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아함경 제2권
雜阿含經卷第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宋天竺三藏求那跋陁羅譯

33. 비아경(非我經)
34. 오비구경(五比丘經)
35. 삼정사경(三正士經)
36. 십륙비구경(十六比丘經)
37. 아경(我經)
38. 비하경(卑下經)
39. 종자경(種子經)
40. 봉체경(封滯經)
41. 오전경(五轉經)
42. 칠처경(七處經)
43. 취착경(取著經)
44. 계착경(繫著經)
45. 각경(覺經)
46. 삼세음세식경(三世陰世識經)7)
47. 신경(信經) ①
48. 신경 ②
49. 아난경(阿難經) ①
50. 아난경 ②
51. 괴법경(壞法經)
● 52. 울저가경(鬱低迦經, 증일아함23:4 사법四法)
● 53. 바라문경(婆羅門經)
54. 세간경(世間經)
55. 음경(陰經)
56. 누무루법경(漏無漏法經)
57. 질루진경(疾漏盡經)
58. 음근경(陰根經)


33.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一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색은 나[我]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응당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色非是我。若色是我者,不應於色病、苦生,亦不應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以色無我故,於色有病、有苦生,亦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於意云何?色爲是常、爲無常耶?”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比丘白佛:“無常,世尊。”“比丘,若無常者,是苦不?”比丘白佛:“是苦,世尊。”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有我、異我、相在不?”比丘白佛:“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我]가 아니요,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如是觀察;受、想、行、識亦復如是。

비구들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5수음(受陰)에 대하여 ‘그것은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느니라. 이렇게 사실 그대로 관찰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比丘,多聞聖弟子於此五受陰非我,非我所,如實觀察。如實觀察已,於諸世閒都無所取;無所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4. 오비구경(五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나국(波羅那國)의 선인들이 살았다는 녹야원(綠野苑)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남아 있는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爾時,世尊告餘五比丘

“색에는 나[我]가 없다. 만일 색에 나가 있다면 색에는 응당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요,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色非有我。若色有我者,於色不應病苦生,亦不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以色無我故,於色有病、有苦生,亦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於意云何?色爲是常、爲無常耶?”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比丘白佛:“無常,世尊。”“比丘,若無常者,是苦耶?”比丘白佛:“是苦,世尊。”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比丘,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是我、異我、相在不?”比丘白佛:“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我]가 아니요,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라.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實觀察。受、想、行、識亦復(부)如是。

비구들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5수음을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관찰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比丘,多聞聖弟子於此五受陰見非我、非我所。如是觀察,於諸世閒都無所取、無所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다섯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餘五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5. 삼정사경(三正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지제(支提)에 있는 죽원정사(竹園精舍)에 계셨다.
그때 출가한 지 아직 오래되지 않은 세 정사(正士)가 있었으니, 즉 존자 아누율다(阿㝹律陀), 존자 난제(難提), 존자 금비라(金毘羅)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곧 훈계하여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支提竹園精舍。爾時,有三正士出家未久,所謂尊者阿㝹律陁、尊者難提、尊者金毘羅。爾時,世尊知彼心中所念,而爲教誡:

“비구들아, 이 마음[心]과 이 뜻[意]과 이 의식[識]으로 마땅히 이렇게 사유하고, 이렇게 사유하지는 말며, 이 탐욕을 끊고, 이 색을 끊으며, 몸으로 완전히 진리를 증득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아, 과연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색이 있는가?”
“比丘,此心、此意、此識,當思惟此,莫思惟此,斷此欲、斷此色,身作證具足住。比丘,寧有色,若常、不變易、正住不?”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比丘白佛:“不也,世尊。”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색은 무상하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바르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佛告比丘: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색은 무상하며 변하고 바뀌는 법(法)으로서 싫어하고, 탐욕을 떠나며, 없애고, 고요하게 하며, 사라지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색은 본래부터 그 일체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이렇게 알고 나면 그 색으로 말미암아 생겼던 모든 번뇌의 해로움과 불꽃, 근심과 번민은 모두 끊어져 없어진다. 그것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게 된 뒤에는 안락하게 머무르게 되며, 안락하게 머무른 뒤에는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된다.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으니라.”
“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正住不?”比丘白佛:“不也,世尊。”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之法,厭、離欲、滅、寂、沒。如是色從本以來,一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諸漏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般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세 정사(正士)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三正士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6. 십륙비구경(十六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투라국(摩偸羅國)의 발제하(跋提河) 가에 있는 일산 같은 암라수원(菴羅樹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摩偸羅國 跋提河側傘蓋菴羅樹園。爾時,世尊告諸比丘:

“비구들아, 자기라는 섬[自洲]1)에 머무르고 자기라는 귀의처[自依]에 머무르며, 법이라는 섬[法洲]에 머무르고 법이라는 귀의처[法依]에 머무르며, 다른 섬이나 다른 귀의처에 머무르지 말라.
비구들아, 마땅히 바르게 관찰하여 자기라는 섬과 자기라는 귀의처에 머무르고, 법이라는 섬과 법이라는 귀의처에 머무르며, 다른 섬에 머무르거나 다른 귀의처에 머무르지 말라.
“住於自洲,住於自依;住於法洲,住於法依;不異洲不異依。比丘,當正觀察,住自洲自依,法洲法依,不異洲不異依。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며, 어떻게 이 네 가지가 있게 되며, 무엇 때문에 또 어떻게 얽매이게 되고, 아직 생기지 않은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고 이미 생긴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더욱 자라는 것을 어떻게 스스로 관찰하는가?”
何因生憂悲惱苦?云何有四?何故何繫著?云何自觀察未生憂悲惱苦而生,已生憂悲惱苦生長增廣?”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諸比丘白佛: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요, 법의 눈이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시면 저희들은 듣고 나서 말씀대로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世尊法根、法眼、法依,唯願爲說!諸比丘聞已,當如說奉行。”

“비구들아,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희를 위해 설명하리라.
비구들아, 색이 있어 색을 인연하고, 색에 얽매이기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은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고, 이미 생긴 것들은 더욱 자라고 커진다’고 관찰하라.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혹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색이 있는가?”
佛告比丘:“諦聽,善思,當爲汝說。比丘,有色、因色、繫著色,自觀察未生憂悲惱苦而生,已生而復增長廣大: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頗有色常、恒、不變易、正住耶?”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答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비구들아, 색은 무상하다. 만일 선남자가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2) 변하고 바뀌는 것으로서 탐욕을 떠나고, 없애며, 고요하게 하고, 사라지게 해야할 것이다’라고 안다면, 본래부터 모든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인 줄 안 뒤에는 혹 색을 인연하여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겼더라도 그것은 끊어지고, 그것이 끊어진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게 된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고,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게 되면 그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善哉!善哉!比丘,色是無常。若善男子知色是無常、苦、變易,離欲、滅、寂靜、沒,從本以來,一切色無常、苦、變易法知已,若色因緣生憂悲惱苦斷,彼斷已無所著,不著故安隱樂住,安隱樂住已,名爲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16비구는 모든 번뇌[漏]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十六比丘不生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죽원(竹園)과 비사리(毘舍離)와
청정(淸淨)과 정관찰(正觀察)과
무상(無常)ㆍ고(苦)ㆍ비아(非我)와
5비구(比丘)ㆍ3정사(正士)ㆍ16비구(比丘)에 대해 설하셨다.
竹園、毘舍離,
淸淨、正觀察,
無常、苦非我,
五、三、與十六。

37. 아경(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데 세상이 나와 다투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아, 만일 법답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我不與世閒(한)諍,世閒與我諍。所以者何?比丘,若如法語者,不與世閒,諍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云何爲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

비구들아,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느니라.
比丘,色無常、苦、變易法,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如是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世閒智者言有,我亦言有。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색은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은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이니라.
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謂色是常、恒、不變易、正住者,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受、想、行、識、常、恒、不變易、正住者,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是名世閒智者言無,我亦言無。

비구들아, 세간에는 세간법(世間法)이 있어, 나는 그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허물이 아니니라.
비구들아,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고 분별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比丘,有世閒世閒法,我亦自知自覺,爲人分別演說顯示,世閒盲無目者,不知不見,非我咎也。“諸比丘,云何爲世閒世閒法,我自知,我自覺,爲人演說,分別顯示,盲無目者不知不見?

비구들아, 색이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도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비구들아, 이러한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저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是比丘,色無常、苦、變易法,是名世閒世閒法;如是受、想、行、識,無、常苦,是世閒世閒法。比丘,此是世閒世閒法,我自知自覺,爲人分別演說顯示,盲無目者不知不見。我於彼盲無目不知不見者,其如之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8. 비하경(卑下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세상 사람들은 천한 직업에 종사하며 여러 가지로 재물을 구해 살아가면서 또 큰 부자가 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世人爲卑下業,種種求財活命,而得巨富,世人皆知。如世人之所知,我亦如是說。所以者何?莫令我異於世人。

모든 비구들아, 비유하면 어떤 그릇이 어떤 곳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건자(揵茨)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발우[鉢]라 하며, 어떤 사람은 비비라(匕匕羅)라 하고, 어떤 사람은 차류(遮留)라 하며, 어떤 사람은 비실다(毘悉多)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바사나(婆闍那)라 하며, 어떤 사람은 살뢰(薩牢)라 할 때, 그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諸比丘,譬如一器,有一處人,名爲楗茨,有名鉢,有名匕匕羅,有名遮留,有名毘悉多,有名婆闍那,有名薩牢。如彼所知,我亦如是說。所以者何?莫令我異於世人故。

이와 같이 비구들아, 세간에 있는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인다. 알고 보아 말하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如是,比丘,有世閒法,我自知自覺,爲人分別演說顯示,知見而說,世閒盲無目者不知不見;世閒盲無目者不知不見,我其如之何?”

비구들아, 어떤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내지)3)……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이른바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는 것,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는 것,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比丘,云何世閒世閒法,我自知自覺,乃至不知不見?色無常、苦、變易法,是爲世閒世閒法;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是世閒世閒法。

비구들아, 이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아……(내지)4)……저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比丘,是名世閒世閒法,我自知自見,乃至盲無目者不知不見,其如之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9. 종자경(種子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다섯 종류의 종자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뿌리가 종자인 것[根種子]ㆍ줄기가 종자인 것[莖種子]ㆍ마디가 종자인 것[節種子]ㆍ절로 떨어지면 그것이 곧 종자인 것[自落種子]ㆍ열매가 종자인 것[實種子]이니라. 이 다섯 종류의 종자가 비록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고,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라 하더라도 땅만 있고 물이 없다면, 그 종자는 성장하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有五種種子。何等爲五?謂根種子、莖種子、節種子、自落種子、實種子。此五種子不斷、不壞、不腐、不中風,新熟堅實,有地界而無水界,彼種子不生長增廣。

또 그 종자가 비록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았더라도 물만 있고 땅이 없다면, 그 종자도 또한 성장하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 종자가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도 않았으며 땅과 물이 있다면, 그 종자는 성장하고 뻗어나갈 것이다.
若彼種新熟堅實,不斷、不壞、不中風,有水界而無地界,彼種子亦不生長增廣。若彼種子新熟堅實,不斷、不壞、不腐、不中風,有地、水界,彼種子生長增廣。

비구들아, 그 다섯 가지 종자는 식(識)을 포함한 5취음(取陰)을 비유한 것이고, 지계(地界)는 식이 머무르는 네 곳[四識住]을 비유한 것이며, 수계(水界)는 탐욕[貪]과 기쁨[喜]을 비유한 것이다.
네 가지 취음(取陰)을 반연하여 식(識)이 머무르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색(色)에 식(識)은 머물러, 색을 반연하고 기쁨과 탐욕으로 윤택해져 성장하고 뻗어나간다. 수(受)ㆍ상(想)ㆍ행(行)에 식(識)은 머물러, 수ㆍ상ㆍ행을 반연하고 기쁨과 탐욕으로 윤택해져 성장하고 뻗어나간다.
比丘,彼五種子者,譬取陰俱識;地界者,譬四識住;水界者,譬貪喜四取攀緣識住。何等爲四?於色中識住,攀緣色,喜貪潤澤,生長增廣;於受、想、行中識住,攀緣,受、想、行,貪喜潤澤,生長增廣。

비구들아, 식은 그것들 안에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머무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혹은 성장하고 뻗어나가기도 한다.
비구들아, 만일 색ㆍ수ㆍ상ㆍ행을 떠나서 식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머무르기도 하고, 자라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의심만 더욱 커지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比丘,識於中若來、若去,若住、若沒,若生長增廣。比丘,若離色、受、想、行、識有若來、若去,若住、若生者,彼但有言數,問已不知,增益生癡,以非境界故。

색(色)의 경계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면 탐욕을 떠난 뒤에는 색에 대한 집착[封滯]과 마음에서 생긴 얽맴[縛]이 끊어지고, 색에 대한 집착과 마음에서 생긴 얽맴이 끊어진 뒤에는 반연(攀緣)이 끊어진다. 반연이 끊어지고 나면 그 식(識)은 머무를 곳이 없게 되어 다시는 성장하거나 뻗어나가지 못한다.
色界離貪,離貪已,於色封滯意生縛斷;於色封滯意生縛斷已,攀緣斷,攀緣斷已,識無住處,不復生長增廣。

수(受)ㆍ상(想)도 마찬가지이며, 행(行)의 경계에 대해 탐욕을 떠나면 탐욕을 떠난 뒤에는 행에 대한 집착과 마음에서 생긴 접촉[觸]이 끊어지고, 행에 대한 집착과 마음에서 생긴 얽맴이 끊어진 뒤에는 반연이 끊어진다. 반연이 끊어지고 나면 그 식은 머무를 곳이 없게 되어 다시는 성장하거나 뻗어나가지 못한다.
受、想、行界離貪,離貪已,於行封滯意生觸斷;於行封滯意生觸斷已,攀緣斷,攀緣斷已,彼識無所住,不復生長增廣。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뒤에는 머무르며, 머무른 뒤에는 만족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안 뒤에는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게 되며,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게 된 뒤에는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不生長故,不作行;不作行已住,住已知足,知足已解脫;解脫已,於諸世閒都無所取、無所著;無所取、無所著已,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그리하여 내가 말한 그 식(識)은 동ㆍ서ㆍ남ㆍ북ㆍ4유ㆍ상ㆍ하 어디로도 가지 않고 달려갈 곳이 없게 되며, 오직 법만 보아 고요하고 시원하며 깨끗하고 진실한 열반으로 들어가고자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我說彼識不至東、西、南、北、四維、上、下,無所至趣,唯見法,欲入涅槃、寂滅、淸涼、淸淨、眞實。”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0. 봉체경(封滯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집착[封滯]하면 해탈하지 못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하느니라.
‘집착하면 해탈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들아, 네 가지 취음(取陰)을 반연하여 식(識)이 머무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색(色)에 집착하여 식이 머무르고, 수(受)ㆍ상(想)ㆍ행(行)에 집착하여 식이 머무른다.……(내지)……5)그것은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이 ‘집착하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封滯者不解脫,不封滯則解脫,云何封滯不解脫?比丘,攀緣四取陰識住。云何爲四?色封滯識住,受、想、行封滯識住,乃至非境界故,是名封滯,故不解脫。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색의 경계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면 ……(내지)……6)깨끗하고 진실한 열반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한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云何不封滯則解脫?於色界離貪,受、想、行、識離貪,乃至淸淨眞實。是則不封滯則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1. 오전경(五轉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5수음이 있으니 색수음(色受陰)과 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나는 이 5수음에 대해서다섯 가지를 사실 그대로 아나니, 곧 색(色)과 색의 발생[色集]과 색에 맛들임[色味]과 색의 재앙[色患]과 색에서 벗어남[色離]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식의 발생ㆍ식에 맛들임ㆍ식의 재앙ㆍ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有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我於此五受陰,五種如實知—色如實知,色集、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是受、想、行、識如實知,識集、識味、識患、識離如實知。

어떻게 색(色)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존재하는 색은 모두가 4대(大)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으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색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이것을 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如實知?諸所有色,一切四大及四大造色,是名色,如是色如實知。云何色集如實知?於色喜愛,是名色集,如是色集如實知。云何色味如實知?謂色因緣生喜樂,是名色味,如是色味如實知。

어떻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患如實知?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如是色患如實知。云何色離如實知?若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如是色離如實知。

어떻게 수(受)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6수신(受身)이 있으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受), 귀ㆍ코ㆍ혀ㆍ몸ㆍ뜻(耳鼻舌身意)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로서 이것을 수(受)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觸]의 발생이 수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如實知?有六受身--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如是受如實知。云何受集如實知?觸集是受集,如是受集如實知。

어떻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여섯 가지 수를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이것을 수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수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수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고,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수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味如實知?緣六受生喜樂,是名受味,如是受味如實知。云何受患如實知?若受無常、苦、變易法,是名受患,如是受患如實知。云何受離如實知?於受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受離,如是受離如實知。

어떻게 상(想)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상신(想身)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곧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想),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으로서 이것을 상(想)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의 발생이 상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如實知?謂六想身。云何爲六?謂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想,如是想如實知。云何想集如實知?謂觸集是想集,如是想集如實知。

어떻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상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상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이것을 상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상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味如實知?想因緣生喜樂,是名想味,如是想味如實知。云何想患如實知?謂想無常、苦、變易法,是名想患,如是想患如實知。云何想離如實知?若於想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想離,如是想離如實知。

어떻게 행(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이 있으니, 곧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思],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로서 이것을 행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의 발생이 행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行如實知?謂六思身—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是名爲行,如是行如實知。云何行集如實知?觸集是行集,如是行集如實知。云何行味如實知?謂行因緣生喜樂,是名行味,如是行味如實知。云何行患如實知?若行無常、苦、變易法,是名行患,如是行患如實知。云何行離如實知?若行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行離,如是行離如實知。

어떻게 식(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이 있으니, 곧 안식(眼識)과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으로서 이것을 식신(識身)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신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명색(名色)의 발생, 이것을 식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如實知?謂六識身—眼識身,耳、鼻、舌、身、意識身,是名爲識身,如是識身如實知。云何識集如實知?謂名色集,是名識集,如是識集如實知。云何識味如實知?識因緣生喜樂,是名識味,如是識味如實知。

어떻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患如實知?若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如是識患如實知。云何識離如實知?謂於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如是識離如實知。

비구들아, 만일 사문 바라문이 색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알고 본 뒤에 탐욕을 여의는 방향으로 향하면 이것을 바르게 향하는 것이라 한다. 만일 그가 바르게 향하면 나는 ‘그는 들어왔다’고 말한다.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다.
比丘,若沙門、婆羅門於色如是知、如是見;如是知、如是見,離欲向,是名正向。若正向者,我說彼入。受、想、行、識亦復如是。

만일 사문 바라문이 색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본다면, 그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떠나며,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할 것이다. 만일 마음이 해탈한다면 곧 순일하게 될 것이요, 순일하게 되면 곧 범행이 이루어질 것이며, 범행이 이루어지면 다른 것을 떠나 자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 한다.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若沙門、婆羅門於色如實知、如實見,於色生厭、離欲,不起諸漏,心得解脫;若心得解脫者,則爲純一;純一者,則梵行立;梵行立者,離他自在,是名苦邊(변)。受、想、行、識亦復如是。”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2. 칠처경(七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일곱 가지 훌륭함과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만일 이 법을 다 알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무르게 된다.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有七處善、三種觀義。盡於此法得漏盡,得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身作證具足住:‘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비구들아, 어떤 것이 일곱 가지 훌륭함인가? 비구들아, 색(色)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색의 발생[色集]ㆍ색의 소멸[色滅]ㆍ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色滅道跡]ㆍ색에 맛들임[色味]ㆍ색의 재앙[色患]ㆍ색에서 벗어남[色離]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고,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과 식의 발생ㆍ식의 소멸ㆍ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ㆍ식에 맛들임ㆍ식의 재앙ㆍ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니라.
云何比丘七處善?比丘,如實知色、色集、色滅、色滅道迹、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是受、想、行、識,識集、識滅、識滅道迹、識味、識患、識離如實知。

어떻게 색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아는가? 존재하는 모든 색은 모두가 4대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으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애정과 기쁨,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애정과 기쁨이 소멸하는 것, 이것을 색의 소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如實知?諸所有色一切四大及四大造色,是名爲色,如是色如實知。云何色集如實知?愛喜是名色集,如是色集如實知。

어떻게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곧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 이것을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滅如實知?愛喜滅,是名色滅,如是色滅如實知。云何色滅道迹如實知?謂八聖道—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是名色滅道迹,如是色滅道迹如實知。云何色味如實知?謂色因緣生喜樂,是名色味,如是色味如實知。

어떻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色患如實知?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如是色患如實知。云何色離如實知?謂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如是色離如實知。

어떻게 수(受)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수(受)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로서 이것을 수라 하나니, 이렇게 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觸]의 발생이 곧 수의 발생이니, 이렇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소멸이 곧 수의 소멸이니, 이렇게 수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如實知?謂六受--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如是受如實知。云何受集如實知?觸集是受集,如是受集如實知。

어떻게 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수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수를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수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滅如實知?觸滅是受滅,如是受滅如實知。云何受滅道迹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受滅道迹,如是受滅道迹如實知。云何受味如實知?受因緣生喜樂,是名受味,如是受味如實知。

어떻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수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수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受患如實知?若無常、苦、變易法,是名受患,如是受患如實知。云何受離如實知?若於受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受離,如是受離如實知。

어떻게 상(想)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상(想)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으로서 이것을 상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발생이 곧 상의 발생이니, 이렇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소멸이 곧 상의 소멸이니, 이렇게 상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如實知?謂六想—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爲想,如是想如實知。云何想集如實知?觸集是想集,如是想集如實知。云何想滅如實知?觸滅是想滅,如是想滅如實知。

어떻게 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상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滅道迹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想滅道迹,如是想滅道迹如實知。云何想味如實知?想因緣生喜樂,是名想味,如是想味如實知。

어떻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상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상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想患如實知?若想無常、苦、變易法,是名想患,如是想患如實知。云何想離如實知?若於想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想離,如是想離如實知。

어떻게 행(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思],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로서 이것을 행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발생이 곧 행의 발생이니, 이렇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行如實知?謂六思身—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是名爲行,如是行如實知。云何行集如實知?觸集是行集,如是行集如實知。

어떻게 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접촉의 소멸이 곧 행의 소멸이니, 이렇게 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것을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云何行滅如實知?觸滅是行滅,如是行滅如實知。云何行滅道迹(적)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行滅道迹,如是行滅道迹如實知。云何行味如實知?行因緣生喜樂,是名行味,如是行味如實知。

어떻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行患如實知?若行無常、苦、變易法,是名行患,如是行患如實知。云何行離如實知?若於行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行離,如是行離如實知。

어떻게 식(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이니, 안식과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으로서 이것을 식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명색(名色)의 발생이 곧 식의 발생이니, 이렇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如實知?謂六識身—眼識,耳、鼻、舌、身、意識身,是名爲識,如是識如實知。云何識集如實知?名色集是識集,如是識集如實知。

어떻게 식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명색의 소멸이 곧 식의 소멸이니, 이렇게 식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 이것을 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云何識滅如實知?名色滅是識滅,如是識滅如實知。云何識滅道迹(적)如實知?謂八聖道—正見乃至正定,是名識滅道迹,如是識滅道迹如實知。云何識味如實知?識因緣生喜樂,是名識味,如是識味如實知。

어떻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비구들아, 이것을 일곱 가지 훌륭함이라 하느니라.
云何識患如實知?若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如是識患如實知。云何識離如實知?若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如實知。比丘,是名七處善。

어떤 것이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인가? 비구가 만일 공적하고 한가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노지에서 음(陰)과 계(界)와 입(入)을 관찰하고 바른 방편으로 그 뜻을 사유한다면, 이것을 ‘비구가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이라 하느니라.
云何三種觀義?比丘,若於空閑、樹下、露地,觀察陰、界、入,正方便思惟其義,是名比丘三種觀義。

비구들아, 이상의 것을 비구의 일곱 가지 훌륭함과 이치를 관찰하는 세 가지 방식이라 하나니, 만일 이 법을 다 알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무르게 된다.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是名比丘七處善、三種觀義。盡於此法,得漏盡,得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作證具足住:‘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3. 취착경(取著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취(取)하기 때문에 집착[著저]이 생기고, 취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게 되느니라.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희를 위해 설명하리라.”“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取故生著,不取則不著。諦聽善思。當爲汝說。”比丘白佛:“唯然,受教。”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취하기 때문에 집착이 생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또 ‘색은 나[我]요, 내 것[我所]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 그 색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그 마음도 또한 따라 옮긴다. 마음이 따라 옮긴 뒤에도 역시 취착(取著)을 일으켜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공포와 장애가 생기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나니, 그것은 다 취착했기 때문이니라.
“云何取故生著?愚癡(우치)無聞凡夫於色見是我、異我、相在,見色是我、我所而取;取已,彼色若變、若異,心亦隨轉;心隨轉已,亦生取著,攝受心住;攝受心住故,則生恐怖、障㝵、心亂,以取著故。

수(受)ㆍ상(想)ㆍ행(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식(識)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또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 만일 그 식이 변하거나 달라지면 그 마음도 또한 따라 옮긴다. 마음이 따라 옮기기 때문에 곧 취착을 일으켜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기에 머무른 뒤에는 곧 공포와 장애가 생기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나니, 그것은 다 취착했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취착이라 하느니라.
愚癡無聞凡夫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見識是我、我所而取;取已,彼識若變、若異,彼心隨轉;心隨轉故,則生取著,攝受心住;住已,則生恐怖、障㝵、心亂,以取著故,是名取著。

취착(取著)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색을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고 보아 취하지도 않는다. 나와 내 것이라고 보아 색을 취하지 않은 뒤에는, 그 색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그 마음은 따라 옮기지 않는다. 마음이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취착을 일으켜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는 일이 없게 된다.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공포와 장애가 생기거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나니, 그것은 다 취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云何名不取不著?多聞聖弟子於色不見我、異我、相在,於色不見我、我所而取;不見我、我所而取色,彼色若變、若異,心不隨轉;心不隨轉故,不生取著,攝受心住;不攝受住故,則不生恐怖、障㝵、心亂,不取著故。

수ㆍ상ㆍ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나와 내 것이라고 보아 취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 식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그 마음은 따라 옮기지 않고, 마음이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취착하여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는 일이 없으며,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공포와 장애가 생기거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나니, 그것은 다 취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취착(取著)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취착하는 것’과 ‘취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是受、想、行、識,不見我異我、相在,不見我、我所而取,彼識若變、若異,心不隨轉;心不隨轉故,不取著,攝受心住;不攝受心住故,心不恐怖,障㝵、心亂,以不取著故。是名不取著。是名取著、不取著。”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4. 계착경(繫著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만일 마음을 내면 얽매이게 되고,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느니라.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마음을 내면 얽매이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기뻐하고, 찬탄하고, 취착하며, 색에 대해서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고 하며 그것을 취한다.
“若生則繫著,不生則不繫著(계착)。諦聽,善思,當爲汝說。“云何若生則繫著?愚癡(치)無聞凡夫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不如實知故,於色愛喜、讚歎、取著,於色是我、我所而取;

그것을 취한 뒤에는, 그 색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따라 변하고 달라진다. 마음이 따라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곧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고,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공포ㆍ장애ㆍ돌아보는 생각이 생기나니, 그것은 마음을 내어 얽매였기 때문이니라.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이 ‘마음을 내면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取已,彼色若變、若異,心隨變異;心隨變異故,則攝受心住,攝受心住故,則生恐怖、障㝵、顧念,以生繫著故。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生繫著。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기뻐하거나 찬탄하거나 취착하지 않으며, 나와 내 것에 얽매여 취하지 않는다.
云何不生不繫著?多聞聖弟子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實知故,不愛喜、讚歎、取著,不繫我、我所而取;

취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색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그 마음은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고, 마음이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은 얽매여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는 일도 없으며, 거두어 받아들이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에는 공포ㆍ장애ㆍ돌아보는 생각이 생기지 않나니, 그것은 마음을 내지 않아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이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以不取故,彼色若變、若異,心不隨變異;心不隨變異故,心不繫著,攝受心住;不攝受心住故,心不恐怖、障㝵、顧(고)念,以不生不著故。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不生不繫著。”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5. 각경(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色受陰)과 수(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나는 있다’고 본다면, 그들은 모두 이 5수음에서 나[我]를 보는 것이니라. 여러 사문 바라문은 ‘색이 곧 나다. 색은 나와 다르다. 나는 색 안에 있다.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본다. 수ㆍ상ㆍ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곧 나다. 식은 나와 다르다. 나는 식 가운데 있다. 식은 나 가운데 있다’고 본다.
“有五受陰。云何爲五?色受陰,受、想、行、識受陰。若諸沙門、婆羅門見有我者,一切皆於此五受陰見我。諸沙門、婆羅門見色是我,色異我,我在色,色在我;見受、想、行、識是我,識異我,我在識、識在我。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색이 곧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나[我]는 진실한 것이다’고 말하며 버리지 않는다. 버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근(根)은 더욱 자라고, 모든 근이 더욱 자란 뒤에는 모든 접촉[觸]을 더하며, 6촉입처(觸入處)에 부딪치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거운 감각을 일으키나니, 그것은 다 촉입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이른바 안촉입처(眼觸入處)와 이촉입처(耳觸入處)ㆍ비촉입처(鼻觸入處)ㆍ설촉입처(舌觸入處)ㆍ신촉입처(身觸入處)ㆍ의촉입처(意觸入處)니라.
愚癡無聞凡夫以無明故,見色是我、異我、相在,言我眞實不捨;以不捨故,諸根增長;諸根長已,增諸觸;六觸入處所觸故,愚癡無聞凡夫起苦樂覺,從觸入處起。何等爲六?謂眼觸入處,耳、鼻、舌、身、意觸入處。

이와 같이 비구들아, 의계(意界)와 법계(法界)와 무명계(無明界)가 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의 접촉[無明觸]으로 말미암아 있다는 감각ㆍ없다는 감각ㆍ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ㆍ내가 낫다는 감각ㆍ나는 그와 같다는 감각ㆍ나는 못하다는 감각ㆍ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감각은 다 6촉입처를 말미암기 때문이니라.
如是,比丘,有意界、法界、無明界,,愚癡無聞凡夫無明觸故,起有覺、無覺、有無覺、我勝覺、我等覺、我卑覺、我知我見覺。如是知如是見覺,皆由六觸入故。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6촉입처에서 무명을 버리고 밝음을 내어, 있다는 감각ㆍ없다는감각ㆍ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ㆍ나는 낫다는 감각ㆍ나는 그와 같다는 감각ㆍ나는 못하다는 감각ㆍ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나면 먼저 일어났던 무명의 접촉[無明觸]은 소멸하고, 그 뒤에는 밝음의 접촉[明觸]의 감각이 일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多聞聖弟子,於此六觸入處,捨離無明而生明,不生有覺、無覺、有無覺、勝覺、等覺、卑覺、我知我見覺。如是知如是見已,先所起無明觸滅,後明觸覺起。”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6. 삼세음세식경(三世陰世識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 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과 수수음ㆍ상수음ㆍ행수음ㆍ식수음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숙명을 아는 지혜[宿命智]로써 여러 가지 숙명을 안다면, 즉 이미 알았거나 장차 알 것이거나 현재 안다면, 그것은 다 이 5수음에서 대해 이미 알았거나 장차 알 것이거나 현재 아는 것이니라. 곧 ‘나는 과거에 이러한 색(色)이었고, 이러한 수(受)였으며, 이러한 상(想)이었고 이러한 행(行)이었으며, 이러한 식(識)이었다’고 아는 것이다.
“有五受陰。云何爲五?色、受、想、行、識受陰。若沙門、婆羅門以宿命智自識種種宿命,已識、當識、今識,皆於此五受陰;已識、當識、今識,我過去所經。如是色、如是受、如是想、如是行、如是識。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색수음(色受陰)이라 하느니라.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ㆍ돌ㆍ막대기ㆍ칼ㆍ추위ㆍ더위ㆍ목마름ㆍ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 같은 모든 독한 벌레ㆍ바람ㆍ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고 걸리는 것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걸리는 것을 다 색수음이라 한다. 또 이 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若可閡可分,是名色受陰。指所閡,若手、若石、若杖、若刀、若冷、若暖、若渴、若飢、若蚊、蝱、諸毒虫、風、雨觸、是名觸閡,是故閡是色受陰。復以此色受陰無常、苦、變易。

모든 느끼는 모양은 다 수수음(受受陰)이니, 무엇을 느끼는가? 괴로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나니, 그러므로 느끼는 모양을 수수음이라 한다. 또 이 수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諸覺相是受受陰,何所覺?覺苦、覺樂、覺不苦不樂,是故名覺相是受受陰。復以此受受陰是無常、苦、變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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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想]은 다 상수음(想受陰)이니, 무엇을 생각하는가? 적은 생각ㆍ많은 생각ㆍ한량이 없는 생각ㆍ전혀 가진 것이 없을 때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이니, 그러므로 상수음이라 한다. 또 이 상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諸想是想受陰,何所想?少想、多想、無量想、都無所有作無所有想,是故名想受陰。復以此想受陰是無常、苦、變易法。

지어 가는 모양은 행수음(行受陰)이니, 무엇을 지어 가는가? 색에 대해서 짓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짓나니, 그러므로 지어 가는 모양을 행수음이라 한다. 또 이 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분별해 아는 모양은 식수음(識受陰)이니, 무엇을 아는가? 빛깔을 알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을 아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식수음이라 한다. 또 이 식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爲作相是行受陰,何所爲作?於色爲作,於受、想、行、識爲作。是故爲作相是行受陰。復以此行受陰是無常苦變易法。別知相是識受陰,何所識?識色,識聲、香、味、觸法。是故名識受陰。復以此識受陰是無常、苦、變易法。

비구들아, 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색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나는 현재 색(色)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색에게 먹혔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는 현재 색에게 먹히고 있다. 내가 만일 미래의 색을 즐거워하고 집착한다면 다시 현재와 같이 그 색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색을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색을 즐거워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색에 대해서도 싫증을 내고, 탐욕을 떠나며, 재앙을 소멸하고, 소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諸比丘,彼多聞聖弟子於此色受陰作如是學:‘我今爲現在色所食,過去世已曾爲彼色所食,如今現在。’復作是念:‘我今爲現在色所食,我若復樂著未來色者,當復爲彼色所食,如今現在。’作如是知已,不顧過去色,不樂著未來色,於現在色生厭、離欲、滅患、向滅。

수(受)ㆍ상(想)ㆍ행(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식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나는 현재, 현재의 식(識)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식에게 먹혔었다. 내가 이미 현재의 식에게 먹히고 있으면서, 만일 다시 미래의 식을 즐거워하고 집착한다면, 반드시 장래에도 현재와 같이 식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
多聞聖弟子於此受、想、行、識受陰學:‘我今現在爲現在識所食,於過去世已曾爲識所食,如今現在。我今已爲現在識所食,若復樂著未來識者,亦當復爲彼識所食,如今現在。’

그는 이렇게 안 뒤에는 과거의 식을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식에 대해서도 싫증을 내고, 탐욕을 떠나며, 재앙을 소멸하고, 소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그래서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으며,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느니라.
무엇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는가? 색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는다.
如是知已,不顧過去識,不樂未來識,於現在識生厭、離欲、滅患、向滅,滅而不增,退而不進,滅而不起,捨而不取。於何滅而不增?色滅而不增,受、想、行、識滅而不增。

무엇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는가? 색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가? 색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는가?색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느니라.
於何退而不進?色退而不進,受、想、行、識退而不進。於何滅而不起?色滅而不起,受、想、行、識滅而不起。於何捨(사)而不取?色捨而不取,受、想、行、識捨而不取。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나니 고요히 소멸하여 머무르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나니 고요히 물러나 머무르며,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나니 고요히 소멸하여 머무르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나니 얽매이지 않느니라. 얽매이지 않고 나면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滅而不增,寂滅而住;退而不進,寂退而住,滅而不起,寂滅而住;捨而不取,不生繫(계)著;不繫著已,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많은 비구들은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衆多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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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我)ㆍ비하(卑下)ㆍ종자(種子)와
봉체(封滯)ㆍ오전(五轉)ㆍ칠처(七處)와
취착(取著)ㆍ계착(繫著) 두 가지와 각(覺)과
삼세음세식(三世陰世食)8)을 설하셨다.
我、畀下、種子,
封滯、五轉、七,
二繫著及覺,
三世陰世食。

47. 신경(信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신심(信心)이 있는 선남자(善男子)라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색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厭離]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
“信心善男子應作是念:‘我應隨順法,我當於色多修厭離住,於受、想、行、識多修厭離住。’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남을 많이 닦아 머무르기 때문에, 색을 싫어하게 되고 수ㆍ상ㆍ행ㆍ식을 싫어하게 되며, 싫어한 뒤에는 탐욕을 떠나 해탈하고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信心善男子卽於色多修厭離住。於受、想、行、識多修厭離住,故於色得厭,於受、想、行、識得厭。厭已,離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8. 신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
“信心善男子正信非家出家,自念:‘我應隨順法,於色當多修厭住,於受、想、行、識多修厭住。’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른 뒤에는 색에서 떠나게 되고, 수ㆍ상ㆍ행ㆍ식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그러면 나는 ‘이들은 모든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민을 다 떠났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信心善男子正信非家出家,於色多修厭住,於受、想、行、識多修厭住已,於色得離,於受、想、行、識得離。我說是等,悉離一切生、老、病死、憂悲、惱苦。”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49. 아난경(阿難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尊者阿難曰:

“만일 신심이 있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너에게 찾아와 ‘어떠한 법에 대해서 그 나고 멸함을 아는가’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제게 찾아와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색이 바로 나고 멸하는 법임을 알고, 수ㆍ상ㆍ행ㆍ식이 나고 멸하는 법임을 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들이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若信心長者長者子,來問汝言:於何等法,知其生滅,汝當云何答乎?”阿難白佛:“世尊,若有長者長者子來問我者,我當答言:‘知色是生滅法,知受、想、行、識是生滅法。’世尊,若長者、長者子如是問者,我當如是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佛告阿難: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마땅히 그렇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색은 나고 멸하는 법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은 나고 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색은 나고 멸하는 법이다’고 아는 것을 색을 아는 것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나고 멸하는 법이다’고 아는 것을 식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善哉!善哉!應如是答。所以者何?色是生滅法,受、想、行、識是生滅法。知色是生滅法者,名爲知色;知受、想、行、識是生滅法者,名爲知識。”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0. 아난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尊者阿難曰:

“만일 여러 외도 출가자들이 너에게 찾아와 ‘아난이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가’라고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若有諸外道出家,來問汝言:‘阿難,世尊何故教人修諸梵行?’如是問者,云何答乎?”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阿難白佛: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 출가자들이 제게 찾아와 ‘아난이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 것이다. 또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 것이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 출가자가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世尊,若外道出家來問我言:‘阿難,世尊何故教人修諸梵行?’者,我當答言:‘爲於色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世尊教人修諸梵行;爲於受、想、行、識,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教人修諸梵行。’世尊,若有外道出家作如是問者,我當作如是答。”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佛告阿難: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마땅히 그렇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진실로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한다. 또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탐욕을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善哉,善哉!應如是答。所以者何?我實爲於色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教人修諸梵行;於受、想、行、識,修厭、離欲、滅盡、解脫、不生故,教人修諸梵行。”佛說此經已,尊者阿難聞佛所說,歡喜奉行。

51. 괴법경(壞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무너지는 법[壞法]과 무너지지 않는 법[不壞法]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들아, 색은 무너지는 법이다. 그 색이 소멸하면 열반이니,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무너지는 법이다. 그것들이 소멸하면 열반이니,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我今爲汝說壞、不壞法。諦聽,善思,當爲汝說。諸比丘,色是壞法,彼色滅涅槃是不壞法;受、想、行、識是壞法,彼識滅涅槃是不壞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52. 울저가경(鬱低迦經)
이 울저가경(鬱低迦經)의 내용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설한 사법(四法)의 내용과 같다.
鬱低迦修多羅,如增一阿含經四法中說。

【 사법인(四法本, 불사不死의 경) 】
증일아함23:4 사법四法
(잡아함경2:52 울저가經과 동일함)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열성(羅閱城) 가란타죽원에서, 대비구(大比丘)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一時, 佛在羅閱城 迦蘭陁竹園所, 與大比丘衆五百人俱。

그때, 모두 다섯 가지 신통[五通]을 얻은 네 범지梵志가, 착한 법을 수행하면서, 한 곳에 모여, 의논하였다.
爾時, 四梵志皆得五通, 修行善法, 普集一處, 作是論議:

‘죽음의 사자[伺命]가 오면, 그 억센 힘을 피할 수 없다. 제각기 숨어서, 그 사자로 하여금 어디로 와야 할지 모르게 하자.’
“此伺(사)命來時, 不避豪(호)强, 各共隱藏, 使伺命不知來處。”

그때, 첫 번째 범지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죽음을 면(免)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목숨을 마쳤다.
爾時, 一梵志飛在空中, 欲得免死, 然不免其死, 卽在空中而命終。

두 번째 범지는 큰 바다 밑으로 들어가, 죽음을 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목숨을 마쳤다.
第二梵志復入大海水底, 欲得免死, 卽於彼命終彼。

세 번째 범지는 죽음을 면하려고,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들어갔으나, 거기서 죽고 말았다.
第三梵志欲得免死, 入須彌山腹中, 復於中死。

네 번째 범지는 땅 속으로 들어가 금강제(金剛際)에 이르러 죽음을 면하려고 하였으나,그도 또한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말았다.
彼第四梵志入地至金剛際欲得免死, 復卽彼而命終。

그때, 세존께서는 네 범지들이 제각기 죽음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모두 한꺼번에 목숨을 마친 것을 천안(天眼)으로 보셨다.
爾時, 世尊以天眼觀見 四梵志各各避死普共命終。

그때, 세존께서 곧 이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 속도 아니며, 험한 산의 바위 속에
들어갈 일도 아니다. 어디로 가도 숨을 곳이 없으니, 이것을 벗어나면 죽음을 받지 않으리.
爾時, 世尊便說此偈:非空非海中,非入山石閒(한),無有地方所,脫止不受死。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야,어떤 네 명의 범지가 한 곳에 모여, 죽음을 면하려고, 제각기 돌아가야 할 곳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爾時, 世尊告諸比丘:“於是比丘, 有梵志四人集在一處, 欲得免死, 各歸所奔(분), 故不免死。

한 사람은 허공에 있었고, 한 사람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으며, 한 사람은 산 중턱으로 들어갔고,한 사람은 땅 속으로 들어갔지만, 모두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
一人在空, 一人入海水, 一人入山腹中,一人入地, 皆共同死。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죽음을 면하려고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사유해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是故諸比丘, 欲得免死者, 當思惟四法本。云何爲四?

‘일체의 행(行)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이것을 일러 첫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 마땅히 잘 사유해서 수행해야 한다.
一切行無常, 是謂初法本, 當念修行。

‘일체의 행은 괴로운 것이다.’
이것을 일러 두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마땅히 다 함께 사유해야 한다.
一切行苦, 是謂第二法本, 當共思惟。

‘일체의 법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이것을 일러 세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마땅히 다 함께 사유해야 한다.
一切法無我, 此第三法本, 當共思惟。

‘아주 사라져 다 없어진 것이 열반(涅槃)이다.’
이것을 일러 네 번째 법의 근본이라고 하니,마땅히 함께 사유해야 한다.
滅盡爲涅槃, 是謂第四法本, 當共思惟。

모든 비구들아,마땅히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법의 근본을 다 함께 사유해야 하느니라.
如是諸比丘, 當共思惟此四法本。

왜냐하면 곧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ㆍ시름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괴로움의 근본이다.
所以然者, 便脫生、老、病、死、愁憂(수우)苦惱, 此是苦之元本。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너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是故諸比丘, 當求方便, 成此四法。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如是諸比丘, 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 53.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拘薩羅國)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살라(薩羅)마을 북쪽에 있는 신서림(申恕林)에 계셨다.
一時,佛在拘薩羅國,人閒遊行,於薩羅聚落村北申恕林中住。

그때 그 마을의 주인이고 위대한 성을 가진 바라문은 ‘사문 석가족의 자손[釋種子]은 석가(釋迦)라는 위대한 성(姓)으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을 이룬 분이다. 그 분이 이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다가 살라마을 북쪽에 있는 신서림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爾時,聚落主大姓婆羅門聞沙門釋種子,於釋迦大姓,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成無上等正覺,於此拘薩羅國人閒遊行,到婆羅聚落村北申恕林中住。

그리고 또 ‘그 사문 구담은 훌륭한 모습과 명성과 진실한 공덕이 있어 하늘과 사람들의 찬탄이 8방(方)에 자자하며, 여래(如來)ㆍ응공[應]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 되어, 모든 세간과 모든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들 가운데서 큰 지혜로 스스로 증득해 아나니,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신다. 그 분이 세상을 위해 연설하시는 법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다 훌륭하고, 훌륭한 이치와 훌륭한 맛은 순일하고 원만하며 깨끗하다. 그 분은 범행이 깨끗하고 묘한 법을 연설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又彼沙門瞿曇如是色貌名稱,眞實功德,天、人讚歎,聞于八方,爲如來、應、等正覺、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於諸世閒、諸天、魔、梵、沙門、婆羅門中,大智能自證知:“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爲世說法,初、中、後善,善義、善味,純一滿淨,梵行淸白,演說妙法。

그는 ‘훌륭하구나. 나는 뵈리라. 훌륭하구나. 나는 찾아가리라. 나는 찾아가 공경하고 섬기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훌륭한 수레를 타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금 병과 금지팡이와 일산을 지니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기 위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숲 어귀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렸고, 걸어서 세존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善哉應見!善哉應往!善應敬事!作是念已,卽便嚴駕,多將翼從,執持金甁、杖枝、傘蓋,往詣佛所,恭敬奉事,到於林口,下車步進,至世尊所,問訊安不,卻坐一面,白世尊曰:

“사문 구담께서는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설명하십니까?”
“沙門瞿曇!何論何說?”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나는 인(因)을 주장하고, 인(因)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인을 주장하고 어떻게 인을 설명하십니까?”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합니다. 또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합니다.”
“我論因、說因。”又白佛言:“云何論因?云何說因?”佛告婆羅門:“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有因有緣滅世閒,有因有緣世閒滅。”

“세존이시여,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婆羅門白佛言:“世尊,云何爲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해 즐거워하고, 색을 찬탄하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색을 사랑해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게 되고, 취함[取]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바라문이여, 이것이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발생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愚癡無聞凡夫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不如實知。不如實知故,愛樂於色,讚歎於色,染著心住;彼於色愛樂故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憂、悲、惱、苦,是則大苦聚集。受、想、行、識亦復如是。婆羅門,是名有因有緣集世閒;有因有緣世閒集。”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婆羅門白佛言: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云何爲有因有緣,滅世閒,有因有緣世閒滅?”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발생ㆍ색의 소멸ㆍ색에 맛들임ㆍ색의 재앙ㆍ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 색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도 않고, 거기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색에 대한 애욕은 곧 소멸하게 되고, 애욕이 소멸하면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합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소멸시키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이른바 인을 주장하고 인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多聞聖弟子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實知已,於彼色不愛樂,不讚歎,不染著,不留住,不愛樂,不留住故,色愛則滅,愛滅則取滅,取滅則有滅,有滅則生滅,生滅則老死憂悲惱苦滅。受、想、行、識亦復如是。婆羅門,是名有因有緣滅世閒,是名有因有緣世閒滅。婆羅門,是名論因,是名說因。”

바라문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婆羅門白佛言:

“구담께서는 이와 같이 인을 주장하시고, 이와 같이 인을 설명하셨습니다. 저는 세상일이 많아 이제 하직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좋도록 하십시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바라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함께 기뻐하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瞿曇,如是論因,如是說因。世閒多事,今請辭還。”佛告婆羅門:“宜知是時。”佛說此經已,諸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禮足而去。

54. 세간경(世間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波羅㮈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綠野苑)에 계셨다.
그때 비가다로가(毘迦多魯迦)마을에 사는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찾아와 공손히 문안드린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一時,佛住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彼時,毘迦多魯迦聚落有婆羅門來詣佛所,恭敬問訊,卻坐一面,白佛言:

“구담(瞿曇)이시여, 제게는 젊은 제자가 있습니다. 그는 천문(天文)과 족성(族姓)을 알아 대중을 위해 길흉(吉凶)을 점치는데,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있고, 없다고 하면 반드시 없으며, 이루어진다고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무너진다고 하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구담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瞿曇,我有年少弟子,知天文、族姓,爲諸大衆占相吉凶,言有必有,言無必無,言成必成,言壞必壞,瞿曇,於意云何?”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의 젊은 제자가 천문과 족성을 안다는 것은 우선 그만 두고, 내가 이제 당신에게 묻겠으니, 당신 생각대로 대답하십시오.
바라문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색은 본래 종자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ㆍ상ㆍ행ㆍ식은 본래 종자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且置汝年少弟子知天文、族姓。我今問汝,隨汝意答。婆羅門,於意云何?色本無種耶?”答曰:“如是,世尊。”“受、想、行、識本無種耶?”答曰:“如是,世尊。”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은 ‘나의 젊은 제자는 천문과 족성을 알아 대중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곧 있다고 하면 반드시 있고, 없다고 하면 반드시 없다’고 말하지만, 그 알고 본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汝言我年少弟子知天文、族姓,爲諸大衆作如是說,言有必有,言無必無,知見非不實耶?”婆羅門白佛:“如是,世尊。”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혹 색으로서 백년 동안 늘 머무르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생겨나고 달라져 소멸합니까? 수ㆍ상ㆍ행ㆍ식으로서 백년 동안 늘 머무르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생겨나고 달라져 소멸합니까?”
“於意云何?頗有色常住百歲耶?爲異生異滅耶?受、想、行、識常住百歲耶?異生、異滅耶?”

대답하였다.
答曰:

“다른 것이 생겨나고 달라져 소멸합니다.”
“如是,世尊。”
통합뷰어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젊은 제자가 천문과 족성을 알아 대중을 위해 말한 것은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지견(知見)과 다르지 않질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於意云何?汝年少弟子知天文、族姓,爲大衆說,成者不壞,知見非不異耶?”答曰:“如是,世尊。”
통합뷰어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佛告婆羅門: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 법과 저 법, 이 말과 저 말에 중에 어느 것이 낫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법다운 말씀은 부처님 말씀과 같아서 진리를 나타내고, 마음을 열어 줍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보여 구해주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오늘 잘 설명하신 훌륭한 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진리를 나타내고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비가다로가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대중과 함께 기뻐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於意云何?此法彼法,此說彼說,何者爲勝?”婆羅門白佛言:“世尊,此如法說,如佛所說顯現開發。譬如有人溺水能救,獲彼能救,迷方示路,闇慧明燈。世尊,今日善說勝法,亦復如是顯現開發。”佛說此經已,毘迦多魯迦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卽從坐起,禮足而去。

55. 음경(陰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波羅㮈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在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爾時,世尊告諸比丘:

“내가 이제 음(陰)과 수음(受陰)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음이라 하는가?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를 통틀어 색음(色陰)이라 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이 그 일체를 통틀어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이라 하나니, 이것들을 음(陰)이라 하느니라.
“我今當說陰及受陰。云何爲陰?若所有諸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摠說色陰。隨諸所有受、想、行、識亦復如是。彼一切摠說受、想、行、識陰,是名爲陰。

어떤 것을 수음(受陰)이라 하는가? 만일 색에 대해 번뇌[漏]가 있어 그것을 취한다면, 그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및 그 밖의 여러 가지 큰 번뇌의 마음을 일으키며, 수ㆍ상ㆍ행ㆍ식도 마찬가지니, 이것을 수음(受陰)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云何爲受陰?若色是有漏,是取,若彼色過去、未來、現在,生貪欲、瞋恚、愚癡及餘種種上煩惱心法;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受陰。”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6. 누무루법경(漏無漏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波羅柰國仙人住處鹿野苑中。爾時,世尊告諸比丘:

“내가 이제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을 설명하리라. 만일 색에 대해 번뇌[漏]가 있어 그것을 취한다면, 그 색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그 식에 대해 번뇌가 있어 그것을 취한다면, 그 식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유루법(有漏法)이라 하느니라.
“我今當說有漏、無漏法。若色有漏、是取,彼色能生愛、恚;如是受、想、行、識,有漏,是取,彼識能生愛、恚,是名有漏法。

어떤 것을 무루법(無漏法)이라 하는가? 존재하는 모든 색에 대해 번뇌[漏]가 없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그 색은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 번뇌가 없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식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사랑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니, 이것을 무루법(無漏法)이라 하느니라.”
云何無漏法?諸所有色無漏,非受,彼色若過去、未來、現在,彼色不生愛恚。如是受、想、行、識無漏,非受彼識若過去未、來、現在,不生貪、恚,是名無漏法。”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신(信)에 두 가지, 아난(阿難)에 두 가지와
괴법(壞法)과 울저가(鬱低迦)와
바라문(婆羅門)과 세간(世間)과
제(除)9)와 누무루법(漏無漏法)에 대해 설하셨다.
二信、二阿難,
壞法、鬱低迦,
婆羅及世閒,
除、漏、無漏法。

57. 질루진경(疾漏盡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셔서는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홀로 서쪽 나라로 가 인간 세상을 유행하셨다.
爾時,世尊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還持衣鉢,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於西方國土人閒遊行。

이때 안타(安陀)라는 숲에 있던 어떤 비구가, 대중에게 말하지도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가시는 세존을 멀리서 보았다. 그는 그것을 보고 존자 아난에게 가서 아뢰었다.
時,安陁林中有一比丘,遙見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見已,進詣尊者阿難所,白阿難言:

“존자여, 아셔야합니다. 세존께서는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유행을 나서셨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나가 노니신다면 아무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오늘 세존께서는 적멸(寂滅) 속에서 지내며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尊者,當知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爾時,阿難語彼比丘:“若使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不應隨從。所以者何?今日世尊欲住寂滅,滅少事故。”

그때 세존께서는 북쪽으로 유행하시며 반사국(半闍國)의 파타(波陀)라는 마을로 가,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의 한 발타살라(跋陀薩羅)나무 밑에 머무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에게 찾아가 물었다.
爾時,世尊遊行北至半闍國波陁聚落,於人所守護林中,住一跋陁薩羅樹下。時有衆多比丘詣阿難所,語阿難言:

“세존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난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세존께서는 북쪽 반사국 파타라는 마을로 가셔서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의 발타살라나무 밑에 계신다고 합니다.”
“今聞世尊住在何所?”阿難答曰:“我聞世尊北至半闍國波陁聚落,人所守護林中跋陁薩羅樹下。”

“존자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희들은 세존(世尊)을 뵙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만일 수고를 꺼리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세존께 같이 가주실 수 없겠습니까?”
時,諸比丘語阿難曰:“尊者知,我等不見世尊已久。若不憚勞者,可共往詣世尊?”

그때 존자 아난은 형편을 이해하여 잠자코 허락한 뒤에 많은 비구들과 함께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걸식을 마친 뒤 절에 돌아와 침구를 챙기고,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는 서쪽으로 나서 인간 세상을 유행하였다. 거기서 다시 북으로 반사국 파타촌의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가사와 발우를 놓고 발을 씻은 뒤, 세존께 나아가 그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哀愍故,阿難知時,默然而許。爾時,尊者阿難與衆多比丘夜過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乞食已,還精舍,擧臥具,持衣鉢,出至西方人閒遊行,北至半闍國波陁聚落人守護林中。時,尊者阿難與衆多比丘置衣鉢,洗足已,詣世尊所,頭面禮足,於一面坐。

그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해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비구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漏]가 다하게 될까?’
爾時,世尊爲衆多比丘,說法,示、教、利、喜。爾時,座中有一比丘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에 대해 설법하였느니라. 곧 모든 음(陰)을 잘 관찰하여야 하나니, 그것은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精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정도(正道)이니라. 나는 모든 음을 관찰하는 이러한 법을 이미 설명하였느니라.
“若有比丘於此座中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者,我已說法言:‘當善觀察諸陰,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我已說如是法,觀察諸陰。

그런데도 지금,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거워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기억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게을러 더욱 나가지 못해 모든 번뇌[漏]를 다하지 못하는 선남자가 아직도 있다. 만일 선남자가 내가 설명한 법에서 모든 음을 잘 관찰하여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거워하며, 부지런히 기억하고, 부지런히 믿는다면 그는 능히 모든 번뇌를 재빨리 다할 수 있을 것이다.
而今猶有善男子不勤欲作,不勤樂,不勤念,不勤信,而自慢惰,不能增進得盡諸漏。若復善男子於我所說法,觀察諸陰,勤欲勤樂,勤念勤信,彼能疾得盡諸漏。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을 나라고 보나니, 만일 그것을 나라고 보면 이것을 행(行)이라 하느니라.
그 행은 무엇이 원인[因]이고, 무엇이 발생[集]시키며, 무엇이 생기게[生] 하고, 무엇이 변한[轉] 것인가? 무명(無明)이 부딪쳐 애욕[愛]이 생기나니, 애욕을 인연하여 그 행을 일으키느니라.
그 애욕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그 애욕은 느낌[受]이 원인이고, 느낌이 발생시키며, 느낌이 생기게 하고, 느낌이 변한 것이다.
愚癡無聞凡夫於色見是我。若見我者,是名爲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無明觸生愛,緣愛起彼行。彼愛何因?何集?何生?何轉?彼愛受因、受集、受生、受轉。

그 느낌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그 느낌은 접촉[觸]이 원인이고, 접촉이 발생시키며, 접촉이 생기게 하고, 접촉이 변한 것이다.
그 접촉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이른바 그 접촉은 6입처(六入處)가 원인이고, 6입처가 발생시키며, 6입처가 생기게 하고, 6입처가 변한 것이다.
그 6입처는 무상하고[無常], 함이 있으며[有爲],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心緣起法]이요, 그 접촉의 느낌과 행의 느낌도 또한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니라.
彼受何因?何集?何生?何轉?彼受觸因、觸集、觸生、觸轉。彼觸何因何集,何生何轉?謂彼觸六入處因、六入處集、六入處生、六入處轉。彼六入處無常、有爲、心緣起法;彼觸受、行受、亦無常、有爲、心緣起法。

설사 이렇게 관찰한다 하더라도 그는 색(色)을 나[我]라고 본다. 색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색을 내 것[我所]이라고 보며, 색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색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색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수(受)를 나라고 보며, 수를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수를 내 것이라고 보며, 수를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수는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수는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수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상(想)을 나라고 보며, 상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상을 내 것이라고 보며, 상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상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상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상 안에 있다’고 본다.
如是觀者,而見色是我;不見色是我,而見色是我所。不見色是我所,而見色在我。不見色在我,而見我在色。不見我在色,而見受是我,不見受是我,而見受是我所。不見受是我所,而見受在我,不見受在我,而見我在受。不見我在受,而見想是我。不見想是我,而見想是我所。不見想是我所,而見想在我。不見想在我,而見我在想。

‘나는 상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행(行)을 나라고 보며, 행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행을 내 것이라고 보며, 행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행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행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행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식(識)을 나라고 보며, 식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식을 내 것이라고 보며, 식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식 안에 있다’고 보느니라.
不見我在想,而見行是我。不見行是我,而見行是我所。不見行是我所,而見行在我。不見行在我,而見我在行。不見我在行,而見識是我,不見識是我,而見識是我所。不見識是我所,而見識在我。不見識在我,而見我在識。

‘나는 식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다시 단견(斷見)을 지어 유견(有見)을 부수고, 단견을 지어 유견을 부수지 않더라도 아만(我慢)을 떠나지 못한다. 아만을 떠나지 못하면 다시 나[我]를 보나니, 나를 보는 것, 그것이 곧 행(行)이니라.
그 행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나아가 아만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不見我在識,復作斷見、壞有見;不作斷見、壞有見,而不離我慢。不離我慢者,而復見我,見我者卽是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如前所說,乃至我慢。作如是知,如是見者,疾得漏盡。”佛說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8. 음근경(陰根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동쪽 동산에 있는 녹모강당(鹿母講堂)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깨어나, 모든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東園鹿母講堂。爾時,世尊於晡時從禪覺,於諸比丘前敷座而坐,告諸比丘:

“5수음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색수음(色受陰)과 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이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세존이시여, 5수음이란 색수음과 수수음ㆍ상수음ㆍ행수음ㆍ식수음입니까?”
“有五受陰。云何爲五?謂色受陰,受、想、行、識受陰。”時,有一比丘從坐起,整衣服,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白佛言:“世尊,此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耶?”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돌아가 앉아서 물어라. 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그러자 그 비구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다시 본 자리로 돌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5수음은 무엇이 근본으로 되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부딪친 것입니까?”
“還坐而問,當爲汝說。”時,彼比丘爲佛作禮,還復本坐,白佛言:“世尊,此五受陰,以何爲根?以何集?以何生?以何觸?”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그 5수음은 탐욕이 근본이 되고, 탐욕이 발생시키며, 탐욕이 생기게 하고, 탐욕이 부딪친 것이니라.”
이때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5음(陰)을 곧 집착[受 : 取]이라고 말씀하시니,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음(陰)이 곧 집착[受]입니까? 5음과 집착은 다릅니까?”
“此五受陰,欲爲根欲集、欲生、欲觸。”時,彼比丘聞佛所說,歡喜隨喜,而白佛言:“世尊,爲說五陰卽受,善哉所說!今當更問:世尊,陰卽受,爲五陰異受耶?”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5음이 곧 집착도 아니요, 또한 5음이 집착과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탐욕이 있으면 그것이 곧 5수음이니라.”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음(陰)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까?”
“非五陰卽受,亦非五陰異受;能於彼有欲貪者,是五受陰。”比丘白佛:“善哉!世尊,歡喜隨喜,今復更問。世尊,有二陰相關耶?”

“그렇다, 그렇다. 마치 어떤 비구가 ‘나는 미래에 이러한 색(色), 이러한 수(受), 이러한 상(想), 이러한 행(行), 이러한 식(識)을 타고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비구야, 음과 음은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佛告比丘:“如是,如是。猶若有一人如是思惟:‘我於未來得如是色,如是受、如是想、如是行、如是識。’是名比丘陰陰相關也。”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음(陰)이라 합니까?”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를 통틀어 음이라 하나니, 이것을 음이라 하느니라.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나니, 비구야, 이것을 음(陰)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世尊,云何名陰?”佛告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摠說陰,是名爲陰。受想、行、識亦復如是。如是,比丘,是名爲陰。”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因)과 연(緣)으로 색음(色陰)이라 하며,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이라 합니까?”
“世尊,何因何緣名爲色陰?何因何緣名受、想、行、識陰?”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4대(大)를 인(因)으로 하고 4대를 연(緣)으로 한 것을 색음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모든 색음, 그 일체는 다 4대이거나 4대를 인연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접촉[觸]을 인으로 하고 접촉을 연으로 하여 수ㆍ상ㆍ행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수음ㆍ상음ㆍ행음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수ㆍ상ㆍ행은 모두 접촉[觸]을 인연하기 때문이다. 명색(名色)을 인으로 하고 명색을 연으로 하기 때문에 식음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식은 모두 명색을 인연하기 때문이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四大因、四大緣,是名色陰。所以者何?諸所有色陰,彼一切悉皆四大,緣四大造故。觸因、觸緣,生受、想、行。是故名受、想、行陰。所以者何?若所有受、想、行,彼一切觸緣故,名色因,名色緣。是故名爲識陰。所以者何?若所有識,彼一切名色緣故。”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어떤 것을 색에 맛들임[色味]이라 하고, 색의 재앙[色患]이라 하며, 색에서 벗어남[色離]이라 합니까? 수ㆍ상ㆍ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것을 식에 맛들임[識味]이라 하고, 식의 재앙[識患]이라 하며, 식에서 벗어남[識離]이라 합니까?”
“云何色味?云何色患?云何色離?云何受、想、行、識味?云何識患?云何識離?”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면 이것을 색에 맛들임[色味]이라 한다.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色患]이라 한다.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色離]이라 하느니라.
“緣色生喜樂,是名色味;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若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면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若緣受、想、行、識,生喜樂,是名識味;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於受、想、行、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아만(我慢)이 생깁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나니, 여기서 아만이 생기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世尊,云何生我慢?”佛告比丘:“愚癡無聞凡夫於色見我、異我、相在,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於此生我慢。”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아만이 없어집니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그 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아야 번뇌가 다하게 되겠습니까?”
“世尊,云何得無我慢?”佛告比丘:“多聞聖弟子不於色見我異我、相在,不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比丘白佛:“善哉所說,更有所問,何所知、何所見,盡得漏盡?”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른 것도 아니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마찬가지니, 비구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될 것이니라.”
佛告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如是知,如是見,疾得漏盡。”

그때 그 자리에 미련하고 무식한 다른 한 비구가 있었다. 그는 무명(無明)의 껍질에 싸여 삿된 소견을 일으키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나[我]가 없다면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세상에서는 누가 그 과보를 받을까?’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 만일 지혜도 없고 밝지도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만일 색에도 나가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나가 없다면 그는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과보를 받을까’라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의심한다면 먼저 그것을 해석하리라. 어떤가? 비구들아,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爾時,會中復有異比丘,鈍根無知,在無明㲉起惡邪見,而作是念:“若無我者,作無我業,於未來世,誰當受報?”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於此衆中,若有愚癡人,無智明,而作是念:‘若色無我,受、想、行、識無我,作無我業,誰當受報?’如是所疑,先以解釋彼。云何比丘,色爲常耶?爲非常耶?”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答言:“無常,世尊。”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若無常者,是苦耶?”答言:“是苦,世尊。”“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바른 소견[正見]이니라. 수ㆍ 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若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是見者,是爲正見;受、想、行、識亦復如是。

이렇게 보는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곧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싫어하는 마음을 닦은 뒤에는 탐욕을 떠나며, 탐욕을 떠난 뒤에는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多聞聖弟子如是觀者便修厭,厭已離欲,離欲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많은 비구들은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衆多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음의 근본[陰根]과 ‘음이 곧 집착인가’라는 문제와
두 음은 서로 관계 있다는 것과
명자(名字) 등의 인(因) 두 가지10)와 맛들임[味]과
아만(我慢)11)과 질루진(疾漏盡)에 대해 설하셨다.
陰、根、陰卽受,
二陰共相關,
名字、因、二味,
我慢、疾漏盡。
雜阿含經卷第二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거센 폭류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의지처를 의미한다.
2)
고려대장경에는 ‘이(已)’ 자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다. 앞뒤의 경문을 참조해 ‘고(苦)’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3)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이란 내용이 원문에선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4)
원문에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라는 내용이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5)
‘비구들아, 만일 색ㆍ수ㆍ상ㆍ행을 떠나서 식이 머무르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의심만 더욱 커지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이라는 내용이 원문에서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6)
원문에 ‘내지(乃至)’로 생략된 내용은 위의 『종자경(種子經)』 을 참조하라.
7)
온타남에는 ‘삼세음세식(三世陰世食)’으로 되어있으나 경의 내용으로 보아 ‘삼세음소식(三世陰所食)’이라야 옳다.
8)
3세의 5수음에 먹힌다는 경의 내용으로 보아 ‘삼세음소식(三世陰所食)이라야 옳다.
9)
5음(陰)과 5수음(受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경의 내용으로 보아 ‘음(陰)’이라야 옳다. 따라서 앞에서 경명을 음경으로 붙였다.
10)
『음근경』 본문에서는 색의 인(因)으로 4대를, 수ㆍ상ㆍ행의 인으로 촉(觸)을, 식의 인으로 명색(名色)을 거론하였다. 여기서 명자(名字)는 명색(名色)의 명(名)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1)
위에서 여기까지는 낱낱의 경 제목이 아니라, 모두 『음근경(陰根經)』 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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