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도간경(佛說稻竿經) >
*稻竿 : 볏짚

실역인명(失譯人名)동진록(東晋錄)에 붙어 있음
闕譯附東晉錄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시면서 대 비구(大比丘) 무리 1,250인과 대보살마하살((大菩薩摩訶薩) 무리와 함께 하셨다.
如是我聞。一時,佛住王舍城耆闍崛山中,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及大菩薩摩訶薩衆。

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이 미륵(彌勒)이 경행(經行)하는 곳에 이르렀다. 미륵과 사리불은 함께 돌 위에 앉았다.
爾時,尊者舍利弗,往至彌勒經行處,彌勒、舍利弗俱坐石上。

그때 존자 사리불이 미륵에게 물었다.
“오늘 세존께서 볏짚을 보시고 말씀하시되, ‘너희들 비구여, 12인연(因緣)을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며,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爾時,尊者舍利弗問彌勒言:‘今日世尊,睹見稻芉而作是說:汝等比丘,見十二因緣,卽是見法,卽是見佛。

그때 세존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는 잠자코 계셨습니다.
爾時,世尊作是說已,默然而住。

미륵이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이 수다라(修多羅)를 말씀하셨습니까? 모두 어떠한 뜻으로 ‘이 12인연을 보면 곧 이것은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곧 이것은 부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까?”
彌勒,世尊何故,說是修多羅,復以何義,說見十二因緣,卽是見法,見法卽是見佛,皆以何義,作如是說,云何是十二因緣,云何見因緣,卽是見法,云何見法卽是見佛?’

그때 미륵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12인연을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부처를 본다’고 하셨습니다.
爾時,彌勒語舍利弗言:‘佛世尊常說見十二因緣,卽是見法,見法,卽是見佛。

12인연이란,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있습니다. 뭇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여 큰 괴로움의 음[苦陰:苦蘊]의 작인(作因)1)이 됩니다.
十二因緣者,無明緣行,行緣識,識緣名色,名色緣六入,六入緣觸,觸緣受,受緣愛,愛緣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憂悲、苦惱衆苦聚集,爲大苦陰作因,是故佛說十二因緣。

어떤 것이 법인가? 8정도분(正道分)과 열반과(涅槃果)입니다. 여래께서는 간략히 이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云何是法,入正道分及涅槃果,如來略說是法,

어떤 것이 부처인가? 능히 일체 법을 깨달은 까닭에 부처라 합니다.
云何是佛,能覺一切法故,名爲佛。

만일 지혜의 눈[慧眼]으로써 참된 법신(法身)을 보면 능히 보리의 배울 법2)을 성취합니다.
若以慧眼,見眞法身,能成菩提所學之法。

어떤 것이 12인연을 보면 곧 법을 보며,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인가?
云何見十二因緣,卽是見法,見法卽是見佛?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2인연은 항상 상속하여 일어나되 남이 없고[無生], 여실하여 소견이 뒤바뀜이 없고, 남도 없고[無生], 지음도 없으며[無作], 유위(有爲)가 아니고 무위(無爲)여서 마음의 경계가 아니며, 고요[寂滅]하여 모습이 없다.
佛作是說,十二因緣常相續起無生,如實見不顚倒,無生無作,非有爲,無住無爲,非心境界,寂滅無相,

그러므로 12인연을 보면 곧 법을 본다.
以是故見十二因緣,卽是見法。

항상 상속하여 일어나되 남이 없고, 여실하여 소견이 뒤바뀜이 없고, 남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유위가 아니고, 머무름이 없으며, 무위여서 마음의 경계가 아니며, 고요한 모습이다.
常相續起無生,如實見不顚倒,無生無作,非有爲,無住無爲,非心境界,寂滅無相,

그러므로 12인연을 보면 곧 위없는 도가 구족한 법신을 본다’라고 하였습니다.
以是故見十二因緣,卽是見無上道,具足法身。’

존자 사리불이 물었다.
“어찌하여 12인연이라 부릅니까?”
尊者舍利弗問彌勒言:‘云何名十二因緣?’

미륵이 대답하였다.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면 이를 인연법(因緣法)이라 합니다.
彌勒答言:‘有因有緣,是名因緣法。

이는 부처님께서 간략하게 인연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니, 이 인으로써 이 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此是佛略說因緣相,以此因,能生是果。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 있습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지 않아도 또한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 있습니다.
如來出世,因緣生法,如來不出世,亦因緣生法,

성품과 모습은 항상 머물러서 모든 번뇌가 없고 궁극적으로[究竟] 여실(如實)하여, 여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이는 진실한 법으로서 뒤바뀜[顚倒]을 여읜 것입니다.
性相常住,無諸煩惱,究竟如實,非不如實,是眞實法,離顚倒法。

또 12인연의 법은 두 가지에서 생기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復次,十二因緣法,從二種生,云何爲二?

첫째는 인(因)이며, 둘째는 과(果)입니다.
一者因,二者果。

인연으로 생기는 법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안의 인연[內因緣]이 있고, 밖의 인연[外因緣]이 있습니다.
因緣生法,復有二種,有內因緣,有外因緣。

밖의 인연법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外因緣法,從何而生?

종자는 능히 싹을 내고, 싹에서 잎이 나고, 잎에서 마디가 나고, 마디에서 줄기가 나고, 줄기에서 이삭이 나고, 이삭에서 꽃이 나고, 꽃에서 열매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如似種能生牙,從牙生葉,從葉生節,從節生莖,從莖生穗,從穗生華,從華生實,

종자가 없는 까닭에 싹이 없고, 내지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있지 않거니와, 종자가 있는 까닭에 싹이 나고, 내지 꽃이 있는 까닭에 열매를 냅니다.
無種故無牙,乃至無有華實;有種故牙生,乃至有華故果生,

그러나 종자는 자기가 능히 싹을 낸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싹도 또한 자기가 종자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내지 꽃도 또한 내가 능히 열매를 낸다는 생각을 짓지 않고, 열매도 또한 내가 꽃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而種不作念:我能生牙,牙亦不作念:我從種生,乃至華亦不作念:我能生實,實亦不作念:我從華生,

그러나 실제로 종자는 능히 싹을 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밖의 인으로 나는 법[外因生法]이라 합니다.
而實種能生牙,如是名爲外因生法。

어떤 것이 밖의 연으로 생기는 법[外緣生法]인가? 云何名外緣生法?

이른바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ㆍ허공[空]ㆍ때[時]입니다.
所謂地、水、火、風、空、時,

땅의 종[地種]은 굳게 지니며, 물의 종[水種]은 적시고 윤택하며, 불의 종[火種]은 성숙하게 하며, 바람의 종[風種]은 일어나게 하며, 허공의 종[空種]은 장애를 짓지 않으며, 또 시절(時節)을 빌려서 기운이 화합하고 변하니, 이와 같은 여섯 연이 구족하면 곧 생기는 것입니다.
地種堅持,水種濕潤,火種成熟,風種發起,空種不作障㝵,又假於時節氣和變,如是六緣具足便生,

만일 여섯 연을 갖추지 못하면 물건은 곧 나지 못하거니와,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때와 이 여섯 연이 고루 화합하여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까닭에 물건은 곧 생길 수 있습니다.
若六緣不具物則不生。地、水、火、風、空、時六緣調和,不增減故,物則得生。

땅도 또한 자기가 능히 지닌다고 말하지 않고, 물도 또한 자기가 능히 윤택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불도 또한 자기가 능히 성숙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바람도 또한 자가기 능히 일어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허공도 또한 자기가 능히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며, 때도 또한 자기가 능히 종자를 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종자도 또한 자기가 여섯 연에서 싹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싹도 또한 자기가 몇 가지 연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地亦不言我能持,水亦不言我能潤,火亦不言我能成熟,風亦不言我能發起,空亦不言我能不作障㝵,時亦不言我能令生,種亦不言我從六緣而得牙,牙亦不言我從數緣生,

비록 생각을 짓지 않으나 이러한 몇 가지 연에서 납니다. 그리하여 실제에는 연의 화합에서 싹이 나옵니다.
雖不作念從爾數緣生,而實從衆緣和合得生,

또한 스스로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서 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와 남이 합하여서 나지 않으며, 또한 자재천(自在天)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때와 방위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본성(本性)에서 나지 않으며, 또한 원인 없음에서 나지 않으니, 이를 생기는 법의 차례라고 합니다.
牙亦不從自生,亦不從他生,亦不從自他合生,亦不從自在天生,亦不從時方生,亦不從本性生,亦不從無因生,是名生法次第,

이와 같아서 밖의 연으로 생기는 법은 다섯 가지 일을 말미암으니, 마땅히 아십시오. 단절되지 않는 것, 또한 항상하지 않는 것, 또한 이에서 저에 이르지 않는 것, 싹과 종자는 적으나 열매는 많음과 같은 것, 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다른 물건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如是外緣生法,以五事故,當知不斷,亦非常,亦不從此至彼,如牙種少果則衆多,相似相續,不生異物。

어떤 것이 단절되지 않는 것인가? 종자와 싹에서 뿌리와 줄기가 순서대로 상속하는 까닭에 단절되지 않습니다.
云何不斷?從種牙、根、莖次第相續故,不斷。

어떤 것이 항상하지 않는 것인가? 싹과 줄기와 꽃과 열매가 각각 스스로가 다른 까닭에 항상하지 않습니다.
云何非常?牙、莖、華、果,各自別故,非常。

또 종자가 멸한 뒤에 싹이 나는 것이 아니며, 또 멸하지 않고 싹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연법은 싹이 일어나면 종자는 물러납니다. 순서대로 나는 까닭에 항상하지 않습니다.
亦不種滅,而後牙生,亦非不滅,而牙便生,而因緣法牙起種謝,次第生故,非常。

종자와 싹의 이름과 모습이 각각 다른 까닭에 이에서 저에 이르지 않습니다. 종자는 적으나 열매는 많은 까닭이니, 마땅히 같지 않음을 아십시오.
種、牙名相各異故,不從此至彼,種少果多故,當知不一,

이를 종자는 적고 열매는 많다 합니다. 종자와 다른 열매를 내지 않는 까닭에 같은 것이 상속한다 합니다.
是名種少果多,如種子不生異果故,名相似相續。

이 다섯 가지 바깥 연으로써 모든 법은 생길 수 있습니다.
以此五種外緣,諸法得生。

안의 인연법이란 두 가지에서 생깁니다.
內因緣法從二種生,

어떤 것을 인(因)이라 하는가?
云何爲因,從無明乃至老死?

무명에서 내지 노사(老死)에 이르고, 무명이 멸하면 곧 행(行)이 멸하고, 내지 생(生)이 멸하는 까닭에 노사가 멸합니다. 무명을 인(因)하는 까닭에 행이 있고, 내지 생이 있음을 인(因)하는 까닭에 노사가 있습니다.
無明滅卽行滅,乃至生滅故則老死滅,因無明故有行,乃至因有生故則有老死,

무명은 자기가 능히 행을 낸다고 말하지 않으며, 행은 또한 내가 무명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으며, 내지 노ㆍ병ㆍ사는 또한 자기가 생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無明不言我能生行,行亦不言我從無明生,乃至老病死亦不言我從生生,

그러나 실제에는 무명이 있으면 행이 있고, 생이 있으면 노사가 있습니다.
而實有無明則有行,有生則有老死。

이것이 안의 인이 순서대로 생기는 법[內因次第生法]이라 합니다.
是名內因次第生法。


어떤 것이 안의 연이 생기는 법이라 하는가?
云何名內緣生法?

이른바 6계이니, 땅의 계[地界]와 물의 계[水界]와 불의 계[火界]와 바람의 계[風界]와 허공의 계[空界]와 식의 계[識界]3)입니다.
所謂六界: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

어떤 것을 땅이라 하는가? 능히 굳게 지니는 것은 땅의 계라 합니다.
何謂爲地?能堅持者,名爲地界:

어떤 것을 물이라 하는가? 능히 윤택하게 잠기는 것을 물의 계라 합니다.
何謂爲水?能潤漬者,名爲水界;

어떤 것을 불이라 하는가? 능히 성숙하게 하는 것을 불의 계라 합니다.
何謂爲火?能成熟者,名爲火界;

어떤 것을 바람이라 하는가? 능히 호흡이 드나들게 하는 것을 바람의 계라 합니다.
何謂爲風?能出入息者,名爲風界;

어떤 것을 허공이라 하는가? 능히 장애가 없게 하는 것을 허공의 계라 합니다.
何謂爲空?能無障㝵者,名爲空界;

어떤 것을 식이라 하는가? 네 가지 음(陰)과 다섯 가지 식을 혹은 명(名)이라 말하고, 또는 식이라 합니다.
何謂爲識?四陰、五識亦言爲名,亦名爲識。

이와 같은 법이 화합한 것을 몸이라 하고, 유루(有漏)의 마음을 식이라 합니다.
如是衆法和合,名爲身,有漏心名爲識,

이와 같이 네 가지 음을 다섯 감정의 뿌리[情根]에 견주어 색이라 하며, 이와 같은 여섯 연을 불러서 몸이라 합니다.
如是四陰,爲五情根,名爲色,如是等六緣名爲身,

만일 여섯 연이 구족하여 이지러짐이 없으면 곧 몸을 이루고, 이 연이 만일 줄면 몸은 곧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若六緣具足無損減者,則便成身,是緣若減,身則不成,

땅도 또한 내가 능히 굳게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도 또한 내가 능히 적셔서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불도 또한 자기가 능히 익어지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바람도 또한 자기가 능히 호흡을 출입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허공도 또한 내가 능히 장애 없이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도 또한 자기가 능히 자라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몸도 또한 몇 가지 연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地亦不念:我能堅持,水亦不念:我能濕潤,火亦不念:我能成熟,風亦不念:我能出入息,空亦不念:我能無障㝵,識亦不念:我能生長,身亦不念:我從數緣生,

만일 이 여섯 연이 없으면 몸은 또한 내지 못합니다. 땅도 또한 나[我]가 없고, 남[人]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壽命)도 없고,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며, 또한 남자 아님도 아니며, 여자 아님도 아니며,
若無此六緣,身亦不生,地亦無我、無人、無衆生、無壽命非男、非女、亦非非男,非非女。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물ㆍ불ㆍ바람 내지 식 따위도 모두 내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고, 내지 이것이 아니며, 저것이 아닙니다.
非此,非彼,水火風乃至識等,亦皆無我、無衆生、無壽命,乃至亦非此非彼。

어떤 것을 무명이라 하는가? 무명이란, 6계(界) 가운데서 하나라는 생각[一想]과 모은다는 생각[聚想]과 항상하다는 생각[常想]과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不動想]과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不壞想]과 안에서 즐거움이 생긴다는 생각[內生樂想]과 중생이라는 생각[眾生想]과 수명이라는 생각[壽命想]과 남이라는 생각[人想]과 나라는 생각[我想]과 내 것이라는 생각[我所想]을 냅니다.
云何名無明?無明者,於六界中,生一想、聚想、常想、不動想、不壞想、內生樂想、衆生想、壽命想、人想、我想、我所想,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많은 생각을 내는 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生如是種種衆多想,是名無明。

이와 같이 하여 다섯 가지 감정 가운데서 탐욕과 성내는 생각을 냅니다. 행도 또한 그러합니다.
如是五情中,生貪欲、瞋恚,想行亦如是。

일체 거짓 이름인 법에 집착함을 식이라 하며, 네 가지 음(陰)을 명(名)이라 하며, 색음(色陰)을 색이라 하니, 이것이 명색입니다.
隨著一切假名法,名爲識,四陰爲名,色陰爲色,是名名色。

명색이 자라나서 6입(入)을 내며, 6입이 자라나서 촉(觸)을 내며, 촉이 자라나서 수(受)를 내며, 수가 자라나서 애(愛)를 내며, 애가 자라나서 취(取)를 내며, 취가 자라나서 유(有)를 내며, 유가 자라나는 까닭에 능히 뒤의 음[後陰]을 내는 것을 생(生)이라 하며, 생이 자라나서 변하는 것을 노(老)라 하고, 받은 음이 부서지는 까닭에 사(死)라 하고, 능히 질투와 번열을 내는 까닭에 우비고뇌(憂悲苦惱)라 하고, 다섯 가지 감정이 어긋나는 것을 몸의 괴로움[身苦]이라 하고,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마음의 괴로움[心苦]이라 합니다.
名色增長生六入,六入增長生觸,觸增長生受,受增長生愛,愛增長生取,取增長生有,有增長故,能生後陰爲生,生增長變名爲老,受陰敗壞故名爲死,能生嫉熱故名憂悲苦惱,五情違害名爲身苦,意不和適名爲心苦,

이와 같은 따위의 괴로움이 모이고 쌓여서 항상 어둠에 있는 것을 무명이라 하며,
如是等衆苦聚集,常在闇冥,名爲無明。

모든 업을 짓는 것을 행이라 하며,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을 식이라 하며, 건립한 바가 있는 것을 명색이라 하며, 6근이 열리고 벌어짐을 6입이라 하며, 인연에 대하여 티끌을 취하는 것을 촉이라 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아들여 깨닫는 까닭에 수라 하고, 목마른 이가 마실 것을 구함과 같이 하는 까닭에 애라 하며, 능히 취하는 바가 있는 까닭에 취라 하며, 모든 업을 일으켜 짓는 까닭에 유라 하며, 뒤의 음이 비로소 일어나는 까닭에 생이라 하며, 세상에 머무름이 쇠퇴하고 변하는 까닭에 노라 하며, 최후에 부서지는 까닭에 사라 하며, 지난 일을 추억하여 느끼며, 말소리가 슬픈 것을 근심의 괴로움[憂苦]이라 하며, 일이 와서 몸에 핍박하는 것을 고뇌(苦惱)라 하며, 추억하여 생각하되 상속하는 까닭에 슬픔[悲]이라 하며, 번뇌에 얽매인 까닭에 뇌(惱)라 합니다.
造集諸業名爲行,分別諸法名爲識,有所建立名爲名色,六根開張名爲六入,對緣取塵故名爲觸,受覺苦樂故名爲受,如渴求飮故名爲愛,能有所取故名爲取,起造諸業故名爲有,後陰始起故名爲生,住世衰變故名爲老,最後敗壞故名爲死,追感往事言聲哀慼名爲憂苦,事來逼身是名苦惱,追思相續故名爲悲,煩惱纏縛故名爲惱,

삿된 소견과 허망한 견해를 무명이라 하며, 이 삿된 견해로써 세 가지 업을 일으키는 까닭에 행이라 하며, 착하거나 악한 따위의 업이 능히 과보를 받게 하는 까닭에 식이라 하니, 더러운 무기에서 더러운 무기의 식을 내며, 움직이지 않는 업은 움직이지 않는 식을 냅니다.
邪見妄解名爲無明,以此邪解,起於三業故名爲行,善惡等業能受果報故名爲識,從污穢無記業生污穢無記識,不動業生不動識,

식에서 명색이 나고, 명색에서 6입이 나며, 6입에서 촉이 나며, 촉에서 수가 나며, 수에서 애가 나며, 애에서 취가 나며, 취에서 유가 나며, 유에서 생이 나며, 생에서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납니다.”
從識生名色,從名色生六入,從六入生觸,從觸生受,從受生愛,從愛生取,從取生有,從有生生,從生有老死、憂悲、苦惱。’

미륵은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12인연에 각각 과가 있으니 항상하지도 않고 단멸(斷滅)하지도 않으며, 유위도 아니고, 유위를 여의지도 않으며, 다한 법도 아니고, 욕심을 여읜 법도 아니며, 멸하는 법이 아니어서,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부처님이 안 계시거나 상속하면서 끊임없음이 강물의 빠른 흐름에 사이와 끊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彌勒語尊者舍利弗:‘十二因緣各各有果,非常非斷,非有爲不離有爲,非盡法,非離欲法,非滅法,有佛無佛相續不斷,如河駃流,閒無絕時。’

그때 미륵은 거듭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12인연에 각각 인(因)이 있고, 각각 연(緣)이 있으니, 항상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유위도 아니고, 유위를 여의지도 않으며, 다한 법도 아니고, 욕심을 여읜 법도 아니며, 멸하는 법도 아니어서, 부처님이 계시거나 부처님이 안 계시거나 상속하여 끊임없음이 강물의 빠른 흐름에 간격과 끊일 때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爾時,彌勒重語尊者舍利弗:‘十二因緣各各有因,各各有緣,非常非斷,非有爲不離有爲,非盡法,非離欲法,非滅法,有佛無佛相續不斷,如河駃流,閒則無絕,

능히 네 가지 연으로써 12인연을 자라나게 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能以四緣,增長十二緣。何等爲四?

무명(無明)ㆍ애(愛)ㆍ업(業)ㆍ식(識)입니다. 식은 종자의 체(體)가 되고, 업은 밭의 체가 되고, 무명과 애는 번뇌의 체이라서 능히 식을 자라나게 합니다.
無明愛業識,識爲種體,業爲田體,無明愛是煩惱體,能生長識,

업은 식의 밭이 되고, 애는 부드럽게 적시며, 무명은 식의 종자를 덮습니다.
業爲識田,愛爲潤漬,無明覆植識種子,

업은 자기가 능히 식의 종자를 덮어서 심는다고 생각을 짓지 않으며, 애는 또한 내가 능히 부드럽게 적신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명도 자기가 능히 식의 종자를 덮어서 심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식도 자기가 그러한 인연에서 좇았다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業不作念:我能生識種,愛亦不作念:我能潤漬,無明亦不作念:我能覆植識種,識亦不作念:我從爾所因緣。

또 업을 식의 밭으로 삼고, 무명을 거름으로 삼고, 사랑의 물로 윤택함을 삼아서 곧 명색 따위의 싹을 냅니다.
復次,業爲識田,無明爲糞,愛水爲潤,便生名色等牙,

그러나 명색의 싹은 스스로에서 나지 않으며, 남에게서도 나지 않으며, 스스로와 남이 합하여 나지도 않으며, 자재천에서 나지도 않으며, 때와 방위에서 나지 않으며, 체에서 나지도 않으며, 인연 없이 나지도 않습니다.
而名色牙,亦不從自生亦不從他生,亦不從自他合生,亦不從自在天生,亦不從時方生,亦不從體生,亦不無因緣生。

또 애욕의 즐거움[欲樂]과 부모의 정기와 인연이 화합하는 까닭에 명색의 싹이 나니, 주장 없고, 나 없고, 조작 없고, 수[壽]가 없고, 마치 허공과 같고, 허깨비와 같아서 인연이 화합함으로부터 나옵니다.
復次,欲樂父母精氣,衆緣和合故生色牙,無主無我,無造無壽者,猶如虛空如幻,從衆因緣和合而生。

또 존자 사리불이여, 안식(眼識)은 다섯 가지 인연에서 생깁니다.
復次,尊者舍利弗,眼識從五因緣生。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眼]과 색(色)과 밝음[明]과 허공[空]과 뜻 지음[作意]이니, 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云何爲五? 眼、色、明、空、作意,識便得生,

안식은 안근(眼根)에 의하여 색으로써 경계를 삼고, 밝음을 연하여 비춤[照明]을 삼고, 허공은 장애를 짓지 않고, 뜻 지음을 일으키는 까닭에 안식이 생깁니다. 이와 같아서 만일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안식은 생기지 못합니다.
眼識依眼根,以色爲境界,緣明以爲照,虛空不作障㝵,作意起發故,生眼識,如是衆緣若不和合,眼識則不生,

그러나 안식은 또한 내가 능히 주체의 모습이 된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니, 색도 또한 내가 능히 경계가 된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밝음도 내가 능히 걸림이 없게 한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뜻 지음도 내가 능히 안식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안식도 내가 몇 가지 연에서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而眼識亦不作念:我能作體想色亦不作念我能作境界明亦不作念:我能照了,空亦不作念:我能無㝵,作意亦不作念:我能發起眼識,眼識亦不作念:我從數緣生,

이와 같이 하여 안식은 실로 거짓이어서 연이 화합하여 생깁니다.
如此眼識,實假衆緣和合而生。

이와 같은 차례로 모든 근(根)이 식(識)을 냄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如是次第諸根生識,亦如是說。

또 사리불이여, 이 세상으로부터 다른 세상에 이를 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업과(業果)가 장엄하고 인연이 화합하면 곧 생깁니다.
復次,舍利弗,無有法從此世至他世,但業果莊嚴,衆緣和合便生。

또 사리불이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능히 얼굴의 그림자를 나타냄과 같으니, 거울과 얼굴은 각각 다른 곳에 있으나, 오고 감이 없이 물건은 같은 곳에 나타납니다.
又復舍利弗,譬如明鏡,能現面像,鏡面各在異所,而無往來,物見同處。

하늘의 밝은 달은 땅과 4만 2천 유순(由旬) 거리에 있지만, 물이 아래에서 흐르고 달이 위에서 빛이 나면, 밝은 모양[玄象]은 비록 하나이지만 그림자는 여러 물에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달의 체(體)는 내려오지도 않았고, 물의 본질[質]은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又復舍利弗,如月麗天去地四萬二千由旬,水流在下,月曜於上,玄象雖一,影現衆水,月體不降,水質不昇。

이와 같아서 중생은 이 세상에서 뒷세상에 이르지 않으며, 뒷세상에서 다시 이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업과(業果)의 인연은 알맞게 갚음이 있으며, 줄지 않습니다.
如是舍利弗衆生不從此世至於後世,不從後世復至於此,然有業果因緣報應,不可損減。

또 사리불이여, 불길이 나무를 얻으면 곧 타고 나무가 다하면 곧 그치는 것과 같이, 이렇듯 업을 맺어서 식이 나고, 모든 갈래에 두루하여 능히 명색의 과를 일으킵니다.
復次,尊者舍利弗,如火得薪便然,薪盡則止。如是業結生識,周遍諸趣,能起名色果,

나가 없고[無我] 주체가 없고[無主], 또한 받을 이가 없으며[無受者], 허공과 같고, 더운 때의 아지랑이와 같으며,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아 실다운 법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착하거나 악한 인연의 과보는 업을 따르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無我無主,亦無受者,如虛空,如熱時炎,如幻如夢,無有實法,而其善惡因緣果報,隨業不亡。

또존자사리불이여, 12인연은 또한 다섯 가지 인연에서 생기니, 항상하지 않는 것ㆍ단절되지 않는 것ㆍ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ㆍ인은 적고 과는 많은 것ㆍ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순서대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又復尊者舍利弗,十二因緣亦從五因緣生,非常非斷,不來不去,因少果多,亦相似相續,次第而生。

어떤 것이 항상하지 않는 것인가?
云何非常?

하나의 음(陰)이 멸하고 하나의 음이 나니, 멸은 곧 생(生)이 아니며, 생은 곧 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항상하지 않다고 합니다.
一陰滅,一陰生,滅非卽生,生非卽滅,故名非常。

어떤 것이 단절되지 않는 것인가?
云何不斷?

천칭[秤:저울}의 높고 낮음과 같이 이에서 멸하여 저기에 나니, 그러므로 단절되지 않는 것이라고 여실하게 알고 보아야 합니다.
如秤高下,此滅彼生,故名不斷,如實知見。

어떤 것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인가?
云何不來不去?

종자가 가서 싹에 이르는 것이 아니며, 또한 싹이 와서 종자의 처소로 나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이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적은 종자로써 많은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無有子去,而至於牙,亦無牙來,而趣子,所以是緣故,無有從此至彼,然實以少種,能生多果。

어떤 것이 비슷한 것이 나는 것인가?
云何相似而生?

착하지 못한 인은 착하지 못한 과를 내며, 착한 인은 착한 과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난다고 합니다.
如不善因生不善果,如善因生善果,以是故名相似相續而生。

또 사리불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능히 12인연을 관찰하면 이를 바른 소견[正見]이라 합니다.
又復舍利弗,如佛所說,能觀十二因緣,是名正見。

만일 12인연을 바르게 관찰하면 과거의 몸에 대하여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미래의 몸에 대하여도 또한 없다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若正觀十二因緣者,於過去身中,不生有想,於未來身中,亦不生無想。

중생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衆生爲從何來,去何所至?

만일 사문이거나 바라문이거나 세간 사람이 모든 소견인 아견(我見)과 중생견[衆生見]과 수명의 소견[命見]과 장부의 소견[丈夫見]과 길하거나 길하지 못한 소견[吉不吉見]을 성취합니다. 이와 같은 12인연은 패다라(貝多羅)나무의 순을 끊으면 다시 날 수 없는 것과 같이 나의 소견[我見]이 즉시에 제거됩니다.
若沙門、婆羅門及世閒人,成就諸見,我見衆生,見命,見丈夫,見吉不吉,見如是十二因緣,如多羅樹翦滅其首,更不得生,我見則除。

만일 어떤 사람이 12인연을 바르게 보면 곧 이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思心]을 얻습니다.
若人正見十二因緣,若得如是思心。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능히 이 법을 인지(認知)하면 이는 다타가도(多陀伽度)ㆍ아라가(阿羅伽)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께서 반드시 그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수기를 주실 것입니다.”
尊者舍利弗,若有衆生,能忍是法,此多陁阿伽度、阿羅呵、三藐三佛陁、善逝、世閒解、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必爲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존자 사리불은 미륵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물러갔다.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와 모든 대중은 미륵에게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尊者舍利弗,聞彌勒作是說已,歡喜而去,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及諸大衆,頂禮彌勒,歡喜奉行。

佛說稻芉經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작인은 생인(生因)이라고도 한다. 실재의 처소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나 인연을 말한다.
2)
‘보리의 배울 법’이라 함은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말한다.
3)
앞에서는 식계가 시계(時界)로 되어 있다."










● 연지대사 왕생집 속록(續錄)


왕생집 목록(往生集目錄)
서문
제1권 비구의 왕생(沙門往生類)
제2권 왕과 신하의 왕생(王臣往生類)
제3권 처사의 왕생(處士往生類)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속록(續錄)
1. 요즘 왕생한 분
2. 모든 성인(聖人)이 한 곳으로 돌아감
3. 대략 존숙(尊宿)들의 법과 살아서 감응을 얻음
4. 총론과 전적(典籍), 발원문

● 속록(續錄)

1. 요즘 왕생한 분

요즘 왕생한 분으로서 내가 직접보고 들은 것을 이어서 기록한다. 그래서 2권의 끝에 붙이고 부류(部類)나 앞뒤를 나누지 않는다.

• 본명(本明)스님 

대명(大明)의 본명은 통주(通州) 정가사(靜嘉寺)의 스님이 평소 고상한뜻이 있고 범행(梵行)이 청정했으며 강학(講學)에 전념했던 분이다. 나중에는 강학을 버리고 정토(淨土)에 전심하여 매일 예념(禮念)하는 일을 오래토록 거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경미한 병이 들자 스스로 때가 이른 것을 알고는 대중(大衆)에게 고별하고 편안히 갔다 기이한 향기가 7일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 주강소부(朱綱少府)

대명(大明)의 주강(朱綱)은 경도(京都)사람이다. 유업(儒業)을 익혀 향거(鄕擧)에 뽑혔고 세 번이나 춘관(春官)에 올랐으나 뽑히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부(二府: 중서성추밀원)의 벼슬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 나와서는 정토를 전수(專修)하여 하루에 염불 3만번을 15년동안 조금도 게으름 없이 실행하였다 임종에는 걸상에 앉아 두 손에 염주를 들고 염불을 끊이지 않더니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자 아미타부처님이 오셨다하고는 연신 염불하며 갔다.


• 우(于)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우(于) 할머니는 북경 평창부(平昌府) 소촌(邵村)의 우귀(于貴)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염불(念佛)로 공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깨끗히 빨아 입고는 아들에게 내가 이젠 정토에 왕생해야겠다 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때가 되자 책상을 들어내 마당 가운데 놓고는 책상위에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와 하늘 음악을 온 마을사람들이 다 들었다.


• 고(顧)거사

대명(大明)의 고원(顧源)은 금능(金陸)사람으로 자호(自號)는 보당 거사(寶幢居士)다. 어려서부터 시(詩)를 지을 줄 알았고 초서(草書)를 잘 썼다. 중년에는 한결같이 정업(淨業)에 뜻을 두었다. 나중에 경미한 병이 들어 승속의 도우(道友)를 모우고 열 번의 아미타불을 염(念)하고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하였다. 누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하고 세계는 금색인데 부처님이 가사(袈裟)로 나를 덮어주시니 나의 몸이 이미 연화(蓮華)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하였다

그 때 온 대중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슬피 울기를 마지않으니 거사가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다. 이곳에 만약 분명하면 어느 곳인들 확실하지 않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서 사람들을 물리치며 여러 말을 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 공중에서 부처님이 나를 맞이하신다. 삼고(三鼓)에는 가련다하였다. 그 시각이 되자 편안히 웃음을 머금고 갔다. 소종백(少宗伯) 예부시랑(禮部侍郞)인 은추명(股秋溟)선생이 이러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찬(讚)
폼이 이미 연꽃 속에 있었다 하니 왕생(往生) 하기는 반드시 왕생했을 것이요,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라 하니 가는 것이 실제로는 가는 것이 아니리랴. 거사의 왕생은 당연히 중하품(中下品)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 방(方)씨

대명(大明)의 방(方)씨는 생원(生員) 오웅도(吳應道)의 부인이었다. 30세에 홀로되어 절개를 지키며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정토를 전수 하였다. 한 노파(老婆)가 있었는데 이이도 재계(齊械)하며 20년 동안 그를 따랐다. 만력(萬歷) 을유(乙酉)에 그때 나이가 50세이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병(病)이 들었다.

노파를 불러 서로 마주보고 한마디 말이나 그 외 잡무도 일체 멀리하고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하루 전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다음날 새벽에 향을 피워 예불(禮佛)하고 자리에 앉아서 갔다. 아들 용선(用先)은 진사(進士)에 급제한 이로 결코 거짓말할 자가 아니다 나에게 시말(始末)을 이렇게 말해 주었다


• 장(張)군의 어머니

대명(大明) 장(張)군의 어머니인 도(陶)씨는 장수(長水) 수약거사(守約居士)의 후처였다. 거사가 불법을 신봉했으므로 장군의 어머니도 거사에게 감화 되어 하루에 예송(禮誦)을 정해놓고 어김없이 실행하였다. 거사(居士)가 보타산(普陀山)으로 기도 차 떠난 사이에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나는 평생 이 마음이 부처가 되니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하는 두 마디 말을 참구(參究)하여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초 4일날 나는 간다하였다.

그날이 되어 단정(端正)히 앉아 갔다. 다음날 거사가 돌아와 시신을 염습을 하였는데 잠시 후에 관 위에 청연화(靑蓮華)다섯 송이가 피었다 거사가 매우 놀라며 늘 같이 지내면서도 그의 도행(道行)이 이런 줄 알지 못했다하며 부끄러워하였다. 원근(遠近)에서 이 사실을 보고 들은 자들이 찬탄하고 경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조향(祖香)

대명(大明)의 조향(祖香)은 강서(江西) 신유(新喩) 사람으로 산동(山東) 용담사(龍潭寺)에서 정업을 정수(精修)하였다. 왕걸(王傑)어라는 거사가 암자를 짓고 그를 맞이해 갔으므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얼마 후 왕걸(王傑)에게 말하기를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겠소 하였다. 대중이 더 머물러 주기를 간청했더니 안양(安養)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하였다. 그날이 되어 자리를 펴고 서(西)쪽을 향해 앉아 갔다. 감실(龕室)을 들고 산으로 들어갔더니 불이 일어나 저절로 다비가 되었다.


• 곽대림(郭大林)

대명(大明)의 곽대림(郭大林)은 탕음(場陰)사람이다 평소 성품이 단정하고 소박하여 늘 세상을 떠날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마침 어떤 스님에게서 염불의 가르침을 받고 일심으로 정토(淨土)를 생각하였다. 나이 76세에 하루는 자식에게 내일 정오(正午)에 가련다하고 고별(告別)하고는 그 시각에 앉아서 갔다.


• 유통지(劉通志)

대명(大明)의 유통지(劉通志)는 경도(京都)사람으로 염불(念佛)에 온 정성을 기울였던 분이다. 나이 52세에 병을 얻었으나 염불을 더욱 간절히 하였다. 그 때 이웃 사람인 이백재(李白齎)라는 자가 먼저 죽었는데 유통지(劉通志)가 아침에 숨이 넘어갔다가 정오가 되어 다시 소생하여 가족(家族)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마침 배 한척을 발견하였는데 정토(淨土)로 간다 하더군. 배에는 서른여섯 사람이 타고 있었어. 이백재(李白齎)도 있었고 나도 그중 한사람 이고 그런데 의복이 깨끗지 못하고 염주(念珠)를 가져 오는 것을 잊어버렸어. 그래 내가 그랬지 옷을 갈아입고 염주를 가져 올 테니 잠시 배를 기다려 달라고. 가족들이 황급히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었더니 잠시후에 갔다.


• 손(孫)씨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중관(中官)인 손명(孫名)의 어머니는 일생 재계(齋戒) 하며 염불(念佛)하던 분이다. 나이가 연로하여 경미한 병을 앓았는데 스스로 때가 이른 것을 알고는 그의 아들에게 앉아서죽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슬피 울며 만류하자 부득이 감실(龕室)을 준비하게 하였다. 때가 되어 감실에 들어가 편안히 앉아서 죽었다.


• 당체여 문학(康體如 文學)

대명(大明)의 당정임(唐廷任)은 절(浙)의 난계(蘭溪) 사람으로 호는 체여 거사다. 부모에게 효양(孝養)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천성이 출중하여 소시에 학교에서 배울 적에는 명성이 높았다. 얼마 후 세상이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불법(佛法)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어 운서(雲棲)에 참예(參詣)하여 염불삼매를 배웠다 그리하여 힘써 행하여 무릇 13 년 동안을 하루같이 오직 서방(西方)으로 돌아갈 것에만 뜻을 쏟았다.

만력(萬歷) 계묘(癸卯) 나이 예순 살 나던 해 11월 초하룻날 문득 자식들에게 신춘(新春)11일 날 나는 간다하였다. 며칠 전까지 예송(禮誦)을 평시와 같이 하고 그날이 되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손으로 결인(結印)을 하고서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는 웃음을 머금고 갔다. 마치 선정(禪定)에 든듯하였다.

찬(讚)
거사가 입멸(入滅)하려 하자 자식들이 아버님께서 임종(臨終)하시는 여러 가지 정황을 운서사(雲棲寺)에 알려 왕생전(往生傳)에 올리오리까하고 여쭈었다.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반드시 우리스님에게 말씀드려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꾸미려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한다.

왕생전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스님께서 스스로 견해가 계실 것이니 절대 왕생전에 오르지 않았다 하여 언짢은 표정을 짓거나 언짢은 마음을 먹지 마라. 아 ! 이것으로 평소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을 것이요 평생 정토(淨土)를 깊이 신앙하였고 웃음을 머금고 갔으니 왕생을 어찌 의심하랴


• 양가의 문학(楊嘉禕 文學)

대명(大明) 양가의(楊嘉禕)의 자는 방화(邦華)니 태화(泰和)사람으로 세족의 자손이었다. 13세에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켜 벼룩이나 이도 죽이는 법이 없었고 23세에 남옹(南雍)에서 공부하다 얼마 후 병이 나서 만력 을사(乙巳) 11월 19일에 죽었다. 죽기 전에 꿈에 지옥(地獄)을 여행하다 명양전(冥陽願)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친견하고 꿈에서 깨어나서는 모든 생명을 방생(放生)하고 스님을 맞이하여 경(經)을 읽고 염불하였다.

어느 날 사람들에 게 나는 가야겠다. 푸른 연(蓮)꽃이 내 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정토의 경계(境界)가 아니겠는가"하고는 밤낮으로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촛불을 끄게 하고는 너희들은 촛불을 의지해야만 밝게 생활할 수 있지만 나는 촛불이 필요(必要)없다. 늘 광명(光明)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고 물으니 네 가지 색깔의 연(蓮)꽃이 피어있었다 하였다.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했습니까? "아미타부처님께서 천장(千丈)의 몸을 나타내신 것을 보았다. 관세음보살은 몸이 아미타부처님과 같았다. 대세지보살은 뵙지 못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는 갑자기 일어나 향(香)을 들고 연거푸 소리하기를, 아미타경(阿彌陀經)의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이루 말할 수 없다 ! 이루 말할 수 없다 !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하고는 고요히 갔다.

찬(讚)
방화(邦華)는 성품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여러 전적(典籍)을 원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이미 내전(內典)에 골몰한 이후에는 유독 내전의 정토법문에만 전념하였다 그가 임종에 아미타경의 공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고 세 번 부르짖은 것은 직접 본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말도 절실했던 것이다. 그의 중형(中兄)인 가조(嘉祚)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면서, "제가 거짓말을 했다면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질 것입니다"하고 맹서한 것은 그도 역시 직접 본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말도 절실했던 것이다. 정토를 믿지 않는 자는 생각해 보라.


• 학희재 문학(郝熙載 文學)

대명(大明)의 학희재(郝熙載)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법명은 광정(廣定)이다. 평생 충직하고 진실하여 학교에서 덕행으로 이름이 났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좌선과 예송(禮誦)으로 밤낮을 잊었다. 만력(萬歷) 신해(辛亥) 봄 2월에 병이 들었는데 매일 잠에서 깨어나서는 내가 꿈에서 부처님을 친견코자 했으나 부처님은 뵈옵지 못하고 숲속에 모여 있는 새 떼들만 보았다 하였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27일 정오에 갑자기 머리를 들어 창(窓)밖을 바라보고는 그의 아들 세한(世翰)에게, "오늘 헤어지면 이젠 그만이다"하고는 가인(家人)을 돌아보며 은전(銀錢)을 준비(準備)하게하였다. 얼마 후 내가 조금 전에는 혹시 관리를 만날까하여 미리 준비 했던 것인데 지금은 필요없게 되었다하였다. 삼고(三鼓, 오후 11시~1시)가 되자, "두 명의 동자(童子)가 와서 나를 맞이한다. 부처님의 연화대(蓮華臺)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간다"하고는 편안히 갔다.


• 주(朱)씨

대명(大明) 진(陳)군의 어머니인 주(朱)씨는 오군(吳郡) 가정(嘉定)사람으로 준천(濬川) 거사의 부인이다. 천성이 효자하여 본디부터 삼보(三寶)에 귀의하였으나 나이 81세에 그의 아들이 운서(雲樓)로 찾아와 염불왕생(念佛往生)을 지도 받게 한 이후로 정업(淨業)에 독실히 뜻을 두게 되었다. 2년이 지나 병색을 보이더니 죽기 3일전에 집 앞에서 누가 큰 소리로 주씨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그러자 주씨가 두 푸른 옷을 입은 자가 여기 있다하였다. 그 때는 이미 병세가 차츰 쇠잔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단정히 앉았다.

아들들이 자리에 눕도록 권해드렸으나 곧 그대로 편안히 갔다. 시체를 중당(中堂)으로 모셔 위를 향하여 눕혔더니 시체가 스스로 서(西)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온 식구가 깜짝 놀라며 지극한 정성으로 감응한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찬(讚)
학군의 아버지와 진군의 어머니는 모두 청의(靑衣)동자(童子)의 상서(祥瑞)가 있었으니 당연히 인천(人天)에 태어날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후 한분은 부처님의 연대(蓮臺)가 나타나셨고 한분은 서쪽을 향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 또한 당연히 정토(淨土)에 왕생하실 것 이었다. 이렇게 두 가지 모양이 동시에 나타났으니 왕생하리라는 것을 확정할 수는 없다. 설사 왕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왕생은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 서(徐)씨

대명(大明) 육(陸)군의 어머니인 서(徐)씨는 가정(嘉定) 사람으로 흘어미가 된 후로 정업(淨業)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남편이 전에 천금(千金)을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문서를 불태우고는 돌려받지 않았으며 패물(佩物)을 꺼내 남에게 보시하고는 늘 부처님 곁에서 예송(禮誦)하는 일로 날을 보냈다. 이렇게 한지 10년 만에 하루 저녁에는 심부름하는 사람을 부르더니 동방(東方)에 광명이 비치는것이 보이느냐? 내가 이젠 왕생(往生)할 때가 다가왔다. 너희들도 나를 도와다오하고는 큰소리로 염불(念佛)하고는 합장하고 갔다


• 과광태(戈廣泰)거사

대명(大明) 과이안(戈以安)의 법명은 광태로 전당(錢塘)사람이다. 성품이 매우 효순하고 평소 널리 선행을 쌓았으나 이를 감추고 남이 알아주는 것을 원(願)치 않았다. 만년에는 부처님을 섬기는 일에 정성을 다 바쳐 영지사(靈芝寺)의 현소(玄素)스님과 함께 봄가을 두 때로 염불회(念佛會)를 열었고 화엄경 등 다섯 가지의 경전을 독송하였다. 어느 날,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갈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서방(西方)으로 돌아갈 자량(資糧)을 마련해야하겠다"하고는 문을 닫아걸고 조석으로 예송(禮誦)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리 돌아갈 날짜를 그음 달 21일로 정해 두었다. 이틀 전 저녁에 모자(母子)가 둘러앉아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있으니 거사가 웃으며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무얼 슬퍼하느냐? 나는 정토(淨土)에 마음을 기울여 미타(彌陀)를 친견하였다. 너희들은 정애(情愛)에 걸려 나의 정념(定念)을 어지럽히지 말라"하고는 현소(玄素)스님에게 다정히 조념(助念)을 부탁하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는 때가되자 고요히 갔다.

찬(讚) 
어떤 스님이 명부(冥府)에 들어가서 보니 거사가 고요한 방에 편안히 앉아 있는데 책상 위에는 온갖 경전들이 쌓여있었고 뜰에는 붉은 대와 바위산이 어우러져 수려하기가 마치 동천(洞天)과 같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사는 마땅히 극락에 왕생했었어야 할 것인데 어찌 하여 아직도 명부(冥府)에 머물고 있는 것 일까? 아마 평소에 송경(誦經)에 뜻이 간절하여 경전에 대한 소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으로 나중에는 왕생하리라고 여겨진다.


• 두(杜)거사(居士)

대명(大明)의 두거사(杜居士)는 순천부(順天府) 완평현(宛平縣)사람으로 서산(西山 )서광사(瑞光寺) 곁에 있는 낡은 사당(祠堂)에 숨어 집안일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30년 동안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내가 고향사람인 동광책(童廣策)에게 그를 찾아보게 한 적이 있었는데, 거사가 어디서 왔는가고 묻기에 항주라고 대답했더니, "그대가 항주 사람이라고 하니 운서굉(雲樓宏) 공(公)을 아시오?" 하였다한다.

"저의 스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거사는 합장하고 염불하며 다시 다른 말이 없었다 한다. 죽을 때가 되어 9일 동안 예참(禮懺)하여 예참문이 간절한 곳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음식을 끊고 몇 모금의 물만을 마실 뿐이었다. 그렇게 예참을 마치고서는 앉아서 갔다. 보름동안 안색이 생시와 같았고 오색구름이 지붕위에 서리고 있는 것을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 손대우(孫大玗) 거사

대명(大明)의 손숙자(孫叔子)는 법명이 대우(大玗)다. 12살 때부터 아버지인 경오(鏡吾) 거사를 따라 사십팔원(四十八願) 아미타상을 모시고 운서(雲樓)에 와서 오계를 받았다. 그리고서 집에 돌아가서는 오신채와 육식(肉食)을 끊고 교류를 자제 했으며 학문을 그만두고 염불에만 전념하여 금대(金臺)에 오르기만을 발원하며 몸과 마음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 후에 두 비구(比丘)가 연화(蓮華)를 들고 일심(一心)으로 정토(淨土)를 발원(發願)한다 고 인가(印可)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화인(化人)이 금강경(金剛經)을 밤낮으로 읽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벌떡 일어나 앉아, "미타(彌陀)와 관음(觀音)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금강권인(金剛拳印)을 맺고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고는 고요히 갔다. 그 때는 만력 신해(辛亥) [1611] 11월 11일이었다.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가 세상에 전한다. 상세한 것은 오태사(吳太史)의 서생전(西生傳)에 기록되어 있다


찬(贊) 
오태사는 우리 거사를 보고 우(玗)의 집에는 해마다 상서로운 풀이 돋았고 죽은 해에는 크기가 말[斗]만한 금(金)과 같고 옥(玉)과 같고 해와 달과 같은 광명이 비쳤다. 이로 미루어 그의 왕생의 상서를 징험할 수 있다하고 이에 손숙자서생전(孫叔子西生傳)을 썼다. 태사(太史)는 허황한 말을 하지 않는 자다. 덧붙여 이런 사실을 적어 둔다.

*화인(化人) :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근기에 맞추어 일부러 모양을 변해서 사람의 몸을 나타내는 것.


• 오거사(吳居士)

대명(大明)의 오거사(吳居士)는 인화(仁和)사람으로 이름은 대은(大恩) 별호는 앙죽(仰竹)이다. 평소에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음덕(陰德) 베풀기를 좋아하여 죽어가는 생명을 방생(放生)하고 고난을 겪는 자를 구원했으며 이웃을 돕고 미납한 세금을 대신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흐리고 흙비가 내리던 중에 광명을 만나기도 했고 배가 뒤집힐 지경에서 반풍(반風)을 만나기도 하는 등 갖가지 상서로운 과보를 감응하였다. 그리고 불법에 마음을 기울여 조석으로 경을 읽고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진에 게으름이 없었다. 만력 40년 5월 3일 대중에게 고별하고 결가부좌하고 단정히 앉아갔다. 방안에 향기가 감돌고 기색이 생시와 같았다. 자세한 것은 인지엄(印持嚴)이 지은 전(傳)에 기록되어 있다.


• 오(吳)거사

대명(大明)의 오(吳)거사는 신안(新安)의 세족(勢族)으로서 이름은 계훈(繼勛) 자는 용경(用聊) 별호는 십여거사(十如居士)다. 성품이 신중하고 강직하여 질박하기는 나무덩굴과 같고 곧기는 활줄과 같았다. 갖가지 선행(善行)을 베풀기를 감로를 대하듯 좋아하였다. 만년에 내전(內典)에 마음을 기울여 왕생주(呪)를 외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명호를 부르면서 하루에 일정한 일과(日課)를 정해놓고 추위나 더위 속에서도 전혀 어김이 없었다.

일찍이 강(江)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발밑을 어떤 물건이 떠받지 듯하며 10여리를 표류하다 번쩍 배에 올라탄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등창을 앓아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걱정해 마지않았으나 거사는 태연히 담소하며 아무 병고도 앓지 않는 양하다 얼마 후에 편안히 갔다. 그의 아들인 신장(信章)은 맹자가 말한 착하고 신의있는 사람으로 결코 허탄한 말을 할 자가 아니다. 그가 말한 행장(行狀)대로 이렇게 적는다.


2. 모든 성인(聖人)이 한 곳으로 돌아감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할 것을 선택하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위제희부인(韋提希婦人)이 흐느껴 울며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世尊)이시여 원하옵건대 저를 위하여 근심과 슬픔이 없는 곳을 널리 말씀해주소서. 저는 반드시 그곳으로 가고자 하옵고 염부제(閻浮提)의 악한 세상은 원하지 않나이다. 그러자 세존이 눈썹사이에서 광명을 놓으사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제불(諸佛) 국토를 두루 비춰 그 가운데 광명이 나타나게 하였다. 그때에 위제희가 그것들을 모두 본 후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모든 불국토가 비록 청정하여 모두 광명이 있긴하지만 저는 지금 오직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처소만을 원하옵니다.

무수한 자가 왕생한다.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부처님께 이 세계에 얼마만한 보살들이 극락에 왕생하나이까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이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계에 62억의 불퇴전(不退轉)보살이 이 나라에 왕생하며 소행보살(小行菩薩)은 이루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 국토뿐만 아니다. 다른 불토(佛土)에도 멀리 불찰(佛刹)을 비치듯 180억 보살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며 내지(乃至) 시방불찰(十方佛刹)에서 왕생하는 자는 매우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만약 자세히 말하려 한다면 1겁(劫)동안 설(說)하더라도 미처 말하지 못한다.

찬(贊) 
이 세계와 다른 국토에서 정토에 왕생하는 자가
한량없다 하니 정토가 그들을 어떻게 모두 수용하는 것일까? 아! 바다는 온갖 냇물을 다 받아들이고 허공은 만상을 모두 머금는다. 더욱이 무변찰해(無邊刹海)도 보현(普賢)의 한 털구멍 속을 벗어나지 못함이랴. 그렇다면 정토의 바늘 끝 만한 땅에서라도 한없는 왕생 자를 수용할 수 있다. 또한 한없이 넓고 크다고 말할수 있지 않겠는가!


• 직접 미타(彌陀)를만나다
관불삼매경 (觀佛三味經)에 이렇게 말씀하였다. 부처님이 문수(文殊)에게 반드시 극락에 왕생하리라는 수기를 주시자 문수가 이렇게 발원게(發願偈)를 노래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 다하는 날 모든 장애(障礙) 없어지고 직접 미타불(彌陀佛)을 만나 안락찰(安樂刹)에 왕생하고 저 불국에 왕생한 후에는 나의 대원(大願)이 만족하여 아미타불 여래(如來)께서 현전에서 제게 수기하시오소.


• 십원(十願)으로 왕생을 구하다

화엄경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열 가지의 큰 서원(誓願)을 나열하며 널리 중생이 정토에 왕생(往生)하는 길을 찾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게(偏)를 노래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이 다하려할 때 모든 장애다 없어져 저 부처님 아미타를 직접 만나 뵙고 서방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게 하며 아미타부처님의 회상(會上) 모두 청정(淸淨)하니 제가 그때 아름다운 연꽃 속에 태어나 직접 여래 무량광(無量光)부처님을 뵈 오면 현전에서 제게 보살기(菩薩記)를 주시옵소서.

찬(贊) 
문수보살는 칠불(七佛)의 조사(祖師)였으며 보현보살은 만행(萬行)의 종조(宗祖)였으나 정토에 왕생할 것을 마치 한입에서 나오듯 간곡히 타이르셨다. 진정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유능한 보좌관이며 안양(安養)의 어진 신하인 것이 분명하다. 정토를 허물하며 왕생을 원치 않는 것은 잘못이다.


• 정토를 노래하고 논술하다

천친보살(天親菩薩)은 천축(天竺) 사람으로 여러 가지 논(論)을 지을 적에 도솔천(兜率天) 내원(內院)에 올라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을 뵙적이 있었으며 또한 무량수경논(無量壽經論)과 정토게오문수법(淨土偈五門修法)을 저술하여 널리 왕생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 부처님의 모습(模襲)을 간청(懇請)하다

천축(天竺) 계두마사(難頭摩사)의 오통보살(五通菩薩)이 신력(神力)으로 안락국(安樂國)에 가서 아미타불을 뵈옵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바세계의 중생이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나 부처님의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모습을 드러내 주소서.

아미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먼저 돌아가라. 곧 바로 그곳에 나타나리라." 오통보살이 돌아오자 부처님의 모습도 곧바로 이르렀다. 한 부처님과 5천의 보살이 각각 연화(蓮華)에 자리하여 나무 잎 위에 계신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이러한 모습을 그려 유포할 수 있게 되었다. 감통전(感通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찬(贊) 
사람들은 안락국은 신력이 아니면 갈수 있을까 하고 의심한다. 아 ! 한 생각만으로도 왕생하여 조그마한 힘도 필요치 않데야 어찌하랴.


• 기신론(起信論)을 짓다

마명(馬嗚) 보살은 인도(印度)의 제12조(祖)로서 일찍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저술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는 정토에 왕생하는 길을 밝히는데 가장 친절하였다.


•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왕생을 수기(授記)하다

능가경(楞伽經)에 말씀하였다 대혜(大慧)야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후 미래세에 반드시 나의 법을 부지(扶持)할만한 큰 명덕(明德)비구(比丘)가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로서 능히 유무의 종취를 파(破)하고 세간에 나의 무상대승법(無上大乘法)을 발현하여 환희지(歡喜地)를 얻고 안락국에 왕생할 것이다.


• 선행(善行)을 닦아 서방정토에 왕생하다

대비경(大悲經)에 이런 말씀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滅度)한 후 북천축국(北天竺國)에 한 비구가 있을 것이니, 이름은 기파가(祈婆伽)다. 셀 수 없는 갖가지 훌륭한 보리(菩提)의 선근을 닦아 죽은 후에는 서쪽으로 백천억세계를 지나 무량수(無量壽)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며 저 부처님의 처소에서도 갖가지 선근을 심어 나중에는 반드시 부처가 되어 이름을 무구광(無垢光)이라 할 것이다.


•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서방정토에 왕생하다

보살생지경(菩薩生地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때 마차갈(摩差竭)은 불기법인 (不起法忍)을 얻었고 오백 명의 청신사(淸信士)와 25명의 청신녀(淸信女)는 모두 불퇴전지(不退轉地)를 얻어 목숨이 다한 후에는 모두 무량수불의 청정국에 태어났다.

찬(讚)
서방(西方)에 왕생할 길을 찾는 것은 무생법인을 깨달아 불퇴지에 오르고자 하기 위해서다.

*불기법인(不起法忍): 무생법인과 같은 말.
불퇴전지(不退轉地): 악도나 이승지(二乘地)에 떨어지지 않는 지위. 보살의 지위나 법을 잃지 않는 지위.


• 모든 성인(聖人)이 서방(西方)의 한곳으로 돌아가심

그런데 이미 무생법인을 얻었고 불퇴를 얻었으면서 다시 정토에 왕생하고자 했으니 보살이 여래를 가까이 하고자하는 마음이어야만 이와 같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구박범부(具縛凡夫)가 무생법인의 힘도 충분치 못하고 퇴보하는 인연도 무한하면서 정토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 참으로 불쌍한 자라고 부르지 않을수 없다.


• 두 번째의 대원(大願)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에 말씀하였다 보살은 세 가지의 발원이 있다. 그 두 번째 발원은 내가 목숨이 다하면 아미타불앞에 왕생하는 것이다.


• 염불(念佛)로 죄를 소멸하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보살이 대반야(大般若)를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이는 악도에 떨어져 무량겁을 지내게 될 것이요, 설사 다른 수행을 닦더라도 죄를 멸하지 못한다. 나중에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을 생각하게 되어야만 죄를 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게 된다하였다.

찬(讚)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念佛) 한 마디만하면 80억겁의 생사 중죄를 멸할 수 있다는 좋은 증거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극한 마음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극한 마음이 아니면 죄도 멸하지 못한다. 성인의 말씀이 터무니없다고 말하지 말라.


• 훌륭한 모임에 서명(書名)하다

장노책선사(長蘆頙禪師)는 혜원법사(慧遠法師)의 가르침을 따라 훌륭한 염불회(念佛會)를 만들어 널리 염불을 권했던 분이다 어느 날 밤 꿈에 검은 갓에 흰옷을 차려입은 풍모가 수려한 어떤 이가 읍(揚)하며, "공(公)의 연화회(蓮華會)에 들고자 합니다. 서명(書名)을 하고 싶은데요" 하였다. 장노책선사가 이름을 물으니 보혜(普慧)라고 하였다. 서명을 마친 후 또, "저의 가형(家兄)인 보현(普賢)도 역시 함께 서명했으면 합니다" 하였다. 장노책선사가 이에 꿈을 깨어 화엄경의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두 보살의 이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그 분들로 회주(會主)를 삼았다.

찬(讚)
범승(梵僧)의 모임에 고성(古聖)께서 서명을 하시다니 훌륭하다. 정토의 작은 인연(因緣)이 아님이여! 참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출발한 일이었으므로 성인의 감응이 통한 것이다. 조그마한 허위라도 있었다면 인간 세상의 자중(自重)한 자도 하찮게 여길 것 이어든 하물며 고성(古聖)이겠는가? 근래의 소위 염불회라는 것을 장노책선사가 본다면 반드시 큰 한숨을 쉬어 마지 않을 것이다.


3. 대략 존숙(尊宿)들의 법과 살아서 감응을 얻음

백장해(百丈海) 선사는 마조(馬祖)에게서 도를 전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만세 총림(叢林)의 대종장(大宗匠)이다. 그의 입법(立法)을 보면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죽은 스님을 떠나보낼 때는 언제나 정토(淨土)로 돌아가게 하였다. 황용신선사(黃龍新禪師)는 각노인(覺老人)을 참예(參詣)하여 선지(禪旨)를 얻고는 황용(黃龍)의 자리를 계승하여 종풍을 크게 떨쳤던 분이다. 한편 정업(淨業)에도 뜻이 간절하여 염불을 권하는 글이 현재에도 남아있어 이글을 읽는 자로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진흘요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丹霞淳) 공의 법(法)을 이은 분으로 조동종(曹洞宗)계의 문하가 이 스님에 와서 크게 발현하였다. 나중에는 보타(補陀)에 암자를 지어 고절(孤絶)이라 이름하고는 서방(西方)에 전념하였다. 정토설(淨土說)을 지어 널리 대중에게 권장하기도 하였다.

자수심선사(慧受深禪師)는 장노신(長蘆信) 공(公)에게서 법(法)을 얻었던 이다.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여 수행(修行)의 첩경(捷徑)은 정토(淨土)만한 것이 없다하고 서방도량(西方道場)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大衆)에게 권고(勸告)하니 그를 따르는 자(者)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程度)였다

석지효법사(石芝曉法師)는 월당순(月堂詢) 공(公)의 법을 계승한분으로 교부(敎部)에 통철했으면서도 정업(淨業)으로 사람들을 교화 하였다. 정토에 관계한 여러 대장경을 모은 낙방문류(樂邦文類)가 세상에 전하고 있다.

적당원선사(寂堂元禪師)는 밀암걸(密庵傑) 공(公)에게서 선(禪)을 배웠던 이로 염불삼매를 독실히 행하여 금갑(金甲)의 신장(神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감응을 얻기도 했고 붉은 연꽃이 땅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온 나라에 연종(蓮宗)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중봉본선사(中峰本禪師)는 고봉묘(高峰妙) 공(公)에게서 법을 얻은 분으로 사람들이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다. 정토를 생각하는 내용의 시(詩) 백편이 세상에 널리 전하고 있다.

왕이영(王以寧) 대채(待制)는 스스로 미타(彌陀)의 제자라고 일컬었다.

조열지(晁悅之)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조자앙(趙子昻)에게 답한 편지에서, "서방정토는 진실하고 사실인 말씀입니다" 하였다.

진관(陳瓘) 대제(待制)는 연경사(延慶寺)의 정토원기(淨土院記)를 지어 염불을 극찬하였다.

우담종주(優曇宗主)는 여산동림(盧山東林)의 선법당(善法堂)에 있으면서 연종보감(蓮宗寶鑑)을 지었다. 그 후 임금의 뜻으로 판에 새겨 세상에 전했다. 정토의 중흥주(中興主)라고 할 만하였다.

찬(讚) 
백장(百丈)으로부터 우담(優曇)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존숙(尊宿)들이 정토(淨土)를 받들어 행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아 성대함이여 !

천여선사(天如禪師)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요즘사람들은 정토(淨土)를 닦는 자를 무시하여 어리석은 아낙네들 이라고 업신여긴다. 이것은 문수보살(文殊菩薩)나 보현보살(普賢菩薩) 마명보살(馬鳴菩薩) 용수보살(龍樹菩薩)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많은 경전들을 모아 그의 설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보살도(菩薩道)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왕생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하고 오히려 의심한다. 아 ! 자신의 지위가 아직 묘각에 오르지 못했고 비록 등지(等地)의 대성인일지라도 하루도 부처님을 떠나지 못한다. 하물며 그 아래 사람들이랴.

작위(爵位)가 높을수록 임금을 뵈올 수 있는 기회도 더욱 많은 법이다. 저 짐이나 나르고 호미나 쥔 무리들이 어부나 나무꾼이나 벗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임금을 뵈올 희망을 버리면서 임금은 가까이 뵈올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투들 거린다면 우습지 않은가.


• 살아서 감응을 얻음

귀신이 감히 해치지 못하다
부처님 당시의 일이다 한 나라가 있었는데 나찰의 무리들이 사는 곳과 이웃하고 있었다. 나찰이 함부로 사람들을 잡아먹었으므로 임금은 집집마다 차례로 하루 씩 사람을 그들에게 바칠것을 약속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게 하였다. 외아들만을 둔 어느 부처님을 신봉하는 집이 있었다.

이번에는 이 집의 차례였다. 부모는 슬피 울며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할 것을 자식에게 당부하였다.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귀신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가서 보니 자식은 아무 탈이 없었다. 기뻐 어쩔줄 모르며 함께 돌아왔다. 이로부터 나찰의 재난이 마침내 끊어져 온 백성들이 부처님을 경모하게 되었다.

• 꿈을 꾸고 총명(聰明)과 변재(辯才)를 얻다

수(階)의 남악혜사(南岳慧思) 선사는 지심으로 부처님을 섬기더니 아미타불이 그에게 설법해 주시는 꿈을 꾸고는 이로부터 총명이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 변재도 막힘이 없었다.

당(唐)의 소표(邵彪)는 진강(鎭江) 사람이다. 사인(士人)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꿈에 어떤 공부(公府)에 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곳을 안무사사(安無使司)라고 불렀다. 잠시 후 어떤 관인이 너는 너가 급제하지 못하는 까닭을 알고 있느냐 ? 하고 물었다. 소표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소표를 이끌고 어딘가로 갔다.

잠시 후 한곳에 당도하여 쳐다보니 큰 가마솥 안에서 삶기고 있는 무수한 조개들이 사람의 말로 소표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소표가 두려워 어쩔 줄 모르다 마침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렀더니 비로소 입이 다물어지면서 조개들이 꾀꼬리로 변하여 날아갔다. 소표는 후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무사(按撫使)에 이르렀다.

찬(讚)
살생(殺生)으로 그의 벼슬이 늦어졌고 염불(念佛)로 그의 원결이 풀렸다. 요즘 사인(士人)들이 짐승을 죽여 귀신에게 바치며 도와 줄 것을 빌면서 만덕을 갖추신 위대한 이름은 부를 줄 모른다. 그들의 계책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큰 관직을 바라는 자는 이 이야기를 깊이 명심해 두라.


• 송(宋) 갈제지(葛濟之)

송(宋) 갈제지(葛濟之)는 구용(句容) 사람이다 치천(雉川)의 후예로 대대로 선학(仙學)을 섬겼으나 처妻 기(紀)씨만은 유독 염불(念佛)에 정성을 쏟았다. 원가(元嘉) 13년 베틀 위에서 베를 짜고 있노라니 갑자기 하늘이 청명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북을 던지고 하늘을 바라보니 서(西)쪽 방향에서 어떤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셨는데 보배의 수레와 깃발이 구름이 덮이 듯한 것을 보았다. 기(紀)씨는 기뻐하며 경에서 말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바로 이 분이시구나! 하며 부처님을 향해 무수히 예를 올렸다.

갈제지(葛濟之)가 놀라 급히 그에게 와보니 기(紀)씨가 부처님이 계신 곳을 가리켰다. 갈제지도 반신(半身)은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모습은 사라지시고 오색 찬란한 상서로운 구름만이 인근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불법(佛法)에 귀의한 자가 무수하였다.


• 송(宋) 진기(陳企)

송(宋)나라 진기(陳企)는 용서(龍舒)사람이다. 일찍이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는데 후에 귀신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진기는 두려워 급히 아미타불을 불렀더니 귀신이 접근하지 못했다. 이후로 염불을 끊이지 않게 되었고 귀신도 마침내 나타나지 않았다.

찬(讚)
목숨을 빼앗긴 귀신을 어떻게 염불로 물리칠 수 있을까? 아미타불의 공덕의 위신력은 불가사의하여 한번만 그의 이름을 불러도 귀신이 제갈 길을 얻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어찌 심상한 주문으로 쫓아내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 송(宋) 장계조(張繼祖)

송(宋)의 장계조(張繼祖)는 진강(鎭江)사람으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깊이 믿었다. 유모(乳母)가 죽자 그를 위해 정성껏 염불로 천도(遷度)했더니 꿈에 유모가 와서 감사해 하며, "자네의 염불 공덕으로 이미 좋은 곳에 태어났네" 하였다.


• 잠자리가 편안해 지다

송(宋)나라 유중혜(劉仲慧)는 호주(湖州) 장흥(長興)사람이다 악몽에 시달리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누가 염불을 해볼 것을 권하여 마침내 정성을 다해 큰소리로 염불 108번을 부르게 되었다. 그러한 후로는 잠자리에 들더라도 정신이 평안하여 이로부터 염불을 끊이지 않게 되었다.

찬(讚)
고인(古人)이 잠을 작은 죽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꿈속에서의 혼매(昏昧)를 죽음의 혼미(昏迷)에 비교할 수야 있을까만 잠자리에서 마음이 평안하면 목숨이 다 할 때도 거의 어느 정도 자유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선도대사(善導大師)가 사람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정관을 하게 한 것은 진실로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 눈이 다시 밝아지다

송(宋) 완념(阮念)의 셋째 형수(兄嫂)는 평범한 농부였다. 두 눈이 어두워져 늘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고서 마침내 눈이 환하게 도로 밝아졌다.


• 눈이 다시 밝아지다

자(紫)씨의 딸은 두 눈이 다 멀었다. 3년 동안 염불을 정근하고서 두 눈이 전과 같이 다시 밝아졌다.

찬(讚)
아미타 부처님의 광명은 무량하여 시방(十方)의 국토를 비춘다.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기만 하면 설사 육신의 눈은 밝아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마음의 눈은 환히 열릴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눈먼 맹인들은 가끔 무당이 되어 살생하는 업(業)을 짓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어두운데서 다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말 할 수 있으리니 끝내 밝은 하늘을 볼 수 없다. 슬프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를 온 천하의 눈먼 맹인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 학질(瘧疾)이 낫다

송(宋) 이자청(李子淸)은 오랫동안 학질(瘧疾)을 앓았다. 용서거사(龍舒居士)가 발작하기 시작하면 염불에 전념하고 그런 후에 약을 먹도록 가르쳤다. 이자청이 이 말을 믿고 그대로 실행했더니 당일 반쯤 나았고 다음날 마침내 완쾌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독실히 염불을 믿게 되었다.

 
• 사리(舍利)가 출현하다

송(宋)나라 공주(贛州) 염중대부(廉中大夫)의 공인(恭人)은 장육(丈六)의 아미타불을 수(繡)놓다 반쯤 완성된 상태에서 채색(彩色)의 실오리 사이에서 사리(舍利)가 출현(出現)하여 온 집안이 경탄해 마지않았다.

*공인(恭人) : 중산대부(中散大夫) 이상의 관리에 봉해진 어머니 나 처(妻)를 일컫는 말.

 
• 사리(舍利)가 출현하다

진주(眞州) 종리소사(鍾離少師)의 부인인 임(任)씨는 높이 4치 8푼의 아미타불상을 조각하고 감실도 매우 아름답게 장엄하여 늘 머리에 이고 행도하였다. 어느 날 불상의 미간(眉間)에서 크기가 보리 쌀만한 사리(舍利)가 출현하여 광채가 사람을 비췄다.


• 병(病)이 다 낫다

송(宋)나라 수주(秀州)의 어느 스님은 늘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사람의 병을 치료하였다. 그런데 병자가 치료해 줄 것을 간청하기만 하면 금방 병이 나았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고 따랐다.


• 포로(捕虜)에서 풀려나다

원나라 지정(至正) 15년 겨울 장사성(張士誠)이 호주(湖州)를 공격하여 강절(江浙) 승상과 싸워 40인을 붙잡아 감옥에 수감하고 관리로 호송케 하였다. 밤이 되어 서호(西湖)의 조과사(鳥窠寺)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대유모선사(大猷謨禪師)가 천천히 낭하(廊下)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포로들은 스님이 점잖고 품위있는 자태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장로여 저회들을 구해주소서"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나는 그대들을 구해 줄 수가 없소다만 지성으로 나무(南無) 구고구난(救苦救難) 아미타불(阿彌陀佛)하고 염불(念佛)하시오. 그러면 그대들을 구해 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이 그의 말을 믿고 입에서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포로들을 출발시키기 전에 칼과 족쇄(足鎖)로 바꿔 채우게 되었는데 우연히 이 세 사람에게 와서 형구가 부족하여 그대로 포승(捕繩)으로 묶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유고 심문(審問)하여 이들이 양민으로서 포로로 잡혀온 것이 판명되어 마침내 풀려났다.

찬(贊)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 혹은 칼이나 족쇄에 같히고 손과 발이 수갑에 채이더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힘으로 석연(釋然)히 풀려날 수 있을 것이며 한 것은 누구나 믿고 있으나 염불로 풀려난다는 사실은 그다지 믿으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은 보살에 비교하여 얼마나 월등하신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손발이 잘렸으나 석가여래(釋迦如來)부처님을 생각하고서 사지가 다시 자라난 사실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수족을 잘렸어도 오히려 다시 자라날 수 있거든 어찌 족쇄나 수갑 따위에 이를 믿으려 하는 자가 없는 것인가? 그래서 내가 짐짓 이런 사실을 들추어 밝히게 된 것이다.


4. 총론과 전적(典籍)
염불(念佛)은 죽은후에 돌아갈 곳을 위한 법문인줄만 알았지 살아서의 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문을 외워 영통(靈通)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금방 염불을 버리고 주문을 외고 강연(講演)으로 총명과 변재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염불을 버리고 강연을 배우려 하며 절을 짓거나 다리를 놓아 줌으로 해서 복보(福報)를 얻었다는 말을 듣거나 내지 양생(養生)으로 장수를 누리게 되었다는 따위의 말을 들으면 금방 갖가지로 마음이 변하여 아무도 염불을 집지(執持)하려는 자가 없으니 어느 누가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정업(淨業)을 성취하는 자가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짐짓 이런 사례들을 모아서 우선 요즘 사람들의 밖으로만 치구(馳驅)하여 달리는 마음을 단절하기 위하여 사실에 근거하여 이렇게 논한 것이다. 그러나 정토(淨土)에 왕생하고자 하는 것은 본래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것이요. 기왕 죽은 다음의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 어찌 생전의 이롭고 해로움을 따지겠는가.

•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반드시 정토(淨土)를 닦을것을 널리 권(勸)하다

천여(天如)의 정토혹문(淨土或問)에 요즘 선자(禪者)들 이 정토를 닦는 이를 보면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라고 비웃는다. 이렇게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라고 비웃는 것은 바로 문수보살(文殊菩薩)나 보현보살(普賢菩薩) 마명보살(馬鳴菩薩) 용수보살(龍樹菩薩)을 비웃는 것이다 하였다. 그 말씀이 이렇게 통렬하고 간절하건만 여전히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상고하여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관불삼매경(觀佛三味經)의 문수보살(文殊菩薩) 게송(偈頌)에 이렇게 발원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 다하는 날 아무런 장애없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만나 뵙옵고 안락찰(安樂刹)에 왕생(往生)하기를 원합니다.”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의 보현보살 게송에는 이렇게 발원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이 목숨 다하려 할 때 모든 장애가 다 없어져 저 부처님 아미타를 뵈옵고 안락찰에 왕생하기를 원합니다.”

대승기신론에서 마명보살은 다음과 같이 가장 훌륭한 방편을 제시하였다. 염불에 전념하면 곧 서방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어서 마침내 아무런 퇴보가 없을 것이다.

능가경(楞伽經)에서 부처님이 대혜보살(大慧菩薩)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 명덕비구(明德比丘)가 있을 것이니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로서 초환희지(超歡喜地)를 얻어 안락국(安樂國)에 왕생할 것이다. 이상으로 대략 네 분의 보살을 열거하였다. 그 밖에 정토를 닦은 보살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여산(廬山) 혜원법사(慧遠法師)는 마하 반야(般若)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東方)의 호법보살(護法菩薩)이라고 불렀다. 종일토록 염불하여 세 번 성상(聖像)을 친견하고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하였다.

천태(天台) 지자대사(智者大師)는 법화경을 깊이 깨달아 일가(一家)의 교관(敎觀)일 뿐더러 만대의 종조(宗祖)이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서방(西方)을 향하였고 변십종의(辯十種疑) 소십육관(疏十六觀)등의 저술을 남겨 정토(淨土)를 발명하였다.

백장대사(百丈大師) 는 마조(馬祖)에게서 도를 전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천하 총림(叢林)의 공종(共宗)이었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혹은 죽은 스님을 천도(遷度)할 때는 언제나 정토로 돌아가게 하였다.

청량국사(淸凉國師)는 화엄조사(華嚴祖師)의 자리를 이었던 분으로 문수보살의 후신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바로 노사나(盧舍那)부처님 이라고 지적했으며 또한 관경(觀經)을 해석하여 서방정토를 널리 선양하였다.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先師)는 막힘이 없는 변재를 얻어 종문(宗門)의 초석이기도 한 분이다.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유독 서방정토를 예찬(禮讚)하였고 상상품(上上品)에 왕생하여 명부(冥府)에까지 공경(恭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심신선사(死心新禪師)는 황용선사(黃龍禪師)의 법석(法席)을 이어받아 종풍을 크게 떨쳤다. 정업(淨業)에 뜻이 간절하여 권염불문(勸念佛文)을 저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과 믿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진헐료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공(丹震淳公)의 법을 이어 조동종(曹洞宗)의 문하가 스님에 이르러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보타산(普陀山)에 암자를 짓고 서방에 전념하였다. 정토집(淨土集) 이 현재 세상에 전한다.

자수심선사(慈受深禪師)는 천녀(天女)의 인연(因緣)을 크게 깨달아 일게(一偈)로 오교(五敎)를 융통했던 분이다. 수행의 첩경은 정토만 한 것이 없다하고 서방 도량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에게 권(勸)하였다.

*사료간(四料簡)
선(禪)이 있고 정토(淨土)가 있으면 마치 범이 뿔을 단것처럼 현세에 인간의 스승이 되고 내생에는 불조(佛祖)가 된다.
선은 없고 정토만 있는 경우는 누구라도 닦으면 누구라도 갈수 있다 만약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면 어찌 깨닫지 못 할 것을 걱정하랴.
선만 있고 정토가 없는 경우는 열에 아홉은 길을 잘못 들어서 마경이 앞에 나타나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선도 없고 정토도 없는 경우는 지옥(地獄)에서 만겁토록 벗어날 길이 없다.

*천녀(倩女)의 인연(因緣): 천녀이혼(倩女離魂)의 공안(公案)을 말한다.

원조본선사(圓照本禪師)는 도道는 천의(天衣)를 이었고 종(宗)은 설두(雪竇)를 본받아 법의 우뢰가 천지를 진동했고 양조 송(宋)나라 신종(神宗)과 철종(哲宗)의 사표(師表)가 되기도 했던 분이다.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하여 이름이 상품(上品)에 표시되었다.

중봉본선사(中峰本禪師)는 고봉(高峰) 노인에게서 법을 받아 배우는 자들이 마치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다. 정토(淨土)를 사모하는 시(詩) 백수를 남겨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장하였다. 이상으로 대략 10인의 대존숙(大尊宿)들을 열거하였다. 그 외의 존숙이나 법사 율사로서 정토를 닦은 이는 그 수를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아미타경(阿彌陀經)․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십육관경(十六觀經)․ 고음왕경(鼓音王經), 천친(天親)의 왕생론(往生論) 이상은 정토만을 설한 경이나 논을 대략 열거한 것이다. 그 밖에 가끔씩 정토를 설한 경이나 논은 이루다 기록할 수 없다

도안(道安)의 왕생론(往生論)
회감(懷感)의 군의론(群疑論)
자은(慈恩)의 통찬(通贊)
해동미타소(海東彌陀疏)
사명(四明)의 묘종초(妙宗鈔)
자은(慈恩)의 참원의(懺願儀)
초당(草堂)의 보왕론(寶王論)
고산(孤山) 의 간정기(刊定記) 서자초(西資鈔)
대지(大智)의 관경소(觀經疏)
우담(優曇)의 연종보감(蓮宗寶鑑)
석지(石芝)의 닥방문류(樂方文類)
천여(天如)의 정토혹문(淨土或問)
대우(大佑)의 정토지귀(淨土指歸)
경도(鏡道)의 이사염불경(二師念佛鏡)
도연(道術)의 선인영(善人咏)
서재(西齋)의 정토시(淨土詩)

이상은 가장 잘 알려진 몇분을 대략 열거한 것이다. 그 외에 정토를 찬양한 분은 일일이 그 수를 다 셀 수 없다. 바라건대 낱낱이 그분들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말씀을 읽어보고 그 분들의 뜻을 생각해 보고서 모든 의심을 끊고 뜻을 결정하기 바란다.


• 정토수행(淨土修行)을 권(勸)한 여러 가지 전적(典籍)

주굉(袾宏)은 보잘 것 없는 범부로서 겨우 분수나 알고 살아갈 뿐이요, 평생에 애쓰고 노력한 것은 오직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 자일 따름 이었다. 이젠 늙었다. 만약 누가 물어오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이렇게 대답할뿐이다. 그러나 혹시(或是) 물어 볼 곳이 없어 억견(臆見)에 사로잡힐까 두렵고 더욱이 나는 이제 쇠약하고 병이들어 대답하기에도 곤란하다. 그래서 삼가 불보살(佛菩薩)이 설한 경론과 고금의 대선지식이나 대거사등의 갖가지 저술들올 그 제목과 이름을 아래에 소개한다. 보이는 대로 자세히 독람(讀覽)하고 깊이 사량(思量)하여 생각해주기 바란다. 믿고 믿지 않고는 고명한 이들만이 판단할 것이다.

• 불보살(佛菩薩)이 설한 경과 론
불설(佛說)아미타경(阿彌陀經)1권
불설(佛說)무량수경(無量壽經) 1권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불설고음왕경(佛說鼓音王經) 1권
천친보살(天親菩薩의 왕생론往生論) 1권
마명보살(馬鳴菩薩)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권

• 대선지식(大善知識)과 대거사(大居士)의 저술(著述)
지자대사(智者大師)의 관경소(觀經疏) 1권
사명(四明)의 묘종초(妙宗鈔) 3권
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1권
원효법사(元曉法師)의 미타경소(彌陀經疏) 1권
대우법사(大佑法師)의 미타약해(彌陀略解) 1권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3권
자운참주(慧雲懺主)의 정토왕생참원의(淨土往生懺願儀) 1권
정토왕생결의행원문(淨土往生決疑行願文)1권
천여칙선사(天如則禪師)의 정토혹문(淨土或問) 10권
대우(大佑)의 정토지귀(淨土指歸)
지철(智徹)의 정토현문거요(淨土玄門據要) 1권
우담법사(優曇法師)의 연종보감(蓮宗寶鑑) 1권
경도이사(鏡道二師)의 염불경(念佛鏡) 1권
도연(道衍)의 정토선인영(淨土善人咏)의 1권
사명석지사문(四明石芝沙門) 종효(宗曉) 낙방문류(樂方文類) 6권
왕일휴(王日休)거사(居士)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 1권
이상의 경론과 저술은 현재 유통하고 있음.

• 이름은 있으나 책은 남아있지 않은 것
도안법사(道安法師)의 왕생론(往生論) 6권
회감법사(懷感法師)의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 7권
도작선사(道綽禪師)의 안락집(安樂集) 3권
자민삼장(慈愍三藏)의 자비집(慈悲集) 3권
자은법사(藏恩法師)의 미타경통찬(彌陀經通贊) 1권
청량국사(淸凉國師)의 관경소(觀經統) 1권
초당비석법사(草堂飛錫法師)의 염불삼매보왕론(念佛三昧寶王論) 1권
미타경소(彌陀經疏) 1권
고산(孤山)의 관경소간정기(觀經疏刊定記) 4권
영지율사(靈芝律師)의 경소(經統)
종탄법사(宗坦法師)의 관경감로소(觀經甘露疏) 4권
무공거사(無功居士)의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
왕시랑(王侍郞)의 정토결의집(淨土決疑集) 3권
이상은 비록 남아있지는 않으나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이에 소개한다.

• 삼가 나의 비견(鄙見) 4종을 덧 붙인다.
미타경소초(彌陀經疏鈔) 4권
정토의변(淨土疑辯) 1편
정토발원문(淨土發願文)
왕생집(往生集) 1권

• 부처님이 보이신 염불의 열 가지 공덕
만약 어떤 이가 한번이라도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누구라도 현세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공덕 이익을 얻을 것이다.

❶모든 하늘의 대력신장(大力神將)과 그의 권속들이 밤낮으로 몸을 숨기고 수호한다.
❷관세음보살 등 스물다섯분의 대보살과 그 외 모든 보살들이 항상 따라다니며 수호한다.
➌늘 항상 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호념하며 아미타불이 항상 광명을 놓아 이 사람을 섭수한다.
➍야차(野次)나 악귀 등 일체 악귀가 침해하지 못하고 독사나 독용(毒龍) 독약등의 해를 입지 않는다.
❺모든 화난(火難)이나 수난 도적질 창칼 화살 감옥(監獄)에 갇히는 등의 엉뚱한 죽음과 재난을 당하지 않는다.
❻예전에 지은 죄악이 모두 소멸하고 내가 죽인 원혼(冤魂)이 해탈하여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❼평안한 잠자리를 이룰 수 있고 혹은 꿈에 아미타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뵙 옵기도 한다.
❽마음이 늘 항상 즐겁고 안색이 빛나며 기력이 충만하여 행하는 일마다 모두 길상하다.
❾항상 모든 사람들이 마치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공양하고 예배한다.
❿목숨이 다 할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올바른 생각이 충만하며 아미타불과 모든 보살 성중(聖聚)이 손에 금연화대(金蓮華臺)를 들고 와 서방정토로 인도하여 왕생케 하며 영원토록 승묘(勝妙)한 즐거움을 누린다.

• 종결(終結)

발일체업장근본득생정토신주
拔一切業障根本得生淨土神咒

나무 아미타바야 다타가다야 다지야타 아미리
도바비 아미리다 싣담바비 아미리다 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가란제 가미니 가가나 기다가례 사바하

아미타부처님의 당신님 자비한 서원으로 저를 삼계의 괴로움에서 구제하소서.


• 발원문(發願文)

나무(南無) 만(卍) 아미타불(阿彌陀佛). 사바세계는 혼돈되고 미혹함에 아득하고 아득하여 어두운 무명(無明)의 그 자체라 무엇을 의지하여 생사윤회의 괴로움에서 해탈을 기약하랴. 오!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자비의 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여래 박가범(薄伽梵)님이시여 당신의 홍서(弘誓)의 본원력에 신명을 받쳐 귀의합니다.

어리석고 몽매한 저희중생을 구원하소서. 발원하고 바라옴은 당신이 계시는 서방정토극락세계에 태어나서 당신 자비로운 진리의 아버지 아미타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팔공덕수(八功德水)의 만개한 연꽃 속에 태어나서 당신 아미타부처님의 무상(無上)하고 무비(無比)한 제일의 법문을 듣고 활연히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마정수기(摩頂受記)를 받고자 발원합니다.

이 원이 성취되오면 누겁으로 오면서 인연(因緣)맺은 다생의 부모형제 모든 군생(群生)을 불타는 화택(火宅)에서 구제하고자 맹서함이니 대승의 어진마음 어기지 않고 조재(朝裁) 영겁이 다하도록 불법(佛法)의 동량(棟梁)이 되고 다리가 되어 정토법문의 사신(使臣)이 됨이라. 아미타부처님 당신을 무한한 존경과 경의(敬意)받쳐 앙모(仰慕)하여 사모합니다.

불쌍하고 가여운 저의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거두어 모두 당신의 나라로 안치(安置)하소서. 오! 모시고 따르고 싶은 억만대(億萬代)의 사표(辭表) 영원한 귀의처 당신 대자대비하신 절대한 진리의 어버이 아미타부처님 여래 박가범(薄伽梵)께 극진한 최대의 존경과 영광을 받칩니다.


* 속록(續錄) 옮긴이 수마제 스님

● 선도화상 임종왕생정염문
善導和尚《臨終往生正念文》


지귀자知歸子가 정업화상에게 문왈問曰 :

세상에 생사生死보다 큰 일이 없고, 한숨 지면 후생이요, 한생각 그릇치면 곧 윤회에 떨어질지라. 소자小子 자조 가르침을 받아 염불 왕생의 법은 알았으나, 또 병들어 죽을때에, 마음이 산란하고 혹 가인들이 정염正念을 흔들어, 염불 못할까 두려우니. 엎드려 바라건데 다시 좋은 법을 가르쳐, 윤회의 고를 벗게 하소서.
知歸子問曰:「世事之大,莫越生死。一息不來,便屬後世;一念差錯,便墮輪迴。小子累蒙開誨念佛往生之法,其理甚明。又恐病來死至之時,心識散亂,仍慮他人惑動正念,忘失淨因。伏望重示歸徑之方,俾脫沉淪之苦。」


스님이 답왈師曰 :

기이하다 너의 물음이 요긴하도다! 사람이 죽을 때에 정토에 나고저 한 자는 부디 먼저 준비하되 죽음을 겁내고 삶을 탐내지 말며. 항상 생각하되 나의 이 몸은 고苦가 많고 부정하고 악업이 많이 얽힘이라. 만일 이 더러운 몸을 버리면 곧 정토에 왕생하여 부처님을 뵈와 법문 듣고 고苦를 벗고 많은 낙을 받을지니 이것이 좋은 일이라.
師曰:「善哉問也!凡一切人,命終欲生淨土,須是不得怕死。常念此身多苦,不淨惡業種種交纏。若得捨此穢身,超生淨土,受無量快樂,解脫生死苦趣,乃是稱意之事,如脫弊衣,得換珍服。

떨어진 옷을 벗고 보배 옷을 입는 거와 같다하여 마음을 놓아버리고, 사는데 애착심을 두지 말며 조금 병이 나거든 문득 무상無常을 생각하며 가인에게 부탁하되 누구든지 내 앞에 오는 이는 나를 위해 염불하고 눈 앞에 여러가지 일과 집안에 좋고 나쁜 것을 말하지 말고 위문과 축원으로 오래 산다는 말도 하지 말라. 이것은 실없고 좋지 못한 말이니라.
但當放下身心,莫生戀著。凡遇有病之時,便念無常,一心待死。叮囑家人及看病人、往來問候人,凡來我前,為我念佛,不得說眼前閒雜之話、家中短長之事,亦不須軟語安慰、祝願安樂,此皆虛華無益之語。

병이 위중할 때에도 눈물을 흘리고 울고 슬픈 말을 하여 나의 정신을 어지럽게 말고 다못 나로 하여금 아미타불을 생각케 하고 나를 위해 고성 염불하여 주되 운명후 오래동안 그치지 말고, 5~6시간 지난 뒤에 곡성을 내게 하라. 혹 정토법문을 잘 아는 이가 독려해 주면 더욱 좋으리라. 이같이 하면 천이나 만이다 왕생하느니라. 조금도 의심 없으니 이 적실하고 중요한 말을 꼭 믿고 행하라 .
若病重將終之際,親屬不得垂淚哭泣及發嗟嘆懊惱之聲,惑亂心神,失其正念。但一時同聲念佛,待氣盡了,方可哀泣。才有絲毫戀世間心,便成掛礙,不得解脫。若得明曉淨土之人頻來策勵,極為大幸。若依此者,決定超生,即無疑也。」


문왈 : 약은 써야 되지 않습니까?
又問曰:「求醫服藥,還可用否?」

답왈 : 이것은 생각대로 할 것이라 치료는 하는게 무방하나 약은 다못 병을 낫을지언정 명命이야 어찌 낫우리요? 명이 만일 다하면 약이 쓸데 없느니라.
答曰:「求醫服藥,初不相妨。然藥者只能醫病,不能醫命。命若盡時,藥豈奈何?
若殺物命為藥,以求身安,此則不可。

나는 세상 사람들이 병으로 인해 재계를 지녀 조금은 쾌유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다시 의사가 술과 음식과 어육으로 약을 돕지만, 그 병이 다시 되는 것이다. 믿고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힘으로는 구할 수 있어도, 술과 고기로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
餘多見世人因病持齋,方獲少愈,復為醫者以酒食魚肉佐藥,其病復作。信知佛力可救,酒肉無益也。」


문왈 : 귀신에게 비는게 어떠합니까.
又問曰:「求神祈福如何?」

답왈 : 수명장단은 날 때에 이미 정한지라 귀신이 어찌 하리요. 사람이 미혹하고 사를 믿어 중생을 죽여 귀신에게 제사하면 다못 죄업만 무겁고 원수를 맺어 도리어 수명을 감할지니 절대 조심하라.
答曰:「人命長短,生時已定,何假鬼神延之耶?若迷惑信邪,殺害眾生,祭祀鬼神,但增罪業,反損壽矣。大命若盡,小鬼奈何?空自慞惶,俱無所濟,切宜謹之。

이 글을 식당 근처나 왕래하는 요로에 붙여놓고 항상 보아 마음에 두어 위급할 때에 잊어버리지 않게 하라.
當以此文貼向目前,時時見之,免致臨危忘失。」


문왈 : 평생에 염불하지 못한 사람도 이대로 하면 갈 수 있습니까?
又問曰:「平生未曾念佛人,還用得否?」

답왈 : 이 법은 염불하지 못한이도 의심없이 다 왕생하느니라.
答曰:「此法僧人、俗人、未念佛人用之,皆得往生,決無疑也。

내가 보건데 평소에 염불하고 예배하여 왕생을 발원한 사람이 임종시에는 죽는 것만 겁내고 염불하지 않다가 숨이 끊어지고 혼이 떠난 뒤에 비로소 십염을 하니, 도적이 떠난 뒤에 문을 닫는 거와 같은지라 무슨 일이 되리요? 죽는 일이 제일 크니, 특별히 정신 차릴지어다.
餘多見世人於平常念佛禮讚,發願求生西方,甚是勤拳。及至臨病,卻又怕死,都不說著往生解脫之事。直待氣消命盡,識投冥界,方始十念,恰如賊去關門,濟何事耶?死生事大,須是自家著力始得。

한 생각 비뚤어지면 만겁을 고통 받을지니 , 누가 대신하리요? 생각하고 생각하라! 만약 일 없을 때는 마땅히 이 법문으로 정진하고 받아 지니면 임종에 있어 큰 일이 되리라.
若一念差錯,歷劫受苦,誰人相代?思之思之!若無事時,當以此法精進受持,是為臨終大事。」






● 연지대사 왕생집 (4~7)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 제 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

• 대명(大明) 비구니

수(隋) 대명 비구니는 방에 들어가 예념(禮念)할 때마다 먼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입에 침향(沈香)을 머금었다. 문제(文帝)의 왕후가 매우 가까이 하였다. 죽는 날, 침향이 방에 가득하더니, 잠시 후에 광명이 구름과 같이 일며 은은히 서쪽을 향해 사라지는 것을 온 대중이 보았다.

찬(贊)
어떤 비구는 을 독송하여 후에 영이(靈異)한 과보를 감응했고, 또 어떤 스님은 을 독송하여 수특(殊特)한 예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염불하는 자로서 과연 몇 사람이나 명(明)과 같이 하는 자가 있는가? 누구라도 이렇게만 염불한다면 천이면 천 사람, 만이면 만 사람, 누구라도 왕생하지 못할 자가 없다.


• 정진(淨眞) 비구니

당(唐) 정진 비구니는 장안 적선사(積善寺)에 살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하며 10만 번을 독송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어느날 제자에게 “다섯 달 동안에 열 번이나 부처님을 보았고 두 번 보련화(寶蓮花) 속에서 동자가 뛰노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 하고는, 가부좌하고 죽었다. 상서로운 광명이 암자에 가득하였다.


• 오성(悟性) 비구니

당(唐) 오성 비구니는 여산에서 염불하며 지극히 왕생을 발원하였다. 어느날 홀연히 공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곁에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중품(中品)에 왕생하게 되었다. 함께 염불정진하던 이들이 모두 연꽃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도 노력하라.” 하고는 갔다.

찬(贊)
상품과 중품의 지위를 두 비구니가 능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안으로 스스로 실행했던 얕고 깊은 정도를 살펴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밖으로 감응의 낮고 못하고를 살펴보았기 때문으로, 괜한 말이 아니다.


• 능봉(能奉) 비구니

송(宋) 능봉 비구니는 전당 사람으로, 정업淨業만을 전수하였다. 어느날 부처님의 광명이 몸에 비치고 공중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소리를 꿈 꾸고, 제자들에게 “나의 왕생할 때가 이르렀다.” 하더니, 잠시 후 봉(奉)이 큰 소리로 염불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 가보니, 합장하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음악소리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법장(法藏) 비구니

송(宋) 법장 비구니는 금릉(金陵) 사람으로 일심으로 염불에 뜻을 두었던 이다. 밤에 불보살이 찾아오시고 광명이 절을 비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죽었다.

총론(總論)
부처님께서는 이모가 출가하려 하시자 정법이 이로 말미암아 감손減損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하셨다. 그러나 만약 여인으로서 출가한 자가 모두 위의 다섯 비구니만큼만 한다면 정법이 더욱 창성할 것이다. 그러나 세태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예언이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아! 진정으로 출가한 남자도 요 근래에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인이겠는가. 나는 유감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 제 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 수(隋) 황후

수문제(隋文帝)의 황후는 성이 독고(獨孤)씨로써, 비록 왕궁에 살았으나 여자의 몸이 된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어느날 아미타불을 부르다 8월 갑자(甲子)에 죽었다. 그 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 갖가지 음악이 진동하고 기이한 향기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공중으로부터 흘러오는 것이었다.

임금이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고 물으니, 사나는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호를 아미타불이라고 하십니다. 황후는 지은 업이 고결하여 저 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서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찬(贊)
궁중의 귀총(貴寵)을 버리고 정토를 바래 왕생한 이로서, 예전에는 위제(韋提)가 있었고, 지금은 이 분을 보겠다.

* 사제사나(闍提斯那): 원용願勇이라고 번역. 사견외도邪見外道. * 위제(韋提): 승묘신(勝妙身)으로 번역.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의 황후이며, 아사세왕의 어머니. 이 위제(희) 부인의 청(請)으로 부처님께서 '불설관무량수경'을 설하시게 되었다.


​• 요(姚) 노파

​당(唐)의 요 노파는 범행(范行)이라는 노파가 권하여 염불하게 되었다. 임종에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자 부처님에게 " 아직 범행 노파에게 고별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잠깐만 공중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범(范)이 오자 노파는 서서 죽었다.

찬(贊)
갈 길이 다달아 범(范)에게 고별한 것은 근본을 등지지 않은 것이요, 부처님이 공중에서 서서 기다리신 것은 늘 중생의 뜻을 따르신 것이다. 우뚝 서서 간 것도 기이한 일이다.


​• 온정문(溫靜文)의 처

당(唐) 온정문의 처는 병주(幷州)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누워지내자 정문이 권하여 염불하게 하였다. 1년 만에 홀연히 정토를 보고, 그의 남편에게 "저는 이미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다음달에는 가게 될 것입니다." 하고, 부모님에게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나이다. 부디 일심으로 염불하여 후일 서방에서 만나뵙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하고는 갔다.


• 호장(胡長) 노파

송(宋)의 이(李)씨 호장 노파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후 밤낮으로 큰 소리로 염불하고 을 독송한 지 무려 10여 년이나 되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비단 보자기로 닾어주면서 " 할머니는 15일 자시(子時, 밤11시~1시)에 왕생할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 할머니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친지들과 고별하고, 때가 되자 기이한 광명 속에 단정히 앉아서 갔다. 7일 만에 화장하니, 치아는 백옥과 같고 혀는 홍련과 같고 누동자는 포도와 같으면서 모두 정밀하고 단단하여 깨뜨릴 수 없었다. 사리는 헬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화장한 곳에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마치 흰 양귀비와 같았다.

찬(贊)
몸의 여러 기관은 부서지지 않았고 사리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니, 세상에서 흔히 여자는 불결한 몸을 가졌다는 말이 천부당만부당 하지 않은가.


• 정씨(鄭氏)

송(宋)의 정씨는 전당사람이다. 날마다 을 독송하고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병 중에서 목욕을 하고는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들에게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이 장차(且) 오시려 한다." 하더니, 얼마 후에 합장하고 매우 기뻐하며 "불보살님이 오셨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를 들고 계시고, 여래께서는 나를 이끌어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 하고는, 즉시 죽었다.


• 진씨(陳氏) 노파

송(宋) 진씨 노파는 전당사람이다. 영지(靈芝) 율사에게서 보살계를 받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하루에 천 배의 절을 하였다. 어떤 때는 경상(經床) 위에 사리가 흩어진 적도 있었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곁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채 반 시각도 안 되어서 단정하고 의젓하게(凝然) 움직이지 않았다.


• 황씨(黃氏)

송(宋) 황씨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친정에 돌아와 정업 (淨業)을 정성들여 수행하였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인(印)을 맺고는 천천히 걷다 우뚝 서서 죽었다. 가족들이 땅에 재를 뿌리고 왕생한 곳을 시험했더니 연화 한 송이가 재 속에서 피어났다.

찬(贊)
재를 뿌렸다는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고, 인(印)을 맺고 서서 갔다는 사실로써 연품(蓮品) 에 올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왕씨(王氏) 부인

송(宋) 형왕(荊王)의 부인 왕씨는 정업을 전수하여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곁에서 모시는 자들이 그를 본받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오직 한 첩만이 게을러 부인이 나무라자 마침내 크게 깨닫고 정진하더니, 갑자기 병 없이 죽었다. 다른 첩의 꿈에 나타나

"부인의 가르침을 입어 이미 안양에 왕생하였소." 하고 말하였으나 부인은 믿지 않았다. 얼마 후 부인의 꿈에 그 첩과 함께 보배의 연못을 여행하게 되었다. 어떤 꽃을 보니 하늘 옷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양걸(楊傑)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꽃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마우(馬圩)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금대를 바라보니 광명이 휘황하였다. 첩이 이곳을 가리키며 "부인께서 태어날 곳입니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더욱 정진에 힘썼다. 81세 나던 생일날, 새벽에 촛불을 들고 향을 피운 채 관음각(觀音閣)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친지들이 막 차림새를 갖춰 헌수(獻壽)하려 하자 이미 서서 죽었다.

찬(贊)
여기까지 여인으로 서서 죽은 자가 세 사람이나 있었다. 금대가 휘황하였다는 것은 상품(上品)임을 알 수 있다. 누가 규각(閨閣: 부녀자의 거실. 곧 여인을 뜻함)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하던가!


• 풍씨(馮氏) 부인

송(宋) 광평군(廣平郡)의 풍씨 부인은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자수 심(慈受深) 선사로부터 재계염불(齋戒念佛)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깊이 믿고 힘써 행하여 10년 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싫어하여 사람들이 괴이쩍게 여기니

"청정한 세계에서 잘못되어 이곳에 왔다. 사바의 인연因緣이 다하면 서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엇이 괴이할게 있겠는가." 하였다. 임종에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여 가족들에게 " 나는 이미 정토로 돌아갔다. 부처님의 세계를 보니 화엄이나 '십육관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고는 영원히 갔다. 3일 후에 시체를 들어 옮기니 생시와 같았고, 기이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 왕씨(王氏)의 딸

송(宋) 길안(吉安)의 왕씨 딸은 미타․금강․관음 등 여러 가지 경전을 독송하면서 염불로 안심입명 (安心立命)을 찾았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미 염습을 했는데도 더러운 피가 흘러나왔다. 딸이,

"만약 제가 효성스러웠다면 더러운 냄새가 나지 마소서." 하고 발원하니, 이내 피가 멎었다. 아버지가 후실(後室)을 들이자 함께 정업을 닦았다. 나중에 병이 들어 스님에게 정토관법(淨土觀法) 을 설해 줄 것을 간청하고는,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편안히 누워 관음이 손을 들고 있던 깃발을 잡고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땅에 재를 뿌리고 태어난 곳을 시험했더니, 재 속에서 연꽃 몇 송이가 피어났다


• 주씨(周氏)

송(宋) 주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화대(花臺)에 왕생한 상서를 감응하고는, 자신이 새 옷을 갈아입고 부처님의 누각 위에서 예를 드리고 염불하는 것을 보고는, 식구들에게 "부지런히 정업을 닦으셔요. 서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서쪽을 향해 죽었다.


● 제 6권 [파계인(破戒人)의 왕생]

• 장선화(張善和)

당(唐) 장선화는 소 잡는 직업을 가졌던 자이다. 임종에 소떼들이 사람 말을 하며 목숨을 보상하라고 아우성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 처를 불러 “속히 스님을 불러 나를 위해 참회하게 하라” 하였다. 스님이 와서 “'관경觀經'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임종에 악상(惡相)이 나타나는 자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다’ 라고요”하고 깨우쳐 주었다. 그러자 화(和)가 “지옥이 눈 앞에 닥쳤습니다. 향로를 잡을 틈도 없습니다.” 하고는, 왼손에는 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향을 잡고는 서방을 향하여 지극하게 염불하더니, 미처 열 번도 채 채우기 전에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하고는 죽었다.

찬(贊)
지옥이 눈 앞에 닥친 것을 알고는 손으로 향로를 받들었다는 것은, 사정이 급박하고 마음이 조급하여 간절하고 정성스러웠을 뿐 그 밖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을 것이니, 비록 열 번을 채 채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가롭게 백 천만 억념(念)을 하는 자를 훨씬 뛰어넘었을 것이 아닌가. 그가 왕생했다는 사실은 결코 의심할 의지가 없다 하겠다. 혹시 보살의 시현이 아닐까 하고 의심할지 모르나, 그럴 수도 있겠으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 장종규(張鐘馗)

당(唐) 장종규는 닭 잡는 백정이었다. 병이 극심하여 중태에 빠져 누워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닭 떼를 몰아 그를 쪼아대니 피가 흘러 온 얼굴을 덮는 것을 보았다.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스님이 그를 위해 불상을 모셔주고 염불하도록 가르쳤다. 얼마 후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편안히 갔다.


• 웅준(雄俊)

당(唐) 웅준은 성도(成都)에 살았다. 기백과 용기가 지나쳐 계율 따위는 아예 무시했다. 일찍이 중노릇을 그만두고 군인이 된 적도 있었으나 다시 중이 되었다. 그리하여 경에 ‘한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며 “마침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였다.

이로부터는 비록 악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염불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미(丁未) 2월에 갑자기 죽었다가 하룻밤을 지나 다시 소생하여 “명부에 가니 주인되는 자가 ‘너를 잘못 데려왔다. 너는 본시 염불에 큰 믿음이 있었던 자가 아니니, 지금 인간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더욱 염불에 힘써라’하지 않겠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지옥에서도 도망할 틈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후에 산에 들어가 재계하며 염불하였다.

4년이 지난 신해(辛亥) 3월에 스님들을 모우고는 “이젠 내가 갈 때가 되었다.너희들은 성(城)으로 돌아가 나를 아는 자들을 만나거든 나를 대신해 말하라. 준(俊)은 염불하여 왕생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지옥은 사람을 도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고.”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다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향기와 비린내는 한 그릇에 담지 못한다. 악한 짓을 하다 염불을 핟 하면서 어찌 왕생할 수 있겠는가. 아! ‘마침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고 말한 것이나. 부처님을 부르면 죄를 멸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은 골수에 새겨진 것이었다. 곧 이 한 생각의 힘은 만균(萬鈞: 30만 근)보다 무겁다. 임종에 업을 바꾸어 왕생했다는 사실을 어찌 의심하랴.


• 유공(惟恭)

당(唐) 유공은 법성사(法性寺)에 살았다. 선량한 자를 우습게 여기고 나쁜놈들 만을 가까이 하니 술주정뱅이 노름꾼 따위가 언제나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러다 잠시 틈이 나면 염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절에 영규(靈巋)라는 자도 한 패거리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말했다.

‘영규는 악을 짓고 유공도 뒤지라면 서러워 할 지경이다. 지옥은 천 겹, 둘 다 들어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恭)이 그 말을 듣고는 “내가 비록 악업을 짓긴 했지만 지은 죄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침 정토 교주께서 나의 허물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도탄에서 건저주실 것이다. 어찌 다시 악도에 떨어지랴.” 하였다.

건녕(乾寧) 2년(895), 병이 위독하게 되었다. 그 때 규(巋)가 밖에서 돌아오다 어린애들처럼 때때옷을 차려입은 영인(伶人)* 몇 명을 만났다. 어디서 오는 자들인가를 물으니 “서쪽에서 왔소. 공 상인(恭上人)을 맞이하려 하오” 하더니 한 사람이 품 속에서 금병(金甁)을 꺼냈다.

병 속에는 연꽃이 있었는데 마치 주먹을 쥔 것처럼 오무라져 있었다. 잠시 후 차츰 꽃잎이 벌어져 사발만 해지니 그 광채가 눈이 부셨다. 이들은 절을 향해 내달음질 치더니 금새 보이지 않았다. 규가 절에 도착하니 종소리가 울려왔다. 공이 이미 죽은 것이었다.


• 형가(瑩珂)

송(宋) 형가는 잡천(霅川)의 요산(瑤山)에서 배웠던 자였으나 술 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히 파계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사는 자에게 부탁하여 계주(戒珠)선사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구해 읽었다. 한 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런 후에 방안에서 서쪽을 향해 선상(禪椅)을 놓고 음식을 끊어가면서 염불하였다. 3일째 되는 날, 꿈에 부처님이 “너는 10년을 더 살 수 있다. 우선 더욱 정업에 힘서야 한다.” 하였다. 그러자 가(珂)가 부처님에게 “설사 백년을 산다 해도 이 세계는 탁악(濁惡)하여 정명(正命)을 잃기 쉽습니다.

원하는 바는 하루빨리 안양에 왕생하여 여러 성인들을 모시고 싶습니다.”하고 아뢰었다. “너의 뜻이 그렇다면 3일 후에 반드시 너를 맞이하리라.” 그날이 되어 대중에게 '아미타경'을 독송하게 하고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여기에 오셨다”하고, 고요히 갔다.

* 왕생전(往生傳) : 송나라 비산계주(飛山戒珠)가 저술한 책. 양(梁), 당(唐), 송(宋)의 고승전 중에서 정토왕생한 75인의 사적을 뽑아 엮은 것.


• 중명(仲明)

송(宋) 중명은 산음(山陰) 보은사(報恩寺)에 살면서 평소 계행을 지키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 병이 들어 동학인 도영(道寧)에게 “나는 지금 마음이 매우 어지럽소. 무슨 약으로 치료하면 좋겠소?”하고 물었다.

영寧은 호흡을 따라 염불하게 하였다. 명明은 가르친 대로 시행하였으나 7일 째 되는 날에는 힘이 이미 탈진하였다. 영이 이번엔 눈 앞의 불상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게 오래하여 홀연히 두 보살을 보았고, 다시 부처님을 보고는 눈을 감고 갔다


• 오경(吳瓊)

​송(宋) 오경은 임안(臨安) 사람이다.
본시 중이었으나 도를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 전후에 두 번 장가들어 아들 둘을 얻었다. 짐승을 잡고 술을 파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푸줏간에서 닭이나 오리 따위를 죽여 이것을 치켜들고는 “아미타불님! 이 몸 어서 데려가오”하며 연신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칼 질을 하여, 고기를 썰 때마다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눈 위에 계란같이 생긴 혹이 생기자 몹시 두렵고 걱정이 되어, 초암(草庵)을 짓고 처자를 흩어버리고서는 염불과 예참으로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소흥(紹興) 23년(1153), 사람들에게 “경(瓊)이 이젠 내일 술시(戌時, 오후5시~7시)에 떠나오” 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다음날 저녁 베옷으로 술을 바꾸어 마시고는 이렇게 노래 한 수를 지었다.

술과 같이 다 공(空)한 것
무슨 선종(禪宗) 따위 물으랴
오늘은 부디 안녕히
명월청풍(明月淸風)과 같이

사주개공 似酒皆空
문심선종 問甚禪宗
금일진중 今日珍重
명월청풍 明月淸風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 합장 염불하다가, “부처님이 오셨다”하고 부르짖고는 죽었다.


• 김석(金奭)

송(宋) 김석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어부였다. 어느날 갑자기 크게 반성하고 계행을 지키며 정진하여 하루 만 번의 염불을 오래토록 지속하였다. 나중에 병 없이 가족에게 말하기를 “아미타불과 두 보살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나는 이제 정토로 돌아가련다”하고는, 향을 피우고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석(奭)의 일은 선화(善和)나 종규(鐘馗)와는 다르다. 저들은 평소에는 악업을 짓다 임종에 이르러 정성을 다했거니와, 이 이는 미리 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오랫동안 선업을 닦았다. 왕생의 품위도 필시 저 두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다


• 총론(總論)

끝없이 넓은 고해(苦海)는 그 언덕이 머리를 돌이키는 데 있고, 한없는 시간에 쌓인 어둠은 그 밝음이 햇불 하나에 있다. 정토가 악인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허물을 고치는 곳에 다시 살아날 문이 있음을 깨닫고 통렬히 자신의 허물을 뉘우친다면 옳거니와, 업을 가지고도 만에 하나 요행僥倖을 바란다면 어림없는 노릇이다.

예전의 악인들은 이것으로 약을 삼았으나, 요즘의 악인들은 이것에 집착하여 병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전의 악인은 악인이면서 선인이었으나, 요즘의 악인은 악인 중의 악인이다. 슬프다.


●제 7권 [축생의 왕생]

• 용(龍)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용 한 마리가 있었는데 금시조(金翅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용의 몸을 받았으나 이제가지 살생한 적이 없이 물결 속을 희롱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한 후에는 반드시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찬(贊)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것이 정업의 정인(正因)이다. 용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으니 왕생은 진정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 앵무새(鸚鵡)

당(唐) 정원(貞元. 785-805) 중에 하동에 배(裵)시 성을 가진 자가 앵무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늘 염불하면서 오후에는 먹이도 먹지 않았다. 임종에 열 번 염불하고 숨이 넘어갔는데 불에 태워 사리 10여 낱을 얻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다. 혜관(慧觀)스님이란 분이 벽돌을 구워 탑을 세우고 이 신비한 일을 널리 알렸다. 성도(成都)의 윤 위고(尹韋皐)가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 공상(空相)을 무념에서 깨달아 진골(眞骨)을 죽음에서 남겼네.’ 하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구관조) 1

송(宋) 황암(黃岩) 정등사(正等寺)의 관(觀) 공이 구욕새를 길렀는데, 말을 할 줄 알아 늘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서서 죽길래 흙을 파고 묻었더니 그 자리에서 붉은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기이하게 여겨 파 보니 혀 끝에서 돋아난 것이었다. 영지율사(靈芝律師)가 이 사실을 찬탄한 적이 있다. ‘새장에 갇혀 서서 죽은 것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죽은 후 붉은 연꽃도 너무나 신기하다’라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흔히 ‘팔가(八哥)새’라 한다. 때까치 비슷하게 생긴 새로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


• 구욕새(鴝鵒) 2

담주(潭州)에 어떤 자가 구욕새를 길렀는데 이 새가 염불할 줄을 알았다. 죽은 후에 관에 넣어 장사지냈는데, 홀연히 연꽃 한 송이가 그 입에서 나와 피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노래한 것이 있다.

신비한 새 한 마리 있었네. 이름은 팔가(八哥)였네 스님 입을 따라 미타를 염할 줄 알아
죽은 후 평지에 묻으니 연화가 피었네
사람으로 그럴 줄 모르면 아! 어찌해

유일령금호팔가 有一靈禽號八哥
해수승구념미타 解隨僧口念彌陀
사매평지련화발 死埋平地蓮花發
인부회심쟁나하 人不回心爭奈何

​찬(贊)
앵무나 구욕한테 사람이 염불을 가르치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왕생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는가. 아! 세상 사람들의 경우만 해도 누구나 염불의 가르침을 듣긴 하지만 어떤 이는 신심으로 염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염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왕생하는 자는 드문 것이다. 저 앵무나 구욕만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는가.


• 총론(總論)

어떤 이는 ‘사람은 신령하고 축생은 어리석다. 어떻게 축생이 왕생往生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성정(性情)이 있는 것은 모두 부처의 영각(靈覺)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미혹함이 두텁고 엷은 것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과 축생으로 나뉘어지지만 신령하고 어리석음이 균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꿩이 을 듣고 다음 생에는 스님이 된 적도 있었고,

소가 부처님의 얼굴을 보고는 죽어 천상에 태어난 사실은 분명히 여러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지옥 중생이나 귀신이나 축생도 모두 나의 국토에 태어나과저’했던 것이 법장비구의 본원(本願)이었음에랴.

안타까운 점은, 사람으로서 축생의 왕생을 보고도 무덤덤히 깨달을 줄 모르고 오탁(五濁)을 감수하거나 꼼짝할 수 없이 윤회에 빠져, 숨 한번 쉬지 못하면 형체가 비늘이나 깃털로 바뀌어도 스스로 그런 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왕생집 (往生集) 마침-


[정토종(蓮宗) 제8조 연지대사(蓮池大師, 운서, 주굉): 1540년경, 明 世宗, 항주 스님)]


연지대사 왕생집

제3권 처사의 왕생(處士往生類)


• 주속지(周續之)

  송(宋) 주속지는 안문(雁門) 사람이다. 열두 살에 오경(五經)과 오위(五緯: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한 다섯 가지 책)에 통달했으므로 십경동자(十經童子)라고 불렀다.

  한가한 곳을 좋아하여 공경(公卿)과의 교류를 피하고 언제나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여산 원(遠) 법사를 섬겨 참예하였다. 문제(文帝)가 즉위하자 그를 불러 함께 담론한 후 매우 기뻐하였다.

  누가 “처사의 신분으로 임금의 뜰을 밟으니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마음이 조정에 치달리는 자는 세속을 질곡과 같이 여기겠지만, 마음이 이 두 가지에서 떠난 자는 시정이나 조정이 바위 굴 속일 뿐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그를 통은선생(通隱先生)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종산(鍾山)에 살면서 전심으로 염불하여 나이 들수록 더욱 돈독하였다. 하루는 공중을 향해 “부처님이 오시어 나를 맞이한다.”하고는, 합장한 채 갔다.

찬(贊)
속지는 ‘시중이나 조장이 바위 굴 속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서방이나 동토(東土)가 다를 바 없다 하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염불하며 왕생할 길을 찾았으니, 그는 진정 이롭고 해로움을 알았던 것이다. 고인의 이런 송(頌)이 있다.

  ‘높은 산이나 평지가 모두 서방이나. 집에 이르지 못한 자는 희론하지 말라.’


• 정 목경(鄭牧卿)

  당(唐) 정목경은 형양(滎陽) 사람이다. 가족과 함께 염불하다, 개원(開元) 중에 심한 병이 들었다.
누가 어육(魚肉)을 먹어볼 것을 권하자 단호히 거절하며 손에 향로를 들고 왕생을 발원하였다. 그러자 기이한 향기가 가득히 서리더니 별안간에 갔다.
장인인 상서(尙書) 소정(蘇頲)의 꿈에, 보배의 못에 연꽃이 만발한데 목경이 그 속에 앉아 있었다.


• 장 원상(張元祥)

  당(唐) 장원상은 평소부터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가족을 재촉하여 “서방의 성인이 나를 기다리시며 재계를 마치고 함께 가자고 하신다.” 하더니, 재계를 마치고는 향을 피우고 서쪽을 향해 죽었다.


• 손량(孫良)

  송(宋) 손량은 전당 사람이다. 숨어 살며 널리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나, 그 중 더욱 화엄경에서 지취를 얻었다. 대지(大智) 율사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하루에 만 번의 염불을 하여, 이렇게 20년 동안 쉬지 않았다.

  하루는 가족들에게 스님을 청해 염불하여 왕생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게 하였다. 스님들이 모여 얼마동안 염불하고 있노라니, 공중을 향해 합장하며 “부처님과 보살이 이미 왕림하셨다.” 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죽었다.

찬(贊)
화엄합론에는 ‘정토에 왕생하려 하는 보살은 일승대도(一乘大道)를 깨닫지 못한다’ 하였으나, 이 노인은 화엄의 지취를 얻었으면서 어찌하여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랬을까? 대개 합론은 우선 일부 모양에 집착한 범부를 위하여 그 집착하는 견해를 파했던 것으로, 이는 사정토(事淨土)를 얻었고 이정토(理淨土)는 얻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노인은 사(事)와 이(理)에 원통하여, 화장(華藏)과 연지(蓮池)가 하나이지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가 왕생을 구했던 것은 의심할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정토를 닦는 자는 화엄의 행원품을 의지하고 합론은 참고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원자평(元子平)

  당(唐) 원자평은 경구(京口) 광음사(觀音寺)에 우거하며 염불하였다. 어느날 홀연히 공중에서 음악소리를 듣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며칠동안 끊이지 않았다.


• 유선(庾銑)

 양(梁) 유선은 신야(新野) 사람이다. 무제(武帝)가 불러 황문시랑(黃門侍郞)을 삼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어느날 저녁, 자칭 원 공이라는 도인이 나타나 선(銑)을 ‘상행선생(上行先生)’이라 부르고는 향을 주고 가면서 4년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죽는 날, 공중에서 ‘상행선생은 이미 안양에 태어났다.’ 하는 말이 들려왔다.


• 송만(宋滿)

  수(隋) 송만은 상주(常州) 사람이다. 콩을 헤아리면서 염불하여 30 석의 콩을 쌓았다. 개황(開皇) 8년[588] 9월, 이것들을 스님들께 공양하고는 앉아서 갔다. 사람들이 보니, 하늘꽃과 기이한 향기 속에서 만(滿)이 공중에 올라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 분양 노인(汾陽老人)

  당(唐) 분양 노인은 법인사(法忍寺)에서 빈 방 하나를 빌려 기숙하면서 주야로 염불하였다. 정관(貞觀) 5년[631], 목숨이 다하는 날, 큰 광명이 두루 비치는 가운데 서쪽을 향해 죽었다. 사람들이 보니 연대(蓮臺)를 타고 있었다.


• 원자재(元子才)

  당(唐) 원자재는 윤주(潤州) 관음사(觀音寺)에 살면서 미타경을 읽으며 염불하였다. 어느날 조그만 병이 들었는데, 공중에서 향기와 음악소리가 들려오며,  누가 ‘거친 음악이 사라지고 세밀한 음악이 이어서 들려올 때, 군은 반드시 가라.’ 하는 소리를 듣고 염불하며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며칠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 거친 음악과 세밀한 음악: 거친 음악이란 징과 북 따위의 타악기로만 연주하는 음악. 세밀한 음악은 관현악기로 내는 경쾌하고 맑은 소리의 음악을 말한다.


• 오자장(吳字章)

  원(元) 오자장은 소주(蘇州) 사람으로, 대대로 의업(醫業)에 종사하였다. 형인 자재(子才)와 함께 운옥(雲屋) 화상을 참예하고 염불을 정근하여 온 집안이 불법을 숭봉하였다. 지정(至正)년 간에 병 없이 합장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죽었다.


• 하담적(何曇迹)

  원(元) 하담적은 나이 18세에 보살계를 수지하며 염불하던 이다. 어느날 사고(四鼓: 오전 두시 경)에 일어나 염불을 하고 있노라니, 어떤 사람이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의 금상(金相)과 깃발과 꽃이 와서 맞이합니다.” 하고 대답하고는 죽었다.


• 왕전(王闐)

  송(宋) 왕전은 사명(四明) 사람으로, 호를 무공수(無功叟)라고 하였다. 모든 선림의 종지와 천태의 교의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을 저술하였다. 만년에는 염불에 전심하며 앉아서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자욱하였다. 다비에 붙여 콩만한 사리 108 낱을 얻었다.


• 범엄(范儼)

  송(宋) 범엄은 인화(仁和) 사람이다. 세상의 일에 무심無心하여, 그의 아들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나 엄(儼)은 못 본 체하며 “나는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하며, 날마다 법화경을 읽고 아미타불을 염하기에 마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날 보현보살이 육아(六牙)의 흰 코끼리를 타고 금색 광명을 놓으며 엄에게 말하기를, ‘내일 묘시(卯時)에 반드시 가라.’ 하시는 것을 보고, 다음날 저녁, 불 보살이 와서 맞이하자 자리에 앉아 합장하고 갔다.


• 육원(陸沅)

  송(宋) 육원은 도호(道號)를 성암(省菴) 거사라 하고 명(明)의 개울가에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향을 피우고 가부좌하고 앉아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먼저 게(偈)를 읊기를,

새벽에 일어나 손을 씻고 패엽(貝葉)을 펼치니
복을 구하지도 않고 재앙도 바라지 않네.
세상 인연 끊어진 곳, 그것을 따라 끊어지나니
겁화(劫火)의 광명 속에서 한 바탕 춤추네.

하고는, 그런 다음에 염불을 하고 경을 읽되, 더디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아 마치 구슬을 꿰듯 하였다.
이렇게 매일 한 번을 읽고 미타 만 번을 부르면서 한결같이 서방을 염원하였다.

나이 85세 나던 해 4월 6일,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갔다. 염습할 때, 어디서 풍겨오는지 연꽃향기가 진동하였으나, 가까이 가서 보니 입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손충(孫忠)

  송(宋) 손충은 사명(四明)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서방을 사모하여 마을의 동쪽에 암자를 짓고 염불하였다. 나중에 병이 들어 스님 백 명을 청해 염불하게 하더니, 갑자기 허공을 향해 합장하고 손으로 쌍인(雙印)을 짓고 미소하며 죽었다.

  온 마을이 하늘 음악과 기이한 향기가 점점 서쪽을 향하여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두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염불하여 또한 앉아서 죽었다.


• 심전(沈詮)

  송(宋) 심전은 전당 사람이다. 처妻 시(施)와 함께 정토를 전심하여 평소의 모든 선행을 모두 서방에 회향하였다. 나중에 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목숨을 마쳤는데, 모두 화불(化佛)이 석장을 잡고 접인해 가는 것을 감응하였다.


• 당세량(唐世良)

  송(宋) 당세량은 회계(會稽) 사람이다. 계행을 청정히 지키며 일심으로 염불하여, 늙고 병이 들었으면서도 자리에 눕지 않고 10만 번을 읽었다. 어느날 식구에게 “부처님이 와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예하고 앉아서 죽었다.

  이(利) 스님이 그 때 도미산(道味山)에 머물고 있었는데, 간밤 꿈에 서방의 기이한 향기와 깃발과 꽃과 하늘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 공중에서 ‘당세량은 이미 정토에 태어났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계공(計公)

  송(宋) 계공은 사명(四明) 도원(桃源)의 대장장이였다. 나이 70에 두 눈을 실명했는데, 그 때 그 마을에 잠학유(昝學喩)가 벽과도(擘窠圖: 글씨나 그림을 새긴 판)를 인쇄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염불하기를 권장하였다.

  계(計) 공이 처음에 그림 한 장을 받아 36만 번의 염불은 채웠고, 염불이 넉 장의 그림에 이르러서는 두 눈이 밝아졌다. 이렇게 3년 동안 열일곱 장의 염불을 채웠다.

  어느날 숨이 끊어졌다가 반나절 만에 다시 소생하여 “부처님이 그림 여섯 장을 나누어 잠학유에게 주게 하였다. 그는 당초에 나를 인도해 준 분이다. 또한 그림 한 장을 나누어 이이(李二) 공에게 주게 하였다. 그는 그림을 나누어 준 분이다. 그러니 그의 아들에게 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하셨다.” 하고는 목욕하고 서쪽을 향해 영원히 갔다.


• 진군장(陳君璋)

  원(元) 진군장은 황암(黃岩) 사람이다. 성품이 신중하고 과묵했으며, 나이 40에 부인 섭(葉)씨와 함께 법화경을 읽으며 염불에 전념하였다. 60에 큰 병이 들더니, 하루 저녁에는 아들 경성(景星)에게 부축하게 하여 앉고서는 “내가 이젠 돌아가야겠다.” 하였다.

  아들이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숨을 곳으로 간다.” 하였다. 그리고는 또 “내가 죽으면 반드시 사문의 다비법을 따라야 한다.” 하고는, 합장한 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갔다.


• 장전(張詮)

  진(晋) 장전은 농부였다. 성품이 고상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농사짓는 틈틈이 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벼슬을 주며 누차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가난을 즐거워 했으며, 심양(潯陽)의 태수로 천거했으나 웃으며 “고인은 무릎을 펼만한 곳으로도 만족하게 여겼다. 어찌 뜻을 굽혀 가면서 녹을 구해 영화를 누리는 일이 있었겠는가.”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여산에 들어가 원 공의 연사(蓮社)에 의지하여 내전(內典)을 연구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송(宋) 경평(景平) 원년[423], 병 없이 서쪽을 행해 염불하고 편안히 누워 죽었다.


• 궐공칙(闕公則)

  진(晋) 궐공칙(궐공즉으로도 읽음)은 여산의 연사로 들어갔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친구가 낙양 백마사(白馬寺)에서 그를 위해 밤중에 기제(忌祭)를 지내고 있노라니, 갑자기 숲과 전각들이 금색으로 변하면서 공중에서 ‘나는 궐공칙이다.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랬더니 지금 이미 왕생하였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찬(贊)
임종에 상서로운 일을 감응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죽은 후에 다른 곳에서 금색을 나투며 왕생을 알려 온 사실은 매우 드문 일이다.


• 이지요(李知遙)

  당(唐) 이지요는 정토의 가르침을 숭봉하여, 대중을 이끌어 다섯 차례의 염불회를 가졌다. 후에 병이 들더니 갑자기,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향로를 들고 방을 나가 정례하였다.

  그리고서 공중에서 ‘그대를 인도하여 정토에 왕생케 하노니, 그대는 이제 금교(金橋)에 오르라.’ 하는 게(偈)를 듣고는, 자리에 올라 앉아 죽었다. 대중이 모두 기이한 향기를 맡았다.


• 고호상(高浩象)

  양(梁) 고호상은 동평(東平) 사람으로, 문을 닫아걸고 정좌하여 무량수경만을 읽었다.

일찍이 정(定) 중에서, 자신이 못 위에서 홍련을 타고 있는데, 처음에는 부처님을 보지 못했으나 연꽃 속에서 마음을 기울여 부처님께 예배하며 부처님의 얼굴을 생각했더니, 광명이 먼 곳에서 비춰오는 것을 보았다.

  어느날 저녁, 많은 보살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즉시 죽었다.

찬(贊)
옛날 두 스님이 연꽃이 피고 지는 것을 생각하고는 나중에 동시에 정토에 왕생한 일이 있었다. 상(象)의 몸이 홍련을 탔다는 것도 역시 관상(觀想)이 정성스러운 소치이리라.


• 서육공(徐六公)

  송(宋) 서육공이란 분은 가흥(嘉興) 사람으로, 농부였다. 부부가 나물만 먹으면서 40년 동안 염불을 정근하였다.

  미리 감실 하나를 만들어 두었다가 임종에 베옷과 짚신을 갈아 신고 감실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있더니, 잠시 후에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곧 죽었다.


• 육준(陸俊)

  송(宋) 육준은 전당 사람이다. 젊어서는 공문(公門)에 종사했으나 나이 들어서 이를 버리고 오로지 정토만으로 업을 삼았다. 부처님을 대하여 참회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고, 도우(道友)와 만나 정토의 인연因緣을 말할 때는 겨우 열 마디만 하면 슬피 울며 감탄하였다.

  임종에 원정(圓淨) 율사에게 서방을 간청하더니, 관경觀經을 읽다 상품(上品)에 이르러 정(淨)이 “이젠 가시오.” 하니, “성인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잠깐만 기다리겠습니다.” 하더니, 잠시 후에 갑자기 일어나 죽상(竹牀)으로 가서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무량수경에 말씀하시기를 ‘아미타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금방 눈물을 흘리는 자는 모두 숙세에 선근의 소치다.’ 하였다. 준(俊)이 슬피 운 것은 마음속에서 감동하여 얼굴에 나타난 것이니, 그의 왕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요즘 희롱삼아 정토를 말하는 자는 어찌 옳을 리가 있겠는가.


• 황타철(黃打鐵)

  송(宋) 황공은 담주(潭州) 사람이다. 본시 군오(軍伍)를 지냈으나 쇠를 다루는 일로 생계를 삼았다. 망치를 칠 때마다 입에서 염불을 끊이지 않더니, 하루는 병없이 이웃 사람에게 이렇게 송(頌)을 말하고는 갔다.

딱딱! 쿵쿵!
오랫동안 단련하여 무쇠가 되네
태평이 가까워 오니
나는 이제 서방으로 가네

가가당당 呵呵璫璫
구련성강 久鍊成剛
태평장근 太平將近
아왕서방 我往西方

  그 송이 호남지방에 널리 퍼져 염불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찬(贊)
황 공은 그다지 남다른 재능도 없이 그저 입에서 염불을 끊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본받아 실행하려고는 않고, 기이하고 교묘한 것만을 찾으며 마침내 세월을 허송하고 만다. 아! 이른바 쉽고 간단한 길을 버리고 도리어 어려운 길을 찾으려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 연화태공(蓮花太公)

  대명(大明)의 연화태공이란 분은 월(越) 사람이었다. 성품이 순박하여 오직 밤낮으로 염불을 끊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죽은 후 관 위에 홀연히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경탄하여 연화태공이라 불렀다.


• 화거사(華居士)

  대명(大明)의 화 거사는 강천(江千) 사람이다.
성품이 순박하여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법이 없었다. 중년에 가업을 자식들에게 전하고는 혼자 방 한 켠에 살면서 세상 일에 관계하지 않고 오직 밤낮으로 염불에만 전념할 뿐이었다.

  나중에 목숨이 다하는 날, 때가 이른 것을 스스로 알고 옷을 갈아입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손수 의관을 단정히 하고는 단정히 앉아 식구들에게 고별하고 갔다.

그의 아들이 미리 관을 만들어 두었다가 감실로 바꾸게 되었는데, 이는 사문沙門의 법을 따른 것이었다. 감실을 들어 옮기는 날, 구경꾼이 담을 치듯 모여들어 원근이 추모해 마지 않았다.


• 총론
  어떤 이가 “정명(淨名: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이름)과 방(龐: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을 이은 방온龐蘊을 이름) 거사는 어찌하여 왕생을 구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대가 스스로를 평가해 보라. 만약 두 공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왕생을 구해야 하는 것은 굳이 논할 필요가 없겠거니와, 설사 다시 오신 금속여래(金粟如來: 정명의 전신이라 한다)라 하더라도 다시 미타를 친견한다 하여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명은 석가를 가까이 하지 않았을 것이요, 방 거사도 마조(馬祖)를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 한 것은 정명의 말이 아닌가? ‘만법과 짝하지 않은다’. 한 것은 방 거사의 말이 아닌가?

  그대가 하루 아침에 정토를 밟는다면 반드시 ‘어찌 자기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기를 바라겠으며, 어찌 자기의 생각이 만법과 짝하지 않기를 바라겠으며, 어찌 두 공이 일찍이 정토에 있는 적이 있기를 바라겠는가?’ 하고 말할 것이다.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 연지대사 왕생집 2

제2권 임금과 신하의 왕생(王臣往生類)


• 오장 국왕(烏萇國王)

 오장 국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여가에는 평소 불법을 숭봉하여, 일찍이 시신(侍臣)에게 “짐은 국왕이 되어 비록 복락은 누리고 있으나 무상無常은 면할 길이 없다. 듣건대 서방정토는 마음을 깃들일 만한 곳이라 하니, 짐은 마땅히 발원하여 저 국토에 왕생하고자 한다.” 하고는, 종일 행도염불(行道念佛) 하였으며, 부처님이나 스님들께 공양할 때마다 왕과 부인이 몸소 음식을 드려, 이렇게 30년 동안을 거르지 않았다.

 붕어할 때, 얼굴에 웃음빛을 띠고 화불(化佛)이 와서 맞이하는 등, 상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찬(贊)
말세에 법을 듣고 믿어 지니는 자들 중에는 지위가 없는 자는 많고 지위가 있는 자는 적으며, 지위가 있으면서 그 지위가 지극히 존귀한 자는 더욱 적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지위가 높을수록 욕심도 더욱 많고, 욕심이 많을수록 번뇌도 더욱 깊기 때문으로, 이치가 그럴진대 이를 면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지금 임금의 복락을 누리면서도 서방西方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숙세에 수승한 인因을 심지 않았다면 어찌 그럴 수 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까지 제왕으로서 마음을 불법에 둔 자를 어찌하여 기록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 정토전(淨土傳)을 기록하는 것만해도 그 의도가 마음을 외곬로 전념하는 자에게만 있으므로, 단순한 신앙을 가진 자는 함부로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위세자(魏世子)

 송(宋) 위 세자는 부자父子 세 사람이 모두 서방을 닦았으나, 처만은 닦지 않았다.

 딸이 열네 살에 죽었는데, 7일 만에 다시 소생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소녀가 보니, 서방의 칠보로 된 연못 속에 아버지와 오빠 등 세 분은 이미 연화가 피었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이곳에 왕생하실 것입니다만, 유독 어머니만이 없었으므로 잠시 돌아와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뜻을 일으키소서.” 하고 아뢰었다.

 어머니도 딸의 말에 감동하여 즉시 신심을 일으켜 염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죽어 역시 안양에 왕생하였다.

찬(贊)
처음에는 정토와의 인연이 소원했으나 마침내 극락국에 왕생하게 된 것은, 믿고 믿지 않는 차이였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다만 믿지 않는 자는 제외한다.’ 하였다.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 유유민 참군(劉遺民 參軍)

 진(晋)의 유유민은 팽성(彭城) 사람으로 한나라 초원왕(楚元王)의 후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효성으로 소문이 났다.

 자신의 재주를 자부하여 세속의 무리들과 휩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처음에 부(府)의 참군이 되었으나 숨어버렸고, 사안(謝安)이 유유(劉裕)와 사귈 것을 권했으나 듣지 않고 스스로 호하기를 유민(遺民)이라고 하였다.

 여산에 들어가 원(遠) 공의 연사(蓮社)에 참예하였고, 염불삼매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전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정 중에서 부처님의 광명이 땅을 비치니 모두 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연사에 산 지 15년 째 되는 해에는 또한 아미타불이 옥호광(玉毫光)을 비치시며 팔을 드리워 이마를 어루만지시자, 유민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저의 이마만을 만지십니까? 옷으로 저를 덮어주소서.” 하고 간청하니, 잠시 후에 부처님이 이마를 만지시며 가사를 끌어 그를 덮어주시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는 또 칠보의 연못에 들어가니, 푸르고 흰 연꽃이 만발한데, 그 물이 한없이 맑았다. 이마에는 원광(圓光)이 빛나고 가슴에는 만자(卍字)가 드러나 있는 어떤 사람이 못의 물을 가리키며 ‘팔공덕수(八功德水)다. 너는 이 물을 마셔라.’ 하고 말하였다. 유민이 물을 마시니 더없이 달고 향기로웠던 일을 보기도 하였다.

 깨어나 보니 그때까지 아직도 기이한 향기가 몸에서 풍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중에게 “나는 정토의 인연이 이르렀다.” 하고는, 성상(聖像)을 대하여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하고는 “저는 석가의 유교(遺敎)로 인하여 아미타불이 계시는 줄을 알았습니다. 이 향을 석가여래에게 공양하고, 다음에는 아미타불과 묘법화경에게 공양합니다. 원하옵건대 일체 중생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여지이다.” 하고 축원하고는 서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갔다. 그 때는 의희(義熙) 6년[410]이었다.

찬(贊)
관경(觀經)에서 정업의 정인(正因)을 밝히면서, 부모에게 효양하는 것이 제일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불효한 자는 종일 염불하더라도 부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 수 있겠다.

지금 유민은 어려서는 효양을 다 바쳤고, 다시 깊이 삼매에 들어 여러 가지 상서로운 징조를 감응했으니, 그의 왕생의 품위(品位)가 높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 재가에서 정업을 닦는 자는 이것으로 만대의 사법(師法)을 삼으라.

* 사안(謝安): 동진(東晋) 중기의 명신

* 유유(劉裕): 남조(南朝) 송(宋)나라 무제(武帝)의 이름. 처음에는 진(晋)을 섬기다가 나중에 제위를 찬탈하였다.

* 유민(遺民): 전조(前朝)의 백성으로 의를 지키고 새 조정을 섬기지 않는 자를 일컫는 말.

* 팔공덕수(八功德水): 정토의 연못에 담겨있는 여덟가지 훌륭한 공덕이 있는 물. 여덟가지 공덕이란, 맑고[澄淨], 차고[淸冷], 감미롭고[甘美], 부드럽고[輕軟], 윤택하고[潤澤], 화평하고[安和], 기갈을 면하고[除飢渴], 신체의 여러 기관을 자라게 하는[長養諸根] 공덕을 말한다.


• 장야 무재(張野茂才)

 진(晋) 장야는 심양(潯陽)에 살았다. 중국어와 인도어에 다 능통했으나 더욱 글을 잘 지어 무재(茂才)로 천거되기도 하였다.

누차 산기상시(散騎常侍)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때마다 나아가지 않고, 여산의 연사(蓮社)에 들어가 정업을 닦았다. 의희(義熙) 14년[418], 가족에게 고별하고 방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죽었다.


• 장항 학사(張抗學士)

 송(宋) 장항은 부처님께 선행을 쌓고 대비다라니(大悲陀羅尼)를 10만 번 외우면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다.

나이 60여가 되어 앓아 누웠으면서도 일심으로 염불하더니, 가족에게 말하기를 “서방정토는 다만 눈 앞에 있을 뿐이다. 아미타불이 연꽃 속에 계시고 옹아(翁兒)는 금지(金地)에서 부처님께 예를 드린다.” 하고는, 염불하고 갔다. 옹아란 항(抗)의 손자로서 세 살 때 죽었다.

찬(贊)
마음이 청정하면 서방도 눈길에 닿는 곳에 있고, 마음이 더러우면 지옥도 몸을 따라온다. 항(抗)의 청정한 마음을 성취함이여! 눈 앞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는 말을 어찌 의심하랴.


• 왕중회 사사(王仲回 司士)

 송(宋) 왕중회는 관직이 광주(光州)의 사사참군(司士參軍)을 지냈다.

 무위자(無爲子) 양(楊) 공에게 “경에서는 사람들에게 정토에 왕생하게 하였으나, 조사(祖師)는 마음이 바로 정토다. 굳이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양 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스로 생각해 보시오. 만약 부처님의 경계에 있다면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을 것이니 무엇하러 왕생을 찾겠소. 만약 중생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찌 지심으로 염불하여 더러운 국토를 버리고 정토에 왕생하려 하지 않겠소.” 사사는 깊이 깨닫고 뛸 듯이 기뻐하며 물러갔다.

 2년 후, 양 공이 단양(丹陽)의 태수가 되었을 때, 홀연히 꿈에 사사가 나타나 “전에 가르침을 받고 지금 이미 왕생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와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하였다.

 며칠 후에 부음이 도착했는데, 사사는 7일 전에 미리 때가 이른 것을 알고 가족들에게 고별하고는 죽었다는 것이다. 바로 꿈 꾼 때였다.


• 마자운 현위(馬子雲 縣尉)

 당(唐) 마자운은 효렴(孝廉)에 천거되어 경읍(涇邑)의 현위가 되었다. 조세선(租稅船)을 호송하여 서울로 가다 풍량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말았다. 이러한 죄로 체포되었으나 전심으로 염불하여 5년 만에 사면을 받고 남능(南陵)의 어느 절에 숨어 살았다.

  하루는 사람들에게 “내가 일생을 염불을 정근하여 지금은 서방의 업이 이루어졌다. 이젠 가서 안양에 왕생해야겠다.” 하더니, 다음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단정히 앉아 합장하고 있으니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자운(子雲)은 기뻐하며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갔다.

찬(贊)
몸은 체포를 당했으나 마음은 염불하여 마침내 사면을 받을 수 있었으니, 이는 곧 칼이나 쇠사슬을 쓰고 옥에 갇혔더라도 관음보살을 생각하고 해탈을 얻은 자의 경우일 것이다.

 지금 오욕에 얽혀있는 것이 어찌 체포를 당한 것이 아닐 것이며, 염불 한 마디로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어찌 사면장이 아니랴. 그러나 오욕에 손발이 묶여 있으면서도 염불할 줄 모르고 영겁토록 죄를 안고 있으니, 끝내 사면을 받을 때가 없다. 슬프다.


• 가순인 군쉬(賈純仁 郡倅)

 송(宋) 가순인은 잡천(霅川) 사람으로 벼슬은 영주(郢州) 군수를 지냈고, 정업淨業에 전심하여 오랫동안 염불로 재계하였다.

 조그만 병이 들더니 서쪽을 향하여 조용히 앉아 갔다. 머리 위에는 원상(圓相)의 흰 광명이 서렸고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 장적 조교(張迪 助敎)

 송(宋) 장적은 전당 사람으로 벼슬은 조교를 지냈다. 원정(圓淨) 율사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정업 법문을 물어 독실하게 수지(修持)하여 안양에 왕생할 것을 서원하였다.

 염불할 때마다 큰소리로 용맹을 다하여 목소리가 쉰 경우에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원정에게 “정 중에서 흰색의 빈가조(頻伽鳥)가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더니, 3년 후에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며 죽었다.

찬(贊)
빈가만을 보고 부처님은 보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개 처음에는 이런 것들을 잠깐 보았다가 나중에는 으레 부처님을 보기 마련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표현이 어떨까.


• 왕용서 국학(王龍舒 國學)

 송(宋) 왕일휴(王日休)는 용서 사람이다. 성품이 단정하고 간결하여 경사(經史)에 박식하였으나 하루 아침에 그것들을 내버리고는 “이것들은 모두 업습(業習)일 뿐 구경법은 아니다. 나는 이제 서방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였다.

  이로부터 염불을 정진하여, 나이 60에 베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었으며, 하루에 천 배의 절을 하고 밤에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정토문(淨土文)을 지어 세상에 권하기도 하였다. 죽기 3일 전에 두루 친척이나 아는 이들에게 고별하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 때가 되어 독서를 마치고 평소와 다름없이 예념(禮念)하더니, 문득 큰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나무처럼 반듯이  서서 죽었다. 이웃 사람의 꿈에,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공을 이끌고 서쪽을 향하여 가는 꿈을 꾸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그를 숭앙하게 되었다.

찬(贊)
 용서는 서방을 권발(勸發)하기에 가장 간절했던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심지어 임종시에 수승하고 기이한 상서는 천고에 빛나는 것이었다.
아! 어찌 정토의 성현이 세간에 내려와 중생을 교화했던 분이 아니겠는가.

* 송나라 왕일휴는 유학에 조예가 깊어 국학진사(國學進士)가 되었으나, 후에 느끼는 바가 있어 유교를 버리고 오로지 서방의 정토업을 수행하였다. 남송 소흥 30년(1160)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기원하여 무량수경의 사역(四譯)을 교정하고 모아 새롭게 2권 56분의 경을 만들었고,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 10권(지금은 12권이 있지만 뒤 두 권은 후대 사람들이 추가하여 보충한 것임)을 찬술하여 정토의 긴요한 법과 고금에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을 기술하였다. 그는 건도9년(1173)에 죽었다. 그의 정토문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여러 차례 간행되어 많은 이들 사이에서 인용되었다.

  또 그는 십념(十念)의 행을 중시하여 매일 새벽에는 합장하고 서방을 향하여 예배하고 열 번 부처님을 불렀으며, 동시에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대세지보살, 나무일체보살성문제상선인(南無一切菩薩聲聞諸上善人)을 각각 열 번씩 불렀다고 한다.

  또 재계(齋戒)를 지켜야 한다고 권장하였고, 특히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하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큰 선이라고 하였다. 만약 질병이 들었을 때에 세 가지 깨끗한 고기(자기에게 제공된 고기를 죽이는 것을 (1) 보지 않은 것. (2) 듣지 않은 것. (3) 자기를 위해 죽였을 것이라는 의심이 없는 것)를 먹으려고 하면, 이 먹는 고기 중생들을 위해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 삼십육만억 일십일만 구천오백 동명동호 아미타불(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三十六萬億 一十一萬 九千五百 同名同號 阿彌陀佛)’을 49번 염송하여 그들의 왕생극락을 빌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계살염불(戒殺念佛)설은 당시 교계를 크게 자극하였고, 명나라시대 이후부터는 거사불교의 규범이 되었다.(모찌쯔끼신코望月信亨 지음. 이태원 역, 중국정토교리사, 운주사, 1997. 409-411쪽에서 정리)


• 강공망 사간(江公望 司諫)

 송(宋) 강공망은 조대(釣臺) 사람이다. 관직이 간의(諫議)에 이르렀으나 거친 음식을 먹으며 청정히 수행하였다. 보리문(菩提文)과 염불방편문(念佛方便文)을 지어 세상을 깨우쳤다.

 어려서 죽은 아들이 있었는데, 꿈에 나타나 “아버지께서는 도를 닦아 이미 공업(功業)이 성취되었습니다. 명부에 금자(金字)의 편액이 걸려있는데 ‘엄주부(嚴州府) 강공망(江公望)’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였다. 간관(諫官)의 책임을 맡은 지위에 있었으나, 마음은 불도를 사모하여 몸소 수행하여 마음에 애욕을 없이하였다.

 동정(動靜)에 불법을 어기지 않았고 어묵(語黙)에 종풍과 계합하여, 명리는 이미 염부를 벗어났고 몸과 마음은 정토로 돌아갔다. 선화(宣和) 말에는 광덕군(廣德軍)이 되었다가, 어느날 병 없이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어떤 이는 편액에 이름이 적혀있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 영명은 명부에 상(像)을 그려 놓았던 일이 있었고, 탑을 돌던 스님이 이것을 확인하였다. 어찌 유독 공망에 대해서만 의심하랴.


• 갈번 대부(葛繁大夫)

 송(宋) 갈번은 징강(澄江) 사람이다. 젊어서 급제하여 벼슬이 조산(朝散)에 이르렀다. 공서(公署)나 사가(私家)에 반드시 정실(淨室)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

 일찍이 방에 들어가 예송하고 있노라니, 사리가 허공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고, 평소 정업淨業을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권하여 많은 감화를 받기도 하였다.

어떤 스님이 정 중에서 정토를 여행하다, 번(繁)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병 없이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사대부로서 부처님을 믿었던 자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의 조롱을 피해 밖으로는 형색을 갖춰가면서 공서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갈 군은 그 독실한 신앙을 회피하지 않은 분이다. 앉아서 숨을 거두고 왕생했던 사실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 이병 중관(李秉 中官)

 송(宋) 이병은 소흥(紹興)의 중관으로 약원(藥院)을 관리하였다. 처음에는 정자사(淨慈寺)의 휘(輝) 공으로부터 선(禪)을 배워 깨달음이 있었으나, 만년에는 용서의 정토문을 읽고 매일 염불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으며, 각장(閣張)인 원미(元美), 전장(殿長)인 임사문(林師文) 등 수십인과 전법사(傳法寺)에서 염불회를 결성하였다.

 하루는 병이 들었는데, 꿈에 아미타불이 금색 원광(圓光)을 그의 머리에 씌워주는 것을 꿈 꾸었으며, 7일 후에는 금색 꽃이 방에 가득한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친척에게 고별하고 단정히 앉아 인(印)을 맺고 죽었다.


• 호인 선의(胡闉 宣義)

  송(宋) 호인은 관직이 선의였다. 평소에도 불법을 믿었으나 정토를 알지 못하다, 나이 84세가 되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할 지경이 되자, 그의 아들이 청조(淸照) 율사를 맞이하여 가르침을 간청하였다.

  조(照)가 인(闉)에게 물었다. “공은 안심입명(安心立命)할 곳을 아십니까?” “마음이 깨끗하면 불토도 깨끗할 것입니다.”

  “공은 스스로 평생을 돌아보십시오. 잡념에 물든 적은 없습니까?” “이왕 세간에서 사는 몸이 어찌 잡념이 없을 수 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이 청정하고 국토가 청정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부처님 명호를 부름으로 해서 어떻게 능히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아미타불은 큰 서원과 오랜 수행으로 위덕이 광대하신 분으로, 광명의 위신력은 불가사의합니다. 그래서 한 번 그의 명호를 부름으로 해서 한량없는 죄를 소멸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밝은 햇살 아래 서리가 녹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무엇을 다시 의심하겠습니까?”

인은 마침내 깨닫고 그날로 스님을 불러 염불하게 하였다. 다음날 조(照)가 다시 왔다. 인이 “스님께서는 어찌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두 보살이 강림하신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하니, 조(照)가 대중과 함께 큰 소리로 염불하자 인이 합장하고 갔다. 

찬(贊)
인(闉)이 왕생한 것은 청조를 만났기 때문이요, 청조를 맞이해 온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다. 그를 진정 대효(大孝)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겠다. 세상에는 조그마한 애정에 집착하여 부모의 재계를 망치는 자가 있다. 매우 잘못된 노릇이다.


• 양무위 제형(楊無爲 提刑)

  송(宋) 양걸(楊傑)은 무위주(無爲州) 사람으로 호는 무위자(無爲子)다. 소년에 급제하여 관직이 상서주객랑(尙書主客郞)이 되어 양절(兩浙)의 형옥(刑獄)을 다스렸다. 불법을 존숭하고 선종에도 깨달음이 있었다.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중생의 근기는 날카롭고 둔한 차이가 있으나,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법문은 오직 서방정토일 뿐이다. 일심으로 관념(觀念)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거두기만 하면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

  천태십의론서(天台十疑論序)과 미타보각기(彌陀寶閣記), 안양삼십찬(安養三十贊), 정토결의집서(淨土決疑集序) 등을 지어, 널리 서방의 교관(敎觀)을 천양하고 미래 중생을 깨우쳤다.

  만년에는 미타장육존상(彌陀丈六尊像)을 그려놓고 늘 수행 관념(隨行觀念)하더니, 목숨이 다하는 날,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감응하고 단정히 앉아 죽었다.

그의 사세송(辭世頌)에 이런 것이 있다.

삶도 연연할 것 없고
죽음도 버릴 것 없네
허공 속의 한 점 구름인 듯
기왕 착오한 일
서방극락에 나아가네.

생역무가연 生亦無可戀
사역무가사 死亦無可捨
태허공중지호자야 太虛空中之乎者也
장착취착 將錯就錯
서방극락 西方極樂

찬(贊)
무위자의 송을 읽어보니, 이른바 선을 참구하여 성품을 보았으면서 다시 정토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겠다. ‘이왕 착오한 일’ 운운은 곱씹을 맛이 적지 않다. 아! 인간의 재사(才士)로서 어찌 이 한번의 착오를 고쳐 나아갈 수 있으랴.


• 위문진 관찰(韋文晋 觀察)

송(宋) 위문진은 행동거지가 고결하고 정업도량을 세워 널리 중생을 제도하였다. 유월 모일 홀연히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하고 합장한 채 염불하며 죽었다. 기이한 향기를 원근에서 다 맡을 수 있었다.


• 문언박 로공(文彦博 潞公)

송(宋) 문언박은 서울에서 정엄(淨嚴) 법사와 함께 10만 인을 모아 정토회를 만들었다. 임종에 편안히 염불하며 죽었다.


• 마우 시랑(馬圩 侍郞)

송(宋) 마우는 그의 할아버지인 충숙공(忠肅公)이 항주 군수일 때부터 자운참주(慈雲懺主)에게서 염불을 배워 온 가족이 숭봉하게 되었고, 우(圩)도 25년 동안 염불하였다.

  숭녕(崇寧) 때 조그만 병이 들더니, 옷을 갈아입고 앉아서 갔다. 덮개가 푸른 (마차가 문을 나서는 듯한) 어떤 기운이 하늘로 올라갔다. 가족들이 우(圩)가 상품(上品)에 왕생하는 것을 모두 꿈꾸었다.


• 종리 소사(鍾離 少師)

송(宋) 종리근(鍾離瑾)은 절서(浙西)의 제형(提刑)으로 있을 때 자운참주를 만나 정토를 독신하게 되었다.

나중에 개봉(開封)의 군수가 되어 나갔을 때는 국사에 전념하고, 들어와서는 잠을 잊고 염불하더니, 갑자기 밤중에 가족을 깨워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앉아서 갔다.

  온 집안 식구가 모두 근(瑾)이 푸른 연꽃을 타고 선악(仙樂)에 인도되어 서쪽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


• 염방영 승무(閻邦榮 承務)

송(宋) 염방영은 지주(池州) 사람이다. 24년 동안 왕생주(往生呪)를 외며 염불하더니, 죽을 때 가족들의 꿈에 부처님이 광명을 놓으며 영(榮)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새벽에 영이 서쪽을 향해 가부하고 앉았더니 갑자기 일어나 몇 발자국을 걷고는 선 채로 죽었다.


• 왕충 조산(王衷 朝散)

송(宋) 왕충은 가화(嘉禾) 사람이다. 서호(西湖)에서 염불회를 조직하여 현우(賢愚), 귀천(貴賤),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왕생하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회에 들게 하였다.

  권수문(勸修文)이 현재 세상에 남아있다. 나중에 병 없이 서쪽을 향하여 앉아 죽었다.


• 종리 경융 대부(鍾離景融 大夫)

송(宋) 종리 경융은 조청대부(朝請大夫)의 벼슬을 지냈다. 일찍이 관경(觀經)을 읽다 염불에 몰두하게 되었다. 사직한 후에는 동원(東園) 곁에 띠집을 짓고 살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미타를 모르면 미타가 서방 밖에 있으나, 미타를 알면 미타는 다만 자기의 집에 있을 뿐이다.”

  어느날 저녁, 묘응(妙應) 스님에게 보현행원품을 읽게 하고는 향을 피우고 공경히 듣더니, 두 손으로 인(印)을 짓고 죽었다.


• 전상조 군수(錢象祖 郡守)

송(宋) 전상조는 호를 지암(止菴)이라 하였다. 금릉(金陵)을 다스릴 때는 날마다 정토를 더 충실히 수행치 못하는 것을 한탄하였다.

  향주(鄕州)에 접대십처(接待十處)를 만들어 모두 정토극락 등의 이름을 붙였고, 지암고승료(止菴高僧寮)를 지어 스님들을 맞이하여 도를 담론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좌상(左相)을 사직하고 돌아와서는 더욱 정업에 힘썼다.

가정(嘉定) 4년[1211] 2월에 조그만 병이 들더니,

연꽃향기는 불국에서 풍겨오고
유리의 땅에는 티끌도 묻지 않았네
나의 마음은 저보다 깨끗하여
오늘에야 비로소 한 송이 꽃이 핀 걸 알겠네.

함담향종불국래 菡萏香從佛國來
유리지상절섬애 琉璃地上絶纖埃
아심청정초어피 我心淸淨超於彼
금일요지일타개 今日遙知一朶開

하고 게(偈)를 썼다.

  3일 후, 어떤 스님이 병 문안을 하였는데, 공이 “나는 삶도 탐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태어나지도 않고 인간이 되지도 않고, 오직 정토에 왕생하고자 할 뿐입니다.” 하더니, 말을 마치자 가부좌하고 갔다.

후에 어떤 사람의 꿈에 공중에서 ‘전 승상은 이미 서방의 연궁(蓮宮)에 태어나 자제보살(慈濟菩薩)이 되었다.’ 하는 꿈을 꾸었다.


• 매여능 현령(梅汝能 縣令)

송(宋) 매여능은 상숙(常熟) 사람으로 벼슬은 현령을 지냈다.
평소부터 정업淨業에 뜻을 두었더니, 어느날 꿈에 어떤 스님이 종이 백 폭을 주는데 찢어보니 16자의 글자가 되었다.

  이 사실을 동령 조(東靈照) 스님에게 물어보니 “열여섯 자란 어찌 십육관경(十六觀經)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그 때 마침 어떤 스님이 경을 주고는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경을 읽고 염불하며 스스로 ‘왕생하기 위하여 마음을 보인다(爲往生以見志)’ 하고 이름하였다.

  그 때 읍의 생(生) 공이라는 분이 장육(丈六)의 미타상을 조성하였는데, 재산 백 만을 보시하여 장식하였다. 그랬더니 법당 앞의 못에 한 쌍의 백련이 피었는데 꽃잎이 백 잎이나 되었다. 그해 겨울에 병 없이 죽었다.


• 잠정국 학유(昝定國 學諭)

송(宋) 잠정국은 호가 성재(省齋)로서 주학유(州學諭)를 지냈다.
염불하면서 정토의 모든 경전을 읽었고, 매월 24일 마다 승속을 모아 경을 읽고 염불하였다.

 가정(嘉定) 4년[1211], 꿈에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부처님이 군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3일 후에는 반드시 저 나라에 왕생할 것입니다.” 하고 고하였다. 그날이 되어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염불하고 앉아 죽었다.


• 풍제천 간의(馮濟川 諫議)

송(宋) 풍집(馮檝)은 호를 제천(濟川)이라 하고, 수영(遂寧) 사람으로 태학을 거쳐 과거에 올랐다. 처음에는 선림(禪林)을 찾아 다녔으나, 만년에는 정업만을 숭상하여 서방문(西方文)과 미타참의(彌陀懺儀)를 지었다.

  나중에 급사중(給事中)으로 노주(潞州)에 출정했다가 승속을 모아 염불회를 만들었다. 공주(邛州)를 다스릴 때, 뒷 마루에 높은 자리를 만들고 대궐을 향해 절하고는, 승복을 입고 자리에 올라 주장자를 무릎위에 비껴 얹고 죽었다.

찬(贊)
전등록(傳燈錄)에 공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는데, 처음에는 용문원(龍門遠)을 참예하였고, 다음에는 묘희(妙喜)를 참예하여 각각 깨달음이 있었다. 임종에 미리 기한을 정하고 자리에 올라 주장자를 들어 무릎위에 얹고는 죽었다.

그 자재하고 분명한 모습은 완연히 선문의 여러 종사들의 풍격, 그것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그의 염불왕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저술하는 자의 뜻을 세우는 입장이 같지 않고, 각각 소중히 여기는 바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저 전등록은 직지인심(直指人心)만을 소중히 여겼으므로 으레 심지를 밝힌 부분만을 취하고 정토는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컨대 회옥(懷玉)은 금대가 두 번이나 이르렀고, 원조(圓照)는 연꽃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사실을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으나, 여기 왕생집에서는 이 점을 상세히 기록한 것은 정토로 돌아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평소에 염불하여 왕생에 대해 대답한 것을 살펴보면, 심성을 밝히는 것이 그 가운데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덕을 소중히 여긴다면 안자(顔子)를 덕행의 조목에 나열하고 정사에 대한 부분에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요, 재주를 소중히 여긴다면 안자는 임금을 보필할 만한 그릇을 갖추었다 하고 덕행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각기 그 입장이 같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정업을 닦는 자는 돈독히 믿고 의심치 말기 바란다.


• 왕민중 시랑(王敏仲 侍郞)

송(宋) 왕고(王古)는 자가 민중으로 동도(東都) 사람이다.
벼슬은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이르렀으면서 자비한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깊이 선종에 계합하였다.

 또한 정토법문의 우수함을 깨달아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3권을 지어 평생 염불을 정근했으며, 염주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고, 일상생활에서 늘 서방정관(西方淨觀)으로 불사를 삼았다.

 어떤 스님이 정(定)에서 정토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고(古)와 갈번(葛繁)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한다. 왕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 오신수 진사(吳信叟 進士)

송(宋) 오자재(吳子才)는 호가 신수다. 벼슬을 사직한 후, 미리 관 하나를 만들어 놓고 밤에는 그 속에 누워 동자에게 관을 두드리게 하고,

오신수여
돌아가자
삼계는 편치 않아 머물만한 곳 아니다.
서방정토에 연태(蓮胎)가 있으니
돌아가자.

오신수 吳信叟
귀거래 歸去來
삼계무암불가주 三界無安不可住
서방정토유연태 西方淨土有蓮胎
귀거래 歸去來

하고 노래하며 스스로 한 줄씩 화답하였다. 나중에 병 없이 죽었다.


• 백거이 소부(白居易 小傅)

 당(唐) 백거이는 관직이 중대부태자소부(中大夫太子小傅)를 지냈다. 집을 버려 향산사(香山寺)를 만들고는 스스로 향산(香山)거사라 호하였다.

 만년에 풍질을 앓게 되자, 봉전(俸錢) 3만을 내어 서방극락세계를 한 부 그리고, 무량수경을 의지해 의정(依正)의 장엄을 매우 자세히 하였다. 그리고는 정례발원(頂禮發願)하여 다음과 같은 게(偈)를 써서 서방을 찬탄하였다.

서방세계 청정한 국토여
모든 악도나 고통이 없네
원하옵노니 저같이 늙고 병든 자
함께 무량수불 처소에 태어나과저.

극락세계청정토 極樂世界淸淨土
무제악도급중고 無諸惡道及衆苦
원여아신노병자 願如我身老病者
동생무량수불소 同生無量壽佛所

찬(贊)
전하는 이야기로는, 봉래에 낙천(樂天)이라는 신선이 있었다는데, 낙천이 이곳을 떠나면서 ‘해산(海山)은 내가 돌아갈 곳 아니요, 돌아간다면 반드시 도솔천이어야 하리. 지금 다시 도솔마저 버리고 정토를 찾노니, 소위 모래를 헤쳐 진금을 찾듯 더욱 빛나고 더욱 아름다우리.’ 하고 노래했다 한다.


• 장윤 도총(張掄 都總)

 송(宋) 장윤은 양절도총관(兩浙都總管)의 벼슬을 지냈던 이다.
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약하며 일심으로 염불하니, 온 집안이 그를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처자와 함께 하루에 염불 만 번을 불렀다. 효종황제(孝宗皇帝)가 연사(蓮社)라는 친서를 내렸다.


• 소식 학사(蘇軾 學士)

 송(宋) 소식은 호를 동파(東坡)라 하고 관직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남으로 귀양가는 날, 미타상 한 축(軸: 두루마리)을 그려 행낭에 넣어가지고 갔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것은 식(軾)이 서방에 왕생하는 징표다.” 하였다.

 어머니 정(程)씨가 돌아가시자, 남겨 두신 비녀와 귀걸이를 팔아 호석(胡錫)이라는 공인에게 부탁하여 미타상을 그려 왕생을 천도하였다.

찬(贊)
노천(老泉: 소식의 아버지)은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하여 일찍이 극락원(極樂院)에 여섯 분의 보살상을 조상한 적이 있었고, 자곡(子曲: 소식의 동생)도 역시 매우 가까이 법문에 왕래하였다. 이렇듯 소씨가 삼보에 귀의한 것은 대를 이은 것이었다.

 세상에는 서방징표라는 것을 새기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동파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터무니 없는 말을 덧붙여 선전한다. 안목을 갖춘 자는 거짓을 인하여 진실까지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소식(蘇軾. 1036-1101): 북송(北宋)의 정치가, 문학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송대 문학의 제일인자. 호는 동파(東坡). 왕안석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자주 좌천되고 유배 중에 사망함. 정토종의 제13대 조사이신 인광(印光. 1861-1940) 대사님의 법문 중에, 오조사(五祖寺)의 사계(師戒) 선사는 송(宋)나라 초기에 천하의 명성을 떨친 훌륭한 스님이었으나 사후에 소동파로 태어났다는 말씀이 있다.


• 장무진 승상(張無盡 丞相)

송(宋) 장상영(張商英)은 처음에 부인 향(向)씨로부터 발심하여 불법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호를 무진거사라고 하였다. 그의 발원문에 이런 것이 있다.

이 세계와 오탁의 어지러운 마음을 생각해 보면, 정관(正觀)하는 힘도 없고 요인(了因:보조적으로 사물의 생성을 도와주는 힘)의 힘도 없어서 자성유심(自性唯心)을 능히 깨닫지 못하나이다.

  삼가 석가세존의 금구(金口)의 가르침을 따라 아미타불을 전념하려 하옵나니, 저 세존의 원력으로 섭수하사 과보가 다하는 날 극락에 왕생케 하소서. 흘러가는 물에 배를 타듯 자력을 들이지 않고 바로 이르게 하소서.

찬(贊)
무진은 도솔열(兜率悅) 공에게서 선종을 깨달았으면서 정성을 다해 안양에 전념하였으니, 그의 책략은 치밀한 것이었다.

  향산으로부터 이 네 분의 공에 이르기까지 비록 서방을 감응한 사실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 원인을 근거로 하여 결과를 살펴보건대 서방에 왕생하지 않았으면 어느 곳에 태어났으랴.


• 총론(總論)

내가 듣기에 고덕이 말하기를 ‘사대부로서 총명이 출중한 자는 모두 전생에 중노릇하던 자였다.’ 하였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점은, 끝내 미혹하여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열에 아홉이라면 숙세의 인연因緣을 등지지 않는 자는 겨우 열에 하나일 뿐이니, 그 까닭은 무엇일까?

  오탁악세에서는 퇴보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인연들이 잠재하고 있어서 비록 어진 자라 할지라도 이를 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戒) 선사의 후신은 동파(東坡)요, 청(靑) 선사의 후신은 증노공(曾魯公)이며, 철(喆) 선사의 후신은 부귀에 빠져 근심과 괴로움이 많았던 어떤 자라 하였다.

   동파(소동파)는 법문에 가장 가까이 했던 분이니 증(曾) 공이 이왕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 철 선사의 후신은 그 미혹함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금의 선지식들이 사람들에게 오탁은 버리고 정토를 찾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유민(劉遺民) 이하의 여러 군자들은 그 소득이 적지 않았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연지대사 왕생집 1(전7권)

왕생집 목록(往生集目錄)
서문
제1권 비구의 왕생(沙門往生類)
제2권 왕과 신하의 왕생(王臣往生類)
제3권 처사의 왕생(處士往生類)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속록(續錄)


항주 운서사 사문 주굉 모음 (古杭雲棲寺沙門袾宏 輯)


• 서(序)

세존(世尊)이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었을 때에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불승(佛乘)을 널리 말씀하셨다. 그후 근기가 모두 투합하기 어렵게 되자, 일승(一乘) 중에서 삼승법(三乘法)을 보이셨고, 다시 삼승 중에서 정토(淨土)의 한 문(門)을 드러내었다.

오늘날은 부처님이 가신 지도 오래되었고, 중생의 번뇌도 날로 더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것(三乘)에 의지해서는 신묘한 견해를 개발하여 성인의 지위를 초월하기 어렵고, 이것(淨土)을 버리고서는 허둥지둥 타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니 이 문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재빨리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위대하다! 참으로 말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효(神效)한 영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효험이 많았으나 지금은 드문 것은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입으로는 정토를 부르면서 마음은 사바를 떠나지 못하여, 굳게 깨달음을 구하는 선배들의 열정에 미치지 못할 따름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왕생했다고 전해오는 자가 있었다고 하나, 세월이 오래되어 이젠 없어져 다시는 볼 수 없고, 간간이 내외백가(內外百家)의 문장의 일부분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본 것 중에서 그 인과因果가 분명한 것만을 발췌하고 보니, 어느듯 11년 동안에 천여 가지의 이야기를 모우게 되었다. 금년 갑신(甲申), 삼가 중봉(中峯) 화상의 우거(寓居)를 본받아, 산자락에 한 칸 초옥을 얽고 문을 닫아 걸고 왕래를 끊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을 가지고 같은 부류대로 앞 뒤를 나누고, 또한 모든 성인들이 한 곳으로 돌아갔음을 증명하였고, 살아서 감응을 얻은 사실에도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모두 166 가지의 사실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간간이 숨은 뜻을 밝히고자 하여 찬(贊)을 붙이고는 제목을 왕생집이라 하였다.

그리고서 스님네와 신도들에게 이 책을 보이면서, 아무개는 이렇게 해탈하여 왕생하였고, 아무개는 이렇게 순일(純一)함으로 해서 왕생했으며, 아무개는 이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왕생했고, 아무개는 이러한 대자대비로 왕생했고, 아무개는 이렇게 잘못을 뉘우치고는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업(業)을 바꾸어 왕생하였다. 그리고 아무개는 이렇게 상생(上生)했고, 아무개는 이렇게 중생(中生), 혹은 하생(下生)하였다. 이렇게 옛적의 일을 고증하여 오늘에 증거해 보면 정업(淨業)을 닦는 자를 위한 확실한 증명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일일이 지적해 가면서 일러 주었다.

어떤, 내 곁을 지나가던 객이 몇 가지의 이야기를 읽어보지도 않고 발끈 화를 내면서 ‘정토(淨土)는 마음일 뿐, 마음 밖에는 국토가 업소. 정토에 왕생한다는 말은 우언(寓言 어리석은 말)일 따름이오. 그대는 진정 왕생한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 것이오? 어찌 태어남이 없다[無生]는 뜻에 어긋나는 말이 아니겠소.’ 하였다.

나는 그의 얼굴빛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태어남이 없는 것이라고 못 박는다면 모든 것이 단멸(斷滅)이어서 오히려 마음뿐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과연 태어남이 없는 이치를 깨달았다면 태어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태어남이 이미 본래 없는 것이므로 늘 태어나되 태어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대는 이미 번뇌를 다했습니까?” “그러지 못했소.”

“아! 번뇌를 아직 없애지 못했다면 다시 태어나는 인연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다시 태어나는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몸을 의탁해야 할 곳이 반드시 있어서 삼계(三界)의 넓은 고해(苦海)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진대 정토에 태어나지 않고 어느 곳에 태어나겠습니까?

육도(六道)에서 헤매는 것과 구품(九品)에서 노니는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로움과 해로움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입니다.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까?

부질없는 이론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짓은 나도 하려면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함부로 진리를 천착하는 우를 범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가십시오. 그대가 진정으로 나의 말을 그르게 여기지 않는다면 정토에 태어나 불승(佛乘)에 오를 것입니다. 털 끝 만큼의 의심도 갖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되지 못할 리는 없습니다.”

객이 공손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잃은 듯 어리둥절해 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슬피 울었다. 그러다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남은 부분을 마저 읽고는 절을 하며 이 책을 출판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제 출판에 즈음하여 이와같이 시말의 경위를 적어두는 바이다.
만력(萬曆) 12년[1584] 여름, 항주 사문 주굉 적다.

* 주굉(袾宏 1535-1615). 명나라 때 스님으로, 자백진가(紫栢眞可), 감산덕청(憨山德淸), 우익지욱(藕益智旭)과 함께 명나라 4대 고승의 한 분이다. 항주인화(杭州仁和 : 절강성 항현) 사람으로 자(字)를 불혜(佛慧), 호(號)를 연지(蓮池)라 했으며, 17세 때부터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학행(學行)으로 명성이 있었다.

이웃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날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으니, “먼저 간 남편이 부처님 명호를 수지하여 임종시에 병없이 죽었다. 때문에 염불의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안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 말에 감화를 받은 이래 마음을 정토에 의지하고 생사대사(生死大事)란 네 글자를 책상머리에 써 놓고 스스로 경책하였다.

27세에 부친상을, 32세에는 모친상을 당하였기에 그해(1566년), 마침내 결심하여 출가하였다. 북쪽으로 유람하다가 편융스님을 만났는데, 편융은 그에게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도를 찾고 지계염불(持戒念佛)하라고 깨우쳐 주었다. 이에 감격을 깊이 받았으며, 고봉원묘(高峰原妙) 계열의 소암덕보(笑巖德寶)의 법을 받아 크게 깨달은 뒤 선종(禪宗)의 조사가 되었으며, 변융(徧融)의 뒤를 이어 화엄(華嚴)의 종사로써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융경5년(1571) 항주 운서산에 들어가 산수가 그윽하고 절묘함을 보고 이를 좋아하여 거처를 산속에다 정하고 염불삼매를 수행하기 시작하였고,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사람들을 교화했기 때문에 승려와 재가신자가 운집하여 일대총림을 이루게 되었다. 

만력12년(1584)에는 [왕생집]을 편찬하여 옛날부터 지금까지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하여 전하였다. 20년 동안 항주 정자사에서 법회를 열었고, 그때 또 계단을 만들어 자서수계(自誓受戒)의 법을 행하였으며, 산중 및 성의 안팎에 방생하는 연못을 만들었고, 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을 지어 중생의 생명을 해치는 것을 경계하였다.

또 항상 정토를 주장하여 아미타경소를 저슬하였고, 참선하는 무리들의 자만심을 통렬히 꾸짖었다. 만력 44년(1615) 7월에 병이 깊어 제자들에게 성실하게 염불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81세로 입적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운서대사(雲棲大師) 또는 연지대사(蓮池大師)라 부르며 존중하였고, 그를 연사(蓮社: 정토종) 제8조로 추앙한다.

저서에는 아미타경소초 4권, 왕생집 3권, 정토의변 1권, 선관책진 2권, 죽창수필 2권, 치문숭행록 1권 등이 전한다.  


● 제1권 비구의 왕생(沙門往生類)


• 원조사(遠祖師)

진(晋) 혜원(慧遠)은 안문(雁門) 누번(樓煩) 사람이다. 육경(六經)에 통달했으나, 그 중 노장(老莊)에 더욱 밝았다.

안 법사(安法師 ; 道安)에게서 반야경 강의를 듣고 활연히 대오하여, 이로 인하여 머리를 깍고 중이 되어 그를 섬겼다.

태원(太元) 6년[381], 심양(潯陽)을 지나다가, 여산(廬山)이 유적하여 마음을 깃들여 살만한 곳임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신(山神)의 현몽(現夢)을 받고, 어느날 밤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 치더니 재목을 힘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었다.

자사(刺史) 환이(桓伊)가 집을 짓고 신운(神運)이라고 불렀다.
혜영(慧永)이 먼저 서림(西林)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혜원이 사는 곳은 동림(東林)이라 하였다.

혜원은 동림에 머문 지 30년 동안 발길을 세속에 들여놓은 적이 없이 지극히 서방(西方)에만 뜻을 두어, 고승과 거유(鉅儒) 140인과 함께 정사(淨社)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연루(蓮漏 : 혜원의 제자 혜요慧要가 만든 시계. 샘 안에 연 12잎을 세우고 물결따라 하루 12시를 정하도록 만들었다) 6시 동안 선송(禪誦)을 그치지 않았고, 생각과 마음을 정토에 쏟아 세 번이나 성상(聖相)을 보았으나 침묵하고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훗날 19년[394] 7월 저녁, 반야대(般若臺)에서 정(定)에서 막 일어나려 하다,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한데, 원광(圓光) 속에서 화불(化佛)이 몸을 나투시고, 관음⋅세지 두 보살이 좌우에서 모시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물이 흐르듯 광명이 열네 줄기로 분산하면서 아래 위를 선회하는 속에서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부처님께서 ‘내가 본원력(本願力 : 부처님이 보살 때 세운 원력)을 지키기 위하여 와서 너를 안위하노라. 너는 7일 후에 반드시 나의 국토에 태어나리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또 보니, 불타야사(佛陀耶舍)⋅혜지(慧持)⋅혜영(慧永)⋅유유민(劉遺民) 등이 부처님 곁에서 읍하며 ‘스님께서는 저희들보다 뜻을 세운 지가 오래였습니다. 어찌 오시는 것이 이다지 늦습니까?’하는 것이었다.

이미 때가 이른 것을 알고는 문인(門人)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처음 이곳에 머물 때 세 번 성상을 보았고 오늘 다시 두 번이나 보았다. 정토에 태어날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하고는, 때가 이르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때는 의희(義熙) 12년[416] 8월 6일이었다.

찬(贊)
진(晋)나라 이전에도 정토의 법이 비록 중국에 전해지긴 했으나, 널리 전하고 힘써 행하여 거리나 집집마다 정토의 법을 깨우치게 된 것은 원 법사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만대 이후에 정업을 닦는 제자들이 스님을 추존하여 시조로 삼게 된 것이다. 참으로 석가가 다시 서방(西方)을 연설한 것이며, 미타가 동토(東土)에 현신한 것이라 할 만하였다. 그 공이 위대하지 않은가.

내가 예전에 여산을 여행하다 호계(虎溪)의 샘을 마셔보고, 삼소(三笑)의 집을 바라보면서 18현(賢)의 유적을 배회한 적이 있었다. 그 규모가 홍원(弘遠)한 것을 보니 족히 만 명의 스님들이 살만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전각(殿閣)은 먼지가 쌓였고 종과 북은 적막에 묻혔으며, 문은 뒤틀리고 부엌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철인(哲人)이 가시자 아름다운 자취도 끊어지고 만 것이다. 애달픈 일이었다.


• 혜영(慧永)

진(晋) 혜영(慧永)은 하내(河內)사람이다. 열두 살에 출가하였고, 그 후 원(遠) 공과 함께 안 법사를 의지하였다.

태원(太元) 초(初)에 여산에 주석하고 있노라니, 자사(刺史)인 도범(陶範)이 지신의 집을 희사하여 서림(西林)이라 하고 그를 살게 하니, 이곳에서 철저히 세속을 끊고 안양(安養: 극락)을 간구하였다.

그 후 의희(義熙) 10년[414]에 병든 모습을 보이더니, 문득 옷을 걷고 신발을 찾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대중이 놀라 물으니 “부처님이 와서 나를 맞이하신다.”하고 대답하고는, 말을 마치자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7일 만에야 사라졌다. 당(唐) 현종(玄宗)이 시호(諡號)를 추서하여 각적대사(覺寂大師)라 하였다.

찬(贊)
혜영이 처음 입도(入道)하여 원 법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정사(淨社)를 세워 만세의 법을 세웠다. 그러므로 혜원이 조사(祖師)라고 한다면, 혜영은 종사(宗師)라고 할 것이다. 여산의 18대현(大賢)과 132위의 모든 왕생했던 이들을 여기서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 우선 아래와 같이 한 두 분을 소개한다.


• 담순(曇順)

진(晋) 담순은 황룡(黃龍)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나집(羅什: 구마라집) 법사를 따라 여러 가지 경전을 강석하였다. 나집은 ‘이 사람은 기특한 그릇이다.’하고 찬탄하곤 하였다.

그 후 여산에 들어가 정업을 닦았다. 그 때 영만교위(寧蠻校尉) 유준효(劉遵孝)가 강릉에 절을 짓고 담순을 맞이한 이후로 염불삼매가 성행하게 되었다. 송(宋) 원가(元嘉) 2년[425], 대중에게 작별을 고별하고 앉아서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 승예(僧叡)

진(晋) 승예는 기주(冀州) 사람이다. 제방에 유학하여 멀리 천축(天竺)에까지 다녀왔다.
관중(關中)에 돌아와서는 나집 법사로부터 경전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여산의 연사(蓮社)에 참예하였다.

송(宋) 원가(元嘉) 13년[436], 홀연히 대중에게 “나는 가야겠다.”하고 고별하고는, 서쪽을 향하여 합장한 채 죽었다.
대중이 보니, 승예 책상 앞의 한 송이 금연화(金蓮花)가 갑자기 시들었고, 오색 향연이 그의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담항(曇恒)

진(晋) 담항은 하동(河東) 사람이다. 어려서 원 공을 의지해 출가하여 내외의 전적(典籍)에 관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나, 여산에 들어간 후에는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의희(義熙) 14년[418], 단정히 앉아 합장한 채 큰 소리로 염불하며 죽었다.


• 도병(道昞)

진(晋) 도병은 영천(潁川)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원 공을 스승하여 경율(經律)에 통달했으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염불삼매를 극진히 궁구하였다.

의희(義熙) 14년[418], 예장(豫章) 태수 왕건(王虔)이 산에 들어와 알현하고, 원 공의 법석을 계승해 줄 것을 간청하니, 대중들이 모두 숭앙하게 되었다. 원가(元嘉) 12년[435], 대중을 모아 염불한 후 자리에 앉아서 죽었다.

찬(贊)
말과 행동이 일치하다는 것은, 이른바 마음과 입, 두 가지로 동시에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하지만, 행동거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왕생을 바라면서 누구를 속일 수 있으랴.


• 담선(曇詵)

진(晋) 담선은 광릉(光陵)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원 공을 스승하여 부지런히 정업을 닦았고, 겸하여 강설에 능하여 유마경을 주석하여 세상에 남겼다. 원가(元嘉) 17년[440], 가부좌한 채 염불하며 갔다. 

 
• 도경(道敬)

진(晋) 도경은 낭야(瑯瑘) 사람이다. 할아버지인 응지(凝之)가 강주(江州) 자사가 되었으므로, 그러한 인연으로 원 공을 따라 출가하였다. 나이 열일곱에 경론에 박통하여 하루에 만언(萬言)을 기억하였으며, 독실히 염불에 뜻을 두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송(宋) 영초(永初) 원년[420], 대중에게 말하기를 “선사(先師)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후, 나는 그대로 실행하였다.”하고는, 단정히 앉아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죽었다. 대중이 보니, 광명이 방에 가득하더니 잠시 후에야 사라졌다.

찬(贊)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갖춘 이로서 스스로 뽐내지 않는 자가 드물다. 그러면서도 독실히 염불에 뜻을 두었으니 숙세에 정인(淨因)을 심은 자가 아니겠는가. 요즘 사미로서 약간의 경론이라도 익힌 자면 아만과 게으름으로 머리가 희도록 돌아갈 줄 모른다. 그러다 부득이 서방을 말하고는 있으나, 그 때는 이미 늦다.


•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진(晋) 불타발타라는 우리말로는 각현(覺賢)이라는 뜻이다. 가유위국(迦維衛國. 가비라국, 곧 석가세존의 탄생국) 사람으로 감로반왕(甘露飯王. 석가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의 아우. 곧 석존의 숙부)의 후예였다. 나이 열여섯에 모든 경전에 박학했으며, 깊이 선 율(禪律)에도 능통하였다.

요진(姚秦) 사문 지엄(智嚴)이 서역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스님을 모셔 장안으로 왔다. 동궁(東宮)에서 법을 연설할 적에 나집 법사와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논의하기도 하였다.

후에 관중(關中)의 중인 도항(道恒) 등에게 빈척을 사, 이로 인하여 여산에 들어가 원 공의 연사(蓮社)에 원공의 참예하여 관불삼매(觀佛三昧) 등 경을 번역하였다. 송(宋) 원가(元嘉) 6년[429], 염불하며 죽었다.


• 승제(僧濟)

진(晋) 승제가 여산에 들어가 원 공에게서 배울 적에, 원 공이 ‘큰 법을 계승할 자는 바로 너다.’하고 찬탄하였다. 나중에 혹독한 병이 들어 정성을 다해 정토를 바라게 되었는데, 원 공이 촛불 하나를 주면서 ‘너에게 마음을 안양에 두게 할 것이다.’하였다.

제(濟)는 촛불을 잡고 탁자에 기대어 생각을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게 한는 한편, 대중을 모아 정토경을 읽게 하였다. 오경(五更, 오전1~3시)에 제(濟)가 제자 원필(元弼)에게 촛불을 주면서 대중을 따라 행도(行道: 여러 스님네가 경을 읽으면서 부처님의 주위를 도는 의식)하게 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자신이 촛불을 잡고 허공에 올라 어딘가로 가는데, 아미타불이 손바닥에 받아들고 두루 시방(十方)에 이르는 것을 보고 문득 깨어났다. 슬프기도 한 한편 기쁘기도 하면서, 사대(四大)는 본래 전혀 병고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저녁 문득 일어나 허공을 살펴보니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도로 자리에 누우며 유쾌한 얼굴로 곁의 사람에게 “나는 가네.”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죽었다. 그 때는 폭염이 내려쬐는 한더위였으나, 3일 동안 몸이 변하지 않았고, 기이한 향기가 자욱하였다.

찬(贊)
제(濟)는 성사(聖師)의 지시로 정토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임종의 조념(助念)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폭서에 시신을 관에 담아 두었으나 몸에서 기이한 향기가 뿜어나왔다고 하니, 청정한 범행(梵行)의 결과로 얻어진 영험이었다.


• 혜공(慧恭)

진(晋) 혜공은 예장(豫章) 풍성(酆城) 사람이다. 혜란(慧蘭), 승광(僧光), 등과 함께 동학으로서, 난(蘭)과 광(光)도 정토를 간구하여 임종에 모두 기이한 영험이 있었다. 5년 후에 공이 혹독한 병이 들었는데,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부딪치면서 마음에 안양을 서원하여 염불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아미타불이 금대(金臺) 앞으로 맞이해 가는데, 공이 그 위로 오르는 것을 보았으며, 또 보니, 난(蘭) 등이 금대 위의 광명 속에서 ‘장노께서 이미 상품(上品)에 태어나셨으니, 저희들의 기쁨은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오탁(五濁)에 머물러 서로 만남이 더딘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하는 것이었다. 공은 기꺼이 몸을 버리고 갔다.


• 혜건(慧虔)

진(晋) 혜건은 어려서 출가하여 계행이 엄정하였다. 의희(義熙) 중에 산음(山陰)의 가상사(嘉詳寺)로 가서 갖은 고생을 무릅쓰면서 대중을 이끌다, 나중에 병이 들어 안양에 태어나기를 간구하며 관음보살께 기도하였다.

북사(北寺)에 정엄(淨嚴)이란 비구니가 있었는데 도덕과 행실이 장한 이였다. 꿈에 관음보살이 서곽문(西郭門)으로 들어오는데, 아름다운 자태는 일월이 비치 듯하며, 깃발과 양산은 칠보로 장엄하였다. 정엄이 놀라 예(禮)하며 ‘대사(大士)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으니, ‘가상(嘉祥)에 가서 건 공을 맞이하려 하네.’하였다.

건(虔)은 병은 비록 완쾌하지 않았으나 안색은 평소와 다름없이, 시자들이 모두 기이한 향기를 맡는 가운데 조용히 죽었다.

찬(贊)
임종에 부처님을 친견한 사실을, 어떤 이는 순전히 자신의 관념에서 일어난 일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지금 다른 사람도 역시 보았다면 어찌하려 하는가? 감응의 교류는 불가사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 승현(僧顯)

진(晋) 승현은 천축(天竺) 사람이다. 남으로 강좌(江左: 양자강의 동쪽지방. 지금의 강소성江蘇省)를 여행하다가 병이 들어 서방을 간구하게 되었다.

병고 속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더니, 아미타불의 광명이 자신의 몸에 비취는 것을 보고는 아픈 곳이 모두 나았다. 그리고는 일어나 목욕을 하고, 곁에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울러 인과因果를 경계할 것을 말하는 뜻이 매우 간절하였다. 다음날 새벽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게으른 비구는 어쩌다 병이 들면 ‘내 몸이 피곤하다. 회복한 이후에나 염불하리라.’하고 말한다. 그러나 염불은 늙고 병든 이를 제도하기 위한 법문으로, 이때야말로 더욱 염불해야 할 때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顯)은 염불의 힘으로 이미 병이 나았고 또한 왕생까지 할 수 있었다. 훌륭한 일이다.


• 혜통(慧通)

진(晋) 혜통은 양주(涼州)의 혜소(慧紹) 선사로부터 선법(禪法)을 전해 받았으면서도 마음으로 안양을 기원하였다.

병이 들자 선정 중에서, 형색이 매우 단엄한 어떤 사람이 통(通)에게 ‘좋은 때가 이르렀노라.’하고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얼마 후에 아미타불의 광명이 찬연한 것을 보았다.

정(定)에서 일어나 동학(同學)에게 고별하고는 편안히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3일 만에야 흩어졌다.


• 법림(法琳)

진(晋) 법림은 임공(臨邛: 지금의 사천성 공협) 사람이다. 계행이 청정하였고, 성도(成都) 영건사(靈建寺)에 머물며서 정업을 닦았다.
늘 미타, 관음 두 경을 지니고 있었는데, 독송을 할 때는 어떤 건정한 사문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건무(建武) 2년[318], 병이 들어 누웠으나 일심으로 서방을 생각하면서 예참을 쉬지 않더니, 모든 현성(賢聖)이 모두 공중에 모이는 것을 보고 합장한 채 죽었다.

찬(贊)
임(琳)은 경을 외울 적에 사문이 앞에 나타나곤 하였다 한다. 대개 지극한 정성으로 감득한 것으로서 괴이쩍게 여길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서방에 왕생한 것이 이것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업을 닦는 자는 모양을 취하여 바라지 말라.


• 담감(曇鑒)

송(宋) 담감은 평소 조그마한 선행이라도 짓게 되면 서방에 회향하면서 부처님을 뵙기를 서원하였다. 하루는 정(定) 중에서, 아미타불이 그의 얼굴에 물을 뿌리면서 ‘너의 때를 씻어 주노라. 너의 마음과 너의 몸과 입을 씻어 모두 깨끗이 해 주리라.’하시고, 병 속에서 연꽃 한 가지를 꺼내 주는 것을 보았다.

정에서 일어나자 스님들과 고별하고 밤이 깊어서 혼자 낭하를 거닐며 염불하더니, 오고(五鼓: 오경{새벽3-5시}을 알리는 북)에 이르러서는 그 소리가 더욱 우렁찼다.

다음날 날이 밝자 제자가 관례대로 문안을 여쭈었더니, 가부좌하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가서 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 승유(僧柔)

제(齊) 승유는 방등(方等)의 여러 경전을 공부했으나, 오직 정업만을 가까이 하였다. 죽는 날 천여 명의 화불(化佛)을 보았고, 방의 안 밖에서 기이한 향기가 풍겨오는 가운데 서쪽을 향하여 경례하고 죽었다.


• 혜광(慧光)

제(齊) 혜광은 낙양(洛陽)에 살았다. 화엄, 열반, 십지 등의 소(疏)를 저술하여 깊이 권교(權敎)와 실교(實敎)의 뜻을 밝혔다.
하루는 병이 들었는데, 하늘의 대중들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원하는 것은 안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였다.

얼마 후 정토의 화불(化佛)이 허공에 가득하자 “원하옵느니 우리 부처님께서 저를 섭수하사 저의 본원을 이루게 하소서.” 하고, 잠시 기침(여기서는 부처님을 찾아뵙기 전에 내는 언성을 말한다. 지금의 ‘노크’ 같은 것)을 하더니 말고 기운이 모두 쇠진하였다.

찬(贊)
천상에는 욕락도 많고 여인도 있으므로 해탈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예전에는 ‘설사 수행하여 비비상천(非非想天)에 이를지라도 서방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정토를 찬탄하는 자는, ‘상품(上品)은 열반의 언덕에 오른 것이요, 하생(下生)이라도 천궁(天宮)보다는 낫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지금 광(光)이 목숨이 다할 즈음에 살핌이 정확하고 소원이 분명했으니, 명쾌하고 용기있는 자라 할 것이다.

* 혜광(慧光)은 남북조(南北朝 420-581) 때의 승려로, 여산 백련사에 참예한 불타야사 삼장에게서 출가하여 계율(사분률)을 배워 중국 율종(律宗)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인도의 세친보살이 지은 십지론을 주석하여 중국 지론종(地論宗)의 기초를 열었다. 세상에서는 광통율사(光統律師)라 부른다.


• 혜진(慧進)

제(齊) 혜진은 고좌사(高座寺)에 살았다. 법화경을 읽고 백부(百部)의 경을 찍어내더니, 이러한 선업을 회향하여 안양에 왕생하기를 서원하였다. 후에 공중에서 ‘너의 소원이 이미 이루어졌다.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하는 말을 듣고, 병없이 죽었다.


• 도진(道珍)

양(梁) 도진은 여산에 머물면서 정업을 닦았다. 꿈에 어떤 사람이 바다 가운데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물으니, 미타불국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진(珍)이 함께 가고자 하니, 배에 타고 있던 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욕실(浴室)도 짓지 않았고 미타경도 외우지 않았소. 같이 갈 수 없소.’ 하였다.

꿈을 깨고 나서는 스님들을 목욕시키고 경을 외우는 일을 매년 거르지 않았더니, 홀연히 욕탕의 표면으로 백은대(白銀臺)가 내려왔다. 그래서 그 사실을 가만히 기록하여 경함(經函) 속에 넣어 두었다.

목숨이 다하는 날 저녁, 온 산의 중간 이상은 불이 난 듯 광명이 찬연하였다. 읍인(邑人)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제왕(諸王)의 예근(禮覲: 제후가 천자에게 알현하는 의식)일 것이라고 여겼으나, 날이 새자 진(珍)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중에 경함을 열어보고 진이 상서로운 감응으로 의당 정토에 태어났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게 되었다.

찬(贊)
원(遠: 혜원) 공은 세 번이나 성상(聖相)을 보았으나 남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珍) 공은 욕탕으로 은대가 내려왔으나 그냥 기록만 해 둘 뿐이었다. 고덕(高德)의  신중함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저 못난 장부는 조그마한 기이한 일이라도 있으면 까불까불 입을 참지 못한다. 작게는 그 일을 잃어버리게 되고 크게는 마군의 덫에 걸리게 된다.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신란(神鸞)

후위(後魏)의 담란(曇鸞)은 젊어서 오대산을 여행하다가 영이(靈異)한 일을 경험하고는 출가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장생(長生)을 좋아하여 도은군(陶隱君: 남북조 시대의 본초가本草家인 도홍경陶弘景의 호)에게서 선경(仙經) 10권을 전해 받았다.

나중에 보리유지(菩提流支) 삼장을 만나 “불교에도 장생불사의 술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지(支)는 웃으며 “장생불사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도입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주면서 “이것을 배우면 삼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고, 육도에도 다시는 가지 않게 됩니다. 그 수명은 하사겁(河沙劫)의 바위라도 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처님의 장생입니다.” 하였다.

난(鸞)은 매우 기뻐하며 마침내 선경(仙經)을 불태우고 정업을 닦았다. 추위와 더위, 질병이나 고통속에서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으므로 위나라 왕이 신란(神鸞)이라고 호(號)하였다.

어느날 저녁, 방 안에서 어떤 범승(梵僧)이 ‘나는 용수(龍樹)다. 오랫동안 정토에 살고 있었으나, 너와는 동지이므로 일부러 와서 만나게 된 것이다.’하는 것을 보았다.

난은 때가 이른 줄을 알고는 대중을 모우고 “괴로운 인생은 끝내 끝날 날이 없다. 지옥의 고통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구품(九品)의 정업은 닦지 않아서는 안된다.”하고 가르치고는, 제자들에게 큰 소리로 염불하게 하고 서쪽을 향하여 예하고 죽었다. 대중이 들으니, 하늘 음악이 서쪽으로부터 들려오더니 얼마 후에 사라졌다.

찬(贊)
선도(仙道)를 닦는 자들은 ‘부처는 죽음이 있지만 신선은 장생한다.’하고 말한다. 지금 지(支) 공은 ‘부처님은 장생이 있으나 신선은 장생이 없다.’ 하였다. 이 말씀은 통쾌하고 솔직하기가 천고에 빼어났다.
난(鸞) 법사는 그른 것을 버리고 올바른 곳으로 돌아가기를 마치 헌 신을 버리듯 하였으니, 어찌 숙세에 정인(正因)을 심은 자가 아니겠는가.

* 담란(曇鸞. 476-542) 대사는 중국 정토종의 초조로 추앙받는 분으로, 세친보살의 왕생론에 주를 달았다. 보리유지(菩提流支) 삼장은 왕생론을 번역했다.

* 하사겁(河沙劫)의 바위 : 흔히 겁석(劫石)이라 한다. 둘레 사방 40리나 되는 바위를 백년마다 한번씩 천녀(天女)가 내려와 천의(天衣)의 엷은 옷으로 스쳐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무한한 시간.


• 지자대사(智者大師)

수(隋) 지의(智顗)는 호를 지자대사라고 하며, 영천(穎川)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성상을 보면 예를 하고, 스님을 만나면 반드시 절을 하더니, 18세에 과원사(果願寺)에 출가하고 나중에는 남악 사(南岳思: 혜사慧思) 대사를 섬겼다. 

홍법의 인연이 다할 즈음에는 섬동(剡東) 석성사(石城寺)에 머물고 있었는데, 입멸할 무렵에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나의 목숨이 여기에 있고 다시는 더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오늘 도끼질은 그치고 거문고 줄은 끊어졌다.” 하더니,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의 제목을 읽고 나서 다시 “48원으로 장엄한 정토는 꽃이 피어있는 못과 보배의 나무가 있는 곳으로, 지옥 중생도 잠깐 회개하는 자는 오히려 왕생할 수 있거든, 하물며 계정(戒定)을 닦는 자랴. 성도(聖道) 수행의 힘은 그 공이 헛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지랑(智朗)이 “대사께서는 어떤 지위에 증입했으며 여기서 죽어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궁금합니다.” 하고 물었다.

“내가 대중을 거느리지 아니했던들 반드시 육근(六根)을 청정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어가면서 남을 이롭게 했으므로 단지 오품(五品)밖에 오르지 못했다.

네가 또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물었느냐? 나의 모든 벗들이 관음보살을 모시고 모두 와서 나를 맞이한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 삼보(三寶)의 이름을 부르고 마치 삼매에 들 듯 갔다.

찬(贊)
대사는 도덕이 훌륭했고, 일가의 교관(敎觀)은 만대에 숭앙할 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버릴 때 오직 서방에만 돌아가려 했고, 내지 관경(觀經)에 소(疏)를 내고 십의론(十疑論)을 저술하여, 늘 여기에만 정성을 쏟은 것을 보면 그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의 소(疏)에, 마음을 관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한 것을 보면, 정토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하고 말한다.

아!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마음으로 부처를 관하면 부처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만약 부처가 없다면 마음을 관해 무얼 하겠는가. 정보(正報)가 기왕 그렇다면 의보(依報)도 마찬가지다.’ 하였다. 천태교를 배우는 자는 이 점을 살펴보라.

* 교관(敎觀) : 교상(敎相)과 관심(觀心)을 말한다. 교상은 석가 일대의 교설을 각 종파의 입장에서 분류한 교판(敎判) 곧 이론적인 교리조직이고, 관심은 각 종파가 내세운 진리를 관념하는 것으로 그 진리에 따라 실천 수행하는 것.

* 정보(正報), 의보(依報) : 과거세의 업인(業因)에 의해 얻어진 중생의 몸을 정보라 하고, 그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을 의보라 한다.(극락정토에 있어 정보는 아미타부처님과 보살님들이고, 의보는 극락정토의 장엄한 환경을 말함).

* 십의론(十疑論) : 천태종의 개조(開祖) 지자대사(538-597)께서 정토왕생에 대한 의심을 열 가지로 나누어 대답한 정토십의론을 말함.


• 법희(法喜)

수(隋) 법희는 항상 방등참법(方等懺法)을 행하던 이였다.  하루는 꿩 한 마리가 목숨을 변상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떤 신인(神人)이 꾸짖으며 ‘법사는 정토에 왕생하실 분이다. 어떻게 너의 목숨을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나중에 병 중에서 일생의 행업(行業)을 모두 서방에 회향할 것을 발원하고 지심으로 염불하더니, 불보살이 와서 맞이해 가는 것을 보고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경에 ‘가령 백천 겁 동안이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 인연이 만나는 날, 과보를 도로 자신이 받아야 한다.’ 하였으니, 희(喜)인들 어찌 어찌 정토에 태어났다고 하여 꿩의 목숨을 보상하지 않을 수 있으랴만, 다만 한 번 정토에 태어나면 영원히 윤회가 끊어질 것이니, 인연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만약 무생(無生)을 깨닫는다면 중생계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니, 그 때 비록 보상이 있다 하더라도 이른바 ‘머리가 하얀 칼 날 위에 닿더라도 마치 봄바람을 치는 것과 같으리.’ 한 경우가 될 것이다. 어찌 범부의 육도와 같을 수 있겠는가.

*방등참법 : 지자대사께서 세운 방등삼매(方等三昧=반행반좌삼매)를 행하면서, 육근(六根)의 죄장(罪障)을 참회하는 것.


• 장안(章安)

수(隋) 관정(灌頂)은 장안 사람으로, 지자대사의 제자다. 날마다 염불로 일을 삼더니, 임종에 방안에 기이한 향기가 감돌더니, 제자에게 유계(遺誡)를 마치고서는 홀연히 일어나 합장한 채 아미타불과 두 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문득 숨을 거두었다.


• 혜성(慧成)

수(隋) 혜성은 지강(枝江)에 살았다. 미타경을 독송하고 서방관(西方觀)을 닦으면서 30년 동안 자리에 눕지 않았다. 정에 들 때마다 정토의 연화로 된 대좌와 보배로 된 나무를 보곤 하였다.
임종하는 날 저녁, 사람들이 성(成)이 연화에 앉아 가물가물 서쪽을 향하여 가는 꿈을 꾸었다.


• 도유(道喩)

수(隋) 도유는 개각사(開覺寺)에 살았다. 아미타불을 염하되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성상을 겨우 세 치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는데, 후에 정 중에서 부처님이 ‘네가 어찌하여 나의 상을 작게 만들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마음이 크면 크고, 마음이 작으면 작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말을 마치자 성상의 몸이 허공에 가득하더니, ‘너는 목욕하고 몸을 깨끗이 하라. 내일 별이 뜰 때 내가 와서 너를 맞이하리라.’ 하시었다.
그 때가 되자 과연 부처님이 오시고 광명이 방에 가득한 가운데 마침내 앉아서 죽었다.

찬(贊)
마음이 크면 크고, 마음이 작으면 작다 하였다. 그렇다면 마음이 더러우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하면 깨끗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喩)는 한 부처님이 허공에 가득한 것을 보았고, 앞의 승유나 혜광은 많은 부처님이 허공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이것은 하나가 바로 많은 것이요, 많은 것이 바로 하나인 이치로서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지순(智舜)

수(隋) 지순은 여산에 들어가 원 법사의 본받았다. 대업(大業) 초에 관경(觀經)을 강의하고는 병이 들었다. 그런데 앵무와 공작이 불, 법, 승을 염하며 미묘한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는, 제자들에게 “내가 오늘 왕생한다.” 하고는 편안히 갔다.


• 혜해(慧海)

수(隋) 혜해는 강도(江都) 안락사(安樂寺)에 살았다. 경론에 밝고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어느날 도전(道銓)이라는 스님이 제주(濟州)에서 오면서 아미타불 상을 가지고 왔다. 미묘하고 아름다워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물으니, “이것은 천축 계두마사(鷄頭摩寺)의 오통(五通)보살이 허공에 올라가 저 안락세계에서 직접 그려가지고 온 것입니다.” 하였다. 해(海)는 기쁘고 감격하여 정성을 다해 예경하노라니, 신묘한 광명이 찬연히 빛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정성을 다해 모사(模寫)하고, 저 국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였다. 후에 대수롭지 않은 병이 들더니, 밤에 문득 일어나 늘상 하듯이 서쪽을 향하여 예하고는 가부좌하여 새벽에 이르러서 죽었다. 단엄한 것이 마치 생시와 같았다.

찬(贊)
극락세계는 여기서 10만억 불토를 지나야 한다고 하니, 역시 허공에 올라가서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닐 것이요, 혜해의 정성이 부처님을 감동시킨 것이리라. 저 도전이라는 분도 어쩌면 정토의 현성(賢聖)일지도 모른다.


• 법지(法智)

수(隋) 법지는 어려서 출가하였다. 늙어서 빠르고 곧은 길은 염불만한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내가 들으니, 경에 하나의 길라(吉羅)를 범하더라도 일중겁(一中劫)을 지나도록 지옥에 떨어진다 하니, 그 말씀은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열 번만 아미타불을 부르면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다 하신 말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하였다.

그 자리에 어떤 자가 “스님은 큰 사견(邪見)입니다. 모두 부처님의 말씀인데 어찌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하고 반박하였다.

그리하여 국청사(國淸寺)의 도솔대(兜率臺)에서 밤낮으로 염불을 정근하더니, 하루는 문득 스님과 신도들에게 “내가 서방에 왕생해 간다.” 하고는, 밤중에 병 없이 죽었다.

그 때 금색 광명이 수백 리나 뻗쳤으므로 강가의 어부들은 누구나 새벽이 온 줄로 여겼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야 다시 밝아졌으므로 지(智)가 왕생한 줄을 알게 되었다.

찬(贊)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은 꿀과 같아서 중간이나 가장자리가 모두 달다. 모두 반드시 믿어 가지라.’ 하셨다. 그러므로 악인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은 믿으면서, 한 생각에 서방에 태어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사견이다.

근래 주문을 지니는 자가, 다라니에서 말하는 공덕이 능히 산과 바다를 바꾸고 귀신을 부릴 수 있으며 갖가지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며 믿으면서, 정토에서 말하는 공덕은 바로 성인의 지위에 오를 수 있고 삼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못마땅해 하며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도 사견이기는 마찬가지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 길라(吉羅) : 돌길라(突吉羅)의 줄임말. 악작(惡作), 악설(惡說)이라고 번역한다. 비구 250계 중 109 가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 선도화상(善導和尙)

당(唐) 선도는 정관(貞觀) 중에 서하(西河) 작(綽: 도작) 선사의 구품도량(九品道場)을 보고 기뻐하며 “이것은 참으로 부처의 경계에 들어갈 수 있는 나루터다. 다른 행업을 닦는 것은 굽고 치우친 길이어서 성취하기 어렵다. 오직 이 법문만이 재빨리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고는 밤낮없이 예송정진(禮誦精進)하고 사중(四衆)을 격발하였다.

방에 들어와서는 호궤(胡跪)한 채 염불하며 힘이 다하지 않으면 쉬지 않았으며, 밖에 나가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정토를 연설하여 30여 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은 부엌으로 돌려보냈고, 거친 음식은 자신이 먹었다. 시주가 있으면 미탸경 10만 권을 유포하는데 사용했으며, 정토변상(淨土變相) 삼백벽(三百壁)을 그렸고 떨어지고 파손된 것은 그때마다 보수하였다.

끊이지 않고 등불을 밝혔으며, 삼의(三衣)와 물병과 발우를 소지하지 못하게 했고, 길을 갈 때는 여러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게 했다. 부질없이 세상의 일을 담론할까 걱정하신 것이다.

그의 교화를 따르는 작 매우 많았다. 미타경을 10만에서 50만 번까지 독송한 자도 있었고, 염불을 하루에 만 번에서 10만 번까지 하는 자도 있었다. 염불삼매에 들어 정토에 왕생한 자는 이루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이가 “염불한다고 하여 정토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밥하였다.
“네가 생각한 만큼 너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한 번 생각하면 한 광명이 입에서 나오고, 열 번이나 혹은 백 번이면 광명도 마찬가지다.”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정토를 권한 게(偈)에 이런 것이 있다.

점점 닭 같은 피부 학 같은 머리칼
갈수록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비록 금옥이 방에 가득한들
어찌 늙고 병듦 면하랴.
그대 갖가지 쾌락 마음대로 누리게만
무상은 끝내 찾아오고 말리
여기 손쉬운 수행법이 있네
단지 ‘나무아미타불’

점점계피학발 漸漸雞皮鶴髮
간간행보용종 看看行步龍鍾
가사금옥만당 假使金玉滿堂
기면애잔병고 豈免哀殘病苦
임여천반쾌락 任汝千般快樂
무상종시도래 無常終是到來
유유경로수행 惟有徑路修行
단념아미타불 但念阿彌陀佛

어느날 문득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몸이 싫구나. 나는 서방으로 돌아가야겠어!” 하고는, 버드나무에 올라가 서쪽을 향하여 축원하기를 “부처님께서 저를 받아주시고 보살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사, 저로 (하여금) 정념을 잃지 않고 정토에 왕생케 하소서.” 하고는, 말을 마치자 몸을 던져 죽었다. 고종(高宗) 황제가 그 사실을 알고는 절에 광명(光明)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찬(贊)
선도화상을 세상에서는 흔히 미타의 화신이라고 하였다.
그의 정엄한 수행이나 널리 중생을 이익케 한 것을 보면, 미타가 아니면 필시 관음이나 보현의 무리일 것이다. 아! 거룩하구나.


• 지흠(智欽)

당(唐) 지흠은 선업(禪業)을 익혔던 분이기도 하지만, 만오천 부처님의 명호를 백 번이나 예념(禮念)했던 분이기도 하다.
나중에 유주(柳州) 아육왕탑 앞에서 팔 하나를 태우면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다.

제자 승호(僧護)가 한밤중에 뜰 앞에 기이한 광명이 비치는 것을 보고, '누가 횃불을 들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공중에서 '흠 선사를 맞이해 가는 길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護)가 급히 창문을 열고 보니, 부처님 몸의 광명과 꽃으로 장식한 깃발과 보배의 일산이 허공에 가득한 가운데, 흠이 부처님을 따라 천천히 가고 있었다.

찬(贊)
몸을 태우거나 팔을 태우는 일은 대승경전 가운데서도 종종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욕보살의 일이지 초심자의 경계는 아니다. 서방을 찾는 자는 반드시 흠 공의 선을 익히고 부처님께 예한 일을 배울 일이지, 굳이 그의 팔을 태운 일을 본받을 것은 아니다.

만약 팔을 태우는 정성이나 용기로 다생의 악습을 다스린다면 태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옛말에 '유하혜(柳下惠)나 잘 배워라!' 한 말이 그럴 듯 하지 않은가.


• 오회법사(五會法師)

당(唐) 법조(法照)는 대력(大曆) 2년[767]부터 형주(衡州) 운봉사(雲峯寺)에 살았다. 그 때 숭상했던 일은 자비와 인욕과 계행과 선정이었다.

일찍이 발우 속에서, 오색구름이 서려있는 곳에 대성죽림사(大聖竹林寺)라는 편액이 걸린 범찰(梵刹)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오대산에 가서 기이한 광명이 서려있는 것을 보았고 과연 죽림사도 그 곳에 있었다.

강당에 들어가니 많은 대중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문수는 서편에, 보현은 오른쪽에서 법을 설하고 있었다. 조(照)는 예하고 “말세의 범부가 어떤 법을 닦아야 하리까?” 하고 물었다.

문수가 말씀하시기를, “모든 수행문 가운데 염불만한 것이 없다. 나도 염불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었다.” 하였다.

또 물었다. “어떻게 염(念)하리까?”
“이 세계의 서쪽에 아미타불이 계시는데, 저 부처님의 원력은 불가사의하다. 너의 생각(念)을 영속하여 끊이지 않게 하라.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나중 섣달 초 하루에 화엄원(華嚴院)의 정업도량(淨業道場)에서 두 보살의 왕생할 것이라는 수기를 기억하고 일심으로 염불하고 있노라니, 홀연히 범승(梵僧)인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나타나서 ‘너의 화대(花臺)가 이미 마련되었다. 3년 후에 꽃이 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때가 되자 대중에게 “나는 간다.” 하고 고별하고, 단정히 앉아 갔다.
스님은 일찍이 호동사(湖東寺)에서 다섯 차례의 염불법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상서로운 구름과 보배로 꾸며진 누각을 감응했으며, 아미타불과 두 보살의 몸이 허공에 가득한 것을 보기도 하였다.

또한 병주(幷州)에서 다섯 차례의 염불법회를 열었는데, 대종황제(代宗皇帝)의 궁중에 염불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감응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신하를 보내 찾아보고 스님의 교화가 성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조칙으로 서울에 들어가 궁인(宮人)들에게 염불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역시 다섯 차례였다. 그래서 오회법사(五會法師)라고 부르게 되었다.

찬(贊)
감응을 먼저 꿈꾸고 경계를 나중에 보았으니, 참으로 분명히 믿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모든 수행문 가운데 염불만한 것이 없다고 한 문수의 가르침을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3년 전에 화대(花臺)가 미리 마련되었다는 것은, 소위 신심을 일으키자 말자 연꽃의 꽃술에 이름이 새겨지고, 그 부지런하고 게으른 정도에 따라 활짝 피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는 것이니, 역시 믿을 만하지 않은가.

아! 그윽히 신령한 자취를 나타냈고 미리 성인의 수기를 받았으며, 다섯 차례의 교화를 행하여 그 음성이 궁중에까지 사무쳤으니, 어찌 자비의 원력을 타고 태어난 분이 아니겠는가.

* 오회법사 법조스님(?-772)은 무량수경에 근거하여 오회염불을 창시하여 오회법사찬이란 저술을 남겼다.

* 일체종지(一切種智) : 부처님이 지니고 있는 지혜. 모든 존재에 대하여 평등의 처지에서 다시 차별의 상(相)을 세밀히 아는  지혜.


• 대암(臺岩) 강법사(康法師)

당(唐) 소강(小康)은 진운(縉雲) 선도(仙都)사람으로, 나이 열다섯에 법화와 능엄에 통달하였다. 정원(貞元) 때 낙양(洛陽) 백마사(白馬寺)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전각 속의 글자가 방광하는 것을 보고 찾아보니, 선도화상의 서방화도문(西方化導文)이었다.

스님이 ‘만약 정토와 인연이 있으면 다시 방강하소서.’ 하고 축원했더니, 말을 마치자 광명이 다시 찬연하였다.

스님은 ‘겁석(劫石)은 갈아 없앨 수 있을망정 나의 원력은 바꾸지 못한다.’ 하고는, 마침내 장안(長安) 광명사(光明寺)로 가서 선도화상 영당(影堂)에 예배하노라니, 홀연히 영상(影像)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면서 ‘너는 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널리 중생들을 교화하라. 후일 일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안양에 왕생할 것이다.’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신정(新定)으로 가서 돈을 구걸하여 어린애들을 달래어 염불하게 하였다. 염불 한 번 부르는데 일문(一文)씩의 돈을 나눠주었다.

1년 남짓되자 어린이 어른, 귀한 이, 빈천한 자를 막론하고 스님을 만나는 자는 누구나 아미타불을 불렀다. 염불하는 소리가 거리마다 울려퍼졌다.

또한 오룡산(烏龍山)에 정토도량을 세우고 자리에 올라 큰소리로 부처님을 부르니, 한 번 부르면 한 부처님이 입에서 나왔고, 열 번 부르면 열 부처님이 나왔다. 대중들이 모두 목격한 사실이었다.

그리고는 “너희들 중에 부처님을 본 자는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때 대중이 수천 명이었으나 보지 못한 자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책망하고 마음 아파하며 더욱 정진에 힘썼다.

나중 21년 10월 3일,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부촉하기를 “반드시 정토에는 기쁜 마음을 일으키고, 염부제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라. 너희들이 나의 광명을 본다면 진정한 나의 제자다.” 하고는, 몇 줄기의 기이한 광명을 내고는 죽었다. 대자암(臺子岩)에 탑을 세웠으므로 대암법사(臺岩法師)라고 불렀다.

찬(贊)
어떤 이는 부처님이 입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요괴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것이다.
아! 세존께서는 술 취한 코끼리를 만났을 때, 다섯 손가락 끝에서 금빛 찬란한 사자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내가 어찌 코끼리를 막을 생각을 내었겠느냐. 나의 한없는 기간동안 자비와 인욕을 수행한 힘으로 자연히 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나도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였다.

지금 강(康) 공의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도 역시 한없는 기간동안 부처님께 귀경한 소치일 뿐이다. 어찌 괴이쩍게 생각할 일이랴. 세상에는 요술장이들이 캄캄한 밤에 가만히 앉아 향 연기 위로 부처님이 나타나는 것을 관하면 감응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과 삿되고 올바른 것을 비교해 보라. 실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일 것이다. 정업을 닦는 자를 위하여 불가불 밝혀두는 바이다.


• 자각(自覺)

당(唐) 자각은 진주(鎭州)에 살았다. 항상 발원하기를 ‘원하옵건대 관음을 인해 아미타불을 친견케 하소서.’ 하였다. 그리고는 관음상을 주성(鑄成)하였는데, 높이가 49자 였다.

완성되는 날 축원을 하고 있노라니, 삼경(三更)에 홀연히 금색 광명 두 줄기가 뻗치더니, 아미타불이 광명 속에서 내려오시고 두 보살이 좌우에서 따르고 있었다.

부처님이 손을 드리워 각(覺)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며 ‘나의 발원을 지켜 결코 어기지 않노니, 우선 중생을 이익케 하노라. 태어날 보배의 못은 어떤 것도 발원만한 것이 없나니라.’ 하였다.

나중 11년 7월 보름 저녁에 차림새가 천주(天主)와 같은 어떤 사람이 구름 사이에서 몸을 나타내어 각(覺)에게 말하기를 ‘안양의 시기가 이르렀다.’ 하자, 즉시 관음상 앞에서 가부하고 앉아 죽었다.


• 선 주(善冑)

당(唐) 선주는 영주(瀛州) 사람이다. 무덕(武德) 3년[621]에 병이 위독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일생 올바른 믿음을 가졌으므로 정토에 태어나지 못할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하고는 방을 치우고 향을 피우게 하였다.

그러다 병이 깊어 다시 쓰러졌다가 갑자기 일어나 앉아 합장한 채 시자에게 “세존을 맞이해 자리에 앉게 해 드려라.” 하고는, 스스로 잘못을 말씀드리더니, 얼마 후 “세존께서는 가셨다.” 하며 몸을 굽혀 전송하듯 하는 몸짓을 하였다.

그리고는 자리에 누워 “조금 전에 아미타불께서 오셨다. 너희들도 보았느냐? 오래지 않아 나도 갈 것이다.” 하더니, 잠시 후에 죽었다.


• 신소(神素)

당(唐) 신소는 안읍(安邑) 명조(鳴條) 사람이다. 처음에는 강연으로 업을 삼았으나, 도걸(道傑), 제명(齊名)과 함께 일생 서방을 생각하는 것으로 행업을 삼게 되었다.

정관(貞觀) 2년[628]에 대중이 누암(樓岩)을 주관해 줄 것을 간청하여 그곳에 살았다.

17년 2월 23일에 대중을 불러 고별하고, 얼굴빛을 엄정히 하고 가부좌하고 앉아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을 두 번 외게 한 후, 자신이 아미타불을 부르고 대중이 따라하게 하더니, 한밤중이 되어서 단정히 앉아 편안히 갔다.

살갗은 비록 변하였으나 앉아있는 모습은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 혜선(慧璿)

당(唐) 혜선은 양천(襄川)에서 출가하고, 일찍이 삼론(三論)과 대경(大經: 화엄경)을 널리 공부한 적도 있었다.

정관(貞觀) 23년[649] 4월 8일 밤에 산신이 ‘법사께서는 오래지 않아 서방에 왕생하실 것입니다.’ 하더니, 7월 14일, 우란분경(盂蘭盆經)을 강설하여 끝마치고는 손을 털면서 “살아서는 시주의 은혜를 입었으나, 오늘은 모두 보시해야겠다. 조그마한 물건 하나라도 쓸만한 것들은 모두 시방의 가난한 걸인이나 수도자들에게 주어라.” 하고는, 말을 마치자 법좌에서 죽었다.

찬(贊)
옛날 생(生) 공이 숨을 거두려할 때 대중들이 보니, 불자(拂子)가 땅에 떨어지면서 탁자에 기댄 채 마치 선정에 든 듯 죽었다 하더니, 선(璿)의 일도 역시 이와 유사하다.
아! 평생의 도력이 아니었다면 임종에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 회옥(懷玉)

당(唐) 회옥은 태주(台州) 사람이다. 남루한 옷과 한 끼의 밥으로 항상 앉아 있기만 하고 눕지 않은 채 미타경 30만 번을 독송했고, 하루에 부처님 명호 5만 번을 불렀다.

천보(天寶) 원년[742], 불보살이 허공에 가득한데, 한 사람이 은대(銀臺)를 가지고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옥이 “내가 일생 염불했던 것은 금대(金臺)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찌하여 그렇지 않습니까?” 하니, 성중(聖衆)이 마침내 사라졌다.

옥(玉)은 더욱 정진을 배가하였다.
21일 후에 전에 대좌(臺座)를 가져왔던 자가 다시 와서 “스님께서는 정진의 힘으로 상품(上品)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부하여 앉아 기다리십시오.” 하였다.

3일 후에 기이한 광명이 방에 가득하더니, 제자들에게 “나는 정토에 왕생한다.” 하고는, 미소를 머금고 죽었다. 군(郡)의 태수 단(段) 공이 이렇게 게(偈)를 지어 찬탄한 것이 있다.

우리 스님 한 생각에 초지(初地)에 오르사
불국음악 두 번이나 들려왔네
오직 문 앞의 늙은 홰나무
가지를 늘어뜨려 금대를 막네.

아사일념등초지 我師一念登初地
불국생가량도래 佛國笙歌兩度來
유유문전고괴수 惟有門前古槐樹
지저지위괘금대 枝低只爲罣金臺

찬(贊)
어떤 이가 ‘은대가 왔다가 사라지고, 금대를 원하자 다시 왔다 하니, 어찌 과보가 일정함이 없이 사람이 선택하는 대로 될 수 있는가?’ 하였다. 이것이 바로 ‘만법은 마음을 따라 감응한다(萬法由心隨感而應).’는 이치이다.

화거(火車: 중생을 지옥으로 데려간다는 불 수레)가 이미 나타났더라도 열 번의 염불로 왕생한 일도 있고, 천상의 대중들이 와서 맞이했으나 마음을 맹서하고 정토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이렇게 선악과 범성(善惡聖凡)은 서로 막혀 있는 것이지만, 잠깐동안에 업(業)을 바꿀 수 있었다. 더욱이 금과 은 같은 미세한 차이랴.

 
• 도앙(道昂)

당(唐) 도앙은 위군(魏郡) 사람이다. 영유법사(靈裕法師)를 따라 늘 한능산사(寒陵山寺)에서 화엄지론(華嚴地論)을 강의하여, 고찰이 신중하고 넓었다.

마음에 서방을 결심하고 안양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더니, 나중에 스스로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미리 8월로 기한을 잡았으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8월 초하룻날이 되었으나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재(齋) 때가 되었는가를 묻고는, 법상에 올라가 앉았다. 몸에서는 위엄이 감돌고 향로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솟았다.

사중(四衆)을 이끌어 보살계(菩薩戒)를 설하니, 말씀이 간절하여 듣는 자들은 마음이 섬뜩한 지경이었다.

앙(昂)이 눈울 들어 바라보니, 천상의 대중이 어지럽고 음악이 요란한 것을 보고, 대중에게 “도솔천(兜率天)이 나를 맞이한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생사의 근본일 뿐, 본래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늘 마음에 정토를 기원하였으나, 어찌하여 나의 정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하니, 말을 마치자 하늘의 음악이 사라지고 서방의 향기로운 꽃과 음악이 구름처럼 울려퍼지더니, 날아 내려와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것은 온 대중이 모두 목격한 사실이었다. 그러자 앙(昂)이 “지금 서방의 영상(靈相)이 와서 나를 맞이한다. 원하는 바는 왕생일 뿐이다.” 하더니, 향로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면서 법상에 앉은 채 죽었다. 온 천하가 경탄해 마지않았다.

찬(贊)
천궁(天宮)을 물리치고 정토를 찾은 이는, 앞에는 광(光) 공이 있고, 뒤에는 홍(洪) 공과 앙(昂), 세 사람이 있다. 그러나 때가 눈 앞에 다가왔는데도 능히 사중을 계율로 인도하다 법상에 기댄 채 죽을 수 있었고, 영상(靈相)이 찬란하여 사람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일은, 아! 기이한 일이다.


• 도작(道綽)

당(唐) 도작은 병주(幷州) 문수(汶水) 사람이다. 열네 살에 출가하여 경론을 익히다, 만년에는 찬(瓚) 선사를 섬기며 선을 배우기도 했고, 또한 신란(神鸞: 담란)의 정토업을 독실히 닦기도 하였다.

어떤 스님이 정(定) 중에서 작(綽)의 염주가 칠보대산(七寶大山) 만한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평소에 대중을 위해 무량수관경(無量壽觀經)을 이백여 번 설했으므로, 사람들이 제각기 염주를 돌리며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게 되었다.

어떤 때 법석을 흩으면 임곡(林谷)에 애원하는 소리가 가득했고, 육시예경(六時禮敬)을 처음부터 거른 적이 없었으며, 염불은 하루에 7만 번으로 한정을 정하였다.

정관(貞觀) 2년[628] 4월 8일에 죽었다. 부음을 듣고 달려온 자들이 산사를 가득 메웠는데, 화불(化佛)이 공중에 머물고 있고 하늘꽃이 내려와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 실상(實相)

당(唐) 실상은 옹주(雍州) 장안(長安) 사람이다. 19세에 출가하여 두타행각과 육시예참을 40 년이 가깝도록 행하였다. 밤에는 미타경 일곱 번을 독송하고 6만 번의 염불을 하였다.

병이 깊어 일어날 수 없게 된 지경이 되었으나 독송과 염불을 버리지 않더니,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부촉하기를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염불이다. 헛되이 세상을 보내지 말라. 서방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또 “나의 시신은 불태워 흩어버리고 탑을 세우거나 비석을 새기려 애쓰지 말라.” 하고는 죽었다.

찬(贊)
옥(玉)은 하루 5만 번의 염불을, 작(綽)은 7만, 상(相)은 지금 6만 번의 염불을 하였다. 세 늙은이가 모두 고승이었으나 날마다 일정한 수의 염불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것은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나 할 짓이다.’ 하고는 비웃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유안(惟岸)

당(唐) 유안은 병주(幷州) 사람이다. 정토를 참으로 돌아가야 할 곳으로 여기고 방등참(方等懺)을 행하며 고행정진하여 쉬지 않았다.

약간의 병이 들자 관음, 세지 두 보살이 공중에 나타난 것을 보고, 안(岸)은 화공 (畵工)을 불렀으나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두 사람이 나타나 스스로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말하고, 다 그리고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岸)이 제자들에게 고별하기를 “나는 지금 왕생하려 한다. 누가 같이 갈 자가 없느냐?” 하자, 어떤 동자가 같이 가기를 원하였다. 안(岸)이 부모에게 고별하게 하니, 부모는 장난인줄로 여기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서는 도량에 들어가 염불하고 죽었다. 안(岸)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얘야 어찌하여 나보다 먼저 간단 말이냐?” 하였다.
그리고서 붓을 들어 이렇게 두 보살을 찬탄하고는 영원히 갔다.

원하옵노니 자비의 손으로
이끌어 서행(西行)을 함께 하소서

원이자비수 願以慈悲手
제장공서행 提獎共西行

찬(贊)
안(岸)의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거니와, 저 동자는 오랫동안 정업을 닦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신이(神異)하게 갈 수 있을까?

아! 그는 열 번의 염불로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숙세에 깊은 선근을 심은 자이리라. 정업을 닦는 자가 혹시 금생의 몸으로는 왕생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을 보면 스스로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방등참(方等懺) : 천태 지자대사께서 세우신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를 말함. 참회하여 죄업을 소멸하기 위한 수행법. 일정 기간은 행도염불하면서 수행하고, 일정 기간은 가부좌하고 앉아서 수행함.


• 승연(僧衍)

당(唐) 승연은 병주(幷州) 사람이다. 처음에는 미륵보살을 염(念)하면서 내원(內院)에 상생(上生)할 것을 발원했으나, 나이 90에 가서야 도작(道綽)선사를 만나 정토를 듣고 비로소 염불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하여 날마다 천 배의 절을 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나중에 병이 들어 제자들에게 고별하기를 “아미타불이 나에게 향기로운 옷을 주시고, 관음, 세지가 나에게 보배의 손을 보여 주셨다. 나는 이제 간다.” 하고는 죽었다.

그 때 개방(啓芳), 원과(圓果) 두 법사가 이 사실을 목격하고, 오진사(悟眞寺)에서 관음보살의 손에 들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꺽으며 “만약 정토와 인연이 있으면 7일 동안 시들지 마소서.” 하고 발원하였더니, 그 때가 지나도록 더욱 무성하였다.

방(芳)과 과(果)는 뛸 듯이 기뻐하며 밤낮으로 관념(觀念)을 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히 칠보로 된 못에 이르러 대보(大寶)의 장막 속으로 들어갔더니, 부처님과 두 보살이 보화(寶華)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데, 광명이 휘황하였다.

방과 과가 예했더니 부처님이 ‘나의 이름을 생각하는 자는 누구나 나의 국토에 왕생하리라.’ 하시는 것을 보았고, 또한 석가세존과 문수보살이 하늘음성으로 정토를 찬탄하시는 말씀도 들었다.

또 보니, 세 길의 보배로 된 계단이 있는데, 하나는 세속인이 있었고, 두 번째는 스님과 세속인이 반반씩 섞여 있었으며, 세 번째의 것에는 스님들만 있었다. 부처님이 ‘이들은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했던 이들로서 이 국토에 왕생하였다.’ 하였다. 5일 후에 홀연히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는 “종소리는 우리들을 위해서다.” 하고, 함께 죽었다.

찬(贊)
나이 90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업을 닦아서도 오히려 왕생할 수 있었다. 젊은이는 어떨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저 방(芳)과 과(果)도 소문만 듣고 마음을 내어 마침내 신비한 감응을 얻었다. 어진 이를 보고 같이 될 것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 회감(懷感)

당(唐) 회감은 장안 천복사(千福寺)에 살았다. 염불도량에 들어갔으나 3. 7일 동안 상서를 보지 못하자, 스스로 업장이 두터운 것을 한탄하며 음식을 끊고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이 때 선도(善導)대사가 허락하지 않고 3년 동안 더욱 정성을 다해 염불하게 하여, 가르친 대로 하여 감응을 얻었다.

나중에 부처님의 금색옥호(金色玉毫)를 보고 염불삼매를 얻어 결의론(決疑論,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을 말함) 7권을 지었다. 임종에 합장한 채 “부처님이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죽었다.

찬(贊)
속담에 ‘정성을 기울이면 절구공으로도 바늘을 만들 수 있다.’ 하더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다. 한계를 느끼고 자신을 원망하는 자는 생각해 볼 일이다.


• 덕미(德美)

당(唐) 덕미 법사는 회창사(會昌寺)에서 서원(西院)에 참회하는 집을 짓고 반주삼매(般舟三昧)를 행하여 여름내 앉거나 눕지 않았다. 어떤 때는 입의 허물을 막기 위해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고, 어떤 때는 불경(不輕: 남을 업신여기지 않음)을 행하여 아무에게나 절하고 예하였다.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세속의 생각을 끊었으며, 서방을 전념하여 입으로 미타를 부르며 죽을 때까지 쉬지 않았다. 나중에 잠깐 방에 들어가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편안히 죽었다.

찬(贊)
세속의 생각을 끊으면 더러운 인연이 다할 것이요, 서방을 전념하면 깨끗한 인연이 이루어질 것이다. 옛 성인의 말씀에 ‘애욕이 깊지 않으면 사바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생각이 전일하지 않으면 정토에 태어나지 못한다.’ 하였다.
진실하다, 이 말씀이여!

* 반주삼매(般舟三昧): 반주는 불립(佛立)이라고 번역한다. 부처님이 공중에 서 있는 것을 관하여 성취한 삼매.


• 변재(辯才)

당(唐) 변재는 양양(襄陽) 사람이었다. 남몰래 정토를 닦으면서도 20년 동안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다만 호융(護戎)인 임(任) 공이 이 일을 알고는 ‘재(才)가 반드시 10년 후에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하루는 제자를 임 공에게 보내어 ‘전에 정한 기한이 이미 되었습니다.’ 하였더니, 임 공이 오자 “나는 갑니다.” 하고는 가부좌한 채 죽었다. 선악(仙樂)이 서쪽에서 들려오고 기이한 향기가 흩어지는 것을 대중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 수홍(壽洪)

당(唐) 수홍은 분양(汾陽) 사람이다. 항상 염불하며 정토를 간구하더니, 죽을 때에 이르러 도솔천의 동자가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나는 서방에 왕생하려 한다. 천상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는, 대중에게 염불하게 하더니, 문득 “부처님이 서쪽에서 오신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 죽었다. 


• 법상(法祥)

당(唐) 법상은 양도(楊都) 대흫국사(大興國寺)에 살면서 30년 동안 안양의 업을 닦으며 모든 선행은 반드시 서방에 회향하였다.

병이 들었을 때 제자들이 상(祥)의 염불 소리가 더욱 우렁찬 것을 들었고, 또한 방의 서쪽 벽에 거울을 매단 듯한 광명이 비치면서 정토의 광경이 나타났으며, 빈가(頻伽: 극락조. 가릉빈가)가 나래짓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편안히 죽었다.

찬(贊)
상(祥)은 빈가를 보았고, 앞의 지순(智舜)은 앵무와 공작을 보았다. 부처님을 친견하지 않고 새들을 본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아미타경)에 ‘이 모든 새들은 아미타불이 변화하여 만든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정보(正報)와 의보(依報)가 모두 정토의 모양인 것이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 대행(大行)

당(唐) 대행은 태산(泰山)에 살면서 3년 동안 보현참법(普賢懺法)을 닦아 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감응하였다. 늙어서 대장각(大藏閣)에 들어가 발원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골라 미타경을 얻어 밤낮으로 독송하였다.

3. 7일이 되는 날, 유리의 땅 위에 부처님과 두 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보았다. 희종황제(僖宗皇帝)가 그 사실을 듣고 궐내에 불러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년 후 유리의 땅이 다시 나타나더니, 그날 죽었다. 기이한 향기가 보름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육신도 썩지 않았다.

찬(贊)
유리의 땅은 위와 아래가 내비치는 곳으로, 청정한 덕으로 감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혜영(慧永)과 승연(僧衍)은 기이한 향기가 7일 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혜통(慧通)은 3일, 행(行)은 지금 보름동안 감돌았다고 하였다. 범행(梵行)이 더욱 청정했던 소치가 아니겠는가.


• 명첨(明瞻)

당(唐) 명첨은 늙어서야 안양에 뜻을 둔 이다. 어떤 이가 이미 늦었다고 놀리자 “열 번의 염불만으로도 공을 이루어 부처님을 친견한 일도 있다. 내가 무엇을 염려하랴.” 하고 대꾸하였다.

나중에 병이 들자, 흥교사(興敎寺)에서 재를 베풀어 스님과 신도들과 고별하게 되었는데, 그 때 복야(僕射: 당나라 때 재상벼슬을 이름)인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해(杜如海)도 그 자리에 있었다.

오후가 되자 위의를 단정히 하고 일심으로 염불하다, 문득 “부처님이 오셨다. 두 보살임도 함께 오셨다.” 하고는, 몸을 발돋음하여 합장한 채 죽었다.


• 영명 수(永明壽) 선사

전씨오월(錢氏吳越: 북송[北宋]을 말함)의 연수(延壽)는 항주 여항(餘杭) 사람이다. 사명취암(四明翠岩) 선사에게서 출가하였고, 천태 소(天台韶) 국사에게 참예하여 심요(心要)를 발명하였다.

일찍이 법화참(法華懺)을 행하다가 밤중에 보현의 연꽃이 홀연히 손에 있는 것을 보고, 숙세의 원력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지자암(智者岩)에 올라가 두 개의 제비를 만들어 하루는 일심으로 선정을 익히고 하루는 만행으로 정토를 닦으면서 지심으로 기도하여 일곱 번을 뽑아 모두 정토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정토를 닦게 된 것이다. 나중에 영명(永明)에 살면서 하루에 108 가지의 일을 정해놓고 실행했으며, 밤에는 별봉(別峯)에 올라가 길을 걸으면서 염불하니, 곁에 사람들이 때때로 하늘 음악을 듣곤 하였다.

충의왕(忠懿王)이 찬탄하기를 ‘자고로 서방을 구하는 자들 중에 이와같이 간절한 자는 아직 없었다.’ 하고, 서방향엄전(西方香嚴殿)을 세워 그의 뜻을 이루어 주었다.

영명에 있은 지 15년 동안 제자 천칠백 명이 한상 대중과 함께 보살계를 받았고, 귀신에게 시식(施食)을 베풀었으며 모든 생명을 방생하면서 이런 일들을 모두 정토를 장엄하는데 회향하였다. 그 때 모두 미륵의 하생(下生)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개보(開寶) 8년[975] 2월 26일, 새벽에 일어나 향을 피워 대중에게 고별하고 가부좌하고 죽었다.
후에 어떤 스님이 임천(臨川)에서 와서 몇 해가 되도록 그의 탑을 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병이 들어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전각 왼편에 어떤 스님의 상(像)을 모셔놓고 왕이 공손히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가만히 물어보니 ‘이 분은 항주의 영명 수 선사입니다. 대체로 죽은 자는 모두 명부를 거치게 마련입니다만 이 스님은 이미 바로 서방의 상상품(上上品)에 태어났으므로 왕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예경하게 된 것입니다.’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찬(贊)
영명은 선법(禪法)을 얻었으면서 마음에 정토를 새겨 두었으니, 자신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넓고 큰 행원은 그 광명이 만세에까지 비칠 것이다. 그 분은 하생한 미륵이실까? 다시 태어난 선도(善導)이실까?


• 지통(志通)

석진(石晋: 후진後晋을 말함)의 지통은 봉상(鳳翔) 사람이다.
지자대사의 정토의식(淨土儀式)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이로부터 서쪽을 향하여서는 침도 뱉지 않고 서쪽을 등지고 앉지도 않으면서 전심으로 염불하였다.

나중에 백학과 공작이 무리를 지어 서쪽에서 날아오고, 또한 연꽃이 눈앞에서 피었다 지는 것을 보고는 “백학과 공작은 정토의 경계요, 연꽃의 빛나는 모양은 태어날 곳이다. 정토가 나타났다.” 하고는, 일어나 부처님께 예하고 죽었다.
다비를 할 적에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불더미 위에 감돌았고, 사리가 온 몸에 비늘처럼 얽혀있었다.

찬(贊)
반드시 서쪽을 피하여 침을 뱉았고, 앉아있을 때는 반드시 서쪽을 행하였다 하니, 정성이 이와 같다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요즘은 경솔하고 천박한 마음으로 왕생을 바라고 있으나,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는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 아! 낙일(落日)을 관하게 하신 분명한 경문도 있고, 지자대사는 나면서부터 서쪽을 향하여 가부하고 앉았으며, 내지 정업을 닦았던 제현들도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죽었다. 집착하지 않고 그럴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탐착해 경계를 혼탁하게 하면서 일생을 그렁저렁 보내거나, 겨우 정토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집착할까를 걱정하고 있으니, 슬프고 애석한 일이다.


• 오은(唔恩)

송(宋) 오은은 고소(姑蘇) 상숙(常熟) 사람이다. 나이 열셋에 미타경을 외우는 소리를 듣고 마침내 부모님에게 출가할 것을 간청하였다. 종일 한 끼의 음식만을 먹고 항상 의발(衣鉢)을 몸에 지녔으며, 재물을 모우지 않았고, 누울 적에는 반드시 우협(右脅)으로 하고 앉을 적에는 반드시 가부좌를 하였다.

포살(布薩)할 적마다 슬피 울기를 마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널리 서방의 정업과 일승(一乘)의 원지(圓旨)를 가르쳤다. 누가 심기가 투합하지 않은데 대해 의심하는 자가 있으면, 함께 독고(毒鼓)의 인연을 지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옹희(雍熙) 2년[985] 8월 초하루, 밤에 백광(白光)이 우물 속에서 비치는 것을 보고 문인에게 “나는 가야겠다.” 하고는, 음식을 끊고 말을 금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꿈에 한 사문이 금화로에 향을 사루어 들고는 그의 방을 세 번 돌면서 스스로 ‘관정(灌頂)이 여기와서 맞이한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 문인을 불러, 가보니 그때까지 기이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25일, 지관지귀(止觀指歸)와 관심의(觀心義)를 설해 마치고는 단정히 앉아 죽었다. 사람들이 하늘음악이 공중에서 쟁쟁하게 울리면서 점점 서쪽을 향하여 사라지는 것을 들었다.

찬(贊)
재물과 음식을 탐하지 않는 것은 청렴하고 결백한 마음이요, 앉고 눕는 것을 구차하게 하지 않은 것은 신중한 마음이며, 의발을 항상 몸에 지닌 것은 지중한 마음이며, 포살할 적마다 눈물을 흘린 것은 성실한 마음이다.

이 네 가지의 마음은 모두 정토의 인(因)으로서, 그가 왕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사람들을 가르칠 적마다 서방의 정업과 일승의 원교를 동시에 베푼 것은, 깊이 염불문에 들어가는 은혜를 베푼 것이다.

* 포살(布薩): 장정(長淨) 또는 설계(說戒)라고 번역한다. 동일지역 내의 비구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지나간 반 달간의 행위를 반성하고 죄가 있으면 고백 참회하는 의식.

* 독고(毒鼓): 독을 바른 북이라는 뜻. 이 북소리는 사람을 죽일 수 있으므로 열반경에서 말한 불성(佛性)이나 상주(常住)의 소리는 중생의 오역(五逆)이나 십악(十惡)을 죽여 불법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비유함.

* 관정(灌頂) : 천태 지자대사의 수제자. 염불 왕생하신 분.


• 원정 상(圓淨 常) 법사

송(宋) 성상(省常)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일곱 살에 출가하였다.
순화(湻化) 중에 남소경(南昭慶)에 살 적에 여산의 가풍을 사모하여, 피를 내어 화엄경 정행품(淨行品)을 쓰고, 연사(蓮社)라는 이름을 바꾸어 정행(淨行)이라 하고, 사대부로서 그 외에 참예한 자를 정행제자(淨行弟子)라고 불렀다.

그 중, 왕 문정공(王文正公) 단(旦)이 수석으로, 한 때는 공경(公卿)과 백목(佰牧)이 120 명, 비구가 천여 명이나 될 때도 있었다.

한림(翰林)인 소 역간(蘇易簡)이 정행품 서(序)를 지어 ‘나도 마땅히 머리카락을 펴 그의 발을 받들고, 살을 베어 그의 법을 간청해도 오히려 부족할 것인데, 하물며 변변찮은 문장과 천박한 학문으로 이를 아까워 하랴.’ 하기도 하였다.

천희(天禧) 4년[1020] 정월 12일, 단정히 앉아 염불하더니, 큰 소리로 “부처님이 오셨다.” 하고는, 조용히 죽었다.

찬(贊)
원 공을 위시하여 선도(善導), 남악(南嶽), 오회(五會), 영명(永明), 대암(臺岩)과 끝에 가서 법사(성상)를 연사(蓮社)의 칠조(七祖)라 부르며, 교화의 흥성함은 옛이나 지금까지도 빛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자신의 수행을 살펴보면, 애쓰고 노력하기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과 같이 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권할 줄만 알았지 자신이 실행할 줄은 모른다. 선배들에게 부합하기에 아득히 먼일이 아니겠는가.


• 정관(淨觀)

송(宋) 정관은 가화(嘉禾) 적광암(寂光庵)에 살면서 정토참법(淨土懺法)을 10여 년이나 닦았다.

어느날 제자에게 “나는 27일 후에 갈 것이다.” 하더니, 그 때가 되자 2일 전에 붉은 연꽃을 보았고, 다음날 또 노란 연화가 땅에 가득한데, 꽃마다 화생(化生)의 어린애가 꽃잎 속에 앉아 있는데 선대(仙帶)를 매고 있는 것을 보았다.

3일째 되는 날 감실(龕室)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대중에게 염불하라 하고 잠시 후에 죽었다.

찬(贊)
염불하는 사람은 미리 때가 된 것을 안다. 이것은 사바의 인연은 다하고 정토의 인연이 성숙되어 자연히 성경(聖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원 공은 7일 전에, 지금 관(觀)은 27일 전과 같은 따위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서는 실덕(實德)이 없었으면서 죽을 때에 다달아 이를 흉내내어 갖은 수단으로 꾸며 식자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심지어 산채 불에 뛰어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귀신이나 사마(邪魔)에 붙거나 악도에 떨어질 줄을 알지 못한다. 참으로 연민스런 일이다.

만약 아무 안목도 없는 무리들에게 이를 부러워하여 본받게 한다면 그 피해는 더욱 막대하다. 내가 왕생한 사례들을 모아보니, 한 사람도 산채 그 몸을 불태운 자는 없었다.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보고 널리 세상에 고하여 모든 어리석은 자를 구해주기 바란다.


• 자운 참주(慈雲 懺主)
송(宋) 준식(遵式)은 태주(台州) 임해현(臨海縣) 사람이다. 학행이 고상하여 이름이 양절(兩浙)에 자자하였다.

안양에만 뜻을 두어 일찍이 반주삼매를 행하여 90일 동안 피를 쏟도록 애썼으며, 도량에 들어가서는 두 발의 살갗이 터졌으나 죽음으로 스스로 맹서했다. 꿈에 관음보살이 손가락을 그의 입 속에 넣어 몇 마리의 벌레를 끄집어 냈으며, 또한 손가락 끝에서 감로를 꺼내 그의 입에 부어 넣었다.

꿈을 깨자 몸과 마음이 가뿐한 가운데 병이 다 나아있었다.
정토결의행원(淨土決疑行願)과 정토참법(淨土懺法)을 지어 세상에 남겼다.

천성(天聖) 때, 죽는 날 향을 사루어 부처님께 예하고 ‘제불께서 증명하사 안양에 왕생케 하소서.’ 하고 발원하고, 밤이 되어 앉아서 죽었다. 사람들이 큰 별이 영축봉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당시에 자운참주라 불렀다.

찬(贊)
극진히 참법(懺法)을 애쓰고 자신이 행하면서 만세에까지 법을 남긴 이는 고금에 한 사람일 따름이다. 심지어 보배의 손으로 벌레를 끄집어내고 감로를 입에 부어넣은 일은, 지극한 정성이 아니었다면 누가 능히 그런 감응을 얻을 수 있겠는가.

* 양절(兩浙): 절동(浙東)과 절서(浙西). 절동은 전단강 이남. 절서는 전단강 이북.

* 준식(遵式. 964-1032): 자운 준식 스님의 스승은 고려 전기의 스님으로 천태종 16대 조사이신 보운 의통(寶雲 義通. 927-988). 의통스님은 항상 사람들을 부를 때 ‘고향 사람(鄕人)’이라 했는데, 그 까닭을 물으면, ‘나는 극락정토를 고향으로 삼는다. 모든 사람이 다 왕생해야 할 것이므로 모두가 다 고향사람이다’라고 했다.


• 종탄 소주(宗坦 疏主)

송(宋) 종탄은 노주(潞州) 여성(黎城) 사람이다. 50년 동안 명성이 강림(講林)에 자자하더니, 늙어서 당주(唐州)의 청대진(靑臺鎭)에서 정토만을 구하여 삼업(三業. 몸과 입과 마음)과 사의(四儀.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행동거지)에 잠시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정화(政和) 4년[1114] 4월 27일, 꿈에 아미타불이 ‘너의 설법도 이젠 6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후에는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니, 꿈을 깨어서 그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다.

5월 4일, 대중을 모우고는 “인연因緣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당연히 때가 있게 마련이다. 정토의 수승한 인연은 반드시 때를 의지해야만 한다. 대중들은 염불하여 나의 왕생을 도와다오.” 하고는, 앉아서 죽었다. 그 때 온 하늘에 뇌성이 치고 흰 구름이 땅을 덮더니, 3일 만에야 그쳤다.

소지하고 있던 마노 염주가 그 때까지 손에서 구르고 있어서 대중이 가지려 했으나 끝내 그러지 못했다. 감응한 사실은 여기서 자세히 적지 못한다. 따로 적으려 한다.


• 자조 종주(慈照宗主)

송(宋) 자원(子元)은 호가 만사휴(萬事休)로서, 평강(平江) 곤산(昆山)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지관(止觀)을 익히다, 정 중에서 까마귀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고는,

이십여 년 동안 종이 속에서 찾았으나
찾고 찾아도 더욱 막막할 뿐이었네
홀연히 까마귀 울음을 듣고
비로소 이제까지 그릇 용심한 줄 알았네.

이십여년지상심 二十餘年紙上尋
심래심거전침음 尋來尋去轉沈吟
홀연청득자아규 忽然聽得慈鴉叫
시신종전착용심 始信從前錯用心

하고 송(頌)하였다.

그리하여 남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널리 염불을 권장하고, 법계 중생을 대신하여 예불 참회하며 안양에 왕생하기를 기도하였다. 백련참당(白蓮懺堂)을 짓고 사토삼관선불도(四土三觀選佛圖)를 저술하여 염불종의 안목을 열어보였다.

역순의 경계 속에서도 마음을 움직인 적이 없었으므로 고종황제(高宗皇帝)가 불러 보시고 자조(慈照)라는 호를 내렸다.

3월 23일, 탁성(鐸城)에서 대중에게 “나는 교화할 인연이 이미 다하였다. 이젠 가야겠다.” 하고는, 합장한 채 죽었다. 다비에 붙이니 무수한 사리가 나와, 나라에서 최승지탑(最勝之塔)이라는 탑호를 내렸다.


• 법지(法持)

송(宋) 법지는 화도사(化度寺)에 살았다. 미타참(彌陀懺)을 닦으면서 염부제를 하루빨리 벗어나 안양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다. 나중에 병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며 접인해 주시기를 기원하며 큰 소리로 끊임없이 염불하더니, 홀연히 장육(丈六: 1장 6척尺)의 부처님 몸이 못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이젠 중품(中品)에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고는, 서쪽을 향하여 죽었다.

찬(贊)
인간의 정리란 오래 살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런데 죽음을 재촉하면서 안양을 간구했으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지극한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러나 발원은 그럴 수 있다 하겠으나, 바다에 뛰어들거나 절벽 위에서 몸을 던지며 나무더미를 쌓아놓고 스스로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것은 마군의 짓이다.


• 본여(本如)

송(宋) 본여는 호를 신조(神照)라고 하였다. 동산(東山) 승천사(承天寺)에 살면서, 군수인 장순(張郇)과 결사(結社)를 맺었다. 하루는 자리에 올라 설법하여 대중과 결별하고 물러나와 앉아서 죽었다.

그 때 강가의 어부가 구름 속에 어떤 스님이 서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다음 해 탑을 열어보니, 안색이 생전과 같고 탑 안에 연꽃이 피어있었다.


• 기 법사(基法師)

송(宋) 기 법사는 보운(寶雲: 고려스님인 보운 의통)에게서 배웠다.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에 살면서 일념으로 염불하였다. 하루는 병색을 보이면서도 제자들을 위해 널리 현지(玄旨)를 설하고 있노라니, 대중들이 보니 서방에서 광명이 비치면서 공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스님이 “아미타불과 두 보살이 오셨다.” 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서쪽을 향해 죽었다. 문인이 아미타불이 스님에게 초세여래(超世如來)라고 수기하는 꿈을 꾸었고, 어떤 이는 스님이 청련화대(靑蓮花臺)에 앉아있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법지(法智) 선사가 이렇게 찬탄한 적이 있었다.

병들어 누웠으면서 현지를 설했고
임종에 부처님을 친견했으니
참으로 공경할 만한 어른이시다.

와병담현 臥病談玄
임종견불 臨終見佛
시가경야 是可敬也

찬(贊)
어떤 이는 기(基)가 어떻게 수기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할지 모른다. 아! ‘여래 무량광을 친견하옵고 현전에서 제가 보리기(菩提記)를 받고저.’ 하는 말을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 약우(若愚)

송(宋) 약우는 운천(雲川) 선담(仙潭)에 살면서 무량수각(無量壽閣)을 지어 스님들과 세속인들에게 염불하기를 권하며 30년 동안 정근하였다. 도잠(道潛)과 칙장(則章), 두 스님과 벗을 맺었는데, 잠은 시(詩)에 능하여 명예를 가까이 하였으나, 우와 장은 오직 실행에만 힘썼다.

죽을 무렵에 이르러, 꿈에 신인(神人)이 ‘너의 동학인 칙장은 보현행원 삼매를 얻어 이미 정토에 태어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우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대중에게 관경(觀經)을 읽게 하고 단정히 앉아 묵묵히 있더니, 갑자기 “정토가 앞에 나타났다. 나는 가야겠다.” 하고는, 다음과 같이 게(偈)를 쓰고는 죽었다.

본래 집이 없으니 돌아갈 곳 있으랴만
구름 속에 길이 있는 줄 누가 알랴
시냇빛(계광溪光)에 서산 달이 지니
바로 선담(仙潭)에서 꿈을 깰 때네.

본자무가가득귀 本自無家可得歸
운변유로허수지 雲邊有路許誰知
계광요락서산월 溪光搖落西山月
정시선담몽단시 正是仙潭夢斷時

허공 속에 천 꽃(千花)의 그물
꿈 속엔 칠보의 연못
서방의 길을 밟고나서는
다시는 한 점의 의심도 없네

공리천화라망 空裏千花羅網
몽중칠보연지 夢中七寶蓮池
답득서방로온 踏得西方路穩
갱무일점호의 更無一點狐疑

찬(贊)
우와 잠과 장은 벗이었으나, 잠은 시에 탐익해 명예를 가까이 하여 정토의 이익을 잃어버렸다. 세상의 지혜를 멀리하고 세상과의 인연을 소원(疎遠)히 하라. 서방을 찾는 자는 이를 반드시 명심하라.


• 수진(守眞)

송(宋) 수진은 영흥(永興) 사람이었다. 기신론과 법계관(法界觀)을 강의하면서, 늘 한밤중에는 무량수불왕생비밀인(無量壽佛往生秘密印)을 맺고서 서방에 뜻을 두었다.

어느날 새벽, 몸이 정토에 오르는 것을 느끼고서 눈을 들어 부처님을 보고 상 앞에 엎드려 ‘48원으로 능히 나를 제도하실 분!’ 하고는, 향과 꽃을 가지고 법당에 들어가 공양하고 자리에 돌아와 죽었다.


• 지례(知禮)

송(宋) 지례는 호를 법지(法智)라고 하였다. 남호(南湖)에 살 적에 묘종초(妙宗鈔)를 지어 관심(觀心)과 관불(觀佛)의 뜻을 널리 밝혔다.

해마다 2월 보름에는 염불시계회(念佛施戒會)를 열어 만인들을 깨우쳤고, 융심해(融心解)를 찬술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과 사정토(四淨土)의 뜻을 밝혔다.

후일 정월 초하루에 광명참(光明懺)을 주관하더니, 닷새 째 되는 날, 대중을 불러 설법하고 수백 번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서 조용히 앉아 죽었다.

찬(贊)
예(禮)는 묘종초을 짓고 정관(淨觀)을 설하여 널리 천태의 교의를 밝혔으나, 임종에 염불하며 앉아서 죽었으니, 어찌 부질없이 입을 놀리는 자와 같은 수준에서 논의할 수 있으랴.

* 묘종초(妙宗鈔): 천태 지자대사의 관무량수경소를 상세히 해설한 책.

* 일심삼관(一心三觀): 천태종의 관상법(觀想法)의 하나. 일념의 마음중에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의 3관을 동시에 아우르는 것. 현상세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공관, 현상세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가관, 이 양자가 서로 갖추어져야 비로소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고 하는 중관의 3관을 일념으로 동시에 관념하는 것.

* 사정토(四淨土): 천태 지자대사가 분류한 정토의 4종류인데, 지례가 묘종초에서 자세히 설함.

1.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 - 범부와 상인이 함께 머무는 정토.

2.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 - 2승이 방편으로 미혹은 끊었으나, 근본무명의 견사혹(見思惑)을 끊지 못하여 삼계 밖에 태어나 생사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정토.

3. 실보무장애토(實報無障碍土) - 중도(中道)를 깨친 법신보살이 법성신(法性身)을 체득하여 머무는 정토. 미세한 무명은 남아있다.

4. 상적광토(常寂光土) - 법신불이 머무는 정토. 시공을 초월한 묘각(妙覺)의 지혜가 머무는 곳.

* 사명 지례(四明知禮960-1028)스님은 천태종 17대 조사이며, 자운 준식과 동문으로, 스승은 고려 스님으로 천태종 16대 조사이신 보운 의통(寶雲義通. 927-988)


• 유엄(有嚴)

송(宋) 유엄은 태주(台州) 적성(赤城) 숭선사(崇善寺)에 살면서 신조(神照)를 의지하여 천태교를 배웠다. 만년에 명자나무 아래에 띠집을 짓고 살았으므로 사암(樝庵)이라고 호하였다. 평생 독실히 정업을 닦아 ‘안양 고향을 생각함[懷安養故鄕]’이라는 시가 당시에 전하였다.

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1101] 4월, 죽음에 임박하여 보배 연못에 큰 연꽃이 피어있고 하늘음악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을 보고는 ‘정토로 돌아감[餞歸淨土]’이라는 시를 지어 대중에게 보이고 7일 후에 가부좌하고 죽었다. 탑 위에 달과 같은 광명이 서려있더니 3일 후에야 사라졌다.

찬(贊)
앞의 법상(法祥)은 거울을 비추는 듯한 광명이 벽 위에 나타났고, 지금 엄(嚴) 공은 달과 같은 광명이 탑 위에 나타났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형철(瑩徹之明)했던 영험이었다. 그리고 광명이 방에 가득했던 경우나 금색 광명이 강변 수백 리까지 뻗쳤던 경우를, 아! 이것들을 거짓이라 하겠는가.


• 혜명(慧明)

송(宋) 혜명은 호를 회암(晦庵)이라 하고, 혜광(慧光)에게서 배웠다. 만년에 청산(菁山) 상조사(常照寺)에 있으면서 정업을 닦아, 하루에 반드시 법화, 능엄, 원각경을 독송하고 미타의 명호를 만 번 불렀다.

경원(慶元) 기미(己未)[1199] 봄에 병색을 보이더니, 제자에게 “나는 대승을 배워 정토에 왕생하려 하였다. 지금 그 뜻을 이루었다.” 하고는 발을 포개고 앉아 죽었다. 대중이 하늘음악이 서쪽에서 흘러와 머리 위에서 맴도는 것을 들었다. 다비하니 오색의 사리가 무수하였다.


• 사찬(師贊)

송(宋) 사찬은 옹주(雍州) 사람으로, 승동(僧童)이 되어 열네 살적부터 염불을 끊이지 않고 불렀다. 문득 병이 들어 갑자기 죽더니, 잠시 후에 다시 깨어나 스승과 부모에게 “아미타불이 이곳에 오셨으니 저도 따라가려 합니다.”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보니, 공중에 보대(寶臺)와 오색의 기이한 광명이 서쪽을 향하여 사라졌다.


• 두 사미(二沙彌)

수(隋) 문주(汶州)에 두 사미가 있었는데, 뜻을 함께 하여 염불하더니 큰 사미가 갑자기 죽었다. 정토에 이르러 부처님을 친견하고 “아우인 사미와 함께 정업을 닦았습니다. 왕생할 수 있사오리까?” 하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저가 너를 권하였기에 너도 발심하게 되었다. 너는 지금 돌아가서 더욱 정업에 힘써라. 3년 후에는 함께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때가 되어 두 사람이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 꽃이 휘날리는 가운데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함께 죽었다.


• 요연(了然)

송(宋) 요연 법사는 호를 지용(智涌)이라 하고, 24년 동안 백련사(白蓮寺)에 살았다. 꿈에 용 두 마리가 공중에서 유희하더니, 한 마리가 신인(神人)으로 변하여 소매 속에서 편지를 꺼내보고 ‘스님께서 7일 후에는 가실 것입니다.’ 하였다.

잠에서 깨어 대중을 모아 설법하고 ‘염불의 힘으로 극락국에 왕생한다. 너희들도 힘쓰지 않으랴.’ 하고 크게 쓰고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대중에게 미타경을 독송하게 하여 ‘서방세계’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 홀연히 죽었다.
능인사(能仁寺)의 스님들이 누구나 하늘음악과 상서로운 광명이 하늘가에서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사조(思照)

송(宋) 석사조(釋思照)는 연종(蓮宗)을 연구하고 정업에 전심하여 사경(四更. 오전1-3시)만 되면 일어나 부처님 명호를 부르니, 게으른 비구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법장의 48원을 본받아 승속을 모아 염정회(念淨會)를 만들어 30년 동안 주관하였다.

어느날 병이 들어 누워있다 꿈에 장육(丈六)의 금빛나는 몸을 보고, 대중을 모아 염불하다 홀연히 큰소리로 대중과 함께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손가락을 구부려 인(印)을 맺고는 앉아 죽었다.
다비하니 치아와 염주는 불타지 않았다.


• 지렴(智廉)

송(宋) 지렴은 상우(上虞) 화도사(化度寺)에 살았다. 처음에는 선문에 두루 참예하였으나, 늙어서는 한결같이 서방에 뜻을 두었다.

경원(慶元) 개원(改元)[1195] 8월에 대중에게 고별하고 “나는 꿈에서 아미타불이 대중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시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선인들은 정업에 전심하여 나의 국토에 와서 왕생하라’하셨다. 나는 이렇게 승상(勝相)을 보았다. 나는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하고, 다음과 같이 게(偈)를 쓰고 몸을 돌려 서방을 행한 채 결인(結印)하고 갔다.

기러기가 장공을 지나감이여
그림자가 한수(寒水)에 잠기도다
죽음도 태어남도 없음이여
연화국이로다

안과장공 雁過長空
영침한수 影沈寒水
무멸무생 無滅無生
연화국리 蓮花國裏


• 지심(智深)

송(宋) 지심은 호를 자천(慈川)이라 하고, 해월(海月)에게서 배웠다. 고향인 가화(嘉禾)로 돌아가 광명참회(光明懺會)를 열어 20년을 하루같이 시행하다, 늙어서는 염불에만 뜻을 두어 항상 정업으로 사람들을 교화하여 무수한 자를 왕생케 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병색을 보이었으나 객이 와서 문안을 여쭐 때도 평시와 같이 담론을 나누더니, 객이 문 밖을 나가자 마자 금방 천화(遷化)하였다. 사람들이 보니 붉은 구름이 서쪽을 향하여 사라졌다.


• 법인(法印 혹은 法因)

송(宋) 법인은 사명(四明) 광수사(廣壽寺)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일심으로 정토를 찾았다.
나중에 병이 들어 대중을 모아 관경(觀經)을 읽게 하고 사흘 동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더니, 문인에게 “나는 가야겠다.” 하고 말하였다.

어떤 이가 게(偈)를 남겨 줄 것을 간청했더니,

나와 미타 본래 둘 아니나
둘이니 둘 아니니 하는 것 모두 버렸네
나 이제 이렇게 미타를 친견하니
감응과 사귐 부사의하네

아여미타본무이 我與彌陀本無二
이여불이병개리 二與不二並皆離
아금여시견미타 我今如是見彌陀
감응도교난사의 感應道交難思議

하고 쓰고는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나의 마음으로 저 부처를 생각하면 중생과 부처가 완연하지만, 범부의 마음으로 부처의 마음을 보면 중생과 부처가 어찌 다르랴.

다르지 않으므로 두 가지를 여의었고, 완연하므로 두 가지가 아닌 것까지 여의었으며, 두 가지를 여의었으므로 다른 곳을 따라 찾지 않고, 두 가지가 아닌 것까지 여의었으므로 정토를 찾는 것도 상관없다.

  또한 두 가지를 여의었으므로 범정(凡情)이 다하였고, 두 가지가 아닌 것까지 여의었으므로 성해(聖解)마저 다 없어졌다.

이렇게 부처를 보는 자는 늘 사바요, 늘 정토며, 생각마다 석가가 출세하고 언제나 미륵이 하생할 것이니, 진정으로 미타를 친견한 자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더라도 만 리의 구름일 뿐이다.

*법인(法印, 신수대장경에는 法因으로 나옴)


• 지선(智仙)

송(宋) 지선은 호를 진교(眞敎)라고 하였다. 백련사(白蓮寺)에 살면서 13년 동안 도를 강의하며 서방을 향한 예념(禮念)을 잠시도 버린 적이 없었다.

어느날 저녁, 약간의 병색을 보이고는 관당(觀堂)의 대중을 청하여 미타경을 읽게 하다가, 송경이 끝나지도 않아서 앉아서 죽었다. 이웃 능인사(能仁寺)에 사는 스님들이 모두 그윽한 하늘 음악을 듣고서, 여명이 되어 스님이 돌아간 것을 알았다.


• 종리(宗利)

송(宋) 종리는 신성(新城) 벽소(碧沼)에 살면서 10년 동안 염불삼매를 닦았다. 나중에 도미산(道味山)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일상(一相)이라고 불렀다.

15년이 지나 어느날 제자에게 “내가 벽연화(碧蓮花)가 허공 속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하더니, 3일 후에 다시 “부처님이 오셨다.” 하고는, 이렇게 게(偈)를 쓰고 조용히 죽었다.

내 나이 구십, 머리는 눈이 내린 듯
세상에는 으례 백년객(百年客) 없네
일상도인(一相道人)이 돌아감이여
금대에 앉으니 건곤이 비좁네

오년구십두설백 吾年九十頭雪白
세상응무백년객 世相應無百年客
일상도인귀거래 一相道人歸去來
금대좌단건곤착 金帶坐斷乾坤窄


• 제옥(齊玉)

송(宋) 제옥은 호를 혜각(慧覺)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잡천(霅川) 보장사(寶藏寺)에서 정토회를 열어 주관하다, 나중에는 상축(上竺)에 살면서 한밤중에는 미타상을 머리에 이고 행도(行道)하면서 염불하였다.

하루는 수좌에게 “책상 앞에 다보탑이 나타났으나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바라는 것은 정토淨土일 뿐이다. 대중을 모우고 나를 위해 염불하라,” 하였다. 수좌가 종을 쳐서 스님들이 백여 명이 모이니 “내가 이미 부처님을 친견하였다.” 하고는,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 갔다.

찬(贊)
다보탑도 역시 불국토인데, 옥(玉)은 어찌하여 원치 않은 것일까?

옛날 위제희(韋提希)가 두루 정토를 살펴보고는 유독 안양만을 요구했던 것은, 대개 전심으로 공덕을 닦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줄을 안다면 서방만을 말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 원조 본(圓照本)선사

송(宋) 종본(宗本)은 상주(常州) 무석(無錫) 사람이다. 처음에는 천의 회(天衣懷) 선사를 참예하여 염불로 깨달음이 있었다.

나중에 정자(淨慈)로 옮겼다가, 조칙을 받들어 동경(東京) 혜림사(慧林寺)에 들어가, 연화전(延和殿)에서 임금을 대하여 밀지(密智-旨)를 설하였다.

평소에 몰래 정업을 닦아, 뇌봉재(雷峯才) 법사가 신통으로 정토를 여행하다, 연화 한 송이가 매우 수려한 것을 보고, 물으니 정자사(淨慈寺)의 본(本) 선사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복 희(慈福曦) 공이 혜림사에 와서 그의 발에 예하고 돈을 시주하고 갔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정 중에서 금련화(金蓮花)를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본(本) 공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또한 무수한 연꽃이 있었는데, 이는 태어날 자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또한 시든 것도 있었는데, 이는 퇴타(退墮)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어떤 이가 “스님께서는 직지(直指: 禪法)을 전해 받으셨으면서 어찌하여 연경(蓮境)을 사모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비록 종문에 있으나 정토도 겸수(兼修)할 뿐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중에 임종에 편안히 앉아 갔다. 시호는 원조 선사다.

찬(贊)
옛날 중봉(中峯)과 천여(天如)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禪과 정토淨土가 이치는 하나이나 공(功)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겸수한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대개 겸한다고 한 뜻이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두 배에 발을 걸친다는 의미의 겸한다는 뜻은 참으로 옳지 않다. 그러나 원통(圓通)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겸한다는 뜻은 어찌 옳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더욱이 선 밖에 정토가 없고보면, 국토가 바로 마음이어서 원래 두 가지 물건이 아니다. 어찌 다시 겸한다고 말할 것이 있겠는가.


• 대통 본(大通本) 선사

송(宋) 선본(善本)은 화엄을 시험받고 득도하였다. 조칙을 받들어 법운(法雲)에 살면서 대통이라는 호를 받았다.

나중에 항주 상오사(象塢寺)로 돌아가 정업을 닦다가, 정定 중에서 아미타불이 금색의 몸을 보이신 것을 보고, 어느날 아침 문인에게 “단지 3일 동안만 머물 것이다.” 하더니, 그 때가 되어 가부좌하고 앉아 염불하며 서쪽을 향하여 죽었다.


• 영지 조(靈芝照) 선사

송(宋) 원조(圓照)는 영지사(靈芝寺)에 살았다. 계율을 숭상하고 독실히 정업에 전념하여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관경(觀經)과 보현행원품을 읽게 하고는, 가부좌하고 죽었다. 서호(西湖)의 어부들이 모두 공중에서 음악소리를 들었다.


• 청조 율사(淸照律師)

송(宋) 혜형(慧亨)은 무림(武林) 연수사(延壽寺)에 살았다. 처음에는 영지(靈芝)를 의지하여 계율을 읽혔으나, 60년 동안 정업만을 전수(專修)하여 사람을 대할 때마다 반드시 염불을 권장하였다.

보각(寶閣)을 짓고 셋 성인의 상을 모셨는데 거룩하기 비할 데 없었다. 강 자임(江自任)이라는 자가 어느날 꿈에 보좌(寶座)가 허공에서 내려와 ‘형(亨) 율사가 이 자리에 앉을 것이다.’ 하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

그 때 마침 사우(社友)인 손(孫) 거사가 미리 형(亨)에게 고별하고 집에서 인(印)을 맺고 죽었는데, 스님이 가서 향을 사루고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손군도 갔으니 나도 가야겠다.” 하고는, 대중을 모아 염불하고 이렇게 게(偈)를 설하고 갔다.

입으로는 미타를 부르고
생각으로는 백호(白毫)를 생각하라
이렇게 하여 퇴타하지 않으면
반드시 안양에 왕생하리

미타구구칭 彌陀口口稱
백호염념상 白毫念念想
지차불퇴심 持此不退心
결정생안양 決定生安養

호를 청조 율사라고 하였다.

찬(贊)
60년 동안 정업을 닦았으니, 임종에 상서로운 감응을 어찌 의심하랴. 세상에는 잠깐의 공력으로 정토가 영험이 없다고 탓하는 자도 있다. 잘못된 노릇이다.


• 사민(思敏)

송(宋) 사민은 영지 율사를 의지하여 수계하는 법을 보충하였고, 20년 동안 전심으로 염불하던 이다. 나중에 병이 들어 대중에게 반 달 동안 관경(觀經)을 읽게 하더니, 3일이 지나서 화불(化佛)이 허공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임종에 큰소리로 염불하는 소리가 뇌성이 치듯 하였다. 혹서(酷暑)에 시체를 감실에 두었으나 7일 동안 변하지 않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 희담(晞湛)

송(宋) 희담은 산음(山陰) 사람이다. 젊어서는 유생이었으나 홀연히 세간을 싫어하여 출가하였다. 형(瑩) 스님과 완두(阮杜)에 무량수불전(無量壽佛殿)을 세우고 정업을 전수하여 앉아있을 적에도 서방을 등지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하여 항상 부처님과 두 보살의 모습을 친견하더니, 어느날 저녁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고 똑바로 앉아 인(印)을 맺고 죽었다.


• 등 법사(登法師)

수(隋) 등 법사는 병주(幷州) 흥국사(興國寺)에서 열반경을 강의할 때, 와서 설법을 듣는 자에게 널리 염불왕생을 권장하였다.

  개황(開皇) 12년[592], 죽을 때는 기이한 향기가 허공에 가득하였고, 장사지낼 때까지 광명과 향기로운 구름이 온 마을에 서리고 있었다.


• 승애(僧厓)

석승애는 익주 다보사(多寶寺)에 살았다. 간절히 정업에 전심하여 다섯 손가락을 태워 서방의 삼성(三聖)에게 공양하였다.

  누가 고통스럽지 않았는가 하고 물으니 “마음이 이미 고통스럽지 않았거든 손가락이 어찌 고통스러우랴.” 하고 대답하였다.

  임종에 하늘꽃이 비내리 듯 하였고 사람들이 보니 애(厓)의 납의와 석장이 5,6백의 스님들과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 장 법사(藏法師)

송(宋) 승장(僧藏)은 분주(汾州) 사람이다. 일생동안 스님들이나 세속인의 예배를 받은 적이 없이 정토에만 전수하였다.

죽을 때 하늘 음악이 차례로 와서 맞이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더니, 서방의 부처님이 오시자 대중과 고별하고 죽었다.


• 고산원(孤山圓) 법사

송(宋) 지원(智圓)은 서호(西湖) 고산에 살면서 수많은 경전들을 주석하였고, 정토에 전심하여 미타소(彌陀疏)와 서자초(西資鈔)를 지어 왕생을 권장하였다.

죽어 도기(陶器)에 묻었는데, 15년 후에 장마로 산이 무너져 도기를 열어보니, 몸이 엄연한 채 손톱과 머리카락이 그대로 자라고 있었다.

찬(贊)
죽은 후에도 전과 다름 없었다는 말만 하고, 임종에 왕생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죽은 후의 현상을 살펴보건대 그 영험은 닦은 대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바로 그 청정한 업이 견고함으로 해서 감응한 것이다. 반드시 왕생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원정(元淨)

송(宋) 원정은 항주 사람이다. 열두 살에 출가하였고 나중에는 용정사(龍井寺)에 살았는데, 당시의 지식인이었던 조청헌(趙淸獻) 공과 소문충(蘇文忠) 공과 같은 무리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죽을 때 방원암(方圓庵)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7일 동안만 아무 장애가 없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하더니, 7일 후에 게(偈)를 써서 대중에게 보이고는 편안히 앉아 죽었다.


• 유미타(喩彌陀)

송(宋) 사정(思淨)은 성이 유씨로서 전당 사람이다. 자호를 정토자(淨土子)라고 하였다. 젊어서는 영(瑛) 법사를 모시고 법화경을 강의하였으나, 나중에는 염불에 전념하고 여가가 있으면 불화를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고요한 방에서 조용히 생각하여 미타의 광명을 보고서야 붓을 놓았다. 소흥(紹興) 정사(丁巳)[1137]에 7일 동안 단정히 앉아 일심으로 염불하다 편안히 갔다.

찬(贊)
부처를 그리고 부처를 관하는 것이 잘 하기만 하면 자못 같을 수도 있다. 대개 그림은 능히 사람을 말의 배 속에 둘 수도 있거든, 어찌 사람을 불국에 두지 못하랴. 그렇다면 화공이 부처님을 그려 어찌 왕생하지 못하랴만

아! 그들에게 물어보라. 방은 반드시 고요하고 생각은 반드시 조용한가 하고. 더욱이 화공은 온갖 형상을 마음대로 그리지 않는가. 그러나 유(喩) 노인은 오직 한 부처님에만 전념하였다.

  전념하면 관하는 것이지 그리는 것이 아니다. 단청하는 자들은 이것을 핑계하지 말라.


• 몽윤(蒙潤)

석몽윤은 자(字)가 옥강(玉岡)으로, 고원(古源) 선사에게서 법을 받았다. 늙어서는 풍황령(風篁嶺)의 백련암(白蓮庵)에 살면서 문을 닫아 걸고 염불하였다.

임종에 화불(化佛)이 와서 맞이하고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 운옥(雲屋)

원(元) 선주(善住)는 자가 운옥으로 소주 사람이다. 문을 닫아 걸고 종일 염불하여 병이 들어도 변함없었다.

죽을 때에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저서로 안양전(安養傳)과 곡향집(谷響集)이 있다.


• 지관주(旨觀主)

원(元) 지관주는 자가 별종(別宗)으로 항주 사람이다. 계덕이 매우 엄정했고 용산(龍山)의 서쪽 산록에 관실(觀室)을 짓고 염불삼매를 수행하여, 비록 병난(兵亂)을 피해 도망하면서도 잠시도 버리지 않았다.

임종에 병 없이 목욕하고 단정히 앉아 죽었다. 지운 인(芝雲仁) 법사의 행업집(行業集)에 자세한 행적을 기록하였다.


• 담의(曇懿)

송(宋) 담의는 전당에서 의업(醫業)에 종사했던 이다. 만년에 염불삼매를 닦으며 평소에 모아놓았던 재산을 내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고, 불상을 조성하고 목욕소를 시설하였다.

이렇게 20년 동안 한 후, 나중에 병이 들었으나 일체 약을 멀리하고 일곱 분의 스님들을 모셔 염불을 간청하였다.

다음날 크기가 집채만한 연화를 보았고, 또 하루는 범승(梵僧)이 침대 곁에 다가와 안부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밤중에 대중들이 염불소리가 차츰 낮아지는 것을 듣고 가보니 편안히 죽어가고 있었다.


• 태미(太微)

송(宋) 태미는 어린아이 적에 전당의 법안(法安) 법사에게 출가하였다. 처음에 미타경을 주니 끝까지 외워버리는 것이었다. 구족계를 받고 나서는 문에 빗장을 지르고 염뷸에 전념하였다.

  이와같이 정진하여 늘 뒷산을 거닐다, 홀연히 젓대(대금大笒)소리를 듣고 활연히 깨달았다. 이로부터 젓대 하나를 들고 스스로 즐겼다.

  능 감부(凌監簿)라는 이가 있었는데, 함께 정업을 닦던 자였다. 그는 미(微)를 ‘정토향(淨土鄕)의 형님’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문을 두드리며 “정토향의 아우가 뵐까 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미(微)가 “내일 정토에서 만나세. 오늘은 염불하느라 한참 바쁘네.” 하였다.

  다음날 아침, 아침 공양에 참석치 않은 것을 이상히 여겨 가 보니, 젓대와 발우와 선상을 이미 불태워버리고 땅 위에 가부좌한 채 죽어있었다.

찬(贊)
젓대를 가지고 스스로 즐겼다 하니, 고인은 나름대로 젓대에 깨달음의 노래를 실어 불사를 지었던 것이다.

  구지(俱胝) 화상은 천룡(天龍) 화상에게서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 종신토록 손가락을 세워 보였으며, 단(端) 공은 사자놀이를 보고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하고는 늘 오색이 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능엄경을 잘못 읽고서는 구두점(句讀點)을 고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와 유사한 일이다. 함부로 미쳐 날뛰면서 방자를 떠는 자들은 이런 일을 핑계대지 말라.

* 일지두선(一指頭禪): 구지화상이 천룡선사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곳에서 깨닫고, 이후로 학자들이 참문(叅問)하면 언제나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는 고사.

* 단(端) 공: 정단(淨端)을 말함. 송(宋) 귀안(歸安) 사람. 용화 악(容華岳) 선사의 제자.


• 용흠(用欽)

송(宋) 용흠은 전당 칠보원(七寶院)에 살면서 대지(大智)를 의지하여 계율을 배웠다. 대지가 대중에게 ‘살아서 계행을 청정히 지키면 죽어서 안양에 돌아간다.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일을 이것으로 다 마칠 수 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정토를 결심하여 한결같이 물러가지 않으며, 하루에 염불 3만 번을 불렀다.

하루는 정定 중에서 정토를 여행하다, 부처님과 보살과 갖가지 기이한 모양들을 보고, 시자에게 “나는 내일 서방으로 간다.” 하고는, 대중을 모아 염불하고 여명에 합장한 채 서쪽을 바라보면서 가부좌하고 죽었다.


• 구법화(久法華)

송(宋) 가구(可久)는 명주(明州)에 살았다. 법화경을 읽으면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했으므로 당시에 흔히 구법화라고 불렀다. 원우(元祐) 8년[1093], 나이 81세에 앉아서 죽었다.

3일 후에 다시 깨어나 사람들에게 “내가 정토의 경계를 보니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연화대 위에마다 태어날 자의 이름을 표기해 두었는데, 한 금대(金臺)에는 성도부(城都府) 광교원(廣敎院) 훈(勳) 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 곳에는 명주(明州) 손 십이랑(孫十二郞)이 적혀 있었으며, 한 곳에는 가구(可久)의 이름이 있었다. 또한 한 은대(銀臺)에는 명주(明州) 서도고(徐道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고는, 다시 죽었다.

5년 후에 서도고가 죽었는데,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했으며, 12년 후에 손십이랑이 죽을 때는 하늘 음악이 허공에서 쟁쟁하여, 모두 구가 말한 것과 일치하였다.

찬(贊)
연화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는 말을 여기서 누차 보게 된다. 환상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환(幻)과 같은 마음으로 환과 같은 부처를 생각하고, 환과 같은 꽃에 환과 같은 이름을 표기하였으며, 내지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 것이 어떤 것인들 환이 아니랴만, 나는 우선 환생(幻生)이라는 생각을 접어두노니, 어찌 굳이 그 사실 여부를 논하랴.


• 조휘(祖輝)

원(元) 조휘는 사명군(四明郡)의 성불각(成佛閣)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면 다만 ‘나무아미타불! 말할래야 말할 수 없어!’ 할 뿐이었으므로, 사람들이 설부득(說不得: 말할 수 없다) 화상이라고 불렀다.

운현위(鄞縣尉)인 왕용향(王用享) 부부가 그를 공경하여 섬겼는데, 하루는 그의 집에 가서 “내가 내일 가야겠어.” 하고 고별하였다.

다음날 대중을 모우고 감실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참외를 달라하여 맛있게 다 먹고는 염불하며 죽었다.


• 초기(楚琦)

대명(大明) 초기는 촉군(蜀郡) 사람으로 독실히 서방을 믿었다.
연경(燕京)에 들어가 북소리를 듣고는 크게 깨달았다. 홍무(洪武)초에 경도(京都)에 가서 세 번이나 임금에게 법을 설하여 임금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나중에 서재(西齋)라는 집을 짓고 한결같이 정업을 닦다, 큰 연꽃이 온 세계에 가득한데, 미타가 그 가운데 계시고 많은 보살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죽는 날, 게(偈)를 써서 대중에게 보이고는 “나는 가야겠다.”고 하였다.

누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서방(西方)!” 하였다. 또 “서방에만 부처가 있고 동방에는 부처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큰 소리로 한 번 할(喝)하고, 편안히 갔다.


• 보주(寶珠)

대명(大明) 보주는 일찍이 항군(杭郡) 가화(嘉禾) 부근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한 벌 누더기 뿐이었고, 자는 곳도 일정한 거처가 없이 걸식하며 살았다.

평소 염불이 끊이지 않아, 누가 부르면 겨우 대답만 하고는 염불을 연이으면서 다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해문사(海門寺)에서 갑자기 반 달여나 미친병에 걸린 듯하며 지냈다. 어떤 스님이 “스님의 평소 실행대로라면 당연히 세인들의 안목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럴 수 있습니까?” 하고 나무라자, “그렇다면 나는 가야지!” 하고는, 목욕을 하고는 편안히 죽었다.


• 총론(總論)

무량수경에는 세 가지 부류의 왕생을 논하였다. 그 첫째는 집을 버리고 세속을 떠나 사문이 되어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전념하는 자라 하였다.

집을 버리고 세속을 떠났다는 것은 몸이 출가하였다는 의미요, 한결같이 전념한다는 것은 마음이 출가하였다는 뜻으로서, 몸과 마음이 모두 청정하다면 어찌 정토에 왕생하지 못하겠는가.

세상에 어떤 미친 중은 ‘정토에 왕생한다는 것은 재가의 이중(二衆)을 잘 접인하기 위해서다. 나는 사문이다. 내가 어찌 이런 짓을 달갑게 여기랴.’ 한다.

또 어떤 중은 ‘정토에 왕생한다는 것은 스님 중에서 둔한 근기를 접인하기 위해서다. 나는 교리에 밝고 나는 종문(宗門)에 밝다. 내가 어찌 이런 것을 달갑게 여기랴.’ 한다.

  아! 이들이 어찌 원조(遠祖: 혜원 법사) 이하의 모든 대화상들을 알 리가 있겠는가. 어떤 이는 경법(經法)에 능통하여 명성이 천하에 떨쳤고, 어떤 분은 조사의 법인(法印)을 잡고 도가 고금에 충만하였다.

저분들이 교리나 종문에 어두웠던 자였던가? 또한 정토 밖에 따로 종문이나 교리도 없고, 사문도 없음을 어찌 알 리가 있겠는가. 나는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미친 자들에게 말하노라.

• 이법륜각 보살의 염불과 왕생

慧蓮(혜련)
2020. 4. 16

이법륜각 보살의 염불과 왕생

보국사 태원큰스님 구술

이 법륜각 보살은 서울 정릉 보국사 신도이다. 1923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면서 정릉의 보국사에 다녔다. 법륜각 보살은 처음에는 참선에 관심을 가지고 참선수행을 하였는데, 인천 용화사의 송담큰스님을 친견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간화선을 수행하였다 한다.

그렇게 참선에 몰두하였으나 간화선이 최상승인지라 자신의 근기에 맞지 않다고 여기고 있던 차, 1960년경 보국사에서 대동염불회를 조직하여 정토염불법을 크게 펼치신 자운(慈雲, 1911~1992)큰스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정토염불을 알게 되었다.

자운노스님께서는 3.1운동 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인이었던 용성(龍城)큰스님의 전법제자로, 1981년부터 전계대화상을 역임하셨으며, 해인사에 계실 때 수산(秀山)스님과 함께 만일염불회를 결사하시어 정토왕생업을 닦으셨고 또 보국사에 오셔서는 대동염불회를 조직하시어 정토염불을 널리 펼치신 분이시다.

1992년 스님께서 해인사에서 열반하실 때에는 “서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단정히 앉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명하면서 조용히 입적하시니 향기가 진동하고 묘음이 청아하였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광명이 서쪽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법륜각 보살은 보국사에서 이러한 자운스님으로부터 정토법문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수행하던 참선을 내려놓고 서방정토에 귀의하여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하였다. 이로부터 30여 년간을 한결같이 하루에 10만독 씩 염불하셨다고 한다. 10만독이라면 하루종일 염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하루는 보국사 주지이신 태원스님께서 법륜각보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법륜각 보살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주를 돌리고 있었다. 스님께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불하면 염불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물었다.

법륜각 보살은 웃으면서 “그래도 염불이 됩니다.”고 대답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의아스러웠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불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륜각 보살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걸림없이 염불이 돌아가는 경지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보국사의 대동염불회는 만일염불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단한 신심과 원력으로 염불결사를 한 모임으로, 대표는 회서 홍인표거사가 맡고 있었다. 홍인표거사는 임종 후 사리가 나올 정도로 철저히 수행하셨다 한다. 그리고 그가 지은 는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 정토에 대해 가장 최초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을 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법륜각 보살은 바로 이러한 대동염불회의 수행분위기 속에서 염불수행에 매진하였던 것이다. 재가자들이 모여 이렇게 염불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물론 자운노스님의 원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운스님께 비구계를 받으시고 스님과 함께 해인사에서 염불만일회를 결사한 수산스님께서도 대구에서 염불선원을 세우시어 수많은 재가 염불행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수산스님께 염불법을 배우신 법장(法藏)스님께서도 경주 미타사에서 1985년 염불만일연회를 결사하시어 20년 넘게 염불수행과 포교를 해 오시는데, 여기에는 자운스님의 크신 원력이 밑받침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륜각 보살은 평소 심장이 안 좋았는데, 왕생 수개월 전에는 병환이 심해져 몇 차례 병원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 정도 입원하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즈음에 법륜각 보살과 아시는 분이 보살님을 도와드리며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법륜각 보살이 병원에 입원할 때도 늘 함께 따라가서 간병해 주곤 하였다.

법륜각 보살은 간병도우미인 그분에게 불교를 가르쳐주어 불법에 귀의하게 하고 보국사에도 함께 가곤 하였다. 1998년 어느 날, 법륜각 보살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였다. 이때도 간병인이 함께 가서 간병을 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병환과 노환이 심해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임종할 때가 다 된 것이었다.

법륜각 보살은 침대에 누워서 임종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부처님이 오신다!”, “부처님이 오신다!”하고 두 번이나 외치고는 몸소 침대에서 내려와 서쪽을 향하여 세 번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돌아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간병인이 분명히 목격한 사실이다.

간병인은 나중에 태원스님께 이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태원스님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예전에 법륜각 보살이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염불이 된다는 말을 비로소 의심없이 믿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 지극한 정성으로 염불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웬만한 수행력을 지닌 고승이라 해도 임종에 이르러서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상황이기에 앉아있기도 불가능한 처지인데, 법륜각 보살은 임종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삼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에 지극정성으로 염불한 공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러한 염불공덕으로 임종 직전에 아미타부처님의 내영(來迎)을 받고 가피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 청화 스님 영가법문(靈駕法門)

1. 오늘 이 법회에 참여하신 우리 불자님들은 지극한 불심으로 특히 금륜회를 위하여 지성으로 동조하는 훌륭한 법우들이시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금륜(金輪)이란 자체가 법륜(法輪)입니다.

금륜도 쇠 금(金)자, 바퀴 륜(輪)자입니다만, 법륜도 법(法)자, 바퀴 륜(輪)자 법륜(法輪)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대법(大法)이란 뜻입니다.

부처님 법은 바로 우주의 법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대법칙(大法則)이라는 뜻이 금륜 법륜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법회도 보통 법회가 아니라 특이한 영가천도법회(靈駕薦度法會)입니다.

영가천도에 관하여 다소 이해가 부족한 분들도 우리 불자님 가운데에는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그러한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분들 가운데는 불교라 하는 것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라, 계(戒)를 충실히 지키고, 참선염불(參禪念佛)하여서 마음을 통일하고, 지혜(智慧)를 닦아서 성불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필요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가(靈駕)를 천도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더러는 계십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바로 생명의 실재(實在)인 것입니다.

마음의 실재에 관하여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유사有史이래로 두 가지의 사상적(思想的)인 흐름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이 물질뿐이다라고 하는 유물론(唯物論)이고, 그 둘째는 물질이라는 것도 사람이 이것을 물질이라고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이므로 우리 마음이 먼저 존재하지 않은가?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유추(類推)함으로 인因하여 있는 것이며 유추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보는 유심론(唯心論)이 그것입니다.

유물론(物論)과 유심론(心論)은 유사 이래로 우리 인간세상에서 두 갈래로 유포(流布)된 사상의 큰 흐름입니다.

유물(唯物)인가 유심(唯心)인가 이것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분요(紛擾)도 많이 일으키고 투쟁도 많이 하고 전쟁도 많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유심(唯心)도 반틈 유물(唯物)도 반틈, 마음도 반틈 몸도 반틈, 이렇게 절충적으로 생각하는 사상도 나왔던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이라고 하는 유물론적인 견해에서 생각한다면 영가천도(靈駕薦度)는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의 사상이나 기독교의 예수님 사상이나, 또는 유가(儒家)나 도가(道家)나 어떠한 가르침이건 간에 적어도 종교라 하면 모두가 다 유심(唯心)쪽에 속하여 있으며 마음이 가장 주장된 우주의 실상이라고 하는 그런 쪽에다 사상의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가천도가 필요 없다는 분들은 결국은 마음이 없다는 사상과 거의 일치하는 사상입니다.

우리가 금생(今生)에 살 때에는 마음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몸은 단지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는 도구(道具)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몸은 한 번 죽어지면 응당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화장(火葬)을 하면 그냥 재가 되고 파묻으면 썩어지고 분해해서 풍화작용(風化作用)되어 그렇게 흩어지고 마는 것인데, 이때에 우리 마음이 정말로 없어지는 것인가?

정말로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누구도 자기가 죽은 다음에는 자기의 마음이 모두 없어진다고 생각하려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꼭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살아 있을 것이 아닌가?

부처님 가르침의 여러 가지 대요(大要) 가운데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부정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삼세인과(三世因果)라, 과거전생 (過去前生)에도 살았고, 금생(今生)에도 살고 내세(來世)에도 살 것이라는 것과 또한 과거 전생에서 더 올라가서 전전생 (前前生) 또 전전생생(前前生生)이라, 과거에 소급하여 올라가서 끝도 갓도 없는, 처음이 없는 그런 영겁(永劫)의 과거로부터 불교의 말씀으로 해서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우리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 생명이 한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미래도 미래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지 않으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못됩니다.

그러기 우리 인간의 심리만을 본다고 하더라도 금생만이 아니라 분명히 과거 전생에도있었을 것이고, 또한 미래생(未來生)에도 있을 것임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영가(靈駕)라 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영가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인간존재가 죽어서 몸뚱이는 버리고 간다고 하더라도 심령자체(心靈自體), 즉 우리의 의식자체(意識自體)는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 긍정하고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믿지 않으려는 분들도, 이런 점에 대하여 생각을 좀 다시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주의 할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그런 영혼들만 너무 치중하여서 현실의 생활을 무시하여 버리는 이들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도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 못되어 버립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실도 중요하고 내생도 중요하고 영혼도 중요한 것이고 모든 점에 있어서 중도(中道)의 인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현상적인 현실생활도 역시 바르게 수행하여 닦아 나아가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도 역시 헤매이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헤매이는 이들을 모두 정화(淨化)를 시켜서 참다운 우리 인생과 모든 존재의 근본 고향인 극락세계(極樂世界)로 인도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동시에 우주만유(宇宙萬有)의 큰 법칙(法則)인 것입니다.

오늘은 인연(因緣) 따라서 모이신 우리 불자님들이 모두 합심동체合(心同體)가 되셔서 영가천도를 모시는 아주 의의 깊은 법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부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마시고, 또한 주최하시는 분들도 너무 지나치게 영가에 다가 관심을 두시지 마시고 현실과 영가의 양편에 치우침이 없는 중정(中正) 중도(中道)적 입장에서 오늘 천도를 마치도록 그렇게 하십시다.

영가나 우리 인간이나 똑같이 갈 곳은 한 곳입니다. 극락세계라고 하는 해탈(解脫)된 그런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경계(境界)에 간다는 것은 영가도 그렇고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금생에 성불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와 똑같이 영가들도 몸뚱이를 버렸다고는 하더라도 몸뚱이에 대한 애착은 못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 천도받는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세요.

비록 인연因緣이 다하여서 몸은 떠났다고 하더라도 영혼靈魂은, 범부의 영혼들은 아직은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의 전문적인 용어로 해서 땅 지(地)자, 묶을 박(縛)자, 지박(地縛)의 영(靈)이라 합니다.

땅 지(地)자, 땅이라는 뜻은 불교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하나의 질료(質料)인 물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질에 얽매여 있는, 물질에 구속되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영혼이 지박(地縛)의 영(靈)입니다.

성자(聖者)의 영혼이 미처 못 될 때에는 모두가 다 지박(地縛)의 영(靈)입니다.

우리 사람도 몸뚱이라는 물질에 지금 얽매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한 의식 자체가 다 물질 생활에 얽매어 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역시 똑같은 지박(地縛)의 영(靈)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영가들도 지금 대체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닦아서 수승(秀勝)하시어 홀홀히 극락세계로 가신 영혼들, 또는 극락세계에는 미처 못 가셨다고 하더라도 천상(天上)에 머무는 영혼들, 이런 영혼들 이외는 모두가 다 물질에 묶여(땅 기운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도 실은 물질입니다.

공간도 산소酸素), 수소(水素), 탄소(炭素), 질소(窒素), 이런 각 원소가 차 있는 이런 공간도 사실은 물질입니다.

공간도 저 위로 올라가서 성층권(成層圈), 저기권(低氣圈), 자기권(磁氣圈) 위로 올라가서 공기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는 바로 천상(天上)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땅 기운에 묶여 있는, 물질에 묶여있는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몸뚱이라는 것은 잠시간 우리가 과거에 지은 바 우리의 행위(業)에 따라서, 과거에 어떻게 생각을 하였던가, 어떻게 말을 하였던가, 어떻게 행위를 하였던가, 그런 삼업(三業, 신身, 구口, 의意)이 때가 되어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無明) 만듭니다.


4. 본래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내 마음 네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주의 근본성품입니다.

오늘 불자님들이시여, 영가님들이시여!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몸에 갇혀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주의 근본, 순수한 성품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란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모양이 없고 어느 한계도 없습니다.

마음이 물질같으면 여기가 있고 저기가 있고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마음은 물질이 아닌지라 그 마음이 내 몸뚱이에만 있고 다른 몸뚱이에는 없고 이런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공간에도 마음은 역시 그대로 충만하여 있습니다.

어느 세상에나 어느 처소에나 마음이라는 것은 충만하여 있는 것인데, 마음의 본성품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불생불멸(不生不滅)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부증불감不增不減).

그러한 마음이 과거전생의 업業에 따라서 이와 같은 몸뚱이가 생기면 그 마음이 본래 마음을 훤히 잘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이 몸뚱이 이것이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짜 '나'를 떠나서 '참다운 나'(眞我)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어쩌다가 전생에 지은 자기 업을 따라서 이렇게 몸을 받으면 '몸뚱이 이것이 나다' 그럽니다.

우리 번뇌煩惱의 시초는 거기에서 옵니다.

남을 좋아도 하고 물질에 욕망을 내는 이런 것이 모두가 다 이 몸뚱이를 보고 '나다' 하는 이런 관념이 생겨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의 눈 바로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사실은 몸뚱이는 과거 전생의 업장 따라서 금생에 산소나 수소나 탄소 등 원소들이 모여서 이렇게 세포를 구성한 것뿐이지 참다운 '나'(眞我)가 못됩니다.

참다운 "나"는 우리 마음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여기가 있고 저기가 있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잘 못 보아서 내 마음은 내 몸뚱이 속에 갇혀 있다 그대 마음은 그대 몸뚱이하고 똑같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본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옆 사람 마음이나 자기 마음이나 또 하나의 풀포기 마음이나 또는 다른 동물의 마음이나 모두 다 같은 물질이 아닌 하나의 우주의 순수한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영가들이시여!

우리가 불행한 것은 이유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지와 무명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불행하고 사회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가정이 불화스러운 것도 모두가 다 그 때문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지금 헤매이고 있는, 물질에 묶여 있는 지박(地縛)의 영(靈)인 당신들이 가야할 곳은 그 물질적인 구속을 다 풀어버리고 한도 끝도 없는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극락세계로 가시는 것입니다.

극락정토는 우리가 안가고 버틸 수가 없습니다.

무명심(無明心)을 떠나지 못해서 사람들은 금생에 쓰고 있는 이 몸뚱이를 보고 자기라고 하는 것이고, 영혼들은 과거의 자기 몸뚱이, 지금은 어디엔가 묻혀 있거나 혹은 화장(火葬)하여 재가 되어 버렸는데도 그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것을 내 몸뚱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실존적(實存的)으로는 절대로 있지가 않습니다.

영가들이시여 깊이 생각하세요.

인연 따라서 잠시간 각 원소를 긁어모아서 이루어진 세포들로 해서 이 몸이 되었습니다.

범부(凡夫)중생은 이 몸뚱이보고 자기라고 하고, 또는 망상하는 자기의 마음을 보고 자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중생심(衆生心)은 마음의 근본성품이 못됩니다.

우리 중생심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보고 이것이 내 몸이다, 자기 아내 몸뚱이보고 이것이 아내다, 아내는 내 소유다, 남편도 내 소유다, 이런 관념들을 갖지만 이런 관념들이 모두가 다 중생심인 것입니다.

중생의 관념을 못 버리면 인생고해(人生苦海)를 떠나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인 대요(大要)라, 모두가 다 인생고(人生苦)를 떠나서 참다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인생고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무명심 때문에 자기 몸뚱이를 참다운 '나'라고 잘못 알고 일체물질도 사실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영가들이시여, 불자님들이시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반야의 용선(龍船), 반야의 배를 못 타면은 해탈(解脫)의 경계에는 못가는 것입니다.

영가천도하는 법문은 모두가 다 반야바라밀, 반야의 지혜로 해서 더 이상 헤매이지 말고 극락세계로 가라는 것입니다.

인생고해(人生苦海)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야용선, 반야바라밀의 배를 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야바라밀은 무엇인가?

반야바라밀은 앞에서도 말씀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이 우리의 주인공이고, 또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그 근본성품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라, 그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성(空間性)이 없으며,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성(時間性)도 없습니다.

우주에 끝도 갓도 없이 무량무변(無量無邊)하게 가득 찬 생명자체 이것이 바로 마음인 동시에 바로 부처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그 자리가 바로 우리의 참다운 생명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 자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형상에 가리어서 무거운 죄를 범하게 되면 지옥도 가는 것이고, 욕심이 많으면 아귀도 되는 것이고 어리석고 무명에 가리어서 치매(痴昧)하면 그때는 개나, 소나 돼지도 되는 것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 투쟁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아수라(阿修羅)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십시다.

그 생명의 본체인 마음은 내 마음, 네 마음의 둘이 아닙니다.

우주대어의(宇宙大於意)라.

우주가 오직 하나의 마음(意識)인데 그 마음 위에서 인연 따라서, 바다 위에 일어나는 거품모양으로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산이 있고 물이 있고 하는 것입니다.

꼭 이렇게 생각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주는 다 하나의 생명인데, 부처님의 성품이라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인데, 그 자리에서 인연법(因緣法) 따라서 이렇게 바꾸어지고 저렇게 바꾸어지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근본자리는 다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 자리(곳)를 아는 것, 이것이 대승법문(大乘法門)입니다.

소승법문 때문에, 쫍짱한 그런 소승법문이나 세간적인 법문 때문에 우리가 죄를 얼마나 짓고, 죄를 지음으로 해서 얼마나 득 없게 생각합니까?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운 진리, 석가가 말하고 예수가 말하고 공자가 말한 바, 참다운 진리에서는 천지우주(天地宇宙)가 오직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생각할 때에는 자기의 행동도 모두가 다 거기에 따라서 남과 하고 화해하고, 남의 마음에 불을 안 놓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인데, 만일 거기에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이 없다면 그때그때 자기의 충동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깊이 생각하십시오.

극락(淨土)세계라 하는 것은 모든 존재가 마음뿐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때그때 물질에 가리어서 물질에 구속되어서 잘 못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잘못된 생각만 벗어나면 그때는 모두가 바로 부처입니다.

이렇게 되면 극락세계가 저 십만억국토(十萬億國土)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서 있는 시중(市中)에나, 학교에나, 직장에나, 또는 가정에 있으나 항시 극락세계는 바로 우리 눈앞에(現前)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것은 좀 어려우시더라도 대승적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마음뿐이다고 하는 것은 마음은 이것은 바로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광명(光明)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닌 하나의 청정한 빛입니다.

빛도 태양광선 같은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그런 광명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생명자체(生命自體)의 빛이 바로 마음인 동시에 부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내 몸뚱이나 무엇이나 모두가 다 근본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안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心外無法)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의 핵심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두가 다 마음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도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이라는 것은 우리 몸뚱이의 일부인 뇌(腦)의 활동에 불과하다는 유물론적(唯物論)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이때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숙청(肅淸)하고 탄압(彈壓)하고 이렇게 한 것이 소비에트Soviet 사회의 형태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기본적인 철학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6.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석가, 노자, 공자, 예수 그분들의 가르침은 다 하나의 진리인데 그의 핵심은 천지우주(天地宇宙)가 오직 순수생명(純粹生命)인 마음뿐이란 말입니다.

부처Buddha뿐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분산되어 있지마는 모두가 마음에서 된 것(唯心造)이기 때문에 사람 모양을 하거나, 산 같은 모양을 하거나, 어느 모양을 하거나 간에 이들을 근본바탕에서 본다고 할 때에는 사실은 다 똑같이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모두가 다 마음으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대승적(大乘)인 생각인 것이고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무명심(無明心)을 떠나서 참다운 반야(般若)의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외우시는 반야심경도 내내야 다 그 뜻입니다.

극락에 가는 것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모두가 다 마음을 깨닫고, 깨닫지 못한데 차이가 있는 것이지 마음이란 본래 자리에는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마음은 생명의 빛입니다.

그런 빛으로 내 몸이 되어 있어서 우리가 깨달아서 자기의 몸을 본다고 생각하면은 자기 몸은 부처님 몸같이 환하게 빛나는 것이고, 또한 나쁜 사람의 몸이라도 다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주인공임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은 재산을 많이만 모으면 된다, 감투만 높으면 된다, 이 몸을 잘 치장하여 빛나게 만들면 된다, 이런 모양에만 치우쳐서 겉모양을 가꾸느라 헛된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모양으로 드러난 것은 어차피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뚱이를 아무리 아껴 봐도 없어지고 말듯이 금이나 은이나 그런 것도, 다 물질이라 하는 것은 없어지고 맙니다.

인생 본래 고향이 마음이기 때문에 극락세계(淸淨無量光)가 바로 고향입니다.

우리가 극락세계를 떠나있어서 그때 그때 잘 못 보고서 지옥도 가고 축생(畜生)도 되고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향이기 때문에 다시 본래의 마음자리로, 다시 부처자리로 돌아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돌아가지 못하니까 항시 불만스럽고 불안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늘 불안스럽지 않습니까?

모두가 불확실하고, 우리가 꼭 믿을만한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남편을 믿고 아내를 믿고, 스승을 믿고 다 믿어야 하겠습니다마는 더러는 또 배신을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나 상대相對적으로만 믿음이 있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변화무쌍하여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합니다.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영가들이 과거전생에 살았던 사람의 세상에서 잘 살았건 못 살았건 그런 것은 모두가 다 꿈에 불과합니다.

어디에도 그 흔적도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그러한 자기의 권속(眷屬)도 모두가 어쩌다가 인연因緣이 좀 같아서 한세상에서 만난 것이지 또다시 어디 가서 만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나 천상존재나 지옥존재나 아귀나 축생이나 모두가 할 일은 무엇인가하면 부처님의 법을 믿고서, 성자의 가르침 믿고서 허망虛妄한 것은 허망하다고 보고, 꿈을 꿈이라고 보고서 우리 고향 살이 극락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동참하신 우리 법우 불자님 여러분들이시여!

지금은 우리가 각성 할 때입니다.

세간世間적인 그렁저렁한 가르침으로 우리 인생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만일 각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개인적인 불안과 온갖 번뇌의 속박으로 평생 동안 고생해야 합니다.

또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眞理에 비추어서 아버지 도리, 어머니 도리, 자식 도리를 다 해야지 그렇지 않고서 세간적인 애착으로만 산다고 할 때에는 끊임없이 불안스럽고 부자지간, 모자지간, 모녀지간,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몸뚱이는(色) 허무한 것입니다.

자기 집도, 자기 아파트나 단독주택이나 모두가 다 허상虛像인 것입니다.

어차피 나그네 길인데 어디서 머물다가 어차피 곧 가고 마는 것, 우리가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자의 길 따라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집착하지 않고 보는 바른 견해(眞正見解) 정견(正見), 이것이 인생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이러한 바른 견해(眞正見解)가 앞에 말씀드린 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입니다.

바로 보는(正見) 등불이 없으면 어두컴컴한 사바세계에서 바로 비춰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체존재(一切存在)가 사실은 바른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것은 즉 '물질은 허망한 것'이고 '마음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생명자체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자현미경으로 대상을 본다고 생각할 때에 자금에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금이나 은이나 다이아몬드나 우리 몸뚱이나 이런 것들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인간의 존재에 맞추어진 인간의 업장業障의 안목에서 비추어 보니까 사람으로 보이고, 예쁘게 보이고 밉게 보이는 것이지, 정말로 더 깊은 눈으로 더 밝은 부처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우리 인간이 반드시 예쁘고 밉고 그렇게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자가 보는 눈만이 정답게(正見) 바로 보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가상만 보는 것입니다.

망상(妄相)만 보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극락세계가 우리의 고향입니다.

만생(萬生)을 윤회(輪廻)하다가라도 어차피 극락세계에는 꼭 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윤회하고 갈 것이 아니라, 금생에 가까스로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으니 이 귀중한 가르침을 붙들고서 다른 쪽에 한 눈 팔지 마시고서 정진수행(精進修行)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기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보살


(이 글은 청화(淸華, 1923~2003) 큰스님 법문입니다.)




♧ 인광대사, 인과응보의 사실을 밝힘

​[印光大師嘉言錄] 중에서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불경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소.


보살은 나쁜 원인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좌악과 업장이 사라지고 공덕이 원만히

쌓여 가서 끝내 부처가 되고야 만다오.


그런데 중생은 늘 나쁜 원인만 지으면서

나쁜 과보를 피하려고 하니,

이는 비유하자면 햇빛 아래 서서

그림자 생기질 않길 바라는 것과 같아서

정신없이 헛수고만 하는 격이오.


흔히 뭘 모르는 어리석은 이는

조그만 착한 일을 해놓고는 큰 복을 바라기 일쑤요.


그러다가 한 번 역경이라도 만나면 곧장

’착한 일을 하는데도 재앙을 당하니

인과법칙이란 말짱 빈말이다.‘라고 불평하오.


그로부터 처음 품었던 마음을 후회하고 꽁무니 빼며 도리어 불법(佛法)을 비방하기도 하는구려.


그들이 어찌 인과응보가 삼세에 걸쳐 나타나고

그를 돌려 뒤바꾸는 것이

마음이라는 오묘한 이치를 알겠소?


인과응보가 어떻게 삼세三世에 걸쳐 나타나는 줄 아오?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로 인하여

금생에 화복(禍福)을 받는 것이 현보(現報)이고,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로 인하여

내생에 화복을 받는 것이 생보(生報)라오.


그리고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를

미래의 제3 생이나 제4 생 또 백천만 생 뒤에야

비로소 받는 경우는 후보(後報)라고 하오.


후보는 결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지만

자기가 지은 업보를 받지 않는 법은 결코 없소.


예컨대 선비가 과거시험 공부를 하여

몇 년 만에 급제하고 평생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현보라 하겠소.


그러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학문을 중시하여

자손대에 이르러 크게 운이 트이는 것은

보통 사람 눈으로는 알아보기 어렵고

천안으로나 알 수 있는 생보로 비유되겠소.


금생과 내생은 모두 본인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나 생을 뛰어넘는 윤회의 사실은

비유로 구체화하기 어려워 짐짓 조부모와

자손 사이의 세대 물림의 방편을 편의상 든 것이니

글자에 얽매여 뜻을 해치는 일이 없길 바라오.


그러나 무량아승지겁에 걸친 인과因果는 오직

오안(肉眼, 天眼, 慧眼, 法眼, 佛眼)을 두루 갖춘

부처님만이 훤히 내다보실 수 있소.


이러한 삼세 인과응보의 이치를 안다면

착한 일에 복이 내리고 나쁜 일에 재앙이 내린다는

성인의 말씀은 본디 조금도 틀릴 게 없소.


부귀, 빈천, 장수, 요절, 통달, 궁핍 등의 천명은

일찍이 한쪽으로 치우친 적이 전혀 없는 게요.


바깥 경계의 연분緣分이 닥쳐옴은

마치 거울에 사물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같소.


지혜로운 사람은 단지 거울 밖에 선

자신의 얼굴만을 단정히 가다듬는데

어리석은 자는 오직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오.


역경이 들이닥칠 때 순순히 받아들여

적응하는 것이 바로 낙천(樂天)이며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바로 세울 수 있소.


그러면 인과응보를 마음으로 돌려

뒤바꾼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소?


예컨대, 어떤 사람이 죄악을 지어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할 운명인데

나중에 크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죄를 참회하고

큰 보리심(菩提心. 求道心)을 내어 개과천선하며

독경讀經과 염불念佛 수행에 정진하면서 남들을 교화시켜

함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현생에 우선 당장 남들로부터

비웃음이나 손가락질 당하기도 하고

더러는 뜻밖의 질병을 얻기도 하며

또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등

갖가지 안 좋은 일들이 생기게 되오.


그러한 재난과 시련으로 말미암아

먼저 지었던 죄악으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받아야 할 고통이 액땜 되어 사라지고

나아가 평범한 생사윤회를 벗어나

성현의 경지에 들 수 있는 게요.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시와 천대를 받는다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악으로

마땅히 삼악도에 떨어져야 할 업보가

금생에 남들의 경시와 천대로 말미암아 곧 사라지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를

마음으로 돌려 뒤바꾼다는 뜻이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오.

첫째는 은혜를 갚는(報恩) 인연이고

둘째는 원한을 갚는(報怨) 인연이며

셋째는 빚을 갚는(償債) 인연이고

넷째는 빚을 되찾는(討債) 인연이오.


은혜를 갚는 인연이란,

부모와 자식에게 전생에 큰 은혜가 있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금생에 자식으로 태어나

생전에 부모가 기뻐하도록 극진히 봉양하고

사후에는 귀신이 흠향하도록

장례와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것이오.


나아가 국가사회에 이바지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끼쳐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천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흠모하면서

그 부모까지 존경하도록 훌륭한 도덕을 닦기도 하오.


원한을 갚는 인연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전생에 원한을 사서

그걸 갚기 위해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오.


작게는 부모 마음을 거스르고

크게는 화가 부모에게 미치게 하며

살아생전에는 맛있고 따뜻한 봉양을 올리지 않고

죽은 뒤에는 황천에서도 모욕을 당하게 하오.


더 심한 경우에는 권세나 요직에 앉은 신분으로

부정부패와 불궤(不軌)의 죄악을 저질러

가문과 친족을 파멸시키고 조상 무덤까지 파헤치며

천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욕하면서

그 부모까지 침 뱉게 만드는데,

왕망(王莽), 조조(曹操), 동탁(董卓), 진괴(秦檜) 등의

간신 역적이 그 대표적인 예라오.


빚을 갚는 인연이란,

자식이 전생에 부모에게 진

재산상의 빚을 갚으려고 태어난 경우요.


진 빚이 많으면

평생토록 뼈 빠지게 일해 받들어 모시지만.

빚이 적으면

잘 봉양하다가 더러 중간에 그만두기도 하오,


예컨대 힘들게 공부하여

부귀공명을 조금 얻는가 싶더니 그만 요절한다든지

사업이 잘되어 재산 좀 모으다가 죽는 수도 있소,


빚을 되찾는 인연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전생에 재산상의 빚을 진 까닭에

그 빚을 받으려고 태어난 경우요.


빚이 적으면

학비 들여 가르치고 혼수 장만하여 결혼시켜

이제 자립하고 사회활동 할 만하니

그만 수명이 다해 버리기도 하고

빚이 많으면

집안 재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기까지 한다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운 재난이 당하면

곧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기 일쑤요.


전생에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죄업을 참회하는 마음을 내는 이는

참으로 드물기 짝이 없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줄을 알아야 하오.


가라지를 심고 밀을 거두고자 하고

피를 씨 뿌리고 벼를 거둘 생각은 말아야 하오.


금생에 죄악을 지으면서도 복을 누리는 자들은

전생에 심어 놓은 착한 씨가 많기 때문인데

죄악을 짖지 않는다면 그 복이 더욱 커질 것이오.


예컨대 갑부 집안의 자식들이

술과 여자, 노름에 빠져 흥청망청하면서

돈을 흙 뿌리듯 내버리면서도

금방 굶고 얼어 죽지 않는 것은

모아 놓은 재산이 많기 때문이오.


만약 매일같이 이렇게 낭비한다면

설령 백만장자라도 몇 년이 채 안 되어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알거지가 될 것이오.


금생에 착한 일을 하면서도 재난을 당하는 이들은

전생에 지은 죄악의 업장이 너무 두텁기 때문인데,

만약 이들이 착한 일을 안 한다면

그 재앙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오,


예컨대 중대한 악을 범한 죄인이

처형되기 전에 조그만 공을 세운다면

그 공이 그리 크지 않아

사형을 완전히 사면할 수는 없을지라도

틀림없이 감형해 줄 것이오.


그리고 매일같이 공을 세워 점차 커지면

죄를 모두 사면받아 석방되고, 더 나아가

관직에 임명되어 부귀까지 누릴 수 있지 않겠소?


단지 눈앞의 길흉만 쳐다보고서

선을 행해도 재난을 당하니 선은 행할 게 못 되고,

악을 지어도 복을 받으니

악을 금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면

이는 정말로 어리석고 위험스러운 생각이오.


선악의 과보는 하루아침 저녁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 유래와 과정이 점차 진행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오.


예컨대 석 자(三尺)나 되는 두꺼운 얼음이

어찌 하루 저녁 추위에 얼어붙겠소?


그 얼음이 어찌 한나절 햇볕에 금방 녹아 버리겠소?

절대로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들을 탓해서는 안 되오.

더구나 우유부단하게 머뭇거리면서 후회하거나

뒤로 물러나서는 결코 안 되오.


마땅히 유정의 선생의 수신(修身)이나

원료범 선생의 운명개척을 본받아야 할 줄 아오.


무릇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등용되는 것은

모두 그 조상들이 커다란 음덕을 쌓았기 때문이오.


만약 음덕이 없다면 이는 사람의 힘으로

(권력 배경 뇌물 청탁 등) 이루어진 것이니

반드시 나중에 큰 재앙이 뒤따르게 되오.

차라리 애당초 급제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소.


고금의 역사를 통해 살피건대,

위대한 성현의 태어남은

모두 그 조상의 음덕으로 비롯되오.

고관대작이나 갑부도 마찬가지요,


자손들은 부귀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

복을 누리고 죄업을 지을 줄만 알지,

조상들이 힘들여 쌓은 공덕은 잊어버리기 일쑤라오.


그러다가 조상의 공덕도 잃고 가산도 탕진한 뒤

금방 가난하고 비천해지니, 이것이 세상의

모든 부귀한 자들이 공통으로 저지르는 폐단이오.


장주(長州)의 팽(彭)씨 집안은

청초(淸初) 이래 과거급제로 천하에 으뜸이었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불법을 받들어 행하면서

비록 장원한 제상일지라도 매일같이

태상감응편과 음즐문을 독송하였소.


정성스러운 뜻과 정직한 마음으로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에게 덕택을 베푼 귀감이 바로 여기에 있었소.


멋모르고 미쳐 날뛰는 자들은 이러한 책들이 그저

세속의 범부나 아낙 사이에 읽히는 글로 여기는데,

이는 성현이 왜 성현이 되었고

사람이 어떻게 사람 노릇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소.


살아서는 걸어 다니는 고깃덩이나

움직이는 시체와 같고

죽어서는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졌겠지만

그 죄악의 업보는 소멸하기 어려우니

영원히 삼악도에 떨어져 고생할 자들이오.


한때 시끌벅적하게

스스로 박학다식하고 통달한 인물이라고 떠들다가

후대에 이름조차 들리지 않는 자가 얼마나 많소?


그리고 행여라도

‘우리 집안은 본디 빈한하여

널리 음덕을 쌓고 크게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라고 핑계 대지는 마소.


몸과 입과 뜻의 삼업(三業)이 모두 사악하면

이보다 더 큰 죄악은 없으며,

반대로 삼업(三業)이 모두 착하면

이보다 더 큰 선행이 없다는 이치를 알아야 하오.


인과 법칙을 믿지 않고 죄와 복이 모두

일정한 응보임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안사전서 등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자상히 일러주어

인과 법칙을 믿게 하고 나아가 불법을 믿게 하며

염불 수행으로 서방극락에 왕생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해 주는 것보다 좋은 선행이 없소.


한 사람만 이렇게 이끌어도 그 공덕이 무한한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을 제도한다면 오죽하겠소?


그러나 자신이 흠 없이 실천궁행하여야만

비로소 남들을 감화시킬 수 있소.


자기의 배우자나 자녀가

따라서 믿고 함께 받들어 행할 때

남들도 저절로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착하게 감화될 것이오.


어찌 선행을 베풀고 음덕을 쌓는 일이

재산이나 지위에 달려 있다고 하겠소?


천하의 모든 일은 다 인연이 있기 마련이오.

일이 이루어지고 어그러지는 것은

모두 그 인연이 조종하고 결정하오.


비록 겉보기에는

일을 이루거나 어그러뜨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지만

성패의 실제 권력은

자신이 심은 과거의 원인[前因]에 달려 있으며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의

연분[現緣]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자신의 운명을 알고 하늘의 뜻을 즐겨 따르면서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는 일 없이

자신의 현재 처지에 편안히 만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어디에 가든지

자유자재롭지 않음이 없게 되리라.


♧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대세지보살
♧나무지장보살

바라문경 (잡아함 제2권 53 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拘薩羅國)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살라(薩羅)마을 북쪽에 있는 신서림(申恕林)에 계셨다.
一時,佛在拘薩羅國,人閒遊行,於薩羅聚落村北申恕林中住。

그때 그 마을의 주인이고 위대한 성을 가진 바라문은 ‘사문 석가족의 자손[釋種子]은 석가(釋迦)라는 위대한 성(姓)으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을 이룬 분이다. 그 분이 이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다가 살라마을 북쪽에 있는 신서림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爾時,聚落主大姓婆羅門聞沙門釋種子,於釋迦大姓,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成無上等正覺,於此拘薩羅國人閒遊行,到婆羅聚落村北申恕林中住。

그리고 또 ‘그 사문 구담은 훌륭한 모습과 명성과 진실한 공덕이 있어 하늘과 사람들의 찬탄이 8방(方)에 자자하며, 여래(如來)ㆍ응공[應]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 되어, 모든 세간과 모든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들 가운데서 큰 지혜로 스스로 증득해 아나니,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신다.
又彼沙門瞿曇如是色貌名稱,眞實功德,天、人讚歎,聞于八方,爲如來、應、等正覺、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於諸世閒、諸天、魔、梵、沙門、婆羅門中,大智能自證知:“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그 분이 세상을 위해 연설하시는 법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다 훌륭하고, 훌륭한 이치와, 훌륭한 맛은, 순일하고, 원만하며 깨끗하다. 그 분은 범행이 깨끗하고 묘한 법을 연설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爲世說法,初、中、後善,善義、善味,純一滿淨,梵行淸白,演說妙法。

그는 ‘훌륭하구나. 나는 뵈리라! 훌륭하구나. 나는 찾아가리라! 나는 찾아가 공경하고 섬기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훌륭한 수레를 타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금 병甁과 금지팡이와 일산을 지니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기 위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숲 어귀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렸고, 걸어서 세존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善哉應見!善哉應往!善應敬事!作是念已,卽便嚴駕,多將翼從,執持金甁、杖枝、傘蓋,往詣佛所,恭敬奉事,到於林口,下車步進,至世尊所,問訊安不,卻坐一面,白世尊曰:

“사문 구담께서는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설명하십니까?”
“沙門瞿曇!何論何說?”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나는 인(因)을 주장하고, 인(因)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인을 주장하고 어떻게 인을 설명하십니까?”
“我論因、說因。” 又白佛言:“云何論因?云何說因?”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합니다. 또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합니다.”
佛告婆羅門:“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有因有緣滅世閒,有因有緣世閒滅。”

“세존이시여,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婆羅門白佛言:“世尊,云何爲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어리석고 무식無聞한 범부들은 색色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즐거워하고, 색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색을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因緣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愚癡無聞凡夫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不如實知。不如實知故,愛樂於色,讚歎於色,染著心住;彼於色愛樂故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憂、悲、惱、苦,是則大苦聚集。


(▪︎어리석고 무식無聞한 범부들은 受의 발생ㆍ受의 소멸ㆍ受에 맛들임ㆍ受의 재앙ㆍ受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를 사랑해 즐거워하고, 受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受를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因緣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무식無聞한 범부들은 想의 발생ㆍ想의 소멸ㆍ想에 맛들임ㆍ想의 재앙ㆍ想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想을 사랑해 즐거워하고, 想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想을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因緣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무식無聞한 범부들은 行의 발생ㆍ行의 소멸ㆍ行에 맛들임ㆍ行의 재앙ㆍ行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行을 사랑해 즐거워하고, 行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行을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因緣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무식無聞한 범부들은 識의 발생ㆍ識의 소멸ㆍ識에 맛들임ㆍ識의 재앙ㆍ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識을 사랑해 즐거워하고, 識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識을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因緣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受、想、行、識亦復如是。婆羅門,是名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婆羅門白佛言: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云何爲有因有緣,滅世閒,有因有緣世閒滅?”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색色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색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색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多聞聖弟子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實知已,於彼色不愛樂,不讚歎,不染著,不留住,不愛樂,不留住故,色愛則滅,愛滅則取滅,取滅則有滅,有滅則生滅,生滅則老死憂悲惱苦滅。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受의 발생ㆍ受의 소멸ㆍ受에 맛들임ㆍ受의 재앙ㆍ受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受를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受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想의 발생ㆍ想의 소멸ㆍ想에 맛들임ㆍ想의 재앙ㆍ想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想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想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行의 발생ㆍ行의 소멸ㆍ行에 맛들임ㆍ行의 재앙ㆍ行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行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行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識의 발생ㆍ識의 소멸ㆍ識에 맛들임ㆍ識의 재앙ㆍ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識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識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受、想、行、識亦復如是。婆羅門,是名有因有緣滅世閒,是名有因有緣世閒滅。

바라문이여, 이것이 이른바 인을 주장하고 인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婆羅門,是名論因,是名說因。”

바라문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婆羅門白佛言:

“구담께서는 이와 같이 인을 주장하시고, 이와 같이 인을 설명하셨습니다.
“瞿曇,如是論因,如是說因。

저는 세상일이 많아 이제 하직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좋도록 하십시오.”
世閒多事,今請辭還。” 佛告婆羅門:“宜知是時。”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바라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함께 기뻐하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佛說此經已,諸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禮足而去。
















불설무량수경 下 4


6절 오탁 악세
7절 부처님의 큰 지혜
제3장 유통분


6절 오탁악세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모든 악을 짓지 않으면 참으로 훌륭한 공덕이 되어 시방세계에서 가장 뛰어나 비교할 만한 것이 없느니라.
Admonition against five evils:
[34] The Buddha said to Maitreya, "If here in this world you are upright in thought and will, and abstain from doing evil, then you will attain the utmost virtue, unsurpassed in all the lands throughout the ten quarters.

그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 국토의 천인들은 스스로 선한 일을 실천하거니와 결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교화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니라.
Why is this so? Devas and humans in the Buddha-lands naturally do good and rarely commit evil, and so, it is easy to teach and train them.

이제 내가 이 세간에서 부처를 이루어 5악(惡)과 5통(痛), 5소(燒)의 고통 가운데서 지내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5악을 버리게 하고, 5통을 제거하게 하고, 5소를 여의게 하며, 그 뜻을 조복 받고 교화시켜서 5선(善:戒)을 지니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복과 공덕과 제도와 장수(長壽)와 열반을 성취하게 하리라.”
  Having become a Buddha in this world, I now dwell in the midst of the five evils, the five sufferings, and the five burnings. This is extremely painful for me. I will teach multitudes of beings, making them abandon the five evils, avoid the five sufferings, and escape from the five burnings. I will train their minds and lead them to practice the five good deeds, so that they may acquire merit and virtue and attain emancipation, long life, and Nirvana."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떤 것이 5악이고, 어떤 것이 5통이고, 어떤 것이 5소인지 말하며, 또한 어떤 것이 5악을 없애고 5선을 지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과 공덕과 제도와 장수와 그리고 열반을 성취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리라.”
"The Buddha continued, What are the five evils? What are the five sufferings? What are the five burnings? What is the way to extinguish the five evils and lead people to practice the five good deeds, so that they may acquire merit and virtue and attain emancipation, long life, and Nirvana?"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1악(第一惡)은 다음과 같으니라. 여러 천인이나 사람들을 비롯하여 미물인 곤충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갖 악한 일을 지으려 하는데, 그렇지 않은 자가 없느니라.
1) first evil
[35] The Buddha said, "The first evil is this. Devas, humans and lesser beings, including even those that crawl, are bent on doing evil. There is no being that is not.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누르고, 다시 서로 해치고, 도적질하고, 다투고, 죽이니 서로 물고 뜯기만 할 뿐이지, 선한 일을 닦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극악무도한 짓만 일삼기 때문에 재앙과 벌을 받아 죽어서는 자연히 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게 되느니라.
The strong subdue the weak; all inflict serious injuries and kill each other, all devour their prey. Not knowing how to do good, they commit evil and do outrageous and unruly deeds. Later, they receive retribution, [276a] it is natural that they should be destined to evil realms.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죄악을 범한 자를 기억하고 식별하여 결코 용서하지 않으므로 가난한 자, 천한 자, 비천한 자, 구걸하는 자, 흉측한 자, 고독한 자,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 우둔한 자, 어리석은 자, 또는 왜소한 자, 미친 자, 바보 등의 차별이 있는 것이니라.
Demigods keep records of offenders' acts and make sure that they are punished. That is why some are poor and destitute, corrupt, beggarly, lonely, deaf, dumb, blind, stupid, wicked, physically handicapped, deranged, or subnormal.

그러나 이와 달리 존경받는 자가 되고 또는 고귀한 자, 부유한 자, 고명한 자, 재능 있는 자, 명철한 자, 그리고 지혜가 밝은 자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지난 세상[宿世]에서 자비로운 마음과 효성심으로 선행을 실천하고 복덕을 쌓은 과보이니라.
   But others are honorable, noble, wealthy, intelligent, or clever. This is the result of good and meritorious acts of benevolence and the performance of their duties to their parents in past lives.

세상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법도가 있으며, 나라에는 국법과 감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삼가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여 그 죄로 감옥에 들어가 재앙과 벌을 받게 된다. 그런 뒤에 벗어나기를 소망해도 그것을 벗어나기가 어려우니라. "In this world prisons are set up by the law, and those who are unafraid of them and commit offenses are sent there for punishment. However desperately they may wish to escape, it is impossible to do so.

이러한 일은 세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니라. 그러다가 목숨이 다해 후세에 태어나더라도 그 과보는 더욱 깊어지고 더욱더 심해지며, 저 어두운 저승[幽冥]에 들어가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데, 이를 현세에 비유하면 그 고통스러움은 지극한 극형과 같으니라.
Such is retribution in this world, but in the lives to come, punishment is longer and more severe for such evildoers. The suffering of transmigration through dark and dismal realms is comparable to the severest and most painful punishment ever enforced by law.

그러므로 피할 수 없이 자연히 3악도의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되며, 계속하여 몸을 바꾸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또한 이리저리 다른 처소에 태어나기도 하면서 윤회하는데, 그곳에서 받는 수명은 길거나 짧은데 그 영혼[魂神情識]은 자연히 그 몸을 따라가느니라.
"Thus, through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they undergo immeasurable suffering in the three evil realms. In successive transmigrations they are reborn into different forms; their life-spans are sometimes long and sometimes short. Their transient selves, vital energy and consciousness transmigrate through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그리고 마땅히 태어날 때는 홀로 태어나지만 전생에 원한이 있으면 서로 같은 곳에 태어나서 다시 보복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그 악업이 끊어져 그들의 재앙과 악업이 다하기 전에는 서로 떨어질 수조차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처럼 악도의 굴레를 벗어날 기약을 할 수 없고, 실로 해탈하기도 어려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느니라.
Although each individual is reborn alone, those bound by common karma come to be born together and take revenge upon each other. So this condition persists endlessly and, until the effect of their evil karma is exhausted, there is no possibility of avoiding their enemies. Floundering in Samsara, they have no chance of escape or of attaining emancipation. The pain that they must undergo is indescribable.

천지 사이에는 자연히 인과의 도리가 있어 비록 선과 악을 행했을 때 즉시 그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해도 마땅히 그 선과 악에 따라서 그 업보는 반드시 그것으로 돌아가게 되느니라.
Since this law naturally obtains everywhere between heaven and earth, even if good or evil acts do not immediately bring about reward or retribution, they will certainly result sooner or later.

이것을 1대악(大惡), 1통(痛), 1소(燒)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에 힘쓰는 것은 이와 같으니라. 비유하면 큰 불길이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This I call the first great evil, the first suffering, and the first burning. Those afflictions are such that they are comparable to a huge fire burning people alive.

그러므로 사람으로 태어나 마음을 잘 가다듬고 삿된 마음을 억누르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선한 일을 행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은 홀로 악도에서 벗어나거나, 복덕으로 해탈하거나 혹은 하늘에 태어나거나 하여 열반의 도를 성취하게 되니, 이것을 1대선(大善)이라고 하느니라.”
"If in the midst of this, one controls one's thoughts with single-mindedness, does worthy deeds with proper demeanor, commits no evil, and performs only good, then with the merit and virtue acquired one reaches emancipation and is able to escape from this world, be reborn in heavenly realms, and finally reach Nirvana. This is the first great good."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2악은 다음과 같으니라. 세간의 사람들, 즉 어버이와 자식 사이, 형과 동생 사이, 가문의 권속 사이, 부부 사이 등에 도무지 의리가 없고 법도를 따르지 않으며 사치하고 음란하며, 교만하고 방종하여 각자의 쾌락만을 생각하여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문득 상대방을 속이고 미혹하게 하며,
2) second evil
[36] The Buddha continued, "The second evil is that people of the world -- parents,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 members of a family, husbands and wives -- all lack moral principles, break laws, conduct themselves arrogantly, commit licentious and unruly acts, pursue their own pleasures, enjoy themselves as they will, and deceive each other.

마음과 말이 달라서 말과 생각에 진실이 없느니라. 또한 신하는 아첨할 뿐 충실하지 않고, 교묘하게 말을 꾸며서 하고, 현명하고 어진 자를 질투하고, 착한 자를 비방하여 원망스러운 처지에 빠뜨리느니라.
What they think contradicts what they say; they speak without sincerity, flatter others with deceitful intention, fawn upon others with artful words, envy the reputation of sages, abuse the virtuous, and entrap people by dishonest means.

그리고 임금은 밝은 안목 없이 신하를 등용하여 신하는 자기 뜻대로 계책을 꾸며 여러 가지 일을 벌이며, 임금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행동하느니라.
"Masters are unwise in appointing retainers, who, exploiting the situation, seek every opportunity for trickery and deceit.

임금의 자리에서 올바르지 않으면, 비록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밝은 이가 있다 할지라도, 마침내 그 신하를 물리치게 되니, 이는 천심이 저버리는 것이니라.
Rulers, being unrighteous, are deceived by ministers and foolishly remove loyal and faithful subjects. This is contrary to the will of Heaven.

이처럼 신하는 그 임금을 속이고, 자식은 그 어버이를 속이며, 형제나 부부, 안팎에 면식이 있는 사이에도 서로 속이고,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품고,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가지려고 탐내고 소유하려 하느니라.
Ministers betray their rulers; children deceive their parents; brothers, sisters, husbands, wives, kinsmen and friends deceive each other. They harbor greed, anger, and stupidity, and, desiring many possessions, seek their own advantage.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아랫사람이나 윗사람의 마음은 모두 똑같이 그러하여 가정을 파괴하고,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 앞뒤를 돌보지 않으므로, 내외의 가족들이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파멸하느니라.
All people are the same at heart, whether they are men of high and honorable positions or of lower and despised classes. They bring their homes and themselves to ruin and recklessly destroy their kindred.

어떤 때는 가문의 사람들이나, 친구들, 마을 사람들간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일을 함께 도모하다가 문득 서로 이익과 손해가 엇갈려 분노를 드러내고 원한을 품게 되느니라.
Although there are family members, friends, villagers, townspeople, ignorant [276b] and vulgar groups working together, all seek to gain their own profit, thereby incurring the anger and enmity of others.

어떤 사람은 부유하면서도 인색하여 결코 베풀려고 하지 않고, 오직 보물을 사랑하고 귀중한 것을 탐내어 마음은 수고롭고 몸은 고달프니라.
When people grow rich, they become miserly and uncharitable. Greedily attached to their wealth, they toil with mind and body to retain it.

그러나 이와 같아도 결국에는 믿고 기댈 만한 곳이 없어지며, 이러한 사람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니 아무도 따라가는 사람이 없느니라.
When their end comes, they find nothing to rely on. Ultimately they are born and depart alone, with nobody to accompany them.

선함과 악함의 결과로 나타나는 화복(禍福)은 몸을 받을 때마다 따라다니므로, 어떤 이는 즐거운 곳에 태어나고, 어떤 이는 고통 속에 빠지되, 나중에 후회해도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라.
Bliss or misery resulting from good or evil acts follows them in their future lives. Thus they are reborn in pleasant or painful states. Even if they later show regret, what good will that do?

세간의 사람들은 어리석고 지혜가 모자라서 착한 이를 보고 오히려 미워하고 비방할 뿐, 그를 연모하여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악한 일을 지으려고 하고, 망령되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非法]을 지을 뿐이니라.
"People of the world, being dark-hearted and lacking insight, hate and abuse good people and show them no respect. They are attached to wrongdoing and willfully commit unlawful acts.

항상 도적의 마음을 품고 타인의 이익을 부러워하고 탐내며, 재물이 있으면 그것을 탕진하여 없애 버리고는 또다시 구하고 찾느니라.
They always covet the wealth of others and harbor intentions of stealing. After spending and squandering what they have robbed from others, they seek to regain it.

잘못된 마음[邪心]을 가지고 있어 올바르지 못하니, 항상 두려움으로 가득하여 남의 눈치만 살피며, 미리 헤아리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일을 당하고서야 후회할 뿐이니라.
Because of their own hidden motives and dishonesty, they slyly study the reactions shown on the faces of others. Since they are unable to think far ahead, when things go wrong, they become despondent with chagrin.

지금 세상에는 실제로 국법에 따른 감옥이 있어 죄에 따라 재앙과 벌을 받아야 하며, 전생에 도덕(道德)을 믿지 않고 선을 닦지 않았으므로 금생에 또 다시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되느니라. "In this world there are prisons established by the law where offenders are sent to receive punishment according to their offenses. In their previous lives they neither believed in the Way nor cultivated roots of virtue. In this life, too, if they commit evil,

그러면 천신은 그 이름을 명부에 적고, 태어날 처소를 식별하여 목숨이 다하고 정신이 떠나면 악도로 떨어지게 하니, 자연히 3악도의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과 번뇌를 겪게 되고, 그 속에서 윤회하며 세세생생 겁을 지날지라도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demigods know and keep records of their acts; when they die, they fall into evil realms. Thus, because of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there are the three evil realms and innumerable sufferings through which evildoers must pass, life after life, for many kalpas, with no end in sight. It is indeed difficult for them to attain release. The pain they must undergo is indescribable.

이것을 2대악(大惡)이며, 2통(痛)이며, 2소(燒)라고 하느니라. 이로 인한 고통스러움에 힘쓰는 것은 이와 같으니라. 비유하면 큰 불길이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This is called the second great evil, the second suffering, and the second burning. The afflictions are such that they are comparable to a huge fire burning people alive.

그러므로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능히 마음을 가다듬고 삿된 마음을 억누르며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온갖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은 홀로 악도에서 벗어나며, 그 복덕으로 해탈하거나 혹은 장수하거나, 열반을 성취하게 하는 도를 얻게 되니, 이것을 2대선(大善)이라고 하느니라.”
"If in the midst of this one controls one's thoughts with single-mindedness, does worthy deeds with proper demeanor, commits no evil, and performs only good, then with the merit and virtue acquired one reaches emancipation and is able to escape from this world, be reborn in heavenly realms and finally reach Nirvana. This is the second great good."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3악은 다음과 같으니라. 세간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여 함께 천지간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햇수와 수명은 얼마 되지 않느니라.
3) the third evil
[37] The Buddha continued, "The third evil is this. People of the world live together, inhabiting this realm between heaven and earth, with a limited life-span.

위로는 슬기로운 자, 현명한 자, 덕이 있는 자, 존경 받는 자, 고귀한 자, 부유한 자가 있고, 아래로는 가난한 자, 하인, 비천한 자, 불구인 자, 열등한 자, 우둔한 범부가 있느니라.
On the one hand, among the higher levels there are wise, rich, honorable, noble, and wealthy people. On the other hand, among the lower levels there are people who are poor, debased, crude and foolish.

이 가운데는 착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 항상 삿되고 나쁜 마음을 품어 단지 음란함과 질투만을 생각하고 번뇌가 가슴속에 가득 차 있고 애욕이 어지럽게 얽혀 있으니, 앉으나 일어서나 편안하지 않고, 탐하는 생각으로 질투하며 부질없이 얻으려고만 하느니라.
Besides, there are evildoers who always harbor vicious thoughts and think only of self-gratification; they are full of worries, sunk in lust and attachment, are restless in their daily lives, greedy and miserly, and desirous of what they have no right to possess.

미색을 갖춘 여자에게 곁눈질하고, 밖에서는 잘못된 행동을 멋대로 하고, 자신의 아내를 싫어하고 미워하여 사사로이 망령된 곳에 드나들며 재산을 낭비하고 손상시키며 법도에 맞지 않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니라.
   They gloat over fair-skinned women, behave licentiously and commit obscene acts with them, hate their own wives, and secretly frequent brothels. Consequently, after squandering all their resources, they begin to break the law.

또 어떤 때는 무리를 이루어 모임을 만들고 군대를 일으켜 서로 정벌하며, 공격하고 겁탈하고, 살육하며, 강탈하는 무도한 짓을 하느니라.
They form bands, start riots, engage in fighting, unlawfully attack and kill people and plunder property.

또는 삿된 마음으로 항상 남의 재물에 탐을 내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도둑질하여 그것이 어느 정도 뜻대로 되면 더욱 애욕에 묶여 버리는 꼴이 되고 마느니라.
"Some have evil designs on the possessions of others. Without working at their own occupations, they acquire things through theft. Driven by desire, they commit further offenses.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항상 두려워하고 겁내지만, 남에게는 공갈과 협박을 일삼아 그로부터 얻은 것을 자신의 처자와 권속에게 주느니라.
Feverishly agitated, they intimidate and rob people to support their own wives and children with the goods thus acquired.

그리고 방자한 마음과 쾌락만을 쫓아 몸을 다하여 즐기고, 친족이나 윗사람, 아랫사람을 가리지 않고 음란한 짓을 하므로 가족과 사회가 다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하느니라. 또한 이러한 사람은 국법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자연히 형벌을 받게 되느니라.
Obeying only the dictates of their passions, they become addicted to wanton pleasures. They also disregard seniority in kinship, causing sorrow and anguish to other family members and relatives; furthermore, they take no account of the laws of the State.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은 인간뿐만 아니라 귀신에게도 알려지고, 해와 달이 밝게 비추어 보며, 천지신명이 밝게 기억하고 식별하므로 자연히 3악도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속에서 유전(流轉)하면서 세세생생 겁을 지날지라도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But such evils are known to others and also to demons. The Sun and the Moon recognize them and demigods [276c] keep records of their doings. Thus, because of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there are three evil realms and innumerable sufferings through which evildoers must pass, life after life, for many kalpas, with no end in sight. It is indeed difficult for them to gain release. The pain they must undergo is indescribable.

이것을 3대악(大惡)이며, 3통(痛)이며, 3소(燒)라고 하는데, 이로 인한 고통스러움에 힘쓰는 것은 이와 같으니라.
This is called the third great evil, the third suffering, and the third burning. The afflictions are such that they are comparable to a huge fire burning people alive.

비유하자면 큰 불길이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능히 마음을 가다듬어 삿된 마음을 억누르고 몸과 행동을 바르게 하여 오로지 선한 일을 행하고 모든 악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악도에서 벗어나며, 그 복덕으로 해탈하거나 혹은 하늘에 태어나거나 하여 열반의 도를 얻게 되니, 이것을 3대선(大善)이라고 하느니라.”
"If in the midst of this one controls one's thoughts with single-mindedness, does worthy deeds with proper demeanor, commits no evil, and performs only good, then with the merit and virtue acquired one reaches emancipation and is able to escape from this world, be reborn in heavenly realms and finally reach Nirvana. This is the third great good."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4악은 다음과 같으니라. 세간의 사람들은 선행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거짓말하는 것을 가르치고[敎令], 함께 온갖 악한 짓을 저지르며, 이간질[兩舌]하고 험악한 말[惡口]을 하고 거짓말[妄語]하고 쓸데없는 말[綺語]을 하느니라.
4) the fourth evil
[38] The Buddha continued, "The fourth evil is this. People of the world do not think of doing good. They incite each other to commit various kinds of evil -- uttering harsh and abusive words, telling lies, and engaging in idle talk.

그리고 남을 적대시하고 싸우며,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현명한 사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리고 자기 부부[傍]만이 즐기려 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며, 스승과 연장자를 가벼이 보며 일에는 소홀하고, 벗과 친구에게 신의가 없어 성실함을 인정받지 못하느니라.
They slander others and cause contention. They hate and envy good men and ruin the wise, while they rejoice in watching this behind the scenes. They are neglectful of their parents, make light of their teachers and elders, fail to win the trust of their friends, and lack sincerity.

또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기며 자신만이 올바른 도를 행한다고 주장하면서 느닷없이 위세를 부리고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느니라.
Holding themselves in high esteem, they think that they are virtuous, but act waywardly in an overbearing manner and despise others.

이러한 이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스스로 강건하다고 여겨 다른 사람이 공경하고 어려워하기를 바라느니라.
Unaware of their own evil, they never feel ashamed of themselves. Boastful of their physical strength, they demand respect and fear from others.

또한 천지신명과 해와 달도 두려워하지 않고, 결단코 선한 일을 행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이는 항복 받고 교화시키기 어려운 자이니라.
Taking no heed of Heaven, Earth, demigods, or the Sun and the Moon, they disdain to do any good. So they are difficult to train and convert.

그리고 스스로 방자하여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므로 늘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느니라.
Holding themselves in high esteem, they demand their own way. Arrogant and afraid of nothing, they always assume a haughty attitude.

이러한 온갖 악함을 천신들은 기억하여 알고 있으며, 전생에 조금 지은 복덕에 의해 지금은 조그마한 선으로 겨우 부지하고 보호받고 있지만, 금생에서 저지른 악행으로 복덕을 모두 소멸시키면, 모든 선신(善神)들이 그를 떠나 버리므로 몸은 홀로 남은 채 의지할 바를 찾지 못하느니라.
But demigods keep record of their evils. Perhaps there was some meritorious act in their past lives, and they can count on the effect of that small amount of good. But, since they commit evil again in this life, their stock of merit is soon exhausted; good divinities forsake them, leaving them alone and with no one on whom to depend.

그러다가 수명이 끝나면, 자신이 지은 악업만이 돌아와 자연히 쫓기어서 3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느니라.
When their lives end, all their evil recoils upon them and forces them, through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to descend to the evil realms.

또한 그 모든 죄업은 천지신명이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 죄로 인한 재앙과 허물이 끌어당겨 당연히 3악도에 떨어지며, 자연히 그 업보를 받게 되어 벗어날 길이 없게 되느니라.
Again, as the exact record of their deeds in the hands of the demigods dictates, their karmic transgressions and offenses condemn them to hellish realm. Retribution for evil comes about naturally and nothing can stop it.

그래서 전생에 지은 과보에 의해 불가마 솥에 끌려 들어가 몸과 마음은 망가지고 정신은 고통스럽고 괴로울 뿐이니, 그때를 당해서 후회하여도 다시는 되돌릴 수는 없느니라.
They must go into the red-hot cauldrons, where their bodies are melted down with the utmost torment and anguish. Even if at that time they repent of their evil deeds, what good will that do? The Way of Heaven takes its inevitable course without mistake.

천지 자연의 인과도리는 어긋남이 없는 것이니, 그래서 죄업을 지으면 자연히 3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Thus, because of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there are the three evil realms and innumerable kinds of suffering through which evildoers must pass, life after life, for many kalpas, with no end in sight.

그리고 그 악도에서 윤회하며 생사를 거듭하지만, 벗어날 기약이 없으며 그 고통도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It is indeed difficult for them to gain release, and the pain they must undergo is indescribable.

이것을 4대악(大惡)이며, 4통(痛)이며, 4소(燒)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고통스러움에 힘쓰는 것은 이와 같으니라. 비유하면 큰 불길이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This is called the fourth great evil, the fourth suffering, and the fourth burning. The afflictions are such that they are comparable to a huge fire burning people alive.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능히 마음을 가다듬어 삿된 마음을 억누르고 몸과 행동을 바르게 하여 오로지 선한 일을 행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악도에서 벗어나며, 그 복덕으로 해탈하거나 혹은 천상에 태어나거나 하여 열반의 도를 성취하게 되니, 이것을 4대선(大善)이라고 하느니라.”
"If, in the midst of this, one controls one's thoughts with single-mindedness, does worthy deeds with proper demeanor, commits no evil, and performs only good, then with the merit and virtue acquired one reaches emancipation and is able to escape from this world, be reborn in heavenly realms, and finally reach Nirvana. This is the fourth great good." [277a]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5악은 다음과 같으니라. 세간의 사람들은 게을러서 어슬렁거리고 배회하며 나태하여 그다지 선을 닦으려 하거나 몸을 다스리는 업을 닦지 않으므로 가족과 권속들은 굶주리며 추위에 떨며 가난하여 고생하느니라.
5) the fifth evil
[39] The Buddha continued, "The fifth evil is this. People of the world are indecisive and slothful, reluctant to do good, lacking in self-discipline and not working hard at their occupations, so their families and dependents are left to suffer from hunger and cold.

오히려 어버이가 가르치고 훈계하면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며 대들고 말하며, 시키는 바대로 따르지 않고 더 멀어지며 반항하고 거역하기를, 마치 원수의 집안을 대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자식은 어버이에게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When reproached by their parents, they retort angrily with scornful looks. With such conflicts they are far from peaceful; they can be as violent and frenzied as enemies confronting each other, and, as a result, parents wish that they had no children.

그리고 남들과 물건을 주고받을 때도 절도가 없어 모두들 서로 꺼리고 싫어하며, 은혜를 입고도 그 뜻을 배반하니, 보상하려는 마음은 애초에 없으므로, 가난하고 궁핍하며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는 다시 은혜를 입을 수 없느니라.
"In dealing with others, they are licentious and wayward, causing trouble and annoyance to many. Even when they are morally obliged to others, they neglect their duties and have no intention of repaying their indebtedness.

이러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하여 남의 것을 닥치는 대로 강탈하여 방자하게 놀면서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 남의 것을 쉽게 얻는 도둑질 같은 것에 익숙하게 되어 그것으로 생계를 지탱하려 하느니라.
Destitute and driven to the most desperate ends, they have no way of regaining their wealth. Although eager to obtain much profit and appropriate the riches of others, they waste their money on wanton pleasures.

또한 매양 술에 빠지고 미색에 집착하여 먹고 마시는 데 절제가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방탕하고 방일하느니라.
As this becomes a habit, they grow accustomed to acquiring property illegally and to spending their ill-gained profits on personal luxuries; indulging in wine and sumptuous food, they eat and drink to excess.

어리석어 남과 곧잘 다투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지 못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억누르려고만 하느니라.
Profligate and contentious as they are, they engage in foolish quarrels. Unable to understand others, they forcibly impose their will upon them.

다른 이가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을 보면 미워하고 질투하며, 의리도 없고 예의도 없으니 뉘우치고 반성할 줄도 모르며,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만을 높다고 여기니 그 누가 충고하거나 깨우쳐 줄 수도 없느니라.
"When they come upon people who are good, they hate and abuse them. Lacking ethics and decorum, they do not reflect on their conduct, and so are presumptuous and insistent, refusing to take the advice and admonitions of others.

그리고 6친 권속[六親] 등 필요한 것이 있고 없는 것을 전혀 걱정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며, 어버이의 은혜도 모르고, 스승과 벗에 대해 의리도 지니려고 하지 않느니라.
They are unconcerned if their kinsmen, from the closest to the sixth blood-relative, have no means of livelihood. They disregard their parents' benevolence, and do not fulfill obligations to their teachers and friends.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악한 짓만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언제나 악한 말을 하며, 몸으로는 언제나 악한 짓만 행하여 지금껏 한 번도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느니라.
They think only of doing evil; their mouths continuously speak malice; and with their bodies, they are forever committing evil. In their whole lives they have not done even one good deed.

따라서 옛 성인들과 여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고, 도를 닦아 해탈할 수 있음도 믿지 않으며, 죽은 뒤에는 영혼[神明]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윤회도 믿지 않고, 착한 일을 지으면 선한 과보를 얻고, 악한 짓을 저지르면 악한 과보를 받게 된다는 인과의 도리조차도 믿지 않느니라.
"Furthermore, they do not believe in the ancient sages, nor the Buddhist teachings, nor the path of practice leading to emancipation. Neither do they believe that after death one is reborn into another state of existence, that good deeds bring about good rewards, or that evil acts bring about evil consequences.

심지어 아라한[眞人]을 죽이거나 화합된 승단을 교란하려고 도모하고 어버이와 형제와 권속을 해치려고 하니, 6친 권속들이 모두 그를 싫어하고 증오하여 차라리 죽기를 바라느니라.
They plot to murder an arhat, to cause disruption in the Sangha, and even think of killing their parents, brothers, sisters or other relatives. For this reason, even their kinsmen, from the closest to the sixth blood-relative, hate them so much as to wish them dead.

이와 같이 세간의 사람들은 똑같이 어리석고 우매하여 스스로 지혜를 가진 것처럼 여기느니라. 태어날 때 어디에서 오는지 죽을 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모르면서 어질지도 못하고 순종하지도 않아서 천지의 도리를 거역하고 요행을 바라고 오래 살기를 욕구하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느니라.
"Such people of the world are all of the same mind. They are foolish and ignorant, lacking the wisdom to know whence they have come into life nor whither they are going after death. Neither humane toward others nor obedient to their elders, they revel against the whole world.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르치고 훈계하여 그로 하여금 선한 것을 기억하게 하고, 생사와 선악의 도리를 일러 주어도 그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느니라.
Nevertheless, they expect good fortune and seek long lives, only to meet death in the end. Even if someone compassionately admonishes them, trying to lead them to thoughts of goodness, and teaches them that naturally there are good and evil realms of Samsara, they will not believe him.

간절한 마음으로 말해 보아도 아무런 보람이 없으며, 마음속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어 그 마음이 열리고 풀릴 수 없느니라.
However hard one may try to persuade them, it is useless. Their minds are closed, and they refuse to listen to others or understand their teachings.

이러한 사람들은 마침내 목숨이 다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후회와 두려움이 번갈아 가며 엄습하지만, 일찍이 착한 일을 닦지 않고, 마지막에 이르러 후회하여도 되돌릴 수 있는 일이란 없느니라.
When their lives are about to end, fear and revulsion arise in turn. Not having previously done any good, they are filled with remorse when they come to their end. But what good will that do then?

천지간에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의 5도가 분명히 있으며, 또한 생사윤회의 도리가 분명하며, 그곳은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넓고 깊고 미묘하니라.
"Between heaven and earth, the five realms are clearly distinguishable. They are vast and deep, extending boundlessly.

그래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지으면, 그 과보에 상응하여 재앙과 복덕이 서로 잇게 되니, 자신이 지은 업은 자신이 받게 되며,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느니라.
In return for good or evil deeds, bliss or misery ensues. The result of one's karma must be borne by oneself alone and no one else can take one's place.

자연의 도리는 그가 저지른 소행에 따라 그 재앙과 허물이 목숨을 쫓아다니니,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This is the natural law. Misfortune follows evil deeds as their retribution, which is impossible to avoid.

선한 사람은 착한 일을 행하여 즐거운 곳에서 더욱 즐거운 곳으로 들어가고, 지혜는 더욱 밝아지지만, 그러나 악한 사람은 나쁜 짓을 저질러 괴로운 곳에서 더 괴로운 곳으로 들어가고, 그 마음은 더욱 어두워지게 되느니라.
Good people do good deeds, and so enjoy pleasure after pleasure and proceed from light to greater light. Evildoers commit crimes, and so suffer pain after pain and wander from darkness to deeper darkness.

그런데 이렇듯 깊고 묘한 도리를 어느 누가 능히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고 계실 뿐이니라.
No one, except the Buddha, knows this completely.

불법의 가르침을 설하고 열어 보여 주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드물고, 그리하여 3악도에 떨어져 생사윤회 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느니라.
Even though someone admonishes and teaches them, very few believe; and so the cycles of birth-and-death never cease and the evil paths continue endlessly. [277b]

이와 같은 중생들의 무리들은 다 없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생사고해에 넘치며, 자연히 3악도의 한량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고, 그 속에서 세세생생 윤회하기를 몇 겁을 거듭하여도 나올 기약이 없고 벗어날 수도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The karmic consequences for such worldly people are beyond description in detail.
"Thus, because of the natural working of karma, there are innumerable kinds of suffering in the three evil realms through which evil beings must pass, life after life, for many kalpas, with no end in sight. It is indeed difficult for them to gain release, and the pain they must undergo is indescribable.

이것이 5대악(大惡)이며, 5통(痛)이며, 5소(燒)인데, 그 고통스러움에 힘쓰는 것은 이와 같으니라. 비유하면 큰 불길이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This is called the fifth great evil, the fifth suffering, and the fifth burning. The afflictions are such that they are comparable to a huge fire burning people alive.

그러나 사람들이 그 속에서도 능히 마음을 가다듬어 삿된 마음을 억누르고 몸과 행동을 바르게 하며, 오로지 착한 일을 행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은 홀로 악도에서 벗어나며, 그 복덕으로 인하여 해탈하거나 혹은 천상에 태어나거나 하여 열반을 성취하게 되니, 이것을 5대선(大善)이라고 하느니라.”
"If in the midst of this, one controls one's thoughts with single-mindedness, does worthy deeds with proper demeanor, mindfully recollects, harmonizes words and deeds, acts with sincerity, utters true words, speaks from the heart, commits no evil, and performs only good, then with the merit and virtue acquired one reaches emancipation and is able to escape from this world, be reborn in heavenly realms, and finally reach Nirvana. This is the fifth great good."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한 이 세상은 5악(惡)으로 가득 차 있어 고통과 괴로움을 받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으며, 그로 인하여 다섯 고통과 다섯 불길이 서로 원인이 되어 경쟁하듯 생기는 것이니라.
Further admonition by the Buddha
[40] The Buddha said to Maitreya, "I shall explain further. Such are the afflictions of the five evils in this world. The five sufferings and the five burnings continue to arise from them.

그리하여 오직 온갖 악한 짓만을 저지르고 착한 일을 행하지 않으니, 모두 자연히 3악도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People commit nothing but evil and fail to cultivate roots of virtue, and so it is natural that they all go to evil realms.

또는 지금 세상에서 먼저 재앙을 당하고 병에 걸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기를 구하여도 그럴 수 없으며,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악의 과보를 대중들이 보게 되느니라.
Even in this life they suffer from incurable illnesses. Longing for death, they cannot die; craving for life, they cannot live. Thus they are an example to others of what retribution for evil acts is like.

그러다가 몸이 죽으면 업에 따라 3악도(惡道)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불태우게 되느니라.
   After death, driven by their karma, they fall into the three evil realms, where they suffer countless tortures and are themselves consigned to the flames.

이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지속되어 원한의 결박을 만들게 되니, 처음에는 적고 미세한 것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크나큰 악을 이루게 되느니라.
"After a long time they are reborn again in this world, only to foment hatred against each other. At first hatred is slight but finally develops into a major evil.

이 모두가 재물과 애욕에 탐착하여 보시하고 은혜를 베풀지 못했기 때문이며, 어리석음과 욕망에 쫓기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마다 번뇌에 묶여서 풀려나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All this is because of their greedy attachment to wealth and sensuous pleasures and of their refusal to share with others. Further, wayward thoughts arise from the desires born of stupidity. Their bondage to evil passions will never be severed.

또한 자신의 이익을 돈독히 하고자 남과 다투면서도 돌이켜 반성하지 않느니라.
In the pursuit of selfish gain, there is no chance for them to reflect on their evils and turn to good.

혹시 부귀영화를 누리는 때가 있을지라도 다만 자신의 쾌락을 즐길 뿐 절제할 줄 모르고, 착한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 위세는 얼마 가지 않아서 소멸되어 없어지느니라.
When wealthy and prosperous, they are happy and do not learn to be modest and virtuous. Consequently, their pomp and power are short-lived; when these are exhausted, they must undergo further afflictions.

그리고 자신의 한 몸을 살리기 위하여 고생하지만 그 후에는 더 큰 비극을 맞게 될 뿐이니라.
Their sufferings are bound to increase in time to come.

천지의 도리는 바르고 곧아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자연히 지은 바가 드러나고 형벌이 펼쳐진 그물처럼 상하에 상응하는 것이니라. 의지할 곳도 없이 오직 홀로 그곳에 들어갈 뿐이며, 이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나니 참으로 애처롭고 가엾은 일이니라.”
"The law of karma operates like a net stretched everywhere; in its meshes, it inevitably catches all offenders. The net woven of large and small ropes covers the whole world, from top to bottom, and those caught in it feel utterly helpless and tremble in fear. This net has been in existence from of old. How painful and heart-rending!"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이란 이와 같으니 부처님은 모두 그러한 것을 가엾이 여기고, 위신력으로 온갖 악을 부수어 없애고 선으로 나아가게 하느니라.
The Buddha said to Maitreya, "People of this world are as I have described. All the Buddhas pity them and with divine powers destroy their evils and lead them all to goodness.

악을 범하려는 생각을 포기하여 또한 버리며, 경전과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도(道)와 법을 받아 수행하여 어긋나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여 결국 생사고해를 벗어나 열반[泥洹]으로 향하는 길을 얻게 되느니라.”
If you give up wrong views, hold fast to the scriptures and the precepts, and practice the Way without committing any fault, then you will finally be able to attain the path to emancipation and Nirvana."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모든 천신과 인간과 후세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불법을 마땅히 깊이 사유하고, 능히 그 가운데에서 마음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도록 해야 하느니라.
The Buddha continued, "You and other devas and humans of the present and people of future generations, having received the Buddha's teachings, should reflect upon them and, while following them, should remain upright in thought and do virtuous deeds.

윗사람은 선을 행함으로써 아랫사람을 통솔하고 교화하며, 서로 가르침을 전하고 각자가 스스로 단정히 지키며, 성인을 존대하고 선한 자를 공경하며 어질고 인자한 마음으로 널리 사랑을 베풀어야 하느니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결코 어기거나 비방해서는 안 되며,
Rulers should abide by morality, reign with beneficence and decree that everyone should maintain proper conduct, revere the sages, respect men of virtue, be benevolent and kind to others, and take care not to disregard the Buddha's teachings and admonitions.

마땅히 해탈을 구하되 나고 죽는 사이에 저지르는 온갖 악의 근본을 뽑아 버리고, 3악도의 한량없는 근심과 두려움과 괴로움과 아픔의 길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All should seek emancipation, cut the roots of Samsara and its various evils, and so aspire to escape from the paths of immeasurable sorrow, fear [277c] and pain in the three evil realms.

그리고 그대들은 여기서 널리 공덕의 근본을 심어야 하며, 은혜를 베풀고 계행을 깨뜨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인욕하고 정진하며 한마음의 지혜로써 더욱더 교화해야 하느니라.
"In this world, you should extensively plant roots of virtue, be benevolent, give generously, abstain from breaking the precepts, be patient and diligent, teach people with sincerity and wisdom, do virtuous deeds, and practice good.

공덕을 짓고 선을 행하며 바른 마음과 바른 뜻으로 비록 하루 낮, 하룻밤 동안이라도 청정하게 범행을 닦고 계행을 지키면 무량수국에서 선한 일을 백 년을 행하는 것보다 더욱 수승하느니라.
If you strictly observe the precepts of abstinence with upright thought and mindfulness even for a day and a night, the merit acquired will surpass that of practicing good in the land of Amitayus for a hundred years.

왜냐 하면 저 부처님의 국토는 저절로 온갖 선이 쌓이므로 악이란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이니라.
The reason is that in that Buddha-land of effortless spontaneity all the inhabitants do good without committing even a hair's breadth of evil.

또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열흘 밤낮으로 닦더라도 다른 모든 불국토에서 천 년 동안 선을 행하는 것보다도 더욱 수승하니라.
If in this world you do good for ten days and nights, the merit acquired will surpass that of practicing good in the Buddha-land of other quarters for a thousand years.

왜냐 하면 다른 국토에는 선한 일을 행하는 자가 많으며, 악을 짓는 자는 적기 때문이며, 또한 복덕이 저절로 이루어져 악을 행할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The reason is that in the Buddha-land of other quarters many practice good and very few commit evil. They are lands where everything is naturally provided as a result of one's merit and virtue, and so no evil is done.

그러나 이 세간에는 악한 것이 많으므로 자연히 부지런히 바라기만 하며, 서로 속이고 또한 해치니, 그 마음은 수고롭고 몸이 고달프기가 마치 쓰디 쓴 독약을 마시는 것과도 같으니라.
But in this world much evil is committed, and few are provided for naturally; people must work hard to get what they want. Since they intend to deceive each other, their minds are troubled, their bodies exhausted, and they drink bitterness and eat hardship.

이와 같이 얽매인 채 애써 보지만 아직껏 한 번도 편안하게 쉬어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In this way, they are preoccupied with their toil no have time for rest.

그래서 나는 그대들 천인과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선을 닦도록 훈계와 비유로써 간곡하게 가르쳤고, 근기[器]에 따라 인도하되 경법(經法)의 가르침을 부여하니, 이를 이어받아 행하면 소원하는 바대로 모두 깨달음을 얻으리라.
"Out of pity for you and other devas and humans, I have taken great pains in exhorting you to do good deeds. I have given you instructions appropriate to your capacities. You have, without fail, accepted my teachings and practiced them, and so have all entered on the Way as you wished.

부처님께서 유행하시는 나라, 도시와 마을마다 교화를 입지 않은 곳이 없으니, 천하가 화평하고 유순하며 해와 달은 청명하여 바람과 비가 때를 맞추며 재앙과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으며,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은 안정되어 병사와 무기는 소용이 없으니, 덕을 숭상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힘써 예절과 겸양을 닦을 것이니라.”
"Wherever the Buddha comes to stay, there is no state, town or village which is not blessed by his virtues. The whole country reposes in peace and harmony. The sun and the moon shine with pure brilliance; wind rises and rain falls at the right time. There is no calamity or epidemic, and so the country becomes wealthy, and its people enjoy peace. Soldiers and weapons become useless; and people esteem virtue, practice benevolence and diligently cultivate courteous modesty."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들 여러 천신과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연민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지극하느니라.
The Buddha continued, "My concern for you, devas and humans, is greater than the care of parents for their children.

지금은 내가 이 세간에서 부처를 이루어 5악(惡)을 항복 받고 교화하며, 5통(痛)을 소멸시키고 제거하며, 5소(燒)를 끊어 없애고, 선으로써 악을 다스려 나고 죽는 괴로움을 뽑아 내고 5덕(德:生善趣, 生貴家, 具勝根, 受男身, 憶宿命)을 얻게 하여 무위(無爲)의 안온함을 얻게 하리라.
I have become a Buddha in this world, destroyed the five evils, removed the five sufferings, and extinguished the five burnings. I have countered evil with good, eradicated the suffering of birth-and-death, and enabled people to acquire the five virtues and attain the peace of unconditioned Nirvana.

그러나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가르침의 도가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을 아첨하고 속이게 되어 다시 온갖 악한 짓을 행할 것이니라. 5통과 5소가 다시 이전과 같이 넘치고 오래 지날수록 극도에 달하게 되니, 그 모든 것은 이루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대들을 위하여 이것을 간략하게 말했을 뿐이니라.”
But after I have departed from this world, my teaching will gradually decline and people will fall prey to flattery and deceit and commit various evils, resulting in the recurrence of the five sufferings and the five burnings. As time goes on, their sufferings will intensify. As it is impossible to describe this in detail, I have given you only a brief outline.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각자 이러한 것을 잘 생각하여 서로 가르쳐 주고 깨우치며 부처님 경법대로 행할 것이며, 어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라.”
The Buddha said to Maitreya, "You should each ponder on this well, teach and admonish each other, and be on guard against disobeying the Buddha's instruction."

이에 미륵보살은 합장한 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옳습니다. 세간의 사람들은 실로 그러하니, 여래께서는 널리 자비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모두를 고해에서 벗어나도록 설해 주셨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받았으니, 감히 거역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겠습니다.”
The Bodhisattva Maitreya, with his palms together, said, "O Buddha, how sincere and earnest your admonition is! People of the world are just as you have described. O Tathagata, you take pity on and care for us without discrimination and seek to deliver us all from suffering. Having accepted the Buddha's repeated exhortations, I will be careful not to disobey them."


7절 불대지혜佛大智慧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대는 일어나서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무량수불께 예배하여라.
Amida and the Pure Land shown to the audience
[41] The Buddha said to Ananda, "Rise to your feet, rearrange your robes, put your palms together, and respectfully revere and worship Amitayus.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국토의 부처님께서도 항상 무량수불의 집착함이 없고 걸림 없는 것을 찬양하고 찬탄하셨느니라.”
Buddhas and Tathagatas in the lands of the ten quarters always praise with one accord that Buddha's virtues of non-attachment and unimpeded activity."

이에 아난은 일어나서 의복을 정돈하고 몸을 바르게 하고 서쪽을 향하여 공경히 합장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무량수불께 예배하였다.
Ananda stood up, rearranged his robes, assumed the correct posture, faced westward, and, demonstrating his sincere reverence, joined his palms together, prostrated himself on the ground and worshipped Amitayus.

그리고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원하옵나니 저 무량수불의 안락 국토 및 여러 보살과 성문 대중들을 뵙고자 하옵니다.”
Then he said [278a] to the Buddha Shakyamuni, "World-Honored One, I wish to see that Buddha, his Land of Peace and Bliss, and its hosts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그때 무량수불께서 크나큰 광명을 방출하시어 두루 일체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비추셨다.
As soon as he had said this, Amitayus emitted a great light, which illuminated all the Buddha-lands.

금강철위산을 비롯하여 수미산과 크고 작은 모든 산 등 일체의 만물들이 한결같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The Encircling Adamantine Mountains, Mount Sumeru, together with large and small mountains, and everything else shone with the same (golden) color.

비유하자면 물이 세계에 가득한 겁[劫水] 때에는 만물이 침몰해 있어 나타나지 않고 물만 굽이쳐 흘러 단지 큰물만 보이는 것처럼 저 부처님의 광명도 역시 그와 같아서 성문과 보살들의 일체 광명이 모두 다 가려지고, 오직 부처님의 광명만 밝고 찬란하고 혁혁하게 빛나는 것을 뵈올 수 있었다.
  That light was like the flood at the end of the period of cosmic change that fills the whole world, when myriads of things are submerged, and as far as the eye can see, there is nothing but a vast expanse of water. Even so was the flood of light emanating from Amitayus. All the lights of shravakas and bodhisattvas were outshone and surpassed, and only the Buddha's light remained shining bright and glorious.

이때 아난이 곧 무량수불을 친견하게 되니, 그 위신력과 덕망이 높아서 마치 수미산이 온 세계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것과도 같으며, 부처님의 상호의 광명이 비추어 밝히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보았다.
At that time Ananda saw the splendor and majesty of Amitayus resembling Mount Sumeru, which rises above the whole world. There was no place which was not illuminated by the light emanating from his body of glory.

또한 여기에 모인 4부 대중이 일시에 모두 그 광경을 보았으며, 그 극락세계로부터 이곳을 보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았다.
The four groups of followers of the Buddha in the assembly saw all this at the same time. Likewise, those of the Pure Land saw everything in this world.

이때 부처님께서 아난과 자씨보살(慈氏菩薩: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저 국토를 볼 때 지상에서 정거천(淨居天)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미묘하고 장엄하고 청정한 자연의 만물을 다 보았느냐?”
Two kinds of birth in the Pure Land
[42] Then the Buddha said to Ananda and the Bodhisattva Maitreya, "Have you seen that land filled with excellent and glorious manifestations, all spontaneously produced, from the ground to the Heaven of Pure Abode,?"

아난이 답하여 말씀드렸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Ananda replied, "Yes, I have."

“또한 그대들은 어떠하냐? 무량수불의 큰 음성이 일체의 세계에 두루 퍼져 중생을 교화하심을 들었느냐?”
The Buddha asked, "Have you also heard the great voice of Amitayus expound the Dharma to all the worlds, guiding sentient beings to the Way of the Buddha?"

아난이 답하여 말씀드렸다.
“예, 이미 들었습니다.”
Ananda replied, "Yes, I have."

“저 국토의 사람들이 백천 유순이나 되는 7보 궁전을 타고 아무런 장애 없이 두루 시방세계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것을 그대들은 또한 보았는가?”
The Buddha further asked, "Have you also seen the inhabitants of that land move freely, riding in seven-jewelled airborne palaces as large as a hundred thousand yojanas, to worship the Buddhas of the lands in the ten quarters?"

답하여 말씀드렸다.
“이미 보았습니다.”
"Yes, I have," replied Ananda.

“저 국토의 사람들 가운데 태생(胎生)인 자들도 있는데 그대들은 또한 보았는가?”
"Have you also seen that some of the inhabitants are in the embryonic state?"

답하여 말씀드렸다.
“이미 보았습니다. 태생인 자들이 거처하는 궁전은 1백 유순 혹은 5백 유순이며, 각기 그 가운데서 여러 가지 쾌락을 받는 것이 마치 도리천(忉利天)에서 자연적으로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Yes, I have. Those in the embryonic state dwell in palaces as high as a hundred yojanas or five hundred yojanas, where they spontaneously enjoy pleasures as do those in the Heaven of the Thirty-three Gods."

이때 자씨보살(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因緣)으로 그 국토의 인민들은 태생(胎生)과 화생(化生)의 구별이 있습니까?”
The cause of the two kinds of birth
[43] Then the Bodhisattva Maitreya said to the Buddha, "World-Honored One, for what reason are some of the inhabitants of that land in the embryonic state and the others born by transformation?"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은 의혹의 마음가짐으로 여러 공덕을 닦으며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느니라. 그는 부처님의 지혜가 불가사의한 지혜[不思議智]이며,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지혜[不可稱智]이며, 대승의 넓은 지혜[大乘廣智]이며, 동등함이 없고 비교할 데 없는 최상승의 지혜[無等無倫最上勝智]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The Buddha replied, "Maitreya, if there are sentient beings who do various meritorious deeds aspiring for birth in that land while still entertaining doubt, such beings are unable to comprehend the Buddha-wisdom, inconceivable wisdom, ineffable wisdom, boundless Mahayana wisdom, and incomparable, unequaled, and unsurpassed supreme wisdom.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의 부사의한 지혜를 의심하여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죄와 복에 대한 인간의 도리를 믿고 선을 닦아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는데, 이러한 여러 중생들이 저 7보 궁전의 변두리에 태어나 수명이 5백 세가 될 때까지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고 법문도 듣지 못하며, 보살과 성문은 물론 거룩한 성중(聖衆)들을 보지 못하므로 저 국토에서는 이들을 태생(胎生)이라고 하느니라.
Although they doubt these wisdoms, they still believe in retribution for evil and reward for virtue and so cultivate a stock of merits, aspiring for birth in that land. Such beings are born in a palace, where they dwell for five hundred years without being able to behold the Buddha, hear his exposition of the Dharma, or see the hosts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For this reason, that type of birth in the Pure Land is called 'embryonic state.'

그런데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지혜[佛智] 내지 최상승의 지혜[勝智]를 분명하게 믿고 여러 공덕을 지어 회향한다면, 이 중생은 7보로 된 꽃 가운데 자연히 화생(化生)하느니라. 그들은 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 순식간에 몸의 상호에서 나오는 광명과 지혜 공덕을 다른 여러 보살들과 똑같이 구족하고 성취하느니라.
"If there are sentient beings who with resolute faith accept these kinds of wisdom, from the Buddha's wisdom to the supreme wisdom, do meritorious deeds and sincerely transfer the merit acquired (to that land), [278b] those beings will be born by transformation spontaneously. seated with legs crossed, in the seven-jewelled lotus-flowers, and instantly attain the same glorious forms, wisdom and virtue as those of other bodhisattvas there.

또한 자씨보살이여, 다른 불국토에 있는 여러 큰 보살들이 발심하여 무량수불을 친견하고 공경 공양하며, 아울러 여러 보살들과 성문의 대중들에게도 이와 같이 한다면, 그 보살들은 목숨을 마치고 곧바로 극락국토의 7보 연꽃 속에 화생하게 되느니라.
Shakyamuni's encouragement of faith
[44] "Further, Maitreya, if great bodhisattvas in the Buddha-lands of other quarters desire to see Amitayus, and revere and make offerings to him and the hosts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they will, after death, be born in the land of Amitayus. Spontaneously transformed they will be born from within the seven-jewelled lotus-flowers.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라. 저 화생한 자는 지혜가 수승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태생한 저들은 모두 지혜가 없기 때문에 5백 세를 지나면서 결코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경법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보살 및 모든 성문 대중들도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 공양할 수도 없으며, 보살의 법식을 알지 못하므로 공덕을 쌓을 수도 없느니라.
"Maitreya, you should know that those born by transformation are possessed of supreme wisdom, while those in the embryonic state lack that wisdom and must pass five hundred years without being able to see the Buddha, hear his teaching of the Dharma, see the hosts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make offerings to the Buddha, learn the rules of conduct for bodhisattvas, or perform meritorious practices.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이 사람들은 과거 세상에 있을 때 지혜를 닦지 못하여 의혹에 떨어졌던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You should know that this is because those beings harbored doubt and lacked wisdom in their previous lives."

“비유하자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별도로 7보 궁전을 지어 여러 가지로 장엄하고 치장하였으며, 여러 가지 채색된 휘장과 깃발들을 드리워 놓았느니라.
Embryonic birth
[45] The Buddha said to Maitreya, "Let us suppose that a wheel-turning monarch has a special chamber which is adorned with seen jewels and provided with curtained couches and silken banners hanging from the ceiling.

만일 어린 왕자들이 있어서 왕으로부터 벌을 받아 그 궁전 가운데에서 황금의 사슬로 묶여 있는데, 그들은 음식과 의복과 침상과 이불, 그리고 꽃과 향과 음악 등을 공급받는데, 이곳은 전륜성왕이 머무는 곳과 같아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느니라.
If princes have committed offense against the king, they are taken to that chamber and fettered with gold chains. There they are served with food and drink, provided with clothes, couches and cushions, flowers and incense, and can enjoy music. Being treated just like the wheel-turning monarch himself, they have no wants.

그대의 뜻은 어떠하냐? 그 여러 왕자가 오히려 그곳을 즐거워하겠는가?”
미륵보살이 답하여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그들은 온갖 방편을 써서 힘이 센 장사를 구하여 스스로 그곳을 벗어나려 할 것입니다.”
  Do you think that those princes would enjoy living there?"
"No they do not," replied Maitreya. "They would seek various means of approach to ask a man of power to help them escape."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중생들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한 까닭에 그 변두리의 궁전에 태어나 다만 벌을 받지는 않으며,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없다고 해도, 5백 세에 걸쳐서 3보를 친견하지 못하므로 공양하여 여러 가지 선을 닦을 수도 없느니라.
The Buddha said to Maitreya, "Those beings born within the lotus-buds are like that. Because of their doubt in the Buddha's wisdom, they have been born in palaces. Although they receive no punishment or ill treatment even for a single moment, they must pass five hundred years there without being able to see the Three Treasures, make offerings to the Buddha, or cultivate a stock of virtue.

이러한 것이 바로 괴로움이니, 비록 다른 즐거움이 있더라도 오히려 그곳에 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니라.
This is distressing to them. Though there are other pleasures, they do not enjoy living there.

만일 이 중생들이 그 죄의 근본을 알아 스스로 깊이 참회하고 자책하며 그 장소를 떠나기를 원한다면 그대로 무량수불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공경하고 공양하며, 또한 무량무수의 부처님 계신 곳을 두루 다니면서 온갖 공덕을 쌓을 수 있느니라.
"If those beings become aware of the faults committed in their former lives and deeply repent, they can, as they wish, leave and go to where Amitayus dwells.
Then they can worship and make offerings to him; they can also visit innumerable and countless other Buddhas to perform various meritorious practices.

미륵보살이여, 마땅히 알아라. 어떤 보살이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큰 이익을 잃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여러 부처님의 위없이 높은 지혜를 분명히 믿어야 하느니라.”
Maitreya, you should know that the bodhisattvas who allow doubt to arise lose great benefits. For this reason, you should have resolute faith in the supreme wisdom of the Buddha."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에서는 불퇴전의 자리에 오른 보살들이 얼마나 저 부처님 국토에 왕생하게 되옵니까?”
Bodhisattvas' visits to the Pure Land from other Buddha-lands
[46] The Bodhisattva Maitreya said to the Buddha, "World-Honored One, how many non-retrogressive bodhisattvas are there in this world who will be born in that Buddha-land?"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계에는 67억의 불퇴전의 보살들이 있어서 저 부처님의 국토에 왕생할 것이니라.
The Buddha replied, "Sixty-seven kotis of non-retrogressive bodhisattvas from this world will be born there.

한 보살, 한 보살은 이미 이전에 셀 수 없는 여러 부처님들을 공양하였는데, 그 높은 공덕은 미륵과도 같은 이들이니라.
Each of these bodhisattvas [278c] has previously made offerings to innumerable Buddhas with almost as much diligence as you did, Maitreya.

또한 수행이 적거나 공덕이 적은 보살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들도 모두 왕생하게 될 것이니라.”
  Furthermore, bodhisattvas of lesser practices and those who have performed small acts of merit, whose number is beyond calculation, will all be born there."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단지 나의 국토에 있는 여러 보살들만이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은 아니고, 타방에 있는 불국토의 보살들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The Buddha said to Maitreya, "Not only those bodhisattvas from this world but also those from Buddha-lands in other quarters are born there.

첫 번째 부처님은 원조불(遠照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18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First, in the land of the Buddha named Far-reaching Illumination there are one hundred and eigh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두 번째 부처님은 보장불(寶藏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9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Second, in the land of the Buddha Jewel-storehouse there are nine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세 번째 부처님은 무량음불(無量音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22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Third, in the land of the Buddha Immeasurable Sound there are two hundred and twen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네 번째 부처님은 감로미불(甘露味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25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Fourth, in the land of the Buddha Taste of Nectar there are two hundred and fif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다섯 번째 부처님은 용승불(龍勝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14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Fifth, in the land of the Buddha Dragon-subduing there are fourteen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여섯 번째 부처님은 승력불(勝力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1만 4천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Sixth, in the land of the Buddha Superior Power there are fourteen thousand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일곱 번째 부처님은 사자불(師子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5백 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Seventh, in the land of the Buddha Lion there are five hundred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여덟 번째 부처님은 이구광불(離垢光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8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Eighth, in the land of the Buddha Undefiled Light there are eigh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아홉 번째 부처님은 덕수불(德首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6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Ninth, in the land of the Buddha Peak of Virtue there are six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열 번째 부처님은 묘덕산불(妙德山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6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Tenth, in the land of the Buddha Mountain of Excellent Virtue there are sixty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열한 번째 부처님은 인왕불(人王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10억의 보살들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Eleventh, in the land of the Buddha King of Men there are ten kotis of bodhisattvas, who all visit there.

열두 번째 부처님은 무상화불(無上華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 대중이 있는데, 모두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있고 지혜를 갖추고 있으며 용맹스러우며, 이들은 일찍이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여 겨우 7일 동안에 능히 다른 보살들이 백천억 겁에 걸쳐 닦아야 얻을 수 있는 견고한 법력을 갖추었느니라.
Twelfth, in the land of the Buddha Splendid Flower there are innumerable and incalculable bodhisattvas who are all non-retrogressive and possessed of unrivaled wisdom, who have previously made offerings to countless Buddhas and are able to learn in seven days the adamantine teachings of the Dharma that can only be attained by mahasattvas after practicing for a hundred thousand kotis of kalpas.

그러므로 그들 보살들은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Those bodhisattvas all visit there.

열세 번째 부처님을 무외불(無畏佛)이라고 이름하며, 그곳에 있는 790억의 대승 보살들과 그리고 작은 공덕의 여러 보살들과 비구들까지 합하면 헤아릴 수조차 없는데, 그들은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니라.”
Thirteenth, in the land of the Buddha Fearlessness there are seven hundred and ninety kotis of great bodhisattvas and incalculable minor bodhisattvas and bhiksus, who all visit there."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이러한 열네 곳의 불국토에 있는 보살들만이 반드시 왕생하는 것은 아니니라.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에서도 왕생하는 이들은 이와 같이 매우 많아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The Buddha said to Maitreya, "Not only do the bodhisattvas from those fourteen Buddha-lands visit that land, but also bodhisattvas from innumerable Buddha-lands in the ten quarters, whose number is incalculable.

그러므로 내가 단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名號)와 그 국토에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보살들과 비구들의 수를 헤아린다면 밤낮으로 1겁에 걸쳐서 설한다고 해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 것이니, 다만 그대를 위하여 간략하게 말하였을 뿐이니라.”
Even if I were to give you only the names of the Buddhas in the ten quarters and the number of the bodhisattvas and bhiksus who visit that land, enumerating them continuously day and night for a kalpa, I would not be able to complete the list. This is why I have given you only a brief description." [279a]


■ 제3장 유통분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저 부처님(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서 환희하며 뛸 듯이 기뻐하거나 다만 한 번만이라도 염(念)한다면, 그 사람은 큰 이익을 얻은 것이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Shakyamuni's encouragement to accept this sutra
[47] The Buddha said to Maitreya, "If there are people who hear the Name of that Buddha, rejoice so greatly as to dance, and remember him even once, then you should know that they have gained great benefit by receiving the unsurpassed virtue.

그러므로 미륵이여, 설사 큰불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다 할지라도 마땅히 그 불을 뚫고 나아가 이 경의 법문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믿고 또한 즐겁게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설해진 그대로 수행해야 하느니라.
For this reason, Maitreya, even if a great fire were to fill the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you should pass through it to hear this sutra, to arouse joyful faith, to uphold and chant it, and to practice in accordance with its teachings.

왜냐 하면 많은 보살들이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여도 과거의 큰 공덕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귀중한 진리이기 때문이니라.
This is because there are many bodhisattvas who wish to hear this teaching but are still unable to do so.

만일 중생으로서 이 경전을 듣는다면, 위없는 도에서 끝내 물러나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은 마땅히 오직 한마음으로 믿고 지니고 독송하며 가르침대로 행해야 하느니라.”
If there are sentient beings who have heard it, they will attain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for realizing the highest Enlightenment. This is why you should single-heartedly accept in faith, uphold and chant this sutra, and practice in accordance with its teaching."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이 경을 말하거니와 무량수불과 그 국토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게 하였으나, 그대들은 마땅히 모두 왕생을 구해야 하느니라.
The Buddha further said, "I have expounded this teaching for the sake of sentient beings and enabled you to see Amitayus and all in his land. Strive to do what you should.

내가 열반에 든 이후에도 다시는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After I have passed into Nirvana, do not allow doubt to arise.

먼 미래 세상에 경전과 불법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자비로써 말세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특별히 이 경전(『무량수경』)만은 백 년 동안 더 머물게 할 것이니라.
In the future, the Buddhist scriptures and teachings will perish. But, out of pity and compassion, I will especially preserve this sutra and maintain it in the world for a hundred years more.

그리하여 만일 어떤 중생이든 이 경전을 만나 가르침을 따르는 이는 원하는 바에 따라서 모두 얻을 수 있느니라.”
Those beings who encounter it will attain deliverance in accord with their aspirations.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만나기도 어렵고 뵙기도 어려우며,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도를 얻기도 듣기도 어려우며, 보살의 수승한 법과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듣는 것도 역시 어려우며,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법을 듣고 능히 수행하는 것도 역시 어려우며, 더구나 이 경전을 듣고 즐거이 믿으며 수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니,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느니라.
The Buddha said to Maitreya, "It is difficult to encounter and behold Tathagata when he is in this world. Difficult of access, difficult to hear are the Buddhas' teachings and scriptures. It is also difficult to hear the excellent teachings for bodhisattvas, the Paramitas. Difficult too is it to meet a good teacher, to hear the Dharma and perform the practices. But most difficult of all difficulties is to hear this sutra, have faith in it with joy and hold fast to it. Nothing is more difficult than this.

그러므로 나의 법문을 이와 같이 짓고[如是作], 진리를 이와 같이 말하고[如是說], 진리를 이와 같이 가르치는[如是敎] 것이니, 마땅히 믿고 의지하여 가르침대로 행해야 할 것이니라.”
Thus have I formed my Dharma, thus have I expounded my Dharma, and thus have I taught my Dharma. You must receive it and practice it by the method prescribed."

이때 세존께서 이 경(『무량수경』)을 설법하실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모두 위없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켰다.
Epilogue
[48] When the World-Honored One had finished his exposition of this sutra, aspiration for the highest Enlightenment was awakened in innumerable sentient beings.

그리고 그 가운데는 1만 2천 나유타의 사람들이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었고, 22억의 여러 천신과 사람들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었으며, 80만의 비구들은 번뇌를 모두 끊고 지혜를 얻었다. 또한 40억 보살들이 불퇴전의 지위를 얻었는데, 그들은 큰 서원을 세운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장차 다가오는 세상에서 마땅히 정각을 이루게 될 것이다.
Twelve thousand nayutas of human beings attained the pure Dharma-eye; twenty-two kotis of devas and humans attained the Stage of a Non-returner; eight hundred thousand bhiksus realized the wisdom of destroying defilements; forty kotis of bodhisattvas attained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and all, adorned with the virtue of the universal vows, will ultimately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이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큰 광명이 두루 시방세계의 국토를 비추었고, 백천의 음악이 저절로 울려 퍼졌으며, 무수한 아름다운 꽃이 흩날렸다.
At that time the entire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shook in six ways, and a great light illuminated all the lands in the ten quarters. A hundred thousand kinds of music played spontaneously, and innumerable marvelous flowers fell in profusion from the sky.

부처님께서 『무량수경』의 설법을 마치자, 미륵보살과 시방세계에서 모여든 여러 보살 대중들과 장로 아난을 비롯한 여러 훌륭한 성문들과 일체의 대중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환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When the Buddha finished delivering this sutra, the Bodhisattva Maitreya and bodhisattvas from the lands in the ten quarters, together with the Elder Ananda, other great shravakas, and all those in the assembly, without exception, rejoiced at the Buddha's discourse.

End of Part Two of
The Sutra on the Buddha of Infinit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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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무량수경 하권 3


조위 천축삼장 강승개 한역
최봉수 번역
THE LARGER SUTRA ON AMITAYUS
delivered by Shakyamuni Buddha
Translated into Chinese during the Ts'ao-Wei dynasty
by the Tripitaka Master Samghavarman from India
translated from Chinese by Hisao Inagaki

■ 하권
3절 극락왕생인연
4절 정토의 안락
5절 세간의 고통


3절 극락왕생인연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중생들은 모두 반드시 성불이 결정된 정정취(正定聚)에 머물게 되느니라.
[22] The Buddha said to Ananda, "Sentient beings who are born in that Buddha-land all reside among those assured of Nirvana.

그 까닭은 극락에서는 성불하는 데 잘못 결정된 사정취(邪定聚)나 성불이 결정된 바 없는 부정취(不定聚)가 없기 때문이니라.
The reason is that in that land there are neither beings who are destined to adverse conditions nor those whose destinies are uncertain.

그리하여 항하강 모래 수만큼이나 무수한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들도 모두 한결같이 무량수불의 위신력과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시느니라.
"All Buddhas, Tathagatas, in the ten quarters, as numerous as the sands of the River Ganges, together praise the inconceivable, supernal virtue of Amitayus.

그런데 어떤 중생이라도 그 명호를 듣고 신심을 내어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내지는 한생각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면 곧 왕생하여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머물게 되느니라.
All sentient beings who, having heard his Name, rejoice in faith, remember him even once and sincerely transfer the merit of virtuous practices to that land, aspiring to be born there, will attain birth and dwell in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다만 5역죄(逆罪)를 저지른 자와 정법을 비방하는 자는 제외하느니라.”
But excluded are those who have committed the five gravest offenses and abused the right Dharma."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세계에 있는 여러 천신과 인간들로서 지극한 마음으로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데 무릇 세 가지 무리가 있느니라.
Three grades of aspirants:
1) higher grade
[23] The Buddha said to Ananda, "Devas and humans in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who sincerely aspire to be born in that land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grades.

그 중에서 상배자(上輩者)란 출가하여 욕심을 버리고 사문이 되고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량수불을 염하며 여러 가지 공덕을 쌓아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니라.
The higher grade of aspirants are those who leave their homes and abandon worldly desires to become monks. Having awakened aspiration for Enlightenment, they single-mindedly remember Amitayus and perform meritorious practices, aspiring to be born in his land.

이들 중생이 임종할 때는 무량수불께서 여러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의 앞에 나투시느니라. When they are about to die, Amitayus, together with a host of sages, will appear before them.

그는 곧바로 그 부처님을 따라서 극락국토에 왕생하여 문득 7보로 된 꽃 가운데 자연히 화생(化生)하여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게 되고 지혜를 갖추고 용맹하게 되고 신통력이 자재하게 되느니라.
Then they will follow him and attain birth in his land. At once they will be born by transformation spontaneously from within seven-jewelled lotus-flowers. They will dwell in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attain steadfast wisdom and be capable of freely exercising supernatural powers.

그런 까닭에 아난아, 어떤 중생으로서 지금 세상에서 무량수불을 친견하고자 원하는 자는 마땅히 위없는 보리[無上菩提]의 마음을 일으켜 공덕을 닦고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해야 하느니라.”
For this reason, Ananda, sentient beings who wish to see Amitayus while in this world should awaken aspiration for the highest Enlightenment, do meritorious deeds, and aspire to be born in his land."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중배자(中輩者)란 시방세계에 있는 여러 천신과 인간들로서 지극한 마음으로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비록 사문이 되어서 큰 공덕을 쌓지 못하였지만,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켜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량수불을 염하는 자이니라. 그리고 다소라도 선을 닦고, 계율을 받들어 지키며, 탑과 불상을 세우고 조성하며, 사문에게 밥과 음식을 공양하고, 부처님전에 비단 일산을 바치고, 등불을 밝히고, 꽃을 흩고 향을 사르느니라.
2) middle grade
[24]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middle grade of aspirants are the devas and humans in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who sincerely desire to be born in that land. Although unable to become monks and cultivate much merit, they awaken aspiration for the highest Enlightenment, single-mindedly think on Amitayus, perform some good deeds, observe the precepts of abstinence, build stupas, donate Buddhist statues, give alms to mendicants, hang banners, light candles, scatter flowers, burn incense, and so forth.

이와 같이 그 공덕을 회향하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이 임종할 때는 무량수불께서 화신으로 그 모습을 나투시는데, 그 광명과 상호가 구족되어 실제의 부처님과 같은 모습으로 여러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They transfer the merit of those practices to his land, aspiring to be born there. When they are about to die, Amitayus will manifest his transformed body, [272c] which is fully possessed of the same radiance and physical characteristics and marks as those of the real Buddha, and make it appear before them, together with a host of sages.

그러면 그는 곧바로 화현하신 부처님을 따라서 극락국에 왕생하여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게 되니, 그 공덕과 지혜는 상배자 다음으로 수승하느니라.”
  Then they will follow this transformed Buddha and be born in the Pure Land, where they will dwell in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Their virtue and wisdom will be next to those of the higher grade of aspirant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하배자(下輩者)란 시방세계에 있는 여러 천신과 인간들로서 지극한 마음으로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설령 온갖 공덕을 짓지 못하였지만,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단 10념(念)만이라도 무량수불을 염하면서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해야 하느니라.
3) lower grade
[25]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lower grade of aspirants are the devas and humans in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who sincerely desire to be born in that land. Although unable to do many meritorious deeds, they awaken aspiration for the highest Enlightenment and single-mindedly concentrate on Amitayus even ten times, desiring birth in his land.

혹은 심오한 법을 듣고 환희심으로 믿고 즐거워하여 의혹을 일으키지 않으며, 한생각만이라도 저 무량수불을 생각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니라.
When they hear the profound Dharma, they joyfully accept it and do not entertain any doubt; and so, remembering the Buddha even once, they sincerely aspire to be born in that land.

이 사람이 임종할 때에 꿈결에서 부처님을 뵙고 왕생하게 되며, 그 공덕과 지혜는 중배자 다음으로 수승하느니라.”
When they are about to die, they will see the Buddha in a dream. Those aspirants, too, will be born in the Pure Land. Their merit and wisdom will be next to those of the middle grade of aspirant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무량수불의 위신력은 한량이 없어서 시방세계의 한량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칭송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시는 분이 없느니라.
Bodhisattvas' visit to the Pure Land from other lands
[26]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majestic virtue of Amitayus is boundless. All the innumerable, uncountable and inconceivable Buddhas, Tathagatas, in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praise him.

저 동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불국토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러 보살들이 모두 무량수불께서 계신 곳에 와서 뵙고 공경하고 공양하느니라. 그리고 모든 보살들과 성문 대중들은 무량수불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을 듣고서 널리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Innumerable and uncountable bodhisattvas in the Buddha-lands of the eastern quarter, as numerous as the sands of the River Ganges, all without exception, visit Amitayus in order to worship and make offerings to him and to the assembly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Having heard the teaching, they expound it to lead people into the Path of the Buddha.

남방과 서방과 북방과 그 사이의 방향인 4유(維)와 상하 역시 그와 같으니라.”

As in the eastern quarter, so it is in the southern, western and northern, as well as in the four intermediate quarters, above and below."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며 말씀하셨다.
동방에 있는 여러 불국토는
그 수효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네.
그 국토의 보살들이
무량수불을 친견하네.
Verses on bodhisattvas' visit
[27] Then the World-Honored One spoke the following verses:
1. In the eastern quarter there are Buddha-lands,
As numerous as the sands of the River Ganges;
Bodhisattvas dwelling in those lands
Go to pay homage to Amitayus, the Enlightened One.

남방과 서방과 북방과 4유와
위쪽과 아래쪽도 그러하네.
그 국토의 보살들이
무량수불을 친견하네.
2. So it is in the southern, western, and northern quarters,
The intermediate quarters, above and below;
Bodhisattvas dwelling in those lands
Go to pay homage to Amitayus, the Enlightened One.

일체의 여러 보살들이
하늘의 미묘한 꽃과 향과 보배와
한량없는 하늘 옷을 가지고 와서
무량수불께 공양 올리네.
3. All those bodhisattvas, taking with them
Exquisite heavenly flowers,
Precious incense and priceless robes,
Make offerings to Amitayus, the Enlightened One.

모두가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온화하고 아름다운 노래 불러
가장 수승하고 존귀하신 부처님을 찬탄하며
무량수불께 공양 올리네.
4. Playing heavenly music in concert,
Producing harmonious and delicate sounds,
They praise the Most Honored One with hymns
And make offerings to Amitayus, the Enlightened One:

신통과 지혜 모두 통달하여
깊은 법문에 들어 노닐면서
공덕장(功德藏)을 구족하니
미묘한 지혜는 비길 자 없네.
5. 'You have perfected supernatural powers and wisdom,
With which you freely enter the gates of the profound Dharma;
You also possess stocks of merit and virtue
And unparalleled supreme knowledge.

지혜의 태양이 세상을 비추고
생사의 구름을 없애 주니
보살들이 공경하여 세 번 돌고
위없이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하네.
6. Illumining the world with the sun of wisdom,
You disperse the clouds of birth-and-death.'
Having reverently walked round him three times,
They pay homage to the Unsurpassed One.

장엄하고 청정한 국토를 보니
미묘하여 감히 생각하고 헤아리기 어려워
무상심을 발하는 인연으로
우리 국토도 그와 같이 되길 발원하네.
7. Having seen the glorious Pure Land,
Wonderfully resplendent, [273a]
They are led to awaken supernal aspiration
And wish their lands to be like his.

그때에 무량수불[無量尊]께서
기쁜 얼굴로 은은한 미소를 지으시니
입으로부터 무량한 광명이 나와서
시방세계에 두루 비추네.
8. Then Amitayus, the Enlightened One,
Changes his countenance and smiles;
From his mouth come forth innumerable rays of light,
Which illuminate the worlds in the ten quarters.

그 광명 돌아서 몸을 감싸고
세 번 돌고 다시 정수리로 들어가나니
일체의 천인 대중들
뛰고 솟으며 모두 함께 환희하네.
9. These rays of light return, encircle his body
Three times, and enter the crown of his head.
All devas and humans are delighted to see this
And are filled with great joy.

그때 관세음보살이
옷깃 여미고 머리 숙여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무슨 일로 미소지으시나이까?
바라옵나니 그 뜻을 설해 주소서.
10. Avalokiteshvara, the Exalted Being, having respectfully arranged
His clothes and bowed his head,
Asked the Buddha, 'Why are you smiling?
Reverently I enquire. Please tell me why.'

우레와 같은 우렁찬 범음성(梵音聲)이여
여덟 가지 미묘한 소리로 널리 울려
마땅히 보살에게 수기[記]를 줄 것이니
이 말을 잘 명심하여라.
11. The Buddha's majestic voice was like thunder,
Producing wonderful sounds in eight qualities of voice;
'Because I am about to give predictions to the bodhisattvas.
I now explain to you. Listen carefully!

시방세계에 모인 저 보살들
내가 그들의 원하는 바를 모두 알고 있으니
지성으로 장엄하고 청정한 국토 발원하면
반드시 기별을 받아 미래에 부처 이루리라.
12. I am fully aware of the vows of the bodhisattvas
Who come from the ten quarters;
They seek to glorify their pure lands.
After receiving my predictions, they will become Buddhas.

일체의 법이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메아리와 같은 줄 밝게 깨닫고
온갖 미묘한 원을 만족시키면
반드시 그와 같은 국토를 이루리라.
13. While realizing that all dharmas are like a dream,
An illusion or an echo,
They will fulfill their excellent vows
And surely establish pure lands such as this.

법은 번개와 그림자 같음을 깨닫고
끝까지 보살도 닦아 행하여
여러 가지 공덕 두루 갖추고
반드시 기별을 받아 마땅히 성불하리라.
14. Knowing that dharmas are like a flash of lightning or a shadow,
They will pursue the Bodhisattva Path to its end
And amass a stock of merit. After receiving
My predictions, they will become Buddhas.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며
또한 무아임을 통달하여
오로지 청정한 불국토를 구하면
반드시 그러한 국토를 이루리라.
15. While thoroughly knowing that the nature of all dharmas
Is empty and without substance,
They will single-mindedly seek to produce their pure lands
And will surely establish lands such as this.'

여러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시니
안양국(安養國)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 듣고 즐거이 받아 행하면
청정한 저 국토 하루 속히 얻으리라.
16. The Buddhas tell the bodhisattvas to go and pay homage
To the Buddha of the Land of Peace and Provision.
'Listen to his teaching, joyfully receive and practice it,
And then quickly reach the Realm of Purity.

장엄하고 청정한 국토에 이르면
문득 재빠르게 신통력을 두루 갖추고
반드시 무량수불[無量尊]께 기별 받아서
위없는 깨달음 성취하리라.
17. When you go to his glorious Pure Land,
You will instantly acquire supernatural powers.
Having, without fail, received predictions from Amitayus,
You will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저 부처님 본원력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만 듣고도 왕생하길 원하는 자는
모두 다 빠짐없이 그 국토에 이르러
저절로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오르리.
18. By the power of that Buddha's Original Vows,
All who hear his Name and desire birth,
Will, without exception, be born in his land
And effortlessly enter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보살들이 지극한 원을 세워
자신의 국토도 안양국과 다를 바가 없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면
그 이름 시방세계에 두루 떨치리라.
19. Bodhisattvas, if you make vows
That your lands will be like this,
While aspiring to save all beings everywhere,
Your name will be renowned throughout the ten quarters.

수많은 부처님 받들어 섬기고
두루 여러 국토를 날아다니며
공경하고 환희하며 나아갔다가
되돌아서 안양국에 돌아오리라.
20. In order to serve millions of Tathagatas,
You can assume various forms and fly to those lands;
After worshipping them with joyful hearts,
You will return to the Land of Peace and Provision.'

전생에 착한 공덕 못 쌓은 이는
이 경의 가르침 들을 길 없으며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자라야
부처님 바른 법문 들을 수 있네.
21. Without a stock of goodness from past lives,
One cannot hear this sutra;
But those who have strictly observed the precepts
Can hear the right Dharma. [273b]

일찍이 부처님을 친견한 이는
곧바로 능히 이 일을 믿고
겸손하고 공경하여 듣고 받들어 실천하고
뛰고 솟으며 크게 환희한다네.
22. One who has met a World-Honored One in the past
Can accept this teaching.
Such a person respectfully worships, hears
And upholds it, and rejoices so greatly as to dance.

교만하고 삿되고 게으른 자는
이 법 만나도 믿기가 어렵고
과거세에 여러 부처님을 친견했던 이는
즐거이 이러한 가르침을 듣는다.
23. Arrogant, corrupt and indolent people
Cannot readily accept this teaching.
But those who have met Buddhas in their past lives
Rejoice to hear it.

성문 또는 보살이라도
능히 부처님의 거룩한 마음 다 알지 못하네.
비유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자가
길을 가며 사람들을 인도하려 하는 것과 같네.
24. Neither shravakas nor bodhisattvas are able to know
The Sage's Mind exhaustively;
They are like those who are born blind
And yet wish to guide others.

여래의 크신 지혜의 바다는
깊고 넓어서 그 끝이 없으니
성문이나 보살로서 헤아릴 수 없으며
오로지 부처님만이 홀로 명료히 아시네.
25. The ocean of the Tathagata's wisdom
Is deep, vast and boundless.
Even sages of the Hinayana cannot fathom it;
Only the Buddha clearly knows it.

가령 모든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의 도를 구족하여 얻고
청정한 지혜로 본래 공함을 깨닫고
억 겁 동안 부처님의 지혜를 사유하고
26. Let us suppose that all human beings,
Without exception, have attained Enlightenment
And, with pure wisdom, realized original emptiness.
Even if they pondered on the Buddha's wisdom for myriads of kalpas,

있는 힘 다해 끝까지 강설하여도
목숨이 다하도록 오히려 알지 못하니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이 없어
이와 같이 청정함에 도달하리라.
27. And expounded it with the utmost effort all through their lives,
They would not come to exhaustive knowledge of it.
The Buddha's wisdom is thus limitless
And pure to its depths.

이 목숨 오래 살기 매우 어렵고
부처님 만나 뵙기 더욱 어려우며
사람으로 믿음과 지혜를 갖추기도 어려우니
좋은 법문 들었다면 힘써 정진하라.
28, To obtain human life is difficult in the extreme;
To meet a Buddha in this world is also difficult;
It is difficult, too, for a man to attain faith and wisdom.
Once you have heard the Dharma, strive to reach its heart.

법문을 듣고서 결코 잊지 않으며
친견하고 공경하여 큰 경사 얻으면
그는 바로 나의 선한 친구이니
그런 까닭에 마땅히 발심하여라.
29. If you have heard the Dharma and do not forget it,
But adore and revere it with great joy,
You are my good friend. For this reason,
You should awaken aspiration for Enlightenment.

설령 세계를 가득 채우는 불이라도
반드시 뚫고 나아가 불법을 들으면
마침내 부처님 도를 이루어
생사를 헤매는 중생들 제도하리라.
30. Even if the whole world is on fire,
Be sure to pass through it to hear the Dharma;
Then you will surely attain the Buddha's Enlightenment.
And everywhere deliver beings from the river of birth-and-death.


4절 정토안락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국토의 보살은 모두 마땅히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르게 되느니라.
Bodhisattvas in the Pure Land
[28] The Buddha said to Ananda, "All the bodhisattvas in the land of Amitayus will ultimately attain the Stage of Becoming a Buddha After One More Life.

그러나 본원(本願)에 따라 중생을 위해 크나큰 서원의 공덕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두루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고자 하는 보살들은 일생보처에 머무는 것에서 제외하느니라.
Excepted are those who have made original vows for the sake of sentient beings, resolving to cultivate the merit of realizing their great vows to save all sentient beings.

아난아, 저 불국토에 있는 여러 성문들은 몸에서 비치는 광명이 한 길[一尋]에 이르고 보살의 광명은 1백 유순(由旬)을 비추느니라.
Ananda, each shravaka in the Buddha-land of Amitayus emits light for one fathom around his body. The light of a bodhisattva shines a hundred yojanas.

그런데 그 중에서 두 보살이 가장 존귀한데 그 위신력과 광명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느니라.”
There are two bodhisattvas who are the most dignified; their majestic light shines everywhere in the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이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두 보살의 명호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분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고 하고, 또 한 분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라고 이름하느니라.
Ananda asked, "What are the names of those two bodhisattvas?"
The Buddha replied, "One is called Avalokiteshvara and the other, Mahasthamaprapta.

이 두 보살은 그 국토에서 보살행을 닦았으며, 목숨이 다하자 화생(化生)하여 그 극락국에 태어났느니라.
They had both performed Bodhisattva practices in this world, and, at the end of their lives, were born by transformation in that Buddha-land.

아난아, 어떤 중생이든 저 국토에 태어나는 자는 모두 다 32상을 구족하고 지혜가 충만하며, 모든 법에 깊이 들어 요긴하고 오묘한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깨닫고, 신통력이 자재하며, 6근이 밝고 예리하리라.
Ananda, the sentient beings born there all fully possess the thirty-two physical characteristics of a Great Man as well as perfect wisdom, with which they penetrate deeply into the nature of all dharmas and reach their subtle essence. Their supernatural powers know no obstruction, and their physical senses are sharp and clear.

그러므로 아무리 우둔한 근기를 지닌 자라도 두 가지 인[二忍:음향인ㆍ유순인]을 성취하고, 그 중 근기가 수승한 사람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리라.
The bodhisattvas of lesser capacities attain two insights. [273c] Those with superior capacities attain innumerable [merits by the] insights into the non-arising of all dharmas.

또한 그 보살은 성불할 때까지 다시는 3악도에 나는 일이 없고 신통력이 자재하고 항상 숙명통을 얻느니라. 다만 일부러 타방의 5탁악세(濁惡世)에 태어나 중생들과 같은 모습을 나투고자 하는 자는 극락국토에 왕생하는 것에서 제외하느니라.”
Those bodhisattvas will not be subject to rebirth in evil realms before they become Buddhas. Excepted are those who seek birth in the worlds of other quarters during the turbulent period of the five defilements, manifesting their forms in the likeness of the beings there, as in this world. They can freely exercise supernatural powers and always remember their past live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저 국토의 보살들이 아미타불의 위신력에 힘입어 한 번 식사하는 사이에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을 뵙고 공경하고 공양하느니라.
The Buddha said to Ananda, "By the Buddha's power, bodhisattvas of that land go to innumerable worlds of the ten quarters, in as short a time as it takes to eat a meal, in order to pay homage and make offerings to the Buddhas, the World-Honored Ones.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꽃, 향, 기악과 일산, 당번 등 무량무수한 공양 도구가 저절로 나타나느니라.
If those bodhisattvas so wish, uncountable and innumerable offerings, such as flowers, incense, music, silken canopies and banners, spontaneously appear before them as soon as they are imagined.

이러한 것들은 생각하는 대로 즉시 나타나는데[應念卽至], 진귀하고 미묘하고 수승하고 특이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곧바로 이것들을 여러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 대중에게 받들어 뿌리면 허공에서 변화하여 꽃과 일산으로 변하고, 그 광명은 휘황찬란하며 그 향기는 두루 모든 곳에 풍기느니라.
They are rare and marvelous, unlike anything in this world. They are, accordingly, offered to the assemblies of Buddhas, bodhisattvas and shravakas. The flowers remain in the sky and gather into canopies. Their brilliance is dazzling and their fragrance pervades everywhere.

그 꽃의 주위의 둘레가 4백 리인 것이 있고 이와 같이 계속 배가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뒤덮는 것도 있느니라. 공양이 끝나면 앞뒤의 차례대로 자연히 사라져 가느니라.
The flower-canopies range in size, from those of four hundred li in circumference up to those large enough to cover the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As new flower-canopies appear, old ones disappear.

그곳의 모든 보살들은 다 같이 기뻐하며 허공에서 함께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미묘한 소리의 노래로써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느니라.
These bodhisattvas all rejoice together, and, while poised in mid-air, play heavenly music and praise the virtues of the Buddhas with hymns accompanied by wonderful sounds.

그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받아서 한량없이 기뻐하느니라.
They listen to the Dharma and attain immeasurable joy.

이렇듯 부처님께서 공양을 올리고 나서 보살들은 미처 식사를 끝내기도 전에 홀연히 가볍게 날아서 극락세계로 돌아오느니라.”
After thus worshipping the Buddhas, they quickly return home to the Pure Land before their meal."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무량수불께서 여러 성문과 보살 대중들을 위하여 두루 법을 말씀하실 때 모두 다 7보로 된 궁전에 모이게 하여 널리 가르침을 선양하고 오묘한 법을 연설하시니, 환희하고 마음이 열려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가 없느니라.
Amida's preaching and exquisite sounds produced by the trees, etc.
[29] The Buddha said to Ananda, "When Amitayus expounds the Dharma to shravakas and bodhisattvas, they all assemble in the seven-jewelled lecture-hall. There he fully expounds the teachings of the Way and proclaims the wonderful Dharma. The whole audience rejoices, comprehends, and attains Enlightenment.

이때에 사방으로부터 자연히 미풍이 불어와서 널리 보배 나무를 스치면 다섯 가지 소리가 울려 퍼지고,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꽃을 비 오듯 흩날리느니라.
At that time a breeze spontaneously arises in each of the four directions and wafts over the jewelled trees, producing sounds of the pentatonic scales and causing innumerable exquisite flowers to fall like rain and scatter everywhere.

이와 같이 자연의 공양이 끊어지지 않고, 모든 천신들도 천상의 백천 가지의 꽃과 향, 그리고 만 가지의 악기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과 성문 대중들에게 공양하고, 널리 꽃과 향을 흩뿌리고 여러 가지 음악을 연주하느니라.
Natural ways of glorification such as these are endlessly repeated. All the devas bring with them a hundred thousand flowers and pieces of aromatic wood and thousands of musical instruments to use as offerings to the Buddha and the assembly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they scatter flowers, diffuse perfumes everywhere and play various kinds of music.

이처럼 앞뒤를 번갈아 가면서 공양하는데, 그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느니라.”
They come and go in succession, giving way to each other. At such times their joy and happiness are beyond description."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극락세계에 태어난 여러 보살들은 법을 설할 수 있는데, 언제나 바른 법을 선양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따름에 있어 그릇됨이 없고 모자람도 없느니라.
Bodhisattvas' virtues
[30]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bodhisattvas born in that Buddha-land expound the right Dharma whenever appropriate and, because they are in accord with the wisdom of enlightenment, their expositions are infallible and free of error.

그리고 그 불국토에 있는 모든 만물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마음이 없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도 없느니라.
In regard to the myriads of things in that land, they have no thought of possession or attachment.

가고 오고 나아가고 머무름에 있어서 조금도 감정에 묶이는 바가 없이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하느니라. 또한 친한 이나 서먹서먹한 사이도 없으며, 너와 나라는 간격이 없고, 다툼도 없으며, 시비 또한 없어 모든 중생들을 대자비로 이익되게 하는 마음이 가득하니 부드럽고 온화하게 조복시켜 원한의 마음이 없느니라.
Whether going or coming, proceeding or remaining, their hearts are unattached, their acts are in accordance with their will and are unrestricted, and they have no thought of discrimination. In them there is no idea of self or others, no idea of competition or dispute. With the heart of great compassion to benefit all living beings and with tenderness and self-control, they bear no enmity or grudge against anyone.

그리하여 번뇌를 여의고 청정하여 싫증내거나 게으른 마음이 없으며, 평등한 마음[等心]과 수승한 마음[勝心], 깊은 마음[深心]과 안정된 마음[定心], 법을 사랑하고[愛法心], 법을 즐기며[樂法心], 법을 기뻐하는 마음[喜法心]뿐이니라.
Free of mental hindrances, they are pure in mind and without indolence. Unbiased, noble-minded, sincere and tranquil, [274a] their hearts can revere, appreciate and enjoy the Dharma.

모든 번뇌를 멸진하여 악취의 마음을 여의고 모든 보살행을 닦아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구족하고 성취하느니라.
"Having extinguished all evil passions, they are free of those tendencies which cause one to fall into evil realms. They have accomplished all the duties of a bodhisattva and are fully endowed with immeasurable virtues.

그들은 깊은 선정과 여러 가지 6신통(神通)과 3명(明)과 지혜를 얻고, 그 뜻은 7각지(七覺支)에 머물러 마음은 불법을 닦느니라.
Having reached deep meditation and gained supernatural powers, transcendent knowledge and wisdom, they are established in the seven practices leading to Enlightenment and are devoted to the Buddha Dharma.

육안(肉眼)은 청정하고 밝아서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 바가 없고, 천안(天眼)에 통달하여 보는 데 한량없으며, 법안(法眼)으로 여러 현상계의 이치를 관찰하여 도를 성취하고, 혜안(慧眼)으로 진리를 보고 능히 피안에 이르며, 불안(佛眼)을 구족하여 법성을 깨닫느니라.
"With the physical eye they see clearly, discerning objects without error; the sight of their heavenly eye reaches everywhere without limit; with the Dharma-eye they observe and know thoroughly the teachings of the Way; with the wisdom-eye they see truth and attain the Other Shore; with the Buddha-eye they completely realize the nature of dharmas;

그리고 보살들은 걸림없는 지혜[無碍智]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며, 삼계(三界)가 본래 공하고 무소유임을 관찰하여 뜻은 오로지 불법을 구하는 데만 두고, 여러 변재를 구족하여 중생의 번뇌로 인한 걱정거리를 없애느니라.
and with unhindered wisdom they expound the Dharma to others. "Although they observe with the eye of equality that the three worlds are empty and non-existent, they strive to learn the Buddha Dharma and acquire varied eloquence in order to rid living beings of affliction caused by evil passions.

보살은 본래 진여(眞如)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진여와 같이 생멸이 없는 여여(如如)함을 알고 있으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갖가지 방편을 베풀며, 또한 세속의 속된 말을 좋아하지 않고, 언제나 정법의 진리만을 즐겨 말하느니라.
Since all dharmas have arisen from Suchness, the bodhisattvas see them as they really are and know skillful means of speech that will develop good habits and destroy bad ones in living beings. They dislike secular talk, enjoying only right discourse on the Dharma.

또한 여러 가지 선의 근본을 닦고 마음은 항상 부처님의 도를 숭상하며, 일체의 법이 모두 적멸함을 깨달아 육신[生身]과 번뇌 두 가지를 함께 여의었느니라.
"They cultivate roots of virtue, revere the Path of the Buddha, and know that all dharmas are completely tranquil and non-existent. Their samsaric bodies and evil passions have been extinguished together with their remaining karmic tendencies.(그들의 윤회적 몸과 악한 욕망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카르마적 성향과 함께 소멸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오한 불법을 들어도 마음에 의혹을 품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올바르게 수행하느니라.
When they hear the profound Dharma, their minds are free of doubt and fear.

그리고 그 보살들의 대자대비는 심원하고 미묘하여 보살피지 않는 중생이 없으며, 일승법(一乘法)을 끝까지 밝혀서 피안(彼岸)에 이르도록 인도하느니라.
  They are always able to cultivate great compassion which is deep and subtle, embracing everything like the sky and bearing all like the earth. Having reached the end of the Single Path, they have gone to the Other Shore.

이렇듯 보살들은 이미 의혹의 그물을 결정코 끊었으므로 지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아느니라.
Having cut the net of doubt, wisdom arises in their minds. Within the Buddha Dharma there is nothing that they do not comprehend.

또한 보살의 지혜는 큰 바다와 같고 삼매는 수미산과 같이 고요하여 동요가 없으며, 해와 달보다도 더 밝은 지혜 광명은 청정하고 결백한 불법을 원만히 갖추었느니라.
"Their wisdom is like the ocean, and their samadhi, like the king of mountains. The light of their wisdom, being brilliant and pure, outshines the sun and the moon. They are in complete possession of the pure, undefiled Dharma.

그래서 보살들의 마음은 마치 하얀 눈의 설산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평등하게 비추고, 또한 마치 대지와 같아서 청정하거나 더러운 것, 좋고 나쁘고의 차별심이 없으며,
They are like the Himalayas, because the brilliance of their virtues is reflected evenly and clearly. They are like the great earth, because they have no discriminative thoughts, such as pure or impure, beautiful or ugly.

또한 마치 청정한 물과 같아서 번뇌의 여러 가지 때를 씻어내고, 또한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아서 일체 번뇌의 풀섶을 태워 없애며,
They are like pure water, because they wash away afflictions and defilements. They are like the king of fire, because they burn the firewood of all evil passions.

또한 마치 큰 바람과 같아서 모든 세계에서 일어나는 장애를 없애 버리고, 또한 마치 허공과 같아서 일체의 존재에 대해서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They are like a great wind, because they travel throughout the worlds without hindrance. They are like the sky, because they have no attachments.

또한 마치 연꽃과 같아서 여러 세간에 있어서 더러움에 오염되는 일이 없으며, 또한 마치 대승(大乘)과 같아서 여러 중생들을 태우고 생사의 바다를 벗어나게 하며,
They are like lotuses, because nothing in the world can defile them. They are like a great vehicle, because they carry the multitude of beings out of birth-and-death.

또한 마치 두터운 구름과 같으니 법의 우레를 떨쳐 깨닫지 못한 중생을 깨우쳐 주고, 또한 마치 큰비와 같아서 감로법(甘露法)을 내려 중생들을 윤택하게 하며,
They are like a heavy cloud, because they cause the great thunder of the Dharma to roar and awaken the unenlightened. They are like a great rain, because they cause the nectar of Dharma to fall like showers to nourish living beings.

또한 마치 금강산과 같아서 여러 마군과 외도들도 방해하지 못하며, 또한 마치 범천의 왕과 같아서 모든 훌륭한 법 가운데 으뜸이 되며,
They are like the Adamantine Mountains, because demons and non-Buddhists cannot move them. They are like the king of the Brahma Heaven, because they are foremost in the performance of various good deeds.

또한 마치 니구류(尼拘類) 나무와 같아서 널리 모든 것을 덮어주며, 또한 마치 우담발화와 같아서 희유하여 만나기 어려우며,
They are like the nyagrodha tree, because they afford shelter to all beings. They are like the udumbara flower, because they rarely appear in the world and are difficult to encounter.

또한 마치 금시조(金翅鳥)와 같아서 외도들을 위엄으로 조복시키고, 또한 마치 날아다니는 새와 같아서 모아 두거나 쌓아 두는 것이 없으며,
They are like the gold-winged garuda, because they subdue non-Buddhists. They are like a flock of playful birds, because they do not store things.

또한 마치 황소의 왕과 같아서 능히 그를 이길 자가 없으며, 또한 마치 코끼리의 왕과 같아서 삿된 무리들을 조복 받으며, 또한 사자 왕과 같아서 두려워할 바가 없느니라.
They are like the king of bulls, because they are invincible. They are like the king of elephants, because they conquer adversaries. They are like the king of lions, because they fear nothing.

그리고 넓은 것이 허공과 같아서 대자대비를 평등하게 베풀며, 또한 질투심을 모조리 끊어 버렸으므로 남을 이기려고 하지 않으며,
They are like the vest sky, [274b] because their great compassion reaches everywhere without discrimination. They have destroyed envy by not being jealous of the superiority of others.

오로지 법을 즐거이 구하여 마음에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고, 항상 법을 널리 설함에 있어서 피로해 하거나 권태로워함이 없느니라.
With singleness of heart they seek the Dharma tirelessly. Always desiring to expound the doctrine, they never grow weary.

그래서 보살들은 항상 진리의 북을 치고, 불법의 깃발을 세우며, 지혜의 태양을 비추어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Striking Dharma-drums and hoisting Dharma-banners, they cause the sun of wisdom to shine forth and dissipate the darkness of ignorance.

6화경(六和敬:身和敬, 口和敬, 意和敬, 戒和敬 見和敬, 利和敬)을 닦아서 모든 중생들과 화합하며, 언제나 법보시(法布施)를 행하고 용맹하게 정진하여 그 마음이 물러나거나 나약한 생각이 없느니라.
They perform the six acts of accord and respect, and always provide others with the gift of the Dharma. Strong-willed and diligent, their determination never falters.

또한 보살들은 세간의 밝은 등불이 되어 가장 수승한 복전(福田)이 되고, 언제나 중생을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차별이 없으며,
Thus they become lamps to the world and fields of supreme merit; they always become teachers and harbor no thought of discrimination, aversion, or attachment.

오로지 바른 진리만을 좋아하며, 달리 기뻐할 것을 찾지 않느니라.
They seek only the right Path, finding neither joy nor sorrow in other matters.

여러 가지 탐욕심을 뽑아내고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므로, 그 공덕과 지혜가 수승하여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They extract thorns of passion and give peace of mind to multitudes of beings. Because of their supreme wisdom, there is no one who does not revere them.

보살들은 세 가지 더러움의 장애[三垢障]를 없애고 온갖 신통력에 자재하며,
"They have destroyed the hindrances of the three defilements and mastered the supernatural powers.

원인의 힘[因力], 연의 힘[緣力], 의지의 힘, 서원의 힘, 방편의 힘, 변하지 않는 힘, 선행의 힘, 선정의 힘, 지혜의 힘, 다문(多聞)의 힘,
They also possess the power of good karma from their past lives, the power of guiding others, of the will, of vowing, of employing skillful means, of continuous practice, of doing good, of meditation, of wisdom, of hearing the Dharma widely.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六波羅蜜]의 힘,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관찰하는 힘과 6신통의 힘, 3명(明)의 힘, 법답게 중생들을 조복 받는 힘 등 이와 같이 일체의 힘들을 구족하고 있느니라.
They also possess the power of the Six Paramitas -- generosity, morality, patience, effort, meditation and wisdom -- and the power of right mindfulness, concentration, contemplation, the supernatural faculties, transcendent knowledge, and the power to tame and train living beings in the right way, as well as other powers.

또한 보살들은 그 몸매와 상호와 공덕과 변재를 두루 구족하고 장엄하여 그것과 비길 만한 것이 없으며, 그들은 무량한 제불을 항상 공경 공양하며, 여러 부처님들도 함께 보살들을 칭찬하고 찬탄하시느니라.
"Fully possessed of all the physical characteristics and marks, virtues, and eloquence, they have no equals. They revere and worship innumerable Buddhas and are, in turn, always praised by them.

보살은 모든 바라밀을 끝까지 성취하고,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와 나고 멸함이 없는 삼매 등 모든 삼매문을 닦아서 성문과 연각의 지위를 멀리 여의었느니라.
They have completed the bodhisattva's course of Paramitas and practiced the samadhis of emptiness, non-form and non-desire, the samadhi of non-arising and non-ceasing and many other samadhis; they have gone far beyond the stages of shravakas and pratyekabuddhas.

아난아, 저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나는 단지 그대를 위하여 간략하게 말하였을 뿐, 만일 자세하게 말한다면 백천만 겁에도 그 끝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니라.”
"Ananda, bodhisattvas of that land have innumerable virtues such as these, of which I have given you only an outline. If I were to expound them in full detail, a thousand million kalpas would not be long enough to do so."


5절 세간의 고통

부처님께서 미륵보살과 여러 천신 및 인간들에게 말씀하셨다.
“극락국토에 있는 성문과 보살들의 공덕과 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또한 그 국토가 미묘하고 안락하며 청정한 것도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으니라.
Three kinds of evil passions and their consequences
[31] The Buddha said to the Bodhisattva Maitreya and to devas and humans, "The virtue and wisdom of shravakas and bodhisattvas in the land of Amitayus are indescribable. That land is sublime, blissful, serene and pure.

그러니 어찌하여 중생들은 힘써 선을 행하고, 부처님 도의 순응함을 믿어 상하 귀천의 차별 없이 평등하고 또한 막힘 없이 통달하여 자유로운 생활을 구하지 않는가?
Why do you not diligently practice good, reflect on the naturalness of the Way and realize that it is above all discriminations and is boundlessly pervasive?

사람들은 각자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여 스스로 구하면, 반드시 윤회의 고리를 끊고 안양국(安養國)에 왕생하여 단번에 5악취(惡趣)를 여의게 되고, 악도가 저절로 닫히며, 성불의 도에 오르게 되느니라.
You should each make a great effort to attain it. Strive to escape from Samsara and be born in the Land of Peace and Provision. Then, the causes of the five evil realms having been destroyed, they will naturally cease to be, and so you will progress unhindered in your pursuit of the Way.

그런데 가기 쉬운 극락에 가는 사람이 없구나. 그 나라에 가는 일은 어느 누구도 거역하거나 방해하지 않으며 자연히 이끌려서 가게 되느니라.
The Pure Land is easy to reach, but very few actually go there. It rejects nobody, but naturally and unfailingly attracts beings.

그런데 어찌하여 세간의 일을 버리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성불의 덕을 구하지 않는가?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한량없는 수명을 얻고 지극한 즐거움이 끝이 없느니라.
Why do you not abandon worldly matters and strive to enter the Way? If you do, you will obtain an infinitely long life and one of limitless bliss.

그러나 세간의 사람들은 저속하여 급히 닦아야 할 성불의 길은 뒤로 미루고, 하잘것없는 세속 일에 골몰하여 서로 다투느니라. 그들은 세상의 모진 죄악과 심난한 고통 속에서 다만 자신을 위하여 생활에 허덕이고 있느니라.
"People of the world, being weak in virtue, engage in strife over matters which are not urgent. In the midst of abject wickedness and extreme afflictions they painstakingly toil for their living.

그래서 신분이 존귀한 자도 없고, 비천한 자도 없고, 빈한한 자도 없고, 부유한 자도 없으며, 젊었거나 늙었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관계 없이 모두가 돈과 재물 때문에 시름하며, 가진 자이거나 못 가진 자이거나 모두 같으니라.
그리하여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고통스런 생각을 거듭 쌓고, 마음으로 헛되이 욕심을 부려 편안한 때가 없느니라.
Whether noble or corrupt, rich or poor, young or old, male or female, all people worry about wealth and property. In this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both have their anxieties. Groaning in dejection and sorrow, they pile up thoughts of anguish or, [274c] driven by inner urges, they run wildly in all directions and they have no time for peace and rest.

그래서 논밭이 있으면 논밭 때문에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하고, 소나 말 등 6축(畜)과 노비, 돈, 재물, 옷, 음식,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걱정 아닌 것이 없으며, 생각을 거듭하여도 한탄을 계속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느니라.
"For example, if they own fields, they are concerned about them. If they have houses, they worry about them. They are also anxious about their six kinds of domestic animals, such as cows and horses, about their male and female servants, money, wealth, clothes, food and furnishings. With deepening troubles they sigh repeatedly, and anxiety increasingly torments and terrifies them.

때로는 뜻밖의 수재나 화재, 도적의 환난을 만나고 원한이 있는 집안이나 빚쟁이를 만나 재물을 태워 버리거나 떠내려보내고 빼앗기기도 하며 흩어져 없어지느니라. 이로 인한 근심으로 응어리져 가슴에 맺히고 해소되지 못하며, 또한 분한 마음이 맺혀 있어 걱정과 고뇌를 여의지 못하며, 그 마음과 생각이 굳게 들어앉고 굳어서 헤어나지 못하느니라.
Sudden misfortune may befall them: all their possessions may be destroyed by fire, swept away by floods, plundered by robbers, or seized by adversaries or creditors. Then gnawing grief afflicts them and incessantly troubles their hearts. Anger seizes their minds, keeps them in constant agitation, increasingly tightens its grip, hardens their hearts and never leaves them.

혹 재난으로 몸이 상하여 목숨을 다하게 되면 재물은 고스란히 버리고 떠나야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죽음까지 따라가는 것이 없느니라.
이는 존귀하거나 부유하더라도 역시 그러한 환난이 있기 마련이며, 근심과 두려움은 끝이 없으니, 결국 갖가지 근심과 두려움은 마치 어둠 속이나 불 속의 괴로움과 같으니라.
"When their lives end in such agonizing conditions, they must leave everybody and everything behind. Even nobles and men of wealth have these worries. With much anxiety and fear, they endure such tribulations. Breaking out in cold sweats or fevers, they suffer unremitting pain.

그런데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궁핍하여 항상 가진 것이 없어서 논밭이 없으면 또한 걱정하며 밭을 가지려 하고, 집이 없으면 집을 가지려 하고, 소와 말 등 6축과 노비, 돈, 재물, 옷, 음식과 세간살이가 없으면 또한 그것을 가지려고 걱정하느니라.
"The poor and the underprivileged are constantly destitute. If, for example, they have no fields, they are unhappy and want them. If they have no houses, they are unhappy and want them. If they have none of the six kinds of domestic animals, such as cows and horses, or if they have no male and female servants, or lack money, wealth, clothes, food, or furnishings, they are unhappy and want those as well.

마침내 한 가지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부족하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부족하여 이것저것을 다 가지려고 애를 쓰다가 어쩌다 간혹 다 갖추어도 곧 다시 잃게 되느니라.
If they possess some of them, others may be lacking. If they have this, they do not have that, and so they wish to possess all. But, even if by some chance they come to possess everything, it will soon be destroyed or lost.

이와 같이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다시 구하려고 해도 때에 맞추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라. 의도하고 생각해 본들 아무런 이익이 없고, 몸과 마음이 피로하니, 앉으나 서나 불안하고 근심이 끊이지 않느니라.
Then, dejected and sorrowful, they strive to obtain such things again, but it may be impossible. Brooding over this is to no avail. Exhausted in mind and body, they become restless in all their doings, and anxieties follow on their heels. Such are the troubles they must endure.

그리하여 그 근심과 고통이 끝이 없으니, 마치 얼음을 안고 불을 품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Breaking out in cold sweats or fevers, they suffer unremitting pain.

그리고 그러한 괴로움과 근심 때문에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나니, 평소에 착한 일을 행하거나 진리를 닦거나 공덕을 쌓지도 못한 채 수명이 다하여 죽어서 홀로 저승길을 가게 되며, 윤회하여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그 선악의 길마저도 모르고 가게 되느니라.
Such conditions may result in the sudden end of their lives or an early death. Since they have not done any good in particular, nor followed the Way, nor acted virtuously, when they die, they will depart alone to an inferior world. Although they are destined to different states of existence, none of them understands the law of karma that sends them there.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어버이와 자식, 형제, 부부와 가족, 그리고 안팎의 친척간에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서로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어야 할지니,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도와 탐하거나 인색하게 아끼는 일이 없어야 하며, 말과 안색은 항상 부드럽게 하여 서로가 거스르지 말아야 하느니라.
"People of the world, parents and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 husbands and wives, and other family members and kinsmen, should respect and love each other, refraining from hatred and envy. They should share things with others, and not be greedy and miserly, always speak friendly words with a pleasing smile, and not hurt each other.

혹 어떤 때에는 서로 다투어 화내고 분노하는 일이 있어 비록 금생에 원한이 적고 미워하는 정도가 사소해 보일지라도, 내세에는 그 마음이 커져 큰 원수가 되고 마느니라.
"If one disagrees with others and grows angry, however small one's grudge and enmity may be in this life, these will increase in the life to come until they grow into a mass of hostility.

왜냐 하면 세간의 일은 문득 서로 미워하고 괴롭혀도 당장 사이가 깨어지지 않지만, 금생에 이를 풀지 못하고 죽으면서 자연히 독을 품고 분노가 쌓여 치솟는 화가 자연히 깊게 새겨지고 자라나서 여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 생에는 다 함께 같은 세상에 원수로 태어나서 서로 앙갚음을 하게 되느니라.
For, if people are engaged in tormenting and harming each other in this life, such conflict may not immediately end in mutual destruction. But persistent bitterness and raging fury are impressed upon the mind, and thus naturally leave indelible marks on consciousness, so that those involved will be reborn about the same time to take revenge on each other.

사람은 세간의 애욕의 바다에 홀로 태어났다가 홀로 죽는 것이며, 홀로 가고 홀로 오느니라. "Further, in the midst of worldly desires and attachments one comes and goes alone, is born alone and dies alone.

자기가 지은 고통과 즐거움은 스스로 감당할 뿐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느니라.
After death, one goes to a painful or to a pleasant state of existence.

선함과 악함이 변화하여 재앙과 복덕이 서로 달리하여 그 과보는 이미 엄격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마땅히 홀로 받아야 하느니라. 그래서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몸을 바꿀 때 행복한 처소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재앙이 많은 처소로, 각기 태어날 곳을 달리하여 이미 업에 따라 엄연히 정해진 처소로 어김없이 나아가야 하느니라.
Each receives his karmic consequences and nobody else can take his place. In accordance with different acts of good and evil, people are destined to realms of bliss or suffering. Unalterably bound by their karma, they depart for those realms all alone. Having reached the other world, they cannot see each other. The law of good and evil naturally pursues them, and wherever they may be reborn, distance and darkness always separate them.

그리하여 가는 길은 멀고 어두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오래 되고 길며, 가는 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시 만나볼 기약이 없으니 서글프고 아득하여 다시금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느니라.
Since their paths of karma are different, it is impossible to tell the time of their reunion, and so difficult to meet again. Can they ever see each other once more?

그런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속세의 어지럽고 비루(鄙陋)한 것들을 버리지 않고, 몸이 건강할 때 노력하여 열심히 선을 닦지 않고 정진하여 고해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즐거움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Why do they not abandon all worldly [275a] involvements and strive, while they are strong and healthy, to pursue the good and diligently seek deliverance from Samsara? If they do, they will be able to attain infinite life. Why do they not seek the Way? What is there in this world that should be longed for? What pleasure is there that ought to be sought after?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선을 행하면 좋은 과보를 받고, 부처님 도를 실천하여 부처님의 도를 얻는 것을 믿지 않고, 또한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은혜를 베풀면 복을 얻는 것을 믿지 않느니라. 이처럼 선하고 악한 일에 대하여 도무지 믿지 않고, 부정하여 마침내 복을 받지 못하느니라.
"Thus people of the world do not believe in pursuing good and receiving reward or in practicing the Way and attaining Enlightenment; neither do they believe in transmigration and retribution for evil acts or reward for good ones, such as obtaining merit by helping others. Believing that these do not exist, they totally reject such a view.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견해를 서로서로 보고 배워서 앞사람이 하는 것을 뒷사람들이 똑같이 행하여 서로 이어받아 아버지는 자식에게 교훈으로 남기려 하느니라.
"Further, by so doing, they cling to their own views more tenaciously. Later generations learn from previous ones to act likewise. Fathers, perpetuating their wrong views, pass them on to their children.

선인인 조상들은 모두 평소에 선을 행하지 않고 도덕을 알지 못하고 행동은 어리석고 정신은 어둡고 마음은 막히고 뜻은 닫혀 있느니라. 나고 죽는 생사의 이치와 선악의 도리를 스스로 알 수도 없고, 또 이를 말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업보를 다투듯이 짓기 때문에 한 사람도 인과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조금도 괴이하지 않느니라.
Since parents and grandparents from the beginning did not do good deeds, were ignorant of the Way, committed foolish acts, and were benighted, insensitive and callous, their descendants are now unable to realize the truth of birth-and-death and the law of karma. There is no one to tell them about this. Nobody seeks to know the cause of fortune and misfortune, happiness and misery, although these states result from such acts.

태어나고 죽는 것은 변함 없는 떳떳한 도리이며 영원히 이어져 가는 것이니라.
"The reality of birth-and-death is such that the sorrow of parting is mutually felt by all generations.(탄생과 죽음의 현실은 이별의 슬픔을 모든 세대가 함께 느끼는 그런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어버이는 자식을 잃고 통곡하며, 혹은 자식이 어버이를 여의고 통곡하며, 형제간 또는 부부간에도 다시 서로 통곡하며 울기도 하느니라.  
A father cries over the death of his children; children cry over the death of their father. Brothers, sisters, husbands and wives mourn each other's death.

죽음에 있어 상하가 뒤바뀌어 차례가 없다는 것이 무상(無常)의 근본이기 때문이니라. According to the basic law of impermanence, whether death will occur in order of seniority or in the reverse is unpredictable.

모든 것은 참으로 빨리 흘러가 버릴 뿐 항상 보전되는 것이란 없음을 가르치고 말하고 열어 주고 이끌어 주어도 그것을 믿는 자는 적어서 생사는 돌고 돌아 그치지 않느니라.
  All things must pass. Nothing stays forever. Few believe this, even if someone teaches and exhorts them. And so the stream of birth-and-death continues everlastingly.

이러한 사람은 미망(迷妄) 때문에 눈이 어두워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덤비며, 경전의 가르침을 믿지 않느니라. 마음은 널리 내다보는 지혜가 없어 각자가 쾌락만을 추구하므로 그 애욕 때문에 미혹되어 도덕을 깨닫지 못하고, 화내고 분노하는 일에 침몰되어 재물과 색을 탐하되 마치 굶주린 이리와 같으며, 이로 말미암아 도를 얻지 못하느니라. 그리하여 다시 3악도의 괴로움에 빠지고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니, 참으로 애통하고 심히 마음이 상하는 일이니라.
"Because they are stupid and callous, such people do not accept the teachings of the Buddha; they lack forethought, and only wish to satisfy their own desires. They are deluded by their passionate attachments, unaware of the Way, misguided and trapped by anger and enmity, and intent on gaining wealth and gratifying their carnal desires like wolves. And so, unable to follow the Way, they are again subject to suffering in evil realms in an endless cycle of birth-and-death. How miserable and pitiable this is!

어떤 때는 가족 중에 어버이와 자식, 형제나 부부간에도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서 더욱이 서로 애통하고 슬퍼하며, 그리움과 근심에 얽매이고, 마음은 비통하여 서로 잊지 못하고 보고 싶어하되, 해가 다하고 세월이 흘러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In the same family, when one of the parents, children, brothers, sisters, husband or wife dies, those surviving mourn over the loss, and their attachment to the deceased persists. Deep sorrow fills their hearts and, grief-stricken, they mournfully think of the departed. Days pass and years go by, but their distress goes on.

그러므로 참된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건만 마음이 열리거나 밝아지지 않아 죽은 이의 은혜와 애정을 생각하면서 욕정을 여의지 못하며, 마음은 혼미하고 몽매하고 닫히고 막히어 어리석음과 미혹에 덮여 있을 뿐이니라.
Even if someone teaches them the Way, their minds are not awakened. Brooding over fond memories of the dead, they cannot rid themselves of attachment. Being ignorant, inert, and illusion-bound, they are unable to think deeply,

따라서 깊이 생각하고 오랫동안 잘 헤아려 마음을 스스로 가다듬어 열심히 도를 정진할 수 없으며, 세간의 일들을 깨끗이 단절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헤매다가 수명과 나이가 다함에 이르게 되어 마침내 부처님의 도를 얻을 수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느니라.
to keep their self-composure, to practice the Way with diligence, and to dissociate themselves from worldly matters. As they wander here and there, they come to their end and die before entering on the Way. Then what can be done for them?

세간이 어지럽고 인심이 거칠어져 모두 애욕을 탐하게 되니 부처님의 도에 미혹한 자는 많고 진리를 깨닫는 자는 적으니라.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efiled, deeply troubled and confused, people indulge their passions. Hence, many are ignorant of the Way, and few realize it.

세간은 부질없이 바쁘기만 하니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없느니라.
Everyone is restlessly busy, having nothing upon which to rely.

그리고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모두가 힘들게 고생하지만 세상일에 얽매여 표독스러움만을 품게 되는데, 이 악한 기운이 마침내 도리에 어긋나 커다란 재앙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Whether moral or corrupt, of high or low rank, rich or poor, noble or base, all are preoccupied with their own work. They entertain venomous thoughts, creating a widespread and dismal atmosphere of malevolence.

이렇듯 천지의 바른 도리를 거역하고 인간의 참다운 도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그릇된 도리는 앞을 다투어 거듭되고 그것이 쌓이면 다만 극악한 죄업의 결과만을 기다릴 뿐이니라.
Subversive activities are planned, contrary to the universal law and the wishes of the people. "Injustice and vice inevitably follow and are allowed to run their course unchecked until evil karma accumulates to the limit.

그래서 수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 목숨을 빼앗아 악도(惡道)에 떨어져 생사를 거듭하면서 괴로움을 받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악도에서 다시 돌고 돌아 수천억 겁을 지나도 그곳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으며,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할 뿐이니라.”
    Before they expect their lives to end, people meet sudden death and fall into evil realms, where they will suffer excruciating torments for many lives. [275b] They will not be able to escape for many thousands of kotis of kalpas. How indescribably painful! How pitiable that is!"

부처님께서 미륵보살과 여러 천신 및 인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그대들에게 세간의 일에 대해 말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이러한 까닭에 세상일에 얽매여 부처님의 도를 얻지 못하나니,
Shakyamuni's encouragement to do good
[32] The Buddha said to the Bodhisattva Maitreya and to devas and humans, "I have told you the truth about people of the world. Such being their mode of life, they are unable to enter on the Way.

마땅히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고 헤아려 모든 악을 멀리 여의고, 옳은 것을 선택하여 열심히 그것을 실천해야 하느니라.
Therefore, you should think deeply and try to avoid various evil acts; choose the good and diligently practice it.

애욕과 영화로움은 항상 보존되는 것이 아니며 모두 덧없이 나뉘고 흩어지고 마는 것이니, 즐거워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A life of addiction to desires or a life of pomp and vainglory cannot last long. All must part; there is nothing you can truly enjoy.

그러므로 다행히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를 만났다면 마땅히 열심히 정진해야 하느니라.
Since you have encountered a Buddha in this world, you should assiduously practice the Way.

그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안락국(安樂國)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지혜가 밝게 통달하여 공덕이 수승한 덕을 성취할 것이니라.
Anyone who sincerely desires birth in the Land of Peace and Bliss is able to attain purity of wisdom and supremacy in virtue.

그러므로 욕심대로 행동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거스르지 말 것이며, 옳은 일을 할 때에는 남보다 뒤쳐져서는 아니 되느니라.
You should not follow the urges of passions, break the precepts, or fall behind others in the practice of the Way.

만일 그 뜻에 의심나는 것이 있고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면 반드시 내게 물어라. 그러면 마땅히 그를 위하여 그 뜻을 설할 것이니라.”
If you have doubts and are not clear about my teaching, ask me, the Buddha, about anything and I shall explain it to you."

미륵보살이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 뒤에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위신력은 존귀하시고 말씀하시는 바가 시원하고 훌륭하십니다.
The Bodhisattva Maitreya prostrated himself on the ground and said, "Your majestic glory, O Buddha, is awe-inspiring, and your exposition is most pleasing to me.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 깊이 생각하니,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천박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Having heard your teaching, I feel deeply that people of the world are just as you have described.

이제 부처님께서 자비와 연민으로써 대도(大道)를 밝게 드러내시니 귀와 눈이 열리고 밝고 넉넉하여 해탈을 얻게 되었습니다.
Your compassionate revelation of the Great Way has opened our eyes and ears, awakening us to emancipation.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듣고 어찌 환희하지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Those who have heard your teachings are all filled with joy.

모든 천신과 사람, 미물이나 곤충의 무리들이 모두 자비와 은혜를 입고서 근심과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Devas, humans and lesser beings, including even those that crawl, have all been blessed by your compassionate guidance and have thereby attained deliverance from suffering and affliction.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매우 깊고 훌륭한 것이니, 지혜로써 밝게 보시는데, 상하, 8방(方), 과거 미래 현재 등 모든 것에 두루 통달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The Buddha's admonition is indeed profound and appropriate, and his wisdom clearly surveys things in the eight quarters, above and below, penetrating all 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이제 저희들이 제도 받고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과거 세상[前世]에서 도를 구할 때 온갖 괴로움을 겸허하게 참아 내신 까닭입니다.
Our emancipation in the present life is entirely due to the Buddha's perseverance and painstaking efforts in his former lives when he was seeking the Way.

그 은혜와 공덕은 두루 세상을 덮고 또한 복덕은 태산보다 높으며, 그 광명은 두루 비추고, 일체 만법이 공한 이치임에 통달하시어 중생들을 열반에 들게 하십니다.
His benevolence covers the whole world, and the extent of his merit is majestic and glorious. His light penetrates to the utmost ends of space and guides people to Nirvana.

부처님께서는 경전으로 가르치기도 하며, 때로는 위엄으로 (악마를) 제압하여 교화하시니 시방세계를 감동시킴이 그 끝이 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He reveals the sutras, destroys wrong views and subdues demons. Thus his influence extends boundlessly in the ten quarters.

부처님께서는 진리의 왕이시고 그 존귀함이 여러 성인들보다 뛰어나시어 널리 일체 천상이나 인간들의 스승이 되고, 중생들 마음속에 원하는 바에 따라서 모두 부처님의 도를 얻게 하십니다.
The Buddha is the King of the Dharma; his virtue surpasses that of all the sages. He is the Teacher of all devas and humans and enables them to enter on the Way according to their wishes.

이제 저희는 부처님을 만나 뵈었을 뿐만 아니라 무량수불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어찌 환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참으로 부처님의 은혜로 마음이 열리고 광명을 얻었습니다.”
Having been able to meet you, O Buddha, and also to hear the Name of Amitayus, we have all attained joy and illumination."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이 옳으니라. 만일 부처님을 자비와 공경의 마음으로 대하는 자는 실로 선근 공덕이 되느니라.
Shakyamuni's admonition against evil acts
[33] The Buddha said to Maitreya, "What you say is true. Those who adore and revere a Buddha attain great merit.

천하에 부처님께서 출세하심이 희유하건대[久久] 지금 출현하셨느니라.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성불하여 불법을 널리 설하고 깨달음의 가르침을 선양하고, 온갖 의혹의 그물을 끊고 애욕의 근본을 뽑아서 온갖 악의 근원을 막았으며, 삼계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데 걸림이 없느니라.
Buddhas very rarely appear in the world. Having become a Buddha in this life, I have taught the Dharma, expounded teachings of the Way, cleared people's doubts, eradicated the causes of lust and desire, and blocked the source of all evils. Visiting various places in the three worlds, I encounter no obstructions.

그리고 내가 설한 이 법문의 지혜는 모든 진리의 정수이며, 가장 요긴한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소상하고도 분명하느니라.
The wisdom disclosed in the scriptures provides for all ways of life. It keeps essential principles together and clearly reveals the truth.

내 이제 5취(趣: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의 중생들에게 베풀어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들을 제도하여 생사를 여의고 열반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느니라.
I have explained the reality of the five realms, thereby freeing those who have not yet attained deliverance and distinguishing between the paths of Samsara and Nirvana.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라. 그대는 헤아릴 수 없는 오랜 겁 이전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보살행을 닦아서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였으니, 그대로 인하여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이른 사람들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느니라.
"Maitreya, you should know that you have, for innumerable kalpas, been perfecting bodhisattva practices to save sentient beings. Incalculable indeed is the number of beings who under your guidance have attained the Way and reached Nirvana. [275c]

그러나 그런데도 그대와 시방세계의 여러 천신과 여러 중생들은 영겁에서 지금까지 5도(道: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를 윤회하면서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받은 고통은 말할 수조차 없고, 현세까지 아직 생사의 일을 끊지 못하고 있느니라.
From time immemorial, you and all the devas and humans in the ten quarters and the four groups of followers have been floundering in the five realms of Samsara, undergoing indescribable troubles and afflictions. Until you were born in this life, you, too, underwent endless cycles of birth-and-death.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부처님과 만나서 경전과 교법을 듣고 또한 무량수불에 관하여 들을 수 있으니 어찌 기쁘고 쾌활한 일이 아니겠느냐?나는 지금 그대들을 더욱 기쁘게 해 주고자 하느니라.
  Now you have encountered a Buddha, listened to his expositions of the Dharma, and been able to learn about Amitayus. What pleasure and joy this is for you and for me to share.

그대들 또한 역시 스스로 나고, 죽고, 늙고, 병드는 고통과 괴로움을 싫어해야 하느니라.
"It is time for all to seek deliverance from the pains of birth, death, old age, and sickness.

세상은 죄악으로 넘치고 부정하여 진정한 즐거움이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올바르게 하여 더욱더 많은 선행을 지어야 하느니라.
Outflows of depravity and defilement are everywhere, and there is nothing in which you can find true joy.

스스로의 인격을 닦고 육신을 청결히 하고 마음의 때를 씻어 없애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성실히 하여 겉과 속이 서로 어울리도록 해야 하느니라.
You should resolutely do worthy deeds with decorum, strive to do more good, control and purify yourselves, wash off the mind's defilements, be sincere in word and deed, and allow no contradiction between what you think and what you do.

또한 자신을 제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제하며, 맑은 정신으로 깨달음을 구하고, 서로 권하여 선근을 쌓아야 하느니라.
Seek your own emancipation and then turn to saving others; straightforwardly aspire to be born in the Pure Land and accumulate roots of virtue.

그러면 비록 한 생 동안의 수고로운 고통을 겪지만, 그것은 잠깐 사이에 지나고, 다음 생에는 무량수불의 국토에 태어나 유쾌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한량없으며, 진리의 덕을 밝히고 얻어 생사의 뿌리를 영원히 뽑아 버리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괴로움과 번뇌는 없게 되느니라.
However hard you may practice in this life, it can only be for a short while. In the life to come you will be born in the land of Amitayus and enjoy endless bliss there. Being forever in accord with the Way, you will no longer be subject to birth-and-death and be free of the afflictions caused by greed, anger and stupidity.

그리고 그 수명은 1겁 또는 1백 겁, 천만억 겁을 살려고 한다면 자유자재로 그 뜻에 따라 얻게 되며, 모든 것이 진리에 따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세계이며, 안락한 열반의 경지와 같으니라.
If you wish your life to be as long as a kalpa, a hundred kalpas, or ten million kalpas, it will be just as you please. You will dwell in effortless spontaneity and attain Nirvana.

그러므로 그대들은 모름지기 각자가 정진하여 마음이 서원하는 바를 구해야 하느니라.
You should each diligently seek to realize your aspiration.

만약 의혹을 일으켜 도중에 후회하고 그만두면 스스로 허물이 되어 그 국토의 가장자리에 있는 7보의 궁전에 태어나 5백 년 동안이나 여러 액난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라.”
Do not entertain any doubt or give up your endeavor, lest as a result of that fault you should be born into the seven-jewelled palace in the border region of the Pure Land and be subject to various disadvantages for five hundred years."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귀중하신 가르침을 받은 이상 오로지 정성을 다하여 닦고 배워서 가르치신 바대로 받들어 행하고 결코 의심하지 않겠나이다.”
Maitreya said to the Buddha, "Having received your considerate admonition, we will diligently practice the Way and follow your teaching. We will not allow any doubt to a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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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무량수경 上 2


2절 아미타불극락정토장엄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열반에 드셨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 성불하지 못하였습니까? 혹은 지금 성불하여 현재에 계시옵니까?”
Dharmakara's attainment of Buddhahood
[10] Ananda asked the Buddha, "Has the Bodhisattva Dharmakara already attained Buddhahood and then passed into Nirvana? Or has he not yet attained Buddhahood? Or is he dwelling somewhere at present?"

이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서방에 계시는데, 여기서부터 10만억 국토를 지나가면 그 부처님의 세계가 있는데 이를 안락(安樂)이라고 하느니라.”
The Buddha replied to Ananda, "The Bodhisattva Dharmakara has already attained Buddhahood and is now dwelling in a western Buddha-land, called 'Peace and Bliss,' a hundred thousand kotis of lands away from here."

아난이 다시 여쭈었다.
“그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이후 얼마나 됩니까?”
Ananda further asked the Buddha, "How much time has passed since he attained Buddhahood?"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불하신 지는 이미 무려 10겁이 지났느니라.
The Buddha replied, "Since he attained Buddhahood, about ten kalpas have passed."

그 불국토는 금ㆍ은ㆍ유리ㆍ산호ㆍ호박ㆍ차거(車𤦲)ㆍ마노(瑪瑙)의 7보로써 땅이 이루어져 있고, 넓고 광대하여 끝이 없으며, 그 보배들은 서로 섞여 있어 찬란하게 빛나고 또한 아름다우며 화려하고 청정하게 장엄된 것이 시방의 모든 세계의 것보다도 뛰어났는데, 이 보배는 마치 제6천(第六天:他化自在天)의 보배와 같으니라.
He continued, "In that Buddha-land, the earth is composed of seven jewels -- namely, gold, silver, beryl, coral, amber, agate and ruby -- which have spontaneously appeared. The land itself is so vast, spreading boundlessly to the farthest extent, that it is impossible to know its limit. All the rays of light from those jewels intermingle and create manifold reflections, producing a dazzling illumination. Those pure, superb and exquisite adornments are unsurpassed in all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They are the finest of all gems, and are like those of the Sixth Heaven.

또한 그 국토에는 수미산(須彌山)이나 금강철위산[金剛圍]과 같은 일체의 산이 없고 또한 크고 작은 바다, 계곡, 시내, 우물, 웅덩이 등이 없지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보고자 한다면 즉시 나타나느니라.
In that land, there are no mountains, such as Mount Sumeru and the Encircling Adamantine Mountains. Likewise, there are neither oceans nor seas, valleys nor gorges. But one can see those manifestations by the Buddha's power if one so wishes.

또한 지옥과 축생과 아귀 등의 여러 고난 가득한 악취(惡趣)도 없으며,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도 없어서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니, 항상 온화하고 쾌적하니라.”
In that land there is no hell; neither are there realms of hungry spirits and animals nor other adverse conditions. Neither do the four seasons of spring, summer, autumn and winter exist. It is always moderate and pleasant, never cold or hot."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 국토에 수미산이 없다면 그곳에는 사천왕(四天王) 및 도리천(忉利天) 등은 어디에 의지해 머무를 수 있나이까?”
Then, Ananda asked the Buddha, "If, World-Honored One, there is no Mount Sumeru in that land, what sustains the Heaven of the Four Kings and the Heaven of the Thirty-three God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욕계 제3천인 염천(炎天) 내지 색구경천(色究竟天)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디에 의지하여 머무는가?”
The Buddha said to Ananda, "What sustains Yama, which is the Third Heaven of the world of desire, and other heavens up to the Highest Heaven of the world of form?"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자신이 지은 업력의 과보는 불가사의하므로 거기에 합당한 과보로써 천계에 의지해 있나이다.”
Ananda answered, "The consequences of karma are inconceivable."

이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의 행업과 과보가 불가사의하다면 모든 부처님의 세계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The Buddha said to Ananda, "Inconceivable indeed are the consequences of karma, and so are the worlds of the Buddhas.

그곳에는 모든 중생들도 지은 공덕과 선업에 의하여 나타난 땅에 머물러 사느니라. 그러므로 수미산이 없더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느니라.”
By the power of meritorious deeds, sentient beings in that land dwell on the ground of karmic reward. That is why those heavens exist without Mount Sumeru."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이 법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장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의혹을 풀어 주고자 이러한 뜻을 여쭈었나이다.”
Ananda continued, "I do not doubt this myself but have asked you about it simply because I wished to remove such doubts for the benefit of sentient beings in the future."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위신력과 광명은 가장 존귀하며 뛰어나서 다른 모든 부처님들의 광명으로서는 능히 미칠 수 없느니라.
Amida's light
[11]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majestic light of the Buddha Amitayus is the most exalted. No other Buddha's light can match his.

혹은 부처님의 광명은 백 개의 부처님 세계 혹은 천 개의 부처님 세계를 비추기도 하나니, 이를 요약하면 동방의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불국토를 비추고, 남방ㆍ서방ㆍ북방, 그리고 그 사이의 방향[四維] 및 상ㆍ하도 이와 같이 비추며,
The light of some Buddhas illuminates a hundred Buddha-lands, and that of others, a thousand Buddha-lands. Briefly, that of Amitayus illuminates the eastern Buddha-land, as numerous as the sands of the River Ganges. In the same way, it illuminates the Buddha-lands in the south, west and north, in each of the four intermediate quarters, above and below.

혹은 부처님의 광명은 7자[尺]를 비추기도 하고, 혹은 1유순(由旬), 2, 3, 4, 5 유순을 비추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배가(倍加)되기도 하며, 한 불국토를 비추기도 하느니라.
Further, the light of some Buddhas extends seven feet; that of others, one yojana, or two, three, four or five yojanas; and the distance covered increases in this way until the light of some Buddhas illuminates one Buddha-land.

그런 까닭에 무량수불을 무량광불(無量光佛)ㆍ무변광불(無邊光佛)ㆍ무애광불(無碍光佛)ㆍ무대광불(無對光佛)ㆍ염왕광불(炎王光佛)ㆍ청정광불(淸淨光佛)ㆍ환희광불(歡喜光佛)ㆍ지혜광불(智慧光佛)ㆍ부단광불(不斷光佛)ㆍ난사광불(難思光佛)ㆍ무칭광불(無稱光佛)ㆍ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이라 부르기도 하느니라.
"For this reason, Amitayus is called by the following names: the Buddha of Infinite Light, the Buddha of Boundless Light, the Buddha of Unhindered Light, [270b] the Buddha of Incomparable Light, the Buddha of the Light of the King of Flame, the Buddha of Pure Light, the Buddha of the Light of Joy, the Buddha of Light of Wisdom, the Buddha of Unceasing Light, the Buddha of Inconceivable Light, the Buddha of Ineffable Light, and the Buddha of the Light Outshining the Sun and the Moon.

중생들이 이러한 빛을 만나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의 때가 저절로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경쾌해지며, 환희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착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느니라. "If, sentient beings encounter his light, their three defilements are removed; they feel tenderness, joy and pleasure; and good thoughts arise.


만일 3악도(惡道)의 힘들고 괴로운 곳에 있더라도 이 광명을 보게 되면 모두 휴식을 얻게 되며, 다시는 괴로움을 겪지 않고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해탈을 얻게 되느니라.
If sentient beings in the three realms of suffering see his light, they will all be relieved and freed from affliction. At the end of their lives, they all reach emancipation.

이처럼 무량수부처님의 광명은 찬란하여 시방세계의 모든 불국토를 밝게 비추고, 그 명성을 모든 불국토에서 듣지 못한 자가 없느니라.
"The light of Amitayus shines brilliantly, illuminating all the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There is no place where it is not perceived.

이는 단지 나 혼자 그 광명을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성문, 연각, 보살들도 모두 한결같이 찬탄하느니라.
I am not the only one who now praises his light. All the Buddhas, shravakas, pratyekabuddhas and bodhisattvas praise and glorify it in the same way.

만일 중생이 그 광명의 위신력과 공덕을 듣고 하루 밤낮으로 찬탄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원하는 바에 따라 그 국토에 태어나게 되며, 여러 보살들과 성문들이 함께 그를 위하여 공덕을 칭송하고 찬탄할 것이니라.
If sentient beings, having heard of the majestic virtue of his light, glorify it continually, day and night, with sincerity of heart, they will be able to attain birth in his land, as they wish. Then the multitudes of bodhisattvas and shravakas will praise their excellent virtue.

그러한 후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두루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과 보살들이 그 광명을 찬탄함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Later, when they attain Buddhahood, all the Buddhas and bodhisattvas in the ten quarters will praise their light, just as I now praise the light of Amitayus."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무량수불의 광명과 위신력이 위대하고 수승하며, 또한 미묘한 것을 1겁 동안 밤낮으로 말하여도 다 할 수가 없느니라.”
The Buddha continued, "The majestic glory of the light of Amitayus could not be exhaustively described even if I praised it continuously, day and night, for the period of one kalpa."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불의 수명은 한량없이 길어서 헤아릴 수 없는데, 어찌 그대가 알 수 있겠는가?
Amida's life-span
[12]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life of Amitayus is so long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one to calculate it.

가령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사람의 몸을 얻게 하고 빠짐없이 성문과 연각이 되어 모두 한 곳에 모여 선정에서 한마음으로 사색하여[禪思一心] 그 지혜의 힘을 다해 백천만 겁 동안 그 수명의 영겁 수를 계산하여도 다할 수 없고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To give an illustration, let us suppose that all the innumerable sentient beings in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were reborn in human form and that every one became a shravaka or pratyekabuddha. Even if they assembled in one place, concentrated their thoughts, and exercised the power of their wisdom to the utmost to reckon the length of the Buddha's life, even after a thousand million kalpas they could still not reach its limit.

또한 성문과 보살 및 천인들의 수명도 그 길고 짧음이 역시 이와 같아서 세어보거나 비유로도 능히 알 수 없느니라.
So it is with the life-span of shravakas, bodhisattvas, heavenly beings and human beings in his land. Similarly, it is not to be encompassed by any means of reckoning or by any metaphorical expression.

그런데 그 세계의 성문과 보살의 수효는 헤아리기도 어렵고 말로 설할 수 없는데, 그들은 모두 신통력과 지혜에 통달하여 그 위신력이 자재하므로 능히 손바닥 가운데 모든 세계를 올려놓을 수도 있느니라.”
Again, the number of the shravakas and bodhisattvas living there is incalculable. They are fully endowed with transcendent wisdom and free in their exercise of majestic power; they could hold the entire world in their hand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께서 최초로 법을 설하시는 법회에 모인 성문 대중들의 수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보살 역시 그러했느니라.
The number of the audience at the first assembly
[13]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number of shravakas at the first teaching assembly of that Buddha was incalculable; so was the number of the bodhisattvas.

또한 대목건련(大目揵連) 같은 이가 백천만억이나 되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아승기(阿僧祇) 나유타 겁 동안 내지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헤아린다고 하더라도 그 수를 다 알 수 없느니라.
Even if an immeasurable and uncountable number of humans multiplied by millions of kotis should all become like Mahamaudgalyayana and together reckon their number during innumerable nayutas of kalpas, or even until they attain Nirvana, they could still not know that number.

비유하면 큰 바다가 깊고 광대하여 헤아릴 길이 없는데, 가령 어떤 사람이 하나의 터럭을 백 조각을 낸 뒤 그 한 조각의 터럭으로 바닷물을 한 방울씩 적시어 낸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터럭 끝에 한 방울씩 적셔진 것과 저 큰 바닷물 중 어느 쪽이 많겠느냐?”
  Let us suppose that there is a great ocean, infinitely deep and wide, and that one takes a drop of water out of it with a hundredth part of a split hair. How would you [270c] compare that drop of water with the rest of the ocean?"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 털끝에 적신 한 방울의 물을 저 큰 바다에 비교한다면, 그 많고 적음은 어찌 산수나 말로써 능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Ananda replied, "When the drop of water is compared with the great ocean, it is impossible even for one skilled in astronomy or mathematics to know the proportion, or for anyone to describe it by any rhetorical or metaphorical expression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와 같이 목건련 등과 같은 이가 백천만억 나유타 겁 동안 헤아려서 알 수 있는 숫자는 대단히 적은데, 이는 마치 터럭 끝에 묻는 한 방울의 물과 같고, 헤아리지 못하는 숫자는 큰 바다의 물과 같은 것이니라.
The Buddha said to Ananda, "Even if people like Mahamaudgalyayana were to count for millions of kotis of kalpas, the number of the shravakas and bodhisattvas at the first teaching assembly who could be counted would be like a drop of water, and the number of sages yet to be counted would be like the rest of the ocean."

또한 그 국토에는 7보로 된 갖가지의 나무가 가득히 있느니라.
Jewelled trees
[14] Again, seven-jewelled trees completely fill that land.

금으로 된 나무, 은으로 된 나무, 유리로 된 나무, 파리(頗梨)로 된 나무, 산호로 된 나무, 마노로 된 나무, 차거로 된 나무들이 있는데, 혹은 두 가지 보배, 세 가지 보배 내지 7보가 서로 합쳐서 이루어졌느니라.
There are some made of gold, some of silver, and others made of beryl, crystal, coral, ruby or agate. There are also trees made of two to seven kinds of jewels.

혹은 금으로 된 나무에 은으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이 있고, 혹은 은으로 된 나무에 금으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gold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of silver; silver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of gold;

유리로 된 나무에 파리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이 있고, 혹은 수정으로 된 나무에 유리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beryl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of crystal; crystal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of beryl;

산호로 된 나무에 마노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이 있고, 혹은 마노로 된 나무에 유리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coral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of ruby; ruby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of beryl;

차거로 된 나무에 온갖 보배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린 것이 있고,
agate trees with leaves, flowers and fruits made of various jewels.

혹은 보배로 된 나무에 자마금(紫磨金)으로 된 뿌리와 백은으로 된 줄기, 유리로 된 큰 가지, 수정으로 된 작은 가지, 산호로 된 잎, 마노로 된 꽃과 차거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Again,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purple-gold roots, white-silver trunks, beryl branches, crystal twigs, coral leaves, ruby flowers and agate fruits.

어떤 보배로 된 나무는 백은으로 된 뿌리, 유리로 된 줄기, 수정으로 된 큰 가지, 산호로 된 작은 가지, 마노로 된 잎, 차거로 된 꽃과 자마금으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white-silver roots, beryl trunks, crystal branches, coral twigs, ruby leaves, agate flowers and purple-gold fruits.

어떤 보배로 된 나무는 유리로 된 뿌리, 수정으로 된 줄기, 산호로 된 큰 가지, 마노로 된 작은 가지, 차거로 된 잎, 자금으로 된 꽃과 백은으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beryl roots, crystal trunks, coral branches, ruby twigs, agate leaves, purple-gold flowers and white-silver fruits.

어떤 보배로 된 나무는 수정으로 된 뿌리, 산호로 된 줄기, 마노로 된 큰 가지, 차거로 된 작은 가지, 자마금으로 된 잎, 백은으로 된 꽃과 유리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crystal roots, coral trunks, ruby branches, agate twigs, purple-gold leaves, white-silver flowers and beryl fruits.

어떤 보배로 된 나무에 산호로 된 뿌리, 마노로 된 줄기, 차거로 된 큰 가지, 자마금으로 된 작은 가지, 백은으로 된 잎, 유리로 된 꽃과 수정으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coral roots, ruby trunks, agate branches, purple-gold twigs, white-silver leaves, beryl flowers and crystal fruits.

어떤 보배로 된 나무는 마노로 된 뿌리, 차거로 된 줄기, 자금으로 된 큰 가지, 백은으로 된 작은 가지, 유리로 된 잎, 수정으로 된 꽃과 산호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ruby roots, agate trunks, purple-gold branches, white-silver twigs, beryl leaves, crystal flowers and coral fruits.

어떤 보배로 된 나무에 차거로 된 뿌리, 자마금으로 된 줄기, 백은으로 된 큰 가지, 유리로 된 작은 가지, 수정으로 된 잎, 산호로 된 꽃과 마노로 된 열매가 달린 것도 있느니라.
There are jewelled trees with agate roots, purple-gold trunks, white-silver branches, beryl twigs, crystal leaves, coral flowers and ruby fruits.

이와 같이 보배 나무들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조화롭게 심어져 있는데 줄기와 줄기들도 조화롭게 바라보고, 가지와 가지들도 조화롭게 정돈되고, 잎과 잎들도 조화롭게 방향을 잡고, 꽃과 꽃들도 서로 순조롭고, 열매와 열매들도 서로 마땅한 자리에 위치하여 있느니라.
"These jewelled trees are in parallel rows, their trunks are evenly spaced, their branches are in level layers, their leaves are symmetrical, their flowers harmonize, and their fruits are well arranged.

그 아름다운 모습과 찬란한 광채가 휘황하여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이며, 때때로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다섯 가지의 미묘한 소리를 내니 궁음(宮音)이나 상음(商音) 등의 소리가 저절로 조화를 이루느니라.
The brilliant colors of these trees are so luxuriant that it is impossible [271a] to see them all. When a pure breeze wafts through them, exquisite sounds of the pentatonic scales, such as kung and shang, spontaneously arise and make symphonic music.

또한 무량수불이 계시는 도량의 보리수는 높이가 4백만 리(里)이고, 그 밑둥의 둘레가 50유순이고, 가지와 잎은 사방으로 20만 리나 펼쳐져 있으며, 온갖 보배들이 합쳐져 이루어져 있는데, 보배 가운데 으뜸인 월광마니(月光摩尼)와 지해륜보(持海輪寶)로 장엄되어 있느니라.
The Bodhi-tree
[15] "Again, the Bodhi-tree of the Buddha Amitayus is four million li in height and five thousand yojanas in circumference at its base. Its branches spread two hundred thousand li in each of the four directions. It is a natural cluster of all kinds of precious stones and is adorned with the kings of jewels, namely, moon-light mani gems and ocean-supporting-wheel gems.

그리고 작은 가지 사이에는 보배로 된 영락이 드리워져 있는데, 백천만 가지의 색으로 이리저리 달라지고 변화하며 한량없는 광채가 휘황찬란하며, 또한 끝없이 비추고 있느니라.
그 위에는 진기하고 미묘한 보배 그물이 덮여 있으며, 일체의 장엄들은 마땅한 바에 따라 나타난다.
Everywhere between its twigs hang jewelled ornaments with a thousand million different colors intermingling in various ways, and their innumerable beams shine with the utmost brilliance. The Bodhi-tree itself is covered with nets of rare, excellent gems, and on it appear all kinds of ornaments in accordance with one's wishes.

미풍이 서서히 불면 보배 나무의 가지가 살랑거리면서 한량없이 미묘한 법음(法音)이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는 시방세계의 모든 불국토에 울려 퍼지느니라.
"When a gentle breeze wafts through its branches and leaves, innumerable exquisite Dharma-sounds arise, which spread far and wide, pervading all the other Buddha-lands in the ten quarters.

그 소리를 듣는 자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머물고, 그리하여 불도(佛道)에 이를 때까지 괴로움과 병환을 만나지 않으며, 눈으로 그 색깔을 보고, 귀로 그 소리를 듣고, 코로 그 향기를 맡고, 혀로 그 맛을 보고, 몸으로 그 빛의 촉감을 느끼고, 마음으로 그 장엄의 인연을 생각하는 일체의 중생들은 깊고 깊은 법인[無生法忍]을 얻고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러 불도를 이룰 때까지 6근(根)이 청정하고 명철하여 모든 번뇌의 괴로움이 없느니라.
Those who hear the sounds attain penetrating insight into dharmas and dwell in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Until they attain Buddhahood, their senses of hearing will remain clear and sharp, and they will not suffer from any pain or sickness. Whether they hear the sounds of the Bodhi-tree, see its colors, smell its perfumes, taste its flavors, perceive its lights or conceive of the Dharma in their minds, they all attain profoundly penetrating insight into dharmas and dwell in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Until they attain Buddhahood, their six sense-organs will remain sharp and clear, and they will not suffer from any pain or disease.

아난아, 만일 그 국토의 인간과 천신들이 이 나무를 보면 3법인(法忍)을 얻느니라. 첫째는 음향인(音響忍)이고, 둘째는 유순인(柔順忍)이고, 셋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니라.
"Ananda, when humans and devas of that land see the Bodhi-tree, they will attain three insights: first, insight into reality through hearing the sacred sounds; second, insight into reality by being in accord with it; and third, the insight into the non-arising of all dharmas.

이것은 모두 무량수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한 것이고 본원력(本願力) 때문이며, 만족원(滿足願) 때문이며, 명료원(明了願) 때문이며, 견고원(堅固願) 때문이며, 구경원(究竟願) 때문이니라.”
These benefits are all bestowed by the majestic power of Amitayus, the power of his primal vow, his perfectly fulfilled vow, his clear and manifest vow, his firm vow, and his accomplished vow."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제왕(帝王)들은 백천 가지의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전륜성왕으로부터 제6천(타화자재천)에 이르기까지 연주와 음악 소리는 그 수승함이 천억만 배나 되느니라.
The Buddha said to Ananda, "A king of this world possesses a hundred thousand kinds of music. From the realm ruled by a wheel-turning monarch up to the Sixth Heaven, the sounds of the music produced in each higher realm are ten million kotis of times superior to those of a lower one.

그런데 제6 천상의 만 가지 음악 소리는 무량수국에 있는 7보로 된 나무들 가운데 한 종류의 소리에도 미치지 못하니,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보다 천억만 배나 더 수승하느니라.
The thousands of varieties of musical sound produced in the Sixth Heaven are a thousand kotis of times inferior to one sound produced from the seven-jewelled trees in the land of Amitayus.

또한 그곳에는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만 가지의 기악이 있으며, 그들 음악 소리는 법음(法音)이 아닌 것이 없으며, 청정하고, 맑고, 애절하고 너그러우며, 미묘하고, 온화하며 아름다우니, 시방세계의 음악 소리 가운데 최고이며 가장 뛰어나느니라.
Again, in that land, there are thousands of varieties of natural music, which are all, without exception, sounds of the Dharma. They are clear and serene, full of depth and resonance, delicate and harmonious; they are the most excellent of sounds in all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또한 그 국토에는 강당과 정사(精舍), 그리고 궁전과 누각들이 있는데, 모두 7보로 장엄되어 있으며, 이들은 자연히 이루어진 것들이니라. 그 위에는 진주와 명월마니(明月摩尼) 등 갖가지 보배로 엮은 그물이 덮여 있는데, 안팎과 좌우에는 여기저기 목욕할 수 있는 연못이 있느니라.
Glorious adornments
[16] "Again, the halls, monasteries, palaces and pavilions are spontaneous apparitions, all adorned with the seven jewels and hung with curtains of various other jewels, such as pearls and moon-bright mani gems.
"Inside and out, to right and left, are bathing pools.

그 크기는 10유순 혹은 20, 30 내지 백천 유순도 되며, 세로와 가로로 그 깊고 얕음이 모두 하나로 같다. 8공덕수(功德水)가 가득 차 있는데, 청정하고 향기롭고 정결하고 그 맛은 감로수(甘露水)와 같으니라.
Some of them are ten yojanas in length, breadth and depth; some are twenty yojanas, others, thirty, and so on, until we come to those measuring a hundred thousand yojanas in length, breadth and depth. They are brimful of the water of eight excellent qualities, clear, fragrant and tasting like nectar. [271b]

황금 연못에는 그 바닥에 백은 모래가 깔려 있고, 백은 연못에는 그 바닥에 황금 모래가 깔려 있고, 수정 연못에는 그 바닥에 유리 모래가 깔려 있고, 유리 연못에는 그 바닥에 수정 모래가 깔려 있고, 산호 연못에는 그 바닥에 호박 모래가 깔려 있고, 호박 연못에는 그 바닥에 산호 모래가 깔려 있고, 차거연못에는 그 바닥에 마노 모래가 깔려 있고, 마노 연못에는 그 바닥에 차거 모래가 깔려 있고, 백옥 연못에는 그 바닥에 자금(紫金) 모래가 깔려 있고, 자금 연못에는 그 바닥에 백옥 모래가 깔려 있으며, 혹은 두 가지 보배, 세 가지 보배 내지 7보로 이루어졌느니라.
"There are golden pools with beds of silver sand; silver pools with beds of golden sand; crystal pools with beds of beryl sand; beryl pools with beds of crystal sand; coral pools with beds of amber sand; amber pools with beds of coral sand; agate pools with beds of ruby sand; ruby pools with beds of agate sand; white-jade pools with beds of purple-gold sand; purple-gold pools with beds of white-jade sand. Others are composed of two to seven jewels.

그 연못가에는 전단향나무가 있고, 그 꽃과 잎이 드리워져 있으며, 그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느니라.
"On the banks of these pools are sandalwood trees, whose flowers and leaves hang down and diffuse perfumes everywhere.

천상의 우발라화(優鉢羅華)와 발담마화(鉢曇摩華), 구물두화(拘物頭華), 분타리화(分陀利華)가 서로 어우러져 온갖 색으로 찬란히 빛나며 물 위를 가득 덮고 있느니라.
Heavenly lotuses of blue, pink, yellow and white bloom profusely in various tints and tones, completely covering the surface of the water.

그곳의 모든 보살과 성문들이 만일 보배 연못에 들어가 물이 발목까지 잠기기를 마음속으로 원하면 물은 곧 발을 적시고, 물이 무릎까지 잠기기를 원하면 물은 곧 무릎에 이르며, 물이 허리까지 잠기기를 원하면 물은 곧 허리까지 이르고, 물이 목까지 잠기기를 원하면 물이 곧 목에 이르며, 온몸을 적시고자 하면 저절로 물이 온몸을 적시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원하면 물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느니라.
"If bodhisattvas and shravakas in that land enter the jewel-ponds and wish the water to rise to their ankles, it rises to their ankles. If they wish it to rise to their knees, it rises to their knees. If they wish it to rise to their waists, it rises to their waists. If they wish it to rise to their necks, it rises to their necks. If they wish it to pour over their bodies, it spontaneously pours over their bodies. If they wish it to recede, it recedes.

차고 따뜻해지는 것도 자연히 바라는 대로 되며, 그 연못에서 목욕을 하면 정신은 맑아지고 온몸이 상쾌하며 마음의 때까지 씻어지느니라.
Its temperature is moderate, cool or warm, according to their wishes. The water comforts the body and refreshes the mind, washing away their mental defilements.

또한 그 물은 맑고 밝고 투명하고 순결하고 깨끗한 것이 마치 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보배로 된 모래는 환하게 드러나니, 아무리 깊은 곳일지라도 비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Clear and pure, the water is so transparent that it seems formless. The jewel-sand shines so brightly that even the depth of the water cannot prevent its brilliance from being seen.

잔잔한 물결은 돌아서 흐르며 서로 합해져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한량없는 자연의 미묘한 소리를 일으키니, 듣고자 하는 대로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느니라.
The rippling water forms meandering streams, which join and flow into each other. Their movement is peaceful and quiet, neither too fast nor too slow, and their ripples spontaneously produce innumerable wonderful sounds. One can hear whatever sound one wishes.

혹은 부처님의 음성[佛聲]을 듣고, 혹은 법의 소리[法聲]를 듣고, 혹은 승단의 소리[僧聲]를 듣느니라. 혹은 고요한 소리[寂靜聲], 공과 무아의 소리[空無我聲], 대자대비의 소리[大慈悲聲], 바라밀다의 소리[波羅蜜聲], 10력(力)과 4무외(無畏)와 18불공법(不共法)의 소리, 모든 신통 지혜의 소리[諸通慧聲], 조작 없는 진리의 소리[無所作聲], 나고 멸함이 없는 소리[不起滅聲], 무생법인의 소리[無生法忍聲] 내지 감로와 관정(灌頂) 등의 온갖 묘법의 소리를 듣기도 하느니라.
For example, some hear the sound 'Buddha,' some hear the sound 'Dharma,' some 'Sangha,' others hear 'tranquillity,' 'emptiness and non-self,' 'great compassion,' 'paramita,' 'ten powers,' 'fearlessness,' 'special qualities,' 'supernatural powers,' 'non-activity,' 'neither arising nor perishing,' 'insight into the non-arising of all dharmas,' and so on until the various sounds of the wonderful Dharma, such as 'the sprinkling of nectar upon the head of a bodhisattva,' are heard.

이와 같은 여러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듣는 바에 따라 한량없는 환희심을 내어 마음이 청정해지고 탐욕을 여의며, 적멸의 진실한 뜻에 따르게 되는 것이니라.
As one hears those sounds, one attains immeasurable joy and accords with the principles of purity, absence of desires, extinction, and reality.

그리고 3보와 10력과 4무소외와 18불공법에 수순(隨順)하는 것이고, 신통과 지혜 및 보살과 성문이 행하는 도를 따르는 것이니라.
One is in harmony with the Three Treasures, the Buddha's powers, fearlessness and special qualities, and also with supernatural powers and other methods of practice for bodhisattvas and shravakas.

따라서 거기에는 3악도와 3고(苦)와 8난(難)은 이름조차도 없으며, 단지 저절로 이루어진 상쾌하고 즐거운 소리만 있는 까닭에 그 나라를 극락(極樂)이라고 이름하느니라.
Not even the names of the three realms of suffering are heard there, but only Nirvanic sounds of bliss. For this reason, that land is called 'Peace and Bliss'."

아난아, 그 불국토에 왕생하는 자는 누구나 그와 같은 청정한 몸과 온갖 미묘한 음성과 신통력 등의 공덕을 구족하게 되며, 그들이 거처하는 궁전과 의복과 음식, 여러 가지의 미묘한 꽃과 향 등의 장엄구들이 갖추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제6천(第六天)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自然之物]과도 같으니라.
Bodily appearance of the inhabitants and the pleasures they enjoy
[17] "Ananda, those born in that Buddha-land are endowed with such bodies of purity and provided with various exquisite sounds, supernatural powers and virtues. The palaces in which they dwell, their clothing, food and drink, the wonderful flowers, and the various kinds of incense and adornments are like those naturally provided in the Sixth Heaven of the world of desire.

만일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7보로 된 그릇[應器]이 저절로 앞에 나타나고, 금ㆍ은ㆍ유리ㆍ차거ㆍ마노ㆍ산호ㆍ호박ㆍ명월진주 등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그릇들이 생각하는 대로 나타나며, 또한 갖가지 맛을 지닌 음식이 자연히 가득하게 되느니라.
"At mealtimes, plates made of the seven jewels -- namely, gold, silver, beryl, agate, ruby, [271c] coral, and amber, and also moon-bright pearl -- spontaneously appear, filled with food and drink of a hundred tastes, according to one's wishes.

그러나 이러한 음식이 있다고 말해도 실로 먹는 자는 없느니라.
Although the food is offered, no one actually eats it.

다만 빛깔을 보고, 향기를 맡고, 생각으로 음식을 먹으면 자연히 배부르고 만족하게 되느니라. 몸과 마음이 유연하고 경쾌하여 그 맛에 탐착하지 않으며 식사를 마치면 사라지고 다시 바라면 나타나느니라.
Once it has been seen and smelt, one naturally feels that it has been eaten, and so is satisfied; thus one feels relaxed in mind and body, free from attachment to the sense of taste. When the meal is over, everything disappears, but reappears at the next mealtime.

이처럼 저 불국토는 청정하고 안온하며 미묘하고 유쾌하고 즐거우니, 무위열반(無爲涅槃)의 경계에 버금가는 것이니라.
"That Buddha-land, like the realm of unconditioned Nirvana, is pure and serene, resplendent and blissful.

그 국토의 모든 성문과 보살과 천신과 사람들은 지혜가 높고 밝으며 신통력이 자재하며, 모두 같은 모습으로 다른 형체가 없으나, 단지 다른 세계의 원인에 따라 천상과 인간이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다.
The shravakas, bodhisattvas, heavenly beings and humans there have lofty and brilliant wisdom, and are masters of the supernatural powers. They are all of one form, without any differences, but are called 'heavenly beings' and 'humans' simply by analogy with the states of existence in other worlds.

그들은 얼굴과 용모가 준수하고 반듯하니 세간에서 뛰어나고 또한 보기 드물며, 그 용모는 미묘하여 천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모두 자연적인 허공처럼 형상이 없는 몸[虛無之身]이며, 무극의 신체[無極之體]를 받은 것이니라.”
They are of noble and majestic countenance, unequaled in all the worlds, and their appearance is superb, unmatched by any being, heavenly or human. They are all endowed with bodies of Naturalness, Emptiness, and Infinity."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세간의 가난하고 궁핍한 걸인이 제왕의 주위에 있을 때, 형체와 용모와 얼굴의 상태가 어떻게 비슷하기라도 하겠느냐?”
Karmic rewards of a beggar and a king
[18] The Buddha said to Ananda, "If a beggar in extreme poverty sits by the side of a king, how can their appearances be compared?"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가령 그런 걸인이 제왕의 근처에 있다면, 파리하고 비루하고 추하여 비유할 수가 없을 정도이며, 그 차이는 백천만억 배나 되어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Ananda replied, "If such a man sits by the side of a king, his emaciated, mean and ragged appearance cannot be compared with the king's. His appearance is a thousand million kotis or even incalculable times inferior to the king's.

왜냐 하면 가난하고 궁핍한 걸인은 극도로 비루하고 천하여 그 옷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고, 음식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이고, 배고프고 춥고 고통에 시달려서 사람의 도리를 거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What is the reason for this? The conditions of a beggar in extreme poverty--being at the lowest social level, with barely enough clothes to cover his body, scarcely enough food to sustain his life, with hunger and cold always tormenting him, and having almost lost in human contact -- are all the result of his misdeeds in former lives.

그 모든 것은 전생에서 공덕을 심지 않았고, 재물을 쌓아 둘 뿐 베풀지 않았고, 부유할수록 더욱더 인색했고, 단지 이익을 얻기만을 욕구하였으므로 탐하고 구하는 데 조금도 싫어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한 행을 닦지 않고 악한 짓만 태산처럼 했을 뿐이었습니다.
In the past he did not cultivate roots of virtue, but instead, accumulated riches without giving anything to others. He became more miserly as his wealth increased, desired to obtain more, insatiably hankered after further acquisitions and gave no thought to good actions. Thus he piled up a mountain of evil karma.

그렇게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애써 모든 재물과 보배는 다 사라지고, 몸에는 고통만 쌓이게 되니, 이것 때문에 근심하고 고뇌하여도 자신에게는 더 이상 이익되는 것이 없으니 모두 다른 이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When his life ended, all his wealth was gone, and what he had accumulated with great toil and worry was of no avail to him; all passed in vain into the possession of others.

그러므로 자신이 믿을 만한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애쓴 적도 없고 공덕을 쌓기 위해 힘쓴 적도 없기 때문에 죽어서 악도에 떨어져 오랫동안 괴로움을 받다가 죄를 마치고 인간계에 태어난다고 하여도 어리석고 비루하며 다만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보일 뿐입니다.
Having no stock of merit on which to depend and no virtue on which to rely, after death he fell into one of the evil realms, where he suffered pain for a long period. When his karmic retributions ended, he was able to escape, but was reborn into a lower class; being foolish, base and inferior, he barely maintains the appearance of a human being.

그리고 세간의 제왕이 사람들 중에서 홀로 존귀한 까닭은 모두 과거 세상[宿世]에서 공덕을 쌓은 때문입니다. 자비와 은혜로움을 갖추어 널리 베풀고, 인자함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널리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 신의를 지키고 선한 일을 닦아서 남의 뜻을 거역하거나 다투는 바가 없었습니다.
"The king of a country is the most Honored of all men. This is the reward for virtues accumulated in former lives, in which he, with a compassionate heart, gave generously to many, saved people from suffering through kindness and benevolence, performed good deeds with sincerity, and never disputed with others.

그렇게 살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 지은 복덕에 따라 선도(善道)인 천상에 태어나서 그러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When that life ended, he was rewarded by rebirth into a higher state. Born in a heavenly realm, he enjoyed bliss and happiness.

쌓아 둔 선의 경사스런 복덕 중에 남은 것이 있어서 지금 사람의 몸을 얻었는데 왕의 가문에 태어나 자연히 존귀한 신분이 되고, 위의(威儀)와 용모가 준수하고 반듯하여 무리들이 그를 존경하고 섬겼습니다. 좋은 옷과 진귀한 음식을 마음대로 누리니 과거 세상에서의 복덕의 과보로 인한 것입니다.”
His accumulated virtues produced such a surplus of goodness that, when he was reborn as a man in this life, his birth was, deservedly, into a royal family. Being naturally noble, his dignified and majestic demeanor commands the respect of his people, and superb clothes and sumptuous food are prepared and served to him as he pleases. All this is a reward for virtues from his past live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이 옳으니라. 그러나 비록 제왕이 인간 가운데 존귀하고 형색이 준수하고 반듯하다고 할지라도 전륜성왕에게 비하면 매우 누추하고 비루한 것이니, 마치 저 걸인이 제왕의 곁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Comparison between heavens and the Pure Land
[19] The Buddha said to Ananda, "What you say is true. Even though a king is the noblest of all men and has a regal countenance, if he is compared with a wheel-turning monarch, he will appear as base and inferior as a beggar beside a king.

그런데 전륜성왕의 위의와 상호가 수승하고 미묘하여 천하에 제일이라고 하여도 도리천왕에 비하면 또한 추악하여 서로 비유할 수 없음이 만억 배나 되느니라. 그러나 이 도리천왕을 제6 천왕에게 비한다면 백천억 배를 하여도 서로 비교할 수 없느니라.
Likewise, however excellent and unrivaled the majestic appearance of such a monarch may be, [272a] if he is compared with the lord of the Heaven of the Thirty-three Gods, he will also appear incomparably inferior, even ten thousands kotis of times more so. Again, if this heavenly lord is compared with the lord of the Sixth Heaven, he will appear a hundred thousand kotis of times inferior.


또한 가령 제6 천왕이라 하여도 무량수불 국토의 보살과 성문에게 비하면 빛나는 얼굴과 용모의 차이는 백천만억 배를 하여도 미칠 수 없는 것이니라.”
If the lord of the Sixth Heaven is compared with a bodhisattva or a shravaka dwelling in the land of Amitayus, his countenance and appearance will be far from matching those of the bodhisattva or shravaka, being a thousand million kotis of times or even incalculable times inferior."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국의 여러 천신과 인간들의 의복과 음식과 꽃과 향과 영락, 온갖 일산, 당번, 미묘한 음악과 거처하는 저택과 궁전, 누각 등이 있는데, 각각 그 형색에 맞추어서 높고 낮고 크고 작게 되었느니라.
Pleasures in the Pure Land
[20] The Buddha said to Ananda, "Devas and humans in the land of Amitayus are each provided with robes, food and drink, flowers, perfume, ornaments, silken canopies and banners, and are surrounded by exquisite sounds. Their abodes, palaces, and pavilions are exactly in accordance with the size of their bodies.

혹은 한 가지의 보배, 두 가지의 보배 내지 헤아릴 수 없는 온갖 보배들로 이루어져 바라는 대로 생각에 따라 곧바로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느니라.
One, two or even innumerable jewels appear before them, as soon as they wish.

또한 갖가지 보배로 된 미묘한 옷이 땅에 널리 깔려 있으며, 모든 천인들이 이것을 밟고 다닐 수 있느니라.
In addition, beautiful jewelled fabric covers the ground where all the devas and humans walk.

그리고 한량없는 보배의 그물이 불국토를 완전히 덮고 있는데, 모두 금실과 진주와 백천 가지의 온갖 보배로 기묘하고도 진기한 것들로 장엄하고 꾸민 것이니라.
In that Buddha-land there are innumerable jewelled nets, all adorned with skeins of gold thread, pearls, and a hundred thousand kinds of rare and marvelous treasures.

또한 사방에 드리워져 있는 보배 방울은 찬란히 빛나며, 어느 것이나 장엄하고 수려한 것이 극에 달해 있느니라.”
All around the nets hang jewelled bells of the utmost beauty, which shine brilliantly.

자연히 덕스럽고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은 잘 조화되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서늘하고 따뜻하며 또한 부드럽고도 상쾌하여 더디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느니라.
When a natural breeze of virtue arises and gently blows, it is moderate in temperature, neither cold nor hot, refreshing and soft to the senses, and moves neither too slowly nor too quickly.

그 바람이 그물과 온갖 보배 나무에 불어서 한량없이 미묘한 법음을 내고 만 가지 온화한 덕의 향기를 풍기느니라.
When the breeze wafts over the nets and the various jewelled trees, countless excellent sounds of the Dharma are heard, and ten thousand kinds of delicate fragrances of virtue are diffused.

그 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은 사람은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음의 때가 저절로 사라지며, 바람이 그 몸에 닿으면 모두 유쾌함과 즐거움을 얻느니라. 이는 마치 비구가 멸진삼매(滅盡三昧)를 얻은 것과 같으니라.
If one smells those fragrances, one's impurities and passions spontaneously cease to arise. If touched by the breeze itself, one enjoys the same pleasure as a monk who has entered the Samadhi of Extinction.

또한 바람이 불어 꽃을 흩날려 불국토에 가득 차는데, 그 꽃의 색깔에 따라 서로 어울려 혼란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부드럽게 빛나며 그윽한 향기를 풍기느니라.
Flowers and innumerable rays of light emitted from them
[21] "Again, as the breeze blows, flowers are scattered throughout the Buddha-land; they spontaneously divide into different colors, not mixed together. They are soft and pleasant to touch, glow brilliantly, and diffuse rich fragrances.

그 꽃잎을 밟으면 땅은 네 치나 들어갔다가 발을 떼면 다시 이전처럼 올라오며, 꽃잎이 모두 다 시들면 땅이 갈라져 땅속으로 사라지며 땅은 청정하여 흔적도 없게 되느니라.
When one's foot is placed on them, they sink down four inches, but when the foot is lifted, they rise to their former level. When the flowers have served their purpose, the earth opens up and they vanish, leaving the ground clean and without trace of them.

또한 시간에 맞추어 바람이 불면 꽃을 흩날리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일이 하루에 여섯 번 되풀이되느니라.
At the right moment, six times a day, the breeze wafts, scattering the flowers in this way.

또한 갖가지 보배로 된 연꽃이 그 세계에 가득히 피어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보배 꽃송이마다 백천억 개의 잎이 있고, 그 꽃잎의 광명은 헤아릴 수 없는 빛깔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푸른 연꽃에서는 푸른 광명이 빛나고, 흰색 연꽃에서는 흰 광명이 빛나느니라. 검은색, 노란색, 붉은색, 자주색의 연꽃들도 그 색깔과 광명 역시 그러하며, 모두 휘황찬란하여 그 밝기가 해와 달과도 같으니라.
Moreover, lotus-flowers of various jewels fill the land; each has a hundred thousand kotis of petals with lights of numerous colors -- blue lotuses glow with a blue light, white ones with a white light, and, likewise, dark blue, yellow, red, and purple lotuses glow with lights of their respective colors. The brilliance of these lights is so magnificent that it outshines the sun and the moon.

그 하나하나의 꽃 가운데서 36백천억의 광명을 발하고, 그 하나하나의 광명 속에는 36백천억의 부처님께서 나투시니, 그 몸의 색은 자금색이고 상호는 특별히 수승하시느니라.
Each flower emits thirty-six hundred thousand kotis of rays of light, each sending forth thirty-six hundred thousand kotis of Buddhas. The bodies of these Buddhas are purple-gold, and their physical characteristics and marks are superb beyond compare.

그 모든 부처님 한 분 한 분이 백천의 광명을 비추시며 두루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들은 각각 한량없는 중생들을 부처님의 바른 도리에 평안하게 머물게 하는 것이니라.”
Each Buddha emits a hundred thousand rays of light and expounds the wonderful Dharma to beings in the ten quarters, thus setting innumerable beings on the right Path [272b] of the Buddha.
End of Part One of
The Sutra on the Buddha of Infinit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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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상권 1


조위(曹魏) 천축삼장(天竺三藏) 강승개(康僧鎧) 한역
최봉수 번역
THE LARGER SUTRA ON AMITAYUS
delivered by Shakyamuni Buddha
Translated into Chinese during the Ts'ao-Wei dynasty
by the Tripitaka Master Samghavarman from India
translated from Chinese by Hisao Inagaki

상권
■ 제1장 서분
1절 경문의 증명
2절 발기의 차례(설법의 인연)
■ 제2장 정종분
1절 극락국토의 발원 인연
2절 아미타불 극락정토의 장엄
하권
3절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인연
4절 정토의 안락
5절 세간의 고통
6절 오탁 악세
7절 부처님의 큰 지혜
■ 제3장 유통분
1절 미륵보살에게 부촉함
2절 법문의 공덕
3절 대중의 환희


상권
■ 제1장 서분
1.1절 경문의 증명(證信序)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는데, 대비구 1만 2천 명과 함께 머무셨다.
Preface
[1] Thus have I heard. At one time the Buddha was staying on the Vulture Peak in Rajagriha with a large company of twelve thousand monks.

그들 모두 신통과 지혜를 얻은 성인들이었다.
They were all great sages who had already attained supernatural powers.

그 이름은 요본제 존자(了本際尊者)ㆍ정원(正願) 존자ㆍ정어(正語) 존자ㆍ대호(大號) 존자ㆍ인현(仁賢) 존자ㆍ이구(離垢) 존자ㆍ명문(名聞) 존자ㆍ선실(善實) 존자ㆍ구족(具足) 존자ㆍ우왕(牛王) 존자ㆍ우루빈라가섭(優樓頻蠡迦葉) 존자ㆍ가야가섭(伽耶迦葉) 존자ㆍ나제가섭(那提迦葉) 존자ㆍ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ㆍ사리불(舍利弗) 존자ㆍ대목건련(大目揵連) 존자ㆍ겁빈나(劫賓那) 존자ㆍ대주(大住) 존자ㆍ대정지(大淨志) 존자ㆍ마하주나(摩訶周那) 존자ㆍ만원자(滿願子) 존자ㆍ이장애(離障閡) 존자ㆍ유관(流灌) 존자ㆍ견복(堅伏) 존자ㆍ면왕(面王) 존자ㆍ과승(果乘) 존자ㆍ인성(仁性) 존자ㆍ희락(喜樂) 존자ㆍ선래(善來) 존자ㆍ라운(羅云) 존자, 그리고 아난(阿難) 존자였다.
Among them were the following: the Venerable Ajnata-kaundinya, the Venerable Ashvajit, the Venerable Vaspa, the Venerable Mahanama, the Venerable Bhadrajit, the Venerable Vimala, the Venerable Yashodeva, the Venerable Subahu, the Venerable Purnaka, the Venerable Gavampati, the Venerable Uruvilva-kashyapa, the Venerable Gaya-kashyapa, the Venerable Nadi-kashyapa, the Venerable Mahakashyapa, the Venerable Shariputra, the Venerable Mahamaudgalyayana, the Venerable Kapphina, the Venerable Mahakausthilya, the Venerable Mahakatyayana, the Venerable Mahacunda, the Venerable Purna-maitrayaniputra, the Venerable Aniruddha, the Venerable Revata, the Venerable Kimpila, the Venerable Amogha-raja, the Venerable Parayanika, the Venerable Vakkula, the Venerable Nanda, the Venerable Svagata, the Venerable Rahula and the Venerable Ananda.

이들 모두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는 존자들이었다.
All of these were Elders.

또 대승의 보살 대중들도 함께 있었다. 곧 보현보살(普賢菩薩)ㆍ묘덕(妙德)보살ㆍ자씨(慈氏)보살 등으로서 이 현겁 중의 모든 보살들이었다.
Mahayana bodhisattvas also accompanied the Buddha, including all those of this Auspicious Kalpa, such as the Bodhisattva Samantabhadra, the Bodhisattva Manjushri and the Bodhisattva Maitreya.

또 현호(賢護) 등 열여섯 명의 바른 사람[十六正士]들이 있었으니, 선사의(善思議)보살ㆍ신혜(信慧)보살ㆍ공무(空無)보살ㆍ신통화(神通華)보살ㆍ광영(光英)보살ㆍ혜상(慧上)보살ㆍ지당(智幢)보살ㆍ적근(寂根)보살ㆍ원혜(願慧)보살ㆍ향상(香象)보살ㆍ보영(寶英)보살ㆍ중주(中住)보살ㆍ제행(制行)보살ㆍ해탈(解脫)보살 등이다.
There were also the sixteen lay bodhisattvas, such as Bhadrapala, as well as the Bodhisattva Profound Thought, the Bodhisattva Wisdom of Faith, the Bodhisattva Voidness, the Bodhisattva Bloom of Supernatural Power, the Bodhisattva Hero of Light, the Bodhisattva Superior wisdom, the Bodhisattva Banner of Wisdom, the Bodhisattva Tranquil Ability, the Bodhisattva Wisdom of Vows, the Bodhisattva Sweet-smelling Elephant, the Bodhisattva Hero of Treasures, the Bodhisattva Dwelling-in-the-Center, the Bodhisattva Practice of Restraint and the Bodhisattva Emancipation.

그들은 모두 보현(普賢)보살의 덕을 존경하여 여러 보살들의 무량한 서원과 행(行)을 구족하여 일체의 공덕이 있는 법에 안주하였다.
Virtues of the bodhisattva audience
[2] Each of these bodhisattvas, following the virtues of the Mahasattva Samantabhadra, is endowed with the immeasurable practices and vows of the Bodhisattva Path, and firmly dwells in all the meritorious deeds.

그리고 시방세계에서 노닐며 선교방편을 베풀고 불법장(佛法藏)에 들어 구경(究竟)의 피안(彼岸)에 도달하였다.
He freely travels in all the ten quarters and employs skillful means of emancipation. He enters the treasury of the Dharma of the Buddhas, and reaches the Other Shore.

그리고 무량세계에 몸을 나투어 등각(等覺)을 이루었다.
Throughout the innumerable worlds he attains Enlightenment.

도솔천에 계시면서 정법을 널리 펴신 후, 그 천상을 버리고 왕궁에 내려와 모태에 들었다.
First, dwelling in the Tusita Heaven, he proclaims the true Dharma. Having left the heavenly palace, he descends into his mother's womb.

우측 옆구리로 탄생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니, 광명은 찬란하여 널리 시방세계의 불국토를 두루 밝혔고, 천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Soon after he is born from her right side, he takes seven steps. As he does so, an effulgence illuminates everywhere in the ten quarters and innumerable Buddha-lands shake in six ways.

그때 스스로 소리를 높여 일컫기를 “나는 마땅히 세상에서 위없는 존귀한 스승이 되리라”고 하였다.
Then he utters these words, "I will become the most honored one in the world." [266a]

그리하여 제석천과 범천이 받들어 모셨으며, 천상의 사람이 귀의하고 우러렀다.
Shakra and Brahma reverently attend him, and heavenly beings adore and worship him.

그리고 수리[算計]와 문예(文藝), 활쏘기[射]와 말타기[御] 등을 나타내 보였고,
He shows his ability in calculation, writing, archery and horsemanship.

신선의 도술에 능하고 학문에도 통달하였다.
He is also conversant with the divine arts and well-read in many volumes.

후원에 노닐면서 무예를 수련하고 궁중에 있을 때는 세속의 5욕을 즐기기도 하였다.
In the field outside the palace he trains himself in the martial arts, and at court shows that he also enjoys the pleasures of the senses.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세간의 무상함을 깨닫고는 나라와 재물과 왕위를 버리고 입산하여 도(道)를 배우기로 작정하고 출가하였다.
When he first encounters old age, sickness and death, he realizes the impermanence of the world. He renounces his kingdom, wealth and throne, and goes into the mountains to practice the Way.

그리고 하인에게 타고 온 백마와 보관(寶冠)과 영락(瓔珞) 등을 돌려보냈다. 화려한 옷을 벗고 법복(法服)으로 갈아입었으며, 머리와 수염을 깎았다.
After sending back the white horse that he has been riding, together with the jewelled crown and ornaments which he has been wearing, he takes off his magnificent clothes and puts on a Dharma robe.

그리하여 보리수 아래 단정히 앉아서 6년 동안 부지런히 고행하였다.
He cuts his hair and shaves his beard, sits upright under a tree and strives at ascetic practices for six years in accord with the traditional way.

5탁(濁)의 사바세계에 태어나 뭇 중생들의 인연을 따랐으므로[隨順] 번뇌의 먼지가 쌓이자, 황금빛 물에서 목욕을 하고,
Since he has appeared in the world of the five defilements, he behaves as the multitude. And as his body appears dirty, he takes a bath in the Golden River.

천인들이 드리운 나뭇가지를 잡고 못에서 나왔다.
As a god bends a branch down towards him, he is able to climb up the river bank.

신령스런 새들이 날개를 펴고 도량을 찾아왔다.
A divine bird follows him closely to the seat of Enlightenment.


그리고 길상 동자가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길상초(吉祥草)를 바치자 그를 가엾게 여겨 그 보시를 받아 보리수 아래에 깔고는 결가부좌를 하였다.
A deva takes the form of a youth and, perceiving a favorable sign, respectfully presents him with the auspicious grass. The Bodhisattva compassionately accepts it, spreads it under the Bodhi-tree and sits upon it with his legs crossed.

그리하여 크나큰 광명을 드러내니 마왕(魔王)이 이를 알고 놀라서 그들의 권속을 이끌고 와서 핍박하고 시험하였다. 그러나 지혜의 힘으로 다스려 이들을 모두 항복 받았으며, 마침내 미묘한 법을 얻어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었다.
He emits a great flood of light to inform Mara of this. Mara and his army come to attack and tempt him, but he brings them under control with the power of wisdom and makes them all surrender. Then he attains the supreme Dharma and realizes the highest, perfect Enlightenment.

그때 제석천과 범천이 법륜(法輪)을 굴리기를 간절히 요청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자재(自在)하게 노닐면서 사자후로 말씀하셨다.
As Shakra and Brahma request him to turn the Wheel of the Dharma, the Buddha visits various places and preaches the Dharma in his thunderous voice.

법의 북을 울렸고, 법의 나팔을 불었고, 법의 칼을 쥐었고, 법의 깃발을 세웠다. 법의 우레를 울렸고, 법의 번개를 번득였으며, 법의 비를 뿌리고, 법의 보시를 베푸는 등 항상 법음으로써 모든 세계를 깨우치게 하였다.
He beats the Dharma-drum, blows the Dharma-conch, brandishes the Dharma-sword, hoists the Dharma-banner, rolls the Dharma-thunder, hurls the Dharma-lightning, brings the Dharma-rain, and bestows the Dharma-gift. At all times, he awakens the world with the sound of the Dharma.

그 광명이 무량한 불국토를 두루 비추니 일체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그 모두가 마(魔)의 세계에 미쳐 마군의 궁전을 흔들자 모든 마군들은 겁내고 두려워하여 귀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His light illuminates countless Buddha-lands, causing the entire world to quake in six ways. It encompasses Mara's realm, shaking his palace, so that he and his host become frightened and surrender.

그리고 삿된 법을 쳐부수어 모든 잘못된 견해를 소멸시키고 번뇌의 더러운 먼지를 털어 버리고, 탐욕의 구덩이를 허물어 버렸다. 정법의 성을 엄격히 지키고, 널리 불법을 빛내며, 번뇌의 더러움을 씻고 청정하고 순수한 광명을 나투어 바르게 교화하였다.
The bodhisattva tears asunder the net of evil, destroys wrong views, removes afflictions, flushes the gutters of desire, protects the Dharma-castle, opens the Dharma-gate, washes off the grime of the passions, and reveals the pure white Dharma. He unifies everything in the Buddha Dharma, and thus proclaims the right teaching.

그리하여 여러 나라에 들어가 풍성한 공양을 받으시므로 그들이 공덕을 짓고 복전(福田)을 받도록 하시며, 법을 베풀고자 하실 때에는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고 여러 법의 약[法藥]으로 세 가지의 괴로움[三苦:苦苦, 壞苦, 行苦]을 구제하셨다.
He enters the town to beg alms; he accepts even rich food to enable the donors to accumulate merit and also to show that he is a field of virtue. Wishing to expound the Dharma, he smiles and so cures the three pains with various Dharma-medicines.

또한 무량한 보리심[道意]를 나투시어 그들에게 장차 보살이 될 것을 수기(授記)하시고,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하게 하셨다.
He teaches that the aspiration for Enlightenment has immeasurable merit and, by giving predictions to bodhisattvas, he enables them to attain Buddhahood.

그런 뒤 멸도(滅道)하는 것을 나투어 보이지만, 중생들을 구제하는 바가 끝이 없으며, 그들의 모든 번뇌[漏]를 소멸시키고 선근을 심어 온갖 공덕을 구족케 하는 것이 미묘하여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He demonstrates that he passes into Nirvana, but endlessly brings sentient beings to emancipation. In removing their defilements, planting various roots of virtue and attaining excellent merit, he displays wonderful and inconceivable works.

이와 같이 보살이 여러 불국토에 노닐며 두루 가르침을 나타내니, 그 수행이 청정하여 막히고 걸림이 없었다.
Furthermore, each of the bodhisattvas in the assembly is able to visit various Buddha-lands and expound teachings of the Way. His manner of practice is pure and undefiled.

비유하면 보살은 마치 능란한 환술사[幻師]가 갖가지 다른 모양을 만들기를 때로는 남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자재로이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보살들도 역시 그러하였다. 일체의 법을 배우고 닦아 통달하였으며, 항상 마음이 평온하여 교화에 미치지 않은 바가 없었고, 무수한 불국토에 몸을 두루 나투어 중생 교화에 있어 교만하거나 방자하지 않으며, 못내 중생들을 불쌍히 여겼으며, 보살은 이러한 법을 모두 구족하였다.
Just as a magician with his perfect skill can create at will various illusions, including images of man or woman, at will, so the bodhisattva, having thoroughly learned all the methods of emancipation and attained serene awareness of reality, can freely teach and transform beings. He manifests himself everywhere in innumerable Buddha-lands, performing acts of compassion for sentient beings tirelessly and with diligence. [266b] He has thus obtained complete mastery of such methods of emancipation.

또한 보살은 대승경전의 묘법을 밝히고, 그 이름은 시방에 두루 미쳐 모든 중생을 인도하고 보살피니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들께서 함께 호념(護念)하시는 바이다.
He is thoroughly conversant with the essentials of the sutras for bodhisattvas and, as his fame spreads everywhere, he guides sentient beings throughout the ten quarters. All Buddhas remember him and give him their protection.

그리고 부처님께서 지니신 공덕[佛所住]을 이미 갖추었으며,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계[大聖所立]를 모두 얻었다.
He has already dwelt in all the Buddha's abodes and performed all the deeds of the Great Sage.

부처님의 교화를 능히 선양하여 다른 보살들을 위하여 큰 스승이 되고, 깊은 선정과 지혜로써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며, 모든 법의 성품[法性]에 통달하여 중생의 상[衆生相]의 사정과 모든 국토의 형세를 분명히 알고 있다.
He proclaims the Tathagata's teachings, acts as a great master for other bodhisattvas and, with profound samadhi and wisdom, guides multitudes of beings. With penetrating insight into the essential nature of dharmas, he discerns different aspects of living beings and closely watches over all the worlds.

그리고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때는 그 몸을 나투는 것이 마치 번갯불과 같으며, 능히 두려움 없는 지혜를 잘 배워 이 세상 모두가 환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마군의 그물을 부수고 찢어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며, 성문과 연각의 지위를 초월하여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를 성취하였다.
In making offerings to the Buddhas, he manifests transformed bodies like flashes of lightning. Having well learned the extensive wisdom of fearless and having realized the illusory nature of dharmas, he destroys Mara's nets and unties all the bonds of passion. He rises above the stages of shravakas and pratyekabuddhas and attains the samadhis of emptiness, non-form, and non-desire.

또한 능히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을 건립하고 성문, 연각, 보살의 3승(乘)의 모습으로 나투며, 그들 중에는 중간의 성문과 아래의 연각을 위해서 멸도(滅道)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He skillfully provides expedient means and thus reveals three distinct teachings. Then for those of the middle and lower stages, he demonstrates his passing into Nirvana.

그러나 보살은 본래 지은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평등의 법을 얻으셨다. 한량없는 다라니와 백천 삼매, 모든 근기의 지혜를 다 갖추어 성취하셨다.
But, in reality, he is non-active and non-acquisitive, and, being aware that dharmas in themselves neither arise nor perish, he realizes that they are of absolute equality. He has attained innumerable dharanis, a hundred thousand samadhis and various kinds of spiritual faculties and wisdom.

또한 두루 관찰하는 선정으로 보살의 깊은 법에 들어 부처님의 화엄삼매(華嚴三昧)를 얻어 모든 경전을 선양하고 연설한다.
With the Meditation of Vast and Universal Tranquillity, he enters deeply into the Dharma-treasury for bodhisattvas. After attaining the Buddha-garland Samadhi, he proclaims and expounds all the sutras.

깊은 선정에 머물러 현재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심이 일념 사이에 두루 하지 않음이 없었다.
While dwelling deep in meditation, he visualizes all the innumerable Buddhas and in an instant visits every one of them.

3악도에서 수고하는 중생이나 또는 수행할 틈이 있는 이나 없는 이의 근기에 따라서 진실한 도리를 분별하여 가르치며,
By elucidating and teaching the ultimate truth to sentient beings, he delivers them from the state of extreme pains, from the conditions in which suffering is so great as to prevent people from finding time for Buddhist practices, and also from the conditions in which suffering is not so great as to prevent them from doing so.

모든 여래의 변재지혜(辯才智慧)를 얻어 갖가지 언어와 음성에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한다.
Having attained the Tathagata's thorough knowledge and eloquence, he has fluent command of languages, with which he enlightens all beings.

또한 보살은 세간의 모든 번뇌를 초월하고, 마음은 항상 해탈법에 안주하여 일체의 만물에 있어서 자유자재하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정다운 벗[不請友]이 되어 주고, 중생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진다.
He is above all worldly affairs and his mind, always serene, dwells on the path of emancipation; this gives him complete control over all dharmas. Without being asked to do so, he becomes a good friend to each of the multitude of beings and carries their heavy karmic burdens on his back.

여래의 깊고 심오한 법을 받아 지니고 불종성(佛種性)을 보호하여 항상 끊어지지 않게 하여 불법을 굳게 지킨다.
He upholds the Tathagata's profound Dharma-treasury and protects the seeds of Buddhahood, so that they may continue to multiply.

대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자애로운 변재를 널리 펴서 법의 눈[法眼]을 뜨게 하고, 3악도[三趣]를 막고 3선도(善道)의 문을 열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가 불법[不請之法]으로써 모든 중생들에게 베푸는 것이 마치 효성스러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같다.
Having awakened great compassion for sentient beings, he kindly expounds the teaching, and endows them with the Dharma-eye. He blocks the paths to the three evil realms, opens the gate of virtue and, without waiting for their request, provides beings with the Dharma. He does this for the multitude of beings just as a dutiful son loves and respects his parents.

모든 중생을 자신과 같이 생각하며, 일체의 선근을 심어 모두 피안(彼岸)에 이르게 한다.
He indeed looks upon sentient beings as his own self. With such roots of virtue, all the bodhisattvas in the assembly had reached the shore of emancipation.

이렇듯 모든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과 지혜를 갖추니, 거룩하고 밝아서 그 불가사의한 위신력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이 지혜와 복덕을 원만하게 갖춘 무수한 보살들이 일시에 와서 모였다.
They had acquired the Buddha's immeasurable merit and attained the sacred, pure and inconceivable wisdom. Innumerable bodhisattvas, mahasattvas, such as these assembled there all at once.


1.2절 발기의 차례(發起序, 설법의 인연)

그때 부처님께서는 온몸에 기쁨이 넘치고 기색은 청정하시며, 얼굴의 모습은 거룩하고 엄숙하셨다.
Glorious features of the Buddha
[3] At that time all the senses of the World-Honored One radiated joy, [266c] his entire body appeared serene and glorious, and his august countenance looked most majestic.

아난 존자가 부처님의 성스러운 뜻을 받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무릎을 꿇고 합장 공경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Having perceived the Buddha's holy intention, the Venerable Ananda rose from his seat, bared his right shoulder, prostrated himself, and joining his palms in reverence, said to the Buddha,

“오늘 세존께서는 온몸에 기쁨이 넘치시고 기색은 청정하시며, 얼굴의 모습은 거룩하고 엄숙하심이 마치 밝고 깨끗한 거울에 모든 것이 비치는 것과 같사오며, 위엄이 넘치고 빛나시온데, 저는 일찍이 지금과 같이 수승하고 신묘함을 본적이 없사옵니다.
"World-Honored One, today all your senses are radiant with joy, your body is serene and glorious, and your august countenance is as majestic as a clear mirror whose brightness radiates outward and inward. The magnificence of your dignified appearance is unsurpassed and beyond measure. I have never seen you look so superb and majestic as today.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건대 세존께서는 그 위의가 기이하고 특별하시며, 세상의 영웅[世雄]께서는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경계에 머무시고, 그 세안(世眼)은 대도사의 대행에 머무시며, 그 영걸은 가장 수승한 도에 머물고 계시며, 천존(天尊)이신 세존께서는 여래의 덕을 행하고 계십니다.
With respect, Great Sage, this thought has occurred to me: 'Today, the World-Honored One dwells in the rare and marvelous Dharma; today, the World-Hero dwells in the Buddha's abode; today, the World-Eye concentrates on the performance of the leader's duty; today, the World-Valiant One dwells in the supreme Bodhi; today, the One Most Honored in Heaven realizes the Tathagata's virtue.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은 서로 알아보신다고 하는데, 지금 부처님께서 모든 부처님들을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슨 까닭에 위엄 있고 신비한 광명이 이렇게 미치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The Buddha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contemplate each other. How can this present Buddha not contemplate all other Buddhas?' For what reason does his countenance look so majestic and brilliant?"

이에 대하여 세존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찌 된 것이냐? 아난아, 모든 천신들이 너에게 와서 부처님께 여쭈어 보라고 가르쳤더냐? 아니면 네 스스로의 지혜로 이 위엄을 갖춘 얼굴을 보고 질문하는 것이냐?”
Then the World-Honored One said to Ananda, "Tell me, Ananda, whether some god urged you to put this question to the Buddha or whether you asked about his glorious countenance from your own wise observation."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천신들이 제게 와서 가르쳤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의 소견으로 그 뜻을 여쭙는 것입니다.”
Ananda replied to the Buddha, "No god came to prompt me. I asked you about this matter of my own accord."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아난아, 참으로 기특한 질문이니라. 깊은 지혜와 참으로 미묘한 변재를 일으키고 중생을 불쌍하게 여겨 이와 같이 지혜로운 질문을 하는구나.
The Buddha said, "Well said, Ananda. I am very pleased with your question. You have shown profound wisdom and subtle insight in asking me this wise question out of compassion for sentient beings.

여래는 다함이 없는 대자비로써 삼계(三界)를 불쌍히 여기는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여 진리를 널리 펴서 중생을 건지고 진실한 이익을 베풀고자 함이니라.
As the Tathagata, I regard beings of the three worlds with boundless great compassion. The reason for my appearance in the world is to reveal teachings of the Way and save multitudes of beings by endowing them with true benefits.

무량억 겁 동안 불법을 만나기 어려우며, 여래를 친견하기 어려움이 마치 3천 년 만에 한 번씩 피는 우담발화[靈瑞華]를 만나는 것과 같으니라. 이제 그대가 묻는 바는 모든 천인과 사람들을 크게 이익되게 할 것이며, 길을 열어 교화할 것이니라.
Even in countless millions of kalpas it is difficult to come upon and meet a Tathagata. It is as difficult as seeing an udumbara flower, which blooms very rarely. Your question is of great benefit and will enlighten all heavenly and human beings.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여래의 바른 깨달음은 그 지혜가 헤아리기 어려우며,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도 끝이 없느니라. 그리고 지혜로 보는 바에 장애가 없으니 능히 끊고 자르지 못하는 바가 없느니라.
Ananda, you should realize that the Tathagata's perfectly enlightened wisdom is unfathomable, capable of leading innumerable beings to emancipation, and that his penetrating insight cannot be obstructed.

한 끼의 음식이 주는 힘으로도 능히 백천 겁의 무수 무량한 수명에 머물게 하느니라.
With just one meal, he is able to live for a hundred thousand kotis of kalpas, or an incalculable and immeasurable length of time, or beyond.

그리고 온몸이 기쁨에 넘쳐 흐려지지 않으며, 거룩한 모습과 빛나는 얼굴은 변하지 않나니, 그 까닭은 여래는 언제나 선정과 지혜가 끝이 없으며, 일체의 법에 대하여 자유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니라.
Even after that lapse of time, his senses will still be radiant with joy and show no signs of deterioration; his appearance will not change, and his august countenance will look just the same. The reason for this is that the Tathagata's meditation and wisdom are perfect and boundless and that he has attained unrestricted power over all dharmas.

아난아, 잘 듣도록 하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느니라.”
이에 아난이 아뢰었다.
“오로지 원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자 하옵니다.”
Ananda, listen carefully. I shall now expound the Dharma."
Ananda replied, "Yes, I will. With joy in my heart, I wish to hear the Dharma."


■ 제2장 정종분
2.1절 극락국토의 발원인연(법장비구의 발원과 수행)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일찍이 헤아릴 수 없는 과거, 한량없고도 불가사의한 겁 이전에 정광여래(錠光如來)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여 해탈시켜 모두 도(道)를 얻게 하고, 열반에 드셨느니라.
53 past Buddhas
[4] The Buddha said to Ananda, "In the distant past -- innumerable, incalculable and inconceivable kalpas ago -- a Tathagata named Dipankara appeared in the world. Having taught and freed innumerable beings and led them all along the path of Enlightenment, he passed into Nirvana.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여래께서 계셨으니, 명호가 광원불(光遠佛)이니라.
Next appeared a Tathagata named Far-reaching Light.

그 다음으로 월광불(月光佛) • 전단향불(栴檀香佛) • 선산왕불(善山王佛) • 수미천관불(須彌天冠佛) • 수미등요불(須彌等曜佛) •
After him came Moonlight, and then Sandalwood-Incense, King of Beautiful Mountains, Crown of Mount Sumeru, Brilliant like Mount Sumeru,

월색불(月色佛) • 정념불(正念佛) • 이구불(離垢佛) • 무착불(無着佛) • 용천불(龍天佛) •
Color of the Moon, Right Recollection, Free of Defilement, Non-attachment, Dragon-deva,

야광불(夜光佛) • 안명정불(安明頂佛) • 부동지불(不動地佛) • 유리묘화불(琉璃妙華佛) • 유리금색불(琉璃金色佛) •
Nocturnal Light, Peaceful and Brilliant Peak, Immovable Ground, [267a] Exquisite Beryl Flower, Golden Beryl Luster,

금장불(金藏佛) • 염광불(炎光佛) • 염근불(炎根佛) • 지종불(地種佛) • 월상불(月像佛) •
Gold-treasury, Flaming Light, Fiery Origin, Earth-shaking, Image of the Moon,

일음불(日音佛) • 해탈화불(解脫華佛) • 장엄광명불(莊嚴光明佛) • 해각신통불(海覺神通佛) • 수광불(水光佛) •
Sound of the Sun, Flower of Freedom, Glorious Light, Miraculous Power of the Ocean of Enlightenment, Water Light,

대향불(大香佛) • 이진구불(離塵垢佛) • 사염의불(捨厭意佛) • 보염불(寶炎佛) • 묘정불(妙頂佛) •
Great Fragrance, Free of Dust and Defilement, Abandoning Enmity, Flame of Jewels, Beautiful Peak,

용립불(勇立佛) • 공덕지혜불(功德持慧佛) • 폐일월광불(蔽日月光佛) • 일월유리광불(日月琉璃光佛) • 무상유리광불(無上琉璃光佛) •
Heroic Stance, Merit-possessing Wisdom, Outshining the Sun and the Moon, Beryl Light of the Sun and the Moon, Supreme Beryl Light,

최상수불(最上首佛) • 보리화불(菩提華佛) • 월명불(月明佛) • 일광불(日光佛) • 화색왕불(華色王佛) •
Highest Peak, Flower of Enlightenment, Brightness of the Moon, Sunlight, King of the Colors of Flowers,

수월광불(水月光佛) • 제치명불(除癡冥佛) • 도개행불(度蓋行佛) • 정신불(淨信佛) • 선숙불(善宿佛) •
Moonlight on the Water, Dispelling the Darkness of Ignorance, Practice of Removing Hindrances, Pure Faith, Storage of Good,

위신불(威神佛) • 법혜불(法慧佛) • 난음불(鸞音佛) • 사자음불(師子音佛) • 용음불(龍音佛) • 처세불(處世佛) 등 여러 부처님들께서 지나가셨느니라.
Majestic Glory, Wisdom of the Dharma, Call of the Phoenix, Roar of the Lion, Voice of the Dragon and Dwelling-in-the-world. All these Buddhas have already passed into Nirvana.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가 세자재왕(世自在王) 여래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
Lokeshvararaja Buddha and Dharmakara
[5] "Then appeared a Buddha named Lokeshvararaja, the Tathagata, Arhat, Perfectly Enlightened One, Possessed of Wisdom and Practice, Perfected One, Knower of the World, Unsurpassed One, Tamer of Men, Master of Gods and Men, Buddha and World-Honored One.

그때 국왕이 있었으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기쁜 마음으로 참된 무상보리심을 발하여 나라를 버리고 왕위를 내어 놓고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는데, 그 이름을 법장(法藏)이라 하였느니라.
"At that time there was a king, who, having heard the Buddha's exposition of the Dharma, rejoiced in his heart and awakened aspiration for the highest, perfect Enlightenment. He renounced his kingdom and the throne, and became a monk named Dharmakara.

재주가 뛰어나고 용감하고 슬기로움은 세상에서 뛰어났느니라.
Having superior intelligence, courage and wisdom, he distinguished himself in the world.

그는 세자재왕여래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느니라.
He went to see the Tathagata Lokeshvararaja, knelt down at his feet, walked round him three times keeping him always on his right, prostrated himself on the ground, and putting his palms together in worship, praised the Buddha with these verses:
Sanbutsuge - Verses Praising the Buddha

빛나는 얼굴은 당당하시고
위엄과 신통은 그지없으니
이와 같이 밝고 빛나는 광명
뉘라서 감히 따르리이까.

해와 달과 마니 구슬의
빛이 빛나고 불꽃처럼 타올라도
모두 다 완전히 가려지니
마치 덩어리진 검은 먹과 같네.
1. The shining face of the Buddha is glorious;
Boundless is his magnificence.
Radiant splendor such as his
Is beyond all comparison.
The sun, the moon and the mani-jewel,
Though shining with dazzling brightness,
Are completely dimmed and obscured
As if they were a pile of ink-sticks.

여래의 얼굴은 거룩하시어
이 세상을 무엇으로도 견줄 이 없고
바른 깨달음의 크신 음성
시방에 널리 울리네.

계(戒)와 다문(多聞)과 정진(精進)
삼매(三昧)와 지혜(智慧)
그리고 위덕은 짝할 자가 없으니
수승하고도 희유하도다.
2. The countenance of the Tathagata
Is beyond compare in the whole world.
The great voice of the Enlightened One
Resounds throughout the ten regions.
His morality, learning, endeavor,
Absorption in meditation, wisdom
And magnificent virtues have no equal;
They are wonderful and unsurpassed.

모든 부처님들의 법의 바다[法海]를
자세히 보고 깊이 생각해
끝까지 밝히고 속까지 뚫어
그 안과 바닥을 두루 비추네.

무명과 탐욕과 성냄
세존은 영원히 여의었으며
사자와 같은 위대한 이의
신묘한 공덕은 헤아릴 수 없네.
3. He meditates deeply and directly
On the oceanic Dharma of all the Buddhas.
He knows its depth and breadth
And penetrates to its farthest end.
Ignorance, greed and anger
Are forever absent in the World-Honored One.
He is the lion, the most valiant of all men;
His glorious virtue is unlimited.

크신 덕과 넓은 공적
그 지혜 또한 깊고 오묘하오니
광명과 위엄을 갖춘 그 모습
대천세계를 떨치네.

원하건대 제가 부처님 되어
거룩한 공덕 저 법왕처럼 갖추어
생사(生死)의 중생 모두 건지고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지이다.
4. His meritorious achievements are vast;
His wisdom is deep and sublime.
His light, with awe-inspiring glory, [267b]
Shakes the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I resolve to become a Buddha,
Equal in attainment to you, O holy king of the Dharma,
To save living beings from birth-and-death,
And to lead them all to emancipation.

보시하고 뜻을 조화롭게 하고
계행을 지니고 인내하고
끊임없는 정진 거듭하면
이러한 삼매 지혜 으뜸일세.

나도 맹세코 부처님 되어
두루 이러한 서원 행하고
두려움 많은 중생 위하여
편안한 의지처 되리라.
5. My discipline in giving, mind-control,
Moral virtues, forbearance and effort,
And also in meditation and wisdom,
Shall be supreme and unsurpassed.
I vow that, when I have become a Buddha,
I shall carry out this promise everywhere;
And to all fear-ridden beings
Shall I give great peace.

만일 수많은 부처님 계심이
백천만억이라도
한량없는 큰 성인들
그 수가 항하의 모래알과 같아도

이렇듯 많은 부처님들
빠짐없이 받들어 공양하여도
보리도를 굳게 구하여
물러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리.
6. Even though there are Buddhas,
A thousand million kotis in number,
And multiudes of great sages
Countless as the sands of the Ganges,
I shall make offerings
To all those Buddhas.
I shall seek the supreme Way
Resolutely and tirelessly.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많고 많은 부처님 세계
그보다 더 많아 헤아릴 수 없고
그 많은 세계의 국토에

부처님 광명 널리 비치어
모든 국토에 두루하니
이와 같은 정진과 위신력
무슨 재주로 세어 보리요.
7. Even though the Buddha-lands are as innumerable
As the sands of the Ganges,
And other regions and worlds
Are also without number,
My light shall shine everywhere,
Pervading all those lands.
Such being the result of my efforts,
My glorious power shall be immeasurable.

만일 제가 부처 된다면
국토 장엄은 으뜸 되고
그곳 중생들은 한결같이 훌륭하며
도량은 참으로 수승하오리.

국토가 마치 열반[泥洹]과 같아서
세상에서 둘도 없으며
마땅히 모든 중생 불쌍히 여겨
내가 제도하고 해탈케 하리라.
8. When I have become a Buddha,
My land shall be most exquisite,
And its people wonderful and unexcelled;
The seat of Enlightenment shall be supreme.
My land, being like Nirvana itself,
Shall be beyond comparison.
I take pity on living beings
And resolve to save them all.

시방에서 오는 중생들이
마음이 즐겁고 청정하게 되어
이미 나의 국토에 도착하면
유쾌하고 즐겁고 안온하게 되리라.

원컨대 부처님 굽어 살피사
진실한 저의 뜻 증명하소서.
저 국토에 원력을 세워
있는 힘을 다해 정진하리라.
9. Those who come from the ten quarters
Shall find joy and serenity of heart;
When they reach my land,
They shall dwell in peace and happiness.
I beg you, the Buddha, to become my witness
And to vouch for the truth of my aspiration.
Having now made my vows to you,
I will strive to fulfilll them.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
그 밝은 지혜 걸림 없으니
저의 마음과 수행 정진을
항상 살펴주옵소서.

만일 이 몸이 어쩌다가
온갖 고난에 빠진다 한들
제가 나아가며 정진하고
참지 못하고 후회하오리까.”
10. The World-Honored Ones in the ten quarters
Have unimpeded wisdom;
I call upon those Honored Ones
To bear witness to my intention.
Even though I must remain
In a state of extreme pain,
I will diligently practice,
Enduring all hardships with tireless vigor."

이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법장 비구는 이 게송을 읊은 후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느니라.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는 위없이 바른 깨달음[無上正覺]을 얻고자 발원하였습니다.
Dharmakara's resolution to become a Buddha
[6] The Buddha said to Ananda, "Having spoken these verses, the Bhiksu Dharmakara said to the Buddha Lokeshvararaja, 'Respectfully, World-Honored One, I announce that I have awakened aspiration for the highest, perfect Enlightenment.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널리 경전의 교법[經法]을 말씀하여 주소서. 저는 마땅히 수행하되 부처님 국토가 청정하고 장엄하여 한량없이 청정 미묘하게 국토를 장엄하겠습니다.  
I beseech you to explain the Dharma to me fully, so that I can perform practices for the establishment of a pure Buddha-land adorned with infinite excellent qualities.

저로 하여금 세상에서 빨리 정각을 이루게 해 주시옵고, 생사 괴로움의 뿌리를 뽑아 버리도록 하여 주소서.’”
So please teach me how to attain Enlightenment quickly and to remove the roots of afflictions of birth-and-death for all.'"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어 말씀하셨다.
“그때에 세자재왕(世自在王)여래께서 법장 비구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대가 수행하고자 하는 바와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그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니라.’
The Buddha said to Ananda, "At that time the Buddha Lokeshvararaja replied to the Bhiksu Dharmakara, 'You yourself should know by what practice you can establish a glorious Buddha-land.'

이에 비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그 뜻이 크고 깊어 저의 경계가 아니옵니다.
The Bhiksu said to the Buddha, 'That is far too vast and deep for my comprehension.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 저를 위하여 모든 부처님들께서 정토를 이룩한 수행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I sincerely beseech you, World-Honored One, to explain in detail the practices by which Buddhas, Tathagatas, established their pure lands.

저는 그것을 듣고자 하옵니다. 말씀하신 대로 마땅히 수행하여 소원을 원만히 성취하고자 합니다.’
After I hear that, I wish to practice as instructed and so fulfill my aspirations.'

그때 세자재왕여래께서는 법장 비구의 높고 밝은 뜻과 서원이 심오하고도 광대한 것을 아시고는 법장 비구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셨느니라.
"At that time the Buddha Lokeshvararaja recognized the Bhiksu Dharmakara's noble and high aspirations, and taught him as follows:

‘비유하면 큰 바다에서 한 사람이 적은 양이라도 억 겁의 세월 동안 퍼내면 마침내 바닥에 닿아 미묘한 보배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부처님 도를 구하기를 쉬지 않으면 마땅히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니, 어떠한 소원도 이루지 못할 것 없느니라.’
'If, for example, one keeps on bailing water out of a great ocean with a pint-measure, one will be able to reach the bottom after many kalpas [267c] and then obtain rare treasures. Likewise, if one sincerely, diligently and unceasingly seeks the Way, one will be able to reach one's destination. What vow is there which cannot be fulfilled?'

그리고는 세자재왕여래께서는 그를 위하여 210억의 여러 불국토에 살고 있는 천상과 인간의 선악 그리고 국토의 거칠고 미묘함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Then the Buddha Lokeshvararaja explained in detail the greater and lesser aspects of two hundred and ten kotis of Buddha-lands, together with the good and evil natures of heavenly and human beings living there.

그리고 법장 비구의 소원대로 모두 낱낱이 나투어 보여 주셨느니라.
He revealed them all to the Bhiksu just as he had requested.

그때 법장 비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듣고, 또한 장엄하고 청정한 국토를 그대로 친견하였느니라. 그리하여 더없이 수승하고 가장 뛰어난 원을 세웠느니라.
Then the Bhiksu, having heard the Buddha's exposition of the glorious pure land and also having seen all of them, resolved upon his supreme, unsurpassed vows.

그때 그의 마음은 맑고 고요했으며, 또한 뜻에 집착하는 바가 없었으니, 일체의 세간에서 그에게 미치는 자가 없었느니라. 그리하여 5겁 동안 사유하였으며, 불국토를 장엄하기 위한 청정한 수행법을 받아들였느니라.”
His mind being serene and his aspirations free of attachment, he was unexcelled throughout the world. For five full kalpas he contemplated the vows, and then chose the pure practices for the establishment of his Buddha-land."

이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불국토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Ananda asked the Buddha, "How long was the life-span of beings in the land of the Buddha Lokeshvararaja?"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의 수명은 42겁이니라.
The Buddha replied, "The length of life of that Buddha was forty-two kalpas."

그때 법장 비구는 210억이나 되는 여러 부처님들의 미묘한 국토에서의 청정한 수행을 다 거두어 받아들였느니라.
He continued, "After that Dharmakara Bodhisattva adopted the pure practices which had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excellent lands of two hundred and ten kotis of Buddhas.

그렇게 수행하고 나서 다시 세자재왕여래의 처소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합장하고 여쭈었느니라.
When he had finished this task, he went to the Buddha, knelt down at his feet, walked round him three times, joined his palms in worship and sat down.

‘세존이시여, 저는 일찍이 장엄한 부처님의 국토에서의 청정한 수행을 모두 섭취(攝取)하였습니다.’
He then said to the Buddha, 'I have adopted the pure practices for the establishment of a glorious Buddha-land.'

이에 부처님께서 법장 비구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법장 비구여, 지금이야말로 그대의 서원과 수행의 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려 기쁘게 보리심을 일으키게 할 때이니라.
The Buddha said to him, 'You should proclaim this. Know that now is the right time. Encourage and delight the entire assembly.

보살들은 이미 들은 대로 이 법을 수행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대원(大願)을 성취할 것이니라.’
Hearing this, other bodhisattvas will practice this Dharma and so fulfill their innumerable great vows.'

이에 법장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제 말을 듣고 살펴 주소서. 저의 서원(誓願)을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The Bhiksu replied, 'I beg you to grant me your attention. Now I will fully proclaim my vows.'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지옥ㆍ아귀ㆍ축생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Forty-eight Vows
[7] (1) If, when I attain Buddhahood, there should be in my land a hell, a realm of hungry spirits or a realm of animal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목숨이 다한 뒤에 다시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after death fall again into the three evil realm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진정한 금빛이 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all be the color of pure gold,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형체와 빛깔이 같지 않아서 아름답고 추한 것의 차이가 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all be of one appearance, and should there be any difference in beauty,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숙명통(宿命通)을 얻지 못하여 백천억 나유타 겁의 옛 일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5)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remember all their previous lives, not knowing even the events which occurred during the previous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kalpa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천안통(天眼通)을 얻지 못하여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불국토를 보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6)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possess the divine eye of seeing even a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Buddha-land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천이통(天耳通)을 얻지 못하여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지니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7)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possess the divine ear of hearing [268a] the teachings of at least a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Buddhas and should not remember all of them,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타심통[見他心智]을 얻지 못하여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불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생각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8)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possess the faculty of knowing the thoughts of others, at least those of all sentient beings living in a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Buddha-land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인간과 천신들 가운데 신족통(神足通)을 얻지 못하여 한 찰나[一念頃]에 백천억 나유타에 이르는 모든 불국토를 지나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9)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possess the supernatural power of travelling anywhere in one instant, even beyond a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Buddha-land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누진통(漏盡通)을 얻지 못하여 자신의 생각에 탐착하고 계교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0)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give rise to thoughts of self-attachment,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 가운데 부처가 되려는 정정취(正定聚)에 머물지 못하여 반드시 열반(涅槃)에 들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1)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dwell in the Definitely Assured State and unfailingly reach Nirvana,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저의 광명에 한계가 있어 백천억 나유타에 이르는 모든 불국토를 비추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2) If, when I attain Buddhahood, my light should be limited, unable to illuminate at least a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Buddha-land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수명에 한계가 있어 백천억 나유타 겁에 이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3) If, when I attain Buddhahood, my life-span should be limited, even to the extent of a hundred thousand kotis of nayutas of kalpa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 가운데 성문들을 능히 헤아릴 수 있고 삼천대천세계의 성문과 연각들이 백천 겁 동안 모두 함께 계산하여 그 수를 알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4) If, when I attain Buddhahood, the number of the shravakas in my land could be known, even if all the beings and pratyekabuddhas living in this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should count them during a hundred thousand kalpa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으로서 그 수명은 한량이 없으나 다만 중생제도의 서원에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와 같이 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5)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have limited life-spans, except when they wish to shorten them in accordance with their ogirinal vow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이 좋지 않은 일은 물론 나쁜 이름이라도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6)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even hear of any wrongdoing,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저의 이름을 칭찬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7) If, when I attain Buddhahood, innumerable Buddhas in the land of the ten quarters should not all praise and glorify my Name,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여[信樂] 저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여 10념(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다만 5역죄(逆罪)와 정법을 비방하는 것은 제외합니다.
(18) If, when I attain Buddhahood, sentient beings in the 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sincerely and joyfully entrust themselves to me, desire to be born in my land, and call my Name, even ten times, should not be born there,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Excluded, however, are those who commit the five gravest offences and abuse the right Dharma.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의 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극한 마음으로 서원을 일으켜 저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데도 그들의 임종시에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9) If, when I attain Buddhahood, sentient beings in the 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awaken aspiration for Enlightenment, do various meritorious deeds [268b] and sincerely desire to be born in my land, should not, at their death, see me appear before them surrounded by a multitude of sage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의 중생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저의 국토를 생각한 뒤 많은 공덕의 근본을 심고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저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데도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0) If, when I attain Buddhahood, sentient beings in the 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having heard my Name, concentrate their thoughts on my land, pland roots of virtue, and sincerely transfer their merits towards my land with a desire to be born there, should not eventually fulfill their aspiration,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이 32상(相)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1)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all be endowed with the thirty-two physical characteristics of a Great Man,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모든 불국토의 보살들이 저의 국토에 와서 태어난다면 반드시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지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소원에 따라 중생들을 위하여 큰 서원을 세우고 선근 공덕을 쌓아 일체중생을 제도하거나 또는 모든 불국토를 노닐며 보살의 행을 닦고,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들을 공양하고, 항하의 모래알처럼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위없는 바르고 참된 부처님의 도를 세우고자 하는 이는 제외할 뿐입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보통 행인의 지위를 초월하여 곧바로 보현보살의 10대원을 닦도록 하고자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2)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Buddha-lands of other quarters who visit my land should not ultimately and unfailingly reach the Stage of Becoming a Buddha after One More Life,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Excepted are those who wish to teach and guide sentient beings in accordance with their original vows. For they wear the armour of great vows, accumulate merits, deliver all beings from birth-and-death, visit Buddha-lands to perform the bodhisattva practices, make offerings to Buddhas, Tathagatas, throughout the ten quarters, enlighten uncountable sentient beings as numerous as the sands of the River Ganges, and establish them in the highest, perfect Enlightenment. Such bodhisattvas transcend the course of practice of the ordinary bodhisattvas, manifest the practices of all the bodhisattva stages, and cultivate the virtues of Samantabhadra.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고, 한 번 식사하는 사이에 한량없는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들을 공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3)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my land, in order to make offerings to Buddhas through my transcendent power, should not be able to reach immeasurable and innumerable kotis of nayutas of Buddha-lands in as short a time as it takes to eat a meal,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여러 부처님들 앞에서 공덕의 근본을 드러내려 하는데, 구하는 바의 공양물을 마음대로 모두 갖추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4)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my land should not be able, as they wish, to perform meritorious acts of worshipping the Buddhas with the offerings of their choice,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일체지(一切智)를 얻어 능히 불법을 연설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5)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my land should not be able to expound the Dharma with the all-knowing wisdom,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금강역사와 같은 나라연신(那羅延身)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6) If, when I attain Buddhahood, there should be any bodhisattva in my land not endowed with the body of the Vajra-god Narayana,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과 일체 만물은 장엄하고 청정하며 화려하게 빛나며, 그 모양과 색깔이 수승하고 미묘함을 이루 다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모든 중생들이 천안통을 얻어 그 이름과 수를 능히 분명하게 헤아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7) If, when I attain Buddhahood, sentient beings should be able, even with the divine eye, to distinguish by name alculate by number all the myriads of manifestations provided for the humans and devas in my land, which are glorious and resplendent and have exquisite details beyond description,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 내지 적은 공덕이라도 있는 자가 그 도량의 나무가 한없이 빛나고 그 높이가 4백 유순이나 되는 것을 능히 알아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8)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my land, even those with little store of merit, should not be able to [268c] see the Bodhi-tree which has countless colors and is four million li in height,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경전을 읽고 외우고 남에게 설법할 수 있는 변재(辯才)와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9)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my land should not acquire eloquence and wisdom in upholding sutras and reciting and expounding them,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지니는 지혜와 변재에 한계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0) If, when I attain Buddhahood, the wisdom and eloquence of bodhisattvas in my land should be limited,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불국토가 청정하여 모두 빠짐없이 시방세계에 있는 일체 무량무수의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세계를 비추어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로 얼굴을 비춰 보는 것과 같지 않으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1) If, when I attain Buddhahood, my land should not be resplendent, revealing in its light all the immeasurable, innume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lands, like images reflected in a clear mirror,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지상이나 허공에 있는 궁전과 누각, 시냇물과 연못, 그리고 화초와 나무 등 국토 안에 있는 일체 만물들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보배와 백천 가지의 향으로 이루어지고, 장엄하게 장식되어 기묘하며, 모든 인간계나 천상계보다 뛰어나며, 그 향기가 널리 시방세계에 퍼져 보살들은 그 향기를 맡고 모두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2) If, when I attain Buddhahood, all the myriads of manifestations in my land, from the ground to the sky, such as palaces, pavilions, ponds, streams and trees, should not be composed of both countless treasures, which surpass in supreme excellence anything in the worlds of humans and devas, and of a hundred thousand kinds of aromatic wood, whose fragrance pervades all the worlds of the ten quarters, causing all bodhisattvas who sense it to perform Buddhist practices, then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의 중생들이 저의 광명을 입고, 그들의 몸에 비치기만 하여도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경쾌해져 인간계와 천상계를 초월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3) If, when I attain Buddhahood, sentient beings in the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have been touched by my light, should not feel peace and happiness in their bodies and minds surpassing those of humans and deva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의 중생들로 저의 이름[名字]을 듣고서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과 갖가지 깊은 다라니[總持]를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4) If, when I attain Buddhahood, sentient beings in the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have heard my Name, should not gain the bodhisattva's insight into the non-arising of all dharmas and should not acquire various profound dharani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의 여인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환희하고 즐거이 믿고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멀리하였는데도 목숨을 마친 뒤에 다시 여인의 모습을 받게 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5) If, when I attain Buddhahood, women in the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having heard my Name, rejoice in faith, awaken aspiration for Enlightenment and wish to renounce womanhood, should after death be reborn again as women,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에 사는 여러 보살의 무리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목숨을 마친 뒤에도 항상 청정하게 수행하고 범행(梵行)을 닦아 성불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6)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have heard my Name, should not, after the end of their lives, always perform sacred practices until they reach Buddhahood,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에 사는 여러 천인들과 인간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예배하고 환희심을 내어 믿고 좋아하며 보살행을 닦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천인과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7)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the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who having heard my Name, prostrate themselves on the ground to revere and worship me, rejoice [269a] in faith, and perform bodhisattva practices, should not be respected by all devas and people of the world,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사람과 천인들이 의복을 얻고자 하면 생각하는 대로 바로 의복이 생기며, 마치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바와 같이 법도에 맞는 미묘한 옷이 저절로 몸에 입혀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옷을 바느질하거나 물들이거나 빨래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8)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obtain clothing, as soon as such a desire arises in their minds, and if the fine robes as prescribed and praised by the Buddhas should not be spontaneously provided for them to wear, and if these clothes should need sewing, bleaching, dyeing or washing,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에 사는 사람과 천인들이 느끼는 유쾌함과 즐거움이 번뇌를 여읜 비구들과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9) If, when I attain Buddhahood, humans and devas in my land should not enjoy happiness and pleasure comparable to that of a monk who has exhausted all the passion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뜻에 따라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장엄하고 청정한 불국토를 보고자 한다면, 원하는 대로 보배 나무 가운데에서 모두 빠짐없이 비추어 보는 것이 마치 밝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이 비쳐질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0) If, when I attain Buddhahood, the bodhisattvas in my land who wish to see the immeasurable glorious Buddha-lands of the ten quarters, should not be able to view all of them reflected in the jewelled trees, just as one sees one's face reflected in a clear mirror,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여러 보살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성불할 때까지 온몸의 근기[諸根]가 부족하여 구족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1)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at any time before becoming Buddhas, have impaired, inferior or incomplete sense organ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보살들이 저의 이름을 들은 이는 모두 빠짐없이 청정한 해탈삼매를 얻고, 그 삼매에 머물러 한생각 동안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되 삼매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2)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not all attain the samadhi called 'pure emancipation' and, while dwelling therein, without losing concentration, should not be able to make offerings in one instant to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Buddhas, World-Honored One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여러 보살들의 무리로서 저의 이름을 들은 이는 수명이 다한 뒤에 존귀한 가문에 태어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3)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not be reborn into noble families after their death,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보살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환희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아 모든 공덕을 구족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4)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not rejoice so greatly as to dance and perform the bodhisattva practices and should not acquire stores of merit,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보살들이 저의 이름을 들으면 모두 빠짐없이 보등삼매(普等三昧)를 속히 얻을 것이며, 이 삼매에 머물러 성불할 때까지 항상 무량하고 불가사의한 일체제불을 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5)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not all attain the samadhi called 'universal equality' and, while dwelling therein, should not always be able to see all the immeasurable and inconceivable Tathagatas until those bodhisattvas, too, become Buddha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그 국토의 보살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듣고자 하는 법문을 자연히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6)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my land should not be able to hear spontaneously whatever teachings they may wish, [269b]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보살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곧바로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이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7)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not instantly reach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 다른 국토에 있는 보살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 음향인(音響忍)ㆍ유순인(柔順忍)ㆍ무생법인(無生法忍)에 이르지 못하고, 모든 불법에 대해 불퇴전에 이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8) If, when I attain Buddhahood, bodhisattvas in the lands of the other quarters who hear my Name should not instantly gain the first, second and third insights into the nature of dharmas and firmly abide in the truths realized by all the Buddhas,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이와 같이 비구가 부처님께 그의 원을 말씀드렸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때 법장 비구는 자신의 서원을 모두 말한 다음에 게송으로 아뢰었느니라.
Juseige - Verses Confirming the Vows
[8] The Buddha said to Ananda, "The Bhiksu Dharmakara, having thus proclaimed those vows, spoke the following verses:

내가 세운 이 서원은 세상에 없는 일
반드시 위없는 도[無上道]에 이르리라.
이 서원이 원만히 구족되지 않는다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으리.
1. I have made vows, unrivaled in all the world;
I will certainly reach the unsurpassed Way.
If these vows should not be fulfilled,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내가 한량없는 오랜 겁 동안
크나큰 시주가 되지 못하여
가난하고 고통받는 중생 제도하지 못한다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으리.
2. If I should not become a great benefactor
In lives to come for immeasurable kalpas
To save the poor and the afflicted everywhere,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내가 만일 위없는 부처가 되어
그 명성이 시방세계를 초월할 때
그 명성을 듣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으리.
3. When I attain Buddhahood,
My Name shall be heard throughout the ten quarters;
Should there be any place where it is not heard,
May I not attain perfect Enlightenment.

탐욕을 여의고 바른 기억[正念] 깊이 지니고
청정한 지혜로 도를 닦아서
위없는 진리를 구하고자 뜻을 세워
천상과 인간의 스승 되리.
4. Free of greed and with deep, perfect mindfulness
And pure wisdom, I will perform the sacred practices;
I will seek to attain the unsurpassed Way
And become the teacher of devas and humans.

위신력으로 큰 광명을 펼쳐
널리 끝없는 모든 세계 비추고
세 가지 어두움의 때[三垢冥] 소멸시키고
중생의 온갖 재난 구제하리.
5. With my divine power I will display great light,
Illuminating the worlds without limit,
And dispel the darkness of the three defilements;
Thus I will deliver all beings from misery.

그대들 지혜의 눈을 열어
이 세상 어두운 이 눈뜨게 하고
여러 가지 악한 길을 막아 버리고
좋은 세상 가는 길 활짝 열어 주리라.
6. Having obtained the eye of wisdom,
I will remove the darkness of ignorance;
I will block all the evil paths
And open the gate to the good realms.

공덕과 복덕을 두루 갖추어
거룩한 빛 시방세계 널리 비추니
해와 달의 밝은 빛 오히려 무색케 되고
천상의 광명도 숨어 버리네.
7. When merits and virtues are perfected,
My majestic light shall radiate in the ten quarters,
Outshining the sun and the moon
And surpassing the brilliance of the heavens.

중생들을 위하여 법의 창고[法藏]를 열어
널리 공덕의 보배를 베풀고
항상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
사자후(師子吼)로 법을 설하리.
8. I will open the Dharma-store for the multitudes
And endow them all with treasures of merit.
Being always among the multitudes,
I will proclaim the Dharma with the lion's roar.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한량없는 공덕 두루 갖추고
서원과 지혜가 빠짐없이 원만하게 이루어
삼계의 영웅이신 부처 되리.
9. I will make offerings to all the Buddhas,
Thereby acquiring roots of virtue.
When my vows are fulfilled and my wisdom perfected,
I shall be the sovereign of the three worlds.

부처님의 걸림없는 지혜와 같이
모든 것에 통달하여 비추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원하옵건대 저의 공덕과 지혜의 힘이
가장 수승한 부처님과 같아지이다.
10. Like your unhindered wisdom, O Buddha,
Mine shall reach everywhere, illuminating all;
May my supreme wisdom
Be like yours, Most Excellent Honored One.

만약 이 서원이 이루어지면
삼천대천세계가 감동하며
허공에 가득한 모든 천신들
미묘하고도 진기한 꽃비 뿌려 주리.”
11. If these vows are to be fulfilled,
Let this universe of a thousand million worlds shake in response [269c]
And let all the devas in heaven
Rain down rare and marvelous flowers."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법장 비구가 이 게송을 읊고 나자 두루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천상으로부터 오묘한 꽃이 비 오듯 쏟아져 그 위에 흩날렸으며, 저절로 음악이 울렸고 허공 중에서 ‘결정코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리라’고 찬탄하는 소리가 들렸느니라.
Dharmakara's practices of the Bodhisattva Path
[9] The Buddha said to Ananda, "As soon as the Bhiksu Dharmakara spoke those verses, the entire earth shook in six ways, and a rain of wonderful flowers fell from heaven, scattering everywhere. Spontaneous music was heard, and a voice in the sky said, 'Surely you will attain the highest, perfect Enlightenment.

이에 법장 비구는 이와 같은 크나큰 서원을 구족하여 원만히 성취하려는 진실한 마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세간을 벗어나 깊이 적멸(寂滅)에 들었느니라.
"Then the Bhiksu Dharmakara kept all those great vows which were sincere, unfailing and unsurpassed in the whole world, and intensely aspired to attain Nirvana.

아난아, 그때 법장 비구는 그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있는 여러 천신과 악마, 범천, 용신 등의 8부 대중 가운데서 이러한 큰 서원을 세우고자 오직 한결같이 뜻을 전념하여 미묘한 불국토를 세우고자 굳은 결심을 하였느니라.
"Then, Ananda, after proclaiming and establishing those universal vows in the presence of the Buddha Lokeshvararaja before the multitude of beings, including the eight kinds of superhuman beings, such as devas and dragon-spirits, and also Mara and Brahma, the Bhiksu Dharmakara was solely intent on producing a glorious and exquisite land.

그가 세우고자 하는 불국토는 한량없이 넓고 커서 다른 모든 국토보다 가장 수승하여 비할 데가 없고, 건립된 국토는 영원히 머물러 쇠퇴하거나 변함도 없느니라.
The Buddha-land which he sought to establish was vast in extent, unsurpassed and supremely wonderful, always present and subject neither to decay nor change.

이것은 보살이 불가사의한 영겁을 지나면서 한량없는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니라.
During inconceivable and innumerable kalpas, he cultivated the immeasurable meritorious practices of the Bodhisattva Path.

그는 탐욕[欲覺], 성냄[瞋覺], 남을 해치려는 짓[害覺]을 하지 않았으며, 애욕의 마음[欲想], 진에의 마음[瞋想], 해치려는 생각[害想]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또한 색(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대상[法]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어려움을 참아내는 인욕의 행을 닦아서 어떠한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또한 욕심이 적어 스스로 만족하여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3독(毒) 번뇌에 물들지 않고 항상 적정한 삼매에 잠겨 있어 밝은 지혜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었느니라.
"He did not harbor any thought of greed, hatred or cruelty; nor did he allow any ideas of greed, hatred or cruelty to arise. He was unattached to any form, sound, smell, taste, touch or idea. Possessed of the power to persevere, he did not avoid undergoing various afflictions. Having little desire for his own sake, he knew contentment. Without any impure thought, enmity or stupidity, he dwelt continually in tranquil samadhi. His wisdom was unobstructed, and his mind free of falsehood and deceitfulness.

그리고 남을 대할 때 거짓으로 속이거나 아첨하는 마음이 없어 언제나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말로 미리 중생의 뜻을 헤아려 법을 말씀하셨으며, 또한 용맹 정진하여 서원을 굽히지 않았고, 청정하고 결백한 진리를 구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느니라.
With an expression of tenderness in his face and with kindness in his speech, he spoke to others in consonance with their inner thoughts. Courageous and diligent, strong-willed and untiring, he devoted himself solely to the pursuit of the pure Dharma, thereby benefiting a multitude of beings.

그는 또 3보를 공경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겼으며, 온갖 수행을 닦고 복과 지혜의 큰 장엄을 갖추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공덕을 성취하게 하였느니라.
He revered the Three Treasures, respected his teachers and elders, and thus adorned his practices with a great store of merits. By so doing, he enabled sentient beings to partake of it.

그리고는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의 법에 머물러, 모든 현상은 본래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일어난 것도 아니며 단지 인연 화합일 뿐이라고 관조(觀照)하였느니라.
"He dwelt in the realization that all dharmas are empty, devoid of distinctive features, and not to be sought after, and that they neither act nor arise; he thus realized that all dharmas are like magical creations.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쳐 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운 말을 멀리하고, 자기도 이롭고 타인도 이로워 자신도 타인도 모두에게 이익되는 말을 닦고 익혔느니라.
He avoided all wrong speech that would bring harm upon himself or others or both; he engaged in right speech that would bring benefit to himself or others or both.

그래서 그는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재물과 색을 끊어 버리고, 몸소 6바라밀(波羅蜜)을 행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이것을 행하도록하였다.
He abandoned his kingdom and renounced the throne, leaving behind wealth and sensuous pleasures. Practicing the Six Paramitas himself, he taught others to do the same.

이와 같이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한 공덕을 쌓고 복덕을 구족하여 태어나고자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나투었으며, 헤아릴 수 없는 보배의 법문[寶藏]이 저절로 우러나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안온하게 하고 무상의 바른 진리를 깨닫게 하였느니라.
During innumerable kalpas, he accumulated merits and amassed virtues. "Wherever he was born, an immeasurable stock of treasure spontaneously appeared as he wished. He taught countless sentient beings and guided them on the path of the highest, true Enlightenment.

그는 때로는 장자(長者) 혹은 거사(居士), 부유한 자 혹은 존귀한 가문의 사람이 되기도 하고, 찰제리의 국왕 혹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도 하였으며, 6욕천(欲天)의 주인 또는 범천왕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대로 태어나서 항상 4물[四事]로써 일체 제불께 공양하고 공경하였으니, 그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He was reborn as a rich man, a lay devotee, a member of the highest caste or of a noble family, a ksatriya king, a wheel-turning monarch, a king of one of the six heavens in the world of desire, or even higher, as a Brahma-king. He revered and worshipped all Buddhas by making the four kinds of offering to them. The merit he thus acquired was indescribably great.

그의 입에서 나오는 향기는 정결하여 우발라화(優鉢羅華)와 같고,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전단향의 향기가 풍기었으니, 그 향기는 무량세계에 두루 퍼졌느니라.
Fragrance issued from his mouth as from a blue lotus-flower, and every pore of his body emitted the scent of sandalwood, which permeated innumerable worlds.

또 그 용모[容色]가 단정하고 상호(相好)가 수승하고 미묘하였으며, 손에서는 항상 무량한 보배와 의복과 음식 및 진기하고, 미묘한 꽃과 향이며, 갖가지 일산[蓋]과 깃발 등 장엄하는 도구들이 나왔느니라.
His appearance was majestic, and his physical characteristics and marks were truly wonderful. From his hands, inexhaustible treasures, clothes, food and drink, rare and exquisite [270a] flowers and incense, silken canopies, banners, and other ornaments were produced.

이와 같은 물건들은 모든 천인들의 것보다 뛰어나고 훌륭하였으며, 그는 이처럼 모든 법에 있어서 자유자재함을 얻었느니라.”
In such manifestations he was unrivaled among all heavenly and human beings. He thus attained the command of all dhar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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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지법경(知法經) 잡아함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알아야 할 법과 지혜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當說所知法、智及智者。諦聽,善思,當爲汝說。

어떤 것이 알아야 할 법[所知法]인가? 이른바 5수음(受陰)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ㆍ수수음ㆍ상수음ㆍ행수음ㆍ식수음이니, 이것을 알아야 할 법이라 하느니라.
云何所知法?謂五受陰。何等爲五?色受陰,受、想、行、識受陰,是名所知法。

어떤 것을 지혜[智]라 하는가?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넘는 것이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云何爲智?調伏貪欲、斷貪欲、越(월)貪欲,是名爲智。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자[智者]인가? 그는 곧 아라한이다.
云何智者?阿羅漢是。

아라한에게는 다른 세상의 죽음이 있지도 않고, 다른 세상의 죽음이 없지도 않으며, 다른 세상의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않고, 다른 세상의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않지도 않나니, 넓게 말하면 한량이 없어서 모든 수(數)9)가 아주 소멸하였다.
阿羅漢者,非有他世死、非無他世死、非有無他世死、非非有無他世死,廣說無量,諸數永滅。

이것이 알아야 할 법과 지혜와 지혜로운 자에 대한 설명이니라.”
是名說所知法、智及智者。”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불설십호경(佛說十號經)


서천(西天) 천식재(天息災) 한역
송성수 번역
西天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少卿明教大師臣 天息災 奉 詔譯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께 아난이 여쭈었다.
如來、應供、正等覺、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阿難白言:

“왜 여래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비구[苾芻,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인지(因地)에서 보살로 있을 때 많은 행을 두루 닦으면서 위없는 정등정각(正等正覺)을 구하였고, 이제 보리와 열반과 일체 진실을 얻어 8성도(聖道)의 바른 소견으로 증득하였으므로 이름을 여래라 한다. 이는 지나간 세상의 정등정각이 조복하여 마음을 쉬고 열반에 이르게 된 까닭에 여래라고 하는 것과 같다.”
‘云何如來?’佛告苾芻:‘我昔因地爲菩薩時,歷修衆行,爲求無上正等正覺,今得菩提涅槃一切眞實,以八聖道正見所證,名爲如來。如過去正等正覺,調伏息心,得至涅槃故,名如來。

“왜 응공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인위(因位)에 있으면서 행해야 할 선법(善法)ㆍ위의(威儀)ㆍ계품(戒品)ㆍ10선근의 힘을 닦아서 더욱 늘어나게 하였다. 이렇게 닦아 익히고 원만히 하여 마지막 지위에 이르렀고, 열반을 증득할 때 일체의 번뇌를 끊어서 없앴으며,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게 하여 번뇌를 영원히 없앴다. 이는 다라(多羅)나무의 꼭대기를 잘라 움이 영원히 돋지 못하게 함과 같다.
또 탐냄ㆍ성냄ㆍ 어리석음의 번뇌가 다하였으므로 어떤 세계에도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으며, 네 가지의 어려움[四難]과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운 과보의 법을 뛰어넘어 미혹과 괴로움 이 두 가지가 영원히 생기지 않으므로 응공이란 이름이 있게 되었다.
또 세간의 모든 의복ㆍ침구ㆍ음식ㆍ의약과 당기ㆍ번기ㆍ보배 일산과 향ㆍ꽃ㆍ등불ㆍ과일과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부처님께 공양하게 하여 최상의 부귀와 길상의 복을 얻게 한다. 이를 응공이라고 한다.”
’‘云何應供?’佛言:‘昔在因位,所行善法,威儀戒品,十善根力修令增長,如是修習,圓滿至究竟位,證涅槃時,斷盡一切煩惱,令身、口、意淸淨無染,永害煩惱,如斷多羅樹頭,永不生芽。復次,貪、瞋、癡等煩惱盡故,一切諸趣永不結生,超過四難生、老、病、死苦果之法,惑苦二種,而永不生,立應供號。復次,令彼世間所有衣服、臥具、飮食、湯藥幢幡寶蓋香花燈菓及天上人間最上之物,供養於佛,獲得最上富貴吉祥之福,是名應供之號。

“왜 정등각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는 일체지(一切智)를 갖추어 일체처(一切處)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4념처(念處)ㆍ4정단(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성도(聖道)ㆍ12연생(緣生)ㆍ4제법(諦法) 등 이와 같은 법으로써 일체의 중생들을 평등하게 열어 깨우치며, 지혜를 일으켜 미혹을 끊고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佗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게 하고, 3명(明)과 6통(通)을 갖추게 한다.
다시 대승에 뜻을 일으켜 구하게 하고, 여러 지위[地]를 편력하며 닦아 번뇌의 습성을 완전히 끊어 없애고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게 한다. 이를 정등각이라 한다.”
’‘云何正等覺?’佛言:‘如來具一切智,於一切處,無不了知,以四念處、四正斷、四神足、五根、五力、七覺支、八聖道、十二緣生、四諦法等,如是之法,平等開覺一切衆生,令起智斷惑證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具三明、六通。
復於大乘,作意思求歷修諸地,斷盡結習,成無上覺,此名正等正覺。’

“왜 명행족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명(明)은 천안명(天眼明)ㆍ숙명명(宿命明)ㆍ누진명(漏盡明)을 말한다. 행족(行足)이란, 여래는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만족하게 잘 닦아 바르고 참되고 청정하다는 것이다. 큰 가사와 발우 등이 있더라도 자재하게 관조(觀照)하여 애착이 없으며, 스스로의 원력으로 일체의 행을 닦아 만족하게 한다. 이를 명행족이라 한다.”
‘云何明行足?’ 佛言:‘明,謂天眼明、宿命明、漏盡明。行足者,爲如來身、口、意業,善修滿足正眞淸淨,如有大衣鉢等,自在觀照,而無愛著,於自願力一切之行,修令滿足,號明行足。'

“왜 선서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곧 '묘하게 간다'는 뜻이니, 만일 탐냄ㆍ성냄ㆍ 어리석음 등으로 모든 유정들을 인도하여, 저 나쁜 세계로 간다면 선서라 할 수 없다. 여래는 바른 지혜로 모든 미혹을 끊고 묘하게 세간을 벗어나 부처님의 깨달은 지위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선서라 한다.”
’‘云何善逝?’ 佛言:‘卽妙往之義,如貪、瞋、癡等,引諸有情,往彼惡趣,非名善逝。如來正智能斷諸惑,妙出世閒,能往佛果,故名善逝。’

“왜 세간해ㆍ무상사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世間)이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와 지옥ㆍ아귀ㆍ축생 등의 종류를 말한다.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6식(識)의 연이 되는 경계 등 일체의 법을 각기 갖추고 있으므로 세간이라 한다. 이를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알므로 세간해(世間解)라 한다. 또 그 세간에 존재하는 두 발 짐승ㆍ네 발 짐승ㆍ여러 발 달린 짐승ㆍ발 없는 짐승과 욕계ㆍ색계의 여러 하늘과 유상천(有想天)ㆍ무상천(無想天)ㆍ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의 범부와 성인을 막론한 일체 유정 가운데서 오직 부처님만이 제일이며, 최상이며, 같을 이가 없으므로 무상사라 한다.”
‘云何世閒解無上士?’佛言:‘世閒者,謂欲界、色界、無色界、地獄餓鬼、傍生等類,各具色蘊、受蘊、想蘊、行蘊、識蘊、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及彼六識所緣境等一切諸法,名曰世閒。正覺正知名世間解。又彼世閒所有二足、四足、多足、無足,欲色諸天,有想,無想,非有想,非無想,若凡若聖,一切有情之中,唯佛弟一最上無等,名無上士。

“왜 조어장부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바로 대장부며, 선과 악 두 무리를 잘 다룬다. 악한 이는 착하지 못한 3업(業)을 일으켜 여러 악을 짓고,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지는 나쁜 과보를 받는다. 착한 이는 몸과 입과 뜻으로 많은 선을 닦아 인간과 천상의 복된 과보를 받는다. 이러한 선과 악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짓는 것이다. 부처님은 제일의선(第一義善)인 열반의 법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잘 다루어 더러운 마음과 몸을 벗어나 최상의 적멸열반을 얻게 한다. 그러므로 조어장부라는 이름을 얻었다.”
’‘云何調御丈夫?’佛言:‘佛是大丈夫,而能調御善惡二類,惡者起,不善三業,而作諸惡,墮地獄、餓鬼、傍生,而得惡報。善者,於身、口、意,而修衆善,得人、天福果,此之善惡皆由心作,佛以第一義善涅槃之法,顯示調御,令離垢染,獲得最上,寂滅涅槃,是故得名調御丈夫。

“왜 천인사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 한 비구에게만 스승인 것이 아니다. 모든 비구ㆍ비구니[苾芻尼]ㆍ우바새[烏波塞]ㆍ우바이[烏波夷]와 천상과 인간의 모든 사문ㆍ바라문ㆍ마왕ㆍ외도ㆍ제석ㆍ범왕ㆍ용ㆍ하늘이 모두 다 귀명하고, 가르침에 의지해 받들어 행하고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그러므로 천인사라고 한다.”
’‘云何天人師?’佛言:‘非與阿難一苾芻爲師,所有苾芻、苾芻尼、烏波塞、烏波夷及天上、人間、沙門、婆羅門、魔王、外道、釋梵、龍、天悉皆歸命,依教奉行,俱作佛子,故名天人師。

“왜 부처님이라고 합니까?”
“지혜가 구족하며 3각(覺)이 원만히 밝으므로 부처님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난날 경행하고 있을 때 어떤 바라문이 와서 나에게 묻기를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지어준 이름이 있는데 왜 부처님이라고 부르는가?’라고 하기에, 나는 대답하였다.
‘세상에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분명히 알고, 세상에 볼 수 있는 것은 나 역시 다 보며, 없앨 수 있는 것은 나 역시 없앨 수 있다. 나는 일체지(一切智)를 갖추어 모든 것을 분명히 안다. 나는 무수한 겁부터 가지가지로 수행하여 번뇌를 여의고 지금 위없는 보리를 얻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라는 이름이 있게 된 것이다.’”
’‘云何名佛?’‘智慧具足,三覺圓明,是故名佛。’佛告阿難:‘我昔經行之次,有婆羅門而來問我:何故汝之父母爲汝立名呼爲佛邪?佛卽答言:世所知者,我能了知;世所觀者,我亦能觀;所得滅者,我亦得滅。我具一切智,一切了知。我從無數劫,種種修行,遠塵離垢,今得無上菩提,故立佛號。

“왜 세존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인지(因地)에서 스스로 모든 선법(善法)ㆍ계법(戒法)ㆍ심법(心法)ㆍ지혜법(智慧法)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또 모든 번뇌와 생멸 등의 괴로움을 초래하는 탐욕 등의 불선법(不善法)을 관찰하여 무루(無漏)의 지혜로써 그 번뇌를 무찌르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하늘과 인간, 범부와 성인, 세간과 출세간에서 모두 다 존중한다. 때문에 세존이라 한다.”
’‘云何世尊?’佛言:‘我於因地自審觀察所有善法,戒法、心法、智慧法,復觀貪等不善之法,能招諸有生滅等苦,以無漏智,破彼煩惱,得無上覺。是故天、人、凡、聖,世、出世間,咸皆尊重,故曰世尊。


’佛說十號經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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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 잡아함경(雜阿含經)

전 50권
총 1,362개의 경
구나발타라 한역
전반부인 제1경에서 제489경.
5온(蘊)ㆍ6입(入)ㆍ12처(處)ㆍ18계(界) 및 4성제(聖諦)와 연기법(緣起法)
중반부인 제490경에서 제969경.
37도법(道法) 즉 4념처(念處)ㆍ4여의족(如意足)ㆍ4의단(意斷)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정도(正道)
후반부인 제970경에서 제1,362경.
10선행이나 10악행 그리고 그 과보에 대한 설법, 3독(毒)에 관한 설법, 성문 4과(果)

1. 개요
팔리어로 상윳타 니카야(Samyuttanikaya)라고 표기된다. 상윳타( Samyutta)는 ‘(주제에 따라) 함께 엮어진 모음집’을 의미한다. 한역에서는 이것을 ‘잡(雜)’으로 옮겼는데,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경명(經名)이 의미하듯 『잡아함경』에는 4아함 중 짧은 경들이 가장 많이 들어 있다. 이것은 『잡아함경』이 다른 아함경에 비해 보다 원시적인 형태의 경전이라고 추정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경전에는 붓다의 초기 교설과 함께 붓다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 있어서 깊은 감명을 준다. 또한 그 교설 중에는 후대에 나타난 대승불교 사상의 기초가 되는 것도 많이 있다.

2. 성립과 한역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Gunabhadra, A.D. 393~468)가 435년에서 443년 사이에 범어원본을 번역하였다. 『정원록(貞元錄)』에는 구나발타라가 법현(法顯)이 범어원본을 가져 온 것을 양도(楊都)의 와관사(瓦官寺)에서 번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3. 주석서 및 이역본
『잡아함경』에 대한 부분적인 이역본들로서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을 비롯하여 1권으로 된 『잡아함경』ㆍ『불설칠처삼관경(佛說七處三觀經)』ㆍ『불설오온개공경(佛說五蘊皆空經)』ㆍ『불설성법인경(佛說聖法印經)』ㆍ『불설법인경(佛說法印經)』ㆍ『오음비유경(五陰譬喩經』)ㆍ『불설수말소표경(佛說水沫所漂經)』ㆍ『불설부자수의경(佛說不自守意經)』ㆍ『불설만원자경(佛說滿願子經』) 등 총 19개의 경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합해서 34권에 이른다.

4. 구성과 내용
상좌부 율장의 주석서인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samantapasadika)』에 의하면 상윳타 니카야(Samyuttanikaya)에는 총 7,762개의 경이 들어 있다. 그러나 PTS본으로 현존하는 상윳타 니카야는 전체 5품(品, vagga), 56상응(相應, samyutta), 2,889개의 경(sutta)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한역본에는 총 1,362개의 경이 있으며 간단히 요약된 경들까지 더하면 총 13,000여 개의 경이 존재한다.

한역 『잡아함경』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인 제1경에서 제489경까지는 5온(蘊)ㆍ6입(入)ㆍ12처(處)ㆍ18계(界) 및 4성제(聖諦)와 연기법(緣起法)을 내용으로 하는 설법들이 반복되고 있고, 불교의 핵심 교의인 3법인(法印)이 강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존재와 인식에 관한 내용과 해탈에 열반에 관한 내용이 설법의 주를 이루고 있다.

중반부인 제490경에서 제969경까지는 수행방법인 37도법(道法) 즉 4념처(念處)ㆍ4여의족(如意足)ㆍ4의단(意斷)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정도(正道)등 및 기타 수행법이 설해지고 있다.

이외에 선지식에 관한 설법, 인과응보의 실재에 대한 설법들과 몇몇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 및 우바새에 관한 설법이 있고, 아쇼카왕의 이야기 등과 같은 역사적 실화가 포함된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후반부인 제970경에서 제1,362경까지는 10선행이나 10악행 그리고 그 과보에 대한 설법, 3독(毒)에 관한 설법, 성문 4과(果)에 대한 자세한 설법, 비구와 비구니들의 구도(求道)와 항마(降魔)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외에 귀신 탈을 만들어 부처님을 놀라게 하려는 비구의 장난과 천신ㆍ여우들에 관한 우화들이 있다.

『잡아함경』에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교훈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붓다 당시의 승가모습뿐만 아니라 사회적 배경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경의 곳곳에는 붓다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도 잘 드러난다. 『잡아함경』에는 여러 경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붓다 당시의 사건들이 소박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어떤 경전보다 더욱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경전과 달리 붓다 당시의 모습을 보다 근접하게 반영한 경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 증일아함경 제3권
增壹阿含經卷第三
동진 계빈 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김월운 번역
東晉罽賓三藏瞿曇僧伽提婆 譯

4. 제자품(弟子品)1) 비구 100명
5. 비구니품(比丘尼品) 비구니 50명
6. 청신사품(淸信士品) 우바새 40명
7. 청신녀품(淸信女品) 우바사 30명

4. 제자품(弟子品)1)
弟子品第四

[ 1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 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성문(聲聞) 중 제일가는 비구로서, 너그럽고 어질며 아는 것이 많아, 능히 잘 권유하고 교화하며 성중(聖衆)을 붙들어 기르면서 그 위의(威儀)를 잃지 않는 이는 바로 아야구린(阿若拘鄰)2) 비구요, 처음으로 법의 뜻을 받고 4제(諦)3)를 사유한 이도 바로 아야구린 비구이며, 능히 잘 권유하고 인도하여 사람들을 복으로 제도하는 이도 바로 우다이(優陀夷)4) 비구이다. 빨리 신통을 이루어 중간에 후회가 없는 이는 바로 마하남(摩訶男)5) 비구요, 항상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발로 땅을 밟지 않는 이는 바로 선주(善肘) 비구이며, 허공을 타고 다니면서 교화하면서도 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이는 바로 바파(婆破) 비구이니라. 천상에 살기를 좋아하여 인간 세계에 살지 않는 이는 바로 우적(牛跡) 비구요, 항상 오로(惡露)와 같이 더럽다는 생각으로 관하는 이는 바로 선승(善勝)6) 비구이며, 네 가지를 공양하여 성중을 보양하는 이는 우류비가섭(優留毗迦葉)7) 비구요,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결(結:번뇌)을 항복 받은 이는 강가섭(江迦葉)8) 비구이며, 모든 법을 밝게 관찰해 조금도 집착이 없는 이는 바로 상가섭(象迦葉)9) 비구이니라.”

구린ㆍ우다이ㆍ마하남과
선주ㆍ바파까지 다섯이며
우적과 선승과
가섭 3형제에 대해 설하셨다.
爾時,世尊告諸比丘:“我聲聞中,第一比丘,寬仁博識善能勸化,將養聖衆,不失威儀,所謂阿若拘鄰比丘是。初受法味,思惟四諦,亦是阿若拘鄰比丘。善能勸導,福度人民,所謂優陁夷比丘是。速成神通,中不有誨,所謂摩訶,男比丘是。恒飛虛空,足不蹈地,善肘比丘是。乘虛教化,意無榮冀,所謂婆破比丘是。居樂天上,不處人中,所謂牛迹比丘是。恒觀惡露不淨之想,善勝比丘是。將養聖衆,四事供養,所謂優留毘迦葉比丘是。心意寂然,降伏諸結,所謂江迦葉比丘是。觀了諸法,都無所著,所謂象迦葉比丘是。”
拘鄰、陁夷、男,
善肘、婆第五,
牛迹及善勝,
迦葉三兄弟。

[ 2 ]
“내 성문 중에 제일가는 비구로서, 얼굴이 단정하고 걸음걸이가 조용한 이는 바로 마사(馬師)10) 비구요, 지혜가 끝이 없어 모든 의심을 분명하게 푸는 이는 바로 사리불(舍利弗) 비구이며, 신령스런 발을 가져 가볍게 들어 시방 곳곳을 날아다니는 이는 바로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 비구요, 용맹스럽게 정진(精進)하여 고행을 견디어내는 이는 바로 이십억이(二十億耳)11) 비구이며, 얻기 어려운 행인 12두타(頭陀)12)를 행하는 이는 바로 마하가섭(摩訶迦葉) 비구이니라. 천안(天眼)이 제일이어서 시방을 두루 보는 이는 바로 아나율(阿那律)13) 비구요, 좌선하여 선정에 들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이는 바로 이왈(離曰)14) 비구이며, 능히 두루 권해 재강(齋講)을 베푸는 이는 바로 타라바마라(陀羅婆摩羅) 비구요, 스님이 거처할 방사(房舍)를 세워 초제승(招提僧)15)에게 주는 이는 바로 작은 타라바마라 비구이며, 귀하고 큰 종족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운 이는 바로 라타파라(羅吒婆羅)16) 비구요, 진리를 잘 분별해 도를 펴 연설하는 이는 바로 대가전연(大迦旃延) 비구이니라.”

마사(馬師)와 사리불과
구율(拘律)과 이십억이ㆍ가섭이며
아나율과 이왈과
마라ㆍ뢰타화라ㆍ가전연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威容端正,行步庠序,所謂馬師比丘是。智慧無窮,決了諸疑所,謂舍利弗比丘是。神足輕擧,飛到十方,所謂大目揵連比丘是。勇猛精進,堪任苦行,所謂二十億耳比丘是。十二頭陁難得之行,所謂大迦葉比丘是。天眼第一,見十方域,所謂阿那律比丘是。坐禪入定,心不錯亂,所謂離曰比丘是。能廣勸率,施立齋講,陁羅婆摩羅比丘是。安造房舍,興招提僧,所謂小陁羅婆摩羅比丘是。貴豪種族,出家學道,所謂羅咤婆羅比丘是。善分別義,敷演道教,所謂大迦旃延比丘是。”
馬師、舍利弗,
拘律、耳、迦葉,
阿那律、離曰,
摩羅、咤、旃延。

[ 3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산가지[籌]를 잘 받아 금지하는 법[禁法]을 어기지 않는 이는 군두파막(軍頭波漠)17) 비구요, 외도(外道)를 항복 받고 바른 도를 행하는 이는 바로 빈두로(賓頭盧)18) 비구이며, 병을 잘 보아 약을 주는 이는 바로 식(識) 비구요, 옷과 음식 등 네 가지를 공양하는 이도 바로 식 비구이다. 게송을 잘 지어 여래의 덕을 찬탄하는 이는 바로 붕기사(鵬耆舍)19) 비구요, 언론으로 밝게 분별해주어서 의심이 없게 하는 이도 바로 붕기사 비구이며, 4(辯才)20)를 얻어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받아도 곧 대답하는 이는 바로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 비구이니라.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 거처하면서 대중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바로 견뢰(堅牢) 비구이고, 걸식하고 욕(辱)을 잘 참아내면서 비바람을 피하지 않는 이는 바로 난제(難提) 비구이며, 혼자 고요히 앉아 오로지 도만을 생각하는 이는 바로 금비라(今毘羅)21) 비구니고, 한 번 앉아 한 번 먹고[一座一食]22) 자리를 옮기지 않는 이는 바로 시라(施羅) 비구이며, 세 가지 법의만을 가지고 먹고 쉬기를 여의지 않는 이는 바로 부미(浮彌)23) 비구이니라.”

군두(軍頭)와 빈두로(賓頭盧)와
식과 붕기사와 구치라이며
견뢰와 난제, 그리고
금비라ㆍ시라ㆍ부미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堪任受籌,不違禁法,所謂軍頭波漠比丘是。降伏外道,履行正法,所謂賓頭盧比丘是。瞻視疾病,供給醫藥,所謂識比丘是。四事供養;衣被飮食,亦是識比丘。能造偈頌,嘆如來德,鵬耆舍比丘是。言論辯了,而無疑滯,亦是鵬耆舍比丘。得四辯才,觸難答對,所謂摩訶拘絺羅比丘是。淸淨閑居,不樂人中;所謂堅牢比丘是。乞食耐辱,不避寒暑,所謂難提比丘是。獨處靜坐,專意念道,所謂今毘羅比丘是。一坐一食,不移乎處,所謂施羅比丘是。守持三衣,不離食息,所謂浮彌比丘是。”
軍頭、賓頭盧,
識、鵬、拘絺羅,
善牢及難提,
今毘、施羅、彌。

[ 4 ]
“내 성문 중에 제일가는 비구로서, 나무 밑에서 좌선하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이는 바로 호의이왈(狐疑離曰)24) 비구이고, 몸을 괴롭히면서 한데 앉아 비바람을 피하지 않는 이는 바로 바차(婆嗟)25) 비구이며, 혼자서 텅 비고 한가한 곳에 있기를 좋아하고 뜻을 집중하여 사유하는 이는 바로 타소(陀素)26) 비구이고, 다섯 가지 누더기 옷[五納衣]27)을 입고 호화롭게 장식하지 않는 이는 바로 니바(尼婆) 비구이며, 항상 무덤 사이를 좋아하고 대중들 속에 있지 않는 이는 바로 우다라(優多羅)28) 비구이고, 항상 풀 자리에 앉아 복밭이 되어 날마다 사람을 제도하는 이는 바로 노혜녕(盧醯寧) 비구이니라.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지 않고 땅만 보고 걸어가는 이는 바로 우겸마니강(優鉗摩尼江) 비구이고, 앉거나 일어나거나 다니거나 항상 삼매에 들어 있는 이는 바로 산제(刪提)29) 비구이고, 먼 나라에 유람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잘 가르치는 이는 바로 담마류지(曇摩留支)30) 비구이며, 성중(聖衆)을 모아서 법의 이치를 담론하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가루(迦淚)31) 비구이니라.”

호의와 바차리와
타소ㆍ니바ㆍ우다라와
노혜녕ㆍ우감마니강과
산제ㆍ담마류ㆍ가루에 대해 설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樹下坐禪,意不移轉,所謂狐疑離曰比丘是。苦身露坐,不避風雨,所謂婆嗟比丘是。獨樂空閑,專意思惟,所謂陁素比丘是。著五納衣,不著榮飾,所謂尼婆比丘是。常樂塚閒,不處人中,所謂優多羅比丘是。恒坐草蓐,日福度人,所謂盧醯甯比丘是。不與人語,視地而行,所謂優鉗摩尼江比丘是。坐起行步,常入三昧,所謂刪提比丘是。好遊遠國,教授人民,所謂曇摩留支比丘是。喜集聖衆,論說法味,所謂迦淚比丘是。”
狐疑、婆蹉離,
陁蘇、婆、優多,
盧醯、優迦摩,
息、曇摩留、淚。

[ 5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수명이 매우 길어 끝내 요사(夭死)하지 않는 이는 바로 바구라(婆拘羅)32) 비구이고, 언제나 한가한 곳에 있기를 좋아하여 대중들 속에 있지 않는 이도 바로 바구라 비구이며, 자세하게 설법하여 그 이치를 잘 분별해주는 이는 바로 만원자(滿願子:富樓那) 비구이고, 계율을 받들어 지켜서 범하지 않는 이는 바로 우바리(優波離) 비구이며, 믿음의 해탈[信解脫]을 얻어 마음에 망설임이 없는 이는 바로 바가리(婆迦利)33) 비구이고, 몸이 단정하여 세상과 다른 이는 바로 난다(難陀)34) 비구이며, 모든 감각기관이 고요하고 마음이 변하여 바뀌지 않는 이도 바로 난다 비구이니라.
말재주가 넘쳐 쏟아져서 다른 이들의 의심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이는 바로 바타(婆陀)35) 비구이고, 진리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어서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이는 바로 사니(斯尼) 비구이며, 좋은 옷 입기를 좋아하지만 행실이 본래 청정한 이는 바로 천수보리(天須菩提) 비구이고, 늘 후학(後學)들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이는 바로 난타가(難陀迦)36) 비구이며, 비구니 스님에게 계율을 잘 가르치는 이는 바로 수마나(須摩那) 비구이니라.”

바구라ㆍ만원자ㆍ우바리와
바가리와 난다와
바타ㆍ사니ㆍ천수보리와
난타가와 수마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壽命極長,終不中夭,所謂婆拘羅比丘是。常樂閑居,不處衆中,所謂婆拘羅比丘是。能廣說法,分別義理,所謂滿願子比丘是。奉持戒律,無所觸犯,優波離比丘是。得信解脫,意無猶豫,所謂婆迦利比丘是。天體端正,與世殊異,所謂難陁比丘是。諸根寂靜,心不變易,亦是難陁比丘。辯才卒發,解人疑滯,所謂婆陁比丘是。能廣說義,理不有違,所謂斯尼比丘是。喜著好衣,行本淸淨,所謂天須菩提比丘是。常好教授諸後學者,難陁迦比丘是。善誨禁戒比丘尼僧,所謂須摩那比丘是。”
婆拘、滿、波離,
娑迦利、難陁,
陁、尼、須菩提,
難陁、須摩那。

[ 6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공덕이 풍족하고 어디를 가든지 단점이 없는 이는 바로 시바라(尸婆羅)37) 비구이고, 온갖 행과 도품(道品)의 법을 원만하게 갖춘 이는 바로 우파선가란타자(優波先迦蘭陀子)38) 비구이며, 말하는 것이 온화하고 부드러워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이는 바로 바타선(婆陀先)39) 비구이고, 수식관[安般]을 닦고 오로(惡露)를 생각하는 이는 바로 마하가연나(摩訶迦延那) 비구이며, 나라고 하는 것은 덧없는 것임을 헤아려 마음에 생각이 없는 이는 바로 우두반(牛頭槃) 비구이고, 여러 가지로 논리를 펴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이는 바로 구마라가섭(拘摩羅迦葉)40) 비구이니라.
다 떨어진 더러운 옷을 입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는 바로 면왕(面王)41) 비구이고, 계율을 헐지 않고 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는 바로 라운(羅雲:羅睺羅) 비구이며, 신통의 힘으로써 잘 숨고 몸을 잘 감추는 이는 바로 반토(般免)42) 비구이고, 몸을 잘 변화해 여러 가지로 신통을 부리는 이는 바로 주리반토(周利般兎)43) 비구이니라.”

시바라ㆍ우파선가란타자와
바타선ㆍ가연나와
우두반ㆍ구마라가섭ㆍ면왕과
라운과 두 반토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功德盛滿,所適無短,所謂尸婆羅比丘是。具足衆行道品之法所謂優波先迦蘭陁子比丘是。所說和悅,不傷人意,所謂婆陁先比丘是。修行安般,思惟惡露,所謂摩訶迦延那比丘是。計我無常,心無有想,所謂優頭槃比丘是。能雜種論,暢悅心識,所謂拘摩羅迦葉比丘是。著弊惡衣,無所羞恥,所謂面王比丘是。不毀禁戒,誦讀不懈,所謂羅雲比丘是。以神足力,能自隱曀,所謂般兔比丘是。能化形體,作若干變,所謂周利般兔比丘是。”
尸婆、優波先,
婆陁、迦延那,
優頭、王、迦葉,
羅雲,二般兔。

[ 7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큰 종족으로 부(富)하고 귀(貴)하면서 천성이 부드럽고 온화한 이는 바로 석왕(釋王) 비구이고, 걸식하기를 싫어하지 않고 끝없이 교화하는 이는 바로 바제바라(婆提波羅) 비구이며, 기력이 강성하여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도 바로 바제바라 비구이고, 음성이 맑고 트여 말소리가 범천(梵天)에까지 들리는 이는 바로 라바나바제(羅婆那婆提) 비구이며, 몸이 향기롭고 깨끗하여 그 향기가 사방에 풍기는 이는 앙가사(鴦迦闍) 비구이니라.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때를 알고 사물에 밝아 어디에 가나 의심이 없고 잘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많이 들어 아는 게 많고 어른을 잘 받드는 이는 바로 아난(阿難) 비구이고, 옷을 잘 차려 입고 길을 걸을 때에 그림자를 자주 돌아보는 이는 바로 가지리(迦持利) 비구이며, 여러 임금들이 공경히 대접하고 많은 신하들이 존경하는 이는 바로 월광(月光)44) 비구이고, 하늘 신의 받들어 모심을 받아 아침마다 인사를 받는 이는 바로 수제(輸提)45) 비구이며, 사람 형상을 버리고 하늘 모양을 본뜨는 이도 바로 수제 비구이고, 하늘 스승의 인도를 받아 바른 법을 배우는 이는 바로 천(天) 비구이며, 자기 전생의 수없이 많은 겁(劫) 동안의 일을 기억하는 이는 바로 과의(菓衣) 비구이니라.”

석왕과 바제바라와
라바나바제ㆍ앙가사와
아난ㆍ가지리ㆍ월광과
수제ㆍ천ㆍ과의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豪族富貴,天性柔和,所謂釋王比丘是。乞食無厭足,教化無窮,所謂婆提婆羅比丘是。氣力强盛,無所畏難,亦是婆提婆羅比丘。是。音響淸徹,聲至梵天,所謂羅婆那婆提比丘是。身體香潔,熏乎四方,鴦迦闍比丘是。我聲聞中,第一比丘,知時,明物,所至無疑,所憶不忘,多聞廣遠,堪任奉上,所謂阿難比丘是。莊嚴服飾,行步顧影,所謂迦持利比丘是。諸王敬待,群臣所宗,所謂月光比丘是。天人所奉,恒朝侍省,所謂輸提比丘是。以捨人形,像天之貌,亦是輸提比丘。諸天師導,旨授正法,所謂天比丘是。自憶宿命無數劫事,所謂菓衣比丘是。”
釋王、婆提波,
羅婆、鴦迦闍,
阿難、迦、月光,
輸提、天、婆醯。

[ 8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성품이 영리하고 지혜가 너무 깊어 알기 힘든 이는 바로 앙굴마(鴦掘魔)46) 비구이고, 마(魔)와 외도(外道)의 삿된 업을 잘 항복 받는 이는 바로 승가마(僧迦摩)47) 비구이며, 수삼매(水三昧)에 드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이는 바로 질다사리불(質多舍利弗)48) 비구이고, 아는 것이 많아 남의 존경을 받는 이도 바로 질다사리불 비구이며, 화(火)삼매에 들어 시방을 두루 비추는 이는 바로 선래(善來)49) 비구이고, 용(龍)을 항복 받아 3존(尊)50)을 받들게 한 이는 바로 나라타(那羅陀)51) 비구이니라.
귀신을 항복 받아 악(惡)을 고치고 선(善)을 닦게 하는 이는 바로 귀타(鬼陀)52) 비구이고, 건답화(乾沓和:乾達婆)를 항복 받아 착한 행을 부지런히 행하게 하는 이는 바로 비로차(毘盧遮) 비구이며, 항상 공정(公定)을 좋아하고 공(空)의 이치를 분별하여 해설하는 이는 바로 수보리(須菩提) 비구이고, 비고 고요하고 미묘한 덕업(德業)에 뜻을 두고 있는 이도 수보리 비구이며, 무상정(無想定)을 닦아 온갖 생각을 버리는 이는 바로 기리마난(耆利摩難)53) 비구고, 무원정(無願定)에 들어 뜻이 어지럽지 않은 이는 바로 염성(焰盛) 비구이니라.”

앙굴마ㆍ 승가마와
질다사리불ㆍ 선래ㆍ나라타와
열차(閱叉:귀타)ㆍ부로차(浮盧遮:毘盧遮)와
선업(善業:須菩提)ㆍ기리마난ㆍ염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體性利根,智慧淵遠,所謂鴦掘魔比丘是。能降伏魔外道邪業,所謂僧迦摩比丘是。入水三昧,不以爲難,所謂質多舍利弗比丘是。廣有所識,人所敬念,亦是質多舍利弗比丘是。入火三昧,普照十方,所謂善來比丘是。能降伏龍,使奉三尊,所謂那羅陁比丘是。降伏鬼神,改惡修善,所謂鬼陁比丘是。降乾沓和,懃行善行,所謂毘盧遮比丘是。恒樂空定,分別空義,所謂須菩提比丘是。志在空寂,微妙德業,亦是須菩提比丘。行無想定,除去諸念,所謂耆利摩難比丘是。入無願定,意不起亂,所謂炎盛比丘是。”
鴦掘、僧迦摩,
質多、婆、那羅,
閱叉、浮盧遮,
善業及摩難。

[ 9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자삼매(慈三昧)에 들어 마음에 성냄이 없는 이는 바로 범마달(梵摩達)54) 비구이고, 비삼매(悲三昧)에 들어 본래 업을 성취한 이는 바로 수심(須深)55) 비구이며, 기뻐하는 행의 덕을 얻어 여러 갈래 생각이 없는 이는 바로 사미타(娑彌陀)56) 비구이고, 항상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여 뜻을 놓아 버리지 않는 이는 바로 약파가(躍波迦) 비구이며, 염성(焰盛)삼매를 닦아 끝내 해탈(解脫)57)하지 않는 이는 바로 담미(曇彌)58) 비구이니라. 말씨가 추하고 거칠어 높고 귀한 이를 가리지 않는 이는 바로 비리타바차(比利陀婆遮)59) 비구이고, 금광(金光)삼매에 드는 이도 비리타바차 비구이며, 금강(金剛)삼매에 들어 있어서 무너뜨릴 수 없는 이는 바로 무외(無畏)60) 비구이고, 주장이 확실하여 겁내거나 나약하지 않는 이는 바로 수니다(須泥多)61) 비구이며, 항상 고요함을 좋아하여 마음이 어지러운 곳에 있지 않는 이는 바로 타마(陀摩) 비구이고, 이치로는 이길 수 없어 끝내 항복 받을 수 없는 이는 바로 수라타(須羅陀)62) 비구이니라.”

범마달과 수심마(須深摩)와
사미타ㆍ약파가ㆍ담미며
비리타바차와 무외와
수니다ㆍ타마ㆍ수라타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入慈三昧,心無恚怒,梵摩達比丘是。入悲三昧,成就本業,所謂須深比丘是。得喜行德,無若干想,所謂娑彌陁比丘是。常守護心,意不捨離,所謂躍波迦比丘是。行炎盛三昧,終不解脫,所謂曇彌比丘是。言語麤獷,不避尊貴,所謂比利陁婆遮比丘是。入金光三昧,亦是比利陁婆遮比丘。入金剛三昧,不可沮壞,所謂無畏比丘是。所說決了,不懷怯弱,所謂須泥多比丘是。恒樂靜寂,意不處亂,所謂陁摩比丘是。義不可勝,終不可伏,所謂須羅陁比丘是。”
梵達、須深摩,
娑彌、躍、曇彌,
毘利陁、無畏,
須泥、陁、須羅。

[ 10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로서, 별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아 길흉(吉凶)을 점쳐 미래를 미리 아는 이는 바로 나가파라(那伽波羅)63) 비구이고, 항상 삼매를 좋아하여 선정의 즐거움으로 밥을 삼는 이는 바로 바사타(婆私吒)64) 비구이며, 항상 기쁨으로 밥을 삼는 이는 바로 수야사(須夜奢) 비구이고, 항상 인욕을 하여 어떤 대상[對]이 와도 일어나지 않는 이는 바로 만원성명(滿願盛明) 비구이니라.
또 일광(日光)삼매를 닦아 익히는 이는 바로 미해(彌奚)65) 비구이고, 산술(算術)에 밝아 조금의 오차도 없는 이는 바로 니구류(尼拘留)66) 비구이며, 평등한 지혜[等智]를 분별해 말해주어 언제나 잊지 않게 하는 이는 바로 녹두(鹿頭)67) 비구이고, 뇌전(雷電)삼매를 얻어 두려움을 품지 않는 이는 바로 지(地)68) 비구이며, 몸의 근본을 관찰하여 깨달은 이는 바로 두나(頭那)69) 비구이고, 최후에 깨달아 누진통(漏盡通)을 얻은 이는 바로 수발(須拔)70) 비구이니라.”

나가파라ㆍ바사타ㆍ수야사와
미해ㆍ니구류이며
녹두ㆍ뇌전ㆍ지ㆍ두나에 대해 말씀하셨고
수발은 맨 뒤에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曉了星宿,豫知吉凶,所謂那伽波羅比丘是。恒喜三昧,禪悅爲食,所謂婆私咤比丘是。常以喜爲食,所謂須夜奢比丘是。恒行忍辱,對至不起,所謂滿願盛明比丘是。修習日光三昧,所謂彌奚比丘是。明筭術法,無有差錯,所謂尼拘留比丘是。分別等智,恒不忘失,所謂鹿頭比丘是。得雷電三昧者,不懷恐怖,所謂地比丘是。觀孓身本,所謂頭那比丘是。最後取證得漏盡通,所謂須拔比丘是。”
那迦、咤、舍那,
彌奚、尼拘留,
鹿頭、地、頭那,
須拔最在後 。

이상 1백 명의 성현(聖賢)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此百賢聖悉應廣演。

5. 비구니품(比丘尼品)
增壹阿含經比丘尼品第五
[ 1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니로서, 오랫동안 출가하여 도를 배워 국왕의 존경을 받은 이는 바로 대애도구담미(大愛道瞿曇彌)71) 비구니이고, 지혜롭고 총명한 이는 바로 참마(讖摩)72) 비구니이며, 신족(神足)이 으뜸이어서 모든 신들을 감동시키는 이는 바로 우발화색(優鉢華色)73) 비구니이고, 두타법(頭陀法)의 11한애(限碍:不踰越)를 행하는 이는 바로 기리사구담미(機梨舍瞿曇彌)74) 비구니이며, 천안(天眼)이 으뜸이어서 걸림 없이 비추어보는 이는 바로 사구리(奢拘梨)75) 비구니이니라. 앉아 참선해 선정에 들어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이는 바로 사마(奢摩)76) 비구니이고, 이치를 분별해 널리 도의 가르침을 펴는 이는 바로 파두란사나(巴豆蘭闍那) 비구니이며, 계율을 받들어 잘 지켜서 범하지 않는 이는 바로 파라차나(波羅遮那)77) 비구니이고, 신해탈(信解脫)을 얻어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 이는 바로 가전연(迦旃延)78) 비구니이며, 4변재(辯才)를 얻어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바로 최승(最勝) 비구니이니라.”

대애도와 참마와
우발라색과 기리사구담미,
사구리ㆍ사마ㆍ파두란사나와
파라차나ㆍ가전연ㆍ최승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尼久出家學國“王所敬所,謂大愛道瞿,曇彌比丘尼是。智慧聰明所謂識摩比丘尼是。神足第一感致諸神所謂優鉢華色比丘尼是。行頭陁法,十一限㝵所謂機梨舍瞿曇彌比丘尼是。天眼,第一所照無㝵所謂奢拘梨比。丘尼是。坐禪入定意,不分散所謂奢摩比丘。尼是分別,義趣廣演,道教所謂波頭蘭闍那比丘尼是。奉持律,教無所加犯所謂波羅遮那比丘尼是。得信解脫,不復退還所謂迦旃延比丘尼是。得四辯才不懷怯 弱所謂最勝比丘尼是。
大愛及識摩,
優鉢、機曇彌,
拘利、奢、蘭闍,
那羅、迦旃、勝。
통합뷰어
[ 2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니로서, 자기 전생의 수 없는 겁 동안의 일을 아는 이는 바로 발타가비리(拔陀迦毘離)79) 비구니이고, 얼굴이 단정하여 남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는 바로 혜마사(醯摩闍) 비구니이며, 외도를 항복 받아 바른 교를 세우는 이는 바로 수나(輸那)80) 비구니이고, 이치를 분별하여 널리 갈래[分部]를 설명하는 이는 바로 담마제나(曇摩提那)81) 비구니이니라. 몸에 더러운 옷을 입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는 바로 우다라(優多羅) 비구니이고, 모든 감각기관이 고요하고 그 마음이 한결같은 이는 바로 광명(光明) 비구니이며, 옷을 잘 바로잡아 언제나 법다운 이는 바로 선두(禪頭)82) 비구니이고, 여러 가지를 토론하되 의심나는 곳이나 걸림이 없는 이는 바로 단다(檀多)83) 비구니이며, 게송을 잘 지어 여래의 덕을 찬탄한 이는 바로 천여(天與) 비구니이고, 많이 듣고 널리 알며 은혜로 아랫사람을 대접하는 이는 바로 구비(瞿卑) 비구니이니라.”

발타가비리ㆍ혜마사ㆍ수나와
담마나제ㆍ우다라와
광명ㆍ선두ㆍ단다와
천여와 구비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尼自識宿命無“數劫事所,謂㧋陁迦毘,離比丘尼是。顏色端,正人所敬愛所謂醯摩闍比丘尼是。降伏外道立,以正教所謂輸那比丘尼是。分別,義趣廣說,分部所謂曇摩提那比丘尼是。身著麤衣,不以爲愧,所謂優多羅比丘尼是。諸根寂靜,恒若一心,所謂光明比丘尼是。衣服齊整,常如法教,所謂禪頭比丘尼是。能雜種論,亦無疑滯,所謂檀多比丘尼是。堪任造偈,讚如來德,所謂天與比丘尼是。多聞博知,恩慧接下,所謂瞿卑比丘尼是。”
拔陁、闍、輸那,
曇摩那、優多,
光明、禪、檀多,
天與及瞿卑。

[ 3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니로서, 항상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살고 사람들 속에 살지 않는 이는 바로 무외(無畏)84) 비구니이고, 몸을 괴롭히며 걸식하면서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는 이는 바로 비사가(毘舍佉)85) 비구니이며, 어떤 곳에 한 번 앉으면 끝내 옮기지 않는 이는 바로 발타바라(拔陀婆羅) 비구니이고, 두루 다니며 구걸하면서 사람을 널리 제도하는 이는 바로 마로가리(摩怒呵利) 비구니이며, 도과(道果)를 빨리 이루어 중간에서 지체하지 않는 이는 바로 타마(陀摩) 비구니이고, 세 가지 법의를 가져 끝내 버리지 않는 이는 바로 수타마(須陀摩) 비구니이니라.
항상 나무 밑에 앉아 뜻을 바꾸지 않는 이는 바로 협수나(王劦 須那) 비구니이고, 늘 한데[露地]에 있으면서 덮개[覆蓋]를 생각하지 않는 이는 바로 사타(奢陀) 비구니이며, 텅 비어 고요한 곳을 좋아하여 사람들 속에 있지 않는 이는 바로 우가라(優迦羅) 비구니이고, 항상 풀 자리[草蓐]에 앉아 화려함을 나타내지 않는 이는 바로 이나(離那) 비구니이며,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고 차례로 걸식[分衛]하는 이는 바로 아노파마(阿奴波摩)86) 비구니이니라.”

무외ㆍ비사카와
발타바라ㆍ마로가리와
단수단(檀須檀)87)ㆍ협수나ㆍ사타와
우가라ㆍ이나ㆍ아노파마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尼,恒處閑靜、不居人閒,所謂無畏比丘尼是。苦體乞食,不擇貴賤,所謂毘舍佉比丘尼是。一處一坐,終不移易,所謂拔陁婆羅比丘尼是。遍行乞求,廣度人民,所謂摩怒呵利比丘尼是。速成道果,中閒不滯,所謂陁摩比丘尼是。執持三衣,終不捨離,所謂須陁摩比丘尼是。恒坐樹下,意不改易,所謂珕須那比丘尼是。恒居露地,不念覆蓋,所謂奢陁比丘尼是。樂空閑處,不在人閒,所謂優迦羅比丘尼是。長坐草蓐,不著服飾,所謂離那比丘尼是。著五納衣,以次分越,所謂阿奴波摩比丘尼是。”
無畏、多毘舍,
婆陁、阿奴波,
檀、須檀、奢多,
優迦、離、阿奴。

[ 4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니로서, 쓸쓸한 무덤 사이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우가마(優迦摩) 비구니이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많이 내어 생물(生物)들을 가엾이 여기는 이는 바로 청명(淸明) 비구니이며, 도에 이르지 못한 중생을 슬피 여기는 이는 바로 소마(素摩) 비구니이고, 도를 얻은 이가 있으면 기뻐하고 소원이 일체에 미치게 하는 이는 바로 마타리(摩陀利) 비구니이며, 모든 행을 단속하고 지켜서 뜻이 멀리 떠나지 않게 하는 이는 바로 가라가(迦羅伽) 비구니이니라.
공(空)을 지키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고집하여 존재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는 바로 제바수(提婆修) 비구니이고, 마음이 생각 없음[無想]을 좋아하여 모든 집착을 버린 이는 바로 일광(日光) 비구니이며, 원(願)하는 게 없는 것을 닦아 익혀 마음으로 항상 넓게 제도하는 이는 바로 말나바(末那婆) 비구니이고, 모든 법에 의심이 없어 한량없이 많은 사람을 제도하는 이는 바로 비마달(毘摩達) 비구니이며, 진리를 널리 설명해 심오한 법을 분별해주는 이는 바로 보조(普照) 비구니이니라.”

우가마ㆍ청명ㆍ소마와
마타리ㆍ가라가ㆍ제바수와
일광과 말나바와
비마달과 보조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尼,樂空塚閒,所謂優迦摩比丘尼是。多遊於慈,愍念生類,所謂淸明比丘尼是。悲泣衆生不及道者,所謂素摩比丘尼是。喜得道者,願及一切,所謂摩陁利比丘尼是。護守諸行,意不遠離,所謂迦羅伽比丘尼是。守空執虛,了之無有,所謂提婆修比丘尼是。心樂無想,除去諸著,所謂日光比丘尼是。修習無願,心恒廣濟,所謂末那婆比丘尼是。諸法無疑,度人無限,所謂毘摩達比丘尼是。能廣說義,分別深法,所謂普照比丘尼是。優迦、明、素摩,
摩陁、迦、提婆,
日光、摩那婆,
毘摩達、普照。

[ 5 ]
“내 성문들 중에서 제일가는 비구니로서, 마음으로 욕된 것을 참기를 마치 땅이 모든 것을 수용(受容)하는 것처럼 하는 이는 바로 담마제(曇摩提) 비구니이고, 사람을 잘 교화해 시주 모임[檀會]을 만들게 하는 이는 바로 수야마(須夜摩) 비구니이며, 평상 자리를 준비하는 이도 또한 수야마 비구니이고, 마음이 아주 쉬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이는 바로 인타사(因陀闍) 비구니이며, 모든 법을 관찰하여 분명하게 알되 만족할 줄 모르는 이는 바로 용(龍) 비구니이니라.
뜻이 굳세고 용맹스러워 더러운데 물들지 않는 이는 바로 구나라(拘那羅) 비구니이고, 수(水)삼매에 들어 일체를 두루 적시는 이는 바로 바수(婆須) 비구니이며, 염광(焰光)삼매에 들어 모든 중생들을 두루 다 비추는 이는 바로 항제(降提) 비구니이고, 오로(惡露)의 더러움을 관(觀)하여 연기(緣起)를 분별하는 이는 바로 차바라(遮波羅) 비구니이며, 모든 사람들의 모자라는 것을 공급해주어 양육하는 이는 바로 수가(守迦)88) 비구니이고, 내 성문들 중에서 최후로 제일가는 비구니는 바로 발타군타라구이국(拔陀軍陀羅拘夷國)89) 비구니이니라.”

담마제와 수야마와
인타사ㆍ용ㆍ구나라와
바수ㆍ항제ㆍ차바라와
수가ㆍ발타군타라구이국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聲聞中第一比丘尼心懷忍辱如“地容受所,謂曇摩提比丘尼是。能教化人使,立檀會所謂須夜摩比丘尼是。辦具牀座亦,是須夜摩比丘尼是心。已永息不,興亂想所謂因陁闍比。丘尼是。觀了諸法,而無厭足,所謂龍比丘尼是。意强勇猛,無所染著,所謂拘那羅比丘尼是。入水三昧,普潤一切,所謂婆須比丘尼是。入焰光三昧,悉照萌類,所謂降、提比丘尼是。觀惡露不淨,分別緣起,所謂遮波羅比丘尼是。育養衆人,施與所乏,守迦比丘尼是。我聲聞中,最後第一比丘尼;拔陁軍陁羅拘夷國比丘尼是。”
曇摩、須夜摩,
因提、龍、拘那,
婆須、降、遮波,
守迦、拔陁羅。

이상 50비구니에 대하여 위와 같이 자세히 말씀하셨다.
“此五十比丘尼當廣說如上。”

6. 청신사품(淸信士品)
增壹阿含經。淸信士品第六
[ 1 ]
“내 제자 중에 제일가는 우바새로서, 처음으로 법의 약[法藥]을 얻고 성현의 진리를 깨달은 이는 바로 삼과(三果)의 장사꾼90)이고, 지혜가 제일인 이는 바로 질다(質多)91) 장자(長者)이며, 신덕(神德)이 제일인 이는 바로 건제아람(犍提阿藍)이고, 외도를 항복 받은 이는 바로 굴다(掘多) 장자이다. 심오한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우파굴(優波掘) 장자이고, 늘 앉아서 참선하며 사유하는 이는 바로 가치아라바(呵侈阿羅婆)92)이며, 마(魔)의 궁전을 항복 받은 이는 바로 용건(勇健)93) 장자이고, 복과 덕이 풍성하고 원만한 이는 바로 사리(闍利) 장자이며, 큰 시주의 주인공은 바로 수달(須達)94) 장자이고, 일가친척이 많은 이는 바로 민토(泯兎)95) 장자이니라.”

삼과ㆍ질다ㆍ건제아람과
굴다ㆍ우파굴ㆍ가치아라바와
용건ㆍ사리ㆍ수이며
민토까지 모두 열이 된다.
“我弟子中,初聞法藥,成賢聖證,三果商客是。第一智慧,質多長者是。神德第一,所謂犍提阿藍是。降伏外道,所謂掘多長者是。能說深法,所謂優波掘長者是。恒坐禪思,呵侈阿羅婆是。降伏魔宮,所謂勇健長者是。福德盛滿,闍利長者是。大檀越主,所謂須達長者是。門族成就,泯兔長者是。”
三果、質、乾提,
掘、波及羅婆,
勇、闍利、須達,
泯兔是謂十。

[ 2 ]
“내 제자 중의 제일가는 우바새로서, 이치 묻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생루(生漏)96) 바라문이고, 근기가 영리하고 통해 밝은 이는 바로 범마유(梵摩兪)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신임하는 사자는 바로 어마마납(御馬摩納)이고, 몸에 대해 생각하기를 ‘나라는 것은 없다’고 여기는 이는 바로 희문금(喜聞笒) 바라문이며, 논리로는 이길 수 없는 이는 바로 비구(毘裘) 바라문이고, 게송을 잘 짓고 외우는 이는 바로 우파리(優波離)97) 장자이며, 말을 빨리 하는 이도 바로 우파리 장자이니라. 좋은 보배를 기꺼이 주고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는 이는 바로 수제(殊提) 장자이고, 선(善)의 근본을 이룩한 이는 바로 우가비사리(優迦毘舍離)이며, 미묘한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최상무외(最上無畏) 우바새이고, 두려움이 없이 설법하고 사람의 성질을 잘 살피는 이는 바로 두마대장(頭摩大將) 영비사리(領毘舍離)이니라.”

생루ㆍ범마유와
어마마납ㆍ희문금과
비구ㆍ우파리와
수제ㆍ우가비사리ㆍ최상무외ㆍ두마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弟子中,第一優婆塞,好問義趣,所謂生漏婆羅門是。利根通明,所謂梵摩兪是。諸佛信使,御馬摩納是。計身無我,喜聞笒婆羅門是。論不可勝,毘裘婆羅門是。能造誦偈,優婆離長者是。言語速疾,亦是優波離長者。喜施好寶,不有悋心,所謂殊提長者是。建立善本,所謂優迦毘舍離是。能說妙法,所謂最上無畏優婆塞是。所說無畏,善察人根,所謂頭摩大將領毘舍離是。”
生漏、梵摩兪,
御馬及聞笒,
毘裘、優波離,
殊提、優、畏、摩。

[ 3 ]
“내 제자 중에 제일가는 우바새로서, 항상 자비한 마음 베풀기를 좋아하는 바로 비사왕(毘舍王)98)이고, 보시를 아주 조금 하는 이는 바로 광명왕(光明王)99)이며, 선(善)한 근본을 건립한 이는 파사닉왕(波斯匿王)100)이고, 근원도 없이 좋은 믿음을 얻었다 하여 기뻐한 이는 바로 아사세왕(阿闍世王)101)이며,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뜻이 변하지 않는 이는 바로 우전왕(優塡王)102)이고, 바른 법을 받들어 섬기는 이는 바로 월광왕자(月光王子)이니라.
성중(聖衆)을 받들어 공양하되 뜻이 항상 평등한 이는 바로 조기원(造祇洹)왕자103)이고, 항상 남을 제도하기를 좋아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않는 이는 바로 사자(師子)왕자이며, 남을 잘 공경하고 받들되 높고 낮은 이의 차별이 없는 이는 바로 무외(無畏) 왕자이고, 얼굴이 단정하여 남보다 뛰어난 이는 바로 계두(雞頭) 왕자이니라.”

비사왕ㆍ광명왕과
파사닉왕ㆍ아사세왕과
월광왕자ㆍ기원왕자ㆍ우전왕과
사자왕자ㆍ무외왕자ㆍ계두왕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弟子中,第一優婆塞,好喜惠施,所謂毘沙王是。所施狹少,光明王是。建立善本,王波斯匿是。得無根善信,起歡喜心,所謂王阿闍世是。至心向佛,意不變易,所謂優塡王是。承事正法,所謂月光王子是。供奉聖衆,意恒平等,所謂造祇洹王子是。常喜濟彼,不自爲己,師子王子是。善恭奉人,無有高下,無畏王子是。顏貌端正,與人殊勝,所謂雞頭王子是。”
毘沙王、光明,
波斯匿、闍王,
月、祇桓、優塡,
師子、畏、雞頭。

[ 4 ]
“내 제자 중에 제일가는 우바새로서, 항상 자애로운 마음[慈心]을 실천하는 이는 바로 불니(不尼) 장자이고, 마음속에 항상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悲心]을 내는 이는 바로 석가 종족인 마하납(摩訶納)104)이며, 항상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실천하는 이는 바로 석가 종족인 발타(拔陀)이고, 항상 보호하는 마음[護心:捨心]을 실천하여 착한 행을 잃지 않는 이는 바로 비사선(毘闍先) 우바새이며, 욕됨을 잘 참는 이는 바로 사자(師子)105) 대장이니라.
여러 가지 논리를 잘 펴는 이는 바로 비사어(毘舍御)106) 우바새이고, 성현의 침묵을 잘 행하는 이는 바로 난제바라(難提婆羅)107) 우바새이며, 착한 행[善行]을 부지런히 닦고 중단하지 않는 이는 바로 우다라(優多羅)108) 우바새이고, 모든 감각기관이 고요하고 조용해진 이는 바로 천마(天摩) 우바새이며, 내 제자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깨달은 이는 바로 구이나마라(拘夷那摩羅)이니라.”

불니와 마하납과
발타와 비사선과
사자ㆍ비사어ㆍ난제바라와
우다라ㆍ천마ㆍ구이나마라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弟子中,第一優婆塞,恒行慈心,所謂不尼長者是。心恒悲念一切之類,所謂摩訶納釋種是。常行喜心,所謂拔陁釋種是。恒行護心,不失善行,所謂毘闍先優婆塞是。堪任行忍,所謂師子大將是。能雜種論,所謂毘舍御優婆塞是。賢聖默然,難提婆羅優婆塞是。懃修善行,無有休息,所謂優多羅優婆塞是。諸根寂靜,所謂天摩優婆塞是。我弟子中,最後受證,所謂拘夷那摩羅是。”
不尼、摩訶納,
拔陁、優多羅,
師子、毘舍、離,
優多、天、摩羅。

이상 40명의 우바새에 대하여 모두 자세하게 설명하셨다.
“四十優婆塞盡當廣說如上。”

7. 청신녀품(淸信女品)
增壹阿含經。淸信女品第七

[ 1 ]
“내 제자 중에 제일가는 우바사(優婆斯)109)로서, 처음으로 도를 받아 깨달은 이는 바로 난타난타바라(難陀難陀婆羅)110) 우바사이고, 지혜가 제일인 이는 바로 구수다라(久壽多羅)111) 우바사이며, 항상 좌선(坐禪)하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수비야녀(須毘耶女)112) 우바사이고, 지혜가 밝은 이는 바로 비부(毘浮) 우바사이다.
설법을 잘하는 이는 앙갈사(鴦竭闍) 우바사이고, 경문(經文)의 뜻을 잘 연설하는 이는 바로 발타사라수염마(跋陀娑羅須焰摩) 우바사이며, 외도를 항복 받은 이는 바로 바수타(婆修陀) 우바사이고, 음성이 맑고 트인 이는 바로 무우(無憂) 우바사이며, 여러 가지로 논리를 잘 전개하는 이는 바로 바라타(婆羅陀) 우바사이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이는 바로 수두(須頭) 우바이니라.”

난타난타바라와 구수와
수비야녀ㆍ비부ㆍ앙갈사와
발타사라수염마ㆍ바수타113)ㆍ무우와
바라타ㆍ수두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弟子中,第一優婆斯,初受道證,所謂難陁難陁婆羅優婆斯是。智慧第一,久壽多羅優婆斯是。恒喜坐禪,須毘耶女優婆斯是。慧根了了,毘浮優婆斯是。堪能說法,鴦竭闍優婆斯是。善演經義,跋陁娑羅須焰摩優婆斯是。降伏外道,婆修陁優婆斯是。音響淸徹,無優優婆斯是。能種種論,婆羅陁優婆斯是勇猛精進所謂須頭優婆斯是。
難陁陁、久壽,
須毘、鴦竭闍,
須焰及無優,
婆羅陁、須頭。

[ 2 ]
“내 제자 중에 제일가는 우바사로서, 여래를 공양한 이는 바로 마리(摩利)114) 부인(夫人)이고, 바른 법을 받들어 섬기는 이는 바로 수뢰바(須賴婆) 부인이며, 성중을 공양한 이는 바로 사미(捨彌) 부인이고, 현재ㆍ미래ㆍ과거의 어진 선비를 우러러 본 이는 바로 월광(月光) 부인이며, 보시[檀越]에 으뜸인 이는 바로 뇌전(雷電) 부인이고, 항상 자(慈)삼매를 실천하는 이는 바로 마하광(摩訶光)115) 우바사이며, 불쌍히 여겨 가엾이 생각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이는 바로 비제(毘提)116) 우바사이고,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끊지 않는 이는 바로 발제(拔提)117) 우바사이며, 업(業)을 지켜 보호하기를 실천하는 이는 바로 난다(難陀)의 어머니118)인 우바사이고, 신해탈(信解脫)을 얻은 이는 조요(照曜) 우바사이니라.”

마리와 수뢰바와
사미ㆍ월광ㆍ뇌전과
대광(大光:摩訶光)ㆍ비제와
발제ㆍ난다모(難陀母)ㆍ조요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弟子中第一優婆斯,供養如來所謂摩利夫人是。承事正,法所謂須,賴婆夫人是。供養,聖衆捨彌夫人是。瞻視當來過去賢士,所謂月光夫人是。檀越、第一、雷電夫人是。恒行慈三昧所謂摩訶光優婆斯是。行悲哀愍毘,提優婆斯是。喜心不絕拔提優婆斯是。行守護業,難陁母優婆斯是。得信解脫照曜優婆斯是。”
摩利、須賴婆,
捨彌、光月、雷,
大光、毘提,
陁難陁及照曜。

[ 3 ]
“내 제자 중에 제일가는 우바사로서, 항상 인욕(忍辱)을 실천하는 이는 바로 무우(無優) 우바사이고, 공(空)삼매119)를 닦는 이는 바로 비수선(毘讎先) 우바사이며, 무상(無想)삼매120)를 닦는 이는 바로 우나타(優那陀) 우바사이고, 무원(無願)삼매를 닦는 이는 바로 무구(無垢)121) 우바사이며,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이는 시리(尸利) 부인인 우바사이고, 계율을 잘 지키는 이는 앙갈마(鴦竭摩) 우바사이니라.
얼굴 모습이 단정한 이는 바로 뇌염(雷焰) 우바사이고, 모든 감각기관이 고요하고 조용한 이는 바로 최승(最勝) 우바사이며, 많이 듣고 널리 아는 이는 바로 니라(泥羅) 우바사이고, 송게(頌偈)122)를 잘 짓는 이는 바로 수달(須達)의 딸 수마가제(脩摩伽提)123) 우바사이며, 겁내고 연약하지 않는 이도 바로 수달의 딸이고, 내 성문(聲聞) 가운데서 최후에 깨달은 우바사는 바로 람(藍) 우바사이니라.”

무우와 비수선과
우나타ㆍ무구ㆍ시리와
앙갈마ㆍ뇌염ㆍ최승과
니라ㆍ수마가ㆍ람에 대해 말씀하셨다.
“我弟子中第一,恒行忍辱,所謂無優優婆斯是。行空三昧所謂,毘讎先優婆斯是。行無想三昧,所謂優那陁優婆斯是。行無願三昧,無垢優婆斯是。好教授彼,尸利夫人優婆斯是。善能持戒,鴦竭摩優婆斯是。形貌端正雷焰優婆斯是。諸根寂靜,最勝優婆斯是。多聞博知,泥羅優婆斯是。能造頌偈,脩摩迦提須達女優婆斯是。無所怯弱,亦是須達女優婆斯是。我聲聞中,最後取證優婆斯者,所謂藍優婆斯是。”
無優、毘讎先,
優那、無垢、尸,
鴦竭、雷焰、勝,
泥、脩、藍摩女。

이 30명의 우바사에 대하여 위에서와 같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此三十優婆斯。廣說如上。”

增壹阿含經卷第三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참고 경전으로는 송(宋)의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아라한구덕경(佛說阿羅漢具德經)』이 있다.
2)
팔리어로는 Aññāta Koṇḍañña라고 하며, 또는 아야교진녀(阿若憍陳如)로 음역하기도 한다. 교진여는 성(姓)이며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처음 법륜을 굴리실 적에 부처님의 제도를 받고 제일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3)
4제진법(諦眞法)이라고도 하며,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4성제(聖諦)를 말한다.
4)
팔리어로는 Udāyī라고 하며, 가류타이(迦留陀夷)의 본명이다. 이를 번역하면 흑광(黑光)ㆍ흑요(黑曜)ㆍ기시(起時)라고 번역한다. 피부가 검고 빛나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5)
팔리어로는 Mahānāma이며, 마하나미(摩訶那彌)로 표기하기도 한다. 번역하여 대명(大名)이라 하며,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후에 최초로 제도 받은 5비구의 하나이다.
6)
팔리어로는 Bhaddiya라고 하며, 발제리가(跋提梨迦)라고 쓰기도 하며, 부처님 성도 후에 제일 먼저 제도 받은 5비구의 한 사람이다.
7)
팔리어로는 Uruvela-kassapa라고 하며, 또는 우루빈나가섭(優樓頻那迦葉)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번역하여 목과림가섭(木瓜林迦葉)이라 한다. 그 이름의 의미에 세 가지 뜻이 있는데 그의 부모가 목과림에 기도하여 낳았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는 가슴이 목과처럼 부풀어 있다 하여 그렇게 이름하였다고 하기도 하며, 또는 목과림에서 수행하였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기도 한다. 3가섭의 한 사람으로 원래는 불을 숭배하던 외도였다.
8)
팔리어로는 Nadī-kassapa로 쓰며, 또는 나제가섭(那提迦葉)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번역하여 하(河)가섭 또는 강(江)가섭이라 한다. 이 사람은 나제하(那提河)라는 강가에서 수행하여 득도하였으며 우루빈나가섭의 동생이다.
9)
팔리어로는 Gayā-kassapa이라 하며, 또는 가야가섭(伽耶迦葉)ㆍ가이가섭(伽夷迦葉)으로 쓰기도 한다. 가야산(伽耶山)에 살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우루빈나가섭과 나제가섭의 동생으로 이 3인을 3가섭이라고 한다.
10)
팔리어로는 Assaji라 한다. 또는 아설시(阿說示)ㆍ아습박씨다(阿濕縛氏多)로 표기하기도 하며, 번역하여 마승(馬勝)ㆍ마사(馬師)라 하는데 이는 그의 거동이 단정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처음 법륜을 굴리실 적에 최초로 제도 받은 5비구의 하나이다.
11)
팔리어로는 Śoṇa-Kolivīsa라 한다. 부처님 재세(在世) 시에 아라한과를 얻은 비구로서 발 아래 털의 길이가 두 치[寸]이고 발로 땅을 밟지 않아 제자 중에 정진 제일로 알려진 사람이다.
12)
의(衣)ㆍ식(食)ㆍ주(住)에 대한 탐착(貪着)을 떨어버리고 심신(心身)을 수련하는 것을 말한다.
13)
팔리어로는 Anuruddha라고 한다. 또는 아누루타(阿㝹樓馱)ㆍ아이로타(阿儞嚕馱)라고 음역하기도 하고 번역하여 무멸(無滅)ㆍ여의(如意)ㆍ무탐(無貪)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당제(堂弟)이다.
14)
팔리어로는 Revata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음사로는 이파다(離婆多)ㆍ이바다(哩嚩多)라고 하기도 한다. 완전한 이름은 호의난왈(狐疑難曰, Kaṅkhā-Revata)이며, 이를 번역하여 실성(室星)ㆍ성수(星宿)라고 한다. 그의 부모가 이파다(離婆多)라고 하는 별에 기도하여 그를 낳았다고 한다.
15)
사방에서 수행하기 위해 모여든 스님들을 말한다.
16)
팔리어로는 Raṭṭhapāla라고 한다. 또 다른 음역은 뢰타화라(賴吒惒羅)ㆍ뢰타바라(賴吒婆羅)ㆍ라타파라(羅吒波羅)라고 쓰기도 하며, 의역하여 호국(護國)이라 한다.
17)
팔리어로는Kuṇḍadhāna라고 한다. 또 다른 음사로는 군두파한(軍頭波漢)ㆍ군두파한(君頭波漢)이라고도 한다.
18)
팔리어로는 Piṇḍola라고 한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복전(福田) 제일이다.
19)
팔리어로는 Vaṅgīsa라고 한다. 또는 바기사(婆耆舍)ㆍ바기사(婆耆沙)라고 음역하며, 번역하여 취선(取善)이라 하고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시(詩)에 제일가는 사람이다.
20)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사변(辭辯)ㆍ응변(應辯)을 네 가지 변재라고 하는데, 법변은 모든 법(法)의 명칭에 대하여 걸림 없이 말하는 것이고, 의변이란 모든 법에 대한 이치를 분명하게 걸림 없이 말해주는 것이며, 사변이란 미묘하게 사용하는 일체의 언사(言辭)에 대하여 걸림 없이 말해 주는 것이고, 응변이란 중생들의 바램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거기에 맞추어 잘 설법해주는 것을 말한다.
21)
팔리어로는 Kimbila라고 한다. 또는 금비라(金毘羅)ㆍ구비라(俱毘羅)라고 표기하가도 하며, 이를 번역하여 시공비공(是孔非孔)이라고 한다.
22)
수행자가 두타행(頭陀行)의 계법을 받는 것으로 음식을 자주 먹지 않고 적게 먹는 것을 말한다.
23)
팔리어로는 Bhūmija라고 한다. 부마(浮磨)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지(地)라고 한다.
24)
앞에 나오는 이왈(離曰)이라는 비구와 같은 인물이다.
25)
팔리어로는 Vasabha라고 한다. 찰제리종(刹帝利種)으로 리차(離車) 종족의 공자(公子)이다.
26)
팔리어로는 Dāsaka라고 한다. 타삭가(馱索迦) 또는 타사(陀娑)로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고(苦)라고 한다. 사위성 급고독장자의 노예의 자식이다.
27)
첫째 길가에 버린 옷, 둘째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있는 옷, 셋째 물가에 버려진 옷, 넷째 벌레들이 구멍을 뚫은 옷, 다섯째 다 떨어져 너덜너덜한 옷을 기워 만든 옷을 말한다.
28)
팔리어로는 Uttara라고 한다. 오다라(烏多羅)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선승(善勝)이라고 한다. 바라문 종족 출신으로 사위성에서 부처님의 신통을 보고 감격하여 후일 출가 득도한 사람이다.
29)
팔리어로는 Sandita라고 한다. 교살라국 사람으로서 비사(毘舍) 종족 장자의 아들이다.
30)
팔리어로는 Dhammaruci라고 한다. 담마류지(曇摩留枝)로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법락(法樂)이라고 한다.
31)
팔리어로는 Kāmabhū라고 한다. 가마(迦摩) 또는 가마(伽摩)라고 쓰기도 한다.
32)
팔리어로는 Bakkula라고 한다. 박구라(薄拘羅)로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선요(善容)이라고 한다.
33)
팔리어로는 Vakkalin이라고 한다. 말가리(末朅哩)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착수피의(著樹皮衣)라고 한다. 신앙이 견고하기로 제일이라고 칭찬을 받은 부처님의 제자이다.
34)
팔리어로는 Nanda라고 한다. 난노(難努)로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선환희(善歡喜)라고 한다. 부처님의 이종 동생이다.
35)
팔리어로는 Bhadda Pātaliputta라고 한다. 발타라(跋陀羅)로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현선(賢善)이라고 한다. 사위성 사람이고 비사 종족의 장자의 아들이다.
36)
팔리어로는 Nandaka라고 한다. 난나가(難那哥)로 쓰기도 한다.
37)
팔리어로는 Sīvalan이라고 한다. 시리라(尸利羅)로 쓰기도 한다.
38)
팔리어로는 Upasene Vaṅgantaputta라고 한다. 오파세나말가리자(烏波細那末朅梨子)라고 쓰기도 한다.
39)
팔리어로는 Bhaddasena라고 한다.
40)
팔리어로는 Kumāra Kassapa라고 한다. 번역하여 동자가섭(童子迦葉)이라고 한다.
41)
팔리어로는 Mogharāja라고 한다. 음역하여 모하라야(謨賀羅惹)라고도 한다.
42)
또는 마하 반토(摩訶般兎, Mahāpanthaka)라고 쓰기도 하고, 대반탁가(大般託迦)로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대로(大路)라고 한다. 이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적에 그 부모가 큰길에 놓아두었는데 등대(等待) 사문과 바라문이 주원(呪願)하고 기복(祈福)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였다고 한다. 주리반토(周利般兎)의 형으로 총명하고 영리한 근기를 지녔다.
43)
팔리어로는 Cūḷapanthaka라고 한다. 반탁가(半託迦)ㆍ주리반타가(周利槃陀伽)로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소로(小路)라고 한다. 그는 품성이 우둔하였기 때문에 또 우로(愚路)라고 하기도 한다.
44)
팔리어로는 Candraprabha라고 하며, 전다파라비(旃陀婆羅脾)라고 쓰기도 한다.
45)
팔리어로는 Jotidāsa라고 한다. 수제타사(樹提陀娑)로 쓰기도 하며, 바라문 종족으로 어른이 되어 대가섭을 공양하고 그에게 불법을 듣고 출가하였다.
46)
팔리어로는 Aṅgulimāla라고 한다. 앙굴마라(盎堀摩羅)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지만(指鬘)이라고 한다.
47)
팔리어로는 Sabbakāma라고 한다. 승가라마(僧伽羅摩)라고 쓰기도 한다.
48)
팔리어로는 Citta-Hatthirohap라고 한다. 상사리불(象舍利弗)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사위성에 살았던 농부의 아들로서 여섯 번 환속하고 일곱 번 출가한 끝에 결국 득도했다고 한다.
49)
팔리어로는 Sāgata라고 한다. 수가타(修伽陀)로 쓰기도 한다.
50)
불ㆍ법ㆍ승 3보를 말한다.
51)
팔리어로는 Nārada라고 한다.
52)
팔리어로는 Khitaka라고 한다. 바라문 종족으로 사위성 사람이다. 목건련의 신통에 대한 일은 듣고 출가하여 수행하였다고 한다.
53)
팔리어로는 Girimānanda라고 한다. 왕사성 출신으로 바라문 종족이며 빈바사라(頻婆娑羅)왕의 재상의 아들이라고 한다.
54)
팔리어로는 Brahmadatta라고 한다. 사위성 파사닉왕의 아들인데, 어느 날 탁발(托鉢)을 하다가 어떤 바라문에게 욕을 당했는데 아무말 없이 인욕(忍辱)하여 마침내는 그 사람을 교화하였다고 한다.
55)
팔리어로는 Susīma라고 한다. 번역하여 선결(善結) 또는 애념(愛念)이라고 한다. 처음에 외도(外道)가 되어 부처님 처소에 찾아가 출가할 것을 간청하여 불법을 도적질한 자였으므로 적주(賊住) 비구라고 하기도 한다. 나중에 부처님께 참회하고 지성으로 수확하여 과위(果位)를 이루었다.
56)
팔리어로는 Samiddhi라고 한다. 왕사성에 살았던 사람으로 찰제리(刹帝利) 종족이며 그가 출가한 후에 더 큰 부자가 되었다.
57)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성본(聖本)에는 해탈(解脫) 두 글자가 해타(懈惰)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58)
팔리어로는 Dhammika라고 한다. 달마가(達磨哥)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완둔(頑鈍)이라고 한다.
59)
팔리어로는 Pilinda-vaccha라고 한다. 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라고 쓰기도 한다.
60)
팔리어로는 Abhaya라고 한다. 교살라국(憍薩羅國) 사위성 사람이며 바라문 출신이다. 탁발을 하다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정사에 돌아와 부끄럽게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수행하여 득도했다고 전해진다.
61)
팔리어로는 Sunīta라고 한다. 왕사성 사람이며, 생활이 가난하여 도로를 청소하던 사람으로서 나중에 부처님께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62)
팔리어로는 Surādha라고 한다. 번역하여 선득(善得)이라고 하며 왕사성 사람으로 바라문 출신이며, 라타(羅陀) 장로의 아우이다. 형의 인도에 따라 출가하여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63)
팔리어로는 Nāgasamāla라고 한다. 번역하여 용호(龍護)라고 한다.
64)
팔리어로는 Vāsettha라고 한다.
65)
팔리어로는 Meghiyā라고 한다. 또는 미기가(彌企哥)로 표기하기도 한다.
66)
팔리어로는 Nigrodha라고 한다. 번역하여 무에(無恚)라고 하고 사위성(舍衛城) 사람으로 바라문 종족이다. 니원정사(祇園精舍)의 건립에 감격하다가 출가하여 득도하였다고 한다.
67)
팔리어로는 Migasīsa라고 한다. 밀리아시라(蜜哩誐尸囉)라고 쓰기도 한다.
68)
팔리어로는 Bhūmija라고 한다. 부미(浮彌)로 쓰기도 한다.
69)
팔리어로는 Doṇa라고 하며, 도로나(徒盧那)로 쓰기도 한다.
70)
팔리어로는 Subhadda라고 한다. 또 수발(須跋)ㆍ수발타라(須跋陀羅)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선현(善賢)이라고 한다. 원래는 범지(梵志)였었는데 옛것을 좋아하고 지혜가 많았다. 맨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아라한이 된 사람이다.
71)
팔리어로는 Mahāpajāpatī Gotamī라고 한다. 마하바사바제(摩訶波闍婆提)라고 쓰기도 하고 마야(摩耶)부인의 누이이다. 세존(世尊)의 양모(養母)이고 난타(難陀)의 생모이다.
72)
팔리어로는 Khemā라고 한다.
73)
팔리어로는 Uppalavaṇṇā라고 하고, 번역하여 연화색(蓮花色)이라고 한다.
74)
팔리어로는 Kisāgotamī 라고 하며, 가리사(訖哩舍)로 쓰기도 한다.
75)
팔리어로는 Sakulā라고 한다. 번역하여 현(賢)이라고 하며, 사위성 사람으로서 바라문 종족이다.
76)
팔리어로는 Sāmā라고 하며, 교상미(憍賞彌) 사람이다. 우전왕(于闐王)의 부인과 절친한 친구였는데 황후가 죽고 나서 무상함을 느끼고 마침내는 출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77)
팔리어로는 Paṭācārā라고 한다. 발타좌라(鉢吒左羅)라고 하기도 하며, 번역하여 미묘(微妙)라고 한다.
78)
팔리어로는 Bhaddakaccānā라고 한다.
79)
팔리어로는 Bhaddākapilānī라고 한다. 발타라가비리야(跋陀羅迦卑梨耶)ㆍ바타(婆陀)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묘현(妙賢)이라고 한다. 원래 대가섭과 함께 범행을 닦는 부부였는데 나중에 함께 출가하였다고 한다.
80)
팔리어로는 Soṇā라고 한다. 수로(輸盧)라고 쓰기도 하는데, 일찍이 신통 변화를 보여 외도육사(外道六師)를 항복받았다고 전해진다.
81)
팔리어로는 Dhammadinnā라고 하며, 번역하여 시법(施法)이라고 한다.
82)
팔리어로는 Jentī 이다.
83)
팔리어로는 Dantikā라고 한다. 찰제리(刹帝利) 종족으로서 비사리성(毘舍離城) 이차족(離車族)의 딸이다. 혼인을 하였다가 남편이 죽자 마침내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84)
팔리어로는 Abhayā라고 한다. 우선니국(于禪尼國) 사람이고 바사종(毘舍種)이다. 일찍이 왕사성 한림(寒林)에서 부정관(不淨觀)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85)
팔리어로는 Visākhā라고 한다.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 사람으로 찰제리종이다. 원래는 궁녀(宮女)였었는데 뒤에 마하바사바제(摩訶波闍波提)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고 한다.
86)
팔리어로는 Anopanā라고 하며 번역하여 무비(無譬)라고 한다.
87)
단수단(檀須檀)은 아마도 타수타(陀須陀)의 잘못인 듯하다. 즉 타마(陀摩)와 수타마(須陀摩)가 되어야만 옳기 때문이다.
88)
팔리어로는 Sukkā라고 한다. 또는 숙가라(叔迦羅)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백정(白淨)ㆍ선백(鮮白)이라고 한다. 왕사성 사람이며 비사(毘舍)종인데, 왕사성 사람들이 그를 공경하고 공양하기를 마치 아라한을 공경하듯이 하였는데, 하루는 일부러 그에게 공양하는 것을 중지했더니 어떤 귀신이 그 시주 집을 찾아가 게송을 읊어 수가를 공양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89)
팔리어로는 Bhaddākuṇḍalakesā라고 하고, 군다라계두(君茶羅繫頭)로 쓰기도 한다. 원래는 니건자(尼乾子)의 제자였는데 뒤에 부처님께 출가하여 귀의하였다고 한다.
90)
장사꾼 제바수(提波須)와 발리가(跋利迦) 두 형제이다. 이들 형제는 처음에 꿀을 불타에게 공양하다가 최초로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이 되었다.
91)
팔리어로는 Citta라고 한다. 사위성 밖에 거주하던 우바새인데, 그는 항상 비구들과 법을 논하곤 하였으며 우바새 중에 설법이 제일 뛰어났다고 한다.
92)
팔리어로는 Hatthaka Ālavaka라고 한다. 아타바가(阿吒嚩哥)ㆍ하실다가(賀悉多哥)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수보상(手寶象)이라고 한다.
93)
팔리어로는 Sūra-ambaṭṭha라고 하며, 또는 용맹(勇猛)이라고 쓰기도 한다.
94)
팔리어로는 Sudatta라고 하며 번역하여 선수(善授)라고 한다. 파사닉왕의 대신으로 성품이 인자하고 항상 불쌍하고 이로운 이들을 돌보아 의식을 제공해주고 하였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이 그를 급고독(給孤獨)이라고 부르곤 했다.
95)
팔리어로는 Meṇḍaka라고 하며, 또는 민다(民茶)ㆍ민대(民大)라고 한다. 앙가국(鴦伽國)의 장자이다.
96)
팔리어로는 Jāṇussoṇī라고 하며 생문(生聞)으로 쓰기도 한다.
97)
팔리어로는 Upāli라고 한다. 원래는 니건교(尼乾敎)의 무리였었는데 부처님과 논란을 벌이려다가 도리어 부처님께 교화를 당한 사람이다.
98)
팔리어로는 Bimbisāra라고 한다. 또 빈바사라(頻婆娑羅)ㆍ병사(甁沙)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광택제일(光澤第一)이라고 한다.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으로 아사세왕(阿闍世王)의 아버지이다.
99)
팔리어로는 Caṇḍapajjota라고 하며 맹광(猛光)ㆍ광명(光明)ㆍ악생(惡生)으로 쓰기도 한다. 그는 원래 성정(性情)이 포악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맹폭등광(猛暴燈光)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100)
팔리어로는 Pasenadi라고 한다. 번역하여 화열(和悅)ㆍ월광(月光)ㆍ승광(勝光)ㆍ승군(勝軍)이라고 하며, 교살라국(憍薩羅國)의 왕이다. 부처님과 생일이 같으며, 부인 말리(末利)의 권유로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101)
팔리어로는 Ajātasattu라고 한다. 번역하여 미생원(未生怨)이라고 한다.
102)
팔리어로는 Udena라고 하고, 번역하여 일자(日子)라고 하며, 구섬미국(拘睒彌國)의 왕이다.
103)
지타(祗陀, Jeta)라고도 하며, 파사닉왕의 아들이다.
104)
팔리어로는 Mahānāma라고 한다. 또 마하남(摩訶男)이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대명(大名)이라고 한다.
105)
팔리어로는 Sīha라고 한다. 또는 사하(私呵)로 쓰기도 하며, 비사리(毘舍離)의 장군으로서 원래는 니건(尼乾) 외도를 신봉(信奉)하였는데 나중에 불타에게 귀의하였다.
106)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비사어(毘舍御)가 송(宋)ㆍ원(元)ㆍ명(明) 세 본에는 모두 비사가(毘舍佉)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107)
팔리어로는 Nandipāla라고 한다.
108)
팔리어로는 Uttara라고 한다.
109)
팔리어로는 Upāsikā라고 한다. 또는 우바이(優婆夷)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근사녀(近事女)ㆍ청신녀(淸信女)라고 하는데, 이는 3보를 가까이에서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라고 한다.
110)
이는 아마도 남타(難陀)와 난타바라(難陀婆羅) 두 사람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 두 사람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마치시고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을 마치시고 강 가에 올라오시자 유미(乳糜)죽을 부처님께 공양하였다고 한다.
111)
팔리어로는 Khujjuttarā라고 한다. 또는 고몰유달라(酤沒儒怛羅)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도승(度勝)이라고 한다.
112)
팔리어로는 Suppiyā라고 하며, 또는 수비이(須比耳)로 쓰기도 한다.
113)
고려 대장경 원문에는 바수타는 들어 있지 않은데 앞의 글 내용에 따라 역자가 넣었다.
114)
팔리어로는Mallikā라고 한다. 또는 말리(末利)로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승만(勝鬘)이라고 하며, 교살라(憍薩羅)국 파사닉왕(波斯匿王)의 왕비이다. 원래는 석가족의 여자 종이었는데 부처님께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실 밥을 가져다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제발 노예의 몸을 버리고 부귀하게 해달라는 원을 세워 나중에 파사닉왕에게 시집가게 되었다고 한다.
115)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ㆍ원ㆍ명 세 본에는 마하광(摩訶光)이 마하선(摩訶先)으로 되어 있다”라고 한다. 
116)
팔리어로는 Vedehī라고 한다. 또는 위제희(韋提希)로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승묘신(勝妙身)이라고 하며, 마가타(摩伽陀)국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의 부인이고 아사세왕(阿闍世王)의 어머니이다.
117)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ㆍ원ㆍ명 세 본에는 발제(拔提)가 발타(拔陀)로 되어 있다”라고 한다. 
118)
팔리어본에는 난타지모우다라(難陀之母優多羅, Uttarā Nandamātā)로 되어 있다.
119)
일체의 온갖 법은 그 자성(自性)이 본래 공한 것이어서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관(觀)하는 삼매를 말하는 것으로서 무상(無相)삼매ㆍ무원(無願)삼매와 더불어 3삼매라고 한다.
120)
무상(無相)삼매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121)
팔리어로는 Vimalā라고 한다. 그는 일찍이 불타에게 가르침을 청하여 몸소 불탑(佛塔)이 있는 자리를 청소하고 수리하였으며, 불탑에 공양을 올리고 네 가지 범행(梵行)을 닦아 삼귀오계(三歸五戒)의 복보(福報)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122)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ㆍ원ㆍ명 세 본에는 송게(頌偈)가 송게(誦偈)로 되어 있다”라고 한다. 
123)
팔리어로는 Cūḷa-Subhaddā라고 한다. 또는 수마제(須摩提)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선무독(善無毒)이라고 한다. 급고독(給孤獨) 장자 수달의 딸인데 원래는 외도를 신봉하는 장자의 집으로 시집갔었는데 나중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124)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말한다.
125)
공(空)삼매ㆍ무상(無相)삼매ㆍ무원(無願)삼매, 즉 3삼매를 말한다.
126)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4성제(聖諦)를 말한다.
127)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을 말한다.
128)
또는 7각지(覺支)ㆍ7등각지(等覺支)ㆍ7보리분(菩提分)이라고도 한다.
129)
8정도(正道)를 말하며, 8성도(聖道) 혹은 8성도분(聖道分)ㆍ8정도분(正道分)이라고도 한다.
130)
아홉 종류의 유정(有情) 중생들이 거처하는 곳으로서 인천(人天)ㆍ범천(梵天)ㆍ광음천(光音天)ㆍ변정천(遍淨天)ㆍ무상천(無想天)ㆍ공처(空處)ㆍ식처(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를 말한다.
131)
현성(賢聖)의 8품도(品道)라고도 하며, 8정도(正道)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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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아함경 제2권
雜阿含經卷第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宋天竺三藏求那跋陁羅譯

33. 비아경(非我經)
34. 오비구경(五比丘經)
35. 삼정사경(三正士經)
36. 십륙비구경(十六比丘經)
37. 아경(我經)
38. 비하경(卑下經)
39. 종자경(種子經)
40. 봉체경(封滯經)
41. 오전경(五轉經)
42. 칠처경(七處經)
43. 취착경(取著經)
44. 계착경(繫著經)
45. 각경(覺經)
46. 삼세음세식경(三世陰世識經)7)
47. 신경(信經) ①
48. 신경 ②
49. 아난경(阿難經) ①
50. 아난경 ②
51. 괴법경(壞法經)
● 52. 울저가경(鬱低迦經, 증일아함23:4 사법四法)
● 53. 바라문경(婆羅門經)
54. 세간경(世間經)
55. 음경(陰經)
56. 누무루법경(漏無漏法經)
57. 질루진경(疾漏盡經)
58. 음근경(陰根經)


33.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一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색은 나[我]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응당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色非是我。若色是我者,不應於色病、苦生,亦不應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以色無我故,於色有病、有苦生,亦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於意云何?色爲是常、爲無常耶?”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比丘白佛:“無常,世尊。”“比丘,若無常者,是苦不?”比丘白佛:“是苦,世尊。”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有我、異我、相在不?”比丘白佛:“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我]가 아니요,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如是觀察;受、想、行、識亦復如是。

비구들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5수음(受陰)에 대하여 ‘그것은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느니라. 이렇게 사실 그대로 관찰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比丘,多聞聖弟子於此五受陰非我,非我所,如實觀察。如實觀察已,於諸世閒都無所取;無所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4. 오비구경(五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나국(波羅那國)의 선인들이 살았다는 녹야원(綠野苑)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남아 있는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爾時,世尊告餘五比丘

“색에는 나[我]가 없다. 만일 색에 나가 있다면 색에는 응당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요,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色非有我。若色有我者,於色不應病苦生,亦不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以色無我故,於色有病、有苦生,亦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於意云何?色爲是常、爲無常耶?”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比丘白佛:“無常,世尊。”“比丘,若無常者,是苦耶?”比丘白佛:“是苦,世尊。”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比丘,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是我、異我、相在不?”比丘白佛:“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我]가 아니요,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라.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實觀察。受、想、行、識亦復(부)如是。

비구들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5수음을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관찰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比丘,多聞聖弟子於此五受陰見非我、非我所。如是觀察,於諸世閒都無所取、無所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다섯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餘五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5. 삼정사경(三正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지제(支提)에 있는 죽원정사(竹園精舍)에 계셨다.
그때 출가한 지 아직 오래되지 않은 세 정사(正士)가 있었으니, 즉 존자 아누율다(阿㝹律陀), 존자 난제(難提), 존자 금비라(金毘羅)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곧 훈계하여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支提竹園精舍。爾時,有三正士出家未久,所謂尊者阿㝹律陁、尊者難提、尊者金毘羅。爾時,世尊知彼心中所念,而爲教誡:

“비구들아, 이 마음[心]과 이 뜻[意]과 이 의식[識]으로 마땅히 이렇게 사유하고, 이렇게 사유하지는 말며, 이 탐욕을 끊고, 이 색을 끊으며, 몸으로 완전히 진리를 증득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아, 과연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색이 있는가?”
“比丘,此心、此意、此識,當思惟此,莫思惟此,斷此欲、斷此色,身作證具足住。比丘,寧有色,若常、不變易、正住不?”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比丘白佛:“不也,世尊。”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색은 무상하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바르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佛告比丘: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색은 무상하며 변하고 바뀌는 법(法)으로서 싫어하고, 탐욕을 떠나며, 없애고, 고요하게 하며, 사라지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색은 본래부터 그 일체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이렇게 알고 나면 그 색으로 말미암아 생겼던 모든 번뇌의 해로움과 불꽃, 근심과 번민은 모두 끊어져 없어진다. 그것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게 된 뒤에는 안락하게 머무르게 되며, 안락하게 머무른 뒤에는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된다.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正住不?”比丘白佛:“不也,世尊。”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之法,厭、離欲、滅、寂、沒。如是色從本以來,一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諸漏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般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세 정사(正士)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三正士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6. 십륙비구경(十六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투라국(摩偸羅國)의 발제하(跋提河) 가에 있는 일산 같은 암라수원(菴羅樹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摩偸羅國 跋提河側傘蓋菴羅樹園。爾時,世尊告諸比丘:

“비구들아, 자기라는 섬[自洲]1)에 머무르고 자기라는 귀의처[自依]에 머무르며, 법이라는 섬[法洲]에 머무르고 법이라는 귀의처[法依]에 머무르며, 다른 섬이나 다른 귀의처에 머무르지 말라.
비구들아, 마땅히 바르게 관찰하여 자기라는 섬과 자기라는 귀의처에 머무르고, 법이라는 섬과 법이라는 귀의처에 머무르며, 다른 섬에 머무르거나 다른 귀의처에 머무르지 말라.
“住於自洲,住於自依;住於法洲,住於法依;不異洲不異依。比丘,當正觀察,住自洲自依,法洲法依,不異洲不異依。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며, 어떻게 이 네 가지가 있게 되며, 무엇 때문에 또 어떻게 얽매이게 되고, 아직 생기지 않은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고 이미 생긴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더욱 자라는 것을 어떻게 스스로 관찰하는가?”
何因生憂悲惱苦?云何有四?何故何繫著?云何自觀察未生憂悲惱苦而生,已生憂悲惱苦生長增廣?”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諸比丘白佛: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요, 법의 눈이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시면 저희들은 듣고 나서 말씀대로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世尊法根、法眼、法依,唯願爲說!諸比丘聞已,當如說奉行。”

“비구들아,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희를 위해 설명하리라.
비구들아, 색이 있어 색을 인연하고, 색에 얽매이기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은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고, 이미 생긴 것들은 더욱 자라고 커진다’고 관찰하라.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혹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색이 있는가?”
佛告比丘:“諦聽,善思,當爲汝說。比丘,有色、因色、繫著色,自觀察未生憂悲惱苦而生,已生而復增長廣大: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頗有色常、恒、不變易、正住耶?”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答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비구들아, 색은 무상하다. 만일 선남자가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2) 변하고 바뀌는 것으로서 탐욕을 떠나고, 없애며, 고요하게 하고, 사라지게 해야할 것이다’라고 안다면, 본래부터 모든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인 줄 안 뒤에는 혹 색을 인연하여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겼더라도 그것은 끊어지고, 그것이 끊어진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게 된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고,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게 되면 그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善哉!善哉!比丘,色是無常。若善男子知色是無常、苦、變易,離欲、滅、寂靜、沒,從本以來,一切色無常、苦、變易法知已,若色因緣生憂悲惱苦斷,彼斷已無所著,不著故安隱樂住,安隱樂住已,名爲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16비구는 모든 번뇌[漏]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十六比丘不生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죽원(竹園)과 비사리(毘舍離)와
청정(淸淨)과 정관찰(正觀察)과
무상(無常)ㆍ고(苦)ㆍ비아(非我)와
5비구(比丘)ㆍ3정사(正士)ㆍ16비구(比丘)에 대해 설하셨다.
竹園、毘舍離,
淸淨、正觀察,
無常、苦非我,
五、三、與十六。

37. 아경(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데 세상이 나와 다투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아, 만일 법답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我不與世閒(한)諍,世閒與我諍。所以者何?比丘,若如法語者,不與世閒,諍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云何爲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

비구들아,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느니라.
比丘,色無常、苦、變易法,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如是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색은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은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이니라.
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謂色是常、恒、不變易、正住者,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受、想、行、識、常、恒、不變易、正住者,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是名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

비구들아, 세간에는 세간법(世間法)이 있어, 나는 그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허물이 아니니라.
비구들아,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고 분별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比丘,有世閒世閒法,我亦自知自覺,爲人分別演說顯示,世閒盲無目者,不知不見,非我咎也。“諸比丘,云何爲世閒世閒法,我自知,我自覺,爲人演說,分別顯示,盲無目者不知不見?

비구들아, 색이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도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비구들아, 이러한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저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是比丘,色無常、苦、變易法,是名世閒世閒法;如是受、想、行、識,無、常苦,是世閒世閒法。比丘,此是世閒世閒法,我自知自覺,爲人分別演說顯示,盲無目者不知不見。我於彼盲無目不知不見者,其如之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8. 비하경(卑下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세상 사람들은 천한 직업에 종사하며 여러 가지로 재물을 구해 살아가면서 또 큰 부자가 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世人爲卑下業,種種求財活命,而得巨富,世人皆知。如世人之所知,我亦如是說。所以者何?莫令我異於世人。

모든 비구들아, 비유하면 어떤 그릇이 어떤 곳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건자(揵茨)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발우[鉢]라 하며, 어떤 사람은 비비라(匕匕羅)라 하고, 어떤 사람은 차류(遮留)라 하며, 어떤 사람은 비실다(毘悉多)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바사나(婆闍那)라 하며, 어떤 사람은 살뢰(薩牢)라 할 때, 그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諸比丘,譬如一器,有一處人,名爲楗茨,有名鉢,有名匕匕羅,有名遮留,有名毘悉多,有名婆闍那,有名薩牢。如彼所知,我亦如是說。所以者何?莫令我異於世人故。

이와 같이 비구들아, 세간에 있는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인다. 알고 보아 말하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如是,比丘,有世閒法,我自知自覺,爲人分別演說顯示,知見而說,世閒盲無目者不知不見;世閒盲無目者不知不見,我其如之何?”

비구들아, 어떤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내지)3)……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이른바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는 것,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는 것,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比丘,云何世閒世閒法,我自知自覺,乃至不知不見?色無常、苦、變易法,是爲世閒世閒法;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是世閒世閒法。

비구들아, 이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아……(내지)4)……저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比丘,是名世閒世閒法,我自知自見,乃至盲無目者不知不見,其如之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9. 종자경(種子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다섯 종류의 종자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뿌리가 종자인 것[根種子]ㆍ줄기가 종자인 것[莖種子]ㆍ마디가 종자인 것[節種子]ㆍ절로 떨어지면 그것이 곧 종자인 것[自落種子]ㆍ열매가 종자인 것[實種子]이니라. 이 다섯 종류의 종자가 비록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고,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라 하더라도 땅만 있고 물이 없다면, 그 종자는 성장하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有五種種子。何等爲五?謂根種子、莖種子、節種子、自落種子、實種子。此五種子不斷、不壞、不腐、不中風,新熟堅實,有地界而無水界,彼種子不生長增廣。

또 그 종자가 비록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았더라도 물만 있고 땅이 없다면, 그 종자도 또한 성장하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 종자가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도 않았으며 땅과 물이 있다면, 그 종자는 성장하고 뻗어나갈 것이다.
若彼種新熟堅實,不斷、不壞、不中風,有水界而無地界,彼種子亦不生長增廣。若彼種子新熟堅實,不斷、不壞、不腐、不中風,有地、水界,彼種子生長增廣。

비구들아, 그 다섯 가지 종자는 식(識)을 포함한 5취음(取陰)을 비유한 것이고, 지계(地界)는 식이 머무르는 네 곳[四識住]을 비유한 것이며, 수계(水界)는 탐욕[貪]과 기쁨[喜]을 비유한 것이다.
네 가지 취음(取陰)을 반연하여 식(識)이 머무르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색(色)에 식(識)은 머물러, 색을 반연하고 기쁨과 탐욕으로 윤택해져 성장하고 뻗어나간다. 수(受)ㆍ상(想)ㆍ행(行)에 식(識)은 머물러, 수ㆍ상ㆍ행을 반연하고 기쁨과 탐욕으로 윤택해져 성장하고 뻗어나간다.
比丘,彼五種子者,譬取陰俱識;地界者,譬四識住;水界者,譬貪喜四取攀緣識住。何等爲四?於色中識住,攀緣色,喜貪潤澤,生長增廣;於受、想、行中識住,攀緣,受、想、行,貪喜潤澤,生長增廣。

비구들아, 식은 그것들 안에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머무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혹은 성장하고 뻗어나가기도 한다.
비구들아, 만일 색ㆍ수ㆍ상ㆍ행을 떠나서 식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머무르기도 하고, 자라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의심만 더욱 커지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比丘,識於中若來、若去,若住、若沒,若生長增廣。比丘,若離色、受、想、行、識有若來、若去,若住、若生者,彼但有言數,問已不知,增益生癡,以非境界故。

색(色)의 경계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면 탐욕을 떠난 뒤에는 색에 대한 집착[封滯]과 마음에서 생긴 얽맴[縛]이 끊어지고, 색에 대한 집착과 마음에서 생긴 얽맴이 끊어진 뒤에는 반연(攀緣)이 끊어진다. 반연이 끊어지고 나면 그 식(識)은 머무를 곳이 없게 되어 다시는 성장하거나 뻗어나가지 못한다.
色界離貪,離貪已,於色封滯意生縛斷;於色封滯意生縛斷已,攀緣斷,攀緣斷已,識無住處,不復生長增廣。

수(受)ㆍ상(想)도 마찬가지이며, 행(行)의 경계에 대해 탐욕을 떠나면 탐욕을 떠난 뒤에는 행에 대한 집착과 마음에서 생긴 접촉[觸]이 끊어지고, 행에 대한 집착과 마음에서 생긴 얽맴이 끊어진 뒤에는 반연이 끊어진다. 반연이 끊어지고 나면 그 식은 머무를 곳이 없게 되어 다시는 성장하거나 뻗어나가지 못한다.
受、想、行界離貪,離貪已,於行封滯意生觸斷;於行封滯意生觸斷已,攀緣斷,攀緣斷已,彼識無所住,不復生長增廣。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뒤에는 머무르며, 머무른 뒤에는 만족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안 뒤에는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게 되며,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게 된 뒤에는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不生長故,不作行;不作行已住,住已知足,知足已解脫;解脫已,於諸世閒都無所取、無所著;無所取、無所著已,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그리하여 내가 말한 그 식(識)은 동ㆍ서ㆍ남ㆍ북ㆍ4유ㆍ상ㆍ하 어디로도 가지 않고 달려갈 곳이 없게 되며, 오직 법만 보아 고요하고 시원하며 깨끗하고 진실한 열반으로 들어가고자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我說彼識不至東、西、南、北、四維、上、下,無所至趣,唯見法,欲入涅槃、寂滅、淸涼、淸淨、眞實。”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0. 봉체경(封滯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집착[封滯]하면 해탈하지 못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하느니라.
‘집착하면 해탈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들아, 네 가지 취음(取陰)을 반연하여 식(識)이 머무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색(色)에 집착하여 식이 머무르고, 수(受)ㆍ상(想)ㆍ행(行)에 집착하여 식이 머무른다.……(내지)……5)그것은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이 ‘집착하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封滯者不解脫,不封滯則解脫,云何封滯不解脫?比丘,攀緣四取陰識住。云何爲四?色封滯識住,受、想、行封滯識住,乃至非境界故,是名封滯,故不解脫。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색의 경계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면 ……(내지)……6)깨끗하고 진실한 열반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한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云何不封滯則解脫?於色界離貪,受、想、行、識離貪,乃至淸淨眞實。是則不封滯則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1. 오전경(五轉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5수음이 있으니 색수음(色受陰)과 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나는 이 5수음에 대해서다섯 가지를 사실 그대로 아나니, 곧 색(色)과 색의 발생[色集]과 색에 맛들임[色味]과 색의 재앙[色患]과 색에서 벗어남[色離]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식의 발생ㆍ식에 맛들임ㆍ식의 재앙ㆍ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有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我於此五受陰,五種如實知—色如實知,色集、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是受、想、行、識如實知,識集、識味、識患、識離如實知。

어떻게 색(色)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존재하는 색은 모두가 4대(大)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으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색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이것을 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如實知?諸所有色,一切四大及四大造色,是名色,如是色如實知。云何色集如實知?於色喜愛,是名色集,如是色集如實知。云何色味如實知?謂色因緣生喜樂,是名色味,如是色味如實知。

어떻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患如實知?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如是色患如實知。云何色離如實知?若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如是色離如實知。

어떻게 수(受)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6수신(受身)이 있으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受), 귀ㆍ코ㆍ혀ㆍ몸ㆍ뜻(耳鼻舌身意)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로서 이것을 수(受)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觸]의 발생이 수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如實知?有六受身--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如是受如實知。云何受集如實知?觸集是受集,如是受集如實知。

어떻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여섯 가지 수를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이것을 수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수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수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고,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수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味如實知?緣六受生喜樂,是名受味,如是受味如實知。云何受患如實知?若受無常、苦、變易法,是名受患,如是受患如實知。云何受離如實知?於受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受離,如是受離如實知。

어떻게 상(想)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상신(想身)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곧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想),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으로서 이것을 상(想)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의 발생이 상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如實知?謂六想身。云何爲六?謂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想,如是想如實知。云何想集如實知?謂觸集是想集,如是想集如實知。

어떻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상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상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이것을 상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상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味如實知?想因緣生喜樂,是名想味,如是想味如實知。云何想患如實知?謂想無常、苦、變易法,是名想患,如是想患如實知。云何想離如實知?若於想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想離,如是想離如實知。

어떻게 행(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이 있으니, 곧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思],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로서 이것을 행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의 발생이 행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行如實知?謂六思身—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是名爲行,如是行如實知。云何行集如實知?觸集是行集,如是行集如實知。云何行味如實知?謂行因緣生喜樂,是名行味,如是行味如實知。云何行患如實知?若行無常、苦、變易法,是名行患,如是行患如實知。云何行離如實知?若行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行離,如是行離如實知。

어떻게 식(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이 있으니, 곧 안식(眼識)과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으로서 이것을 식신(識身)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신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명색(名色)의 발생, 이것을 식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如實知?謂六識身—眼識身,耳、鼻、舌、身、意識身,是名爲識身,如是識身如實知。云何識集如實知?謂名色集,是名識集,如是識集如實知。云何識味如實知?識因緣生喜樂,是名識味,如是識味如實知。

어떻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患如實知?若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如是識患如實知。云何識離如實知?謂於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如是識離如實知。

비구들아, 만일 사문 바라문이 색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알고 본 뒤에 탐욕을 여의는 방향으로 향하면 이것을 바르게 향하는 것이라 한다. 만일 그가 바르게 향하면 나는 ‘그는 들어왔다’고 말한다.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다.
比丘,若沙門、婆羅門於色如是知、如是見;如是知、如是見,離欲向,是名正向。若正向者,我說彼入。受、想、行、識亦復如是。

만일 사문 바라문이 색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본다면, 그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떠나며,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할 것이다. 만일 마음이 해탈한다면 곧 순일하게 될 것이요, 순일하게 되면 곧 범행이 이루어질 것이며, 범행이 이루어지면 다른 것을 떠나 자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 한다.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若沙門、婆羅門於色如實知、如實見,於色生厭、離欲,不起諸漏,心得解脫;若心得解脫者,則爲純一;純一者,則梵行立;梵行立者,離他自在,是名苦邊(변)。受、想、行、識亦復如是。”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2. 칠처경(七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일곱 가지 훌륭함과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만일 이 법을 다 알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무르게 된다.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有七處善、三種觀義。盡於此法得漏盡,得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身作證具足住:‘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비구들아, 어떤 것이 일곱 가지 훌륭함인가? 비구들아, 색(色)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색의 발생[色集]ㆍ색의 소멸[色滅]ㆍ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色滅道跡]ㆍ색에 맛들임[色味]ㆍ색의 재앙[色患]ㆍ색에서 벗어남[色離]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고,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과 식의 발생ㆍ식의 소멸ㆍ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ㆍ식에 맛들임ㆍ식의 재앙ㆍ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니라.
云何比丘七處善?比丘,如實知色、色集、色滅、色滅道迹、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是受、想、行、識,識集、識滅、識滅道迹、識味、識患、識離如實知。

어떻게 색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아는가? 존재하는 모든 색은 모두가 4대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으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애정과 기쁨,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애정과 기쁨이 소멸하는 것, 이것을 색의 소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如實知?諸所有色一切四大及四大造色,是名爲色,如是色如實知。云何色集如實知?愛喜是名色集,如是色集如實知。

어떻게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곧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 이것을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滅如實知?愛喜滅,是名色滅,如是色滅如實知。云何色滅道迹如實知?謂八聖道—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是名色滅道迹,如是色滅道迹如實知。云何色味如實知?謂色因緣生喜樂,是名色味,如是色味如實知。

어떻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患如實知?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如是色患如實知。云何色離如實知?謂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如是色離如實知。

어떻게 수(受)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수(受)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로서 이것을 수라 하나니, 이렇게 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觸]의 발생이 곧 수의 발생이니, 이렇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소멸이 곧 수의 소멸이니, 이렇게 수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如實知?謂六受--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如是受如實知。云何受集如實知?觸集是受集,如是受集如實知。

어떻게 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수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수를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수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滅如實知?觸滅是受滅,如是受滅如實知。云何受滅道迹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受滅道迹,如是受滅道迹如實知。云何受味如實知?受因緣生喜樂,是名受味,如是受味如實知。

어떻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수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수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患如實知?若無常、苦、變易法,是名受患,如是受患如實知。云何受離如實知?若於受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受離,如是受離如實知。

어떻게 상(想)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상(想)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으로서 이것을 상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발생이 곧 상의 발생이니, 이렇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소멸이 곧 상의 소멸이니, 이렇게 상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如實知?謂六想—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爲想,如是想如實知。云何想集如實知?觸集是想集,如是想集如實知。云何想滅如實知?觸滅是想滅,如是想滅如實知。

어떻게 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상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滅道迹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想滅道迹,如是想滅道迹如實知。云何想味如實知?想因緣生喜樂,是名想味,如是想味如實知。

어떻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상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상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患如實知?若想無常、苦、變易法,是名想患,如是想患如實知。云何想離如實知?若於想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想離,如是想離如實知。

어떻게 행(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思],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로서 이것을 행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발생이 곧 행의 발생이니, 이렇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行如實知?謂六思身—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是名爲行,如是行如實知。云何行集如實知?觸集是行集,如是行集如實知。

어떻게 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소멸이 곧 행의 소멸이니, 이렇게 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것을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云何行滅如實知?觸滅是行滅,如是行滅如實知。云何行滅道迹(적)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行滅道迹,如是行滅道迹如實知。云何行味如實知?行因緣生喜樂,是名行味,如是行味如實知。

어떻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行患如實知?若行無常、苦、變易法,是名行患,如是行患如實知。云何行離如實知?若於行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行離,如是行離如實知。

어떻게 식(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이니, 안식과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으로서 이것을 식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명색(名色)의 발생이 곧 식의 발생이니, 이렇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如實知?謂六識身—眼識,耳、鼻、舌、身、意識身,是名爲識,如是識如實知。云何識集如實知?名色集是識集,如是識集如實知。

어떻게 식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명색의 소멸이 곧 식의 소멸이니, 이렇게 식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滅如實知?名色滅是識滅,如是識滅如實知。云何識滅道迹(적)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識滅道迹,如是識滅道迹如實知。云何識味如實知?識因緣生喜樂,是名識味,如是識味如實知。

어떻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비구들아, 이것을 일곱 가지 훌륭함이라 하느니라.
云何識患如實知?若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如是識患如實知。云何識離如實知?若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如實知。比丘,是名七處善。

어떤 것이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인가? 비구가 만일 공적하고 한가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노지에서 음(陰)과 계(界)와 입(入)을 관찰하고 바른 방편으로 그 뜻을 사유한다면, 이것을 ‘비구가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이라 하느니라.
云何三種觀義?比丘,若於空閑、樹下、露地,觀察陰、界、入,正方便思惟其義,是名比丘三種觀義。

비구들아, 이상의 것을 비구의 일곱 가지 훌륭함과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이라 하나니, 만일 이 법을 다 알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무르게 된다.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是名比丘七處善、三種觀義。盡於此法,得漏盡,得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作證具足住:‘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3. 취착경(取著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취(取)하기 때문에 집착[著저]이 생기고, 취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게 되느니라.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희를 위해 설명하리라.”“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取故生著,不取則不著。諦聽善思。當爲汝說。”比丘白佛:“唯然,受教。”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취하기 때문에 집착이 생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또 ‘색은 나[我]요, 내 것[我所]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 그 색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그 마음도 또한 따라 옮긴다. 마음이 따라 옮긴 뒤에도 역시 취착(取著)을 일으켜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공포와 장애가 생기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나니, 그것은 다 취착했기 때문이니라.
“云何取故生著?愚癡(우치)無聞凡夫於色見是我、異我、相在,見色是我、我所而取;取已,彼色若變、若異,心亦隨轉;心隨轉已,亦生取著,攝受心住;攝受心住故,則生恐怖、障㝵、心亂,以取著故。

수(受)ㆍ상(想)ㆍ행(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식(識)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또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 만일 그 식이 변하거나 달라지면 그 마음도 또한 따라 옮긴다. 마음이 따라 옮기기 때문에 곧 취착을 일으켜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기에 머무른 뒤에는 곧 공포와 장애가 생기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나니, 그것은 다 취착했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취착이라 하느니라.
愚癡無聞凡夫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見識是我、我所而取;取已,彼識若變、若異,彼心隨轉;心隨轉故,則生取著,攝受心住;住已,則生恐怖、障㝵、心亂,以取著故,是名取著。

취착(取著)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색을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고 보아 취하지도 않는다. 나와 내 것이라고 보아 색을 취하지 않은 뒤에는, 그 색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그 마음은 따라 옮기지 않는다. 마음이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취착을 일으켜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는 일이 없게 된다.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공포와 장애가 생기거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나니, 그것은 다 취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云何名不取不著?多聞聖弟子於色不見我、異我、相在,於色不見我、我所而取;不見我、我所而取色,彼色若變、若異,心不隨轉;心不隨轉故,不生取著,攝受心住;不攝受住故,則不生恐怖、障㝵、心亂,不取著故。

수ㆍ상ㆍ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나와 내 것이라고 보아 취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 식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그 마음은 따라 옮기지 않고, 마음이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취착하여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는 일이 없으며,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공포와 장애가 생기거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나니, 그것은 다 취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취착(取著)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취착하는 것’과 ‘취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是受、想、行、識,不見我異我、相在,不見我、我所而取,彼識若變、若異,心不隨轉;心不隨轉故,不取著,攝受心住;不攝受心住故,心不恐怖,障㝵、心亂,以不取著故。是名不取著。是名取著、不取著。”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4. 계착경(繫著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만일 마음을 내면 얽매이게 되고,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느니라.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마음을 내면 얽매이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기뻐하고, 찬탄하고, 취착하며, 색에 대해서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고 하며 그것을 취한다.
“若生則繫著,不生則不繫著(계착)。諦聽,善思,當爲汝說。“云何若生則繫著?愚癡(치)無聞凡夫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不如實知故,於色愛喜、讚歎、取著,於色是我、我所而取;

그것을 취한 뒤에는, 그 색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따라 변하고 달라진다. 마음이 따라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곧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고,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공포ㆍ장애ㆍ돌아보는 생각이 생기나니, 그것은 마음을 내어 얽매였기 때문이니라.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이 ‘마음을 내면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取已,彼色若變、若異,心隨變異;心隨變異故,則攝受心住,攝受心住故,則生恐怖、障㝵、顧念,以生繫著故。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生繫著。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기뻐하거나 찬탄하거나 취착하지 않으며, 나와 내 것에 얽매여 취하지 않는다.
云何不生不繫著?多聞聖弟子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實知故,不愛喜、讚歎、取著,不繫我、我所而取;

취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색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그 마음은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고, 마음이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은 얽매여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는 일도 없으며,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에는 공포ㆍ장애ㆍ돌아보는 생각이 생기지 않나니, 그것은 마음을 내지 않아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이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以不取故,彼色若變、若異,心不隨變異;心不隨變異故,心不繫著,攝受心住;不攝受心住故,心不恐怖、障㝵、顧(고)念,以不生不著故。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不生不繫著。”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5. 각경(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色受陰)과 수(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나는 있다’고 본다면, 그들은 모두 이 5수음에서 나[我]를 보는 것이니라. 여러 사문 바라문은 ‘색이 곧 나다. 색은 나와 다르다. 나는 색 안에 있다.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본다. 수ㆍ상ㆍ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곧 나다. 식은 나와 다르다. 나는 식 가운데 있다. 식은 나 가운데 있다’고 본다.
“有五受陰。云何爲五?色受陰,受、想、行、識受陰。若諸沙門、婆羅門見有我者,一切皆於此五受陰見我。諸沙門、婆羅門見色是我,色異我,我在色,色在我;見受、想、行、識是我,識異我,我在識、識在我。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색이 곧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나[我]는 진실한 것이다’고 말하며 버리지 않는다. 버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근(根)은 더욱 자라고, 모든 근이 더욱 자란 뒤에는 모든 접촉[觸]을 더하며, 6촉입처(觸入處)에 부딪치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거운 감각을 일으키나니, 그것은 다 촉입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이른바 안촉입처(眼觸入處)와 이촉입처(耳觸入處)ㆍ비촉입처(鼻觸入處)ㆍ설촉입처(舌觸入處)ㆍ신촉입처(身觸入處)ㆍ의촉입처(意觸入處)니라.
愚癡無聞凡夫以無明故,見色是我、異我、相在,言我眞實不捨;以不捨故,諸根增長;諸根長已,增諸觸;六觸入處所觸故,愚癡無聞凡夫起苦樂覺,從觸入處起。何等爲六?謂眼觸入處,耳、鼻、舌、身、意觸入處。

이와 같이 비구들아, 의계(意界)와 법계(法界)와 무명계(無明界)가 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의 접촉[無明觸]으로 말미암아 있다는 감각ㆍ없다는 감각ㆍ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ㆍ내가 낫다는 감각ㆍ나는 그와 같다는 감각ㆍ나는 못하다는 감각ㆍ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감각은 다 6촉입처를 말미암기 때문이니라.
如是,比丘,有意界、法界、無明界,,愚癡無聞凡夫無明觸故,起有覺、無覺、有無覺、我勝覺、我等覺、我卑覺、我知我見覺。如是知如是見覺,皆由六觸入故。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6촉입처에서 무명을 버리고 밝음을 내어, 있다는 감각ㆍ없다는감각ㆍ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ㆍ나는 낫다는 감각ㆍ나는 그와 같다는 감각ㆍ나는 못하다는 감각ㆍ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나면 먼저 일어났던 무명의 접촉[無明觸]은 소멸하고, 그 뒤에는 밝음의 접촉[明觸]의 감각이 일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多聞聖弟子,於此六觸入處,捨離無明而生明,不生有覺、無覺、有無覺、勝覺、等覺、卑覺、我知我見覺。如是知如是見已,先所起無明觸滅,後明觸覺起。”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6. 삼세음세식경(三世陰世識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과 수수음ㆍ상수음ㆍ행수음ㆍ식수음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숙명을 아는 지혜[宿命智]로써 여러 가지 숙명을 안다면, 즉 이미 알았거나 장차 알 것이거나 현재 안다면, 그것은 다 이 5수음에서 대해 이미 알았거나 장차 알 것이거나 현재 아는 것이니라. 곧 ‘나는 과거에 이러한 색(色)이었고, 이러한 수(受)였으며, 이러한 상(想)이었고 이러한 행(行)이었으며, 이러한 식(識)이었다’고 아는 것이다.
“有五受陰。云何爲五?色、受、想、行、識受陰。若沙門、婆羅門以宿命智自識種種宿命,已識、當識、今識,皆於此五受陰;已識、當識、今識,我過去所經。如是色、如是受、如是想、如是行、如是識。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색수음(色受陰)이라 하느니라.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ㆍ돌ㆍ막대기ㆍ칼ㆍ추위ㆍ더위ㆍ목마름ㆍ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 같은 모든 독한 벌레ㆍ바람ㆍ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고 걸리는 것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걸리는 것을 다 색수음이라 한다. 또 이 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若可閡可分,是名色受陰。指所閡,若手、若石、若杖、若刀、若冷、若暖、若渴、若飢、若蚊、蝱、諸毒虫、風、雨觸、是名觸閡,是故閡是色受陰。復以此色受陰無常、苦、變易。

모든 느끼는 모양은 다 수수음(受受陰)이니, 무엇을 느끼는가? 괴로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나니, 그러므로 느끼는 모양을 수수음이라 한다. 또 이 수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諸覺相是受受陰,何所覺?覺苦、覺樂、覺不苦不樂,是故名覺相是受受陰。復以此受受陰是無常、苦、變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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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想]은 다 상수음(想受陰)이니, 무엇을 생각하는가? 적은 생각ㆍ많은 생각ㆍ한량이 없는 생각ㆍ전혀 가진 것이 없을 때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이니, 그러므로 상수음이라 한다. 또 이 상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諸想是想受陰,何所想?少想、多想、無量想、都無所有作無所有想,是故名想受陰。復以此想受陰是無常、苦、變易法。

지어 가는 모양은 행수음(行受陰)이니, 무엇을 지어 가는가? 색에 대해서 짓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짓나니, 그러므로 지어 가는 모양을 행수음이라 한다. 또 이 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분별해 아는 모양은 식수음(識受陰)이니, 무엇을 아는가? 빛깔을 알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을 아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식수음이라 한다. 또 이 식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爲作相是行受陰,何所爲作?於色爲作,於受、想、行、識爲作。是故爲作相是行受陰。復以此行受陰是無常苦變易法。別知相是識受陰,何所識?識色,識聲、香、味、觸法。是故名識受陰。復以此識受陰是無常、苦、變易法。

비구들아, 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색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나는 현재 색(色)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색에게 먹혔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는 현재 색에게 먹히고 있다. 내가 만일 미래의 색을 즐거워하고 집착한다면 다시 현재와 같이 그 색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색을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색을 즐거워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색에 대해서도 싫증을 내고, 탐욕을 떠나며, 재앙을 소멸하고, 소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諸比丘,彼多聞聖弟子於此色受陰作如是學:‘我今爲現在色所食,過去世已曾爲彼色所食,如今現在。’復作是念:‘我今爲現在色所食,我若復樂著未來色者,當復爲彼色所食,如今現在。’作如是知已,不顧過去色,不樂著未來色,於現在色生厭、離欲、滅患、向滅。

수(受)ㆍ상(想)ㆍ행(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식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나는 현재, 현재의 식(識)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식에게 먹혔었다. 내가 이미 현재의 식에게 먹히고 있으면서, 만일 다시 미래의 식을 즐거워하고 집착한다면, 반드시 장래에도 현재와 같이 식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
多聞聖弟子於此受、想、行、識受陰學:‘我今現在爲現在識所食,於過去世已曾爲識所食,如今現在。我今已爲現在識所食,若復樂著未來識者,亦當復爲彼識所食,如今現在。’

그는 이렇게 안 뒤에는 과거의 식을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식에 대해서도 싫증을 내고, 탐욕을 떠나며, 재앙을 소멸하고, 소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그래서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으며,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느니라.
무엇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는가? 색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는다.
如是知已,不顧過去識,不樂未來識,於現在識生厭、離欲、滅患、向滅,滅而不增,退而不進,滅而不起,捨而不取。於何滅而不增?色滅而不增,受、想、行、識滅而不增。

무엇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는가? 색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가? 색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는가?색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느니라.
於何退而不進?色退而不進,受、想、行、識退而不進。於何滅而不起?色滅而不起,受、想、行、識滅而不起。於何捨(사)而不取?色捨而不取,受、想、行、識捨而不取。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나니 고요히 소멸하여 머무르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나니 고요히 물러나 머무르며,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나니 고요히 소멸하여 머무르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나니 얽매이지 않느니라. 얽매이지 않고 나면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滅而不增,寂滅而住;退而不進,寂退而住,滅而不起,寂滅而住;捨而不取,不生繫(계)著;不繫著已,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많은 비구들은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衆多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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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我)ㆍ비하(卑下)ㆍ종자(種子)와
봉체(封滯)ㆍ오전(五轉)ㆍ칠처(七處)와
취착(取著)ㆍ계착(繫著) 두 가지와 각(覺)과
삼세음세식(三世陰世食)8)을 설하셨다.
我、畀下、種子,
封滯、五轉、七,
二繫著及覺,
三世陰世食。

47. 신경(信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신심(信心)이 있는 선남자(善男子)라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색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厭離]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
“信心善男子應作是念:‘我應隨順法,我當於色多修厭離住,於受、想、行、識多修厭離住。’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을 많이 닦아 머무르기 때문에, 색을 싫어하게 되고 수ㆍ상ㆍ행ㆍ식을 싫어하게 되며, 싫어한 뒤에는 탐욕을 떠나 해탈하고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信心善男子卽於色多修厭離住。於受、想、行、識多修厭離住,故於色得厭,於受、想、行、識得厭。厭已,離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8. 신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
“信心善男子正信非家出家,自念:‘我應隨順法,於色當多修厭住,於受、想、行、識多修厭住。’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른 뒤에는 색에서 떠나게 되고, 수ㆍ상ㆍ행ㆍ식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그러면 나는 ‘이들은 모든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민을 다 떠났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信心善男子正信非家出家,於色多修厭住,於受、想、行、識多修厭住已,於色得離,於受、想、行、識得離。我說是等,悉離一切生、老、病死、憂悲、惱苦。”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9. 아난경(阿難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尊者阿難曰:

“만일 신심이 있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너에게 찾아와 ‘어떠한 법에 대해서 그 나고 멸함을 아는가’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제게 찾아와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색이 바로 나고 멸하는 법임을 알고, 수ㆍ상ㆍ행ㆍ식이 나고 멸하는 법임을 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들이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若信心長者長者子,來問汝言:於何等法,知其生滅,汝當云何答乎?”阿難白佛:“世尊,若有長者長者子來問我者,我當答言:‘知色是生滅法,知受、想、行、識是生滅法。’世尊,若長者、長者子如是問者,我當如是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佛告阿難: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마땅히 그렇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색은 나고 멸하는 법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은 나고 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색은 나고 멸하는 법이다’고 아는 것을 색을 아는 것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나고 멸하는 법이다’고 아는 것을 식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善哉!善哉!應如是答。所以者何?色是生滅法,受、想、行、識是生滅法。知色是生滅法者,名爲知色;知受、想、行、識是生滅法者,名爲知識。”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0. 아난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尊者阿難曰:

“만일 여러 외도 출가자들이 너에게 찾아와 ‘아난이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가’라고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若有諸外道出家,來問汝言:‘阿難,世尊何故教人修諸梵行?’如是問者,云何答乎?”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阿難白佛: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 출가자들이 제게 찾아와 ‘아난이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 것이다. 또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 것이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 출가자가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世尊,若外道出家來問我言:‘阿難,世尊何故教人修諸梵行?’者,我當答言:‘爲於色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世尊教人修諸梵行;爲於受、想、行、識,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教人修諸梵行。’世尊,若有外道出家作如是問者,我當作如是答。”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佛告阿難: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마땅히 그렇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진실로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한다. 또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善哉,善哉!應如是答。所以者何?我實爲於色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教人修諸梵行;於受、想、行、識,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教人修諸梵行。”佛說此經已,尊者阿難聞佛所說,歡喜奉行。

51. 괴법경(壞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무너지는 법[壞法]과 무너지지 않는 법[不壞法]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들아, 색은 무너지는 법이다. 그 색이 소멸하면 열반이니,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무너지는 법이다. 그것들이 소멸하면 열반이니,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我今爲汝說壞、不壞法。諦聽,善思,當爲汝說。諸比丘,色是壞法,彼色滅涅槃是不壞法;受、想、行、識是壞法,彼識滅涅槃是不壞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52. 울저가경(鬱低迦經)
이 울저가경(鬱低迦經)의 내용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설한 사법(四法)의 내용과 같다.
鬱低迦修多羅,如增一阿含經四法中說。

【 사법인(四法本, 불사不死의 경) 】
증일아함23:4 사법四法
(잡아함경2:52 울저가經과 동일함)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열성(羅閱城) 가란타죽원에서, 대비구(大比丘)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一時, 佛在羅閱城 迦蘭陁竹園所, 與大比丘衆五百人俱。

그때, 모두 다섯 가지 신통[五通]을 얻은 네 범지梵志가, 착한 법을 수행하면서, 한 곳에 모여, 의논하였다.
爾時, 四梵志皆得五通, 修行善法, 普集一處, 作是論議:

‘죽음의 사자[伺命]가 오면, 그 억센 힘을 피할 수 없다. 제각기 숨어서, 그 사자로 하여금 어디로 와야 할지 모르게 하자.’
“此伺(사)命來時, 不避豪(호)强, 各共隱藏, 使伺命不知來處。”

그때, 첫 번째 범지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죽음을 면(免)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목숨을 마쳤다.
爾時, 一梵志飛在空中, 欲得免死, 然不免其死, 卽在空中而命終。

두 번째 범지는 큰 바다 밑으로 들어가, 죽음을 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목숨을 마쳤다.
第二梵志復入大海水底, 欲得免死, 卽於彼命終彼。

세 번째 범지는 죽음을 면하려고,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들어갔으나, 거기서 죽고 말았다.
第三梵志欲得免死, 入須彌山腹中, 復於中死。

네 번째 범지는 땅 속으로 들어가 금강제(金剛際)에 이르러 죽음을 면하려고 하였으나,그도 또한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말았다.
彼第四梵志入地至金剛際欲得免死, 復卽彼而命終。

그때, 세존께서는 네 범지들이 제각기 죽음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모두 한꺼번에 목숨을 마친 것을 천안(天眼)으로 보셨다.
爾時, 世尊以天眼觀見 四梵志各各避死普共命終。

그때, 세존께서 곧 이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 속도 아니며, 험한 산의 바위 속에
들어갈 일도 아니다. 어디로 가도 숨을 곳이 없으니, 이것을 벗어나면 죽음을 받지 않으리.
爾時, 世尊便說此偈:非空非海中,非入山石閒(한),無有地方所,脫止不受死。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야,어떤 네 명의 범지가 한 곳에 모여, 죽음을 면하려고, 제각기 돌아가야 할 곳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爾時, 世尊告諸比丘:“於是比丘, 有梵志四人集在一處, 欲得免死, 各歸所奔(분), 故不免死。

한 사람은 허공에 있었고, 한 사람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으며, 한 사람은 산 중턱으로 들어갔고,한 사람은 땅 속으로 들어갔지만, 모두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
一人在空, 一人入海水, 一人入山腹中,一人入地, 皆共同死。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죽음을 면하려고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사유해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是故諸比丘, 欲得免死者, 當思惟四法本。云何爲四?

‘일체의 행(行)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이것을 일러 첫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 마땅히 잘 사유해서 수행해야 한다.
一切行無常, 是謂初法本, 當念修行。

‘일체의 행은 괴로운 것이다.’
이것을 일러 두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마땅히 다 함께 사유해야 한다.
一切行苦, 是謂第二法本, 當共思惟。

‘일체의 법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이것을 일러 세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마땅히 다 함께 사유해야 한다.
一切法無我, 此第三法本, 當共思惟。

‘아주 사라져 다 없어진 것이 열반(涅槃)이다.’
이것을 일러 네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마땅히 함께 사유해야 한다.
滅盡爲涅槃, 是謂第四法本, 當共思惟。

모든 비구들아,마땅히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법의 근본을 다 함께 사유해야 하느니라.
如是諸比丘, 當共思惟此四法本。

왜냐하면 곧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ㆍ시름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괴로움의 근본이다.
所以然者, 便脫生、老、病、死、愁憂(수우)苦惱, 此是苦之元本。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너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是故諸比丘, 當求方便, 成此四法。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如是諸比丘, 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 53.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拘薩羅國)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살라(薩羅)마을 북쪽에 있는 신서림(申恕林)에 계셨다.
一時,佛在拘薩羅國,人閒遊行,於薩羅聚落村北申恕林中住。

그때 그 마을의 주인이고 위대한 성을 가진 바라문은 ‘사문 석가족의 자손[釋種子]은 석가(釋迦)라는 위대한 성(姓)으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을 이룬 분이다. 그 분이 이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다가 살라마을 북쪽에 있는 신서림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爾時,聚落主大姓婆羅門聞沙門釋種子,於釋迦大姓,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成無上等正覺,於此拘薩羅國人閒遊行,到婆羅聚落村北申恕林中住。

그리고 또 ‘그 사문 구담은 훌륭한 모습과 명성과 진실한 공덕이 있어 하늘과 사람들의 찬탄이 8방(方)에 자자하며, 여래(如來)ㆍ응공[應]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 되어, 모든 세간과 모든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들 가운데서 큰 지혜로 스스로 증득해 아나니,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신다. 그 분이 세상을 위해 연설하시는 법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다 훌륭하고, 훌륭한 이치와 훌륭한 맛은 순일하고 원만하며 깨끗하다. 그 분은 범행이 깨끗하고 묘한 법을 연설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又彼沙門瞿曇如是色貌名稱,眞實功德,天、人讚歎,聞于八方,爲如來、應、等正覺、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於諸世閒、諸天、魔、梵、沙門、婆羅門中,大智能自證知:“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爲世說法,初、中、後善,善義、善味,純一滿淨,梵行淸白,演說妙法。

그는 ‘훌륭하구나. 나는 뵈리라. 훌륭하구나. 나는 찾아가리라. 나는 찾아가 공경하고 섬기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훌륭한 수레를 타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금 병과 금지팡이와 일산을 지니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기 위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숲 어귀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렸고, 걸어서 세존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善哉應見!善哉應往!善應敬事!作是念已,卽便嚴駕,多將翼從,執持金甁、杖枝、傘蓋,往詣佛所,恭敬奉事,到於林口,下車步進,至世尊所,問訊安不,卻坐一面,白世尊曰:

“사문 구담께서는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설명하십니까?”
“沙門瞿曇!何論何說?”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나는 인(因)을 주장하고, 인(因)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인을 주장하고 어떻게 인을 설명하십니까?”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합니다. 또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합니다.”
“我論因、說因。”又白佛言:“云何論因?云何說因?”佛告婆羅門:“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有因有緣滅世閒,有因有緣世閒滅。”

“세존이시여,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婆羅門白佛言:“世尊,云何爲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즐거워하고, 색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색을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바라문이여, 이것이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愚癡無聞凡夫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不如實知。不如實知故,愛樂於色,讚歎於色,染著心住;彼於色愛樂故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憂、悲、惱、苦,是則大苦聚集。受、想、行、識亦復如是。婆羅門,是名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婆羅門白佛言: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云何爲有因有緣,滅世閒,有因有緣世閒滅?”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색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색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이른바 인을 주장하고 인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多聞聖弟子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實知已,於彼色不愛樂,不讚歎,不染著,不留住,不愛樂,不留住故,色愛則滅,愛滅則取滅,取滅則有滅,有滅則生滅,生滅則老死憂悲惱苦滅。受、想、行、識亦復如是。婆羅門,是名有因有緣滅世閒,是名有因有緣世閒滅。婆羅門,是名論因,是名說因。”

바라문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婆羅門白佛言:

“구담께서는 이와 같이 인을 주장하시고, 이와 같이 인을 설명하셨습니다. 저는 세상일이 많아 이제 하직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좋도록 하십시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바라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함께 기뻐하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瞿曇,如是論因,如是說因。世閒多事,今請辭還。”佛告婆羅門:“宜知是時。”佛說此經已,諸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禮足而去。

54. 세간경(世間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波羅㮈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綠野苑)에 계셨다.
그때 비가다로가(毘迦多魯迦)마을에 사는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찾아와 공손히 문안드린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一時,佛住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彼時,毘迦多魯迦聚落有婆羅門來詣佛所,恭敬問訊,卻坐一面,白佛言:

“구담(瞿曇)이시여, 제게는 젊은 제자가 있습니다. 그는 천문(天文)과 족성(族姓)을 알아 대중을 위해 길흉(吉凶)을 점치는데,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있고, 없다고 하면 반드시 없으며, 이루어진다고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무너진다고 하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구담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瞿曇,我有年少弟子,知天文、族姓,爲諸大衆占相吉凶,言有必有,言無必無,言成必成,言壞必壞,瞿曇,於意云何?”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의 젊은 제자가 천문과 족성을 안다는 것은 우선 그만 두고, 내가 이제 당신에게 묻겠으니, 당신 생각대로 대답하십시오.
바라문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색은 본래 종자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ㆍ상ㆍ행ㆍ식은 본래 종자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且置汝年少弟子知天文、族姓。我今問汝,隨汝意答。婆羅門,於意云何?色本無種耶?”答曰:“如是,世尊。”“受、想、行、識本無種耶?”答曰:“如是,世尊。”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은 ‘나의 젊은 제자는 천문과 족성을 알아 대중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곧 있다고 하면 반드시 있고, 없다고 하면 반드시 없다’고 말하지만, 그 알고 본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汝言我年少弟子知天文、族姓,爲諸大衆作如是說,言有必有,言無必無,知見非不實耶?”婆羅門白佛:“如是,世尊。”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혹 색으로서 백년 동안 늘 머무르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생겨나고 달라져 소멸합니까? 수ㆍ상ㆍ행ㆍ식으로서 백년 동안 늘 머무르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생겨나고 달라져 소멸합니까?”
“於意云何?頗有色常住百歲耶?爲異生異滅耶?受、想、行、識常住百歲耶?異生、異滅耶?”

대답하였다.
答曰:

“다른 것이 생겨나고 달라져 소멸합니다.”
“如是,世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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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젊은 제자가 천문과 족성을 알아 대중을 위해 말한 것은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지견(知見)과 다르지 않질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於意云何?汝年少弟子知天文、族姓,爲大衆說,成者不壞,知見非不異耶?”答曰:“如是,世尊。”
통합뷰어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 법과 저 법, 이 말과 저 말에 중에 어느 것이 낫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법다운 말씀은 부처님 말씀과 같아서 진리를 나타내고, 마음을 열어 줍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보여 구해주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오늘 잘 설명하신 훌륭한 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진리를 나타내고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비가다로가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대중과 함께 기뻐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於意云何?此法彼法,此說彼說,何者爲勝?”婆羅門白佛言:“世尊,此如法說,如佛所說顯現開發。譬如有人溺水能救,獲彼能救,迷方示路,闇慧明燈。世尊,今日善說勝法,亦復如是顯現開發。”佛說此經已,毘迦多魯迦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卽從坐起,禮足而去。

55. 음경(陰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波羅㮈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在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爾時,世尊告諸比丘:

“내가 이제 음(陰)과 수음(受陰)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음이라 하는가?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를 통틀어 색음(色陰)이라 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이 그 일체를 통틀어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이라 하나니, 이것들을 음(陰)이라 하느니라.
“我今當說陰及受陰。云何爲陰?若所有諸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摠說色陰。隨諸所有受、想、行、識亦復如是。彼一切摠說受、想、行、識陰,是名爲陰。

어떤 것을 수음(受陰)이라 하는가? 만일 색에 대해 번뇌[漏]가 있어 그것을 취한다면, 그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및 그 밖의 여러 가지 큰 번뇌의 마음을 일으키며, 수ㆍ상ㆍ행ㆍ식도 마찬가지니, 이것을 수음(受陰)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云何爲受陰?若色是有漏,是取,若彼色過去、未來、現在,生貪欲、瞋恚、愚癡及餘種種上煩惱心法;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受陰。”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6. 누무루법경(漏無漏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爾時,世尊告諸比丘:

“내가 이제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을 설명하리라. 만일 색에 대해 번뇌[漏]가 있어 그것을 취한다면, 그 색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그 식에 대해 번뇌가 있어 그것을 취한다면, 그 식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유루법(有漏法)이라 하느니라.
“我今當說有漏、無漏法。若色有漏、是取,彼色能生愛、恚;如是受、想、行、識,有漏,是取,彼識能生愛、恚,是名有漏法。

어떤 것을 무루법(無漏法)이라 하는가? 존재하는 모든 색에 대해 번뇌[漏]가 없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그 색은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 번뇌가 없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식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사랑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니, 이것을 무루법(無漏法)이라 하느니라.”
云何無漏法?諸所有色無漏,非受,彼色若過去、未來、現在,彼色不生愛恚。如是受、想、行、識無漏,非受彼識若過去未、來、現在,不生貪、恚,是名無漏法。”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신(信)에 두 가지, 아난(阿難)에 두 가지와
괴법(壞法)과 울저가(鬱低迦)와
바라문(婆羅門)과 세간(世間)과
제(除)9)와 누무루법(漏無漏法)에 대해 설하셨다.
二信、二阿難,
壞法、鬱低迦,
婆羅及世閒,
除、漏、無漏法。

57. 질루진경(疾漏盡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셔서는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홀로 서쪽 나라로 가 인간 세상을 유행하셨다.
爾時,世尊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還持衣鉢,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於西方國土人閒遊行。

이때 안타(安陀)라는 숲에 있던 어떤 비구가, 대중에게 말하지도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가시는 세존을 멀리서 보았다. 그는 그것을 보고 존자 아난에게 가서 아뢰었다.
時,安陁林中有一比丘,遙見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見已,進詣尊者阿難所,白阿難言:

“존자여, 아셔야합니다. 세존께서는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유행을 나서셨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나가 노니신다면 아무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오늘 세존께서는 적멸(寂滅) 속에서 지내며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尊者,當知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爾時,阿難語彼比丘:“若使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不應隨從。所以者何?今日世尊欲住寂滅,滅少事故。”

그때 세존께서는 북쪽으로 유행하시며 반사국(半闍國)의 파타(波陀)라는 마을로 가,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의 한 발타살라(跋陀薩羅)나무 밑에 머무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에게 찾아가 물었다.
爾時,世尊遊行北至半闍國波陁聚落,於人所守護林中,住一跋陁薩羅樹下。時有衆多比丘詣阿難所,語阿難言:

“세존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난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세존께서는 북쪽 반사국 파타라는 마을로 가셔서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의 발타살라나무 밑에 계신다고 합니다.”
“今聞世尊住在何所?”阿難答曰:“我聞世尊北至半闍國波陁聚落,人所守護林中跋陁薩羅樹下。”

“존자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희들은 세존(世尊)을 뵙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만일 수고를 꺼리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세존께 같이 가주실 수 없겠습니까?”
時,諸比丘語阿難曰:“尊者知,我等不見世尊已久。若不憚勞者,可共往詣世尊?”

그때 존자 아난은 형편을 이해하여 잠자코 허락한 뒤에 많은 비구들과 함께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걸식을 마친 뒤 절에 돌아와 침구를 챙기고,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는 서쪽으로 나서 인간 세상을 유행하였다. 거기서 다시 북으로 반사국 파타촌의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가사와 발우를 놓고 발을 씻은 뒤, 세존께 나아가 그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哀愍故,阿難知時,默然而許。爾時,尊者阿難與衆多比丘夜過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乞食已,還精舍,擧臥具,持衣鉢,出至西方人閒遊行,北至半闍國波陁聚落人守護林中。時,尊者阿難與衆多比丘置衣鉢,洗足已,詣世尊所,頭面禮足,於一面坐。

그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해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비구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漏]가 다하게 될까?’
爾時,世尊爲衆多比丘,說法,示、教、利、喜。爾時,座中有一比丘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에 대해 설법하였느니라. 곧 모든 음(陰)을 잘 관찰하여야 하나니, 그것은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精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정도(正道)이니라. 나는 모든 음을 관찰하는 이러한 법을 이미 설명하였느니라.
“若有比丘於此座中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者,我已說法言:‘當善觀察諸陰,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我已說如是法,觀察諸陰。

그런데도 지금,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거워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기억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게을러 더욱 나가지 못해 모든 번뇌[漏]를 다하지 못하는 선남자가 아직도 있다. 만일 선남자가 내가 설명한 법에서 모든 음을 잘 관찰하여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거워하며, 부지런히 기억하고, 부지런히 믿는다면 그는 능히 모든 번뇌를 재빨리 다할 수 있을 것이다.
而今猶有善男子不勤欲作,不勤樂,不勤念,不勤信,而自慢惰,不能增進得盡諸漏。若復善男子於我所說法,觀察諸陰,勤欲勤樂,勤念勤信,彼能疾得盡諸漏。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을 나라고 보나니, 만일 그것을 나라고 보면 이것을 행(行)이라 하느니라.
그 행은 무엇이 원인[因]이고, 무엇이 발생[集]시키며, 무엇이 생기게[生] 하고, 무엇이 변한[轉] 것인가? 무명(無明)이 부딪쳐 애욕[愛]이 생기나니, 애욕을 인연하여 그 행을 일으키느니라.
그 애욕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그 애욕은 느낌[受]이 원인이고, 느낌이 발생시키며, 느낌이 생기게 하고, 느낌이 변한 것이다.
愚癡無聞凡夫於色見是我。若見我者,是名爲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無明觸生愛,緣愛起彼行。彼愛何因?何集?何生?何轉?彼愛受因、受集、受生、受轉。

그 느낌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그 느낌은 접촉[觸]이 원인이고, 접촉이 발생시키며, 접촉이 생기게 하고, 접촉이 변한 것이다.
그 접촉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이른바 그 접촉은 6입처(六入處)가 원인이고, 6입처가 발생시키며, 6입처가 생기게 하고, 6입처가 변한 것이다.
그 6입처는 무상하고[無常], 함이 있으며[有爲],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心緣起法]이요, 그 접촉의 느낌과 행의 느낌도 또한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니라.
彼受何因?何集?何生?何轉?彼受觸因、觸集、觸生、觸轉。彼觸何因何集,何生何轉?謂彼觸六入處因、六入處集、六入處生、六入處轉。彼六入處無常、有爲、心緣起法;彼觸受、行受、亦無常、有爲、心緣起法。

설사 이렇게 관찰한다 하더라도 그는 색(色)을 나[我]라고 본다. 색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색을 내 것[我所]이라고 보며, 색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색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색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수(受)를 나라고 보며, 수를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수를 내 것이라고 보며, 수를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수는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수는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수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상(想)을 나라고 보며, 상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상을 내 것이라고 보며, 상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상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상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상 안에 있다’고 본다.
如是觀者,而見色是我;不見色是我,而見色是我所。不見色是我所,而見色在我。不見色在我,而見我在色。不見我在色,而見受是我,不見受是我,而見受是我所。不見受是我所,而見受在我,不見受在我,而見我在受。不見我在受,而見想是我。不見想是我,而見想是我所。不見想是我所,而見想在我。不見想在我,而見我在想。

‘나는 상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행(行)을 나라고 보며, 행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행을 내 것이라고 보며, 행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행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행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행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식(識)을 나라고 보며, 식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식을 내 것이라고 보며, 식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식 안에 있다’고 보느니라.
不見我在想,而見行是我。不見行是我,而見行是我所。不見行是我所,而見行在我。不見行在我,而見我在行。不見我在行,而見識是我,不見識是我,而見識是我所。不見識是我所,而見識在我。不見識在我,而見我在識。

‘나는 식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다시 단견(斷見)을 지어 유견(有見)을 부수고, 단견을 지어 유견을 부수지 않더라도 아만(我慢)을 떠나지 못한다. 아만을 떠나지 못하면 다시 나[我]를 보나니, 나를 보는 것, 그것이 곧 행(行)이니라.
그 행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나아가 아만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不見我在識,復作斷見、壞有見;不作斷見、壞有見,而不離我慢。不離我慢者,而復見我,見我者卽是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如前所說,乃至我慢。作如是知,如是見者,疾得漏盡。”佛說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8. 음근경(陰根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동쪽 동산에 있는 녹모강당(鹿母講堂)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깨어나, 모든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東園鹿母講堂。爾時,世尊於晡時從禪覺,於諸比丘前敷座而坐,告諸比丘:

“5수음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색수음(色受陰)과 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이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세존이시여, 5수음이란 색수음과 수수음ㆍ상수음ㆍ행수음ㆍ식수음입니까?”
“有五受陰。云何爲五?謂色受陰,受、想、行、識受陰。”時,有一比丘從坐起,整衣服,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白佛言:“世尊,此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耶?”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돌아가 앉아서 물어라. 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그러자 그 비구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다시 본 자리로 돌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5수음은 무엇이 근본으로 되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부딪친 것입니까?”
“還坐而問,當爲汝說。”時,彼比丘爲佛作禮,還復本坐,白佛言:“世尊,此五受陰,以何爲根?以何集?以何生?以何觸?”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그 5수음은 탐욕이 근본이 되고, 탐욕이 발생시키며, 탐욕이 생기게 하고, 탐욕이 부딪친 것이니라.”
이때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5음(陰)을 곧 집착[受 : 取]이라고 말씀하시니,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음(陰)이 곧 집착[受]입니까? 5음과 집착은 다릅니까?”
“此五受陰,欲爲根欲集、欲生、欲觸。”時,彼比丘聞佛所說,歡喜隨喜,而白佛言:“世尊,爲說五陰卽受,善哉所說!今當更問:世尊,陰卽受,爲五陰異受耶?”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5음이 곧 집착도 아니요, 또한 5음이 집착과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탐욕이 있으면 그것이 곧 5수음이니라.”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음(陰)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까?”
“非五陰卽受,亦非五陰異受;能於彼有欲貪者,是五受陰。”比丘白佛:“善哉!世尊,歡喜隨喜,今復更問。世尊,有二陰相關耶?”

“그렇다, 그렇다. 마치 어떤 비구가 ‘나는 미래에 이러한 색(色), 이러한 수(受), 이러한 상(想), 이러한 행(行), 이러한 식(識)을 타고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비구야, 음과 음은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佛告比丘:“如是,如是。猶若有一人如是思惟:‘我於未來得如是色,如是受、如是想、如是行、如是識。’是名比丘陰陰相關也。”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음(陰)이라 합니까?”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를 통틀어 음이라 하나니, 이것을 음이라 하느니라.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나니, 비구야, 이것을 음(陰)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世尊,云何名陰?”佛告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摠說陰,是名爲陰。受想、行、識亦復如是。如是,比丘,是名爲陰。”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因)과 연(緣)으로 색음(色陰)이라 하며,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이라 합니까?”
“世尊,何因何緣名爲色陰?何因何緣名受、想、行、識陰?”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4대(大)를 인(因)으로 하고 4대를 연(緣)으로 한 것을 색음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모든 색음, 그 일체는 다 4대이거나 4대를 인연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접촉[觸]을 인으로 하고 접촉을 연으로 하여 수ㆍ상ㆍ행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수음ㆍ상음ㆍ행음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수ㆍ상ㆍ행은 모두 접촉[觸]을 인연하기 때문이다. 명색(名色)을 인으로 하고 명색을 연으로 하기 때문에 식음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식은 모두 명색을 인연하기 때문이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四大因、四大緣,是名色陰。所以者何?諸所有色陰,彼一切悉皆四大,緣四大造故。觸因、觸緣,生受、想、行。是故名受、想、行陰。所以者何?若所有受、想、行,彼一切觸緣故,名色因,名色緣。是故名爲識陰。所以者何?若所有識,彼一切名色緣故。”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어떤 것을 색에 맛들임[色味]이라 하고, 색의 재앙[色患]이라 하며, 색에서 벗어남[色離]이라 합니까? 수ㆍ상ㆍ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것을 식에 맛들임[識味]이라 하고, 식의 재앙[識患]이라 하며, 식에서 벗어남[識離]이라 합니까?”
“云何色味?云何色患?云何色離?云何受、想、行、識味?云何識患?云何識離?”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면 이것을 색에 맛들임[色味]이라 한다.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色患]이라 한다.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色離]이라 하느니라.
“緣色生喜樂,是名色味;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若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면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若緣受、想、行、識,生喜樂,是名識味;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於受、想、行、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아만(我慢)이 생깁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나니, 여기서 아만이 생기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世尊,云何生我慢?”佛告比丘:“愚癡無聞凡夫於色見我、異我、相在,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於此生我慢。”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아만이 없어집니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그 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아야 번뇌가 다하게 되겠습니까?”
“世尊,云何得無我慢?”佛告比丘:“多聞聖弟子不於色見我異我、相在,不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比丘白佛:“善哉所說,更有所問,何所知、何所見,盡得漏盡?”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른 것도 아니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마찬가지니, 비구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될 것이니라.”
佛告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如是知,如是見,疾得漏盡。”

그때 그 자리에 미련하고 무식한 다른 한 비구가 있었다. 그는 무명(無明)의 껍질에 싸여 삿된 소견을 일으키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나[我]가 없다면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세상에서는 누가 그 과보를 받을까?’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 만일 지혜도 없고 밝지도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만일 색에도 나가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나가 없다면 그는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과보를 받을까’라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의심한다면 먼저 그것을 해석하리라. 어떤가? 비구들아,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爾時,會中復有異比丘,鈍根無知,在無明㲉起惡邪見,而作是念:“若無我者,作無我業,於未來世,誰當受報?”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於此衆中,若有愚癡人,無智明,而作是念:‘若色無我,受、想、行、識無我,作無我業,誰當受報?’如是所疑,先以解釋彼。云何比丘,色爲常耶?爲非常耶?”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答言:“無常,世尊。”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若無常者,是苦耶?”答言:“是苦,世尊。”“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바른 소견[正見]이니라. 수ㆍ 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若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是見者,是爲正見;受、想、行、識亦復如是。

이렇게 보는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곧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싫어하는 마음을 닦은 뒤에는 탐욕을 떠나며, 탐욕을 떠난 뒤에는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多聞聖弟子如是觀者便修厭,厭已離欲,離欲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많은 비구들은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衆多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음의 근본[陰根]과 ‘음이 곧 집착인가’라는 문제와
두 음은 서로 관계 있다는 것과
명자(名字) 등의 인(因) 두 가지10)와 맛들임[味]과
아만(我慢)11)과 질루진(疾漏盡)에 대해 설하셨다.
陰、根、陰卽受,
二陰共相關,
名字、因、二味,
我慢、疾漏盡。
雜阿含經卷第二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거센 폭류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의지처를 의미한다.
2)
고려대장경에는 ‘이(已)’ 자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다. 앞뒤의 경문을 참조해 ‘고(苦)’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3)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이란 내용이 원문에선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4)
원문에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라는 내용이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5)
‘비구들아, 만일 색ㆍ수ㆍ상ㆍ행을 떠나서 식이 머무르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의심만 더욱 커지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이라는 내용이 원문에서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6)
원문에 ‘내지(乃至)’로 생략된 내용은 위의 『종자경(種子經)』 을 참조하라.
7)
온타남에는 ‘삼세음세식(三世陰世食)’으로 되어있으나 경의 내용으로 보아 ‘삼세음소식(三世陰所食)’이라야 옳다.
8)
3세의 5수음에 먹힌다는 경의 내용으로 보아 ‘삼세음소식(三世陰所食)이라야 옳다.
9)
5음(陰)과 5수음(受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경의 내용으로 보아 ‘음(陰)’이라야 옳다. 따라서 앞에서 경명을 음경으로 붙였다.
10)
『음근경』 본문에서는 색의 인(因)으로 4대를, 수ㆍ상ㆍ행의 인으로 촉(觸)을, 식의 인으로 명색(名色)을 거론하였다. 여기서 명자(名字)는 명색(名色)의 명(名)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1)
위에서 여기까지는 낱낱의 경 제목이 아니라, 모두 『음근경(陰根經)』 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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