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 5기

김유생(뜸사랑 정회원 30기)

 

[越南파병장병으로 고옆제에 노출되어 후유증이 심했던 저는 두 번의 뇌경색, 당뇨, 좌골신경통, 퇴행성관절염, 피부병, 어깨결림, 오십견 등 綜合병원의 몸이었으나 뜸사랑을 접하고 부터 나에게 맞는 혈자리에 뜸을 뜨고 침을 맞으니 차츰차츰 좋아져 지금은 대부분 完治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실기는 3번, 필기는 5번째에 통과, 4전 5기 시험에 合格한 71세 김유생입니다.

고지혈증, 고혈압, 전립선비대증 등 그렇게 되기까지 원인은 월남파병으로 고엽제에 노출되어 후유증이 심했던 것입니다. 하루에 여러 종류의 알약을 한 줌씩 먹다보면 위가 쓰리고 아팠습니다.

 

제 몸에 1000개 이상의 鍼을 직접 놓았고, 10갑을 넘길 정도로 뜸을 계속 떴습니다. 지금은 당뇨도 정상, 혈압도 정상, 퇴행성관절염도 낫고, 좌골신경통도 완치되었습니다.

 

하루에 1~2시간씩 公園을 걷는데 어느날 중풍 환자를 만났습니다.

60세(남), 中國 길림성에 거주하고 韓國에 온지는 3년이 되고 부인 아들과 같이 산다고 합니다.

저와 만나게 되어 그 후 4개월동안 치료 횟수16번 구당 기본침과 무극보양뜸을 위주로 하여 둔압, 아시혈, 좌골신경통 혈자리를 환도침으로 놓고 기본뜸을 매일 환자 부인이 뜨도록 하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구당 기본침과 환도부분 아시혈에 환도침을 10개 정도 족태양방광경의 승부, 은문, 승근, 승산, 허벅지나 장딴지 아시혈에 환도침.

지금은 가슴위로 올라갔던 오른쪽 팔이 어느덧 아래로 내려와 편해졌으며, 매일 기본 뜸을 같이하고 매일 쌍용공원을 오전 ~오후 1시간씩 걷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14번째 치료하던날 환자의 얼굴에 구안와사가 있는게 보였습니다. 지금 오른쪽 상하의 몸체가 나으니까 얼굴에 구안와사가 생겨 입의 혀가 굳어 발음이 좋지 않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침을 흘리며 입이 약간 돌아갔음을 확인하고 구당 기본침과 예풍에 뜸, 이문 사죽공, 태양, 화료, 협차, 지창, 거료, 영향에 침을 놓고 치료하였습니다.

임맥의 승장과 염천에 침을 놓아 혀가 굳은 것을 바로 잡아 발음이 좋게 치료하였습니다. 하체부 태충, 중봉, 현종, 양릉천, 풍시, 요추2345번에 침뜸, 요양관 상료, 중료 하료 요유를 사방뜸 다리에는 승부 은문 부극 위중 승근 승산 부양 곤륜 은문 대도 족삼리 현종 아시혈 백회 용천 거료 환도 아시혈에 치료하였습니다.

환자는 몸이 건장하고 근육질이 발달하여 약한 사람보다 침으로 치료를 병행하였습니다. 조금 무리다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빠른 치료 효과를 본 것같습니다.

 

지금까지 치료한 결과 환자는 大滿足입니다. 환자 상태는 정상이나 다름없고, 자세히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약간 전다는 사실에에는 중풍환자인지 젼혀 모를 정도입니다. 구안와사도 정상으로 돌아와 아무 불편이없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더 치료는 계속 하기로 했습니다.

 

 

신의 한수

임수경(뜸사랑 정회원 31기)

[뜸은 배우면 배울수록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도 쌓여가는 화수분 같은 학문이라는 것을 정회원 시험 공부하면서 알게되었습니다. 또한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매력적인 학문이 바로 요법사가 되기 위한 공부라고 생각됩니다.]

 

바쁘게 걷다가 횡단보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앞으로 휙 지나가는 승용차를 피하려다 발을 헛디뎠습니다. 발목이 약간 시큰했지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 어느날 부터 아침 마다 발목에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정형외과를 찾았습니다.

年歲 지긋한 醫師선생님께서 '못 고쳐! 그냥 파스나 붙이고 살아.'하셨습니다.

 

동네 聖堂 교우들의 부부동반 모임에 나갔습니다.

'침과 뜸을 맞으면 좀 진정 될 텐데요.'

며칠 수 뜸사랑 선생님은 저의 집을 방문하셔서 뜸자리를 잡아주시는 등 치료를 해주셨습니다. 치료를 해주셨던 뜸사랑 선생님의 손길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또한 뜸사랑 선생님은 어떠한 대가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뜸사랑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뜸사랑 홈페이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뜸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니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말고 꾸준히 하시면 나도 모르게 내것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망설일때 마다 뜸사랑 선생님은 무한 勇氣를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구당 선생님의 활약상과 봉사선생님들의 후기를 읽으면 용기가 날 거라고 하셨습니다.

 

기본과정인 첫 3개월은 호기심의 몇 주를 빼고는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구당 선생님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고 있다는 기쁨이 오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변덕으로 일관했던 기본과정 3개월 동안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무극보양뜸 실기를 배워서 뜸에 대한 반신반의는 확신으로 바뀌었고 변덕은 기본과정 이수와 함께 보내버렸습니다.

 

전문과정 마지막 수업날 어머님께서 눈길에 미끄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반 동안 거동이 힘든 어머님께 치료를 해드렸습니다. 결국 저의 시어머님께서는 며느리의 어설픈 침술의 혜택을 입은 최초의 환자가 되셨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구당 선생님의 말씀처럼 더불어 사는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수 있는 奉仕者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몸'에 침뜸 공부'

로이미연(뜸사랑 정회원 31기)

[3번 유산한 친구에게 권한 무극보양뜸이 건강한 아이 出産의 디딤돌이 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결혼후 출산학 부터는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어지면서 하루하루 힘겹게 견디면서 가정생활을 꾸려가야하였다. 그렇게 십여년을 아무도 모르는 고통 속에 보내었다.

2014년 봄에, 나를 아껴주는 친구를 통해 침뜸공부를 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별로 뜨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도 있고, 뜸을 뜨면 여기저기 좋다는 말씀에 의심반 호기심 반으로 별 기대 없이 며칠을 집에서 뜸을 떠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 일 정도 지났는데, 내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氣力이 없던 몸에 힘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당장 시간을 내서 주말에 바로 찾아가 보았다. 마침 뜸사랑에 계신 분들이 親切하게 안내해주시고 곧바로 기본반 수강을 시작하였다.

반 선생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1년이 후딱 지나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시험에 떨어지면 절대 안 되겠다는 마음과 공부가 부족하다는 걱정이 교차하면서 정회원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반 선생님들과 예상문제 풀이도 같이 하고 교수님들이 요점 정리해주신것도, 그 동안의 공부를 정리하고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기시험장에 들어가니 구당 선생님께서 시험관으로 앉아 계셨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구당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편안하게 대해 주셨다. 천천히 아주 편안하게 친할아버지처럼 나를 대해 주시며 이런 저런 말씀을 해 주셨다.

試驗이 끝나자마자 나는 하늘을 날듯 기뻤다.

 

침뜸을 배운지 1년 반 정도 되었다. 지그 나의 건강은 아주 많이 좋아졌다. 무극보양뜸을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십 년 가까이 나 혼자서 품고 있던, 남에게는 말하기가 거북했던 여러 가지 잔병들이 하나씩 좋아지고, 검고 어둡던 얼굴 피부도 많이 환해졌다.

나에게 뜸을 만나게 해준 친구도 유산을 경험했지만, 계속 무극보양뜸을 뜬 결과 작년 11월 임신했고 올해 7월 말에 귀한 아들을 出産했다.

 

굳이 변증해 보자면, 肝血이 부족하여 힘줄이 영양을 받지 못해 사지가 저리고 충맥과 임맥을 충만시키지 못한 것 같다. 腎氣 부족으로 임맥이 실양되어 태가 안정되지 못하여 유산이 된것으로 보인다.

처음 치료혈로는 중완 족삼리 곡지 삼음교를 잡아서 뜸을 떴다. 뜸을 뜬 후 팔다리의 저림이 훨씬 좋아졌고 배의 통증이 완화되었고 소화작용도 좋아졌다고 한다. 기운이 나서 집안일도 쉽게 하고 나날이 건강해져서 남편과 식구들도 좋아했다고 한다.

 

침뜸의 효과를 확실히 경험하고 남편이 뒤쪽도 떠 줄수 있다고 하여 무극보양뜸을 뜨기 시작했다. 얼굴에 붉은 기와 윤기가 나기 시작했고 팔다리 저림은 없어졌다. 잠도 잘자고 입맛도 좋아졌으며 생활의 活力을 다시 찾았다고 기뻐하며 남편도 옆에서 침뜸의 효과를 확인하고 무극보양뜸 자리를 잡아 달라고 했다. 뜸은 매일 남편과 함께 뜨고 있다고 한다.

11월 말 임신 초기임을 발견했고 병원에서 확이눟 중극 수도 빼고 족삼리 중완은 환자가 다시 손발저림과 소화작용이 안 좋아질까 불안해 해서 약하게 두 장씩 떴다.

그리고 올해 7월에 마흔의 나이로 건강한 아들을 출산한 것이다.

 

 

'아내는 나와 함께 집으로 간다'

우기원(뜸사랑 정회원 31)

[장애인 복지관의 유사한 뇌출혈 환자와 견주어 보면 아내의 상태는 재활회복 속도나 자세 등이 훨씬 빠르고 바르다. 언어는 거의 90% 이상 회복되었고, 설거지, 청소, 빨래 널기 등의 가사일을 별 무리 없이 하고 있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로 가서 침뜸 치료를 받고, 집에서는 매일 뜸을 계속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무극보양뜸에 삼음교와 우측 두부 아시혈이 추가 된것이다.

31기로 침뜸요법사 자격을 취득하고 지금은 주 2회 구당 기본침과 무극보양뜸에 팔풍 팔사 태계 곡택 대릉 풍시에 자침하고 삼음교 해계 태계 간유 두부함몰 아시혈에 뜸을 뜨고 있다.

 

우측 뇌실질 출혈로 좌측 편마비가 와서 처음에는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지냈다. 퇴원후에도 식사는 휠체어에 앉혀서 안전벨트를 묶은 상태에서 떠 먹여주어야 했다. 차음 앉은 수 있게 되고 보행보조기에 의존하여 걸음을 연습할 정도로 회복되어 갔다.

이후 지팡이에 의존해서 걷기 시작하였다. 보행이 안정되어감에 따라 휠체어도 버리고 지팡이도 버렸다. 자세가 안정되어 혼자 힘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샤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함께 산길로도 운동을 간다. 다만 아내의 전공인 가야금은 아직 완벽한 연주가 어려운 상태이다. 하지만 초보자 레슨을 재개할 정도로 전반적인 상태가 개선되었다. 아내는 지금 쉰다섯이니 오년 정도 治療와 運動에 만전을 기할 일이다.

 

 

'7년을 더 살다 가신 친정아버지

김미숙(뜸사랑 370차)

 

입추, 처서를 지나선지 공기의 서늘함이 살갗에 닿는게 가을임을 몸에서 느낌니다. 자연의 理致에 순응하며 사람도 자연과 함께 순리대로 욕심내지 않고 살아간다면 건강하게 살겠죠.

조그만 쑥뜸과 가느다란 침바늘로 몸에 자극을 주어 치유가 된다는 게 너무나 神祕롭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어버지께서 흰수염을 길게 기르시고 하얀한복 도포를 입고 대나무통에 여러 鍼들을 넣고 다니며 간간이 마을에 오셔서 치료를 하셨는데 그걸 보고 느낀 신기함과 호기심은 이루말할 수 없었고 지금도 침 하나까지도 떠오를 정도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계기로 성인이 되어서 민간요법에 관심이 있었고, 많이 접하게 되어서 지금뜸사랑 초급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하는데 이제야 因緣이 닿았나 봅니다.

구당 침뜸은 추석특집 방송에서 접했으면 인터넷을 통해서 무극보양뜸 혈자리 잡는 구당 선생님 동영상과 책을 통해서 뜸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9년 전에 폐암2기 말 판정으로 좌측 폐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셨고 항암치료 3회를 하셨는데 항암후유증으로 발가락 신경을 다쳐서 저리고 통증이 와서 고통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정도 선에서 무극보양뜸 혈자리를 잡아 직접 뜨시게 했고 곡지, 족삼리, 중완, 기해, 관원 그리고 폐유, 고황는 아버지 뵐 때만 해드렸죠.

폐암은 예후가 좋지 않아서 생존율도 낮았는데, 7년을 덤으로 건강하게 사시다 2년 전에 결국 한쪽 폐에 이상이 생겨 76세로 돌아가셨습니다. 폐유, 고황을 많이 못 떠드린게 후회가 됩니다. 발견 당시 우측 폐도 폐기종이 심하여 힘들다 하셨는데 걸으실 때면 조금 걷다 쉬시곤 하셨지만 나중에는 漢拏山(한라산) 등반까지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가족들도 다 뜸 덕분에 7년을 덤으로 사시고 가신다 하여 뜸을 알게 해주신 구당 선생님께 감사해했습니다.

병간호할 때 몰래 병원에서 뜸뜨던 일이 走馬燈처럼 스칩니다. 구당 선생님을 한 번도 직접 뵙지 못했지만 존경하며 이렇게 좋은 뜸을 공개해 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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