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대사 왕생집 (4~7)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 제 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
• 대명(大明) 비구니
수(隋) 대명 비구니는 방에 들어가 예념(禮念)할 때마다 먼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입에 침향(沈香)을 머금었다. 문제(文帝)의 왕후가 매우 가까이 하였다. 죽는 날, 침향이 방에 가득하더니, 잠시 후에 광명이 구름과 같이 일며 은은히 서쪽을 향해 사라지는 것을 온 대중이 보았다.
찬(贊)
어떤 비구는 을 독송하여 후에 영이(靈異)한 과보를 감응했고, 또 어떤 스님은 을 독송하여 수특(殊特)한 예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염불하는 자로서 과연 몇 사람이나 명(明)과 같이 하는 자가 있는가? 누구라도 이렇게만 염불한다면 천이면 천 사람, 만이면 만 사람, 누구라도 왕생하지 못할 자가 없다.
• 정진(淨眞) 비구니
당(唐) 정진 비구니는 장안 적선사(積善寺)에 살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하며 10만 번을 독송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어느날 제자에게 “다섯 달 동안에 열 번이나 부처님을 보았고 두 번 보련화(寶蓮花) 속에서 동자가 뛰노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 하고는, 가부좌하고 죽었다. 상서로운 광명이 암자에 가득하였다.
• 오성(悟性) 비구니
당(唐) 오성 비구니는 여산에서 염불하며 지극히 왕생을 발원하였다. 어느날 홀연히 공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곁에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중품(中品)에 왕생하게 되었다. 함께 염불정진하던 이들이 모두 연꽃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도 노력하라.” 하고는 갔다.
찬(贊)
상품과 중품의 지위를 두 비구니가 능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안으로 스스로 실행했던 얕고 깊은 정도를 살펴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밖으로 감응의 낮고 못하고를 살펴보았기 때문으로, 괜한 말이 아니다.
• 능봉(能奉) 비구니
송(宋) 능봉 비구니는 전당 사람으로, 정업淨業만을 전수하였다. 어느날 부처님의 광명이 몸에 비치고 공중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소리를 꿈 꾸고, 제자들에게 “나의 왕생할 때가 이르렀다.” 하더니, 잠시 후 봉(奉)이 큰 소리로 염불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 가보니, 합장하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음악소리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법장(法藏) 비구니
송(宋) 법장 비구니는 금릉(金陵) 사람으로 일심으로 염불에 뜻을 두었던 이다. 밤에 불보살이 찾아오시고 광명이 절을 비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죽었다.
총론(總論)
부처님께서는 이모가 출가하려 하시자 정법이 이로 말미암아 감손減損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하셨다. 그러나 만약 여인으로서 출가한 자가 모두 위의 다섯 비구니만큼만 한다면 정법이 더욱 창성할 것이다. 그러나 세태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예언이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아! 진정으로 출가한 남자도 요 근래에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인이겠는가. 나는 유감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 제 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 수(隋) 황후
수문제(隋文帝)의 황후는 성이 독고(獨孤)씨로써, 비록 왕궁에 살았으나 여자의 몸이 된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어느날 아미타불을 부르다 8월 갑자(甲子)에 죽었다. 그 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 갖가지 음악이 진동하고 기이한 향기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공중으로부터 흘러오는 것이었다.
임금이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고 물으니, 사나는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호를 아미타불이라고 하십니다. 황후는 지은 업이 고결하여 저 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서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찬(贊)
궁중의 귀총(貴寵)을 버리고 정토를 바래 왕생한 이로서, 예전에는 위제(韋提)가 있었고, 지금은 이 분을 보겠다.
* 사제사나(闍提斯那): 원용願勇이라고 번역. 사견외도邪見外道. * 위제(韋提): 승묘신(勝妙身)으로 번역.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의 황후이며, 아사세왕의 어머니. 이 위제(희) 부인의 청(請)으로 부처님께서 '불설관무량수경'을 설하시게 되었다.
• 요(姚) 노파
당(唐)의 요 노파는 범행(范行)이라는 노파가 권하여 염불하게 되었다. 임종에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자 부처님에게 " 아직 범행 노파에게 고별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잠깐만 공중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범(范)이 오자 노파는 서서 죽었다.
찬(贊)
갈 길이 다달아 범(范)에게 고별한 것은 근본을 등지지 않은 것이요, 부처님이 공중에서 서서 기다리신 것은 늘 중생의 뜻을 따르신 것이다. 우뚝 서서 간 것도 기이한 일이다.
• 온정문(溫靜文)의 처
당(唐) 온정문의 처는 병주(幷州)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누워지내자 정문이 권하여 염불하게 하였다. 1년 만에 홀연히 정토를 보고, 그의 남편에게 "저는 이미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다음달에는 가게 될 것입니다." 하고, 부모님에게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나이다. 부디 일심으로 염불하여 후일 서방에서 만나뵙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하고는 갔다.
• 호장(胡長) 노파
송(宋)의 이(李)씨 호장 노파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후 밤낮으로 큰 소리로 염불하고 을 독송한 지 무려 10여 년이나 되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비단 보자기로 닾어주면서 " 할머니는 15일 자시(子時, 밤11시~1시)에 왕생할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 할머니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친지들과 고별하고, 때가 되자 기이한 광명 속에 단정히 앉아서 갔다. 7일 만에 화장하니, 치아는 백옥과 같고 혀는 홍련과 같고 누동자는 포도와 같으면서 모두 정밀하고 단단하여 깨뜨릴 수 없었다. 사리는 헬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화장한 곳에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마치 흰 양귀비와 같았다.
찬(贊)
몸의 여러 기관은 부서지지 않았고 사리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니, 세상에서 흔히 여자는 불결한 몸을 가졌다는 말이 천부당만부당 하지 않은가.
• 정씨(鄭氏)
송(宋)의 정씨는 전당사람이다. 날마다 을 독송하고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병 중에서 목욕을 하고는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들에게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이 장차(且) 오시려 한다." 하더니, 얼마 후에 합장하고 매우 기뻐하며 "불보살님이 오셨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를 들고 계시고, 여래께서는 나를 이끌어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 하고는, 즉시 죽었다.
• 진씨(陳氏) 노파
송(宋) 진씨 노파는 전당사람이다. 영지(靈芝) 율사에게서 보살계를 받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하루에 천 배의 절을 하였다. 어떤 때는 경상(經床) 위에 사리가 흩어진 적도 있었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곁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채 반 시각도 안 되어서 단정하고 의젓하게(凝然) 움직이지 않았다.
• 황씨(黃氏)
송(宋) 황씨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친정에 돌아와 정업 (淨業)을 정성들여 수행하였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인(印)을 맺고는 천천히 걷다 우뚝 서서 죽었다. 가족들이 땅에 재를 뿌리고 왕생한 곳을 시험했더니 연화 한 송이가 재 속에서 피어났다.
찬(贊)
재를 뿌렸다는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고, 인(印)을 맺고 서서 갔다는 사실로써 연품(蓮品) 에 올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왕씨(王氏) 부인
송(宋) 형왕(荊王)의 부인 왕씨는 정업을 전수하여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곁에서 모시는 자들이 그를 본받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오직 한 첩만이 게을러 부인이 나무라자 마침내 크게 깨닫고 정진하더니, 갑자기 병 없이 죽었다. 다른 첩의 꿈에 나타나
"부인의 가르침을 입어 이미 안양에 왕생하였소." 하고 말하였으나 부인은 믿지 않았다. 얼마 후 부인의 꿈에 그 첩과 함께 보배의 연못을 여행하게 되었다. 어떤 꽃을 보니 하늘 옷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양걸(楊傑)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꽃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마우(馬圩)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금대를 바라보니 광명이 휘황하였다. 첩이 이곳을 가리키며 "부인께서 태어날 곳입니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더욱 정진에 힘썼다. 81세 나던 생일날, 새벽에 촛불을 들고 향을 피운 채 관음각(觀音閣)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친지들이 막 차림새를 갖춰 헌수(獻壽)하려 하자 이미 서서 죽었다.
찬(贊)
여기까지 여인으로 서서 죽은 자가 세 사람이나 있었다. 금대가 휘황하였다는 것은 상품(上品)임을 알 수 있다. 누가 규각(閨閣: 부녀자의 거실. 곧 여인을 뜻함)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하던가!
• 풍씨(馮氏) 부인
송(宋) 광평군(廣平郡)의 풍씨 부인은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자수 심(慈受深) 선사로부터 재계염불(齋戒念佛)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깊이 믿고 힘써 행하여 10년 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싫어하여 사람들이 괴이쩍게 여기니
"청정한 세계에서 잘못되어 이곳에 왔다. 사바의 인연因緣이 다하면 서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엇이 괴이할게 있겠는가." 하였다. 임종에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여 가족들에게 " 나는 이미 정토로 돌아갔다. 부처님의 세계를 보니 화엄이나 '십육관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고는 영원히 갔다. 3일 후에 시체를 들어 옮기니 생시와 같았고, 기이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 왕씨(王氏)의 딸
송(宋) 길안(吉安)의 왕씨 딸은 미타․금강․관음 등 여러 가지 경전을 독송하면서 염불로 안심입명 (安心立命)을 찾았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미 염습을 했는데도 더러운 피가 흘러나왔다. 딸이,
"만약 제가 효성스러웠다면 더러운 냄새가 나지 마소서." 하고 발원하니, 이내 피가 멎었다. 아버지가 후실(後室)을 들이자 함께 정업을 닦았다. 나중에 병이 들어 스님에게 정토관법(淨土觀法) 을 설해 줄 것을 간청하고는,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편안히 누워 관음이 손을 들고 있던 깃발을 잡고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땅에 재를 뿌리고 태어난 곳을 시험했더니, 재 속에서 연꽃 몇 송이가 피어났다
• 주씨(周氏)
송(宋) 주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화대(花臺)에 왕생한 상서를 감응하고는, 자신이 새 옷을 갈아입고 부처님의 누각 위에서 예를 드리고 염불하는 것을 보고는, 식구들에게 "부지런히 정업을 닦으셔요. 서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서쪽을 향해 죽었다.
● 제 6권 [파계인(破戒人)의 왕생]
• 장선화(張善和)
당(唐) 장선화는 소 잡는 직업을 가졌던 자이다. 임종에 소떼들이 사람 말을 하며 목숨을 보상하라고 아우성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 처를 불러 “속히 스님을 불러 나를 위해 참회하게 하라” 하였다. 스님이 와서 “'관경觀經'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임종에 악상(惡相)이 나타나는 자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다’ 라고요”하고 깨우쳐 주었다. 그러자 화(和)가 “지옥이 눈 앞에 닥쳤습니다. 향로를 잡을 틈도 없습니다.” 하고는, 왼손에는 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향을 잡고는 서방을 향하여 지극하게 염불하더니, 미처 열 번도 채 채우기 전에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하고는 죽었다.
찬(贊)
지옥이 눈 앞에 닥친 것을 알고는 손으로 향로를 받들었다는 것은, 사정이 급박하고 마음이 조급하여 간절하고 정성스러웠을 뿐 그 밖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을 것이니, 비록 열 번을 채 채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가롭게 백 천만 억념(念)을 하는 자를 훨씬 뛰어넘었을 것이 아닌가. 그가 왕생했다는 사실은 결코 의심할 의지가 없다 하겠다. 혹시 보살의 시현이 아닐까 하고 의심할지 모르나, 그럴 수도 있겠으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 장종규(張鐘馗)
당(唐) 장종규는 닭 잡는 백정이었다. 병이 극심하여 중태에 빠져 누워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닭 떼를 몰아 그를 쪼아대니 피가 흘러 온 얼굴을 덮는 것을 보았다.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스님이 그를 위해 불상을 모셔주고 염불하도록 가르쳤다. 얼마 후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편안히 갔다.
• 웅준(雄俊)
당(唐) 웅준은 성도(成都)에 살았다. 기백과 용기가 지나쳐 계율 따위는 아예 무시했다. 일찍이 중노릇을 그만두고 군인이 된 적도 있었으나 다시 중이 되었다. 그리하여 경에 ‘한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며 “마침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였다.
이로부터는 비록 악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염불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미(丁未) 2월에 갑자기 죽었다가 하룻밤을 지나 다시 소생하여 “명부에 가니 주인되는 자가 ‘너를 잘못 데려왔다. 너는 본시 염불에 큰 믿음이 있었던 자가 아니니, 지금 인간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더욱 염불에 힘써라’하지 않겠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지옥에서도 도망할 틈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후에 산에 들어가 재계하며 염불하였다.
4년이 지난 신해(辛亥) 3월에 스님들을 모우고는 “이젠 내가 갈 때가 되었다.너희들은 성(城)으로 돌아가 나를 아는 자들을 만나거든 나를 대신해 말하라. 준(俊)은 염불하여 왕생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지옥은 사람을 도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고.”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다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향기와 비린내는 한 그릇에 담지 못한다. 악한 짓을 하다 염불을 핟 하면서 어찌 왕생할 수 있겠는가. 아! ‘마침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고 말한 것이나. 부처님을 부르면 죄를 멸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은 골수에 새겨진 것이었다. 곧 이 한 생각의 힘은 만균(萬鈞: 30만 근)보다 무겁다. 임종에 업을 바꾸어 왕생했다는 사실을 어찌 의심하랴.
• 유공(惟恭)
당(唐) 유공은 법성사(法性寺)에 살았다. 선량한 자를 우습게 여기고 나쁜놈들 만을 가까이 하니 술주정뱅이 노름꾼 따위가 언제나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러다 잠시 틈이 나면 염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절에 영규(靈巋)라는 자도 한 패거리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말했다.
‘영규는 악을 짓고 유공도 뒤지라면 서러워 할 지경이다. 지옥은 천 겹, 둘 다 들어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恭)이 그 말을 듣고는 “내가 비록 악업을 짓긴 했지만 지은 죄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침 정토 교주께서 나의 허물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도탄에서 건저주실 것이다. 어찌 다시 악도에 떨어지랴.” 하였다.
건녕(乾寧) 2년(895), 병이 위독하게 되었다. 그 때 규(巋)가 밖에서 돌아오다 어린애들처럼 때때옷을 차려입은 영인(伶人)* 몇 명을 만났다. 어디서 오는 자들인가를 물으니 “서쪽에서 왔소. 공 상인(恭上人)을 맞이하려 하오” 하더니 한 사람이 품 속에서 금병(金甁)을 꺼냈다.
병 속에는 연꽃이 있었는데 마치 주먹을 쥔 것처럼 오무라져 있었다. 잠시 후 차츰 꽃잎이 벌어져 사발만 해지니 그 광채가 눈이 부셨다. 이들은 절을 향해 내달음질 치더니 금새 보이지 않았다. 규가 절에 도착하니 종소리가 울려왔다. 공이 이미 죽은 것이었다.
• 형가(瑩珂)
송(宋) 형가는 잡천(霅川)의 요산(瑤山)에서 배웠던 자였으나 술 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히 파계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사는 자에게 부탁하여 계주(戒珠)선사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구해 읽었다. 한 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런 후에 방안에서 서쪽을 향해 선상(禪椅)을 놓고 음식을 끊어가면서 염불하였다. 3일째 되는 날, 꿈에 부처님이 “너는 10년을 더 살 수 있다. 우선 더욱 정업에 힘서야 한다.” 하였다. 그러자 가(珂)가 부처님에게 “설사 백년을 산다 해도 이 세계는 탁악(濁惡)하여 정명(正命)을 잃기 쉽습니다.
원하는 바는 하루빨리 안양에 왕생하여 여러 성인들을 모시고 싶습니다.”하고 아뢰었다. “너의 뜻이 그렇다면 3일 후에 반드시 너를 맞이하리라.” 그날이 되어 대중에게 '아미타경'을 독송하게 하고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여기에 오셨다”하고, 고요히 갔다.
* 왕생전(往生傳) : 송나라 비산계주(飛山戒珠)가 저술한 책. 양(梁), 당(唐), 송(宋)의 고승전 중에서 정토왕생한 75인의 사적을 뽑아 엮은 것.
• 중명(仲明)
송(宋) 중명은 산음(山陰) 보은사(報恩寺)에 살면서 평소 계행을 지키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 병이 들어 동학인 도영(道寧)에게 “나는 지금 마음이 매우 어지럽소. 무슨 약으로 치료하면 좋겠소?”하고 물었다.
영寧은 호흡을 따라 염불하게 하였다. 명明은 가르친 대로 시행하였으나 7일 째 되는 날에는 힘이 이미 탈진하였다. 영이 이번엔 눈 앞의 불상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게 오래하여 홀연히 두 보살을 보았고, 다시 부처님을 보고는 눈을 감고 갔다
• 오경(吳瓊)
송(宋) 오경은 임안(臨安) 사람이다.
본시 중이었으나 도를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 전후에 두 번 장가들어 아들 둘을 얻었다. 짐승을 잡고 술을 파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푸줏간에서 닭이나 오리 따위를 죽여 이것을 치켜들고는 “아미타불님! 이 몸 어서 데려가오”하며 연신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칼 질을 하여, 고기를 썰 때마다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눈 위에 계란같이 생긴 혹이 생기자 몹시 두렵고 걱정이 되어, 초암(草庵)을 짓고 처자를 흩어버리고서는 염불과 예참으로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소흥(紹興) 23년(1153), 사람들에게 “경(瓊)이 이젠 내일 술시(戌時, 오후5시~7시)에 떠나오” 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다음날 저녁 베옷으로 술을 바꾸어 마시고는 이렇게 노래 한 수를 지었다.
술과 같이 다 공(空)한 것
무슨 선종(禪宗) 따위 물으랴
오늘은 부디 안녕히
명월청풍(明月淸風)과 같이
사주개공 似酒皆空
문심선종 問甚禪宗
금일진중 今日珍重
명월청풍 明月淸風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 합장 염불하다가, “부처님이 오셨다”하고 부르짖고는 죽었다.
• 김석(金奭)
송(宋) 김석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어부였다. 어느날 갑자기 크게 반성하고 계행을 지키며 정진하여 하루 만 번의 염불을 오래토록 지속하였다. 나중에 병 없이 가족에게 말하기를 “아미타불과 두 보살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나는 이제 정토로 돌아가련다”하고는, 향을 피우고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석(奭)의 일은 선화(善和)나 종규(鐘馗)와는 다르다. 저들은 평소에는 악업을 짓다 임종에 이르러 정성을 다했거니와, 이 이는 미리 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오랫동안 선업을 닦았다. 왕생의 품위도 필시 저 두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다
• 총론(總論)
끝없이 넓은 고해(苦海)는 그 언덕이 머리를 돌이키는 데 있고, 한없는 시간에 쌓인 어둠은 그 밝음이 햇불 하나에 있다. 정토가 악인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허물을 고치는 곳에 다시 살아날 문이 있음을 깨닫고 통렬히 자신의 허물을 뉘우친다면 옳거니와, 업을 가지고도 만에 하나 요행僥倖을 바란다면 어림없는 노릇이다.
예전의 악인들은 이것으로 약을 삼았으나, 요즘의 악인들은 이것에 집착하여 병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전의 악인은 악인이면서 선인이었으나, 요즘의 악인은 악인 중의 악인이다. 슬프다.
●제 7권 [축생의 왕생]
• 용(龍)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용 한 마리가 있었는데 금시조(金翅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용의 몸을 받았으나 이제가지 살생한 적이 없이 물결 속을 희롱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한 후에는 반드시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찬(贊)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것이 정업의 정인(正因)이다. 용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으니 왕생은 진정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 앵무새(鸚鵡)
당(唐) 정원(貞元. 785-805) 중에 하동에 배(裵)시 성을 가진 자가 앵무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늘 염불하면서 오후에는 먹이도 먹지 않았다. 임종에 열 번 염불하고 숨이 넘어갔는데 불에 태워 사리 10여 낱을 얻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다. 혜관(慧觀)스님이란 분이 벽돌을 구워 탑을 세우고 이 신비한 일을 널리 알렸다. 성도(成都)의 윤 위고(尹韋皐)가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 공상(空相)을 무념에서 깨달아 진골(眞骨)을 죽음에서 남겼네.’ 하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구관조) 1
송(宋) 황암(黃岩) 정등사(正等寺)의 관(觀) 공이 구욕새를 길렀는데, 말을 할 줄 알아 늘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서서 죽길래 흙을 파고 묻었더니 그 자리에서 붉은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기이하게 여겨 파 보니 혀 끝에서 돋아난 것이었다. 영지율사(靈芝律師)가 이 사실을 찬탄한 적이 있다. ‘새장에 갇혀 서서 죽은 것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죽은 후 붉은 연꽃도 너무나 신기하다’라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흔히 ‘팔가(八哥)새’라 한다. 때까치 비슷하게 생긴 새로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
• 구욕새(鴝鵒) 2
담주(潭州)에 어떤 자가 구욕새를 길렀는데 이 새가 염불할 줄을 알았다. 죽은 후에 관에 넣어 장사지냈는데, 홀연히 연꽃 한 송이가 그 입에서 나와 피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노래한 것이 있다.
신비한 새 한 마리 있었네. 이름은 팔가(八哥)였네 스님 입을 따라 미타를 염할 줄 알아
죽은 후 평지에 묻으니 연화가 피었네
사람으로 그럴 줄 모르면 아! 어찌해
유일령금호팔가 有一靈禽號八哥
해수승구념미타 解隨僧口念彌陀
사매평지련화발 死埋平地蓮花發
인부회심쟁나하 人不回心爭奈何
찬(贊)
앵무나 구욕한테 사람이 염불을 가르치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왕생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는가. 아! 세상 사람들의 경우만 해도 누구나 염불의 가르침을 듣긴 하지만 어떤 이는 신심으로 염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염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왕생하는 자는 드문 것이다. 저 앵무나 구욕만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는가.
• 총론(總論)
어떤 이는 ‘사람은 신령하고 축생은 어리석다. 어떻게 축생이 왕생往生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성정(性情)이 있는 것은 모두 부처의 영각(靈覺)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미혹함이 두텁고 엷은 것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과 축생으로 나뉘어지지만 신령하고 어리석음이 균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꿩이 을 듣고 다음 생에는 스님이 된 적도 있었고,
소가 부처님의 얼굴을 보고는 죽어 천상에 태어난 사실은 분명히 여러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지옥 중생이나 귀신이나 축생도 모두 나의 국토에 태어나과저’했던 것이 법장비구의 본원(本願)이었음에랴.
안타까운 점은, 사람으로서 축생의 왕생을 보고도 무덤덤히 깨달을 줄 모르고 오탁(五濁)을 감수하거나 꼼짝할 수 없이 윤회에 빠져, 숨 한번 쉬지 못하면 형체가 비늘이나 깃털로 바뀌어도 스스로 그런 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왕생집 (往生集) 마침-
[정토종(蓮宗) 제8조 연지대사(蓮池大師, 운서, 주굉): 1540년경, 明 世宗, 항주 스님)]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 제 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
• 대명(大明) 비구니
수(隋) 대명 비구니는 방에 들어가 예념(禮念)할 때마다 먼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입에 침향(沈香)을 머금었다. 문제(文帝)의 왕후가 매우 가까이 하였다. 죽는 날, 침향이 방에 가득하더니, 잠시 후에 광명이 구름과 같이 일며 은은히 서쪽을 향해 사라지는 것을 온 대중이 보았다.
찬(贊)
어떤 비구는 을 독송하여 후에 영이(靈異)한 과보를 감응했고, 또 어떤 스님은 을 독송하여 수특(殊特)한 예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염불하는 자로서 과연 몇 사람이나 명(明)과 같이 하는 자가 있는가? 누구라도 이렇게만 염불한다면 천이면 천 사람, 만이면 만 사람, 누구라도 왕생하지 못할 자가 없다.
• 정진(淨眞) 비구니
당(唐) 정진 비구니는 장안 적선사(積善寺)에 살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하며 10만 번을 독송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어느날 제자에게 “다섯 달 동안에 열 번이나 부처님을 보았고 두 번 보련화(寶蓮花) 속에서 동자가 뛰노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 하고는, 가부좌하고 죽었다. 상서로운 광명이 암자에 가득하였다.
• 오성(悟性) 비구니
당(唐) 오성 비구니는 여산에서 염불하며 지극히 왕생을 발원하였다. 어느날 홀연히 공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곁에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중품(中品)에 왕생하게 되었다. 함께 염불정진하던 이들이 모두 연꽃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도 노력하라.” 하고는 갔다.
찬(贊)
상품과 중품의 지위를 두 비구니가 능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안으로 스스로 실행했던 얕고 깊은 정도를 살펴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밖으로 감응의 낮고 못하고를 살펴보았기 때문으로, 괜한 말이 아니다.
• 능봉(能奉) 비구니
송(宋) 능봉 비구니는 전당 사람으로, 정업淨業만을 전수하였다. 어느날 부처님의 광명이 몸에 비치고 공중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소리를 꿈 꾸고, 제자들에게 “나의 왕생할 때가 이르렀다.” 하더니, 잠시 후 봉(奉)이 큰 소리로 염불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 가보니, 합장하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음악소리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법장(法藏) 비구니
송(宋) 법장 비구니는 금릉(金陵) 사람으로 일심으로 염불에 뜻을 두었던 이다. 밤에 불보살이 찾아오시고 광명이 절을 비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죽었다.
총론(總論)
부처님께서는 이모가 출가하려 하시자 정법이 이로 말미암아 감손減損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하셨다. 그러나 만약 여인으로서 출가한 자가 모두 위의 다섯 비구니만큼만 한다면 정법이 더욱 창성할 것이다. 그러나 세태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예언이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아! 진정으로 출가한 남자도 요 근래에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인이겠는가. 나는 유감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 제 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 수(隋) 황후
수문제(隋文帝)의 황후는 성이 독고(獨孤)씨로써, 비록 왕궁에 살았으나 여자의 몸이 된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어느날 아미타불을 부르다 8월 갑자(甲子)에 죽었다. 그 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 갖가지 음악이 진동하고 기이한 향기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공중으로부터 흘러오는 것이었다.
임금이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고 물으니, 사나는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호를 아미타불이라고 하십니다. 황후는 지은 업이 고결하여 저 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서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찬(贊)
궁중의 귀총(貴寵)을 버리고 정토를 바래 왕생한 이로서, 예전에는 위제(韋提)가 있었고, 지금은 이 분을 보겠다.
* 사제사나(闍提斯那): 원용願勇이라고 번역. 사견외도邪見外道. * 위제(韋提): 승묘신(勝妙身)으로 번역.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의 황후이며, 아사세왕의 어머니. 이 위제(희) 부인의 청(請)으로 부처님께서 '불설관무량수경'을 설하시게 되었다.
• 요(姚) 노파
당(唐)의 요 노파는 범행(范行)이라는 노파가 권하여 염불하게 되었다. 임종에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자 부처님에게 " 아직 범행 노파에게 고별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잠깐만 공중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범(范)이 오자 노파는 서서 죽었다.
찬(贊)
갈 길이 다달아 범(范)에게 고별한 것은 근본을 등지지 않은 것이요, 부처님이 공중에서 서서 기다리신 것은 늘 중생의 뜻을 따르신 것이다. 우뚝 서서 간 것도 기이한 일이다.
• 온정문(溫靜文)의 처
당(唐) 온정문의 처는 병주(幷州)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누워지내자 정문이 권하여 염불하게 하였다. 1년 만에 홀연히 정토를 보고, 그의 남편에게 "저는 이미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다음달에는 가게 될 것입니다." 하고, 부모님에게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나이다. 부디 일심으로 염불하여 후일 서방에서 만나뵙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하고는 갔다.
• 호장(胡長) 노파
송(宋)의 이(李)씨 호장 노파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후 밤낮으로 큰 소리로 염불하고 을 독송한 지 무려 10여 년이나 되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비단 보자기로 닾어주면서 " 할머니는 15일 자시(子時, 밤11시~1시)에 왕생할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 할머니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친지들과 고별하고, 때가 되자 기이한 광명 속에 단정히 앉아서 갔다. 7일 만에 화장하니, 치아는 백옥과 같고 혀는 홍련과 같고 누동자는 포도와 같으면서 모두 정밀하고 단단하여 깨뜨릴 수 없었다. 사리는 헬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화장한 곳에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마치 흰 양귀비와 같았다.
찬(贊)
몸의 여러 기관은 부서지지 않았고 사리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니, 세상에서 흔히 여자는 불결한 몸을 가졌다는 말이 천부당만부당 하지 않은가.
• 정씨(鄭氏)
송(宋)의 정씨는 전당사람이다. 날마다 을 독송하고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병 중에서 목욕을 하고는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들에게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이 장차(且) 오시려 한다." 하더니, 얼마 후에 합장하고 매우 기뻐하며 "불보살님이 오셨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를 들고 계시고, 여래께서는 나를 이끌어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 하고는, 즉시 죽었다.
• 진씨(陳氏) 노파
송(宋) 진씨 노파는 전당사람이다. 영지(靈芝) 율사에게서 보살계를 받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하루에 천 배의 절을 하였다. 어떤 때는 경상(經床) 위에 사리가 흩어진 적도 있었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곁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채 반 시각도 안 되어서 단정하고 의젓하게(凝然) 움직이지 않았다.
• 황씨(黃氏)
송(宋) 황씨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친정에 돌아와 정업 (淨業)을 정성들여 수행하였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인(印)을 맺고는 천천히 걷다 우뚝 서서 죽었다. 가족들이 땅에 재를 뿌리고 왕생한 곳을 시험했더니 연화 한 송이가 재 속에서 피어났다.
찬(贊)
재를 뿌렸다는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고, 인(印)을 맺고 서서 갔다는 사실로써 연품(蓮品) 에 올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왕씨(王氏) 부인
송(宋) 형왕(荊王)의 부인 왕씨는 정업을 전수하여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곁에서 모시는 자들이 그를 본받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오직 한 첩만이 게을러 부인이 나무라자 마침내 크게 깨닫고 정진하더니, 갑자기 병 없이 죽었다. 다른 첩의 꿈에 나타나
"부인의 가르침을 입어 이미 안양에 왕생하였소." 하고 말하였으나 부인은 믿지 않았다. 얼마 후 부인의 꿈에 그 첩과 함께 보배의 연못을 여행하게 되었다. 어떤 꽃을 보니 하늘 옷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양걸(楊傑)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꽃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마우(馬圩)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금대를 바라보니 광명이 휘황하였다. 첩이 이곳을 가리키며 "부인께서 태어날 곳입니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더욱 정진에 힘썼다. 81세 나던 생일날, 새벽에 촛불을 들고 향을 피운 채 관음각(觀音閣)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친지들이 막 차림새를 갖춰 헌수(獻壽)하려 하자 이미 서서 죽었다.
찬(贊)
여기까지 여인으로 서서 죽은 자가 세 사람이나 있었다. 금대가 휘황하였다는 것은 상품(上品)임을 알 수 있다. 누가 규각(閨閣: 부녀자의 거실. 곧 여인을 뜻함)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하던가!
• 풍씨(馮氏) 부인
송(宋) 광평군(廣平郡)의 풍씨 부인은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자수 심(慈受深) 선사로부터 재계염불(齋戒念佛)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깊이 믿고 힘써 행하여 10년 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싫어하여 사람들이 괴이쩍게 여기니
"청정한 세계에서 잘못되어 이곳에 왔다. 사바의 인연因緣이 다하면 서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엇이 괴이할게 있겠는가." 하였다. 임종에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여 가족들에게 " 나는 이미 정토로 돌아갔다. 부처님의 세계를 보니 화엄이나 '십육관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고는 영원히 갔다. 3일 후에 시체를 들어 옮기니 생시와 같았고, 기이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 왕씨(王氏)의 딸
송(宋) 길안(吉安)의 왕씨 딸은 미타․금강․관음 등 여러 가지 경전을 독송하면서 염불로 안심입명 (安心立命)을 찾았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미 염습을 했는데도 더러운 피가 흘러나왔다. 딸이,
"만약 제가 효성스러웠다면 더러운 냄새가 나지 마소서." 하고 발원하니, 이내 피가 멎었다. 아버지가 후실(後室)을 들이자 함께 정업을 닦았다. 나중에 병이 들어 스님에게 정토관법(淨土觀法) 을 설해 줄 것을 간청하고는,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편안히 누워 관음이 손을 들고 있던 깃발을 잡고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땅에 재를 뿌리고 태어난 곳을 시험했더니, 재 속에서 연꽃 몇 송이가 피어났다
• 주씨(周氏)
송(宋) 주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화대(花臺)에 왕생한 상서를 감응하고는, 자신이 새 옷을 갈아입고 부처님의 누각 위에서 예를 드리고 염불하는 것을 보고는, 식구들에게 "부지런히 정업을 닦으셔요. 서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서쪽을 향해 죽었다.
● 제 6권 [파계인(破戒人)의 왕생]
• 장선화(張善和)
당(唐) 장선화는 소 잡는 직업을 가졌던 자이다. 임종에 소떼들이 사람 말을 하며 목숨을 보상하라고 아우성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 처를 불러 “속히 스님을 불러 나를 위해 참회하게 하라” 하였다. 스님이 와서 “'관경觀經'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임종에 악상(惡相)이 나타나는 자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다’ 라고요”하고 깨우쳐 주었다. 그러자 화(和)가 “지옥이 눈 앞에 닥쳤습니다. 향로를 잡을 틈도 없습니다.” 하고는, 왼손에는 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향을 잡고는 서방을 향하여 지극하게 염불하더니, 미처 열 번도 채 채우기 전에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하고는 죽었다.
찬(贊)
지옥이 눈 앞에 닥친 것을 알고는 손으로 향로를 받들었다는 것은, 사정이 급박하고 마음이 조급하여 간절하고 정성스러웠을 뿐 그 밖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을 것이니, 비록 열 번을 채 채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가롭게 백 천만 억념(念)을 하는 자를 훨씬 뛰어넘었을 것이 아닌가. 그가 왕생했다는 사실은 결코 의심할 의지가 없다 하겠다. 혹시 보살의 시현이 아닐까 하고 의심할지 모르나, 그럴 수도 있겠으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 장종규(張鐘馗)
당(唐) 장종규는 닭 잡는 백정이었다. 병이 극심하여 중태에 빠져 누워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닭 떼를 몰아 그를 쪼아대니 피가 흘러 온 얼굴을 덮는 것을 보았다.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스님이 그를 위해 불상을 모셔주고 염불하도록 가르쳤다. 얼마 후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편안히 갔다.
• 웅준(雄俊)
당(唐) 웅준은 성도(成都)에 살았다. 기백과 용기가 지나쳐 계율 따위는 아예 무시했다. 일찍이 중노릇을 그만두고 군인이 된 적도 있었으나 다시 중이 되었다. 그리하여 경에 ‘한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며 “마침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였다.
이로부터는 비록 악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염불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미(丁未) 2월에 갑자기 죽었다가 하룻밤을 지나 다시 소생하여 “명부에 가니 주인되는 자가 ‘너를 잘못 데려왔다. 너는 본시 염불에 큰 믿음이 있었던 자가 아니니, 지금 인간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더욱 염불에 힘써라’하지 않겠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지옥에서도 도망할 틈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후에 산에 들어가 재계하며 염불하였다.
4년이 지난 신해(辛亥) 3월에 스님들을 모우고는 “이젠 내가 갈 때가 되었다.너희들은 성(城)으로 돌아가 나를 아는 자들을 만나거든 나를 대신해 말하라. 준(俊)은 염불하여 왕생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지옥은 사람을 도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고.”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다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향기와 비린내는 한 그릇에 담지 못한다. 악한 짓을 하다 염불을 핟 하면서 어찌 왕생할 수 있겠는가. 아! ‘마침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고 말한 것이나. 부처님을 부르면 죄를 멸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은 골수에 새겨진 것이었다. 곧 이 한 생각의 힘은 만균(萬鈞: 30만 근)보다 무겁다. 임종에 업을 바꾸어 왕생했다는 사실을 어찌 의심하랴.
• 유공(惟恭)
당(唐) 유공은 법성사(法性寺)에 살았다. 선량한 자를 우습게 여기고 나쁜놈들 만을 가까이 하니 술주정뱅이 노름꾼 따위가 언제나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러다 잠시 틈이 나면 염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절에 영규(靈巋)라는 자도 한 패거리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말했다.
‘영규는 악을 짓고 유공도 뒤지라면 서러워 할 지경이다. 지옥은 천 겹, 둘 다 들어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恭)이 그 말을 듣고는 “내가 비록 악업을 짓긴 했지만 지은 죄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침 정토 교주께서 나의 허물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도탄에서 건저주실 것이다. 어찌 다시 악도에 떨어지랴.” 하였다.
건녕(乾寧) 2년(895), 병이 위독하게 되었다. 그 때 규(巋)가 밖에서 돌아오다 어린애들처럼 때때옷을 차려입은 영인(伶人)* 몇 명을 만났다. 어디서 오는 자들인가를 물으니 “서쪽에서 왔소. 공 상인(恭上人)을 맞이하려 하오” 하더니 한 사람이 품 속에서 금병(金甁)을 꺼냈다.
병 속에는 연꽃이 있었는데 마치 주먹을 쥔 것처럼 오무라져 있었다. 잠시 후 차츰 꽃잎이 벌어져 사발만 해지니 그 광채가 눈이 부셨다. 이들은 절을 향해 내달음질 치더니 금새 보이지 않았다. 규가 절에 도착하니 종소리가 울려왔다. 공이 이미 죽은 것이었다.
• 형가(瑩珂)
송(宋) 형가는 잡천(霅川)의 요산(瑤山)에서 배웠던 자였으나 술 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히 파계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사는 자에게 부탁하여 계주(戒珠)선사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구해 읽었다. 한 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런 후에 방안에서 서쪽을 향해 선상(禪椅)을 놓고 음식을 끊어가면서 염불하였다. 3일째 되는 날, 꿈에 부처님이 “너는 10년을 더 살 수 있다. 우선 더욱 정업에 힘서야 한다.” 하였다. 그러자 가(珂)가 부처님에게 “설사 백년을 산다 해도 이 세계는 탁악(濁惡)하여 정명(正命)을 잃기 쉽습니다.
원하는 바는 하루빨리 안양에 왕생하여 여러 성인들을 모시고 싶습니다.”하고 아뢰었다. “너의 뜻이 그렇다면 3일 후에 반드시 너를 맞이하리라.” 그날이 되어 대중에게 '아미타경'을 독송하게 하고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여기에 오셨다”하고, 고요히 갔다.
* 왕생전(往生傳) : 송나라 비산계주(飛山戒珠)가 저술한 책. 양(梁), 당(唐), 송(宋)의 고승전 중에서 정토왕생한 75인의 사적을 뽑아 엮은 것.
• 중명(仲明)
송(宋) 중명은 산음(山陰) 보은사(報恩寺)에 살면서 평소 계행을 지키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 병이 들어 동학인 도영(道寧)에게 “나는 지금 마음이 매우 어지럽소. 무슨 약으로 치료하면 좋겠소?”하고 물었다.
영寧은 호흡을 따라 염불하게 하였다. 명明은 가르친 대로 시행하였으나 7일 째 되는 날에는 힘이 이미 탈진하였다. 영이 이번엔 눈 앞의 불상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게 오래하여 홀연히 두 보살을 보았고, 다시 부처님을 보고는 눈을 감고 갔다
• 오경(吳瓊)
송(宋) 오경은 임안(臨安) 사람이다.
본시 중이었으나 도를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 전후에 두 번 장가들어 아들 둘을 얻었다. 짐승을 잡고 술을 파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푸줏간에서 닭이나 오리 따위를 죽여 이것을 치켜들고는 “아미타불님! 이 몸 어서 데려가오”하며 연신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칼 질을 하여, 고기를 썰 때마다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눈 위에 계란같이 생긴 혹이 생기자 몹시 두렵고 걱정이 되어, 초암(草庵)을 짓고 처자를 흩어버리고서는 염불과 예참으로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소흥(紹興) 23년(1153), 사람들에게 “경(瓊)이 이젠 내일 술시(戌時, 오후5시~7시)에 떠나오” 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다음날 저녁 베옷으로 술을 바꾸어 마시고는 이렇게 노래 한 수를 지었다.
술과 같이 다 공(空)한 것
무슨 선종(禪宗) 따위 물으랴
오늘은 부디 안녕히
명월청풍(明月淸風)과 같이
사주개공 似酒皆空
문심선종 問甚禪宗
금일진중 今日珍重
명월청풍 明月淸風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 합장 염불하다가, “부처님이 오셨다”하고 부르짖고는 죽었다.
• 김석(金奭)
송(宋) 김석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어부였다. 어느날 갑자기 크게 반성하고 계행을 지키며 정진하여 하루 만 번의 염불을 오래토록 지속하였다. 나중에 병 없이 가족에게 말하기를 “아미타불과 두 보살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나는 이제 정토로 돌아가련다”하고는, 향을 피우고 단정히 앉아 죽었다.
찬(贊)
석(奭)의 일은 선화(善和)나 종규(鐘馗)와는 다르다. 저들은 평소에는 악업을 짓다 임종에 이르러 정성을 다했거니와, 이 이는 미리 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오랫동안 선업을 닦았다. 왕생의 품위도 필시 저 두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다
• 총론(總論)
끝없이 넓은 고해(苦海)는 그 언덕이 머리를 돌이키는 데 있고, 한없는 시간에 쌓인 어둠은 그 밝음이 햇불 하나에 있다. 정토가 악인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허물을 고치는 곳에 다시 살아날 문이 있음을 깨닫고 통렬히 자신의 허물을 뉘우친다면 옳거니와, 업을 가지고도 만에 하나 요행僥倖을 바란다면 어림없는 노릇이다.
예전의 악인들은 이것으로 약을 삼았으나, 요즘의 악인들은 이것에 집착하여 병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전의 악인은 악인이면서 선인이었으나, 요즘의 악인은 악인 중의 악인이다. 슬프다.
●제 7권 [축생의 왕생]
• 용(龍)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용 한 마리가 있었는데 금시조(金翅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용의 몸을 받았으나 이제가지 살생한 적이 없이 물결 속을 희롱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한 후에는 반드시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찬(贊)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것이 정업의 정인(正因)이다. 용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으니 왕생은 진정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 앵무새(鸚鵡)
당(唐) 정원(貞元. 785-805) 중에 하동에 배(裵)시 성을 가진 자가 앵무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늘 염불하면서 오후에는 먹이도 먹지 않았다. 임종에 열 번 염불하고 숨이 넘어갔는데 불에 태워 사리 10여 낱을 얻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다. 혜관(慧觀)스님이란 분이 벽돌을 구워 탑을 세우고 이 신비한 일을 널리 알렸다. 성도(成都)의 윤 위고(尹韋皐)가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 공상(空相)을 무념에서 깨달아 진골(眞骨)을 죽음에서 남겼네.’ 하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구관조) 1
송(宋) 황암(黃岩) 정등사(正等寺)의 관(觀) 공이 구욕새를 길렀는데, 말을 할 줄 알아 늘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서서 죽길래 흙을 파고 묻었더니 그 자리에서 붉은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기이하게 여겨 파 보니 혀 끝에서 돋아난 것이었다. 영지율사(靈芝律師)가 이 사실을 찬탄한 적이 있다. ‘새장에 갇혀 서서 죽은 것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죽은 후 붉은 연꽃도 너무나 신기하다’라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흔히 ‘팔가(八哥)새’라 한다. 때까치 비슷하게 생긴 새로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
• 구욕새(鴝鵒) 2
담주(潭州)에 어떤 자가 구욕새를 길렀는데 이 새가 염불할 줄을 알았다. 죽은 후에 관에 넣어 장사지냈는데, 홀연히 연꽃 한 송이가 그 입에서 나와 피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노래한 것이 있다.
신비한 새 한 마리 있었네. 이름은 팔가(八哥)였네 스님 입을 따라 미타를 염할 줄 알아
죽은 후 평지에 묻으니 연화가 피었네
사람으로 그럴 줄 모르면 아! 어찌해
유일령금호팔가 有一靈禽號八哥
해수승구념미타 解隨僧口念彌陀
사매평지련화발 死埋平地蓮花發
인부회심쟁나하 人不回心爭奈何
찬(贊)
앵무나 구욕한테 사람이 염불을 가르치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왕생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는가. 아! 세상 사람들의 경우만 해도 누구나 염불의 가르침을 듣긴 하지만 어떤 이는 신심으로 염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염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왕생하는 자는 드문 것이다. 저 앵무나 구욕만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는가.
• 총론(總論)
어떤 이는 ‘사람은 신령하고 축생은 어리석다. 어떻게 축생이 왕생往生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성정(性情)이 있는 것은 모두 부처의 영각(靈覺)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미혹함이 두텁고 엷은 것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과 축생으로 나뉘어지지만 신령하고 어리석음이 균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꿩이 을 듣고 다음 생에는 스님이 된 적도 있었고,
소가 부처님의 얼굴을 보고는 죽어 천상에 태어난 사실은 분명히 여러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지옥 중생이나 귀신이나 축생도 모두 나의 국토에 태어나과저’했던 것이 법장비구의 본원(本願)이었음에랴.
안타까운 점은, 사람으로서 축생의 왕생을 보고도 무덤덤히 깨달을 줄 모르고 오탁(五濁)을 감수하거나 꼼짝할 수 없이 윤회에 빠져, 숨 한번 쉬지 못하면 형체가 비늘이나 깃털로 바뀌어도 스스로 그런 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왕생집 (往生集) 마침-
[정토종(蓮宗) 제8조 연지대사(蓮池大師, 운서, 주굉): 1540년경, 明 世宗, 항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