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화 스님 영가법문(靈駕法門)

1. 오늘 이 법회에 참여하신 우리 불자님들은 지극한 불심으로 특히 금륜회를 위하여 지성으로 동조하는 훌륭한 법우들이시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금륜(金輪)이란 자체가 법륜(法輪)입니다.

금륜도 쇠 금(金)자, 바퀴 륜(輪)자입니다만, 법륜도 법(法)자, 바퀴 륜(輪)자 법륜(法輪)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대법(大法)이란 뜻입니다.

부처님 법은 바로 우주의 법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대법칙(大法則)이라는 뜻이 금륜 법륜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법회도 보통 법회가 아니라 특이한 영가천도법회(靈駕薦度法會)입니다.

영가천도에 관하여 다소 이해가 부족한 분들도 우리 불자님 가운데에는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그러한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분들 가운데는 불교라 하는 것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라, 계(戒)를 충실히 지키고, 참선염불(參禪念佛)하여서 마음을 통일하고, 지혜(智慧)를 닦아서 성불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필요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가(靈駕)를 천도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더러는 계십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바로 생명의 실재(實在)인 것입니다.

마음의 실재에 관하여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유사有史이래로 두 가지의 사상적(思想的)인 흐름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이 물질뿐이다라고 하는 유물론(唯物論)이고, 그 둘째는 물질이라는 것도 사람이 이것을 물질이라고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이므로 우리 마음이 먼저 존재하지 않은가?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유추(類推)함으로 인因하여 있는 것이며 유추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보는 유심론(唯心論)이 그것입니다.

유물론(物論)과 유심론(心論)은 유사 이래로 우리 인간세상에서 두 갈래로 유포(流布)된 사상의 큰 흐름입니다.

유물(唯物)인가 유심(唯心)인가 이것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분요(紛擾)도 많이 일으키고 투쟁도 많이 하고 전쟁도 많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유심(唯心)도 반틈 유물(唯物)도 반틈, 마음도 반틈 몸도 반틈, 이렇게 절충적으로 생각하는 사상도 나왔던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이라고 하는 유물론적인 견해에서 생각한다면 영가천도(靈駕薦度)는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의 사상이나 기독교의 예수님 사상이나, 또는 유가(儒家)나 도가(道家)나 어떠한 가르침이건 간에 적어도 종교라 하면 모두가 다 유심(唯心)쪽에 속하여 있으며 마음이 가장 주장된 우주의 실상이라고 하는 그런 쪽에다 사상의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가천도가 필요 없다는 분들은 결국은 마음이 없다는 사상과 거의 일치하는 사상입니다.

우리가 금생(今生)에 살 때에는 마음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몸은 단지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는 도구(道具)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몸은 한 번 죽어지면 응당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화장(火葬)을 하면 그냥 재가 되고 파묻으면 썩어지고 분해해서 풍화작용(風化作用)되어 그렇게 흩어지고 마는 것인데, 이때에 우리 마음이 정말로 없어지는 것인가?

정말로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누구도 자기가 죽은 다음에는 자기의 마음이 모두 없어진다고 생각하려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꼭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살아 있을 것이 아닌가?

부처님 가르침의 여러 가지 대요(大要) 가운데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부정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삼세인과(三世因果)라, 과거전생 (過去前生)에도 살았고, 금생(今生)에도 살고 내세(來世)에도 살 것이라는 것과 또한 과거 전생에서 더 올라가서 전전생 (前前生) 또 전전생생(前前生生)이라, 과거에 소급하여 올라가서 끝도 갓도 없는, 처음이 없는 그런 영겁(永劫)의 과거로부터 불교의 말씀으로 해서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우리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 생명이 한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미래도 미래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지 않으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못됩니다.

그러기 우리 인간의 심리만을 본다고 하더라도 금생만이 아니라 분명히 과거 전생에도있었을 것이고, 또한 미래생(未來生)에도 있을 것임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영가(靈駕)라 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영가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인간존재가 죽어서 몸뚱이는 버리고 간다고 하더라도 심령자체(心靈自體), 즉 우리의 의식자체(意識自體)는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 긍정하고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믿지 않으려는 분들도, 이런 점에 대하여 생각을 좀 다시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주의 할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그런 영혼들만 너무 치중하여서 현실의 생활을 무시하여 버리는 이들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도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 못되어 버립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실도 중요하고 내생도 중요하고 영혼도 중요한 것이고 모든 점에 있어서 중도(中道)의 인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현상적인 현실생활도 역시 바르게 수행하여 닦아 나아가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도 역시 헤매이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헤매이는 이들을 모두 정화(淨化)를 시켜서 참다운 우리 인생과 모든 존재의 근본 고향인 극락세계(極樂世界)로 인도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동시에 우주만유(宇宙萬有)의 큰 법칙(法則)인 것입니다.

오늘은 인연(因緣) 따라서 모이신 우리 불자님들이 모두 합심동체合(心同體)가 되셔서 영가천도를 모시는 아주 의의 깊은 법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부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마시고, 또한 주최하시는 분들도 너무 지나치게 영가에 다가 관심을 두시지 마시고 현실과 영가의 양편에 치우침이 없는 중정(中正) 중도(中道)적 입장에서 오늘 천도를 마치도록 그렇게 하십시다.

영가나 우리 인간이나 똑같이 갈 곳은 한 곳입니다. 극락세계라고 하는 해탈(解脫)된 그런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경계(境界)에 간다는 것은 영가도 그렇고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금생에 성불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와 똑같이 영가들도 몸뚱이를 버렸다고는 하더라도 몸뚱이에 대한 애착은 못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 천도받는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세요.

비록 인연因緣이 다하여서 몸은 떠났다고 하더라도 영혼靈魂은, 범부의 영혼들은 아직은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의 전문적인 용어로 해서 땅 지(地)자, 묶을 박(縛)자, 지박(地縛)의 영(靈)이라 합니다.

땅 지(地)자, 땅이라는 뜻은 불교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하나의 질료(質料)인 물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질에 얽매여 있는, 물질에 구속되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영혼이 지박(地縛)의 영(靈)입니다.

성자(聖者)의 영혼이 미처 못 될 때에는 모두가 다 지박(地縛)의 영(靈)입니다.

우리 사람도 몸뚱이라는 물질에 지금 얽매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한 의식 자체가 다 물질 생활에 얽매어 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역시 똑같은 지박(地縛)의 영(靈)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영가들도 지금 대체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닦아서 수승(秀勝)하시어 홀홀히 극락세계로 가신 영혼들, 또는 극락세계에는 미처 못 가셨다고 하더라도 천상(天上)에 머무는 영혼들, 이런 영혼들 이외는 모두가 다 물질에 묶여(땅 기운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도 실은 물질입니다.

공간도 산소酸素), 수소(水素), 탄소(炭素), 질소(窒素), 이런 각 원소가 차 있는 이런 공간도 사실은 물질입니다.

공간도 저 위로 올라가서 성층권(成層圈), 저기권(低氣圈), 자기권(磁氣圈) 위로 올라가서 공기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는 바로 천상(天上)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땅 기운에 묶여 있는, 물질에 묶여있는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몸뚱이라는 것은 잠시간 우리가 과거에 지은 바 우리의 행위(業)에 따라서, 과거에 어떻게 생각을 하였던가, 어떻게 말을 하였던가, 어떻게 행위를 하였던가, 그런 삼업(三業, 신身, 구口, 의意)이 때가 되어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無明) 만듭니다.


4. 본래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내 마음 네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주의 근본성품입니다.

오늘 불자님들이시여, 영가님들이시여!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몸에 갇혀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주의 근본, 순수한 성품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란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모양이 없고 어느 한계도 없습니다.

마음이 물질같으면 여기가 있고 저기가 있고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마음은 물질이 아닌지라 그 마음이 내 몸뚱이에만 있고 다른 몸뚱이에는 없고 이런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공간에도 마음은 역시 그대로 충만하여 있습니다.

어느 세상에나 어느 처소에나 마음이라는 것은 충만하여 있는 것인데, 마음의 본성품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불생불멸(不生不滅)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부증불감不增不減).

그러한 마음이 과거전생의 업業에 따라서 이와 같은 몸뚱이가 생기면 그 마음이 본래 마음을 훤히 잘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이 몸뚱이 이것이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짜 '나'를 떠나서 '참다운 나'(眞我)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어쩌다가 전생에 지은 자기 업을 따라서 이렇게 몸을 받으면 '몸뚱이 이것이 나다' 그럽니다.

우리 번뇌煩惱의 시초는 거기에서 옵니다.

남을 좋아도 하고 물질에 욕망을 내는 이런 것이 모두가 다 이 몸뚱이를 보고 '나다' 하는 이런 관념이 생겨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의 눈 바로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사실은 몸뚱이는 과거 전생의 업장 따라서 금생에 산소나 수소나 탄소 등 원소들이 모여서 이렇게 세포를 구성한 것뿐이지 참다운 '나'(眞我)가 못됩니다.

참다운 "나"는 우리 마음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여기가 있고 저기가 있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잘 못 보아서 내 마음은 내 몸뚱이 속에 갇혀 있다 그대 마음은 그대 몸뚱이하고 똑같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본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옆 사람 마음이나 자기 마음이나 또 하나의 풀포기 마음이나 또는 다른 동물의 마음이나 모두 다 같은 물질이 아닌 하나의 우주의 순수한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영가들이시여!

우리가 불행한 것은 이유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지와 무명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불행하고 사회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가정이 불화스러운 것도 모두가 다 그 때문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지금 헤매이고 있는, 물질에 묶여 있는 지박(地縛)의 영(靈)인 당신들이 가야할 곳은 그 물질적인 구속을 다 풀어버리고 한도 끝도 없는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극락세계로 가시는 것입니다.

극락정토는 우리가 안가고 버틸 수가 없습니다.

무명심(無明心)을 떠나지 못해서 사람들은 금생에 쓰고 있는 이 몸뚱이를 보고 자기라고 하는 것이고, 영혼들은 과거의 자기 몸뚱이, 지금은 어디엔가 묻혀 있거나 혹은 화장(火葬)하여 재가 되어 버렸는데도 그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것을 내 몸뚱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실존적(實存的)으로는 절대로 있지가 않습니다.

영가들이시여 깊이 생각하세요.

인연 따라서 잠시간 각 원소를 긁어모아서 이루어진 세포들로 해서 이 몸이 되었습니다.

범부(凡夫)중생은 이 몸뚱이보고 자기라고 하고, 또는 망상하는 자기의 마음을 보고 자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중생심(衆生心)은 마음의 근본성품이 못됩니다.

우리 중생심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보고 이것이 내 몸이다, 자기 아내 몸뚱이보고 이것이 아내다, 아내는 내 소유다, 남편도 내 소유다, 이런 관념들을 갖지만 이런 관념들이 모두가 다 중생심인 것입니다.

중생의 관념을 못 버리면 인생고해(人生苦海)를 떠나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인 대요(大要)라, 모두가 다 인생고(人生苦)를 떠나서 참다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인생고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무명심 때문에 자기 몸뚱이를 참다운 '나'라고 잘못 알고 일체물질도 사실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영가들이시여, 불자님들이시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반야의 용선(龍船), 반야의 배를 못 타면은 해탈(解脫)의 경계에는 못가는 것입니다.

영가천도하는 법문은 모두가 다 반야바라밀, 반야의 지혜로 해서 더 이상 헤매이지 말고 극락세계로 가라는 것입니다.

인생고해(人生苦海)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야용선, 반야바라밀의 배를 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야바라밀은 무엇인가?

반야바라밀은 앞에서도 말씀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이 우리의 주인공이고, 또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그 근본성품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라, 그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성(空間性)이 없으며,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성(時間性)도 없습니다.

우주에 끝도 갓도 없이 무량무변(無量無邊)하게 가득 찬 생명자체 이것이 바로 마음인 동시에 바로 부처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그 자리가 바로 우리의 참다운 생명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 자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형상에 가리어서 무거운 죄를 범하게 되면 지옥도 가는 것이고, 욕심이 많으면 아귀도 되는 것이고 어리석고 무명에 가리어서 치매(痴昧)하면 그때는 개나, 소나 돼지도 되는 것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 투쟁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아수라(阿修羅)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십시다.

그 생명의 본체인 마음은 내 마음, 네 마음의 둘이 아닙니다.

우주대어의(宇宙大於意)라.

우주가 오직 하나의 마음(意識)인데 그 마음 위에서 인연 따라서, 바다 위에 일어나는 거품모양으로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산이 있고 물이 있고 하는 것입니다.

꼭 이렇게 생각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주는 다 하나의 생명인데, 부처님의 성품이라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인데, 그 자리에서 인연법(因緣法) 따라서 이렇게 바꾸어지고 저렇게 바꾸어지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근본자리는 다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 자리(곳)를 아는 것, 이것이 대승법문(大乘法門)입니다.

소승법문 때문에, 쫍짱한 그런 소승법문이나 세간적인 법문 때문에 우리가 죄를 얼마나 짓고, 죄를 지음으로 해서 얼마나 득 없게 생각합니까?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운 진리, 석가가 말하고 예수가 말하고 공자가 말한 바, 참다운 진리에서는 천지우주(天地宇宙)가 오직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생각할 때에는 자기의 행동도 모두가 다 거기에 따라서 남과 하고 화해하고, 남의 마음에 불을 안 놓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인데, 만일 거기에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이 없다면 그때그때 자기의 충동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깊이 생각하십시오.

극락(淨土)세계라 하는 것은 모든 존재가 마음뿐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때그때 물질에 가리어서 물질에 구속되어서 잘 못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잘못된 생각만 벗어나면 그때는 모두가 바로 부처입니다.

이렇게 되면 극락세계가 저 십만억국토(十萬億國土)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서 있는 시중(市中)에나, 학교에나, 직장에나, 또는 가정에 있으나 항시 극락세계는 바로 우리 눈앞에(現前)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것은 좀 어려우시더라도 대승적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마음뿐이다고 하는 것은 마음은 이것은 바로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광명(光明)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닌 하나의 청정한 빛입니다.

빛도 태양광선 같은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그런 광명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생명자체(生命自體)의 빛이 바로 마음인 동시에 부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내 몸뚱이나 무엇이나 모두가 다 근본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안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心外無法)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의 핵심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두가 다 마음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도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이라는 것은 우리 몸뚱이의 일부인 뇌(腦)의 활동에 불과하다는 유물론적(唯物論)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이때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숙청(肅淸)하고 탄압(彈壓)하고 이렇게 한 것이 소비에트Soviet 사회의 형태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기본적인 철학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6.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석가, 노자, 공자, 예수 그분들의 가르침은 다 하나의 진리인데 그의 핵심은 천지우주(天地宇宙)가 오직 순수생명(純粹生命)인 마음뿐이란 말입니다.

부처Buddha뿐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분산되어 있지마는 모두가 마음에서 된 것(唯心造)이기 때문에 사람 모양을 하거나, 산 같은 모양을 하거나, 어느 모양을 하거나 간에 이들을 근본바탕에서 본다고 할 때에는 사실은 다 똑같이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모두가 다 마음으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대승적(大乘)인 생각인 것이고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무명심(無明心)을 떠나서 참다운 반야(般若)의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외우시는 반야심경도 내내야 다 그 뜻입니다.

극락에 가는 것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모두가 다 마음을 깨닫고, 깨닫지 못한데 차이가 있는 것이지 마음이란 본래 자리에는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마음은 생명의 빛입니다.

그런 빛으로 내 몸이 되어 있어서 우리가 깨달아서 자기의 몸을 본다고 생각하면은 자기 몸은 부처님 몸같이 환하게 빛나는 것이고, 또한 나쁜 사람의 몸이라도 다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주인공임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은 재산을 많이만 모으면 된다, 감투만 높으면 된다, 이 몸을 잘 치장하여 빛나게 만들면 된다, 이런 모양에만 치우쳐서 겉모양을 가꾸느라 헛된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모양으로 드러난 것은 어차피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뚱이를 아무리 아껴 봐도 없어지고 말듯이 금이나 은이나 그런 것도, 다 물질이라 하는 것은 없어지고 맙니다.

인생 본래 고향이 마음이기 때문에 극락세계(淸淨無量光)가 바로 고향입니다.

우리가 극락세계를 떠나있어서 그때 그때 잘 못 보고서 지옥도 가고 축생(畜生)도 되고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향이기 때문에 다시 본래의 마음자리로, 다시 부처자리로 돌아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돌아가지 못하니까 항시 불만스럽고 불안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늘 불안스럽지 않습니까?

모두가 불확실하고, 우리가 꼭 믿을만한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남편을 믿고 아내를 믿고, 스승을 믿고 다 믿어야 하겠습니다마는 더러는 또 배신을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나 상대相對적으로만 믿음이 있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변화무쌍하여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합니다.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영가들이 과거전생에 살았던 사람의 세상에서 잘 살았건 못 살았건 그런 것은 모두가 다 꿈에 불과합니다.

어디에도 그 흔적도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그러한 자기의 권속(眷屬)도 모두가 어쩌다가 인연因緣이 좀 같아서 한세상에서 만난 것이지 또다시 어디 가서 만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나 천상존재나 지옥존재나 아귀나 축생이나 모두가 할 일은 무엇인가하면 부처님의 법을 믿고서, 성자의 가르침 믿고서 허망虛妄한 것은 허망하다고 보고, 꿈을 꿈이라고 보고서 우리 고향 살이 극락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동참하신 우리 법우 불자님 여러분들이시여!

지금은 우리가 각성 할 때입니다.

세간世間적인 그렁저렁한 가르침으로 우리 인생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만일 각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개인적인 불안과 온갖 번뇌의 속박으로 평생 동안 고생해야 합니다.

또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眞理에 비추어서 아버지 도리, 어머니 도리, 자식 도리를 다 해야지 그렇지 않고서 세간적인 애착으로만 산다고 할 때에는 끊임없이 불안스럽고 부자지간, 모자지간, 모녀지간,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몸뚱이는(色) 허무한 것입니다.

자기 집도, 자기 아파트나 단독주택이나 모두가 다 허상虛像인 것입니다.

어차피 나그네 길인데 어디서 머물다가 어차피 곧 가고 마는 것, 우리가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자의 길 따라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집착하지 않고 보는 바른 견해(眞正見解) 정견(正見), 이것이 인생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이러한 바른 견해(眞正見解)가 앞에 말씀드린 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입니다.

바로 보는(正見) 등불이 없으면 어두컴컴한 사바세계에서 바로 비춰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체존재(一切存在)가 사실은 바른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것은 즉 '물질은 허망한 것'이고 '마음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생명자체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자현미경으로 대상을 본다고 생각할 때에 자금에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금이나 은이나 다이아몬드나 우리 몸뚱이나 이런 것들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인간의 존재에 맞추어진 인간의 업장業障의 안목에서 비추어 보니까 사람으로 보이고, 예쁘게 보이고 밉게 보이는 것이지, 정말로 더 깊은 눈으로 더 밝은 부처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우리 인간이 반드시 예쁘고 밉고 그렇게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자가 보는 눈만이 정답게(正見) 바로 보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가상만 보는 것입니다.

망상(妄相)만 보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극락세계가 우리의 고향입니다.

만생(萬生)을 윤회(輪廻)하다가라도 어차피 극락세계에는 꼭 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윤회하고 갈 것이 아니라, 금생에 가까스로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으니 이 귀중한 가르침을 붙들고서 다른 쪽에 한 눈 팔지 마시고서 정진수행(精進修行)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기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보살


(이 글은 청화(淸華, 1923~2003) 큰스님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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