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사를 키워 인류를 구해야

 

원제: 병균보다 의사가 더 해롭다(Doctors Are More Harmful Than Germs)

 

연합뉴스

2018-08-08

 

 

신간 '좋은 의사는 소염제를 처방하지 않는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현대의학은 염증을 제거해야 할 악(惡)으로 간주한다.

 

염증을 제거해야 병도 낫는다고 본다. 설사를 하면 멈추게 하고 열이 나면 떨어뜨려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통합의학 권위자이자 미국 의학박사인 하비 비겔슨은 최근 국내 출간된 저서 '좋은 의사는 소염제를 처방하지 않는다'(라의눈 펴냄)를 통해 이 같은 주류 현대의학의 치료철학에 반기를 든다.

책에 따르면 인체는 자체로 뛰어난 자연치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체는 문제가 생긴 부위를 격리하고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벽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염증'이다.

염증은 상처와 감염에 대한 자연스러운 면역반응이자 인체의 기초적인 치유 과정 일부다. 따라서 염증 작용을 방해하는 것은 정상적인 치유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비겔슨 박사는 수술이나 약물을 남용해 인체의 자연적인 치유 과정을 방해하는 의사들의 인위적 개입이 문제를 키우고 악화한다고 본다.

 

특히 수술로 인한 흉터가 치유에 꼭 필요한 체액의 흐름을 가로막아 염증이 해소되지 못하게 고립시킴으로써 인체에 해를 끼치고 만성질환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병균보다 의사가 더 해롭다(Doctors Are More Harmful Than Germs)"고 단언한다. 이는 책 원제이기도 하다.

 

비겔슨 박사는 오늘날 의료계 안팎에 만연한 수술 만능주의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합성식품이나 유전자조작식품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진료실에서 의사가 무릎관절이 나빠져 교체해야 한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수술 날짜를 잡는다는 것이다.

 

한때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긴 의사들이 자연분만의 이로움을 인정하기 시작하기는 아주 최근 일이다.

비겔슨 박사는 소아마비나 천연두 같은 감염성 질환이나 응급의학 분야에서 이룬 주류 현대의학의 성과를 인정한다.

 

그러나 암을 비롯해 과민성대장증후군, 관절염, 근육위축증, 다발성경화증, 심장질환, 신장질환,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만성질환들에서는 근본원인을 찾지 않고 증상에 집착해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낸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의사의 잘못된 개입이 낳는 만성질환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비겔슨 박사는 질병의 원인은 몸에 침입한 세균이기 때문에 세균만 죽이면 질병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현대의학의 치료철학에 반대한다. 세균은 인체 안팎에 상존하며 치료는 세균을 없애는 게 아니라 세균이 번성할 수 없게 생체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또한 환자 개개인의 체질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질병에 대한 현대의학의 획일적 접근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사람마다 독특한 생화학적 흔적이 있어 의학적 해결 방법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몸 전체의 유기적 관계와 균형, 선천적인 치유력을 중시하는 한의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비겔슨 박사는 침술, 동종요법, 정골의학 등 각종 전통의학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나아가 전통의학을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고 배제함으로써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현대의학에 맞선다.

 

"특정 형태의 의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일 것이다. 바로 거대 제약회사와 보험회사, 의사협회다. 현대의학은 건강관리에 있어 하나의 접근법일 뿐이다.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분명 이것은 가장 오래되지도, 가장 많이 입증되지도, 가장 믿을만하지도, 심지어 가장 효율적이지도 않다!"

 

박병오 옮김. 320쪽. 1만6천원.

 

abullapia@yna.co.kr

"치료가 합법과 불법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구당 메시지)

 

[지난 9월 9일(2017) 서울 정통 침뜸 평생교육원에서는 수강생 합동 졸업식이 이었다. 이번 졸업식에는 오랜만에 구당 선생께서 직접 참석하시어 졸업생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침뜸이 왜 필요한 의학이고, 뜸은 왜 자율화돼야 하는지 특강을 실시했다. 구당 선생의 특강 요지를 발췌 게재한다.]

 

 

뜸사랑 교육의 시작, 붕어빵 교육

 

오늘 이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니까, 내가 복이 많은지 여러분이 복이 많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둘이 다 복이 있는 것 같거든요. 사실 뜸사랑의 정통 침뜸 교육은 내가 시작을 하긴 했는데 정회원 3기까지는 대부분이 저한테 배웠고, 5기까지는 부분적으로 지도한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 후에는 배웠던 분들이 교수로서 다시 여러분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침뜸 교육은 세계에 없는 교육이었고, 여러분은 세계에 없는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자연이 그렇게 세계가 그렇고 모두가 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그걸 알았기 때문에 침뜸을 이어주기 위해서 3회까지 그렇게 하고, 그다음부터는 저와 똑같은 붕어빵으로 교육을 해왔습니다.

 

붕어빵이 된 여러분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침뜸으로 치료하고, 인정받고, 대우도 받습니다. 우리 회원들은 똑같이 어디 가든지 다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여러분들 외에는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그건 왜 우리가 그렇게 해달라는 게 아니, 자기들이 이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 면허로 바꿔주기도 하고, 눌러앉아 개업하면 뭐든 돕겠다고 얘기도 합니다.

 

서양의학은 법 필요, 침뜸은 불필요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하는 것은 전 세계 의학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는 침과 뜸은 법이 없을 때부터 시작되어 법이 없이도 해왔습니다. 우리 침뜸 의학은 죽이고 잘라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의학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셨으니까 더 말할 필요 없이 잘 아실 겁니다. 지금 현재도 사실은 필요가 없습니다.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로는 법으로 해석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사실 서양의학은 절대 법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이고 잘라버리고 없애는 의학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서양의학은 두 가지가 다 없애 버리는 거 아닙니까? 죽여버리는 것도 없애버리는 것, 잘라버리는 것도 없애 버리는 것. 그거를 하는 것이 서양의학이기 때문에 법이 없이는 안 됩니다. 죽이고 자르고 없애는 의사들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받는 사람을 위해서도 법이 절대 있어야 합니다.

 

치료받던 사람이 죽거나 병신이 된다면 그 치료 행위를 불법으로 보아야겠지만, 치료받은 후 더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데도 침뜸을 불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힘의 논리로 불법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합법과 불법의 구별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醫는 본래 하나입니다. 사람 살리는 데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의를 하나로 만들어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醫師들이 침과 뜸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진정한 통합의학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보게 되니 힘이 생깁니다. 막 힘이 솟습니다. 나는 저승에 가서도 침뜸을 할 것인데 여러분과 내가 침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처럼 세계 모든 인류가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봅시다.

 

침은 쇠줄, 통하는 것, 뜸은 피 만드는 것

 

침은 분명히 쇠꼬챙입니다. 금속으로 만든 쇠꼬챙이지요. 뜸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달라진 것 없이 쑥에서 빼낸 쑥의 섬유질을 뽑아서 사용합니다. 이 뜸으로 상처를 내고 그 자리에 생기는 물체가 바로 피 만드는 원료.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공부가 달라진 것이 바로 그것. 침은 電氣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전기는 쇠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전기는 쇠라야만 통하는데 사람 몸속에도 쇠줄이 있다. 쇠줄의 길이까지도 지금은 다 나왔죠. 사람 몸 안의 쇠줄, 전깃줄 길어야 얼마냐. 12만 킬로미터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침은 전기를 통하는 것, 뜸은 전깃줄을 만드는 것. 이것이 확실히 알아졌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 여러분들은 공부를 하셨고, 어디서든 여기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도 얘기를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움직임에는 전기가 다 있고, 거대한 우주도 전기 기운으로 돌아가는 것을 여러분도 다 압니다.

 

뜸 자율화는 시대적 소명

 

사실상 법이 필요없는 침뜸을 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거 아닙니까? 이제 여러분들도 침뜸을 배웠으니 사용해야 합니다. 침 한 통, 뜸 한 줌이면 세계 어디를 가도 여러분은 침뜸 의료인입니다.

 

아무리 악법도 법이라지만 우리는 손가락 하나 구부려 놓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혀 최소 자신과 가족의 건강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는 침뜸을 법으로 묶어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고령화의 위험도, 건강 재정의 빨간불도, 일자리의 해결도 그리고 국민 모두의 건강을 위해 뜸만큼은 자율화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졸업은 세계 하나뿐인 졸업입니다. 어딜 가서도 여러분의 졸업장은 당당합니다. 내놓고 자랑해도 됩니다. 하나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의학을 해 온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보니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 같이 노력해서 뜸의 자율화와 통합의학이란 멋진 조화를 만들어 냅시다. 꼭 그렇게 되도록 우리 후세들한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도록 또, 이어주도록 제대로 한 번 해봅시다.

(권두언)침과 뜸이 무엇인고?(계간 구당 2017 가을)

 

 

김남수 본지 발행인, 한국정통침구학회 회장, 정통침뜸평생교육원장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묻는다.

과거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朴正熙 정부는 침구사제도를 없애 버렸다,

張勉 정부는 침구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다 날벼락을 맞았다,

그런데 아직도 이 103살 늙은 침구사에게는 환자들이 줄을 잇는다.

한의사들은 환자 없어 문을 닫는다지만 나는 쉴 틈도 없다,

왜 그런가? 장관에게 묻는다.

뜸 자율화로 一擧三得을 거둘 의향은 없는지...?

침구사제도가 아직도 필요 없는지...?]

 

 

○침과 뜸이 무엇인가?

침과 뜸은 의료기구이다.

그렇다면 침과 뜸이 의료기구라면

무엇을 하는 것인가?

 

침과 뜸이란 모든 생명체에

침으로 찌르고 뜸으로 火傷을 입힘으로써

陰陽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다.

 

침과 뜸이 음양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떠한 것이 잘못된 것이고

잘못된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침뜸의 원리인가?

 

이제는 과학발달로 인체의 生理 작용을 알게 되면서

病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침뜸에서는 많아진 것도 잘못된 것이고,

줄어져서 작아진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이것을 병이라고 하였다.

 

이 많고 작은 것을 원래 상태로

조절해 주는 것이 침뜸이고,

침뜸을 하려면 우선 虛實을 알아야 하므로

그것을 알기 위한 행위를 診察(진찰)이라고 하였다.

 

 

○진찰이란 어떻게 하는가?

보는 진찰, 듣는 진찰, 만지는 진찰, 말로 하는 진찰,

이 네 가지 방법을 四診이라고 한다.

이 진찰방법으로 허실을 구별하여

허실보사를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補가 되고

어떻게 하면 瀉가 된다고 하는 것은

술자의 감각으로만 하였을 뿐,

보사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치료하였다고 하였고,

환자 본인의 말에 따라 효과의 유무를 아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을 수천 년을 하여 왔지만

부작용이 없고 효과가 있었기에

써오면서 전해져 내려왔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현재 의학이 발달된 것은 없는데 공학발달로 인해

보는 진찰과 듣는 진찰 두 가지는 크게 발전하였고,

보는 진찰은 크게 잘못을 저질러 놓았다.

잘 쓰고 있는 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잘라내고 없애버려서 안 보이게 하는 것을

고쳤다고 하며

이로 인해 다른 곳이 이상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쪽 팔을 없애 버림으로써 인해

다른 쪽 팔이 과로하게 되는 것을

그쪽으로 전이되었다고,

그 팔도 잘라 없애는 것을 치료라고 한다.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 가기를 무서워하면서

가지 않기에

하나, 둘 병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의 침뜸은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 정통 침뜸은 다른 것은 쓰지 않고

오직 침 하나, 뜸쑥 한 줌으로만 하여 오다가

이제는 공학발달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사람 몸 속에 電氣 발전소가 있고,

그 전기로 머지않아 손바닥에서

핸드폰 충전을 할 것라고 한다.

사람 몸 속에 전깃줄이 12만여 km나 되고,

그로 인해 전깃불도 켜지고,

전깃줄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기에

사람 몸 속의 이상도 전기가 통하고,

안 통하는 것으로 보고

이후부터 침은 통하는 것으로 하여

전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줄이 있어야 한다.

 

전기는 쇠가 아니면 통하지 않으므로

사람 몸 속에 전기가 통할 수 있는

쇠줄을 만들어야 한다.

피는 철분이고 쇠가루다.

혈관이라는 대롱 속에 담아서 사람 몸 속에

쇠줄이 되게 하는 것으로

그것이 전깃줄이다.

사람 몸 속에 발전소가 발전을 잘 하였어도

전깃줄이 없으면 그 전기는 쓰지 못하므로

전깃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뜸이다.

 

 

2017년 10월

국내 연구팀, 김치가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 예방 효과 입증

ㅡ잘 숙성한 김치일수록 섭취량 많을수록 웰빙 효과 증대

 

메디컬투데이 김동주

입력 2018-05-11

 

 

김치가 아토피 피부염, 천식,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과 비만, 심지어는 빈혈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나왔다. 김치가 적당히 숙성했을 때 먹는 김치가 건강 효능 면에서도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차연수 교수(한국영양학회장)팀은 1995∼2015년 국내외에서 발표된 김치 관련 연구논문 590편(한글 논문 385편, 영어 논문 205편)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차 교수팀이 분석한 대부분의 김치 관련 연구에서 김치와 김치 유산균은 산화적 스트레스(oxidative stress)ㆍ암ㆍ이상지질혈증ㆍ고혈압 예방을 돕고 면역력을 높이며 염증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을 대상으로 김치의 건강 효과를 추적한 연구에선 김치 섭취량이 많을수록, 김치가 잘 익을수록(숙성될수록) 건강에 더 이로운 것으로 드러났다. 한 예로 20∼30세 여성에게 7일간 김치를 하루 150g과 15g씩 제공한 연구에선 김치를 많이 먹은 여성의 장내 미생물 상태가 적게 먹은 여성보다 좋았다(장내 유해균 증식 억제, 유익균 증식 촉진). 성인 남성에게 4주간 배추김치를 하루 300g씩 섭취하게 한 결과 혈중 철분 (iron) 농도와 페리틴 (ferritin) 수치가 높아졌다. 이는 김치가 철분 부족이 주 원인인 빈혈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차 교수팀은 김치를 다룬 역학 연구논문 7편을 소개했다. 이중 2007∼2012년 한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보건복지부 수행) 결과를 토대로 한 연구에선 김치 섭취가 성인 남녀의 고혈압 유병률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활용한 또 다른 연구에선 김치를 하루 40g 미만 섭취하는 사람에 비해 그 이상으로 섭취하는 사람의 천식 유병률이 감소했다. 19~49세 성인의 김치 섭취와 아토피 피부염의 관련성을 분석한 역학 연구에선 김치를 하루 85~158g 섭취하는 사람은 0~36g 먹는 사람에 비해 아토피 피부염의 위험도가 0.68배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비염 유병도 김치를 하루 108~180 g 섭취하는 사람이 0~23.7g 먹는 사람보다 0.81배 낮았다.

 

차 교수팀은 논문에서 "김치를 많이 섭취할수록 천식ㆍ아토피 피부염ㆍ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세계김치연구소 하재호 소장은 "김치의 3대 웰빙 성분은 주재료인 배추 등 녹황색 채소, 부재료인 고추 등 다양한 향신료 양념에서 유래하는 성분, 유산균 발효 과정 중 생성되는 발효대산물"이라며 "비타민 B군ㆍ비타민 C 등 비타민, 칼슘ㆍ칼륨 등 미네랄, 식이섬유, 유산균이 풍부한 것이 김치의 영양상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김치 및 김치 유래 유산균의 건강 기능성에 대한 연구 동향 조사)는 한국영양학회가 출간하는 학술지 ‘영양과 건강 저널’(Journal of Nutrition and Health) 최근호에 소개됐다.

 

/메디컬투데이 김동주 기자

ed30109@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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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국의 발자취
 
일러두기: '우르국의 발자취'는 [여인왕국(무린바타)] 제4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드디어 유림 보살의 말문이 열렸다. 오래 전부터 시작된 지구성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애틀란티스, 무우, 레무리아 대륙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멸망하고, 그 후 한인들의 사회와 가야인의 발자취에 관하여 들려주었다. 이것은 흘러간 역사로서 실상을 모르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우매한가를 보여주는 역사였다.
자비의 마음으로 진녀에게 들려주는 고귀한 유림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시베리아 대륙과 만주 강역, 그리고 중원의 대륙에서 어지러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을 무렵, 12연방의 하나인 우르국도 가시밭길을 헤치는 고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왕검시대 이전에 티벳으로 자리를 옮겨갔던 우르인들...... 종족은 한 종족이었으나 그 파는 세 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가이야파와 샤카파, 그리고 우르그파로 나뉘게 되었다. 이들이 세 파로 나뉜 것은 한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우르국의 어느 스승 가문에 3남매가 탄생하여 성장하였다. 셋 모두 20세 이전에 영혼의 스승이 되어 있었다. 당시 우르인들은 3개의 큰 도시에 나뉘어 살고 있었는데, 이들 3남매는 우르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던지라 각각 세 도시의 스승으로 가게 되었다. 첫째가 가이야로서 북내 마을로 갔다. 둘째가 샤카로서 연인이었는데, 검은 머릿결과 아름다운 눈을 가진 그녀는 어느 곳보다도 여인들이 많이 며여 사는 남내 마을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르그는 붉은빛이 도는 머릿결을 갖고 태어난 예쁜 모습의 남아로 서내 마을로 가게 되었다. 이 세 사람은 우르인들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므로 한웅시대가 되기 직전까지 우르인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한웅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스승들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우르인들은 그 어느 종족보다도 스승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한웅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기댈 수 있는 영혼의 스승이 그들 곁을 떠나자 모두들 가슴 아파했다. 아, 영혼의 스승이여! 우르인들은 진리가 화현된 모습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스승이 그들 곁에서 사라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우르인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의 스승을 바라는 것 못지않게 우르의 피와 전통을 먼 후세에까지 지켜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가진 종족이었다. 그리하여 먼 대륙으로 이동하여 그들만의 은둔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르인들이 서로 헤어져 살기 시작한것은 '안부련' 천황때부터이다. 이제까지 살던 터전에서 샤카족이 맨 먼저 지금의 티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가이야족이 뒤따라 티벳으로 옮겨왔다. 우르그족만이 옛 조상의 땅을 지키면서 살아갔다.
 
한웅시대에 12연방국 전체에 스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한인시대 때처럼 스승이 많지 않았고, 사회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이다. 우르인들의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어느 연방국보다도 크고 깊었다. 그중에서도 샤카족은 더욱 그러하였다. 한인시대에 그 아름다웠던 여스승, 그리고 그 자비를 샤카인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샤카족과 가이야족은 연방국을 멀리한 채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티벳의 고원지대에서 은둔생활을 계속했다. 언젠가는 스승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종족이 모여 산 것은 불과 70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세월이었다. 가이야족은 오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일에 더욱 비중을 두는 종족이었다. 따라서 한인시대의 전통을 지키고 싶어했다.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는 우르의 문화, 우르의 것만을 고집하며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은 숭고하기까지 하였다.
 
반면, 샤카족은 모든 문화전통이란 한낱 물거품일 뿐, 잘못하다가는 물질욕에 사로잡히고 만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우르그족은 두 종족과는 반대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먼 곳의 이민족들에게까지 전해야 한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우르그, 샤카, 가이야족들은 이렇듯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달랐다. 이들의 생각이 이렇게 틀려진 것은 한인시대 때의 세 분의 스승이 각 도시에서 각자 자기 식의 얼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르그족을 남겨둔 채 티벳으로 이동한 샤카족과 가이야족 사이에는 같은 민족이요 같은 형제라 할지라도 서로가 추구하는 이상이 같지 않았기에 깊은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불과 70년 만에 헤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14만의 샤카족은 가이야족을 티벳 고원에 남겨둔 채 높은 히말라야를 넘어 천축국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인도에 이르러 푸른 초원이 드넓게 깔려 있는 기름진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수메르인들이 찾아오고 또 양운국인들도 찾아들었다.
 
샤카족 모두의 스승에게로 향하는 믿음과 기다림이란 너무도 간절하였다. 그 그리움이란 풀 한 포기 없는 열사의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심정이나 매한가지였다. 샤카족은 새로운 스승이 찾아오길 간절하게 기다렸다.(원주: 샤캬족의 마지막 성자가 '석가모니'이다.)
 
그러나 티벳의 우르그족이나 가이야족은 샤카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이야의 나이 먹은 이들은 새로 태어나는 어린 가이야들에게 전통을 계승시키며 이민족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우르그족은 서아시아로 떠난 수메르인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것은 모험이었다. 한인의 피가, 우르인의 피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미지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보다도 영혼의 불멸성을 믿으며 후세에 깨우친 존재가 자신들 앞에 나타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모험에 대한 두러움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르국의 우르그족의 뒤를 이어서 소수의 선비족도 따라갔다. 수메르인이 이동하여 머물던 곳이 바빌론이었다. 우르인, 그리고 선비인까지 찾아와 바빌로니아시대가 이루어졌고, 서아시아 민족들의 정신과 문화를 일깨우게 되었다.
 
우르국인들이 셋으로 분열되었듯, 수메르인들도 한인들의 터전 위에서 살아갈 적에 셋으로 분열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는 바빌로니아로 이동하였고, 또 하나는 인도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선군시대까지 히브리족을 수호하며 지냈다. 히브리인들이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수메르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을 위하여 수메르인들인 행했던 그 많은 노력을 히브리인들은 모르리라.
 
 
세월이 흘렀다. 모든 이들의 마음은 바람결에 따라 갈대가 춤을 추듯 흔들리며 분열과 전쟁과 탐욕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한웅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소도의 세계도 조금씩 변모했다. 그러나 소도의 세계는 결코 억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한인들 모두가 영혼의 스승이 존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샤카족이 기다리는 영혼의 스승은 인종과 이념, 사상은 물론 우리 인간의 것을 초월한, 오직 자비만이 흘러넘치는 스승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옛 스승이었던 샤카는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우르인의 마음에 자비를 심어주었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한편, 샤카족이 떠나간 이후 티벳의 가이야족은 오로지 전통계승에만 힘을 기울이며, 훗날 중화족의 습격을 받아 청구인의 도움으로 그들을 물리치기 전까지는 샤카족과 서로 왕래하면서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숫자의 중화인들의 기습을 받은 후 가이야족은 두 패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샤카족이 있는 천축땅으로 가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남으로 이동하여 고요한 밀림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샤카족이 있는 천축으로 가자는 쪽의 주장은 한인사회에서 어리석은 무리들과 어울려 다투며 사는 일은 더이상 자신들의 삶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동하여 밀림 속으로 들어가자는 쪽은 아직도 오랜 전통을 이어가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 가이야족이 이같은 일을 겪는 것은, 중화인들의 기습으로 38만여에 달하던 순수 가이야족이 16만여라는 반도 안되는 숫자로 줄어든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희생이랄 수가 없었다. 그저 억울한 개죽음이었을 뿐이다. 결국 10만여의 가이야족은 히말라야를 넘어 샤카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6만여 명은 지금의 라오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가이야족의 수난의 세월이 시작된다. 가이야족은 오랜 세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쳐왔었다. 눈물겨운 가이야족의 역사, 그러나 그들은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했다. 그들로서는 조상때부터 이어져내려온 값진 문화를, 그리고 온갖 진귀한 기록을 보존한다면 그것으로써 소임을 다한 것이었다.
 
그들이 지닌 전통 가운데는 눈부시고 값진 보석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았다. 물건이라면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정확히 계승시켰고, 글이라면 모두 외워 암기하도록 했으며, 수리라면 모두 풀어 이해시키며 전하였다.
 
가이야족은 밀림 속으로 이동하면서 더이상 어질게만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고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가이야족은 전통을 계승키 위하여 지금의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미얀마로, 그리고 다시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이동하는 매우 고생스럽고 고난스러운 세월을 이어갔다. 가이야족이 밀림 속에서 이렇게 자주 이동한 이유는 밀림 속엑지 중화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중화족을 만나 농경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였지만,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같이 사는 것을 피했다. 결코 중화족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싸움이 싫었고, 무엇보다도 희생당하기 싫어서였다.
 
가이야족은 이렇듯 고생을 자처한 종족이었다. 이들의 마음이 지극히 낮아서 이토록 간절히 전통을 이어가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이야족은 어느 종족보다도 깨다음의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깊은 뜻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옛 모습 그대로, 가이야의 피를 그대로 간직한 채 머나면 미래에까지 계승시키자는 것뿐이었다.
 
선군(단군)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르인들은 밀림의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여러 곳을 개척해 나갔다. 야수들의 위협 속에서 독충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우르인의 피를 지키며 전통을 계승하려는 저 가이야인들의 노력......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이야인들이 밀림 속에서 농사를 짓고 경작하는 모습을 오랜 세월 지켜보던 중화인들이 차츰 가이야인들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이야인들은 그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농경법을 가르쳐주고 되도록이면 싸움은 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과 가까이 하는 것은 가이야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으므로, 가이야인들은 부득이 자신들이 닦아놓은 터전을 중화족에게 내주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이야족(가야)의 이동
가이야인들이 밀림 속에서 나오려고 하던 때는 히브리인들이 수메르인들과 헤어지면서 인도로 들어가던 선군 한율시대와 비슷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동이 문제였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어디로 이동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가이야인들의 숙제였다.
그런데 기묘한 일이었다. 티벳에서 밀림으로 들어온 지 1천 년이 지나도록 인구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더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이 그대로 6만여를 유지한 채 지금껏 이어져온 것이다. 그들은 매우 신비롭고 오묘한 존재들이었기에 밀림속을 이동하면서도 이렇게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고도의 지혜를 지닌 가이야인들은 이미 남아와 여아를 가려서 임신하는 법과 인구가 늘고 줄어드는 이치를 알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이미 그 이론을 정립시켜놓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수를 알맞게 조절하여 태어나게 하였다. 부족함도 더함도 없었다. 그것이 인륜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훗날 가이야인들이 암울진 역사를 이어가는 업이 되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워야할 역사의 흐름을 위배하였으니 그 죄과를 받는 것이었다. 가이야인들은 미래를 알고 있었다. 머나면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전통을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너머 푸른 숲을 열며 살아가는 샤카족, 그들은 갠지스강을 사랑하였다. 그것은 모성이 깃들인 어머니의 젖줄이었다. 샤카족이 갠지스강을 사랑하듯 가이야족들도 메콩강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습한 밀림속을 멀없이 흐르는 아름다운 메콩강, 식물은 우거지고 그속에 동물들이 뛰어놀았다. 인간을 해치는 독충들이 있어도 자연의 한 부분이었고, 범과 사자 그리고 뱀과 같은 무리들이 있다 하여도 그것마저 함께 공존하는 자연의 부분이었다.
 
갠지스강은 말없이 그리고 고요하게 흐른다. 그러기에 그 강을 '어머니의 강'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갠지스강을 어머니의 강이라 한다면 메콩강은 바로 '여인의 강'이었다. 순결한 여인의 모습처럼 우거진 밀림 속을 흐르는 메콩강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가이야족은 이 아름다운 메콩강을 잊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떠나는 나그네의 심정과도 같은 가이야인들, 그들은 남아 있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곳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러나 더나야 했다. 우르의 피를 먼 후세에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민족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가이야인만이 살아갈 수 있는 더욱더 울창한 숲속으로 떠나야 했다.
 
가이야인들은 머나먼 미래를 예견하였다. 자신들이 들어가 살아야 할 터전이 동쪽의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미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한인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아니 그곳은 가이야인뿐만이 아니라 한인들 모두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었다. 산과 계곡이 많으며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그곳은 한인들의 맥을 이을 수가 있는 곳이었다. 산이 많기에 끊없는 지기가 한인의 몸을 감쌀것이며 '기'가 머문 곳이기에 오랜 세월 한인들을 보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여인의 기가 흐르고 남인의 정기가 머물고 있기에 시련이 찾아와도 먼 미래에 까지 한인의 맥을 이을 수가 있을 것이고, 가이야의 맥을 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이야의 장로들은 한인들의 맥이 동쪽의 끝으로 옮겨지기 전에 먼저 도착하려고 장구한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가이야의 인구는 모두가 6만여 명이었다. 6만여의 가이야인들은 모두 여섯 파로 나뉘어 앞으로 1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기간 동안 이동에 이동을 거듭하여 어느 방향으로든 동쪽 끝으로 가자고 약속했다. 어느 경로를 거치든 동쪽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만나 함께 가이야국을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여서스로 분열하여 1천 년의 기간이 흐른다 하여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어렵고도 모험적인 이 계획...... 그것은 가이야인들을 절벽 사이로 걷게 하는 계획이었다.
 
이들의 계획이 이루어진 것은, 마침내 여섯 파로 나뉘어 떠나게 된 것은 선군(단군) 고불새대였다. 이것이 훗날날 6가이야가 된 원인이었다. 여섯 파의 이름은 장로들의 이름을 따서 '뉴릉파', '소파', '시아파', '차요나파', '수르파', '금파'로 나뉘었고, 각 파마다 1만 명의 인원이었다.
 
가이야인들은 헤어지면서 서로간에 약속을 하였다. 마치 보물지도를 6장으로 나누어 보관하였다가 후세에 만나 다시 짜맞추자는 것과 같은 약속이었다. 가이야인들만의 전통이었던 깊은 학문, 그것은 주역의 다른 모습이었고 천부경의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의 모습이 서로 다르듯 이같은 수리에 있어서도 그 색깔을 달리하였다. 본래의 뜻은 같을 지라도 가이야인들만의 전통이 있었다. 심오한 비전들, 그것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원주: 이러한 비전을 현대인에게 맞게 밝힐 인재가 많이 드러나 옛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시대가 오리라.)
가이야인들만이 그 심오한 '맥'을 6등분하였다.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는 여섯 파 모두가 가이야 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약속하기를, 헤어진 후 각 파는 그들의 지녀들이 대를 이어갈 때 정해 놓은 것만을 가르치자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1천 년 후에 가이야인들이 동쪽 끝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면 그때 여섯 파들은 조상 때부터 이어내려온 맥을 각자 제시한다는 것이었다. 6등분의 맥이 만나 하나로 완성되면 비로소 가이야는 머나면 미래에 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이들은 굳게 믿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군(단군)고불에 이르러 가이야는 헤어졌다.
 
아름다운 여인의 강 메콩강을 멀리한 채 가이야의 여섯 파는 차례대로 떠나갔다. 그들은 참으로 지혜로웠다. 여섯 파들은 헤어졌지만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서로 떨어져 있었을 뿐 실제로는 메콩강을 떠나지 않았다. 인구를 급격히 줄여 떠나려는 것이었다. 이른바 산아제한을 하여 한 파에 1만명의 인원을 10분의 1로 줄이고, 그것을 다시 10분의 1로 줄여 불과 100여 명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최소규모가 되었을 때에 이동하는 것이었다.
 
6부족 모두가 100여 명으로 축소되어 실제로 메콩강을 떠날 때까지는 300여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지에 정착하여 1천 년이 되는 해에 또다시 1만여의 불어난 인구가 되어 만나려는 것이었다. 가이야인들이 인구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구가 적어야 이동이 용이하며, 언제 어느 때라도 빠르게 도적들로부터 숨어버릴 수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이야인들은 이렇게 스스로의 운명을 시험과 모험 속에서 오직 전통계승의 목표만을 위하여 움직였다. 이제 100여명이라는 극소의 인원으로 축소된 가이야인들은 길을 떠났다. 6가이야 모두가 100여 명씩으로 변하였으니 전원이 600여 명이었다.
 
동쪽 끝(한반도)을 향하여 바람따라 물결따라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삶을 영위해 가면서 이동민족들처럼 이동하여 갔다. 6가이야인들의 이동경로를 보면, 뉴릉파와 소파는 해상경로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차요나파, 시아파, 수르파는 티벳을 거쳐 옛 우르국을 지나 시베리아로까지 이동하여 바이칼호 북쪽 너머로 길을 택해 떠났다. 그리고 금파만이 티벳으로부터 동으로 이동하여 중화대륙을 통과하여 조선국에 이르고, 또다시 만주에 이른 후에 백두산을 거쳐 반도로 들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금파는 어느 파보다도 일찍 들어오게 되었고, 1천 년 후에 다시 만났을 때에는 인구가 5천이 더 추가 되어 1만 5천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금파는 순수 우르인의 피를 보존하질 못하였다. 금파는 훗날 금관 가이야가 되어 가다리고 있었지만, 나머지 5가이야인들은 이를 인정치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우르의 것을 지키려 하였건만 정말 애석하였다. 금파를 제외한 다섯 파 모두는 정구한 1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을 한치도 어김없이 우르의 맥을 지켰었다. 그런데 금파만이 지키질 못한 것이다. 이것이 가이야가 오늘날까지 순순하게 남아 있지 못하게 된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가이야의 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가이야의 맥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열쇠도 가이야의 맥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방법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인간의 삶,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수리로 이루어진 신비의 학문, 그것은 가이야인들만의 학문이었다.
 
이미 12연방에서 9나라가 된 지금 가이야만이 갖고 있는 이같은 전통은 변질되었다. 순수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고, 깨달은 이들은 미래를 위하여 현실세계에서 모두 없애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가이야인들만이 비기로써 이를 지키기 위하여 헌신의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 6가이야인들은 헤어지기 전 서로간에 약속하기를, 피를 지키지 못한다면 가이야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굳게 약속하였던 것이다.
 
 
아ㅡ 아ㅡ 가이야인이여! 가이야인이여! 그들이 우르국에서부터 티벳을 거친 후 메콩강에서의 삶, 그리고 또다시 나뉘어 1천 년 동안을 이동하면서 고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겪어야 했던 그 어려운 삶의 투쟁들...... 이 어찌 말로 다할 수가 있겠는가? 가이야의 정신,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던 우르의 맥! 과연 그들의 행위는 옳은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일일까? 무엇 때문에 그들은 지키려 하는 것일까? 아니, 지켜야 할 필연적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 험난한 길...... 그것은 한마디로 피 흘리는 삶의 투쟁사였다.
 
우르의 영혼들이여! 아루좌의 영혼들이여! 찬란한 그 빛, 그리고 그들의 사랑, 비록 육체인간의 모습으로 남자와 여인의 모습을 취하고는 있어도 그들은 분명 아루좌의 여신들이었다.
1천 년의 세월은 그들의 투쟁어린 삶과 함께 어우러졌다. 저 드넓은 시베리아 벌판에서, 그리고 바다를 낀 섬과 해안에서, 또한 소수의 집단을 이루며 국경 사이에서 온갖 고생을 사서 하며 살아가는 가이야인의 서글픈 삶...... 드넓은, 그리고 매서운 추위의 강풍이 몰아치는 시베리아에서 이민족들에게 몇 번이나 멸망당할 뻔했던 그 아슬아슬한 순단들...... .
 
 
언제였던가 수르파에서의 일이었다. 부족 전원이 투르크인에게 전멸당하고 어느 한 가족만 남게 되는 일도 겪었다. 아버지와 두 딸만이 남아 그 핏줄을 이어야만 하였다. 시아파에서는 어느 어머니와 아들만이 스키타이족에게서 탈출헤 성공하여 핏줄이 이어진 때도 있었다. 차요나파에서는 어린 미소년 하나에 이미 수태를 할 수 없는 여인들만 남아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여인의 극적인 임신으로 차요나의 핏줄은 이어질 수 있었다.
 
육상경로에서 살아가던 이들 못지않게 해상경로에서 살아가던 뉴릉파와 소파 역시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이들의 슬픔, 그 순간들......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전멸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남았던 수많은 일들, 그리고 떠돌이 해적선과의 쫓고 쫓기는 아슬아슬한 순간들...... .
 
그러나 가이야인이라는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고난의 연속이 그들을 괴롭히면 괴롭힐 수록 가이야인들은 더욱 강인해졌다.
가이야인들은 어느 곳이든 오랫동안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위치가 외부에 알려지면 언제고 그 즉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여 가이야인 전원이 반도에 도착한 것은 200여 년 후의 일이었으니, 어느덧 종족간의 헤어짐이 있은지 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가이야족(가야)의 이동 경로
 
드디어 가이야인들은 미래를 위한 한인들의 터전에 도착하였다. 대륙에서는 선군(단군) 아홀시대가 열리고 있을 때에 6가이야인들은 모두 한반도로 들어가 깊은 숲속으로 잠적해 버렸다.
 
뉴릉파와 소파는 반도의 남해안으로 상륙하였는데, 이는 부족국의 시조 용장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이었다. 그러나 뉴릉가이야, 소가이야보다 먼저 들어온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금관가이야인들었다. 시아가이야는 지금의 황해도에 숨어 살았고, 차요나가이야는 함경도에. 그리고 수르가이야는 강원도의 깊은 숲속을 골라서 잠적해 버렸다.
해상을 통하여 들어온 뉴릉가이야와 소가이야는 금관가이야가 머문 김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간에 왕래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1천 년이 흐르지 않았고 인구도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에 금관가이야인들만 1천 명의 인구로 불어나 있었고, 나머지 5가이야인들은 300내외의 인구였다.
 
가이야인들은 숨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미래를 위한 터전이랄 수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강산 위에는 언제부터인가 도적들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야인들이 반도로 들어오기 전 선군 색불우가 진한의 병사들로 하여금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이게 한 적이 있다. 도적떼로 인하여 지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한 조치기도 하지만, 우선은 가이야인들보다 먼저 들어와 살던 이들의 요청이 있어서 진한의 병사들이 대대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순수한 12연방의 후예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조선국의 고로들은 말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천부경의 수리를 풀어서 스스로 모두가 알고 있었다. 12연방의 맥이 조선으로 이루어지고, 조선의 맥은 어느 날 그들의 후예가 반도로 들어와 어느 위치에 정착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이미 그렇게 결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이미 수리의 법칙속에 나와 있지 않은가?
그런 뜻에서 가이야인들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바로 지금의 경남지역이었다.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옛날 모든 고로들은 이렇게 철리가 깊었고 하늘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이 땅, 얼마나 비좁은 땅인가? 그러나 이 땅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모든 토지와 그 맥이 이루어진 곳이요, 지기의 중심인 것이다. 그렇기에 12연방의 후예들, 그리고 조선 9나라가 망하면서 그들의 숨은 맥이 모두 이 땅으로 모인 것이다. 12연방 때부터 각 나라에서 그 나라만이 지니고 있던 수리 속에 이미 아득한 세월의 좌표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한인들은 이를 어김없이 지키며 살아갔다. 지금 이 장에서 가이야인들이 들어와 살아가던 지금의 경남지역 외의 다른 곳은 밝힐 수 없다. 아마도 현실세계에서는 그것을 확실히 밝힐 수 없으리라. 그대들 모두가 알아차렸을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6가이야인들은 그들이 약속한 것보다 500여 년을 먼저 들어와 고요한 숲속에서 조용히 살아갔다. 어느 땅보다도 풍부한 지기로 감싸여 있는 땅 위에서 서서히 인구를 늘려가며 조상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은 문화유산을 키우면서 보전해 나갔다. 이 땅은 지구라는 둥근 모습의 생명체의 중심이었다. 지맥의 흐름도 하늘의 기운도 이곳으로 부터 지작되고, 운명의 열쇠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사계절이 어느 곳보다도 뚜렷한 곳이었고 험준하며 생명체의 골격을 갖춘 듯한 이 땅은 분명 끝없는 인맥이 이어지기에 충분한 땅이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던가! 그대는 이 아름다운 강산을 아는가? 산이 많다 불평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보배로운 이 땅이 있었기에 한인의 맥은 이렇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의 역사 속에서 우리 한인들처럼 이렇듯 상상을 초월한 강성한 역사를 이룩한 것부터 최약소국으로 전락한 순간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민족은 일찍이 없었다.
우리 반도는 산이 많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산신들이 많다. 인간이 전쟁을 할 때 신들도 함께 춤을 추게 되는 것, 산이 많은 반도에 머문 한인들은 많은 산신들의 가호 속에서 살아 숨쉬었던 것이다. 망함이 있으면 흥함이 있고, 흥함이 있으면 망함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한인들은 망해 본 일은 없었다.
 
우리 한인의 역사는 흥망의 삶이 아니었다. 초월의 역사 바로 그것이었다. 한인들 모두는 그 옛날 이미 한의 의식에 까지 이르렀던 존재였기에 감히, 그리고 떳떳이 힘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깊고 깊은 그윽한 애정이 없었다면 지구성의 맥이 연결된 아름다운 이 강산 속에서 수없는 눈물의 삶이 이어질 수가 있었겠는가?
그대들은 이제 한인들의 엣 의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이 받아야 했던 값진 희생의 역사, 눈물의 역사에서 이제 깨어나야만 할 것이다. 한없이 움츠려야만 했던 지난세월의 역사, 그것은 정말 값진 희생의 역사였다.
 
이 순간 한인들 모두는 깨달은 존재가 돼 있어야 할 존재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깨달음의 순간을 포기한 채 또다시 중생의 삶 속에 뛰어들어야 했던 우리 한인들...... 가이야는 이렇게 미래를 위하여, 희생의 역사를 치르기 위하여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 신은 분명 가이야인들에게 축복의 빛을 보낼 것이다.
 
세월은 말없이 흘렀다. 500여 년의 세월은 이렇게 말없이 흘러갔다. 맑고 드높은 저 푸른 하늘에는 산새가 울며 날아가고, 들에는 곡식이 춤을 추며 맑은 시냇물 소리는 정겨운 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산하 어디에나 가이야들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만나야 할 세월은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나 고생스러웠던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6가이야의 세월들...... 그러나 그들은 견디어냈고, 이제 만나야 할 순간이 임박해 옴에 따라서 모두가 서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1천 년 만의 재회, 보고픈 얼굴들, 얼마나 서로들 변해 있을까? 가이야인들은 부푼 꿈을 안고서 숲을 거닐었다. 그간에 가이야인들도 많이 변하였다. 이동민족들이 살아남기 위해 공격적으로 변하고 용맹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었듯, 그간에 가이야인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변해 있었다. 하지만 가이야인의 심성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변치 않은 그들의 심성, 그것은 고귀한 것이었다.
 
가이야인들은 그들만의 변치 않은 심성을 지닌채 1천 년 만의 재회를 가졌다. 이때가 선군 사벌 때였으니, 한인의 역사의 흐름이 피를 나타내는 시기였다. 1천 년 만의 재회, 모두가 끌어안고 통곡과 오열 속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 기쁨, 반가움...... 어떻게 이것을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가이야인들은 드디어 모였다. 기나긴 방랑의 세월, 전멸직전 까지 갔던 순간들이 있었던 세월...... 그러나 가이야는 멸망히지 않고 이어져왔다. 비록 금관가이야는 변질되어 있었지만 전부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금관가이야 내에서도 순수혈통과 피가 섞인 사람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대륙의 중앙으로 통과하였던 금관가이야, 이들 또한 어느 가이야 못지 않게 시련의 세월을 살아왔다. 설사 순수하게 지키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 맥은 지켜지고 있었다. 금관가이야로 인하여 5가이야는 재회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마나 안타까워하였던가?
 
그로 인해 가이야의 사회에서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쳐 금관가이야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놓고서 고심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결국 인정은 하게 되었지만 가이야인들은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얼마나 그들의 피를 지키려고 노력하였던가? 하지만 피는 지키지 못하였어도 가이야의 맥은 이어질수가 있었다. 여섯으로 나뉘었던 맥이 하나가 되었으니 가이야는 비로소 완성이 되었고, 완성된 즉시 어딘가 모를 깊은 곳으로 가이야의 맥을 감추게 되었다.
 
머나먼 미래를 위하여 그 값지고 고귀한 가이야의 맥은 잠시 현실의 세계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와 함께 가이야인들은 절규 속에서 순수혈통을 지켜야 하는 일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여! 기이야의 세월이여! 이들의 기나긴 삶의 투쟁사여!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토록 오랜 세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역경의 세월을 믿음과 사랑을 지닌 채 지키려고 애써왔던 기나긴 가이야의 역사...... .
 
그러나 끝내 지키지 못한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며 지키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왔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고 말았던 것은 머나먼 미래를 위하여 신의 뜻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이라. 머나먼 미래...... 가이야인들이 혈통을 지켰고, 그래서 한인들 모두가 대륙에서 반도로 들어와 역사적 은둔생활을 하기 위해 새로운 삶의 역사를 시작했을 때 이미 가이야인들이 거대한, 그리고 강력한 순수혈통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형성되어 완벽하게 독립적인 위치에 있었다면 이곳 반도의 역사는 예상 밖의 흐름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늘의 뜻이 가이야인을 버리건 버리지 않건, 또한 그것이 하늘의 뜻이건 아니건 어쨌든 가이야인들만의 힘으로 왕국이 이루어졌다면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가이야의 값진 전통은 어느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병법가도 가이야인들을 능가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 어떤 주술인들도 가이야인들을 능가할 수는 없었고, 뛰어난 예술인이라 하여도 가이야인들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이야인들이 금관가이야로 인하여 선언해야 했던 그 슬픔의 선언...... 이를 그 옛날 '모가에테' 의식처럼 '모지스'선언이라 부르게 되었다. 모지스 선언, 가이야인들은 이를 슬픔의 선언이라 불렀다. 한인시대부터 이어져내려온 그 엄청나게 값진 고서들이 모두 소각되었고, 값진 예술품도 필요치 않은 것은 더이상 만들지 않기로 하였다. 실로 눈부신 가이야 역사가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가이야 역사가 사라져 갈 때에 가장 값진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이야의 예언서일 것이다.
 
 
여인왕국 당시의 가이야(가야)
 
가이야의 예언서는 한치의 오치도 없는 세월의 흐름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소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그 속에는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한인들의 머나먼 미래사를 말한 것이리라.
 

 
어느 구절엔가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한인이 가슴속에는 이렇게 스승을 향한 믿음이 깊었던 것이다. 샤카인들의 간절한 바람이이루어져 어느 날 스승이 내려오신 것과 같이 히브리인들에게도 그들의 간절한 희망과 바람 속에 스승(예수)이 강림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인들은 미래를 위하여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참아 왔다. 간절하게 찾았지만 한인들은 미래를 위하여 잠시 동안은 망각해야만하였다.
 
모지스 선언 이후 가이야 역사는 순수혈통마저 사라진 슬픔 속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고귀한 문화를 간직하였건만 살아 숨쉬는 역사도 망각한 채 반도 남쪽의 깊은 산중에 숨어 역사를 영위했다. 더이상 아름다운 춤을 추는 일도 없었다. 가이야인이 머물러야 할 곳, 그곳은 인간의 척추였다. 매우 중요하며, 자칫 잘못하였다가는 영영 한인들의 맥이 끊어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힘의 근원점에서 살아가고자 한 것이다.
 
가이야인들은 알고 있었다. 미래의 저 현란한 불빛을 알고 있었기에 아름다운 이 강산을, 그리고 지맥을 더욱 견고히 다져나갔다.
선군(단군) 사벌시대에 들어와서의 가이야인들의 희생과 노력...... 어찌 말과 글로써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몇 세대를 거치면서 가이야인들이 행했던 고귀한 일들...... 가이야인들의 이같은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 한인들은 헤아릴 수 없는 그 많은 외부세력에 의해 나라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이때 가이야인들은 산세와 지세의 형상을 보면서 그 값진 일을 행하였던 것이다.
 
이 장에서 가이야인들이 행한 일을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인들을 위하여 값진 일을 하였다. 한인들의 허리는 힘이 차 있다. 그리고 가이야인의 노력에 의해 우리의 터전인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척추는 지금 힘에 충전되어 있다. 아니, 그것은 신비스런 모습 그대로를 간지한 채 아직도 건재한 모습 그대로이다. 척추의 힘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흘러야 했던 가이야인의 눈물, 가이야인의 정성스런 노력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그 후 300년 지속되었다.
바로 그 시대에, 가이야인들이 아름다운 이 강산,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았는 모습의 척추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숨은 노력을 하고 있을때에 저 드넓은 마한의 관경에서는 북방의 이동민족과 진한과의 치열한 싸움이 끊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싸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도에서의 한인의 역사는 슬픔의 연속이었지만 결코 일어서지 않았다. 바로 허리를 보호하기 위하여일 어서지 못하게 하였고 미래를 위하여 힘을 축적것이다.
하루하루 수많은 나날을 보내면서 여인은 앉아서 당하기만 하였다. 앉아 있는 여인은 당하는 법, 그러나 허리와 다리의 힘은 충전되는 법. 가이야인들은 이렇게 여인의 허리에 보이지 않는 줄로 여인의 여인의 허리를 바닥에 묶어버렸다. 미래를 위하여 함부로 일어설 수 없도록 그렇게 묶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때 가이야만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모든 나라에는 예언서가 있었고, 그 예언서를 추종하던 소수의 사람들은 이미 들어와서 가아야인들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적인 일을 하고있었다. 어느 민족이 들어와 짓밟는다 하여도 짓밟히지 않는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행하였던 것이다. 그렇게기에 아름다운 여인은 아직까지 더럽혀진 적이 없다. 영원히 그 맥이 끊어질 수 없는 역사이리라. 앉아 있었기에 순결할 수 있었고, 어느 민족도 여인을 더럽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인을갖고 싶어하는 것은 사내의 근성이리라. 사랑이 충만된 여인, 아픔을 씻어줄 수 있는 여인은 미래를 위하여 잠시 잠을 청했다. 잠자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 허리가 묶인채 잠자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수많은 세력들은 앞을 다투어 여인을 취하려 하였지만 성공할 수가 없었다.
여인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깨달은 존재가 되어 잠에서 깨어나 진리의 칼을 들고 일어설 것이다. 그때 가아야인들도 태어나 여인의 허리를 묶었던 끈을 풀어버릴 것이다.
 
가아야인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6가이야는 사벌시대 이후 여러 지방을 전전하다가 선군(단군) 음차시대에 이르러 드디어 정착하니 가이야의 새로운 삶이 이루어졌다. 가이야인들은 언제나 강을 끼고 살아갔다. 여인의 강으로 불리는 메콩강 유역에서처럼 가이야인들은 강을 사랑하였다. 강은 곧 여인의 젖줄이기 때문이었다. 목마른이에게 목을 적셔줄 수 있는 곳이기에 가이야인들은 강을 여인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인의 젖줄을 끼고 시들어가는 가이야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작은 문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서쪽에서는 동백제의 전초가 되는 부족국가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북에서는 용장의 후예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조용한 문명이 시작되었다.
금관가이야인들은 갯벌과 바다가 교차되는 낙동가하류에서 쇠물을 다루는 문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남으로는 바다와 동으로는 금관가이야와 인접해있는 고령가이야는 학문의 꽃을 피웠다. 고령에서는 강 유역의 기름진 옥토를 중심으로농사를 주관하며 '자기' 문화를일으켰다.
가이야산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산인들은 가이야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믿었고 성스러운 산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늘 제사를 올렸다. 가이야인들은 그 산을 바라보면서 천문, 지리, 의술을 비롯하여 주술 등 주로 영적인 차원의 삶을 추구했다.
 
지금의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펼쳐 살았던 아라인들, 그들은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남으로 삼천포를 중심으로 여러 섬으로 나뉘어 살았던 소가이야인들은 유일하게 나라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섬들을 제후국들로 하였고 고성의 장로를 황제로 여기며 살아갔다.
대가이야는 지리산을 끼고 동백제를 견제하면서 무술과 무예를 단련하며 살아갔다. 이것이 최초로 선군(단군) 음차시대에 정착한 모습이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이었다.
 
가이야인들은 욕심이 없었다. 쓸데없이 남의 땅을 침범하는 그런 민족이 아니었다. 조용한 침묵을 지키면서 가이야인들은 작은 사회를 이루며 꽃 피워나갔다. 서로가 부족한 것은 배워나갔고 서로간에 유학을 하는 아름다운 가이야의 사회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원주: 天(힘)에도 음과 양이 있으니, 陽이 고구려이며 陰이 발해이다. 地(지혜)에도 음양이 있으니, 陽이 동백제요 陰이 서백제이다. 人(사랑)에도 음양이 있으니, 신라가 陽이요 가이야가 陰이다.)
 
 
유림의 긴 이야기는 마침내 끝을 맺었다. 7일에 걸쳐 인류의 역사를 집약하여 진녀에게 들려준 것이다.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고 죽여야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악해져야 하는 삶의 역사를 들려준 것이다.
그러나 진녀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역사 이야기였다.
그저 놀랍기만 했다. 유림의 이야기 속에 나타난 엄청난 역사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자신의 현재 위치와 자신이 일생을 걸고 행하고자 했던 왕국의 역사가 단지 선군(단군)의 나라 한쪽 구석 한 부락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그 동안 잠 못이루며 고심하고 고봉들과 함께 부족의 사내들을 죽이고 여인 통일을 하려 꾀했던 모든 일들이 보잘것없는 작은 분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과 함께 회의도 느껴졌다.
 
진녀의 꿈은 인간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가 되었든 남과 여를 완전히 분리하여 여인통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림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스승 기른장에게서도 선군의 나라의 단편적인 역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진녀는 그때마다 세상 어느 곳이건 여인들이 살아가는 곳이면 여인통일을 시키리라고 다짐했었다. 저 먼 곳 서쪽의 대지에서 살아간다는 노란머리의 백인과 검은 피부의 흑인들까지도 언젠가는 자신의 뜻대로 여인통일을 시키겠다는 엄청난 꿈이었다. 그런데 유림 보살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의 꿈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볼수록 유림을 만나기 전까지의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몽매했던 연인들의 지도자였다. 자신의 생각은 우물안 개구리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비좁은 골짜기만을 헤매며 드넓은 세상을 너무도 모른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그간 듣고 보아온 것이 부족국 여인들의 비참함과 남자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하는 횡포가 전부였다. 그 결과 남자들에 대한 미움이 앞서 있었으니 세상을 높게, 그리고 멀리 볼 수가 없었던 탓이다. 나이도 이제 20을 넘긴 지 만 2년밖에 안 된 어린 나이다.
 
진녀의 거대한 꿈은 유림으로 인하여 깨어져버렸지만, 그러나 진녀는 정말 많을 것을 배웠다. 지금껏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일깨우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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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보양뜸으로 되찾은 내 몸(계간 구당 2017 여름)

 

ㅇㅇㅇ 정회원 33기

 

과로 과음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무극보양뜸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부터 8년 전인 2009년이었다. 그때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한 보직을 수행하다 보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무척이나 많았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장거리 출장도 잦으면서 업무가 기한을 다투는 일이 많았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술자리였다. 술을 잘 이겨내지 못하는 약한 체질이었기에 피할 수 없는 술자리 이후에 발생하는 다양한 건강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어려운 보직 수행후 약 6개월이 경과하니 평상시에도 약골이었던 내몸의 건강상태는 무척이나 나빠졌다. 특히 소년기에 폐결핵을 앓았던 병력이 있어서인지 호흡기가 항상 문제되면서 비염, 인후염, 편도선염, 기관지염 등에 돌아가며 걸리거나 겸증이 되어 나타나는데 감당하기 무척 어려운 나날이었다. 발병 시마다 치료를 위해 한 달이면 절반은 호흡기 및 소화기 염증 치료약을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항상제에 의존하던 40여 년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라 잔병이든 큰 병이든 발병이 되면 거의 40여 년을 항생제에 의존하여 질병 치료를 하면서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제 니아기 들어50대 중반이니 갱년기도 되었고 더구나 많은 스트레스로 약해진 상황에서는 잔병조차도 치료과정이 오래 가는 등 대부분의 병증치료가 습관성- 만성병화 되어 나중에는 치료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1주일 이상 약을 먹어야 증세가 호전 되는 등 개인적으로 일생일대에 가장 몸이 힘든 상황이 되었다. 당시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보며 어디 아프냐고 할 때는 사실 내 몸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직장 생활의 목표였던 마지막 승진문제에 장애가 될까 두려웠었다.

 

그러던 중 직장 선배 중 구당 침뜸 교육을 먼저 이수하신 분이 계셨는데, 식사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건강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어떤 부작용이나 내성이 생기는 것도 없이 몸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며 무극보양뜸을 권유하셔서 바로 날을 잡아 뜸자리를 잡기로 하였다.

 

그 권유가 있기 전에도 사실 몸에 약한 체질이다 보니 늘 건강에 관심이 많아 이런 저런 책을 읽거나 강의도 많이 듣고, tv건강 프로그램도 자주 보는 편이었는데 특히 구당 선생의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를 읽고 한때 감명을 받았기에 이미 큰 관심이 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반년 뜸 치료에 병원과 멀어지다

 

뜸 치료야 혈 자리 잡는 것만 한 번 하면 집에서 자가 치료를 해도 되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 치료법이니 마음속으로는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까지 양약으로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되어 늘 병을 달고 다니면서 약 먹기를 밥 먹듯 하고 병원문을 내 집 문 드나들 듯이 하면서 살다 보니 나날이 몸은 나빠지고 있어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선배와 약속한 날짜에 맞추어 집사람과 함께 뜸자리를 잡고 난 후, 아무리 바빠도 매일 같이 뜸을 뜨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일주일에 최소한 5일 이상 열심히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실천했었다. 밤늦게 귀가하는 날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뜸을 뜨거나, 새벽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면 저녁 퇴근 후 한다든지 하여 장기출장이 아닌 다음에는 반드시 뜸뜨기를 생활화하였다.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며 실천한 지 4~5개월 지난 시점으로 기억되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새 내가 한 달 이상 병원을 안 다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에 인삼 엑기스를 비롯하여 몸에 좋다는 것은 보약이든 영양제든 늘 상복하며 이것저것 다 챙겨 먹어 왔지만 뜸을 뜨고 나서 생긴 병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렇게 자주 드나들던 병원을 한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무리를 하면 여기저기 아팠기에 병원마다 미리 타다 놓고 아프기 시작하면 한시라도 빨리 복용하려고 비치해 놓은 구급 상비약들이 상당 기간 경과하도록 보관만 되고 이었다.

 

뜸 치료로 양약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다

 

누구든지 잔병치레에 익숙한 사람들은 겪어보아서 알겠지만 염증 치료를 위해 투여하는 항생제는 약성이 매우 강하여 강건한 사람도 복용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흐려져서 집중력있게 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약을 먹지 않고도, 아니 그렇게 자주 잔병치레를 하던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로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사실 처음엔 반신반의하였다. 내가 혹시 그동안 먹었던 건강보조식품의 효과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으로 내 몸의 건강상태가 나아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복용하거나 처방받아 사용했던 것들로 최근 달라진 것은 오직 뜸치료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이 들수록 약해져만 가는 내 몸에서 생기는 당장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할 수밖에 없는 양약은 늘 부작용 문제로 부담이 되었었고, 효과도 미미한 값비싼 건강보조식품들은 비용부담만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들로부터 모두 해방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내게 펼쳐졌다. 이렇게 하여 한동안 내게는 매우 활력이 넘치는 삶이 지속되었다.

 

뜸을 중단하자 다시 찾아온 호흡기 질환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2011년 후반 무렵 현장발령이 나서 혼자 생활하게 되니 자연히 뜸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또한, 몸이 건강해지니 이제는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해서 뜸을 약 3년 정도 안 했더니 다시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2015년경에는 다시 폐를 중심으로 과거에도 나를 힘들게 했던 호흡기 질병이 다시 찾아들고(비염, 편도선염, 인후염 등), 무엇보다도 폐와 관련하여 대장질환인 설사가 만성화되고 먹는 음식에 지나치게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 찬 음식, 기름진 음식, 밀가루 음식 등은 먹을 수 없었고 툭하면 위장, 소장 그리고 대장염에 걸려서 장거리 해외여행을 갈 때면 필수의약품인 종합소화기약을 처방받아 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2년 전부터는 살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평생을 64~65kg을 유지했던 것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초까지는 60kg까지 빠졌다.

 

신장계통까지 병증 확대

 

또 운동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라는 곳은 모두 통증이 생기다 보니 마사지를 받거나 병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 등의 불편함은 물론 운동도 적정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말해 건강을 위한 운동 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2009년 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또 어디 아프냐고 묻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과 달리 내 몸의 병증이 확대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무릎 통증과 함께 전립선 비대증 등 신장계통까지 문제가 확산되었다. 무릎은 피로하거나 술을 마시면 부어오르기도 하고 근력이 약해지다 보니 운동을 하다가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병원에서 장기치료는 물론 수술 권유까지 받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야말로 종합병원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특히 허리가 7년 전부터 좋지 않아 과로 등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허리를 구부리고 세수를 할 수 없었다. 한 손은 세면대를 받치고 한 손으로 세수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한의원에서 두세 번 침을 맞고 일시 해결하고 또 모면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대잔지부 송 교수의 진단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약 1년 6개월 전에 뜸사랑 봉사실 대전지부의 송교수를 만나 진료를 받는데 요추가 돌출되어 나와서 서서히 앞으로 구부러지는 형태로 변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외과병원의 진료를 받았더니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송 교수는 척추질환은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나의 경우 침뜸치료만으로도 4개월 안에 통증도 잡아주고 변형된 것도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셔서 이를 따르기로 하였다.

사실 주변에서 허리 수술 잘못하여 부작용으로 엄청 시달리는 친지들도 보아왔고, 재발하여 두 번 이상 수술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온 터라 진퇴양란의 상황이었는데 비수술적 치료로 나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치료법인가. 더구나 부작용도 없고, 무료 봉사로 해주는 치료라서 비용은 공짜라니 세상에 이런 복이 다 있던가 싶었다.

 

정기적 침뜸 치료로 요추 회복

 

그로부터 다시 무극보양뜸자리를 잡아 뜸을 뜨고 이외에도 요추 4번, 5번 협착 치료를 위해 요양관(3~5번 요추 극돌기 하함중 포함)은 물론 신유, 간유, 거궐, 천추 혈을 추가로 잡아주시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봉사실로 나와서 침을 정기적으로 받고 집에서 열심히 본인이 뜸을 하면 틀림없이 낫는다는 확신에 찬 말씀을 하셨다. 수술하자는 병원보다는 백배 낫기에 무조건 따라했더니 몸에서는 다시 한번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말 약속한 대로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요추가 외관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극돌기가 튀어나왔건 것이 치료 후에는 만져 보아야만 약간 나온 것을 알 수 있을 수준으로 극명하게 나아진 성과를 보게 되었다. 당연히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동안 제약을 받았던 운동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특히 운동할라 치면 무릎에 보호대를 해야 했는데, 하나 가지고 안 되어 구 개씩 겹쳐 채우던 것을 이젠 훌훌 벗어버리고 운동하게 되니 그야말로 날아갈 듯 한 상황이 된 것이다.

 

뜸으로 다시 찾은 건강한 몸

 

지난해 10월부터는 살도 다시 찌기 시작하여 60에서 62kg까지 다시 올라왔다. 좀 더 살이 찌고 싶은 생각에 태백 또는 공손 그리고 비유와 격유, 좌 활육문, 우 기문 등을 번갈아 가며 침도 놓고 뜸도 뜨고 했더니 지금은 2kg이 더 쪄서 과거 평생을 유지해 왔던 64kg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며 무슨 보약을 먹었냐고 하면 무극보양뜸을 먹어 그런가보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해서 지금은 무극보양뜸으로 건강 찾기 붕어빵 전도사가 되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무극보양뜸의 효능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족저통으로 고생했는데 침뜸 임상 시간에 배운 치료법 중에서 아시혈을 강하게 자극하는 벙법은 너무 고통스러울 듯싶었다. 지금 병증의 상태가 걷는 데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는 수준으로 심하지도 않고 해서 족태음비경의 수천과 족태양방광경의 복삼에 뜸을 하고, 아시혈은 내가 견딜수 있을 만큼 미립대의 약 2~3배 크기로 5~7장 정도 뜸을 하였더니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이 없고, 많이 걷는 운동도 전혀 리 없이 하고 있다.

 

아내의 하지 불안 증후군 치료

 

그리고 집사람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밤 10시경만 되면 아래 종아리를 주무르며 지냈다. 이유인즉 늦은 밤이 되어 쉬고 있으려면 다리를 가만히 두질 못하고 자꾸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생기고 특히 움직이지 않을 때 더욱 심해지며 그 느낌은 마치 근육 속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었다.

 

해서 외과병원 진료를 해보아도 딱히 치료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늘 주무르는 것으로 견디며 잠도 설치고 무척 힘들어 했었다.(이 증세를 현대의학에서는 하지 불안 증후군이라고 한다.) 결국 물리치료에 불과한 병원진료는 포기를 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치법을 따라 곤류 태계 음릉천 양릉천 현종 승산 등 5방혈의 개념으로 침술을 하여 하지의 기혈순환을 촉진했더니 3주도 채 안 되어 다리 통증이 사라지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침뜸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 집에서는 명의가 되는 평가를 받아 공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다. 사실 뜸 시술시, 뜨거운 작열감과 뜸 딱지로 인한 가려움 등으로 집안 식구들이나 형제들은 침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가족 명의가 되어 전폭적 지원받는 공부하게 되다

 

하지만 노쇠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에 종합적인 치료는 물론 강력한 예방 효과를 발휘하는 침뜸을 보았기에 지금은 침뜸 치료를 해준다고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밤이고 낮이고 아무 불평불만 소리 없이 넙죽 엎드리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정기적인 건강진단이나 치과에서의 스케일잉 정도 외에는 갈 일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침뜸치료로 특히 무극보양뜸으로 다양한 질병이 예방되어 몸의 불편함이 없어졌고, 금전적 시간적으로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약골 체질로 인해 나이 들면서 몸에 좋다는 것은 이것저것 참으로 많이 해보았지만 무극보양뜸과 구당침법을 배운 것이 일생일대의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구당 선생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앞으로는 내가 받은 만큼 남에게 베푸는 데 앞장서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한다.

한국의 脈
 
 
한국인이여!
하늘의 뜻을 알리나니
오랜 인고의 세월 속에서
지금까지 견디어낸 '한'인들이여!
 
 
인류 역사의 맥은 한국이나니
한국이라 말하니 이가 한이 아니던가?
그대들 개개인의 마음먹은 생각이
인류의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한국이라 함은 하나일지니
마음속 하나에도 음양이 있듯
이 땅 위의 하나에도 음양이 있음을
'한'인들은 어찌하여 모르고 있는가?
 
 
아득한 신시시대(桓雄時代)의 역사를 지나
선군(檀君)의 시대로 들어섬이란
인륜의 법칙이 이행되던 시대요
그로부터 삼국이 이룩되었으니
이가 힘과 지혜와 사랑의
高句麗, 百濟, 新羅이니라
 
 
김춘추로 인하여 하나의 뜻은
渤海(발해)와 日本, 統一新羅로 이어지니
이도 힘과 지혜와 사랑이노라.
그러나 타국의 힘을 빌어
'한'인은 '한'인을 피로 물들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 아니요
땅의 뜻도 아닐지며
오직 인간의 뜻으로 이루어진 일이니라.
 
 
그로부터 하늘의 뜻은 인간을 거부케 하였으니
발해는 멸망하게 되었고
땅의 뜻도 인간을 거부하게 되었으니
백제의 맥을 이어받은 일본은
철저한 '한'인의 적이 되었음이니라.
 
 
그 후 '한'인의 역사는
하늘과 땅이 없음 속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하나의 깊은 뜻은 사랑만을 지닌 채
인간으로서 고통스런
인욕의 세월을 걷게 되었음이니라.
 
 
고려의 역사는 하늘의 뜻을 속죄하는 역사이며
조선의 역사는 땅의 뜻을 속죄하는 역사였으니
그 아픔의 세월을 무엇으로 감당하리오.
 
 
인고의 세월을 지나
하늘과 땅에 대한 속죄가 끝맺게 되었으니
이것이 8.15 광복을 말함이요.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이 풀림을 뜻하니
이가 곧 해방이 아니던가?
 
 
그러나 해방과 함께 맞은 분단은 무엇인가?
6. 25의 깊은 뜻은
天, 地, 人의 피로 인하여
인류 멸망을 구제하기 위한
하늘의 公事였음을 한인들이여!
아는가, 모르는가?
 
 
인류를 대신한 피의 흘림은
이제 축복으로 변하여
이 땅 위에서 인종의 합창이 이루어지니
天, 地, 人을 축복하기 위한
88올림픽이 아니던가?
 
 
한국의 분단은 선악의 대립이요
음양의 대립이니
인류의 선악을 대신하여 똑같이 피를 흘렸거늘
어찌하여 인류의 축복은 선에게만 갈 수 있단 말인가?
이 땅의 선악의 대립이 모두를 인정할 때에
선악이 된 '한'인들은 깨우침을 얻을 것이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로 뭉쳐지리니.
 
 
하늘의 丹田이요
땅의 丹田인 천지를 되찾아야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이루어질지니
축복이 거부된 악의 마음을 무엇으로 달래어
天池를 되찾는단 말인가?
 
 
한국인이여!
한국인이여!
하나 될지어라.
하나 될지어라.
 
 
ㅡ1989, 神界에서
 
 
 
출처: 여인왕국(무린바타), 박충원 저

[류현민의힐링스토리] 최상의 요가 자세

 

세계일보 류현민

입력 2014.02.20

 

肉體的이고 生理的인 요가를 하타요가(hatha-yoga)라 한다. 15세기에 간행된 하타요가의 대표적인 경전 ‘하타요가프라디피카’에 최상의 요가 자세를 소개한다. 바로 ‘파스치모따나사나’이다. 파스치마(paschima)는 ‘서쪽’을 뜻하며 이는 인체에 있어서 뒷부분을 말한다. 우따나(uttana)는 ‘늘린다’는 뜻이다. 즉 인체 뒷부분(뒤통수에서 발꿈치까지)을 완전히 늘려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로 ‘앉아서 상체 숙이는 자세’ 또는 ‘등 펴기 자세’라고 부른다.

 

인도 전설에 의하면 요가 자세, 즉 아사나는 요가의 神 ‘시바(siva)’가 취한 다양한 몸짓으로부터 유래됐다고 한다. 경전에 의하면 시바 神이 취한 자세는 자그마치 8400萬 가지이다. 이러한 다양한 아사나로부터 여러 형태의 創造物이 탄생됐다고 한다. 그래서 요가의 아사나는 자연의 구조, 도구, 곤충에서 현인, 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의 형태를 다양하게 반영한다.

 

‘하타요가프라디피카’에서는 등펴기 자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가 자세 중에서 최상으로 氣가 등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수슘나(sushumna)를 통과하게 한다. 또한 胃(위) 속의 불을 증대시키고, 허리를 가늘게 하며, 인간의 모든 疾病을 없애 준다.”

 

요가의 생리학을 심층생리학이라 부른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氣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氣가 막히면 질병이요, 氣가 通하면 건강이다. 氣는 동양의 사상과 의학적 전통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요가 경전에서는 氣가 흐르는 길을 나디(nadi)라고 부른다. 한의학의 經絡(경락)과 유사한 개념이다. 가장 중요한 나디 중 하나가 수슘나인데 척추를 중심으로 흐른다. 즉 등 펴기 자세는 등과 척추를 늘려주어 氣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또한 胃 속의 불을 증대시킨다. 이는 인도 전통의학 아유르베다(ayurveda)의 관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아유르베다 의학은 건강의 유지조건 세 가지로 체질의 평형, 인체의 불인 아그니(agni)의 균형, 배설물의 정상적인 배출을 꼽는다. 이 자세를 행함으로써 아그니를 증대시켜 질병의 원인인 毒素를 태운다.

 

등 펴기 자세는 導引養生術(도인양생술)에서도 長筋術(장근술)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된다. 모두 8가지 효과를 이야기한다. 健足之效(건족지효), 다리의 피로를 풀고 하체를 건강하게 한다. 固腎之效(고신지효), 신장이 견고해져서 오줌싸개와 조루증 치유에 효과적이다. 節慾之效(절욕지효), 성욕을 조절하게 하고 성적 에너지를 靈的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抗寒之效(항한지효), 몸을 따뜻하게 하여 추위를 방지한다. 安眠之效(안면지효), 숙면을 취하게 한다. 通鼻之效(통비지효), 막힌 코를 뚫어준다. 雜治之效(잡치지효), 잡다한 질병이 저절로 치유 된다. 無病之效(무병지효), 기운을 원활히 하여 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바닥에 두 발을 똑바로 뻗고 앉아서 발가락을 잡는다. 상체를 숙여 무릎 위에 이마를 대고 유지한다. 주의를 집중해서 행하며, 호흡을 깊고 편안하게 한다. 임신부나 식후 포만 상태에서는 피한다. 물론 꾸준히 했을 때 효과적이다.

 

류현민 대전대 외래교수·뷰티건강관리학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좀 더 일찍 뜸을 알았더라면... '엄마, 사랑합니다'(계간 구당 2017 여름)

 

 

ㅇㅇㅇ 정회원 33기

 

 

췌장암 진단받은 엄마

 

2년 전 봄, 엄마의 췌장암 4기 초라는 진단은 엄마와 우리 가족을 끔찍한 정말과 충격에 빠트렸다. 진단받기 두 달 전부터 엄마가 복통으로 괴로워했으나, 우리는 여느 췌장암 환우처럼 위장의 문제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췌장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동네 병원 약만 드시게 했던 우리의 안일함과 무지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맹신했던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면, 마약성 진통제만 처방해준 채 퇴원을 종용했다. 평새을 자시글 위해 헌신하였던 엄마에게 왜 이리도 세상은 잔혹한 건지... . 그 모든 것에 대해 원망하고 분노하던 시간이었다.

 

통증의 절망, 뜸으로 희망을 품다!

 

엄마는 통증으로 잠을 잘 수도 먹을수도 없었다. 너무 괴로워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했다. 그러나 구토, 어지럼증, 신경과민 등으 부작용을 겪으며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이 끔찍한 통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만 있기를, 밥 한 숟가락이라도 제대로 드실 수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뜸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곳에서 간접구인 왕뜸을 뜨게 되었다. 뜸을 뜬 첫날, 오랜만에 편안함을 찾으신 엄마는 식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두 달간 식욕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억지로 한 수저 라도 드시고 나면 곧바로 다 토해 버리셨던 엄마가 밥을 1/3 공기나 드셨고, 토하지도 않으셨다. 두 달 만에 온전한 식사를 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뜸으로 이 절박한 상황을 벗어 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나는 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췌장암의 통증이 사라지다

 

수소문 끝에 뜸사랑을 알게 되어 바로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일요일반에 수강신청을 하여 침과 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침과 뜸의 신비로운 효능에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암 통증 중 가장 심하다는 췌장암의 통증이 거의 사라지면서, 엄마는 일상생활을 다시 찾으셨다. 진통제도 끊고, 식사도 하시게 되었으며, 일과 중 뜸 뜨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실 만큼 뜸에 많이 의지하셨다.

 

대식구가 모여 사는 우리 집 환경상 감기, 식체, 요통, 생리통, 변비, 불면증, 족저근막염, 대상포진 등 크고 작은 병이 끊이지 않았다. 아직은 서툴지만, 병증을 호소하던 가족들을 침과 뜸으로 치료했다. 그 효능을 몸소 느끼게 되니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침과 뜸에 감사하고 고마워하게 되었다.

 

구당 선생의 말에 용기를 얻은 엄마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장성에 가서 구당 선생에게 진료를 받던 날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구당 선생은 엄마의 등과 배를 쓰다듬으시며 "괜찮다". 잘하고 있다."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을 들으신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구당 선생의 한 마디가, 치병 기간 동안 불안에 떨고 있던 엄마에게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것이다. 그렇게 구당 선생은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선물해 주셨다.

 

매일 무극보양뜸을 기본으로 하고, 양문 활육문 천추 간유 비유 신유 대장유 등의 혈 자리를 그 날의 컨디션에 맞게 배합하여 뜸을 떴더니 거짓말처럼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췌장암 환자의 또 다른 고통인 섭식! 소화효소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식사를 못 하는 다른 췌장암을 환자와는 달리 매끼 본인이 드시고 싶은 음식들을 드시게 되었고, 매일 같이 운동도 하시는 등 원기를 되찾으셨다.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시고, 취미 생활로 난타 수업도 들으시는 등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시게 되었다.

 

뜸으로 되찾은 엄마의 소중한 일상

 

놀라웠던 것은 췌장암 발병 전, 약 3년간 엄마를 괴롭혔던 기관지 확장증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엄마는 토할 듯한 기침, 멈추지 않았던 가래로 3년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몇 달에 한번씩 심한 각혈로 인해 위급한 상황도 여러번 격으셨다.

색전술로 그때그때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늘 위태롭게 지내던 시간이었다. 최악의 경우 폐 절제를 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어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기에 , 늘 긴장속에 지내던 엄마였다.

 

그런데 3개월 동안 매일같이 폐유와 고황에 뜸을 뜨자, 어느새 기침, 가래, 각혈이 모두 사라졌다. 밤이면, 잦은 기침으로 제대로 잠을 못 주무시던 엄마가 이제는 곤히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췌장암 통증 완화를 위해 시작한 뜸이 생기지도 못했던 기관지 확장증을 고치다니! 뜸의 효능을 다시 한번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잠을 편히 잘 수 있다는 것! 남들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엄마에게는 간절 했던 그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엄마와 이별, 그리고 뜸이라는 선물

 

췌장암 진단 후, 네 남매와 사위들, 그리고 손주들까지 모두 한집에서 오순도순 살아보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우리 가족을 비웃기라도 하듯, 훅~ 다시 병마가 찾아왔다. 이번엔 어찌 손도 써 보지 못할 만큼 잔인하고 참혹하게... .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그동안 잘 버텨 주셨던 엄마도 크게 흔들리셨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니 병마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엄마를 집어삼켰고, 지난해 봄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되셨다.

 

고통 없는 곳에 엄마를 보내 드리고, 나는 크나큰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만약 좀 더 빨리 뜸사랑을 알았더라면, 엄마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치병 기간 동안 좀 더 극진히 보살펴 드렸다면 덜 고통스러우셨을까? 끝없는 죄책감에 나 자신을 몰아넣으며 한없이 괴로워하던 나였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낼수는 없었다. 엄마는 떠나셨지만, 뜸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고 소소한 일상을 되찾았던 엄마와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나도 병마에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있기를 바라며, 다시 힘을 내어 교육원에 복학하였다.

 

구당 침뜸, 제도권에 의료에 상처받은 환자의 큰 희망

 

그렇게 1년여의 시간 동안 침과 뜸을 공부한 끝에 드디어 정회원이 되었다. 뜸을 안 지 2년,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침과 뜸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렸던 내가, 이제는 제도권 의료시스템에 상처를 받은 환자에게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가장 큰 행운이다.

특히, 뜸 뜨는 것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렸던 조카녀석들이, 이제는 내가 뜸을 뜨고 있을 때 옆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뜸 자리를 눌러 주며 "이렇게 눌러줘야 안 뜨겁죠?"하며 씩 웃곤 한다. 또, 내가 침을 놓고 있을 때, 삽관 연습을 하게 침 하나만 달라고 졸다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툭하고 웃음이 터진다. 준비된 구당 침뜸의 후예들! 이 어린 조카들이 침뜸으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본다.

 

암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는 삶을 소망

 

이제는 가족만이 아닌, 질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나의 손길을 전하고 싶다. 특히, 엄마와 같은 암 환자들의 통증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 구당 선생의 따스한 손길에 위로 받으며 미소 지었던 엄마를 생각하며, '배워서 남 주자'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

 

끝으로, 386차 동기들과, 뜸부기 스터디 모임을 만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서로 교류하며, 더 깊이 공부해서, 이제는 배움만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손길을 필요한 그곳에서 봉사의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면역항암제 처방제한..암 환자들, "살기 위해" 일본으로

 

JTBC 이정엽

입력 2018.03.25

 

 

[앵커]

 

면역 항암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말기 암 환자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처방받기 어려워져 아픈 환자들이 일본으로 가야만 하는 실정입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이정엽 기자입니다.

 

[기자]

 

창원에 사는 이 모 씨는 유방암 말기인 아내와 곧 일본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각종 항암치료가 듣지 않아 마지막으로 면역항암제를 쓰려했지만 국내 병원들이 처방을 안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에는 약값이 비쌀 뿐 처방 받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환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면서 비교적 면역항암제가 잘 듣는 일부 암은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반면 나머지 암은 처방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이모 씨/말기암 환자 남편 : 특정 암에 대해서 급여화 조건으로 너희들은 쓰지말라고 돼 있으니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써야 하는데… ]

 

다른 암에 대해서는 검증이 안됐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박모 씨/말기암 환자 가족 : 어차피 약을 못 써서 죽는데, 뭐가 위험하냐 (이거죠.)]

 

건보대상이 아닌 담낭암을 앓고 있는 채미승씨는 올 1월 간신히 면역항암제를 처방 받았습니다.

 

두 달 사이 종양의 70%가 사라졌습니다.

 

[채미승/암투병 환자 : (종양이) 많이 없어졌어요 (처방 못 받고) 그랬으면 죽었는데 지금은 (희망이) 보이는 거예요.]

 

물론 채 씨도 여러 병원에서 거절을 당해야 했습니다.

 

채 씨 같은 기적을 바라는 수만명의 암환자들이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경험을 공유하며 처방 허용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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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뜸으로 이뤄낸 유방암 완치(계간 구당 2017 여름)

 

ㅇㅇㅇ 정회원 31기

 

 

구당 선생과 첫 만남

 

2001년 어느 날 ebs 방송을통해 구당 선생을 처음 만났다. 무극보양뜸을 강의 하셨는데 묘한 매력에 이끌려 그 강좌를 모두 시청했고 언니에게 전했다. 얼마 후에 언니가 灸堂 선생의 진료를 받고 싶다며 浦項(포항)에서 올라왔다. 그 당시 나도 허리가 아파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여서 언니와 東大門에 있었던 침술원을 찾아갔다.

 

대기실은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 찼고 그날은 접수 마감이 되어 많은사람이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포항에서 비행기 타고 진료받으러 왔다며 꼭 침을 맞아야 한다고 떼를 쓰다시피 해서 맨 마지막 시간을 할애받고 진료카드를 작성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만큼 허리 통증이 심했다. 그래도 침을 맞는 것이 두려웠다.

 

진료시간에 내가 뜸은 뜨겁고 흉터가 남는게 싫다고 했더니 灸堂 선생이 아직 덜 아픈 모양이라고 하셨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오는데 腰痛(요통)이 사라진 걸 느꼈다. 언니에게 얘기했더니 언니도 배에 만져지던 덩어리가 사라졌다며 신기해했다.침 한 번 맞고 어떻게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질 수 있을까?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아들의 도움을 받아 뜸 뜨다

 

그 후로 나는 뜸사랑 홈페이지를 종종 방문했고, 정통 침뜸 교육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교육 희망자가 너무 많이 경찰의 입회하에 추첨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기회를 보다가 나도 배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바쁘게 살다보니 생각이 희미해져 갔다. 그렇지만 뜸은 열심히 떴다. 앞쪽은 혼자서 뜨고 등은 당시 7살이었던 아들이 도와주었다.

 

뜸을 뜨고 3개월이 지나면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요즘 좋은 일이 있느냐, 피부 관리받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평소에 나는 腰椎(요추)의 이상으로 다른 사람보다 피로를 두배 넘게 받았으며 항상 몸이 무겁고 특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겨웠었다. 병원에서는 언제나 정상이었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신경서이라고 했다.

 

나중에 공부하고 나서야 내가 陽虛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서양의학을 믿지 않게 되었다. 部分을 보는 서양의학보다 全體를 보고 병의 뿌리를 치료하는 동양의학이 내게는 절실했었다.

 

팔을 올리기 어려워 한의원에 갔으나 효과가 없다

 

침뜸의 신비를 경험한 후 어느 날 갑자기 팔을 올리기도 어려운 지겨이 되어 동네 한의원을 찾아가서 침을 놓아 달라고 했다. 침 한번 맞으면 풀리 것 같다고 했더니 그 한의사가 본인은 한번으로는 절대 치료할 수 없고 열흘 정도 침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 날 침을 맞고 왔는데 효과는 없었다.

 

열흘이면 침을 맞지 않더라도 저절로 나을 것 같아서 더 이상 한의원에는 가지 않았고 팔을 스스로 풀렸다. 나는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똑같은 침인데 한의사의 침은 왜 효과가 없는지, 우리 동네 한의사가 실력이 없는 것인지. 이은성의 소설 東醫寶鑑을 읽으며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망스러웠다.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침을 맞으라고 권했는데 그때부터 나는 灸堂 선생에게 침을 맞으라고 보냈다.

 

디스크 판정을 받은 조카, 구당 선생이 치료

 

한번은 조카가 디스크 판정을 받아서 침을 맞으라고 했더니 무서워서 싫다고 했다. 灸堂 선생의 말씀대로 아직 덜 아픈가 보다고 했는데 몇 개월 후에 灸堂 선생에게 데려다 달라며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 온 그 아이는 안지도 서지도 못하고 밥 먹을 때만 겨우 식탁에 앉을 뿐이었다.

 

다음날 구당 선생의 침사에서 본 그 아이의 脊椎(척추)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듯했다. 脊椎의 위쪽은 오른쪽 아래는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 정도인지는 짐작도 못했는데 상태가 심했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이것도 나을 수 있을까요?" 했더니 "뜸 뜨면 좋아져"라고 하셨다.

 

이튿날 조카가 집으로 갔는데 전화기는 꺼져있고 집에 도착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연락이 없어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저녁때쯤 나타난 그 아이는 허리에 통증이 사라져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침뜸의 효력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 암 진단받고 방사선 치료

 

그 후에 나는 뜸 전도가 되었고 우리 형제들이 서울에 올 때마다 灸堂 선생에게 들려 뜸자리를 잡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바쁘다는 핑계로 처음 1년간 뜸을 뜬 후로는 뜸자리조차 희미해지고 없었다. 업무가 바빴고 스트레스도 심했다.

서양의학을 신뢰하지 않는 터라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는데 아는 보험 설계사가 실손 보험을 권했고 건강검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정밀검진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고 조직검사후에 의사가 급하게 수술날짜를 잡자고 했다. 초기 癌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몇 군데를 더 가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막상 診斷을 받고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수술하고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그 이후의 삶의 질은 말이 아니었다. 겉은 멀쩡해보이는데 내 몸은 언제나 피로에 젖어 있었다. 효과도 없는 여성 호르몬 억제제를 5년간 먹어야 한다고 의사가 처방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야글 먹지 않겠다고 했고 의사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안면신경 치료 마비 치료 못하는 병원

 

그러던 중 2013년 9월,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할 일이 있어서 며칠간 새벽바람을 쐬고 다니다 顔面神經痲痺가 왔다. 기가 막혔다. 병원에서 입원을 시키고 스테로이드를 한주먹씩 처방해 주었다. 물론 매일 침 치료도 병행했으며 많은 검사를 한 후에 원인은 불명이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병원에서 할 일은 다 했으니 퇴원을 하든지 한방으로 입원을 하든지 하라고 했다. 증상이 그대로였기에 나는 한방 입원실로 갔다. 안면신경마비 환자들만 모아놓은 그 병실은 끔찍했다. 같은 병실의 환자 중에는 4개월 된 할머니도 6개월된 아가씨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그대로인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무서웠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어떡하지, 침을 맞으면 차도가 있어야 하는데.. .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날 조용히 병원을 빠져 나왔다.

 

뜸을 뜨고 나서 처방받은 약을 끊다

 

灸堂 선생에게 침을 맞았는데 그동안 뻑뻑하던 눈이 조금 부드러워진 듯했다. 병원에서 맞았던 봉침은 효과도 없었으면서 너무 아파 공포로 다가왔었다. 병원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다. 완강하게 퇴원을 원하는 내게 병원에서는 책임질 거냐고 협박하듯 했다. 당연히 내 몸인데 내가 책임진다고 하고 나는 집으로 와서 침을 맞으러 다녔다. 몇 번 침 치료 후부터 마비는 풀렸고 나는 두려움에 좀 더 치료했다. 열 번쯤 침을 맞으니 완치되었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침뜸 공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다른 일보다 먼저 배우려고 알아봤다. 그랬더니 기본과정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14년 4월 월수반 332차에 등록할 수 있었다. 나처럼 병원에서는 병명도 모르는 병을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시 뜸을 뜨기 시작한 나는 경락경혈을 배우면서 膻中(전중)혈을 추가했고 한 달쯤 지나서 병원에 정기 검지늘 받았는데 의사가 호르몬 수치가 많이 좋아졌다며 이제 초음파 검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3년 반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던 호르몬 수치가 膻中혈 하나로 호전되다니 정말 놀라웠다. 그날부터 병원에서 처방바든 약을 끊었고 정기 검진도 받지 않은 상태로 병원에서 완치 판저을 내리는 5년이 지났다. 의사는 아마도 약의 효과로 착각 했을 것이다.

 

나를 설레게 한 침뜸 공부

 

기대와 설렘과 걱정을 안은 채 공부를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기초반이 끝났고 중급반으로 접어들었다. 교수들 덕분에 두러움이 점차로 사라져 갔다. 어느 반보다 열정적이었던 332차 동기 선생들로 인해 우리 반은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새로운 새계를 열어간다는것도 경이로웠고 뜻을 같이 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그 당시 직접 접히지 못했으나 皇帝內經과 醫學入門, 許任의 鍼灸經驗方, 鍼灸大成을 전해 들으며 가슴이 뛰었다. 무엇보다 침뜸의학의 꽃이라 불리는 診斷學은 어렵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四診과 八綱은 나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 주었다. 교수들 덕분에 그 문 초입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린다.

 

전문과정이 끝을 향해 치달을 즈음 집안에 장례가 났다. 너무 애달픈 죽음이라 모두가 반은 넋이 나간 상태였는데 화장장에서 곡을 하는 줄 알았던 30대 후반의 남자가 갑자기 말을 못하고 呼吸도 끊어지기 직적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119를 부르라고 말하며 환자를 눕혔다. 배운 대로 少澤과 膻中을 자극하고 四關을 터 주었더니 5분쯤 지나서 환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처음엔 사람들이 입을 벙긋거리는데 말소리는 들리지 않다가 차츰 숨을 쉴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 할 뿐 119를 부른 사람은 없었다. 다시 한 번 우리 정통침뜸이 진가를 발휘했고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참으로 배운 배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일상 속에서 경험한 침뜸의 효과

 

침뜸 교육과정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2015년 가을 長城(장성)에서 시험이 치러졌고, 31기 뜸사랑 정회원이 되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배웠으니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욱 멀다는 각오로 한 발씩 내디뎠다.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했던 선생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교육이 시작되면서부터 내 몸은 교재가 되었다. 經穴을 배울 때마다 느낌을 알기 위해서 때론 나 자신의 치료를 위해서 수없이 내 몸을 자극해 보았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정통침뜸의 놀라운 효과를 不知其數로 접한다. 이사 후 집 정리를하다가 팔을 들 수 없을 때 완골 하나로 회복되는 경험, 새벽에 식증독으로 고생하는 가족을 裏內庭과 몇 개의 혈을 자극함으로써 입원하지 않고 깨끗이 회복시킨 일, 발을 접질러 뼈가 부러진 이웃을 뜸으로 통증을 잡은 일 등.

 

배워서 남 주는 시간이 왔다

 

교육이 끝났으니 배워서 남 주는 시간이 찾아 왔다. 모든 상황을 고려한 끝에 가장 안정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화요일을 택하여 2016년 5월부터 동산봉사실에서 실천의 단계에 돌입했다. 언제나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이 되게 해 달라고.

 

봉사실에는 어렵고 힘든 분들, 나이든 어르신들이 많다.앓고 있는 병도 제각각이다. 처음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걸음도 힘겨웠던 분이 많이 좋아져서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 손을 잡고 고마워하는 그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밝게 살아가시길 소망한다.

화요팀에는 많은 선생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주춧돌 되시는 박팀장과 주실장 그 밖에 연세를 잊게 만드는 선생들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기쁜마음으로 봉사하는 그들을 나는 존경한다.

 

의삭 못 고치는 병을 고치다

 

의사가 못 고치는 병을 나 자신은 정통침뜸으로 고쳤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정상이라 말하지만 힘겹게 투벼하고 있을 사람들은 누가 고쳐주나 묻고 싶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오직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각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나를 정통침뜸으로 이끌어 주신 灸堂 선생에게 감사하고 여러모로 도와주신 교수들에게 감사하며 함께 뜻을 같이한 332차, 31기, 뜸사랑 모든 선생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 '배워서 남주자'는 구당 선생의 뜻을 실천하는 봉사실 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오늘도 정통침뜸을 붙잡고 고민하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값비싼 치료용 한약, 건보적용 받을까..복지부 검토

 

연합뉴스 이지원

입력 2018.03.11

 

 

[뉴스리뷰]

 

[앵커]

 

정부가 값비싼 치료용 한약에 대해 단계적으로 健康保險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실화만 된다면 비용 부담 때문에 한약을 짓는 데 애를 먹었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인용 기자입니다.

 

[기자]

 

여러 가지 한약재를 섞어서 달여 먹는 탕약, 가격이 비싸 일반 약처럼 자주 먹지는 못합니다.

 

한의원에서 파는 치료용 한약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건당국은 이처럼 값비싼 치료용 한약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도 보건당국이 한약을 건강보험화하기 위해 시범 사업을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한의계 내부 갈등으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80%에 가까운 한의사협회원들이 한약 건강보험 급여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실제 법안까지 발의되면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입니다.

 

<이태근 /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 "첩약(韓藥)에 대해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된다면 국민들의 한방진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첩약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의료비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의학회는 65세 이상 고령자와 난임 부부, 취약계층 등에 한약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면 총 2천300억원 가량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특정 질환에 따라 처방하는 한약의 표준화 작업과 또 해당 한약의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절차는 아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연합뉴스TV 정인용입니다.

 

(끝)

 

【서울=뉴시스】일본의 한 의사가 환자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원격진료 하는 모습.(사진출처: NHK캡쳐) 2018.03.05

 

 

日, 원격진료 확산에 지침 마련..대면진료 병행해야

 

뉴시스 김혜경

입력 2018.03.05

 

 

후생성 가이드라인 "처음엔 대면진료하고, 이후부터 온라인 진료"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일본 정부가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원격 진료, 이른바 '온라인 진료'와 관련한 지침을 마련한다.

 

5일 NHK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당초 온라인 진료를 落島(낙도: 외딴섬) 및 인구 과소지 등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한정했지만, 3년 전부터 전국에서 실시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다.

 

후생노동성(厚生省)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현재 일본 전국 약 1600곳의 의료기관이 온라인 진료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4년 전 조사에서는 약 560개 의료기관이 온라인 진료를 실시했다.

 

온라인 진료 도입 확산에 따라 후생성은 온라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 및 방법, 주의점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온라인 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는 대면진찰과 달리 상세한 검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첫 진찰은 원칙적으로 對面診察(대면진찰)를 조건으로 한다.

 

또 온라인 진료가 시작된 후에도 정기적으로 대면진찰을 실시해야 한다. 대면진찰의 빈도수는 의사와 환자가 상의해 정한다.

 

온라인 진료의 대상이 되는 환자는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 외에 암 등의 난치병, 그리고 아토피 피부염 등 증상이 안정된 사람에 한정한다. 이에 더해 증상이 급변할 경우에 대비해 곧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치료 계획을 마련해 둬야 한다.

 

후생성은 전문가 등으로부터 의견을 취합해 이달 중에 가이드라인을 정식으로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일본에서 온라인 진료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일과 육아로 병원을 자주 방문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도치기(栃木)현 우쓰노미야(宇都宮)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66세 남성은 지난 9월부터 온라인 진료를 받고 있다. 그는 고혈압으로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의사의 진료를 받아 처방전을 받아야 하지만 업무 특성상 자주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온라인 진료로 한 달에 1번 아침 출근 전에 자택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있다. 처방전은 우편으로 받는다.

 

그는 "병원에 가면 2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만, 온라인 진료는 출근 전 10분 정도면 끝나기 때문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라며 만족해했다.

 

그러나 온라인 진료를 도입하고 있는 의사들로서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顔色(안색) 등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병의 증상을 간과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온라인 진료를 도입하고 있는 한 병원의 의사는 "증상의 변화를 간과하면 자칫하다간 병이 악화하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고 있다”면서 "(온라인 진료는) 대면진료와 병행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원격의료학회 측은 온라인 진료에 대해 "일과 육아, 그리고 介護(개호: 노인 돌봄) 등으로 바쁜 환자들에게는 굉장히 유효하다"면서도 "건강상태의 변화 및 다른 질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등을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면진료와 병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ch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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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사랑 구당선생님

0초 공부법

 

우쓰데 마사미 지음

 

 

들어가며

 

학교 교육에는 빠져 있는 스피드를 의식하라

 

0초 해답, 0초 독해, 0초 시험, 0초 공부...

학교에서 배운 공부법에는 속도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목차

 

서장. 왜 건너뛰며 읽어여 하는가?

건너뛰며 읽어야 이해가 더 잘 된다

정독의 환상에서 눈을 떠라

 

1장. 0초 해답

목표가 애매한 상태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목표가 명확해지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

객관식 시험은 기출문제만 봐라

 

2장. 0초 독해 이론편 ; 멈추지말고 읽어라

0초 독해는 멈추지 말고 읽는것

모르는 외국어는 사전없이 읽을 수 없다

숲은 보되 나무는 보지 말라

모르는 부분은 건너뛰어 메모리를 아껴라

몇 번이고 반복하며 이해하라

 

3장. 0초 독해 실천편; 막히면 건너 뛰어라

기출문제는 풀지 말고 읽어라

항목별 기출문제가 좋다

막힐 것 같을 때는 목차와 반복읽기를 활용하라

구조만이라도 읽어라

 

4장. 0초시험; 늘 현재 상태와마주하라

읽기는 보기와 떠올리기다

 

5장. 0초 공부; 언제 어디서나 즉시 공부하라

목차를 외워라

 

6장. 0초 공부법에서 0초 업무법으로

0초 독해를 습관화하면 일 처라가 빨라진다

 

 

 

서장. 건너뛰며 읽어야 이해가 더 잘 된다

 

정독의 환상에서 눈을 떠라

정독의 환상이란 천천히 꼼꼼하게 읽으면, 제대로 기억하고 이해할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장. 목표가 애매한 상태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목표가 명확해지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

 

객관식 시험은 기출문제만 봐라

여기서 강조 하고 싶은 것은, 기출 문제만 풀면 된다고 했자만, 시험당일에 0초 해답이 가능한 상태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출문제는 오직 읽기만!

핵심은 기출문제는 풀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입니다.

 

2장. 0초 독해는 멈추지 말고 읽는것

모르는 부분을 천천히 읽거나 멈추지 않고 읽어나가는 것, 더 나아가 모르는 부분이나 읽고 싶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건너뛰는 것이 '0초 독해' 입니다.

 

숲은 보되 나무는 보지 말라

모르는 부분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그 부분에 멈춰서 꾸역꾸역 고만하는 상태가, 바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않는 상태입니다.

 

모르는 부분은 건너뛰어 메모리를 아껴라

 

몇 번이고 반복하며 이해하라

 

 

3장. 기출문제는 풀지 말고 읽어라

항목별 기출문제가 좋다. 항목별 기출문제는 유사한 문제가 몰려 있어 읽기가 수월합니다.

 

제목과 소제목만 먼저 읽어라

 

이해가 되는 부분, 읽고 싶은 부분을 읽어라

 

건너뛰기의 포인트는 읽다가 막힐 때

'더 읽기 싫은데' 하는 심리 상태가 됐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건너뜁니다.

 

구조만이라도 읽어라

내용은 일단 떼어두고 구조를 읽는 것, 즉 읽을 의욕이 생기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우리말로서의 '형태'를 읽는 겁니다.

 

매일, 전 범위를 1회전 하라

범위 전체의 제목만 반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회전합니다.

 

4장. 읽기는 보기와 떠올리기다

 

5장. 목차만 정리해 들고 다녀라

목차 항목에 있는 제목을 머릿속에서 질문으로 바꾼 뒤, 스스로질문해보면 그것이 바로 시험이 됩니다.

 

목차를 외워라

말하자면 목차를 정리한 책을 머릿속에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6장. 0초 독해를 습관화하면 일 처라가 빨라진다

수많은 컨설턴트나 컨설팅 업체의 최고경영자가 말하는, 컨설턴트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가설을 세워 사고 하는 능력입니다.

 

문제 분석 초기단계에 '이렇지 않을까' 하고 가설을 세워서 거기에서 정보를 수집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정보를 수집하거나 생각할 때 하나의 축이 생겨, 굉장히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수 있습니다.

침구사제도의 부활을 청원합니다

 

카테고리 보건복지

청원인 naver - ***

청원시작 2018-01-19

청원마감 2018-02-18

 

 

청원개요

문재인 대통령은 침사 · 구사 자격시험을 「접골사·침사·구사·안마사자격시험규정」(보건복지가족부령)에 따라 당장 실시하라.

 

 

1. 지난 2017. 8. 18. 대법원은 구당 김남수(1915년생, 103세)선생에 대해, 2000년~2010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침뜸교육을 문제삼아 불법의료행위로 판단하고 징역2년에 집행유예3년,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였다. 함께 침뜸교육에 참가한 김병태선생과 조근원선생에 대해서도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 벌금300만원을 각각 선고하였다.

 

이번 사건은 이미 7년전에 1심, 2심 재판에서 똑같은 법원의 판단이 있었고, 이에 불복하여 법리적인 판단을 구하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를 한 사건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7년여에 걸쳐 이 사건을 검토하고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기보다는 국민건강 증진에 대한 무책임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의료비 절감, 국가의 의료보험비 과다지출에 따른 국가재정난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왜냐하면 2010. 7. 29. 헌법재판소는 ‘구 의료법 제25조 제1항 위헌제청’에 대해 선고하면서 ‘합헌/기각’ 을 결정하였지만, 9명의 재판관중 5명이 ‘위헌’ 4명이 ‘합헌/기각’으로 판단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규정상 6:3에 이르지 못한 5:4의 결정 때문에 위헌제청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9명중 5명이 위헌으로 판단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다수의 재판관이 변화하는 세계의료실태와 국민건강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위해 법률의 개정을 촉구한 바가 있다.

이는 위헌제청법원이 2008헌가19사건(뜸사랑관련사건)외5건에 대해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의 전단부분에 대하여 위헌제청 결정을 하면서 제기한 것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2011. 8월 대법원에서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교육에 대해 서울동부교육지원청이 온라인 교육을 허용해야 한다는 결정을 하였고, 이후 침뜸교육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 침뜸교육 역시 2016. 8월 침뜸평생교육원 설립은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2017년 현재 평생교육기관으로 등록하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똑같은 대법원에서 침뜸교육이라는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면서 오히려 국민들만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은 각각의 사안을 구분하면서, 침뜸교육이라는 행정적인 절차에 따른 허가문제와 침뜸교육에서 행해지는 불법의료행위에 대해 각각 다른 내용을 판단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헌법재판관은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의학적 전문지식이 있는 자가 행하지 아니하면 사람의 생명․신체나 공중위생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행위에 대하여는 일정한 형태의 자격인증을 하고 그 자격에 반하는 의료행위, 즉 무면허의료행위를 일률적,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지만, 모든 국민은 의료행위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의료행위를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할 자유를 가지므로, 국가는 의료면허제도의 운영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제한을 꼭 필요한 범위로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의료행위의 태양(態樣)이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성에 따라 다양한 의료인의 자격을 설정함으로써, 의료소비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적정한 비용이나 접근성에 맞는 의료행위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침구(鍼灸)는,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성이나 부작용에 있어서 통상의 의료행위와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료행위까지 현행 의료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의료행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는 국민의 건강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한편 입법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국민의 의료행위 선택권을 덜 침해하는 수단으로, 독일의 치료사 제도, 미국의 침술사 제도, 일본의 의업유사행위자 제도 등이 있는바,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의료법 제81조의 의료유사업자에 “침구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를 포함시켜 침구등을 행할 수 있는 의료유사업자를 신규로 인정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경제성과 접근성을 고려한 최선의 의료행위를 선택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사람의 생명,신체나 공중위생에 대한 위해발생 가능성이 낮은 의료행위에 대하여 이에 상응한 적절한 자격제도를 마련하지 아니한 채, 비의료인에 의한 의료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의료소비자의 의료행위 선택권과 비의료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

 

진정, 무엇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건강을 위한 길인가?

만약 일부 한의사들이 제기하는 것처럼, 침뜸에 대한 부작용이 있고 침뜸시술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이에대한 증명이 필요하다면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인 검정과정을 도입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침뜸시술에 대해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검정을 해 보면 될 일이다. 구당 김남수 선생은 언제든지 이러한 검증에 나설 수 있음을 밝혀왔다.

 

2. 이제는 침구사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할 때이다.

 

침뜸시술은 3천여년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동양과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의술이다. 침뜸의술은 시대에 따라 변화발전하면서 근현대사회에서 더욱 각광받으며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침구사제도가 한의사제도로 대체되면서 그 역할이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의사제도는 영업적 이익에서 한약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영업이익을 내기가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현대의학으로서 서양의학이 집중적으로 육성되면서 우리 국민 대다수는 현대병원을 선호하게 되었고, 서양의학과의 경쟁에서도 한의사들은 더 이상 의료인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서 재정적으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의사, 서양의사 등의 구분을 떠나서 의료인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전통의학의 질병분류 및 표준화 등의 사업에서 침뜸진료를 주요한 진료수단으로 채택하고 361개 표준혈위 등을 정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추세와는 달리 한의학이라는 애매한 진료영역을 통해 한약과 침,뜸을 뒤섞어 놓아 무엇이 중요한 의료수단인지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더구나 침뜸은 의료비 수가가 낮아서 한의사 스스로가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양의사와 한의사들의 X선 촬영, 침사용 등 의료기구사용을 둘러싼 다툼 역시 환자들과 국민들의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함은 물론이고 환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침구사제도는 한의사제도로 대체될 수 있는 의학이 아니다. 더구나 침구사제도는 한의사제도 이전부터 존재해 오다가 1962년이후 침구사제도가 사실상 없어졌지만 2017년 현재까지도 침사, 구사가 생존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현황을 보면,

 

□ 침구사 등 유사의료업자 제도는 1914년 「안마술, 침술, 구술 등 영업취체규칙」(1914. 10월 조선총독부경령 제10호)에 의하여 처음 도입되었고,

 

. 1951. 9. 25. 「국민의료법」 제정으로 한의사제도가 도입되면서 침구사는 “의료유사업자”로 규정되었으며, 같은 법 제59조에서 의료유사업자제도를 주무부령으로 위임하는 근거를 만들었으나 1960. 11. 28. 에야 의료유사업자령과 「접골사·침사·구사·안마사 자격시험규정」을 제정·시행함.

 

. 1953년 이후 한의과대학의 설립으로 침구분야의 전문인력인 한의사가 배출됨에 따라 1962. 3. 20. 「국민의료법」을 「의료법」으로 전부개정하면서 관련 규정이 삭제되어 침구사제도가 폐지됨.

다만, 침구사 신규 배출은 중단되었으나 기존 자격을 취득한 자에 한하여 기득권을 보장하고 있고,

 

1973. 10. 31. 「간호보조원‧의료유사업자 및 안마사에 관한 규칙」을 제정․시행하면서 그 부칙에 따라 의료유사업자령을 폐지하였으나, 「접골사·침사·구사·안마사 자격시험규정」은 폐지되지 아니하고 남아있음.

 

□ ’2017. 1월말 현재 기득권을 보장받아 의료유사업자로서 자격에 해당하는 업을 행할 수 있는 침구사의 수는 총 30여명이고, 이들의 평균연령은 만 90세임.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은 침사.구사 자격시험을 즉각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유효한 법령이 존재하고 있고 부족한 내용은 법령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대통령령이나 각 행정부처령으로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것이 침구사 제도이다.

 

국민의 생명과 국민건강권은 더 이상 일부 이익단체의 상술에 이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로인한 국가재정의 어려움이나 국민의 재산에 손해를 끼쳐서는 더더구나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침구사제도의 실시만이 국민생명을 보호하고 국민건강권을 증진시킬수 있다. 우리의 정통 침, 뜸 술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알려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위의 내용을 국민을 생각해서 꼭 시행 하여 주세요 그리고 꼭 좋은 답변 부탁 드립니다.

 

 

(+82) 02-730-5800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대통령 비서실

청와대 및 정부에 대한 민원·제안 및 공익신고·고발 등은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로 접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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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필요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

 

김애리 지음

 

 

삶을 바꾸는 글쓰기

 

올해는 내가 작정하고 글을 쓴지 꼬박 10년째 되는 해다. 해마다 한 권씩 책을 출간하는 것도 모자라,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꼬박꼬박 칼럼도 연재했다. 블로그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SNS에 가끔 일상을 업데이트 한다.

 

20대 내내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써온 일기장은 커다란 사과상자 하나에 가득 담긴다. 시와 소설을 여러편 筆寫(필사)했고, 현재는 3년 넘게 聖經을 필사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1인 기업을 설립해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쓰기 코칭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열병처럼 나를 휩쓸었던 오랜 우울과 절망, 불안의 그림자가 씻겨 내려갔다.

 

우직하게 정직하게, 깜냥껏 폼 잡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 백지를 채워가는 수밖에는 다른 어떠한 방법도 없다. 그것이 글쓰기의 核心이자 전부다.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쓰기는 그 어떤 심리치료보다 강한 안식과 治癒, 變化를 선물한다.

 

쓰기의 기적을 믿으세요

김애리

 

 

차례

1. 성장의 글쓰기

2. 치유의 글쓰기

3. 실천 글쓰기

4. 버티는 글쓰기

5.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글쓰기

 

 

1. 성장의 글쓰기

 

사이토 다카시. '무리지어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는 단언과 함께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고난 두뇌나 공부의 양이 아닌 '혼자 있는 시간에 집중 할 수 있는 힘'임을 역설한다.

 

2. 치유의 글쓰기

 

여자들은 보통 수다의 힘에 대해 잘 안다. 직접적인 도움이 되든 안 되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쌓인 이야기를 풀어 낼 때의 그 통렬함을 너무 잘 안다.

 

3. 실천 글쓰기

 

독서토론회나 강연장 등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내란 결론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누구나 독서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15분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쪼갤수 있는 시간이다. 아직 돌도 안 된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나도 매일 15분 이상을 독서와 글쓰기 시간으로 안배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리는 '겨우' 15분이 모이면 얼마나 힘이 세지는지.

 

4. 버티는 글쓰기

 

독서와 메모습관 만큼 한 인간을 창의적이고 개성 있게 우뚝 서게 하는 것은 없다.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 중 열에 아롭은 독서광이거나 메모 광이었다.

 

5.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글쓰기

 

일흔을 훌쩍 넘긴 우리 할머니는 간혹 소설과 성경을 필사하시는데, 치매 예방에도 좋고 심리적 안정도 되고, 무엇보다 시간 때우기에 제격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신다.

 

김욱 할아버지는 현재 85세. 70세에 일을 시작했지만 어느덧 경력 15년차 베테랑 번역가가 되었다. 열다섯 살부터글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일흔이 넘어서야 진짜 원하는 삶을, 글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낮 12시까지 무려 8시간을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바가바드 기타 제2장(정창영, 샤스트리 譯)

 

[ Bhagavad Gita

Translated by Alladi Mahadeva Sastry

Published by Samata Books, Chenn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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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샹키야 요가(II. SANKHYA YOGA)

 

1. 크리슈나는 憐憫(연민)의 눈물 젖은 눈으로 苦悶하며 落膽하고 있는 아르주나에게 말했습니다.

SAMJAYA SAID:

1. To him who was thus overcome with pity and afflicted and whose eyes were full of tears and agitated, the destroyer of Madhu spoke as follows:

THE LORD SAID:

 

2. 아르주나여, 이런 急拍한 狀況 에서 어찌그리 懦弱(나약)하게 落膽만하고 있는가? 이런 行動은 그대와 같이 高貴한 사람 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며, 繼續그러면 眞正한 自由의 길에서 漸漸 멀어지고 羞恥(수치)스러운 이름만 남게될 것이다.

2. Whence in (this) perilous strait has come upon thee this weakness cherished by the unworthy, debarring from heaven and causing disgrace, O Arjuna ?

 

3. 아르주나여, 懦弱함에서 빠져나오라. 그것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勇敢하게 일어나서 敵을 무찔러라.

3. Yield not to unmanliness, O son of Pritha. It does not become thee. Cast off this base weakness of heart and arise, O tormentor of foes.

ARJUNA SAID:

 

4. 크리슈나여, 제가 어떻게 恭敬받아 마땅한 비슈마와 드로나 두 어른을 相對로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 훌륭한 어른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平生을 거지처럼 빌어 먹는것이 낫겠습니다.

4. O slayer of Madhu, how shall I assail in battle with arrows Bhishma and Drona, who are worthy of worship, O slayer of enemies.

 

5. 그들은 저의 스승입니다. 제가 제 慾心만 차려 그 분들을 죽인다면, 저에게는 온통 피로 물든 즐거움을 누릴 일만 남게될 것입니다.

5. Better indeed in this world to live even upon alms than to slay the teachers of high honor. But, were I to slay these teachers, I should only in this world enjoy the pleasures of wealth, delights stained with blood.

 

6. 저는 또한 우리가 저들을 이기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저들이 우리를 이기는 것이 나은지 조차도 모릅니다. 四寸兄弟인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이 只今 우리와 對峙(대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을 죽이고 나면 우리도 살고 싶은 마음이 없을것입니다.

6. And we know not which is the better alternative for us; nor do we know whether we shall conquer them or they will conquer us. Even the sons of Dhritarashtra, after killing whom we do not wish to live, stand arrayed against us.

 

7. 정말 混亂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只今 이 狀況에서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 것입니까? 당신을 스승으로 모실테니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요.

7. My heart contaminated by the taint of helplessness, my mind confounded about Dharma, I ask Thee: tell me what is absolutely good. I am Thy pupil. Instruct me, who have sought Thy grace.

 

8.피를 말리는 이 슬픔을 어떻게 하여야 克服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世上과 神들의 世界를 統治 하는 權力을 손에 쥐거나 富裕한 王國을 얻는 것도 다 쓸데없는 짓 같습니다.'

8. I do not indeed see what can dispel the grief which burns up my senses, even after attaining unrivalled and prosperous dominion on earth or even lordship over gods.

SAMJAYA SAID:

 

9. 偉大한 戰士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에게 이렇게 말한 다음에 '크리슈나여, 나는 싸우지 않겠습니다'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9. Having spoken thus to Hrishikesa, Gudakesa, the tormenter of foes, said to Govinda, ‘I will not fight’ and verily remained silent

 

10. 그러자 크리슈나는 兩 陣營 한가운데서 그와같이 落膽하고 있는 아르주나를 보고 도리어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0. To him who was grieving in the midst of the two armies, O descendant of Bharata, Hrishikesa as if smiling, spoke these words:

THE LORD SAID:

 

●11. 그대의 말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대는 슬퍼할 理由가 없는 것에 對해 슬퍼하고 있다. 智慧로운 사람은 산 者를 위해서도 슬퍼하지 않고 죽은 者를 위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

11. For those who deserve no grief thou hast grieved and words of wisdom thou speakest. For the living and for the dead the wise grieve not.

 

12. 그대와 나와 여기 모여있는 王들은 恒常 存在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永遠히 存在하고 있을 것이다.

12. Never did I not exist, nor thou, nor these rulers of men; and no one of us will ever hereafter cease to exist.

 

13. 한 사람이 少年의 몸과 젊은이의 몸과 늙은이의 몸을 거쳐 가듯이 죽은 다음에는 죽음 다음의 몸을 입는다. 智慧로운 사람은 이런 變化에 迷惑(미혹)되지 않는다.

13. Just as in this body the embodied (Self) passes into childhood and youth and old age, so does He pass into another body. There the wise man is not distressed.

 

14. 사람은 感覺機關과 感覺對象의 接觸(접촉)에 의하여 차가움과 뜨거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經驗한다. 그러나 이런 經驗은 흘러가는 것이다. 一時的으로 왔다가는 것들이니 참고 견뎌라.

14. The sense-contacts it is, O son of Kunti, which causes heat and cold; pleasure and pain; they come and go, they are impermanent. Them endure bravely, O descendant of Bharata.

 

15. 이런 變化가 일어나도 動搖(동요)하지 않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同一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眞正으로 智慧로운 사람이며 永遠한 生命을 얻기에 合當한 사람이다. 黃소처럼 强靭한 精神力으로 이 事實을 깨닫도록 하라.

15. That wise man whom, verily, these afflict not, O chief of men, to whom pleasure and pain are same, he for immortality is fit.

 

16. 存在하지 않는 것은 생겨날 수 없고, 存在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 事實을 깨달은 사람은 窮極的인 眞理를 깨달은 사람이다.

16. Of the unreal no being there is; there is no non-being of the real. Of both these is the truth seen by the seers of the Essence.

 

17. 宇宙萬物속에 充滿하게 깃들어 있으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 存在를 깨닫도록 하라. 이 永遠한 實在는 어떤 힘으로도 없애 버릴 수가 없다.

17. But know that to be imperishable by which all this is pervaded. None can cause the destruction of That, the Inexhaustible.

 

18. 肉體는 사라져 없어지지만 肉體속에 內在하는 測量할 수 없는 이 實在는 永遠히 죽지 않는다. 그러니 아르주나여, 아무 念慮말고 나가서 싸워라.

18. These bodies of the embodied (Self) who is eternal, indestructible and unknowable, are said to have an end. Do fight, therefore, O descendant of Bharata.

 

19. 自己가 죽이는 者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는 죽임을 當하는 者라고 생각하는 사람, 둘다 無知한 사람들이다. 죽는 것도 없고 죽임을 當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태어난적이 없으며, 죽지도 않는다.

19. Whoever looks upon Him as the slayer and whoever looks upon Him as the slain, both these know not aright. He slays not, nor is He slain.

 

20. 그대는 결코 變하지 않는다. 태어나지도 않고 變하지도 않으며 太古的부터 存在한 永遠한 그대는 肉體가 죽는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20. He is not born, nor does He ever die; after having been, He again ceases not to be; nor the reverse. Unborn, eternal, unchangeable and primeval, He is not slain when the body is slain.

 

●21. 自己가 태어 나지도 않고 變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 永遠 한 存在임을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죽일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1. Whoso knows Him as indestructible, eternal, unborn and inexhaustible ? How, O son of Pritha, and whom does such a man cause to slay and whom does he slay?

 

22.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듯이 肉體속에 살고 있는 참나는 肉身이 낡으면 낡은 몸을 벗어버리고 새 몸으로 갈아 입는다.

22. Just as a man casts off worn-out clothes and puts on others which are new, so the embodied (self) casts off worn-out bodies and enters others which are new.

 

23. 참나는 칼로 벨 수도 없고 불에도 타지 않으며 물에도 젖지 않고 바람으로 말릴 수도 없다. 참나는 벨 수도 없고 태울 수도 없으며 젖게 하거나 마르게 할 수도 없다.

23. Him weapons cut not, Him fire burns not and Him water wets not; Him wind dries not.

 

24. 참나는 永遠하고 無限하며 흔들리지 않는 永遠한 土臺이다.

24. He cannot be cut, nor burnt, nor wetted, nor dried up. He is everlasting, all-pervading stable, firm and eternal.

 

25. 참나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며 人間의 모든 생각 너머에 있어서 思惟의 對象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變化너머에 있기 때문에 自身은 變하지 않는다. 그대는 이런 事實을 깨닫고 슬픔에서 벗어 나도록 하라.

25. He, it is said, is unmanifest, unthinkable and unchangeable. Wherefore, knowing Him to be such, thou hadst better grieve not.

 

26. 아르주나여, 비록 그대가 사람이 태어남과 죽음에 從屬된 存在라고 믿고 있을 지라도 슬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것은 죽음을 避할 수 없으며, 죽은 者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26. But even if thou thinkest of Him as ever being born and ever dying, even then, O mighty-armed, thou oughtst not to grieve thus.

 

27. 나고 죽는 일은 避할 수 없을진대 어찌 죽음때문에 슬퍼해야 겠는가?

27. To that which is born, death is indeed certain; and to that which is dead, birth is certain. Therefore, about the unavoidable thing, thou oughtst not to grieve.

 

28. 萬物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서 始作하여 눈에 보이는 現象世界에 나타난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世界로 돌아간다. 여기에 뭐 슬퍼할 것이 있는가?

28. Beings have their beginning unseen, their middle seen, and their end unseen again. Why any lamentation regarding them ?

 

29. 참나의 燦爛(찬란)함을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을 說明하는 사람도 드물다. 또 說明을 해도 듣는 사람이 드물며, 들었다고 해도 대부분이 理解하지 못한다.

29. one sees Him as a wonder; and so also another speaks of Him as a wonder; and as a wonder another hears of Him; and though hearing, none understands Him at all.

 

30. 아르주나여, 모든 肉體속에 內在하는 참나는 永遠하다. 결코 죽일 수 없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라.

30. He, the embodied (Self) in every one’s body, can never be killed, O descendant of Bharata. Wherefore thou oughtst not to grieve about any creature.

 

●31. 戰士로서의 그대의 義務를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戰士에게는 正義를 爲해 싸우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이 없다.

31. Having regard to thine own duty also, thou oughtst not to waver. For, to a Kshatriya, there is nothing more wholesome than a lawful battle.

 

32. 아르주나여, 正義를 위한 이런 戰爭에 參與하게 된 戰士는 기뻐해야 한다. 이런 戰爭에서 自身의 義務를 다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갈 機會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32. Happy Kshatriya, O son of Pritha, find such a battle as this, come of itself, an open door to heaven.

 

33. 그대가 正義를 위한 이런 戰爭에 參與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罪를 짓는 일이고, 義務를 저버리는 일이며, 그대의 名譽를 더럽히는 일이다.

33. Now if thou wouldst not fight this lawful battle, then having abandoned thine own duty and fame, thou shalt incur sin.

 

34. 그러면 사람들은 그대의 羞恥 스러운 行動을 두고두고 얘기할 것이다.

34. People, too, will recount thy everlasting infamy; and to one who has been esteemed, infamy is more than death.

 

35. 尊敬받아야할 사람이 名譽스럽지 못한 行動을 하는것은 죽는것보다 못한것이다.

35. The great car-warriors will think thou hast withdrawn from the battle through fear; and having been hitherto highly esteemed by them, thou wilt incur their contempt.

 

36. 勇敢한 戰士들은 그대가 怯이나서 逃亡쳤다고 할 것이며, 그대를 尊敬하던 者들도 그대를 輕蔑(경멸)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敵들은 도저히 입에 담을수 없는 말로 그대를 嘲弄할 것이다. 이 보다 더 苦痛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36. Thy enemies, too, scorning thy power, will take many abusive words. What is more painful than that ?

 

37. 그대가 戰爭에서 죽는다면 하늘나라에 이를 것이요, 勝利 한다면 이 땅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싸우겠다는 確固한 決斷을 하고 일어나라.

37. Killed, thou wilt reach heaven; victorious, thou wilt enjoy the earth. Wherefore, O son of Kunti, arise, resolved to fight.

 

38. 苦痛과 즐거움, 얻음과 잃음, 勝利와 敗北를 同一한 것으로 보고 이 偉大한 戰鬪에 뛰어 들어라. 그러면 그대는 惡에서 벗어날 것이다.

38. Then, treating alike pleasure and pain, gain and loss, success and defeat, prepare for the battle and thus wilt thou not incur sin.

 

39. 아르주나여, 나는 只今 眞理에 對하여 理論的인 說明(샹카)을 했다. 이제는 그 理論을 實踐 (요가)하는 것에 對해 말해 주겠다.

39. This, which has been taught to thee is wisdom concerning Sankhya. Now listen to wisdom concerning Yoga, which possessing thou shalt cast off the bond of action.

 

40. 이 實踐을 通해 그대는 行爲 (카르마)의 束縛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이 實踐의 길(요가)에서는 어떤 努力도 결코 헛되지 않고 漸漸더 나은 狀態로 나아간다. 靈的인 깨달음을 爲한 아주 작은 努力일지라도 그대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40. There is no loss effort here, there is no harm. Even a little of this devotion delivers one from great fear.

 

●41.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참自我를 깨닫겠다는 오직 한가지 目標를 向해 흔들리지 않고 前晋한다. 하지만 決斷力이 없는 사람들은 끊없이 이것저것을 쫓아 다닌다.

41. Here, O son of Kuru, there is one thought of a resolute nature. Many-branched and endless are the thoughts of the irresolute.

 

42. 아르주나여, 無知한 사람들은 經典에 記錄되어 있는 말들을 最高로 여기고, 美辭麗句를 動員하여 그것을 떠벌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利己的인 欲望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天上의 福樂이란 自身들의 欲望을 投射(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42~44)

 

43. 그들은 快樂과 超能力을 얻기 爲하여 갖가지 特別한 儀式을 擧行(거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欲望에 따른 行爲로 因해 끊임없이 나고 죽는 輪廻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44. 感覺의 快樂과 超能力을 追求하는 사람은 至高의 目標를 向해 나아갈 수 없으며, 窮極的인 깨달음의 境地인 三昧에 到達 하지도 못한다.

42-44. No conviction of a resolute nature is formed in the mind of those who are attached to pleasures and power and whose minds are drawn away by that flowery speech which the unwise? enamoured of Vedic utterances, declaring there is nothing else, full of desire, having svarga as their goal ? utter, (a speech) which promises birth as the reward of actions and which abounds in specific acts for the attainment of pleasure and power, O son of Pritha.

 

45. 베다 經典들은 이 世上을 構成하고 움직이고 있는 세가지 구나(氣運)에 대해 說明하고 있다. 아르주나여, 그러나 그대는 이 세가지 구나의 活動을 超越해야 한다. 마음을 統制하여 모든 二元性을 넘어가야 한다. 얻고자 하는 마음이나 얻은 것을 쌓아 놓고자 하는 欲望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眞情한 그대 自身안에 머물러야 한다.

45. The Vedas treat of the triad of the gunas. Be, O Arjuna, free from the triad of the gunas, free from pairs, free from acquisition and preservation, ever remaining in the Sattva and self-possessed.

 

46. 온 天地가 물로 가득 차 있다면 작은 물甁(병)은 別로 쓸데가 없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어온 天地가 神性으로 充滿함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經典이 必要하지 않을 것이다.

46. What utility there is in a reservoir by the side of an all-spreading flood of water, the same (utility) there is in all Vedas for an enlightened Brahmana.

 

47. 그대의 義務는 그대가 하여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行爲의 結果는 그대가 關與할 部分이 아니다. 行爲의 結果에 對한 期待를 가지고 그것을 目的으로 行해서는 안된다.

47. Thy concern is with action alone, never with results. Let not the fruit of action be thy motive, nor let thy attachment be for inaction.

 

48. 아르주나여, 眞情한 그대 自身 안에 머물면서 成功과 失敗를 平等하게 여기고, 利己的인 欲望에 對한 執着을 버리고 그대의 義務를 修行하라. 그러면 어떤 狀況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絶對 平定을 維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狀態가 바로 요가이다.

48. Steadfast in devotion do thy works, O Dhananjaya, casting off attachment, being the same in success and failure. Evenness is called Yoga.

 

49. 行爲의 結果에 對한 執着을 抛棄하는 智慧를 避難處로 삼아라. 그러면 充滿한 靈的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行爲의 結果에 對한 欲望을 가지고 行動하는 사람은 不幸하다. 그들에게는 自身이 바라는 結果에 對한 목마름이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9. Verily action is far inferior to devotion in wisdom (buddhi-yoga), O Dhananjaya. In wisdom (buddhi) seek thou shelter. Wretched are they whose motive is the fruit.

 

50. 그러나 二元性을 넘어 마음의 平定을 獲得(획득)한 사람은 아무것도 渴望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게 되든 나쁘게 되든 結果를 念慮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요가 修行에 獻身하라. 요가는 眞正한 行爲의 技術이기 때문이다.

50. He who is endued with wisdom casts off here both good deeds and bad deeds. Wherefore apply thyself to devotion. In regard to actions devotion is a power.

 

●51. 智慧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輪廻의 原因이 되는 行爲의 結果에 對한 執着을 抛棄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不幸에서 벗어난다.

51. For, men of wisdom cast off the fruit of action; possessed of knowledge (and) released from the bond of birth, they go to the place where there is no evil.

 

52. 그대 마음이 이미 二元性의 混沌(혼돈)을 克服했다면 只今까지 배운것들과 只今 듣고 있는 모든 것이 別로 重要하지 않다.

52. When thy mind shall cross beyond the mire of delusion, then wilt thou attain to a disgust of what is yet to be heard and what has been heard.

 

53. 經典의 絢爛(현란)한 말과 가르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깊은 사마디에 安住할 수 있을 때, 그대는 完全히 요가 狀態를 成就(성취)하게 될것이다.

53. When thy mind, perplexed by what thou hast heard, shall stand firm and steady in the Self, then wilt thou attain Yoga.

ARJUNA SAID:

 

54. 오! 크리슈나여, 三昧에 安住하여 참自我에 對한 깨달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의 模襲(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앉으며, 어떻게 걷습니까?

54. What, O Kesava! Is the descript-xion of one of steady knowledge, who is constant in contemplation ? How does one of steady knowledge speak, how sit, how move ?

THE LORD SAID:

 

55. 아르주나여, 그들은 모든것 속에서 自己를 보고 自己속에서 모든 것을 보는 智慧에 安住한다. 그들은 利己的인 欲望과 感覺의 快樂에 對한 渴望을 抛棄한 사람들이다.

55. The Lord said: When a man, satisfied in the Self alone by himself, completely casts off all the desires of the mind, then is he said to be one of steady knowledge.

 

56. 그들은 괴로움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渴望하지 않는다. 그들은 貪慾(탐욕)과 두려움과 憤怒(분노)에서 벗어 났으며, 생각의 흐름이 출렁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眞情으로 智慧로운 사람이다.

56. He whose heart is not distressed in calamities, from whom all longing for pleasures has departed, who is free from attachment, fear and wrath, he is called a sage, a man of steady knowledge.

 

57. 어떤 것에도 愛捉(애착)을 갖지 않고, 좋은일을 만나든지 나쁜일을 만나든지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은 사람, 이런 사람이 確固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57. Whoso, without attachment anywhere, on meeting with anything good or bad, neither exults nor hates, his knowledge becomes steady.

 

58. 確固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거북이 껍질속으로 손발을 끌어들이듯이 感覺의 對象으로 向하던 自身의 感覺을 거두어 들인다.

58. When he completely withdraws the senses from sense-objects, as the tortoise (withdraws) its limbs from all sides, his knowledge is steady.

 

59. 感覺을 對象으로 거두어 들여도 그에 對한 渴望은 한동안 남아있다. 하지만 至高한 참나를 깨닫는 瞬間 感覺의 快樂에 對한 모든 渴望이

사라져 버린다.

59. Objects withdraw from an abstinent man, but not the taste. on seeing the Supreme, his taste, too, ceases.

 

60. 아르주나여, 感覺의 힘은 아주 强하다. 깨달음을 爲해 求道의 길을 가는 사람조차도 感覺의 힘에 휩쓸려 버릴 수 있다.

60. The dangerous senses, O son of Kunti, forcibly carry away the mind of a wise man, even while striving (to control them).

 

●61. 모든 感覺機關을 制御(제어)하면서 그 마음을 참나(또는 神)에게 集中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智慧를 얻는다.

61. Restraining them all, a man should remain steadfast, intent on Me. His knowledge is steady whose senses are under control.

 

62. 感覺의 對象에 對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執着이 생긴다.

62. When a man thinks of objects, attachment for them arises. From attachment arises desire; from desire arises wrath.

 

63. 執着은 欲望을 낳고 欲望이 채워지지 않으면 憤怒가 일어나며, 憤怒는 判斷力을 흐리게 한다.

63. From wrath arises delusion; from delusion, failure of memory; from failure of memory, loss of conscience; from loss of conscience he is utterly ruined.

 

64. 그러면 過去의 失手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反復하게 되며, 올바른 選擇을 할 수있는 힘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結局에는 삶이 荒廢(황폐)해진다.

64. He attains peace, who, self-controlled, approaches objects with the senses devoid of love and hatred and brought under his own-control.

 

65. 그러나 그대가 感覺의 世界에 살면서도 좋고 싫음을 超越 한다면 모든 슬픔이 사라진 平和가 찾아 올것이며 참나 아트만에 對한 깨달음이 흔들림없이 持續(지속) 되리라.

65. In peace there is an end of all his miseries; for, the reason of the tranquil-minded soon becomes steady.

 

66. 感覺機關을 制御(제어)하지 못하면 智慧가 멀어지고 集中하여 冥想하지 못한다. 集中하여 冥想하지 못하면 平安을 얻을 수 없고, 平安이 없다면 어찌 즐거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66. There is no wisdom to the unsteady, and no meditation to the unsteady, and to the un-meditative no peace; to the peaceless, how can there be happiness?

 

67. 그대의 마음이 感覺의 要求에 따라 이리저리끌려 다닌다면, 거센 바람이 작은 배를 집어삼키듯이 그대의 知性과 判斷力이 感覺속에 埋沒(매몰)되어 버리고만다.

67. For, the mind which yields to the roving senses carries away his knowledge, as the wind (carries away) a ship on water.

 

68.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强한 힘을 發揮하여 感覺機關의 좋아함과 싫어함에서 벗어나도록 하라. 眞情한 그대 自身에대한 充滿한 깨달음안에 安住할 수 있도록하라.

68. Therefore, O mighty-armed, his knowledge is steady whose senses have been entirely restrained from sense-objects.

 

69. 眞情한 自己自身을 깨달은 사람은 사람들이 앞뒤 區別못하는 無知의 어둠속에 있을때에 빛을 본다. 世上 사람들이 밝은 智慧 라고 하는것들이 그에게는 無知의 어둠에 지나지않는다.

69. What is night to all beings, therein the self controlled one is awake. Where all beings are awake, that is the night of the sage who sees.

 

70. 모든 江물이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고요한 것처럼, 感覺機關의 欲望을 內面의 바다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至高의 平和를 누린다. 하지만 欲望을 쫓는 사람은 결코 平和의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

70. He attains peace, into whom all desires enter as waters enter the ocean, which, filled from all sides, remains unaltered; but not he who desires objects.

 

●71. 모든 欲望을 버리고 結果에 對해 執着하지 않고 行하는 사람, 나와 나의 것이라는 에고 中心主義를 벗어난 사람은 참된 平安에 이른다.

71. That man attains peace, who, abandoning all desires, moves about without attachment, without selfishness, without vanity.

 

72. 아르주나여, 이것이 바로 至高한 境地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더 以上 迷惑되지 않는다. 그대는 이 자리에 到達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죽음을 넘어 永遠으로 들어 가도록 하라.

72. This is the Brahmic state, O son of Pritha. Attaining to this, none is deluded. Remaining in this state even at the last period of life, one attains to the felicity of Brahman.

 

- 제2장(II. SANKHYA YOGA) 끝 -

파킨슨병('무극보양뜸' 책 p239)

 

 

혈자리: 백회 심유 족삼리 신유 전중 간유 근축 곡지 폐유 대추 태계 비유 격유 기해 삼음교 무극보양뜸

 

동일질환: 진전마비

 

1) 개요

파킨슨병은 震顫痲痺(진전마비)라고도 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중뇌의 흥분과 억제를 조절하는 黑質(흑질)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소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眼精(안정) 떨림, 경직, 자세불안, 손 떨림 등이 반복되는 만성 난치성 질환이다.

 

2) 원인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인자와 환경인자의 복합작용에 의해 발병하지 않을까 하는 추정을 할 뿐이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많이 발생하나 가족력은 그다지 관계치 않는다고 보고되고 있다.

 

● 구당 선생 한말씀

파킨슨병을 침뜸의학에서는 精血虛證(정혈허증)으로 인한 心身不交(심신불교)가 주된 원인으로 본다. 사람의 腦髓(뇌수)를 乳養(유양)하는 것이 先天之精(선천지정)인 腎(신)의 精血(정혈)인데 나이 들어 노쇠하면 정혈이 고갈되어 뇌수를 유양하지 못하니 기억력이 떨어져 건망증이 심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면 치매가 되는 이치와 같다. 손발이 떨리고 머리를 흔드는 것은 心(심)의 火(화)가 腎水(신수)의 유양을 받지 못하여 火氣(화기)의 특성인 '분열 흔들림'이 발현하는 것이다.

 

3) 증상

처음에는 손에 흔들림이 일어나고 같은 쪽의 상하지에까지 미치고 나중에는 반대쪽의 상하지에까지 미쳐서 종래는 전신의 흔들림을 일으킨다. 이때부터는 근육이 때로는 보행 중 움직이지 못하고 굳은 자세로 서 있을 때가 있는데 이때는 불수의가 되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파킨슨병 환자가 혼자서 차도를 보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4) 치료

(1) 기본치료

백회 심유 신유 전중에 뜸을 떠서 水火의 조화를 이루게 하고 간유 근축 곡지 족삼리에 뜸을 떠서 관절과 근육의 기혈을 순조롭게 한다.

파킨슨병 환자는 많은 경우 발병 전에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들의 고통은 흔들리는 것을 안 흔들려고 애쓰다 보니 심장에 무리가 더 가게 되어 생긴다. 그러므로 전중 심유를 사용하여 心神(심신)을 안정시키고 심기를 보한다. 간은 근축을 주관하므로 간유와 근축을 사용하여 근육을 이완시킨다.

 

(2) 선택치료

손떨림과 함께 열이 나고 바람이 싫어지면 - 폐유 대추

손떨림과 함께 어지럼증, 이명, 요슬통이 오면 - 삼음교 태계

손떨림과 함께 심신이 피로하고 안색이 창백하면 - 비유 격유

손떨림에 가슴이 뛰고 한숨을 쉬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 기해

 

(3) 근본치료

평소 무극보양뜸을 떠서 전신기혈의 조화를 이루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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