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완치한 뜸의 놀라운 효과(계간구당 2017 가을)

 

유ㅇㅇ (뜸사랑 정회원 20기)

LA 영침뜸병원 원장

 

[뜸을 뜨고 나서 갑상선 기능항진이 완치되고 백내장 진행이 멈췄다. 군에서 32년동안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대령으로 전역해 미래를 모색하던 중 내 몸으로 침뜸의 효능을 체험하고 나니 구당 침뜸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미국 사우스베일로 침구대를 4년만에 졸업하고, 미국 침구사 면허증을 받아 LA에서 무극보양뜸 전문 <영침뜸병원>을 개원했다.]

 

좌측 눈 백내장 수술을 받다

 

우연히 2008년 KBS 추석 특집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그때 뜸의 효능에 대해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들어, 그다음 해부터 침뜸을 공부하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후 처음 배울 때와는 달리 평소 건강했기 때문에 뜸을 매일 하지 않고 1주일에 한 번 정도 하게 되었다.

 

어느날 좌측 눈이 희뿌옇게 되어 안과에 가서 검사했더니 백내장이라고 하기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우측 눈에도 백내장으로 발전되어 가는 점이 4개가 발견되어 6개월 후에는 눈도 수술하기로 하였다.

 

갑상선 기능 항진 진단을 받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혈액 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기 위해 며칠 뒤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 항진으로 진단되었다.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니 피로가 회복되었다. 2주간 약을 복용한후 다시 병원을 방문하여 재검사를 받기로 했다. 복용하는 약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거의 평생을 복용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공부했던 뜸에 관한 관심이 더 생겨 복용하던 약을 3일 치를 남겨두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에게 뜸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했는데 남은 3일 간은 뜸을 떠보고 싶다고 말했다. 만일 심한 피로를 느끼면 뜸을 즉시 중단하고 약을 복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의사와 조금은 안면이 있는 터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다.

 

갑상선 기능 항진 완치, 우측 눈 백내장 진행 멈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머지 3일 동안은 뜸을 떴는데 피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다시 혈액 검사를 한 결과 혈액이 정상으로 나왔다. 그 후 의사는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래서 뜸을 열심히 뜨기 시작했다.

 

2주 후 다시 혈액검사를 했는데 정상이었다. 그 후 3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 보자고 했다. 계속 정상으로 나오자 3개월 후 그리고 6개월 후에 다시 검사했는데 역시 정상이었다. 의사는 이제는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6개월 전에 백내장 수술을 하기로 한 우측 눈을 수술하기 위해 안과에 갔더니 우측 눈에 백내장 상태가 그동안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좌측 눈을 수술했던 안과 의사엑 그 이유가 뭘까 물었더니 뜸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6개월 전 나의 좌측 눈을 수술했던 안과의사 전 박사는 뜸사랑에서 동문수학했던 의사였다.

 

그 뒤로 나는 침뜸 의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후 2년 동안 매일 뜸을 뜨다가 잠시 중단을 해 보았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다시 피로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즉시 뜸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 후로 하루 걸러 뜸을 뜨고 있는데 지금까지 6년 동안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아이들과 나의 공부를 위한 미국행

 

군에서 전역한 후 1년여 동안 대학에서 강의했는데 아이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나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우고 싶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게 되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내게 기회가 왔다. 침뜸의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사우스베일로 침구대학(South Baylo Unibversity)에 입학했다. 4년여 동안 해야 할 공부의 양과 내용이 나에게는 너무 버거웠다. 그러나 하고 싶었던 공부였기 때문에 결딜 수 있었다. 고생도 많이 했다. 도시락을 2개씩 싸서 다니며 밤늦게까지 공부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특히 우리 집에 학생이 나를 포함하여 3명이었으니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겠지만 잘 극복해준 아내 김여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은 미국 침구사 면허증을 받고 미국 LA에서 무극보양뜸 전문 <영침뜸병원>을 개원했다. 이제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경험과 자신감을 근거로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차후 때때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낙후된 나라에 가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

구당 선생님의 '배워서 남 주자'는 모토를 되새기고, 한국에서도 침뜸시술을 자유롭게 하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병원 진료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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