주로 금석지재와 藥草를 사용한 환약을 복용하여 단리의 효력을 얻으려는 방법 등을 외단이라 한다.
외단 조제법과 약초는 다음 장에서 밝히겠거니와 외단으로써 역사속에서 성도한 사람은 없으며 오직 강장제로써 복용하였을 뿐임을 밝혀둔다.
그런데 靑山이 청운도사[본명 이송운 경상북도 안동 출신]로부터 傳受한 法通은 동방단리의 전통적 정수인 精氣神三段, 丹田二段呼吸으로부터 大氣와 合一하는 경지 까지 승화시키는 묘법이다. 이것은 內丹이며 정통적 丹理인 것이다.
자고로 허다한 사람들이 東西古今을 통하여 入山하여 修道하였으나 得道하는 이가 극히 적음은 이러한 전통적인 丹理의 방법을 解得하지 못한 까닭이요, 간혹어떤 정도의 수도가 도었다 할지라도 올바른 방법의 지도가 없이는 道法 極致에 到達(도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본 국선도의 性格은 특이한 바가 있다.
제일의적으로는 일반宗敎가 아니며 神이나 靈을 직접 위하지도 아니한다.
이 국선도는 인간의 實存을 그대로 대상으로 삼는 실존生命의 자연科學이라고도 볼 수 있다. 生命이 있은 후에 모든 問題가 문제될 것으로 보는 養生之道다.
그렇다고 하여 生理學과 같이 분석적이요 해부학적인 입장에서 다르는 것이 아니라 동양사상적인 방법으로 綜合的이요 全體的인 입장에서 體驗과 自覺과 自證의 체득적 방법에 서는 도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선도법이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世間에는 仙을 잘 이해치 못하여 망상과 환상과 욕망으로 시종일관 하다가 끝내는 迷信으로 패가망신한 얘가 많이 있었던 것이 事實이다. 그리고 仙에 대한 허다한 서적에는 본래부터 비유와 가탁을 성문으로 했기 때문에 이해불능으로 된 것이 많았는데 이러한 것을 맹신하다 촉사망신하게 되었다.
한때는 또 도교란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라 칭하고 우매한 자들을 사기하며 혹은 요술로써 선이라 칭하며 혹은 황백술이 선이라 하여 금전을 사취하는 등 사기가 있었던 것으로서 그 까닭은 仙의 丹理를 닦아서 成道하면 後繼者에게 直接 指導하고는 세수를 거쳐서 자기들의 本鄕인 어딘가로 가고 痕跡(흔적)을 남기지 않으므로 종적이 묘연하므로 世人이 혹 국선도를 부인하거나 정통적 선단을 모르므로, 자기 나름대로 조작하여 선도 또는, 국선도라 한 까닭이다.
국선도는 오직 衛生을 잘하고 正心 正坐로써 丹田呼吸을 하여 氣血流通으로 질병을 멀리하고 성명을 닦아, 기혈의 노쇠를 방지하고 生命을 永久하게 자연의 도리에 합일하여 死가 있으면 不死가 있고 有形이 있으면 無形이 있는 것과 같이 불사방으로 永生하려는 道인즉 자신의 健康을 위해서 직접 行功하는데 무슨 종교류와 미신 등이 필요있단 말인가.
오직 인류생존의 基本이 되므로 성실하여 근이행지하면 成하고 태만무성하면 불성이 있을 뿐이다.
제3절 국선도의 由來
항간에는 선의 단리를 정확히 기록한 문헌은 없고 그저 선적인 의식이 있을 뿐이다. 仙은 수천 수만년 전 상고시대부터 전래하온 비전이 있었다고 봐야하나 기록이 남지 않았음은 심히 유감이다.
그러나 문자로 선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산 生命體로서 보고 듣고 지도를 받아 실행하여 체득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신선사상이 전래하여 왔으며 옛 중국에서는 신선을 우리나라에 와서 찾으려 했으며 중국상대 문헌에는 신선설이 없다. 노자에도 없었고 莊子에 이르러 비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생활과정에서 고대신관들이 入山하여 修道하였고 그 산을 神山이라 하여 숭앙하였고 산에 들어가 수도하는 자를 神仙이라 하였으며 山에 들어가는 이유는 산이 高하므로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생각에서였으며 이는 제천 또는 경천사상에서 발생한 것이며 월성과 태양신을 신봉하는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곧 우리민족의 思想으로 신적인 생활화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신선사상이 전래하여 왔으며 신관 아닌 사람도 入山하여 선의 도법을 닦으면 기인적인 仙人이 되는 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의 修行은 숨을 고르는 조식법인 丹理修行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敬天사상에서 하늘과 통하고 있는 공기를 많이 마시고 잘 調和하는 것이 하늘과 相通한다는 판단에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공호흡은 물론이려니와 전신의 기를 유통시키는 법까지 체득케 되어 자연과 상통하는 문이 열리며 奇蹟이 일어나 成道를 하게되었던 것이므로 비전으로서 구전심수하게 된 것이니 고증이 없이 實證으로서 산 역사는 흐르는 것이다.
世上에 이름이 밝혀진 고선인만 해도 천기도인 이하 환인, 단군, 영량, 옥룡자, 최고운, 백우자, 청학진인, 운학도인, 청운도인이며 백우자는 이혜손이요, 청학진인은 위한조이니 모두 이조 성종시의 사람이요 靑雲도인은 현존하고 계시며 靑山의 사부이다.
중국의 선파의 고선은 광성자 이하 황제, 노자, 위백양, 장자양, 여순양, 장삼봉이라 하나 정통적 한민족의 丹理로써 성도하였는 지는 의문이 있다.
이러한 신선사상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선적 의식이 있게된 것으로서 그의 명은 변천과정에서 밝(밝고 깨끗한 사람의 뜻), 산(하늘과 땅의 새사람), 사이(하늘과도 통하고 사람과도 통하는 사이사람), 삶(사람을 살리는 사람의 뜻), 선인(모든 사람보다 앞선사람), 천기도(하늘기운의 뜻)라 하였고 후에 입산한다 하여 선인이라 하고 진리의 법을 닦는다 하여 선도법이라 호칭하게 되었다.
차후에는 현묘지도니 풍류도, 단기법, 풍월도, 국선, 단도, 정각도니 하였으나 오직 그의 目的은 전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선도는 진실무위하고 청정독립하여 소요자재하며 관규수진으로 자신의 健康을 위해서 직접 행功하여 우주의 정이 단전에 집적이 되게 하여 기장신명하게 되는 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선도는 양생지도며 양기법으로서 전인적 인간수련에 서 있는 도법이다. 전인적 인간수련이란 다른 도법과 국선도가 다른 점이기도 하다.
고증적 선인이 있었다는 입증문헌과 의식의 자료는 많으나 책명만 있지 변란을 당할 적마다 없어진 탓으로 현재는 한 권도 찾을 길 없는 것이 통분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가 땅에서 출토되고 우리 이웃 나라의 문헌속에서 타나나므로 다소 열거하며 고증을 들겠다. 1971년 百濟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동경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상방 작의진대호 상유선인부지노 갈음옥천 기식조수 여금석혜'
하였으니 상방이라는 당시 관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쓴 글로서 선인이 있었음을 고증적 기록을 하였다.
'일본서기'에 보면 흠명천황조에 百濟가 日本에 원군을 청하니 일본에서 답하기를,
'너희 나라에는 옛부터 고유의 道가 있으나 불교가 들어와 그 도를 돌보지 않으니 이제라도 그 道를 부활하여 닦으면 스스로 强大國이 될 것이다.'
하였으니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道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 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옛 역사의 기옥인 '삼국사기'에서 선에 관한 사실을 찾아보기로 한다. 나아가서는 그 선이라고 표현된 말의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 선 사상의 연원인 고유의 사상은 무엇이었는가를 탐색해 봐야 하겠다.
따라서 선적 수련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경로로 발생하였는가를 알아봐야 하겠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을 보면,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설교지원 상비선사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
'이 나라에 현묘지도가 있으니 가로되 '風流'라 실로 이 도는 삼교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民衆과 접촉하여 이들을 敎化하였다.'
이러한 뜻으로 그 포함되어 있는 삼교 즉 공자, 노자, 석가의 교리를 약기하여 놓은 것이 그 서문으로서 주목되는 문구로 우리 나라에 있었던 현묘한 도를 風流라고 한 말이다.
이 풍류지도는 무엇일까?
그 내용이 선사에 상기되어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하여 풍류도가 선사에 있을까?
선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삼국유사'에 보면 진흥王이 천성이 멋이 있어 神仙을 크게 숭상했다는 말이 있고 또 花郞道를 풍류도라고 하니 화랑의 최고지위자를 國仙이라 하였으니 풍류나 화랑은 선이라는 말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국유현묘지도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권위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육당 최남선 선생의 硏究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의 고대사 연구중 고신도 분야의 문헌 가운데 저서 조선역사상고편, 고사통상고편, 심춘순례, 백두산근찬기, 현시조선, 檀君論, 불함문화론 등은 民族固有의 사상을 解明하는데 主力한 것이다.
일례를 들어 한 구절만 소개하면 백두산근참기에,
'조선신전에 나타나는 고道의 요의는 극히 간명직재한 것이다.
그 철리의 정수는 光明의식이었다. 일광명의 중에 人天이 융섭하고 物我가 혼일됨이 그 이론인데 그 계기를 밝이라 하고 그리하는 實現過程을 ㅅ`ㄹ(역하여 선 혹은 선)이라 하고 그리하는 實現方法을 돌(역하여 복 혹은 귀)이라 하니...'
이렇게 그는 여러 논문과 여러 저서 중에 민족고유의 道에 대한 설명을 요약한 곳이 허다히 많다. 지금 열거한 구절도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나 그의 저서는 상시한 한 구절의 하나하나를 解說한 내용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광명, 천, 밝, ㅅ`ㄹ, 돌 등의 語源的 해설로 우리민족의 고유사상과 그 특이성, 그 우월성을 해명하기에 힘쓴 것이다.
그 요약된 문구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면 고도의 신봉대상은 天이요, 숭배하는 제단은 산봉이요, 숭배자는 우리민족이요, 숭배로 얻는 효과는 天人合一이요, 숭배방법은 제천과 선적 수행이요, 효과적 원리는 귀본이다.
여기에서 다소 해설이 필요한 것은 天에 대한 의미와 仙에 대한 의미일 것이다.
숭배의 대상인 天은 하늘로서 하늘을 인격화한 개념이 하늘님일 것이다. 그리고 하늘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해요 빛이다. 太陽과 光明은 하늘과 하느님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태양과 광명은 곧 밝은 것으로서 '밝'을 숭앙하는 동시에 대낮을 백주라 하는 것처럼 힌 것이 숭앙되어 백을 신성시 한다.
그리고 고산의 산정은 천에의 통로로 생각되어 그들은 고산숭앙의 심리에서 천제를 드린 산에 언제나 백자를 붙였다. '밝'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檀君성조가 신정을 베풀고 하늘을 숭배한 곳을 白頭山이라 했다. 태백도 같은 뜻이다.
언제나 백산상에 제단을 쌓고 천(하늘, 하느님, 태양, 밝)에 祭祀한 것이다.
그리고 천제를 드리는 제주는 天 또는 하늘님과 통하는 신인이어야 한다. 그러한 靈通者를 'ㅅ`ㄹㅇ`ㄴ'이라 한 것이다. 그 어원을 가지 것이 오늘에까지 傳承하였으니 지금도 영통자를 'ㅅ`ㄴ' 또는 '산이'(무)라고 한다. 무는 고대에 있어서 신정시대는 군주요 제주로서 그 지위는 군장이었으나 현재는 한갖 巫堂으로 전락하고 만것이다. 이 'ㅅ`ㄴ'이라는 고어가 음사하여 한자로 仙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고대민족적으로 수행되던 선관의 도가 한편으로는 그대로 전래하여 國家的 宗敎로 仙風이 되고, 한편으로는 그 仙의 道가 개인적 천인합일修練의 방편으로 仙道의 수련이 되었으니 예를 들면 '高麗史' 곳곳에 나오듯이 그때마다 君王들이 고선도를 다시 부흥시켜야 하겠다고 번번히 調書를 내린 것은 國家的인 신봉의 대상으로서의 민족적 종교행사인 고선도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修練의 방법으로서의 국선도는 天과 先靈을 받들고 천인융합의 수련의 방법으로서의 道인 바 우주생성의 근원에 접근하는 방편으로서 大生命體인 天에 돌아가는(復元) 합치의 도(方法)인 것이다.
그러나 이 도의 원류는 다름아닌 우리 고선도 또는 고신도인 고대성조때로부터 전래하는 하늘도에 있는 것이다.
'ㅅ`ㄹ'의 어의는 生으로서 모든 생의 원천은 天이요, 태양이요, 광명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 도는 곧 生命의 道였던 것으로서 生을 귀중히 여기는 生命道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상윤 선생의 '조선문화사'에서도 역시 제천사상과 경천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임을 밝히면서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등이 동일 사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경천숭배사상은 곧 태양숭배 사상임을 뜻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 선생은 仙史에 대하여 그 선이란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에 대한 개념과는 다르다 했다.
선인 또는 국선이라 할 때의 선은 선인이라는 말 또는 '선인'이라는 우리 나라 말의 한자로 음역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실례로써 '최형전', '고려도경', '통전', '신당서' 등에 나오는 조의선인이란 낭도들을 가리킨 말이라고 했다.
高句麗의 조의선인이 바로 선인이며 국선이요,
그 정신을 계승한 것이 바로 新羅의 화랑으로서 다 같이 고신도를 숭상하는 민족정신의 고유한 주체 세력임을 그의 '朝鮮상고사'에서 밝혀 놓은 것이다.
그리고 단재선생은 그 도를 선비도라고 했으며, 후에 풍류도라고 했다고 한 것이다.
要約해보면 우리 민족정신 속에 잠재해 있고 우리 언어 속에 깃들어 있는 천, 즉 하늘님 또는 하느님을 숭앙하는 생각은 우리 생활을 지배해온 고유의 사상이다. 그리고 그 하늘을 숭배하는 제주는 우리 고유의 말로 'ㅅ`ㄹ ㅇ`ㄴ'으로서 한자로 음사된 선이다.
그러므로 고신도를 선풍이니 선도라고 후세에 稱(칭)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國家 民族的으로 계승하여 민족적 종풍이 되었고 따라서 개인적으로 선적인 수련으로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할 목적을 가진 사람이 다름아닌 선도수련자인 것이다.
앞으로 이 두 갈래의 傾向(경향)을 따라 설명해 보겠다.
먼저 전자 즉 國家的인 고신도의 전승적인 노력을 '高麗史' 등에서 엿보면 처처에서 그 염원의 사실이 발견된다.
'高麗史 권십팔권' 의종 2년 調書를 내려
'옛날 新羅시대 선사상(仙風)이 크게 발전하여 天이 즐기고 人民이 安寧(안녕)하였다. 우리 高麗도 왕건 태조로부터 오랫동안 선사상을 믿어왔다. 그런데 근일에 이 사상이 쇠퇴하였으니 다시 復興(부흥)시켜야 한다.'
는 말이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이같이 민족적인 고도를 선사상이라 칭한 것이다.
의종은 다시 조서를 내려
'왕건태조로부터 선사상을 숭상하여 왔는데 최근에 양경(평양, 개성)에서 선가 의식인 팔관회가 옛모습을 잃고 있다. 다시 선가를 정하고 옛 풍습을 따라 행하도록 하라.'
고 하였으니, 여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선사상이 다름아닌 고유의 도요, 그리고 팔관회라는 것이 선도의 행사임을 알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고유정신이 담기어 있는 선도의 한 의식인 팔관회에 특히 유의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으므로 팔관회에 대한 고서를 몇 가지 더듬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만일 팔관회가 우리의 고유한 선도사상과 직접 관계가 있는 국가적 행사라 하면 선사상의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팔관회라는 민족적 의식에 불교적 의식과 혼동이 된것도 우리의 선 사상이 도교와 혼동된 것과 흡사한 점이 없지 않다. 팔관회가 불교적 행사와 혼동된 것은 불교적 의식의 팔관재가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팔관회와 팔관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의 팔관재는 불교의 팔계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살생, 불도, 불음, 불망언 등 팔계를 위한 것으로서 불공의계라 한다. 그 재는 재계로서의 불공의계임이 뚜렷하다. 그러나 팔관회는 국가의식으롯 천신 군신 등에 대한 축제행사임에서부터 그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
'송사 高麗전'에 보면
'고려가 천에 제하고 숭신에 제하는 제전을 팔관회라 칭한다.'
하였고 '동문선'에 보면
'팔관회는 팔선의 관문의 뜻'
이라 했고
'新羅 진흥왕 33년에 군신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팔관회를 설하였다.'
이러한 말들만 종합해보더라도 팔관회는 우리들의 고유한 의식이요, 선도에 관계있는 의식이요, 민족적 의식임을 알수 있는 것이다.
'高麗史 권십사' 세가 예종 11년의 조서 중에
'고시 영랑, 술랑, 안상, 남석행 등 사선의 행적에 영광을 가할, 그 사선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라, 근일에는 국선의 도를 구하는 자 없다. 태관의 자손으로 하여금 국선의 도를 행케하라.'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국선의 도, 선가의 의식인 팔관회, 이러한 것이 다름 아닌 우리 고유의 국선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고려도경'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宋나라 선화봉사 서긍이 高麗에 와서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高麗견문록인데 그 책 가운데
'팔관회는 高句麗의 동맹을 계승한 것이다.'
하고 써 있다.
'위지 동이전'에도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新羅의 팔관, 高句麗의 동맹'은 다같은 제천의 우리 민족의식임을 밝힌 바 있다.
高麗 6대 성종이 유교를 억지로 보급하려 하니 이지백이
'국민 전체가 선왕의 도인 팔관회, 연등, 선랑 등 고유한 사상을 신봉하고 있어 외래적인 유교를 반대하니 옛 사상을 발전시킴이 가하다.'
고 한 말이 '高麗史'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한 고유의 우리 사상은 결코 외래적인 유나 불이나 도교는 아니었으니 그 팔관, 연등, 동맹 등의 선사상의 도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화랑도를 창설한 진흥왕의 花郞道 창설의 진의를 분명하게 엿볼 수가 있다.
'王은 천성이 풍미하여 신선을 섬기고 아름다운 자를 택하여 원화를 삼고 선비를 뽑아 효제충신을 가르치고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나 뜻같이 되지 않아 중단이 되었으나 그후 다시 시작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王의 마음에는 나라를 흥케 하려면 먼저 風月道를 興케 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있어 다시 令(영)을 내려 양가의 남자 중에서 德行이 있는 자를 뽑아 國仙을 삼으니 이것이 花郞과 國仙의 始初다. 이로부터 풍습이 개선되고 상경하순하여 오상육예며 삼사육정이 세상에 널리 행케 되었다.'
하였으니 仙의 道를 숭앙하여 花郞道를 창설하여 국정이 바로 잡히고 풍습순화되고 오상육예 등이 선양 되었으니 우리도 그 선의 도가 한갖 우화등천적인 미신적 도교의 신선사상을 그렇게 보급시켰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여담이지만 국선도 혹은 선도라 하면 무슨 신선적인 종교같이 생각되어 우리 생활과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고 또는 이조말년에 잡종종교가 많이 생겨날 적에 일어났던 선도교 같은 것으로 도 오인할 수도 있다.
융희 3년(1909) 차경석이라는 사람이 선도교를 만들었덕 일이 있다. 이것은 강일순(증산)이가 세웠던 훔치교의 후신으로서 후에 보화교로 다시 보천교로 개칭한 것으로서 하나의 영술적인 주문을 가진 신앙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선道의 사상은 도교의 사상도 아니요, 도교에서 파생된 도도 아니요, 하나의 민간사상으로서의 신비사상도 아니요, 잡종신앙으로 다룰수 있는 차원 낮은 신앙도 아니다.
우리 나라 民族 속에서 성장한 神仙思想은 하늘과 하느님을 숭항하고 人類道德을 중히 여기며 올바른 풍습을 따르며 동시에 극치의 인간상을 수련코저 하는 민족예지의 결정체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민족고유의 숭천사상이며 국가적 숭앙의 사상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그 도에 접근하기 위한 心身修練者로서 그 명칭이 곧 선으로서 'ㅅ`ㄹ' 도의 수행자를 말함이다.
다음으로는 소설적 서술이 아니요, 역사적 서술도 아닌 하나의 野史的 서술인 '花郞外史'의 한 토막을 다시 독자 앞에 소개하려 한다.
花郞道연구에 가장 조예가 깊은 범부선생은 新羅의 옛문화를 찾고 아끼는 분이다.
이제 그이가 저술한 '花郞外史' 중에서 모든 花郞들과 또는 당시 高僧 원광대사, 원효대사 등의 스승이요 숭앙의 대상이던 물계자에 대한 기록을 간단히 보여줌으로써 고도수련의 정신을 참고케하려 한다.
긴 글을 그대로 引用할 수 없음이 유감이나 필요한 구절을 띄엄띄엄 약기하여도 그 진의를 大綱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물계자에 대한 사적은 '삼국유사' 속에 약 삼백 자 정도로 기록되었으나 그에 대한 說話는 수많이 전래해 온다.
['그는 新羅 제10세 내해王때 사람이다. ...
물계자가 중년이 되었을 때는 劍術, 음악 그리고 검을 섬기는 묘리는 말할 것 없고, 혹은 처세법 혹은 政治 軍事를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자기 지망대로 修練을 쌓고 있는 靑年들이 묵고 있었다. ...
오랜 세월을 두고 수련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과목 수련의 준비 과정으로 精神의 修練부터 먼저 시켰다. ...
''검술이나 음악이나 그밖에 무엇이나 열 가지고 백 가지고 간에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꼭 바른 도리이기만 하면 반드시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근본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을 사람의 얼(精神)이라고 해 두자. 천만 가지 도리가 다 이 얼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 얼을 떼어 놓고는 이것이니 저것이니 하는 것은 소 그림자를 붙여다가 밭을 갈려고 하는거나 마찬가지로 허망한 소견이야.''
그래서 수련을 시킬 때 먼저
''너 숨을 쉴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숨이란 만들어 쉬는 것이 아니라 절로 쉬는 것이다. ... 숨을 고루는 것이 얼의 앉을 자리를 닦는 것이니 얼의 자리가 임의롭고 난 뒤에야 무슨 修行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숨을 고룬다 얼의 자리를 닦는다. 천만가지 일과 천만가지 이치가 여기서 시작되는 法이거든. 여기서 始作된 것이 아니면 참된 경지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설령 모르는 사람의 눈을 얼핏 속여 넘기는 수 있으라 하고라도 검님(신령님)이 그런 사람의 눈에 그물(망)을 덮어 버리는 거야.''
이러한 방법의 修練으로 얼마를 지내고 나서는 누구나 대선인의 신통한 교육법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빛깔이 있는 법이어서 그것을 잃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 제 빝깔을 지닌 사람만이 제 길수(自然의 妙理)를 찾게 되는 법이야. ...그러나 제 빛깔이라는 것은 제 멋(自己趣向)과는 다른 것이야. 누구나 제 멋이 있어야 하지만 제 멋대로 논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것이 아니야. ...아무에게나 맞을 수 있는 제 멋은 먼저 제 빛깔을 지녀서 제 길수를 얻은 그 멋이고 한 사람에게도 맞을 수 없는 제 멋이란 제 길수를 얻지 못한 것이야.
말하자면 제 빛깔과 절로(자연)와가 한데 빚어서 함뿍 괴고 나면 제작(天人妙合)에 이르는 법인데 이 제작이란 검님이 사람의 마음에 태이는(和合) 것이요, 검님의 마음이 사람의 생각에 태이는 강이니 말하자면 사람이 무엇이나 이루었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이 제작에 이르렀다는 것이야.''
이렇게 歲月이 흘러가는 동안 저절로 물계자를 중심으로 한 개의 風氣가 생겼다.
그 풍기란, 물계자 문인치고는 빽빽하거나 인색하거나 설멋지거나 까불거나 설넘치거나 고리거나 비리거나 얄밉거나 젠체하거나 따분하거나 악착한 사람은 아주 없는 것이다.
누구나 척 대하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은 물계자의 문인들을 모두 참 멋쟁이(風流)라고 말하게 되었다.
''멋 풍류! 하늘과 사람 사이에 서로 통하는 것이 멋이야. 하늘에 통하지 아니한 멋은 있을 수 없어. 만일 있다면 그야말로 설멋이란 말이야. 제가 멋이나 있는 체 할 때 벌써 하늘과 통하는 길이 막히는 법이거든.''
...''참 멋과 제작은 마침내 한지경이니 너희는 여기까지 알는지? 사우(調和) 맞지 않은 멋은 없는 것이며 터지지 안은 멋도 없는 것이니 사우 맞지 않고 터지지(融通透徹융통투철) 않은 제작이 있는가?''
이런 말을 들을 때 歡喜(환희)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절하는 제자도 있었다.
물계자는 칼을 쓸 적마다 언제든지 먼저 숨을 고루었다. 그리고는,
''살려지이다.''
라는 祈禱詞(기도사)를 몇 번이든지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精誠을 다하여 기도를 올린 다음에 의례히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이어 춤을 추었다. 춤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칼을 쓰는 것이 언제나 변함없는 순서였기 때문에 물계자의 문인들은 으레 대선인의 하는 순서대로 따랐다.]
민족고유의 道를 찾아 보는 탐색은 이것으로 만족하겠다. 독자는 반문할는지 모른다. 하늘님 숭앙한다는 사실밖에 더 찾은 것이 없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滿足한다는 말이다.
그 원시적이요 原初的인 하나의 종교적 숭앙심은 그것 대로 최고 최상의 종교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극히 역설적인 의견같지만 그 原初的인 신앙심 이후로 발전한 잡다한 신앙형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실정이다.
문화는 분화 발달한다고 하지만 종교적 信心만은 분화발전이 오히려 原初的인 심리에서 이탈한다고 본다.
基督敎는 2천년 간이나 분화발전했다고 하나 그 많은 신학 그 많은 교파속에서 많은 신자는 방황한다. 예수님의 진정한 종교적 심정을 찾으려면 오직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고 그 뜻대로 살고 그 뜻대로 죽는데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마음이 곧 그의 宗敎心이요 生死의 지도이념이다. 이 原初的 근본사상을 떠나면 예수교는 없다.
佛敎도 마찬가질 것이다. 佛 가신 후 백년이 못되어 부파가 생기기 시작하여 2천여 년 수많은 宗波가 생기고 논과 소가 나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仙波에서는 불립문자로 모든 이론을 배제하기도 하나 그들도 理論 아닌 理論으로 역시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釋家가 得道한 唯一의 심경은 결국 無我의 경에 출발하여 無我的 行에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이론은 다 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無我的 慈悲行'을 제외하고 무슨 佛敎가 성립될 것인가.
우리는 종교의 原初的인 심경에서 살고 죽을 뿐이지 學과 說이 필요없다. 종교는 학도 아니요, 설도 아니다. 그런 것은 과학이나 철학에는 필요할는지 모르나 信仰心에는 소용이 없다. 있으면 오히려 妨害(방해)가 된다.
이렇게 종교에 대하여 原初的인 심리현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어떤 오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모든 原初的 종교들은 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형태의 원시종교도 그 원초적인 심리중에는 인간이상의 힘과 德을 가진 존재를 숭앙하고저 하는 생각은 하나의 종교적 정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미개하여 힘만 생각하고 높은 덕을 생각하지 못한 원시인의 종교심은 그것이 발전하여 소위 현재 우리가 말하는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사욕으로 더불어 주술적인 기괴망측한 무격적 민간 신앙형태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것을 원시적 종교라고 하면 이는 무가치한 것이지만 그 숭앙의 대상이 힘이 있는 동시에 인간이 생각하는 사회 윤리적 덕이 있다고 믿는 숭배의 대상일 때는 그 신앙심은 반드시 사회적 德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가치판단의 기준은 그 신비적인 근거보다도 오히려 社會的 倫理形態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신을 신봉한다고 하여도 그 신앙심이 비현실적이요 비도덕적일 때는 그 신앙심조차 높이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은 단순하여도 좋으나 그 신앙심에서 나타나는 社會的 實踐은 높은 차원의 道德心이 있어야 한다.
높은 차원이라 함은 我利보다 公利를 중시하는 이른바 弘益人間과 같은 이념을 말하는 것이다.
종교는 나의 문제를 떠나, 아니 나의 문제를 超越하여 우리들의 문제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든지 소승적인 自己救濟인 것인 동시에 대승적인 衆生救濟가 아울러 중시되는 것이 아니면 참 종교라고 생각할 수 없으니 비록 原始宗敎의 형태라 할지라도 그 原初的인 정신이 처음부터 그러한 양면구전한 것이었다면 그 原初的 신앙의 태도만은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우리 민족의 신앙의 原初的인 형태인 오로지 '하늘님'을 숭앙한 그 정신 자체로서 높이 평가할 수 있고 그 신앙의 대상인 하늘님의 속성이 광명, 생육, 자의 등등이 도덕적 생명적 源泉으로 본것은 더욱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 고대 宗敎는 샤머니즘적이라고도 하는 이가 있으나 이는 먼저 分化되고 변형되고 달리 발전된 형태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原初的인 광명정대한 숭앙의 하늘의 道를 떠나 인간 사리사욕을 채워보려는 무축이 변화한 것이 모든 샤머니즘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잡생각을 버리고 原初的인 심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다름아닌 환본이다. 삼일신고 진리훈 끝에 반망즉진이란 말이 있다. 망상을 버리고 根本에 돌아가 참에 나아간다고 주해하였다.
하늘도 좋고 하늘님도 좋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恭敬하는 정신이 있으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도요, 또 그것으로 족하다. 그 마음은 틀림없이 弘益人間의 도덕적 원천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을 수련하여 마음과 몸을 닦고저 하는 사람은 후세에 선수도자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항상 原初的인 정신을 마음에 지녀야 할 것이다.
이 原初的인 심리는 종교적이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민족이 지녀온 정신적 자세라고 함이 좋은 것이요, 그 개인적 수련은 生命과 생활의 道와 아울러 그 민족적 고유의 德性과 밝은 정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花郞道의 수련도 이러한 思想밑에서 國家의 요청을 감당할 人材의 수련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국선도 수련에 入門하려는 이들도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덧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檀君하면 전설적인 왕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사실들을 전설로만 흘려 버리는 思考의 시대는 지나 갔다.
4~5천 년 전 檀君 때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 약 60萬 년 전 舊石器시대의 유물이 忠南 공주군 장기면 석장리의 하안에서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전기 구석기와 중기 후기 구석기층과 중석기층까지의 각시대의 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1964년 11월 연세대학교에서 발굴작업을 했고 1973년 6월에 濟州島(제주도) 동굴에서 홍적세(구석기 약 60만년 전)의 층의 유물이 발굴되고 1934년과 1935년 두만江에 연해 있는 동관진의 연대봉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다.
1933년부터 35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동물의 화석과 두편의 흑요석기 그리고 골각기들을 가지고 구석기 유적이 있음을 입증하였고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의 언덕 사면에 있는 패총에는 신석기와 청동기의 두 개를 발굴하였고 1963년 平陽 남쪽 상원군 상원읍에서 서쪽으로 십여 리 정도 되는 검은 모루봉의 南麓(남록: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여 있는 곳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코뿔소와 사슴의 화석이 섞여 있고, 黃海道 봉산군 지탑리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철촉, 철조針, 청동環, 토기 전와片, 오주錢, 관玉, 토기片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니 우리민족은 60萬 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음이 역력히 세상에 밝혀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민족이야말로 유구한 歷史를 가진 민족이며 탄생과 더불어 仙的인 사상이 자연히 생활의 필요에 의하여 傳來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수천萬 년 또는 수億 년 전부터 敬天사상에서 전래한 우리 민족의 仙은 외래사상에 의해여 산중에서만 秘傳하여 오다가 自然乘時(자연승시)로 청산이 청운도사를 만나 수련하고 하산하여 세상에 그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전인류는 사상과 빈부기천과 남녀노소와 국경을 초월한 一和統一과 孝根理念으로 전인류의 先祖를 모시고 완전무결한 宇宙道德과 慈悲와 博愛가 충만한 宇宙玉室 제도를 수반하는 完全調和仙人의 경지에서 생활하기 바란다.
제4절 국선도 名稱(명칭)의 유래
전 절에서 국선도의 유래를 고증적으로 다소 밝혀 놓았거니와 이 장에서는 고증적 仙的 수련자의 명칭을 밝히려 한다.
자기를 모르며 남을 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인 것 같이 자기 민족의 주체사상을 모르고 남의 민족의 주체사상을 따른다는 것은 더욱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민족의 고유한 정신(理念)과 사상은 꼭 알아야 한다.
옛날 우리 민족의 '古記', '史記', '本記', '仙史'와 이외에 무수한 역사책들과 문헌은 漢무제와 唐나라 장군 李積의 손에 수많은 책들이 불살러 지고 또는 日本사람의 손에 의하여 말살되고 나머지는 사대주의 자들 손에 의하여 거의 없어졌으나 오늘날 땅속에서 또는 이웃나라 고서 중에서 우리 민족의 史記와 仙的 의식의 문헌이 단편적으로 남아있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福音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仙에 관한 수행도의 이름을 자세히 알아보면 밝음을 하나님이 준다는 생각에서 이에서 밝음은
太陽으로서 '밝'이라고 하고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은 산봉우리라 하여 입산하여 하늘이 준 空氣를 많이 마셔야 된다는 생각에서 呼吸을 깊게 하기 시작한데서부터 선적 수련이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수행자를 ㄷ`ㄹ사람 또는 ㅅ`ㄴ사람이라 'ㅅ`ㄹㅇ`ㄴ'하다가 '山人', '先人'등으로 부르다가 漢字가 나오며 '仙人', '神仙' 등으로 부르게 된 것이며 후에
'삼국사기'에는 '風月', '風月主', '風月徒'라고 하고
'삼국유사 竹旨郞(죽지랑)'에는 '風流徒', '花郞', '原花'라고 하고
'朝廷花主之間(조정화주지간)', '花徒', '香徒', '國仙花郞', '國仙', '國仙徒', '仙花', '仙郞', '仙徒', '仙人', '先人' 이라 하고
후에는 '實', '씨알(核)', '造化道', '氣道', '丹道', '花郞道' 등으로 불려 내려왔으므로 그 이름을
오늘날에는 '정각도', '선단', '선법', '선도법', '국선도', '밝돌법', '밝받는법', '국선(하늘사람선)도'니 하게 된 것이다.
제5절 국선도와 밝돌
靑山의 사부님께서는 항시
''밝을 받아 돌에 참여 하여야 정말 사람인 거야.''
하시고 가르침을 주시었다.
그러므로 우선 밝돌에 대하여 간단히 밝혀 보면 먼저 '밝'을 밝혀 보면 밝은 해, 太陽, 일(日), 光明, 天 등을 나타낸 말이다.
先人들이 붉을 높이어 받은 것은 그 위력이 무섭고, 한편 그 은덕이 큰 까닭인 동시에 고마운 대상이므로 밝을 하늘같이 공경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생활과 生命의 源泉이 되는 높고 큰 덕을 높이 받들고 절하고 공경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대한 힘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는 수도의 방법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이를 후대에 漢字가 나오며 仙 또는 하늘(하늘사람선)이라 하였으며, 우주를 한나라(國)로 보고 사람과 하늘(하늘사람선)이 妙合하니 이러한 대자연의 길(道)을 모아 이름하여 國仙道라 하게 된 것이므로 밝돌과 국선도는 같은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 비로소 밝(太陽)의 큰 혜택을 증명하고 있다.
우주 창조 또는 천지창조의 근원이 밝의 광선에 있다고 한다. 그 빛의 실체를 光子라고 하는 물체임을 최근에 알았다고 한다. 이것의 작용으로 모든 물리적,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光子야말로 우주창조의 주역을 한 창조주다.
우리는 그 창조주를 숭배하였고, 또 그 생성 변화의 힘을 몸에 받아 작용시키는 방법을 체험으로 체계를 세운 것이 국선도 또는 밝돌법인 것이다.
다음으로 '돌'이란 명사로서의 돌(石)이 아니라 동사로서의 '돌고 돈다', '돌아간다', '돌아온다'의 돌인 동시에, 氣의 음양운동도 말뜻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의 生成原理인 것이다.
만물은 유동한다는 뜻도 있지만, 현대의 우주 생성론으로 보아도 광대하고 무변한 우주 공간에는 아직도 이름을 짖지 못하고 있는 가칭 宇宙本質만이 꽉 차 있으며 그것이 어떤 法則으로 유동함에 따라 전자, 광자, 단자 같은 것이 생겨 나고 또 생물이 생겨나고, 천체들이 생기고, 원소들이 생겨나고, 생물과 사람이 생겨 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성 과정뿐 아니라 그 모든 생성과정이 늙어 파멸되면 다시 창조 이전의 형태인 우주의 본질로 돌아 갔다가 다시 운동을 계속하여 물리적, 화학적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차원 높은 창조물로 창조된다.
이와 같이 우주 공간은 끊임없는 생성변화의 돌고 돌아감을 거듭하는 창조의 회전장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돌며 돌아가고 돌아 오는 존재의 형상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생성사멸이 거듭되는 원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원리를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거니와 그 법칙 내용은 대개 세 가지가 있다.
物理, 化學, 數學의 세 가지 법칙에 맞으며 그것이 여러가지 소립자들로 변하고 元素, 分子, 細胞 등으로 생성하고 그것이 그 세 가지 법칙에서 조화를 상실하면 파멸하여 본질로 돌아 갔다가 다시 생성 과정을 밟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떤 방법으로 자연의 도리를 따라 몸과 마음을 닦는 까닭은 우주 생성 법칙을 깨달아 그 돌아가는 우주 대자연의 생성법칙에 올바로 參與 하자는 것이다.
동양의 철학적 용어로 말하면 우주의 창조 이전의 상태는 太極의 시기며, 돌아 가기 시작하는 상태는 陰陽이 動하는 때로서 음양의 상반작용으로 그 힘을 받아 만물이 生成한다는 이치다.
국선도의 수련 방법도 다름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의 陰陽調和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의 이치를 알고 따라서 참여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은 스스로 기계적으로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대자연의 법칙에 順應하게 되어 있어서 그들의 천수를 다 하지만 사람만은 자유 의지와 짧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天理를 거역하는 일이 많아 스스로 그 법책에서 이탈하여 천명을 다 누리지 못한다.
이상과 같이 이 밝돌법을 닦아 나가는 것은 無窮無盡한 대자연의 창조적 순환의 원리다.
즉 '돌'의 이치를 알아 '밝'을 받아 몸과 마음을 닦아 몸은 맑고, 마음은 밝아 있어 '돌'에 참여하는 독특한 방법이므로 국선도를 '밝돌'이라 호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제6절 고증문
조선 영조 임금 때 학자인 북애자의 '규원사화'에는
[아득한 한 옛적에 南, 北의 만주와 중국의 북부와 또 몽고의 일부가 이미 우리 겨레의 농사 짓고 짐승 먹이던 곳이다. 이때 태호 복희가 東夷 겨레의 한 갈래인 風夷 겨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그 수에 의한 변하고 바꾸임의 이치(易理)를 익숙히 알고 서녘(西方)으로 中土로 나아가 수인氏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태호 복희가 동이 겨레의 갈래인 風夷의 자손인 까닭으로 성을 風氏라 하였다.
옛적엔 東夷 겨레의 갈래인 畎夷(견이)와 風夷가 밝산(白頭山)이 있는 발조선의 발숙신을 본고장으로 하였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이 나누어져 東夷의 서 남녘으로 옮아가 살면서 中土의 제후들과 늘 싸워었는데 風夷는 東夷의 사람이 요 임금인 치우와 같은 한 가지 겨례다. ...]
'산해경'이란 책에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북녘(北方)에 크고 넓은 땅에 한밝산(白頭山)이 있는데 이 땅이 숙신나라(숙愼국)다. 이 숙신라라가 밝겨래(白族)인 밝백성(白民), 밝산백성을 그곳에 수(나무)가 있는데 그 이름을 으뜸(웅)이라 한다. 그리고 이 숙신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제일 먼저 8대의 임금들이 일어났다.]
한밝산이 있는 이 숙신나라, 곧 '배달' 숙신나라에서 일어난 그 8대의 임금들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전한서'와 명나라 반광조의 '강감금단'에서 다음과 같이 똑똑히 밝혀 두었는데,
[태호 복희, 염제 신옹, 황제 헌원,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요임금, 순임금(제요도당씨), 제순유우씨 등 삼황과 오제다.]
하였으니
[모두 한밝산이 있는 배달 발조선(발숙신)의 임금이다.]
하였다. 中國 학자 서량지의 글에
[세석기 시대에 문화 부족이 맨 처음 시베리아 남주의 바이칼湖水(몽고성 북쪽) 근방에 살았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전설에 있는 염제 신농의 본종족이다. 그런데 그 문화종족이 서전 우공고에서 말한 東夷 겨레의 갈래인 도이(섬도), 우이, 내이, 회이, 殷나라 등의 본종까지 된다. 그 세석기시대의 문화부족이 시베리아 땅으로 옮아 왔음은 대략 舊石器시대의 끝 무렵에 해당한다. 그들은 현 산동성을 중심으로 하여 퍼져 살았다. ...]
日本학자 조거(鳥居)는
[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중국의 중부와 남부는 본시 東夷겨레의 갈래인 묘겨레(苗族)가 차지하고 살던 땅인데 한족이 들어온 뒤로부터 점점 접촉하게 되었다. ...]
현 中國학자 무봉림의 저서 '중국통사'에서 말하기를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의 시대에 東夷 겨레의 갈래인 黎族여족(=苗族)이 중국의 남부 땅을 차지하였었다. 대저 옛적에 江漢(=양자강과 협서성의 한수)의 증역이 모두 여의 땅(黎境)이었다. ...]
中國의 왕동령은 말하기를
[苗族 겨레가 벌써 4천 년 전 시대에 중국의 남부인 호북성, 호남성 및 강서성 등을 점령하고 살았었다. ...]
여사면은 묘와 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苗는 대개 蠻 자의 음이 변한 것이다. 苗 겨레는 그 본 이름이 黎(여)다. 苗겨레가 한족보다 중국에 먼저 들어 왔으나 뒷날에 한족으로부터 쫓겨나갔다는 말도 있다. ...]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과거 중국 사람들이 너무나 배타적 독선적으로 역사의사실을 뒤집어서 오로지 자기 나라 중심으로 역사를 꾸민 것이 적지 않다. 이것은 중국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 임금들은 선물을 받으면 조공을 바쳤다 하며 모든 나라들을 중국의 예속 나라인 것으로 하여 자칭 제후라 하고 모든 나라의 사람을 짐승같이 여겨 나라 이름도 짐승에 비유하여 우리나라도 新羅를 시라(죽은나라), 高句麗를 구려, 구려하여 개나라, 당나귀나라 등으로 불렀다.
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말인가.
朝鮮이라는 말의 옛글엔 식신, 숙신조선, 직신 등으로 쓰여 졌으나 이는 오늘날 각 도의 명이 바뀌듯 발조선 발식신 발숙신이 모두 같은 말이다.
역대 신선통감에는 지황씨가 동아땅 전체를 비로소 9주들로 나눴다 하였고 檀君 때에도 9주들이 남아 있었다.
中部原(중부원), 中原(중원)이라 하였으므로 한족이 침범하여 차지하고 中자를 따서 中國이라 하였다.
古證書(고증서)는 북애자의 '규원사화 태시기' ...'산해경' ...'해외서경'... '대황동경'... '북경'... '서전 우공편'... 반고의 '전한서 고금인표'... 반광조의 '강감금단'... 조거 '용세 묘족조사보고'... 임혜상의 '中國민족사, 형오계즉 한족래원지삼, 附 구려삼묘...'
왕동령의 '中國민족사' ... '예기 왕제편' ... 무봉림의 '中國통사 사이국조표'...'中華민족론' ... 여사면의 '中國민족사'
이외에도 우리나라 考證文(고증문)은 이웃나라 문헌 중에서 수없이 나오고 있으며 우리나라 땅속에서도 수없이 發掘(발굴)되어 나오고 있다.
漢族은 華族(화족)이라 華, 夏系(하계)라고 하나 옛날엔 화족이나 하족이나 '華' 또는 '華族'이란 글자나 기록이 전혀 없다.
중국의 학자들은 한족의 근원 종족은 華族이라 하나 화족(현 中國민족)은 몇 몇 한족이 다른 종족들을 흡수하여 混合(혼합)으로 이루어진 종족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漢族이라는 그 명칭마저 漢나라가 일어선 뒤부터 생긴 것이다.
제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