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커피 두 잔을 마시면 간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작성 : 미디어 그리어(Medeea Greere)
입력 : 2024. 10. 6
※ (커피의 잠재적인 단점 ㅡ 카페인은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제공할 수 있지만, 과도한 섭취는 수면 장애, 긴장, 불안, 심박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자연 건강: 하루에 (원두)커피 두 잔을 마시면 간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과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유비쿼터스 음료인 커피는 칭찬과 비판을 모두 받았습니다. 카페인 불안과 아침에 기분을 좋게 하는 것 외에도 커피는 복잡한 이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포괄적인 탐구에서 우리는 커피 소비의 세계를 깊이 파헤쳐보며, 특히 간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춥니다. 당신의 일상적인 커피 습관은 이 중요한 기관의 친구인가 적대자인가? 알아보겠습니다.
서론: 많은 사람에게 소중한 만병통치약인 커피는 연구자와 커피 애호가 모두에게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이 사랑받는 음료에는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제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커피 소비의 미덕과 악덕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심층 기사에서는 매일 커피를 즐기는 데 숨겨진 보석과 잠재적인 함정을 밝혀보겠습니다.
커피의 영양가: 커피가 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커피의 영양 성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반 아메리카노 한 잔(240ml)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 있어, 단순히 맛있는 음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비타민B2(리보플라빈)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11%
비타민B5(판토텐산)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6%
비타민B1(티아민)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2%
비타민B3(니아신)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2%
엽산 권장 일일 섭취량의 1%
망간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3%
칼륨 권장 일일 섭취량의 3%
마그네슘 권장 일일 섭취량의 2%
인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1%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커피가 놀라운 영양 펀치를 제공하며, 전반적인 건강에 필수적인 필수 비타민과 미네랄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균형 잡힌 식단과 결합하면 커피는 비타민 결핍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카페인: 뇌와 신진대사 부스터: 커피의 핵심 성분 중 하나는 카페인으로, 신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천연 자극제입니다. 일반적인 커피 한 잔의 카페인 함량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90-100mg 정도입니다. 카페인이 신체에 어떻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1. 뇌 기능 향상: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카페인은 뇌를 자극하여 단기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각성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지 과정을 활성화하는 아침 연료입니다.
2. 신진대사 촉진: 카페인은 신진대사를 최고 기어로 끌어올려 칼로리 소모를 3-11% 증가시킵니다. 이러한 증가는 특히 몇 파운드를 더 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할 수 있습니다.
3. 성능 향상: 운동선수이든 단순히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람이든 카페인은 당신의 동맹이 될 수 있습니다. 카페인은 신체 성능을 11-12%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운동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신경퇴행성 질환 위험 감소: 전 세계 고령 인구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을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의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놀랍게도, 커피 소비는 이러한 파괴적인 질환을 앓을 위험을 상당히 줄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1.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65% 낮습니다. 이 뇌 강화 영약은 나이가 들면서 인지 능력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 파킨슨병: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파킨슨병의 위험은 현저히 낮으며, 위험 감소 범위는 32%에서 60%입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은 운동 기능을 보존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조치가 될 수 있습니다.
당뇨병 예방에 있어서 커피의 역할 : 2형 당뇨병 사례의 세계적 급증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커피 애호가들에게 희망의 빛이 있습니다.
당뇨병 방어: 연구에 따르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23-67% 낮습니다. 이 강력한 양조는 혈당 수치를 조절하고 인슐린 민감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간 건강을 위한 수호자: 커피 소비의 덜 알려졌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이점 중 하나는 간에 대한 보호 효과입니다. 이것이 이 중요한 기관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법입니다.
1. 간경변에 대한 보호: 설탕이 많은 음료와 알코올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간 건강에 상당한 위험이 초래되어 간경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간경변은 심각하고 종종 돌이킬 수 없는 간 질환입니다. 놀랍게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간경변에 걸릴 가능성이 84% 낮아 이 삶을 바꾸는 질병에 대한 보호막을 제공합니다.
2. 간암 위험 감소: 간암은 강력한 적이지만, 커피는 싸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커피 소비는 간암 위험을 40%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커피가 이 치명적인 질병과의 싸움에서 강력한 동맹이 되게 합니다.
정신 건강 혜택: 신체적 건강 혜택 외에도 커피는 정신 웰빙 개선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1. 우울증 억제: 하버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커피 애호가는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20% 낮습니다. 커피의 편안한 향과 맛은 매일 기분을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2. 자살 위험 감소: 우울증을 예방하는 것 외에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자살 생각과 행동 위험이 53% 낮습니다. 이는 이 음료가 우리의 정서적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커피의 어두운 면 : 모든 탐닉과 마찬가지로, 커피 소비에 있어서는 절제가 중요합니다. 잠재적인 단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불안과 수면 장애: 카페인은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제공할 수 있지만, 과도한 섭취는 긴장, 불안, 심박수 증가, 수면 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커피 섭취를 줄일 때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2. 카페인 중독: 카페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독성이 있습니다. 신체는 카페인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으며,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높은 복용량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카페인 금단 증상은 두통, 피로, 과민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며칠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반자, 커피는 아침의 일과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활력을 불어넣고 보호하는 힘을 가진 복잡한 영약입니다. 적당히 섭취하면 커피는 뇌 기능을 강화하는 것부터 간 질환, 당뇨병, 심지어 우울증을 예방하는 것까지 다양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균형을 맞추고 카페인 관련 부작용 및 중독과 같은 잠재적인 단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커피를 간의 친구로 보느냐 적대자로 보느냐는 당신이 커피에 접근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렇듯이, 적당히 하고 마음챙김을 갖는 것이 이 사랑하는 음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동시에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열쇠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하루에 두 잔의 커피를 마실 때, 맛있는 음료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신체와 정신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번역 : db4697
(트럼프왕과 기사이야기 카페)
출처 : NATURAL HEALTH: What Can Two Cups of Coffee a Day Do to Your Liver! - amg-news.com - American Media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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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
후진(後秦) 구자국(龜茲國)삼장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김진철 번역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 설법을 하시어 아야교진여(阿若橋陳如)를 제도하시고 최후의 설법으로 수발타라(須跋陀羅)를 제도하셨다. 제도할 자를 다 제도하여 마치시고는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장차 열반에 드시려고 하셨다.
이때 밤은 고요하고 아무 소리가 없었으므로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법의 주요한 점을 간략히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내가 입멸한 후에 마땅히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계율)를 존중하고 진귀하게 여겨 공경해야 하리니 어둠 속에서 광명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이 하라. 마땅히 이것을 알면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큰 스승이며 내가 세상에 있더라도 이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청정한 계를 지닌 자는 판매하고 무역하지 말고 집과 논ㆍ밭을 마련하여 두지 말고 사람이나 노비나 짐승을 기르지 말며, 일체 씨 뿌리고 재배하는 것과 모든 재물과 보배를 다 멀리하기를 불구덩이 피하듯 하고, 풀과 나무를 베거나 땅을 파고 토지를 개간하지 말고, 탕약을 짓거나 길흉(吉凶)을 점치거나 우러러 별을 보아 참과 이지러짐을 관측하거나 역수(曆數)로 운수를 헤아리고 맞히는 일들은 응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소중히 하여 제 때에 맞춰 먹으며, 청정하게 스스로 생활하고 세상일에 참여하여 명을 이어가지 말며, 주술을 부리거나 신선의 약을 구하지 말며, 귀한 이와 인연 맺기를 좋아하여 친한 이를 업신여기는 일은 모두 하지 말라.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여 바른 생각으로 남을 제도하고 자기의 잘못을 감추거나 기이한 것을 나타내어 중생을 미혹시키지 말며, 네 가지 공양(음식ㆍ의복ㆍ침구ㆍ의약)에 있어서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아서 공양물을 쌓아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이것은 계율을 지니는 모양을 간략히 말한 것으로 계는 곧 바르고 순한 해탈의 근본이라 바라제목차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계를 의지하여 모든 선정과 고통을 없애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비구들아, 마땅히 청정한 계를 지녀서 범하여 무너뜨리지 말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청정한 계를 지니면 곧 좋은 법을 가질 수 있겠지만 만약 청정한 계가 없으면 모든 좋은 공덕이 생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계는 제일 안온한 공덕이 머무는 곳이다.
너희 비구들이여, 계에 머물렀거든 마땅히 5근(根:감관, 眼耳鼻舌身)을 제어하여 방일하게 하여 5욕에 빠져들지 말게 하라. 비유하면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쥐고 살펴서 소가 멋대로 날뛰어 남의 밭에 곡식의 싹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5근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5욕은 그 끝을 몰라서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나운 말과 같아서 고삐를 제어하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끌어다가 구덩이에 떨어뜨릴 것이다. 강도의 해를 당하는 것은 그 고통이 일생에 그치지만 5근 도적의 화는 그 재앙이 여러 생生에 미치어 해가 되므로 매우 중하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까닭으로 지혜 있는 이는 제어하여 그것을 따르지 말고 그것을 도적을 붙잡듯 잘 붙잡아야 하며 제멋대로 방일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가령 그것을 놓아두더라도 또한 모두 머지않아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 5근은 마음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잘 제어하라.
이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흉악한 짐승이나 인명을 해치고 재물을 겁탈하는 도적보다 심하니 큰 불길이 치솟는 것으로도 그것을 비유할 수 없느니라. 또한 이리저리 가벼이 날뛰면서 꿀만 보고 구덩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고삐 풀린 미친 코끼리 같고, 원숭이가 나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날뛰는 것과 같아서 막고 제어하기 어렵다. 그러니 마땅히 빨리 그것을 꺾어서 방일하지 못하게 해야 하느니라. 마음을 멋대로 놓아두면 남의 착한 일을 상실하게 하지만 그것을 제어하여 한 곳에 두면 무슨 일이고 처리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네 마음을 꺾어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
너희 비구들이여, 모든 음식을 받음에 마땅히 약을 먹듯이 하여 좋고 나쁜 것을 따라 더 먹고 덜 먹지 말고 얻어서 몸을 지탱하여 굶주림과 목마름이나 없앨 것이다. 마치 꿀벌이 꽃을 찾을 때 다만 그 맛을 취할 뿐 빛과 향기는 손상하지 않는 것처럼 비구도 그러하여 남의 공양을 받음에 자기의 괴로움만 없앨 것이요, 많은 것을 구하여 그 선한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라. 비유하면 지혜 있는 이는 소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감당할 것인가를 헤아려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워 그 힘을 다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한 마음으로 선법(善法)을 닦아 익혀 제 때를 잃지 말며 초저녁과 새벽에도 그만두지 말고 한밤중에도 경을 외워서 스스로 쉴 것이요, 수면의 인연으로 일생을 아무 소득 없이 보내지 말라. 마땅히 무상(無常)의 불길이 모든 세간을 태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빨리 자신을 제도하기를 구하여 잠자지 말라. 모든 번뇌의 도적이 사람을 죽이려고 엿보는 것이 원수보다 심하니 어찌 편안히 잠들어 스스로 놀라 깨지 않겠는가?
번뇌의 독사가 너의 마음에 잠자고 있는 것은 비유하면 검은 까치독사가 너의 방에서 잠자고 있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지계의 갈고리로 빨리 물리쳐 없애버려 수면의 독사를 쫓아낸 뒤에야 곧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요, 독사가 나가지도 않았는데 잠드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니라. 부끄러움의 옷이 모든 장엄 가운데 제일이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 같아 능히 사람의 나쁜 잘못을 제어하니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항상 부끄러워하여 잠시도 버리지 말라. 만약 부끄러워함을 여의면 모든 공덕을 잃나니,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곧 선한 법이 있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는 짐승들과 다름이 없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너의 사지를 마디마디 가르거든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걷어들여 성내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또한 마땅히 입을 지켜서 나쁜 말을 하지 말라. 만약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스스로 도를 방해하고 공덕의 이익을 잃게 되나니, 참음의 공덕은 계를 지키고 고행을 하는 것도 이에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능히 인욕할 수 있는 사람을 일러 힘이 있는 대인(大人)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남이 욕하여 꾸짖는 독을 감로수를 마시듯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도에 들어간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냄의 해는 능히 모든 선한 법을 깨뜨리고 좋은 명예를 무너뜨려 금생에서나 내생에서나 남이 보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내는 마음은 맹렬한 불길보다 더한 것이니, 마땅히 항상 막고 지켜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공덕을 겁탈하는 도적은 성냄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속인은 도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욕심을 누리고 살기에 자기를 제어하는 법이 없으므로 성을 내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출가하여 도를 행하는 욕심 없는 사람으로서 성냄을 품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한 것이니, 비유하면 맑은 구름 가운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는 것과 같으니 맞지 않는 일이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마땅히 그대의 머리를 만져보라. 이미 장식한 좋은 옷을 버리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의 모습이 이러함을 보고 만약 교만이 일어나거든 마땅히 빨리 없애버려야 하느니라. 교만을 기르는 것은 세속 사람으로서도 오히려 마땅한 일이 아니거늘 하물며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해탈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걸식을 행하는 데 있어서 마땅하겠는가?
너희 비구들이여, 아첨하고 거짓된 마음은 도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을 질박하고 정직하게 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첨과 바르지 못함은 그저 남을 속이는 일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이럴 수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질박과 정직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비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고뇌 또한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함도 없고 욕심도 없으므로 이런 근심이 없는 것이다. 다만 욕심을 적게 하더라도 오히려 닦아 익히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능히 모든 공덕을 냄에 있어서이겠는가?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첨과 거짓으로써 남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다시 모든 근(根)에 이끌림을 당하지 않느니라. 욕심을 적게 하여 수행하는 이는 마음이 평안하여 근심과 두려움이 없으며 하는 일마다 여유가 있어 항상 부족함이 없나니 욕심이 적은 이는 곧 열반을 지니고 있음이라, 이것을 일러 욕심이 적다고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하거든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을 관해야 하느니라. 만족할 줄 아는 법이 곧 부유하고 즐겁고 안온한 곳이니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안락하고, 만족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더라도 뜻에 맞지 않을 것이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느니라. 만족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5욕(欲)에 이끌려 다니니,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연민의 대상이 된다. 이것을 일러 만족할 줄 안다고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일 적정(寂靜) 무위(無爲)의 안락을 구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시끄러움을 떠나 홀로 한가한 곳에 있어야 하느니라. 고요한 곳에 있는 사람은 제석천과 모든 하늘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하는 바가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바깥의 여러 대중을 떠나서 한가한 곳에 홀로 처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생각해 없애야 할 것이다. 대중을 좋아하는 사람은 곧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나니, 비유하면 큰 나무에 많은 새들이 모여 앉으면 나무가 마르고 꺾여서 부러지는 근심이 있는 것과 같다. 세간에 얽매이고 집착하면 여러 가지 괴로움에 빠지리니, 비유하면 늙은 코끼리가 늪에 빠져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일러 멀리 떠난다[遠離]고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일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라. 비유하면 작은 물방울이라도 쉬지 않고 흐르면 능히 돌을 뚫는 것과 같다. 만약 수행자의 마음이 자주자주 게을러져 공부를 폐한다면 그것은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내고자 할 때 나무가 뜨겁기도 전에 쉬는 것과 같아 아무리 불을 얻고자 해도 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일러 정진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선지식을 구하고 선호조(善護助)를 구하려면 잊지 않고 생각하라. 만약 잊지 않고 생각하면 모든 번뇌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마땅히 생각을 걷어들여 마음에 두어야 한다. 만약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면 모든 공덕을 잃어버릴 것이요, 만약 생각하는 힘이 굳고 굳세면 비록 5욕(欲)의 도적 속에 들어가더라도 해침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비유하면 갑옷을 입고 적진에 들어감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일러 잊지 않고 생각함[不忘念]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마음을 가다듬어 흩어지지 않게 하려면 마음을 곧 선정에 두어야 할 것이니, 마음이 정(定)에 있기 때문에 능히 세간의 생멸법의 모양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만약 정을 얻은 사람이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면 물을 아끼는 집안은 둑이나 못을 잘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수행하는 자도 또한 그러해서 지혜의 물이 새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선정[定]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지혜가 있으면 탐내고 집착함이 없을 것이니, 항상 스스로 반성하여 살펴서 잃지 않게 할 것이니라. 이것이 곧 나의 법 가운데 능히 해탈을 얻는 것이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미 도인도 아니며 또 속인도 아니라 무엇이라 이를 수 없느니라. 진실한 지혜는 곧 늙고 병들고 죽는 바다를 건너는 견고한 배요, 또한 이 무명(無明)의 어둠 속의 큰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요, 번뇌의 나무를 베어내는 날카로운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로써 자신을 더욱 길러야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빛을 지녔다면 비록 천안(天眼)이 없더라도 이 사람은 밝게 보는 사람이니, 이것을 일러 지혜(智慧)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갖가지 희론(戱論)을 하면 마음이 곧 산란해지나니 다시 출가하더라도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빨리 산란한 마음과 희론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고자 하거든 오직 걸핏하면 희론하는 버릇을 없애야 한다. 이것을 일러서 희론하지 않음[不戱論]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모든 공덕에 있어서 항상 마땅히 한마음으로 모든 방일함 버리기를 원수와 도적을 멀리 하듯이 하라. 크게 자비하신 세존께서는 이롭게 하고자 하신 바를 모두 구경(究竟)으로써 하셨으니, 너희들은 다만 부지런히 그것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혹 산간이나 빈 못가에 있거나, 혹 나무 밑에서나 또는 고요한 방에 한가히 있을 때라도 받은 법을 생각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마땅히 스스로 힘써서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헛되이 죽으면 뒤에 근심과 뉘우침을 부를 것이다.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 병을 알아 약을 일러주는 것인데 먹고 안 먹는 것은 의사의 잘못이 아니요, 또 나는 착한 길잡이와 같아 좋은 길로 사람을 인도하되 내 말을 듣고서도 그 길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길잡이의 잘못이 아니니라. 너희들은, 만약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에 대하여 의문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 의심을 품은 채 해결을 구하지 않는 이는 없는가?”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말씀하셨으나 묻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누루타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게 할 수는 있어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4제(諦)는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제(苦諦)는 진실로 괴로움이라 즐거움이 될 수 없으며, 집제(集諦)는 이 괴로움의 참된 원인이라 다시 다른 원인이 없으며, 만약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면 그 원인도 곧 없어질 수 있는 것이라 원인이 없어지므로 결과도 없어질 것이니, 괴로움을 없애는 도제(道諦)는 진실로 참된 도요, 다시 다른 도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비구들은 4제에 대하여 결단코 의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때 대중 가운데에서 의심을 분별하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심을 보고 모두 슬픈 마음을 품고 있으며, 처음 법에 들어온 이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모두 다 제도를 얻었으니, 비유하면 밤에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을 보고 곧 길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며, 만약 번뇌를 아주 끊어 이미 고해(苦海)를 건넌 사람들은 그저 생각하기를 ‘세존께서 멸도하심이 어찌 이렇게 빠른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누루타가 비록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4성제(聖諦)의 뜻을 밝게 안다고 말했지만 세존께서는 이 여러 대중으로 하여금 다 견고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대비심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근심하고 괴로운 마음을 품지 말라. 내가 만약 한 겁(劫) 동안 이 세상에 머문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마땅히 멸할 것이요, 끝내 만나고 헤어지지 않을 수는 없느니라.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법에 다 갖추어져 있으니 비록 내가 오래 머물러도 다시 더 이익될 것이 없느니라. 마땅히 제도할 만한 자는 천상이나 인간이나 이미 다 제도하였고,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도 이미 다 제도할 인연을 지었느니라. 지금부터는 나의 모든 제자들이 더욱더 쉬지 않고 이것을 행하면 바로 여래의 법신(法身)이 항상 있어서 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은 무상하므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세간도 이와 같은 것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빨리 해탈을 구해서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없애버려라. 세상은 진실로 위태롭고 무르고 약하여 단단하고 굳은 것이 없느니라. 내가 이제 멸도하는 것은 나쁜 병을 없애는 것과 같아 이것은 마땅히 버려야 할 나쁜 물건이거늘 거짓으로 몸이라 일러 생로병사의 큰 바다에 빠져 있으니, 어찌 지혜 있는 이가 이것을 없애기를 원수나 도적을 죽이는 것처럼 기뻐하지 않겠는가?
너희 비구들이여, 항상 마땅히 일심으로 부지런히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구하라. 이 세상의 모든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법은 다 헐어 무너질 불안한 모양이니, 너희들은 그만 중지하고 다시 말하지 말라. 때는 장차 지나가려 하고 나는 이제 멸도하고자 하노라. 이것이 바로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
< 해제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 >
1. 개요
이 경은 부처님이 열반에 임하여 제자들에게 계율을 존중할 것을 당부하고 법요(法要)에 대해 약설(略說)하는 내용이다. 별칭으로 『불임반열반경(佛臨般涅槃經』·『불임반열반약설교계경(佛臨般涅槃略說敎誡經)』·『불유교경(佛遺敎經)』·『유교경(遺敎經)』이라고도 한다.
2. 성립과 한역
중국 후진(後秦)시대에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이 402년에서 412년 사이에 한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주석서와 이역본은 없다.
4. 구성과 내용
총 1권으로 구성된 이 경은 부처님이 열반에 임하여 제자들에게 계율을 존중할 것을 당부하고 법요(法要)에 대해 약설(略說)하는 내용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으로 다섯 명의 비구를 구제하고 최후의 설법에서 수발다라를 구제하는 것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사명을 마친다. 사라(娑羅) 쌍수(雙樹) 사이에서 열반에 들게 된 부처님은 한밤중 고요한 때 제자들을 위해 간략하게 다음과 같은 법요를 설한다.
입멸한 후에 마땅히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계율)를 존중하고 진귀하게 여겨 공경해야 한다. 계에 머물러, 마땅히 5근(根:감관, 眼耳鼻舌身)을 제어하고 5욕에 빠져들지 말라. 남의 공양을 받음에 자기의 괴로움만 없앨 뿐, 많은 것을 구하여 그 선한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라. 수면의 인연으로 일생을 아무 소득 없이 보내지 말라. 성내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또한 마땅히 입을 지켜서 나쁜 말을 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마음을 질박하고 정직하게 하라. 만족할 줄 아는 것을 관하라.
시끄러움을 떠나 홀로 한가한 곳에 있어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선지식을 구하고 선호조(善護助)를 구하려면 잊지 않고 생각하라. 부지런히 정진해 모든 정(定)을 닦아 익혀라. 산란한 마음과 희론(戱論)을 버려라.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근심하고 괴로운 마음을 품지 말라. 일심으로 부지런히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구하라. 부처님은 이러한 법의 요점으로 최후의 가르침을 설한다. 한편 이 경은 아함의 『열반경』과 마명(馬鳴)의 『불소행찬』 제5, 『불본행경』 제7 등과 유사한 점이 있다.
삼법경三法經, 부처님은 왜 설법하는가
삼법경(三法經)
부처님은 왜 설법하는가
잡아함 14권 346. 삼법경(三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陁竹園。爾時,世尊告諸比丘:
“세간에서 사랑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뜻에 맞지 않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이르는 것이니라. 만일 사랑할 만하지 않고 생각할 만하지 않으며 뜻할 만하지 않은 이 세 가지 법이 세간에 없었더라면, 여래(如來)ㆍ응공[應]ㆍ등정각(等正覺)은 세간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요, 세간에서도 알고 보아 바른 법과 율을 설하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랑할 만하지 않고 생각할 만하지 않으며 뜻에 맞을 만하지 않은 늙음ㆍ병듦ㆍ죽음, 이 세 가지 법法이 세간에 있기 때문에 여래ㆍ응공ㆍ등정각께서 세간에 출현하셨고, 세간에서도 안 것과 본 것으로 바른 법(法)과 율(律)을 설하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有三法,世閒所不愛、不念、不可意。何等爲三?謂老、病、死。世閒若無此三法不可愛、不可念、不可意者,如來、應、等正覺不出於世閒,世閒亦不知有如來、應、等正覺知見,說正法、律。以世閒有老、病、死三法不可愛、不可念、不可意故,是故如來、應、等正覺出於世閒,世閒知有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正法、律。
세 가지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여의지 못하나니,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탐욕[貪]ㆍ성냄[恚]ㆍ어리석음[癡]이니라.
以三法不斷故,不堪能離老、病、死。何等爲三?謂貪、恚、癡。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능히 끊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나라고 보는 소견[身見]ㆍ금계에 대한 집착[戒取]ㆍ의심[疑]을 일컫는 것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貪、恚、癡。何等爲三?謂身見、戒取、疑。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바르지 못한 사유[不正思惟]ㆍ사도를 가까이 하고 익힘[習近邪道]ㆍ게으른 마음[懈怠心]을 이르는 말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身見、戒取、疑。何等爲三?謂不正思惟、習近邪道,及懈怠心。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바르지 못한 사유ㆍ사도를 가까이 하고 배움ㆍ게으른 마음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생각을 잃음[失念]ㆍ바르게 알지 못함[不正知]ㆍ어지러운 마음[亂心]이 그것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不正思惟、習近邪道及懈怠心。何等爲三?謂失念、不正知、亂心。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을 잃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들뜸[掉]ㆍ율의를 어김[不律儀]ㆍ계를 배우지 않음[不學戒]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失念,不正知,亂心。何等爲三?謂掉、不律儀、不學戒。
다시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배우지 않음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믿지 않음[不信]ㆍ가르치기 어려움[難敎]ㆍ게으름[嬾墯]을 이르는 말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掉、不律儀、不學戒。何等爲三?謂不信、難教、懈怠。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성인을 뵈려고 하지 않음[不欲見聖]ㆍ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不欲聞法]ㆍ항상 남의 단점을 찾는 것[常求人短]을 일컫는 것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不信、難教、懶墯。何等爲三?謂不欲見聖、不欲聞法、常求人短。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고 하지 려 하지 않음ㆍ항상 남의 단점 찾는 것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공경하지 않음[不恭敬]ㆍ사나운 말[戾語]ㆍ나쁜 벗과 사귐[習惡知識]이 그것이니라.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不欲見聖、不欲聞法,常求人短。何等爲三?謂不恭敬、戾語、習惡知識。
또 세 가지 법이 있어 그것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과의 사귐을 여의지 못하나니,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無慚]ㆍ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無愧]ㆍ방일(放逸)한 것이 그것이니라. 이 세 가지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과의 사귐을 여의지 못한다.
復有三法不斷故,不堪能離不恭敬、戾語、習惡知識。何等爲三?謂無慚、無愧、放逸。此三法不斷故,不堪能離不恭敬、戾語、習惡知識。
왜냐 하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고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에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쁜 벗과 사귀게 되며, 나쁜 벗과 사귀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고 하지 않고 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항상 남의 단점만 찾게 되느니라. 남의 단점을 찾기 때문에 믿지 않고 가르치기 어려우며 말이 거칠고 게을러지며, 게으르기 때문에 들뜨고 율의(律儀)를 어기고 계를 배우지 않게 되며, 계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잃고 바르게 알지 못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되느니라. 어지러운 마음이기 때문에 바르게 사유하지 못하고 사도(邪道)를 가까이 하고 익히며 게으른 마음이 생기고, 게으른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고 금계에 집착하고 의심하게 되며, 의심하기 때문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하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에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여의지 못하게 되느니라.
所以者何?以無慚、無愧故放逸,放逸故不恭敬,不恭敬故習惡知識,習惡知識故不欲見聖、不欲聞法、常求人短,求人短故不信、難教、戾語、懶墯,懶墯故掉、不律儀、不學戒,不學戒故失念、不正知、亂心,亂心故不正思惟,習近邪道,懈怠心,懈怠心故身見、戒取、疑;疑故不離貪、恚、癡,不離貪、恚、癡故不堪能離老、病、死。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여읠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고 나면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여읠 수 있느니라.
斷三法故,堪能離老、病、死。云何三?謂貪、恚、癡。此三法斷已,堪能離老、病、死。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三法斷故,堪能離貪、恚、癡。云何三?謂身見、戒取、疑。此三法斷故,堪能離貪、恚、癡。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바르지 않은 사유ㆍ사도를 가까이하고 배움ㆍ게으른 마음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三法斷故,堪能離身見、戒取、疑。云何爲三?謂不正思惟、習近邪道,起懈怠心。此三法斷故,堪能離身見、戒取、疑。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사유ㆍ사도를 가까이하고 배움ㆍ게으른 마음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생각을 잃은 마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이르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사유ㆍ사도를 가까이하고 배움ㆍ마음의 게으름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三法斷故,堪能離不正思惟,習近邪道及懈怠心。云何爲三?謂失念心、不正知、亂心。此三法斷故,堪能離不正思惟,習近邪道及心懈怠。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생각을 잃은 마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범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능히 생각을 잃은 마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三法斷故,堪能離失念心、不正知、亂心。何等爲三?謂掉、不律儀、犯戒。此三法斷故,堪能離失念心、不正知、亂心。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범하는 것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이르는 말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능히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범하는 일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有三法斷故,堪能離掉、不律儀、犯戒,云何三?謂不信、難教、懶墯。此三法斷故,堪能離掉、不律儀、犯戒。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성인을 뵈려 하지 않음ㆍ법 듣기를 좋아하지 않음ㆍ남의 단점 찾기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능히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有三法斷故,堪能離不信、難教、懶墯。云何爲三?謂不欲見聖,不樂聞法,好求人短,此三法斷故,堪能離不信、難教、懶墯。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 하지 않음ㆍ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ㆍ남의 단점 찾기를 좋아하는 것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고 하지 않음ㆍ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ㆍ남의 단점 찾기를 좋아하는 것을 여읠 수 있느니라.
復三法斷故,堪能離不欲見聖、不欲聞法、好求人短。云何爲三?謂不恭敬、戾語、習惡知識,此三法斷故,離不欲見聖,不欲聞法,好求人短。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ㆍ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ㆍ방일한 것을 이르느니라. 왜냐 하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공경하고 말에 순종하며 착한 벗을 위한다. 착한 벗을 위하기 때문에 현인(賢人)과 성인(聖人) 뵙기를 좋아하고 바른 법 듣기를 좋아하고 남의 단점을 찾지 않으며, 남의 단점을 찾지 않기 때문에 믿음을 내고 말에 순종하고 열심히 정진(精進)한다.
復有三法斷故,堪能離不恭敬、戾語、習惡知識。云何三?謂無慚、無愧、放逸。所以者何?以慚愧故不放逸,不放逸故恭敬順語、爲善知識,爲善知識故樂見賢聖、樂聞正法、不求人短不求人短故生信、順語、精進。
열심히 정진하기 때문에 들뜨지 않고 율의에 머무르고 계를 배우며, 계를 배우기 때문에 생각을 잃지 않고 바르게 알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에 머무른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사유하고 정도(正道)를 가까이 하고 마음이 게으르지 않으며, 마음이 게으르지 않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소견에 집착하지 않고 금계에 집착하지 않고 의혹을 없앤다.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일으키지 않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을 끊을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精進故不掉、住律儀、學戒,學戒故不失念、正知、住不亂心,不亂心故正思惟、習近正道、心不懈怠,心不懈怠故不著身見、不著戒取、度疑惑,不疑故不起貪、恚、癡,離貪、恚、癡故堪能斷老、病、死。”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오후 不食하라...디너(dinner)는 만병의 근원
오후 不食하라...디너(dinner)는 만병의 근원
도올 김용옥
■ “선생님, 저는 지금 수승화강水昇火降의 비결을 전수받을 생각만 하고 있는데..?”
― 비결의 전수는 어려운 것이다. 그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비결은 비결이 되지 아니 한다. 나의 몸은 거대 사회(Society)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국가라고 부르는 사회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병원이었고 대가였다. 그래서 아버지 생신잔치를 비롯하여 교회잔치 등 일년 내내 여러 형태의 잔치가 많았다.
그러면 천안 읍내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상을 받는다. 우리 집의 모든 방이 꽉꽉 들어찼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모든 잔치가 저녁이 아니라 아침밥을 먹는 것이었다. 요즈음 감각으로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가친척과 동네아낙들이 부엌에 모여 며칠을 준비하고 전을 부치고, 당일 새벽부터 본격적인 잔치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어디서 그렇게 사람이 몰려오는지 아침 7시 정도만 되면 집안이 꽉 들어찬다. 물론 읍내 주변의 거지들도 같이 몰려든다. 내가 아까 삶의 양식(Lebensform)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와 같은 삶의 양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꼭 이러한 양식의 음식문화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우리 동방인에게는 “디너(Dinner)”라는 개념이 저녁밥이 아니라 아침밥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자라날 때만 해도 주변의 대부분의 현실은 읍내를 빼놓고는 전기가 없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장자莊子가 이상으로 삼은 “일출이작日出而作하고 일입이식日入而息”하는 삶, 즉 해가 지면 더불어 자고 해가 뜨면 더불어 활동하는 그러한 삶의 리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농부가 새벽 4시면 일어난다. 우선 소죽을 쑨다. 그리고 들판을 돌아보고 충분한 활동을 한 후에 아침상을 받는다. 그래서 아침이 엄청 거하다. 아침이 곧 디너인 것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일하면서 들판에서 점심과 새참을 먹고 저녁 때는 매우 간략히 먹고 일찍 잔다. 저녁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거한 상을 차릴 여력이 없는 것이다. 황혼이 깃들면 오직 휴식의 분위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옛날의 유자儒者들은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다. 나의 조부도 동복 군수를 지내다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여 은퇴한 분인데 저녁은 평생토록 흰 죽 한 사발만 간략히 자셨다고 한다.
그런데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즉 서양을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즉 서양적 삶을 자신의 레벤스포름으로 생각하면서, 개념이 바뀌고 서양식 “디너” 개념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시민 사회의 도시문명화라는 구조적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중·고등학교의 서양적 삶을 동경하는 공민 선생이 아침을 거하게 먹는 조선인의 습관을 비판하고, 문깐에서 배달된 우유 한 컵만 마시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서양인의 간편한 삶을 찬양하는 소리를 누누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삶이 요즈음 사람들의 동경 아닌 현실이 되었다.
내가 나의 클리닉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하루 식사를 몇 끼를 하냐고 물으면 거의 두 끼만 먹는다고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을 안 먹는 두 끼 생활자는 한 명도 없다. 모두 아침은 굶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두 끼가 아니다. 밤새 처먹고 늦잠을 잤으니 아침에 일어난들 밥생각이 있을 수 없다. 아침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이다.
그리고 부스스 눈 비비고 오전을 띵하게 지내다가 점심 먹고 정신차리고, 오후에 활동하다가 저녁을 거하게 차려먹고, 껏도 분명히 미원투성이의 외식! 그리고 야참을 잔뜩 먹고 새벽녘이나 되어 잠자리에 들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 현대시민사회적 삶의 표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우리는 매우 중요한 천지코스몰로지적 식생활의 대명제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디너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다. The dinner is the source of all human disease."
이것은 서양사람들에게는 매우 괴이하게 들리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태괘泰卦와 비괘否卦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메시지요, 삶의 지혜다. 우리는 모든 서양적 가치를 전도(transvaluation)시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미얀마나 스리랑카와 같은 남방불교의 문화국을 가보면 승려들이 “오후불식午後不食”이라는 계율을 꼭 지킨다. 불교를 운운하지 않아도 인도의 힌두이즘문화권 속에서도 브라흐마차리야의 삶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오후불식”의 계율이 들어있다.
“오후불식”이란 매일 낮 정오로부터 그 다음날 새벽 먼동이 틀 때까지 일체의 음식을 삼가는 것이다. 매일 단식인 셈이다. 그런데 단식을 표방하는 이슬람문화권의 라마단(무슬림역 상의 제9월)은 오히려 거꾸로 해가 지고 나서 먼동이 틀 때까지 진냥 먹고 마신다. 문명의 레벤스포름은 이와 같이 다르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할까? 제각기 문화적 이유가 있겠지만 의학상으로 보면 “오후불식”이야말로 인간을 건강케 만드는 정답인 것이다.
불길은 항상 아래서 위로 치솟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체에서는 하초에서 상초로 치솟는다. 사람이 드러누워 자도, 불길은 횡적이지만 머리 쪽으로 상향한다. 음식은 일단 중초(胃腸)로 들어가 불을 형성한다. 불은 에너지다. 무형의 태양에너지가 광합성에 의해 유형화된 것이 지미地味의 기본이다.
인간은 잠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잠이야말로 나의 몸의 엔트로피 증가를 감소시키는 역행의 생명현상이다. 잠이 없으면 인간은 피로(Fatigue)로 죽는다. 인간 이성의 적은 피로요, 이성의 친구는 잠이다. 잠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잠은 생명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데 잠이란 기본적으로 고등생물에 있어서 신경활동의 고도성과 관련되며 반드시 휴식을 요구케 되는 리듬의 한 표현이다.
신진대사나 의식의 상태가 정상을 회복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생리기능의 저하를 동반하는 릴랙세이션(relaxation)이다. 그런데 이 수면기간 동안에 보통 타율신경계는 확실하게 휴식을 취하지만 자율신경계는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잠잔다고, 팔뚝의 근육은 휴식을 취하지만, 심장의 근육은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소화기계도 음식물이 들어가면 소화작용을 자율적으로 계속할 수밖에 없다.
잠잘 동안에 완벽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인간 유기체의 건강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잠을 위한 가장 직접적으로 현명한 방법은 중초에 “땔감”을 주지 않는 것이다. 장작은 잔뜩 넣어놓은 난로는 밤새 훨훨 타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돌보지 않는 난로는 장작이 불완전연소를 할 때가 많다. 연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작을 아예 넣지 않은 난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 학동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려서부터 학관이나 시험 공부에 시달리어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앉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안스러운 엄마는 아이의 체력이 딸릴까봐 무서워서 계속 야참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면 밤늦게 1·2시까지 잔뜩 먹고 자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서부터의 습관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평생을 지배하게 된다.
밤에 배를 똥똥하게 채우고 자면 우선 소화기계 전체가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그리고 번열煩熱이 발생하여 몸이 더워지고, 허화虛火가 위로 뜨며, 그 불길은 중추신경계를 전체적으로 자극한다. 그래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활동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대사는 불완전하게 이루어져 가스가 많이 발생하고 더러운 대기大氣가 몸의 하늘을 휘덮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얼굴이 탁해지고 여드름이 많이 발생하며 목덜미나 여타 상초 부위에 종기가 많이 솟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골치가 띠~잉하다. 그리고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방귀가 많이 나오고, 똥을 눠도 악취가 심하다. 악취가 없는 중용의 황금똥이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반면 저녁을 안 먹고 빈속으로 자게 되면 번열이 생기지 않아 이불을 폭 덮은 채 자게 되며 모든 몸의 기능이 골고루 저하되면서 의식의 상실이 일어나고 완벽한 수면을 취하게 된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꿈이 없는 잠”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개소리에 불과하다. 꿈을 꾸는 잠은 저질스러운 잠이다. 꿈이 없는 잠이야말로 인간해탈의 첩경이다. 꿈이 없는 잠의 이상이야말로 우파니샤드 경전에서부터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빈속으로 자면 꿈이 없는 해탈의 잠을 성취하게 된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자며 아침에 일어나면 저 먼동의 푸른 하늘처럼 머리가 상쾌하다. 그리고 허기를 느낀다. 그리고 대변을 보게 되면 시중의 황금똥이 기다란 흰떡 모양으로 나온다. 빈속으로 자는 잠이야말로 수승화강을 실현하는 첩경이다. 잠자는 동안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게 된다. 아침에 머리에 내설악의 백담 같은 옥색 물결이 넘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의미맥락의 본의는 가족공동체적 삶의 회복에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 없는 삶”이야말로 생리적으로는 가장 위대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서구적 인간의 가치의 전도(the transvaluation of all Western values)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녁을 안 먹고 자게 되면 아침에 허기가 지기 때문에 아침을 맛있게 많이 먹게 된다. 그리고 아침은 약간 과식을 한다 해도 낮의 활동을 통하여 건강한 에너지로 연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낮에 건강한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아침에 고단백의 밥을 든든이 잘 먹은 사람은 저녁이 되어도 허기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을 안 먹는 것이 가능해진다.
“저녁을 먹지 말것!” 이 말은 매우 가혹하고 비성식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 한마디의 정당성과 그 생활양식을 이해하게 되면 만병이 사라진다. 위통이 고생하는 자, 소화불량이 있는 자, 꿈을 많이 꾸는 자, 골치아픈 자, 아침에 얼굴이 붓는 자, 아토피가 있는 자(아토피 환자는 우선 육식을 금해야 한다), 얼굴 피부가 나쁜 자, 종기가 많이 나는 자, 변비로 고생하는 자, 혈압이 높은 자... 온갖 병변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이 비결 하나로 비괘에서 태괘로 갈 수 있다. 나는 이 하나의 처방으로 나의 클리닉을 찾아온 수천 명의 환자들에게 완벽한 건강을 돌려주었다. 백발백중의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처방을 권유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배고프면 잠이 안 와요”하는 말이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왜곡된 삶의 습관이 누적되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고프면 당연히 잠이 더 잘 오게 되어있는 것이 우리 신체의 정상이다. “사흘만 참으시오.” 사흘만 빈속으로 자버릇하면 배고플수록 잠은 더 잘 온다. 그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습관이 바뀌면 배부를수록 잠이 오질 않는다. 식곤증과 잠은 별개의 문제다. 잠을 촉진하는 것은 피로이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은 낮의 노동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정신적 충격은 특수한 상황이다.
한의학에서는 정신병의 상당부분도 “위중불화胃中不化”로 설명한다. 내가 말한 음식의 시중이 이루어지지 않아 허화虛火가 상초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빈속으로 자는 것처럼 우리 신체에 고귀한 경험은 없다. 누구든지 체질을 불문하고 약을 먹을 일이 있다면 약 대신에 “저녁불식”을 실천해보라! 한 달만 실천해도 엄청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수승화강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실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현대적 도시 삶의 구조 속에서, 혹은 직장상의 이유를 핑계 삼아 실천의 어려움을 말한다. 물론 싫으면 안해도 된다. “수신修身”은 오직 자율적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 삶 속에서 자연인의 삶을 회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축복의 경험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21세기 문명의 한 복판에서 모든 이기를 누리며 고조선의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은 오늘 21세기 한국인 모두에게 부여되어 있다.
나의 몸에 관한 한 핑계는 없다. 직장생활의 핑계도 결국 본인이 그런 타락된 삶을 원하는 것일 뿐이다. 밤의 낭만? 일찍 자고 새벽의 낭만을 즐기는 것이 더욱 낭만적이다. 불가피한 저녁 외식 때도 먹는 척만 하면 될 것이다. 내가 안 먹으면 가축이 다 먹게 되어있다. 죄의식을 느낄 필요없다. 세상 정크푸드로 내 몸을 오염시키지 말고 굶어라! “배고픈 홍안의 미소년 • 미소녀”가 되어 잠자리에 들라!
현대생활에 있어서 “오후불식”은 너무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오후불식五後不食”으로 그 의미를 바꾸었다. 즉 오후 5시 이후에는 일체 음식을 취하지 말것!
■ “선생님의 말씀은 평범한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적 우주를 혁명시키는 듯한, 파격적이면서도 정도의 첩경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후불식을 꼭 실현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5시 이후에는 물도 먹으면 안되는지?”
― 물도 먹지 마라! 몸을 철저히 비우고 자야 수승화강을 체험할 수 있다. 한 3년 정도만 철저히 지키다 보면 점점 고수가 되어가면서 응변의 도리를 깨닫게 된다. 수신修身의 기본은 오후불식이다!
석가여래행적송 4 ♧
석가여래행적송 하권釋迦如來行蹟頌 下卷 4
‘세속의 인의仁義를 행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의仁義란 모든 선의 근본이니, 삼왕三王 오제五帝의 도가 이것을 벗어나지 않고, 공자와 맹자가 성현의 이름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세간법으로는 오상五常이라 하고, 출세간법으로는 오계五戒라 하니, 이름만 다르고 뜻은 같다. 그러므로 어진 왕과 법왕法王의 도는 모두 인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한다’라는 것도 인의일 뿐이니,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공경은 의義이고, 사랑은 인仁이다.
그러므로 중니仲尼132)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까지 미치고, 내 아이를 아이로서 사랑하여 남의 아이까지 미치면, 가히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133)
불교(內敎)에서도 그러하여 선덕先德을 공손히 섬겨 가르침을 받고, 후학을 사랑으로 길러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이와 같이 서로 전하는 것을 그치지 않으면, 온 천하의 백성이 도를 행할 수 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가빈사라迦頻闍羅라는 이름의 새가 있었다. 그에게 두 친구가 있었으니, 하나는 큰 코끼리요, 하나는 원숭이였다. 그들이 함께 필발라畢跋羅(pippala) 나무 밑에 있다가 서로 묻기를, ‘우리들 중에 누가 어른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코끼리는 ‘나는 옛날에 이 나무가 나의 배 밑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으로 미뤄 보면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원숭이는 ‘내가 일찍이 땅에 걸터앉아 있을 때 이 나무 꼭대기를 손으로 잡은 적이 있는데, 그러니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새는 ‘내가 필발라 숲에서 이 나무 열매를 먹었는데, 그 씨앗이 똥을 따라 나와서 이 나무가 생겨났으니, 내가 가장 어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새는 다시 말하기를, ‘먼저 태어난 이와 오래된 어른은 예로써 공양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즉시 큰 코끼리가 원숭이를 등에 업고, 새는 원숭이 위에 올라 앉아 두루 돌아다녔다. 모든 새와 짐승들이 보고 어찌하여 그러냐고 물으면, 어른을 공경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새와 짐승들이 교화되어 모두 예경하니, 백성의 밭을 침범하지 않고, 남의 목숨을 해치지 않았다. 나라 안의 사람들도 본받아 모두 예로써 공경하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교화가 만세에 흘러 나라가 태평하였다. …….”134)
아! 새와 짐승에 있어서도 어른을 공경하고 예를 다하는데, 하물며 사람 축에 들고서 마음 쓰는 것을 멋대로 방일하게 할 수 있겠는가. 외서外書에서도 “자기를 바르게 한 뒤에야 천하가 바르게 된다.”135) 하였으니, 이를 두고 말한 것이리라.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긴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보살의 만행에는 자비심이 그 시작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중생에 대하여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심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이룬다.”136)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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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람본경墮籃本經』에서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1백의 벽지불에게 공양하더라도 한 부처님께 공양한 것만 못하고, 1백의 부처님께 공양한 것이 불탑을 세운 것만 못하다. 또 어떤 사람이 다만 발심하여 삼보에 귀의한 것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선행보다 수승하다.” 하였고, “위에서 나열한 보시 등의 선행은 사람이 오계를 지니는 것만 못하고, 계를 지니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꿈틀거리는 중생(愞動之類)을 가엾이 여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제경잡요』137)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아승기阿僧祗만큼 많은 몸을 버려서 시방의 모든 불보살과 성문에게 공양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축생에게 한 모금 마실 것을 보시한 것만 못하다. 나아가 개미 등과 같은 자비의 복전에 보시한다면, 그 복이 가장 수승하다. 예컨대 사리불이 밥 한 그릇을 부처님께 올렸는데, 부처님께서 다시 개에게 주시고는, 사리불에게 묻기를, ‘너는 나에게 밥을 보시하였고, 나는 개에게 다시 보시하였다. 누가 보다 많은 복을 얻겠는가?’라고 하자, 사리불이 ‘부처님께서 개에게 보시하신 일이 보다 복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한 것과 같다.”138)
『보적경寶積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묘장엄인세계妙莊嚴忍世界의 중생은 모두 다 일체의 안락을 갖추고 있는데, 어떤 중생이 그 국토에서 억백천 년 동안 모든 범행을 닦더라도, 이 사바세계에서 손가락 한번 튕기는 사이에 중생에 대하여 자비심을 일으켜 얻는 공덕은 그 공덕의 배가 넘는다.”139)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들판의 창고에 쥐와 참새가 많아서 곡식과 쌀을 많이 축내거든, ‘이 같은 쥐와 참새들이 나로 인해 살아갈 수 있구나’ 다만 이런 생각을 하고, 생각하고 나서는 기뻐하며 해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다고 알아야 한다. …….”140)
무릇 불도佛道를 구하는 이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남의 선행을 따라 기뻐한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일체중생이 시작도 없는 그 옛날부터 육도 윤회에 묶여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해탈할 수 없는 것은, 다만 질투심이 강하여 다른 사람의 선행을 파괴하고 장애하기 때문이다. 비록 선업을 지어도 남을 앞서려는 마음 때문에 남과 나에 집착하는 마음이 불꽃처럼 타올라 쉬지 않으니, 해탈할 기약과 멀어진다. 만약 다른 사람의 선행을 따라 기뻐할 수 있다면, 질투의 장애가 곧 소멸하고 유순인柔順忍141)을 이루며 고통스러운 윤회의 바퀴를 쉽게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품경大品經』에서는 말한다.
“터럭 하나를 백 갈래로 쪼개서 대천세계 바닷물을 한 방울씩 찍어내더라도 그 수를 알 수 있지만,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한 복은 그 수를 알 수 없다.”142)
『제경요집諸經要集』에서는 말한다.
“빈궁하고 박복한 사람이 티끌만큼도 보시할 물건이 없는데, 다른 이가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그 복은 보시한 것과 다름이 없다. …….”143)
지혜로운 이는 서둘러 지난 잘못을 고치고 다가올 일을 닦아야 할 것이다.
‘겸손한 마음’이란, 아만의 병을 제거하는 묘약이다. 이러한 아만의 마음은 법 가운데 큰 장애가 된다. 비유한다면 세간의 수레는 높은 산 위에 오르지 못하듯이, 법의 수레도 그러하여 아만의 높은 산에는 구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법을 배우는 이는 먼저 아만을 꺾고, 위로는 삼보를 공경하고, 중간으로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범부들에게도 유순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선한 사람이라 할 만하리라.
그런 까닭에 불경不輕보살은 항상 모두에게 절하면서, “그대를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보현普賢보살도 말하기를, “나는 일체중생을 갖가지로 섬기고 갖가지로 공양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듯이, 스승을 받들듯이, 나아가 여래와 동등하게 다를 바 없이 공경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근세의 법화法華 법사는 도행道行이 청정하여 대중의 공경을 받았는데, 다닐 때에는 땅만 보고 다니다가 그 길에 있는 작은 벌레라도 있는 것을 보면, ‘이 불제자가 나보다 먼저 도를 얻을지 뉘 알리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피해서 지나갔다. 배우는 이라면, 그와 같이 생각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부드러운 말’이란,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 먼저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간 사람들이 삼업의 죄를 짓는데 그중에서는 구업의 허물이 막중하고, 네 가지 구업 중에 욕설이 가장 심하다. 왜 그러한가. 자신의 마음에 성냄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한을 품게 하고, 이로 인해 지은 원한의 뿌리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겁에서 저 겁까지 서로 해치면서 영원히 끝날 기약이 없다.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부드러운 음성을 내야 하는 것이 선행을 가르쳐 그를 기쁘게 하거나, 나아가 모든 축생에게 욕설을 하지 않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축생들은 비록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성내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축생들이 보고 놀라기 때문에 죄업이 없지 않다. 죄업이 이루어지면 기필코 과보도 헛되지 않아서 그 자신이 겪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호구경護口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삼장 비구가 한마디 욕설을 한 까닭에 그 과보로 백두어百頭魚가 되었고, 그 재앙이 어머니에게도 미쳐 측간의 벌레가 되었다. …….”144)
『대방편경大方便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 세상에서 화禍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그 재앙이 사나운 불보다 심하다. 사나운 불은 세간의 재물을 태워 버리지만, 욕설은 활활 타올라 칠성재七聖財145)를 태워 버린다. 입안의 혀는 몸을 쪼개는 도끼이며, 몸을 태우는 불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146)
위에서 보여 준 대로 보시와 인욕으로부터 겸손한 마음과 부드러운 말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성불의 원인 아닌 것이 없다. 만약 모두 행한다면 더 좋을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한 가지만 닦아도 된다. 왜 그러한가. 『법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한다.
若有衆生類 만일 어떤 중생들이
値諸過去佛 과거 부처님들을 만나서
若聞法布施 법문을 듣거나 보시하거나
或持戒忍辱 계를 지니거나 인욕을 닦거나
精進禪智等 정진하거나 선정과 지혜를 닦거나
若人善軟心 어떤 사람이 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내어도
如是諸人等 이와 같은 사람들은
皆已成佛道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 것일세.
諸佛滅度已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供養舍利者 사리에 공양하는 사람은
起萬億種塔 만억 종류의 탑을 세우되
金銀及玻瓈 금·은·파려
玟瑰琉璃珠 옥돌과 유리구슬로
淸淨廣嚴飾 청정하게 널리 장엄하고
木櫁并餘材 목밀木蜜147)과 그 밖의 자재
甎瓦泥土等 벽돌과 진흙 등으로
若於曠野中 만일 광야에서
積土成佛廟 흙을 쌓아 불탑(佛廟)을 짓거나
乃至童子戱 나아가 아이들 장난으로
聚沙爲佛塔 모래를 쌓아 불탑을 지어도
如是諸人等 이와 같은 사람들은
皆已成佛道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 것일세.
若人爲佛故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위하여
建立諸形像 여러 형상을 세우거나
或以七寶成 칠보로 만들거나
鍮鉐赤白銅 놋쇠나 적백의 구리로
鐵木及與泥 무쇠나 나무나 진흙으로
或以膠漆布 아교나 옻칠을 바르거나
或彩畫佛像 불상을 채색하거나
自作若使人 자신이 하거나 남을 시키거나
乃童子戱 나아가 아이들 장난으로
若草木及筆 초목과 붓으로
或以指瓜甲 손가락과 손톱으로
而畫作佛像 부처님 형상을 그리더라도
如是諸人等 이와 같은 사람들은
皆已成佛道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 것일세.
若人於塔廟 만일 어떤 사람이 탑묘에서
寶像及畫像 보배로 만든 불화와 불상에
以花香幡盖 꽃과 향과 당번과 일산으로
敬心而供養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한다면,
若使人作樂 만일 남을 시켜 악기를 연주하거나
擊皷吹角具 북을 치고 각패角貝를 불거나
簫笛琴箜篌 피리를 불고 공후箜篌를 뜯거나
琵琶饒銅鈸 비파를 튕기거나 동발을 흔들어서
如是衆妙音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오묘한 소리
盡持以供養 모두 가지고서 공양하거나
或以歡喜心 기뻐하는 마음으로
歌唄頌佛德 부처님 공덕을 노래하고 칭송하거나
乃至一小音 내지 작은 소리 한 번을 내더라도
皆已成佛道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 것일세.
若人散亂心 만일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乃至以一花 겨우 한 송이 꽃으로
供養於畫像 불화와 불상에 공양하더라도
漸見無量佛 점차 한량없는 부처님을 뵙고
自成無上道 스스로 무상도를 이뤄
廣度無數衆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리라.
或有人禮拜 어떤 사람이 절을 하거나
或復但合掌 혹은 합장만 하여도
乃至擧一手 내지 한 손을 들거나
或復小低頭 혹은 머리를 조금 숙이더라도
若人散亂心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一稱南無佛 단 한 번 ‘나무불’을 부르더라도
如是諸人等 이와 같은 사람들은
皆已成佛道【云云】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 것일세. …….148)
아! ‘모든 것이 불사 아닌 것이 없다’라는 말이 그르다면, 어찌 아이들이 장난으로 한 일과 산란한 마음으로 단 한번 ‘나무불’이라 부른 일, 그와 같이 미약한 일의 공덕으로 궁극의 지위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석존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자비심을 일으켜 교묘한 지혜 방편으로 그 근기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혹은 좌선을 보이시고, 혹은 경전을 독송하라 하시고, 혹은 염불을 가르치시며, 나아가 보시와 지계 등 일체의 선법을 보이시어 그들이 닦고 익혀 불도에 들어감에 홀로 남겨진 자가 없게 하셨으나, 다만 일천제一闡提149)의 무리는 제외하셨다. 세간의 의사가 병에 따라 약을 주되, 목숨이 다한 자를 제외하고는 쾌차하지 않은 이가 없는 것과 같다.
혹 어떤 사람은 여래께서 방편으로 가르치신 뜻을 알지 못하고, 또 중생이 좋아하는 바를 알지 못하면서 각각 한쪽 끝만 집착하여 “이것이 수승하다.” 말한다. 또한 남에게 자신이 익힌 법을 가르치면서 “좌선이 최고다.”, “경을 독송하는 것이 제일이다.”, “염불이 으뜸이다.” 말하거나, 나아가 보시와 지계 등의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 것이 옳다 하고, 다른 선법은 그르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자들이로다.
예를 들어 왕성王城에 들어가고자 하면, 팔문八門이 막혀 있지 않으니, 위치에 따라 인도하여 곧장 들어가야지, 어찌하여 기필코 동쪽에서 온 사람을 서문으로 인도하며, 서쪽에서 온 사람을 동문으로 인도하여 부질없는 수고를 시키는가. 문은 비록 여덟 개이지만 들어가면 다만 한 곳일 뿐이다. 여러 법문이 다르지만 모두 한 곳으로 돌아간다. 어찌하여 편벽되게 집착하여 다투는가. 이것을 두고 병의 근본은 살피지 않고 젖으로 만든 약(乳藥)150)만을 가르치는 무리라고 한다. 모든 수행자에게 권하노니, 이런 이치를 알아서 힘이 감당하는 바에 따라 어느 한 가지를 좇아 정진하여 물러섬이 없어야 할 것이다.
[187]
若願生安養 안양국安養國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隨功生九蓮 공덕에 따라 구품연화대에 태어나리니
得見彌陁佛 아미타불을 만나 뵙고
聞法悟無生 법문을 들어 무생법인無生法忍 깨달으리라.
‘안양국安養國’은 극락이라고도 한다. 그 나라의 장엄과 즐거운 일에 대해서는 비유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다. 『소미타경小彌陀經』151)에서는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이 세계가 있다.” 하였고,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아미타불의 국토가 여기서 멀지 않다.” 하였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말은, 다만 근기에 따라 설한 것일 뿐, 멀고 가까움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중생의 한 생각 마음속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는데 어찌 동쪽과 서쪽, 멀고 가까움이 있겠는가.
‘아미타阿彌陀’는 여기 말로 무량광無量光 또는 무량수無量壽라 한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그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없어 10만억 국토를 비추고, 그 부처님의 수명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이다.……”라고 하였다.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는 그 부처님이 48원으로 정토를 장엄하시고 구품연화대를 시설하시어 시방의 인연 있는 중생들을 인도하시는 곳이다. 왜 그러한가? 중생의 근기와 성품에 차별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속의 국왕과 적이 서로 싸울 때, 공을 세운 이들이 대체로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에 따라 직책으로 상을 주되, 일품, 이품, 삼품, 사품, 오품, 나아가 팔품, 구품까지 하나도 빠뜨림이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공과 업이 많고 적음에 따라 구품연화대에 모두 거두시되, 남김이 없다. 저 구품의 중생들이 구품에 태어나는 일을 이제 간략히 경문을 인용하여 설명하겠다.
『관무량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품상생上品上生이란, 어떤 중생이 세 가지 마음을 내면 바로 그 국토에 태어나는데, 첫째 지극히 정성스러운 마음, 둘째 깊은 마음, 셋째 회향하여 발원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세 종류의 중생들이 왕생할 수 있는데, 첫째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고 모든 계행을 갖춘 자이고, 둘째 대승의 방등 경전을 독송하는 자이고, 셋째는 여섯 가지의 염(六念)을 수행하는 자이다.【불·법·승·계율·보시·하늘】 이러한 공덕을 갖추어 하루 낮 하루 밤 나아가 7일까지 행하면, 곧 왕생할 수 있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아미타불이 관음보살·대세지보살 등 한량없는 보살들과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나서 손을 잡고 영접하신다. 수행자가 보고서 뛸 듯이 기뻐하며 자기 몸이 금강대金剛臺를 타고 있음을 스스로 보게 되면, 부처님 뒤를 따라서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그 국토에 왕생한다. 도착하고서는 부처님의 상호와 보살의 모습이 구족한 것을 보고, 빛나는 보배 숲이 오묘한 법을 연설하는 것을 듣고는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닫는다.
상품중생上品中生이란, 반드시 방등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지 않더라도 그 뜻을 잘 이해하여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대하여 마음이 놀라거나 요동치지 않고 인과因果를 깊이 믿어 대승을 비방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큰 성인이 내려와 영접하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수행자가 스스로 자금대紫金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곧 칠보의 연못 가운데 왕생한다. 그 연꽃 줄기가 하루 밤을 묵으면 피어나고, 불보살들이 광명을 놓아 몸을 비추면 눈이 곧 밝게 열려서 1소겁이 지난 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상품하생上品下生이란, 역시 인과를 믿어서 대승을 비방하지 않고 다만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킨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여러 성인들이 와서 영접하니, 수행자가 스스로 금련대金蓮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곧 보배의 연못에 왕생한다. 하루 낮 하루 밤이 지나 연꽃이 피어나고 7일 만에 부처님을 뵐 수 있다. 비록 부처님 몸을 보지만 여러 가지 상호에 대하여 마음으로 분명히 알지 못하다가 삼칠일이 지난 뒤에야 분명하게 보고서 3소겁이 지난 뒤 백법명문百法明門152)을 얻어 환희지歡喜地에 머문다.
중품상생中品上生이란, 어떤 중생이 오계를 수지하여 팔관재계八關齋戒를 지니며 모든 계율을 수행하고 오역죄를 짓지 않아서 허물이나 악행이 없는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성인들이 와서 영접하니, 수행자가 스스로 자기 몸이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곧 그 국토에 왕생한다. 연꽃이 피어나고 여러 가지 음성이 사성제를 찬탄하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그때 아라한도와 삼명육통을 얻고 팔해탈八解脫153)을 구족한다.
중품중생中品中生이란, 어떤 중생이 하루 낮 하루 밤 사미계沙彌戒를 지니거나 구족계具足戒를 지녀서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는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성인들이 와서 영접하니, 수행자가 스스로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연꽃이 오므라들고 부처님 뒤를 따라 보배 연못에 왕생한다. 7일이 지나 그 꽃이 다시 피면 눈을 뜨고 합장하며 부처님을 찬탄하고 법을 듣다가 반 겁이 지나 아라한이 된다.
중품하생中品下生이란, 어떤 중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섬기며 세속의 인의仁義를 행한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선지식을 만나 그를 위해 아미타불 국토의 즐거움을 말해 주면 그 사실을 듣고서 곧 운명하여 그 국토에 왕생한다. 7일이 지나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만나 법을 듣고 기뻐하다가 수다원과須多洹果를 얻고서 1소겁이 지난 뒤 아라한이 된다.
하품상생下品上生이란, 어떤 중생이 온갖 악업을 지어서 비록 방등 경전을 비방하지는 않았지만 나쁜 법을 많이 짓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선지식을 만나 대승 12부의 경전 제목만이라도 찬탄해 주면, 이와 같은 경전들의 이름을 들은 까닭으로 천겁 동안 지은 막중한 악업을 소멸한다. 선지식이 또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도록 가르쳐 주면, 부처님 명호를 부른 까닭에 50억 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소멸한다. 그때 그 부처님이 곧 부처님 화신과 관세음보살 화신과 대세지보살 화신을 보내 수행자 앞에 이르러, ‘선남자여, 그대가 부처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모든 죄가 소멸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와서 그대를 영접하노라’ 말씀하신다. 수행자는 화현불의 광명이 그 방안에 가득함을 보고 기뻐하다가 목숨을 마치면, 보련화대寶蓮花臺를 타고서 화현불의 뒤를 따라 보배 연못에 왕생한다. 49일이 지나 연꽃이 막 피어나면, 그때 관세음보살이 광명을 놓아 법을 설하는데, 이를 듣고서 믿고 이해하여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10소겁이 지난 뒤 초지初地에 들어간다.
하품중생下品中生이란, 어떤 중생이 오계·팔계·구족계를 범하거나, 승가의 물건을 훔치거나 현전승물現前僧物154)을 훔치거나 부정하게 설법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지옥의 불길이 일시에 모두 닥쳐오는데,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의 광명과 위덕을 찬탄해 주면, 그 사람이 듣고서는 80억 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소멸한다. 지옥의 사나운 불길도 서늘한 바람으로 변하고, 하늘 꽃이 불어와 꽃 위에는 모든 불보살의 화신이 계시다가 이 사람을 영접한다. 한 생각 사이에 보배 연못의 연꽃 안에 태어나고, 대겁이 지난 뒤 연꽃이 피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를 위해 대승의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시니, 이 법을 듣고서 바로 무상도의 마음을 일으킨다.
하품하생下品下生이란, 어떤 중생이 오역죄·10악을 모두 짓고 선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지어서 그 사람이 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이 지나도록 끝없는 고통을 받는 경우이다.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선지식을 만나 오묘한 법을 설하여 염불하도록 가르쳐 주는데도 그 사람이 고통에 내몰려 염불할 경황이 없다면, 선지식은 ‘그대가 만약 염불할 수 없다면 무량수불께 귀의합니다만 칭념하라’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내어 끊어지지 않으면 10념十念155)을 구족하여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부처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명호를 부를 때마다 80억 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소멸한다. 목숨이 끊어진 뒤 해(日輪)와 같은 금연화대가 그 사람 앞에 머무는 것을 보면, 한 찰나 사이에 곧 그 국토에 왕생하여 연꽃 가운데 태어난다. 12대겁을 채운 뒤 연꽃이 막 피어날 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와서 대비심의 음성으로 실제의 모습을 설하시어 죄를 소멸하게 하시니, 듣고서 기뻐하며 곧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킨다. …….”156)
이것이 구품의 중생이 구품연화대에 태어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궁전에 태어나는 이도 있는데,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중생이 모든 공덕을 닦고서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다가 뒤에 후회하는 마음과 의혹이 생겨서 그 불국토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왕생하는 이가 있다는 것도 믿지 않고, 보시를 하면 복을 지어 후세에 복을 받는다는 것도 믿지 않는 경우이다. 그 사람이 비록 그러하여 계속되는 생각 속에 잠깐은 믿고 잠깐은 믿지 않으면서 의지는 머뭇거리고 오롯이 의지하는 바가 없더라도,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는 그 몸을 나투시어 그의 눈으로 보게 하신다. 그 사람이 비록 말은 할 수 없어도 그 마음은 곧 기뻐서 선한 일 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잘못을 뉘우치기 때문에 또한 그 국토에 왕생한다. 다만 부처님 계신 곳에는 이르지 못하고 변두리에 들어가서 칠보의 성을 보고는 곧 그곳에 들어가 연꽃 속에 태어나 그 즐거움을 받는다. 마치 도리천 사람들이 5백 세가 지나도록 삼보의 이름조차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157)
여러 경론에서 말하듯이, 무릇 어떤 중생이 그 국토의 이름과 그 부처님 명호를 듣고 그곳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면 한 사람도 왕생하지 못할 이가 없다. 예를 들면 『월장경月藏經』에서는 “나의 말법시대에는 수억의 많은 중생들이 도를 닦으려는 마음을 일으켜 행하지만 한 사람도 얻는 이가 없다. 오직 정토문淨土門 하나만이 통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말법시대에 정토를 구하지 않고 어찌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이 법문에 대하여 많은 의혹과 비방을 일으키고, 왕생을 구하는 이를 보면 비웃고 가로막는데, 자신도 그르치고 타인도 그르쳐 부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니, 슬프고 슬픈 일이로다.
[188]
不爾當來世 그렇지 않다면 장차 내세에
必逢慈氏尊 반드시 미륵보살을 만나
龍華三會上 용화의 세 차례 법회에서
自然皆證道 자연히 모두 도를 증득하리라.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염부제에 시두말翅頭末이라는 큰 성이 있고, 성안에 묘범妙梵이라는 대바라문이 있었다. 미륵이 그 집에 태어나 출가하던 날 바로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용화수龍華樹 아래에 앉자, 국왕·바라문·장자와 모든 백성이 모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모두 함께 출가하였다. 그때 미륵부처님께서는 많은 대중을 보시고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모든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내게 부촉하여 보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남기신 법 가운데 경·율·논 삼장을 독송하거나, 옷과 음식을 타인에게 보시하거나, 계를 지니고 지혜를 닦거나, 당번·일산·꽃·향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거나, 인욕과 선정을 닦거나, 탑사를 세우고 사리에 공양하거나 이러한 공덕으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로다.’
이렇게 생각하시고는 사성제를 설해 주시니, 모든 사람들이 듣고서 동시에 열반의 도를 얻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용화회상龍華會上 첫 번째 법회에서 99억의 성문들을 제도하고, 두 번째 법회에서 96억의 성문들을 제도하고, 세 번째 법회에서 93억의 성문들을 제도한다.”158
『보은경報恩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화림원華林園 세 번째158) 법회에서 93억의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남기신 법 가운데 ‘나무불’을 한 번이라도 부른 사람들이다.”
『미륵경彌勒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말법시대에 좌선하고 독송하고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사람들은 첫 번째 법회 때 태어나고, 다만 삼귀의만 수지한 사람은 두 번째 법회 때 태어나고, 다만 부처님 명호만 들은 사람은 세 번째 법회 때 태어난다. …….”
이것으로 보건대 우리들이 비록 좌선이나 독송, 계를 지니거나 복을 닦는 일에 오롯이 힘을 쏟지 못하였더라도, 이미 부처님의 명호를 들었고, 일생을 살아오는 동안 분수에 따라 한 번은 불렀을 것이다. 어찌 없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비록 첫 번째 법회나 두 번째 법회에 일찍이 참석하지는 못하더라도, 세 번째 법회에는 늦게나마 참석하여 법을 듣고 도를 깨달으리라는 것에 결코 의심이 없다.
지혜 있는 자들이여, 반드시 이 부처님 만나 뵙기를 발원해야만 한다. 만일 어긋난다면 부처님 만나 뵙는 일이 아득히 멀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이 현겁賢劫 동안 성成·주住·괴壞·공空 4겁이 있는데,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일은 반드시 주겁住劫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겁에는 다시 20번의 증감겁이 있는데,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일은 반드시 감겁減劫을 기다려야 한다.
앞의 여덟 번의 증감겁에는 부처님 없이 그냥 흘러가고, 아홉 번째 감겁에 이르러 네 분 부처님이 출현하시니, 인간 수명이 6만 세일 때 구류손불拘留孫佛이 출현하시고, 4만 세일 때 구나함불拘那含佛이 출현하시고, 2만 세일 때 가섭불迦葉佛이 출현하시고, 1백 세일 때 석가모니불이 출현하신다.
석가모니부처님 법이 사라졌다가 인간 수명이 다시 늘어 8만 4천 세가 되었다가 다시 줄어 4천 세가 될 때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신다. 석가모니부처님 입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산하면 60억 년이니, 열 번째 감겁이다. 열한 번째, 열두 번째, 열세 번째, 열네 번째 이와 같은 4겁 동안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정진하여 미륵부처님과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열다섯 번째 감겁에 이르러 995부처님이 차례로 출현하여 교화하시고, 마지막 누지불樓至佛이 출현하여 이후 다섯 겁 동안 교화하신다.
[189]
向說諸善因 앞서 말한 모든 선한 인연은
俱通大小乘 대승과 소승 모두에 통하지만,
凡夫根性異 범부의 근기와 성품이 다르니
迴向亦不一 회향하는 방법도 같지 않네.
[190]
或望人天樂 어떤 이는 인간 세상과 천상의 즐거움을 바라고
或求四聖果 어떤 이는 네 가지 성인의 과위를 구하지만,
雖是善果報 비록 모두 선한 수행의 과보라 해도
成佛大遲緩 성불하기에는 크게 더딘 길이라네.
[191]
中間無量劫 중간의 한량없는 겁 동안
徒勞處受苦 헛되이 괴로움만 받으리니,
若欲速離苦 만일 속히 괴로움을 여의려거든
應迴向大乘 반드시 대승에 회향해야 하리.
[192]
所作大小善 지어 놓은 크고 작은 선행을
當迴向三處 세 곳으로 회향해야만 하나니,
先四恩三有 먼저 네 가지 은혜와 삼유三有159)
及法界有情 법계의 유정이니라.
[193]
次佛果菩提 다음에는 불과佛果의 깨달음이요,
後眞如實際 마지막은 진여의 실제이니,
若如是迴向 만일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毫善等虛空 터럭만 한 선행도 허공과 같으리라.
[194]
譬如一滴水 비유한다면 한 방울의 물을
投之於大海 큰 바다에 던지면
與海成一體 바다와 한 몸이 되어
深廣無涯底 깊고 넓어 밑도 끝도 없는 것과 같다네.
위에서 보인 선법들은 대승과 소승의 수행자에게 모두 통하는 것이지만, 다만 중생의 근기와 좋아하는 것이 같지 않고 수행하는 인행因行160)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얻는 과보도 1만 가지에 이른다.
어떤 중생은 세간의 즐거움을 구하여 모든 선업을 닦으니, 열등한 이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 수승한 이는 천상에 태어나 분수에 따라 즐거움을 받는다.
어떤 중생은 삼계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여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고요함에 능숙하여 여러 가지 선정과 지혜를 닦으니, 둔한 이는 성문이 되고, 예리한 이는 벽지불이 된다. 이것을 고조해탈孤調解脫161)이라 하는데 모든 부처님이 꾸짖으셨던 바이다.
어떤 중생은 자신이 비록 제도되지 못했더라도 먼저 타인을 제도하고자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니, 이를 대승이라 한다. 이들은 이미 성인의 태胎가 이루어진 자들이다.
그리고 인간 세상과 천상이란, 우선 삼악도에 대비하여 즐거운 곳이라 하는 것이지 실제로 즐거운 곳은 아니다. 왜 그러한가. 인간 세상에서는 현세에 팔고八苦에 볶이고, 이후 삼악도의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는다. 천상 역시 다섯 가지 시드는 고통(五衰之苦)이 있고, 과보가 끝나면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니, 그 괴로운 일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육취에 윤회하면서 벗어날 기약이 없는데, 누가 즐거움이라 하겠는가.
이승의 사람은 비록 분단생사分段生死162)의 고통은 여의었으나 변역생사變易生死163)의 고통을 면하지 못하였으므로 타향을 유랑하며 옷과 음식을 구걸하되,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서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며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하물며 다시 멀고 굽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날이 멀기만 한데, 미진겁微塵劫164) 동안 고행하는 일을 어찌 즐겁다고 하겠는가.
보살마하살 같은 사람은 처음 발심할 때부터 일체중생을 가엾게 여겨 자비와 지혜를 쌍으로 운용하여 크고 바른 길에 올라서서 가는 곳마다 머무름이 없으니, 머지않은 날에 집에 이르러 아버지를 만나 진귀한 보배 창고를 얻고 받아 쓰는 것이 자재하여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아야 참다운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명 연수永明延壽 선사는 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만일 10선十善으로 사람을 교화한다면, 마치 독약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비록 일시적으로 인간 세계와 천상 세계의 배부름을 누리지만 생사生死의 독이 일어나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종국에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도리어 악업의 때만 더하기 때문이다.
만일 소승으로 교화한다면, 이는 대승의 원수이며 해탈의 깊은 구덩이이니,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경에서도 ‘차라리 여우와 이리와 야간野干165)의 마음을 일으킬지언정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은 일으키지 말라’ 하였다.”
이 말씀을 살펴보건대 지혜 있는 자라면 어찌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따르지 않겠는가.
‘지어 놓은 여러 가지 선행들’이란, 좌선과 독송, 예경과 염불, 보시와 지계 등을 말한다. 비록 이와 같은 선행들을 지어 놓고도 회향하지 않으면 마치 굽지 않은 질그릇과 같아서 헛수고일 뿐 이익이 없다. 무릇 회향하고자 하는 사람은 인간 세상이나 천상, 이승의 과보에 회향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세 곳에 회향해야만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중생에 회향하는 것이다. “원컨대 지금 닦는 이 선근을 일체중생에게 베풀게 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불과에 회향하는 것이다. “원컨대 지금 닦는 이 공덕이 일체에게 미쳐서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다. “원컨대 지금 닦는 이 선근이 광대하기가 법성과 같이 【끝이 없고,】 구경에 이르는 것이 허공과 같이 【다함이 없게】 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세 곳에 회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자신을 돌려 타인을 향하고, 원인을 돌려 결과를 향하고, 현상을 돌려 이치를 향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앞의 것과 같은 의미이리라.
‘네 가지 은혜(四恩)’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국왕의 은혜이니, 백성들이 한 번 마시고 한 번 먹는 것도 국왕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국왕의 백성이어서 마땅히 국왕의 일에 부역해야 하고, 해마다 황실에 조세를 바쳐 국왕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거늘, 도망쳐서 머리를 깎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편안하며 근심 없이 자고 먹고 있으니, 국왕의 은혜가 실로 막대하다.
둘째는 스승의 은혜이니,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서 악한 일을 경계하고 착한 일을 권장하며, 세속의 그물에서 벗어나 불가佛家에 들도록 인도하니, 스승의 은혜가 실로 막중하다.
셋째는 부모의 은혜이니, 처음 임신하였을 때부터 열 달 동안 마음을 방일하게 하지 않고, 나아가 출산할 때 고통이 끝이 없으나 출산하고 나면 그 고통을 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품에 안아 젖을 먹여 기르고 더러운 것을 씻어 주며, 성장한 뒤에는 봉양받기를 잊고서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 놓아주고 스승에게 귀의하여 출가하게 하고, 출세간의 업을 닦게 하니, 부모의 은혜가 가장 깊다.
넷째는 시주자의 은혜이니, 우리들 비구가 산림에 누워서 밭을 갈지 않아도 먹고, 누에치지 않아도 옷을 입는 것은, 모두가 시방의 시주자(檀越)의 은혜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은혜를 비교한다면, 시주자의 은혜가 가장 다급한 것이리라. 왜 그러한가. 사람은 항상 하루 두 때 먹어야 하고, 한 끼라도 거르면 마음의 예봉이 꺾여 버려서 하는 일마다 모두 여의치 않을 것인데, 하물며 모든 끼니를 거른다면 어떠하겠는가. 하물며 이틀 사흘 나아가 이레까지 거른다면 어떠하겠는가. 그렇다면 몸이나 목숨도 오히려 보존하기 어려울 터, 하물며 도업을 닦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시주자의 은혜가 가장 다급하고, 국왕과 스승의 은혜가 다음, 그 다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모든 비구들은 이런 뜻을 마땅히 잘 알아야 한다. 절 한번 하거나 염불 한 번 하거나 향 한 조각 태우거나 등 하나를 밝히거나 꽃 한 송이 올리거나 탑을 청소하거나 마당을 쓸거나 털끝만 한 한 가지 선업을 행하더라도, 반드시 네 가지 은혜에 회향하여 복을 받들고 난 후에야 일체중생에게 널리 공덕을 입혀 줄 수 있다.
[195]
雖未完戒品 비록 계품戒品이 온전하지 못하고
亦未修諸善 여러 가지 선법을 닦지 못했더라도
但結大乘緣 다만 대승과 인연을 맺기만 하면
功倍餘衆善 그 공은 다른 모든 선행의 배倍가 되리라.
[196]
大乘義云何 대승의 의미는 무엇인가.
諸法實相是 제법실상이 그것이니
聞此實相理 이러한 실상의 이치를 듣고서
其心不驚動 그 마음이 놀라 요동치지 않고서
[197]
暫生一念信 잠시라도 한 생각을 일으켜 믿는다면
福德已無量 그 복덕은 이미 한량이 없고
因發菩提心 보리심을 일으켰으므로
已具悲智願 이미 자비·지혜·서원을 갖추리라.
[198]
即爲世間眼 곧바로 세간의 안목이 되어
當作天人師 반드시 천인天人의 스승이 되리니
雖在凡夫地 비록 범부의 경지에 있다 해도
功超二果聖 그 공덕은 이승의 과위를 넘어서리라.
[199]
是名眞佛子 이런 사람을 참 불자라 하니
能報諸佛恩 모든 부처님의 은혜 능히 갚으리.
欲入如來室 여래의 방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斯門其舍諸 이 문이 어찌 그를 버리겠는가.166)
‘제법실상諸法實相’에 대하여 『법화경』에서는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모든 법의 실상을 모두 궁구한다.”, “일체 세간의 살림살이와 산업이 모두 제법실상과 어긋나지 않는다.” 하였다. 조사가 해석하여 이르기를, “생멸 하나하나, 살생과 도둑질 하나하나, 사도팔사四倒八邪와 오역십악五逆十惡 모두가 다 실상이니라.” 하였다. 이러한 일은 분명하게 드러나서 있는 곳마다 진실하고 항상한 것이니, 누군들 갖추지 않았으며, 어떤 법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경에서 “세간의 모습은 항상 머문다.” 하였으니, 이 오묘한 이치를 깨달으면 부처라 하고, 어리석으면 중생이라 한다. 그 어리석음과 깨달음으로 인하여 우선 높고 낮음을 나누지만 본래 다른 것이 아니다. 마치 얼음과 물처럼, 비유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명경』에서 “평등한 진법계에서는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법을 듣고서 한순간이라도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 공덕은 무학無學의 공덕을 능가하리니, 이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 “이 경은 지니기 어려우니, 만일 잠시라도 지닌다면 내가 기뻐할 것이고, 모든 부처님도 그러하리라. 이 사람을 계를 지니고 두타頭陀를 행하는 자라 하니, 모든 천인과 세간의 안목이 되리라.……” 하였다.
그리고 대승 경전에서 말하는 ‘대승’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 “모든 부처님과 중생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번뇌가 곧 보리요, 생사가 곧 열반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말들은 비록 다르지만 의미는 같아서 모두가 제법실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릇 대승의 공력이란 믿으면 찰나에 성불하고, 비방하면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죄 받는 것을 마치고 다시 이 법을 들으면 문득 도를 깨닫는다.
예컨대 『문수경文殊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반야의 가르침을 듣고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켜 믿지 않으면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지만, 그것은 갠지스 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것보다 수승하다. 왜 그러한가. 갠지스 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것은, 다만 인간 세상과 천상에서 생멸하는 복을 얻을 뿐이다. 하지만 반야의 가르침을 듣고서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져도 가르침을 비방한 죄를 다 받고 나면, 이미 반야의 가르침을 들은 것이 종자가 되었으므로 이후에 반야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을 듣자마자 문득 마음이 열려 찰나에 성불하기 때문이다.”
『무행경無行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어떤 청정한 위의威儀를 지닌 법사가 있었는데, 중생을 가엾이 여겨 교화하고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내게 하였다. 또 어떤 위의를 지닌 비구가 있었는데, 비록 계를 지키지만 보살이 행하는 도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훗날 청정한 위의를 지닌 법사가 위의를 지닌 비구가 있는 곳을 지나다가 대승의 계를 믿지 않고 비방하면 지옥에 들어가지만 지옥의 죄가 끝나고 나면 이 법을 들은 것으로 인하여 도를 깨닫는 인연이 된다는 것을 알고서 억지로 게송 하나를 설해 주었다.
貪欲即是道 탐욕 그대로 도道이고
瞋癡亦復然 성냄과 어리석음도 그러하다네.
如是三法中 이와 같은 세 가지 법 가운데
具一切佛法 모든 불법佛法 다 갖추어져 있다네.
위의를 지닌 비구는 듣자마자 비방하고는 목숨을 마친 뒤 아비지옥에 떨어져 90백천억 겁 동안 온갖 고통을 받다가 지옥에서 벗어나 63만 세 동안 항상 비방한 죄를 받았는데, 그 죄가 차츰 얇아져 뒤에 비구가 되었다. 32만 세 동안 출가한 뒤 이 업을 인연으로 하여 도를 등지고 세속에 들어가 한량없는 천만 세 동안 모든 감관이 어둡고 둔하게 되었다. 이때의 위의를 지닌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내가 바로 그이다. 나는 이러한 대승법을 듣고서 믿지 않고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졌지만, 그 죄를 받는 것이 끝나고 대승법을 들었던 까닭에 곧 부처가 될 수 있었다. …….”167)
모든 경론의 말씀을 살펴보건대 계를 견고하게 지키던 일은 상법시대 초기였으니, 그때는 성인이 가신 지 오래되지 않았고, 사람들 성품이 조금 순해서 계를 지니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도 계를 지니는 이는 적고 범하는 이는 많았다. 하물며 지금의 말법시대는 성인이 가신 지 더욱 멀고 아득하며 사람들 근기도 하열하여 견실함이 없는데, 계의 부낭浮囊에 어찌 결함이 없겠는가. 부낭이 온전하지 못하면 생사의 바다를 건널 수 있겠는가. 따라서 계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다만 대승의 종자와 인연을 맺기만 한다면 그 공덕은 반드시 배가 되리라.
그러므로 천태 대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설법하시던 때 승乘과 계戒168) 모두를 서두르는 이는 인간과 천인의 몸으로 법을 듣고 도를 깨닫는다. 승은 서두르나 계가 느슨한 사람은 삼악도에 태어난 몸으로 법을 듣고 도를 깨닫는다. 승은 느슨하나 계를 서두르는 사람은 인간 세상과 천상의 즐거움에 탐착하여 법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승과 계 모두 느슨한 사람은 이미 악도에 빠져서 대도에서 더욱 멀어진다. …….”169)
이것으로 보건대 차라리 계를 느슨하게 할지언정 승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리심’이라고 한 것은, 위로는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바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발심發心과 필경심畢竟心 둘은 차별이 없지만, 이와 같은 두 마음에서 앞의 마음인 발심이 더 어렵다. 자신은 제도되지 못했어도 남을 먼저 제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초발심자에게 예배하노라.”170)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꽃구름(花雲)과 장식 구름(鬘雲), 천상의 음악과 천상의 갖가지 향을 공양하거나 갖가지 등을 밝히되, 하나하나 등불 심지는 수미산과 같이 하고, 하나하나 등불 기름은 바닷물과 같이 하여, 이와 같은 모든 공양구로 항상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171) 불국토의 극히 작은 티끌 수와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얻은 공덕은 보리심으로 공양하는 한순간 공덕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우파니사타분優婆尼沙陀分172)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173)
‘부처님 은혜를 갚는다’라는 것에 대하여 『자비참법경慈悲懺法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중생 생각하기를 부모보다 더 하신다. 부모의 자식 생각은 그 자비가 한 생에 그치지만, 부처님의 중생 생각은 그 자비심이 끝이 없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이 은혜를 등지고 의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성내고 한스러운 마음이 생겨나서 자비심이 옅어지지만, 부처님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중생들이 경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것을 보면 자비심이 더욱 두터워져서 심지어 무간지옥까지 들어가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다.”174)
이와 같은 큰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탑묘와 정사를 세우고 등촉을 밝히고 당번과 일산, 꽃과 향, 침구 등 갖가지로 공양하면, 장차 내세에 스스로 그 복을 받을 뿐이지만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아니다. 보리심을 내어 정토행을 닦아야 지혜 있는 자라고 이름하며, 부처님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승이 비록 과위의 경지에 머물더라도, 초발심한 범부 보살이 지닌 공덕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지도론』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다.
“ 아라한과 벽지불은 탐욕을 여읜 사람인데, 어떤 범부가 다만 보리심을 냈다고 해서 어찌 그들보다 수승할 수 있는가?
보살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모든 바라밀을 행하는 자이고, 둘째는 다만 은밀히 발심하여 보살도를 행하는 자이다. 비록 완성되지 못했더라도 이승보다 수승하니, 왜 그러한가. 비유컨대 태자가 아직 즉위하지 않았더라도 모든 대신이나 부귀한 자보다 수승한 것과 같다.”175)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출가한 사람이 보리심을 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재가의 사람이 보리심을 내는 것은 진실로 어렵다. 왜 그러한가. 여러 가지 나쁜 인연에 얽매여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보리심을 내면 천인들이 모두 기뻐하며, ‘우리는 이제 천인의 스승을 얻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176)
『비니경毘尼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대승을 닦아서 보살계를 행할 때 새벽에 범한 것이 있다면 마땅히 죄를 지은 것이 되겠지만, 낮에 범한 것이 있더라도, 만약 보리심이 잠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계의 공덕(戒聚)이 성취되어 범한 것이 없게 된다. 나아가 중야中夜에 범한 것이 있어도, 후야後夜에 범한 것이 있어도 보리심이 잠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계의 공덕이 성취된 것이다.”
『보적경寶積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대천세계의 중생들을 때리고 절단하더라도, 악한 마음으로 보리심을 낸 사람을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그 죄가 더욱 크다.”
[200]
常樂住蘭若 항상 아란야에 머물기를 좋아하라.
不然隨衆居 그렇지 않으면 대중을 따라 살지니
群居須愼口 여럿이 살 때는 입을 삼가고
獨處要防心 혼자 있을 때는 반드시 마음을 지켜라.
[201]
遠離惡知識 나쁜 벗(惡知識)을 멀리 여의고
當從善友敎 좋은 벗(善友)의 가르침을 따라서
身不離袈裟 몸에서는 가사를 여의지 말고
食當須應器 먹을 때는 반드시 발우(應器)177)에 하라.
[202]
手不釋黃卷 손에서는 황권黃卷을 놓지 말고
不樂看外書 외서外書 보기를 즐겨 하지 말며
目不視女人 눈으로는 여인을 쳐다보지 말고
見之猶毒蛇 보더라도 독사같이 보아라.
[203]
非病晝不卧 병들지 않았거든 낮에는 눕지 말고
卧則須右脇 눕는다면 반드시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라.
非飢不餘食 배고프지 않거든 군음식 먹지 말고
食則須節量 먹을 때는 반드시 양을 조절하라.
[204]
寢不敷茵蓐 잠잘 때는 이부자리 펴지 말고
眠亦不放恣 잠들어도 함부로 하지 말라.
坐必不背西 앉을 때는 반드시 서쪽을 등지지 말고
行時但視地 걸을 때는 다만 땅만 쳐다보아라.
[205]
語常離戱笑 말할 때는 항상 장난웃음 없애고
取要不應多 요점을 취하여 많은 말 하지 말라.
受嚫作三分 시주 받을 때는 셋으로 나눠야지
不冝全受破 혼자 받아 화합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206]
勿得畜物多 물건을 많이 쌓아 두어
以作障道緣 도를 장애하는 인연을 짓지 말라.
亦勿繁眷屬 권속에 얽매이지 말라.
增長憍瞋慢 교만과 성냄과 업신여김이 늘어날지니.
[207]
如是若干事 이와 같은 몇 가지 일은
沙門急先務 사문이 다급하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니
苟不能如是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豈得名浮圖 어찌 불교도(浮圖)178)라는 이름을 얻겠는가.
[208]
雖受四事供 비록 네 가지 공양을 받더라도
猶如呑餌魚 먹이를 삼킨 물고기같이 여기라.
當來必償債 내세에 반드시 빚을 갚아야
得無慙且懼 부끄럽고 두려운 일 없으리라.
‘아란야阿蘭若(araṇya)’란 여기 말로 ‘시끄러움이 없는 곳(無憒閙處)’을 말한다. 아란야에 머물면 삼업이 저절로 청정해져 곧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게 되며, 도를 얻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아란야에 머무는 자는 청정한 위의를 성취하며, 모든 감관이 산란하지 않음을 성취하며, 정법이 눈앞에 나타남을 성취한다.……”179)라고 하였다.
무릇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빨리 얻고자 한다면, 어찌 아란야에 기꺼이 머물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가람伽藍에 참석하여 대중들 속에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하면 본래 자신이 게을러서 자신의 힘으로 오롯이 도를 닦지 못하더라도, 남들이 정진하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본받아서 감히 방일하지 못할 것이며, 움직이거나 활동하거나 나아가 아침이나 낮에 죽이나 밥을 먹을 때에도 한결같이 모두 대중을 좇아 일찍이 법규를 어기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도행道行이 자연스럽게 더러움을 멀리하고 불제자의 수에 들어갈 것이니, ‘쑥이 삼밭에 생겨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라는 속담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은 대중을 따르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산과 들에 한가로이 노닐며 멋대로 악한 일을 하고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고, 훗날 후회할 인연을 절대로 짓지 말라. 그리고 편안함을 구하고 배부름을 구하여 마을 개울가나 어촌의 해안가에서 풀을 엮어 암자를 짓고 머물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 용렬한 속인의 무리와 사귀면서 동무삼아 형·아우라 부르거나, 아버지·어머니라 부르면서 짓지 않는 나쁜 짓이 없다면, 자기 수행만 잃을 뿐 아니라 청정한 불교도까지 더럽히게 될 것이니, 그 죄가 적지 않을 것이다.
‘좋은 벗(善友)’에 대하여 『비나야』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선지식은 범행梵行의 반쪽입니다. 모든 수행자는 선우의 힘으로 인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선지식은 범행의 전부이니라. 만일 좋은 도반을 얻어 그와 함께 머물면, 열반에 이르도록 이뤄지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범행의 전부라고 말한다’라고 말씀하셨다.”180)
그리고 『불설패경佛說孛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벗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꽃과 같은 벗이니, 좋을 때는 머리에 꽂고 시들 때는 땅에 버리듯이, 부귀한 것을 보면 달라붙고 빈곤하면 버리는 벗이다. 둘째는 저울과 같은 벗이니, 물건이 무거우면 머리 숙이고 물건이 가벼우면 올라가듯이, 주는 것이 있으면 공경하고 주는 것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벗이다. 셋째는 산과 같은 벗이니, 금으로 된 산에 새와 짐승이 모여들면 깃과 털이 광채를 띠듯이, 고귀함이 사람을 영화롭게 해 주고 부유함과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는 벗이다. 넷째는 땅과 같은 벗이니, 온갖 곡식과 재물 일체를 우러르듯이 베풀어 주고 보호하되, 은혜가 두터워도 자신의 덕으로 여기지 않는 벗이다.”181)
『인과경因果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바라문 우타이優陁夷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서 정반왕이 태자의 벗이 되어 줄 것을 명하였다. 그가 태자에게 말하기를, ‘벗에는 세 가지 필요한 법이 있습니다. 첫째 잘못하는 것을 보거든 바로 타일러 간하는 것이며, 둘째 좋은 일을 보거든 깊은 곳에서 생겨나는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며, 셋째 고통스러운 곳에 있거든 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182)
『사분율四分律』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일곱 가지 법을 갖추어야 비로소 친한 벗이라 한다. 첫째는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 둘째는 주기 어려운 것을 주는 것, 셋째는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 넷째는 비밀스러운 일을 서로 알려 주는 것, 다섯째는 잘못을 서로 덮고 감춰 주는 것, 여섯째는 고난을 만나도 버리지 않는 것, 일곱째는 가난해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이다.”183)
『시가라월경尸迦羅越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벗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쁜 일 하는 것을 보면 가려진 곳에 데려가서 타일러 고치도록 말하고, 꾸짖어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급한 일이 있거든 반드시 달려가 구호하는 것이다. 셋째는 비밀스런 말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항상 서로 공경하고 찬탄해 주는 것이다. 다섯째는 좋은 일은 반드시 많든 적든 나누어 주는 것이다.”184)
만일 항상 질투와 교만을 품어 마음에 절도와 삼가는 것이 없거나, 입에는 법다운 말을 담지 못하고 악인을 벗으로 삼으면, 이를 용렬한 사람이라고 한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난타와 함께 생선가게에 이르렀을 때,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생선을 늘어놓았던 풀을 조금 가져오게 하여 손에 잠시 쥐었다가 놓게 하고서 손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 보게 하셨다. 난타는 ‘비린내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향 가게에 이르렀을 때, 향을 쌌던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잠시 쥐었다가 놓게 하고서 다시 난타에게 물으시니, ‘향내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좋은 벗과 나쁜 벗에 물들여지는 것도 이와 같다. 착한 벗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광대한 명성을 얻으리라.……’ 말씀하시었다.”185)
‘나쁜 벗(惡知識)’이란, 나를 향하여 헐뜯고 욕하며 때리고 꾸짖는 자가 아니라,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보고도 고치도록 말하지 않고 기뻐하며 찬양하여 선하지 못한 업을 자라나게 하거나, 나아가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는 이까지 모두가 나쁜 벗이다.
그러므로 남악南岳 대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간의 도속道俗이 우러르고 공양하며 간절히 법문을 청하는 것들은 모두가 악마가 시키는 일이지, 선지식이 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악지식은 마치 원수가 속여 친척이라 하는 것과 같다. 괴롭고 괴롭구나. 모든 왕과 찰제리(刹利, 크샤트리아 계급)도 그러하니, 가리고 가리고 또 가려야만 한다.”186)
‘가사袈裟’란 색깔을 따라 붙인 이름이다. 여기 말로는 ‘괴색壞色’187)이라 한다. 『범망경』에서는 “청·황·적·흑·자색을 섞어 만들면 모두 괴색이라 한다.”188) 하였고, 그 주석에서는 “본래 백색인 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애착하는 마음을 떠나가게 하려는 것이다.”189)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사란 삼의三衣의 통칭이기도 하다. 삼의란, 첫째 5조條로 된 안타회安陁會, 둘째 7조로 된 울다라승鬱多羅僧, 셋째 9조로 된 승가리僧伽黎를 말한다. 또 11조 나아가 25조까지 있는데, 그중에 길거나 짧게, 넓거나 좁게 바느질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장복의章服儀』190)와 『육물도六物圖』191)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다.
『비화경悲華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석가여래께서 보장불寶藏佛이 계신 곳에서 발원하시기를, ‘원컨대 내가 성불할 때 나의 가사에 다섯 가지 공덕이 있게 하소서. 첫째,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중죄를 지었거나 사견을 지닌 사부대중이 한 생각만이라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존중한다면 반드시 삼승의 법 안에서 수기를 받을 것입니다. 둘째, 천룡과 인간과 귀신이 이 가사를 조금이라도 공경한다면 삼승에서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을 것입니다. 셋째, 어떤 귀신이나 여러 사람들이 가사를 조각내어 4촌寸만 지니더라도 먹을 것이 충족할 것입니다. 넷째, 어떤 중생이 서로 어기고 배반할 때 가사의 힘을 생각하면 곧 자비심을 일으킬 것입니다. 다섯째, 전쟁터에 있을 때 조그마한 가사 조각이라도 공경하고 존중하면 항상 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나의 가사에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이 없다면, 10만 부처님을 속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시었다.”192)
어디선가 말하기를, “용이 가사의 실오라기 하나를 얻어서 그 문 위에 걸어 두면 금시조金翅鳥193)의 환란을 면한다.” 하였고, 『대비경大悲經』에서는 “가사를 입은 사람은 미륵불이나 누지불樓至佛이 계신 곳에서 열반에 들어가게 되리니,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지는 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영명 연수永明延壽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가사는 해탈의 깃발이라고 한다. 시방의 부처님들이 그것에 의지하여 도과道果를 얻고, 사부대중과 사람 아닌 것들이 그것을 지니면 편안함을 얻나니, 맑고 한가로움을 나타내고, 뜨거움의 번뇌를 없애 주기 때문이다. 번뇌의 티끌을 여읜 최상의 옷이 아니라면, 어찌 미혹의 길에서 구제할 수 있겠는가. 그 공이 헛되지 않으리니, 이루 다 찬탄할 수가 없다. …….”
‘발우(應器)’란, 범어로 발다라鉢多羅(pātra)이다.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실 때 질그릇과 철 그릇이 수승하다 하셨다. 그 바탕과 양의 크고 작음과 공덕의 우열은 『육물도』에서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과 같다. 비구의 18가지 물건 가운데 가사와 발우가 가장 긴요한 것이다. 마치 새의 두 날개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
『사분율』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비구가 가사와 발우가 없이 타인의 공양을 받는다면, 천겁 동안 소의 머리를 벤 죄에 준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가사와 발우를 항상 그 몸에 지녀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황권黃卷’은 불경을 말한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한나라 명제 때 불경과 도경을 함께 태워 시험할 적에 도경은 재가 되었으나 불경은 타지 않고 다만 연기에 그을려 누런빛이 되었을 뿐이다. 그 뒤로 경을 만드는 사람은 이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종이를 모두 황색으로 물들이게 되었다.
무릇 한가할 때 스승과 벗이 되는 것으로는 불서佛書만 한 것이 없나니, 그중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불보살들이 깨달음의 원인(因)을 행하고 과보(果)를 얻는 무량한 공덕과, 중생들로 하여금 악을 금하고 선을 행하며 삿된 일을 버리고 바른 것으로 돌아가게 하는 갖가지 인연과, 진실한 말씀들이다. 글을 읽고 의미를 살펴 성현을 우러러 사모하고 스스로 감동하고 타인을 가엾이 여기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을 조절하여 몇 날이 지나면 여러 인연들이 차츰 그치고, 몸과 마음이 저절로 맑아져서 현묘한 경계에 오를 수 있으리니, 한가로이 노닐며 허송세월하지 말라.
자기 혼자서 경을 볼 수 없다면, 마땅히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분수에 따라 배우라. 하루 한 구절이라도 좋다. 그렇게 하면 이틀이면 두 구절, 열흘이면 열 구절, 백 일이면 백 구절을 배울 것이니, 이와 같은 일과를 빠뜨리지 않으면 그 식견이 넓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이 공부에 더디 젖어서 한 번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일지라도, 두 번 듣고 세 번 듣고 열 번까지 듣는다면 무엇인들 통달하지 못하겠는가. 비록 그윽하고 깊은 의미를 끝까지 통달하지 못하더라도, 완전히 어리석었던 지난날과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이런 까닭에 차츰차츰 배워서 오묘한 이치를 통달하고 감로의 문에 들어가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아는 것 없이 새처럼 중얼거리는 공허하고 눈먼 선(無知鳥空盲禪)보다 오히려 수승하리라. 종일토록 헛된 말로 웃고 떠드는 무리보다 어찌 현명하지 않겠는가. 다만 게으르고 마음이 없을 뿐이니, 힘써 부지런히 배우는데도 통달하지 못할 자 없으리로다.
‘외서外書’란, 베다(韋陁, veda)의 전적과 여러 사상가들의 문서를 편집한 것 등으로서,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헛된 말을 말한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세속의 시문을 짓거나 외서를 찬탄하고 읊조리는 이와 같은 사람은 모두들 가까이하지 말라.”194) 하였다.
『대지도론』에서는 “외전外典을 익히는 것은 칼로 진흙을 자르는 것 같아서 진흙은 이뤄지는 것이 없거니와 칼만 날로 무디어진다.” 하였고, “외전을 읽는 것은 마치 햇빛을 쳐다볼 때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지관보행기止觀輔行記』에서는 “『춘추春秋』를 읽거나 『좌전左傳』을 암송하여 종일토록 마음이 전쟁터에 노닐고 입으로는 삿된 음모만을 연출하니, 불법에 도움이 되는 일과는 거리가 멀구나.……”195)라고 하였다. 장자·노자·공자·맹자의 도는 비록 구경의 말은 아니지만, 그 문장이 인의仁義를 널리 펴고 있기 때문에 새로 배우는 이에게는 도에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 역시 때때로 볼 수 있다. 왜 그러한가.
『비나야』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이 외도의 논서 배우는 것을 허락하시되, 하루를 셋으로 나누어 처음과 중간 두 부분에는 불경을 독송하고, 마지막에는 외서를 읽으라 하셨다. 그러므로 기원정사에 있는 서원에 대천세계 안의 문서들을 모두 배치하셨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비구들이 두루 읽는 것을 허락하신 것은 외도를 항복시키기 위함이지, 그 견해에 의지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외서를 좋아하여 도 닦는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
‘눈으로는 여인을 쳐다보지 말라(目不視女人)’라는 것은, 여인은 세간과 출세간에 장애가 생겨나게 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장애란, 천자의 지위에서도 그로 인해 나라가 어지럽게 되고, 공경대부公卿大夫도 그로 인해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대부와 서민들도 그로 인해 자기 몸을 잃나니, 하물며 세간을 벗어나려 하는 자가 두려워하고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중생의 번뇌는 탐욕이 근본이니, 만일 여색을 보고 음심이 홀연히 일어나면, 그 불길을 막을 수 없고, 이로 인해 여러 방편을 만들어도 끝내 범하여 접촉하게 되고, 한 번 접촉한 연후에는 마음에 만족하거나 싫증내는 일이 없어 물리치거나 버릴 생각이 없게 된다. 마치 나비가 불에 뛰어들듯 억제하지 못하고, 마치 쇠망치를 진흙 속에 던지듯 끝내 벗어날 기약이 없다. 모든 환란이 이것으로 인해 생겨나서 한량없는 겁 동안 생사를 윤회하며 도의 문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전의 가르침에서 간절하게 꾸짖으셨고, 역대 조사의 논서와 전기에서도 그러하였다. 그중 『화엄경』에서 위덕주 태자威德主太子의 꾸짖는 말이 가장 간절하다.196)
이런 까닭으로 애욕의 강을 건너려면 반드시 모든 여인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한다. 만일 인연이 있어 부득이 만나야 한다면, 독사를 보듯이, 불구덩이를 피하듯이 해야 한다. 옛적에 청량淸凉 조사는 휘장을 사이에 두고서 어머니를 만났거늘, 하물며 여인들을 바로 보았겠는가.
‘낮에 눕는다(晝臥)’라는 것은, 모든 방일함 중에서 가장 옳지 못한 것이다. 여래께서는 비구들에게 밤에도 눕지 말라고 경계하셨거늘 어떻게 하물며 낮에 눕겠는가. 세간의 도에서도 옳지 않다. 때문에 공자께서 재여宰予를 꾸짖으시며,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197) 만일 질병이 있어 누워야만 한다면 반드시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워야지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서는 안 된다.
‘군음식(餘食)’이란, 여래께서 처음에 비구들에게 1일 1식을 계율로 제정하셨는데, 뒤에 라후라羅睺羅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배고프다고 우니, 부처님께서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아침 죽을 허락하셨다. 훗날 비구는 이렇게 문을 여신 것을 보고 아침 죽과 낮의 밥을 항상 행하는 의식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 두 끼니 음식 이외의 모든 것은 군음식이 된다. 만일 아침과 점심을 놓치고서 때 아닌 때에 음식을 얻는다면, 먹지 않으면 좋겠지만 먹어도 무방하다. 왜 그러한가. 굶주려서 기력이 없으면 도업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관론止觀論』에서는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병이 나기 쉽다.” 하였고, 『박물지博物志』198)에서는 “잡식을 하는 것에서 백 가지 질병과 삿된 일이 모이게 되나니, 먹는 것이 적을수록 마음은 더욱 맑아지고, 먹는 것이 많을수록 몸은 더욱 손상된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 지나치면 안 된다.”199)라고 하였다.
‘잠잘 때 이부자리 펴지 말라’라는 것은, 무릇 수도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수면의 마구니(睡眠魔)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비록 얼음으로 된 침상에서 눈(雪)을 덮고 있어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데, 하물며 두터운 이부자리를 펴고 다리 쭉 뻗고 큰 대大 자로 누우면 어찌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깊이 잠들어 혼침에 빠지면,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밤이 새는지 날이 저무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마음을 다잡아 공부를 하겠는가. 그러므로 비구가 잠이 들 때에는 다만 옷자락을 펴고 팔을 베개 삼을 뿐 흐트러지지 말라. 잠깐 사이 쉬고는 곧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하고서 자기가 하는 바에 따라 좌선이나 독송, 예불이나 염불을 하여 때를 놓치지 말고 종신토록 그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도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훌륭한 수행자(善士)라 부를 것이다.
‘앉을 때 서쪽을 등지지 말라’라는 것에 있어서 옛날 신라의 의상 조사는 오로지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희구하여 평생토록 앉을 때 서쪽을 등지지 않았다. 그의 문도 가운데 죄를 범한 한 비구가 있어 법대로 그를 내쫓았다. 그 비구는 대중을 떠나 다른 곳을 유행하였는데, 그 스승을 우러러 흠모하여 형상을 만들어 짊어지고 다녔다. 조사께서 이를 듣고 불러들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실로 나를 기억하였다면 내가 평생 동안 앉을 때 서쪽을 등지지 않았으니 형상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형상을 서쪽을 등지게 앉혔는데, 앉은 형상이 스스로 몸을 돌려 서쪽을 향해 앉았다. 조사께서는 “훌륭하도다.” 하시고는 죄를 사하여 다시 거두어 주셨다. 그러므로 서방정토를 구할 때는 반드시 우러러 본받아야 한다.
‘걸을 때는 다만 땅만 쳐다보라’라는 것은, 일심으로 염불을 하며 걸을 것이지 좌우로 눈을 돌려 산란한 마음으로 광대처럼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봄·여름·가을 세 계절엔 작은 벌레들을 밟아서 죽이게 되니, 까닭 없이 죄를 지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타인과 이야기할 때에는 장난치며 웃거나 큰 소리로 망발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요점만을 취하여 번잡스럽지 않게 말해야 한다. 외전外典에서도 “군자는 말이 적어야 한다.” 하였으니, 말을 하려거든 세 번 생각한 뒤에 말해야 말에 곁가지가 없다.
‘시주 받을 때는 셋으로 나누라’라는 것에 대하여 『비나야』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보시를 받거든 반드시 셋으로 나누어서 하나는 삼보에 올리고, 하나는 동행자나 가난하고 병든 이에게 주고, 하나는 자신이 받아 써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비와 공경 두 가지 마음이 갖추어져 시주자의 은혜를 갚고 진정한 출가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구는 많은 물건을 쌓아 둘 수 없다. 만일 재물이 많이 있다면 밤낮으로 계산하여 이자 늘릴 것을 도모하거나, 타인이 도둑질할까 두려워하거나, 국왕이 빼앗을까 두려워하거나, 물이나 불에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런 것들이 마음을 묶어서 잠시도 잊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염불하고 독경하겠는가. 비록 독경하고 염불하더라도, 다른 반연이 교차하여 마음이 전일하지 못하여 공부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비구들에게 삼의三衣 이외의 다른 물건은 쌓아 두지 않도록 경계하신 것이다.
또한 권속을 많이 갖지 말아야 한다. 아직 도를 얻기 전에 권속이 있으면 자기에게 많은 손해가 될 뿐 조그마한 이익도 없다. 왜 그러한가. 교만하고 성내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이로 인해 자라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마음은 법 가운데 큰 장애이므로, 경에서는 “마음을 닦는 사람은 항상 멀리 떨어져서 혼자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만일 권속을 많이 두고자 하면 반드시 마업魔業이 될 것이다.
‘네 가지 공양’이란, 음식·의복·와구·의약을 말한다. 그것들을 시주하는 것은 복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과 처자의 몫을 줄여 승가에 보시하는 데 쓴 것인데, 승려가 만일 계행과 위의가 모자라고 좌선·독송·예불·염불도 모자란다면, 신심 있는 보시물도 오히려 소비할 수 없거늘 하물며 복을 준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미래세에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니,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빚을 갚는 일과 은혜를 갚는 일에는 여러 가지 방도가 있으므로 정해서 말할 수 없지만, 이제 경에 의거하여 간략히 세 가지로 설명하겠다. 이를테면 가벼운 것(輕), 무거운 것(重), 중간 것(中)이 그것이다.
무엇을 ‘가벼운 것’이라 하는가. 어떤 승려가 비록 인과는 알지만 위의를 갖추고 있지 못하고 여법하게 마음을 조절하여 수행하지 못하여 시주자의 뜻과 어긋나고 일이 이치에 걸맞지 않는 것이다. 이후에 시주 집의 노비나 하인이 되어 집안일을 맡아 하되, 마음에 싫증이나 권태가 없으리라.
무엇을 ‘중간 것’이라 하는가. 어떤 승려가 입으로만 인과를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부합하지 못하여 시주하는 사람, 시주받는 사람, 시주하는 물건에 대하여 마음대로 나와 남을 헤아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한 생각도 은혜 갚을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이후에 낙타·나귀·소·말 등이 되어서 수레를 끌고 밭을 갈거나 짐을 싣고 운반하되, 굶주리고 목마르며 채찍을 맞아도 고생스러움을 꺼리지 않으리라.
무엇을 ‘무거운 것’이라 하는가. 어떤 승려가 인과를 알지 못하고 항상 탐내는 마음을 일으키며, 시주자가 1천 냥의 재물을 보시하거나 1백 가지 음식과 갖가지 공양구를 갖추어 진설하더라도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마치 바다가 강을 받아들이듯 하는 것이다. 이후에 돼지·양·거위·오리 등이 되어서 몸으로 공양하게 되리라.
이것이 세 등급으로 시주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빚을 갚는 것은 한 생에 그치지 않고, 그가 받은 은혜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가깝게는 2생, 3생, 나아가 10생, 백천만 생까지 지나는 것이므로 지정해서 논할 수 없다. 이러한 인과는 마치 형상과 그림자가 서로 따르듯 반드시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다. 예를 들면 운광 법사雲光法師는 소로 태어나는 과보를 면하지 못했고, 신라의 한 비구는 버섯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징험이 나타나는 사례를 다 기록할 수 없으니, 자세한 것은 『법원주림法苑珠林』과 『이궤조전李詭祖傳』의 내용과 같다.
그러므로 『열반경』과 『범망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들에게 경계하시기를, “차라리 백개 천개의 칼과 창으로 몸을 베고 찌를지언정, 끝내 파계한 입으로 신심 있는 시주자가 베푸는 의복을 받지 말며, 차라리 백겁 천겁 동안 뜨거운 쇠구슬을 삼킬지언정 끝내 파계한 입으로 신심 있는 시주자가 베푸는 음식을 받지 말라.”200)라고 하시었다.
아! 이처럼 경계하는 말씀을 살펴보건대, 우리들처럼 계를 지키지 않는 머리 깎은 이(秃人)들이 생각과 마음을 방자하게 하여 신심 있는 시주자의 보시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이 음식이 온 곳을 헤아리고, 자신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온전한지 부족한지 헤아리고, 마음을 잘 지키고 허물을 없애는 데는 탐·진·치 등이 근본이라 생각하고, 진실로 몸이 마르는 것을 치료하기 위한 좋은 약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도업을 이루기 위해 이 음식을 받아야 한다. 또한 생각하기를, ‘내 입은 아궁이가 전단나무나 마른똥을 오는 대로 태우듯이 맛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거친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장로 화상長蘆和尙은 “음식에 대한 사치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해탈의 기약이 어찌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또한 의복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다만 추한 몸을 가리는 데 필요할 뿐, 몸을 꾸며 아름답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찌하여 꼭 섬세하고 가벼운 것만 취하고 스스로 거칠고 무거운 것은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상근기로서 도에 뜻을 둔 수행자들은 입을 거리 먹을거리를 잊어버리고 다만 명아주를 삶아 배고픔을 충당하고, 가는 풀로 몸을 가릴 뿐이다. 중근기의 사람은 항상 걸식을 하고 옷은 다만 백 번 기운(百衲) 세 벌뿐이다. 하근기의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없어서 반드시 시주자의 인연을 빌어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 시주자의 은혜가 막중하니, 반드시 분량을 조절해서 받아야 한다. 성근 싸라기밥도 소비하기 어렵거늘, 옥같이 부드러운 쌀밥을 온전하게 공양 받지 말라. 성근 베옷도 좋거늘 어찌 비단(絹帛)과 능라綾羅이어야만 하겠는가. 왜 그러한가. 맛있는 진수성찬은 수명을 재촉하고, 값비싸고 화려한 옷은 복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수명과 복이 온전하지 못하면 도업을 어찌 성취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능인대각能仁大覺이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금륜金輪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다만 보리 한 알 삼씨 한 알을 잡수셨을 뿐이고, 옷도 사슴가죽과 거친 베옷뿐이었다. 이와 같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겪고서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것이다.
널리 고하노니, 새로 배우는 이들이여, 본사本師이신 우리 부처님의 높으신 절개를 흠모하여 몸과 입의 봉양에 집착하지 말라. 부지런히 선정과 지혜 공부를 닦아 빨리 해탈의 문에 오르라. 은혜 받은 이를 먼저 제도하면, 이것을 ‘은혜를 알아 보답하는 것’이라 하리니, 어찌 빚 갚는 수고로움을 근심하겠는가.
[209]
如上許多事 위와 같은 허다한 일들이
散在諸經論 여러 경론에 흩어져 있어
今集成略頌 이제 모아 간략히 송頌을 만드니
一代義鍾玆 일대시교의 뜻이 여기에 모였네.
[210]
如海一滴水 마치 한 방울의 바닷물이
具含百川味 온갖 시냇물의 맛 모두 머금고 있듯이
一甞知衆味 한 방울만 맛보아도 여러 가지 맛을 알지니
諸生莫輕忽 중생들이여, 소홀히 여기지 말라.
지금 나 무기無寄는 비록 승가에 몸담고 있지만, 행한 바를 미루어 보건대, 계戒도 모자라고 선정도 모자라고 염불도 모자라고 예참도 모자라고 보시도 모자라고, 나아가 작은 선 하나도 닦은 것이 없으며, 악한 일들은 하나라도 짓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찌 부처님이나 하늘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정명경淨名經』에서는 “자기 병을 구제하지 못하고서 병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이 말을 살펴본다면, 자기 허물은 숨겨 두고 남의 허물을 고치려는 자 역시 부끄러워할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은 득도하지 못했지만, 먼저 남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여러 산야에 노닐고 도성까지 두루 살펴보니,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은 자가 대밭보다, 갈대밭보다 많은데, 중근기와 상근기를 제외한 나머지 하근기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하는 짓이 참으로 부끄럽도다.
어떤 비구는 세속의 글도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불경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전생에 지은 복이 없으므로 금생에 가난하여 살아가기 어려우니 먹을거리 입을 거리를 걱정한다. 불사를 빙자하여 둘씩 다섯씩 마을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구구하게 구걸하되, 오직 많이 얻을 생각만 하니, 어찌 남을 복되게 할 생각을 하겠는가. 이미 모아 놓고서는 호용互用201)하여 절도가 없으면서 장한 일을 한다고 말한다.【이는 아귀의 업이 된다.】
어떤 비구는 문자를 거칠게 기억하여 겨우 한두 가지 경을 알고서 문장을 따라 독송하니, 그 의미에는 어둡기만 하다. 석존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본 적 없으면서 자칭 법사法師라 말하고, 부정하게 설법하여 대중들을 속이고 미혹시키며, 외람되게 믿음 있는 시주자의 보시를 받고서도 부끄러움이 없다.【이는 축생의 업이 된다.】
또 어떤 이름뿐인 선승(禪和子)은 가사·누더기 옷·주장자·표주박·발우 등으로 겉모양은 물욕을 잊은 듯하지만, 속으로는 진실한 덕이 없어서 좌선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다만 옛사람의 공안만을 잡고서 대승 경전을 그르다고 질책한다.【이는 아비지옥의 업이 된다.】
어떤 이는 선禪과 교敎에 의지해서 출가하여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겨우 문 안(門庭)에 들자마자 선과 교의 심오한 뜻은 궁구하지 않고 제각각 망령된 집착을 일으켜 서로서로 헐뜯고 파괴한다.【이는 쟁론지옥의 업이 된다.】
어떤 비구는 부처님께서 금하신 법을 어기고 이자 늘리는 일을 경영하여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비구는 왕공이나 대신의 세도에 빌붙어 자신의 부강함을 과시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능멸하면서 음행을 탐하고 술 먹기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외서를 찬탄하여 읊조리고, 속인들과 친구가 되어서 서로 소리 높여 노래하며, 어떤 이는 바둑이나 장기 등의 잡기와 금슬을 타거나 피리를 부는 등 온갖 불선법不善法을 좋아하며, 이와 같이 방자한 마음으로 짓지 않는 악이 없다.【이는 삼악도의 업이 된다.】
아! 이들이 어찌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알지 못하겠는가. 이양利養을 구하는 마음이 강한 까닭에 멋대로 했을 뿐이로다. 외서에서도 “고의로 지은 죄의 형벌에는 아무리 작아도 작은 것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산야에서도 농부의 비방을 면하지 못하고, 도성에 노닐 때도 선비의 비방을 받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불법을 위태롭게 하는 모습을 눈뜨고 볼 수가 없다.
무릇 법이란 저절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퍼지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사람이 하지 못하면 불법이 어찌 오래 머물겠는가. 옛날 위魏나라 황제가 불법을 파멸시킨 것은, 대개 그 당시 사문들이 부처님의 계율을 어기고 방만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그 재앙을 부른 뒤에 왕이 폐불을 가했을 뿐이니, 거울 삼을 만하지 아니한가. 지금의 형세를 살펴보건대 그 당시에 가까우니, 위태롭고 위태롭구나.
소승이 비록 영민하지는 못하지만 두렵고 두려워서 이런 미친 말을 하노니, 바라건대 어진 이들이여, 미친 사람 말이니 믿지 못하겠다 말하지 말고, 저렇듯 밝은 거울로 삼아 제각기 뜻을 가다듬고 해진 법의 배를 수선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너되, 자기도 건너고 타인도 건네주어 차례차례 이어져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그 이익이 넓으리로다.
옛사람은 법을 중히 여기고 사람에 집착하지 않았으니, 예컨대 천제天帝는 축생에게 절을 하여 스승으로 삼았고, 설산 동자는 아귀에게 게송을 청하였다. 만일 한마디 한 구절이라도 자기에게 이로움이 있다면 스승으로 삼았으니, 그의 허물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치 냄새 나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금과 같아서 주머니가 냄새 난다고 하여 금을 버리지는 않는다. 하물며 지금 기록한 것들은 억측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모두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이니, 후학들은 상세히 살펴보아라.
외전外傳에 “봉황을 아는 데는 깃털 하나로 족하고, 비단을 아는 데는 무늬 하나로 족하다.” 하였고, “아름드리나무도 털끝처럼 작은 것에서 나오고, 천 리 길도 발밑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불법을 배우는 이도 그러하니, 이 게송들을 본다면 이미 부처님께서 평생 설하신 가르침에 손가락을 물들인 것이고, 또한 오위五位202)의 수행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이 점을 생각에 두어 가벼이 여기지 말고 소홀히 여기지 말지어다.
석가여래행적송 하권 끝
■ 백련사 사문 기豈의 발문(白蓮社沙門豈跋)
천태종의 시조 용수 대사龍樹大士는 “많이 듣기만 하고 지혜가 없으면 실상을 알지 못한다. 비유하면 짙은 어둠 속에서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혜만 있고 많이 들은 것이 없어도 실상을 알지 못한다. 비유하면 아주 밝은 곳에서 등불이 있어도 비추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많이 듣기도 하고 지혜도 있으면 설하는 것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다. 많이 들은 것도 없고 지혜도 없으면 사람 몸을 한 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지금 부암 장로浮庵長老 무기無寄는 일찍이 백련사 제4세 진정 국사眞淨國師의 적자였던 석교釋敎 도승통都僧統 각해 원명覺海圓明 불인 정조佛印靜照 대선사 이안而安의 문하에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으니, 법명은 운묵雲默이다.
학문이 일가一家의 문장과 이치를 두루 통달하여 과거장에 나아가 상상과上上科에 급제하였다. 굴암사窟嵓寺 주지의 칭호를 얻어 명성의 가도를 높이 거닐었으나, 하루아침에 마치 헌신짝 버리듯 던져 버리고, 금강산과 오대산 등의 명산과 명승지를 유력하였다. 마침내 시흥산始興山에 이르러 암자 하나를 세우고 머물면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불화 그리기와 경전쓰기를 일과로 삼은 것이 20년에 가까웠다. 여력으로 불교 전적과 조사의 문장을 찾아 본사本師 석가모니의 행적송과 아울러 주석을 찬술하니, 두 권이 되었는데, 어린 후학들을 일깨우는 데 이보다 더 큰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
아! 사바세계가 성·주·괴·공을 겪는 겁수의 길고 짧음, 삼계·오취에서 누리는 수명과 복덕의 우열과 고락의 차별, 여래께서 방편으로 부류에 따라 나타내 보이신 네 가지 국토와 세 가지 몸(四土三身), 오시설법의 연월과 차례, 모든 경전 안의 반자교와 만자교, 편벽된 가르침과 원만한 가르침, 본문과 적문, 권교와 실교, 나아가 열반 이후 남기신 법이 흘러들어 융성함과 쇠퇴함, 멀고 가까움, 그리고 후진 학자들이 수행하여 도에 들어가는 방편의 규범까지 마치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는 듯 터럭 하나만큼도 차이가 없다. 진실로 우리 조사께서 말씀하신바 ‘설하는 것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장하도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로다. 그 문장의 격조는 내가 흠모하여 옷깃을 여밀 뿐, 간여할 곳이 없구나.
천력天歷 3년 경오庚午(1330) 2월 8일 만덕산 백련사 사문 기豈의 발문.
융경隆慶 5년 신미辛未(1571) 3월 일 두류산 금화 도인 의천義天이 쓰다.
■ 계음 호연桂陰浩然의 발문(桂陰浩然跋)
우리 여래께서 연설하신 장경의 판본은 해동의 여러 사찰이 있는 곳마다 거의 많이 있지만, 행적에 관한 판본은 거의 없다. 혹 있다고 해도 세월이 오래되고 해가 깊어지면서 닳고 썩는 병폐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로다. 대장경의 강령綱領이며 승가의 지극한 보배가 거의 땅을 쓸어버리듯 사라졌으니, 이는 마치 뭇 별들은 주워 모으면서 해와 달을 빠뜨리는 것과 같다.
이렇듯 불자가 해야 할 일을 빠뜨린 지 오래되었는데, 다행히 조영 대사祖英大師가 무하無何에서 와서 소매에서 한 권의 여래 행적을 내게 보여 주며 이렇게 당부하였다.
“이처럼 보배로운 책이 비록 있다고는 하지만, 그 판본이 지금 어느 사찰에도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 후생들이 멍해져서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사께서 이 일을 염두에 두시어 본사本寺에 알려 주신다면, 사내 대중의 생각이 반드시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만 여래의 행적이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총림의 법보 또한 더욱 빛나게 될 터이니, 대사께서 힘써 주십시오.”
나는 승낙하고는 이에 이 뜻을 본사에 청하였다.
“우리 본사는 식량에 여유가 있는데, 그것을 잘못 쓰면 시주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남은 식량을 덜어 이 책을 판각함이 옳을 듯합니다.
게다가 시주자의 아름다운 이름을 이 판목에 옮겨 새기면 수많은 시주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을 터인데, 대중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대중들은 모두 흔쾌히 좋다고 하였다.
이 불사의 감독을 허락해 주도록 본사의 전 주지이신 뇌협 대사雷冾大士에게 간절히 청하였다. 대사는 우리 대중 가운데 신망 있는 분이셨는데, 사양 끝에 큰 신심을 일으켜 중책을 맡으셨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불사를 성공시켰으니, 이보다 큰 공은 없을 것이다. 가상하고 가상한 일이로다.
무릇 우리 큰 성인의 신령하고 기이한 행적에 대하여 이 책을 보는 자는 자세히 알 것이니, 내가 어찌 군더더기 말을 그 사이에 덧붙이겠는가. 지금 내가 기록하는 것은 다만 판에 새긴 때의 일만을 기록하기 위함이로다.
숭정崇禎 기원후 81년(숙종 35) 기축己丑(1709) 여름
조계 노한曺溪老漢 침굉枕肱의 문인 계음 호연桂陰浩然 삼가 뒤에 발문을 쓰다.
1)
상권 각주 70 참조.
2)
축법란竺法蘭 : 동한東漢의 승려. 중인도 사람. 영평 10년 대월지국의 승려 가섭마등과 함께 중국의 낙양에 와서 불교를 널리 전한다. 백마사에 주석하면서 『사십이장경』·『불본행집경』 등 5부를 번역하였다. 낙양에서 입적, 세수 60세.
3)
통사사인通事舍人 : 궁 안에서 임금을 알현하는 일이나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았던 벼슬 이름.
4)
부의傅毅 : 후한 무릉茂陵 사람. 자는 무중武仲.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여 명제의 부름을 받아 영사令史·낭중郞中·주기실主記室·대장군大將軍·사마司馬 등을 지냈다.
5)
국자박사國子博士 : 국자감·국자학과 같은 국립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벼슬.
6)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중국에서 번역된 최초의 불교 경전으로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공동으로 번역하였다.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간명하게 말하였기 때문에 『사십이장경』이라 한다.
7)
옥황상제(元皇) : 당 태종이 노자에게 내린 시호. 옥황상제는 도가에서 흔히 하느님을 나타내는 말이다.
8)
방술方術 : 도사가 행하는 신선의 술법. 즉 몸을 조련하는 방법과 기술.
9)
약이藥餌 : 약을 만들어 먹는 기술. 주로 신선이 되는 약과 음식을 만드는 방법.
10)
장락궁長樂宮 : 한나라의 궁궐 이름. 황제의 어머니가 기거하는 궁전을 말한다.
11)
한漢 영평永平부터 진晋 영가永嘉까지 : 한漢 영평 원년은 58년이며, 서진西晋 영가는 307~313년이므로 약 250여 년에 해당하는 기간을 말한다.
12)
일대시교一代時敎 : 부처님이 한평생 설하신 성스러운 모든 가르침.
13)
나한보살(羅漢闓士) : 대승 보살을 말한다. ‘나한羅漢’은 아라한(ⓢ arahat), ‘개사闓士’는 보살(ⓢ bodhisattva)의 음역.
14)
삼장 비구(三藏除饉) : 소승 비구를 말한다. ‘삼장’은 경·율·논 삼장에 통달한 승려, ‘제근除饉’은 비구(ⓢ bhikṣu)를 번역한 것.
15)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408~452) : 중국 북위의 3대 황제. 성은 탁발拓跋, 이름은 도燾, 시호는 태무太武. 명明 원제元帝의 맏아들. 외몽골의 유연柔然을 쳐서 큰 타격을 준 뒤, 하夏·북연北燕을 멸망시켜 북위의 화북통일을 완성하였다. 동서 교통의 요지인 간쑤성 지방을 확보하여 사마르칸트·페르가나 등 서역에서 공물을 바치는 나라가 20여 국에 이르렀다. 450년 송나라 정벌에 나서 병력 백만을 이끌고 황허 강을 건너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이에 송나라는 큰 타격을 받아 그 뒤 멸망하였다. 그는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사대 법난 가운데 하나이다. 446년 칙서를 내려 사탑과 불상을 파괴하였고, 승려들을 묻어 죽인 일을 말한다.
16)
사도司徒 : 주나라 때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벼슬. 한나라 때는 대사도大司徒라 하여 대사마大司馬·대사공大司空과 함께 삼공三公에 나열되었다. 북위에서는 재상으로 국가 정책을 좌우하는 최고의 지위였다.
17)
최호崔浩(381~450) : 북위의 재상. 청하淸河 동무東武 사람. 자는 백연伯淵. 아버지 최굉崔宏에게 경전과 역사, 백가百家의 학문을 두루 배웠다. 유교의 정치 이념을 사회에 실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도가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였다.
18)
오복五服 : 왕이 다스리는 땅(王畿)을 중심으로 천하를 순차적으로 다섯으로 나누어 전복前服·후복後服·수복綏服·요복要服·황복荒服이라 한다. 한 복服은 5백 리를 말한다.
19)
북주北周의 무제武帝(543~578) : 중국 남북조 북주의 제3대 황제. 이름은 옹邕, 우문태의 넷째 아들. 형인 명제明帝의 뒤를 이어 즉위, 숙부인 우문호의 집정을 배제하고 정권을 회복하였다. 나중에는 유교에 기초를 두고 불교와 도교를 탄압하여 574년 불경과 불상을 파괴하고 승려와 도사를 환속시켰다. 이러한 불교 탄압은 삼무일종三武一宗인 사대 법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
혜원慧遠(523~592) : 수나라 때 승려. 돈황 사람. 속성은 이씨. 13세에 출가하여 현곡사賢谷寺의 승사僧思에게 교를 배우고, 16세에 담 율사湛律師에게 대승과 소승의 경전을 두루 섭렵하고, 대은 율사大隱律師에게 『사분율』을 배우고, 20세에 상통上統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정영사淨影寺에 주석하며 강설하였으므로 ‘정영사 혜원’이라 불러 ‘여산 혜원’과 구별한다. 그의 저서 『대승의장大乘義章』은 불교의 백과전서라 일컬을 만하고, 수·당의 불교 연구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
21)
삼황三皇 :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세 명의 임금.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로 보는 설과 수인씨燧人氏·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로 보는 설이 있으며,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황제씨黃帝氏로 보는 설도 있다.
22)
오상五常 :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다섯 가지 덕목, 즉 사람이 항상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23)
소목昭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한다. 천자天子는 태조를 중앙에 모시고, 2세·4세·6세는 왼쪽인 소昭에 모시고, 3세·5세·7세는 오른쪽인 목穆에 모시므로 삼소·삼목의 칠묘가 된다. 제후諸侯는 이소·이목의 오묘가 되며, 대부大夫는 일소·일목의 삼묘가 된다.
24)
목련이 신통력을 얻은 뒤 부모를 찾아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태어나 굶주림의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걸식을 하여 공양한 것을 말한다. 『우란분경』(T16, 779a~c).
25)
정반왕이 세상을 뜨자 아난과 난다 등이 정반왕의 관을 멜 것을 희망하였으나, 부처님은 중생에게 예법을 펴기 위해 몸소 부왕의 관을 메셨다. 『정반왕열반경』(T14, 782c).
26)
천원황제天元皇帝 : 북주北周의 선제宣帝를 말한다. 578년 즉위하였으며, 1년 만에 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천원황제라 자칭하였다. 부왕인 무제는 불교를 폐지하였으나, 선제는 즉위하자 불교를 다시 부흥시켰다.
27)
경조京兆 : 경조윤京兆尹의 약칭으로 수도 장관을 말한다.
28)
위원숭衛元崇 : 북주 시대 익주益州 사천四川 성도成都 사람. 천화년(566~571) 중에 불교를 헐뜯는 상소를 도사 장빈張賓과 함께 무제에게 올려 불법을 폐지하게 하였다.
29)
대수大隋의 천자 : 수나라 문제文帝를 말한다.
30)
당唐 무종武宗(814~846) : 당나라 제15대 황제. 성명은 이염李炎. 목종의 다섯째 아들이며, 문종의 동생으로 어머니는 선의왕후宣懿皇后 위씨韋氏이다. 밖으로는 침입한 위구르족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안으로는 도교를 믿어 불교·경교·마니교·조로아스터교를 탄압하였다. 845년 회창의 폐불을 단행하여 사찰 4천6백 곳을 헐고, 26만의 승려를 환속시켰다.
31)
염철사鹽鐵使 : 전매청의 관리를 말한다.
32)
탁지부度支部 : 정부의 재무를 담당하는 관청.
33)
후주後周의 세종世宗(921~959) : 중국 오대의 후주 제2대 황제. 이름은 시영柴榮. 태조가 죽은 뒤 34세에 즉위하였으며, 오대의 황제 중에서 가장 걸출하였다고 한다. 직속 상비군인 전전사殿前司 및 시위사侍衛司를 강화하고, 여러 왕조의 통일 사업에 착수하여 양쯔 강 이북을 거의 통일하였고, 북방의 요나라를 위협하였다. 농정에 유의하여 권농에 힘쓰는 한편, 균세법을 시행하여 조세 부담의 공평성을 도모하였다. 불교를 탄압하여 마음대로 승려가 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즉위 6년 만에 병사하였다.
34)
『천태지관론보주天台止觀論補註』 : 형계 담연荊溪湛然(711~782)이 지은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을 말한다. 모두 40권으로 『마하지관』 1부 10권에 대한 주석서이다.
35)
당唐과 우虞의 시절 : 요순시대를 말한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태평 시대로 꼽힌다.
36)
이승의 5부 경전(二乘五典) : 소승 5부 경전으로 남방불교에서는 장부長部(ⓢ dīgha nikāya)·중부中部(ⓢ majjhima nikāya)·상응부相應部(ⓢ saṃyutta nikāya)·증지부增支部(ⓢ aṅguttara nikāya)·소부小部(ⓢ khuddaka nikāya) 등의 5부 경전이 전하고, 북방불교에서는 『잡아함경』·『중아함경』·『장아함경』·『증일아함경』 등의 4아함이 전한다. 대승 경전으로는 『화엄경』·『대집경』·『대품반야경』·『법화경』·『열반경』이 전한다.
37)
삼강三綱 : 사원의 일들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소임을 맡은 세 승려. 즉 상좌上座·사주寺主·유나維那를 말한다. 상좌는 법랍 높고 덕망 있는 자가 그 임무를 맡아 대중을 통솔한다. 사주는 절의 관리를 맡는다. 유나는 사규를 바로잡는 일을 맡는다.
38)
부혁傅奕(554~639) : 수에서 당에 걸쳐 활약한 도사. 북주의 폐불 때 통도관通道觀 학사가 되었고, 후에 도사가 되었다. 무덕武德 4년(621)에 「사탑승니사태십일조寺塔僧尼沙汰十一條」를 올려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사탑과 승니를 삭감해야 한다고 진언했을 때, 고조가 듣지 않자 표를 써서 널리 배포하고 이후에도 상소를 계속 올렸다. 더욱이 불교를 배척한 25인의 전기를 모아 출간하여 폐불의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하였다.
39)
『명보기冥報記』(T51, 796b~c)에 보인다.
40)
도안道安(314~385) : 동진東晋 시대의 승려. 속성은 위씨魏氏. 조실부모하고 12세에 출가. 불도징佛圖澄을 스승으로 섬기고, 법제法濟·지담支曇 등에게 수학하였다. 중국의 불교는 주로 인도와 서역에서 온 승려에 의하여 개척되었는데, 도안 때부터 중국인에 의하여 중국 불교가 일어났다고 말하여진다. 경전을 해석하는 데 서분·정종분·유통분의 3분 과목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진秦 건원 21년, 72세로 입적하였다.
41)
『법원주림法苑珠林』 권13(T53, 384b~c).
42)
한유韓愈(768~824) : 당나라의 문학자·사상가. 자는 퇴지退之, 시호는 문공文公, 회주懷州 수무현修武縣 출생, 792년 진사에 등과, 지방 절도사를 거쳐 803년 감찰어사가 되었을 때, 수도의 장관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양산현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소환된 후로는 주로 국자감에서 근무하였으며, 817년 오원제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이 되었으나, 819년 헌종황제가 불골佛骨을 모시는 것을 간하다가 조주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헌종 사후에 소환되어 이부시랑까지 올랐다.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불교를 배격하였다.
43)
삼달지三達智 : 과거·현재·미래를 다 아는 지혜. 아라한에게 있는 것을 ‘삼명三明’이라 하고, 부처님에게 있는 것을 ‘삼달三達’이라 한다.
44)
정수正受 : 삼마지三摩地(ⓢ samāpatti)·삼매三昧(ⓢ samādhi)에 상응하는 말. 사심邪心과 산란심散亂心을 여읜 것을 ‘정正’이라 하고, 무념무상의 경계에서 법을 받아들여 마음에 두는 것을 ‘수受’라 한다.
45)
삼달영지三達靈智 : 삼달지三達智와 같은 뜻.
46)
『선견비바사론善見毘婆娑論』(T24, 796c~797a).
47)
상권 주 260 참조.
48)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T9, 61a~b).
49)
『대방등대집경』 「월장분」을 말한다. T13, 363a~b에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50)
『아난칠몽경』(T14, 758a).
51)
『능엄경楞嚴經』(T19, 151b).
52)
사람 아닌 것(非人) : 천룡팔부·아귀 등을 말한다. 혹은 천룡팔부 가운데 긴나라緊那羅(kinnara)를 의미하기도 한다. 긴나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하거나 말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다.
53)
『유가사지론』(T30, 285c~286a).
54)
아리륵과阿梨勒果 : ⓢ harītakī. 하리륵訶梨勒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과실수 이름. 잎은 길쭉한 타원형, 꽃은 흰색, 초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달걀형의 청황색으로 쓴맛이 나며, 약용으로 쓰인다.
55)
『아비달마대비바사론』(T27, 693b).
56)
화광동진和光同塵 : 『노자』 제56장에 나오는 구절로, 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 준다는 뜻.
57)
『출요경出曜經』(T4, 616b, 621c).
58)
『빈두로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爲優陀延王說法經』(T32, 787a~b).
59)
궤지軌持 : ‘궤범주지軌範住持’의 줄임말. ‘궤범’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고, ‘주지’는 자신의 성품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60)
생공生空 : 아공我空을 말한다. 즉 실아實我가 없다는 것. 일반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은, 오온이 임시로 화합한 것이어서 참다운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뜻. 인공人空·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한다. 대승에서는 아공我空(ātma śūnyatā)과 법공法空(dharma śūnyatā), 즉 두 가지 공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61)
사과四果 : 예류과(須陀洹)·일래과(斯陀含)·불환과(阿那含)·아라한과(阿羅漢)를 말한다.
62)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 : 10신十信 이전의 5종 단계. 상권 주 178 참조.
63)
칠방편위七方便位 : 견도에 들기 전 삼현위와 사선근위의 일곱 가지 지위. 삼현위는 오정심관五停心觀·별상념주別相念住·총상념주總相念住를 말하고, 사선근은 난暖·정頂·인忍·세제일법世第一法을 말한다.
64)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T3, 156b).
65)
불퇴전의 경지(阿惟越致) : ⓢ avaivartya, avaivartika. 다시 물러섬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66)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T4, 521c~522b)에 보인다.
67)
여섯 가지 짐승(六畜) : 집에서 기르는 여섯 가지 가축. 즉 소·말·양·돼지·개·닭 등을 말한다.
68)
따로 초청함(別請) : 재가인이 승려들 가운데 특별히 지명하여 초청해서 공양하는 것. 공양에 초청 받을 때에는 수계한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참석하도록 계율로 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어기고 특별히 별청을 받는 것은 계율상으로 금지하며, 이것을 범하면 바라이제가 된다.
69)
두타행頭陀行 : ⓢ dhūta. 번뇌의 때를 벗고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갖지 않고, 불도를 깨닫기 위하여 심신을 수련하는 고행. 두타행에는 아란야에 머무는 것, 항상 걸식하는 것,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않고 순서대로 탁발하는 것, 한 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않는 것, 식사량을 절제하는 것, 정오가 지나면 과실즙·석밀石蜜 따위도 마시지 않는 것, 헌 옷을 빨아 기워 입는 것, 삼의三衣 이외에 다른 옷을 쌓아 두지 않는 것, 무덤 곁에서 무상관을 닦는 것, 나무 아래에 머물러서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애착을 없애는 것, 나무 아래에서 자면, 습기·새똥·독충의 해가 있으므로 노지露地에 앉는 것, 항상 앉아 있고 눕지 않는 것 등 열두 가지가 있다.
70)
양지楊枝 : ⓢ dantakāṣṭa. 본래는 작은 버들가지를 씹어 이빨을 닦는 것을 말한다. 불교도들에게 버들가지로 이를 깨끗이 하도록 한 데서 이름한 것.
71)
조두藻頭 : 대두大豆와 소두小豆의 분말로서, 손을 씻는 비누.
72)
삼의三衣 : 출가 수행하는 비구가 입는 의복 세 가지. 승가리僧伽黎(saṃgāti)는 설법할 때,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궁중에 들어갈 때 입고, 대의大衣라고 한다. 울다라승鬱多羅僧(uttarāsaṅga)은 예불·독경·청강·포살 등을 할 때 입고, 상의上衣라고 한다. 안타회安陀會(antarvāsa)는 절 안에서 작업할 때 입고, 내의內衣라고 한다.
73)
석장錫杖 : ⓢ khakkhara. 지팡이의 일종으로 길을 다닐 때 독사 등의 해충을 막고, 걸식을 할 때 이것에 달린 쇠고리를 흔들어 시주자에게 비구가 온 것을 알린다.
74)
녹수낭漉水囊 : ⓢ parisrāvaṇa. 발리살라벌나鉢里薩羅伐拏라고 음역. 물을 먹을 때 물속에 있는 작은 벌레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또는 티끌 같은 것을 없애기 위하여 물을 거르던 주머니.
75)
무근無根 : 남자나 여자에게 성기가 없는 것.
76)
이근二根 : 남녀의 성기를 한 몸에 갖추고 있는 것.
77)
칠차칠역죄七遮七逆罪 :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것, 부친을 살해하는 것, 모친을 살해하는 것, 스님을 살해하는 것, 아사리를 살해하는 것, 교단을 분열시키고 활동을 방해하는 것, 성인을 살해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것을 범한 사람에게는 수계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칠차죄七遮罪라고 하며, 간단히 칠역죄七逆罪라고도 한다.
78)
사부 제자四部弟子 :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네 부류의 사람, 즉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를 말한다. 혹은 법회에 참석하는 네 부류의 사람, 즉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를 가리키기도 한다.
79)
『범망경』(T24, 1005b~1009b).
80)
위의계威儀戒 : 비구가 일상생활에서 준수해야 할 250계를 행行·주住·좌坐·와臥 사위의에 배대하면 1천 계가 되고, 다시 이 1천 계를 과거·현재·미래세에 배대하거나, 혹은 삼취정계에 배대하면 모두 3천의 위의계가 된다.
81)
세행계細行戒 : 비구가 일상생활에서 항상 주의해야 할 규범을 배열하여 8만 4천의 수를 이룬 것.
82)
중품중위中品中位 : 구품정토왕생의 하나. 소승하선小乘下善의 범부가 1주야晝夜 동안 계를 지닌 공덕으로 왕생하는 정토. 죽을 때에 불보살의 영접을 받고 왕생하여 반 겁 뒤에 아라한과를 얻는다고 한다.
83)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T12, 345b).
84)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 : 진리를 깨닫지 못한 중생에게는 다섯 가지의 큰 두려움이 있다. 생활에 대한 두려움(不活畏), 명예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惡名畏), 죽음에 대한 두려움(死畏),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惡道畏), 자신이 없어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두려움(大衆威德畏)이 그것이다.
85)
『대지도론大智度論』(T25, 153c).
86)
『화엄경』(T10, 68b).
87)
제6심 : 보살이 수행하는 과정을 52단계로 나누고, 그 가운데 제11위부터 제20주까지를 10주十住라 하는데, 그 가운데 제6위인 정심주위正心住位를 말한다. 제6 반야바라밀을 성취하여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 씀씀이까지도 부처님처럼 바른 계위이다.
88)
『잡보장경雜寶藏經』(T4, 467b~468a).
89)
『불설마하가섭도빈모경佛說摩訶迦葉度貧母經』(T14, 761c~762b).
90)
『금강경』(T8, 750c, 754c).
91)
『잡아함경』(T2, 89b~c).
92)
영가永嘉(665~713) : 당나라 현각 선사玄覺禪師. 진각 대사眞覺大師·일숙각 화상一宿覺和尙이라고도 한다. 자는 명도明道, 본성은 대戴. 어려서 출가하여 삼장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천태지관에 정통하였다. 저술로는 『증도가』·『영가집』이 있다.
93)
『영가증도가永嘉證道歌』(T48, 396a).
94)
육묘문六妙門 : 천태종에서 세운 여섯 가지 선관禪觀. 열반에 들어가는 문이 되므로 묘문妙門이라 한다. 호흡의 출입을 셈하는 것(隨息門), 숨의 출입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隨門), 생각을 그치는 것(止門), 대상을 밝게 관찰하는 것(觀門), 살피는 생각마저 집착하지 않는 것(還門), 마음이 청정하여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淨門) 등을 말한다.
95)
16특승十六特勝 : 호흡을 세어 마음의 산란을 더는 정신 통일법으로, 수식관을 많은 종류로 세분하여 확충한 것이다. 내용과 세부 항목에 있어서 경론마다 내용이 다르다. 『성실론』에서는 짧은 호흡을 짧다고 아는 것(念息短), 긴 호흡을 길다고 아는 것(念息長), 호흡이 온몸에 두루 퍼짐을 아는 것(念息遍身), 몸의 작용을 없애는 것(除身行), 마음이 기쁨에 도달하는 것(覺喜), 신체가 안락에 이르는 것(覺樂), 기뻐하는 마음에서 탐내는 마음의 화가 이끌려 나오는 것을 아는 것(覺心行), 마음의 작용을 없애는 것(除心行),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뜨지 않는 것을 지각하는 것(覺心), 마음이 기쁨을 내게 하는 것(令心喜), 마음이 들뜨면 다잡아 적정하게 만드는 것(令心攝), 마음이 해탈하게 하는 것(令心解脫), 일체가 무상함을 아는 것(無常行), 번뇌를 끊는 것(斷行), 염리하는 마음을 내는 것(離行), 일체를 소멸하는 것(滅行) 등 16가지를 말한다. 『석가여래행적송사기』(도서출판 불천, 2005, p.231) 참조.
96)
통명通明 : 아라한 등의 성자가 사선정·사무색정·멸진정 등 구차제정九次第定을 닦을 때 호흡(息)·물질(色)·마음(心) 세 가지를 관하는 선법. 세 가지를 꿰뚫어 관하여 걸림이 없게 하는 까닭에 통명通明이라 한다. 또한 육통과 삼명을 얻게 되므로 이와 같이 부르기도 한다.
97)
삼명육통三明六通 : ‘삼명’이란 자타의 과거세를 밝게 아는 지혜인 숙명명宿命明, 미래세 중생의 생사를 밝게 아는 지혜인 천안명天眼明, 불교의 진리를 밝게 증득하고 번뇌를 단멸하는 지혜인 누진명漏盡明 등을 말한다. ‘육통’이란 신족통·천안통·천이통·타심통·숙명통·누진통을 말한다.
98)
무생지無生智 : ⓢ anutpādajñāna. 일체법이 무생無生인 것을 아는 지혜. 일체 번뇌를 멸진하여 생멸 변화를 멀리 떠난 궁극의 지혜.
99)
결結 : ⓢ bandhana, saṃyojana. 결사結使라고도 하며, 계박한다는 뜻이다. 번뇌가 중생을 계박하여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100)
『금강경』(T8, 749b, 753c).
101)
평등한 진법계에서는~일이 없다(平等眞法界。 佛不度衆生。) : 이 구절은 『정명경淨名經』에는 일치하는 구절이 없다. 주석서인 『유마의기』(T38, 480b)·『유마경략소』(T38, 630b)에 보인다.
102)
『묘법연화경』(T9, 8a), 『첨품묘법연화경』(T9, 140c).
103)
융통도태融通淘汰 : 융통融通이란 다른 것과 융화하여 장애가 없는 것을 말하고, 도태淘汰란 골라내는 것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오시 가운데 반야시를 ‘융통도태’라 부르고 있다.
104)
당기중當機衆 : 부처님의 설법 회상에서 그 가르침을 듣고 바르게 깨달음을 얻는 중생. 사부대중의 하나.
105)
다섯 가지 수행(五種行) : 5종 법사의 수행. 『법화경』 「법사품」에 따르면, 수지 법사受持法師·독송讀經 법사·송경誦經 법사·서사書寫 법사·해설解說 법사 등을 5종 법사라 한다.
106)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T47, 78b).
107)
오정심법五停心法 : 오정심관五停心觀을 말한다. 육체의 부정한 모습을 관하여 탐욕을 그치는 부정관不淨觀, 일체중생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성냄을 그치는 자비관慈悲觀, 모든 인연이 생기는 도리를 관하여 어리석음을 그치는 인연관因緣觀, 18계의 모든 법이 지·수·화·풍·공·식의 화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관하여 아견을 그치는 계분별관界分別觀, 호흡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수식관數息觀을 말한다. 계분별관 대신에 부처님을 염하는 염불관念佛觀을 넣기도 한다.
108)
묘과妙果 : 뛰어난 결과.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으로 얻는 증과證果, 즉 불과佛果를 말한다.
109)
『아비담비바사론』(T28, 319a~c).
110)
『현우경賢愚經』(T4, 440c~441b).
111)
『백연경百緣經』(T4, 234b~235a).
112)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T4, 590b~c).
113)
『불설우전왕경佛說優塡王經』을 말하는 듯하다. 『우타연왕경』은 『대보적경』 「우타연왕회優陀延王會」의 다른 번역이다. 아마도 무기無寄 스님은 “우전왕이 불상을 조성했다.”라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우
석가여래행적송 3
석가여래행적송 하권釋迦如來行蹟頌 下卷 3
[138]
此法行彼土 이 불법佛法이 저 인도 땅에서 행해진 지
一千餘許載 1천여 년 지난 뒤
東流至震旦 동쪽으로 흘러 중국(震旦)에 이르니
後漢明帝時 후한 명제 시절이라.
[139]
賫來者是誰 가지고 온 자는 누구인가?
摩藤竺法蘭 가섭마등1)과 축법란2)이니
君臣及士庶 군신과 사대부와 서민들
皆信受奉行 모두 믿고 받아들여 봉행하였네.
[140]
因建白馬寺 백마사를 세우고
安舍利經像 사리와 경전과 불상을 봉안하니
此土諸塔寺 중국 땅의 모든 탑과 절은
由玆始興起 이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네.
『파사론破邪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한 명제 영평 3년 경신년 왕이 금인金人의 꿈을 꾸었는데, 키가 1장 6척이나 되었고, 목에는 일광日光을 둘렀으며, 궁전 앞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고 기쁘게 맞이하는 꿈이었다. 이튿날 아침 왕이 여러 신하에게 두루 물었다.
“이것은 무슨 신인가?”
통사사인通事舍人3) 부의傅毅4)가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로, 천축에 득도한 분이 계셨는데 이름을 부처라 하옵니다. 아마도 그 신이 분명합니다.”
국자박사國子博士5) 왕준王遵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서이기周書異記』에 이르기를, 소왕昭王 때 성인이 서쪽에 태어났다 하였고, 태사太史 소유蘇由는 천년 뒤 그 가르침이 이 땅에 미치리라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꿈꾸신 것은 분명 이것일 것입니다.”
황제는 진실로 그렇다고 믿고, 곧 중랑中郞 채음蔡愔과 박사博士 왕준王遵 등 18인을 파견하여 서역에 함께 가서 불법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월지국에 가서 가섭마등과 축법란 등 두 서역 스님을 만나 그들이 지니고 있던 흰 모포(白氎)에 그린 석가여래상과 사리와 아울러 『사십이장경』6)을 백마에 싣고서 낙양에 돌아오니, 그것이 바로 영평 10년이었다. 황제는 매우 기뻐하며 『사십이장경』을 번역하게 하였으며, 정사精舍를 세워 백마사白馬寺라 하고, 그들을 머물게 하였다. 이 땅에 삼보三寶라는 이름이 있게 된 것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141]
是時於此方 이때 이곳 중국에는
道法廣興布 도교의 법이 널리 퍼져 있어
五岳諸道士 오악五嶽의 도사들
六百九十人 690명이
[142]
僉議上䟽云 모두 의논하여 이렇게 상소하였네.
莫信胡神說 “오랑캐 신의 말을 믿지 마소서.
聖上若信此 성상께서 이를 믿으신다면
華俗盡歸邪 중화의 풍속이 모두 삿되어지리다.
[143]
彼我法眞僞 저들 법과 우리 법의 참과 거짓을
願須火試之 원컨대 반드시 불로 시험하소서.”
帝即頷其言 황제가 곧 그 말을 받아들여
命集白馬寺 백마사에 모이도록 명하였다.
[144]
爾時道士衆 그때 도사의 무리들이
各賫道經來 제각기 도교의 경전을 가져와
分置於兩壇 양쪽 단에 나누어 안치하니
威儀甚嚴潔 위의威儀가 매우 엄숙하였다.
[145]
舍利與經像 사리와 경전과 불상은
別安於道西 따로 도교 경전의 서쪽 단에 안치하고서
道衆爇名香 도사의 무리는 명향名香을 사르고
遶壇而泣曰 단 주위를 돌면서 울며 말하였다.
[146]
我道之興替 “우리 도교의 흥망성쇠가
但在於今日 오로지 오늘에 달려 있사옵니다.”
向天陳願志 하늘 향해 원하는 바를 말하고서
便縱火焚之 곧바로 불을 놓아 경전들을 불태웠네.
[147]
道經盡爲灰 도경道經은 모두 재가 되었으나
梵經完不燒 범경梵經은 완전히 타지 않았고
舍利直上空 사리는 곧장 허공에 솟아
放五色光明 오색 광명을 내뿜더라.
[148]
映蔽白日光 그 빛이 햇빛을 가려 버리고
旋環如盖覆 보개寶蓋처럼 선회하며 덮으니
摩藤涌在空 가섭마등이 허공에 솟아올라
廣現諸神變 갖가지 신통변화 널리 나투더라.
[149]
出大梵音聲 큰 범음梵音 소리를 내서
歎佛功德海 바다 같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又說出家德 또 출가한 공덕에 대해 말하기를
諸善中第一 “모든 선행 중에 제일”이라 하네.
[150]
帝聞大忻悅 황제가 듣고 매우 기뻐하고
群疑亦皆息 여러 가지 의혹도 모두 멈추니
爾時諸大臣 그때 모든 대신과
尊卑士女等 높고 낮은 사대부와 부인들
[151]
一千三百人 1천3백 인이
一時俱出家 일시에 모두 출가하였고
彼諸道士衆 저들 도사의 무리들도
示順伏出家 순순히 승복하고 출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네.
영평 14년 신미년 정월 초하루 오악五岳 모든 산의 도사들이 황제께 세배 드리는 모임(朝正)을 하던 차에 그들이 말하기를, “천자께서 우리 도교의 법을 버리고 멀리 오랑캐의 가르침을 구하시니, 지금 조정에 모인 것을 기회로 그것을 항의해 볼 만하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表를 올렸다.
“오악 18산의 도교 사원에 있는 태산삼동太山三洞의 제자 저선신褚善信 등은 죽을죄를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신들이 듣기로, 태상太上은 형상도 이름도 없으며, 끝도 없고 위도 없으며 텅 빈 그대로이어서 대도大道는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나왔으므로 상고시대부터 한결같이 받들었고, 모든 왕들도 바꾼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도는 복희씨와 황제씨를 넘어서고, 덕은 요임금과 순임금을 능가하거늘,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아 서역의 가르침을 구하시니, 섬기는 것은 오랑캐의 신이요, 말하는 것도 중국에 맞지 않사옵니다. 원컨대 신 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과 함께 시험해 볼 것을 허락하소서. 신 등 모든 산의 도사들은 꿰뚫어 보고 멀리 듣는 이가 많이 있으며, 경전에 통달하여 옥황상제(元皇)7) 이래로 태상군록太上群錄과 태허부주太虛符呪를 단련하지 않은 이가 없사옵니다. 그 궁극의 경지에 통달하면, 혹은 귀신을 다그쳐 부리며, 혹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혹은 물 위를 걸어도 빠지지 않으며, 혹은 한낮에 하늘에 오르며, 혹은 몸을 숨겨 헤아릴 수 없으며, 방술方術8)이나 약이藥餌9)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원컨대 그들과 겨룰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첫째 성상의 뜻이 편안할 것이며, 둘째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며, 셋째 대도大道로 돌아감이 있을 것이며, 넷째 중국의 풍속을 어지럽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신 등이 만약 진다면 뜻대로 엄한 꾸짖음을 내려 주시고, 만약 이긴다면 허망한 저들을 없애 주시길 비나이다.”
황제가 칙서를 내려 상서령 송상宋庠을 장락궁長樂宮10)으로 불러 그달 15일을 기하여 백마사에 모이도록 하였다. 도사들은 세 개의 단을 차리고 24문을 열었다. 남악 도사 저선신褚善信, 화악의 유정념劉正念, 북악의 환문도桓文度, 동악의 초득심焦得心, 중악의 여혜통呂慧通과 곽산·천목산·오대산·백록산 등 18산의 도사 기문신祁文信 등 도합 690명이 제각기 『영보진문靈寶眞文』과 『태상옥결太上玉訣』과 『삼원부록三元符籙』 등 509권을 가지고 와서 서쪽 단에 두었다. 모성자茅成子·허성자許成子·노자老子 등 27인의 책 315권은 중앙단에 두고, 모든 신께 공양할 음식은 동쪽 단에 차리고, 부처님 사리와 경전과 불상은 도교의 서쪽에 두었다.
도사들은 침향沉香으로 횃불을 삼아 경 주위를 돌면서 울며 말하였다.
“신들은 아뢰옵니다. 태극이시며 대도이시며 근원이신 천존天尊과 모든 신선과 신령들이시여! 지금 오랑캐의 신이 중국을 어지럽히니, 임금이 삿된 것을 믿어 바른 가르침이 자취를 감추고 현풍玄風의 실마리가 떨어지려 합니다. 신들이 감히 단 위에 경전을 놓고 불을 놓아 시험함으로써 군중의 마음에 열어 보이게 하여 진위를 가려낼 수 있게 하고자 하옵니다.”
그리하여 불을 놓아 경전을 불사르니, 도교의 경전은 불길을 따라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불경은 엄연히 남아 있었고, 사리는 공중으로 솟아올라 오색 광명을 내뿜으며 보개寶蓋처럼 선회하며 대중들을 두루 덮었고, 마등 법사도 공중으로 솟아올라 신통변화를 널리 나투었다.
그때 하늘에서는 보배 꽃이 내리고 하늘 음악이 들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대중들이 모두 기뻐하며 모두 축법란 법사의 주위를 돌면서 법의 요체를 설해 주기를 청하였다. 법사는 우렁차게 범음梵音을 내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대중들이 삼보를 칭송하게 하고, 모든 법의 요체를 설한 뒤에 다만 출가하는 복덕이 가장 으뜸이며, 처음 절을 짓는 것은 범천의 복덕과 같다고 설하였다.
이때 사공 양성후 유준劉峻이 궁인·선비·백성 등 1천여 명과 함께 출가하였고, 오악의 도사 여혜통 등 628명이 출가하였고, 궁전의 비빈과 궁녀 등 230명이 출가하였다. 도사 저선신은 기가 막혀 죽어 버렸고, 그중 승복하지 않고 혀를 깨물어 자살한 이가 50여 명이었다. 이에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열 곳에 절을 세웠는데, 일곱 곳은 성 밖에 지어 비구를 살게 하였고, 세 곳은 성안에 지어 비구니를 살게 하였다.
[152]
自漢至於唐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貝牒多出來 패엽이 많이 전해져서
譯之成部裘 번역하여 두루마리 책을 만드니
六千有餘軸 6천여 축軸이나 되더라.
서진西晋 때 번역한 경이 260부, 세운 절이 180곳, 승려가 3천7백 명이었다. 동진東晋 때 번역한 경이 260부, 세운 절이 1,768곳, 승려가 2만 4천 명이었다. 송宋 때 번역한 경이 110부, 세운 절이 1,913곳, 승려가 3만 6천 명이었다. 제齊 때 번역한 경이 72부, 세운 절이 2,010곳, 승려가 3만 2천5백 명이었다. 양梁 때 번역한 경이 230부, 세운 절이 2,846곳, 승려가 8만 2천7백여 명이었다. 후량後粱 때 세운 절이 180곳, 승려가 3천2백 명이었다. 진陳 때 번역한 경이 11부, 세운 절이 1,232곳, 승려가 3만 2천 명이었다. 북위北魏 때 번역한 경이 49부, 세운 절이 3만 850곳, 승려가 2백만 명이었다. 북제北齊 때 번역한 경이 14부, 세운 절이 43곳, 승려는 그 수가 전하지 않는다. 주周 때 번역한 경이 16부, 세운 절이 931곳이었다. 수隋 때 번역한 경이 82부, 세운 절이 3,985곳, 승려가 23만 6천2백 명이었다.
한漢 영평永平부터 진晋 영가永嘉까지11) 42곳의 절이 있었을 뿐이고, 후위後魏가 낙양에 도읍한 뒤 절을 1천여 곳 지었으며, 후조後趙가 업鄴에 도읍을 정하고, 절을 8백여 구區에 지었으니, 이들 16국에서 경을 번역하고 절을 세운 일과 승려 수에 대한 것이 없지 않지만, 과장된 거짓이라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唐과 오대五代부터 대송大宋과 금金까지는 기록이 빠져 있다. 그러나 불교가 융성하기로는 당·송·금 3조朝만 한 것이 없으니, 비록 기록이 없더라도 위의 예에 견주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장음의大藏音義』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12)는 『전법륜경』을 시작으로 하여 『대열반경』을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까지를 말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총 1백억 부部이며, 부마다 권卷과 질秩이 몇 배나 되어 헤아리기 어렵다. 금관金棺이 빛을 거둔 지 1천 년 뒤, 마침내 나한보살(羅漢闓士)13)과 삼장 비구(三藏除饉)14)가 함께 세상에서 대립하여 두 문도의 무리들이 서로 비방하며 헐뜯고 서로 상대방 스승을 죽이니, 이로부터 그 후 사마와 외도가 번성하여 바른 가르침을 침해하였다. 이에 사갈라 대용왕이 부처님께서 남기신 부촉付囑을 찾아 경과 율을 가지고서 용궁으로 들어가 봉안하니, 이것이 해장海藏이다. 그 뒤 마등과 축법란 등 여러 대덕이 제각기 서쪽 인도에서 용장龍藏에 넣고 남은 것을 가지고 동쪽 진단으로 와서 번역하여 역대에 널리 전한 것이 겨우 4천4백여 권이며, 잡록과 전기가 도합 639함函이다. 아! 이것은 해와 같은 부처님의 남은 빛이요, 바다 같은 깨달음의 한 방울 물일 뿐이다. 마치 가느다란 먼지 하나로 대지를 알고, 한 포기 풀로 수미산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석씨회요釋氏會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명제 정묘년(67)에서 당 개원 경오년(735)까지 세상에 유포된 대승 삼장은 총 686부 도합 2,762권이며, 소승 삼장은 총 330부 도합 1,762권이다. 이상을 모두 헤아리면 4,507권이 된다.”
[153]
歷代諸帝王 역대 모든 제왕과
及與臣僚衆 신료의 무리가
同心大弘闡 한마음으로 크게 드날리니
國泰亦身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도 편안하더라.
[154]
其有毁謗者 헐뜯고 비방하는 자 있으면
現世便招殃 현세에 바로 재앙을 부르고
後苦亦應大 후세에 받을 고통 역시 크리니
悔之何所及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아!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역대 여러 나라 왕王과 공公과 대신大臣들이 경을 번역하고 절을 지어 성인의 교화를 빛내고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함이 이와 같구나. 부처님의 가르침과 분부하심을 받은 홍법의 보살(弘法大士)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헐뜯고 훼방하여 재앙을 받은 이가 있었던 것은 슬픈 일이로다. 어찌 작은 미혹을 그치지 못하고서 오랜 겁 동안 큰 괴로움에 걸려드는가. 이러한 사례는 전기에 많이 실려 있는데, 다 기록할 겨를이 없기에 여기서는 간략히 인용하여 한두 가지만 보이겠다.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15)는 처음에는 불교를 공경하여 매번 고승을 모셔 함께 법담을 나누고 불상을 많이 세우고 갖가지로 공양하였다. 사도司徒16) 최호崔浩17)라는 자가 있었는데, 불교를 믿지 않아 황제와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비방하였다. 황제는 그 말솜씨가 해박하므로 자못 그의 말을 믿고, 불교에 대한 마음이 차츰 엷어지게 되었다.
황제가 훗날 서쪽을 정벌하다가 장안에 이르러 절에 들어가 둘러보았는데, 사문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방에 들어가 보니 재물과 무기 그리고 관리나 부자들이 맡겨 놓은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
황제는 이에 화가 나서 곧바로 조서를 내려 “장안의 사문들을 죽이고 불상을 불태워 없애라.” 하고, 사방에 영을 내려 “장안에서 행한 대로 하되, 만일 사문을 숨겨 주는 이 있다면 그 가문 모두를 베어라.” 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옛날 한나라 이후로 믿음이 황폐해지고 삿되고 거짓된 것에 미혹되어 하늘의 도리(天常)를 어지럽히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바른 교법이 시행되지 않고, 예의가 크게 무너져 귀신의 도가 치성하고 왕의 법이 멸시됨을 보게 되었다. 이로부터 대를 이어 환란이 일어나고 천벌이 극에 달해 백성이 거의 다 죽고, 영토(五服18) ) 안이 차츰 빈터로 변하고, 천 리가 황량해져 사람의 자취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모두가 이 때문이로다.
짐이 천자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나 때마침 궁색한 운수를 만났으니, 거짓을 없애고 참됨을 결정하여 다시 복희와 신농의 정치(羲農之政)를 회복하고, 오랑캐 신을 쫓아내어 그 자취를 없애고자 한다. 오늘 이후로 오랑캐 신을 섬기는 자와 그 형상을 진흙이나 청동으로 만드는 자 있거든 그 가문까지 모두 목을 베리라.
모두 한대漢代의 유원진劉元眞과 여백강呂伯强의 무리가 걸식하는 오랑캐의 과장된 말을 받아들이고, 장자와 노자의 허황되고 거짓된 것을 가지고 덧붙이고 보태니, 모두 진실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왕의 법으로 폐지시켜 행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이르렀도다. 세상에는 비상한 사람이 있어 비상한 일을 행하는 것인데, 짐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듯 여러 대를 거쳐 온 거짓된 것들을 없앨 수 있겠는가. 모든 불상과 오랑캐의 경전은 모두 쳐부수거나 불태우고, 사문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묻어 버려라.”
이때가 진군眞君 7년 3월이었는데, 13년 2월에 이르러 황제는 문둥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북주北周의 무제武帝19)가 불교를 훼손하려 할 때 정애靜藹라는 사문이 있었는데, 나이와 덕이 높아 도속道俗의 귀의를 받고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이미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어찌 이렇듯 몰락하는 것을 보고서도, 이 몸뚱이 그대로 앉아서 태연히 스스로 고요함을 누리겠는가?” 말하며, 곧 표表를 올려 항의하였다. 황제는 비록 그 말을 납득하였지만, 마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므로 허락하지 않았다.
정애는 마침내 남산으로 들어가 돌 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願捨此身已 원컨대 이 몸을 버린 뒤에
速令身自在 속히 몸이 자유롭게 되어
隨有利益處 이익됨이 있는 곳마다
護法救衆生【云云】 법을 지키며 중생을 구제하게 하소서. …….
스스로 자신의 살을 베어 돌 위에 늘어놓고 창자를 꺼내 나무에 건 뒤 심장을 움켜쥔 채 죽고 말았다.
의주宜州의 사문 도적道積이라는 자는 뒤이어 나아가 간언하였으나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동지 7인과 함께 미륵상 앞에 나아가 먹지 않고 예참하기를 7일간 마치더니, 일시에 다 함께 죽고 말았다.
제齊 승광承光 1년 춘분에 황제가 사문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짐은 천명을 받들어 온 천하(一區宇)를 편안하게 하였다. 세상에 삼교三敎가 널리 퍼져 있어 이제 다 함께 폐지하려 한다. 그러나 유교는 정치하는 방법과 예의와 충효를 글로써 널리 펴므로 세상에 이익이 있으니,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어 멀리서 공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면 되는데, 불교 경전에서는 부도와 탑을 세우는 것을 널리 찬탄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게 고치거나 새로 지으면 지극히 많은 복덕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들은 실로 무정물이거늘, 어떻게 은혜를 베풀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무조건 믿어서 진귀한 재물을 바쳐 헛되이 낭비하므로 없애 버려야 마땅할 것이다. 무릇 경전과 불상은 모두 없애 버려라. 부모의 은혜가 막중한데 사문들은 공경하지 않고 도리에 어긋남이 매우 심하다. 아울러 집으로 돌려보내 효도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숭상하게 하라. 짐의 뜻이 이와 같은데 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
이때 사문 상통上統 등 5백여 명이 서로 돌아보며 낯빛을 잃고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는데, 혜원慧遠20) 법사가 마침내 나서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하신 것은 진실로 천자의 뜻과 같습니다. 다만 귀와 눈에 의존하는 중생들은 경에 의지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불상에 의지하여 참된 모습을 나타냅니다. 지금 그것을 폐하신다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킬 방법이 없사옵니다.”
황제가 대답하였다.
“허공이 참된 부처라는 것을 모두 스스로 알고 있으니, 경이나 불상을 빌릴 필요가 없느니라.”
혜원이 말하였다.
“한 명제 이전 경전과 불상이 이 땅에 오기 전에는 중생들이 어찌하여 허공이 참된 부처임을 알지 못했습니까. 만일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법을 알 수 있다면, 삼황三皇21) 이전 아직 문자가 있지 않았을 때에도 사람들은 오상五常22) 등의 법을 알고 있었을 터인데, 당시 사람들은 어찌 어미만 알고 아비는 모르는 새나 짐승과 같았습니까?”
황제가 대답을 못하자 혜원이 다시 말하였다.
“만일 형상이 없는 무정물이어서 복을 주는 일이 없다고 하신다면, 국가의 칠묘七廟에 모신 형상은 어찌 유정물이기에 허망하게 형상을 섬기시는 것입니까?”
황제는 이 비난에 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불교의 경전은 외국의 가르침이라 이 땅에는 필요하지 않으니 없애려는 것일 뿐이다. 칠묘는 윗대에서 세운 것이지만, 짐 또한 옳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장차 함께 없애려 한다.”
혜원이 말하였다.
“만일 외국의 가르침이어서 이 땅에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자(仲尼)의 말씀은 노魯나라에서 나왔으니, 진秦이나 진晋의 땅에서는 또한 행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칠묘가 그르다 하여 장차 없애고자 한다면, 이는 조상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상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소목昭穆23)의 질서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곧 오경五經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전에 유교는 남겨 두겠다는 그 말씀은 어디로 갔습니까? 만일 삼교三敎를 함께 없애신다면 장차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려 하십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노魯나 진秦이나 진晋은 봉토가 다르지만 왕이 동일하게 교화하지 않음이 없으니, 불경에 대한 비난과는 유사하지 않다.”
혜원이 말하였다.
“진秦이나 진晋이 동일한 왕의 교화를 함께 받든다 하여 경전과 가르침이 통용될 수 있다면, 진단과 천축은 국경이 비록 다르지만 모두 염부제 사해四海 안에 있으면서 전륜왕의 동일한 교화를 받지 않음이 없거늘, 어찌하여 불경은 동일하게 받들지 않고 유독 없애시려 하십니까?”
황제가 또 대답을 못하자 혜원이 말하였다.
“승가에서 물러나 속가에 돌아가 효도하고 봉양함을 숭상해야 한다고 하신 것은, 공자의 경전에도 ‘출세하고 도를 행하여 부모의 명예를 드날려야 곧 이것이 효도이다’ 하였거늘, 어찌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부모의 은혜는 막중하여 물자를 바치며 부드러운 안색으로 봉양해야 하거늘, 가까이해야 할 것을 버리고 멀리해야 할 것을 향하니, 지극한 효도가 되지 못한다.”
혜원이 말하였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뜻과 같다면, 폐하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도 모두 양친이 있거늘 어찌하여 놓아주지 않고 5년씩이나 오래도록 사역을 시키며 부모를 만나지 못하게 하십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짐도 상하의 순번대로 돌아가 봉양케 하느니라.”
혜원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승려들에게 겨울이나 여름에는 인연 따라 도를 닦다가 봄이나 가을에는 집으로 돌아가 봉양케 하셨습니다.
목건련은 걸식하여 어머니를 봉양24)하였고, 여래께서는 관을 메고 장례에 임하셨으니,25) 이러한 이치는 모두에 통하는 것으로 유독 불교만을 없앨 수 없사옵니다.”
황제가 대답을 못하자, 혜원은 항의하며 소리 높여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지금 세력을 믿고 마음대로 삼보를 파괴하시니, 이는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입니다.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황제가 발끈하여 낯빛을 바꾸고 혜원을 쏘아보며 말하였다.
“백성들을 안락하게 할 수만 있다면, 짐은 지옥의 고통도 사양하지 않겠다.”
혜원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삿된 법으로 사람들을 교화하여 현세에 고통의 업을 심게 한다면, 장차 폐하와 함께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니 무슨 안락이 있겠습니까?”
황제는 또한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승려들은 우선 돌아가라 하였다.
이때 모든 사원(寺廟)을 헐어 왕공王公에게 주어 저택을 삼게 하고, 승려 3백만 명을 환속시켜 모두 군역을 지닌 백성으로 복귀시키고 호적에 편입하도록 돌려보냈다. 불상은 녹이고 잘라내고, 경전은 불사르고 삼보의 재물은 기록하여 궁전에 들여보냈다. 황제는 한 달이 차기 전에 염병의 기운이 속에서 끓어 운양궁雲陽宮에 은거하다가 곧 사망하였다.
당唐 『명보기冥報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원황제天元皇帝26)가 즉위하여 천하의 환속한 승려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깎되 수염은 남겨라’ 영을 내리고, ‘전에 왕공에게 주었던 사찰들은 모두 환수하여 절을 만들어 사문들에게 주어 머물게 하라’, ‘궁으로 들어온 삼보의 재물은 불상을 조성하여 각각 안치하되, 하나같이 모두 예전처럼 하라’ 명하였다. 이로 인하여 큰 가르침이 다시 세상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당唐 『명보기』에서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隋 개황開皇 8년 경조京兆27) 두기杜祈가 죽은 지 3일 만에 살아나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염라대왕을 보았는데, 염라대왕이 ‘그대의 아버지는 어떤 관직을 지냈는가?’ 하기에, ‘신의 아비는 주나라 조정의 사명상사司命上士를 지냈습니다’라고 하였다. 염라대왕이 ‘그렇다면 너를 잘못 데려왔으니 속히 돌려보내리라’ 하였다. 그리고는 ‘그대는 주나라 무제를 아는가?’라고 물었다. ‘매우 잘 압니다’ 하였더니, 염라대왕이 ‘가서 그를 보아라’라고 하였다. 어떤 관리가 한 곳으로 인도하니, 문과 창과 서까래와 기와가 모두 무쇠로 되어 있었고, 철창 안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야위어 몸은 무쇠 빛이며 무쇠 칼을 쓰고 있었다.
두기가 보고는 울면서 ‘어르신께서는 어찌 이 같은 고통을 당하십니까’하니, ‘나는 위원숭衛元崇28)의 말을 믿고 불교를 훼손하여 이 같은 고통을 받고 있소’ 하였다. 두기가 ‘어르신께서는 어찌하여 위원숭의 일을 진술하여 잡아오게 하지 않으십니까’ 말하니, ‘나도 곧 진술하였으나, 저승사자가 찾아 삼계를 다 뒤져도 볼 수 없다고 하네. 만일 그가 아침에 온다면 나는 저녁에 풀려날 수 있을 텐데’라고 하였다.
곧이어 ‘대수大隋의 천자29)는 옛날에 나와 무관(倉庫)의 밥을 함께 먹었고, 문관(玉帛)일 때에도 내가 부관이었으니, 그대가 지금 돌아가거든 이 사실을 천자에게 들려주어 나를 위해 큰 공덕을 지어 구제해 달라 청하게. 또한 위원숭에게는 복을 짓도록 속히 와서 구제해 달라 하게. 그가 오지 않으면 벗어날 기약이 없다네’라고 하였다. 두기가 환생하여 모든 것을 아뢰자, 문제文帝가 듣고는 천하 사람들에게 영을 내려 한 푼씩 내어 그의 명복을 비는 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당唐 무종武宗30)의 이름은 염炎이다. 회창會昌 5년(845) 조귀진趙歸眞과 유원정劉元正 등의 말을 따라 막대한 훼불을 단행하였다. 천하에 있는 사원을 없애라는 영을 내렸다.
“상주上州에 각각 한 곳만 남기고, 상도上都·하도下都 거리마다 절을 두 곳씩 남기고, 각각 승려 30명만 남겨라. 천하에 폐지된 사원의 구리로 된 불상은 염철사鹽鐵使31)에게 맡겨 돈을 주조하게 하고, 철로 된 불상은 주조하여 농기구를 만들고, 금이나 은으로 된 불상은 녹여서 탁지부度支部32)에 맡기도록 하여라. 귀족이나 서민들이 가지고 있는 금이나 은으로 된 불상은 영을 내린 뒤 한 달을 기한으로 한다. 만일 어기는 자가 있으면 금고법禁錮法에 따라 처분하리라.”
그때 천하에서 훼손된 큰 사찰이 4천6백여 곳이며, 아란야가 4만여 곳, 퇴속한 승니가 속인이 된 사람이 26만 5백여 명이었다. 회창 6년 3월에 이르러 황제는 어떤 병을 얻어 기뻐하다 성내다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병이 더욱 심해지자 10여 일 동안 말문이 막혀 대신들이 뵙기를 청하여도 허락하지 않으니, 나라 안팎에서 그의 안부를 알 수 없었다. 그 달 23일에 죽으니, 그해 나이 33세이었다.
선종宣宗은 즉위하여 연호를 대중大中이라 고치고, “훼손된 사원에 덕 있는 대덕이나 이름난 승려가 있거든 다시 복구하고 수리하여 머물게 하라.” 영을 내리고, 마침내 도사 유현정 등 열두 명의 목을 베니, 이로 인해 삿된 바람이 홀연히 멈추고 부처님(佛日)이 다시 빛을 내어 어리석은 백성들의 의지할 바가 되었고, 황제의 덕이 더욱 높아졌다.
후주後周의 세종世宗33) 영榮은 현덕顯德 2년 을묘년(955)에 명령을 내려, “천하의 사원 가운데 사액賜額을 받지 않은 곳은 모두 헐어 버려라.” 하니, 모두 3만 336곳의 사원에서 불상을 헐어 돈을 주조하고, 비구 4만 2440명, 비구니 8,756명을 환속시켰다. 황제는 오래지 않아 범상치 않게 세상을 떠났다.
북위의 태무제·당의 무종·후주의 세종은 불교를 없애 버리고 나서 곧 범상치 않은 병을 얻어 천수를 기다리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행적이 전기에 나타나 있지만, 후세에 벌을 받았다는 글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나라 무제의 예를 보면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오역죄를 지으면, 목숨을 마칠 때 마치 창이 손을 떠나가듯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천만억 겁 동안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무엇이 오역죄인가? 첫째는 부처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정법을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요, 셋째는 탑과 절을 파괴하는 것이요, 넷째는 아사리阿闍梨를 죽이는 것이요, 다섯째는 화합 승단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단 하나라도 범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 말을 믿는다면, 저 어리석은 왕들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악한 마음으로 절과 탑을 파괴하고 불상을 녹이고 잘라내며 경전을 불사르고 사문들을 파묻고 승니를 퇴속시켜 속인이 되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오역죄를 모두 짓고도 목숨이 다한 후 아비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이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슬프고 슬픈 일이로다.
그리고 신하와 관료들도 불법을 훼손하고 비방하여 현세에 재앙을 부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천태지관론보주』34)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용하여 말한다.
“북주北周의 재상 위원숭은 불교를 없애려고 천화天和 2년에 표表를 올려 말하기를, ‘당唐과 우虞의 시절35)에는 불교가 없었어도 나라가 편안하였고, 제齊와 양梁 때에는 절이 있었어도 왕조가 끊겼습니다. 다만 나라와 백성에 이익이 된다면, 그대로 불심佛心이라 할 만합니다. 부처란 대자비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결코 백성들을 고생스럽게 부역하여 흙이나 나무토막에 공경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컨대 평영대사平迎大寺를 지어 사해의 만백성을 수용할지언정 잘못된 소견으로 가람을 세우고, 이승의 5부 경전(二乘五典)36)만 봉안하는 일을 권장하지 마옵소서. 평영대사란 도속道俗을 묻지 않고 원친寃親을 가리지 않으며, 성황城隍으로 탑사를 삼으니, 주나라 황제가 곧 여래인 것입니다. 성곽과 도읍으로 승방을 삼고, 평범한 부부로 성중聖衆을 삼고, 덕 있는 자를 추대하여 삼강三綱37)을 삼고, 나이 많은 이를 상좌上座로 모시고, 어질고 지혜로운 이를 찾아 집사執事를 충당하고, 용기와 지략 있는 자를 구하여 법사法師를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육합六合에 원망하는 소리가 없고 팔방八方에 북주北周를 영탄하는 노래가 있을 것이며, 날벌레 길짐승까지도 보금자리에서 편안할 것이며, 물짐승 땅 짐승까지 장생을 누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이 모두 15가지 일을 상소하였는데, 이후에 몸에 악창이 생겨 마침내 사망하였다.”
『명보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혁傅奕38)이 무덕武德 초기부터 정관貞觀 14년까지 항상 부처님과 승가를 헐뜯고 배척하더니, 그해 가을 갑자기 죽어 월주越州의 지옥에 들어갔고, 사도 최호崔浩는 북위北魏 무제武帝를 도와 불교를 훼손하고 없애다가 마침내 오형五刑의 죄를 다하니, 죽어서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졌다.”39)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동진東晋 태원太元 19년 도안道安40) 법사가 양양襄陽 서도西都에서 1장 8척이나 되는 무량수불상 한 구軀를 조성하였는데, 자못 영험한 일이 있었다. 주 무제가 불법을 없애려 할 때, 양주의 진장鎭將 손철孫哲이 뜻으로 불법을 믿지 않아 먼저 이 금 불상을 훼손하려고 하니, 도읍 안 남녀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거리에 넘쳐났다. 손철은 슬퍼하는 도속을 보자 화가 더욱 치밀어 시종들을 다그쳐 속히 부숴 버리게 하였다. 먼저 1백 명에게 밧줄로 불상의 머리를 묶어 잡아당기게 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며, 감독하는 이를 곤장을 쳤다. 다시 1백 명을 더하여 끌게 하였으나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3백 명을 더하였으나 움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5백 명을 더하여 끌어당기니 마침내 넘어졌다. 그 소리가 땅에 진동하여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유독 손철만이 뛸 듯이 기뻐하며 곧 녹여 없애라고 명하고, ‘통쾌하다’소리 높여 외쳤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겨우 1백 걸음을 가자마자 홀연히 말에서 떨어져 말문을 잃고 앞만 쳐다보며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다가 밤이 되어 곧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41)
이부시랑吏部侍郞 한유韓愈42)는 「간불골소諫佛骨䟽」에서 “부처에게 영험이 있어 화와 복을 이룰 수 있다면 무릇 재앙의 허물은 마땅히 신의 몸에 내려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진언을 듣고 왕이 매우 노하여 죽이고자 하니, 급사중給事中 최식崔植과 여러 간관諫官들이 모두 상소하여 구제하기를 청하였고, 자신 또한 뉘우쳐 죄를 빌었다. 왕이 관용을 베풀어 죽음을 면하게 하고 멀리 조주潮州로 쫓아 버렸다. 이와 같은 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155]
法住於世間 불법이 세상에 머문 것이
一萬二千年 1만 2천 년이니
正像各千歲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이 각각 1천 년
末法一萬年 말법末法은 1만 년이라.
[156]
中分五牢固 그중에 오뇌고五牢固로 나뉘어
各歷五百年 제각기 5백 년을 지날 때마다
機根漸變移 근기가 점점 달라지고
法亦隨減滅 법도 차츰 줄어들어 사라진다네.
[157]
第一解脫牢 첫째는 해탈뇌고解脫牢固이니
此時人根利 이때 사람들은 근기가 예리하여
會正取道易 바른 법을 만나 도를 얻기 쉬워
與佛世無異 부처님 세상과 다를 것이 없네.
[158]
二名禪定牢 둘째는 선정뇌고禪定牢固이니
人根稍微劣 사람들 근기가 조금 낮아져
久久習禪那 오래도록 선정을 닦아야
乃得三達智 마침내 삼달지三達智43)를 얻네.
[159]
三曰多聞牢 셋째는 다문뇌고多聞牢固이니
情識漸愚鈍 사람들 근기가 점차 우둔해져
雖得多聞法 비록 불법을 많이 듣더라도
慧擇未能明 지혜로 결택함이 분명하지 않네.
[160]
四稱塔寺牢 넷째는 탑사뇌고塔寺牢固이니
人爭起佛廟 사람들이 다투어 불탑을 세우고
處處設道場 곳곳에 도량을 세우지만
修證者萬一 닦아서 증득하는 이는 만에 하나라네.
[161]
五爲鬪諍牢 다섯째 투쟁뇌고鬪爭牢固이니
但諍論諸法 모든 법에 대해 논쟁만 할 뿐
未了深密義 깊고 오묘한 이치 알지 못해
憍己愌他宗 자기만 높이고 남의 주장은 업신여기네.
도선道宣 율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맨 처음 1천 년을 정법시대正法時代라 하는 것은, 정법을 만나 성인의 지위를 이루되, 근기와 깨달음이 부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1천 년을 상법시대像法時代라 하는 것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익히되, 사람들이 점차 둔해져서 진리를 만나도 지위에 올라서지 못하고, 청정함을 거두어 주지住持하여도 성스러운 진리와 조금만 통할 뿐이다. 지혜로 결택함에 있어서도 깊게 닦아 분명하지 못해 바른 도道와 유사할 뿐이므로 상법시대라 한다.
세 번째 천년 이후를 말법시대末法時代라 하는 것은, 처음부터 1만 년까지 선정과 지혜의 도를 떠나 다만 세속의 계율만 펴고자 하며 위의만 거두어 지켜 모습은 선객 같아도 마음 씀이 들뜨고 산란하여 정수正受44)에 완전히 어긋난다. 때문에 말법시대라 한다.”
『선견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법시대가 천년, 상법시대 또한 천년인데, 여인을 출가시켰기 때문에 정법이 5백 년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인이 팔경법八敬法을 지켜 여법如法하게 도를 행하면,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다시 천년이 될 수 있다. 불법이 세상에 머문 지 1만 년인데, 처음 5천 년에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삼달영지三達靈智45)를 얻지만, 이후 5천 년 뒤에는 출가하여 도를 닦아도 삼달영지를 얻지 못한다. …….”46)
비구니가 행해야 할 팔경법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비구가 대계大戒를 받았다면, 비구니는 그에게 정법을 받되, 가벼이 여기거나 잘난 체하거나 장난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비구가 대계를 받은 지 반달이 지났다면, 비구니는 그에게 절을 하고 섬겨서 새로 발심한 뜻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셋째, 비구와 비구니는 한 곳에 함께 살거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넷째, 서로 점검하여 살펴 주면서 만약 삿된 말이 있으면 받기는 하되 답하지 말아야 한다. 들어도 듣지 않은 듯이, 보아도 보지 않은 듯이 해야 한다.
다섯째, 허물과 잘못을 스스로 살펴서 소리 높여 큰 소리로 말하거나 욕심내는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비구에게 경과 율에 관한 것만을 묻되, 세간일 등 다급하지 않은 것을 함께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불법의 율을 어겼거든 보름에 대중에게 나아가 참회해야 한다.
여덟째, 비구니는 백 년 동안 대계를 지녔더라도, 새로 대계를 받은 비구의 아랫자리에 앉아서 겸손히 공경하고 예를 올려야 한다.
만약 비구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러한 팔경법을 지킨다면,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다시 천년이 될 수 있다.
[162]
最後五百年 마지막 5백 년에도
亦有修證者 닦아서 증득할 이 있지만
自後至萬年 이후부터 만년까지는
多修無一得 닦는 이 많아도 증득할 이 하나 없네.
『법화경法華經』에서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멸도하신 이후 마지막 5백 세인 오탁악세五濁惡世 가운데 만일 사부대중47)이 있어 이 『법화경』을 닦아 익히고자 삼칠일 동안 일심으로 정진하여 삼칠일을 채운다면, 저는 여섯 상아의 흰 코끼리상을 타고 한량없는 보살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 설법을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봄으로써 곧 삼매와 다라니를 얻을 것이니, 그 이름을 선다라니旋陀羅尼, 백천만억선다라니百千萬億旋陀羅尼라 합니다. …….”48)
이것으로 보아 마지막 5백 년에도 닦아 증득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5백 년은 곧 말법시대의 처음을 말한다.
『묘승정경妙勝定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뜨신 이후 1백 년 동안 10만 명이 출가하여 9만 명이 득도하였고, 2백 년 동안에는 10만 명이 출가하여 1만 명이 득도하였고, 나아가 5백 년 동안에는 10만 명이 출가하여 한 사람만이 득도한다. …….”
또 『월장경月藏經』49)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말법시대에는 수억의 중생이 수행하여 도를 닦아도 단 한 사람도 증득하지 못할 것이다. …….”
이것으로 보건대 말법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수행한다 하더라도 현전에서 증득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다만 미래의 인연을 심을 뿐이다.
[163]
此時所生人 이때 태어나는 사람은
福薄障濃厚 복은 얇고 장애는 두터워서
多行不善事 선하지 않은 일을 많이 하므로
死當墮惡道 죽어서는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리라.
[164]
雖是依敎人 비록 가르침에 의지하는 사람이라도
其心貪利養 그 마음은 이양利養을 탐하여
曾無一念信 단 한 번의 신심도 낸 적 없는데
法豈染其神 법이 어찌 그 마음을 물들여 주랴.
[165]
譬如師子蟲 비유하면 사자 몸에 생긴 벌레가
乃自食其肉 저절로 그 살을 먹는 것과 같나니
法中人亦尒 불법佛法 안의 사람도 그러하여
依之還自破 불법에 의지하면서 도리어 스스로 파괴하네.
『칠몽경七夢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자가 죽고 며칠이 지나도 뭇 짐승이 살아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여 모두 감히 접근하지 못하다가 여러 날 후에 사자 몸에서 저절로 생긴 벌레가 사자의 살덩이를 모두 먹어 치운다.”50)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자 외도가 돌아와 조복하는 것은, 마치 사자가 두려움 없이 돌아다닐 때 뭇 짐승이 숨어 버리는 것과 같다. 여래께서 멸도하신 이후 남겨진 교법은 마치 사자가 죽은 뒤의 몸과 같다. 여러 날 동안 뭇 짐승이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부처님의 정법이 1천7백 년 동안 외도와 천마天魔가 감히 훼손하거나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며칠 뒤 사자의 몸에서 생겨난 벌레가 사자의 살덩이를 스스로 모두 먹어 치우는 것은, 마치 부처님 멸도 이후 1천7백 년 뒤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파계하고 악행을 저질러 스스로 부처님 가르침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166]
又有天魔王 또 어떤 천마왕天魔王은
作佛弟子形 불제자의 모습을 하고
現怪而惑衆 기이함을 나타내 중생을 미혹시키며
毁佛讃魔法 불법을 훼손하고 마법魔法을 찬양하네.
[167]
佛法迸其心 불법은 그의 마음에 거슬리므로
弃之如脫屣 헌신짝 버리듯 던져 버리고
魔法順於情 마법은 마음에 들기 때문에
從之如渴飮 목마른 자 물 마시듯 쫓아다니네.
『능엄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들 열 종류의 마구니는 말법시대에 우리들 법 가운데 있으면서 출가하고 수도하여 스스로 ‘정변지각正遍知覺을 이루었다’ 말하면서 음욕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율의를 깨뜨리리라.”51)
또 『열반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세에 마구니의 권속은 비구와 아라한 등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정법을 어지럽히며 파괴하고, 계율을 비방하고 훼손하리라.”
[168]
佛滅七千年 부처님 멸도하시고 7천 년 뒤에는
人壽止三十 사람 수명이 30세에 그치고
從玆到十歲 이로부터 10세에 이르기까지
三灾次第起 세 가지 재난이 차례로 일어나리라.
[169]
飢劫諸糓滅 기근겁(飢劫)에는 모든 곡식이 사라지니
何處得精味 어디에서 좋은 음식 얻으리오.
人唯煎骨飮 사람들이 오직 뼈만 삶아 마시니
飢羸多滅亡 주리고 지쳐 죽는 이 많으리라.
[170]
病劫非人盛 질병겁(病劫)에는 사람 아닌 것(非人)52)이 치성하여
吐毒如猛燄 사나운 불꽃처럼 독을 토해내니
遇者即殞命 쏘이는 자 곧 수명을 다하여
屍遍一天下 주검이 온 천하에 두루하리라.
[171]
刀劫人多恚 전쟁 겁(刀劫)에는 사람들 성냄이 많아
隨執皆成刃 잡는 대로 모두 무기가 되리니
父子互相殘 부자간에도 서로 해쳐
人民皆略盡 백성들 모두가 거의 다 사라지리라.
『유가론瑜伽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수명이 30세일 때 기근의 재앙(飢儉災)이 있다. 이때에는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행하여 천룡天龍이 분노하고 꾸짖어 단비를 내리지 않아서 좋은 음식을 다시는 얻을 수 없다. 오직 썩은 뼈를 삶아서 함께 잔치하듯 먹는다. 한 톨의 벼나 보리, 조나 피를 얻으면 마니주와 같이 소중히 여겨 굳게 감추고 수호한다. 그 중생들은 대부분 기력이 없어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 버려서 인종이 사라질 지경이다. 이러한 기근의 재앙은 7년 7월 7일 밤낮을 지나서야 멈추게 된다.
인간의 수명이 20세일 때 질병의 재앙(疾疫災)이 있다. 이때에는 백성이 선하지 않은 일을 많이 행하여 모두 죄를 짓기 때문에 사람 아닌 것(非人)이 독을 토해 질병이 유행한다. 걸리기만 하면 목숨을 잃어 치료하기 어렵다. 누구도 의원이나 약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죽어 버려 인종이 거의 사라질 지경이다. 이러한 질병의 재앙은 7월 7일 밤낮을 지나서야 멈추게 된다.
인간의 수명이 10세일 때 전쟁의 재앙(刀兵災)이 있다. 이때에는 중생들이 업력 때문에 부모형제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제각기 맹렬하게 죽이려는 마음을 일으켜 풀이나 나무, 기와나 돌 잡는 대로 모두 무기가 되어 서로 해친다. 이와 같은 전쟁의 재앙은 7일 밤낮을 지나서야 멈추게 된다. 재앙이 없어지고 난 뒤 이 염부제에는 1만여 명이 남을 뿐이다. …….”53)
『바사론婆娑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루 낮 하루 밤이라도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니면 전쟁의 재앙을 만나지 않고, 한 알의 아리륵과阿梨勒果54)라도 스님들께 보시하면 질병의 재앙을 만나지 않고, 한 덩어리 밥이라도 중생에게 보시하면 기근의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55)
석존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인간 수명 1백 세에 해당하는데, 입멸하신 뒤로 대원大元 천력天曆 무진년(1328)까지는 2,277년이니, 다시 4,723년을 지나면 인간 수명이 30세에 그치게 된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1백 년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줄어 1천 년이 지나면 10세가 줄기 때문이다.
[172]
經像雖存世 경전과 불상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無一崇奉者 누구 한 사람 우러러 받드는 이 없고
比丘行俗行 비구는 속인의 짓만 행하니
聖賢亦不興 성현 또한 나타나지 않네.
[173]
爾時像自頹 그때 불상이 스스로 무너지고
經盡歸龍宮 경전은 모두 용궁으로 돌아가리니
唯有彌陀法 다만 아미타불의 교법만이
百年留世間 백 년 동안 세상에 머무르리라.
[174]
噵諸有緣衆 모든 인연 있는 대중을 인도하여
盡生極樂國 모두 극락국에 왕생케 하리니
是知彌陀佛 이는 아미타불의 비원悲願이
悲願最深切 가장 깊고 간절하기 때문임을 알라.
정법과 상법의 시대에는 사람들 마음이 순수하고 소박하여 많은 성현이 범부의 모습을 하고 화광동진和光同塵56)하여 법을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한다. 말법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사람들은 의심하고 아첨하는 이 많고 바른 법을 등지고 삿된 법을 쫓아서 교화 받을 이가 없다는 것은 성현들이 숨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사론』에서는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지 1만 년 뒤에 불상이 스스로 무너지고 경전은 용궁으로 돌아가니, 모든 비구 대중은 세속의 무리와 같고, 다만 가사 입고 머리를 깎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무량수경』에서는 “말세에 불법이 사라져 용궁으로 들어가지만, 특별히 이 경전만은 남아 1백 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을 인도하여 저 극락국에 왕생케 한다.”라고 하였다.
이상으로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강을 간략히 보여 주었다. 이하에서는 권하고 경계하는 뜻을 거칠게나마 서술하겠다.
[175]
咄我等衆生 슬프다. 우리 중생은
無始業障濃 무시이래로 업장이 두터워서
晚生濁惡世 뒤늦게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니
聞法不生信 법을 듣고도 신심을 내지 않네.
[176]
雖然亦可快 그럼에도 기뻐할 것이 있으니
幸及未墜時 다행히 부처님 법이 쓰러지기 전
人身固難得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作男子亦難 남자로 태어나기도 어려우며
[177]
出家最甚難 출가하기 가장 어렵고
聞法難復難 법문 듣기 어렵고 또 어려운데
如今獲四難 지금처럼 네 가지 어려운 것 다 얻었으니
此誠非小緣 이는 진실로 작은 인연이 아니로다.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다’라는 것은, 경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바늘을 잃고서 그 바늘을 찾아도 찾지 못하더니, 나중에 다시 배를 타고 가다가 문득 그 바늘을 찾았다고 하자.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은 이보다 더한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다’라는 것은, 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 남자 몸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석가세존께서 보살도를 행하실 때에 7만 5천 부처님을 만나 항상 범행梵行을 닦고서야 여자 몸을 벗어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선묘善妙 비구니는 여자 몸을 벗어나기 위하여 27생 동안 매번 그 몸을 버려 중생에게 보시하고, 나아가 삼보에 공양하여 마지막 생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여자 몸을 버리지 못하고서 초과初果를 증득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어찌 의심할 일이겠는가?
‘출가하기 어렵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중생이 여러 겁 동안 육도를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은, 진실로 무시이래로 탐욕과 애착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탐욕과 애착의 근본은 바로 처자식이니, 만일 처자식이 없다면 번뇌가 곧 없어져서 세속을 벗어나기 쉬울 것이다. 옛날 제齊나라 왕 고씨高氏는 숯을 지고 가는 병사들을 보았는데, 형색이 초췌하였으므로 그 고통을 가엾이 여겨 출가를 권하였지만, 한 사람만이 기꺼이 떠나갔다. 제나라 왕은 “사람들은 모두가 사랑하는 권속이 있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탄식하였다. 더구나 일찍 출가한 이도 오히려 환속하여 세속의 일을 하는 이가 많으니, 출가하기 어렵다는 이치를 알 만하다.
‘법문 듣기 어렵다’라는 것은, 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면 애꾸눈 거북이 바다 밑에 잠겨 있다가 1백 년이 지나 물 위로 떠올라 떠 있는 나무를 뜻대로 만나 그 과보를 바꾸고자 하는 것과 같다. 나무가 서쪽에 떠 있는데 거북이 동쪽에서 나오거나, 남쪽에 떠 있는데 북쪽에서 나온다.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면 다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또 1백 년을 지나야 바다에 나온다. 이처럼 반복하다가 무수한 겁이 지난다. 불법佛法 듣기 어려움은 그것보다 곱절 이상 어렵다.”
아! 위에서 인용한 네 가지 어려움은 어려움 중의 어려움인데, 우리들은 이미 그것을 면하여 석문釋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실로 천만다행한 일이다. 마땅히 제각기 용맹심을 발휘하여 부낭浮囊을 잘 보호하고 큰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에 오르라. 보배 동산에 빈손으로 오가는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178]
勸諸新學輩 새로 배우는 모든 이에게 권하노니
應生忻慶心 기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라.
又念無常身 그리고 무상無常한 이 몸은
猶如石火光 부싯돌의 빛과 같다고 생각하라.
[179]
井枯魚少水 우물이 마르니 물고기 마실 물이 줄고
象逼鼠侵藤 코끼리가 뒤쫓고 쥐는 칡덩굴을 갉아
念念命隨減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들거늘
嚊吸安容保 이 목숨을 어찌 보전하리오.
[180]
時時愼三業 그때그때 삼업三業을 삼가고
莫與惡相交 악한 이와 서로 사귀지 말라.
歸依三寶戒 삼보에 귀의하고
五戒與八戒 오계와 팔계
[181]
十重六八輕 10중대계와 48경계
乃至八萬戒 나아가 8만 계에 귀의하라.
雖未具堅持 비록 모두 지키지 못하더라도
但可日誦念 날마다 염송만 해도 좋으리.
『출요경出曜經』에서는 “이날이 지나면 목숨이 줄어드는 것이, 마치 마실 물이 줄어드는 물고기와 같다. 이것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57)하였다. 우물은 사람 몸을, 물은 세월을, 물고기는 사람 목숨을, 마르고 줄어드는 것은 무상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빈두로위우타연왕설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광야를 지나가다가 매우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자 미칠 듯이 무서웠지만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한 언덕에 우물이 있는 것을 보고서 곧 나무뿌리를 찾아 우물로 숨어 들어가니, 위에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어금니로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 우물 네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 사람을 물려 하고, 이 우물 바닥에는 세 마리 독룡이 있었습니다. 옆으로는 네 마리 뱀이 두렵고, 밑으로는 세 마리 용이 무서운데, 매달려 있는 나무는 그 뿌리마저 흔들리고, 그 위로 꿀 두세 방울이 그의 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나무가 흔들려서 벌집을 건드려 벌떼들이 날아와 그 사람을 쏘아대고, 광야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워 오고 있었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사람의 괴로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가 얻은 맛은 매우 적고, 고통과 근심은 매우 많습니다. 광야는 생사를, 사람은 범부를, 코끼리는 죽음(無常)을,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뿌리는 사람 목숨을,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는 낮과 밤을, 나무뿌리를 갉아먹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것을, 네 마리 뱀은 사대四大를, 꿀은 오욕락五欲樂을, 벌은 나쁜 지식(惡覺)을, 불은 늙음을, 세 마리 용은 삼악도三惡道를 비유합니다.”58)
‘삼업’이란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업을 말한다. 모든 죄와 선은 삼업으로 짓지 않는 것이 없다. 말하자면 신업이란 살생·도둑질·간음이며, 구업이란 거짓말·속이는 말·이간질하는 말·험한 말이며, 의업이란 탐냄·성냄·어리석음이다. 삼업을 멋대로 하면 10악이 되고, 삼업을 삼가면 10선이 된다. 10악은 삼악도의 괴로운 과보를 받고, 10선은 인간 세계와 천상 세계의 즐거운 과보를 받으니, 세간을 벗어나 성불하는 원인이 된다.
‘삼보에 귀의한다’라는 것은, 시방 삼세 모든 곳에 상주하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다. 삼보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동체삼보同體三寶·별체삼보別體三寶·주지삼보住持三寶 등을 말한다.
동체삼보란 하나의 진여眞如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한 것이다. 첫째 진여는 깨달음의 본성이니 불보佛寶라 하며, 둘째 진여에는 궤범과 주지(軌持59) )의 뜻이 있으니 법보法寶라 하며, 셋째 진여에는 화합의 뜻이 있으니 승보僧寶라 한다.
별체삼보란 소승에서는 1장 6척의 부처님의 몸을 불보라 하며, 사제四諦·12인연十二因緣·생공生空60)을 법보라 하며, 사과四果61)·연각緣覺을 승보라 한다.
대승에서는 법신·보신·화신 삼신三身의 여래를 불보라 하며, 아我와 법法 두 가지 공空의 가르침을 법보라 하며, 삼현三賢·10성十聖을 승보라 한다.
주지삼보란 금이나 나무에 새기거나 그린 부처님이 불보이며, 삼장의 문구가 법보이며, 삭발하고 물들인 옷을 입은 스님들이 승보이다.
그러나 그 근본은 하나이니, 범부가 발심하여 귀의한다면 별체삼보 같은 것은 없다. 왜 그러한가? 불보에 귀의할 때에는 법신·보신·응신의 삼신이 한 몸으로 차별이 없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아서 자식들의 모든 고통을 없애 주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법보에 귀의할 때에는 경·율·논 삼장이 대승과 소승의 차별이 없고, 좋고 훌륭한 약이어서 중생의 세 가지 미혹의 병을 치료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게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승보에 귀의할 때에는 성인·현인·범부의 세 가지 부류의 높고 낮음에 차별이 없고, 큰 복전이어서 중생들의 빈궁과 고통을 없애 주고 온갖 복락을 주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성인·현인·범부란, 대승에서는 등각等覺부터 초지初地까지를 ‘성인’이라 하고, 10회향十回向·10행十行·10주十住를 ‘현인’이라 하고, 10신十信·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62)를 ‘범부’라 한다. 소승에서는 벽지불壁支佛·사과四果를 성인이라 하고, 칠방편위七方便位63)를 현인 또는 범부라 한다.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보는 귀의해야 할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제하고 보호해 준다는 의미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어 다른 나라에 투항하여 구호받기를 청하였더니, 다른 나라 왕이 ‘그대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라. 우리 국경을 벗어나지 않고 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대를 구호하리라’ 하는 것과 같다. 진실한 마음으로 삼보를 섬겨 다른 것을 향하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면 마왕의 사악함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64)
『절복나한경折伏羅漢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 도리천의 천자가 수명이 다하려 할 때 다섯 가지의 시드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목숨이 다한 뒤 돼지의 태에 들어가는 것을 관하고는 걱정스러워서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자 한 천인이 ‘부처님께서 그대의 죄를 벗어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예를 올리니, 묻기도 전에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체만물은 모두 죽음(無常)으로 돌아간다. 그대도 본래 아는 바인데 어찌하여 근심하는가?’라고 하셨다. 천자가 부처님께 모든 것을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돼지의 몸을 벗어나려거든 삼귀의를 염송하라’ 하셨다.
바로 부처님 말씀을 좇아 새벽부터 밤까지 스스로 귀의하더니, 7일 만에 목숨이 다하자 유야리국維耶離國(Vaiśāli)에 하생하여 장자의 아들이 되었다. 어머니의 태에서도 날마다 세 번씩 스스로 귀의하고, 처음 태어나 땅에 떨어져서도 무릎을 꿇고 스스로 귀의하니, 온 집안사람들이 몹시 기이하게 여겨 그를 재앙의 조짐(熒惑)이라 하면서 죽이려고 하였다. 다만 그 아버지만이 식견이 있어 ‘이 아이는 범상한 부류가 아니다.
세상 사람은 백 살이 되어도 스스로 삼보에 귀의할 줄 모르는데, 하물며 처음 땅에 떨어져서 나무불南無佛을 칭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잘 보살펴 길렀는데, 아이가 일곱 살이 되자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부모는 기이하게 여겨 허락하고서 공양할 것들을 준비해 주었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오시어 아이의 공양을 받고 그를 위해 설법하시니, 아이와 부모 모두 불퇴전의 경지(阿惟越致)65)를 얻게 되었다. …….”66)
‘오계五戒’란, 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하지 말라, 셋째 사음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음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팔계八戒’란, 앞의 다섯 가지에 셋을 더한 것이다. 첫째 정오를 지나서는 먹지 말라, 둘째 화려한 머리 장식이나 영락을 달지 말며 높고 넓은 큰 침상에 앉지 말라, 셋째 노래하고 춤추며 악기를 연주하는 데 가서 보거나 듣지 말라는 것이다.
‘10중계十重戒’란, 첫째 살생, 둘째 투도, 셋째 부정한 음행, 넷째 거짓말, 다섯째 술장사, 여섯째 다른 이의 허물 말하기, 일곱째 자기를 칭찬하기, 여덟째 탐욕, 아홉째 성냄, 열째 삼보를 비방함이다.
‘48경계四十八輕戒’란 다음과 같다. 첫째, 화상和尙이나 아사리, 나아가 함께 수행하는 이를 보거든 일어나 영접하여 예를 올려 여법하게 공양해야 한다. 둘째, 고의로 술을 마시거나 남에게 마시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일체의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넷째, 오신채를 먹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계를 범한 이를 보거든 참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여섯째, 대승 법사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거든 맞이하여 공양하고 삼시설법三時說法을 청해야 한다. 일곱째, 법을 강설하는 곳이 있거든 모두 가서 들어야 한다. 여덟째, 병든 이를 보거든 항상 공양하기를 부처님과 다를 바 없이 해야 한다. 아홉째, 마음으로 대승을 등지고 이승二乘을 받아 지니지 말아야 한다. 열째, 칼·막대기·활·화살 등 전쟁하고 살생하는 도구를 쌓아 두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10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첫째,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군대에 오고 가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양민·노비·여섯 가지 짐승67)을 판매하거나 시장에서 관棺 자재 등 시신 담는 기구를 거래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선량한 타인이나 나아가 국왕 대신을 비방하여 오역죄 등의 무거운 죄를 범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불을 놓아 산과 들을 태우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불제자부터 모든 원수나 친지까지 대승의 경과 율을 받아 지니도록 가르쳐서 보리심을 내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먼저 대승의 법을 배운 이는 새로 배우기 시작한 보살이 와서 경과 율을 구하는 것을 보거든 여법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일곱째, 국왕 대신과 가깝다 하여 위세를 떨거나 금전과 물건을 함부로 취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육시六時 밤낮으로 보살계를 받아 지니되, 계율의 인연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위해 스승이 되어 계를 주지 말아야 한다. 아홉째, 계를 지니는 비구를 보거든 속이거나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열째, 항상 방생을 행하고 살생하는 사람을 보거든 방편으로 구호하며, 부모 형제가 죽은 날에는 법사를 청하여 『보살계경菩薩戒經』을 강설하게 하여 망자의 복을 빌어야 한다. 이와 같은 10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첫째, 어떤 사람이 나의 부모 형제를 죽이더라도 보복을 가해서는 안 된다. 둘째, 총명함과 부유함을 스스로 믿어 먼저 배운 법사에게 경과 율을 묻지 않고 받지 않아서는 안 된다. 셋째, 자신은 경과 율을 이해하면서 어떤 신학 보살이 와서 묻는 것을 경멸하는 마음과 악한 마음으로 답하기를 꺼려서는 안 된다. 넷째, 경과 율은 방치하고 반대로 삿된 소견인 외도의 속된 경전을 배워 도道의 인연을 막아서는 안 된다. 다섯째, 설법주說法主나 승방주僧坊主가 되거든 삼보의 상주물을 잘 지켜야 하고, 법도에 어긋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먼저 승방에 머물거나 대중 속에 머물 때 손님으로 보살이나 비구가 오거든 일어나서 맞이해야 하며, 갖가지 공양거리로 배웅해야 한다. 어떤 시주자(檀越)가 와서 스님들을 청하거든 승방주는 먼저 객승을 보내야 한다. 일곱째, 따로 초청함(別請)68)을 받아 이양利養이 자신에게만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스님들을 청하여 소원을 구할 때에는 차례대로 청해야 하며, 따로 청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이익을 위해 남녀의 색色을 판매하거나 손수 밥을 짓거나 스스로 갈고 찧거나 길흉을 점치는 일체의 주술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열째, 세속 사람들을 위하여 남녀를 만나게 해 주는 일을 주선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10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 첫째, 외도나 온갖 악인이 불보살의 형상이나 경과 율을 매매하는 것을 보거든 교화하여 재물을 가지고 가서 바꾸어 와야 한다. 둘째, 저울추를 가볍게 하거나 되를 작게 만들어 사람을 속여 물건을 취하지 말아야 하며, 고양이·살쾡이·돼지·개를 기르지 말아야 한다. 셋째, 남녀 등의 싸움이나 군대의 장병들 싸움을 구경하지 않아야 하며, 금슬琴瑟·공후箜篌 등 악기 연주하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하며, 투전(樗捕)·바둑(圍棊)·쌍륙(六博) 등의 노름이나 나아가 손톱을 비추어 점치는 것, 버들가지로 점치는 것 등의 나쁜 재주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넷째, 금계禁戒 지니기를 밤낮 육시로 한결같이 하고 이 계를 독송하되, 마치 금강金剛과 같이, 혹은 부낭浮囊을 지키듯이 해야 한다. 스스로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부모와 스승과 삼보에게 효도하고 순종해야 하며, ‘좋은 스승과 좋은 벗을 얻어 나에게 대승을 가르쳐서 내가 개오開悟하고 이해하도록 하고, 여법하게 수행하여 한순간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해야 한다. 여섯째,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지니고 서원하기를, ‘차라리 이 몸을 활활 타오르는 맹렬한 불구덩이와 칼산에 던질지언정, 끝내 모든 부처님의 경과 율을 훼손하고 범하여 여인들과 부정한 음행을 짓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천 겹의 철망으로 몸을 얽어맬지언정, 끝내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시주자가 시주하는 어떠한 의복도 받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고 백천 겁을 지날지언정, 끝내 파계한 입으로 신심 있는 시주자가 시주하는 어떠한 음식도 받지 않겠습니다,’ 나아가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해야 한다. 일곱째, 항상 봄과 가을 두타행頭陀行69)을 하고, 여름과 겨울 좌선을 한다. 양지楊枝70)·비누(藻頭71))·삼의三衣72)·물병(甁)·발우(鉢)·방석(坐具)·석장錫杖73)·향로香爐·녹수낭漉水囊74)·수건·칼(刀子)·부싯돌(火鐆)·족집게(鑷子)·승상繩床·경률經律·불상·보살상 등 이러한 18가지 물건을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
두타행을 하거나 좌선을 할 때 곤란한 곳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이를테면 포악한 왕의 국토, 초목이 깊이 우거진 곳, 사자·호랑이·이리가 있는 곳, 물·불·바람 등의 재난이 있는 곳, 도적이나 독사가 있는 곳 등을 말한다. 여덟째, 여법한 차례대로 앉되, 노소와 귀천을 묻지 않고 먼저 계를 받은 이가 앞에 앉고, 나중에 계를 받은 이는 뒤에 앉아야 한다. 아홉째, 항상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승방이나 불탑 등 일체 수행처를 건립해야 한다. 질병이나 국난이나 도적의 난이 있을 때, 부모 형제가 죽은 날, 모든 재 모임(齋會), 나아가 물난리와 불난리 그리고 나찰의 난리가 있거나, 수갑·목칼·족쇄 등으로 몸이 결박될 때,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많을 때에는 모두 이 경과 율을 독송하고 설해야 한다. 이와 같은 9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 첫째, 남에게 계를 줄 때에는 모든 국왕·대신·비구·비구니·청신남·청신녀·음남婬男·음녀婬女·무근無根75)·이근二根76) 나아가 일체 귀신과 축생까지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법사의 말을 이해하는 자라면 모두 계를 줄 수 있는데, 단 칠차칠역죄七遮七逆罪77를 범한 자는 제외한다. 그리고77) 출가자는 국왕과 부모와 육친六親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둘째, 명예와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일체의 경과 율을 아는 체하며 다른 사람에게 계를 주지 말아야 한다. 셋째, 아직 보살계를 받지 않은 사람 앞에서나 외도와 삿된 견해를 지닌 사람 앞에서 이러한 대승의 계를 설하지 말아야 한다. 단 국왕은 제외한다. 넷째, 바른 계戒를 받고도 훼손하고 범하는 자는 시주자의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고, 국왕의 땅을 밟거나 국왕의 물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왜 그러한가? 이 사람은 법 가운데 큰 도적이므로 축생과 다를 것이 없고, 나무토막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승의 경과 율을 받아 지니되, 가죽을 벗기고 피를 뽑고 뼈를 꺾듯이 서사書寫해야 한다. 나아가 나무껍질·종이·비단·대나무에도 가능하니, 항상 칠보와 향과 꽃으로 여법하게 공양해야 한다.
여섯째, 일체중생을 보거든, “너희들은 모두 삼귀의계와 10계를 받아야 한다.”라고 외치고, 나아가 소·말·돼지·양 일체의 축생을 보거든, ‘너희들은 축생이지만 보리심을 내어야 한다’라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해야 한다.
일곱째, 항상 교화를 행하되, 시주자의 집에 들어가면 선 채로 속인을 위하여 설법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높은 자리를 만든 뒤 올라가 앉아 설법하고, 사람들은 아래에 앉아 들어야 한다. 여덟째, 고의로 불법을 파괴하는 자가 되어 우리 사부 제자四部弟子78)들의 출가와 수도를 거부해서는 안 되며, 불상이나 불탑이나 경과 율을 조성하는 일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아홉째, 명예를 위해 국왕이나 모든 관리 앞에서 불법佛法과 계를 설하거나, 함부로 계를 범한 이에게 형벌(繫縛)을 주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외도와 악인들이 부처님의 계를 비방하는 것을 듣거든 3백 개의 창으로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여겨서, ‘차라리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백겁을 지날지언정 부처님의 계를 파괴하는 나쁜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으리라’라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은 9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이상의 10중계와 48경계는 『범망경』79)에 나온다.
그리고 보살의 4백 계, 비구의 250계, 비구니의 5백 계, 3천의 위의계威儀戒,80) 8만의 세행계細行戒81)가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계는 다음과 같은 삼취정계三聚淨戒가 총론이다. 첫째, 섭률의계攝律儀戒이니 악을 떠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둘째, 섭선법계攝善法戒이니 선을 쌓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셋째,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니 중생을 제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들 모든 계戒는 처음 발심한 범부들도 다 지키기 어려운데, 하물며 지금은 계를 지니는 것이 견고하던 시대가 이미 780여 년이 지났으므로 이 때문에 시대가 혼탁하고 근기가 하열하며, 장애는 깊고 믿음은 얕아서 계를 지니기 어려우니, 비록 모두 지키지 못하더라도 다만 암송하기만 해도 좋으리라.
나아가 삼귀의계와 오계만을 지니고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파괴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장한 일이로다. 그렇지 않다면 7일 내지 단 하루만 지켜도 좋다. 무슨 까닭인가?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서는 “하루 낮 하루 밤 사미계沙彌戒를 지니기만 하여도 목숨을 마치면 곧 극락세계 중품중위中品中位82)에 왕생하리라.”83) 하였고,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도리천자忉利天子도 7일 동안 삼귀의계를 스스로 암송하고서 열등함을 바꾸어 수승함을 얻었다고 한 것과 같다.
‘계戒’라는 말은 ‘금한다’, ‘단속한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원숭이에게 사슬을 채우듯 정욕을 금하고,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 몸과 입을 단속하는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큰 병에는 계戒가 좋은 약이며, 큰 두려움에는 계가 수호자이며, 죽음의 어둠 속에서는 계가 밝은 등불이며, 삼악도에서는 계가 다리이며,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84)의 바다에서는 계가 큰 배이다.”85)라고 하였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어떤 사람이 집을 지으려고 하면 먼저 그 기틀을 정돈해야 하듯이, 보살도 그러하다. 만행을 닦고자 하면 먼저 계(尸羅, śīla)를 깨끗이 해야 한다.”88라고 하였다.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는86) “처음 계를 받은 사람은 부처님과 동등하다.”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계를 받은 사람은 육도에 태어나는 곳마다 모두 왕이 된다.”라고 하였고, “앉아서 받고 일어나서 파괴하더라도 받지 않은 것보다 낫다.” 하였다. 그러므로 계의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자세히는 『범망경』·『능엄경』 등의 경장과 모든 율장(毘奈耶, vinaya)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자세히 알고자 하면 살펴보기 바란다.
[182]
布施及安忍 보시와 인욕
精進修禪智 정진과 선정 그리고 지혜
讀誦書經論 경론을 독송하고 서사하기
禮念佛菩薩 불보살을 예념하기
[183]
或修營佛廟 불전(佛廟)을 짓거나 수리하기
或造建僧坊 승방을 조성하기
或塑畫聖形 성인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리기
或修古經像 오래된 경전이나 불상을 보수하기
[184]
或歌詠三寶 삼보를 노래하고 찬탄하기
或掃塔獻花 탑을 청소하거나 꽃을 올리기
或燒香然燈 향을 사르거나 등을 밝히기
或作樂供養 악기를 연주하여 공양하기
[185]
或奉養師親 스승과 부모를 봉양하기
或行世仁義 세속의 인의仁義를 행하기
或敬老慈幼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기
或悲諸有情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186]
或隨喜他善 남의 선을 따라 기뻐하기
或謙心軟語 겸손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말 하기
隨冝但行一 형편에 따라 한 가지만 행해도
亦當成佛道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
‘보시’란 범어로는 단檀(dāna)이라고 한다. 세 가지가 있으니, 즉 신명시身命施·재시財施·법시法施를 말한다.
신명시는 머리와 눈, 손과 발을 보시하는 것이니, 법인을 얻은 보살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리자(身子, Śāriputra)는 제6심87)에 이르고서도 물러났다.
재시는 노비·코끼리·말과 여러 진귀한 보물 등을 보시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분수껏 정성을 다하면 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여인은 두 푼을 보시하고도 현세에 왕비가 되었고,88) 어떤 노모는 쉰 쌀뜨물을 보시하고도 천상에 태어났다.89) 어떤 이는 “몸을 보시하는 것도 재시에 속한다.”라고 말한다.
법시는 여러 부처님과 선지식으로부터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에 대해 설하는 것을 듣거나 경론에서 들은 것을 청정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주는 것으로서, 모두를 법시라고 한다. 재시를 법시에 비교하면 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루에 세 번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몸을 보시하고,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록 몸을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지니거나 나아가 한 구절이라도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그 복덕이 앞의 것보다 수승하다.”90)라고 하였다.
‘인욕’이란, 범어로는 찬제羼提(kṣānti)라고 한다. 안으로 마음이 편안하면 밖에서 욕을 당하는 지경도 견딜 수 있다. 인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을 말한다. 중생인은 바깥사람이 성내고 꾸짖고 때리고 해치는 일 등을 참는 것이다. 법인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굶주림과 목마름, 늙음과 병듦 등을 참는 것이다. 이러한 두 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편안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부루나富樓那는 인욕을 닦을 때, 어떤 이가 와서 꾸짖으면 주먹질 하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주먹질 하는 이를 만나면 몽둥이로 치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몽둥이로 치는 이를 만나면 칼로 찌르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칼로 찌르는 이를 만나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일찍이 오음의 독이 든 몸을 버리고자 하였더니, 다행히 좋은 벗이 있어 내 괴로움의 뿌리를 끊어 주려 하니,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마음을 쓰면 다만 원한을 끊을 뿐만 아니라 복덕과 지혜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91) 그러므로 영가永嘉92) 대사는 “욕하는 것을 관하는 것은 공덕이니, 이것은 나를 선지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93)라고 하였다.
‘정진精進’이란, 범어로는 비리야毘離耶(vīrya)라고 한다. 선법을 부지런히 행하여 스스로 방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정진이요, 둘째는 마음의 정진이다. 이를테면 성인의 모습을 새기거나 그리고 경전을 서사하고 예배하고 암송하고 강설하는 등 모든 선법을 닦음에 멈춤이 없는 것을 몸의 정진이라 한다. 선도善道와 선정과 지혜를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음과 마음이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을 마음의 정진이라 한다. 정진 이 한 가지 바라밀의 힘으로도 다섯 가지 바라밀이 원만해진다.
예를 들면 석존께서 인행因行을 닦을 때 7일 동안 한 발을 들고(翅足) 정진하신 공덕이 미륵을 뛰어넘은 것은 실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어느 한 법도 게으름에서 생겨나는 것은 없다.……”라고 하였다.
‘선정禪定’이란, 범어로 갖추어 말하면 선나禪那(dhyāna)라고 한다. 여기서는 사유수思惟脩라고 한다. 선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즉 세간선世間禪과 출세간선出世間禪을 말한다. 세간선이란 근본사선根本四禪·사무량심四無量心·사무색정四無色定으로, 이는 범부들이 수행하는 선법이다.
출세간선이란 육묘문六妙門94)·16특승十六特勝95)·통명通明96) 나아가 삼명육통三明六通97)으로, 이는 이승과 공통되는 선법이다.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등 108삼매와 제불부동삼매諸佛不動三昧 등 120삼매는 불보살들이 닦는 선법으로, 범부와 이승과는 공통되지 않는다.
무릇 선禪의 효용이 있는 까닭은 모든 잡된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마음을 한 곳에 제어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때문이다. 삼세제불과 일체보살은 모두 이 문門을 따라 들어오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옛 스님이 말하기를, “비록 만년이 지나더라도 여러 가지 산란한 마음으로 선업을 닦는다면, 잠깐 사이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선정(靜慮)에 든 것만 못하다.……” 하였다. 또한 그 삿됨과 바름과 관을 닦는 방편을 논하자면 문장이 번거로울 것 같아 기록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상세히 알고자 하면 천태 대사의 『마하지관摩訶止觀』을 보기 바란다. 거기에서는 선문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가려내고 편벽된 것과 원만한 것을 밝혀 놓은 것이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듯 훤하고 명백하다.
‘지혜智慧’란, 범어로는 반야般若(prajñā)라고 한다. 일체 제법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되, 일체를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지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성문聲聞을 구하는 지혜이니, 먼저 사념처四念處로부터 사제四諦를 관함으로 인하여 나아가 무생지無生智98)를 증득하는 것이다.
둘째, 연각緣覺을 구하는 지혜이니, 12인연을 관하여 무생지를 깨닫는 것이다.
셋째, 불도佛道를 구하는 지혜이니, 보살이 처음 발심한 이래로 육바라밀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구니를 부수고 번뇌(結99) )를 끊어 마침내 정각을 이루고, 나아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살은 청정한 마음으로 이 세 가지 지혜를 닦기 때문에 반야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은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100)라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또 이 반야는 중생과 부처 모두에게 있지만,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에 따라 높고 낮음이 나뉜다. 이러한 도리를 알아서 마음을 연마하면, 곧 본래부터 있는 평등한 큰 지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데 어찌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명경淨名經』에서는 “평등한 진법계眞法界에서는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 없다.”101) 하였고, 어떤 이는 “보살이 반야를 듣지 못하면 불도와 멀어지고, 비록 범부라 해도 반야를 배운 이는 ‘미래에 이루어질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보살의 만행萬行은 육바라밀을 벗어나지 않고, 이 육바라밀에서는 반야가 전부이다. 만약 반야를 수행하면 이미 육바라밀 모두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의 공덕 인연을 말한다면 겁이 다하도록 다함이 없다.……”라고 하셨다.
‘경론을 독송한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일대시교에는 경·율·논 삼장이 있고, 그중에 또한 대승과 소승, 현교와 밀교가 있다. 부처님의 경계는 본래 이승과 삼승, 대승과 소승의 차별이 없지만, 중생의 근기에 수순하기 때문에 이와 같을 뿐이다.
또한 여래께서 세간에 나오신 큰 뜻은 중생을 모두 대승에 들어가게 하고자 함이지만, 소승의 근기가 있어 대승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스스로 삼승을 설하여 소승의 이익을 얻게 한 다음 점차 대승에 들도록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대승에 들어가는 것이 근본이기 때문에 이 경을 설한다.”102)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모든 수행자는 이러한 뜻이 경이나 논서에 있음을 반드시 알아서 대승과 소승을 가리지 말고 감당할 수 있는 바에 따라 모두 받아 지녀야만 한다.
슬프다. 지금 대승을 배우는 이들은 다만 반야부와 방등부 안에서 융통하는 말과 대승을 찬탄하고, 소승을 배척하는 글만 보고서 여래께서 근기에 따라 교법을 시설하신 미묘하고 비밀스런 뜻은 깊이 살피지 않고, 큰 교만의 깃발을 세워 소승을 비난하고 꾸짖으니, 다소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러한가? 방등부 안에서 대승을 찬탄하고 소승을 배척한 것은, 이승의 사람들이 소승을 취하여 만족하고 돌이키지 못하므로 여래께서 그들이 소승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고자 배척하신 것이고, 그들이 대승을 흠모하도록 하고자 다음으로 (방등부를) 설하시고, 그들이 대승에 들어오도록 하고자 다음으로 반야부를 설하시어 융통시키고 도태시켰기(融通淘汰103) )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마디 한마디 점검하고 경책하여 일승一乘에 들도록 인도하셨으니, 분명히 알라. 꾸짖고 배척하신 것은 다만 당기중當機衆104)에 해당하는 것이지, 후세의 초심 범부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승법이 중생에게 이익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가섭과 아난이 경을 결집하던 차에 어찌하여 버리지 않고 수집하여 한 경장經藏 안에 두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부처님 재세 시 당기중에도 오히려 근기가 날카로운 자와 둔한 자가 있어 근기가 날카로운 자는 대승에 단박 들고 근기가 둔한 자는 소승을 거쳐 대승에 들어갔다. 이런 까닭으로 교법에 대승과 소승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말법시대인데, 교법을 받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어찌 우열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우세한 근기는 대승을 좋아하고, 열등한 근기는 소승을 쫓아 각각 원하는 바가 있어서 이치에 걸림이 없는데, 어찌하여 그르다고 하겠는가.
또 소승이 허물이 되는 까닭은 다만 소승에 집착하여 대승을 잊기 때문이다. 마음을 돌이켜 대승을 향한다면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예를 들면 장자가 아이에게 반 글자씩만 가르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꾸짖은 대로 수행할 때에 지난 법(往, 소승법)을 말미암지 않고 곧장 대도로 갈 수 있다면 이처럼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 천하의 백성들이 순전히 군자라면 진실로 그렇다 하겠지만, 야인野人이 섞여 있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무엇 때문인가? 야인들을 대도로 가게 하는 일은, 마치 순록을 몰아서 성안의 저잣거리를 지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근기와 교법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 이로움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경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독송만 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 마치 헛방아를 찧는 것처럼 끝내 이로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이 국집局執된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 중에는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있어, 지혜로운 이는 뜻을 취하고 어리석은 이는 글만 고집한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마음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깊은 이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만 경문을 독송하기만 해도 수승하다’라고 말하는 까닭에 그 현묘한 뜻을 찾는 데 게으른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런 사람을 특별히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이지, 어리석은 사람 모두를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정丁 자를 놓고도 한 일一 자를 모르는데, 하물며 현묘한 이치를 분명히 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마음을 돌려 도道를 향하기 어렵다. 마음을 돌려 도를 향하더라도 독송하기 또한 어렵다. 이런 까닭으로 독송만 하여도 그대로 선업이 되기 때문에 큰 성인께서 반드시 기뻐하실 것이다. 감탄하고 칭찬할지언정, 어찌 질책하여 그들을 실망시키겠는가.
어리석은 사람 모두를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이라면, 이들은 법에 영원히 인연이 없는 자들이어서 오래도록 악취惡趣를 윤회하며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가 여래를 정변지正遍知, 즉 평등한 자비심을 일으켜 큰 방편으로 눈먼 대중을 널리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하겠는가.
이들 어리석은 사람들 역시 꾸짖어야 할 때가 있다. 그 뜻은 알지 못하더라도 독송하는 것을 마음에 익혀 달이 쌓이고 해가 깊어지면, 공덕이 익어 뜻이 통하게 되는데, 이것을 망령되이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면, 막혀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시기를 맞으면 바로 경책하여 앞으로 나아가도록 권장해야지, 적절한 때가 아닌 데 질책하고 경책하여 중생이 물러서는 마음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현세에 공부가 비록 성취되지 못하더라도 선근의 싹을 이미 심었으므로 반드시 점차 자라나 후세에는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 지혜로운 사람도 전생에는 독송만 하던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억측으로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경론에 널리 있으니 볼 수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예를 들어 다라니陀羅尼처럼, 뜻은 알지 못하는데 암송만 하여도 어떻게 죄를 멸하고 복을 낳는가?
그리고 전기傳記에는 행의 수나 글자 수를 세다가 지혜가 열린 사람이 있고, 어린아이가 대충 듣고서도 법사가 된 경우가 있고, 독사나 조개류가 독경 소리에 훈습되어 과보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런 부류들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겠는가?
수도하는 사람은 이런 뜻을 알아서 교법의 대소, 사람의 귀천, 남자와 여자, 재가와 출가, 노인과 아이,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이해함과 이해하지 못함, 정진과 게으름, 많고 적음, 길고 짧음을 논하지 않고, 다만 분수에 맞게 독송한다면, 그 공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공이 빨리 이뤄지고 늦게 이뤄지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달려 있을 뿐이다.
또 남의 스승이 되는 사람은 제자의 마음속에 품은 즐거움을 따라 인도하지 않는다면, 모난 나무를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이를 ‘소경과 절름발이 사제지간’이라 하니, 두 사람 모두 타락하고 말 것이다. 독송은 자신에게 이롭고, 해설하고 서사하는 것은 타인에게 이롭다. 두 가지 이로움을 함께 닦아야 보살이라 말한다. 또 다섯 가지 수행(五種行)105) 가운데 해설하고 서사하는 공덕보다 수승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우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불보살을 (예)념하기’란 다음과 같다.
시방 삼세의 모든 불보살은 그 수가 한량없고 이름도 같지 않다. 만일 불보살 전체를 염한다면 경계가 넓어 마음이 산란하여 삼매가 이뤄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인연 있는 한 부처님이나 한 보살을 따라 오롯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염하면 감응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곧 진신眞身을 뵙고 법을 듣고 도를 깨달아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이 바다처럼 모여 둘러싸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현세에 친히 뵙지 못한다면 후세에 뜻대로 그곳에 반드시 왕생하여 직접 공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토론淨土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부처님의 공덕과 모든 부처님의 공덕은 차이가 없다. 동일한 법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부처님을 염할 때 곧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 된다. …….”106)
어떻게 인연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는가? 선지식에게서 듣거나 경에서 보았을 때 그 보고 들은 바에 따라 믿는 마음이 가는 분이 그분이다. 대체로 보아 중생은 업장이 많기 때문에 모든 도업을 닦더라도 중간에 그만두는 이가 많지만, 오직 염불하는 이는 만에 하나라도 누락되는 일이 없다. 비유하자면 세간에 박덕한 사람이 왕의 힘을 빌리면 가는 곳마다 능멸하거나 범하는 이가 없고, 필요한 것이 모자람이 없고, 몸과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염불하는 이도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거두어 주시기 때문에 천마와 외도가 어지럽히지 못하고 장애가 소멸하고 지혜가 증장되며 세세생생 항상 부처님 계신 곳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오정심법五停心法107)에서는 “장애가 많은 중생은 염불관念佛觀을 닦으라.”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염불하고 오체투지하면 천상에 태어날 업을 짓는 것이고,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손을 들어 합장한다면 인간 세상에 태어날 업을 짓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 수승하고 오묘한 즐거움을 받으며, 마지막에는 부처님을 뵙고 묘과妙果108)를 증득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불전을 짓거나 수리하기, 승방을 조성하기’란 다음과 같다.
부처님 사리와 성스러운 형상을 봉안한 곳을 불전(佛廟)이라 하고, 스님들이 거닐고 앉고 눕는 곳을 승방僧房이라 한다. 사람들이 삼보를 공경하여 새로 짓거나 보수한다면, 얻는 공덕이 한량없을 것이다.
『비바사론毗波沙論』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구가 정사를 지을 때 다섯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고, 둘째 불법을 오래도록 성장시키기 위함이고, 셋째 평범하고 열등한 중생들이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없애기 위함이고, 넷째 장래의 제자들의 교만과 호사를 꺾기 위함이고, 다섯째 장래의 복업을 일으키기 위함이다.”109)
『현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수달 장자須達長者의 막내딸이 단정하기가 비할 데 없었는데, 국왕의 부인이 된 뒤 회임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곧 열어 보니 열 명의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외모가 단정하고 용맹함이 범상치 않았다. 장자가 기이하게 여겨 부처님 계신 곳에 데리고 나아가니, 부처님께서 설법을 해 주시어 어미와 열 명의 아이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아난이 그 숙세의 인연을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과거 비바시불毘波尸佛(Vipaśyin)께서 멸도하신 뒤 사리를 나누어 무수한 탑을 세웠다. 그중 한 탑이 무너지려 하는데, 한 노모가 그것을 보수하였다. 마침 열 명의 소년이 지나가다 우연히 보고 함께 수리하였는데, 이로부터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세상에 항상 함께 태어나 복락을 받더니, 이제 나를 만났으므로 출가하여 도를 얻은 것이다’라고 하셨다.”110)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위불維衛佛(Vipaśyin)께서 멸도하신 뒤 말법시대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불탑이 조금 무너진 것을 보고 진흙을 개어 보수하고, 아울러 금박을 사서 그 위에 발랐다. 이로부터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몸이 항상 금빛이었다. 마지막 생에는 가라위성迦羅衛城(Kapila) 한 장자의 집에 태어났다. 몸이 역시 금빛이니, 세상에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몸의 빛이 비추는 것은 모두 금빛이 되었다. 점차 나이 들어 부처님께 출가하니, 아라한과를 얻었다.”111)
『법구비유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한 아라한이 있어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지니고 계빈국罽賓國(Kaśmīra)에 이르러 남산에 탑을 세웠다. 항상 5백 아라한이 아침저녁으로 탑 주위를 돌며 예경하였다. 그때 산중에는 5백 마리의 원숭이가 있어 스님들이 탑 주위를 도는 것을 보고, 다 함께 돌을 짊어다가 스님들 흉내를 내어 탑을 세우고, 그 주위를 돌면서 예배하였다.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산이 무너지고 냇물이 넘쳐 원숭이들이 일시에 물에 빠져 죽어 버렸는데, 도리천에 태어나서는 곧장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5백 천자天子 모두 동시에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얻었다. …….”112)
여기서 인용한 한두 가지 인연은 모두 조그만 일로 인연을 맺은 것이니, 이와 같이 미약한 인연으로 받은 보답이 오히려 이 정도인데, 하물며 처음부터 선한 마음을 내어 전적으로 주관하고 운영하는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저 원숭이들이 스님 흉내를 내어 장난으로 한 것이 과보를 바꾸어 도를 증득한 것도 모골이 송연할 일인데, 하물며 타인을 위하여 정성껏 보시하고 얻은 공덕이야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성인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린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참 부처님은 형상이 없는데 거짓으로 형상을 세우고 귀의하여 소원을 비는 것은 전도된 것과 같다. 그러나 형상에 집착하는 범부들은 빈 곳을 향하여 공경심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형상을 빌어 참된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예를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이가 풀로 용을 만들어 빌면, 진짜 용이 비를 내려 주는 것과 같다. 거짓 형상이라도 세워 공경하면 참 부처님이 감응을 내려 주시니, 어찌 참인가 거짓인가 분별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타연왕경優陁延王經』113)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존께서 도리천에 오르시니 우타연왕이 우러러 흠모하는 마음을 품고 전단栴檀나무에 새겨 불상을 조성하고 공양하였다. 세존께서 내려오시니 불상이 일어나 문밖을 나서며 머리 숙여 공경히 맞이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사양하며 이르시기를, ‘나는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 것이지만, 불상은 스스로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복되고 이롭게 하리니, 내가 감히 그대 불상에 미칠 수 있겠는가’ 하시었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여 불상이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해 불상을 조성하는 공덕에 대해 곧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면 그 공덕은 한량없어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 복락을 누리며, 몸은 항상 금빛이고 눈은 청정하며, 모습이 단정하고 모든 상호가 구족되리라.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항상 제왕이나 대신이나 장자의 현명하고 선량한 집에 태어나 호사와 부귀를 누릴 것이다. 제왕이 되면 왕 중에 특별히 존귀할 것이고, 전륜왕이 되면 사천하를 다스리고, 천상에 태어나면 천인 가운데 가장 수승하고, 나아가 육욕천의 왕이 되어서 육욕천 중에 으뜸이 되고, 범천에 태어나면 항상 모든 범천의 존경을 받고, 마지막에는 무량수국無量壽國에 태어나 모든 보살 중에 으뜸이 되리라.”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임종할 때 남에게 불상을 조성하라 말한다면, 그 크기가 보리쌀만 하더라도, 이 사람은 80억 겁 동안에 지은 생사의 죄를 소멸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경에서는 “불상을 수리하는 것이 새로 짓는 것보다 수승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예전에 어떤 가난한 여인이 불상의 얼굴이 조금 손상된 것을 보수한 뒤 세세생생 얼굴이 금빛이고 부귀와 즐거움이 자재하였으며, 마지막 생에는 부처님을 만나 과위果位를 증득하였다. 또 어떤 장자는 손상된 손가락 하나를 보수하고 나서 세세생생 손가락에서 등불 같은 광명이 났고, 시체 보배(尸寶)114)가 항상 따라다녀 궁핍함이 없었고,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다.
아! 이와 같이 매우 작은 일을 했더라도 얻은 이익이 큰 것은 모두 위없는 복전에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봄에 한 알의 곡식을 심어 가을에 만 알의 곡식을 얻는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리라.
‘삼보를 노래하고 찬탄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경에서 말하였다.
“사바세계 중생은 이근耳根이 예리하기 때문에 음성으로 불사佛事를 삼는다. 그러므로 노래하고 찬탄할 때 다만 자기 마음만 공경심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저승과 이승의 일체중생도 보고 듣고 환희심을 내어 도道에 대한 마음이 늘어나니, 자신과 타인 모두를 이롭게 하는 공덕이 막대하다.”
‘탑을 청소하는 공덕’에 대하여 『보살본행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정광불定光佛이 멸도하신 뒤 정법의 시대가 끝날 무렵 어떤 가난한 사람이 땔나무를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땔나무를 주우러 숲으로 가다가 멀리 숲 속에 탑사塔寺가 있는 것을 보았다. 곧 그곳으로 가서 우러러뵙고 절을 하였는데, 다만 새와 짐승이 묵던 자리와 초목과 가시덤불 그리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 사람 자취가 끊어져 공양하는 이 하나 없는 것을 보았다. 가난한 이는 그것을 보고 슬픈 생각이 일어났다. 여래의 신비한 공덕을 분명히 아는 바는 없었지만, 다만 기꺼이 풀과 나무를 베어내고 더러운 것을 치우고 절을 하고는 돌아갔다. 이런 인연으로 목숨이 다한 뒤 그는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나 한량없는 복락을 누렸고, 천수天壽를 다한 뒤에는 1백 번 반복하여 전륜왕이 되어 사천하를 다스렸으며, 전륜왕의 복이 다한 뒤에는 항상 국왕이나 큰 가문의 장자가 되어 재물과 부귀가 한량없었다. 용모가 단정하여 보는 이마다 사랑하고 공경하였으며, 길을 나서고자 하면 도로가 저절로 깨끗해지고 허공에서는 꽃비가 흩어져 내렸다. 이와 같은 과보를 받으며 90겁이 지나고, 마지막 생에는 석가여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으니, 지금의 바다갈리婆多竭利 존자가 그 사람이다.”115)
『아함경阿含經』에서는 “어떤 사람이 온 염부제의 땅을 청소한다 하더라도, 소 한 마리 누울 만한 땅의 불탑을 청소한 것만 못하다.” 하였고, 어떤 이는 “목숨을 마치면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리라.……” 하였다.
‘꽃을 올린 공덕’에 대하여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위불維衛佛이 법을 남기신 가운데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탑에 이르러 보니, 꽃이 먼지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바로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공양을 올렸는데, 이 인연으로 91겁 동안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니, 몸이 유연하고 얼굴빛이 깨끗하며 재산과 부귀가 한량없고 큰 위덕威德이 있었다. 마침내 석존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으니, 지금의 위덕威德 비구가 그 사람이다.”116)
시든 꽃의 먼지를 털어 공양한 것이 감응 받은 바가 이러한데, 하물며 특별히 만들어서 공양한다면 그 복을 다 논할 수 없을 것이다.
‘향을 사르는 공덕’에 대하여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비바시불毘婆尸佛이 멸도한 뒤 법을 남기신 가운데 어떤 사람이 불탑에 들어갔다가 전단향을 태워 부처님 사리에 공양하였다. 이 인연으로 91겁 동안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났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전단향이 났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아라한과를 얻으니, 지금의 전단향栴檀香 비구가 그 사람이다.”117)
‘등을 밝히는 공덕’에 대하여 『현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위국舍衛國에 난타難陁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빈궁하고 외로운 몸으로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국왕 대신들이 다투어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난하고 천한 곳에 태어나 복전을 만났어도 심을 씨앗이 없으니, 훗날 받을 과보를 알 만하구나’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감상에 젖어 스스로 근심하다가, 곧바로 공양할 것을 마련하고자 종일토록 구걸을 하여 겨우 2전錢을 얻었다. 그것을 지니고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사는 데 쓰니, 등 하나 살 돈은 족히 되었다. 등을 가지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 앞에 밝히면서 발심하여 서원하기를, ‘제가 내세에는 지혜의 등불을 얻어 일체의 어둠을 소멸하게 하여지이다’이렇게 발원하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나갔다. 두터운 신심 때문에 여러 등불 가운데 그 불빛은 유독 밝고 아름다웠다. 새벽녘 하늘이 밝아올 무렵 목건련이 등불을 끄고자 하는데, 아무리 힘을 다해도 꺼지지 않으니, 부처님께서 이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크게 발심한 사람이 보시한 등이어서 그대들 성문이 움직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설령 그대가 사해의 바닷물을 붓는다 해도, 맹렬한 바람(毘嵐猛風)118)일지라도 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새벽이 되어 난타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자 부처님께서 ‘그대는 내세에 2아승기겁을 지나 장차 부처가 되리니, 이름이 등광왕불燈光王佛이며, 10호를 구족하리라’ 수기하셨다. 난타가 기뻐하며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니, 대중들에게 우러름을 받았다.”119)
『비유경譬喩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나율阿那律 존자는 과거세에 강도였다. 불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고 할 때에 탑 안의 불상 앞에 있는 등불이 꺼지려고 하였다. 화살로 바로잡아 밝혀 주었는데, 불상이 장엄하고 수려한 것을 보고는 털이 곤두서서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재물을 희사하여 복을 구하는데, 나는 어찌하여 훔치려 한다는 말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곧 버려두고 가 버렸다. 이것으로 91겁 동안 항상 좋은 곳에 태어나고 점차 모든 악을 버려서 복이 날로 늘어났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천안제일天眼第一의 과보를 얻으니, 삼천대천세계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과菴摩勒果 열매를 보듯 하였다.”120)
『대지도론』에서는 “다만 등촉만을 보시하고도 육천121)에 태어났으니, 몸에서는 항상 광명이 빛났다.”122)라고 하였다.
‘악기를 연주하여 공양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가비위성迦毘衛城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 집안이 매우 부유하여 재물과 보배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부인이 회임하여 열 달 만에 고깃덩어리(肉端) 하나를 낳으니, 불길하다 하여 곧 부처님께 가서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다만 잘 양육하여라’ 말씀하셨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났다. 7일째가 되었을 때 고깃덩어리가 열렸는데, 1백여 명의 동자가 있었고, 그 모습이 매우 단정하였다. 나이가 들어 형제 1백 명은 부처님께 출가하여 동시에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대중이 이를 보고 부처님께 전생의 인연을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과거 비바시불이 멸도한 뒤 왕이 탑을 세워 부처님 사리를 안치하고 공양하였다. 그때 같은 고을 1백여 명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며 그 탑에 공양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91겁 동안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고 복락을 누리더니, 이제 나를 만나 출가하여 과위를 증득한 것이다’라고 하셨다.”123)
‘스승과 부모를 봉양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간의 깊은 은혜는 부모보다 더한 것이 없고, 출세간의 큰 은혜는 스승을 앞서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부처님이 안 계시는 시대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곧 부처님께 공양하는 복덕과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타람본경墮藍本經』에서는 간단히 요약하여 말한다.
“어떤 사람이 복을 구하기 위하여 항상 보시를 행하는데, 금 발우에는 은 곡식을 담고 은 발우에는 금 곡식을 담으며, 금 솥에는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갖추고 보배 평상 위에 침구를 펴며,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보석들로 장식하였다. 이와 같은 물건의 수가 8만 4천이 되도록 남에게 보시하는 데 쓴다면 얻는 복덕이 한량없겠지만, 한술의 밥을 한 구도인求道人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1백의 구도인에게 공양한 것이 첫 번째 과를 얻은 이(初果人, 수다원)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첫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두 번째 과를 얻은 한 사람(二果人, 사다함)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두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세 번째 과를 얻은 한 사람(三果人, 아나함)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세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네 번째 과를 얻은 한 사람(四果人, 아라한)에게 공양한 것만 못하고, 네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부모에게 효도한 것만 못하다.”
『미륵보살권효게彌勒菩薩勸孝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堂上有佛二尊 안방에 계시는 존귀한 두 부처님
懊惱世人未識 번뇌하는 세상 사람들 알지 못하네.
不用金彩粧成 금빛 채색으로 단장하지 않았고
非是檀香雕刻 전단향으로 조각하지 않았네.
祇看現世爺娘 현세의 부모님이
便是釋迦彌勒 그대로 석가와 미륵인 줄 알아라.
若能供養得他 만일 그분들께 공양할 수 있다면
何用別作功德 별난 공덕을 짓는 일이 무슨 필요 있으랴.
乃至云在生甘旨無虧 살아 계실 때 봉양(甘旨)을 그치지 않으면
死後不須追憶 돌아가신 뒤 추모할 필요가 없나니
君能如是用心 그대 이와 같이 마음 쓴다면
天地龍神佑翼 하늘과 땅, 용신龍神이 도와주리라.
『보은경報恩經』에서는 “부모는 삼계에서 가장 수승한 복전이니라.”124) 하였고, 비나야毘奈耶에서는 “부처님께서는 비구가 마음을 다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부모에게 공양하는 것을 허락하셨나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받을 것이다.”125)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멋대로 계를 파괴할지언정 부모와 스승, 궤범사軌範師126)와 병자 등은 응당 공양해야 한다.” 하였고, “출가한 사람으로서 부모를 공양하는 이는 삼의三衣 이외에 자기에게 남는 물건, 혹 시주자에게 탁발한 것이거나 혹 승가에서 얻은 이양이거나 혹 승가에서 항상 먹는 것을 절반으로 나누어 공양할 수 있다. 항상 걸식하거나 자기 배 부를 만큼 주어지는 음식의 한도 내에서 절반을 취하여 그 부모를 구제하는 것을 허락한다.”127)라고 하였다.
『부사의광경不思議光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갖가지 음식과 진귀한 보배 등 갖가지로 공양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다. 인도하여 정법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은혜를 갚는 것이다.”128)
『자비참경慈悲懺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를 넘어선다. 왜 그러한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삼계三界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스승은 선법을 가르쳐서 삼유三有를 벗어나 깨달음을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129)
전기傳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세 마을에 아버지를 일찍 여읜 사람들이 자식 없는 노인 하나를 다 함께 아버지로 삼고 지성으로 봉양하여 현세에 천신의 도움을 받았다. 다섯 고을 사람들 중에서 어머니를 여읜 사람이 자식 없는 노파 하나를 다 함께 어머니로 삼고 마음을 다해 끝까지 효도하여 현세에 임금의 상으로 관직을 받았다.”
아! 타인을 부모로 삼고 섬겨도 그 효험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자기 몸을 받은 부모를 받들어 효로써 봉양한다면, 그 복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또 어떤 이는 대나무를 껴안고 울었더니 눈 속에서 죽순이 나왔고,130) 얼음을 두드리며 곡을 했더니 물 위로 물고기가 솟아올랐다131)는 이런 일도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스승과 부모는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석가여래행적송 2
석가여래행적송 상권釋迦如來行蹟頌 上卷 2
‘『화엄경』과 『아함경』은 동시’라는 것은, 불신佛身은 하나이며 법문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근기에 따라 보는 것이 각기 다르다. 무엇 때문인가.
삼장교三藏敎의 근기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생풀로 자리를 삼으시고, 열응신劣應身199)을 나투시어 생멸사제生滅四諦를 설하시는 것을 본다.
통교通敎의 근기는, 부처님이 칠보의 보리수 아래에서 하늘옷으로 자리를 삼으시고 열응신의 모습을 지닌 승응신(帶劣勝應身)200)의 모습으로 무생사제無生四諦를 설하시는 것을 본다.
별교別敎의 근기는, 부처님이 연화장세계의 큰 보배 꽃으로 만든 왕좌에 앉으시어 존귀하고 특별한 보신(尊特報身)을 나투시어 무량사제無量四諦를 설하시는 것을 본다.
원교圓敎의 근기는, 부처님이 상적광토常寂光土에 계시면서 허공으로 자리를 삼으시고 청정한 법신法身을 나투시어 무작사제無作四諦를 설하시는 것을 본다.
이는 마치 한 가지 물을 가지고 천신은 유리로 보고, 사람은 물로 보고, 물고기는 집으로 보고, 아귀는 불로 보는 것과 같다.
또한 부처님께서 바탕색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마니주를 오방의 천왕에게 보여 주면서 “이 구슬이 무슨 색이냐?” 물으셨는데, 동방의 천왕은 청색이라 하고, 남방의 천왕은 붉은색이라 하고, 서방의 천왕은 흰색이라 하고, 북방의 천왕은 검은색이라 하고, 중앙의 천왕은 황색이라 말하며 서로 다른 색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구슬은 원만하고 밝아서 정해진 색이 없다.
불신도 그러하니 청정하고 막힘이 없는데, 다만 근기와 인연에 따라 네 가지 몸을 나타내셨을 뿐이다. 네 가지 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부류에 따라 거두고 교화하시니, 육도사생六道四生201)의 한량없는 갖가지 몸으로 널리 나타나신다.
국한시켜 논한다면 『화엄』은 아함시에 포함되지만,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화엄시는 오시五時 모두에 길게 통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 경에서는 “항상 설하시어 설하지 않는 때가 없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88]
佛憫鈍根人 부처님은 둔한 근기의 사람들이
貪著小三藏 소승의 삼장교에 탐착하여
謂是究竟法 구경의 법이라 여기고서
不生樂大心 대승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음이 가련하여
[89]
欲令入大乘 대승으로 들어오게 하고자
八載說方等 8년 동안 방등경을 설하시어
彈偏以褒圓 편벽됨을 꾸짖고 원융함을 기리시어
斥小而歎大 소승을 배척하고 대승을 찬탄하셨네.
[90]
毁訾二乘人 이승의 사람들을 꾸짖으시니
如焦芽敗種 타 버린 싹, 썩은 종자처럼
是斷佛種者 이들은 부처님 종자를 끊은 자들이니
諸佛所難化 모든 부처님도 교화하기 어렵다 하셨네.
[91]
二乘聞此語 이승의 사람들 이 말씀을 듣고
泣動大千界 대천세계가 진동하도록 슬피 울면서
廻心耻小法 소승법을 부끄러워하고 마음 돌려서
而生慕大志 대승법 흠모하는 마음을 일으켰다네.
[92]
如子不畏父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雖出入其門 비록 그 문을 출입하지만
猶謂客賤人 여전히 천한 나그네라 여기고
止宿草庵中 초막에 머물러 지내는 것과 같더라.
제3 방등시方等時에는 반자교에 대비되는 만자교를 설하시고, 사교四敎를 모두 설하시어 편벽된 소승을 지탄하고 배척하며 원만한 대승을 칭찬하고 찬양하셨다. 이승의 사람들이 듣고는 소승을 부끄러워하고 대승을 흠모하여 통교의 이익을 얻었다. 이승을 꾸짖는 이야기는 『정명경淨名經』 202) 등에서 설한 것과 같다.
예컨대 저 가난한 아들이 그 아버지의 집에 와서 똥을 치우면서 20년이 지나자, 장자가 “너는 내 아들과 같다.”라고 말하였으므로 그 집 문 안으로 들고 나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여전히 문 밖 초막에서 머물러 지내는 것과 같더라는 것이다. 이승도 그러하거늘 비록 방등의 대승법을 들었더라도, 그것은 보살의 일일 뿐 자신의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소승을 돌이켜 대승으로 향하려 하지 않고 여전히 아라한의 경지에 머문다는 것이다.
[93]
次經廿二年 다음으로 21년에 걸쳐서
說諸部般若 여러 부의 반야경을 설하시니
諸法皆淸淨 제법은 모두 청정하여
色空無罣礙 색과 공은 서로 걸림이 없다 하시네.
[94]
佛說法度生 부처님께서 법을 설해 중생을 제도하시지만
而無聞說者 설법을 듣는 이도 없고 설하는 이도 없으며,
菩薩行六度 보살이 육바라밀을 행하지만
亦無能所相 행하는 이도 받는 이도 상相이 없다네.
[95]
求佛以色聲 색과 음성으로 부처를 구하면
是人甚邪倒 그 사람은 매우 삿되고 전도된 자이며
觀法離人我 모든 것에 인아人我가 없음을 관찰하면
乃名眞佛子 곧 참된 불자라 하시네.
[96]
佛說如是義 부처님께서 이런 뜻을 설하시고
加空生身子 공생(수보리)과 신자(사리불)에게
轉敎諸菩薩 여러 보살들에게 가르침을 전하여
令知法寶藏 모든 법보장法寶藏를 알게 하라 하시네.
[97]
菩薩聞是法 보살들이 이 법을 듣고
日夜勤精進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得受諸佛記 여러 부처님들의 수기를 받으니
當成無上道 장차 위없는 도를 이루리라 하시네.
[98]
而彼二人等 그 두 사람은
雖能爲他說 비록 타인을 위해 설하였으나
以爲非己分 자신의 분수는 아니라고 여겨
永無希取想 취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네.
[99]
如子受父勑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명을 받아
領知諸寶藏 모든 보배 창고 맡게 되었지만
猶未捨劣心 여전히 열등한 마음 버리지 못해
無懷取一喰 한술 밥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처럼.
제4 반야시般若時에는 공空의 이치만을 설하여 존재하는 모든 상相을 타파하셨다.
‘제법’이란 일체 세간의 오온(陰)·18계(界)·12처(入), 그리고 삼승의 사제(諦)·12인연(緣)·육바라밀(度), 나아가 제불의 10력十力과 보리菩提를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법들은 모두 다 청정하여 둘이 없고 차별도 없다.
그러므로 『대반야경』에서 말한다.
“오온이 청정하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의 지혜가 청정하고, 나아가 모든 부처님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도 청정하다.”
『금강경』에서 말한다.203)
“만일 색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일 뿐 여래를 볼 수 없다.”204)
“일체의 모든 상을 여읜 것을 곧 부처라 한다.”205)
“보살은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한다. ‘내가 무량한 중생을 열반에 이르게 하였으나, 한 중생도 열반에 이른 이가 없다’라고. 왜 그러한가. 만일 보살에게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206)이 있다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207)
『반야론』에서 말한다.
“법을 설한다는 것은 설하는 바도 없고 보이는 바도 없으며, 법을 듣는다는 것은 들은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다는 것이다.”208)
『정명경』에서 말한다.
“평등한 진법계眞法界에서는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신다.”
‘공생空生’은 수보리(ⓢ Subhūti)를 말한다. 그가 태어났을 때 집안의 창고가 모두 텅 비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신자身者’는 사리불(ⓢ Śāriputra)을 말한다. ‘사리舍利(ⓢ Śāri)’는 어머니의 성이며, ‘불弗(ⓢ putra)’은 아들이란 말의 번역이다. 그의 어머니의 몸이 아름다웠으므로 천축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신자’라고 불렀다.209)
수보리는 해공제일解空第一이요, 사리불은 지혜제일智慧第一이다. 이 두 사람은 반야의 의미를 쉽게 이해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반야의 법을 이 두 사람에게 가피하셔서 보살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법장法藏을 알게 하시어 마음이 점차 통달하여 커지도록 하셨다. 마치 저 가난한 아들이 그 아버지의 명을 받아 모든 물건을 알아서 관리하게 된 것과 같다. 그렇지만 한술의 밥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자신은 하열하다는 마음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00]
佛知機已熟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가 익은 것이
如癰將欲潰 마치 종기가 곧 터지려는 것 같아서
久默之本懷 오래도록 침묵했던 본마음을
正當可暢時 바로 펼쳐야 할 때가 왔음을 아시고
[101]
次至靈鷲山 다음은 영취산으로 가시어
三周說法華 삼주三周210)로 『법화경』을 설하셔서
開權顯眞實 방편을 열어 진실을 드러내고
會三歸一乘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가게 하셨네.
[102]
諸法本寂滅 모든 법은 본래 적멸하고
世間相常住 세간 모습은 항상 머문다 하시니
龍女頓成佛 용녀가 단박에 성불하고
聲聞受佛記 성문은 부처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네.
[103]
天人及鬼畜 천신과 인간, 아귀와 축생
乃至蜎蜚類 나아가 벌레들까지
一切有心者 마음 있는 모든 중생들
無一不成佛 성불하지 못하는 자 하나도 없더라.
[104]
當知佛知見 부처님의 지견知見이
藴在衆生心 중생 마음속에 쌓여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盡令開悟入 모두에게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게 하시고
一大事圓成 일대사인연을 원만히 이루셨네.
[105]
父知子心大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 커진 것 알고
命聚王與族 왕과 친족들 모이도록 명하여
家珍悉以付 집과 보물을 모두 넘겨 주시니
相對共歡娛 서로 함께 기뻐함과 같더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오직 일대사인연을 위해서이다. 무엇을 ‘일대사인연’이라고 하는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게 하고자 한 것을 말한다. 하지만 중생의 근기가 같지 않아서 처음 화엄시부터 반야시까지 그 중간에 먼저 오로지 대승을, 그 다음에는 오로지 소승만을 설하고, 혹은 반자교과 만자교를 견주고, 혹은 권교와 실교를 서로 가르면서 이렇게도 설하시고 저렇게도 설하시면서 모든 법을 널리 연설하셨다.
그 모든 것이 근기에 맞추어 중생을 이롭게 함에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지만, 본래 품은 뜻은 아니셨다. 이에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어 삼승과 9계九界211)의 중생들이 모두 일불승一佛乘212)을 깨닫게 하고서야 비로소 본마음을 드러내시니, 일대사인연이 여기에서 오묘하고 지극해졌다.
‘삼주三周’란 법설주法說周213)·비유주譬喩周214)·인연주因緣周215)를 말한다. 상근기는 법설주에서 부처님의 지견을 깨달아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다. 중근기는 미혹을 품고 아직 버리지 못하므로 다시 불타는 집이나 세 가지 수레의 비유를 설하신 후에야 비로소 깨달아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다. 하근기는 여전히 알지 못하므로 다시 과거세의 인연을 설하신 후에야 비로소 깨달아 들어가서 모두가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다.
‘방편을 열어 진실을 드러낸다(開權顯實)’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사시四時(화엄시·녹원시·아함시·반야시)와 삼교三敎(장교·통교·별교)의 방편을 열어서 일불승의 실상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중생의 삼독에 물든 망심을 열어서 곧 모든 부처님의 삼덕三德216)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간다(會三歸一)’라는 것은, 삼승을 융화하여 일불승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천태 지자 대사는 본문本門과 적문迹門 두 가지로 해석하였다. 이를테면 『법화경』 「서품」부터 「안락행품安樂行品」까지 14품은 적문이라 하고, 「종지용출품從地踊出品」부터 경의 마지막까지 14품은 본문이라 한다. 모든 경에도 본문과 적문이 있다. 적멸도량에서 이루신 법신과 보신을 본문으로 삼고, 본문에서 일어난 승응신과 열응신 두 가지를 적문으로 삼는다. 지금 경에서는 진점겁塵點劫217) 이전에 본래 도량에 앉아서 이루신 삼신을 본문으로 삼으며,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218)부터 그 중간과 오늘날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 이루신 삼신을 모두 적문으로 삼는다.
『묘락기妙樂記』219)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들은 이 경에서 본문과 적문을 보지 못하고, 다만 수승함을 쫓아서 오로지 법신 구하는 것만을 안다. 이와 같이 법신과 본문이 다른 경전들과 함께 공통된 것이라고 한다면, 수승함이 바뀌어 열등함이 될 것이다. 만일 구원겁 이전을 본문이라 한다면 가까운 것을 적문이라 말하는 것에는 과실이 없겠지만, 만일 다만 법신이라고만 한다면 오히려 중간220)도 잃거늘 하물며 구원겁 이전의 본문이야 어떠하겠는가.”221)
『묘법연화경현의妙法蓮華經玄義』222)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적문은 다른 경전들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본문은 다른 경들과 한결같이(一向) 매우 다르다.”223)
해석하여 말하면, 적문이 다른 경전들과 같다는 것은 여러 부部의 경전들 중에도 원교를 말한 것이 있기 때문이고, 다르다는 것은 여러 부의 경전들 중에는 삼승을 겸한 가르침도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한결같이 매우 다르다는 것은 여러 부의 경전들에서는 구원겁久遠劫 이전의 본문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06]
說迹事已周 적문迹門의 일 두루 설하시고
欲顯本地壽 본지本地의 수명 드러내시고자
召致本眷屬 본지의 권속을 불러 모아
說所未曾說 일찍이 설하신 바 없는 것을 설하시네.
[107]
佛從成佛來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이래
無量僧祗劫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나왔으니
刹塵刹塵數 티끌의 수에 다시 티끌의 수 곱하더라도
其劫過於是 그 한없는 시간은 이보다 더 오래되었다네.
[108]
一生補處尊 일생보처一生補處224) 보살도
尙不窮其限 오히려 그 끝을 다 알지 못하거늘
況餘諸薩埵 하물며 다른 보살들이야
焉能知少分 어찌 조금인들 알 수 있으랴.
[109]
雖云入涅槃 비록 열반에 드셨다 해도
是亦非眞滅 이 또한 진짜 열반에 드신 것은 아니니
如醫去他國 마치 한 의원이 타국으로 가 버리는 것이
爲治狂子故 미친 아들을 고치기 위한 것과 같더라.
「여래수량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께서 ‘내가 성불한 이래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이 되었다. 비유한다면 5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를 티끌로 만들어 5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 국토를 지날 때 한 티끌을 떨어뜨려 이와 같이 계속하여 그 티끌이 모두 다했다면, 이 국토들의 수를 알 수 있겠는가?’ 하시니, 미륵보살 등이 함께 부처님께 ‘이 모든 세계는 한량없고 끝이 없으므로 저희들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세계를 티끌에 닿았거나 닿지 않았거나 모두 티끌로 만들어 한 티끌을 한 겁으로 삼아도, 내가 성불한 이래로 지나온 겁수는 다시 이 숫자를 넘어선다. 이후로부터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교화하며 다른 한량없는 국토에서도 중생을 이롭도록 인도한다’라고 하셨다.”225)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양의良醫가 있어 여러 가지 병을 잘 다스렸는데, 이 사람에게는 자식들이 많았다. 어느 날 일이 있어 멀리 다른 나라에 갔는데, 자식들이 그 뒤에 독약을 마셔 버렸다. 이때 그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자식들을 보니, 본심을 잃거나 아직 잃지 않은 자식이 있었다. 처방에 따라 약을 달여 그들에게 주고서 먹게 하니, 본심을 잃지 않은 자식은 약을 먹고 병이 나았지만, 본심을 잃은 자식들은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방편을 써서 이 약을 먹게 해야겠구나.’
그리고는 곧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미 늙어 죽을 때가 되었다. 이 좋은 약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두니 너희들이 찾아서 먹도록 하여라.’
이렇게 가르치고는 다시 타국으로 가서 사람을 보내 ‘그대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라고 알리도록 하였다. 이때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버지가 계신다면 가엾이 여기고 보살펴 주시겠지만, 지금은 우리를 버리시고 멀리 타국에서 돌아가셨다. 외로운 고아가 되었구나. 다시는 믿고 의지할 곳이 없구나(無復恃怙).226) ’
이렇게 생각하고는 마침내 마음이 깨어나 그 약을 먹으니 병이 모두 치유되었다.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세상에 오래 머무신다면 박복한 중생들이 부처님은 항상 계신다고 보고 싫증내고 게으른 생각을 품어 만나 뵙기 어렵다는 생각이나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실제로 입멸하지 않으면서도 멸도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227)
‘본지本地의 권속’이란 부처님께서 적문을 모두 설하시고 본문의 경지를 나타내시고자 할 때, 본문 시절의 제자들이 땅에서 솟아나왔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공덕의 뿌리를 심은 지 오래되었고 모든 삼매를 갖추었으며 큰 신통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가야성伽耶城에서 성불하고 교화하신 이들이 아니다. 마치 아버지는 젊은데 아들이 늙은 것과 같아서 중생들이 믿지 않게 될까 봐 ‘여래의 수명은 장구하고 영원하다’ 말씀하시어 중생들의 의심을 풀어 주시고 10신十信의 큰 이익을 얻게 하셨다.
[110]
佛說壽命時 부처님께서 수명을 말씀하실 때
得益者無數 이익을 얻은 이가 셀 수 없이 많았으니
八界微塵衆 팔계228)의 티끌 수 같은 중생들이
皆發菩提心 모두 보리심을 일으켰다네.
[111]
復有諸菩薩 그리고 여러 보살들은
增道損生多 도道를 늘리고 생生을 줄인 이 많았으며
或證三賢位 어떤 이는 삼현의 지위229)를 얻었고
或登十聖地 어떤 이는 10성의 경지230)에 올랐네.
[112]
或入金剛心 또 어떤 이는 금강심에 들기도 하고
鄰于大覺地 대각의 경지에 가까워지기도 하니
獲斯勝利者 이와 같이 수승한 이익을 얻은 이
大千刹塵數 대천세계 국토의 티끌 수와 같았네.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께서 수명이 장구하고 영원함을 말씀하실 때 680만억 나유타 항하사만큼 많은 중생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천 배나 많은 보살들이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었고, 나아가 한 사천하의 티끌 수만큼 많은 보살들이 한 생에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231)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수명이 장구하고 영원하다는 말을 듣고 이와 같이 한순간이라도 믿음을 낸다면, 그가 얻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을 위하여 80만억 나유타 겁 동안 5바라밀을 행하더라도, 이 공덕을 앞의 공덕에 견주어 보면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숫자와 비유로도 미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에게 이와 같은 공덕이 있다면,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는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232)
『묘법연화경현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본지本地의 공덕에 대해 듣는 것은 더욱 깊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고, 앞에서 말한 적문迹門에서 얻는 이익에 견줄 수가 없다. 무엇 때문인가? 부처님의 경지는 더욱 깊고 공덕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보살들이 도道를 늘리고 생生을 줄여【도는 삼덕三德이며, 생은 무명無明을 말한다.】 궁극의 지위에 이른다.”233)
『백련결사문白蓮結社文』234)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중생도 구원久遠의 수명에 대해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하였는데, 우리들은 이러한 후 5백 세에 태어나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신 본지의 수명에 관해 듣고 수승한 인연을 맺었으니, 이 어찌 경하할 일이 아니겠는가.”
[113]
如是圓妙法 이와 같이 원만하고 오묘한 법
多年默不說 여러 해 동안 묵묵히 말씀하지 않으시다가
今朝乃開演 오늘에야 비로소 열어 펼치시니
如王解髻珠 왕이 상투 속 구슬을 풀어 줌과 같았네.
[114]
是名圓中圓 이것을 원만함 중의 원만함
亦爲王中王 왕 중의 왕
醍醐之上味 제호의 으뜸가는 맛
衆病之良藥 여러 가지 병에 좋은 약이라 하네.
[115]
一念隨喜者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 잠깐 일어나더라도
其福不可限 그 복덕은 한량이 없을 것이니
佛說是經時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신 것은
人間歲八周 인간 세상 햇수로 8년이었네.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유한다면 힘센 전륜왕이 전쟁에서 공이 있는 자에게 코끼리·말·수레와 논밭과 집 여러 가지 상을 내리고, 혹은 의복과 갖가지 진귀한 보물과 노비와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하사하는 것과 같다. 만일 용맹하고 건장한 이가 어려운 일을 해낸다면 왕은 상투 속에 있는 밝은 구슬을 풀어 그에게 준다. 여래도 그러하니 모든 세간의 법왕이 되어 대자비로 여법하게 세간을 교화할 때, 모든 사람이 온갖 번뇌를 받다가 해탈을 구하고자 여러 마구니들과 싸우는 것을 보면, 이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설한다. 큰 방편으로 이러한 여러 경전을 설하고 그 중생이 그 힘을 얻었음을 알고서 마지막에 이 『법화경』을 설한다. 이는 마치 왕이 상투 속의 밝은 구슬을 풀어 주는 것과 같다. 이 경은 존귀하여 여러 경전 가운데 으뜸이라, 내가 항상 간직하고 보호하여 함부로 열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때가 되었으므로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겠노라.”235)
‘원만함 중의 원만함(圓中圓)’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삼시 가운데 원만한 뜻이 『법화경』의 원만함과는 둘도 없고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겸하기도 하고(兼) 편벽되기도 하고(但) 상대되기도 하고(對) 아우르기도 하는(帶) 거친 법이었다면【화엄시는 별교를 겸하여 원교를 설한 것이고, 녹야시는 다만 삼장교만을 설한 것이고, 방등시는 반자교에 상대하여 만자교를 설한 것이고, 반야시는 통교와 별교 둘을 아우르면서 바로 원교를 설한다.】, 모름지기 『법화경』에 이르러 열고(開) 회통하고(會) 없애 버린 후에야(廢了) 비로소 오묘한 법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거친 법을 바꾸어 오묘한 법을 이루었으니, 그 공덕은 『법화경』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원만함 중의 원만함이며 오묘함 중의 오묘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왕 중의 왕’이라는 것에 대하여 『법화문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 통일되기 전에는 한 나라에 두세 명의 작은 왕이 각각 백성을 다스려서 대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과 같다. 통일된 이후에는 다 함께 한 가지 교화를 받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두 임금이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다. 이제야 비로소 여러 작은 왕들을 없애고 오직 한 왕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방편교주에게도 왕이라는 이름이 없지 않다.”236)
‘제호’라는 것에 대하여 『묘법연화경현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소는 부처님을 비유하고, 젖은 화엄을 비유하고, 낙소는 삼장을 비유하고, 생소는 방등을 비유하고, 숙소는 반야를 비유하고, 제호는 법화와 열반을 비유한다.”237)
‘병에 좋은 약(病之良藥)’이라고 하는 것은 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경은 염부제 사람들의 병에 좋은 약이 된다. 어떤 사람이 병이 났을 때 이 경을 들으면, 병이 곧 소멸하여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238)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늙지 않는다’라는 것은 즐거움이며, ‘죽지 않는다’라는 것은 항상하다는 것이다. 즉 이 경을 듣는 사람들은 항상하고 즐겁다는 견해를 얻어서 고요히 마음에 두어 두려워하거나 꺼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239)
‘따라서 기뻐한다(隨喜)’라는 것에 대하여 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따라 기뻐하고 나서 법회에서 나와 다른 곳, 즉 성城·읍邑·항맥巷陌·취락聚落·전리田里 등에 이르러 그가 들은 대로 능력껏 연설하면, 다른 사람이 듣고 난 후 또한 따라서 기뻐하면서 가르침을 전한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50번째에 이른다면, 그 50번째 사람이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숫자와 비유로도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만일 4백만억 아승기 세계의 육도 중생들에게 어떤 사람이 복을 구하기 위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즐거움의 도구를 모두 공급하여 낱낱의 중생들에게 염부제 가득 칠보와 보배로 만들어진 궁전과 누각 등을 이와 같이 보시하여 80년을 채우고, 또 법을 펴고 교화하여 동시에 모두 수다함도를 얻고 아라한도까지 얻게 하더라도, 이 사람의 공덕은 50번째 사람이 『법화경』의 한 게송을 듣고 따라서 기뻐한 공덕에 견주어 보면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240)
천태 지자 대사는 공덕을 비교하고 헤아려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염부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복은 서방의 구야니주瞿耶尼洲 한 사람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서방의 구야니주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복은 동방의 불파제주弗婆提洲 한 사람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이 세 천하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복이 북방의 울단월주鬱單越洲 한 사람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이 네 천하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복이 사천왕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사천왕의 복이 한 제석천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나아가 육천왕六天王241)의 복이 한 범천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범천의 복이 소승인 성문(小聖)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소승인 성문의 복이 연각(體聖)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연각의 복이 소보살에 미치지 못하고, 소보살의 복이 대보살의 복에 미치지 못하고, 대보살의 복이 이러한 50번째 사람이 『법화경』을 듣고 따라서 기뻐한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저들은 부처님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며,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며, 원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최후의 과위에 머물지라도 우리들 초발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이치가 이와 같다.
또 이 50번째 사람이 처음에 다만 한순간 이해하고 스스로 기뻐하고 타인을 기쁘게 할 뿐 아무런 실천 수행(事行)이 없어서 그 은혜가 타인에게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가 얻은 공덕은 이와 같다.
그러므로 ‘호견好堅【나무 이름】242)은 땅에 있을 때 그 싹이 이미 백 아름이며, 빈가頻伽【새 이름】243)는 알 속에 있을 때 그 소리가 여러 새들보다 수승하다’ 하거늘, 하물며 맨 처음 법회에서 듣고 따라서 기뻐한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억억만 겁부터 불가사의 겁에 이르도록 시간이 지나서 이 『법화경』을 듣는다면, 겁화의 불 속에 마른 풀을 지고 들어가게 하여도 들어가서 타지 않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열반에 든 뒤 오탁악세에 있어서 잠시라도 이 경을 읽는 것은 실로 어려운 것이다. 이 경을 수지하기 어려우니, 만일 잠시만 수지하고 있어도 이와 같은 사람은 여러 부처님의 찬탄을 받을 것이다. 이를 ‘계행을 잘 지키는 수행자(持戒行頭陀者)’라 한다. …….”244)
[116]
化緣旣云畢 교화의 인연이 이미 다하여
涅槃時已至 열반에 드실 때가 이르렀으니
末後壬申歲 마지막 순간은 임신년
二月十五日 2월 15일이었네.
[117]
即趣拘尸城 곧 구시나가라성
娑羅雙樹間 사라쌍수 사이로 가시어
叮嚀誨衆云 간곡히 대중을 깨우치시고
我今當入滅 “내가 곧 열반에 들리라.” 하시네.
[118]
諸有所疑者 “의문 나는 것이 있거든
應當來問耳 와서 물으라.” 하시니,
承勑競諮問 분부 받고 다투듯 여쭙는 것
一一隨決答 하나하나를 곧바로 답해 주셨네.
[119]
一切天人衆 일체의 천신과 인간들이
爭陳最後供 다투듯 마지막 공양을 올렸으나
餘皆默不許 다른 것은 모두 말없이 받지 않으시고
唯受純陁供 순타의 공양만을 받으셨다네.
『열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께서 2월 15일 이른 아침 광명을 놓아 대천세계를 비추시고, 시방의 육도 중생까지 비추시니, 광명을 받은 이들 모두 죄가 소멸하였다. 또 54종류의 대중이 일시에 구름같이 모여들어, ‘슬프구나! 슬프구나!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지혜의 해(慧日)가 사라지는가?’라며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모든 천신들의 왕과 인간들의 왕이 앞다퉈 공양을 준비했지만 모두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만 순타 장자의 공양만을 받으셨다.”245)
『경률이상經律異相』24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순타라는 이름의 장자가 있었는데, 그가 세존께 울면서 말하기를, ‘저희들은 이제부터 주인도 없고 구호해 주실 이도 없이 가난하고 외롭게 되었습니다. 여래에게서 장래의 양식을 구하옵나니, 바라옵건대 저희들의 보잘것없는 공양을 받으신 후에 열반에 드시옵소서’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가난을 끊어 없애는 위없는 법우法雨를 그대들의 밭에 뿌려 법의 싹이 돋아나게 하고, 그대에게 보시바라밀이 구족하도록 하리라’ 말씀하셨다.
이때 인간과 천신이 모두 와서 공양을 올렸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두 받지 않으셨다. 대중들이 ‘기이하구나! 순타여. 큰 복덕을 성취하였구나. 우리들의 공양은 다 거절되었구나’라고 외쳤다.
그러자 세존께서 대중들이 바라는 것을 만족시키고자 하나하나의 터럭 구멍에서 한량없는 부처님을 나타내시어 낱낱의 부처님이 제각기 한량없는 비구들을 거느리고 모두 다 공양을 받게 하시고, 석가여래께서는 몸소 순타가 올린 공양만을 받으셨다.”247)
[120]
佛慮末代衆 부처님께서는 말법시대의 중생이
於法起斷見 법에 대해 단견을 일으켜
夭傷其慧命 그 지혜의 수명을 일찍 단절시키거나
亦亡失法身 법신마저 잃어버릴까 염려하셨네.
[121]
更設三種權 다시 세 가지 방편을 베푸시어
以扶一圓實 한 가지 원만한 진실 붙들고자 하시니
一切有佛性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고
一切法常住 일체법은 영원히 머문다 하셨네.
[122]
屠兒廣額者 광액廣額이라는 백정이
立地頓成佛 서 있는 자리에서 단박에 성불하였고
五逆阿闍王 오역죄248)를 지은 아사세왕阿闍世王이
罪滅而妙證 죄를 멸하고 오묘한 법을 얻었네.
[123]
是知涅槃法 그러므로 열반법은
罪福本平等 죄와 복에 대해 본래 평등함을 알라.
若欲疾成佛 속히 성불하기를 원한다면
應須學此法 반드시 이 법을 배워야 하느니라.
『열반경』의 의미는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번거롭게 기록하지 않는다.
광액廣額이라는 백정은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 바로 도살하는 칼을 놓고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성불하였다.
아사세왕은 조달調達의 말을 듣고 아버지 빈비사라왕(甁沙王)을 살해하였다. 마음이 곧 괴롭고 열이 나서 온몸에 종기가 돋았는데, 천하의 명의들도 고치지 못했다. 그런데 기바耆婆249)라는 대의원이 왕에게 고하기를, “이 병을 치료하고 싶다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만 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곧 그 말에 의지하여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죄의 성품은 공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보리심을 내자 몸에 있던 종기가 모두 치유되었다고 한다.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오시五時에 설법하신 차례가 이와 같다.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 근기에 따라 갖가지 법을 설하시지만, 네 가지 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네 가지 문이란, 첫째 있다는 주장(有門), 둘째 공하다는 주장(空門), 셋째 있기도 하고 공하기도 하다는 주장(亦有亦空門), 넷째 있지도 않고 공하지도 않다는 주장(非有非空門)이다. ‘있다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공하다’라는 것을 설하시고, 나아가 ‘있기도 하고 공하기도 하다’라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까지 교화하기 위하여 ‘있지도 않고 공하지도 않다’라고 설하신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정하게 주장한 것이 없으셨고, 법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다만 근기에 따라 설해 주실 뿐이다.
오호라. 지금은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이미 오래되어서 때는 바야흐로 투쟁뇌고鬪爭牢固250)의 시기이니, 중생들의 집착하는 마음이 굳고 단단해져서 너와 나를 다투기만 하고 여래께서 보이신 방편의 큰 뜻을 근본으로 삼지 않는구나. 한 근원의 법에서 갈라져 서로 다투다가 서로 해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슬프고 슬픈 일이로다. 이제 어리석은 내가 조사의 말씀을 빌어 한 가지 비유를 내놓으니, 여러 가르침을 통틀어 논함으로써 여러 논쟁을 불식시키고자 한다.
비유한다면 큰 바다가 사대주에 스며들어 천하 어디에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평지나 고원이나 산꼭대기까지 땅을 파면 물이 나오고 돌 틈새를 만나면 솟아나와 샘이 된다. 샘들이 합쳐져서 냇물이 되고, 냇물들이 합쳐져서 강이 되고, 강들이 합쳐져서 큰 바다에 흘러드니, 모두 한맛이다. 이것을 ‘근원으로 돌아갔다(還源反本)’라고 한다.
저 여러 가지 물들에 각각 그 이름이 있어 무슨 샘이다, 무슨 냇물이다, 무슨 강이다 하지만, 그 근원은 오직 한 바다일 뿐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물들이 하나같이 바다로 돌아가는데, 어찌 크고 작고 깊고 얕음의 차별된 이름이 있겠는가.
법문도 그러하다. 여래께서 처음 정각을 이루시고 먼저 화엄을 설하셨으나, 소승의 근기들은 귀머거리와 같아서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 이에 자비심을 내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우선 방편을 베푸시어 아함을 설하시고, 다음으로 방등을, 다음으로 반야를, 다음으로 법화와 열반을 설하셨다. 이러한 법문들은 그 이름이 비록 다르지만, 의미는 모두 하나이다. 왜 그러한가? 마지막으로 영취산에서 방편을 열고 실상을 드러내고 일체 법을 한맛으로 융합하시어 평등하고 차별이 없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모든 법 그대로가 실제의 모습이며 세간의 모습은 항상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천차만별의 모든 법들이 오묘한 법이 아닌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화엄에 의거하면 일체 법이 화엄 아닌 것이 없으며, 법화에 의거하면 일체가 법화 아닌 것이 없으며, 반야나 방등에 의거하더라도 모두가 또한 그러하다.
슬프다! 사람들은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화엄에 의탁하는 자들은 “화엄이 근본이고 나머지는 지말이다.” 말하고, 법화를 좋아하는 자들은 “법화가 왕이고 나머지는 백성이다.” 말하고, 다른 경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이 자신만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고 말한다. 스스로 미혹되고 타인도 미혹하게 만드니, 미혹됨이 매우 깊구나.
만일 대승의 종지에 준한다면 편벽한 집착을 떠나 걸림 없이 융통해야 하거늘, 이러한 집착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대승의 수행자라 하겠는가?
옛날부터 대종사들이 이러한 의미를 알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법을 널리 펴려고 굳이 시비를 나누어 남의 것을 억누르고 자기 것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것은 곧 방편을 쓰는 대보살이 타인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니, 하물며 여래 같은 큰 성인께서 설하신 일대 경장經藏 곳곳에서 “이 경이 으뜸이다.” 하신 것은 어떠하겠는가. 다만 그 경을 유통시키기 위하여 그러셨을 뿐이다.
또한 선禪을 숭상하는 어떤 사람은, “선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어서 최고의 법이라 하니, 이는 경전의 가르침만을 헐뜯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교敎 가운데 오롯이 보이는 마음의 요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미혹이 있는 것이다. 대개 이것은 예로부터 경전을 보지 않은 잘못이니,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
게다가 우리 부처님께서 널리 설하신 여러 경전의 가르침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진실된 이치를 드러내고자 하였을 뿐이다. 마치 경에서 “비로자나의 오묘한 몸이 일체의 곳에 두루하고 일체 제법은 불법佛法이 아닌 것이 없다.”라고 설한 바와 같다. 따라서 문자를 떠나서 따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자를 떠나 진리를 구한다면, 마치 금 그릇을 떠나 금을 찾는 격이다. 진리가 문자를 떠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소승의 삼장을 배우는 자이며, 문자와 진리가 둘이 아님을 관한다면 비로소 대승의 수행자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천태 지자 대사는 『묘법연화경현의』에서 ‘경經’ 한 글자를 풀이하면서 육진六塵 모두를 경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한 점의 검은빛은 한량없는 가르침(敎)과 한량없는 수행(行)과 한량없는 이치(理)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글자가 글자 아님을 알고, 글자 아님이 글자 아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두 극단에 치우침이 없으면 ‘청정하다(淨)’ 하고, 청정하면 업이 없으므로 ‘자재하다(我)’ 하며, 자재하면 괴로움이 없으므로 ‘즐겁다(樂)’ 하며, 괴로움이 없으면 생사가 없으므로 ‘항상하다(常)’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문자는 속제이며 문자가 아님은 진제이며, 문자가 아니고 문자가 아님도 아니라는 것은 하나의 진실한 진리이므로 일제一諦가 곧 삼제三諦요, 삼제가 곧 일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문자를 이해하면 손에 책을 들지 않아도 항상 이 경을 읽는 것이고, 입으로 소리 내지 않아도 여러 경전을 두루 암송하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으셔도 항상 범음이 들리는 것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법계를 널리 비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검은 문자는 모든 법의 근본이며, 청·황·적·백도 이와 같다. 그렇다면 색色으로 경經을 삼은 것이니, 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도 그러하다.”251)
『관심송경법觀心誦經法』25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 경인가? 책의 본문이 그것인가, 표지가 그것인가? 암송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염송하는 것인가, 입으로 염송하는 것인가, 잇몸이 부딪쳐 나오는 것인가? 내 몸은 있는 것인가, 내 몸은 없는 것인가? 염송하는 자는 누구인가? 찾아보아도 끝내 경을 염송하는 나는 있을 수 없다. 비록 염송되는 경이 없다고 하지만, 경의 본문을 이루는 종이·먹·글자가 있고, 비록 염송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나의 몸이 있다. 비록 안과 밖이 아니라지만 안과 밖을 떠나지 않았고, 비록 경의 본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경의 본문을 떠난 것도 아니다. 비록 마음이나 입으로 염송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과 입을 떠난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불가사의하고도 미묘한 삼관三觀253)이라고 한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모두 이것을 관하고 나오지 않으신 분이 없다. 문구 하나하나를 요달하면 모두 삼덕三德의 비밀스런 곳간이며, 독송하고 마음에 익히면 심성에 갖추어진 원융삼제圓融三諦254)가 훈습되어 일어난다. 어찌 문자를 떠나서 이치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오.”255)【이상은 조사의 말씀이다.】
이것으로 살펴보면 마음(心)과 교敎가 둘이 아닌데, 교 밖에 따로 전했다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이신 것을 가지고 ‘따로 전한 것(別傳)’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교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달마 스님에 이르러서 혜가慧可 스님에게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안하게 해 주리라.” 하셨던 것과 『혈맥론血脈論』이나 『관심론觀心論』256) 등의 논에서 보여 주신 것, 이것들이 어찌 교가 아니겠는가? 하물며 육조 혜능 선사도 『금강경』을 듣고 깨달으신 뒤 종풍을 크게 휘날리셨으니, 그것을 어찌 교 밖에 따로 전한 것이라 하겠는가?
또한 교에 의지하여 이치를 증득한 사람들은 전기에 모두 실려 있고, 그러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게송 하나를 보다가 본성을 회복한 이가 있고, 독송하다가 오묘한 깨달음을 얻은 이가 있고, 경을 서사하다가 지혜가 열린 이가 있고, 경전의 행수와 글자를 살피다가 통달하여 꿰뚫은 이가 있고, 경을 정수리에 이기만 하였어도 진리에 도달한 이가 있었다. 이와 같은 이익을 얻은 자들이 그 수를 알 수 없다.
마음 그대로 교이거나 교 그대로가 마음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기바耆婆가 독을 만지면 모두 묘약이 되고, 마하남摩訶男257)이 잡는 것은 보배 아닌 것이 없었으니, 안목 있는 사람은 비록 거친 언행 미치광이 말을 하더라도 모두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 있는 옛사람이 비록 교를 비난하는 말을 하더라도, 모두 집착을 없애려는 방편일 뿐 궁극의 뜻은 아니었다. 우리같이 눈먼 중생들은 옛 철인이 하신 방편의 말씀을 망령되게 믿어 오히려 본사이신 세존의 진실한 가르침을 훼손하고 있구나. 바라건대 이러한 미혹을 지닌 모든 이들은 고치기를 바란다. 만약 고치지 못하겠다면, 끝내 내가 어찌하겠는가.
[124]
佛說是經已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고
一朞能事畢 한평생 하실 일을 마치시니
法付妙吉祥 묘길상258)보살에게 법을 부촉하시고
背東右脇臥 동쪽을 등지고 오른쪽 옆으로 누우셨네.
[125]
安詳入涅槃 편안히 열반에 드시니
如薪盡火滅 마치 땔감이 다하여 불이 꺼지듯
住世七十九 세상에 머무신 79년 동안
設會三百餘 법회를 3백여 회나 베풀어 주셨네.
[126]
應身雖示滅 응신應身은 비록 멸함을 보여도
眞身本常住 진신眞身은 본래 자리 항상 머무니
如月墮淸晝 마치 대낮(淸晝 259) )이라 달이 지더라도
孤光留古躔 외로운 달빛 옛길에 머무는 것과 같네.
[127]
尒時大地震 그때 대지가 진동하고
諸天雨香花 모든 하늘에서 꽃비 내리니
一切四部衆 일체의 사부대중260)이
失心皆躃地 넋을 잃고 모두 땅에 쓰러졌다네.
『열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선남자들아, 스스로 그 마음을 닦아서 삼가고 방일하지 말라. 나는 지금 등의 통증이 여느 환자와 같으니, 문수사리여, 그대들은 대중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도록 하여라. 이제 큰 법을 그대 문수에게 부촉하노라’ 말씀하시었다.
나아가 가섭과 아난에게도 설법을 마치시고, 동쪽을 등지고 서쪽을 향하여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반열반般涅槃에 드셨다. 그때에 대지가 진동하고 강물이 모두 마르고 초목이 부수어졌으며, 어두운 곳이 크게 밝아졌고, 하늘에서 향기로운 꽃비가 내려 대중들 위에 흩어졌다. 그들 대중 가운데 부처님을 따라 열반에 든 자도 있었고, 넋을 잃거나 기절하여 땅에 쓰러진 자도 있었다. 이에 전륜왕의 법에 따라 부처님의 시신을 관에 안치하였다.”
『주서이기周書異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왕 52년 임신년 2월 15일에 폭풍이 홀연히 일어나더니 집이 뽑히고 나무가 부러지며 산천이 엎어지고 진동하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덮였는데, 서쪽에 흰 무지개 12줄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밤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태사 호다扈多에게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물으니, ‘서방에 큰 성인이 있었는데 열반에 드시니, 그 사라지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128]
摩耶下天來 마야부인 하늘에서 내려와
唯見金棺泣 금관을 보고 울기만 하시니
佛自棺中起 부처님께서 관에서 일어나
說偈以慰之 게송을 설하여 위로하시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마야부인에게 다섯 가지 시드는 모습(五衰相)261)이 나타나니, 아나율이 천상에 올라와 이 사실을 아뢰었다. 마야부인이 곧 내려와 부처님의 관과 의발과 주장자를 보시고 그것을 붙잡고 슬피 우시니, 부처님께서 관에서 일어나 “울지 마십시오.” 말씀하시고는 게송을 설하여 위로하셨다.
[129]
拘尸城中人 구시나가라성 사람들이
移棺欲入城 관을 성으로 모셔 오고자
力士十六人 열여섯 사람의 역사들이
▼(扌+舁)而無少動 메었으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더라.
[130]
棺自擧昇空 관이 저절로 들려 허공으로 떠올라
出入城四門 성의 네 문을 들어왔다 나갔다
遶城七帀下 성을 일곱 번 돌고서 내려오니
大衆交悲喜 대중들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더라.
구시나가라성 사람들이 모두 의논하여 힘센 이 열여섯 사람의 역사들이 부처님의 관을 들어 성안에 모셔 공양하기를 청하였다.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해 메었는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누룻다(阿尼樓豆)262)가 말하기를, “설사 성안 사람이 온 힘을 기울이더라도 능히 들지 못할 것이다. 세존께서 평등하게 천신과 인간을 복되고 이롭게 하시려는 뜻이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관이 저절로 들려 허공중에 7다라수多羅樹263) 높이로 떠올라 구시나가라성 서문으로 들어왔다가 동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왔다가 북문으로 나가서 성을 일곱 번 돌고는 본래 자리로 돌아와 7일을 지나 니련선하를 건너고 천관사天冠寺에 멈추었다. 대중들이 부처님 시신을 붙잡고 관에서 모셔내어 평상 위에 모시고 향기로운 물로 씻겨 드리고, 안에는 도라면兜羅綿264)으로 싸고, 밖에는 아름다운 모포로 싸서 여법하게 묶고 원래대로 관에 모셨다. 향유를 가득 붓고 전단나무 더미에 놓고서 다비식을 봉행하고자 불을 붙였으나 모두 꺼져 버렸다. 이에 대중이 “부처님께서 끝내지 못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자, 제석이 “가섭을 기다리시는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131]
迦葉在他國 가섭이 타국에 있다가
晩知急急來 뒤늦게 알고 급히 와서
欲見懇三請 뵙기를 간절히 세 번 청하니
乍現雙趺示 잠깐 두 발꿈치를 내보이시네.
이때 가섭은 파파국派派國에 있다가 니건자尼乾子265) 무리가 하늘 꽃을 쥐고 있는 것을 보고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셨음을 알고는 급히 천관사로 갔다. 부처님 시신을 뵙고자 세 번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에 홀연히 관이 열리면서 두 발을 드러내시더니 잠깐 사이에 곧 감추셨다.
[132]
將欲闍維時 다비를 봉행하려 할 적에
三加火輒滅 세 번 불을 놓았으나 곧 꺼지고
如來三昧火 여래의 삼매의 불꽃이
從胷出自焚 가슴에서 나와 스스로 태우네.
[133]
所有設利羅 부처님 몸에 있던 설리라設利羅
其數不可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는데
天龍及人王 천신과 용 그리고 인간의 왕이
爭分各起塔 앞다퉈 나누어서 탑을 세웠네.
이때 힘센 역사들이 횃불을 들어 다비하고자 하나 불이 곧 꺼져 버렸다. 이처럼 두번 세번 거듭하여도 끝내 태우지 못했다. 가섭이 “큰 성인의 보배로운 관은 삼계의 불로 태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너희들 힘으로 태울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에 여래의 가슴에서 삼매의 불이 즉시 소리 내며 일어나 관 밖으로 내뿜어 차츰차츰 다비하여 7일이 지났다.
‘설리라設利羅’는 사리舍利(ⓢ śarīra)라고도 한다. 여기 말로 하면 시신의 유골이다. 다비가 끝난 뒤 영골靈骨을 나누어 부수니, 낱알만 한 크고 작은 것이 오색을 갖추었는데 그 수가 한량이 없었다. 제석이 오른쪽 어금니 하나와 사리를 얻어 하늘로 올라가 탑을 세웠고, 8대국266)의 왕들도 고르게 나누어 가지고 제각기 본국으로 돌아가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그래도 숯과 재가 남아 있으므로 회탑灰塔과 탄탑炭塔이라고 하여 오래도록 공양하였다.
[134]
後有阿育王 훗날 아육왕이
分布成金塔 나누어서 금탑을 세우니
數八萬四千 그 수가 8만 4천
遍安一天下 온 천하에 두루 안치되었네.
여덟 나라의 국왕이 사리를 똑같이 나누었는데, 아사세왕은 8만 4천 과顆를 얻어서 금으로 만든 상자에 넣고 백세등百歲燈을 만들어 갠지스 강에 모셔 두었다.
『아육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흙장난을 하는 두 동자를 보았다. 두 동자는 부처님을 보고 기뻐하면서 흙으로 만든 것을 국수라고 하면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발원하기를, ‘제가 장차 하늘과 땅을 덮을 때까지 널리 공양을 베풀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다. 이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1백 년 뒤 전륜왕이 되었으니, 그의 이름이 아육왕이다.
염부제를 통일할 때 질투심으로 인하여 8만 4천의 궁인을 죽였고, 그 후에는 성 밖에 지옥 같은 집을 짓고 죄인들을 다스렸다. 이때 소산消散 비구가 왕을 교화하니, 왕이 곧 믿고 깨우쳤다. 왕이 비구에게 ‘8만 4천의 궁인을 죽인 죄도 속죄할 수 있습니까?’ 물으니, 도인이 ‘한 사람을 위해 탑 하나씩 세우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두면 장차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왕이 곧 사리를 찾았는데 등불이 여전히 밝은 것이 보였다. 사리를 꺼내자 등불도 꺼지니, 왕이 괴이하게 여겨 연화蓮花 비구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사세왕이 기름의 양을 미리 재단하여 사리를 꺼내면 등불도 꺼지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도인에게 ‘어디에 탑을 세워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도인이 신통력으로 왼손으로 햇빛을 가려 8만 4천 줄기의 햇빛이 염부제를 흩어져 비추게 하고서 비춰지는 곳마다 모두 탑을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그 말에 따라 8만 4천의 금·은·유리·파려로 된 함을 만들어서 부처님 사리함을 만들었다. 또 8만 4천의 보배로 만든 병을 만들어서 이 사리함에 담고, 한량없는 백천 가지의 공양물을 갖추어 놓았다. 그리고는 귀신들에게 명하여 염부제에 있는 성·읍·취락에 1억 가구가 되는 곳마다 탑 하나씩을 세우도록 하였다.”267)
지금 중국의 낙양洛陽·팽성彭城·부풍扶風·촉군蜀郡·임치臨淄, 고려의 정주定州·안주安州·금강산에 모두 탑이 있는데, 모두들 신이함을 지니고 있다. 또 『아육왕경』에서는 “아육왕이 삼보를 공경하여 염부제의 땅을 모두 삼보에게 귀속시켰으므로 염부제의 땅은 겨자씨만 한 것일지라도 삼보의 땅이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다.
[135]
尊者大飮光 존자 대음광大飮光은
受佛僧伽棃 부처님의 승가리를 받았고
今入雞足山 지금은 계족산에 들어가
以待彌勒尊 미륵 존자를 기다리신다.
‘음광飮光’은 범어로 가섭迦葉(ⓢ Kāśyapa)을 말한다.
『전등록』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268)이 있어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대는 유포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여라’ 말씀하시고, 이어서 금으로 만든 승가리僧伽梨를 전해 주셨다. 이에 가섭은 계족산鷄足山269)에 들어갔는데, 그 산이 곧 합쳐지면서 몸을 숨겨 주었다. 이는 훗날 미륵彌勒부처님이 하생하실 때 전해 주기 위함이다.”270)
‘미륵’은 정확히 말하면 마이트레야(ⓢ Maitreya, 梅怛麗)이다. 여기 말로는 자씨慈氏라고도 하는데, 세세생생 자비를 닦았기 때문이다.
[136]
侍者慶喜尊 시자이신 경희慶喜 존자는
受佛法寶藏 부처님의 법보장을 받았고
與一千羅漢 천 명의 아라한과 함께
結集流於世 결집을 행하여 세상에 유포하였네.
‘경희慶喜’는 범어로 아난阿難(ⓢ Ānanda)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욕계와 색계의 천신들이 함께 대가섭 존자에게 나아가 절을 하고는 이렇게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법의 등불이 꺼지려 합니다. 마땅히 대자비로 불법을 세우시어 중생을 복되고 이롭게 하소서.”
그때 대가섭이 천신들의 청을 받아들여 법장을 결집하고자 무학無學271) 1천 명을 칠엽암굴七葉巖窟에 불러 모았다. 그런데 아난은 번뇌가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섭은 여섯 가지 죄로 그를 꾸짖었는데, 첫째 여인의 출가를 청하여 부처님의 정법시대가 5백 년 줄어들게 한 것, 둘째 부처님께서 등창을 보이실 때 물을 찾으셨는데 드리지 않은 것, 셋째는 부처님께서 신족통을 닦으라 말씀하셨는데 말없이 응하지 않은 것, 넷째는 부처님의 승가리를 밟은 것, 다섯째는 여인들에게 부처님의 음장상陰藏相을 보여 준 것, 여섯째는 전생의 번뇌가 다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 아난이 이 말을 듣고 금강정金剛定에 들어 일체 번뇌를 타파하고 삼명과 육신통을 구족하여 해탈에 들어갔다. 곧 그날 밤에 문의 열쇠 구멍으로 들어가니, 가섭이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대가 속히 도를 얻게 하기 위해 내가 일부러 한 일이니, 그대는 한스러워 말라.”라고 하였다.
아난이 법좌에 오르자 대중들에게는 세 가지 의심이 있었다. 첫째 의심은 ‘부처님께서 다시 일어나 앉으셨는가’, 둘째 의심은 ‘다른 세계의 부처님께서 오셨는가’, 셋째 의심은 ‘아난이 성불하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때 아난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如是我聞).”라고 외치니, 세 가지 의심이 단박에 풀어졌다. 이로부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40여 년 동안 설하신 법장法藏이 모두 다 결집되어 빠뜨린 것이 없게 되었다.
[137]
繼有三七聖 연이어 스물한 분의 성인과
及餘諸應眞 다른 아라한(應眞)들이
造論釋其義 논서를 짓고 그 뜻을 풀이하여
轉次廣宣揚 더욱더 널리 선양하였노라.
가섭과 아난이 경장을 결집하고 세상에 유포하다가 열반에 들자, 상나화수商那和修 등 스물한 분의 성인이 서로 연이어 불법을 널리 유통시켜 중생들을 이롭게 하였으니, 여러 성인들의 일은 문장이 번거로워 기록하지 않는다. 간략히 그 이름과 전등한 햇수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제1세는 가섭迦葉으로 45년 동안 전등하였다. 제2세는 아난阿難으로 37년 동안 전등하였다. 제3세는 상나화수商那和修로 62년을, 제4세는 우바국다優波鞠多로 65년을, 제5세는 제다가提多迦로 49년을, 제6세는 미차가彌遮迦로 55년을, 제7세272)는 불타난제佛䭾難提로 55년을, 제8세는 불타밀다佛䭾蜜多로 48년을 전등하였다. 제9세는 협존자脇尊者로 45년 동안 전등하면서 『대비바사론大毗婆娑論』을 지어 삿된 견해를 논파하고 바른 종지를 붙들어 세워서 다시 현풍이 일어나도록 하였다.
제10세는 부나야사富那夜奢로 60년 동안 전등하였고, 제11세는 마명 대사馬鳴大士로 56년 동안 전등하였는데, 『기신론』을 지어 정법을 중흥시켰다. 제12세는 가비마라迦毗摩羅로 58년 동안, 제13세는 용수 대사龍樹大士로 57년 동안 전등하였다. 용수 대사는 처음에는 바라문교도(梵志)였다가 후에 불교를 믿게 되었다. 비근鼻根의 청정함을 얻어 바다에 들어가 『화엄경』을 냄새 맡고 꺼내 와서 유포시켰고, 『대지도론』을 설하여 『반야경』을 풀이하였다.
제14세는 가나제바迦那提婆로 51년 동안, 제15세는 라후라다羅睺羅多로 48년 동안, 제16세는 승가난제僧伽難提로 39년 동안, 제17세는 승가야사僧伽耶舍로 61년 동안, 제18세는 구마라타鳩摩羅䭾로 34년 동안, 제19세는 사야다闍夜多로 52년 동안, 제20세는 바수반두婆須槃頭로 43년 동안, 제21세는 마나라摩那羅로 48년 동안, 제22세는 학륵나鶴勒那로 44년 동안, 제23세는 사자 존자師子尊者로 50년 동안 전등하였다.
이상의 여러 성인들은 모두 부처님의 명을 받아 서로 연이어 조사가 되어 널리 법을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학륵나 존자에 이르러서는 사자 존자에게 이렇게 예언하였다.
“내가 열반에 들고 나서 50년 후에 반드시 법난이 일어나리니, 그 재앙이 그대 몸에 미치리라.”
때가 되어 계빈국罽賓國273) 왕이 과연 불법을 없애려 하였다. 왕이 사자 존자 앞에 와서 이렇게 물었다.
“스님은 온藴이 공한 이치를 얻으셨습니까?”
그러자 사자 존자가 답하였다.
“온이 공함을 얻었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생사를 여의셨습니까?”
사자 존자가 답하였다.
“생사를 이미 여의었습니다.”
왕이 또다시 물었다.
“이미 생사를 여의었다면 나에게 머리를 내줄 수 있습니까?”
사자 존자가 답하였다.
“몸도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인들 아끼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곧 검을 휘둘러 존자의 머리를 치니 흰 젖이 몇 척이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이때 왕의 팔도 떨어져 7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것이 불멸 후 1208년 되던 해의 일이다.274)
이후로 네 분의 성인이 있었는데, 첫째는 바사사다婆舍斯多, 둘째는 불여밀다不如蜜多, 셋째는 반야다라般若多羅, 넷째는 보리달마菩提達摩이다. 이 네 분의 성인은 부처님이 기약하신 적은 없지만, 법의 등불을 서로 잇고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 복덕과 이익이 끝이 없었으니, 모두 범상치 않은 분들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옛날에 보리달마가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양 무제梁武帝가 지공 법사誌公法師에게 달마가 어떤 사람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관음보살로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기 위해 서쪽에서 오신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또 어느 곳에서는 “반야다라 존자는 대세지보살의 화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두 성인의 예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슬프다! 달마가 9년간 면벽하고 있는데, 신광神光275)이 한 번 배알하고 심인을 전해 받았고, 이로부터 등불을 이은 사람을 이루 다 셀 수 없다. 만일 성인께서 보이신 자취가 지극하지 않으셨다면, 어찌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만일 역대 성인들의 근본과 지말, 정맥正脉과 방전傍傳, 여러 종류의 종파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거든 『전등록』을 찾아보길 바란다.
『석씨회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래께서 입멸하신 후 4백 년, 그때에 간다라국(健䭾羅國, ⓢ Gandhāra) 카니시카 왕(迦尼色迦王, ⓢ Kaniṣka)은 정사를 돌보는 데 여가가 있으면, 매번 불교 경전을 익히고 날마다 스님 한 분을 청하여 궁에 모셔 설법하도록 하였는데, 스님들의 부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왕이 깊이 의심하였기 때문에 협존자脇尊者에게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묻자, 존자는 “여래가 세상을 떠나신 후 세월이 멀어지면서 스승과 제자의 주장이 달라지고, 제각기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매우 슬퍼져서 존자에게 “원컨대 법사께서 삼장을 모두 해석하시어 모든 의혹을 해결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니, 존자가 “그리하겠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왕이 곧 명을 내려 성현들을 널리 불러 모으고 여러 스님들에게 “삼명과 육신통을 구족하고 안으로 삼장을 궁구하고 밖으로 오명을 통달한 이는 남고, 이 경지에 있지 않은 이들은 물러가라.” 말하니, 제각기 물러가고 남은 이가 5백 명이었다.
이에 여러 성인들이 먼저 『오바제약론鄔波弟鑰論』을 지어 경장(素怛覽藏, ⓢ sūtra)을 풀이하고, 다음으로 『비나야비바사론毗奈耶毗婆娑論』을 지어 율장(毗奈耶藏, ⓢ vinaya)을 풀이하고, 마지막으로 『아비달마비바사론阿毗達摩毗婆娑論』을 지어 논장(阿毗達摩藏, ⓢ abhidharma)을 풀이하였으니, 모두 3백만 송 960만 자(言)이었다. 삼장에 대한 해석을 모두 갖추어 그 지엽까지 궁구하지 않은 바가 없었고, 그 깊고 얕음이 모두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의가 거듭 밝아지고 미세한 말씀까지 다시 드러나서 널리 연설하고 유포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의지하게 되었다.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1)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 : 여래십호如來十號를 말한다. 여래如來(ⓢ tathāgata)·응공應供(ⓢ arhat)·정변지正徧智(ⓢ samyaksaṃbuddha)·명행족明行足(ⓢ vidyācaraṇasaṃpanna)·선서善逝(ⓢ sugata)·세간해世間解(ⓢ lokavid)·무상사無上士(ⓢ anuttara)·조어장부調御丈夫(ⓢ puruṣadamyasārathi)·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ṣyāṇām)·불세존(ⓢ buddha, bhagavat)이 그것이다. 이때 불과 세존을 나누면 열한 가지가 된다.
2)
『금강반야바라밀경』 권1(T8, 752b).
3)
『석가여래행적송』에서는 먼저 불타의 의보依報인 국토의 성·주·괴·공을 밝히고, 정보正報인 불타의 삼신을 밝힘으로써 이들이 늘 함께 맞물려 있으며, 서로 의지하는 세계임을 보여 주고 있다.
4)
열응신劣應身 : 열등한 범부에게 응해 나타난 부처님의 모습.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태에 의탁하고, 태에서 나와 야수다라와 결혼하여 라후라를 낳고, 출가하여 6년 고행 뒤 깨달음을 얻은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부처님을 말한다. 열응신은 승응신에 비교하여 일컫는 말이지, 본래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5)
승응신勝應身 : 초지 이상의 보살에 응해 나타난 부처님의 모습. 장륙丈六의 부처님이지만, 상호 하나하나가 법계에 두루하고 신통자재하여 현실의 육체적 제약에 걸림이 없이 자유롭다.
6)
지금까지 설명한 네 가지 국토설은 천태종의 것인데, 이제 법상종의 네 가지 국토설을 말하겠다는 뜻이다.
7)
흑파지黑玻胝 : ⓢ sphaṭikā. 수정水晶의 한 종류. 파리玻璃·파지가頗胝迦라고도 한다.
8)
유순由旬 : ⓢ yojana. 거리의 단위. 유행자가 보통 하루에 걷는 거리 혹은 멍에를 멘 소가 하루에 가는 거리. 약 10㎞에 해당하는데 일률적으로 그 거리를 산정할 수는 없다.
9)
『구사론俱舍論』 권11 「분별세품」(T29, 59b).
10)
견수堅首·지만持鬘·상교常嬌 : 모두 야차夜叉(ⓢ yakṣa)의 이름이다. 이들 셋은 모두 사대천왕에 소속된 천중天衆들이다. 이 가운데 상교는 『구사론』에 항교恒憍로 되어 있다.
11)
지指 : ⓢ aṅgula. 손가락 마디의 길이. 지절指節이라고도 한다. 『구사론』 권12에서는 “손가락 세 마디(三節)가 1지指”라고 말하고 있다.
12)
주肘 : ⓢ hasta. 팔꿈치부터 손까지의 길이. 1척 6촌, 약 40~48㎝에 해당한다. 여러 경전에서 말하는 바가 일치하지는 않는데, 『석가여래행적송』에서는 이와 같이 1척 5촌으로 되어 있다.
13)
궁弓 : ⓢ dhanus. 양 팔을 펼친 길이. 심尋(vyāma)이라고도 하며, 4주肘에 해당한다.
14)
구로사俱盧舍 : ⓢ krośa. 소 우는 소리나 북소리가 들리는 최대한의 거리. 10리 혹은 1㎞ 남짓의 거리로 1우후牛吼, 5백 궁弓이라고도 한다.
15)
우발라優鉢羅(ⓢ utpala)는 청련화, 파두마波頭摩(ⓢ padma)는 홍련화, 구모두拘牟頭(ⓢ kumudu)는 황련화, 분다리奔茶利(ⓢ puṇḍarika)는 백련화를 말한다.
16)
『화엄경』 권52 「여래출현품」(T10, 273c).
17)
『화엄경』 권52 「여래출현품」(T10, 274a).
18)
『화엄경』 권52 「여래출현품」(T10, 271c).
19)
『대루탄경』 권5 「재변품」(T1, 304b~c).
20)
중표지친中表之親 : 중표中表란 내외종內外從을 말한다. 즉 내종사촌과 외종사촌을 일컫는 말이다.
21)
우위선가優慰禪伽 : ⓢ uccaṅgama. 우선가마優禪伽摩라고도 하며, 고행高行이라 번역한다. 즉 ‘위로 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인도에서는 날아다니는 새를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22)
열 가지 선 : 신·구·의 삼업 중에 뛰어난 열 가지 선한 행위. 즉 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淫·불망어不妄語·불양설不兩舌·불악구不惡口·불기어不綺語·불탐욕不貪欲·부진에不瞋恚·불우치不愚痴를 말한다.
23)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 권2 「지옥품」(T1, 375c).
24)
『석씨회요釋氏會要』 : 인찬仁贊이 저술한 40권의 책으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 때 대각 국사가 편찬한 『속장경』의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에 수록되어 있다.
25)
『기세인본경』 권10(T1, 415a~b).
26)
『불설입세아비담론佛說立世阿毘曇論』 권6(T32, 197b~c).
27)
『정법염처경』을 말한다. 권18(T17, 107b), 권20(T17, 117c)에 보인다.
28)
『구사론』 「분별세품」(T29, 59a). 이 게송에 대하여 세친은, “만약 북구로주가 한밤중이라면, 동승신주는 일몰이며, 남섬부주는 바로 한낮이고, 서우화주는 일출이다. 이러한 4시四時는 동일한 시간이니, 나머지 경우도 그와 같이 알아야 한다.(北洲夜半東洲日沒。 南洲日中西洲日出。 此四時等。 餘例應知。)”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해의 작용은 각기 다르지만 사대주에서 그것은 동시라는 의미이다.
29)
규기의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贊』(T34, 675b)에 보인다.
30)
수명과 복덕이 뒤로 갈수록 앞의 것의 두 배가 된다는 의미. 예컨대 사왕천보다 도리천의 수명은 두 배가 되고, 야마천의 수명은 다시 도리천의 두 배가 된다.
31)
오취五趣 : ⓢ pañca gatayaḥ.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등의 다섯 가지 존재 영역. 오도五道라고도 한다. 취趣(gatiḥ)는 중생들이 번뇌에 의해 업을 지어 이끌려 가는 생존의 상태 혹은 그 세계를 말한다.
32)
발특마鉢特摩 : ⓢ padma. 홍련화를 말한다. 인도에서는 이 연꽃을 가장 고귀한 꽃으로 여긴다. 불보살의 보좌寶座를 장엄하거나 관세음보살의 몸을 장엄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33)
온발라殟鉢鑼 : ⓢ utpala. 청련화를 말한다. 불안佛眼에 비유하여 자주 쓰인다.
34)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35(T27, 701a).
35)
『대지도론』 권54(T25, 443b).
36)
거친 색(麤色) : 극미로 만들어진 거친 색법色法. 즉 물질의 세계를 말한다.
37)
산심散心 : 산란한 마음. 한 가지에 안주하는 일이 없는 마음.
38)
심사尋伺 : 마음의 거친 성질을 심尋(ⓢ vitaka)이라 하고, 마음의 세밀한 성질을 사伺(ⓢ vicāra)라고 한다.
39)
왕신王臣 : 주종 관계를 의미한다.
40)
제3과第三果 : 소승의 사과四果 중에서 세 번째인 아나함과. 소승의 사과란, 수다원과須陀洹果(ⓢ srotāpanna)·사다함과斯陀含果(ⓢ sakṛdāgāmin)·아나함과阿那含果(ⓢ anāgāmin)·아라한과阿羅漢果(ⓢ arhat)를 말하고, 예류과預流果·일래과一來果·불환과不還果·무학과無學果라고도 번역한다.
41)
10지 보살十地菩薩 : 보살이 수행해야 할 52단계 중에서 41위에서 50위 사이에 있는 보살.
42)
앞부분에서 “외도들이 무상천無想天을 별도로 닦기도 하는데, 이는 광과천에 포함되며, 키와 수명도 광과천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즉 무상천을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하지 않고 광과천에 포함시킨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무상천을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하고, 대신 대자재천을 없애는 경우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43)
음陰 : ⓢ skandha의 구역, 신역에서는 ‘온蘊’이라 번역. 모임이나 적집을 의미하고, 일반적으로 오온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여기에서 ‘사음만 있다’라는 것은, 무색계의 경우 색·수·상·행·식 오온 중에서 색온은 없고 나머지 사온만 있다는 것이다.
44)
전오식前五識은 없고, 육식·칠식·팔식만 있다는 뜻이다.
45)
오나함천五那含天 : 정업淨業의 성인이 거주하는 곳. 아나함과(불환과)를 증득한 성자가 태어나는 색계의 제4 선천. 무번천無煩天·무열천無熱天·선현천善現天·선견천善見天·색구경천色究竟天 다섯 곳을 말한다.
46)
열응장륙불劣應丈六佛 : 천태종에서는 범부·이승·지전 보살에게 응하여 나타나는 부처님을 열응신劣應身이라고 하며, 1장 6척의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장륙불丈六佛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의 신장은 8척이고, 부처님의 신장은 이것의 배가 되는 1장 6척이므로 장륙丈六이라 부른다.
47)
태현의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跡記』(T40, 701b)에 보인다.
48)
반연槃椽 : 반槃이란 소반, 연椽이란 가장자리라는 의미. 즉 풍륜의 모양이 소반의 가장자리 같다는 뜻이다.
49)
승금주勝金洲 : 염부제 혹은 남섬부주를 말한다.
50)
지미의 떡(地味餠) : 지피병地皮餠·지병地餠이라고도 한다. 세계가 성립하는 초기에 땅에서 자연히 생기는 얇은 떡으로 겁초劫初에 사람들은 이것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51)
다섯 갈래(五趣) :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다섯 가지의 존재 영역. 오도五道라고도 한다.
52)
아승기겁阿僧祗劫 :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겁의 수가 아승기라는 말. 아승기는 ⓢ asaṃkhya의 번역으로 ‘셀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53)
『화엄경』 「여래출현품」(T10, 264a~b).
54)
『유가사지론』 권2(T30, 286c), 『구사론』 「분별세품」(T29, 57a~b, 62a) 참조.
55)
정상적인 셈법으로는 2,280이 되어야 한다. 산법의 편의를 위해 개략적으로 수를 더하여 2천5백이 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을 증수법增數法이라 하고, 그 반대는 감수법減數法이라 한다.
56)
『장아함경』 「전륜성왕수행경」(T1, 41b~c). 어떤 경에서는 ‘8만 4천’이라고 하지만, 8만이 맞다는 이야기이다.
57)
녹로轆轤 : 녹로는 오지 그릇 만드는 데 쓰는 물레, 혹은 우산대 살을 한 곳에 모았다 폈다 하는 데 쓰이는 물건. 도르래·수레바퀴를 말하기도 한다. 도르래가 위아래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것을 무한한 세월에 비유하여 ‘녹로겁’이라 말한다.
58)
구생수俱生水 : 이선천이 생길 때부터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물. 즉 이선천에서 자체적으로 생기는 물.
59)
구생풍俱生風 : 삼선천이 생길 때부터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바람. 즉 삼선천에서 자체적으로 생기는 바람.
60)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권6(T31, 720b).
61)
겁劫 : ⓢ kalpa. 인도의 시간적 단위 중에서 가장 긴 것. 지극히 긴 시간, 측량할 수 없이 긴 무한의 시간. 우주론적 시간관으로서 세계가 성립되고 존속하고 파괴되고 사라지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말하기도 한다.
62)
『대지도론』 권5(T25, 100c, 339b).
63)
장수천長壽天 : 색계 사선천의 네 번째인 무상천을 말한다. 이 하늘의 수명은 5백 겁이어서 색계천 가운데 가장 오래 살게 되므로 ‘장수천’이라고 부른다.
64)
삼수의三銖衣 : 매우 가벼운 옷. 수銖는 무게의 단위로 한 냥의 24분의 1이라고 한다.
65)
『보살영락본업경』 하권(T24, 1019a).
66)
불가지不可知 :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단위.
67)
『유가론겁장송』 권1(X47, 235a).
68)
『화엄경』 「아승기품」(T10, 237b).
69)
자은 규기慈恩窺基(632~682) : 중국 당나라 초기의 승려. 법상종의 개조. 속성은 위지尉遲, 자는 홍도洪道. 17세에 출가하여 현장의 제자가 되었으며, 28세 때 스승을 도와 『성유식론』을 번역하였다. 그 후 『성유식론술기』·『유가론약찬』·『법화현찬』 등 50여 부를 저술하였다.
70)
마등摩騰 : 중국에 불교를 처음 전한 사람. 중인도 사람으로 가섭마등迦葉摩騰이라고도 한다. 후한 영평 10년 축법란과 함께 중국에 와서 백마사에 머물면서 『사십이장경』을 번역하였다. 이것을 중국 역경의 시작, 불법佛法의 시초라고 말한다.
71)
범행梵行 : ⓢ brahmacarya. 범梵은 청정淸淨의 욕망을 끊는 수행을 말한다. 바라문이 행하는 깨끗한 행위. 남녀의 음욕을 끊는 실천을 말한다. 특히 바라문이 실행하는 학생기의 수행을 말하기도 한다.
72)
『기세인본경』 권8(T1, 403a).
73)
천백억 : ‘1만억’의 다른 이름이다. 천백억은 천 개의 연꽃마다 백억의 국토가 있다는 뜻으로, 오늘날 10억을 말한다. 이는 삼천대천세계에 포함된 소천세계의 수효이기도 하다. 현대의 10억을 100억으로 표현하는 계산법은 1만까지는 열 배로 올라가고, 만과 억은 백 배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74)
적화불迹化佛 : 자취를 나타내어 교화하시는 부처님, 즉 석가모니불을 말한다.
75)
노사나盧舍那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줄임말. 법성상주法性常住의 이신理身, 즉 법신불을 말한다.
76)
『범망경』(T24, 1003c).
77)
『범망경』(T24, 997c).
78)
종지種智 : 일체지一切智·일체종지一切種智와 동일한 의미. 모든 것의 개별성을 아는 지혜. 혹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자, 혹은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79)
『기세인본경』 권10(T1, 416c~419a).
80)
삼만다三滿多 : ⓢ samanta. 평등함(等)·넓음(普)·두루함(遍)의 의미. 겁초 평등왕의 이름이다.
81)
사자협왕師子頰王 : ⓢ Siṃhahanu. B.C. 7세기경 중인도 카필라국의 왕. 정반왕의 아버지를 말한다.
82)
조달調達 : ⓢ Devadatta.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도 한다. 곡반왕의 아들로 아난의 형이며 부처님의 사촌이 된다.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아 출가 전에도 싯다르타 태자와 여러 가지 일에 경쟁하고 대항하는 일이 많았다. 출가 후엔 부처님의 위세를 시기하여 아사세왕과 결탁하고 부처님을 살해하고 스스로 부처님이 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5백 비구를 규합하여 일파를 따로 세우기도 하였다. 살아서 지은 죄 때문에 그는 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하지만, 엄격한 규율을 주장했던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83)
감로반왕의 두 아들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석가보釋迦譜』(T50, 10a)에는 파파婆婆와 발제拔提라는 두 아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대지도론』을 인용하여 아들 마하남摩訶男과 아누룻다(阿泥盧豆) 그리고 감로미라는 딸이 있었다는 내용을 함께 전하기도 한다. 『석가여래행적송』 원문의 ‘婆娑’는 ‘婆婆’일 가능성이 있다. 부처님의 가계에 관해서는 『ゴータマ·ブッダ』(中村元, 春秋社, p.31) 참조.
84)
주 소왕周昭王(B.C. 1052~B.C. 1002) : 주나라 제4대 왕.
85)
희주姬周(B.C. 1122~B.C. 256) : 삼대三代의 하나.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호경鎬京에 건국하였는데, 그의 성이 희씨姬氏이므로 후대의 주나라와 구별하기 위하여 희주姬周라 하였다. 후에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86)
『과거현재인과경』(T3, 623a~b), 『불설보요경』(T3, 485c~486a).
87)
『불설태자서응본기경』(T3, 473b).
88)
『불설태자서응본기경』(T3, 473b~c).
89)
이와 같은~34가지나 있었다 : 『불설태자서응본기경』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상서로운 감응이 32가지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90)
건척揵陟 : ⓢ Kaṇṭhaka. 싯다르타 태자가 타던 애마. 태자가 카필라 왕궁을 나와 고행림으로 갈 적에 이 말을 타고 마부 차닉車匿과 함께 갔다고 한다. 태자가 출가한 후 성에 돌아와서는 몹시 괴로워하다가 얼마 뒤에 죽어서 삼십삼천에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가 『불본행집경』에 전한다.
91)
사르바싯다르타(薩婆悉達多) : ⓢ Sarvasiddhārtha. 부처님의 어렸을 적 이름. ‘일체를 성취했다’라는 의미이다.
92)
아사타阿私陁, : ⓢ Asita. 중인도 카필라국의 선인. 오신통을 구족하여 항상 삼십삼천을 자유롭게 출입하였다. 일찍이 태자가 마야부인의 태에 들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태자가 탄생하였을 때 찾아와 관상을 보고 나서 장차 성불하리라 예언하였다.
93)
하夏나라 마지막 왕 : B.C. 1800년. 걸왕桀王을 말한다. 하夏는 은殷·주周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설상의 왕조. 걸왕에 이르러 하나라는 은나라 탕왕에게 멸망하였다.
94)
상왕대商王代 : B.C. 1766~B.C. 1123년. 상商은 은殷을 말한다. 수도의 이름을 따라 상商이라고 한다. 하夏·은殷·주周 3대의 왕조가 고대의 중국을 지배하였다고 하는데, 하 왕조는 고전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전설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에 반하여 은 왕조는 20세기에 들어서 유적지 은허殷墟가 발굴됨에 따라 실재의 왕조였음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은나라는 중국 최고最古의 역사적 왕조라고 말할 수 있다.
95)
동주東周 평왕平王 : 동주는 고대 중국 주나라의 후대 왕조(B.C. 770~B.C. 256). B.C. 771년 유왕幽王 때 견융犬戎의 공격을 받아 유왕이 살해되었다. 이에 유왕의 아들 평왕平王이 낙양 부근으로 천도하여 B.C. 770년 주 왕실을 부흥시켰다. 이것을 동주東周라고 부른다.
96)
환왕桓王(B.C. 719~B.C. 697) : 주나라 14대 왕. 평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97)
『주서이기周書異記』 : 주나라 때 신이한 일들에 관해 기록한 책.
98)
태미太微 : 왕을 상징하는 별자리. 북극성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99)
천사당天祠堂 : 하늘에 제사지내는 사당.
100)
이 인용문은 『변정론』에서는 “昭王二十四年四月八日。 江河泉池悉皆泛漲。”(T52, 530a)이라고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101)
강표江表 : 양쯔 강의 동쪽 지방, 지금의 강소성江蘇省을 말한다. 하나라의 역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2)
주나라 역법은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았고, 하나라 역법은 ‘인월寅月’을 정월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음력은 하나라의 역법을 사용하므로 ‘인월’을 정월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달에 대하여 주나라 역법에 따른다면 ‘묘월卯月’, 즉 4월이므로 하나라 역법에서는 4월이 아니라 2월을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103)
『살바다비니비바사薩婆多毘尼毘婆沙』(T23, 510b). “부처님은 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처음 정등정각을 이루셨고, 부처님은 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탄생하시었고, 부처님은 8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법륜을 굴리셨고, 부처님은 8월 8일 반열반에 드셨다.”라고 되어 있다.
104)
대애도大愛道 : ⓢ Mahāprajāpati. 마야부인의 동생, 즉 부처님의 이모. 마야부인이 석존을 낳고 7일 만에 죽자 정반왕의 비가 되어 석존을 양육하였다. 석존의 이복동생인 난타의 어머니이다. 후에 출가하여 불교교단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105)
『태자서응본기경』(T3, 474b).
106)
범서梵書 : 기원전 6세기경에 형성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브라흐미(ⓢ brāhmī) 문자. 굴다掘多(ⓢ gupta)·실담悉曇(ⓢ siddhaṃ)·데바나가리(ⓢ devanāgarī) 등의 문자는 브라흐미 문자에서 발달한 것이다.
107)
거류서佉留書 : 고대 인도 문자의 한 종류. 거루서佉樓書라고도 한다. 『아비담비바사론』 권42에서는 “사람이 먼저 범서를 배우고 나중에 거루서를 배우면 빠르다. 먼저 거루서를 배우고 나중에 범서를 배우면 빠르지 않다.”라고 하였다.
108)
이 내용은 『출요경』이 아니라 『보요경』 「현서품』에 해당한다.(T3, 498a~b).
109)
『과거현재인과경』 권2(T3, 628b~629a).
110)
야수다라耶輸陀羅 : ⓢ Yaśodharā. 석존의 아내이자 라후라의 어머니. 중인도 카필라성 집장執杖(ⓢ Daṇḍapāṇi)의 딸이라고 하고, 천비성 선각왕善覺王(ⓢ Suprabuddha)의 딸이라고도 한다. 석존 성도 5년 뒤 마하파사파제 등 5백 명의 석가족 여인들과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111)
라후라羅睺羅 : ⓢ Rāhula. 석존의 아들. 라후 아수라왕이 달을 가릴 때 태어났으므로 장월障月이라고 하고, 모태에 6년간 있었으므로 복장覆障이라고 한다. 석존이 태자로 있을 때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고 하나, 아들을 낳고는 장애됨을 한탄하여 장애를 의미하는 Rāhula로 이름하였다. 석존이 성도한 뒤에는 출가하여 10대 제자가 되었다.
112)
유사有司 : 관직의 이름. 어떤 단체의 사무를 맡아 보는 직무.
113)
네 종류의 군사(四兵) : 상병象兵·마병馬兵·차병車兵·보병步兵을 말한다.
114)
차닉車匿 : ⓢ Chandaka. 정반왕의 마부로 싯다르타 태자가 성을 떠나 출가할 적에 태자를 위해 말 건척揵陟을 몰았다. 후에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나, 말버릇이 나쁜 성미는 고치지 못하여 악구惡口·악성惡性이라 불리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실 때 아난에게 분부하여 묵빈법黙擯法으로 대치하라고 한 것은 이 차닉을 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에 아난을 따라 불도를 배워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115)
니련선하尼連禪河 : ⓢ Nairañjanā. 갠지스 강의 지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동방에 위치하고 남에서 북으로 흘러간다.
116)
발가선跋伽仙 : ⓢ Bhārgava. 바가婆伽·발가바跋伽婆라고도 한다. 바이샬리성 고행림의 선인이다. 석존이 출가한 후에 곧장 그의 처소에 가서 처음으로 도를 물었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그의 학설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117)
아라라가란阿羅邏迦蘭 : ⓢ Ārāla-kālāma. 아라다가라마阿羅茶迦邏摩·아라라阿羅邏라고도 한다. 바이샬리성 부근에 거주했던 수론학자로 알려져 있다. 석존은 그에게 몇 달간 머물다가 그의 학설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울다라마자鬱陀羅摩子(ⓢ Udraka Rāmaputra)를 찾아 떠나갔다. 후에 석존이 성도하여 법륜을 굴릴 적에 아라라가란 선인을 먼저 교화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118)
초선 이후부터 비비상처 사이의 단계들을 ‘乃至’라는 말로 생략한 것이다.
119)
교진여憍陳如 : ⓢ ĀjñātaKauṇḍinya. 다섯 비구의 한 사람. 녹야원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제법四諦法을 듣고 제일 먼저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120)
마하남摩訶男 : ⓢ Mahānāma. 다섯 비구의 한 사람. 카필라성 곡반왕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감로반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121)
구리 태자拘利太子 : ⓢ Koliputra. 다섯 비구의 한 사람. 곡반왕의 맏아들로서 마하남摩訶男이라고도 하나, 앞에서 말한 마하남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122)
십력가섭十力迦葉 : ⓢ DaśabalaKāśyapa. 다섯 비구의 한 사람. 그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123)
반자밀제般刺蜜諦 : ⓢ Bhadrika. 다섯 비구의 한 사람. 발제拔提·바제리가婆帝利迦라고 한다. 곡반왕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백반왕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감로반왕의 아들이라고도 하여 전하는 기록이 일정하지 않다.
124)
필발라畢跋羅 : ⓢ pippala. 중인도와 벵갈 지방에 번식하는 뽕나무과 식물. 그 열매의 이름을 따라 필발라라고 부르는데, 생김새가 무화과와 비슷하다. 석존이 이 나무 아래에서 성도하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한다.
125)
파순波旬 : ⓢ Pāpīyas, Pāpman. 나쁜 사람, 악마의 호칭. 마왕 파순魔王波旬(ⓢ Māra-pāpman)이라고도 한다. Māra는 ‘죽이는 자, 목숨을 끊는 자’라는 의미이다.
126)
정병淨甁 : ⓢ kuṇḍkā. 범천이나 천수관음이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다. 대승 비구가 항상 지니는 18물의 하나로 물이나 기름, 소금 등을 담는다. 일반적으로 정병은 질그릇으로 만들고, 그 속에 담긴 물은 깨끗한 손을 씻는 데 사용한다.
127)
정등정각正等正覺 : ⓢ samyak saṃbuddha. 부처님의 최상의 깨달음. 즉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말한다.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라고 음역. 깨달음에 부정함이 없는 것이 정正이고, 치우침이 없는 것이 등等이다.
128)
18가지 법(十八法) : 부처님에게만 있는 18가지 특징, 즉 18불공법十八不共法.
129)
천룡팔부天龍八部 :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종류의 신화적 존재. 팔부대중이라고도 한다. 여덟이란, 천天(ⓢ deva)·용龍(ⓢ nāga)·야차夜叉(ⓢ yakṣa)·아수라阿修羅(ⓢ asura)·가루라迦樓羅(ⓢ garuḍa)·건달바建闥婆(ⓢ gandharva)·긴나라緊那羅(ⓢ kiṃnara)·마후라가摩睺羅迦(ⓢ mahoraga) 등을 말한다.
130)
염念 : 중생을 제도하려는 생각을 말한다. 부처님은 삼세제불의 법과 일체 지혜를 원만하게 구족하여 중생을 제도하지만, 자비심이 충만하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려는 생각에서 결코 물러나는 경우가 없다. 그러므로 ‘염불퇴念不退’의 불공법이라고도 한다.
131)
열 가지 힘(十力) : 부처님의 전지적인 힘 열 가지.
132)
알맞은 곳인가 아닌가를 아는 힘 :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에 알맞은 곳인가 알맞지 않은 곳인가를 아는 힘.
133)
근根을 아는 힘 : 여래가 중생의 근기가 수승한가 열등한가를 두루 아는 힘.
134)
욕欲을 아는 힘 : 여래가 중생들의 욕락欲樂과 승해勝解를 밝게 아는 힘.
135)
성性을 아는 힘 : 여래가 중생들의 갖가지 계분界分, 욕계·색계·무색계의 구분이 동일하지 않음을 두루 아는 것. 즉 중생들의 소질, 특성 등과 그 행위를 여실히 아는 힘.
136)
도道에 이르는 길을 아는 힘 : 행위의 인과에 의해서 인천人天 등이 이르는 곳을 아는 힘.
137)
숙명통으로 아는 힘 : 과거세의 갖가지 일을 기억해 모두 아는 힘. 여래는 1겁에서 백천만 겁까지 과거세에 대하여 태어나고 죽은 일이며, 어떤 이름이었으며, 어떤 고락을 누렸는지 등등에 대하여 두루 안다.
138)
천안통으로 아는 힘 : 여래는 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때와 미래세를 알고, 그가 아름다운지 추한지, 부유한지 가난한지 등등에 대하여 두루 안다.
139)
누진통으로 아는 힘 : 여래는 스스로 모든 번뇌가 다하여 다음 생을 받지 않는 것을 알고, 또 다른 사람이 모든 번뇌가 다하여 다음 생을 받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안다.
140)
네 가지 무소외(四無所畏) : 불보살이 설법할 적에 두려운 생각이 없는 지력智力 네 가지. 즉 외도 등 다른 이의 힐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141)
18가지 상相 가운데 동動·기起·용涌은 흔들리는 모양을 나타내고, 진震·후吼·각覺은 흔들려서 나는 소리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진震은 우르르 나는 소리, 후吼는 꽝 와르릉 하는 소리, 각은 와지끈 부딪치는 소리를 각각 나타낸다. 이때 ‘覺’은 ‘擊’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42)
보리류지菩提留支 : ⓢ Bodhiruci. 북인도 사람으로 경·율·논 삼장에 정통하였다. 영평 1년(508)에 중국에 와서 선무제의 명을 받고, 영녕사永寧寺에 있으면서 경전 번역에 종사하여 20여 년간 『십지경론』·『금강반야경』 등 39부 127권을 번역하였다.
143)
오명五明 : ⓢ pañca-vidyā. 인도의 다섯 가지 학문과 기예. 오명처五明處라고도 한다. 명明(ⓢ vidya)이란 배운 것을 분명히 한다는 뜻. 불교도의 학문으로서 내오명과, 세속 일반의 학문으로서 외오명을 나누기도 한다. 성명聲明·인명因明·내명內明·의방명醫方明·공교명工巧明을 내오명이라 하고, 성명聲明·의방명醫方明·공교명工巧明·주술명呪術明·부인명符印明을 외오명이라 한다.
144)
『범망경』 권2(T24, 1003c).
145)
『법화경』 「방편품」(T9, 9c).
146)
여래의 설법에 대하여 성도 후 삼칠일은 화엄을 설하고, 아함 12년, 방등 8년, 반야 21년, 법화열반 8년을 설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147)
법신 대사法身大士 : 보살의 계위에는 51위가 있다. 즉 10신위十信位·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回向·10지十地·등각위等覺位 보살을 말하는데, 이 중 10신위를 제외한 41위의 보살을 말한다.
148)
원만수다라圓滿修多羅 : 『화엄경』을 말한다. 수다라는 범어 sūtra의 음역으로 ‘경經’을 말한다.
149)
장륙丈六 : 여러 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세존 때 일반인의 신장은 약 8척이었고, 세존은 그 곱절로 1장 6척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장륙이라 하면 일반적인 화신불의 신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불신佛身과 동일한 높이로 조각한 불상이나 불화를 장륙불丈六佛 또는 장륙상丈六像이라 한다.
150)
생멸사제生滅四諦 : 천태종에서 말하는 사종사제四種四諦의 하나. 고·집·멸·도의 사제를 통하여 일상적인 인연생멸의 모습을 실재하는 것으로서 파악하고, 그 근거로서의 법을 정립하는 것.
151)
수보리(空生) : ⓢ Subhūti. 석존 10대 제자의 한 사람. 온갖 법이 공한 이치를 잘 깨달았으므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부른다. 선현善現·선길善吉·선업善業이라 번역한다. 그가 태어날 때 창고·상자·기구 등이 텅 비었다 하여 공생空生이라 부르기도 한다.
152)
사리불(身子) : ⓢ Śāriputra. 석존 10대 제자 가운데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부른다. 그의 어머니의 눈이 아름다운 새 사리(śāri)를 닮았다 하여 사리자舍利子·추로자鶖鷺子·신자身子라 불린다. 목건련과 함께 외도의 스승을 섬기다가 석존께 귀의하였다. 석가 교단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석가보다 먼저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3)
이것은 천태교학의 용어인 ‘전교轉敎’를 풀이한 것으로, 반야시에 부처님께서 수보리 등의 성문에게 부처님을 대신하여 대승의 보살들을 위해 『반야경』 등의 경전을 설하게 하신 것을 말한다.
154)
융통融通과 도태淘汰 : 존재를 이루는 모든 법이 공함을 알게 하여 법집에 떨어진 소승의 집착을 깨끗이 가려내 버리도록 하였다는 뜻이다. 반야시에는 일체법과 더불어 모두 대승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에 ‘융통’이라 하고, 공성의 지혜로 소승의 견해를 씻어 버리기 때문에 ‘도태’라 한다.
155)
사교四敎 : 장교·통교·별교·원교를 말한다.
156)
군습교捃拾敎 : 떨어진 이삭줍기의 가르침. 천태종에서 『열반경』을 가리키는 말. 『법화경』을 설할 때 빠진 중생을 위해 『열반경』을 말씀하셨다는 의미. 『열반경』의 설법이 추수 뒤에 떨어진 이삭줍기와 같다는 뜻이다.
157)
부율담상교扶律談常敎 : 계율을 붙들고 영원함을 말씀하신 가르침, 천태종에서 『열반경』을 가리키는 말. 석존은 말세에 우둔하고 악한 이가 있어 계율을 깨뜨리고 여래가 상주한다는 이치를 믿지 아니하며, 잘못된 소견을 일으킬 것을 경계하여 『열반경』을 설하여 불타의 본성이 상주한다는 것을 밝히셨다고 한다.
158)
사시四時 : 화엄시·녹원시·방등시·반야시를 말한다.
159)
삼륜三輪 : 여래가 지닌 삼업의 신통력을 말한다. 즉 신업의 신통륜神通輪과 구업의 설법륜說法輪과 의업의 기심륜起心輪을 말한다. 신통륜은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의 마음을 움직여 믿음에 들게 하는 것, 설법륜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교법을 설하는 것, 기심륜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서 여기에 응하여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여래의 신·구·의 삼업은 깨달음의 경지이므로 삼밀三密이라고도 한다.
160)
수다라장修多羅藏 : ⓢ sūtrānta-piṭaka. 부처님께서 그 제자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설법한 교법을 모아 놓은 경전들, 경장經藏이라 번역한다.
161)
아비담장阿毗曇藏 : ⓢ abhidharma-piṭaka. 부처님의 교설을 연구하여 조직적으로 논의하고 해석한 것, 논장論藏이라 번역한다.
162)
비니장毗尼藏 : ⓢ vinaya-piṭaka. 부처님의 제자가 지켜야 할 계율을 모아 놓은 것, 율장律藏이라 번역한다.
163)
견사혹見思惑 : 사제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지적인 번뇌가 견혹見惑이고, 견혹을 토대로 하여 대상에 애착을 일으키는 감성적인 번뇌가 사혹思惑이다. 견혹은 견도에 의해 단멸되며, 사혹은 수도에 의해 단멸된다.
164)
습기習氣 : ⓢ vāsanā. 업의 잠재적 인상 혹은 잠재여력. 번뇌를 끊어 버렸어도 남아 있는 번뇌의 여력餘力.
165)
3아승기겁阿僧祗劫 : 보살이 불위佛位에 이르기까지 수행하는 한량없이 긴 시간. 보살의 계위에는 50위가 있는데, 10신·10주·10행·10회향의 40위는 제1 아승기겁이 되며, 10지 가운데 초지부터 7지까지는 제2 아승기겁이 되고, 8지에서 10지가 제3 아승기겁이 된다. 10지를 마치면 곧 불과佛果에 이른다.
166)
세제일위世第一位 : 사선근위四善根位의 하나. 사선근위란, 난위煖位·정위頂位·인위忍位·세제일위世第一位를 말한다. 그중 세제일위는 유루법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세속법 가운데 가장 수승하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 그 직후에 무루의 지혜를 일으키고 그것을 경계로 견도에 들어간다.
167)
무생사제無生四諦 : 천태종에서 말하는 사종사제四種四諦의 하나. 고·집·멸·도의 사제에 대하여 존재하는 미오迷悟의 인과는 모두 공무空無로서 생멸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관한다. 인연생멸을 실제의 생生 혹은 실제의 멸滅이라고 여기는 생각을 깨뜨리고 전체로서 공空이라고 깨달아 일상적 현실을 초월하는 것.
168)
진사혹塵沙惑 : 천태종에서 말하는 삼혹의 하나. 천태종에서는 견사혹見思惑·진사혹塵沙惑·무명혹無明惑을 삼혹이라 한다. 그중 진사塵沙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실의 사상事象에 대해 그때마다 정확히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없는 것을 진사혹이라 하였다.
169)
일부의 무명(一分無明) : 보살 수행의 계위 가운데 10회향의 마지막 계위에서 처음의 무명을 끊고 초지인 환희지에 들어가는데, 이 무명을 상품·중품·하품으로 나누어 끊는다. 이를 삼품무명三品無明이라 한다. 여기에서 일분一分이란 하품의 무명을 말한다.
170)
일부의 삼덕(一分三德) : 묘각의 완전한 삼덕이 아니고 초지의 지위에서 얻은 한 부분의 삼덕을 말한다. 삼덕은 대열반에 갖추어진 법신덕法身德·반야덕般若德·해탈덕解脫德을 말한다. 혹은 지덕智德·단덕斷德·은덕恩德을 말하기도 한다.
171)
온 세계(百界) : 원래는 모든 세계를 가리키지만, 천태종에서는 불과佛果로부터 지옥계地獄界에 이르는 10계에 각각 10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100계라고 설명한다.
172)
여덟 가지 상(八相) : 부처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여덟 가지 모습. 강도솔상降兜率相·탁태상托胎相·출태상出胎相·출가상出家相·항마상降魔相·성도상聖道相·전법륜상轉法輪相·입멸상入滅相 등의 팔상성도를 말한다.
173)
12품의 무명(十二品無明) : 10지·등각·묘각까지 12계위의 무명을 합하여 12품의 무명이라 한다.
174)
무량사제無量四諦 : 사종사제四種四諦의 하나. 일체의 현상은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한량없는 미오迷悟와 인과因果의 모든 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한량없는 상相이 있다고 말한다.
175)
『화엄경』 「범행품」(T9, 449c).
176)
『법화경』 「방편품」(T9, 7a).
177)
『유마힐소설경』 「관중생품」(T14, 548a).
178)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 : 천태종에서 원교를 수행하는 이 가운데 10신十信 이전의 5종 단계. 수희품隨喜品·독송품讀誦品·설법품說法品·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을 말한다.
179)
오주번뇌五住煩惱 : 중생을 삼계구지三界九地의 생사에 집착하게 하는 번뇌 다섯 가지. 견혹·사혹·무명의 번뇌를 다섯 종류로 나눈 것.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욕애주지欲愛住地·색애주지色愛住地·유애주지有愛住地·무명주지無明住地를 말한다.
180)
외범위外凡位 : 견도見道 이전의 수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승에서는 오정심五停心·별상념처別相念處·총상념처總相念處의 수행위를 말하고, 대승에서는 52위 가운데 10신위 이전 상태에 있는 범부를 말한다.
181)
육근정위六根淨位 : 견혹과 수혹을 끊고 육근의 청정을 얻은 지위. 천태종에서는 별교의 10신위, 원교의 상사즉위相似卽位에 배대하고 있다. 상사즉위란, 미혹을 여의어서 깨달음의 경지에 근접하는 것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육근의 호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182)
인위因位 : 보살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동안의 지위를 ‘인위因位’라 하고, 수행을 완성하여 얻은 깨달음 혹은 부처님의 경지를 ‘과위果位’라고 한다.
183)
무작사제無作四諦 : 사종사제四種四諦의 하나. 작위 없는 자연 그대로의 경지.
184)
영향중影響衆 : 그림자나 여운과 같이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기 위해 여러 보살들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 불교 법회에 참석한 사중四衆의 하나. 사중이란 발기중發起衆·당기중當機衆·영향중影響衆·결연중結緣衆을 말한다.
185)
삼제三際 : 전제前際·중제中際·후제後際. 즉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를 말한다.
186)
오위법문五位法門 : 법혜보살이 10주 법문을, 공덕림보살이 10행 법문을, 금강당보살이 10회향 법문을, 금강장보살이 10지 법문을, 보현보살이 등묘각법문을 설하신 것을 말한다.
187)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T9, 465c).
188)
『화엄경』 「여래출현품」(T10, 266b).
189)
『천태사교의』(T46, 775b).
190)
정반왕이 보내 준 다섯 명의 시자, 즉 다섯 비구를 말한다.
191)
『묘법연화경』 「방편품」(T9, 9c).
192)
‘본래의 몸’이란 법신불을 말한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려는 자비심으로 중생들이 볼 수 있도록 응신불의 모습으로 출현하신 것을 두고 ‘자취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193)
교진여 등 다섯 사람 : 교진여憍陳如·마하남摩訶男·구리 태자拘利太子·십력가섭十力迦葉·반자밀제般刺蜜諦 등 다섯 비구를 말한다.
194)
『보성론寶性論』(T31, 826c).
195)
9부경 : 부처님의 일대교설을 그 경문의 서술 형식과 내용에 따라 분류한 것. 먼저 열두 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수다라修多羅(ⓢ sūtra) : 경經·계경契經이라 번역.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하며, 산문체로 설한 것.
② 기야祇夜(ⓢ geya) : 응송應頌·중송重頌이라 번역.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
③ 가타伽陀(ⓢ gāthā) : 게송偈頌·풍송諷頌·고기송孤起頌이라 번역. 운문체로 설한 것.
④ 니다나尼陀那(ⓢ nidāna) : 부처를 만나 설법을 듣게 된 인연을 설한 부분.
⑤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 itivṛttaka) : 본사本事라고 번역. 불제자의 과거 인연을 설한 부분.
⑥ 자타카(闍多伽, ⓢ jātaka): 본생本生이라 번역. 붓다의 전생 이야기.
⑦ 아부타달마阿浮陀達磨(ⓢ adbhuta-dharma) : 희유법希有法·미증유법未曾有法이라 번역. 부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설한 부분.
⑧ 아바다나阿波陀那(ⓢ avadāna) : 비유譬喩·출요出曜라고 번역. 비유로써 가르침을 설한 부분.
⑨ 우파데사(優婆提舍, ⓢ upadeśa) : 논의論議라고 번역. 교리에 대해 문답한 부분.
⑩ 우다나優陀那(ⓢ udāna) :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 번역. 질문자 없이 부처 스스로 설한 법문.
⑪ 비불략毘佛略(ⓢ vaipulya) : 방광方廣이라 번역. 방대한 진리를 설한 부분.
⑫ 화가라和伽羅(ⓢ vyākaraṇa) : 수기授記라고 번역. 부처가 제자에게 성불할 것이라고 예언한 부분. 이 중 소승에서는 비불략·화가라·우다나 3부를 뺀 나머지를 9부경이라 하고, 대승에서는 니다나·아바다나·우파데사를 뺀 나머지를 9부경이라 한다.
196)
『대반열반경』 「사상품四相品」(T12, 630c).
197)
두 가지 열반 : 이승의 경지에서 얻는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을 말한다. 유여의열반은 일체생사의 원인인 번뇌를 끊고 열반을 증득하였으나 아직 육신이 남아 있는 상태, 무여의열반은 그러한 육신마저 없어져 완전히 의지할 곳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열반에 반해 상常·낙樂·아我·정淨의 네 가지 덕을 갖춘 완전한 열반은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 한다.
198)
『대반열반경』 「영아행품嬰兒行品」(T12, 729a).
199)
천태교학에서 말하는 사교 가운데 첫 번째인 장교는 경·율·논 삼장을 소승 일체의 교리로 받아들이므로 소승교 혹은 삼장교라 불린다. 그리고 장교의 법신은 열응신으로서, 범부·이승·지전 보살이 보는 불신이며, 장륙의 상을 나타내며,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에 머무는 장교의 교주라고 설명한다. 열응신은 대승의 승응신에 비교하여 열등하다는 것이지 본래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200)
통교는 성문·연각·보살 삼승에 통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는 대승시교大乘始敎로 반야사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통교의 법신은 ‘열응신의 모습을 지닌 승응신(帶劣勝應身)’이라고 하였다. 즉 장교의 근기들이 보는 장륙의 열응신과 통교의 근기들이 보는 장륙의 승응신을 함께 지닌다는 의미이다.
201)
육도사생六道四生 : 육도六道란 천상·아수라·인간·축생·아귀·지옥을 말하고, 사생四生이란 태생·난생·습생·화생을 말한다.
202)
『정명경淨名經』 : 『유마경』을 말한다.
203)
『대반야바라밀다경』(T5, 1046a~1048a).
204)
『금강반야바라밀경』(T8, 752a, 756b).
205)
『금강반야바라밀경』(T8, 750b, 754b).
206)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 : 아상我相(ⓢ ātma saṃjña)은 자아라는 관념, 인상人相(ⓢ pudgala saṃjñā)은 개아라는 관념, 중생상衆生相(ⓢ sattva saṃjñā)은 중생이라는 관념, 수자상壽者相(ⓢ jīva saṃjñā)은 생명 있는 것이라는 관념. 이 네 가지는 모두 ‘나’라고 하는 관념을 나타내는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관념을 떠나 아집을 깨뜨리는 데 『금강경』의 핵심 사상이 있다.
207)
『금강반야바라밀경』(T8, 749a).
208)
『금강반야론회석』(T40, 740b).
209)
인도에서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방식으로 자식의 이름을 짓는 일이 많다.
210)
삼주三周 : 삼주설법三周說法의 줄임말. 듣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같은 것을 세 번 반복하여 설법하는 것.
211)
9계九界 : 10계 중에서 불계佛界를 제외한 나머지 9계를 말한다. 즉 지옥계·아귀계·축생계·아수라계·인간계·천상계·성문계·연각계·보살계를 가리킨다.
212)
일불승一佛乘 : ⓢ eka-buddha-yāna. 부처가 되기 위한 유일한 가르침. 일승과 같은 말이다.
213)
법설주法說周 : 초주初周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상근기의 사리불을 위하여 법체에 나아가 제법실상인 10여十如의 이치를 설하고 삼승의 방편을 열어서 일승의 진실에 깨달아 들어가게 한 것.
214)
비유주譬喩周 : 중주中周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법설주를 깨닫지 못한 중근의 가섭·가전련·목건련·수보리 등을 위하여 다시 불타는 집과 세 가지 수레의 비유를 설하여 일승의 진실에 깨달아 들어가게 한 것.
215)
인연주因緣周 : 하주下周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하근의 부루나·교진여 등을 위하여 숙세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의 인연을 설하여 일승의 진실에 깨달아 들어가게 한 것.
216)
삼덕三德 : 모든 부처님께서 갖추신 법신·반야·해탈의 덕.
217)
진점겁塵點劫 :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매우 긴 시간을 말한다. ①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것을 갈아서 먹을 만들어 그 한 점씩을 1천 국토마다 떨어뜨리고 그 먹물이 다했을 때,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티끌로 부수어 그 하나의 티끌을 1겁으로 세어 그 수효를 모두 계산한 것. ②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5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 국토를 지날 때마다 티끌 하나씩을 떨
석가여래행적송 1
석가여래행적송 상권釋迦如來行蹟頌 上卷 1
차례
▪︎ 이숙기 송서
▪︎ 고려 운묵무기 병서
▪︎ 석가여래행적송
▪︎ 백련사 사문 기豈 발문
▪︎ 계음 호연 발문
■ 석가여래행적송서釋迦如來行蹟頌序
정순대부 밀직사 좌부대언 판선공시사 진현제학 지제교 이숙기1) 지음
유학으로 업을 삼은 사람은 비록 오상五常2)의 근원을 깊숙이 연구하여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앞선 성인이신 문선왕文宣王3)이 세상에 내려와 가르침을 세우신 사물의 시초(權輿)4)와 심오한 이치(壼奧)5)를 알아야 하고, 어떤 이가 와서 묻거든 거칠게나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석존의 제자도 그러하여 이미 자신의 성姓을 버리고 석존의 제자가 되었다면, 본사本師이신 여래께서 세상에 나와 교화하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6)을 반드시 먼저 자세히 살펴본 연후라야 석존의 제자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슬프구나! 두 종류의 사람이 없음이여, 만일 있다면 어찌하여 한두 번 귀에 들리거나 눈에 띄지 않았겠는가?
여기 시흥 산인始興山人 묵공黙公의 자字는 무기無寄인데, 사람됨이 수수하여 화려함이 없으니, 모습이 그의 마음과 같음이로다. 젊어서부터 천태산을 오가면서 공空·가假·중中을 오로지 공부하고, 손수 『석가여래행적송』을 지었다. 다섯 자로 묶은 구句를 따라 주석을 붙이니, 두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판목에 아름답게 새겨 널리 전하고자 하였으니, 그가 두루 보고 널리 통달하였음은 곧 ‘깃털 하나만으로 봉황이라는 것을 아는 일’과 같다.
그리고 석가의 종파나 부처님의 말씀이 상세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 늙은이가 배우지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거기에 손댈 수 있겠는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고, 다만 그의 박식함과 정교한 서술을 찬미할 뿐이로다.
대원大元 지순至順 경오庚午7) 4월 일 회암 노인晦巖老人이 가정柯亭8)에서 쓰다.
1)
이숙기李叔琪 : 고려 후기의 문신. 생몰 연대 미상. 고려 충혜왕 복위 3년(1342)에 세워진 속리산 법주사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에는 그가 이 비문을 지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2)
오상五常 :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다섯 가지 기본 덕목. 한대漢代 동중서董仲舒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하여 맹자가 주창한 인·의·예·지에 신을 더하면서 ‘오상의 덕’이라 불리게 되었다.
3)
문선왕文宣王 : 공자를 말한다.
4)
사물의 시초(權輿) : 저울을 만들 때는 저울대(權)부터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는 수레 바탕(輿)부터 만든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사물의 기원이나 시작을 의미한다.
5)
심오한 이치(壼奧) : 사물의 깊숙한 곳, 궁극의 경지를 의미한다.
6)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신 큰일을 ‘일대사一大事’라고 한다면, 각기 다른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하게 되는 중대한 인연을 ‘일대사인연’이라고 한다. 중생들은 이것에 의해 성불하게 된다.
7)
대원大元 지순至順 경오庚午 : 대원은 원나라, 지순은 원나라 문종 때의 연호, 경오년은 1330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고려 충혜왕(1315~1344)의 재위 기간이기도 하다.
8)
가정柯亭 : 정자의 이름. 피리를 말하기도 하는데, 후한의 문인 채옹蔡邕이 절강성浙江省 회계會稽 땅의 가정柯亭에 머무르고 있을 때, 유숙하던 집의 대나무 서까래를 잘라 피리를 만들었다는 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 석가여래행적송병서釋迦如來行蹟頌竝序
천태 말학 부암산 무기 찬집
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는데, 어찌하여 의보依報와 정보正報,9)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따로 있겠는가? 진여는 청정하여 한 근원일 뿐인데, 어찌하여 자신과 타인, 중생과 부처에 간격이 있겠는가.
그러나 중생은 이 오묘한 이치에 어두워 여러 겁 동안 자신의 신령스러운 빛을 감추고, 항상 세 가지 공덕장(三德藏)10)에 안주하면서도 언제나 스스로 몽매하며, 일여一如의 평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또한 알지 못하는구나.
우리 부처님(能仁)께서는 이러한 전도됨과 미혹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집안의 보물을 맡기고자 하시고 옷 속의 보배 구슬을 보여 주시었다.
그러므로 오심 없이 오시어 구름 같은 몸을 사바세계(堪忍)11)에 펼치셨고, 말씀 없이 말씀하시어 진리의 비를 불타는 중생 세계(沃焦12))에 뿌리셨다. 49년이 지나 3백여 법회를 베풀어 제도함 없이 제도하시어 중생을 끝까지 제도하셨고, 입멸함 없이 입멸하시어 무여열반의 경지에 들어가셨다. 그 방편은 헤아릴 수 없거니와 그 이익은 어찌 비유와 말씀으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쌍림雙林에서 (열반하신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2천3백 년이고, 5인도五印度13)에서 이곳(고려)까지는 6만 8천 리가 넘는다. 하지만 남기신 바람 멀리까지 뻗쳤으니, 번뇌의 구름을 다 쓸어버리네. 남기신 은혜 멀리까지 적셨으니, 시들어 가는 만물을 무성하게 하네. 넓고 넓구나, 자비의 바다여. 높고 높구나, 은덕의 산이여.
아! 우리들 중생은 어떤 업의 인연으로 어느 곳을 다녔기에 일찍이 범음梵音의 말씀 친히 듣지 못하고, 정법의 시기 아직 만나지 못했던가. 말법의 어려운 시기에 어쩌다 태어나니, 타고난 성품 역시 심히 악하고 어리석구나.
하지만 다행히 자비로운 교화를 받아서 외람되이 석문釋門에 참여하였는데, 모습은 승려 비슷하나 행동은 완전히 계율에 어긋난다. 경론을 독송하나 근본 종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혹은 기記와 장章의 주석서를 찾아 살피되 이익만을 바라고 있구나. 이렇듯 생각하고 닦는 지혜가 없는데14) 어찌 증득의 공功을 기약하랴. 이것을 생각한다면, 어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얼핏 듣자니 삿됨을 간별하여 성인의 바른 길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먼저 교학을 배워야 하고,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방식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다면 현성賢聖의 속마음을 일부나마 얻은 것이요, 사람과 천인의 안목이 될 만하다. 이래야 불제자라 할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어찌 마구니의 무리됨을 면할 수 있으랴.
이를테면 세속의 무리들도 그 아비의 성명, 나고 죽은 때, 나이의 많고 적음, 지어 놓은 여러 가지 업의 높고 낮음, 교묘함과 졸렬함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을 ‘사람의 머리를 한 짐승’이라 하니, 이보다 큰 불효가 없기 때문이다. 석존의 제자가 되어 본사의 성명과 탄생하고 입멸하신 연월, 수명의 길고 짧음, 말씀하신 가르침의 방편과 진실(權實)15)이나 드러남과 은밀함(顯密)16)을 알지 못하면, 이는 ‘승려 모습을 한 속인’이라 할 것이니, 이보다 더한 불순함이 무엇이겠는가. 불효하고 불순한 허물을 지으면, 무간지옥의 끝없는 고통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와 교화하신 자취, 남기신 법이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인연, 세계가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텅 비는 일, 오랜 시간의 길고 짧음의 이유가 경론에 두루 있으므로 거울삼을 수 있으나, 우리들처럼 새로 배우는 사미의 무리는 자세히 찾을 수 없어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제 어리석은 내가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17)에 의지하고, 여러 경론 가운데 두드러진 말씀을 모으고, 여러 전기에 나타난 말씀을 자세히 살펴서 모두 776구의 게송으로 편집하였다. 구句에서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곧 본문으로 구句 아래에 주석을 달아 보는 이가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가까이 보여 멀리 보게 하려는 것이며, 간략한 것에 의거하여 자세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인용한 문장이 다소 번거롭고 언사도 완숙하지 못하다. 비록 대중의 질책이 돌아올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새로 나아가는 이의 첫 걸음에 이롭게 하고자 하니, 바라건대 학식 있는 여러 분들은 꾸짖지 마시라.
천력 원년18) 무진 12월 보름에 서문을 쓰다.
9)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 중생들의 몸과 마음을 정보正報라 하는 것에 반하여, 그것이 의지하는 곳이 되는 국토세계는 의보依報라 한다.
10)
세 가지 공덕장(三德藏) : 법신·반야·해탈의 세 가지 덕을 말한다.
11)
사바세계(堪忍) : 이 세계의 중생들은, 안으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있고, 밖으로는 추위·더위·갈증·기아 등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사바세계를 감인堪忍이라고 한다.
12)
옥초沃焦 : 대해의 밑바닥에서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돌을 말한다. 산과 같이 크기 때문에 옥초산이라 하는데, 그 돌 아래에는 아비지옥의 불이 타고 있다. 이것은 범부의 욕정이 무궁무진하고 옥초석이 타는 듯 뜨거워서 중생 세계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비유한다.
13)
5인도五印度 : 고대 인도를 천축天竺이라 부르고, 동·서·남·북·중앙 다섯으로 구분하여 이를 5천축 혹은 5인도라 하였다.
14)
문聞·사思·수修 세 가지 지혜 가운데 스스로 생각하여 얻는 지혜(思慧), 스스로 실천하여 수행하여 얻은 지혜(修慧) 두 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15)
방편과 진실(權實) : 권교權敎와 실교實敎를 말한다. 궁극적인 가르침이 실교라면, 그 진실의 가르침에 인도하기 위한 방편은 권교가 된다.
16)
드러남과 은밀함(顯密) :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를 말한다. 언어나 문자로 분명하게 말한 가르침이 현교라면, 비밀스럽게 말한 가르침은 밀교이다.
17)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 고려 제관諦觀 지음. 천태종의 교판인 오시팔교의 차례를 기록한 책. 본래는 하권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주석서로 『사교집해四敎集解』 3권, 『사교집주四敎集註』 10권, 『사교의비석四敎儀備釋』 3권 등 10여 부가 있다.
18)
천력天曆 원년 : 천력은 원나라 문종의 연호, 천력 원년은 1328년이다. 고려 충숙왕 15년에 해당한다.
1)
■ 석가여래행적송
석가釋迦(Śākya)는 여기 말로 능인能仁이라 하는데, 성姓을 말한다. 모니牟尼(muni)는 적묵寂黙이라 하는데, 이름을 말한다.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되, 삼업三業의 번잡함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여래如來(tathāgata)는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1) 가운데 첫 번째로, 여실한 도道에 의지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正等覺)을 이루셨다는 뜻이다. 『금강경』에서는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으므로 여래라 한다.”2)라고 말한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국토도 아니고 몸도 아니지만,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라고 굳이 이름 붙인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일대성교一代聖敎에는 네 가지 국토(四土)와 세 가지 부처님의 몸(三身)이 전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3) 첫째, 염정동거토染淨同居土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곳이다. 둘째,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는 견도번뇌와 수도번뇌를 끊은 삼승이 사는 곳으로 응신이 교화하는 국토이다. 응신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열응신劣應身4)은 염정동거토를 교화하며, 승응신勝應身5)은 방편유여토를 교화한다. 셋째, 실보무장애토實報無障碍土는 근본무명을 일부 끊은 법신 보살이 사는 곳으로 보신이 교화하는 국토이다. 넷째, 상적광토常寂光土는 오직 묘각법신만이 사는 곳이다. 지금의 사바세계는 열응신이 교화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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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신은 한 몸이고 네 가지 국토 역시 차별이 없으니, 무엇 때문인가? 법신이 바탕(體)이고, 두 가지 몸은 작용(用)이며, 상적광토가 바탕이고, 세 가지 국토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바탕 그대로 작용이어서 삼신과 네 가지 국토는 완연하다. 작용 그대로 바탕이므로 삼신과 네 가지 국토는 하나이다. 예를 들면 주먹을 펴면 손가락이 되고, 손가락을 모으면 주먹이 되는 것과 같다. 주먹은 바탕이고, 손가락은 작용이어서 바탕과 작용이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의 손일 뿐이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상적광토에서 움직이지 않으셔도 사바세계를 다니며 교화하시고, 법신을 버리지 않으셔도 보신과 응신을 나타내 보이신다. 이와 같이 사바세계가 상적광토이며 상적광토가 사바세계라는 것, 보신과 응신이 곧 법신이며 법신이 곧 보신과 응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논사는 네 가지 국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6) 첫째, 법성토法性土이니, 법신이 사는 곳이다. 둘째, 자수용토自受用土이니, 자수용 보신이 사는 곳이다. 이 두 가지 국토는 앞에서 말한 상적광토에 해당한다. 셋째, 타수용토他受用土이니, 타수용 보신이 사는 곳이다.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을 위하여 미세한 모습을 일부 나타낸 것으로, 앞에서 말한 실보무장애토에 해당한다. 넷째, 변화토變化土이니, 변화신이 사는 곳이다. 10지十地 이전의 보살과 이승과 범부를 위하여 거친 모습을 일부 나타낸 것으로, 앞서 말한 방편유여토와 염정동거토에 해당한다. 혹 어떤 사람들은 삼신과 네 가지 국토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데, 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1]
娑婆世界內 사바세계 안에는
三千大千國 삼천대천의 나라가 있고
每於一一國 하나하나의 나라마다
各有一須彌 각각 수미산이 하나 있네.
사바娑婆(ⓢ sabhā)는 삭하索訶라고도 한다. 여기 말로 감인堪忍이라 하는데, 이 국토의 중생들은 온갖 고통을 참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천상 세계는 비록 즐거운 곳이나 시드는 모습이 나타날 때에는 그 고통이 지옥의 고통을 넘어선다. 천상 세계 아래 오도五道는 괴롭기만 할 뿐 즐거움이 없는데도 그 괴로움을 즐겁다고 여긴다. 삼천대천세계는 다음에 나온다.
수미須彌(ⓢ Sumeru)는 소미로蘇迷盧라고도 한다. 여기 말로 묘고妙高라고 하는데, 동쪽은 백은白銀, 남쪽은 청유리靑琉璃, 서쪽은 황금黃金, 북쪽은 흑파지黑玻胝7)의 보배로 사방이 이루어져 ‘묘妙’라 하고, 다른 산보다 높아 ‘고高’라 한다. 높이가 8만 4천 유순8)이고, 물에 잠긴 부분도 그러하다.
『구사론』의 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9)
妙高層有四 묘고산에는 네 개의 층이 있으니
相去各十千 서로 1만 유순 떨어져 있고
旁出十六千 옆으로는 1만 6천,
八四二千量 8천, 4천, 2천 유순 나와 있네.
堅首及持鬘 견수堅首·지만持鬘·
常嬌大王衆 상교常嬌10)와 사대천왕 무리가
次第居四級 차례대로 네 개의 층에 살고
亦住餘七山 나머지 일곱 산에도 살고 있다네.
유순은 유선나由善那라고도 한다. 24지指11)가 1주肘12)이고, 1주는 1척尺 5촌寸이다. 6척이 궁弓13)이며, 5백 궁이 1구로사俱盧舍14)이다. 이는 6리 남짓으로 3천 척이 된다. 8구로사가 1유순이므로 곧 2만 4천 척이다.
[2]
旁有七山遶 곁으로 일곱 산이 둘러 있는데
皆是七寶成 모두 칠보로 이루어져 있고
中各香水海 사이마다 향기로운 바다
衆花滿其中 그곳엔 꽃들이 가득하네.
일곱 산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쌍산持雙山은 높이가 4만 2천 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8만 유순이다.
둘째, 지축산持軸山은 높이가 2만 1천 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4만 유순이다.
셋째, 담목산擔木山은 높이가 1만 5백 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2만 유순이다.
넷째, 선견산善見山은 높이가 5,250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1만 유순이다.
다섯째, 마이산馬耳山은 높이가 2,625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5천 유순이다.
여섯째, 상비산象鼻山은 높이가 1,312유순 반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2천5백 유순이다.
일곱째, 어주산魚觜山은 높이가 656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산 사이의 물의 너비가 1,250유순이다.
이와 같이 일곱 산 사이 향기로운 바다에는 각각 우발라優鉢羅·파두마波頭摩·구모두拘牟頭·분다리奔茶利15) 꽃들이 모두 물 위를 덮고 있다.
[3]
次有鹹水海 다음에 짠 바다가 있으니
娑竭龍爲主 사갈라娑竭羅용왕이 주인이고
中有四大洲 그 사이 사대주四大洲가 있으니
四輪王所治 사륜왕四輪王이 다스리시네.
짠 바다(鹹海)는 너비가 3억 3만 6천 유순이고, 깊이가 8만 4천 유순이다. 『화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쪽 염부제閻浮提에는 2천5백의 큰 강이 있고, 서쪽 구야니瞿耶尼에는 5천의 큰 강이 있고, 동쪽 불파제弗波提에는 7천5백의 큰 강이 있고, 북쪽 울단월鬱單越에는 1만의 큰 강이 있다. 이러한 사대주를 합하면 2만 5천의 큰 강이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고 큰 바다로 흘러간다.”16)
“열 명의 광명光明용왕이 있어 큰 바다에 비를 내리는데, 그 물의 양이 앞서 말한 것의 배가 넘는다. 또한 백 명의 광명용왕 등 80억 대용왕이 있어 제각각 큰 바다에 비를 내리니, 모두 다 흘러가 그 양이 앞서 말한 것의 배가 넘는다. 이와 같은 80억 용왕의 궁전에서 각각 물을 흘려보내 큰 바다로 들어가니, 모두 다 흘러가 그 양이 앞서 말한 것의 배가 넘는다. 사갈라용왕 태자의 궁전인 염부당궁閻浮幢宮에서 물을 흘려보내니, 또한 앞서 말한 것의 배가 넘는다. 흘러나온 그 물은 검푸른 유리색이며, 흘러나오는 시간이 있어 바다의 조수가 때를 놓치지 않는다.”17)
“바다에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빛나는 큰 보배 네 가지가 바닥에 퍼져 있는데, 그 성질이 매우 뜨거워 항상 한량없는 바닷물을 마셔 버려 줄게 만든다. 이 보배가 없다면 사천하에서 유정천까지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18)
사갈라娑竭羅(ⓢ Sāgara)는 여기 말로 ‘짠 바다(鹹海)’라고 하는데, 거처하는 곳이 용왕의 이름이 되었다. 이 바다에서는 이 용이 주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신하와 권속이다.
『누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지러운 바람이 크게 일어 땅이 깊게 파이면 깊이가 330만 리나 된다. 천하의 물이 모두 흘러 들어가 가득 차면 큰 바다를 이루는데, 그 맛이 짠 까닭은 세 가지이다. 첫째 바다에 몸 길이가 2만 8천 리 되는 큰 물고기가 있어 바다 속을 더럽히기 때문에 맛이 짜다.”19)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않겠다.
사주四洲란 사천하四天下라고도 하는데, 수미산 사방의 큰 바다 가운데 있다.
동쪽은 비제하毗提訶이다. 불바제弗波提라고도 하며, 승신勝身이라 번역한다. 둘레는 7천 유순이고, 형태는 반달 같으며, 사람의 키는 16주肘이고, 수명은 5백 세이다. 어둔 곳에서도 모든 것을 보며, 귀로 듣는 영역이 화살 하나가 날아갈 수 있는 거리이다.
남쪽은 염부제閻浮提이다. 섬부주贍部洲라고도 하며, 승금勝金이라 번역한다. 둘레는 6천5백 유순이고, 형태는 수레 상자 같으며, 사람의 키는 3주 반이고, 수명은 1백 세이지만 일정하지는 않다.
서쪽은 구타니瞿陁尼이다. 구야니瞿耶尼라고도 하며, 우화주牛貨洲라 번역한다. 둘레는 7천 유순이고, 형태는 보름달 같으며, 사람의 키는 8주이고, 수명은 250세이다. 눈으로 보는 영역이 산과 벽에 걸림이 없고, 눈으로도 소리를 듣는다.
북쪽은 울단월鬱單越이다. 구로주拘盧洲라고도 하며, 승주勝洲라 번역한다. 둘레는 8천 유순이고, 형태는 네모난 자리(方座) 같으며, 사람의 키는 32주이고, 수명은 1천 세로 중간에 요절하는 이가 없다. 산이나 장애물을 꿰뚫어 보아 걸림이 없고, 귀로는 가까운 것이든 먼 것이든 모두 다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처음 생겨나서 성장하는 과정이 3대주는 비슷하나, 북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면 북주의 사람은 음욕의 마음이 일어날 때 여인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그녀를 두고 가 버리면, 그 여인이 뒤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간다. 만일 그 남녀가 부모의 친척(中表之親20) )이어서 음욕을 행해서는 안 된다면, 나무가 구부러져 그늘을 만들지 않으므로 각자 헤어져 가 버린다. 만일 친척이 아니어서 음욕을 행해도 된다면, 나무가 구부러져 몸을 가려 주므로 원하는 대로 즐기게 된다. 그 여인이 임신을 하면 7~8일 만에 출산을 한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를 낳으면 길가에 버려둔다. 지나는 사람들이 손가락을 내밀어 빨게 하면 손가락에서 젖이 나온다. 7일이 지나면 그 아이는 성장하여 그 사람들과 함께 남자아이는 남자의 무리를 향하고, 여자아이는 여자의 무리를 향한다. 그 사람이 수명을 다하면 네거리에 두는데, 우위선가優慰禪伽21)라는 새가 있어 그 주검을 물어다 다른 곳에 둔다.
이 사대주는 네 명의 전륜왕이 다스린다. 금륜왕金輪王은 인간의 수명이 8만 세일 때 나와서 사천하를 다스리고, 은륜왕銀輪王은 인간의 수명이 6만 세일 때 나와서 3천하를 다스리고, 동륜왕銅輪王은 인간의 수명이 4만 세일 때 나와서 2천하를 다스리고, 철륜왕鐵輪王은 인간의 수명이 1만 세일 때 나와서 염부제만을 다스린다. 이러한 사륜왕은 위덕이 자재하고 칠보가 모두 갖추어져 마음대로 받아 쓰니, 하루 낮 하룻밤에 관장하는 세계를 두루 다니며 열 가지 선22)을 행하여 교화한다. 금륜왕은 사천하에 머물지 않고 때로 하늘에 올라가기도 한다.
[4]
外有鐵山遶 밖으로 철위산이 두르고 있으며
下外諸地獄 아래에는 지옥들이 늘어서 있으며
日月與星宿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廻轉迷盧半 수미산 중간을 떠돌고 있네.
철위산鐵圍山은 높이가 328유순이고, 너비도 그러하다. 12억 875유순을 지나 둘러싸고 있는 두 변이 각각 세 배인 것이 있으니, 이것이 소철위산小鐵圍山이다.
『인본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미산 등 큰 산과 큰 바다 밖에는 철위산이 있는데, 높이가 680만 유순이며, 너비도 그러하다. 이것 바깥에 또 철위산이 있는데, 높이와 너비가 같다. 이 두 산 사이 암흑 속에 지옥이 있는데, 아비阿鼻라고 한다.”23)
일곱 겹의 철로 된 성이며, 가로와 세로가 똑같이 36만 리이고, 일곱 층의 철망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온갖 괴로움이 그곳에 모여 있다. 가장 심한 악업을 지은 자는 이 악도에서 몸을 받아 수명이 한 살씩 늘고 줄어드니, 하루에 8만 4천 번 나고 죽는다. 이곳의 하루는 염부제의 60소겁에 해당하고, 이렇게 한 중겁을 지나 차츰차츰 8만 4천 겁에 이른다.【중겁】
그리고 팔한八寒·팔열八熱 등의 큰 지옥에 제각기 권속이 있으니, 그 수가 무량하며, 거기에서 고통 받는 자는,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경중輕重이 있고, 지내는 겁수 등에 차이가 있다. 지옥은 범어로 니리泥黎(ⓢ niraya)라 하며, 고구苦具라 번역하는데, 지하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고덕古德은 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송으로 말씀하셨다.
閻浮提闊七千旬 염부제의 너비는 7천 유순
處處皆有孤獨獄 곳곳에 모두 고독지옥이 있네.
或在山林曠野中 산림에도 광야에도
或在大海江河畔 큰 바다에도 강변에도
或在城隍社廟間 성황당이나 사당에도 있으니
其數八萬四千座 그 수가 8만 4천이나 되네.
그러므로 여러 종류의 작은 지옥들이 없는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해의 크기는 51유순이고, 화정주火精珠로 이루어져 뜨겁다. 하지에서 동지까지는 차츰 멀리 돌기 때문에 점차 짧아지고, 빛이 차츰 막혀 점차 추워진다. 동지부터 하지까지는 차츰 가까이 돌기 때문에 점차 길어지고 점차 더워진다.
달의 크기는 50유순으로 반은 백수정白水精으로 이루어져 있고, 반은 흑수정黑水精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차갑다.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흰 쪽이 점차 나타나고 검은 쪽이 점차 숨기 때문에 사람들이 둥근 모습을 본다.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흰 쪽이 점차 줄고 검은 쪽이 점차 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지러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자체는 실제로 늘고 줄어듦이 없다. 『석씨회요』24)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인본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것은, 여섯 달은 북쪽으로 가서 하루에 점차 북쪽으로 6구로사를 옮겨 가기 때문에 점차 길어지고, 여섯 달은 남쪽으로 가서 또한 그와 같으므로 점차 짧아진다.”25)
『입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달이 찼다 이지러지는 것은 해가 달의 뒤를 따라가면 햇빛이 달을 가리는데 점점 가리다가 15일이 지나 달을 완전히 가려 버리고, 해가 달 앞에 가면 날마다 밝아지는 것 역시 그와 같아서 15일이 지나 모두 갖추어 원만하게 된다. …….”26)
때로 일식과 월식이 있는 것에 대해 경27)에서는 라후 아수라왕羅睺阿修羅王이 가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속의 음양가들 견해는 이와 다르지만, 또한 근거가 있다.
그리고 그 해와 달이 일시에 세 개의 섬부주를 비추지만, 남주가 한낮이면 동주가 저녁이고, 서주가 아침이면 북주는 한밤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낮과 밤의 길고 짧음이 모두 이와 같다.
그러므로 『구사론』의 송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해와 달은 수미산 중턱에 있는데
지름이 각각 51, 50 유순이다.
한밤과 일몰과 한낮과 일출은
사대주에서 동일한 시간이라네. …….28)
세간의 문헌에서는 “해의 운행은 더뎌서 한 해에 하늘을 한 바퀴 돌고, 달의 운행은 빨라서 한 달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하였다. 별의 크기는 같지 않으니 큰 것은 80구로사, 중간 것은 11구로사, 작은 것은 4구로사이다. 그 수가 한량없고 이름도 갖가지이다. 각각 인간의 화복 등을 관장하므로 그 상도常度를 잃지 않으면 천하가 태평하고 성현이 출현하지만, 그 도를 잃어버리면 변괴가 나타나고 나라에 반드시 재앙이 있거나 군주가 갑자기 죽거나 대신들이 역란을 일으키거나 흉년이 들어 곡식이 귀하거나 전쟁이 나거나 전염병이 돈다. 이러한 해·달·별은 풍륜에 의하여 머무는데, 그 높이가 4만 2천 유순이다.
『법화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는 관음보살의 화현이며, 달은 대세지보살의 화현이며, 별은 허공장보살의 화현이다. 범부로서 큰 성인을 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해와 달과 별을 통해서일 뿐인데,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29)
[5]
四王處山腹 사왕천은 수미산 중간에 있고
忉利居其頂 도리천은 그 꼭대기에 있고
夜摩兜率陁 야마천과 도솔타천
化樂及他化 화락천과 타화자재천
[6]
此四天住空 이 네 하늘은 허공에 머물러
壽福轉倍前 수명과 복덕이 앞의 것의 배이다.30)
如是六箇天 이러한 여섯 하늘을
俱名爲欲界 아울러서 욕계欲界라 부른다.
사왕四王이란 동방 제두뢰타천왕【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 비류륵차천왕【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 비류박차천왕【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 비사문천왕【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이 사천왕들은 수미산 넷째 층의 네 면에 머물면서 권위로써 세상을 보호하는데, 키는 반 리이며, 수명은 5백 세이다. 인간 세상의 50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므로 인간 세상에 빗대면 9백만 세에 해당하고, 땅과의 거리는 4만 2천 유순이다.
도리천忉利天은 삼십삼천이라 번역하는데, 이 하늘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 사방으로 각각 여덟 개의 하늘이 있어【삼십이천을 이루고】 제석천왕이 중앙에 머문다. 이러한 여러 하늘에서는 키가 1만 리이며, 수명이 1천 세이다. 인간 세상의 1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므로 인간 세상에 빗대면 360억 세에 해당하고, 땅과의 거리는 8만 4천 유순이다. 이 두 하늘에서는 둘씩 서로 어우러져 음양陰陽을 이루고, 상품上品의 열 가지 선을 닦는 자만이 이 두 하늘에 태어난다.
야마천夜摩天은 수염마須燄摩라고도 하며, 시분時分이라 번역한다. 키는 1리 반이며, 수명은 2천 세이다. 인간 세상의 2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다.
도솔타천兜率陁天은 도사覩史라고도 하며, 지족知足이라 번역한다. 키는 2리이며, 수명은 4천 세이다. 인간 세상의 4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다. 이 두 하늘에서는 손을 잡고 서로 포옹하면 음양이 이루어진다.
화락천化樂天은 키가 2리 반이며, 수명은 8천 세이다. 인간 세상의 8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다.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키가 3리이며, 수명은 1만 6천 세이다. 인간 세상의 1천6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다. 이 두 하늘에서는 서로 바라보며 미소 짓기만 해도 음양이 이루어진다.
이상 네 하늘은 구름에 의지하여 허공에 머무는데, 차례로 땅과의 거리가 배로 늘어 타화자재천에 이르면, 땅과의 거리가 13억 4만 4천 유순이 된다. 상품의 열 가지 선과 좌선을 닦는 자가 이 네 하늘에 태어나는데, 마왕 파순波旬도 이 하늘에 산다. 하계下界의 오취五趣31)로부터 이 하늘까지를 모두 욕계라 한다.
『바사론』에서는 “사대주의 사람은 해와 달이 돌기 때문에 낮과 밤을 가리지만 욕계의 하늘에서는 낮과 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묻자, “발특마鉢特摩32)꽃이 다물고 온발라殟鉢鑼33)꽃이 피면 대부분 수면을 즐기는데 그때가 밤이고, 온발라꽃이 다물고 발특마꽃이 피면 덜 자고 싶어지는데 그때가 낮이다.”34)라고 답하였다.
『대지도론』에서는 “욕계의 여러 하늘은 등, 촛불, 밝은 구슬 등을 보시하였기 때문에 몸에서 항상 광명이 나므로 햇빛과 달빛이 필요하지 않다.”35)라고 말하였다.
[7]
四禪十八天 사선四禪의 18천은
已離欲麁散 욕계의 거친 색(麤色)36)과 산심散心37)을 이미 여의었으나
猶未出色籠 아직 색신色身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故名爲色界 색계라고 이름한다.
사선의 18천이란 다음과 같다.
초선初禪에는 3천이 있다.
첫째, 범중천梵衆天인데, 키가 반 유순이며, 수명이 20씩 늘고 준다.
둘째, 범보천梵輔天인데, 키가 1유순이며, 수명이 40씩 늘고 준다.
셋째, 대범천大梵天인데, 키가 1유순 반이며, 수명이 60씩 늘고 준다.【이러한 하늘에서 키와 수명이 앞의 것의 배가 되지 않는 것은 심사尋伺38)를 여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 하늘이 사천하를 덮는다.
제2선에는 3천이 있다.
첫째, 소광천少光天인데, 키가 2유순이고, 수명은 2대겁이다.
둘째, 무량광천無量光天인데, 키가 4유순이고, 수명은 4대겁이다.
셋째, 광음천光音天인데, 키가 8유순이고, 수명은 8대겁이다. 이러한 세 하늘이 소천세계小千世界를 덮는다.【소광천의 키가 앞의 것의 배가 되지 않는 것은 심사尋伺와 왕신王臣39)을 떠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명이 배가 되는 것은 괴로움의 습기를 없애기 쉽기 때문이다.】
제3선에는 3천이 있다.
첫째, 소정천少淨天인데, 키가 16유순이고, 수명은 16대겁이다.
둘째, 무량정천無量淨天인데, 키가 32유순이고, 수명은 32대겁이다.
셋째, 변정천遍淨天인데, 키가 64유순이고, 수명은 64대겁이다. 이러한 세 하늘이 중천세계中千世界를 덮는다.
제4선에는 9천이 있다.
첫째, 무운천無雲天인데, 키가 125유순이고, 수명은 125대겁이다.【이 하늘에서 키와 수명이 앞의 하늘보다 3유순과 3겁이 줄어든 것은 구름과 삼재三災를 없애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복생천福生天인데, 키가 250유순이고, 수명은 250대겁이다.
셋째, 광과천廣果天인데, 키가 5백 유순이고, 수명은 5백 대겁이다. 이상의 세 하늘은 범부선을 닦는 이들이 머무는 곳으로 상품上品의 열 가지 선과 좌선을 닦는 이가 이곳에 태어난다. 그리고 외도들이 무상천無想天을 별도로 닦기도 하는데, 이는 광과천에 포함되며, 키와 수명도 광과천과 같다.
넷째, 무번천無煩天인데, 키가 1천 유순이고, 수명은 1천 대겁이다.
다섯째, 무열천無熱天인데, 키가 2천 유순이고, 수명은 2천 대겁이다.
여섯째, 선견천善見天인데, 키가 4천 유순이고, 수명은 4천 대겁이다.
일곱째, 선현천善現天인데, 키가 8천 유순이고, 수명은 8천 대겁이다.
여덟째, 색구경천色究竟天인데, 키가 1만 6천 유순이고, 수명은 1만 6천 대겁이다. 이상의 다섯 하늘은 제3과40)를 얻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지혜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하늘에 태어나고, 선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공천四空天에 들어간다.】
아홉째, 대자재천大自在天인데, 키와 수명이 무량하며, 10지 보살41)이 사는 곳이다. 이 아홉 하늘이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덮는다.
그 경계의 가로세로와 지름을 논한다면, 숫자로서는 끝내 헤아릴 수가 없다. 또한 『대지도론』에서는 “색구경천에서 큰 돌 하나를 던지면, 1만 8383년을 지나야 비로소 땅에 도달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선천들은 비록 욕계의 거친 색과 산란한 마음은 여의었으나, 아직 색온에 묶여 있으니, 새가 조롱에 갇혀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과 같다.【어떤 곳에서는 “사선천 가운데 무상천이 하나가 되고,42) 대자재천은 없으니, 이 하늘에서는 색구경천이 중심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8]
上有四空處 위에는 사공처四空處의 하늘이 있으니
定樂勝四禪 선정의 즐거움이 사선천보다 뛰어나고
離色祗四陰 색 없이 사음四陰43)만 있으므로
故名無色界 무색계無色界라 이름하네.
사공처란 다음과 같다.
첫째, 공무변처空無邊處인데, 수명이 2만 대겁이다. 이 하늘의 수명이 앞의 것의 배가 되지 않는 것은 비로소 색신의 속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둘째, 식무변처識無邊處인데, 수명이 4만 대겁이다.
셋째, 무소유처無所有處인데, 수명이 6만 대겁이다.
넷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인데, 수명이 8만 대겁이다.
이러한 사공처에서는 수명이 앞의 것의 배가 되지 않고, 다만 2만 겁씩 증가한 것은 지혜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또 이 네 하늘은 따로 처소가 없어서 욕계와 색계를 떠나지 않지만, 닦은 업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서로 알지 못한다. 닦은 업이 사선천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그러한 뜻으로 위에 두었을 뿐이다.
이 사공처는 이미 색온을 벗어났고, 다만 수온·상온·행온·식온 사온만 있으며, 팔식八識 중에도 앞의 오식은 없고 뒤의 삼식만 있다.44)
초선천에서 비상비비상천까지 범부의 입장에서 논한다면, 여기에서는 이 하늘에 다시 태어날 업과 다음 경지에 태어날 업만을 짓는다. 업이 다하면 업에 따라 윤회하므로 영원히 도道에 들어갈 수 없다.
[9]
摠名爲三界 총체적으로는 삼계三界라 하고
別則二十五 개별적으로는 25유二十五有라 하네.
是爲一國量 이것이 하나의 국토이니
一釋迦所化 부처님 한 분이 교화하시네.
삼계란 욕계·색계·무색계이다. 25유란 사대주·사악취·육욕천·대범천·사선천·사공처천·무상천·오나함천45)이다. 또한 육취라고도 하는데,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인이다. 이것이 한 국토이며, 열응장륙불劣應丈六佛46)이 교화하시는 영역이다.
[10]
如是數至千 이와 같이 그 수가 천이 되면
名一小千界 소천세계라 하고
小千至一千 소천세계가 천이 되면
名一中千界 중천세계라 하네.
[11]
中千至一千 중천세계가 천이 되면
名曰大千界 대천세계라 하고
如是三千國 이와 같은 삼천국토에
各有鐵圍遶 각각 철위산이 둘러 있네.
『석씨회요釋氏會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위산과 바다 안에 사대주와 수미산이 있고, 그 위로 28천과 해와 달, 이것이 한 국토이다. 그 수가 천 개에 이르고, 철위산이 완전히 둘러싼 것을 소천세계라 한다. 이 소천세계 숫자가 천 개에 이르고, 철위산이 완전히 둘러싼 것을 중천세계라 한다. 이 중천세계 숫자가 천 개에 이르고, 철위산이 완전히 둘러싼 것을 대천세계라 한다. 그렇다면 1만억의 국토가 있게 되는데, 전부 부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모두 그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범망경소梵網經䟽』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다.47)
“ 『유가론』에서는 대천세계 안에 1백 구지俱胝(ⓢ koṭi) 세계가 있다 하였고, 『잡집론』에서는 구지란 1백억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기에서는 1백억이라고만 말하는가?
억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10만을 억이라 하고, 혹은 백만, 혹은 천만, 혹은 만만萬萬을 억이라 한다. 『유가론』에서는 다만 10만을 억이라 하였지만, 이 경에서는 천만을 억이라 하였다. 그런 까닭에 경전 곳곳에서 말한 것이 같지 않지만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12]
此諸國土等 이 모든 국토들이
棊布地輪上 지륜 위에 바둑판처럼 펼쳐 있고
下有金水風 아래에는 금륜·수륜·풍륜
三輪次第擎 3륜이 차례로 받치고 있네.
지륜地輪은 두께가 8만 4천 유순이며, 지름은 세 배이다. 금륜金輪은 두께가 3억 2만 유순이며, 지름은 12억 3450유순이다. 수륜水輪은 두께가 8억 유순이며, 지름은 금륜과 같다. 풍륜風輪은 두께가 16억 유순이며, 지름은 무한하다. 이러한 4륜의 지름은 다만 하나의 수미산과 하나의 국토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대천세계를 들어 논한다면 그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13]
世界將成時 세계가 이루어질 때
梵王最初建 범왕천이 처음 세워지고
輔衆欲四空 범보천· 범중천·욕계천·사공처천
情器次第成 유정과 기세간이 차례로 이루어졌네.
[14]
下界風輪起 아래 세계에서 풍륜이 일어나니
量等大千界 대천세계만큼 크고
仰布及傍布 위로 옆으로 펼쳐지는 것이
猶如槃椽形 소반의 가장자리(槃椽48)) 모양과 같네.
[15]
光音天布雲 광음천이 구름을 펼쳐
遍覆風輪上 풍륜 위를 두루 덮으면
霔大車軸雨 큰 수레바퀴 같은 비가 내리고
水深難可底 바닥을 알 수 없게 물이 깊어지네.
[16]
風擊上成金 바람을 쳐서 밀어 올리면 금륜이 되고
餘下爲水輪 나머지가 내려오면 수륜이 되며
空中復降雨 허공에서 다시 비가 내리면
水滿金輪上 금륜 위에 물이 가득해지네.
[17]
風吹成大地 바람이 불어 대지를 이루면
須彌及衆山 수미산과 여러 산들
四洲與河海 사대주와 강과 바다가
依舊皆成建 예전대로 모두 이루어지네.
[18]
二禪福盡者 이선천二禪天에서 복이 다한 사람은
下生勝金洲 승금주勝金洲49)에 내려와 태어나는데
身巨壽無量 키가 크고 수명이 한량없으며
飛行光遠照 날아다니며 몸의 빛이 멀리 비치네.
[19]
所食地味餅 먹는 것은 지미의 떡(地味餠)50)
林藤與粳米 임등林藤과 갱미粳米인데
此諸勝味等 이것들은 모두 맛이 좋지만
貪食輙隨沒 욕심내어 먹으니 돌연 사라지네.
[20]
次有香稻生 다음에 향기로운 벼가 생겨나는데
人亦爭取食 사람들이 또 앞다투어 먹으니
光滅又通亡 몸의 빛이 사라지고 신통도 없어지며
分生男女根 남근과 여근이 나뉘어 생겼다네.
[21]
以其宿習故 전생에 익힌 습기 때문에
相交行不淨 서로 어우러져 부정不淨을 행하니
從此子孫繁 이로부터 자손이 번창하고
人民因富盛 백성들은 부유하고 번성해졌네.
[22]
漸邪行不善 점차 삿되이 선하지 못한 것을 행하면
死充三惡道 죽으면 삼악도를 채우고
畏惡修衆善 악도를 두려워하여 선을 닦으면
生三洲六天 삼주三洲와 육욕천六欲天에 태어난다.
[23]
五趣情與器 다섯 갈래(五趣)51)의 생명들과 그 세계가
於是備作焉 이때 갖추어지고
住二十增減 20증겁과 20감겁이 지나면
次起壞劫事 그 다음 괴겁의 일들이 일어나도다.
[24]
始從無間獄 무간지옥부터
乃至他化天 타화자재천까지
有情次第捨 유정들이 차례로 떠나
器界旣俱空 기세간이 모두 텅 비어 버리네.
[25]
尒時七日現 그때 일곱 개의 해가 나타나
海枯山石融 바닷물이 마르고 산의 돌이 녹아내려
大地並炎輝 대지도 화염에 휩싸여
大千盡煨燼 대천세계는 모두 잿더미가 된다네.
[26]
火焰聳初禪 초선천에서 화염이 솟구쳐
三天次第升 세 하늘로 차례로 올라가
咸赴二禪中 모두 이선천에 이르면
下空如黑穴 아래는 컴컴한 동굴처럼 텅 비게 되네.
[27]
成住壞空劫 성겁·주겁·괴겁·공겁이
大略已如是 대략 이와 같거니와
於此四劫中 이 네 가지 겁에는
八十度增減 80번의 증겁과 감겁이 있네.
[28]
是爲一火劫 이것이 한 화겁火劫인데
七火方一水 일곱 화겁 지나 한 번의 수겁水劫이 있고
七水更七火 일곱 수겁 지나 다시 일곱 화겁이 지나면
然後一風灾 풍재風災가 한번 온다네.
[29]
火灾從地起 화재火災는 땅에서 일어나
壞至於初禪 초선천까지 무너뜨리고
水從二禪起 수재水災는 이선천에서 일어나
壞器若消鹽 소금 녹이듯 기세간을 무너뜨리네.
[30]
風自三禪起 풍재風災는 삼선천에서 일어나
壞若乾支節 마른 백골을 부수듯 무너뜨리고
四禪無外灾 사선천에는 바깥의 재앙은 없으나
與殿俱生滅 하늘 궁전과 함께 생겼다 사라진다네.
[31]
火劫成壞數 화겁은 성겁과 괴겁이 잦고
水次風大踈 수재가 다음이고 풍재는 매우 드물어서
壞已復還成 무너졌다 다시 이루어지고
循環無了期 돌고 도는 것이 끝날 때가 없네.
[32]
風灾至百轉 풍재가 1백 번 일어나는 동안을
名一僧祗劫 한 아승기겁阿僧祗劫52)이라 하는데
如是無量劫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
佛出甚希有 부처님이 나타나시는 일은 매우 드물다네.
『화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공에서 큰 비를 퍼부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면 풍륜이 일어나 불어와서 색계의 모든 하늘과 궁전이 생겨난다. 다음에 풍륜이 일어나서 욕계의 하늘과 궁전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차례로 갖가지 풍륜이 일어나서 수미산 등 여러 산들이 생겨나고, 다음으로 대지가 생겨나고, 용궁과 아수라궁까지 생겨난다.”53)
그리고 『유가론』·『구사론』 등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54)
세계가 생겨날 때 대범천왕이 처음 단독으로 세워지고, 1증감겁을 지나 범보천과 범중천 그리고 욕계천과 사공거천四空居天 등 유정과 기세간이 차례로 이루어진다. 그 후 아래에서 거대한 풍륜이 일어나는데, 그 크기가 삼천대천세계만 하고, 모습이 두 가지이다. 위로 넓게 퍼지는 것과 옆으로 퍼지는 것을 말하는데, 위로 퍼지는 것이 바닥이 되고, 옆으로 퍼지는 것이 담장이 된다. 그 모양이 소반의 가장자리 같고, 단단하기가 금강석과 같다.
위에 있는 광음천에서 거대한 금장운金藏雲이 퍼져 풍륜을 두루 덮고 큰 홍수를 내리는데, 빗방울이 수레바퀴만 하고, 세계를 가득 채워 물의 깊이가 11억 2만 유순이나 된다. 이후에 풍륜이 일어 물을 쳐서 금륜을 이루면 그 두께가 3억 2만 유순이다. 아래로 8억 유순은 수륜이 되는데, 풍륜이 지탱해 주기 때문에 새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다. 허공에서 다시 여러 계장운界藏雲이 일어나 갖가지 비를 내려 금륜 위에 가득하고, 다시 풍륜이 일어 물을 쳐서 단단하게 하면 지륜이 된다. 그중에서 가장 정묘精妙한 것이 수미산이 되고, 다음 것은 칠금산이 되고, 가장 낮은 것은 여러 산들이 된다. 평평한 육지는 큰 섬(洲)이 되고, 깊은 골짜기는 바다가 되고, 위에서 아래까지 예전대로 세워진다.
광음천 무리들이 복이 다해 아래에 태어나면 모두 사람이 되는데, 키가 1천 척 혹은 2천 척이다. 기쁨으로 먹을 것을 삼고, 몸의 빛이 멀리 비친다.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남녀의 구분이 없다. 자연히 지비地肥【혹은 지미地味】가 생겨나는데, 그 빛이 희고 맛이 달다. 앞다퉈 그것을 먹으면 지비가 돌연 사라진다.
다음에는 지피地皮【혹은 지병地餠】가 생겨나는데, 그 빛이 황색이고 맛이 달다.
다음에는 임등林騰【혹은 임조林條】이 생겨나는데, 모습이 숲의 형태와 같다. 모두 열매를 맺고 자르면 밀랍 없는 꿀과 같은 즙이 나온다.
다음에는 갱미粳米가 나오는데 길이가 족히 7촌이 된다.【혹은 4촌이라고 말한다.】
다음에는 향기 나는 벼(香稻)가 나오는데 겨(糠麧)가 있어 이것을 먹으면 대소변이 몸에 쌓인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두 가지 길이 생겨나고, 남녀의 성기가 갖추어져 부부가 있게 되고, 밭과 집이 있게 된다. 탐욕에 물들었기 때문에 몸의 빛이 사라지고 신통이 없어져 해와 달이 처음 생겨나 낮과 밤으로 나뉜다. 사람들이 차츰 삿되고 선하지 못한 업을 짓고 악업을 짓기 때문에 아귀와 축생 그리고 지옥에 태어난다. 악도의 고통을 보고 선을 닦으므로 점차 동주·서주·북주나 사왕천이나 도리천 등 다른 곳에 태어나는데, 이것을 성겁成劫이라 한다.
주겁住劫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괴겁壞劫은 주겁의 마지막에 무간지옥의 유정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때부터 시작된다. 삼악도에서 사대주와 육욕천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먼저 비게 된다. 하계下界가 텅 비면 햇빛이 네 배로 뜨거워지고, 도랑과 연못이 모두 말라 초목이 타 버린다. 두세 개의 해가 나타나 강과 하천이 메마르고, 네다섯 개의 해가 나타날 때에는 바다와 샘이 말라 버린다. 예닐곱 개의 해가 함께 나타나면 산과 돌이 모두 녹아내리고 대지가 불길에 휩싸여 불꽃이 치솟고 초선천의 여러 하늘 무리들이 이선천으로 달아나서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타 버리는데, 이것이 괴겁이다.
공겁空劫은 세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거대한 허공이 캄캄하고 어두운 것이 마치 검은 동굴과 같다.
이와 같이 성겁·주겁·괴겁·공겁 네 겁이 각각 20번 줄어들고 늘어나기 때문에 80번의 증감이 이뤄진다. 성겁 가운데 앞의 1증감겁增減劫에서 기세간이 이루어지고, 뒤의 19증갑겁에서 유정이 이루어진다. 괴겁 가운데 앞의 19증감겁에서 유정이 무너지고, 뒤의 1증감겁에서 기세간이 무너진다. 그리고 주겁의 20증갑겁에서는 앞의 하나만 줄어드는 겁이고, 뒤의 하나만 늘어나는 겁이다.
증감겁이란 무엇인가? 세계가 처음 이루어질 때 이 염부제의 8만 국 마을의 백성은 부유하고 즐거워서 추위와 더위로 병들어 괴로운 자가 없었다. 왕이 바르게 다스려서 열 가지 선을 받들어 행하고 서로 받들고 공경함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으며, 사람의 수명이 한량없다.
주겁의 처음이 되면 왕이 바르게 행하지 않고 백성들이 조금씩 사악해져서 그 수명이 줄어들어 10만 세가 된다. 이렇듯 전전하여 백 년마다 한 살씩 줄어 수명이 10세에 이르는 동안을 감겁減劫이라 한다. 이 10세로부터 아들의 나이가 아비의 나이보다 곱이 되어 8만 세까지 늘어나는 동안을 증겁增劫이라 한다.
아들의 나이가 아비의 곱이 된다는 것을 『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명이 10세일 때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해치므로 선인仙人이 찾아와 살생을 멀리 여의도록 가르침을 주니, 그 사람이 다른 생을 받을 때에는 수명이 배가 되어 20세가 된다. 다시 도둑질을 멀리 여의면 배가 되어 40세가 되고, 다시 사음邪淫을 멀리 여의면 배가 되어 80세가 된다. 다시 거짓말을 여의면 배가 되어 160세가 되고, 다시 이간질을 여의면 배가 되어 320세가 되고, 다시 거친 말을 여의면 배가 되어 640세가 되고, 다시 꾸미는 말을 여의면 배가 되어 2천5백 세가 된다.【이것은 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5백을 더하여 곱한다.】55) 다시 탐욕과 질투를 여의면 5천 세가 되고, 다시 성냄을 여의면 배가 되어 1만 세가 되고, 다시 삿된 견해를 여의면 배가 되어 2만 세가 되고, 다시 비법非法과 악탐惡貪과 사행邪行을 여의면 배가 되어 4만 세가 된다. 다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여 복업을 닦으면 배가 되어 8만 세가 된다.【어떤 경에서 8만 4천이라 하는 것은 곱하는 중에 늘어났기 때문이다.】”56)
1증감겁은 계산하면 1680만 년이고, 이 겁을 녹로轆轤57)라고 한다. 20녹로겁을 기준으로 하면 3만 3600만 년이므로 이와 같이 80번의 증감을 합하면 한 화재겁火災劫이 된다.
다시 일곱 번의 화재를 겪은 연후에 한 번의 수재가 있는데, 49번의 성·주·괴·공을 지나 일곱 번의 수재가 있고, 함께 56번의 성·주·괴·공이 이루어진다. 다시 일곱 번의 화재가 끝난 후에 풍재가 한 번 있는데, 한 번의 풍재마다 64번의 성·주·괴·공을 거친다. 이 하나하나의 성·주·괴·공을 모두 계산하면 13억 4400만 년이 된다.
화재는 초선천까지 무너뜨리는데 거친 분별(尋)과 미세한 분별(伺)이 있기 때문이다. 수재는 이선천까지 무너뜨리는데 기쁨(喜受)이 있기 때문이다. 풍재는 삼선천까지 무너뜨리는데 들숨과 날숨이 있기 때문이다. 화재에 관한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수재는 초선천 이하에서 화재가 이루어졌다 무너졌다 하는 것을 일곱 번 마친 뒤, 여덟 번째 괴겁의 끝 무렵에 이선천에서 구생수俱生水58)가 일어나 물이 소금을 녹이듯 기세간을 무너뜨린다. 이 물과 기세간은 동시에 함께 사라진다. 여덟 번째 화재의 끝 무렵에 한 번의 수재가 있는 까닭은 이선천인 정광천의 수명이 8대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너졌다 다시 이선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풍재는 8 곱하기 7, 즉 56번의 화재와 1 곱하기 7, 즉 일곱 번의 수재 뒤에 삼선천에서 구생풍俱生風59)이 일어나 마치 바람이 뼈마디를 말리듯 기세간을 무너뜨린다. 이 바람과 기세간은 동시에 함께 사라진다. 64번의 괴겁에 이르러 풍재가 있는 까닭은 삼선천인 변정천의 수명이 64대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재가 사선천에 이르지 않는 것은 평등한 생각(捨念)으로 청정하기 때문이다. 『대법론』에서는 “사정려四精慮의 외궁外宮 등은 비록 바깥의 재난은 없지만 궁전들과 함께 생기고 함께 사라지므로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있다고 말한다.”60)라고 하였다.
겁劫61)이란 시분時分이라 번역한다. 기근겁饑饉劫·질역겁疾疫劫·도병겁刀兵劫·증겁增劫·멸겁滅劫이 있다. 이들 모두는 소겁小劫이고, 합하면 한 번의 증감겁이 된다. 혹은 20증감을 한 증감겁이라 하고, 이것을 중겁中劫이라 하며, 통틀어 80번의 증감이 있는 것을 대겁大劫이라 한다.
어떤 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큰 성이 사방 40리인데【『대지도론』에서는 1백 유순이라 한다.62) 】, 겨자씨를 가득 채워 두고, 장수천長壽天63)의 사람이 3년이 지날 때마다【어떤 경에서는 1백 년이 지날 때마다】 겨자씨 하나를 가져가서 성이 비록 텅 비게 되더라도 그 겁은 아직 끝나지 않으니, 이것이 범천에서의 한 겁의 수명이다.”
그리고 『영락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변이 1리, 10리, 40리 되는 네모난 돌이 있는데, 하늘 사람이 삼수의三銖衣64)를 입고 인간 세계의 햇수로 3년마다 한 번 스쳐 이 돌이 다 닳는 것을 소겁이라 한다. 또 80리 되는 돌이 있는데, 범천에 있는 백보광명주百寶光明珠를 햇수로 삼아 3년마다 한 번 스쳐 이 돌이 다 닳는 것을 중겁이라 한다. 또 8백 리 되는 돌이 있는데, 정거천에 있는 천보광명경千寶光明鏡을 햇수로 삼아 3년마다 한 번 스쳐 이 돌이 다 닳는 것을 대겁이라 한다. 이것이 한 아승기겁이다.”65)
그리고 『겁장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풍재를 한 단위로 삼아 그 수가 불가지不可知66)에 이르면, 이와 같이 아주 길고 먼 시간을 한 아승기겁이라 한다.”67)
『화엄경』에서 아승기라는 수는 105번째의 단위이다.68) 자은 규기慈恩窺基69) 대사는 “풍재의 겁수가 1백여 번에 이르면 아승기라 한다.”라고 말하였다.
[33]
若佛出於世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면
必降閻浮洲 반드시 염부주에 내려오시니
萬億閻浮中 만억의 염부제 가운데
各有一佛出 제각기 한 분의 부처님 출현하시네.
[34]
成道轉法輪 성도成道와 법륜을 굴리신 것과
入滅皆同時 입멸은 모두 동시에 일어났으니
如是千百億 이러한 천백 억의 부처님은
盧舍那本身 모두 노사나불의 본신이시네.
[35]
譬如淨滿月 비유하면 깨끗한 보름달이
普現一切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데
影像雖無量 그 영상이 한량없으나
本月未曾二 본래 달은 둘이 아닌 것과 같네.
『석씨회요』에서는 “법왕이 도읍을 삼는 곳은 대천세계 안에 속한 것이지만, 이미 이루어진 도읍에 의거한다면, 이곳 염부제가 항상 머무시는 곳이 된다.”라고 하였다.
『대지도론』에서는 “염부제의 세 변은 똑같이 2천 유순이며, 남쪽 변이 3유순 반이다.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아 사람의 얼굴이 그것을 닮았다. 부처님께서는 카필라성(迦毘羅城)에 태어나셨으므로 천지의 중앙에 머무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전에 한 명제漢明帝가 마등摩騰70) 법사에게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실 때 이 땅(중국)에서 나지 않으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마등은 대답하기를,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은 삼천대천세계 백억 해와 달의 중앙입니다. 그러므로 삼세의 부처님들은 모두 다 그곳에서 태어나시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변두리에 태어나지 않으시니, 왜냐하면 땅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인본경』에서는 말하기를, “염부제에는 세 천하에서 타화자재천까지 어느 곳보다 수승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용감하고 민첩함이며, 둘째 정념正念할 수 있는 곳이며, 셋째 부처님께서 나시는 곳이며, 넷째 업을 닦을 수 있는 곳이며, 다섯째 범행梵行71)을 행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72)라고 하였다.
어떤 경에서는 “부처님들이 세 천하에 오시지 않는 것은, 그 국토의 사람들은 교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국토의 중생들은 근기가 예리하고 민첩하고 매우 용맹하여 도를 얻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예전부터 모든 부처님들은 다 이 국토에 태어나신다.”라고 하였다.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헤아리면 1만억 국토가 된다. 한 국토마다 한 부처님이 계시므로 천백억73) 부처님이 계신다. 이분들은 모두 적화불迹化佛74)이시지만 본래 노사나盧舍那75)이시다.
『범망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我今盧舍那 나 지금 노사나가
方坐蓮花臺 연화대蓮華臺에 앉자마자
周帀千花上 천 송이 꽃 위에 두루
復現千釋迦 천 분의 석가 나타나시네.
一花百億國 한 송이 꽃마다 백억의 국토가 있고
一國一釋迦 한 국토에 한 석가 계시니
如是千百億 이와 같은 천백억 부처님은
盧舍那本身 노사나의 본신本身이라네.76)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千華上佛 천 송이 꽃 위의 부처는
是吾化身 나의 화신이요
千百億釋迦 천백억 석가는
是千釋迦之化身【云云】 천 석가의 화신이라네. …….77)
그렇다면 달이 허공에 떠올라 그 영상이 모든 물에 비치니, 그 영상은 비록 한량없으나 달은 본래 하나인 것과 같다. 부처님도 이와 같이 비록 그 자취를 만억의 국토에 나투시지만, 본래 몸은 하나이다. 노사나는 ‘청정함이 가득함(淨滿)’이라 번역하는데, 삼혹三惑이 이미 청정하여 종지種智78)가 원만하기 때문이다.
[36]
於此閻浮提 이 염부제에
有國名迦維 카필라국이 있는데
王名是淨飰 왕의 이름은 정반淨飯이요
夫人號摩耶 부인은 마야摩耶라 부르네.
『인본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79)
“겁초劫初에 지미地味와 지피地皮와 지부地膚 등 맛있는 것이 차례로 생겨났다가 사라진 후에 갱미가 생겨났는데, 아침에 베어내면 저녁에 다시 생겨났다. 사람들이 탐내어 그것을 쌓아 두자 베어낸 후 다시 생겨나지 않았다. 그 후 서로 침입하여 도둑질하니 아무도 해결할 사람이 없었다. 의논하여 지혜로운 이 한 사람을 세우니, 이름이 삼만다三滿多80)이고, 평등왕平等王이었다. 선한 자는 상을 주고 악한 자는 벌을 주니, 중생들이 그에게 물자를 공급하였다. 이로부터 백성들의 왕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 평등왕의 자손이 대를 이어 33세世인 선사왕善思王에 이르러 전륜성왕의 지위에 오르고, 사천하의 왕이 되었다.
바로 사자협왕師子頰王(ⓢ Siṃhahanu)81)에 이르기까지 무릇 101만 56왕이 있었다. 사자협왕은 네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가 정반淨飯(ⓢ Śuddhodana)이었고, 둘째가 백반白飯(ⓢ Śuklodana)이었고, 셋째가 곡반斛飯(ⓢ Droṇodana)이었고, 넷째가 감로반甘露飯(ⓢ Amṛtodana)이었다. 정반왕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첫째가 실달悉達(ⓢ Siddhārtha)이었고, 둘째가 난타難陀(ⓢ Nanda)이었다. 백반왕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첫째가 조달調達(ⓢ Devadatta)82)이었고, 둘째가 아난阿難(ⓢ Ānanda)이었다. 곡반왕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으니, 첫째가 마하남摩訶男(ⓢ Mahānāma)이었고, 둘째가 아나율阿那律(ⓢ Anuruddha)이었다. 감로반왕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으니,83) 첫째가 파사婆娑(ⓢ Bhagu)이었고, 둘째가 발타跋陁(ⓢ Bhaddiya)이었고, 감로미甘露味(ⓢ Amṛtā)라는 딸이 있었다. 이들 모두는 출가하여 도를 증득하였다.
마야摩耶(ⓢ Māyā)는 대환술大幻術이라 번역한다. 처음 생겨났을 때 용모가 단정함이 으뜸이어서 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는 사람이 낳은 아이가 아니라 선화천善化天 사람의 화신이다’라고 말하였으므로 ‘마야, 대환술’이라 불렀다. 관상가들은 ‘이 아기씨는 장차 전륜성왕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석씨회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비성天臂城에 있는 선각 장자先覺長者가 여덟 따님을 낳았는데, 정반왕이 모두 궁으로 맞아들여, 첫째인 마야와 여덟째인 파사파제波闍波提(ⓢ Prajāpatī)를 자신이 취해 왕비를 삼고, 다른 여섯은 세 명의 아우와 나누어 각각 왕비를 삼도록 하였다.”
[37]
周昭癸丑年 주 소왕周昭王84) 계축년
七月十五夜 7월 15일 밤에
夫人感瑞夢 부인이 상서로운 꿈을 꾸니
人乘象入懷 코끼리를 탄 사람이 품에 들어오더라.
[38]
旣而方有娠 이윽고 태기가 있으니
自後受天供 그 뒤로는 하늘의 공양 받으시고
人間諸勝味 인간 세상의 음식은 뛰어난 음식이라도
不復霑唇舌 다시는 입에 대지 않으셨네.
주 소왕이란 중국 희주姬周85) 왕의 이름이다. 그 사실은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번거롭게 기록하지 않겠다.
『인과경』과 『보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86)
“석가여래가 대보살大菩薩이었을 때 이름이 선혜善慧이었다. 도솔천에서 태어나 여러 하늘의 주인이 되었는데, 60억 하늘 대신들이 ‘보살이 장차 하강하면 어느 국토에 태어나야 하는가’를 의논하자, 보살은 대답하기를, ‘삼천대천세계 염부제 안에 있는 카필라국은 땅의 한가운데 있다. 그 나라에는 60가지의 종족이 있는데 석가족이 가장 번성하며, 그중 정반왕의 종족이 으뜸이다. 감자왕甘蔗王의 후예이며 성왕聖王의 후손이어서 성품이 어질고 행동이 현명하다. 그 부인은 정숙하고 어질어서 하늘의 옥녀와 같다. 이전 5백 생 동안 항상 보살의 어머니였으니 내려가서 태어나리라’라고 하였다.”
『서응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87)
“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원광(日精)을 머리에 쓰고 도솔천궁을 출발하시니, 모든 하늘의 대중들이 뒤따르면서 허공 가득히 풍악을 울리고 꽃을 뿌렸고, (보살은) 큰 광명을 두루 비추며 어머니의 태에 드셨다. 이때 도솔천의 무리들은 ‘우리들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보살이 성불하실 때 설법을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곧 모든 나라의 왕과 대신, 바라문과 장자, 거사 등의 집안에 의탁하니, 무릇 99억이나 되었다.
이때 부인이 잠을 자다가 어떤 사람이 코끼리를 타고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몸이 무거워졌음을 느끼자, 하늘이 음식을 바쳐 저절로 도달하였으므로 다시는 인간의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주나라 소왕 즉위 23년 계축년 7월 15일의 일이다.
[39]
明年甲寅歲 다음해 갑인년
四月初八日 사월 초파일에
從右脇誕生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시니
端正好男子 단정하고 잘 생긴 남자아이더라.
[40]
生時靈瑞事 태어날 때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일
不可具言說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天雨花散地 하늘에서 꽃을 내려 대지에 흩뿌리고
龍噴水浴身 용이 물을 뿜어 몸을 씻겨 드렸네.
[41]
生已蓮承足 태어나시자 연꽃이 발을 받쳐
四方各七步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兩手指天地 양손으로 하늘과 땅 가리키며
即作師子吼 사자후를 하셨네.
[42]
天上及天下 “하늘 위 하늘 아래
唯我爲獨尊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하시니
父母共異之 부모가 모두 이상히 여겨
命名爲悉達 싯다르타(悉達多)라고 이름하셨네.
[43]
召諸相者占 관상가들을 불러 점치게 하니
占已皆奏曰 점을 보고 나서 모두 아뢰기를,
年登十九歲 “나이 19세가 되면
必作轉輪王 반드시 전륜왕이 될 것이요,
[44]
若便出家者 만약 출가를 한다면
當證一切智 일체지를 증득하리라.” 하였네.
又有香山仙 또한 향산香山에서 온 선인은
禮已自悲泣 예배하고 슬피 울었네.
『서응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88)
보살이 태에 머무신 지 열 달이 되던 4월 8일에 부인이 채녀采女들과 룸비니(藍毗尼) 동산에 납시어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휘어잡고 꽃을 잡으려 할 때에 보살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셨다. 그때 나무 밑에 연꽃 일곱 줄기가 저절로 생겨나는데, 크기가 수레바퀴만 하였다. 보살이 연꽃을 따라 사방으로 각기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열반경』에서는 열 가지 방향으로 걸으셨다고 말한다.】,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방을 둘러보면서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니, 모든 인간과 천신들을 이롭게 하리라.” 하시었다.
제석과 범천 등 천신들이 오묘하고 향기로운 꽃을 뿌리면서 온갖 풍악을 연주하였고, 영락으로 꾸민 하늘 옷을 입은 무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아홉 마리 용이 한 번은 찬물을, 한 번은 더운 물을 뿜어 태자의 몸을 씻겨 드렸으며,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이와 같은 상서로운 감응이 34가지나 있었다.89)【글이 번쇄할까 두려워 다 수록하지 않는다.】
같은 날 여덟 대국의 왕이 모두 태자를 낳았고, 석가 종족은 5백 명의 아들을 낳았다. 나라의 거사와 장자도 모두 아들을 낳았으며, 8만 4천의 마구간에서 말들이 망아지를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건척揵陟90)이다. 궁전에서는 5백 곳의 감춰진 보물 창고가 열리고, 큰 상인들이 보물을 캐어 모두 돌아오니, 안팎의 신하들이 이 같은 상서로운 모습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로다.” 감탄하였다. 그리하여 사르바싯다르타(薩婆悉達多)91)라고 이름하였으니【중국 말로는 돈길頓吉이라 번역한다.】, 태어날 때 모든 상서로움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왕이 나라 안의 관상 잘 보는 바라문들을 불러서 관상을 보게 하니, “19세가 되면 전륜왕이 될 것이요, 출가하면 등정각等正覺을 이룰 것입니다.”라고 모두들 말하였다.
그리고 향산香山에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아사타阿私陁92)라는 선인이 있었는데, 태자를 보자마자 그 발에 예경하고는 갑자기 울면서 말하기를,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일체지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120살이어서 오래지 않아 목숨이 다할 것이고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나면 그분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니, 그저 슬플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러 경론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연월일을 서로 다르게 전하고 있다. 하夏나라 마지막 왕93) 때 태어나셨다 하고, 혹은 상왕대商王代94)에 태어나셨다 하고, 혹은 동주東周 평왕平王95) 무오년에 태어나셨다 하고, 혹은 환왕桓王96) 을축년에 태어나셨다고도 한다. 이와 같이 다른 설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변정론』에서는 『주서이기』97)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왕召王 즉위 24년 갑인 4월 8일 강과 하천, 샘과 연못이 범람하였고, 산천과 토지가 모두 진동하였다. 이날 밤 오색 광명이 태미太微98)까지 관통하였고, 서방에 두루하여 푸르고 붉은 빛이 났다. 왕이 태사太史 소유蘇由에게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라고 묻자, 태사는 ‘큰 성인이 서방에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천년 뒤 그의 가르침이 이곳까지 미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을 돌에 새겨 기록하고, 남쪽 근교에 있는 천사당天祠堂99) 앞에 묻었다.”100)
또한 한 명제漢明帝가 마등 법사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태어나신 해와 입멸하신 해를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법사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계축년 7월 15일 마야부인의 태에 드시고, 갑인년 4월 8일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함경』과 『서응경』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한두 곳 다르게 말한다고 하여 여러 곳에서 동일하게 말하는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석씨회요』에서는, 인도와 중국 두 나라를 서로 접했던 삼장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주나라 소왕 때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이 이치에 가장 맞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주나라의 역법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 강표江表101) 지방에서 쓰는 역법으로도 사월巳月, 즉 4월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102) 『살바다론』에서 말했듯이 2월 8일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이 분명하다.103)
[45]
産後第七日 출산한 지 7일 만에
母沒生忉利 어머니가 운명하여 도리천에 나시니
姨母大愛道 이모인 대애도104)가
乳育忘劬勞 수고로움 잊고 젖 먹여 기르셨네.
『태자서응본기경』에서는 “마야부인이 태자를 낳은 후 7일 만에 운명하셨는데, 보살을 회임하여 낳은 공덕이 크기 때문에 도리천에 태어났다.”105)라고 말한다.
어떤 경에서는 “태자 자신이 복덕과 위의가 지중하여 그로부터 절을 받을 여인이 아무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곧 목숨이 다할 사람에 의탁하여 태어나신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권경大權經』에서는 “보살이 도솔천에 계실 때 어머니의 남은 목숨이 열 달임을 아시고 몸을 의탁하신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애도大愛道는 범어로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Mahāprajāpati)이다. 태자를 젖 먹여 기르면서 몸과 마음에 게으름이 없었으며, 태자가 성도한 후엔 따라서 출가하니, 일체중생희견여래一切衆生喜見如來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46]
七歲智過人 일곱 살이 되자 지혜가 남보다 뛰어나셨고
衆藝無不通 모든 기예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으셨고
十歲力無敵 열 살이 되자 그 힘을 당할 자가 없었으니
擲象又能射 코끼리를 던지고 활쏘기도 잘하셨네.
『출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자가 일곱 살 때 왕이 선우選友라는 총명한 바라문을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태자가 물었다.
‘어떤 책으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스승이 대답하였다.
‘범서梵書106)와 거류서佉留書107)입니다.’
태자가 다시 물었다.
‘그와 다른 책이 64종이나 있는데, 지금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두 종류만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스승이 물었다.
‘어떤 이름입니까?’
태자가 답하였다.
‘범서·거류서·용귀서龍鬼書·아수륜서阿脩倫書 등입니다.’”108)
근본과 지말을 이와 같이 분별하시니, 스승은 자신이 통달하지 못한 것을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왕에게 “태자는 하늘과 사람의 스승인데 제가 어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기예와 산술, 활쏘기와 천문지리도 저절로 아십니다.”라고 아뢰었다.
『과거현재인과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109)
“태자 나이 열 살이 되자 왕이 태자와 난타難陀와 조달調達과 5백 명의 동자에게 칙령을 내리고, 나라의 만백성에게 용맹하고 힘이 센 자는 언제 어느 날에 경기장에 모여 힘을 겨루고 활을 쏘라고 명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어 조달이 무리를 이끌고 먼저 나섰다. 코끼리가 문을 막아서므로 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 난타는 발로 차서 길가에 던져 놓았다. 태자는 공중에 던지고 손으로 다시 받아 다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동산에 이르러서 북을 표적으로 활을 쏘았는데, 조달은 40리에 북을 세웠으나 맞추지 못하였고, 난타는 60리에 북을 세웠으나 넘지 못하였다. 태자는 100리에 북을 세웠으나 활의 힘이 모자라 부러졌다. 그래서 선대왕의 창고에 있던 활을 가져왔는데, 그 활은 예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당겨 본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태자가 잡아당기자 소리가 성까지 진동하였고, 화살이 북을 맞추고 땅에 꽂히자 샘물이 솟아났다.【『서역기西域記』에서는 그 샘물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병든 사람이 마시면 곧 낫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철위산을 꿰뚫으니 대천세계의 국토가 여섯 번 반복하여 진동하고, 대중들이 두려움에 떨며 ‘일찍이 없던 일이로다’ 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47]
逮其年十七 태자의 나이 열일곱이 되었을 때
父王欲娉妑 부왕은 태자비를 맞이하고자
普集諸釋女 석가족 처녀들을 널리 모아
萬選得一人 만 명 중에서 한 사람을 가려 뽑았네.
[48]
名曰耶輸陀 이름은 야수다라耶輸陀羅110)이고
端正最無匹 아름다움이 짝할 이 없었으나
太子雖納之 태자는 맞아들였어도
殊無世俗心 세속의 마음 특별히 일지 않았네.
야수다라는 화색花色이라 번역한다. 아름다움이 으뜸이라는 의미이다. 전생에 꽃을 팔던 여인으로 이름이 구이瞿夷였고, 전생의 서원 때문에 금생에 태자비가 되었다.【전생의 일은 글이 번거로워 수록하지 않는다.】
태자는 맞아들였어도 세속의 뜻이 없어서 오랫동안 가까이하지 않았다. 태자는 밤에도 선관禪觀을 닦을 뿐이니, 모든 기녀들이 “태자는 남자가 아닐 것이다.” 의심하기도 하고, “남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경에서는 “태자에게는 세 명의 비가 있었다. 첫째는 구이瞿夷라고 하는데 아이가 없었고, 둘째는 야수다라인데 라후라羅睺羅111)를 낳았으며, 셋째는 구파瞿波였는데…….”라고 말한다.
[49]
一日啓父王 하루는 부왕에게 아뢰고
遊觀四門外 사대문 밖을 노니다가
行見四種相 네 가지 모습을 보았으니
謂生老病死 생·노·병·사가 그것이다.
『서응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태자가 어느 날 왕 앞에 가서 ‘밖으로 나가서 둘러보고자 합니다’라고 고하니, 왕이 유사有司112)에게 명하여 거리를 정돈하여 깨끗하게 하도록 하고, 아울러 여러 관속들에게 태자를 따르라고 하였다.
성의 동문으로 나가서 한 여인이 길가에서 처음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땅에 떨어져 피고름과 오물 속에서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다. 다음으로 남문으로 나가서 한 노인을 보았는데, 머리는 희고 허리는 굽어 몸이 마르고 얼굴빛이 초췌한 채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걷고 있었다. 다음으로 서문으로 나가서 병든 이를 보았는데, 살이 없어 뼈가 드러나고 숨을 헐떡이고 신음하면서 혼자 지탱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겨드랑이를 부축한 채 길가에 있었다. 다음으로 북문으로 나가서 죽은 이를 보았는데, 권속들이 둘러싸고 슬프게 울며 전송하고 있었다.
태자는 이러한 네 가지 모습을 보고는 시종들에게 이것이 무슨 모습이냐고 물었다. 시종이 하나하나 답하여 그 까닭을 설명하였다. 태자가 다시 ‘이 네 사람만 그러한가, 다른 사람도 그러한가?’ 물으니, 시종이 ‘세상 사람들 다 그러하옵니다. 한 사람도 피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탐내고 즐거워할 뿐 두려워할 줄 모르는가?’ 탄식하며, 말에서 내려 나무 밑에서 쉬었다. 그때 한 사문이 발우와 석장錫杖을 들고 땅을 보면서 유행하다가 태자의 앞을 지나게 되었다. 태자가 물으니, ‘나는 비구인데 번뇌의 도적을 깨뜨려서 육진六塵에 물들지 않습니다’라고 답하고는 문득 신통을 나타내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위의 네 가지 모습과 이 비구는 모두 정거천의 천자가 태자를 깨우치기 위하여 화현한 것이다.”
[50]
見此旣還宮 이러한 모습을 보고 궁에 돌아와서는
懷憂心不悅 근심에 잠겨 기뻐하는 일이 없으니
父王大怪之 부왕이 크게 걱정하시어
欲解其憂心 그 우울한 마음 풀어 주고자 하셨네.
[51]
爲作諸樂事 여러 가지 오락거리 만들어 보아도
竟不革初心 결국 첫 마음 바꾸지 않고
但自思出家 다만 스스로 출가만 생각하여
欲離其四患 이 네 가지 근심 떠나고자 하셨네.
태자가 네 성문 밖에서 상서롭지 못한 여러 가지를 보고 환궁한 뒤로 근심하고 괴로워하자, 부왕은 놀라서 시종들을 책망하였다.
“경들은 어찌하여 거리를 치우지 아니하여 그런 상서롭지 못한 일들을 보게 하였는가?”
신하들이 아뢰었다.
“왕의 엄한 분부를 받잡고 살피지 않은 바가 아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신들의 죄가 아니옵니다.”
왕은 하늘의 조화임을 알고 신하들을 벌하지 않았다. 그때 태자의 근심을 풀어 주고자 백천 가지의 풍악을 연주하고 아름다운 기녀들을 더욱 더하여 기쁘게 하였으나 태자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52]
殷勤白其父 간곡하게 부왕에게 아뢰기를,
願聽我出家 “원컨대 저의 출가를 허락하소서.” 하니
王聞流淚言 왕이 듣고 눈물 흘리며
應當息此懷 “마땅히 그런 마음 먹지 말라.
[53]
此患古難免 이런 근심은 예부터 피하기 어려웠는데
汝獨何預憂 너 혼자 어찌 미리 근심하는가?
若能有後嗣 만약 뒤를 이을 아들이 생긴다면
吾當從汝願 내 마땅히 너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셨네.
[54]
太子順父語 태자는 부왕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서
指其妑腹言 태자비의 배를 가리키며
却後第六年 “앞으로 6년이 지나면
必當生男子 반드시 아들을 낳으리라.” 하시네.
태자가 출가하고자 하니, 부왕이 울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태자 역시 간곡히 청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너에게 아들이 있다면 출가를 허락하리라.”라고 왕이 말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야수다라의 배를 가리키며 “앞으로 6년이 지나면 그대는 아들을 낳으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태자가 출가하고 6년이 지나 야수다라는 과연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리하여 석가족 사람들은 모두 진노하여 죄를 다스려 죽이고자 하였다. 왕비는 불구덩이 앞에서 “내가 부정한 짓을 하였다면 자식과 어미 모두 죽을 것이요, 태자가 남긴 자손이라면 하늘은 마땅히 증명하여 주소서.”라고 맹세하고는, 아들을 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불구덩이는 연못이 되고 연꽃이 그 몸을 받아 들자, 왕과 대신들은 비로소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후라는 전생에 한 국왕이었다. 그의 형이 세간을 등지고 수행자가 되어 대중에 참여하여 도를 닦다가, 어느 날 밤 남의 물병에 담긴 물을 잘못 사용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법에 따라 벌하여 주소서’라며 대중을 향해 참회하였다. 대중들은 상의하여 ‘이것은 사실 허물이 아니니 들어줄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다.
그가 다시 왕의 처소에 가서 죄를 다스려 달라고 간절히 청하였으나, 그 죄가 가벼우므로 감옥에는 가두지 않고 후원에 잠시 가두었다. 그런데 일에 골몰하여 깜박 잊고서 엿새 동안이나 열어 주지 않았다. 이런 인연으로 6년 동안 라후라는 태에 있게 되었다.
또한 야수다라는 지난 겁에 어머니와 함께 길을 가는데 길은 멀고 몸은 피로하여 거짓으로 중요한 일이 있다 하고, 지녔던 물건을 어머니에게 주어 먼저 가도록 하고 자신은 6리쯤 뒤처져서 갔다. 이 때문에 6년 동안 아기를 품었다고 한다.”
[55]
父不信斯語 부왕은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心知不敢留 머물게 할 수 없음을 짐작하시고
常令四兵衛 항상 네 종류의 군사113)로 지키게 하고
妑亦不暫離 태자비 역시 잠시도 떠나지 말라 하시었네.
관상 보는 사람이 “태자께서 지금 출가하지 않고 7일이 지나면 전륜왕의 과보가 저절로 찾아올 것입니다.”라고 말하니, 왕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여러 신하에게 명령하여 낮밤으로 엄히 지키고, 네 종류의 군사로 경비하며, 성문을 열고 닫을 때에는 그 소리가 40리까지 들리도록 하였다. 또 야수다라에게는 예전보다 몇 배로 더 살피고 지키라고 이르셨다.
[56]
壬申二月八 임신년 2월 8일
半夜人定時 한밤중에 인적이 고요할 때
太子命車匿 태자는 마부 차닉車匿114)에게
彼揵陟將來 “건척을 데려오라.” 명하셨네.
[57]
四天捧馬足 사천왕이 그 말발굽을 들고
釋梵執幡盖 제석과 범천이 당번과 일산을 잡고
衛持出北門 호위하며 북문을 나서자
諸天忽不現 모든 하늘의 신들 홀연히 사라지더라.
[58]
行至三由旬 3유순쯤 걸어가
憇息閑林中 한적한 숲에서 잠시 쉬시고는
冠瓔付車匿 관과 영락을 차닉에게 맡겨
廻上父王處 부왕께 돌려드려라 부탁하셨네.
[59]
以劒刓鬚髮 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잘라내고
即發如是願 곧바로 서원하시기를,
所有諸衆生 “모든 중생들도
如我除煩惱 나와 같이 번뇌를 끊게 하소서.”라고 하셨네.
태자 나이 열아홉 되던 임신년 2월 8일 밤, 천신들이 태자 앞에 내려와서 머리를 태자의 발에 대어 예경하며, “무량겁 동안 애써 수행하신 공덕이 이제 무르익었사오니, 출가하심이 마땅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태자는 “부왕께서 안팎의 관속에게 엄히 지키라 명하셨으니 출가하고자 해도 따를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천신들이 “저희들이 방편을 써서 아는 자가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아뢰자, 태자는 곧 마부 차닉에게 건척을 데려오라 명하셨다. 사천왕이 말의 네 발굽을 받쳐 들고 차닉에게 인도하였다. 제석과 범천이 일산을 잡으니, 북문이 저절로 열리고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성을 나서자마자 천신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아침이 되자 태자와 차닉은 3유순을 지나 한적한 숲에서 잠시 쉬었다. 이때 태자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은 깨달음을 구하고자 좋은 장식도 버리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으셨다. 나도 지금 그와 같이 하리라.”라고 외치시고는 보배로 만든 관과 영락 등을 벗어 “부왕께 돌아가 바치거라.”라고 차닉에게 분부하셨다. 곧 날카로운 칼로 수염과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시니, 제석이 머리카락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 탑을 세웠다. 차닉이 크게 울고 말도 슬피 울면서 왔던 길로 돌아갔다. 부왕과 이모와 야수다라는 태자가 보이지 않자 슬피 부르다 기절하였고, 온 나라가 슬퍼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60]
至於獵師處 사냥꾼들 사는 곳에 이르러
寶衣易布衣 보배 옷을 베옷과 바꾸시고
遍詣衆仙所 여러 선인들 있는 곳에 두루 나아가
歷問修道法 도道 닦는 법을 낱낱이 물으셨으나
[61]
皆非解脫道 모두 해탈의 길이 아니므로
調彼而捨去 그들을 조복시키고는 버리고 떠나셨네.
竟到尼蓮側 마침내 니련선하尼連禪河115) 강가에 이르러
獨坐靜其慮 홀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드셨네.
태자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사냥꾼들 있는 곳에 이르러 칠보로 된 옷을 거친 베옷으로 바꾸고 승가리僧伽梨를 걸치고서 발가선跋伽仙116)의 숲으로 가서 여러 선인들을 보았다. 풀과 나무의 껍질과 잎사귀로 옷을 삼은 자들이 풀과 나무의 꽃과 열매를 먹거나, 하루에 한 끼만 먹거나, 사흘에 한 끼만 먹고 있었다. 혹은 물과 불, 해와 달을 섬기거나, 혹은 가시덤불 위에 엎어지거나, 혹은 물이나 불 앞에 눕거나 하며 이처럼 고행하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묻자, 그들은 “하늘에 태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모든 하늘 세계가 비록 즐겁기는 하나 복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여 괴로운 길이 될 뿐인데, 어찌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닦아서 괴로움의 과보를 구하는가?”라고 말하고는 그들과 헤어져서 아라라가란阿羅邏迦蘭117) 선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에게 생로병사 끊는 법을 물었다.
이에 선인이 답하였다.
“끊고자 한다면 선정을 닦아서 욕망과 불선법不善法을 떠나서 초선을 얻고……(중략)……118) 여러 가지 상相을 떠나 비비상처非非相處에 들어가는데, 이것을 구경해탈이라 합니다. 이것은 배우는 모든 이들이 건너가야 할 피안彼岸입니다.”
태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이 아는 것과 보는 것은 구경해탈이 아니다. 다만 거친 번뇌가 사라졌을 뿐, 아직 미세한 번뇌는 남아 있으므로 피안으로 건너간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태자는 발가선과 아라라가란 두 선인을 조복시킨 뒤에 더욱 수승한 법을 구하기 위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 니련선하 강가에 이르러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었다.
[62]
王聞益憂惱 왕이 소식을 듣고 더욱 걱정스러워
擇遣五人侍 다섯 시자를 뽑아 모시게 하니
一日食一麻 하루에 삼씨 한 톨
七日食一麥 이레에 보리 한 톨을 먹고 지내셨네.
[63]
三人不耐苦 세 사람의 시자는 괴로움 참지 못해
弃捨便他去 태자를 버리고서 다른 곳에 가 버리고
二人侍左右 두 사람은 좌우에서 모시며
六年無改心 6년 동안 마음을 바꾸지 않았네.
부왕이 그 소식을 듣고 근심과 번뇌가 더욱 늘어 나라 안의 부유하고 자손 많은 집안에서 다섯 사람을 가려 아들 하나씩을 보내도록 하니, 그들은 교진여憍陳如119)·마하남摩訶男120)·구리 태자拘利太子121)·십력가섭十力迦葉122)·반자밀제般刺蜜諦123) 등이었다. 그들은 태자를 따르며 시중들었는데, 어떤 때는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며 길 아닌 길을 유행하였다. 다섯 사람은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미치광이를 어찌 따라다닐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버려 두고 돌아가면 왕이 우리 집안을 멸할 것이니, 이곳에 그냥 머무는 것이 낫겠다.”
태자는 고요히 앉아 고행하며 숲에서 계행을 지켰다. 하루에 삼씨 한 톨, 보리 한 톨을 먹거나 이레에 삼씨 한 톨, 쌀 한 톨을 먹으면서 구걸하는 이가 있으면 그것을 베풀기도 하였다. 다섯 사람은 태자를 오랫동안 따라다녔으므로 그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세 사람은 태자를 버리고 가 버렸다.
[64]
太子作是念 태자는 이렇게 생각하셨네.
我今行苦行 나는 지금 고행을 하여
形瘦如枯木 마른나무처럼 몸은 야위고
命絲幾欲絶 실오라기 같은 목숨이 끊어지려 하는구나.
[65]
自餓非眞道 굶는 것은 참된 도가 아니니
無益於己他 나에게도 남에게도 이익이 없네.
我當受飮食 내 마땅히 음식을 받아서 먹고
然後方成佛 그런 연후에 장차 성불하리로다.
[66]
近有牧牛女 마침 가까이에 소치는 여인이 있어
乃爲施乳麋 우유죽을 끓여 드리니
菩薩旣受之 보살이 그것을 받아 드심에
二人驚又去 두 시자는 놀라서 또한 가 버리더라.
태자는 6년 고행에 몸이 마른나무처럼 야위었다. 그러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 주린 몸으로 도를 얻으면 저들 외도는 굶는 것 자체가 열반의 원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음식을 받아서 먹고 그런 연후에 도를 이루리라.’
이와 같이 생각하자 정거천淨居天의 왕자가 내려와서 그 숲 밖에서 소를 치던 여인 난타바라難陁婆羅에게 권하여 우유죽을 끓여 공양하도록 하였다. 태자가 그 음식을 받아 드시고 몸에서 광채가 나니, 두 사람이 보고 놀라 “근본을 버린 일이다.”라고 말하며, 또한 버리고 가 버렸다.
[67]
癸未二月八 계미년 2월 8일
獨詣菩提樹 홀로 보리수 아래 나아가
降魔成正覺 마왕을 항복시키고 정각을 이루니
具無量功德 무량한 공덕을 갖추었네.
태자가 홀로 필발라畢跋羅124) 나무 아래에 가서 과거 부처님들과 같이 풀로 자리를 만들고자 하시니, 제석이 사람으로 변하여 깨끗하고 부드러운 풀을 들어 바치었다. 그것을 자리 삼아 결가부좌하여 보리수를 바라보며 사유하시니, 하늘과 땅이 감동하여 큰 광명을 나타내며 마왕의 궁전을 덮어 버렸다.
파순波旬125)은 두려워 그의 네 딸을 시켜 태자에게 가서 온갖 자태와 요염한 모습으로 유혹하게 하였지만, 태자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파순은 다시 80억 대중을 데리고 와서 괴롭히며 말하기를, “만일 일어나 가지 않으면 너를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라고 하였다. “그대는 먼저 나의 정병淨甁126)을 던진 뒤에야 나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보살이 답하셨다. 그래서 80억 대중이 힘을 다하였으나 물병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파순은 다시 염라대왕에게 명하여 아비지옥의 온갖 형구들을 가져와서 보살에게 향하였으나, 보살이 천천히 백호白毫를 드시자 지옥의 죄인들이 마음에 청량함을 얻어 나무불을 부르며 괴로운 곳을 벗어났다. 파순이 앞으로 다가와서 함께 싸우고자 하였으나, 보살이 지혜의 힘으로 손을 펴서 땅을 어루만지시니, 땅이 진동하며 마왕과 병사들이 거꾸러지고 쓰러졌다.
보살이 마왕을 항복시키시자 번뇌가 모두 풀어지고 생사가 이미 끊어져 버렸다. 샛별이 뜰 무렵 활연히 크게 깨달아 정등정각正等正覺127)을 이루시고, 18가지 법128)과 열 가지 신기한 힘과 네 가지 무소외無所畏를 모두 갖추셨다.
이때 대지는 18가지 모습으로 진동하고, 하늘은 음악을 연주하며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고, 천룡팔부天龍八部129)가 베푼 공양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주 목왕周穆王 즉위 3년인 계미년 2월 8일 밤, 태자 나이 30세의 일이었다.
위에서 말한 18가지 법(十八法)이란 다음과 같다. ① 몸에 잘못이 없음, ② 입에 잘못이 없음, ③ 생각에 잘못이 없음, ④ 다른 모습이 없음, ⑤ 안정되지 않은 마음이 없음, ⑥ 알고 나서 평등한 마음 아님이 없음, ⑦ 하고자 하는 것이 줄어들지 않음, ⑧ 정진이 줄어들지 않음, ⑨ 염念130)이 줄어들지 않음, ⑩ 지혜가 줄어들지 않음, ⑪ 해탈이 줄어들지 않음, ⑫ 해탈지견이 줄어들지 않음, ⑬ 지혜에 의지하여 모든 신업을 행함, ⑭ 지혜에 의지하여 모든 구업을 행함, ⑮ 지혜에 의지하여 모든 의업을 행함, ⑯ 지혜로써 과거세를 아는 데 장애가 없음, ⑰ 지혜로써 미래세를 아는 데 장애가 없음, ⑱ 지혜로써 현재세를 아는 데 장애가 없음이다.
열 가지 힘(十力)131)이란 다음과 같다. ① 알맞은 곳인가 아닌가를 아는 힘,132) ② 업을 아는 힘, ③ 선정을 아는 힘, ④ 근根을 아는 힘,133) ⑤ 욕欲을 아는 힘,134) ⑥ 성性을 아는 힘,135) ⑦ 도道에 이르는 길을 아는 힘,136) ⑧ 숙명통으로 아는 힘,137) ⑨ 천안통으로 아는 힘,138) ⑩ 누진통으로 아는 힘139)이다.
네 가지 무소외(四無所畏)140)란 다음과 같다. ① 일체지를 증득하여 두려움이 없음, ② 모든 번뇌가 다하여 두려움이 없음, ③ 도를 장애하는 것을 말할 때 두려움이 없음, ④ 고통이 다하는 길을 말할 때 두려움이 없음이다.
18가지 상相이란, 흔들림(震), 요란한 소리로 흔들림(吼), 아래위로 부딪치며 흔들림(覺), 움직이는 것(動), 일어나는 것(起), 솟아오르는 것(涌), 여섯 가지에 각각 세 가지가 있는 것이다.141) (세 가지란,) 흔들림(震), 두루 흔들림(遍震), 골고루 두루 흔들림(等遍震)을 말한다. 나머지 다섯 가지도 그러하므로 18가지 모습이 된다.
보리류지菩提留支142)는 경전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송으로 말한다.
八年作孾孩 어린아이로 8년
七年作童子 동자로 7년
四年學五明 오명五明143) 배우기를 4년
十年受五欲 오욕 누리기를 10년
一十九出家 29세에 출가하여
六年行苦行 6년 고행을 하시고
三十五成道 35세에 성도하시어
七十九入滅 79세에 입멸하셨네.
『범망경』에서는 7세에 출가하여 30세에 성도하셨다144)고 한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설이 같지 않은 것은 대승과 소승의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68]
爾時作是念 그때 이렇게 생각하셨네.
我所得妙法 내가 얻은 미묘한 법
當廣應開演 마땅히 널리 펴서
利樂於一切 모두를 이롭고 즐겁게 하리라.
보살이 성도하시고 삼칠일 동안 중생을 이롭게 할 방편을 생각하셨으니, 『법화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我始坐道塲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았을 때
觀樹亦經行 보리수를 관하고 경행經行하면서
於三七日中 삼칠일 동안
思惟如是事【初七日思】 이와 같이 생각하였네.【첫 번째 7일의 생각】
我所得智慧 ‘내가 얻은 지혜는
微妙最第一 미묘하기가 으뜸이지만
衆生諸根鈍 중생의 근기는 둔하고
着樂癡所盲 쾌락에 집착하며 어리석음에 눈이 멀었으니
如斯之等類 이러한 무리들을
云何而可度 어떻게 제도할 수 있을까.’
尒時諸梵王 그때에 범천왕과
及諸天帝釋 모든 하늘 제석천왕과
護世四天王 세상을 지키는 사천왕들이
請我轉法輪【二七日思】 나에게 법륜을 굴려 달라 청하였네.【두 번째 7일의 생각】
我即自思惟 나는 곧 생각하였네.
若但讃佛乘 ‘부처되는 길(佛乘)을 찬탄하기만 하면
衆生不信受 중생들은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破法墮惡道 오히려 법을 비방한 죄로 악도에 떨어지리니
我寧不說法 차라리 나는 법을 설하지 않고
疾入於涅槃【三七日思】 속히 열반에 들어가리라.’【세 번째 7일의 생각】
尋念過去佛 ‘과거 부처님들이
所行方便力 행하신 방편을 애써 떠올려 보니
我今所得道 내가 지금 얻은 도를
亦應說三乘【云云】 역시 삼승으로 설해야 하리라. …….’145)
이렇게 생각하시고는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가시어 12년146) 동안 네 가지 아함을 설하시고, 8년 동안 방등부의 여러 경전을 설하시고, 21년 동안 반야부 경전을 설하시고, 8년 동안 법화와 열반의 두 경전을 설하셨다. 인연 있는 대중을 모두 제도하시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시고는 79세에 이르러 반열반般涅槃에 드셨다.
석가의 일생은 대략 이와 같다. 이제 조사祖師의 문헌을 인용하여 그 개요를 간략히 설명하겠다. 『천태사교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자 대사知者大師는 오시五時와 팔교八敎로써 동쪽으로 흘러온 부처님 일대에 관한 성스러운 가르침을 남김없이 분류하고 해석하였다. 오시란 화엄시華嚴時·녹원시鹿苑時·방등시方等時·반야시般若時·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이니, 이것을 오시라 한다.
팔교란 돈교頓敎·점교漸敎·비밀교秘密敎·부정교不定敎【이 넷은 화의化儀라 하는데, 마치 세상에서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와 장교藏敎·통교通敎·별교別敎·원교圓敎【이 넷은 화법化法이라 하는데, 마치 약의 맛을 판별하는 것과 같다.】이니, 이것을 팔교라 한다.
첫 번째 화엄시는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 처음 정각을 이루시고 적멸도량에 계실 때 41위의 법신 대사法身大士147)와 지난 여러 생에 근기가 성숙해진 천룡팔부가 동시에 둘러싼 것이 마치 구름이 달을 둘러싼 것과 같았다. 그때 여래께서 노사나 법신을 나투어 원만수다라圓滿修多羅148)를 설하셨으므로 돈교라 한다.
두 번째 녹야시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삼승의 근기에게는 돈교가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적멸도량에서 움직이지 않으시면서 녹야원으로 가시어 노사나불의 진귀한 옷을 벗으시고 장륙丈六149)의 때 묻은 옷을 입으셨다. 도솔천에서 내려오시어 태에 의탁하여 태에서 나오시고, 태자비를 맞아 아들을 낳으시고, 출가 고행한 지 6년이 지나 보리수 아래에서 풀로 자리를 삼아 열응장륙신불劣應丈六身佛을 이루시고, 삼승의 근기를 가진 이들을 위하여 생멸사제生滅四諦150)와 12인연법과 육바라밀 등을 설하시니, 모든 사람이 듣고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치우친 진리를 증득한다.
세 번째 방등시는 다음과 같다. 성문·연각의 이승을 닦는 사람들은 소승을 탐내고 집착하여 ‘이것이 구경究竟’이라 하지만, 대승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유마경』·『사익경』·『능가경』·『능엄삼매경』·『금광명경』·『승만경』 등 모든 대승 경전을 말씀하시어 치우침을 꺼리고 소승을 물리치시며, 대승을 찬탄하고 원교를 칭찬하시었다. 저 이승의 무리들은 이 법문을 듣고 안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마음이 점차 맑아져서 소승을 부끄러워하며 대승을 흠모하게 된다.
네 번째 반야시는 다음과 같다. 근기가 점차 성숙하므로 다음에는 『마하반야』·『금강반야』·『광찬반야』·『대품반야』 등 여러 반야부 경전을 말씀하셨다. 수보리(空生)151)와 사리불(身子)152)에게 보살들을 위해 가르침을 펴도록(轉敎)153) 명하시어 모든 법의 융통融通과 도태淘汰154를 알게 하시었다. 이상의 삼시는 화엄의 돈교와154) 대비되므로 통틀어 점교라고 한다.
다섯 번째 법화열반시는 다음과 같다. 근기와 인연이 성숙하여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開), 보이고(示), 깨우치고(悟), 들어가게(入) 할 수 있으므로 다음으로 『법화경』을 말씀하셨다. 앞서 돈교와 점교를 열었으나 돈교도 아니고 점교도 아닌 곳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권교를 열어 실교를 드러낸다(開權顯實), 삼승을 회통하여 일승에 돌아간다(會三歸一), 권교를 없애고 실상을 세운다(廢權立實)고 말한다. 저들 성문들은 반야시에 가르침을 펴라는 분부를 받아 모두 법장法藏을 알게 되었으므로 법화회상法華會上에 이르러서는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보이고 깨우치고 들어가게 하시고, ‘부처를 이루리라’ 수기를 주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열반경』을 설하신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근기가 익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다시 사교四敎155)를 설하시고, 불성佛性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어 진실하고도 영원한 불성을 갖추어 대열반에 들게 하셨기 때문에 ‘군습교捃拾敎’156)라고 한다. 또 하나는 말세의 둔한 근기를 가진 이들이 불법 가운에 단멸의 견해를 일으켜 지혜의 목숨을 일찍 끊고 법신을 잃어버리므로 세 가지 방편을 시설하여 일승원교一乘圓敎의 실상을 붙들어 주셨으므로 ‘부율담상교扶律談常敎’157)라 한다.
만일 시기와 내용을 논한다면 『법화경』과 같지만, 그 내용을 논하면 순수하게 말씀하신 것과 섞어서 말씀하신 것이 조금 다르다. 왜 그러한가? 『법화경』에서는 순수하게 원교를 말씀하셨고, 『열반경』에서는 사교四敎를 섞어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시와 돈점의 의미는 그렇다 하더라도, 비밀교·부정교·장교·통교·별교·원교의 의미는 어떠한가?
비밀교秘密敎란 앞의 사시四時158)에서는 여래의 삼륜三輪159)이 부사의하기 때문에 이 사람을 위해서는 돈교를 말하고, 저 사람을 위해서는 점교를 설하여 피차가 서로 알지 못하더라도 이익을 얻게 하므로 비밀교라 한다.
부정교不定敎란 사시에서 부처님께서 일음一音으로 연설하신 법을 중생들이 부류에 따라 제각기 이해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여래의 부사의한 힘으로 중생들이 점교를 말한 것에서 돈교의 이익을 얻게 하고, 돈교를 말한 것에서 점교의 이익을 얻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익을 얻는 데 동일하지 않으므로 부정교라 한다.
장교藏敎 등 사교는, 수행자들이 수행하여 미혹을 끊고 도를 증득하는 법이다. 모두 기록할 수 없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장교란 소승의 삼장을 말한다. 첫째는 수다라장修多羅藏,160) 즉 네 종류의 아함경을 말하고, 둘째는 아비담장阿毗曇藏,161) 즉 『구사론』과 『바사론』을 말하며, 셋째는 비니장毗尼藏,162) 즉 『오부율五部律』 등을 말한다.
성문은 생멸사제를 수행함에 의하여 삼계의 견사혹見思惑163)을 끊어 버리지만 치우친 진리를 증득할 뿐이다. 연각은 12인연을 관하여 진실한 사제의 이치를 깨닫는다. 이 사람은 견혹과 사혹을 다 끊어 버리고 습기習氣164)까지 없앴으므로 성문 위에 있다.
보살은 사제四諦의 경계에 의지하여 사홍서원을 세우고 육바라밀을 닦아 3아승기겁阿僧祗劫165)을 채우고 세제일위世第一位166)에 들어가므로 참된 무루를 일으켜 견혹과 사혹과 습기를 단박에 끊고 보리수 아래에서 열응장륙신불을 이룬다. 둔한 근기의 삼승인들을 위하여 생멸사제를 설하거나 늙은 비구의 모습을 나투어 무여열반에 들어간다.
통교通敎란 앞에 있는 장교에도 통하고, 뒤에 있는 별교와 원교에도 통한다. 그리고 삼승의 사람들은 다 같이 말이 없는 도道로써 색色을 체달하여 공空에 들어가므로 통교라 한다.
성문은 다만 삼계의 견혹과 사혹을 끊어 버렸을 뿐 습기는 없애지 못하므로 마치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든 것과 같다. 벽지불은 습기마저 없앴으니, 마치 숯을 태워 재를 만든 것과 같다. 보살은 다 끊어 버리는 것은 이승과 똑같지만, 습기를 붙들어 중생을 윤택하게 하며 자유롭게 노니는 신통으로 불국토를 깨끗이 하다가 근기와 인연이 무르익으면 단박에 나머지 습기를 끊고 칠보의 보리수 아래에서 하늘 옷을 자리 삼아 열응신과 승응신이 성불하는 모습을 나투고, 삼승인을 위하여 무생사제無生四諦167)를 설한다.
이러한 장교와 통교 2교는 삼승인이 증득하는 바와 같지만, 크고 작음이나 정교함과 졸렬함이 사뭇 다르다. 그것은 어떠한가?
장교는 작고 졸렬하다. 대승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고, 색色을 분석하여 공空에 들어가기 때문에 졸렬하다. 같은 장교 안에서도 삼승의 사람들은 상·중·하의 다름이 있는데, 통교의 삼승인과 견주어 보면 대체로 둔한 근기이다.
통교는 크고 정교하다. 대승의 처음 문턱이기 때문에 크고, 색을 체달하여 공에 들어가기 때문에 정교하다. 같은 통교 안에서도 삼승의 사람들은 상·중·하의 다름이 있는데, 장교에 견주어 보면 대체로 예리한 근기이다. 반야부와 방등부 안의 공반야共般若 등이 이 교이다. 공반야란 이승에게도 함께 설하는 법이다.
별교別敎란 앞에 있는 장교·통교와 다르고, 뒤에 있는 원교와도 다르다. 모든 대승 경전에서는 보살이 여러 겁을 지나 수행하고, 수행하는 지위와 차제가 서로 포섭되지 않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모두 이 교의 모습이다.
이 교에서 보살의 수행 차제에는 52위가 있다.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回向·10지·등각·묘각을 말한다. 10신에서는 삼계의 견혹과 사혹을 조복시켜 초주에서 견혹을 끊고 7주에서 사혹을 끊으니, 장교와 통교 2교의 부처님과 같다. 10주에서는 삼계 안의 진사혹塵沙惑168)을 끊고 삼계 밖의 진사혹을 조복시킨다. 10행에서는 삼계 밖의 진사혹을 끊고, 10회향에서는 무명을 조복시키고 중도관中道觀을 닦아 초지에 올라 일부의 무명169)을 없애고 일부의 삼덕170)을 증득하니, 이른바 법신·반야·해탈을 말한다. 온 세계(百界)171)에 몸을 나투어 여덟 가지 상(八相)172)으로 성불하시어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신다. 그러나 이 지위 위에 있는 보살의 행보는 알지 못한다. 다음으로 2지에 들어서면 천千의 세계에서 부처를 이루니, 계위마다 공덕이 열 배이다. 이로부터 묘각까지 12품의 무명(十二品無明)173)을 끊고 연화장 세계의 큰 보배 꽃으로 만든 자리에 앉아 원만한 보신을 나투어 성불하시고는 둔한 근기의 보살들을 위하여 무량사제無量四諦174를 설하신다.
원교圓敎란, 174)대승 경전에서 부처님의 경계는 삼승의 수행 지위와 차제를 함께하지 않는다고 설한 것이 모두 이 교에 속한다. 예를 들면, 『화엄경』에서는 “처음 발심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 지혜의 몸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것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 아니다.”175) 하였고,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어가게 한다.”176) 하였고, 『유마경』에서는 “이 방에 들어온 이는 여러 부처님들 공덕의 향기만 맡는다.” 하였다. 어떤 경에서는 “한 사람이 큰 바다에서 목욕을 하면 이미 여러 강물을 다 사용한 것이다.”177)라고 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것들이 모두 이 교에 속한다.
이 원교의 수행 지위와 차제는 별교의 52위와 같지만, 별교는 지위마다 서로 포섭하지 못하고, 원교는 지위마다 서로 포섭하는 것이 인드라망의 구슬과 구슬이 서로 비추는 것과 같다.
이러한 52위에 다시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178)를 더하니, 첫째가 수희품隨喜品, 둘째가 독송품讀誦品, 셋째가 설법품說法品, 넷째가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다섯째가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이다. 이 지위에서는 오주번뇌五住煩惱179)를 원만하게 조복시킨다. 즉 외범위外凡位180)인데 별교의 10신과 같다.
다음에는 육근정위六根淨位181)가 따르니, 10신을 말한다. 초신初信에서 견혹을 끊어 진리를 드러내고, 7신에서 사혹을 끊고, 10신에서 삼계 밖의 진사혹을 끊기 때문에 별교의 10주·10행·10회향과 같다.
다음 초주初住에 들어가서 일품의 무명을 끊고, 일부의 삼덕을 증득하여 온 세계에 몸을 나투어 여덟 가지 상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므로 별교의 초지와 같다.
『화엄경』에서 “처음 발심하였을 때 문득 정각을 이룬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지위의 성불을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교의 참된 인위因位182)인데, “묘각을 이룬 것”이라고 말한다면 매우 잘못된 일이다.
여기에서 이행二行에 이르기까지 각각 한 품의 무명을 끊고 일부의 중도中道를 더하니, 별교의 묘각과 같다.
삼행三行 이후는 별교의 사람은 이름조차 모르는데 하물며 조복시키고 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인위因位를 그대들은 궁극적인 과위果位로 삼는 것이다.
삼행에서 묘각에 이르기까지 30품의 미혹을 끊고 열반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법이 나지 않고, 반야도 나지 않고, 나지 않음도 나지 않으니, 대열반이라 한다. 허공을 자리 삼아 청정한 법신불을 이루고, 상적광토에 머물면서 무작사제無作四諦183)를 설하신다. 이것이 오시팔교의 대강이니, 자세한 것은 천태의 『묘법연화경현의』에서 말한 것과 같다.
[69]
初在寂滅塲 처음 적멸도량에 계실 때
十方賢聖會 시방의 현성들이 다 모이고
文殊普賢等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法身諸大士 모든 법신 보살
[70]
及與衆龍天 그리고 많은 용과 천신들
拱之爲影響 영향중影響衆184)이 되어서 두 손 모으니
佛現舍那身 부처님께서 노사나 법신으로 나투셔서
頓說華嚴經 한꺼번에 『화엄경』을 설하셨네.
[71]
是法不思議 이 법은 불가사의하여
法界以爲體 법계를 근본으로 삼으니
一塵含十方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고
刹那攝三際 한 찰나 속에 삼제三際185)가 들어 있네.
[72]
一多即無二 하나와 여럿이 둘이 아니요
三法無差別 세 가지 것 차별이 없으니
淸淨妙法身 법신은 청정하고 오묘하지만
湛然應一切 고요히 모든 것에 응하신다네.
[73]
初發道心時 처음 발심하였을 때
即便成正覺 곧바로 정각을 이룬다 하면서도,
又令諸大士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各談五位法 각기 오위법문五位法門186)을 설하게 하시네.
[74]
亦有善財童 또한 선재동자가
歷叅諸善友 여러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뵈었을 때
各隨其所問 그 질문에 따라
答示種種法 갖가지 법으로 대답해 보이셨네.
[75]
如是圓滿敎 이와 같이 원만한 가르침은
大山機所擔 큰 산과 같은 근기가 감당할 바이어서
小雖在其座 소승의 근기는 그 자리에 있다 해도
猶如聾瘂等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와 같다네.
[76]
譬如喪家子 비유하면 집을 잃어버린 아들이
一日到其舍 어느 날 자기 집에 왔으나
見父勢尊嚴 아버지의 높은 위엄을 보고는
畏懼便他走 두려워 다른 데로 달아난 일과 같더라.
『화엄경』은 법계를 근본으로 삼아 원융무애하며, 하나와 여럿이 둘이 아니고, 처음과 끝을 모두 포함하여 나옴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므로 “불가사의하다.”라고 말한다.
‘찰나’는 여기 말로 일념一念이라 하고, ‘삼제三際’는 과거·현재·미래를 말한다. 즉 한 찰나에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시간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이다.
‘세 가지 것’이란 부처·마음·중생을 말한다. 경에서 여래림如來林보살이 “마음과 부처가 그러하듯이 부처와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187)라고 하였다.
그리고 금강당金剛幢·법혜法慧 등 여러 보살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각각 오위법문五位法門을 설한다. 즉 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廻向·10지十地·등묘각等妙覺 법문을 말한다.
또한 선재동자는 각성覺城 동쪽 가에서 문수보살을 처음 만나고 문득 법계를 증득하였다. 이로부터 53선지식을 차례대로 찾아뵈었을 때, 그 질문에 따라 알고 있는 한 가지 법을 각각 대답해 주셨다.
‘큰 산과 같은 근기’는, 경에서 “비유하면 해가 뜰 때 먼저 수미산 등 여러 큰 산을 비추듯이, 부처님의 해도 그러하여 먼저 큰 산과 같은 보살들을 비춘다.……”188)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이승과 (같은 소승의 근기는) 같은 자리에 있었더라도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다는 것이다. 『사교의四敎儀』에서는 “설하신 바의 법문이 비록 광대하고 원만하지만, 여러 근기를 거두어들이는 데에는 다하지 못하므로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신 본뜻을 다 펴지는 못했다.”189)라고 하였다.
집을 잃어버린 가난한 아들의 일은 다음에 나오는 주석과 같다.
[77]
佛即作是念 부처님께서는 곧 이렇게 생각하시었네.
若但讃佛乘 ‘부처되는 길(佛乘)을 찬탄하기만 하면
衆生不信受 중생들은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破法墮惡道 오히려 법을 비방한 죄로 악도에 떨어지리니
[78]
我寧不說法 차라리 나는 법을 설하지 않고
疾入於涅槃 속히 열반에 들어가리라.’
尋念過去佛 하지만 과거 부처님들이
所行方便力 행하신 방편을 애써 떠올려 보니
[79]
我今所得道 내가 지금 얻은 도를
亦應說三乘 역시 삼승으로 설해야 하리라 하시니
是時十方佛 그때 시방세계의 부처님들
皆現讃善哉 모두 나타나 “장하십니다.” 찬탄하더라.
[80]
如諸佛所行 여러 부처님들 행하신 것과 같이
且設方便事 우선 방편을 시설하시니
脫舍那珍服 노사나의 진귀한 옷 벗으시고
著丈六垢衣 장륙신의 때 묻은 옷 입으셨네.
[81]
不動寂滅場 적멸도량을 떠나지 않고서
而遊鹿野苑 녹야원에 이르시어
先爲前五人 먼저 앞의 다섯 사람190)을 위하여
轉四諦法輪 사제四諦의 법륜 굴리셨네.
[82]
聞已即成果 듣자마자 과위果位를 이루니
世有三寶名 세상에 삼보의 이름이 생겨났고
從玆十二年 이로부터 12년 동안
說四阿含經 네 가지 아함경을 설하셨네.
[83]
諸有三乘人 모든 삼승의 사람들이
依修皆證道 의지하여 수습하고 모두 도를 이루었으나
是名半字敎 이는 반자교半字敎라 하니
黃葉止啼耳 단풍잎으로 울음을 그쳤을 뿐이기 때문이네.
[84]
如父設方便 마치 아버지가 방편을 베풀어
引子令除糞 아들을 데려와 똥을 치우게 하니
止得一日價 겨우 하루 품값 얻고도
便自以爲足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것과 같더라.
『법화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作是思惟時 이와 같이 생각했을 때
十方佛皆現 시방의 부처님 모두 나타나시어
梵音慰喩我 범음梵音으로 나를 위로하셨네.
善哉釋迦文 “훌륭하십니다, 석가모니여.
第一之噵師 최고의 스승이시여.
得是無上法 이러한 위없는 법을 얻고서도
隨諸一切佛 모든 부처님을 따라
而用方便力 방편의 힘을 사용하십니다.
我等亦皆得 우리들 또한 모두
最妙第一法 가장 오묘하고 최고로 훌륭한 법 얻었지만
爲諸衆生類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分別說三乘 삼승으로 분별하여 설하였나이다.”
我聞諸佛音 나는 여러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即趣波羅奈 곧 바라나시로 갔는데
諸法寂滅相 모든 법의 적멸한 모습을
不可以言宣 말로는 펼 수가 없어서
以方便力故 방편의 힘으로
爲五比丘說【云云】 다섯 비구를 위해 설하였노라. …….191)
그리고 진귀한 옷과 때 묻은 옷이 비유로 말해진 것은 『법화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지금 그 대략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장자가 아들을 잃은 지 오래인데, 그 아들이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아버지의 집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의 존귀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서 달아나 버렸다.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보고 아들임을 훤히 알고서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하였다. 가난뱅이 아들은 놀라서 소리 지르며 혼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장자는 방편으로 그 진귀한 옷을 벗고 때 묻은 옷으로 갈아입고서 그 아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노사나의 몸을 나투시어 갑자기 화엄을 설하자, 귀머거리와 같은 이승은 끝내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므로 방편을 베푸시어 장륙신을 나투시고 생멸법生滅法을 설하시어 도에 들게 하셨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하여 적멸도량을 떠나지 않고도 녹야원에 이르러 교화하셨으며, 본래의 몸을 버리지 않고도 자취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192)
‘녹야원’이란 옛날에 사슴들이 살던 곳이므로 녹야원이라 불린다. 그 일에 대해서는 『대지도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 가서 생각하시기를, ‘나는 감로의 법문을 열고자 하는데, 마땅히 누구를 먼저 듣게 할 것인가?’라고 하시고, 곧이어 ‘교진여 등 다섯 사람193)은 모두 다 총명하고, 숙세에 원력이 있었으니 먼저 제도하리라’ 생각하시었다.
그때 다섯 사람이 부처님께 출가하였는데, 세존께서 “잘 왔도다, 비구들이여!” 외치시자, 그들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의 모습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들은 아는가? 색·수·상·행·식은 항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괴로운 것인가, 괴롭지 않은 것인가? 공한 것인가, 공하지 않은 것인가? ‘나’라는 것은 있는가, 없는가?”
다섯 사람은 듣고서 번뇌가 다하고 마음(意)이 해탈하여 아라한을 이루고 곧 대답하였다.
“이들 오음의 법은 실로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공한 것이고, ‘나’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여래께서 오늘 대법륜을 굴리셨도다.”라고 소리쳐 말했다.
‘세상에 삼보三寶의 이름이 생겨났다’라는 것은, 여래가 불보佛寶, 사제 법문이 법보法寶, 다섯 아라한이 승보僧寶가 되었다는 말이다. 삼보는 모든 천신과 인간에게 제일의 복전이 된다. 삼보는 또 삼존三尊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삼존을 보배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보성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보에는 여섯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희유하다는 뜻이다. 마치 세간의 진귀한 보배는 가난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삼보도 그러하니, 박복한 중생은 만겁이 지나도록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는 더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마치 세간의 진귀한 보배는 그 자체에 흠이 없듯이 삼보도 그러하니, 모든 번뇌의 오염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셋째는 위력이 있다는 뜻이다. 마치 세간의 진귀한 보배는 가난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큰 위력이 있듯이 삼보도 그러하니, 불가사의한 큰 신통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장엄한다는 뜻이다. 마치 세간의 진귀한 보배는 몸과 머리를 장엄하여 몸을 더 아름답게 하듯이 삼보도 그러하니, 수행자를 장엄하여 몸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가장 수승하다는 뜻이다. 마치 세간의 진귀한 보배는 모든 사물 중에 가장 수승하듯이 삼보도 그러하니, 일체 세간에서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치 세간의 진귀한 금은 달구고 치고 연마하더라도 변하게 할 수 없듯이 삼보도 그러하니, 세간의 모든 법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194)
‘네 가지 아함’이란 『증일아함』·『장아함』·『중아함』·『잡아함』을 말한다. 여기에서 삼계三界의 법을 분별하면 궁극에는 이승의 과위에 이른다. 다만 9부경195)일 뿐인데, 9부의 이름은 글이 번거로워 기록하지 않겠다.
‘반자교半字敎’와 ‘단풍잎’의 두 가지 비유는 『열반경』에 나오는 것이다.
“어떤 장자가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칠 때 먼저 반 글자를 가르치고 나중에 온전한 글자를 가르치면 쉽게 이해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도 그러하여 둔한 근기의 사람을 위해서 먼저 소승법을 가르치고 점차 대승법에 들게 하신다.”196)
또한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어머니가 단풍잎을 따서 장난치면서 그것을 주면, 아이가 금이라 여겨 기뻐하며 울음을 그치는 것과 같다. 이승법도 그러하여 두 가지 열반197)을 증득하고는 구경이라 여겨 스스로 만족한다.”198)라고 하였다.
[85]
華嚴與阿含 『화엄경』과 『아함경』은
一時無前後 동시라서 앞뒤가 없는 것이지만
小見丈六佛 소승은 장륙신 부처님께서
但說阿含經 『아함경』 설하시는 것만을 보네.
[86]
大覩舍那佛 대승은 노사나부처님께서
恒說華嚴經 항상 『화엄경』을 설하시는 것을 보니
一佛一音說 한 부처님께서 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으나
機見乃不同 근기에 따라 보는 것이 같지 않음이라.
[87]
譬如但一水 비유한다면 다만 한 가지 물이건만
四見各殊異 넷이 각기 다르게 보는 것과 같고
又如五天王 오방의 천왕들이
見一珠各色 한 구슬을 각기 다른 색으로 보는 것과 같네.
천태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 천태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
정토십의론서(淨土十疑論序)
사랑(애착)이 끈끈하지 않으면 사바고해에 태어나지 않으며, 생각(염불)이 한결같지 않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한다〔愛不重, 不生娑婆;念不一, 不生極樂〕. 사바세계는 더러운 땅〔穢土〕이며, 극락세계는 깨끗한 곳〔淨土〕이다. 사바세계의 수명은 유한하며, 저 곳의 수명은 무한하다.
사바세계에는 모든 고통이 두루 갖춰져 있지만, 저 곳인즉 평안히 수양〔安養〕하며 어떠한 고통도 없다. 사바세계에서는 업장에 따라 생사고해를 윤회하지만 저 곳은 한번 왕생하면 영원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며, 만약 중생을 제도하길 원하면 어떠한 업장에도 얽매임 없이 뜻대로 자유자재롭게 할 수 있다.
두 곳의 깨끗함과 더러움, 수명의 장단, 괴로움과 즐거움, 생사 윤회 등이 이처럼 천양지차로 판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극락정토에서 중생들을 거두어 받아들이는〔攝受〕 교주이시고, 석가여래께서는 여기 사바세계에서 극락정토를 가리켜 안내하시는 스승이시며,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께서는 부처님을 도와 중생교화를 널리 펼치시는 분들이시다.
이러한 까닭에 석가여래께서 한평생 가르침을 펴신 경전들은, 도처에서 간곡하고 자상하게〔苦口汀獰〕 극락왕생을 권유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께서는 커다란 원력의 배〔大願船〕를 타시고 생사고통의 바다〔生死海〕에 뜨시어, 이 쪽 언덕〔彼岸:사바세계〕에도 집착하시지 않고, 저 쪽 언덕〔彼岸:극락정토〕에도 머물지 않으시며, 중간 물살〔中流:천상이나 중음세계?〕에도 멈추지 않으신 채로, 오직 중생 제도를 불사(佛事)로 행하신다.
그래서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부처님을 듣고 그 명호를 붙잡아 지니기를 하루 내지 이레 동안 한 마음 흐트러지지 않으면〔一心不亂〕, 그 사람이 목숨 다할 때 아미타부처님께서 뭇 성인 대중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시리니, 이 사람은 목숨이 끊어질 때 마음이 뒤바뀌지(흔들리지) 아니하면 곧장 극락국토에 왕생하게 된다.”
또 경전〔無量壽經〕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나의 명호를 듣고 나의 국토〔극락정토〕를 생각하며, 온갖 공덕의 뿌리를 심으면서 나의 국토에 생겨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 기도하여, 정말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나는 결코) 올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지 않겠노라.”
그래서 기환정사(祇桓精舍:기원정사)의 무상원(無常院:선가에서는 열반당 또는 연수당(延壽堂)이라고 하는데,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스님이나 노스님한테 인생무상을 관조하라고 특별히 배치한 장소. 햇빛이 들지 않는 서북쪽 구석에 두었다고 함)에서는, 병든 환자들에게 서쪽을 향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생각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대저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은 막힘이나 한량이 없어 시방법계를 두루 비치면서, 염불(부처님을 생각)하는 중생들을 빠뜨림 없이 모두 거두어 받아들이시기〔攝受〕 때문이다. 성인(부처님)과 범부(중생)는 본디 한 몸〔聖凡一體〕인지라, 기연(機緣)만 맞으면 서로 감응(感應)하여 통하기 마련이다. 모든 부처님 마음 안의 중생은 티끌티끌마다 극락세계이고, 중생들 마음 속 정토는 생각생각마다 아미타부처님이다〔諸佛心內衆生, 塵塵極樂;衆生心中淨土, 念念彌陀〕.
내가 이러한 이치로 보건대, 누구나 쉽게 극락왕생할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의심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선정(禪定)에 드는 이는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다. 또 계율을 잘 지키는 자는 온갖 오염을 멀리하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보시를 즐겨하는 이는 나〔我〕라는 생각이 없어서 쉽게 왕생할 수 있다. 또 인욕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이는 뒤로 물러나지 않기에 쉽게 왕생할 수 있다.
그리고 선도 행하지 않고 악도 짓지 않는 자는 생각이 오로지 한결같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온갖 죄악을 지어 업보가 눈 앞에 나타나는 이는 정말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기에 쉽게 왕생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록 온갖 선행을 쌓았더라도, 만약 정성과 신심이 없고 깊은 마음[深心]도 없으며 (극락왕생에) 회향발원하는 마음도 없는 자라면, 상품상생(上品上生)에 왕생할 수 없다.
오호라!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는 지니고 염송하기가 몹시 쉽고, 극락정토는 왕생하기가 매우 쉽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염불할 수 없고(줄 모르고)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님인들 그런 중생들을 어찌하랴!
1. 천태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모든 불보살님들께서는 대자대비를 본업(本業)으로 삼으신다는데, 만약 중생들을 제도하시고자 한다면, 정말로 오직 삼계(三界)에 몸을 나투시어 오탁악세(五濁惡世)와 삼악도(三惡途) 가운데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셔야 마땅할 줄 압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스스로 자기 생명만 평안히 수행하며 중생을 내버리고 떠나시려 한단 말입니까? 이는 대자대비가 없는 것이며,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이니, 보살이 추구하는 보리도(菩提道)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답변
보살에도 두 종류가 있소. 하나는 오랫동안 보살도(菩薩道)를 닦고 행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분으로서, 이 분들은 진실로 자기 책임(사명, 원력)을 감당할 수 있소. 다른 하나는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분들과 이제 막 보살의 마음〔初發心〕을 낸 범부들이오.
두 번째의 범부보살(凡夫菩薩)들은 모름지기 어느 때고 부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오. 그렇게 (항상 부처님 곁에 머물면서) 무생법인의 법력〔忍力〕을 성취하여야만, 비로소 삼계 안에 몸을 나투어 오탁악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래서 지도론(智度論)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번뇌와 업장에 얽매인 범부중생이 제아무리 큰 자비심을 지녔더라도, 오탁악세에 태어나길 발원하여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오탁악세는 번뇌가 매우 강렬하여, 스스로 무생법인의 법력을 지니지 못한 자는 마음이 바깥(사물) 경계에 따라 돌기(흔들리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이 빛과 소리에 얽매여(물들어) 스스로 삼악도에 떨어질 판인데, 어떻게 다른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가령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성인의 도(聖道)를 얻기가 어렵소. 더러 보시나 지계 등의 수행으로 복을 지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 국왕이나 대신이 된다고 합시다. 전생의 복덕으로 자유자재로이 부귀영화를 누리다 보면, 설령 훌륭한 선지식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가르침)을 믿고 따르려 하지 않고, 그저 탐착과 미혹에 휩싸여 안일하게 방종하면서 온갖 죄악을 두루 짓기 마련이오. 이러한 악업을 짊어지고 한번 삼악도에 들어가면, 한량없는 겁〔無量劫〕이 지나야만 비로소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소.
그것도 몹시 가난하고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게 되고,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또다시 지옥에 떨어지기 십상이오. 이와 같이 생사윤회를 되풀이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지금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이 모양 이 꼴이라오. 이것을 일컬어 ‘수행하기 어려운 길〔難行道〕’이라고 부르오.
그래서 유마경(維摩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자기 질병도 구제할 수 없는데, (하물며) 다른 병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自疾不能救, 而能救諸疾人)” 또 지도론(智度論)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예컨대 두 사람이 똑같이 각기 자기 가족이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았다고 비유하자. 한 사람은 감정이 다급하여 곧장 물 속에 뛰어들어 구해내려 했으나, 적절한 방편의 힘이 전혀 없어 그만 물에 빠진 사람이나, 구하려는 사람 모두 다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훌륭한 방편을 생각해 내고, 곧장 가서 배나 뗏목(또는 밧줄이나 튜브)을 가져다가 그를 무사히 건져 올려 마침내 둘 다 익사의 고비를 벗어났다.” 막 보리심을 낸 보살도 또한 이와 같은 이치라오. 이처럼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보살은 스스로 중생을 구제할 수가 없소. 이러한 까닭에 항상 모름지기 부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오. 무생법인을 얻은 다음에라야 바야흐로 중생을 구제할 수 있소. 마치 위의 비유에서 배를 얻은 사람처럼 말이오.
또 논 에 이렇게 말씀하셨소.
“비유하자면 갓난아기가 어머니 품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약에 어머니 품을 벗어난다면, 더러 깊은 구덩이나 우물에 빠지거나 또는 젖에 굶주려 죽을 것이다. 또한 비유하자면 새끼 새가 날개에 깃털이 완전히 자라나지 않았을 때에는, 단지 나무에 의지하여 가지 사이나 옮겨갈 수 있을 뿐, 멀리 공중으로 날아가지는 못하는 것과도 같다. 날개에 깃털이 온전히 자라나야, 비로소 허공에 날아올라 걸림없이 자유자재로이 비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범부 중생은 스스로 힘이 없으므로, 오직 ‘아미타불(阿彌陀佛)’만을 일념으로 생각하고 염송하여 삼매(三昧)를 이루도록 해야 하오. 그렇게 청정한 도업이 성취되기에, 임종에 한 생각 추스려 결정코 극락 왕생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한 다음, 다시 삼계에 되돌아와 무생법인의 큰 배〔船〕를 타고서 생사고해의 중생들을 구제하며, 자기 뜻〔발원〕대로 자유자재로이 부처님 사업(事業)을 널리 펼치는 거라오.
그래서 또 논에 이렇게 말씀하셨소.
“지옥에 돌아다니며 노닐고 싶은 자는 (먼저) 저 나라〔彼國: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무생법인을 얻은 다음에, 다시 생사윤회의 나라〔生死國〕에 되돌아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게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들도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하노니, 진실로 그 가르침을 잘 알고 따르길 기원하오. 그래서 용수(龍樹) 보살님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정토염불법문을 ‘쉽게 수행하는 길〔易行道〕’이라고 이름 붙였다오.
2. 천태지자대사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모든 법의 본체는 텅 비어〔諸法體空〕 본래 생겨남이 없고〔無生〕 평등하며 적멸(寂滅)한데, 지금 이내 이 곳을 내 버리고 저 곳을 좇아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다는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바란다면, 이 어찌 이치(진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또 경전에 이르시기를, “만약 정토를 구하거든 먼저 자기 마음을 정화시킬지니,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국토도 청정해지니라(若求淨土, 先淨其心 ; 心淨故, 卽佛土淨).”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은 어떻게 뜻이 통하겠습니까?
답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소. 첫째는 전체(총론)적인 답이고, 둘째는 개별(각론)적인 답이오. 첫번째 전체적인 답은 이렇게 말할 수 있소.
그대가 만약 아미타부처님의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구하는 것이 이 곳을 내버리고 저 곳을 좇는 행위로 이치(진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대가 이 곳에 매달려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구하지 않는 것은, 거꾸로 저곳을 내 버리고 이 곳에 집착하는 행위로, 이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고 병(病 : 잘못)이 된다오. 또 전계(轉計:사람인지 책인지 미확인)가 이렇게 말했소. “저 곳에 왕생하길 바라지도 않고 또한 이 곳에 생겨나길 바라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은 단멸견(斷滅見)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소.
“수보리여, 그대가 만약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阿 多羅三 三菩提心)을 내는 사람은 모든 법이 단멸(斷滅)이라고 설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런 생각일랑 하지 말게나. 왜냐하면 보리심을 낸 사람은 법에서 단멸의 모습(斷滅相)을 (보거나) 말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일세.”
두 번째 개별(각론)적인 답은 이렇게 말할 수 있소.
무릇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모든 존재가) 생겨나는 인연〔生緣〕 가운데 모든 법이 조화롭게 합쳐질〔諸法和合〕 따름이며, 자기 성품을 지키지(고집하지) 않소〔不守自性〕. 따라서 생겨나는 본체〔生體〕에서 뭔가 찾으려 해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소.
이 생명이 생겨날 때 어디서부터도 오는 바가 없기에〔無所從來〕, 그래서 ‘불생(不生)’이라고 일컫는다오. 또 ‘불멸(不滅)’이란, 모든 법(존재)이 흩어져 사라질 때, 역시 자기 성품을 지키지(고집하지) 않기에 내가 흩어져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소.
이 생명(존재)이 흩어져 사라질 때도 어디로도 가는 바가 없기에〔去無所至〕, 그래서 ‘불멸(不滅)’이라고 일컫는다오. 인연이 조화롭게 합쳐져 생겨나는 것 이외에 따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바라지 않는 것을 가리켜 ‘무생(無生, 無生法忍)’이라고 일컫지도 않소.
이러한 까닭에 (龍樹보살이 지으시고 구마라집이 漢譯하신) 중론(中論)의 게송에 이런 말씀이 있소.
인연에 의하여 생기는 법을
나는 곧 공(空)이라 하는데
또 가짜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또 중도의 뜻이라 하기도 한다.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名中道義
중론(中論)에는 또 이런 말씀도 있소.
모든 법(존재)은 스스로 생기지 않고
또한 다른 것에서 생기지도 않으며,
함께 하지도 않고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런 까닭에 생기지 않음을 안다.
諸法不自生 亦不從他生
不共不無因 是故知無生
그리고 유마경(維摩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비록 모든 부처님 나라와 중생이
공(空)인 줄은 알지만은
항상 정토를 닦아
모든 중생들을 교화한다.
雖知諸佛國 及與衆生空
而常修淨土 敎化諸群生
또 유마경에는 이런 비유도 있소.
“예컨대 어떤 사람이 큰 궁궐을 짓는다고 하자. 만약 그가 텅 빈 땅에 의지(기초)하여 짓는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뜻대로 이룰 것이다. 그러나 만약 허공에 의지하여 지으려 한다면, 끝내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부처님의 설법은 항상 두 가지 진리〔二諦〕에 의지하신다오. 즉 가짜 이름〔假名〕을 깨뜨리지(떠나지) 않으면서도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實相〕을 설하시는 것이오.
지혜로운 이는 치열하게 극락정토 왕생을 간구하면서도, 생겨남(왕생)의 본체〔生體〕는 (텅 비어) 얻을 수 없는 줄 훤히 통달하므로, 이것이 진짜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오. 이런 걸 일컬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해진다.”고 말하는 것이오.
반면 어리석은 자들은 생겨남(또는 왕생)에 얽매여, 생겨난다는 말을 들으면 생겨난다고 알아듣고, 생겨남이 없다〔無生〕는 말을 들으면 생겨남이 없다고 곧이 듣소. 그래서 생겨남이 곧 생겨남 없음이며, 생겨남 없음이 바로 생겨남인 줄은 전혀 모른다오.
이러한 이치를 훤히 깨닫지 못하기에 함부로 시비를 다투며, 남들이 극락정토 왕생을 구하는 것에 대해 핏대를 올리면서 비판하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이오? 이러한 자들은 바로 정법을 비방하는 죄인이며, 삿된 견해〔邪見〕에 빠진 외도(外道:異端)일 따름이라오.
3.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일체 정토(불국토)는 그 법성(法性)이 평등하며, 그 공덕(功德) 또한 똑같은 줄 압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그러한 일체 공덕을 두루 생각하면서 일체의 불국정토에 왕생하길 염원해야 할텐데, 어찌하여 지금 꼭 한 부처님(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만 외곬으로 구한단 말입니까? 이는 평등성과 어긋나는 것이니, 어떻게 정토에 왕생하겠습니까?
답변
시방 세계의 일체 불국토는 진실로 모두 평등하오. 다만 우리 중생들은 근기가 둔하고 마음이 혼탁하며 산란스러운 자가 많소. 그래서 만약 오로지 한 마음으로 한 경계를 붙들어 잡지 않는다면, 삼매(三昧)가 이루어지기 어렵다오.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사념(염송·염원)함이 곧바로 일상삼매(一相三昧)라오. 마음을 오롯이 모으기 때문에 그 불국토에 왕생하게 되는 것이오. 그래서 수원왕생경(隨願往生經)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보광보살(普廣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시방 세계에 모두 정토(淨土:불국토)가 널려 있는데,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오직 서방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만 내세워 찬탄하시며, 오롯이 아미타부처님에 전념하여 극락왕생하라고 권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보광보살한테 이렇게 답하셨다.
‘염부제 중생들은 마음이 매우 혼탁하고 산란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서방 한 부처님 정토만을 내세워 찬탄하느니라. 모든 중생들한테 마음을 한 경계〔一境:나무 아미타불 명호〕에 오롯이 집중(전념)하여 정말 아주 쉽사리 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줌이니라.
만약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전부 다 사념할 것 같으면, 염불의 경계(목표)가 너무 넓어서 마음이 산만해지고 삼매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따라서 정토에 왕생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한 부처님의 공덕을 구한다고 해도, 일체 부처님의 공덕과 전혀 차이가 없소.
부처님 법의 성품이 한결같이 똑같기 때문이오. 이러한 까닭에 아미타부처님을 사념(염송)함이 곧바로 일체 부처님을 사념(염송)함이며, 한 (극락)정토에 왕생함이 또한 곧 모든 부처님의 정토(불국토)에 왕생함이 되오.
그래서 화엄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일체 모든 부처님의 몸은
곧 한 부처님의 몸이니,
한 부처님의 마음이고 지혜이며,
위신력과 무외심 또한 그러하네.”
一切諸佛身 卽是一佛身
一心一智慧 力無畏亦然
또 이렇게 말씀하셨소.
“비유하자면 맑고 둥근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비추듯,
물 속 그림자 비록 수없어도
본래 달은 결코 둘이 아닐세.
이와 같이 걸림없는 지혜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 이루신 분
일체 국토에 두루 모습
나투시어도
부처님 몸은 본디 둘이 아닐세.”
譬如淨滿月 普應一切水
影像雖無量 本月未曾二
如是無 智 成就等正覺
應現一切刹 佛身無有二
지혜로운 이는 비유로써 이해하고 깨닫는다오. 지혜로운 이여! 그대는 일체의 모든 달 그림자가 곧 한 달의 그림자이고, 거꾸로 한 달의 그림자가 곧 일체 모든 달 그림자인 줄 깨닫겠소?
달과 그림자가 둘이 아니지 않소? 만약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한 부처님이 곧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시고, 거꾸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곧 한 부처님이신 줄도 아시겠구려. 법신(法身)은 본디 둘이 아니기 때문이오. 이러한 까닭에 한 부처님을 치열하게 지성으로 염송할 때, 곧바로 일체 모든 부처님을 염송하는 것이라오.
4.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한 부처님의 정토에 왕생하길 염원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 정토에 왕생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시방 세계 수많은 불국토 가운데 자기 마음대로 어느 한 부처님의 정토를 염원하여 거기에 왕생하면 될텐데, 어찌하여 그렇게 하지 않고 하필 아미타불만 염송해야 된다고 외곬으로 주장하십니까?
답변
우리 범부 중생들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감히 스스로 독단해서는 안 되고, 부처님 말씀을 오롯이 듣고 따라야 하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만 염송하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오.
그러면 어째서(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듣고 따른단 말이오. 위대하신 스승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한 평생 설법하신 걸 보면, 거룩하신 가르침 곳곳에서 오로지 중생들한테 일심 전념으로 아미타불만 외곬으로 염송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라고 간곡히 권하셨소.
예컨대 무량수경(無量壽經)이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왕생론(往生論) 등, 수십여 부의 경전과 논장(論藏)들에서 한결같이 서방정토에 왕생하라고 은근히 가르치고 간곡히 당부하셨소. 그래서 아미타불만 외곬으로 염송하라고 내세우는 것이오.
또 아미타부처님께서는 특별히 대자대비하신 48대 서원을 세워 우리 중생들을 이끌어 맞이하시고 계시오. 그리고 관무량수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아미타부처님은 팔만사천 상(相)을 지니셨는데, 하나하나의 상(相)마다 각각 팔만사천 호(好)가 간직되었고, 하나하나의 호(好)마다 각각 팔만사천 광명(光明)을 나투시어, 모든 법계의 염불하는 중생들을 두루 비추시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거두어 들이시니라.
그래서 만약 아미타불을 염송(사념)하기만 하면, 그 착한 근기와 정성이 부처님의 서원과 서로 감응(感應)하여 틀림없이 결정코 극락왕생하느니라.”
또 아미타경이나 대무량수경·고음왕다라니경(鼓音王陀羅尼經) 등에서도 이르기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들 경전을 설법하실 때, 모두 한결같이 갠지즈강(恒河) 모래알 수만큼 많은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각각 그 혀를 길게 드리우시어 삼천대천 세계를 두루 뒤덮으신 채, “일체 중생이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본원력(本願力)의 가피를 받잡기 때문에, 결정코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고 증명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소.
우리는 아미타부처님이 우리 사바세계와 자못 각별한 인연이 있으심을 알아야 하오. 어찌 그런 줄 아는고 하면, 무량수경에 “말세(末世)에 부처님 법이 소멸하는 때, 특별히 이 경전만 세상에 백년 더 남겨 두어 (인연 있는) 중생들이 저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이끌어 맞이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의 지독히 혼탁하고 사악한 중생들과 자못 각별한 인연이 있으심을 알 수 있다오. 물론 그 밖의 다른 부처님들의 모든 정토도 한두 경전에서 중생들한테 거기에 왕생하길 발원하라고 대략 권하고는 계시오.
그렇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처럼 수많은 경론(經論)이 도처에서 고구정녕으로 은근하고 간곡하게 왕생하길 전하시는 불국토는 전혀 없소.
5.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 중생들은 죄악의 업장이 몹시 두텁고 무거워, 한없는 번뇌망상을 터럭 끝만큼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방정토는 시방 삼계를 벗어나 있다고 하던데,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중생들이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답변
두 가지 연분(緣)이 있으니, 첫째는 자력(自力:자기 힘)이고, 둘째는 타력(他力:남의 힘)이오. 자력이라 함은, 자기 스스로 이 (사바) 세계에서 도업을 닦는 것이니, 진실로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없소. 그런 까닭에 영락경(瓔珞經)에 이렇게 말씀하셨소.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중생이 불법승 삼보도 모르고 선악의 인과응보도 알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보리심(菩提心)을 낸 때부터 믿음을 바탕으로 부처님 가르침 안에 머물면서, 계율을 근본으로 삼고 보살계를 받아 지닌 다음 한 생 한 생 계속 이어가며 계율을 지킴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수행해 나간다. 그렇게 하기를 1겁(劫), 2겁, 3겁 계속해 나가야 비로소 초발심주(初發心住)에 이른다.
이와 같이 수행하여 10신(信) 10바라밀(波羅蜜) 등을 꾸준히 닦아 가면서, 한량 없는 발원 수행〔行願〕을 잠시도 끊임없이 계속하여 1만겁(萬劫)이 꽉 차야 바야흐로 제6정심주(正心住)에 이르게 된다.
만약 여기서 더 한층 정진하여 제7불퇴주(不退住)에 이를 것 같으면, 여기가 곧 종성위(種性位)이다.”이상은 자력 수행의 대강을 말씀하신 것인데, 끝내 서방 정토에는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오.
반면 타력(수행)이라 함은, 아미타부처님께서 염불(念佛: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며 명호를 염송)하는 중생들을 모두 대자대비의 원력을 거두어(받아) 주심을 굳게 믿고서, 곧장 보리심을 내어 염불삼매(念佛三昧)의 수행을 하는 것이오.
시방 삼계에 중생의 몸 다시 받는 걸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며, 신심을 내어 보시와 지계로 복덕을 닦아가되, 하나하나 수행마다 한결같이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정토에 왕생하길 회향 발원하는 것이오.
그러면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 가피에 편승하여, 중생 자신의 근기와 정성이(부처님의 원력과) 서로 감응(感應)함으로써, 곧장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그래서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사바) 세계에서 도업을 닦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닦기 어려운 길〔難行道〕이고, 다른 하나는 닦기 쉬운 길〔易行道〕이다. 닦기 어려운 길이라 함은,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는 한량 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어 중생을 제도하시어도 중생이 아비발치(阿 致跋致:不退轉)를 닦아 얻기가 아주 몹시도 어려움을 말한다.
그 어려움은 수없는 티끌처럼 많아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만 말하자면 대략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외도(外道)가 착한 모습으로 다가와 보살도〔正法〕를 어지럽힌다.
둘째, 사악한 무뢰한들이 남의 훌륭한 덕을 깨뜨린다.
셋째, 좋은 결과〔善果〕에 걸려 넘어져 청정한 수행〔梵行〕이 무너지기 쉽다.
넷째, 자신만 이롭기 바라는 성문(聲聞)에 머물러 대자비의 보살행에 장애가 된다.
다섯째, 오직 자력 수행만 있고, 타력의 가피가 없다. 비유하자면, 절름발이가 도보로 길을 걷자면, 하루에 고작 몇 십 리도 못 가면서 지극히 힘들고 고생만 하는데, 이것이 자력 수행에 해당한다.
반면 닦기 쉬운 길이라 함은,
부처님 말씀을 믿고 염불삼매의 가르침에 따라 정토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니, 아미타부처님께서 염불 중생을 거두어(받아) 들이시겠다는 원력의 가피를 받아 의심할 나위 없이 결정코 극락 왕생함을 뜻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순풍에 돛 단 듯이 나아감에, 잠깐 사이에 천리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타력 수행에 해당한다. 달리 비유하자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시중들게 되면, 하루 밤낮 사이에 네 천하(四天下)를 두루 돌게 되는데, 이는 그 사람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전륜성왕의 위력 덕택이다.”
만약 번뇌 망상에 찌든〔有漏〕 범부 중생들은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런 번뇌망상에 찌든 범부중생들은 부처님 몸(佛身)도 또한 뵈올〔親見할〕 수 없다는 말이 되오.
그런데 염불삼매는 물론 번뇌망상을 여읜〔無漏〕 선근(善根)들이 들어갈 수 있지만, 번뇌망상에 찌든 범부중생들도 각자 수행의 정도에 따라 부처님 몸을 거친 모습으로나마 어렴풋이 뵈올(친견할) 수 있다오. 보살 경지에 이른 분들은 미세한 모습까지 뚜렷이 친견하는 것일 따름이오.
극락정토 또한 마찬가지라오. 비록 번뇌망상을 여읜〔無漏〕 선근(善根)들이 왕생하지만, 번뇌망상에 찌든 범부중생들도 위 없는 보리심을 내어 정토 왕생을 발원하면서 늘상 염불하게 되면, 그 힘으로 번뇌를 다스려 소멸시키고 극락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오.
다만 각자 염불 수행〔번뇌 소멸〕의 정도에 따라 거친 모습을 어렴풋이 친견하되, 번뇌가 스러진 보살은 미세한 모습까지 뚜렷이 친견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니, 이러한 이치를 어찌 의심한단 말이오?
그래서 화엄경에서 이르시기를, “일체의 모든 부처님 국토는 한결같이 두루 장엄하고 청정하거늘, 중생의 업장과 수행이 달라 각자 보는 게 같지 않을 뿐일세(一切諸佛刹 平等普嚴淨, 衆生業行異 所見各不同).”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러한 뜻이라오.
6.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 중생들이 설령 아미타부처님의 원력 가피로 서방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더라도, 사견(邪見)과 탐진치 삼독(三毒) 등이 늘상 일어날텐데, 어떻게 서방정토에 왕생한 다음 곧장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를 얻어 삼계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답변
서방 정토에 왕생하게 되면, 다섯 가지 인연으로 불퇴전의 경지에 들 수 있다오.
첫째, 아미타부처님께서 대자대비 원력으로 거두어 지켜주시기 때문에 불퇴전을 얻을 수 있소.
둘째, 부처님 광명이 늘상 비추기〔佛光常照〕 때문에, 보리심이 늘상 증진하기만 하고 줄어들거나 물러남이 없소.
셋째, 물 소리·새 소리·나무 소리·바람 소리 등의 교향 음악이 모두, 육도 윤회 중생계의 과보가 본디 괴롭고〔苦〕 비었으며〔空〕, 덧없고〔無常〕 나라고 할 게 없다〔無我〕는 진리를 설하기 때문에, 이를 듣는 사람들이 늘상 부처님을 생각하고〔念佛〕 부처님 가르침을 생각하며〔念法〕 그 가르침을 수행하는 분들을 생각하는〔念僧〕 마음을 내게 되어 불퇴전에 머문다오.
넷째, 그 서방 정토에서는 순전히 보살님들만 있어 훌륭한 벗〔良友:道伴〕이 되기 때문에, 사악한 연분이나 경계가 전혀 없소. 밖으로는 사악한 귀신이나 마장(魔障)이 없고, 안으로는 탐진치 삼독 등의 번뇌가 언제까지라도 전혀 일어나지 않기에, 불퇴전이 된다오.
다섯째, 그 서방 정토에 왕생하면, 수명이 보살이나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영겁(永劫)토록 계속되기 때문에, 수행이 후퇴하거나 정체할 염려가 없소.
여기의 사바 고해 오탁악세는 목숨도 아주 짧고 덧없지만, 그 곳은 아승지겁을 지나도록 다시는 번뇌 망상이 일어남이 없이 오래도록 도업을 계속 닦아나갈 수 있소. 그런데 어떻게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겠소? 이러한 이치가 아주 분명하거늘,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소.
7.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미륵보살님께서는 일생보처(一生補處)에 계시면서 바로 다음 생에 성불하실 분입니다. 우리 중생이 열 가지 착한 일(十善)1)을 닦아 상품(上品) 수행이 되면, 미륵보살님께서 계시는 도솔천(兜率天)에 생겨날(올라갈) 수 있습니다.
거기서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고 수행하다가, 미륵보살님께서 사바세계에 내려오실〔下生〕 때 함께 따라내려 오면, 세 차례의 법회〔龍華會上〕 교화를 받아 저절로 성인의 과위〔聖果:아라한과〕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꼭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답변
도솔천에 생겨나길(올라가길) 구하는 것도 또한 ‘도를 듣고 부처님을 뵙는다〔聞道見佛〕’고 말들 하니, 외형상 얼핏 보기에는 서방 정토에 왕생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질 듯하오. 하지만 좀더 세밀히 비교하자면, 우열의 차이가 아주 크게 벌어진다오. 그 논거로 두 가지만 들어보겠소.
첫째, 설령 열 가지 선행을 닦아 지닌다 해도, 꼭 도솔천에 생겨난(올라간)다는 보장은 없는 것 같소. 왜 그런가 하면,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 “뭇 삼매를 수행하여 올바른 선정에 깊이 들어야만 바야흐로(도솔천에) 생겨날(올라갈) 수 있다〔行衆三昧, 深入正定, 方始得生〕.”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오.
이걸 보면 미륵보살님께서는 그밖에 달리 특별히 중생을 이끌어 맞아들이시는 방편법문을 가지시지는 않는 것이오. 이와는 달리,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본래 서원의 힘과 광명의 위신력을 바탕으로, 단지 부처님을 생각하고 명호를 염송하는 중생이 있기만 하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거두어 받아들이신다오.
게다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구품(九品)연화의 방편법문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시면서, 서방정토에 왕생하도록 은근하게 이끄시고 간곡하게 당부하셨소. 그래서 단지 중생들이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그 명호를 염송하기만 하면, 근기와 정성이 두 부처님의 자비원력 및 가르침에 서로 감응하여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마치 우리 세간에서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모할 때, 그 상대방이 사모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만 내면, 서로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하여 틀림없이 그 일(인간관계, 연분)이 이루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오.
둘째, 도솔천도 기껏해야 욕계(欲界)에 속하기 때문에, 수행의 경지에서 후퇴하는 자가 많다오. 그리고 극락세계처럼 중생들이 듣고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번뇌를 여의며 보리심을 낼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물소리, 새소리, 나무소리, 바람소리 같은 미묘한 교향음악도 있지 않소.
또 거기에는 여인이 존재하여, 뭇 천상인간들한테 다섯 욕망〔五欲〕2)에 애착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오. 게다가 도솔천의 여인들은 매우 미묘하고 아름다워서, 뭇 천상 인간들이 그들과 어울려 놀고 즐기기에 정신 팔려 스스로 수행에 힘쓸 수가 없을 정도라오.
그러니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와 같겠소. 극락세계에는 물소리, 새소리, 나무소리, 바람소리 등의 교향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중생들이 이 소리들을 들으면 모두 한결같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리심을 내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날 수도 없다오.
또 여인도 없고 성문(聲聞)이나 벽지불( 支佛:緣覺) 같은 이승(二乘:小乘)의 마음이 전혀 없이, 오로지 순수한 대승보살들만이 청정하고 선량한 도반으로 계신다오. 이러한 까닭에 번뇌망상이나 죄악업장이 언제까지라도 전혀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무생법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오.
이것만 비교해도 그 우열이 현저히 판가름나거늘, 어찌 다시 의심할 나위가 있겠소? 예컨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몸소 교화하실 때에도, 부처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대로 수행했으면서 성인의 과위(聖果:아라한)를 얻지 못한 이들이 갠지즈 강 모래알만큼이나 수없이 많았소.
앞으로 미륵부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도 또한 마찬가지로,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이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오. 그러니 어찌 아미타부처님의 서방정토에 견줄 수 있겠소? 극락세계에는 단지 왕생하기만 하면, 모두 무생법인을 얻게 되고, 어느 한 사람도 다시 삼계에 떨어져 나와 생사윤회의 업장에 묶이는 법이 없다오. 또 서국전(西國傳))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소.
세 보살이 계셨는데, 한 분은 무착(無著)이고, 다른 한 분은 세친(世親)이며, 또다른 한 분은 사자각(師子覺)이셨소. 이 세 분은 서로 마음과 뜻이 맞아, 다함께 도솔천에 생겨나(올라가)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기로 결의하고서, 누구든지 먼저 죽어 미륵보살님을 친견하는 자가 남아 있는 이한테 그 소식을 알려주기로 서약하였소. 그러다가 사자각이 먼저 죽었는데, 한 번 가더니만 몇 년이 지나도록 도무지 캄캄 무소식이었소.
그 뒤에 세친이 가게 되었는데. 임종 때 무착이 “만약 자네가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거든, 곧장 되돌아 와서 알려 주게나.” 하고 신신당부를 했다오. 그런데 세친이 간 뒤로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왔길래, 무착이 이렇게 물었다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온단 말인가?”그러자 세친이 이렇게 대답했다오. “거기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님의 설법을 한 바탕 듣고서, 곧장 되돌아 내려와 소식 전하는 것일세. 거기 도솔천은 하루(시간)가 매우 길어, (거기서 잠깐 머물렀는데도) 여기서는 벌써 3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라네.” 그래서 무착이 “그러면 사자각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묻자,
세친의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소. “사자각은 도솔천의 즐거움을 누리고 다섯 욕망〔五欲〕을 즐기느라, 이미 바깥 권속이 되어 버렸네. 한번 도솔천에 올라간 뒤로 여태껏 미륵보살님은 뵌 적도 없다네.”(미륵보살님이 계시는 도솔천 내원에 동참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돈다는 뜻인듯) 경지가 낮은 조그만 보살들은 거기 도솔천에 생겨나도(올라가도) 이처럼 천상의 미묘한 오욕(五欲)에 빠지기 십상이거늘, 하물며 보통 범부 중생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이러한 까닭에,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해서 틀림없이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르겠다고 발원해야 하며, 도솔천에 올라가서 미륵보살님 뵙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오.
8.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우리 중생들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無始〕부터 한량없는 악업을 지어 왔습니다. 금생에 다행히 사람 모습을 타고나긴 했지만 참다운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였고, 그래서 또다시 죄악이란 죄악은 짓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죄업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臨終〕에 ‘나무 아미타불’ 명호 열 번만 염송〔十念〕해 내면 곧장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시방 삼계를 벗어나고 생사윤회의 악업을 끝마칠 수 있다고 하십니까? 도대체 어떠한 도리로 해명하시렵니까?
답변
중생들이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 온 선행과 악업의 종자가 얼마나 많고 얼마나 강한지는 결코 알 수도 없소. 다만 목숨이 다할 때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믿고 따라) ‘나무 아미타불’ 명호 열 번 만이라도 염송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숙세(宿世)의 선행공덕〔善業〕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비로소 임종에 선지식을 만나 열 번 염불〔十念〕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오.
만약 악업이 많은 중생이라면, 그런 선지식을 만날 수조차 없는 법인데, 하물며 어떻게 목숨이 끊어지는 그런 순간에 (정신을 집중하여) 열 번의 염불을 성취할 수 있겠소? 또 그대가 (질문하는 걸 보니)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온 악업만 아주 무겁게(중대하게) 생각하고, 목숨이 다할 때 ‘나무 아미타불’ 염송 열 번 해내는 공덕은 대수롭지 않게 가벼이 여기는 모양인데,
이제 세 가지 도리(道理)로 비교해 본다면, 악업만 공덕의 경중이라는 게 꼭 일정하게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시간(세월)의 길고 짧음이나 수량의 많고 적음에만 달린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소. 그 세 가지 도리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마음(心)에 달려 있고, 둘째는 연분(緣)에 달려 있으며, 셋째는 의지 결정(決定) 여하에 달려 있소.
첫째, 마음에 달려 있다 함은 이렇소.
중생이 죄악을 지을 때는 허망(虛妄)하고 앞뒤가 뒤바뀐〔顚倒〕 번뇌망상으로부터 말미암지만, 염불(念佛)하는 것은 선지식으로부터 아미타부처님의 진실(眞實)하고 공덕(功德) 원만한 명호에 대해 설법을 들음으로써 비롯되오.
이렇듯이 하나(죄업)는 허망하고 하나(염불 공덕)는 진실하니, 어떻게 둘을 서로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소? 비유하자면 마치 만 년 동안 깜깜했던 암실(동론)에 햇빛이 잠시만 비쳐 들어도 암흑은 단박에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소. 어찌 오래된 암흑(죄업)이라고 해서 순간의 햇빛(염불 공덕)에 사라지지 않을 리가 있겠소?
둘째, 연분에 달려 있다 함은 이러하오. 죄악을 지을 때는, 허망(虛妄)하고 어둡고 어리석은 마음이 허망한 경계의 연분을 만나 본말이 뒤바뀌어 죄악을 짓게 되오. 그러나 염불하는 마음은 부처님의 청정(淸淨)하고 진실(眞實)하며 공덕 원만한 명호를 듣고서 더할 나위 없는 보리심〔無上菩提心〕을 연분으로 생겨나기 마련이오.
이처럼 하나는 거짓되고 하나는 진실하니, 어떻게 둘을 서로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소?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는데, 독이 극렬하고 화살이 깊이 박혀 근육을 손상시킴은 물론 뼈까지 파괴되었으나, 한번 독약을 말끔히 사라지게 하는 신령스런 북〔藥鼓〕 소리를 듣자마자, 금세 화살이 저절로 뽑혀 나오고 독기운도 스스로 풀려 버리는 것과 같소. 그런데 이 경우 화살이 좀 깊이 박히고 독이 극렬하다고 해서, 어찌 안 빠지고 해독 안 될 리가 있겠소?
셋째, 의지 결정에 달려 있다 함은 또 이러하오. 죄악을 지을 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에서 이거 한번 해볼까 하는) 한가한 마음〔閒心〕과 (나중에 뉘우치고 속죄할 기회가 있겠지 하고) 뒷날을 은근히 기대는 마음〔後心〕이 으레 있기 마련이오.
하지만 염불할 때는, 지금 당장 숨 넘어가면 생명이 끝날 판인데, 그런 한가한 마음과 뒷날을 기대는 마음이 도대체 있을 수 없소. 그래서 착한 마음〔善心〕으로 맹렬하고 예리하게 정신 바짝 차려 염불하게 되므로, 곧장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오.
비유하자면, 열 겹으로 묶은 밧줄은 천 사람도 끊을 수 없지만, 어린애가 칼 한번 휘두르면 순식간에 두 동강 나는 것과 같소. 또 천년 동안 쌓아 놓은 장작더미가 콩알만한 불씨 가지고도 짧은 시간에 죄다 타버리는 것과 같소. 그리고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한 평생 동안 열 가지 선행〔十善業〕을 꾸준히 닦아 마땅히 천상에 올라가야 할 인연인데, 임종 때 한 순간의 결정(決定)적인 삿된 생각〔邪見〕을 품음으로써 곧장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것과도 마찬가지 이치라오.
악업이라는 게 허망한데도 불구하고, 임종 때 한 생각이 맹렬하고 예리했던 까닭에, 오히려 한 평생 동안의 선행 공덕을 죄다 물리치고 지옥이라는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만든 것이오. 하물며 임종 때 맹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한다면, 한가한 생각없는 진실한 마음의 선행공덕은 오죽하겠소? 그러한 결연한 마음의 염불공덕으로,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어온 악업을 말끔히 물리치고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면, 이는 정말 말도 안 되오.
또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한 순간의 염불 공덕으로 80억 겁 동안 생사윤회의 죄업을 소멸시킨다고 하는데, 이는 염불할 때의 마음이 아주 맹렬하고 예리하기 때문이오. 그렇듯이 악업을 말끔히 소멸시킨다면, 결정코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소.
그리고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말씀 가운데, ‘나무 아미타불’ 열 번 염송하는 공덕을 성취하는 걸 (금생에 과보를 얻는 게 아니라 내생을 기약하는 인연 종자 정도로) 다른 때〔別時〕의 의미로 판단(해석)하는 견해가 더러 있는데, 이는 결코 그럴 수 없소. 어찌 그런 줄 아는가 하면, 섭론(攝論 : 無著보살이 지은 攝大乘論)에는 “오직 발원만 하는 까닭에 수행이 전혀 없다.”는 말씀이 나온다오.
또 잡집론(雜集論)1)에는, “만약 안락(安樂:극락) 국토에 왕생하길 원하면 곧장 왕생할 수 있고, 만약 티없는〔無垢〕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곧장 아누다라삼먁삼보리(阿 多羅三 三菩提:無上正等正覺)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모두 다른 때의 원인〔別時之因〕으로 전혀 수행이 없다.”고 하고 있소.
그렇지만 (단지 발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종의 순간에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한가한 생각 없이 맹렬하고 예리(간절)하게 열 번 염불하는 십념(十念)의 선행공덕까지 (내생의 극락 왕생을 위한 인연 종자 정도로) 다른 때〔別時〕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오도(誤導)하는 커다란 잘못이 되겠소?
원컨대, 염불 수행자 여러분께서는 이 이치를 깊이 생각하여 자기 마음을 굳게 다잡아 결연히 행하고, 다른 견해를 잘못 믿어 스스로 함정에 떨어지는 일이 결코 없기를 간절히 바라오.
9. 천태지자대사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의문
이제 결정코 서방 정토 왕생을 발원하여 구하렵니다. 그런데 어떤 수행 공덕을 닦아야 할 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종자(인연)로 그 나라(극락정토)에 생겨날 수 있습니까? 또 우리 세속에 사는 범부 중생들은 모두 처자식(배우자)이 있는데, 음욕(淫欲)을 끊지 않아도 거기에 왕생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결정코 서방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의 두 가지 수행을 갖추면 틀림없이 거기에 왕생할 수 있소. 첫째는 싫어하여 떠나는 염리행(厭離行)이고, 둘째는 흔연히 기뻐하며 바라는 흔원행(欣願行)이오. 우리 범부 중생들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오욕(五欲)에 얽매여 오도(五道:六道 가운데 阿修羅를 뺀 나머지 다섯 문맥상 육도와 같은 의미)를 윤회하면서 온갖 고통을 받아 왔소.
그러므로 이 오욕을 싫어하여 멀리 떠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오도 윤회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소. 그러한 까닭에 늘상 이 몸뚱아리 보기를, 피고름과 똥오줌 등 온갖 불결하고 냄새 나며 더러운 오물 덩어리를 관찰하는 것이오. 그래서 열반경(涅槃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와 같이 육신의 성〔身城〕은 어리석고 멍청한 나찰(羅刹)이 그 안에 살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는 자라면 누가 이 몸을 좋아하고 즐기겠는가?” 또 경전에 이렇게도 말씀하셨소.
“이 몸은 온갖 괴로움이 모인 곳으로, 일체 모든 것이 죄다 깨끗지 못하고, 온통 종기나 피고름 투성이로 좋고 이로운 것은 근본적으로 없나니, 위로 아무리 높고 훌륭한 천상 세계라 할지라도 모두 이와 같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걷거나 앉거나 자거나 깨어 있거나 간에, 늘상 이 몸이 즐거움이란 조금도 없이 오직 괴로움뿐임을 관찰하여, 이 몸을 몹시 싫어하고 떠나버리려는 마음을 깊이 내어야 한다.”
그리고 방사(房事:부부관계, 성욕)는 설사 단박에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점차 싫어하고 멀리하는 마음을 내면서 다음의 일곱 가지 부정관(不淨觀)을 하면 좋겠소.
첫째는, 이 음욕의 몸뚱아리가 탐착과 애욕의 번뇌로부터 생겨났으니, 바로 그 근본 종자가 깨끗하지 못함을 관조하는 것이오.
둘째는, 부모가 성관계를 맺을 때에 붉은 피(난자)와 흰 정액(정자)이 화합하였으니, 이는 바로 생명을 받음〔受生:受胎〕 자체가 깨끗하지 못함이오.
셋째는, 어머니 태〔母胎〕 속에서 머물 때, 위로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장기〔熟臟〕가 떠받치고 있으니, 이는 바로 거주하는 곳이 깨끗하지 못함이오.
넷째는, 또 어머니 태 속에 있을 때, 오직 어머니의 피를 통해 영양을 먹었(섭취했)으니, 이는 곧 음식 섭취가 깨끗하지 못함이오.
다섯째는, 해와 달이 꽉 차서 머리가 출산의 문을 향해 나올 때, 피고름이 함께 왕창 쏟아져 더러움과 피비린내가 흥건히 퍼졌으니, 이는 곧 첫 출생이 깨끗하지 못함이오.
여섯째는, 얇은 살갗 한 겹으로 겉만 그럴듯이 뒤덮여 있을 뿐, 그 안은 어느 곳이나 온통 피고름으로 꽉 차 있으니, 이는 바로 온몸이 깨끗하지 못함이오.
일곱째는, 그러다가 나중에 죽은 뒤에는 시신이 부어 오르고 문드러져 뼈와 살이 사방으로 널려 여우나 이리떼의 먹이가 되고 마니, 이는 바로 궁극까지 깨끗하지 못함이오.
이렇듯 자기 몸이 그러할진대, 남의 몸도 또한 그러할 것은 당연하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경계(境界)나 남녀의 몸 따위도 모두 그러하거니, 늘상 깨끗하지 못함을 관조하여 몹시 싫어하고 멀리 떠나려는 마음을 깊이 내어야 할 것이오.
만약 이와 같이 몸뚱아리가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음욕의 번뇌망상이 점점 줄어들 것이오. 이와 함께 경전에서 널리 말씀하고 계시는 열 가지 생각〔十想〕 등의 관찰법도 행하면 좋겠소.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원컨대, 제가 삼계에서 온갖 더럽고 냄새나며 오욕에 탐닉하는 깨끗하지 못한 잡식성 남녀의 몸뚱아리를 영원히 벗어나서, 극락정토의 법성의 몸〔法性身〕 받아 생겨나길 간절히 바라옵니다.’라고 발원하는 것이오.
그리고 바로 싫어하여 떠나는 염리행(厭離行)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소. 첫째는 먼저 극락왕생을 구한다는 뜻을 분명히 함이오. 둘째는 그 극락정토의 장엄들을 보고 믿어 흔쾌한 마음으로 왕생을 구하고 바라는 것이오. 우선 왕생의 뜻을 분명히 함은 이렇소. “정토왕생을 구하는 까닭은 일체 모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함인데, 지금 자기 스스로를 생각해 보건대 나 자신은 아무런 힘도 없다.
이렇게 험악한 세상에서는 번뇌망상의 경계가 너무 강렬하여, 나 스스로 업장에 얽매여 삼악도에 떨어지고 한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계속 윤회할 것이다.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윤회하며 여태껏 잠시도 쉰 적이 없는데, 어느 때나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뭇 불보살님들을 가까이 하려고 구하는 것이오. 그래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해야만 바야흐로 험악한 세상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가 있소.
그런 까닭에 왕생론(往生論)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보리심을 낸다〔發菩提心〕 함은 바로 부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고,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곧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이며,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은 바로 중생들을 거두어 들여 부처님 나라에 생겨나도록 이끌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원하면, 모름지기 다음 두 가지 수행을 갖추어야 하오. 첫째는 보리문(菩提門)을 가로막는 세 가지 나쁜 법을 반드시 멀리 떠나야 하고, 둘째는 보리문으로 순조롭게 이끄는 세 가지 좋은 법을 모름지기 얻어야 하오.
보리문을 가로막는 세 가지 나쁜 법을 멀리함은 바로 이런 것이오.
첫째, 지혜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이오.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내 마음이 내 자신에 탐착하는 걸 멀리 떠날 수 있는 법문이기 때문이오.
둘째는 자비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이오. 일체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편안치 못한 중생의 마음을 멀리 떠날 수 있는 법문이기 때문이오.
셋째는, 방편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이오.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려 하고, 자기 자신을 공경하고 공양하려는 마음일랑 멀리 떠날 수 있는 법문이기 때문이오.
이와 같이 하여 보리문을 가로막는 세 가지 장애를 멀리할 수 있다면, 바로 보리문에 순응하는 다음의 세 가지 법을 얻게 되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온갖 즐거움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마음〔無染淸淨心〕을 얻게 되오. 보리〔菩提〕는 본디 물들지 않고 청정한 곳이오.
만약 자신을 위해 즐거움을 구한다면, 이는 곧 몸과 마음을 더럽게 물들이고 보리문을 가로막는 것이오. 그래서 물들지 않은 청정한 마음은 보리문에 순응하는 것이오.
둘째는, 중생의 고통을 제거해 주기 때문에, 편안스런 청정한 마음〔安淸淨心〕을 얻게 되오. 보리심은 일체 중생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는 청정한 곳이오.
만약 일체 중생을 건져 생사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는 곧 보리문에 어긋나는 것이오. 그래서 편안스런 청정한 마음은 보리문에 순응하는 것이오.
셋째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대보리(大菩提)와 열반을 얻게 하려고 바라기 때문에, 즐거운 청정한 마음〔樂淸淨心〕을 얻게 되오. 보리와 열반은 궁극의 항상 즐거운〔常樂〕 곳이오.
만약 일체 중생들한테 항상 궁극의 즐거움을 얻게 해 주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는 보리문을 가로막는 것이오(그래서 즐거운 청정한 마음은 보리문에 순응하는 것이오.).
그러면 이 보리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얻어지겠소? 핵심 요체는 바로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늘상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는 데에 있소. 거기서 무생법인을 증득한 다음에 다시 생사윤회의 사바국토에 나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되, 자비와 지혜가 안으로 혼융일체가 되어 선정으로 항상 사용하며 조금도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로운 것이 바로 참된 보리심이오. 이것이 첫번째 극락정토 왕생을 구한다는 뜻이오.
두번째 흔쾌한 마음으로 정토왕생을 원한다 함은 이러하오.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이 흔쾌히 일어남은 아미타부처님의 인연 때문이오. 법신(法身)이나 보신(報身)이나 금색 광명 찬란한 가운데 8만4천 큰 모습〔相〕을 나투시고, 큰 모습 하나하나마다 다시 8만4천 작은 모습〔好〕을 나투시며, 작은 모습 하나하나마다 또다시 8만4천 광명을 쏟아내시어, 항상 온 법계를 두루 비추시면서 염불하는 중생들을 빠짐없이 거두어 들이시는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 중생들은 극락정토의 칠보장엄(七寶莊嚴)과 미묘한 즐거움 등은 물론,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에 설해져 있는 16관법 등의 가르침을 잘 관찰하고 사유하여, 항상 염불삼매와 보시·지계 등의 모든 선행을 함께 닦아나가야 하오. 그래서 그러한 수행공덕으로 일체 중생들이 다함께 극락국토에 왕생하도록 회향기도하는 것이오. 그러면 결정코 틀림없이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이것이 바로 흔쾌한 마음으로 극락왕생을 원하는 것이오.
천태지자대사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정토십의론 후서(淨土十疑論後序)
송(宋) 좌선의랑(左宣義郞) 진환(陳瓘) 씀
사람 마음 덧없고, 법 또한 일정함이 없다. 마음과 법이 천차만별이지만, 그 근본은 여기에 있다. 이것을 믿으면 두루 믿게 되나니, 그래서 화엄경에서 열 가지 믿음〔十信〕을 말씀하셨다. 반대로 이것을 의심하면 두루 의심하게 되나니, 그래서 천태지자 대사께서 정토에 관한 열 가지 의심을 해설하셨다. 의심을 벗어나서 믿음으로 들어가되, 한 번 들어가면 영구히 들어가게 되나니, 여기에서 떠나지 않고 확실히 믿으면 궁극의 경지〔究境處〕를 얻는다.
극락정토란 바로 그러한 궁극의 경지〔究境處〕이다. 이 곳에 설법하시는 주체가 계시니, 바로 무량수불이시다. 이 부처님께서 설법하심은 일찍이 쉬거나 끊인 적이 없건만, 우리 중생들 의심이 귀를 막아 귀머거리처럼 그 설법을 듣지 못하고, 우리 중생들 의심이 마음을 뒤덮어 흐리멍텅하니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죄악의 업습에 편안히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생각〔念佛〕하지 않음을 찬탄하며, 거칠고 산만한 마음을 좋아라고 기뻐〔隨喜〕하면서, 극락정토에서 연꽃 봉오리를 보금자리로 생겨나는 게 허황된 거짓이라고 망령된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썩어 문드러질 이 육신이 어떻게 얻어졌고 또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끝내 생각지도 않는다. 모태의 감옥〔胎獄〕 지저분하고 더럽기 짝이 없으니, 진실(眞實)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로 업식(業識)에만 믿고 의지하니, 진실한 성품 바탕과는 저절로 거리가 멀다. 한바탕 허깨비 같은 꿈속 경계에서 진실〔성품〕을 못 보고 허깨비〔업식〕에 매달린 까닭에, 생애생애마다 신령스러움을 잃고 성인의 길에서 영원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까닭에 석가여래께서 대자비와 연민심을 내시어, 사바고해 오탁악세에서 큰 소리로 저기 서방정토의 지극하고 미묘한 즐거움을 찬탄하셨다.
생사윤회의 고해 가운데 위대한 뱃사공〔船師〕이 되시어, 우리 중생들을 진리의 배〔法船〕에 실어 날라 저 쪽 극락 언덕〔彼岸〕으로 건네 주시면서, 밤낮으로 중생을 제도하심에 잠시도 쉴 틈이 없으신 것이다. 그렇지만 아미타불의 언덕(정토)은 본디 피(안)차(안)가 없고, 석가여래의 배는 실제로 오고 감〔往來〕이 없다. 비유하자면, 한 등불이 팔방의 거울에 각각 나누어 비치는 경우에, 거울의 위치는 동쪽과 서쪽이 있을지라도 빛과 그림자는 결코 둘이 아닌 것과 같다.
아미타불의 설법은 팔방의 거울에 두루 빛을 비추는데, 석가여래의 방편 법문은 오직 서쪽 거울만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피안에 다다른 이는 피안과 차안(의 구별)을 잊을 수 있지만, 아직 법계에 들어가지 못한 중생들이 어떻게 스스로 동쪽과 서쪽(정토)을 분간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 법문 가운데서 아직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방향에 얽매이지도 말고 피(안)차(안)도 가리지 말며, 단지 부처님 말씀을 올바른 생각으로 굳게 믿기만 하면 된다. 이 점이 바로 두 성인(아미타불과 석가여래)의 본래 의도이며, 또 지자 대사께서 믿음을 내신 까닭이다.
믿음이란 모든 선행의 어머니이며, 의심은 모든 죄악의 뿌리이다.〔信者, 萬善之母;疑者, 衆惡之根〕 선행의 어머니(믿음)에 순응하여 죄악의 뿌리(의심)를 솎아낼 수 있다면, 앞에서 의심의 업장에 귀와 마음이 막힌 중생들도 귀가 트여 다시 듣고 마음이 열려 다시 깨닫게 된다.
또 아직 생사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은 생사 윤회를 벗어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 중생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된다.석가여래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라 아미타불을 향해 극락왕생하고, 다시 아미타불의 원력에 따라 나와 석가여래를 돕게 될 것이다.
이렇듯이 시방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 서쪽을 향하여 팔방의 모든 거울에 두루 들어가는 셈이다. 두 성인께서 정토법문을 세우신 이래 이와 같이 행한 사람들이 갠지즈 강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데, 어찌하여 믿지 아니하고, 또 무엇을 의심한단 말인가? 이러한 법문(진리)을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면, 또 좋은 방편을 마련하여 아직 믿지 못하는 뭇 사람들한테 믿지 않을 수 없도록 일깨워야 하리라.
바로 그 때문에 천태지자 대사께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이 정토십의론을 설하신 것이다. 명지(明智) 대사께서 한가운데 우뚝 서서 지자 대사의 도를 배워 본받으셨는데, 그 문장은 따라갈 수 없지만 그 대자비심만은 따르실 만하다. 그래서 또 이 정토십의론을 다시 인쇄 발행하시게 되었는데, 맨 앞의 서문은 양공이 쓰셨으니, 이에 법문이 더욱 널리 전파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여 몇 자 부연 서술한다.
끝.
번역 / 보적(寶積) 김지수(전남대 교수)
*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 수나라(581~618) 시대 승려
쫑카파 대사 '연기緣起찬탄송'
< 연기찬탄송 >
(IN PRAISE OF DEPENDENT ORIGINATION)1~58
쫑카파 대사 지음/양지애 번역
게셰 툽텐 진파 英譯
나모 구루 만주고샤야
가장 지혜로운 분,
비할 데 없는 설법자,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아 설하신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1. He who speaks on the basis of seeing,
This makes him a knower and teacher unexcelled, I bow to you, O Conqueror, you who saw Dependent origination and taught it.
세상의 모든 고통은
무지라는 뿌리에서 비롯되니
연기법을 보는 것으로
뿌리가 제거된다고 설하셨네.
2. Whatever degenerations there are in the world, The root of all these is ignorance;
You taught that it is dependent origination,
The seeing of which will undo this ignorance.
이때 지혜로운 이라면
연기법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임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리!
3. So how can an intelligent person
Not comprehend that this path Of dependent origination is The essential point of your teaching?
그러므로 구제자 부처님을
찬탄하는 이유 중에
연기법을 설하신 것보다
더 훌륭한 점을 찾을 수가 없네!
4. This being so, who will find, O Savior,
A more wonderful way to praise you
Than [to praise you] for having taught
This origination through dependence?
‘조건에 의존하는 것들은
자성이 공하다.’라고
설하신 이보다 더 경이롭고
훌륭한 가르침이 어디 있는가?
5. “Whatsoever depends on conditions,
That is devoid of intrinsic existence.”
What excellent instruction can there be
More amazing than this proclamation?
있고 없음을 집착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극단의 견해에 깊이 빠져있지만
진여를 아는 이는 분별망상의 그물을
모조리 잘라 내리라.
6. By grasping at it the childish
Strengthen bondage to extreme views;
For the wise this very fact is the doorway
To cut free from the net of elaborations.
이와 같은 가르침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였으니
제게 스승은 오직 부처님 한 분 뿐,
외도에게 정법이 있다 함은
여우를 사자라고 아첨하는 것과 같네.
7. Since this teaching is not seen elsewhere,
You alone are the Teacher; Like calling fox a lion, for a Tirthika It would be a word of flattery.
안내자여! 귀의처시여!
최고 설법자여! 구제자시여!
연기법을 올바르게 설하신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8. Wondrous teacher! Wondrous refuge!
Wondrous speaker! Wondrous savior!
I pay homage to that teacher
Who taught well dependent origination.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을 위해
약과 같이 설하신
불법의 핵심,
공성을 깨닫게 되는 비할 데 없는 근거,
9. To help heal sentient beings, O Benefactor, you have taught The peerless reason to ascertain Emptiness, the heart of the teaching.
‘상호 의존하여 발생한다는 연기법’이
모순이고 성립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이 어찌
불법을 이해하겠는가?
10. This way of dependent origination,
Those who perceive it As contradictory or as unestablished, How can they comprehend your system?
어느 날 연기법을 통해서
공성을 본다면
무자성과
행위자와 행위에 모순이 없지만
11. For you, when one sees emptiness
In terms of the meaning of dependent origination, Then being devoid of intrinsic existence and Possessing valid functions do not contradict.
이와 반대로 본다면
공성인 것에 행위가 있을 수 없고
행위가 있는 것이 공성일 수 없으니
위험한 벼랑에 떨어진다고 설하셨네.
12. Whereas when one sees the opposite,
Since there can be no function in
emptiness Nor emptiness in what has functions, One falls into a dreadful abyss, you maintain.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연기법을 보신 것을 최상으로 찬탄하나니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자성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네.
13. Therefore in your teaching
Seeing dependent origination is hailed;
That too not as an utter non-existence
Nor as an intrinsic existence.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허공꽃처럼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네.
자성을 가진 존재라면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성립하는 것은 모순이네.
14. The non-contingent is like a sky flower,
Hence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dependent. If things exist through their essence, their dependence on
Causes and conditions for their existence is a contradiction.
그런 까닭에 의존하여 발생한 것 외에
어떤 법도 존재할 수 없고
자성으로써 공한 것 외에
어떤 법도 존재할 수 없네.
15. “Therefore since no phenomena exist
Other than origination through dependence, No phenomena exist other than
Being devoid of intrinsic existence,” you taught.
자성은 제거할 수 없으니
어떤 것에 자성이 있다면
열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분별망상을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설하셨네.
16. “Because intrinsic nature cannot be negated, If phenomena possess some intrinsic nature, Nirvana would become impossible And elaborations could not be ceased,” you taught.
그러므로 현자들의 무리에서
사자후로 자성이 없음을
거듭 설하신
이 가르침 누가 반박할 수 있으리!
17. Therefore who could challenge you?
You who proclaim with lion’s roar
In the assembly of learned ones repeatedly
That everything is utterly free of intrinsic nature?
어떠한 것에도 자성은 없으니
서로 의존해서 발생하는
모든 원리가 모순없이
하나로 귀결됨은 말할 필요가 없네.
18. That there is no intrinsic existence at all
And that all functions as “this arising
In dependence on that,” what need is there to say That these two converge without conflict?
의존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다고 설하신
이 가르침은
부처님의 최상 설법의 근원이네.
19. “It is through the reason of dependent origination That one does not lean towards an extreme;” That you’ve declared this excellently is the reason,
O Savior, of your being an unexcelled speaker.
모든 것은 본질이 공하고,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이 두 가지를 앎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화합하는
20. “All of this is devoid of essence,”
And “From this arises that effect” –
These two certainties complement
Each other with no contradiction at all.
이보다 더 놀라울 것과
경이로운 가르침이 어디 있는가?
이 이치로 부처님을 찬탄하니
이보다 더 수승한 것은 없네.
21. What is more amazing than this?
What is more marvellous than this?
If one praises you in this manner,
This is real praise, otherwise not.
미혹에 사로잡혀
부처님을 반대하는 이들이
무자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네.
22. Being enslaved by ignorance
Those who fiercely oppose you,
What is so astonishing about their being
Unable to bear the sound of no intrinsic existence?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의 원천이
연기법임을 인정하면서도
공성은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나는 놀라움을 느끼네.
23
But having accepted dependent origination,
The precious treasure of your speech,
Then not tolerating the roar of emptiness –
This I find amazing indeed!
무자성으로 인도하는
최고의 문인 연기법을
이름만을 붙들고
자성이 있다고 집착하는 이들을
24. The door that leads to no intrinsic existence, This unexcelled [door of] dependent origination,
Through its name alone, if one grasps
At intrinsic existence, now this person
뛰어난 성인들께서 거쳐 간
비할 데 없는 바른 길,
부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온갖 방편을 써서 인도하리라!
25. Who lacks the unrivalled entrance,
Well travelled by the Noble Ones,
By what means should one guide him
To the excellent path that pleases you?
진여는 조작과 의존함이 없고
연기는 조작과 의존하는 가운데
어떻게 하나의 대상에
모순 없이 양립하는가?
26. Intrinsic nature, uncreated and non-contingent, Dependent origination, contingent and created –
How can these two converge
Upon a single basis without contradiction?
그러므로 ‘의존해서 성립하는 것’들은
본래부터 자성이 없지만
자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일체법이 환영과 같다고 설하셨네.
27. Therefore whatever originates dependently, Though primordially free of intrinsic existence, Appears as if it does [possess intrinsic existence];
So you taught all this to be illusion-like.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느 누구도 지적할 점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만으로도 알 수 있으리.
28. Through this very fact I understand well
The statement that, to what you have taught, Those opponents who challenge you Cannot find faults that accord with reason.
무슨 말씀인가 하면
드러나 있거나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과장하고 숨길 수 있는
기회를 멀리 내치셨다는 것이네.
29. Why is this so? Because by declaring these Chances for reification and denigration Towards things seen and unseen
Are made most remote.
부처님의 비할 데 없는 연기법의 가르침을
보게 되는 것에 의해
부처님의 다른 가르침 역시
올바른 말씀이란 믿음이 생겨나네.
30. Through this very path of dependent origination, The rationale for your speech being peerless, Convictions arise in me [also] That your other words are valid too.
있는 그대로를 보고 진실하게 설하신
부처님을 따르는 이들은
모든 허물에서 차츰 멀어지니
모든 허물의 뿌리를 제거하기 때문이네.
31. You who speak excellently by seeing as it is, For those who train in your footsteps,
All degenerations will become remote;
For the root of all faults will be undone.
반대로 부처님의 법을 외면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노력해도
오히려 허물만이 늘어나니
나라는 생각이 견고하기 때문이네.
32. But those who turn away from your teaching, Though they may struggle with hardship for a long time,
Faults increase ever more as if being called forth; For they make firm the view of self.
지혜로운 이가 이러한
두 가지의 차이를 알아차릴 때
마음 속 깊이 부처님을 향한
공경심이 어찌 일어나지 않겠는가!
33. Aha! When the wise comprehe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se two,
Why would they not at that point
Revere you from the depths of their being?
부처님의 여러 가르침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일부만이라도,
혹여 대략적인 이해만이라도 얻는다면
최상의 안락을 얻게 되네.
34. Let alone your numerous teachings,
Even in the meaning of a small part,
Those who find ascertainment in a cursory way, This brings supreme bliss to them as well.
나의 마음은 무지로 인해 망가져
이와 같은 공덕의 밭에
오랫동안 귀의하였지만
작은 공덕의 조각조차 얻지 못했네.
35. Alas! My mind was defeated by ignorance; Though I’ve sought refuge for a long time,
In such an embodiment of excellence,
I possess not a fraction of his qualities.
그러나 죽을 때가 가까워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조금이나마
부처님을 향해 믿음을 일으킬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네.
36. Nonetheless, before the stream of this life Flowing towards death has come to cease
That I have found slight faith in you –
Even this I think is fortunate.
설법 중에 연기법을 설하시고,
지혜 중에 연기법을 깨달은 지혜로
온 세상의 제왕과 같은 부처님을
뛰어넘을 자 누구도 없네.
37. Among teachers, the teacher of dependent origination,
Amongst wisdoms, the knowledge of dependent origination –
You, who’re most excellent like the kings in the worlds,
Know this perfectly well, not others.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가르침은
연기법에서 시작되어
열반으로 인도하니
적정이 아닌 다른 법은 설하지 않으셨네.
38. All that you have taught
Proceeds by way of dependent origination;
That too is done for the sake of nirvana;
You have no deeds that do not bring peace.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모두가 적정에 들게 되니
부처님의 법을 수지하는 이들을
누가 공경하지 않으리.
39. Alas! Your teaching is such,
In whosoever’s ears it falls,
They all attain peace; so who would not be
Honoured to uphold your teaching?
모든 반론들을 이기고
앞뒤 어긋남이 없으며
일체중생 자리이타를 이루게 하는
불법에 나의 신심 늘어만 가네.
40. It overcomes all opposing challenges;
It’s free from contradictions between earlier and latter parts;
It grants fulfilment of beings’ two aims –
For this system my joy increases ever more.
이를 위해 부처님께서
때로는 다른 이들을 위해 몸과 목숨,
재물과 사랑하는 가족마저도
무량겁 동안 거듭 베푸셨으니,
41. For its sake you have given away,
Again and again over countless eons,
Sometimes your body, at others your life,
As well as your loving kin and resources of wealth.
부처님의 공덕을 보고 나면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부처님께 마음이 저절로 이끌리나
애석하게도 부처님께 직접 법을 듣지 못했네!
42. Seeing the qualities of this teaching
Pulls [hard] from your heart,
Just like what a hook does to a fish;
Sad it is not to have heard it from you.
이 비통함이
하나뿐인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나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네.
43. The intensity of that sorrow
Does not let go of my mind,
Just like the mind of a mother
[Constantly] goes after her dear child.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
거룩한 상호 찬란하게 빛나고
광명에 둘러싸인 부처님께서
법음으로 이러이러하다고 설하시고
부처님의 이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열병에 시달리는 이에게
시원한 달빛처럼 약이 되네.
44-45. Here too, as I reflect on your words, I think, “Blazing with the glory of noble marks And hallowed in a net of light rays,
This teacher, in a voice of pristine melody,
Spoke thus in such a way.”
The instant such a reflection of the Sage’s form Appears in my mind it soothes me,
Just as the moon-rays heal fever’s pains.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접하는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잔디처럼 뒤엉켜 있네.
46. This excellent system, most marvellous,
Some individuals who are not so learned
Have entangled it in utter confusion,
Just like the tangled balbaza grass.
이와 같은 모습 보고서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인들을 따라 부처님의 의중을
거듭 거듭 탐구하네.
47. Seeing this situation, I strove
With a multitude of efforts
To follow after the learned ones
And sought your intention again and again.
한때 자종과 타종의
많은 교리를 배웠으나
늘어나는 의심들로 인해
나의 마음은 항시 편치 못했네.
48. At such times as I studied the numerous works Of both our own [Middle Way] and other schools, My mind became tormented ever more Constantly by a network of doubts.
부처님의 최상승의 도리를
있고 없음의 양극단을 여의고
여실하게 해석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예언한 백련화원의 용수보살의
49. The night-lily grove of Nagarjuna’s treatises – Nagarjuna whom you prophesized Would unravel your unexcelled vehicle as it is, Shunning extremes of existence and non-existence –
오류 없는 지혜가 넘쳐나와
허공에 걸림 없이 퍼져 나가니
양변을 집착하는 어리석은 마음과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별들을 제압하네.
50. Illuminated by the garland of white lights Of Candra’s well-uttered insights –
Candra, whose stainless wisdom orb is full,
Who glides freely across scriptures’ space,
월칭논사께서 훌륭하게 해석하여
광명으로 밝히셨으니
이와 같은 스승들의 은혜로
나의 마음은 안식을 얻었네.
51. Who dispels the darkness of extremist hearts And outshines the constellations of false speakers – When, through my teacher’s kindness, I saw this My mind found a rest at last.
부처님의 모든 업적 중
법을 설하신 업적이 가장 수승하나니
그 때문에 성인들은 부처님의 은혜를
항시 잊지 않고 기억하네.
52. Of all your deeds, your speech is supreme; Within that too it is this very speech; So the wise should remember the Buddha Through this [teaching of dependent origination].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움에 게으르지 않고
수행하는 비구들은 이와 같은 행으로
위대한 성자 부처님을 지극히 공경하네.
53. Following such a teacher and having become a renunciate,
Having studied the Conqueror’s words not too poorly, This monk who strives in the yogic practices, Such is [the depth of] his reverence to the great Seer!
위대한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스승의 은혜이기에
이와 같은 선업도 일체중생이
바른 스승을 만나는 데 회향합니다.
54. Since it is due to my teacher’s kindness
I have met with the teaching of the unexcelled teacher,
I dedicate this virtue too towards the cause
For all beings to be sustained by sublime spiritual mentors.
일체중생을 위한 불법이 윤회계가 다할 때까지
잘못된 견해의 바람에 흔들리는 일 없게 하시고,
부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이들의
불법 향한 믿음 항상 가득하게 하소서!
55. May the teaching of this Beneficent One till world’s end Be unshaken by the winds of evil thoughts; May it always be filled with those who find conviction
In the teacher by understanding the teaching’s true nature.
부처님께서 분명하게 설하신
연기의 진여, 세세생생
몸과 목숨을 바쳐 지키겠으니
한 순간도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56. May I never falter even for an instant
To uphold the excellent way of the Sage,
Which illuminates the principle of dependent origination, Through all my births even giving away my body and life.
최고의 인도자께서 한량없이 애쓰며
중대하게 확립하신 이 법을
융성 시킬 방편 얻기 위해
밤낮을 고찰로써 지새우게 하소서!
57. May I spend day and night carefully reflecting, “By what means can I enhance
This teaching achieved by the supreme savior Through strenuous efforts over countless eons?”
청정한 열의로써 이와 같이 애쓸 때
제석천과 범천 등의 세간호주와
마하깔라 등의 호법신중들 역시
외면하지 않고 항상 도와주소서!.
58. As I strive in this with pure intention,
May Brahma, Indra and the world’s guardians And protectors such as Mahakala
Unswervingly, always assist me.
♧♧♧♧♧♧♧♧♧♧♧♧♧♧♧♧♧♧♧
이 찬탄송은 "잘 표현된 통찰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온 세상의 [심지어] 낯선 사람들에게도 위대한 친구인 (붓다), 심오한 의존적 기원(緣起)을 가르치는, 탁월한 스승을 찬양한다, 박식한 승려 롭상 드락파이 팔(Lobsang Drakpai Pal)이 지었다.
This hymn entitled “Essence of Well-Uttered Insights,” praising the unexcelled Teacher – the great friend to the entire world [even] to the unfamiliar – for teaching the profound dependent origination, was composed by the well-read monk Lobsang Drakpai Pal.
이것은 [Ganden] 남파르 갸르웨이 링(Nampar Gyalwai Ling)으로도 알려진 오데 궁얄(Odé Gungyal)의 우뚝 솟은 산에 있는 라딩(Lhading)의 천상의 휴양지에서 작성되었다.
It was written at the heavenly retreat of Lhading on the towerng mountain of Odé Gungyal, otherwise known as [Ganden] Nampar Gyalwai Ling.
그 서기書記는 남카 팔(Namkha Pal)이었다.
게셰 툽텐 진파(Geshe Thupten Jinpa)가 티베트어를 번역했다.
The scriber was Namkha Pal.
Translated from the Tibetan by Geshe Thupten Jinpa.
© Geshe Thupten Jinpa
정토보서 7
정토보서 7
• 악인이 왕생한 이야기
• 축생이 왕생한 이야기
• 왕생정토다라니
• 악인이 왕생한 이야기
惡人徃生類
1. 당唐 유공惟恭은 법성사法性寺에 살면서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아랫사람을 깔보며 비행을 일삼는 사람들과 친하였고, 술 좋아하는 무리와 성문 근처에서 모여 어울렸다. 다만 여가에는 염불을 하였다.
唐惟恭。住法性寺。慢上凌下。親狎非
類。酒徒愽侶。交集于門。暇則念佛。
그 절 영규靈巋 스님이 악한 짓을 같이 하며 어울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영규가 악을 짓고 유공이 따라 하니 천 길 지옥에 함께 빠져도 부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寺僧靈巋者。同惡相濟。里人爲之語曰。
靈巋造惡。惟恭繼跡。地獄千重。莫厭
雙入。
유공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나는 비록 악업을 쌓아 죄를 피할 수 없어도 정토의 교주 아미타불께서 허물을 가엾게 여겨 도탄지옥에서 빼 주시리니 어찌 악도에 떨어질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恭聞曰。我雖積業。罪無所逃。然
賴淨土敎主。憫我愆尤。拔我塗炭。豈
墮惡道耶。
건녕乾寧 2년(895년)에 유공의 병이 깊어졌다. 영규가 밖에서 돌아올 때 화려한 옷을 입은 나이어린 영인伶人388) 몇 명을 보았다. 그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유공 스님을 맞이하러 서쪽에서 왔다고 하였다.
乾寧二年。病革。巋自外還
見伶人數軰。少年麗服。問所從來。荅
曰西來。迎恭上人耳。
한 사람이 품 안에서
금으로 된 병을 꺼내는데 주먹처럼 오므려져 있던 병 속의 연꽃이 갑자기 쟁반처럼 커지며 광채가 섞여 비추었다. 영인들은 절 쪽으로 빠르게 향해 가더니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영규가 절에 이르자 종소리가 들려왔는데 유공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389)
一人懷中。出金
瓶。瓶中蓮華。其合如拳。俄增大如盤
光彩交映。望寺疾馳而不見。巋至寺
聞鍾聲。恭已逝矣。
2. 당唐 장선화張善和는 소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였다. 임종할 때 소 떼가 인간의 말로 내 목숨 자리를 내어놓으라고 하였다. 선화가 크게 놀라 아내에게 이르기를 “어서 빨리 스님을 청해 나를 위해 참회해 주시오.”라고 하였다.
唐張善和。殺牛爲業。臨終見羣牛。作
人語索命。善和大恐。告妻云。急請僧
爲我懴悔。
스님이 이르러 깨우쳐 주기를 “『십육관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임종할 때 지옥이 보이면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라. 그리하면 정토에 왕생할 것이다’라 하였소.”라고 하였다.
僧至而諭之曰。十六觀經中
云。若人臨終。地獄相現。至心十稱南
無阿彌陀佛。即得徃生淨土。
선화가 곧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향로를 취할 시간이 없어 왼손으로 불을 높이 들고 오른손으로 향을 쥐고 서쪽을 마주하고 오로지 미타를 간절하게 염송하였다. 염불을 열 번도 하기 전에 “아미타불께서 서방에서 오셔서 나에게 보좌를 주신다.”라고 하면서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390)
善和云便入地獄也。不暇取香爐。即以左手擎
火。右手拈香。面西專切念彌陀。未滿
十聲。乃云我見阿彌陀佛。從西方來
與我寶座。言訖而逝。
3. 송宋 중명仲明은 산음山陰 보은사報恩寺에 살았는데 평소 계를 지키지 않았다. 병이 들어 동학인 도녕道寧에게 “지금 내 마음(心識)이 산란하니 무슨 약으로 고칠 수 있을까?”라고 묻자 도녕은 수식염불隨息念佛391)을 가르쳐 주었다.
宋仲明。居山陰報恩寺。素行踰檢。因
感疾。謂同學道寧曰。我今心識散亂
何藥可治。寧敎以隨息念佛。
중명은 알려준 대로 7일 동안 하여 힘이 떨어져 피곤하였으나, 도녕은 다시 눈앞에 불상이 있는 광경을 관상하도록 하였다. 이를 오랫동안 하자 갑자기 두 보살과 부처님을 뵙고서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떠났다.392)
明如所敎至七日。力已困憊。寧又令想目前佛像久之。忽見二菩薩。次復見佛。瞑目而逝。
4. 송宋 오경吳瓊은 임안臨安 사람으로 승려가 된 후 환속한 인물이다. 두 부인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짐승을 잡고 술을 파는 일을 가리지 않았다.
宋吳瓊。臨安人。先爲僧。退道返俗。前
後兩娶。生二子。屠沽之事。
매번 주방에서 닭이나 오리 등을 잡을 때면 곧 손으로 잡은 채 부르기를 “아미타 부처님, 이 몸 벗고 떠나기 원합니다.”라 하며 부처님 명호를 계속 불렀다. 이어 칼을 빼어 고기를 자를 때마다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靡所不爲
常庖厨殺雞鴨等。則持而唱云。阿彌陀
佛。子好脫此身去。連稱佛號。乃施刃
每切肉。念佛不輟。
그 후 눈에 계란 같은 혹이 났는데, 이를 매우 두려워하여 초암草庵을 얽어 만들고 아내와 자식과 헤어진 후, 염불하고 예참하기를 늘 부족한 듯이 열심히 하였다. 소흥 23년(1153년)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내일 술시(戌時, 저녁 7~9시)에 떠날 것이다.”라 하자 남들이 다 웃었다. 다음 날 늦게 베옷을 술로 바꿔 다 마신 뒤에 게송을 썼다.
後目上生瘤如雞
1)卯。遂大悕。搆草庵。散妻子。念佛禮
懴如不及。紹興二十三年。告人云。瓊
來日戌時去也。人皆笑之。次晩以布衫
換酒飮畢。書頌云。
似酒皆空 술처럼 모든 것은 공空하니
問甚禪宗 선종禪宗이란 무엇인가 묻노라.
今日珎重 오늘 유의해 보라
明月淸風 맑은 달과 시원한 바람이니라.
似酒皆空。問甚禪
宗。今日珎重。明月淸風。
그 후 단정히 앉아 염불하고 “부처님이 오신다.”라고 하며 입적하였다.393)
이러한 작용을 갖추었다면 마군의 경지에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의 경지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니, 이는 큰 근기를 지닌 사람이다.
端坐念佛。呌
云佛來也。即化去具此作用。可以入魔。可以入佛。是大根器人。
5. 송宋 금석金奭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고기잡이였다. 문득 크게 반성하고 지계持戒하여 정진하였다. 일과로 부처님 명호를 만 번 불렀고 이를 오랫동안 변함없이 하였다. 후에 아픈 곳이 없었는데 가족에게 말하기를 “아미타부처님과 두 보살이 함께 나를 영접하러 오셔서, 나는 정토로 돌아간다.”라고 하며 향을 사르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94)
宋金奭。會稽人。網魚爲業。忽猛省持
戒精進。日課佛號萬聲。久而弗替。後
無疾。語家人云。阿彌陀佛。與二菩薩
俱來迎我。我歸淨土。焚香端坐而化。
6. 송宋 상우上虞 사람 풍민馮珉은 어릴 적 사냥을 좋아하여 큰 뱀을 보면 창으로 쫓아가서 찔렀다. 언젠가 뱀이 바위 밑에 있다가 송아지를 물려고 할 때 풍민이 바위를 밀어 깔려죽게 하였다. 뱀의 혼령이 자주 재앙을 끼치자 풍민은 예참을 닦아 염불하였고, 해가 지나도록 뱀이 해치지 못하였다. 하루는 스님을 청하여 『미타경』을 독송하도록 한 뒤에 합장하고 입적하였다.395)
宋上虞民馮珉。少事游獵。見巨蛇。持
矟徃刺之。時蛇在巖下。欲噬黃犢。珉
推巖壓之至死。蛇屢爲祟。珉修懴念佛
經年蛇不能害。一日請僧。誦彌陀經
合掌而化。
• 축생이 왕생한 이야기
畜生徃生類
"축생이 왕생한 이야기
1.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의 이야기다. 어떤 용이 금시조金翅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용으로 태어났으나 한 번도 살생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물에 살면서(觸嬈水性)396) 수명을 마친 후 마땅히 아미타 부처님 나라에 나리라.” 하였다.397
菩薩處胎經云。有一龍子。謂金趐鳥曰
我自受龍身。未曾殺生。觸嬈水性。壽
終之後。當生彌陀佛國。
2. 당唐 정원貞元 연간(785~805년)에 하동河東의 배裴 씨는 앵무새를 길렀는데, 그 새는 항상 염불하며 정오가 넘으면 먹지 않았다. 임종할 때 십념十念을 하고 숨이 끊어졌다. 화장하여 사리 십여 개를 얻었는데 찬란하게 눈을 비추었다. 혜관慧觀 스님이 옹기로 탑을 세워 신이함을 밝혔고 성도成都의 윤위고尹韋臯가 기記를 지었는데 “무념無念에서 공상空相을 깨달았고 죽은 자리에서 진골眞骨을 남겼네.”라는 구가 있다.398)
唐貞元中。河東裴氏。畜鸚鵡。常念佛
過午不食。臨終十念氣絕。火化之。得
舍利十餘粒。烱然耀目。僧慧觀。用陶
甓建塔。以㫌其異。成都尹韋皐。爲之
記。有了空相於無念。留眞骨於已斃之
「卯」一疑「卵」{編}。句云。
3. 송宋 황암黃巖 정등사正等寺의 관觀공은 구관조(鴝鵒)399)를 길렀는데 그 새는 말도 할 줄 알아 항상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선 채로 죽어 구덩이를 파고 묻었는데 갑자기 혀끝에서 자주빛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영지靈芝 율사가 이를 위하여 찬을 지었는데, “새가 죽어 새장 닫는 것이야 평범한 일이지만, 자색 연꽃 피어남은 크게 기이한 일이네.”라는 구가 있다.400)
宋黃巖正等寺觀公。畜鴝鵒。能言常念
佛不輟。一日立化。穴土葬之。俄舌端
出紫蓮華一朶。靈芝律師。爲之讃。有
立亡籠閉渾閑事。化紫蓮花也大奇句。
4. 옛적 담주潭州의 한 스님이 구관조를 길렀는데, 시골에서는 ‘빠거(八哥兒)’라고 불렀다. 이 새는 항상 염불하였으므로 죽었을 때 관에 넣어 장사를 지내 주었는데, 홀연 연꽃 한 송이가 입에서 나왔다. 이에 기리는 노래(頌)를 지었다.
昔潭州僧。有養鴝鵒者。土號八哥兒
常念佛。旣斃。以棺葬之。忽生蓮華一
朶。自其口出。有頌云。
有一靈禽號八哥 팔가八哥라 불리는 영험한 새 한 마리
解隨僧口念彌陀 스님 말 알아듣고 미타를 염불했지
死埋平地蓮華發 죽어 땅에 묻을 때 연꽃이 피어나니
人不回心爭奈何 사람들 회심하지 않고 어찌 하리오.
有一靈禽號八
哥。解隨僧口念彌陀。死埋平地蓮華發
人不回心爭奈何。
삼가 아미타 세존의 말씀을 살펴보면 서원하신 중에 “내 이름을 부르는 중생이 있으면 반드시 나의 국토에 태어나게 하리라.”고 하였다. 무릇 중생이라는 것은 위로는 천인天人401)으로부터 아래로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보면 곧 이 구관조는 반드시 서방에 나서 가릉빈가 등과 함께 법음을 함께 부를 것이니, 어찌 사람이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 일은 『담주지潭州誌』에 실려 있고, 아직까지도 그 성문의 이름을 ‘빠빠(八八)’라 부른다고 한다.402)
謹按彌陀世尊。有誓
願云。衆生念我名者。必生我國。凡言
衆生者。上自天人。下至昆蟲。皆是。以
此觀之。則此鴝鵒。必生西方。與頻伽
等。唱和法音。可以人而不如鳥乎。事
載潭州志。至今以八八。名其城門云。
5. 명明 숭정崇禎 연간(1628~1644년)에 오설애吳雪崖 공은 복주福州의 사리司理403)였다. 평생 여래를 정성껏 받들어 개원사開元寺에 갈 때마다 예불하고 경을 읽었다.
明崇禎間。吳雪崖公。爲福州司理。生
平虔奉如來。每徃開元寺。禮佛諷經。
평소에 성省의 승려들 중에 파 마늘을 먹는 자가 많고 심지어 본사에서는 가축을 도축하는 자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오공은 독무督撫404)를 청하여 입석을 엄정하게 표시하여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였으나 완고한 풍습을 다 바꿀 수는 없었다.
素聞省僧。多茹葷而本寺尤有蓄牲宰
殺者。公爲請督撫。嚴示立石。以禁止
之。頑風未能盡革。
하루는 공이 선당에서 염불할 때 닭 한 마리가 염불 소리를 듣고 따라하였다. 공은 “너희들이 절에 오랫동안 가축을 기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닭소리가 나느냐?”라고 꾸짖고 닭을 찾아내었다.
一日公在禪堂念佛。
一雞聞之。亦念佛。公詰曰。汝軰云。寺
中久不蓄牲矣。如何有雞。索得之。
공이 염불하면 닭도 따라 염불하니 이에 승려들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이제 보니 짐승들도 오히려 불성이 있거늘, 너희 승려라 하는 것들이 파계를 하고 있으니 정말로 짐승보다 못하도다. 지옥에 떨어질 것을 어찌 의심하겠느냐?”라고 하였다.
公念佛。雞仍念佛。乃痛責僧曰。今觀畜
生。尙有佛性。汝軰薙髮破戒。不若畜
生多矣。墮落何疑。
승려들이 모두 울며 참회하고 사죄하며 말하기를 “저희들은 이제부터 큰 서원을 세워 성실하게 재계齋戒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성省의 모든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서 지극히 조심하였고 승려들도 이 때문에 크게 변하였다.
僧皆涕泣懴謝曰 某等從此發大誓願。誠實齋戒矣。通省聞風至儆。沙門爲之一變。
공은 이 닭을 관청에서 길렀는데 여전히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후에 관직이 바뀌어 닭을 가지고 단양丹陽에 이르러서 해회암海會庵에 보내었는데 이는 멀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닭이 해회암에 다다른 날 바로 염불하고 선 채로 죽으니 공이 나무 탑을 세워 기록하였다. 당의지唐宜之의 『건어승巾馭乘』에 나온다.405)
公養此雞于
署中。恒念佛不輟。後轉官。携至丹陽
送入海會庵。爲其使遠近生信也。雞至
庵日。卽念佛立化。公爲樹塔誌焉。出
唐宜之巾馭乘。
6. 명明 강서江西 추자윤鄒子尹의 할아버지는 광동廣東의 병헌兵憲이 되었는데 참장參將 중에 삼세의 인연을 아는 이가 있었다. 그는 1세는 뱀이고, 2세는 서생書生이며, 3세는 곧 지금의 관직이라 하였다.
明江西雛子尹祖。爲廣東兵憲。有叅將
自知三世因。一世爲蛇。二世爲書生。
三世即今職。
참장이 병사를 이끌고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러 갈 때 어느 산을 지나면서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전생에 이 산의 뱀이었다. 이제 이 산을 지나면서 옛 무리를 보고자 하니 너희들은 절대 놀라지 말라.” 하였다. 동굴에 들어가 보니 뱀들이 무수히 많았다.
因提兵征洞蠻。過一山
諭軍士曰。我夙世曾於此山爲蛇。今欲
進山視舊屬。汝軰勿驚怖也。入見洞中
蛇無數。
참장은 뱀이 알아듣는 말로 “나는 옛날 너희들과 같이 여기에서 살았는데 다만 염불 한 마디를 할 줄 알아서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은 대장이 되었다. 너희들은 어찌 염불하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뱀들은 머리를 숙여 가르침을 받는 모양을 지었다.
叅將作蛇語。謂之曰。我昔與
爾。並生于此。只因我能念佛一聲。即
得生人中。今爲大將。爾等何不念佛
求脫此苦耶。蛇俯首作受敎狀。
싸움에 이겨 돌아오는 날 다시 동굴에 들어가 보니 수많은 뱀이 다 죽어 있었으니, 염불에 응하여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추공이 듣고서 신기하게 생각하여 일의 내막을 적어 전하였다.406)
凱旋日復入洞察之。則萬蛇皆死。應以念佛
化去矣。雛公聞而異之。述其事以傳。
7. 청清 항군杭郡 보자사普慈寺의 천일天一 스님은 개 한 마리를 길렀다. 매번 연사蓮社에서 대중들이 모여 경을 독송하고 염불하면 개는 곧 웅크리고 엎드려 조용히 듣기를 몇 년간 하였다.
太淸杭郡普慈寺僧天一。畜一犬。每遇
蓮社。衆信齊集。誦經念佛。犬即蹲伏
而靜聽者。有年矣。
강희 5년(1666년) 6월 6일 세속의 예에 따라 고양이와 개를 함께 목욕시키고 관습대로 이 개를 못에서 목욕시켰는데 다음 날 새벽에 변소에서 죽었다. 스님들이 불쌍히 여겨 삼귀의를 설하고 주문을 외며 화장하려 하였는데, 개가 갑자기 일어서서 법음을 다 듣고는 다시 앞발을 모으고
합장하는 것처럼 엎드리니 대중들이 놀라 찬탄하였다.
康熙五年六月六日。
俗例猫犬同浴。徇例浴此犬于池。次早
死于圊側。僧衆憐之。爲說三歸依。誦
呪欲焚。犬忽起立。聽法音竟。復合前
爪。而伏如合掌然。一衆驚嘆。
개가 이러한 신이함을 보인 것으로 보아, 평소 웅크리고 엎드릴 때는 반드시 정성을 다해 믿고, 비록 말은 하지 못하나 마음으로는 스스로 묵묵히 염念하였을 것이다. 안양국에 왕생하여 상선인上善人이 되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개도 오히려 이렇게 감응을 나타내는 신기한 자취가 있는데, 사람으로서 정토를 닦지 않는 자는 다시 또 어찌할 것인가?
천일이 이를 기려 노래하였다.
犬旣現此神異。則知平日蹲伏時。必竭誠信向
口雖不能言。而心自默念。其徃生安養
作上善人。無疑矣。犬尙有此現應奇跡
人而不修淨土者。更當何如耶。天一爲
之頌曰。
荒荒古苑半蘼蕪 거칠어진 옛 동산엔 궁궁이(蘼蕪)407)만 무성한데
幸有靈尨義未辜 다행히 신령스런 개가 있어 의리 저버리지 않았구나.
踏徧苔蘚迎善客 이끼 두루 밟으면서 선업 쌓는 손님들 맞이하고
吠殘蘿月警頑夫 달을 보고 짖어대어 어리석은 이 놀라게 하네.
遺駭自把眞心顯 껍데기 남기던 날 참된 마음 드러내니
公案誰參佛性無 개는 불성 없다는 말 그 누구의 공안인가?
多載盡誠緣忽謝 오래토록 정성 다하다가 인연 따라 홀연히 몸을 바꾸니
茶毗莫異海山狐 다비는 해산의 여우408)와 다름없이 하리라.
荒荒古苑半蘼蕪。幸有靈尨義
未辜。踏徧苔蘚迎善客。吠殘蘿月警頑
夫。遺骸日把眞心顯。公案誰叅佛性無
多載盡誠緣忽謝。茶毘莫異海山狐。
특별히 기록하건대, 이 개의 행적은 앵무새, 구관조와 함께 모두 영원토록 전할 것(垂不朽)이다. 그러나 두 새는 오히려 염불 소리가 입에서 나왔지만 개는 오직 묵지黙持하였으니 이는 실로 예로부터 매우 드문 이적이로다.409)
特錄之。以與鸚鵡雊鵒。並垂不杇。然二
禽。猶能出口。犬則惟是默持。實亘古
希有之異云。
남은 이야기
요주饒州 군전軍典 정린鄭隣이 잘못 쫓겨 가서 저승에 이르렀다가 다시 풀려 돌아올 때 염라대왕이 말하였다.
拾遺
饒州軍典鄭隣。誤追至陰府。放還。閻
王告云。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서 힘써 착한 일을 하라. 만약 남들이 살생하는 것을 보거든 다만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 그리하면 죽은 것들도 왕생할 것이고 너는 복을 얻으리라.”
汝還人間。勉力爲善。汝見人
殺生。但念阿彌陀佛。與觀世音菩薩。
이를 미루어 보면,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진실로 죽은 이도 천도할 수 있고 복과 수명을 늘일 수 있으니, 후생에 서방에 왕생하는 효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다.410)
彼得受生。汝亦得福。由此推之。足以
見念阿彌陀佛。誠可薦拔亡者。增延福
壽。不獨後生西方也。
• 왕생정토다라니
나모아미다바야 南無阿彌多婆夜 (一)
다타가다야 哆他伽哆夜 (二)
다지야타 哆地夜他 (三)
아미리도바비 阿彌利都婆毗 (四)
아미리다 阿彌利哆 (五)
싯담바비 悉耽婆毗 (六)
아미리다 阿彌利哆 (七)
비가란제 毗伽蘭帝 (八)
아미리다 阿彌利哆 (九)
비가란다 毗伽蘭哆 (十)
가미니 伽彌膩 (十一)
가가나 伽伽那 (十二)
기다가례 枳哆伽利 (十三)
사바하 莎婆訶 (十四)
徃生淨土多羅尼
南無阿彌多婆夜一 哆他伽哆夜二 哆
地夜他三 阿彌利都婆毗四 阿彌利哆
五 悉耽婆毗六 阿彌利哆七 毗伽蘭帝
八 阿彌利哆九 毗伽蘭哆十 伽彌膩十一
伽伽那十二 枳哆价利十三 莎婆訶十四。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에 말하였다.
“이 주문을 외우는 자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정수리에 항상 머무셔서 원한 맺힌 집의 해를 당하지 않고 현세에 안온하고 목숨이 다할 때 뜻대로 왕생케 하신다. 만약 20만 번을 채우면 보리의 싹이 움틀 것이요, 30만 번을 채우면 머지않아 아미타 부처님을 직접 뵐 것이다.”411)
연지蓮池 대사는 “이 주문은 여러 책에 구두句讀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번에 고본古本을 참고하여 바로잡았다.”라고 하였다.412)
龍舒淨土文曰。誦此呪者。阿彌陀佛
常住其頂。不令寃家爲害。現世安穩
命終任意徃生。若滿二十萬遍。即菩
提芽生。三十萬遍。不久面見阿彌陀
佛。蓮大師云。此呪諸本。句讀稍異
今依古本以正。
淨土寶書終。
강희康熙 25 병인년(1686) 초하初夏
전라도全羅道 낙안樂安 금화산金華山 징광사澄光寺 개간開刊
각수刻手 - 도준道俊 만원萬源 여감麗瑊 문찬文粲
화사化士 - 인희印熙
康熈二十五年丙寅。初夏。全羅道樂安。金
華山澄光寺開刊。
刻手。道俊。萬源。麗瑊。文粲。
化士。印熈。
정토보서 6
정토보서 6
• 비구니가 왕생한 이야기1~6
• 부녀자가 왕생한 이야기1~37
비구니가 왕생한 이야기
尼衆徃生類
1. 수隋 비구니 대명大明은 뜻이 높고 청정한 수행을 한 분이다. 정토에 나기를 기원하여 언제나 법당에 들어가 예념하였다. 예념할 때는 먼저 정갈한 옷을 입고 입에는 침향沈香318)을 머금었는데 문제후文帝后가 그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隋尼大明。志尙淸脩。誓生淨土。每入
室禮念。先着淨衣。口含沉香。文帝后
甚重之。
임종하는 날 대중들은 홀연히 방에 가득한 침향의 향을 맡았고, 갑자기 구름 같은 밝은 빛이 뭉게뭉게(隱隱)319) 서쪽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320)
將終之日。衆忽聞沉香滿室。
俄而光明如雲。隱隱向西沒焉。
2. 당唐 비구니 오성悟性은 여산廬山에 주석하였는데, 조照 대사(闍黎)321)가 발원 염불할 것을 권하여 주야로 정진하였고 마음을 집중하여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唐尼悟性。居廬山。遇照闍黎。敎以發
願念佛。六時精進。一心不亂。
대력大曆 6년(771년) 갑자기 전염병에 걸렸는데, 음악 소리가 서쪽 공중에서 들려오는 것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혼이 극락에서 노니는데 이미 중품상생中品上生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는데 얼굴은 황금빛을 띠었다. 당시 나이 24세였다.322)
大曆六年。忽染疾。聞空中音樂西來。謂左右
曰。我神遊極樂。已得中品上生。言已
而逝。面現黃金色。時年二十四。
3. 송宋 비구니 능봉能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정토업을 전일하게 닦았다. 일찍이 꿈에 부처님 광명이 몸을 비추고 공중에서 좋은 말로 타일러 위로하는(開慰)323) 말을 듣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제가 왕생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宋尼能奉。錢塘人。專脩淨業。嘗夢佛
光照身。及聞空中善言開慰。告其徒曰
吾徃生時至。
조금 후 능봉이 매우 크게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능봉은 합장하고 서쪽을 향해 앉아 입적한 뒤였다. 신이한 향내가 방에 가득했고 음악 소리는 서쪽으로 사라졌다.324)
少頃聞奉念佛聲甚厲。奔
徃視之。則合掌面西坐逝矣。異香滿室。
樂音西邁。
4. 송宋 비구니 법장法藏은 금릉金陵에 주석하였다.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염불하였는데, 매년 1월·4월·7월·10월 초하루가 되면 동지들을 모아 경을 읊고 다라니를 외웠다(持呪). 신심 깊은 대가大家들이 오순도순(翕然)325) 교화를 잘 따랐다. 입적하던 날 밤에 불보살의 금빛 형상이 방안에 나타나고 광명이 절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326)
宋尼法藏。居金陵。戒德甚嚴。勤苦念
佛。每歲四孟月朔。集同志諷經持呪
大家善信。翕然從化。示寂。夜見佛菩
薩金像。現其室中。光明炤寺。端坐脫
去。
5. 명明 비구니 무위無為는 소산蕭山 내씨來氏의 딸로 어릴 적 시집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염불을 하였다. 20세에 머리를 깎고 초막을 짓고 정토업을 전일하게 닦았다. 30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학업을 탐구하였는데 지나는 곳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자가 있으면 병자의 상태에 따라 진단을 해서 탕약을 끓여 먹여 낫게 하였다.
明尼無爲。蕭山來氏女。幼誓不嫁。蔬食
念佛。年二十薙髮。結茆專脩淨業。三
十遊方叅學。凡所曆處。有病苦者。隨
物取與。煎湯服之即愈。
가정嘉靖 연간(1522~1566년)에 궁중에 돌림병이 있었다. 궁에서도 소문을 듣고 무위를 불러 치료하니 효험이 있었다. 이에 무위심無為心 선사라는 호를 내려주고 옛 집으로 돌려보냈다. 임종할 때 한 신승神僧이 초막에 투숙하려 했다. 무위는 두세 차례 거절하였으나 신승은 타이르며 들어와서 제 마음대로 선상禪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보니 보이지 않아 비로소 신승임을 알았다. 문득 일어나 앉아 게偈를 읊었다.
嘉靖間。宮中時疫。風聞于朝。召赴有驗。賜無爲心
禪師之號。送歸故廬。將終日。有神僧
投宿。無爲却之再三。神僧勸誠而進。
權宿禪牀。睡醒不見。知是神僧。便起
坐。偈云。
六十四年活計 육십사 년 동안의 살림
今朝撤手歸西 오늘 아침 손 놓고 서쪽으로 돌아가네.
得箇菩提三昧 보리 삼매 얻고 보니
依然明月淸風 여전히 밝은 달이요 시원한 바람이네.
게를 읊고는 입적하였다. 다비할 때 사리 한 과가 나왔으며, 탑은 관산冠山에 세웠다.327)
六十四年活計。今朝撤手歸
西。得箇菩提三昧。依然明月淸風。即
逝茶毘。一團舍利。塔于冠山。
6. 청清 비구니 월랑月朗은 송강松江의 세족世族인 오씨吳氏의 딸이다. 부모가 배필을 정하려 하였으나 완강히 반대하여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17세에 화연化緣328) 재승齋僧329)인 항주의 비구니 천강千江을 만나 간절히 출가하고자 하였다.
太淸尼月朗。松江世族吳氏女。父母
欲爲擇配。力阻弗擇。年十七。遇杭州
尼千江。化緣齋僧。懇求出家。
이듬해 봄 할머니와 온 가족을 따라 천축사에서 향을 올리고 그 틈에 천강암千江庵에 가서 발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뜻이 없음을 보였다.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권했으나 굳게 다짐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은 함께 돌아가기 어려움을 알았다.330) 빠진 글이 있다.
次年春。隨祖母諸眷屬。天笁進香。乘便至千江
庵住足。示無歸意。咸徃勸之歸。決志
不允。衆知不可 有闕文。
■ 부녀자가 왕생한 이야기
婦女徃生類
1. 수隋 문제文帝의 황후 독고獨孤씨는 비록 왕궁에 있었으나 여자인 것을 매우 싫어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8월 갑자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는 갖가지 음악이 저절로 울려나오고 신이한 향기가 공중으로부터 와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문제가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라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이름을 아미타라 합니다. 황후께서 쌓은 업이 높아서 저 극락국에 올라가므로 이 상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331)
隨文帝后。獨孤氏雖處王宮。深厭女質。
常念阿彌陀佛。以八月甲子命終。時永
安宮北。種種音樂。自然震响。異香滿
室。從空而至。帝問闍提斯那。是何祥
瑞。對曰淨土有佛。號阿彌陀。皇后業
高。超登彼國。故現斯瑞耳。
2. 당唐 요姚 할머니는 범행范行 노파의 권유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다. 후에 임종할 때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뵈었다. 부처님께 고하기를 “아직 범행 노파와 작별하지 못했으니 잠시 공중에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범행 할머니가 이르자 요 할머니는 선 채로 입적하였다.332)
唐姚婆。因范行婆。勸令念佛。後臨終
見佛菩薩來迎。告佛言。未與范行婆別
請佛暫住空中。范至。姚婆立化。
3. 송宋 의인宜人333) 육陸씨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조청朝請334)인 왕여王璵의 아내이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정토에 돈독한 뜻을 두어 예참을 한 번 할 때마다 만 번씩 소리 내어 염불하기를 30년이나 하였다. 작은 병환이 있었는데 문득 하늘 북이 저절로 울리는 것을 들었다. 남들이 바야흐로 놀라 이상하게 여겼다. 곧 서쪽을 마주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35)
宋宜人陸氏。錢塘人。朝請王璵妻也。
嘗誦法華。篤意淨土。禮懺一會。念佛
萬聲。凡三十年。因微疾。忽聞天鼓自
鳴。人方驚異。即面西端坐而逝。
4. 송宋 호장胡長 할머니인 이李씨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뒤 밤낮으로 고성염불高聲念佛하고 『미타경』을 10여 년 동안 독송하였다. 하루는 붉은 비단 일산을 쓴 한 스님을 보았는데 “그대는 15일 자시子時에 왕생할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스님에게 누구인지 묻자 “그대가 염念하던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드디어 친척들과 작별하였다.
宋胡長婆李氏。上虞人。夫喪後。日夜
高聲念佛。及誦彌陀經。凡十餘年。一
日見有僧。覆以緋盖曰。汝十五日子時
徃生。問師何人。曰是汝所念者。婆遂
別諸親。
기약한 날이 되자 이채로운 향기와 광명이 있었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7일 후에 다비를 하였는데 이는 백옥 같고, 혀는 붉은 연꽃 같고, 눈동자는 포도 같았는데 모두 살아 있을 때처럼 견정堅精하여 문드러지지 않았으며 사리는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다비한 곳에서 흰 양귀비 같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336)
至期有異香光明。端坐而逝
七日焚化。齒如白玉。舌如紅蓮。睛如
葡萄。皆堅精不壞。舍利不可數計。次
日焚處。生一華。如白1)粟云。
5. 송宋 전당錢塘의 공龔씨는 밤낮으로 염불하고 『미타경』을 독송하였다. 후에 병환이 있어 형亨 율사를 모셔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다. 설법이 끝나기 전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늙은 첩인 우于씨 또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꿈에 공씨가 “나는 이미 정토에 왕생했소. 당신도 왕생할 것이오.”라고 하였다.337)
宋錢塘龔氏。晝夜念佛。誦彌陀經。後
有疾。請亨律師指示。陳說未終。端坐
而化。老妾于氏。亦念佛不輟。夢龔氏
告云。我已生淨土。汝亦當生。
6. 송宋 정鄭씨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관음경』을 일과로 읽었고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후에 병환 중에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에게 말하기를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께서 장차 오시려 한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합장하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불보살께서 오신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金臺를 쥐고 여래께선 나를 접인하여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라 하며 조용히 입적하였다.338)
宋鄭氏。錢塘人。日課觀音經。念佛不
輟。後病中。索浴西向坐。問家人云。聞
磬聲乎。淨土諸聖且至。已而合掌喜曰
佛菩薩來。觀音手執金臺。如來接我登
座。遂奄然而化。
7. 송宋 황黃씨는 사명四明 사람으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부친의 집에 돌아와 정토업을 정성으로 닦았다. 임종할 때에 부처님께서 와서 맞이하신 것을 뵙고 인印을 맺고 천천히 걸어가다 갑자기 선 채로 입적하였다. 가족들이 땅에다 재를 체로 쳐서 왕생처를 표시하였는데 한 송이 연꽃이 재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339)
宋黃氏。四明人。早喪夫。因歸父舍。精
修淨業。臨終見佛來迎。結印徐行。儼
然立化。家人篩灰于地。以驗生處。見
蓮華一朶生灰中。
8. 송宋 삽천霅川 주朱씨는 염불을 30년이나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끊고 40일 동안 물만 먹으며 염불하였다. 꿈에 세 스님이 각각 연꽃을 쥐고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대를 위해 이 꽃을 심으니, 이제 마땅히 왕생하리라.” 하였다. 잠에서 깬 후에 스님을 청해 조념助念 염불을 하도록 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40)
宋霅川朱氏。念佛三十年。忽絕食四十
日。唯飮水念佛。夢三僧。各執蓮華謂
曰。吾先爲汝種此華。今當徃生。旣寤
請僧助念。端坐而逝。
9. 송宋 항項씨의 법명은 묘지妙智로 은현鄞縣 사람이다. 과부살이를 하였으며 두 딸을 모두 스님으로 출가시키고 염불에 정성과 수고를 다하였다. 하루는 문득 말하기를 “나는 앉은 채 입적하고 싶은데 관을 만드는 것은 어긋난 일이다.”라 하였다. 딸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도 금으로 만든 관을 쓰셨으니 꺼릴 것이 없습니다.”라 하자 기뻐하였다. 갑자기 이채로운 향이 방안에 가득하였고, 서쪽을 향하여 입적하였다.341)
宋項氏。法名妙智。鄞縣人。寡居。悉令
二女爲尼。精勤念佛。一日忽曰。我欲
坐脫。錯與作棺。女曰佛用金棺。無嫌
也。母喜。俄而異香滿室。向西而逝。
10. 송宋 분양汾陽 배裴씨의 딸은 염불에 전일하게 뜻을 두었다. 업보가 다한 날을 알리고 향불을 사르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시니 마땅히 왕생하리라.” 하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편안히 앉아 입적하였다.342)
宋汾陽裴氏女。專志念佛。報盡日。索火焚香。
言佛來迎我。我當徃生。已而天華飛墜。安坐而逝。
11. 송宋 심沈씨는 자계慈谿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염불을 하였다. 장章씨에게 시집가서 한마음으로 변하지 않았고, 시주미를 베풀고 이불을 주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후에 병이 있어 염불에 더욱 힘을 쏟았다. 홀연히 불보살들이 모두 눈앞에 나타나고 등불 천 개가 빛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지개 다리 같았다. 바로 그날 상서로움을 보이고 입적하였다.343)
宋沈氏。慈谿人。自幼蔬食念佛。歸章
氏。一心不變。施米貸被。以濟飢凍。後
有疾。念佛尤力。忽見佛菩薩。普現目
前。燈光千㸃。狀若虹橋。即日吉祥而逝。
12. 송宋 루樓씨는 사부寺簿 주원경周元卿의 아내이다. 항상 『전등록』을 읽어 깨달음의 지견을 높여 갔다. 더욱이 정토업을 진실한 수행이라 여겨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만년에는 병환이 있었는데, 문득 연화대에 응화불이 무수히 많은 것을 보았고, 신이한 향이 방안에 가득하자 가족들에게 어서 염불하라고 말한 뒤에 바로 입적하였다.344)
宋樓氏。適寺簿周元卿。嘗閱傳燈。發
明見地。尤以淨業爲眞修。念佛不輟。
晩年被疾。忽見蓮臺。化佛無數。異香
滿室。語家人亟令念佛。頃刻而化。
13. 송宋 주周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어머니가 연화대에 왕생하는 상서로움에 감동하여 독실하게 염불에 뜻을 두고 안양에 왕생하기를 기약하였다. 병환 중에 스님을 청해 예참을 행하였는데, 스스로 정갈한 옷(淨衣)345)을 입고 누각에서 예를 갖추어 염불하는 모습을 보이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부지런히 정토업을 닦아 서방에서 만납시다.”라고 하며 오른쪽 옆구리를 서쪽으로 향하여 입적하였다.346)
宋周氏妙聰。元卿之女。因感其母。華
臺徃生之瑞。篤志念佛。期生安養。病
中請僧行懺。自見身着淨衣。在樓閣上。
作禮念佛。謂家人曰。勤修淨業。西方
相待。右脇西向而逝。
14. 송宋 진秦씨 정견淨堅은 송강松江으로 시집을 갔는데, 여자 된 몸을 싫어하였고 남편과 다른 거처에서 살면서 재계齋戒347)를 엄정하게 지켰으며 『화엄경』 등 여러 경전을 자세히 읽어 허비하는 날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미타참을 닦아 천 배를 올렸는데 오래되자 광명이 방안에 들어오는 상서로움이 있었다. 서쪽을 향하여 편안히 앉아 생을 마쳤다.348)
宋秦氏淨堅。家松江。厭惡女身。與夫
別處。精持齋戒。閱華嚴諸經。無虛日。
晨昏修彌陀懺。禮佛千拜。久之有光明
入室。面西安坐而終。
15. 송宋 가화嘉禾 땅의 종鍾 노파는 『미타경』을 염송하고 염불하기를 20년 동안 일과로 삼았다. 하루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흰 연꽃이 무수히 많고, 여러 성인들이 이곳에 계시는 게 보인다.”라고 하며 단정히 앉아 몸을 세운 채 입적하였다.349)
宋嘉禾鍾婆。誦彌陀經。念佛二十年。
爲常課。一日語子曰。見白蓮華無數
衆聖在此。端坐聳身而化。
16. 송宋 전당錢塘의 손孫씨는 항상 염불하고 다라니를 지송하였다. 병이 들어 청조清照율사를 초청해 이르기를 “오랜 병으로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왕생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정토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자 매우 기뻐하였다.
宋錢塘孫氏。常念佛持呪。因病請淸照
「」疑「罌」{編}。 "律師。至謂曰久病厭世。願求徃生。師
爲談淨土因緣。大喜。
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사가 준 약 한 사발을 마시자 땀이 흐르고 마음과 몸이 경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3일 후 대중에게 말하기를 “가섭 존자께서 이곳으로 오셔서 금빛 연꽃 좌대로 반기신다.”라고 하며 눈을 감고 입적하였다.350)
夜夢師授藥一盞服之流汗。身心輕快。三日後語人曰
迦葉尊者來此。好金蓮華座。即瞑目而逝。
17. 송宋 양梁씨 딸은 분양汾陽에 살았는데 두 눈이 모두 멀었다. 한 스님을 만났는데 염불을 권하였다. 3년이 지나 두 눈이 밝아졌고 후에 불보살이 일산을 들고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그날로 세상을 떠났다.351)
宋梁氏。居汾陽。兩目俱盲。遇沙門。勸
令念佛。越三年。雙目開明後。見佛菩
薩幡盖來迎。即日命終。
18. 송宋 조산潮山의 황黃 노파는 『금강경』과 『법화경』을 지송하고 전일한 마음으로 염불하였다. 그런데 돌연 이질을 앓게 되어 물만 마시고 밥은 먹지 못하였다. 이웃에 있는 절의 선수善修 스님 꿈에 노파가 나타나 “장차 서방에 왕생하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틀이 지나 노파는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며 입적하였는데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노파의 집 위에 붉은 노을이 덮이는 것을 보았다.352)
宋潮山黃婆。持金剛法華。專心念佛。
忽患痢疾。但飮水不食。隣庵僧善修夢
婆謂曰。將徃西方。越二日。婆西向端
坐。念佛而化。遠近皆見紅霞覆婆屋。
19. 송宋 길안吉安의 왕王씨는 매일 『미타경』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제도받기를 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염습했는데도 유혈이 낭자하여 서원하기를 “제 효심이 부처님을 감응한다면 더러운 기운을 그치게 하소서.”라고 하자 피가 그쳤다. 아버지가 둘째 부인을 들였는데 그와 함께 정토를 닦았다. 임종할 때에 스님을 청해 정토 관법을 설법하도록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吉祥)하였다가 누워서 대자대비 부처님이 쥐고 계신 번幡을 잡고 조용히 입적하였다.353)
宋吉安王氏。日誦彌陀經。念佛求度。
母死旣殮。流血淋瀝。誓云若我孝心感
佛。願穢氣不作。言訖血止。父娶繼室
與之同修淨土。女臨終。請僧說淨土觀
法。更衣吉祥而臥。攬大悲所執幡。寂
然化去。
20. 송宋 동평東平 양梁씨의 유모인 최崔 노파는 치주淄州 사람이다. 평소에 채식을 하였고 너무 어리석어 동년배들과 길고 짧음도 다투지 못하였다. 양씨의 친어머니인 조晁 부인은 선학禪學에 뜻을 두었는데 최 노인은 아침저녁으로 그 곁에서 아미타불만 염송할 뿐이었다. 잠깐이라도 그침이 없었는데, 염주도 없어서 몇 천만 번을 했는지도 몰랐다. 72세가 되어 병을 얻었으나 침상에 눕지 않았으며 더욱 독실하게 염불을 하였다. 홀연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宋東平梁氏。乳媼崔婆。淄州人。平生
茹素。極愚不能與同軰爭長短。主母晁
夫人。留意禪學。崔朝夕在傍。但誦阿
彌陀佛。不少輟。不持素珠。莫知其幾
千萬徧。年七十二得疾。不下床。然持
念愈篤。忽若無事時。倡偈曰。
西方一路好修行 서방 한 길은 수행하기 좋은 길
上無條嶺下無坑 위로는 험한 고개 없고 아래로는 웅덩이 없어
去時不用着鞋襪 그곳에 갈 때는 신과 버선 신을 필요 없고
脚踏連華步步生 발걸음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리.
노래가 입에서 끊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누구의 말이냐고 묻자 노파는 자신이 지었다고 하였다. 또 노파에게 어느 때에 왕생할 것인가 묻자 신시申時에 갈 것이라고 답하였는데 또 과연 그러하였다. 스님의 예법에 따라 화장하였다. 혀는 타지 않았는데 마치 연꽃과 같았다.354)
咏不絕口人問誰語。曰我所作。曰婆何時行。曰
申時去。果然用僧法焚之。舌獨不化
如蓮華然。
21. 원元 정鄭씨 정안淨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염불함에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병을 얻었을 때 공중에서 “그대 떠날 날이 정해져 있으니 게으름 부리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금빛 부처님 몸을 보자마자 즉시 떨쳐 일어나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출가한 아들 의수義修를 불러 『미타경』을 읊도록 한 뒤 홀연히 입적하였다. 딸의 꿈에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정토에 왕생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출가한 의수 스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355)
元鄭氏淨安。錢塘人。念佛日無虛度。
得疾聞空中聲曰。汝行有期。無得自怠。
又見佛身金色。卽奮起面西端坐。召其
出家子義修。諷彌陀經。倐然而化。其
女夢母報曰。吾已得生淨土。可聞諸修
師云。
22. 원元 도陶씨는 상숙常熟 사람이다. 26세에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었다. 정토에 나기를 서원하여 항상 『미타경』과 『관세음경』을 수지하고 외웠다. 홀연히 흰 옷 입은 사람이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먹으라고 주는 꿈을 꾸었다. 깨어난 후 마음과 정신이 자못 평소와 달랐다. 이어서 작은 전각 하나를 꾸며 서쪽을 향하여 경을 읽고 염불하였다. 3년째 되는 날 부처님이 광명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는데, 경을 보관하는 궤 위에 탄알 같은 불덩이가 타올랐다. 도씨는 경이 탈까 걱정되어 급히 손으로 쳐서 결국 사리 하나를 얻었다. 임종할 때 응화불이 와서 맞이하였다.356)
元陶氏。常熟人。年二十六。寡居無子。
願生淨土。恒持念彌陀觀世音經。忽夢
白衣人。挈蓮華一朶。與食之。覺後心
神頗異。嗣裝一小閣。西向誦經念佛
甫三年。見佛現光明。經凾上有火團如
彈子。陶恐燒經。急以手撲。乃得舍利
一顆。臥終時。化佛來迎。
23. 원元 은현鄞縣 보당시寶幢市의 주周 노파는 정토업을 정성껏 닦았다. 연초가 되면 남과 말하지 않고 밤낮 앉아 있다가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그치곤 하였다. 음력 6월이 되면 차를 달여 베풀기를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큰 연잎이 마을 전체를 덮었는데 자기 몸에 염주를 지니고 연꽃잎 위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의 꿈을 꾸었다. 얼마 후 가벼운 병을 앓았는데 이웃 사람이 당번幢幡과 보개寶葢가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보니 노파는 이미 염불하며 입적한 뒤였다.357"
元鄞縣寶幢市周婆。精修淨土。遇歲首
持不語。晝夜常坐。盡月而止。遇暑月
則施茶湯。歷久不廢。一夕夢大荷葉。徧
覆一市。覺自身持數珠。行道葉上。旣
而微疾。隣人見幢盖入其家。黎明婆已
念佛而逝。"
24. 명明 설薛씨는 무당武塘 세족世族의 딸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샛별(長庚)358)이 몸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후에 주생周生에게 시집가 아들 다섯을 낳고 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수절하면서 몸소 관음보살께 향불을 공양하고 서원하자 향 연기가 연꽃에 서려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정토업에 전일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았고 15년 동안 한결같이 염불을 하였다.
"明薛氏。武塘世族女也。生時母夢長庚
入懷。後歸周生五子而寡。秉節自誓
供觀音。香煙結蓮華。人異之。專心淨
業。好施不倦。念佛十五年如一日。
만력 정해년(1587년) 5월에 병을 얻었는데도 곡기와 약을 물리쳤다. 9월 6일에는 스님을 청해 예참을 행하며 말하기를 “4일이면 내 일을 마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곧 서쪽을 향하여 미타상을 마주하고 밤낮 계념繫念359)하며 여러 아들에게 부탁하여 찬송을 도우라고 하였다. 깨끗한 옷(淨衣)을 입고 지공의 모자(誌公帽)360)를 쓰고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찬불게를 염송하며 삼귀의를 불렀다. 또 염주를 굴리며 백팔 번을 염불하였다. 정오가 되어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는데 연꽃 향이 방안에 가득했다.361)
萬曆丁亥五月得疾。遂絶粒屏藥。至九月
六日。延僧禮懴。且曰四日足吾事畢矣。
乃西向對彌陀像。晝夜繫念。囑諸子翊
賛。着淨衣。戴誌公帽。長跪佛前。念讃
佛偈。唱三歸依。輪珠念佛。一百八徧
逮午趺坐而化。蓮華香滿室中。
25. 명明 우于 노파는 창평주昌平洲 소촌邵村 사람 우귀于貴의 어머니로, 오랫동안 염불 공덕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빨아 지극히 정결하게 하고서 아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곧 정토에 날 것이다.”라 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기한이 되자 궤几362)를 뜰 가운데 놓고 그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과 하늘음악이 이웃에 다 퍼졌다.363)
明于媼。昌平州邵村于貴之母。久積念
佛。一日浣衣甚潔。謂其子曰。予將生
淨土。子未信。至期取几。置庭心。坐几
上脫去。異香天樂。比隣皆聞。
26. 명明 방方씨는 제생諸生 오응도吳應道의 아내이다. 삼십에 과부가 되어 수절하였으며, 불교에 귀의하여 정토를 전일하게 닦았다. 어떤 노파 또한 재계齋戒하면서 방 씨와 서로 의지하였다. 그런 지 거의 20년이 흘러 만력 을유년(1585년), 나이 50세에 때 작은 병이 있어 노파를 불러 서로 마주하고 염불을 그치지 않았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른 일도 하지 않았다. 죽기 하루 전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향을 피우며 예불하였다. 둘은 평상에 마주 앉아 함께 세상을 떠났다. 아들 용선用先은 진사에 오른 사람으로 성품이 곧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 일을 적어 명銘에 새기기를 부탁했다고 한다.364)
明方氏。諸生吳應道室。三十寡。守志
歸佛。專修淨土。一老媼。亦齋戒相隨
逐二十年。萬曆乙酉年五十矣。小疾呼
老媼。相對念佛不輟。無一語及他務
卒前一日。沐浴更衣。然香禮佛。還坐
一榻而逝。子用先第進士。質直不妄語
狀其事。乞傳銘云。
27. 명明 장모張母 도陶씨는 장수長水의 수령인 약約 거사의 둘째 부인이다. 거사가 불법을 받들자 부인도 교화되어 염송을 일과로 하였는데 거르는 일이 없었다. 거사가 보타사普陀寺에 예불하러 나간 사이 부인은 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시심작불 시심시불是心作佛 是心是佛’365)이라는 두 마디 말을 참구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明張母陶氏。爲長水守約繼室。居士奉
佛。氏化之。日課誦無間。
居士出禮普陀。母謂二子曰。
吾平日叅是心作佛 是心是佛二語。今始悟。
초나흘에 나는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어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거사가 돌아와 염을 하였는데 갑자기 관에서 청련화 다섯 송이가 피어 올라 크게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初四日吾行矣及期端坐而逝。
次日居士歸。成殮。俄棺上出靑蓮華五朶。
居士大駭異。
그리고 아내의 도행道行이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를 보거나 듣고서 찬탄하여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366)
自愧不知其道行如此。遠近見聞。無不嘆慕
28. 명明 중관中官 손명지孫名之의 어머니는 일생을 재계齋戒하고 염불하였다. 나이가 들어 작은 병이 있었는데 스스로 죽을 때를 미리 알아 아들에게 좌탈하겠노라고 말하였다.
明中官孫名之母。一生齋戒念佛。年老
微恙。自知時至。告其子欲坐脫。
아들이 흐느끼며 만류하였으나 막지 못하여 곧 감실을 만들었다. 약정한 날에 감실에 들어가 편안히 앉아 입적하였다.367)
子哀泣。止之不得。乃爲作龕。至期入龕。安
坐化去。
29. 명明 육모陸母 서徐씨는 청상과부로 정토업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남편이 빌려준 돈 1천 금이 있었으나 차용증을 태우고 받지 않았으며 화장대와 장식한 옥경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언제나 불당에서 예송을 그치지 않았는데 이를 10년 동안이나 하였다.
一夕忽呼侍人曰。看東方光發否。我待徃生時
至矣。汝軰可助我高聲念佛。合掌而逝。
어느 날 저녁에는 홀연 시자를 불러 말하기를 “동쪽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느냐? 내가 기다렸던 왕생할 순간이 왔다. 너희들은 나를 도와 큰 소리로 염불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합장하며 입적하였다.368)
明陸母徐氏。孀居。刻志淨業。未有千
金出貸。焚券不取。奩飾罄以施人。恒
于佛所。禮誦不輟。如是十載。
30. 명明 유도융劉道隆의 어머니 이李씨는 사십 세로, 오랫동안 재계(長齋)369)하고 염불하며 조용한 방370) 한 칸을 마련해 두고 불보살상에 공양하며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였다.
明劉道隆母李氏。年四十。長齋念佛
修靜室一間。供佛菩薩像。朝夕稱禮。
매번 생일에 며느리에게 잔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 동안 오직 예참371)을 하였는데, 이를 25년 동안이나 하였다. 임종하기 1년 전에 스님을 초대해 7일간 예참을 올렸다. 꿈에 보살(大士)이 염주 한 꾸러미를 잡고 보여 주며 “이를 너에게 주노라. 염주의 수는 곧 왕생의 기약이니라.” 하였다.
每誕日。誡子婦。母設慶席。惟禮懴一
日或三日。如此者二十五年。將終前一
歲。延僧禮懴七晝夜。夢大士持素珠一
串。示之曰。以此授汝。珠數乃徃生期
也。
꿈속에서 세어 보니 53개였으나 그 뜻을 헤아릴 수는 없었다. 경자년 5월 13일이 되자 느닷없이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오늘 떠날 것이다. 온 가족이 큰 소리로 염불하여 나의 서방 왕생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였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372)
夢中數之。五十三顆。不解其義。至
庚子五月十三日。忽告家人曰。吾今日
行矣。可擧家大聲念佛。助我西行。即
面西念佛。端坐而逝。
31. 명明 진모陳母 주朱씨는 오군吳郡 사람으로 준천濬川 거사의 부인이다. 효성스럽고 자애로운 성품으로 평소에 삼보를 가까이하였다. 81세 되던 해 아들이 운서 대사의 설법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염불왕생을 인도하여 마침내 정토업淨土業에 뜻을 두었다.
明陳母朱氏。吳郡人。濬川居士室也。
孝慈天植。素向三寶。年八十一。其子
叅雲棲歸。導以念佛徃生。遂篤志淨業。
두 해가 지난 후 병을 보였는데, 죽기 사흘 전 집 앞에서 어머니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이 셋이 있었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푸른 옷을 입은 동자373) 두 명이 이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이때 병이 더욱 심해졌는데 갑자기 뛸 듯이 일어나 허리를 세우고 단정히 앉았다.
越二載示疾。卒之前三日。堂前大呼母
名者三。母云有二靑衣在此。時病久孱
困。忽躍起。竪脊端坐。
여러 아들이 누워 쉬도록 권하였는데 곧 가부좌(吉祥)한 채 입적하였다. 중당中堂374)에 시신을 안치하여 반듯이 눕히자 시신이 저절로 굴러 서쪽을 향하였다. 순간 사람들이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375)
諸子勸其寢息。
乃吉祥而逝。迎尸中堂。仰臥之。尸自
轉向西。一時人以爲駭異焉。
32. 명明 종鍾씨는 인화仁和 장후계張後溪의 둘째 부인이다. 40세에 남편을 잃고 그 뒤로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을 독실하게 믿기를 40여 년이나 하였다. 평시에는 항상 하늘음악이 공중에서 울리는 것을 들었고 밤에는 항상 문 밖에서 크게 나는 부처님 소리를 들었다.
明鍾氏。仁和張後溪之繼室。年四十夫
喪。遂持長齋。篤信念佛者。四十餘載。
居常聞天樂鳴空。又夜常聞戶外佛聲
浩浩。
그러나 문을 열어 보면 아무 자취가 없었다. 이와 같은 신이한 징조가 여러 번 나타났다. 태창 원년(1620년) 12월 16일 병이 들어 다음 해 새해 첫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방 가득히 연꽃이 보이고 또 번개幡蓋376)가 침상 앞에 매달려 있다.”고 말하고는 염불하며 입적하였다.377)
啓視杳無人跡。如是異徵。屢屢
槩見。泰昌元年臈月十六日臥病。次年
元旦。謂家人曰。見徧室蓮華。并有幡
盖。縣于床前。念佛而化。
33. 명明 예장豫章 사람 양선일楊選一의 부인은 서른 살에 아들을 낳은 후 남편과 별거하였다. 그 후 첩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로부터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하기를 기축년까지 15년간 하였다.
明豫章人楊選一妻。三十生子。後即與
夫別居。聽其置妾。自日長齋念佛。至
己丑十五年矣。
8월에 문득 등에 병이 나서 심한 통증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그때 한 악귀가 칼로 등쪽 살을 자르자 큰 힘을 지닌 신(大力神)이 쫓아버리는 광경을 보았는데, 아픈 것이 씻은 듯 나은 듯했다.
八月忽生發背。痛楚入
骨。見一惡鬼。以刀割其背肉。有大力
神。駈之去。苦若脫。
남편에게 말하기를 “저는 이제 떠납니다. 동자 네 명이 맞이하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남편은 병중의 잠꼬대인 줄 알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에 서방으로 간다고 말하고는 바로 입적하였다.378)
謂夫曰。吾將行矣。
有童子四人相迎。夫疑病中囈語。問何
徃。荅曰徃西方。遂化。
34. 명明 강령江寧의 도인道人 탕湯 공보公甫의 어머니는 81세로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하였다. 매일 일과로 아침저녁으로 만 번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明江寧湯道人公甫母。八十一歲。向來
長齋念佛。每晨夕萬聲爲課。
경인년 새해 첫날 공보가 융오融悟와 관여觀如 두 계사戒師를 초빙하여 경건하게 대미타참大彌陀懺을 닦았다."
庚寅元旦公甫請融悟觀如兩戒師。虔修大彌陀懴。"
"초나흘 오경에 단壇에 나아갔는데 당 도인唐道人이라는 자가 단 밖에서 죽음을 알리는 종을 쳤다. 해 뜰 무렵 백학 수십 마리가 지붕 위를 빙빙 돌았다.
以初四日五鼓進壇。有唐道人者
在壇外打報鍾。平明見白鶴數十。旋繞
屋上。
단 안에 있던 승속의 사람들이 모두 연꽃이 부처님 자리에서 피어나고, 금빛이 안팎으로 허공을 비추며, 산하와 대지가 떨어지거나 막힘없이 확 뚫려 보여 단 아래에서 바야흐로 흩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壇內緇素。悉見蓮華。生佛座下
內外金光覆空。山河大地。了無隔礙。
下壇方散。
이것은 모두 탕 어머니가 정토를 정성껏 닦은 결과 나타난 징표들이다. 그분이 상품上品에 왕생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당의지唐宜之가 본 바를 적어 놓았다가 실을 책을 구하였다.379)
此皆湯母虔修淨土之現證
也。其徃生上品必矣。唐宜之。目擊。載
已求書。
35. 청清 여요餘姚의 서徐씨는 오산烏山의 호진악胡振嶽에게 시집가 살았다.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었고 40여 세에 남편을 잃었다. 그 뒤로 집안일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규방에 깊이 들어가 지극한 마음으로 미타불을 천 번 소리 내어 예념하기를 20여 년 동안 하였다.
太淸餘姚徐氏。適烏山胡振嶽。擧四子
一女。年四十餘夫喪。遂託委家事。深
居閫內。至心禮念彌陀佛千聲。如是者
二十餘載。
하루는 아무런 병이 없었는데 문득 가족을 불러 말하기를 “금빛 동자(金童) 여럿이서 보개寶蓋를 들고 나를 맞이하는구나. 사흘 뒤에 함께 갈 것이다.”라 하였다.
一日無疾。忽謂家人曰。多
有金童。執寶盖迎接。越三日。
약속한 날 가족들을 불러 작별 인사할 때, 사람은 마땅히 염불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른 자세로 앉아 입적하였다.380)
當與偕行。届期呼家人。囑訣曰。人當念佛。正坐而逝。
36. 청清 항군杭郡의 태군太君381)인 강江씨는 인공엄訒公嚴 선생의 계비繼妃요 도련都諫 호정공灝亭公 항沆의 생모이다. 태군은 명망 있는 집안 출신으로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정숙했으며 인자하였다.
太淸杭郡太君江氏。訒公嚴先生繼配
都諫灝亭公抗之生母也。太君產於望
族。賦質賢淑。秉性仁慈。
15세에 인공에게 시집가서 웃어른을 효성으로 섬기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기를 무릇 50여 년간 하였다. 처음에 인공이 연지蓮池 대사에게 귀의하여 정토를 독실하게 믿자 청년이었던 태군 또한 가르침을 받들어 경건하게 닦았다.
年十五。適訒公。孝以承先。慈以逮下。凡五十餘年。初訒公歸依蓮池大師。篤信淨土。太君方靑年。亦奉敎虔修。
매일 닭이 울 때 일어나 부처님 앞에 몸을 펴서 무릎을 길게 꿇고(長跪), 경을 염송하며 염불을 소리 내어 천 번씩 하였다. 언제나 저녁 일에 노비를 깨우지 않았고, 어떤 이가 사서 고생하지 말라 하니, “이만한 일로 너희들에게 누를 끼친다면 어찌 불도를 배우는 사람이라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每鷄鳴輙起。長跪佛前。誦經念佛千聲。凡諸夜役。不呼睡婢。或勸無自苦。曰以此累若軰。豈學道人所宜。
강희 무신년(1668) 3월 6일 새벽에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예불을 하고서 아침이 되자 병으로 누웠다. 문득 큰 소리로 “관음보살님이 오신다.” 하고 목욕하여 몸을 정결케 한 후 잠이 든 채 세상을 떠났다.382)
康熙戊申三月六日。晨課一如平時。達且仍寢疾。忽大聲曰。" 觀音菩薩來矣。湯浴淨體。就枕而逝。
37. 청清 심이생沈易生의 부인 부傅씨는 법명이 덕련德蓮으로 평소 믿음이 돈독하여 계율을 지키고(持齋) 염불을 하였다. 심이생은 소경으로 점을 쳐 얻은 것을 모두 스님에게 공양하였다.
太淸沈易生妻。傅氏。法名德蓮。素敦
信向。持齋念佛。沈以瞽者。賣卜所得。
悉以飯僧。
사방의 떠돌이 스님들(瓢衲)이 소문을 듣고 모두 찾아왔는데 부씨는 귀찮게 여기지 않고 정성스레 공양하기를 16년이나 하였다. 강희 임자년(1672년) 7월에 가벼운 병이 들었다.
四方瓢衲。聞風沓至。傅氏
不憚勞苦。而虔供者。十有六載。康熙
壬子七月小疾。
윤7월 초하룻날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옷을 갈아입고 친척들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어떤 금동金童이 나를 맞이하러 온다.”고 하였다. 부축하여 몇 발짝 가다가 다시 앉아 합장하고 염불하며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첨산瞻山의 법경法慶 화상이 그를 위해 게를 지었다.
至閏七月初一。索浴更
衣。謂親屬曰。此有金童。來相接引。扶
行數步。復坐合掌念佛。瞑目而逝。瞻
山法慶和尙。爲說偈曰。
老婆弘願自剛强 노파의 큰 서원 굳고 굳세어
典座行堂一力當 전좌典座383)와 항당行堂384) 일 혼자 해냈네.
大道本無男女相 깨달음(大道)은 본래 남녀 차별상 없고
眞心不落斷常坑 진심은 단견斷見 상견常見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는다네.
生前夙植華開日 생전에 일찍 심은 연꽃 피는 날
展臂高超徃上方 팔 벌려 저 높이 상품에 오르리니
豈讓靈昭能撒手 어찌 영소靈昭385)를 양보하고 손 놓을(撒手)386) 수 있으리오.
蓮生火內更馨香 연꽃이 불꽃 속에서 피어 향기까지 풍기네.387)"
정토보서 5
정토보서 5
선비와 백성이 왕생한 이야기
士民徃生類
1. 진晉 장야張野는 심양潯陽 사람으로 한학과 불경에 능통하였다. 또한 문장을 잘 써 무재茂才247)로 천거되어 여러 번 산기상시散騎常侍248)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한 번도 부임하지 않았고 여산廬山의 연사蓮社249)에 들어가 정토업을 닦았다. 의희義熈 14년(418년)에 가족과 작별하고 방에 들어가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250)
晋張野。居潯陽。兼通華梵。尤善屬文。
擧茂才。屢徵散騎常侍。俱不就。入廬
山蓮社。修淨業。義熈十四年。與家人
別。入室端坐而逝。
2. 진晉 궐공칙闕公則은 혜원慧遠 대사의 백련결사白蓮結社에 참여한 사람이다. 세상을 떠난 뒤에 친구가 동경東京의 백마사白馬寺에서 기제忌祭를 올려 주었는데 홀연히 나무숲과 전각이 모두 금색으로 변하고 공중에서는 “나는 궐공칙이오. 극락 보국 왕생의 기원이 이미 이루어졌소. 이를 알리러 온 것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마치고는 사라졌다.251)
晋闕公則遠公。白蓮社中人。已亡友人
于東京白馬寺。爲作忌祭。忽林木殿宇
皆金色。空中有聲云。我是闕公則。所
祈徃生極樂寶國。今已達矣。故來相報。
言訖不見。
3. 진晉 장전張銓은 장야張野의 조카로서 빼어난 성품으로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농사일을 하는 틈에도 경서를 놓지 않았으며 여러 번 발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열庾悅252)은 그를 가난하다고 여겨
심양의 현령(潯陽令)으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옛 사람은 무릎이나 넣을 만한 좁은 방도 편안히 여겼습니다. 뜻을 굽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이 무슨 영화로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고는 바로 여산에 들어가 혜원 대사의 백련결사白蓮結社에 의지하였다. 경전을 깊이 탐구하였고 여러 번의 깨우침(悟入)253)이 있었다. 송 경평景平 원년(423년)에 병 없이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며 편안히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254)
晋張銓。野之族子也。高逸好學。耕鋤
間。帶經不釋。屢徵不就。庾悅以其貧。
擧爲潯陽令。笑曰古人以容膝爲安。屈
志就祿。奚榮之有。乃入廬山。依遠公
蓮社。硏窮內典。多有悟入。宋景平元
年。無疾西向念佛。安坐而卒。
4. 송宋 주속지周續之는 안문鴈門 사람으로 12세에 오경五經과 오위五緯255)에 통달하여 십경동자十經童子라 불렸다. 뜻을 기르며 한가로이 살면서 공경이 차례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여산의 혜원 법사를 모시고 백련결사에 참여하였다. 송 문제文帝가 왕위에 올라 그를 불러 소대召對256)하였을 때 명쾌하게 분석하니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어떤 이가 묻기를 “신분이 처사處士인데 자주 그렇게 궁중에 출입해도 됩니까?”라고 하자 그는 “마음이 조정에 있는 자는 몸이 강호에 있더라도 그곳이 굴레가 되며, 정과 이치(情致)가 다 사라진 자는 몸이 저자나 조정에 있더라도 그곳은 곧 바위 토굴일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때 통은 선생通隱先生이라 불렸으며 후에는 종산鍾山에 머물렀다. 염불에 전념했으며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매진하였다. 하루는 하늘을 보며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라고 하며 합장한 채 입적하였다.257)
宋周續之。鴈門人。十二通五經五緯。
號十經童子。養志閒居。公卿交辟。皆
不就。事廬山遠法師。預蓮社。文帝踐
祚。召對辨析。帝大悅。或問身爲處士
時踐王庭可乎。答曰心馳魏闕者。以江
湖爲桎梏。情致兩亡者。市朝亦巖穴耳。
時稱通隱先生。後居鍾山。專心念佛。
愈老愈篤。一日向空云。佛來迎我。合
掌而逝。
5. 양梁 유선庾銑은 신야新野 사람으로 무제武帝가 황문黃門의 시랑侍郎으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밤낮으로 염불하였는데 어느 날 저녁 자칭 원공願公이라는 도인이 나타나 상행 선생上行先生이라 부르며 향을 주고 떠났다. 4년 뒤에 그 도인이 다시 나타나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공중에서 말하기를 “상행 선생은 이미 안양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다.258)
梁庾銑。新野人。武帝召爲黃門侍郞。
不赴。六時念佛。一夕見道人。自稱願
公。呼銑爲上行先生。授香而去。後四
年。願復至。遂化去。空中言上行先生
已生安養矣。
6. 양梁 고호상高浩象은 동평東平 사람이다.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아 오로지 『무량수경無量壽經』만 독송하였다. 일찍이 관觀을 하던 중 자신이 연못의 붉은 연꽃에 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부처님이 보이지 않았는데 꽃 위로 나아가 마음을 다해 예불하며 멀리 부처님 상호를 떠올리자 광채가 멀리서 비쳤다. 어느 날 저녁 여러 보살들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뵙고 바로 세상을 떠났다.259)
梁高浩象。東平人。杜門靜坐。專誦無
量壽經。嘗在觀中。覺自身泛紅蓮于池
面。初未見佛。乃即華上。傾心禮佛。遙
想金容。光輝遠映。一夕見衆菩薩來迎。
即時化去。
7. 수隋 송만宋滿은 상주常州 사람이다. 콩을 세며 염불하여 30석石을 쌓았다. 개황開皇 8년(588년) 9월에 반승飯僧을 마치고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 사람들이 신이한 향기를 가득 풍기는 하늘 꽃이 허공을 날아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260)
隋宋滿。常州人。計荳念佛。積三十石。
開皇八年九月。飯僧畢。坐逝。人見天
華異香滿。乘空西去。
8. 당唐 정목경鄭牧卿은 형양滎陽 사람으로 온 집안이 염불을 하였다. 개원開元 연간(713~741년)에 병세가 심해졌는데 생선이나 고기를 차려 올리면 결코 입에 대지 않았다. 향로를 붙잡고 왕생을 기원하였는데 홀연히 이상한 향이 가득했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외삼촌인 상서尚書 소정蘇頲의 꿈에 정목경이 보배 연못의 활짝 핀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261)
唐鄭牧卿。榮陽人。擧家念佛。開元中。
病篤。有勸進魚肉者。確乎不許。手執
香爐。願求徃生。忽異香充蔚。奄然而
逝。舅尙書蘇頲。夢寶池蓮開。牧卿坐
其上。
9. 당唐 장원상張元祥은 평소에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가족들에게 재촉하며 말하기를 “서방의 성인께서 나를 기다리신다. 재를 마치고 함께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재를 마친 후 분향하고 가부좌한 채 서쪽을 향하여 세상을 떠났다.262)
唐張元祥。居常念佛不輟。一日促家人
云。西方聖人待我。齋畢同徃。齋事訖。
焚香跏趺。面西而化。
10. 당唐 원자재元子才는 윤주潤州 관음사觀音寺에 살면서 『미타경』을 독송하며 염불하였다. 갑자기 작은 병이 들었는데 밤에 공중에서 향기가 나고 풍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거친 음악 소리가 지나가고 부드러운 가락이 이어 오면 그대는 떠나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염불하며 세상을 떠났는데 신이한 향내가 며칠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같은 절의 원자평元子平도 후에 공중의 음악 소리를 듣고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263)
唐元子才。居潤州觀音寺。誦彌陀經念
佛。忽小疾。夜聞空中香氣樂音。似有
人言。粗樂已過。細樂續來。君當行矣。
念佛而化。異香數日不散。同寺元子平。
後亦聞空中音樂。即西向坐化。
11. 당唐 이지요李知遙는 장안長安 사람으로 정토교를 좋게 여겨 오회염불五會念佛264)을 하였는데 대중들의 사범이 되었다. 후에 병이 들어 홀연히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고 하면서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향로를 피우고 방을 나서며 정례하였는데 공중에서 게偈를 말하기를 “그대 이지요에게 이르노니, 염불한 공덕으로 내가 왔노라. 그대를 이끌어 정토에 나게 하고 금으로 된 다리(金橋)265)에 오르게 하리라.” 하였다. 침상에 나아가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이 다 신이한 향내를 맡았다.266)
唐李知遙。長安人。善淨土敎。五會念
佛。爲衆師範。後因疾。忽云佛來迎我。
洗漱更衣。索香壚。出堂頂禮。乃聞空
中說偈云。報汝李知遙。功成果自招。
引君生淨土。將爾上金橋。就牀端坐而
化。衆聞異香。
12. 당唐 분양 노인汾陽老人은 법인산法忍山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살며 밤낮으로 염불하였다. 정관 5년(631년) 목숨을 마칠 때 커다란 빛이 나타나 두루 비추었고 서쪽을 향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그가 연화대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267)
唐汾陽老人。于法忍山。借一空房止宿。
晝夜念佛。貞觀五年命終。時大光徧照。
面西而逝。人見乘蓮華臺云。
13. 당唐 방저房翥가 갑자기 죽어 저승에 이르러 염라대왕을 만났다. 왕이 말하기를 “문서를 보니 그대가 일찍이 한 노인에게 염불을 권하여 이미 정토에 나게 했으니, 그대도 이 복을 따라 정토에 나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였다. 방저는 “먼저 『금강경』 만 권과 오대산을 순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직 왕생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응답하였다. 왕은 “순례하고 경을 독송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어서 빨리 정토에 나는 것만 못하다.”라 하였으나, 그 뜻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알고 돌려보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염불을 닦도록 권하는 사람은 다만 왕생할 뿐만 아니라 저승까지도 감동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268)
唐房翥。暴死至陰府。見閻羅王。王曰
據案簿。君曾勸一老人念佛。已生淨土。
君承此福。亦合生淨土。翥曰先許金剛
經萬卷。巡禮五臺。未欲徃生。王曰巡
禮誦經。固爲好事。不如早生淨土。王
知志不可奪。放還。以此知勸人修者。
非徒徃生。又感動幽冥也。
14. 송宋 손량孫良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은거하며 대장경을 읽고 또한 화엄의 요지를 깨달았다. 대지 율사大智律師에게 보살계를 받고 매일 만 번씩 부처님 명호를 독송하기를 20년 동안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가족들에게 스님을 모시고 염불로써 왕생을 도와달라고 청하자 스님들이 모여 염불하였다. 반나절쯤 하늘을 향해 합장한 후 말하기를 “부처님과 보살이 이미 강림하셨다.”라 하며 물러나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269)
宋孫良。錢塘人。隱居大藏。尤得華
嚴之旨。依大智律師。受菩薩戒。日誦
佛萬聲。二十年不輟。忽一日。命家人。
請僧念佛。助徃生。僧集念佛。方半餉
望空合掌云。佛及菩薩。已荷降臨。退
坐而化。
15. 송宋 왕전王闐은 사명四明 사람으로 호는 무공수(無功叟: 공 없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선종과 천태교에 다 통달하여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을 지었다. 만년에는 염불에만 마음을 써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신이한 향내가 자욱했으며 감실을 태울 때 콩알만한 사리 8개가 나왔다.270)
宋王闐。四明人。號無功叟。禪宗及台
敎。無不洞達。著淨土自信錄。晩年專
心念佛。西向坐化。異香芬郁。焚龕時。
獲舍利如菽者八粒。
16. 송宋 범엄范儼은 인화仁和 사람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끊고 자식이 집안을 다스리지 않아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는 나그네일 뿐이다.”라 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부지런히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어느 날 문득 상아가 여섯 개 난 흰 코끼리(六牙白象)271)를 타고서 금색 빛을 발하는 보현보살을 뵈었다. 보살은 범엄에게 “내일 묘시(卯時: 새벽 5~7시)에 갈 것이다.”라 하였다. 하룻밤 지난 후 불보살이 와서 영접하자 나아가 앉아 합장하고 세상을 떠났다.272)
宋范儼。仁和人。絶心世務。子不治家。
儼不之顧。但云我是寄客耳。日誦法華。
念阿彌陀佛。專心不懈。忽見普賢乘六
牙白象。放金色光。報儼云。明日卯時
當行。越一夕。佛菩薩來迎。就坐合掌
而逝。
17. 송宋 육원도陸沅道는 호가 성암 거사省菴居士로 명明의 횡계橫溪에 살았다. 새벽이면 일어나 향을 사르고 가부좌하였다. 눈을 조금도 다른 곳에 돌리지 않고 먼저 게를 읊었다.
盥手淸晨貝葉開 맑은 새벽 손 씻삽고 패엽경을 펼치오니
不求諸福不禳災 이 복 저 복 구하지 않고 재앙 물리치기 원치 않네.
世緣斷處從他斷 세상 인연 단절된 곳 그로부터 끊어지니
刼火光中舞一迴 겁화273)의 빛 속에서 춤추며 한 번 도네.
그 후 염송을 하되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하였으며 소리는 마치 시를 읊는 것(貫珠) 같았다. 매일 『법화경』 한 편을 독송하고 미타 명호를 만 번 소리 내어 부르되 오로지 서방 왕생에만 뜻을 두었다. 85세가 되어 목욕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세상을 떠났다. 염습할 때 홀연히 자욱한 연꽃 내음을 맡았으나 어디서 풍겨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가까이서 맡아 보고는 모두 입에서 나온 것을 알았다.274)
宋陸沅道。號省庵居士。住明之橫溪
晨起焚香趺坐。目不他瞬。首倡偈曰
盥手淸晨貝葉開。不求諸福不禳災。世
緣斷處從他斷。劫火光中舞一迴。然後
念誦不緩不急。聲如貫珠。每日法華一
徧。彌陀萬聲。一意西馳。年八十五。沐
浴整衣而逝。洎殮。忽聞蓮華馥郁之氣。
皆不知來處。近挹之。盖出自口中。
18. 송宋 손충孫忠은 사명四明 사람으로 일찍이 서방을 연모하여 군성郡城 동쪽에 암자를 짓고 염불하였다. 후에 병이 들자 스님 백 명을 청하여 계념繫念275)을 하였다. 홀연히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면서 기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온 성 사람들이 하늘음악과 신이한 향기가 서쪽으로 향하여 사라지는 것을 들었다. 두 아들이 서로 이어 염불하였으며, 이들 역시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276)
宋孫忠。四明人。早慕西方。于郡城東
築菴念佛。後因病。請僧百人。繫念。忽
仰空合掌。怡然而化。闔城聞天樂異香。
漸向西沒。二子相繼念佛。亦坐化。
19. 송宋 심전沈銓은 전당錢塘에서 장가를 들었다. 아내 시씨施氏와 함께 오직 한마음으로 염불하였고 많은 선업을 닦아 모두 회향하였다. 아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임종할 때 모두 아미타 부처님께서 석장을 지니고 접인하는 것을 감응하고 세상을 떠났다.277)
宋沈銓。家錢塘。同妻施氏。專心念佛
所脩諸善。悉用回向。及妻前後命終。
皆感化佛。持錫接引而去。
20. 송宋 당세량唐世良은 회계會稽 사람이다. 계율을 잘 지키고 염불에 힘썼다. 나이 들고 병이 났어도 눕지 않고 『미타경』 십만 편을 독송하였다. 어느 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라 하고 말을 마친 후 예불하고 바로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278) 이利라고 하는 행인이 당시 도미산道味山에 있다가 꿈을 꾸었는데, 서방에서 이상한 빛이 나고 화려한 기가 펄럭이고 하늘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공중에서 ‘당세량은 이미 정토에 갔다’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宋唐世良。會稽人。持戒念佛。年老疾
病。猶不就枕。誦彌陀經十萬遍。謂家
人云。佛來接我。言訖作禮。即便坐逝。
利行人。時在道味山。夜夢西方異光。
旛華天樂空中聲云。唐世良。已歸淨土。
21. 송宋 계공計公은 동전을 만드는 장인인데 70세에 눈을 잃었다. 마을 사람 구학유咎學諭279)는 벽과도擘窠圖280)를 찍어 널리 배포하고 염불을 권하였다. 계공은 처음에 그림 하나를 완성하면서 36만 번이나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이렇게 염불하여 그림 네 개가 완성되었을 때 두 눈이 밝아졌다. 이와 같이 하여 3년이 지나자 그림이 17개가 되었다. 하루는 염불하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는데, 반나절 후 다시 깨어나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그림 여섯 개를 나누어 구학유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는 염불을 권장한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림 하나는 이이공李二公에게 주도록 하셨다. 그는 그림을 나누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라 하며 아들을 시켜 찾아가서 사례하도록 하였다. 말을 마치고 목욕한 후 서쪽을 향하여 세상을 떠났다.281)
宋計公。錢工也。年七十喪明。里中咎
學諭。以擘窠啚。印施勸人念佛。計公
初授一圖。念滿三十六萬聲。念至四圖。
兩目瞭然。如是三載。念滿十七圖。一
日念佛。忽氣絶。半日復蘇曰。佛令分
六圖。與咎學諭。是勸導之首。分一圖
與李二公。是俵圖之人。囑其子徃謝之。
言訖沐浴。向西而化。
22. 송宋 심삼랑沈三郎은 만년에 회심하여 염불하였다. 병이 들자 스님을 청하여 『미타경』을 염송하도록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무릎을 오므리고 일어서려는 자세로 숨을 거두었다. 두 아들이 유교(名敎)282)에 구애받은 탓에 감실로 바꾸는 것을 어렵게 여겨 정강이를 끌어당겨 반듯하게 폈다. 심삼랑은 염습할 때 홀연 머리를 수의 밖으로 내더니 갑자기 나와 앉았다. 온 집안이 크게 놀라고 두 아들은 서둘러 앞에서 부축하고 팔꿈치로 받치게 했다. 아들이 말하기를 “좌탈坐脫하도록 도울 뿐이다.”라 하였다. 마침내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다비할 때 백학 29마리가 구름 밖으로 울며 날다가 한참 후에 서쪽으로 갔다.283)
宋沈三郞。晩歲回心念佛。因病請僧。
念彌陀經。易衣而終。縮膝欲起。二子
局于名敎。以易龕爲難。曳其脛直之。
將入殮。忽擧首出衣被。矍然而坐。擧
家大驚。二子急前扶衛。乃以肘節捶之
子曰助父坐脫耳。竟坐逝。茶毘。有白
鶴二十九隻。飛鳴雲表。久之西去。
23. 송宋 육준陸俊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젊어서 관청에서 일하였다. 오래 지나서는 관직을 그만두고 정토를 업으로 삼아 매일 부처님께 참회하며 크게 울었다. 도반들을 만나면 정토 인연을 이야기하였는데 겨우 열 마디만 해도 문득 슬피 울며 느꺼워하였다. 임종할 때 원정 율사圓淨律師에게 서방 세계를 보여 주기를 청하였다. 율사가 『관무량수경』을 염송하다가 상품上品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러 “이제 떠날 만하다.”고 하자 그는 “여러 성인들께서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니 잠시 기다립시다.”라고 하였다. 잠시 후에 갑자기 일어나 대나무 침상에 나아가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284)
宋陸俊。錢塘人。少事公門。久之棄去。
以淨土爲業。每對佛懺悔。垂淚交頥。
道友相見。說淨土因緣。纔十餘句。便
悲咽感歎。臨終請圓淨律師。開示西方
諷觀經至上品。淨曰可以行矣。俊曰衆
聖未齊。姑待之。少頃忽起就竹牀。面
西端坐而逝。
24. 송宋 서육공徐六公은 가흥嘉興 사람으로 농사일에 힘썼다. 부부가 함께 채식을 하였고 40년을 정성스레 염불에 전념하였다. 미리 감실 하나를 만들어 놓고 임종할 때 베옷으로 갈아입고 짚신을 신고 그 안에 들어가 단정히 앉았다. 조금 지난 후 “부처님께서 맞이하러 오신다.” 하고는 바로 세상을 떠났다.285)
宋徐六公者。嘉興人。務農爲業。夫婦
蔬食。精勤念佛四十年。預作一龕。臨
終易布衣草履。入龕端坐。頃之曰。佛
來迎我。即化去。
25. 송宋 황공黃公은 담주潭州 사람이다. 본래 군인이었는데 대장간 일로 생업을 꾸려 갔다. 매번 항쇄와 철퇴를 만들 때마다 입에서 염불이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이웃 사람에게 게송을 적어 달라고 하며 부르기를 “땅땅땅땅 쇠를 오래 불려 강철 되네. 태평나라 가까워지니 나 서방에 왕생하리라.” 하고는 병이 없었는데 입적하였다. 이 노래가 호남지방에 널리 전파되어 염불하는 이가 많았다.286)
宋黃公。潭州人。本軍伍。以打鐵爲生。
每鉗鎚時。念佛不輟口。一日無疾。託
鄰人爲寫頌云。叮叮噹噹。久鍊成鋼。
太平將近。我徃西方。即化去。其頌盛
傳湖南。人多念佛。
26. 원元 하담적何曇迹은 18세에 보살계를 수지하고 염불하였다. 어느 날 사경(새벽 1~3시)에 일어나자마자 염송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 묻자 이에 “금빛 상호의 부처님께서 일산을 쓰고 와 맞이하시는 것을 뵈었다.”라고 대답하고는 세상을 떠났다.287)
元何曇迹。年十八。持菩薩戒念佛。一
霄四鼓。即起念誦。人云太早。答云見
佛金相。旛華來迎。遂脫去。
27. 명明 화華 거사는 강간江干 사람으로 순박하고 거짓이 없었으나 남들과 다정하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중년의 나이에 가업을 아들에게 맡기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온종일 부지런히 염불만 하였다. 후에 임종할 때에는 때가 이르렀음을 스스로 알고 의관을 바로잡고 단정히 앉아 대중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아들이 만든 관이 있었는데 이를 감실로 바꾸어 스님들이 입적할 때 하는 것과 같이 했다. 상여 나가는 날에 구경하는 이가 담장처럼 늘어섰으며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해 마지 않았다.288)
明華居士。江干人。醇朴無僞。與人不
款曲。中年屬業諸子。獨處一室。不涉
世事。朝暮惟孜孜念佛而已。後將卒
自知時至。更衣正冠。端坐別衆而逝。
其子先已作棺。于是易龕。如沙門故事。
擧龕之日。觀者如堵。遠近嚮慕焉。
28. 명明 연화태공蓮華太公은 월越 지방 사람이다. 일생을 소박하게 살았는데 오직 밤낮으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후 관에서 연꽃 한 줄기가 홀연히 피어나니 마을 사람들이 경탄해 마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이름을 연화태공이라 불렀다 한다.289)
明蓮華太公者。越人。一生拙朴。惟晝
夜念佛不絶。命終之後。棺上忽生蓮華
一枝。親里驚歎。因號蓮華太公云。
29. 명明 곽대림郭大林은 탕음湯陰 사람이다. 평소 단아하고 정갈한 성품으로 세상에서 벗어날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염불을 가르치는 스님을 만나 일심으로 정토업을 닦았다. 76세 때 하루는 아픈 곳이 없었는데도 자식들에게 “내일 정오에 떠난다.” 하며 작별하고 때가 되자 앉아서 입적하였다.290)
明郭大林。湯陰人。平生端潔雅素。出
世爲懷。遇僧敎以念佛。遂一心淨土。
年七十六。一日無疾。與子別云。明午
當去。至時坐脫。
30. 명明 당담糖擔291) 노인은 항성杭城 안에 살면서 설탕을 팔아 생업을 유지했는데 입에서 염불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설탕을 짊어지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어서 빨리 이 설탕을 가져다 잡수시오. 저는 곧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몇몇 아는 사람 집에 가서는 “미안하지만 내일 와서 내 관을 들어 주시오. 저는 돌아가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지인들이 의아하게 여겨 반신반의하였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대접하라고 하였다. 식사 때에 지인들이 모두 오자 노인은 관을 들고 집에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에게 절하며 “내가 스스로 관속에서 잠들어 여러분을 수고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오.”라 하면서 관에 들어가 앉은 후 기쁜 표정으로 잠들어 결국 먼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신기해 했다.292)
明糖擔老人。住杭。賣糖爲生。口中念
佛不絕。忽一日。挑糖擔。出見人便曰
汝早喫我糖。我當歸去也。更至數相識
家。約曰煩你。明日來擡我棺。我要歸
去。識者訝之。且信且疑。次早謂其妻
曰。可偹飮食。以待來人。餉時。識者皆
至。老人引令擡棺到家。沐浴更衣。拱
手語衆曰。我當自寢于棺。不勞汝等
將身坐棺中。怡然就寢。遂長徃矣。衆
咸驚異。
31. 명明 유통지劉通志는 서울 사람으로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염불을 하였는데, 52세에 병환을 얻게 되자 더욱 절실하게 염불하였다. 이웃에 사는 이백재李白齋가 먼저 죽었는데, 통지도 숨을 거두었다가 정오가 되어 다시 살아났다. 가족에게 말하기를 “마침 정토로 가는 배 한 척을 보았단다. 배에는 서른여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백재도 있었지.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그런데 내 옷이 깨끗하지 못하고 게다가 염주를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려서 다시 왔단다. 옷을 갈아입고 염주를 가져오라는 명을 받고서. 지금 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라고 하였다. 가족들이 급하게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자 통지는 잠시 후에 세상을 떠났다.293)
明劉通志。京都人。精懇念佛。年五十
二。得疾念益切。鄰人李白齋先卒。通
志氣絕。自旦至午復甦。謂家人曰。適
見一舟。云徃淨土。乘舟三十六人。白
齋與焉。我亦一數。但衣未鮮潔。又忘
帶念珠。命我易衣取珠。舟艤相待。家
人急爲易衣。珠掛其項。須臾而逝。
32. 명明 당정임唐廷任은 난계蘭溪 사람으로 호는 체여 거사體如居士이다. 효성스럽고 우애하며 또한 성실하였는데 다 천성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소년 시절 학교에 다닐 때에는 명성이 자자했으나 이윽고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오직 한마음으로 도에 이르고자 하였다. 운서雲棲 대사에게 나아가 염불삼매를 배워 힘을 다해 수행하였다. 13년을 하루같이 독실하게 서방에 뜻을 두었다. 만력 계묘(1603년) 11월, 60세 되는 날 아침 홀연히 자식들에게 이르기를 “내년 봄 11일에 나는 돌아갈 것이다.”라 하였다. 예정한 날로부터 수일 전에는 평소와 같이 예송하였다. 그날이 되자 손을 씻고 양치하고 옷을 단정히 입은 후 앉아 손으로 인을 맺으며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떠났는데, 마치 선정에 든 것 같았다.294)
明唐延任。蘭溪人。號體如居士。孝友
醇慤。出自天性。少遊黌校。有聲。已而
覺世無常。傾心至道。叅雲棲。受念佛
三昧。遂力行之。凡十三年。如一日。篤
志西方。萬曆癸卯仲冬。六十壽旦。忽
謂諸子曰。新春十一日。吾歸矣。數日
前。禮誦如平時。至期盥漱整衣。端坐
手結印。口稱佛名。含笑而逝。如入禪
定。
33. 명明 양가위楊嘉禕295)는 자가 방화邦華로 태화泰和 사람이며 세가世家296)의 자제이다. 열세 살에 불살계不殺戒를 지켜 벼룩과 이도 죽이지 않았다. 23세에 남옹南雍297)에서 수업하였는데 갑자기 병이 나서 만력 을사년(1605년)에 숨을 거두었다. 죽기에 앞서 지옥 명부전에서 지장보살을 만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을 깬 후 살아 있는 것을 모두 방생했으며 스님을 초빙해 불경을 독송하고 염불하였다.
明楊嘉禕。字邦華。泰和人。世家子也。
年十三。持不殺戒。蚤風無所傷。二十
三肄業南雍。俄疾作。以萬曆乙巳卒
卒之先夢遊地獄。見地藏大士于冥陽
殿。覺而放諸生命。延僧誦經念佛。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는 곧 떠날 것이다. 청련화가 내 앞에 보이니 어찌 정토의 광경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드디어 밤낮으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또 촛불을 끄도록 하고는 “여러분들은 촛불이 있어야 밝힐 수 있지만 나는 촛불이 없어도 항상 광명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중들이 무엇이 보이냐고 묻자 네 가지 색깔의 연꽃이 보인다고 하였고, 미타를 뵈었는지 묻자 천 길 몸으로 현신한 미타불을 뵈었다고 하였으며, 관음보살을 뵈었는지 묻자 현신이 미타와 똑같다고 하였다. 대세지보살을 묻자 뵙지 못했다고 하였다.
謂人曰。吾將逝矣。靑蓮華現吾前。得非
淨土境乎。遂晝夜念佛不輟。命息燭曰
汝軰假燭爲明。吾不須燭。常在光明中
耳。問何所見。曰蓮開四色。問見彌陀
否。曰見彌陀現千丈身。問觀音。曰身
與彌陀等。問勢至。曰不見也。
말을 마치고 갑자기 뛸 듯이 일어서서 향을 집고 이어 말하기를 “『미타경』의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난 벌써 상품上品 왕생했다.”라 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둘째 형인 가조嘉祚는 이 일을 전하면서 “맹세코 내 말이 거짓이라면 발설지옥298)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그 겪은 것이 진실하고, 전하는 말이 절실한 것 아니겠는가. 정토를 믿지 않는 자들은 생각해 볼 따름이다.299)
言訖忽躍起拈香。連聲語曰。彌陀經功德。不
可說不可說不可說。吾已得上品矣。寂
然而逝。仲兄嘉祚。傳其事而矢之曰
予所誑語。墮拔舌獄。其亦見之眞而言
之切與。不信淨土者。可思已。
34. 명明 학희재郝熈載는 전당錢塘 사람이다. 평소에 마음이 올곧고 진실하여 덕행으로 학교에서 이름이 났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해 경전을 지송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으르지 않았다. 만력 신해년(1611년) 봄에 병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내가 꿈에 산에서 부처님을 뵙고자 했는데 부처님은 뵙지 못하고 무수한 새들이 모여 있는 것만 보았다.”라고 하였다. 이후에도 같은 말을 며칠간 하였는데 27일째에는 공양 시에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서 아들 세한에게 말하기를 “오늘 작별함이 하나의 운명(乾坤)이로다.”라고 하였다. 삼경이 되자 홀연 “동자가 와서 맞이하는구나. 연화대에 앉으신 부처님께서 내 앞에 현전하셨으니 나는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부좌(吉祥)300)하여 세상을 떠났다.301)
明郝熈載。錢塘人。生平忠信不欺。以
德行稱于黌校。晩歸佛持誦。夙夜匪懈。
萬曆辛亥春。得疾每睡覺云。吾夢於山
中。求見佛。佛未見。見百鳥叢集。如是
累日。至二十七。食時忽擧首視窓外。
謂其子世翰曰。今日別是一乾坤矣。三
鼓忽云。有童子來迎。佛坐蓮華臺。現
吾前。吾徃矣。吉祥而逝。
35. 명明 과이안戈以安의 법명은 광태廣泰로 전당錢塘 사람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평소 선행을 쌓았으나 깊이 스스로 감추어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정성껏 불법을 신봉하여 현소玄素 스님과 함께 봄가을로 결사를 맺어 염불하고 경을 독송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죽을 날이 장차 이를 것이니 마땅히 서방으로 돌아가는 양식을 마련해야겠다.”라고 하고 드디어 홀로 방에서 일과로 염송하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섣달 21일로 돌아갈 기한을 미리 정하였는데, 이틀 전 저녁에 부인과 자식들이 빙 둘러 앉아 슬피 흐느꼈다. 거사는 웃으며 말하기를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 것이거늘 어찌 슬퍼하리오. 내 바야흐로 정신을 정토에 맺어서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뵈올 것이니 그대들은 정애情愛로 나의 정념正念을 어지럽히지 마시오.”라고 하며 간곡하게 현소 스님에게 조념염불助念念佛302)을 당부하고 다른 말이 섞이지 않도록 하였다. 기한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303)
明戈以安。法名廣泰。錢塘人。性至孝。
素積善行。而深自韜晦。不求人知。晩
歲精誠奉佛。與僧玄素。結春秋二社。
念佛誦經。忽謂人曰。吾大限將至。當
爲西歸資粮。遂自室課誦。昕夕不輟。
預定歸期于臘月二十一。前二夕。母子
環視悲哽。居士笑曰。生必有滅。奚悲
爲。吾方凝神淨域。面覲彌陀。若等愼
勿以情愛。亂我正念。諄諄囑玄素助念
無間雜語。至期而逝。
36. 명明 손숙자孫叔子는 법명이 대우大玗로 어릴 적부터 민첩하고 단정하고 굳세었다. 열두 살에 부친 경오공鏡吾公을 따라 사십팔 대서원을 세운 미타상을 모셨다. 운서雲棲 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오계를 받았고 돌아와서는 오신채五愼菜와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왕래도 끊었으며 잡담도 그치고 오직 염불에만 뜻을 두었다. 그리고 금대金臺에 오르기를 맹세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비구가 연꽃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니, 일심으로 정토에 마음을 두고 있음을 인가한 것이었다. 다시 화인化人304)을 보았고, 『금강경』을 하루 밤낮 독송하다가 깜짝 놀라(矍然)305) 일어나 말하기를 “미타와 관음보살이 함께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라 하고 아미타불을 몇 번 크게 소리 내어 부르면서 담담하게(泊然) 입적하였다. 때는 만력 신해(1611년) 11월 11일이었다.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가 있어 세상에 전한다.306)
明孫叔子。法名大玗。自幼警敏端確。
年十二。隨父鏡吾公。奉四十八願彌陀
像。入雲棲。因受五戒。歸斷葷血。息交
遊罷呫嗶。矢志念佛。誓取金臺。勤苦
不惜身命。俄見兩比丘。持蓮華。以一
心淨土印可。復見化人。誦金剛經一晝
夜。乃矍然起坐曰。彌陀觀音。皆來迎
我。大呼阿彌陀佛數聲。泊然而寂。時
萬曆辛亥仲冬十一日。有淨土十二時
歌。傳世。
37. 청清 한승산韓承山은 평호현平湖縣 사람이다. 사람됨이 정성스럽고 소박하였으며, 농업과 잠업에 힘써 가업을 쌓았다. 밭과 과수원으로 천여 금을 모았으나 평소에 오직 계율을 지키고(持齋)307) 염불을 할 따름이었다. 81세 때인 강희 원년(1662년) 4월에 문득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일 친족들을 두루 청하여 오라. 작별인사를 해야겠다.”라고 하였다. 아들이 시킨 대로 청하여 오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는 다만 칠 일 간 세상에 머물 뿐이오. 일부러 여러분과 함께 작별하고자 불렀소.”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자녀들에게 모두 둘러 앉아 염불하도록 하고 자신도 염불하였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아 가까이 가서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委蛻)308) 뒤였다.309)
太淸韓承山。平湖縣人。爲人誠朴。力
務農桑。積累家業。田園約千餘金。居
恒惟持齋念佛而已。年八十一。康熈元
年四月。忽謂子曰。明日汝可徧請親族
來。我欲與之話別。子依敎請至。對衆
曰。我止有七日住世。特與汝等作別。
至期沐浴更衣端坐。悉令子女。環坐念
佛。自亦念佛。良久不動。近視之。
已委蛻矣。
38. 청淸 교충아喬忠我는 장흥長興 사람이다. 대그릇을 팔아 생업으로 삼았는데, 두 손으로 대나무를 다듬을 때마다 입으로 염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오첨 보문烏瞻普聞 화상을 예경하여 매번 첨산瞻山에서 결제結制할 때마다 선당에 들어갔다. 강희 원년(1662년) 3일 전 친구와 자녀들에게 미리 말하기를 “나는 곧 돌아가리라.” 하였다. 10월 초하루가 되자 옷을 갈아입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였는데,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염불하여 왕생을 돕도록(助念) 부탁하였다. 같은 도를 닦는 스님들에게는 “여러분과 오늘은 헤어지지만 연지蓮池에서 꼭 다시 만날 것입니다.”라 하였고 말을 마치자 조용히 입적하였다.310)
太淸喬忠我。長興人。鬻竹器爲生。兩
手削竹。口中念佛不輟。禮烏瞻普聞和
尙。每瞻山結制。亦入禪堂。康熈元年
三日前。預告親朋子女曰。我將歸去
至十月朔。更衣向西。正坐念佛。有來
視者。令念佛相助。對同道師僧曰。而
今一別。當于蓮池中相會也。言訖悠然
而逝。
39. 청清 적몽리翟夢鯉의 법명은 정진淨震으로 임강臨江 사람이다. 평소에 행실이 성실하고 꾸밈이 없어 정토를 독실하게 믿어 열 번 염불(十念)하는 것을 거스르지 않았고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70세가 넘어도 정신은 또렷(矍鑠)311)하였다. 강희 무신년(1668년) 7월에 문득 병세를 드러내었다. 8월 13일에 승속의 친구들이 모두 병문안을 하러 왔다. 말하기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感蒙垂顧).312) 꼭 염불하여 나의 왕생을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손으로는 혼자서 염주를 돌리고 있었고 조금도 힘들어하는 표정이 없었다. 잠깐 있다가 “내일 아침 떠납니다.”라고 하였다. 약속한 날이 되어 염불하고 입적하였다.313)
太淸翟夢鯉。法名淨震。臨江人。素行
誠樸。篤信淨土。七十念無違。兼誦金
剛。年踰古希。精神矍鑠。康熈戊申七
月。忽示疾。至八月十三日。緇素親友
皆來探視。乃謂衆曰。感蒙垂顧。須念
佛助。我徃生。手自輪珠。毫無倦意。頃
云明早去矣。届期念佛而逝。
40. 청清 심양소沈養素의 법명은 지은智恩으로 임강臨江 사람이다. 오로지 정업淨業을 닦아 더울 때나 추울 때에도 쉬지 않았다. 76세가 되어도 험한 곳을 평지처럼 지나다녔다. 항상 부처님 명호를 불렀으며 『금강경』을 독송하였고 일찍이 『법화경』 30여 부를 펴냈다. 강희 무신년(1668년) 8월 작은 병환이 있어 말하기를 “내 마땅히 적몽리翟夢鯉를 뒤따라가리라.” 하고, 아들에게는 “9월 15일에 돌아간다.”고 하였다.
太淸沈養素。法名智恩。臨江人。耑脩
淨業。寒暑靡間。年登七十六。涉險如
夷。時稱佛號。誦金剛。嘗展法華三十
餘部。康熙戊申八月。偶抱小恙曰。我
當追蹤翟夢鯉也。謂子曰。九月十五
我歸去矣。
아들이 “15일은 길일이 아니니 16일이 좋겠습니다.”라 하자 성난 목소리로 “차라리 앞으로 당길지언정 뒤로 물리지 말라.” 하였다. 14일이 되자 염불하며 입적하였는데 몸에서 신이한 향내가 나 며칠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적몽리와 함께 한 마을에서 수행(熏修)314)하였는데, 이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가서 가고 머무름을 자유롭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참 보기 드문 경우라 할 것이다.315)
子云十五欠利。十六好。厲
聲曰。寧可上前。莫使退後。至十四日
念佛而逝。身有異香。數日不散。此與
翟公。同里熏脩。今乃前後接踵。去留
自由。若此之流。甚爲希有也。
41. 청清 대동자戴童子의 이름은 공렬公烈이며 휴읍休邑 사람이다. 당서塘棲 진수鎮水의 북쪽 변방에 옮겨 살았다. 유학자의 집에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모친을 잃었다. 어린 시절 놀 때에도 예법을 어기지 않았다. 열두 살에 과거공부(擧子業)316)를 시작하여 빼어나게 두각을 나타냈고, 13세에는 더욱 영민하여 하는 행동이 어른 같았다.
그러나 타고난 체질이 맑고 약해서 홍역을 치료하다 그만 위가 상하고 말았다. 오문吳門에게 치료 받으러 갔는데 머물던 곳에 연지 대사의 『죽창수필竹窗隨筆』 몇 종種이 있어 매번 그 책을 가져다가 여러 번 자세히 읽었는데 마치 마음에 부합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太淸戴童子。名公烈。休邑人。流寓塘
棲鎭水北界。生自儒門。週齡失母。爲
兒戱時。不踰禮法。年十二。始習擧子
業。英英露頴。十三益聦敏。動止類成
人。然賦質淸弱。因醫㿀疹。致傷胃氣。
乃就醫吳門。寓所有蓮池大師竹窓隨
筆數種。每取其書。反覆細閱。若有會
心。
7월 6일 홀연히 단정히 앉아 할아버지에게 이르기를 “저를 도와 염불해 주세요.”라고 하고 마침내 낭랑하게 부처님 명호를 소리 내어 불렀다. 할아버지도 이를 따라 했다. 처음엔 소리가 높았으나 점점 소리가 낮아져 마침내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입술은 움직였는데 조금 후에는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때는 강희康熙 계축년(1673년)이었다.317)
七月初六。忽端坐。謂其祖曰。助我
念佛。遂朗稱佛號。其祖和之始則聲高
漸至聲低。終乃無聲。尙見唇動。頃之
唇亦不動。兀然而化。時康熙癸丑歲也。
須臾緩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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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보서 4
정토보서 4
왕과 신하가 왕생한 이야기1~41
王臣徃生類
1. 오장국왕烏長國王169)은 나랏일 보는 여가에 평소 불법佛法을 신봉하였다. 일찍이 시봉하는 신하에게 말하기를 “내가 비록 국왕의 복락을 누리고 있으나 무상無常을 면치는 못한다. 듣자하니 서방정토가 있는데 정신을 깃들일 만한 곳이라 한다. 내 마땅히 저 극락에 나기를 발원하리라.” 하고 이때부터 밤낮으로 염불 수행하였다.
烏長國王。萬機之暇。雅好佛法。甞謂
侍臣曰。朕爲國王。雖享福樂。不免無
常。聞西方淨土。可以棲神。朕當發願。
求生彼國。于是六時行道念佛。
매번 부처님께 공양하고 승려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에는 왕과 왕비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를 30년 동안 그치지 않았다. 임종할 때에 얼굴빛이 기쁜 빛을 띠었으며 응화하신 부처님(아미타불)이 내려와 맞이하셨다. 상서로운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170)
每供佛飯僧。王及夫人。躬自行膳。三十年不
廢。臨崩。容色愉悅。化佛來迎。祥瑞不
一。
2. 송宋 위세자魏世子의 부자父子 세 명은 함께 정토업을 닦았는데 오직 아내만이 닦지 않았다. 딸이 열네 살에 죽었다가 7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제가 서방 세계의 칠보七寶 연못을 보니 아버지와 오빠 세 분은 이미 연화 위에 있으니 돌아가시면 마땅히 극락세계에 날 것입니다. 오직 어머니만 자리가 없어 제가 어머니를 뵙고 알려드리려고 잠시 왔습니다. 부디 유념하소서.”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딸의 말에 느낀 바가 있어 바로 신심을 펴 염불에 힘썼다. 후에 목숨을 마칠 때 또한 안양安養에 왕생하였다고 한다.171)
宋魏世子父子三人。俱脩西方。惟妻不
脩。有女十四死。七日更生。啓母云。兒
見西方七寶池上。父兄三人。已有蓮華。
沒當生彼。母獨無。是以暫歸相告。幸
母留意。母感女言。頓發信心。念佛不
倦。後命終。亦生安養云。
3. 진晉 장항張抗은 선행을 많이 한 분이다. 부처님께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를 매일같이 10만 번 외우겠다고 서원하여 서방에 왕생하고자 하였다. 60여 세에 병이 들어 누웠는데 한마음으로 염불하였다.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서방정토가 바로 집 서쪽 방안에 있다. 아미타 부처님이 연화 위에 앉아 계시고 옹아翁兒는 연화 연못 금모래 땅에서 예불을 드리며 즐겁게 놀고 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조금 있다가 염불하면서 입적하였다. 옹아翁兒는 곧 세 살 때 숨진 장항의 손자 이름이다.172)
晋張抗。積善向佛。誓課大悲心陀羅尼
十萬徧。願生西方。年六十餘寢疾。一
心念佛。謂家人云。西方淨土。只在堂
屋西間之內。阿彌陀佛。坐蓮華上。翁
兒在蓮華池金沙地上。禮佛嬉戱。言訖
良久。念佛而逝。翁兒乃孫子名。方三
歲而亡矣。
4. 당唐 마자운馬子雲은 효렴孝廉173)으로 천거되어 경읍涇邑의 읍위邑尉174)가 된 인물이다. 세곡稅穀을 감독하여 서울로 운송하던 중 풍랑으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관아에 구속되었다. 이에 전일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5년 만에 사면된 후 남릉南陵의 산사山寺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하루는 말하기를 “내가 일생 동안 염불에 힘써 서방의 업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안양에 왕생하려 한다.”고 하였다. 다음 날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합장하였다. 신이한 향기가 집안에 가득한 가운데 기뻐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신다.”하고는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다.175)
唐馬子雲。擧孝廉爲淫邑尉。押租赴京。
遭風舟溺被繫。乃專心念佛。五年遇赦。
入南陵山寺隱居。一日謂人曰。吾一生
精勤念佛。今西方業成。行且徃生安養。
明日沐浴新衣。端坐合掌。異香滿戶。
喜曰佛來迎我。言已而逝。
5. 당唐 백거이白居易는 관직이 중대부태자소부中大夫太子少傅에 이른 분이다. 집을 희사하여 향산사香山寺를 세우고 호를 향산 거사香山居士라 하였다. 녹봉으로 받은 3만 전을 내어 서방극락세계도西方極樂世界圖를 그리고 정례頂禮하고 발원하며 매일같이 그림을 향해 염불하였다. 게偈를 지어 찬송하였다.
唐白居易。官中大夫太子少傅。捨宅爲
香山寺。號香山居士。出俸錢三萬。繪
西方極樂世界圖。發願頂禮。日日向之
念佛。以偈賛曰。
極樂世界淸淨土 극락세계 청정한 국토는
無諸惡道及衆苦 모든 악도와 고통 없다네.
願如我身老病者 원하오니, 나처럼 늙고 병든 이들
同生無量壽佛所 무량수불 처소에 함께 나게 하소서.
또 다른 게偈를 지었다.
余年七十一 내 나이 칠십하나
不復事吟哦 다시는 시를 읊지 않으리.
看經費眼力 경전을 보는 데 안력 허비하고
作福畏奔波 복을 지음에 고생을 두려워한다면,
何以度心眼 무엇으로 마음의 눈을 헤아려서
一聲阿彌陀 한 번 소리 내어 아미타불 염불하리.
行也阿彌陀 걸을 때도 아미타불
坐也阿彌陀 앉아서도 아미타불
縱饒忙似箭 화살처럼 바쁠지라도
不廢阿彌陀 미타염불 그치지 않으리.
어떤 이인異人이 봉래산에 ‘낙천’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전하자 공은 사양하며 게를 지었다.
海山不是吾歸處 바다에 있는 산은 나의 귀의처 아니니
歸即須歸兠率天 귀의한다면 반드시 도솔천에 귀의하리.
今復捨兠率而求生淨土 이제 다시 도솔천 버리고 정토에 나길 구하리니
豈所謂愈擇而愈精者耶 이는 가릴수록 더욱더 정밀해진다 함이로다.
임종 시에 편안하게 앉아서 입적하였으니, 이는 왕생의 징조가 분명하다.176)
極樂世界淸淨土。無
諸惡道及衆苦。願如我身老病者。同生
無量壽佛所。又偈曰余年七十一。不復
事吟哦。看經費眼力。作福畏奔波。何
以度心眼。一聲阿彌陀。行也阿彌陀。
坐也阿彌陀。縱饒忙似箭。不廢阿彌陀。
有異人。傳蓬萊有樂天名。公辭以偈云
海山不是吾歸處。歸即須歸兠卛天。今
復捨兠卛而求生淨土。豈所謂愈擇而
愈精者耶。臨終。安然坐逝。徃生有明
驗矣。
6. 송宋 장적張廸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벼슬이 조교助教에 이르렀다. 원정 율사圓淨律師에게 보살계를 받았고 정토법문을 묻고는 돈독한 뜻으로 수지하여 안양에 나기를 서원하였다. 매번 염불할 때 소리를 높여 용맹하게 하였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원정 율사에게 이르기를 선정禪定에 들어 백색 가릉빈가가 앞에서 춤추며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3년 후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고 입적하였다.177)
宋張迪。錢塘人。官助敎。從圓淨律師。
受菩薩戒。咨問淨業法門。篤志修持。
誓生安養。每念佛時。揚聲勇猛。至失
音猶不已。一日謂圓淨曰。㝎中見白色
頻伽鳥。飛舞於前。又三年。西向端坐。
念佛而化。
7. 송宋 강공망江公望은 조대釣臺 사람으로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질박한 음식을 먹으며 청정한 수행을 하였고, 『보리문菩提文』, 『염불방편문念佛方便文』을 저술하여 승속 간에 염불을 권하였다. 일찍 죽은 아들이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도를 닦으셔서 공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 명부冥府에 금으로 새긴 편액이 있는데, ‘엄주부嚴州府에 사는 강공망은 몸은 간의대부로 있었으나 마음으로 불법을 사모하고 몸으로는 수행을 닦아 마음에 애욕이 없으며 행함에 불법을 어기지 않고, 말함에 있어서 불교의 종풍에 적절하게 부합하였다. 이름을 이미 염부제閻浮提에서 빼냈으니 몸은 반드시 정토에 돌아가리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선화宣和 연간 말에 광덕군廣德軍을 맡았다. 어느 날 아침 아픈 곳 없이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178)
宋江公望。釣臺人。官諫議。蔬食淸修。
述菩提文。念佛方便文。以勸道俗。有
子早亡。託夢云。大人修道。功業已成。
冥府有金字額題云。嚴州府江公望。身
居言責。志慕苦空。躬事熏修。心無愛
染。動靜不違佛法。語默時契宗風。名
已脫乎閻浮。身必歸于淨土。宣和末
知廣德軍。一旦無疾。面西端坐而化。
8. 송宋 갈번葛繁은 징강澄江 사람이다. 소년에 등과하여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이르렀다. 관청에서나 집에서 반드시 정실淨室을 마련해 두고 불상을 안치하였다. 일찍이 입실하여 예송하는데 사리가 공중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정토업을 널리 권장하였는데 승속 간에 여러 사람들이 그의 교화를 받았다.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어 정토에서 거닐다가 갈번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후에 아픈 곳 없이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179)
宋葛繁。澄江人。少登科第。官朝散。凡
公署私居。必營淨室。設佛像。甞入室
禮誦。舍利從空而下。平時以淨業普勸
道俗多服其化。有僧㝎中。神遊淨土。
見繁在焉。後無疾面西。端坐而化。
9. 송宋 왕일휴王日休는 용서龍舒 사람으로 벼슬이 국학國學의 진사進士에 이르렀다. 경전과 역사서에 매우 해박하였으나 하루는 이를 버리고서 말하기를 ‘이는 모두 업을 익히는 것일 뿐 궁극적인 법이 아니다. 내 장차 서방으로 돌아갈 업을 쌓으리라’ 하고 이때부터 염불에 정진하였다. 나이 60에 옷과 식사를 검소하게 하며 매일 천배를 하였고 밤중에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정토문」을 지어 격렬하고 간절하게 염불을 권하였다. 임종하려 할 때 홀연 아미타불을 큰 소리로 외쳤으며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고 하면서 서 있는 나무처럼 우뚝 서서 입적하였다. 집집마다 그의 초상을 그려 그 일을 숭상하였다고 한다. 승상丞相 익국공益國公인 주필대周必大가 찬을 지었고 장자호張子湖가 서문을 썼다.180)
宋王日休。龍舒人。國學進士。愽極經
史。一旦捐之曰。是皆業習。非究竟法。
吾其爲西方之歸。自是精進念佛。年六
十。布衣蔬食。日課千拜。夜分乃寢。作
淨土文。勸世激切懇到。將卒忽厲聲稱
阿彌陀佛。唱言佛來迎我。屹然立化
如植木矣。家家肖像崇事云。丞相益國
公周必大作賛。張子湖作序。
10. 송宋 왕중회王仲回는 관직이 광주 사사 참군光州司士參軍에 이르렀다. 그가 무위자無為子 양공楊公에게 물었다.
“경전에는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라 가르치는데, 조사들은 마음이 곧 정토니 다시 구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宋王仲回。官光州司士叅軍。問無爲子
楊公曰。經中敎人求生淨土。而祖師云
心是淨土。不必更求如何。
양공이 대답하였다.
“시험 삼아 헤아려보건대, 만약 부처의 경계에 있다면 정토도 없고 예토도 없나니 어찌 왕생하기를 구하겠느냐? 만약 중생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찌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예토를 버리고 정토에 나기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楊公荅曰
試自忖量。若在佛境。則無淨無穢。何
用求生。若未出衆生境。安可不至心念
佛。舍穢土而求生淨土乎。
왕중회는 깨달은 바가 있어 뛸 듯이 기뻐하고 물러났다. 2년 후 양공이 단양丹陽의 태수로 있을 때 홀연 꿈에 왕중회가 나타나 말하기를 “그때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어 이제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찾아와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며칠 뒤 왕중회가 임종 7일 전에 미리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전해졌다. 이는 꿈에 나타났던 바로 그때였다.181)
司士感悟 欣躍而去。後二年。楊公守丹陽。忽夢
司士云。向蒙指示。今已得生。特來致
謝。數日而訃至。言司士七日前。預知
時至。與宗黨言別而化。正感夢時也。
11. 송宋 이병李秉은 소흥紹興의 중관中官182)으로 어약원御藥院183)을 관할하였다. 처음에는 정자 휘공淨慈輝公에게 선을 배워 깨달음을 얻었고 만년에는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을 읽어 부처님 명호 외기를 일과로 하였다. 각장閣長184)인 원미元美와 전장殿長인 임사문林師文 등 수십 명과 더불어 전법사傳法寺에서 정토회淨土會를 결사하였다. 홀연히 앓다가 아미타 부처님이 금빛 원광을 머리에 이고 있는 광경을 꿈꾸었다. 7일이 지나자 또한 금빛이 방안에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보고 친속들을 불러 작별을 고하고 바르게 앉아 수인手印을 맺고 입적하였다.185)
宋李秉。紹興中官也。領御藥院。初學
禪于淨慈輝公。有省。晩閱龍舒淨土文。
遂日課佛號。與閣長元美殿長林師文
等數十人。結淨會于傳法寺。忽有疾
夢阿彌陀佛。以金圓光。戴其首。越七
日。又見金光滿房。乃囑別親屬。端坐
結印而終。
12. 송宋 호인胡闉은 관직이 선의宣義에 이른 분으로 평소에 비록 불교를 믿었으나 정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84세에 병이 위급해지자 그 아들이 청조 율사清照律師를 맞이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宋胡闉。官宣義。平日雖信佛乘。而未
諳淨土。年八十四疾革。其子迎淸照律
師。乞垂誨示。
청조 율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알고 있는가?”
호인이 답하였다.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가 청정합니다.”
청조 율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스스로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마음에 잡념으로 더럽혀진 때가 있었는가?”
호인이 답하였다.
“이미 이 세상에 살면서 어찌 잡념이 없을 수 있겠습니 까?”
청조 율사가 말하였다.
“이와 같으니, 어찌 마음이 청정하여 국토가 청정한 경지 를 얻을 수 있겠는가?”
호인이 여쭈었다.
“한 번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으로 어떻게 80억 겁이나 되는 생사의 무거운 죄를 멸할 수 있겠습니까?”
청조 율사가 답하였다.
“아미타불은 널리 서원하신 신통력이 있어 한 번 그 명호 를 부르기만 해도 능히 한량없는 죄를 소멸하시니 이는 마치 빛나는 태양이 눈서리를 녹이는 것과 같다. 이를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照謂闉曰。公知安身立
命處否。闉曰心淨則佛土淨。照曰公自
度。平昔時中。有雜念染汚否。闉曰旣
處世間。寧無雜念。照曰如是則安得心
淨土淨。闉曰一稱佛名。云何能滅八十
億劫生死重罪。照曰阿彌陀佛。有弘誓
神力。是以一稱其名。滅無量罪。猶如
赫日。消於霜雪。復何疑哉。
호인이 드디어 깨닫고는 그날로 바로 스님을 초대해 염불 하였다. 다음 날 청조 율사가 다시 오자 호인이 여쭈었다.
“스님께서 어찌 이리 늦게 오셨는지요? 두 보살께서 강림 하신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청조 율사는 이에 대중을 이끌어 소리 높여 염불하도록 하였다. 호인은 이에 합장한 채 입적하였다.
호인의 왕생에 대해 살펴보면 청조 율사를 알고 모신 이는 아들이니 어찌 큰 효도가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작은 애정에 집착하여 어버이가 재계齋戒하는 것을 깨뜨리는 자는 잘못이 더욱 크다.186)
闉遂省悟 即日延僧念佛。次日照復至。闉曰師來
何暮。二大士降臨已久。照於是率衆厲
聲念佛。闉乃合掌而逝。按闉徃生。得
於淸照。而迎淸照者。子也。豈非大孝歟。
世有執小愛。而破親齋戒者。誤亦甚矣。
13. 송宋 문로공文潞公의 휘는 언박彥愽이다. 낙양의 태수로 있을 때 일찍이 재를 올리려고 용산사龍山寺에 갔다. 공이 예불하려고 법당에 들어갈 때 홀연 불상이 무너져 땅에 떨어지자 소홀히 하고 예경을 드리지 않았다. 어떤 스님이 예경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자 “불상이 이미 부서졌는데 우러러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스님은 말하기를 “불상은 새롭거나 낡은 것이 없고 도道는 생겨남도 사라짐도(生滅)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이 이 말을 듣고 깨닫고는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그는 발원할 때마다 말하기를 “원하오니, 늘 정진하여 일체의 선을 부지런히 닦으리. 원하오니, 심종心宗을 요달하여 모든 중생(含識)187)을 널리 제도하리라.” 하며 매번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염불을 권하였다. 후에 정엄 법사淨嚴法師를 찾아뵙고 십만 명을 모아 정토회를 열어 널리 염불을 권하였다. 여여 거사如如居士가 찬을 지어 이를 기렸다.
宋文潞公。諱彥愽。守洛陽日。甞致齋
徃龍山寺。禮佛入殿。忽見像壞墜地
略不加敬。有僧詰之。公曰像旣壞矣
瞻望何益。僧云像無新故。道不生滅
公聞之有省。作禮而出。每發願曰。願
我甞精進。勤修一切善。願我了心宗
廣度諸含識。每見一切人。則勸以念佛
後叅淨嚴法師。集十萬人。爲淨土會
普勸念佛。如如居士。有頌賛曰。
知公膽氣大如天 그대의 담력과 기상, 크기가 하늘 같으니
願結西方十萬緣 원을 세워 십만 명이 서방 왕생하는 인연 맺게 했네.
不爲一身作活計 제 한 몸 위해 살 궁리 마련하지 않고
大家齊上渡頭舩 수많은 중생들을 모두 배에 실어 건네주었네.
임종할 때는 편안하게 염불하며 입적하였다.188)
知公膽氣大如天。願結西方十萬緣。不爲一
身作活計。大家齊上渡頭舩。臨終安然。
念佛而化。
14. 송宋 마우馬圩의 자는 동옥東玉이며 시랑189)을 역임하였다. 원풍元豊 연간(1078~1085년)에 광익廣益 스님이 『천태십의론天台十疑論』을 건네주자 공은 매우 기뻐 말하기를 “종지宗旨로 삼을 만한 것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조부 충숙공忠肅公이 항주 태수로 있을 때 자운 참주慈雲懺主190)가 염불을 권하여 온 집안이 받들어 행하였고, 마우도 지극한 마음으로 25년간 염불하였다. 숭녕崇寧 연간(1102~1106년)에 작은 병이 있어 옷을 갈아입고 앉은 채 입적하였는데 이때 푸른 덮개 같은 기운이 창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갔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마우가 상품上品에 왕생하는 꿈을 꾸었다.191)
宋馬圩。字東玉。歷官侍郞。元豊中。僧
廣益。授以天台十疑論。公大喜曰。得
所宗矣。厥祖忠肅公。守杭日。慈雲懺
主。敎令念佛。擧家宗奉。圩至心念佛
二十五年。崇寧中小疾。易衣坐逝。有
氣如靑盖。出戶騰空而去。家人皆夢圩
徃生上品。
15. 송宋 종리근鍾離瑾은 함평咸平 3년(1000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용도각龍圖閣 대제待制192)에 이르렀다. 절서성浙西省에 제형提刑 안찰사로 있을 때 자운 참주慈雲懺主를 만나 정토를 독실하게 신봉하였다. 후에 개봉開封을 맡았을 때 나가서는 나랏일에 힘을 다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잠을 자지 않고 염불하였다. 어느 날 밤 문득 가족을 깨워 일어나게 한 후 머리를 감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앉은 채 입적하였다. 종리근이 푸른 연화를 타고 있고 하늘음악(仙樂)이 영접하여 서방으로 가는 것을 온 가족이 보았다.193)
宋鍾離瑾。咸平三年登第。官至龍圖閣
待制。提刑浙西日。遇慈雲懺主。遂篤
信淨土。後知開封。出則盡瘁國事。入
則不寐念佛。忽夜促家人起。索浴更衣
坐逝。擧家見瑾。乘靑蓮華。仙樂迎引
西去。
16. 송宋 염방영閻邦榮은 지주池州 사람으로 20년 동안 왕생주往生呪를 지송하고 염불하였다. 임종할 때 가족들이 꿈에 부처님이 빛을 발하시며(放光) 영접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염방영은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하였다가 홀연히 일어나 몇 걸음 가서 말하기를 “나는 간다.”라고 하고 미소를 지으며 우뚝 섰다. 아내가 놀라 그를 부축하였으나 바로 입적하였다.194)
宋閻邦榮。池州人。二十年。持徃生呪
念佛。將終。家人夢佛放光迎榮。及曉。
榮西向趺坐。忽起行數步曰。我去也。
微笑而立。妻驚扶之。逝矣。
17. 송宋 왕충王衷은 가화嘉禾 사람이다. 서호西湖에서 결사를 하였는데 지식이 있건 없건 신분이 높건 낮건 승속을 가리지 않고 왕생을 원하는 이가 있으면 결사에 들어오도록 널리 청하였다. 그가 지은 『권수문勸修文』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후에 아픈 곳 없이 서쪽을 향해 앉아서 입적하였다.195)
宋王衷。嘉禾人。結社西湖。不問賢愚
貴賤僧俗。但願徃生者。普請入社。有
勸修文。行世。後無疾。西向坐化焉。
18. 송宋 종리 경융鍾離景融은 관직이 조청대부朝請大夫에 이른 분으로 항상 『관무량수경』을 외우며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관직을 물러나서는 의진儀眞의 동원東園 곁에 띠집을 짓고 항상 말하기를 “미타를 알지 못할 때 미타는 서방 저편에 계셨으나 미타를 알고 나니 미타는 다만 우리 집에 있도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묘응妙應 스님에게 「보현행원품」을 외우도록 하고서 향을 사르며 경청하다가 두 손으로 인印을 맺고 입적하였다.196)
宋鍾離景融。官朝請大夫。常誦觀經。
念佛不輟。掛冠。結茅儀眞東園側。嘗
曰不識彌陀。彌陀更在西方外。識得彌
陀。彌陀秪在自己家。一夕命僧妙應。
誦普賢行願品。炷香敬聽。兩手作印而
化。
19. 송宋 전상조錢象祖는 호가 지암止菴으로 금릉金陵의 태수로 있을 때 정토를 진실하게 닦을 것을 염원하였다. 일찍이 향주鄉州에서 접대하는 곳 열 곳을 세우고 모두 ‘정토’ ‘극락’ 등의 명칭으로 이름하였다. 지암고승료止菴高僧寮를 세워서는 스님을 초대하여 도를 이야기하는 곳으로 삼았다. 좌승상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토업에 더욱 나아갔다.
宋錢象祖。號止菴。守金陵日。以淨土
眞修爲念。嘗于鄕州。建接待十處。皆
以淨土極樂等名之。創止菴高僧寮。爲
延僧談道之所。自左相。辭歸。益進淨
業。嘉定四年二月。微疾書偈曰。菡蓞
香從佛國來。琉璃池上絶纖埃。我心淸
淨超于彼。今日遙知一朶開。
가정嘉定 4년(1211년) 2월 경미하게 앓던 중 게를 썼다.
菡蓞香從佛國來 연꽃 향낸 불국토에서 풍겨 나오고
琉璃池上絶纖埃 유리 연못 위엔 티끌 하나 없네.
我心淸淨超于彼 내 마음 청정하여 저 극락에 태어나리니
今日遙知一朶開 오늘 한 송이 꽃 피어남을 멀리서 알겠네.
3일 후 한 스님이 안부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사는 것을 욕심내지 않으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하늘에 나지도 않고 사람이 되지도 않으리라. 오직 정토에 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한 후 말을 마치고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후에 어떤 사람의 꿈에 공중에서 “전상조 승상께서 이미 서방의 연궁蓮宮에 왕생하셔서 자제보살慈濟菩薩이 되셨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197)
後三日僧有問疾者。公曰我不貪生。不怖死。
不生天。不爲人。惟求生淨土耳。言訖
跏趺而逝。後有人夢。空中云。錢丞相
已生西方蓮宮。爲慈濟菩薩。
20. 송宋 구정국咎定國의 호는 성재省齋로 고을의 학유學諭198)를 지냈다. 항상 염불을 하였고 정토에 관한 여러 경전을 읽었다. 매월 24일에는 승속을 모아 소리 내어 경을 외고 염불을 하였다. 가정嘉定 4년(1211년)에 꿈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부처님께서 당신을 불러오라 하십니다. 3일 후면 저 극락에 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자 목욕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며 앉은 채 입적하였다.199)
宋咎㝎國。號省齋。爲州學諭。常念佛
讀淨土諸經。每月三八。集僧俗諷經念
佛。嘉定四年。夢靑衣童告曰。佛令召
君。三日當生彼國。至日沐浴更衣。念
佛向西坐化。
21. 송宋 풍즙馮檝은 호가 제천濟川으로 수령遂寧 사람이다. 태학太學에 급제한 이후 처음에는 선림禪林에서 도를 찾다가 만년에는 오로지 정토업을 숭상하여 「서방문西方文」과 「미타참의彌陀懺儀」를 지었다. 후에 급사중給事中200)으로서 노남瀘南 지방에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해서는 승속을 모아 계념회繫念會를 만들었다. 공주邛州를 맡아서는 뒤쪽 청사에 높은 자리를 만들고 대궐을 향해 정중하게 절한 후(肅拜)201) 승복 차림으로 자리에 올라 관리들에게 사직 인사하고 주장자를 비껴 잡고 무릎 위에 놓고 입적하였다.202)
宋馮檝。號濟川。遂寧人。由太學登第。
初訪道禪林。晩年專崇淨業。作西方文
彌陀懺儀。後以給事中。出帥瀘南。率
道俗作繫念會。及知邛州。于後廳設高
坐。望闕肅拜。着僧衣。登座謝官吏。橫
柱杖按膝而化。
22. 송宋 왕고王古의 자는 민중敏仲인데, 동도東都 사람으로 예부시랑禮部侍郎을 지냈다. 사람됨이 자애롭고 인자하여 만물을 사랑함이 선禪의 종지에 깊이 계합하였다. 또한 정토법문이 뛰어남을 깨닫고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3권을 지었다. 평소에 염불을 정성껏 했으며 염주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움직이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일상에서 서방정관西方淨觀203)으로 불사佛事를 삼았다.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어 정토에서 거닐다가 왕고가 갈번葛繁204)과 함께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이는 분명 왕생의 징조인 것이다.205)
宋王古。字敏仲。東都人。官禮部侍郞。
慈仁愛物。深契禪宗。又悟淨土法門之
勝。著直指淨土決疑集三卷。平生精勤
念佛。數珠未嘗去手。行住坐臥。悉以
西方淨觀。爲佛事。有僧神遊淨土。見
古與葛繁同在焉。徃生有明驗矣。
23. 송宋 소식蘇軾의 호는 동파東坡이며, 관직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남으로 좌천될 때(南遷) 아미타상 한 축軸을 그려서 항상 곁에 차고 다녔다. 남들이 물어보면 답하기를 “이는 내가 서방에 왕생하는 공적인 증거물이다.”라 하였다. 어머니 정程씨가 돌아가시자 호석胡錫이라고 하는 공인工人에게 유물인 비녀와 귀고리에 미타상을 그리도록 하여 왕생천도往生遷度 하였다. 또한 동파의 부친인 노천老泉은 일찍이 극락원極樂院에 장육보살상(丈六菩薩像)을 조성하였다.206) 소식 집안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이처럼 정성스러웠다.207)
宋蘇軾。號東坡。官翰林學士。南遷日
畫彌陀象一軸。行且佩帶。人問之。荅
曰此軾生西方公據也。母夫人程氏歿
以簮珥遺貲。命工胡錫。繪彌陀像。以
薦徃生。又老泉。曾於極樂院。造六菩
薩像。盖蘇氏之歸心三寶。素矣。
24. 송宋 위문진韋文晉은 행동거지가 맑고 지조가 있어208)정업도량淨業道場을 세우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였다. 6월 어느 날 홀연히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하고 합장 염불하면서 입적하였다. 신이한 향기가 안팎에서 풍겨났다.209)
宋韋文晋。立行孤潔。建淨業道場。普
度含識。六月某日。忽面西跏趺合掌
念佛而化。異香內外皆聞。
25. 송宋 가순인賈純仁은 삽천霅川 사람으로 관직이 영주郢州 수령에 이르렀다. 정토업에 마음을 쏟아 늘 재계하고 염불하였다. 병을 조금 앓다가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머리 위로 밝은 원상圓相이 빛났고 신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했으며 밤이 지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210)
宋賈純仁。霅川人。官郢州倅。潜心淨
業。長齋念佛。因微疾。西向宴坐而逝。
頂上白光圓相。異香滿室。經宿不散。
26. 송宋 오자재吳子才의 자는 신수信叟이다. 벼슬을 그만두고 미리 관 하나를 만들어 밤에 그 안에 들어가 누웠다. 동자에게는 관을 치며 “오신수는 돌아가리라. 삼계가 평안치 않으니 머물 수 없도다. 서방정토에 연태蓮胎211)가 있으니 때가 되면 머리 돌려 돌아가리라.”라는 가사를 노래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도 이를 따라 불렀다. 인연이 익었을 때212) 병색 없이 입적하였다.213)
宋吳子才。字信叟。致仕之後。預作一
棺。夜臥其中。令童子擊棺而歌曰。吳
信叟歸去來。三界無安不可住。西方淨
土有蓮胎。及早回頭歸去來。自亦從而
和之。緣熟時。無疾而化。
27. 송宋 장유張揄는 관직이 양절兩浙의 도총관都總官에 이르렀다. 정토에 왕생하기를 서원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염불하였고 온 집안의 어른이나 아이들이 모두 따라해서 교화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못을 파서 연꽃을 심었고, 매일 처자를 거느리고 부처님 명호를 만 번 부르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효종孝宗 황제가 친히 ‘연사蓮社’ 두 글자를 써서 하사하셨다.214)
宋張揄。官兩浙都緫管。期生淨土。刻
勵念佛。闔門長幼。靡不從化 池栽
蓮。日率妻子。課佛萬徧。孝宗皇帝。親
書蓮社二字賜焉。
28. 명明 만력萬曆 연간(1573~1620년)의 고공 보당顧公寶幢의 휘는 원源으로 정토업을 닦는 데 뜻을 두었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승속을 다 모아 놓고 아미타불을 열 번 염송하도록 하였다. 염불 소리가 이어지는 매우 짧은 시간에 신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차올랐다. 공은 자신의 몸이 연꽃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고,
明萬曆間。顧公寶幢。諱源。志修淨業
疾篤集僧俗。十念阿彌陀佛。唱和相續。
須臾間。衆忽聞異香滿室。公自見身坐
蓮華中。
아들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공이 타이르기를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느냐. 어느 곳이 곧 이곳이니라. 제불諸佛이 나를 맞이하여 삼경(밤11~1시)에 나를 데리고 가실 것이다. 나의 서원은 이미 이루어졌고, 너희들의 서원도 위무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시간이 되자 미소를 머금고 입적하였다. 소종백少宗伯215) 은추명殷秋溟공이 전傳을 지었다.
諸子悲戀不勝。諭曰汝等謂我
徃何處。何處即此處。諸佛迎我。三鼓
啓行。我願旣遂。汝等之願。亦慰矣。至
期含笑而去。少宗伯殷秋溟公。作傳。
연화 대사蓮華大師는 말한다. 몸이 연꽃 속에 앉아 있다는 것은 새로 태어났으되 반드시 왕생극락하였다는 것이요, 어느 곳이 곧 이곳이라고 한 것은 떠나갔으되 실제로는 떠나가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이는 근래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 눈 밝은 사람은 참작하기 바란다.216)
蓮華大師曰。身坐蓮華中。生則決㝎生
也。何處即此處。去則實不去也。此近
時實事。明眼人叅之。
29. 명明 해염海鹽의 주원정朱元正이 제생諸生217)으로 있을 때 공맹孔孟의 학문을 강의하였는데 단정하고 방정하며 구차하지 않은 성품(端方不苟)을 지니고 있었다. 60세가 넘어서는 선정의 즐거움(禪悅)에 깊이 들어 집 뒤에 세 칸짜리 허름한 집을 지어 놓고 문을 잠그고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문 위에는 ‘내가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하라譬如我已死了’라는 여섯 글자를 써서 붙였다. 매일 공과功課로 오전에 『법화경』을 한 권 외고 오후에는 천 번을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明海鹽朱元正。爲諸生時。講孔孟之學
端方不苟。六十後。深入禪悅。于宅後
敝屋三楹。閉關不與家事。門上題。譬
如我已死了六字。每日功課。午前諷法
華經一卷。午後念佛千聲。
경신년 7월에 아픈 곳이 없었는데 홀연 아들에게 말하기를 “여기서는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으니 떠나야겠다.”라고 하였다. 아들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묻자 서방으로 간다고 하였다. 아들과 손자가 강하게 만류하자 허락하여 머물렀다.
庚申七月無疾。忽謂子曰。吾在此無事。可行矣。子
問何處去。曰西方去。子及孫固留。許
之。
섣달 초하루에 병을 보이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 가족들이 놀라고 당황하여 장례 준비를 하자(治後事)218) 공은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달 8일 밤중에 가족에게 미리 경계하기를 “갈 때가 되었으니 부녀자는 오지 못하게 하고, 두세 시간이 지나서 오게 하라. 또한 곡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때가 되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이때 자유자재로 왕래함이 이와 같았다.219)
至臘月朔。示疾不食。家人倉皇治
後事。公曰勿忙。此臘八半夜事也。預
誡家人。臨行時。勿令婦女來。過二三
時來。亦勿哭。及期端坐而逝。爾時來
去自由。如此。
30. 명明 대백호戴百戶와 도백호陶百戶는 판사辦事로서 순무巡撫220)의 휘하에 있었다. 이때 전당강錢塘江에 만강홍滿江紅이라는 살인을 일삼는 큰 도적이 있었다. 그 무리의 세력이 매우 강성해서 관리들이 감히 체포하지 못하자 순무가 두 사람을 몰래 불러 직접 패牌 하나를 주면서 만강홍을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두 사람은 몸을 던져 도적 떼에 들어가 여러 방법으로 꾀어 잡아왔다. 만강홍은 형벌을 당할 때 두 사람을 통렬하게 원망하면서 반드시 목을 베어 버리겠다고 맹세하였다.
明戴百戶。與陶百戶。共辦事巡撫麾下。
時錢塘江。有殺人巨盜。號滿江紅者。
黨勢熾盛。官吏不敢捕。巡撫潜召二人
手給一牌。令捕滿江紅。二人身入賊。
多方誘致。臨刑痛恨二人。誓必索命。
두 사람은 두려워하여 관직을 그만두고 재계하며 경을 외고 염불하여 맺힌 원한을 풀어 주었다. 대백호는 친척들과 미리 작별하고 때가 이르자 앉아서 입적하였다. 조금 있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도형(백호)이 임종할 때에221) 정념正念이 한 번 어긋나 길가로 내달렸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주러 왔을 뿐이오. 나는 내일 떠날 것이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일찍 다시 앉아서 입적하였는데, 코에서 옥주玉柱222)가 나오고 신이한 향이 방에 가득 차 흩어지지 않았다.223)
二人懼。棄職持齋。誦經念佛。以解此
寃結。戴百戶。忽豫別親屬。至期坐脫。
良久又醒。謂曰陶凡臨時。正念差錯走
路頭。故我來與汝等說耳。明日我當去。
次早復坐脫。鼻垂玉柱。異香滿室不散。
31. 명明 정명등丁明登은 호가 검홍劍虹으로 강포江浦 사람이다. 만력萬曆 기유년(1609년)에 운서 대사雲棲大師에게 귀의하여 정토법문을 독실하게 믿고 호를 연려蓮侶라 고쳤다. 만력 병진년(1616년)에 등과하였고 온릉溫陵에서 벼슬을 할 때 언제나 출세대사出世大事224)를 말하여 승속을 교화하니 감동하고 깨우친 이가 많았다.
明丁明登。號釼虹。江浦人。萬曆己酉。
歸依雲棲大師。篤信淨土法門。改號蓮
侶。萬曆丙辰登第。宦遊溫陵。每以出
世大事。開化緇素。感悟甚多。
처음에 천주泉州의 사리司理225)로 부임하여, 법에 따라 죄를 가리고 문책(憲批枷責)226)함에 있어서 공정하게 법을 세웠다. 쌀을 내어 죄를 대신하려는 자의 청을 들어주어 그 쌀을 가지고 굶주린 죄수를 넉넉하게 먹였으며 의원을 불러 병을 돌보도록 하였다. 또한 염주 백십 관을 사서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염불하도록 하며 항상 말하기를 “사람이 환난 중에 처하면 발심하는 이가 많다. 나는 그러한 회한悔恨을 틈타서 염불을 권장하는 것이니 다행히 감옥에서 나가거든 선량한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집안의 부녀자들이 불법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선사禪師를 초빙해 대승大乘을 연설하도록 하고 휘장 안에서 듣도록 하였다. 가족들 중 동시에 삭발 출가한 이가 네 명이나 되었다.
初任泉州司理。憲批枷責。公立法。願納米者
聽。用以贍獄貧。擇醫視病。更買素珠
百十串。散衆囚使念佛。恒語人曰。人
在患難。發心者多。吾乘其悔恨。導之
念佛。幸而出獄。爲良民矣。憫念室中
閨流。不聞佛法。請禪師。演說大乘。令
于幃內聽之。眷屬一時披剃者四人。
을유년(1645년) 겨울에 병이 심하여 11월 초하룻날 소疏를 갖추고 부처님께 고하면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간구하였다. 그렇게 매일 소疏 하나를 태우고 10일째 되는 날, 음식은 보통 때처럼 먹었고 얼굴은 빛과 윤기가 났으며 간절하게 함께 서방에 왕생하자고 친지들에게 널리 권하고서 탑상 끝에 잠시 눕는 듯하더니 조용히 입적하였다. 『고향소식故鄉消息』, 『연루청음蓮漏清音』, 『담화淡話』 등의 책을 펴냈는데 모두 정토에 관한 중요한 책들이다.227)
乙酉冬病劇。十一月朔。具䟽告佛。決意
願求徃生。日焚一䟽。至十日。粥飮如
常。面色光潤。諄諄以同生西方。普勸
親知。就榻稍臥。寂爾長徃。輯有故鄕
消息。蓮漏淸音。淡話等。皆淨土要書
也。
32. 만력萬曆 연간(1573~1620년)에 변융 선사辨融禪師는 근거 없이 떠도는 말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다. 옥졸이 대사의 명성이 높아 금이 많은 줄 알고 잘 봐주는 대가로 많은 돈을 요구하였으나 변공은 절집 어디에서 돈이 나오겠냐고 말하였다.
萬曆間辨融禪師。以蜚語下獄。獄卒以
師名重。必多金。厚索其酬。辨公曰。
僧家何處得錢。
옥졸은 갑상匣床228)을 꺼내 그를 가두었다. 변공이 공중을 향해 “대방광불화엄경”을 부르자 화엄회상 불보살이 갑상匣床 가득히 시끄럽게 메아리를 울려 자물쇠가 끊어지고 갑상이 부서졌다. 소문이 감옥(提牢)을 넘어 결국 임금에게까지 들렸고 임금은 조서를 내어 출옥하도록 하였다.229)
獄卒以强盜匣床。匣之
辨公向空唱云。大方廣佛華嚴經。華嚴
會上佛菩薩。滿匣床。聒聒作响。鎻斷
床碎。事聞提牢。遂達御前。奉詔請出。
33. 숭정崇禎 연간(1628~1644년)에 대로大老230)들 중에 하옥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가령 국경(封疆)231)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죽음(大辟)232)을 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때 산동山東지방 순무군巡撫軍 여집생余集生 대성大成이 옥에서 먼저 큰소리로 염불을 하면 따라 염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결할 기한이 되어 서로 모여 염불하고 밤낮 그치지 않았다. 홀연히 벽 가득찬 불상을 보았는데 빛이 번쩍번쩍 빛나 대중들이 모두 놀라 예경하였다. 이에 곧 감형하라는 조서를 받게 되었다. 여집생余集生과 심언위沈彦威는 둘 다 국경을 담당한 이들로서 참수되려다가 모두 수자리 하는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233)
崇禎間。大老下獄甚多。若事關封彊
無有免于大辟者。時山東撫軍余集生
大成在獄。首唱念佛。諸公多從之。處
決届期。相聚念佛。晝夜不絶。滿壁忽
覩佛像。光明閃爍。衆悉驚禮。旋奉恩
詔末減。余集生沈彥威。皆以封彊擬斬
俱獲遣戌出獄。
34. 순치順治 6년(1649년)에 각랑 선사覺浪禪師는 판에 글을 새기다가 맡은 일을 그르쳐서 태평太平의 감옥에 하옥되었다. 각랑 선사는 옥중의 사람들에게 염불을 하게 하고 권선의 말로 교화하였다. 옥졸들은 회심하여 재계하고 염불하였다. 매일 초경(7~9시)에 선사는 작은 북채를 잡고 옥졸들은 장향長香을 쥐고서 ‘대중들은 일심으로 염불하라’고 외치면 죄수들이 모두 울먹이며 염불하였다. 사람들이 보시를 하면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풀어 주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상관이 태평부에 이르러 감옥에 출두하여 몸소 선사를 석방하였다. 이로 인하여 감옥의 죄인을 잘 다스려 죄를 덜어 석방되는 이가 많았다.234)
順治六年覺浪禪師。因刻書忤當事。下
太平獄。浪公敎獄中人念佛。善言勸化
獄卒回心。亦持齋念佛。每至一更。浪
執小擊。獄卒執長香。呼云大衆一心念
佛。犯人莫不號泣念佛。人餽布施。悉
周貧乏。不數月。上官臨太平府。入獄
躬釋浪公。因之淸理監犯。輕罪多得宥
放。
35. 명明 당의지唐宜之의 휘는 시時로 호주湖州 사람이다. 연지 대사蓮池大師를 찾아뵙고 정토업을 부지런히 닦았다. 처음에 명경明經235)과에 급제하여 수양壽陽 땅에서 별가別駕236)를 역임하였고 이어서 양국襄國을 보좌하였다. 온 집안이 모두 삼보에 귀의하여 새벽이면 각자 경문經文을 수지 독송하였고 저녁이면 함께 모여 염불을 하였다.
숭정崇禎 신사辛巳년(1641년) 2월에 이자성의 반란군(闖賊)237)이 양양襄陽을 격파하자 공은 단례문端禮門 왼쪽 우물에 투신하였다.
明唐宜之。諱時。湖州人。叅蓮池師。勤
修淨業。初以明經。別駕壽陽。繼輔襄
國。擧家眷屬。悉歸三寶。晨則各持經
文。夕則同集念佛。崇禎幸巳仲春。闖
賊破襄陽。公投端禮門左井中。
가족들이 겨드랑이를 잡아 구출하였는데 숨이 이미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임금의 명에 따라 자세히 조사를 받은 후 관대하게 처분되었다. 곧바로 휴가를 청하여 마을로 돌아왔는데 양양이 12월 5일에 다시 도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처음에는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이어 우물에 빠졌어도 죽지 않았으며 마침내는 법으로도 죽음을 당하지 않았으니, 이 어찌 대자대비께서 남모르게 도와주신 불가사의한 공덕이 아니겠는가? 공은 스스로 말하기를 몇 년 동안 부처님과의 감응(感應道交)238)이 있었다고 하였다.
家人掖之而出。氣已絕復甦。奉旨提究。得從
寬典。旋請假歸里。而襄陽季冬五日
再圍矣。初不死于寇。繼不死于井。終
亦不死于法。豈非慈悲默祐。功德不可
思議者耶。公自述數年來。感應道交
정해년(1647년) 12월 8일 장간사長干寺에서 염불하며 불탑에 예배하다가 탑의 광채 속에서 부처님 상호를 뵈었는데, 불상은 황금색이요 그 빛은 백설이나 얼음이나 깨끗한 거울과 같았다고 한다. 무자년(1648년) 7월 5일에는 선당禪堂에서 염불하다가 창문을 여는 순간 문득 종산鍾山이 큰 바다 위에 떠 있는 광경을 보았다. 금빛 부처님이 우뚝 서 있고 상서로운 빛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는데, 지붕과 담장, 큰 나무(喬木)와 숲(叢林)은 모두 텅 비어 보이지 않았다.239)
丁亥臘八。於長干寺。念佛禮塔。見佛
相於塔光。佛黃金色。光則如雪。如氷
如明鏡。戊子七月五日。念佛于禪堂。
開䆫忽見鍾山浮巨海中。金佛巍巍。祥
光燐爍。瓦礫墻垣。喬木叢林。盡空不
見。
무릇240) 보통사람들은 서방 극락세계가 10만억 불국토를 지나서 있다는 말을 듣고 문득 멀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확인한 것으로 볼 때 10만억 불국토는 곧 눈앞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목숨을 마치면 아주 잠깐 사이에 왕생하나니 어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극복周克復241)이 말하기를, 거사로서 불지견佛知見242)을 증득한 이는 근세에 오직 당의지 한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夫恒人見說西方極樂。過十萬億佛
土。輒以爲遠。今由所見觀之。十萬億
佛土。即在目前。畢命彈指而生。詎非
生于方寸心哉。周克復曰。以居士而證
佛知見者。近世惟公一人而已。
36. 청清 김광전金光前은 병사 출신(起身戎伍)243)으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옳은 일이면 반드시 마음을 집중하여 행하였다. 아내 공龔씨는 여주廬州 효렴孝廉244) 집안의 딸로 전해지는데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혼란스러운 때를 만난 것을 애통하게 여겨 서방에 귀의하였다. 또 경서나 역사서를 대략 읽을 줄 알았고 무릇 불경을 보면 아침저녁으로 지송持誦하였다. 광전은 아내의 행위에 감동하여 독실하게 믿게 되었다.
太淸金光前。起身戎伍。目不識字。然
見有義之事。則必銳意爲之。其妻龔氏。
傳是盧州孝廉之女。痛遭離亂。歸心西
方。且粗知書史。凡遇梵典。晨夕持誦。
光前爲之感動而篤信焉。
순치順治 계사년(1653년) 겨울 정벌을 명 받고 집에도 들르지 않고 부부가 함께 민閩땅에 가게 되었다. 무림武林을 나설 때에 구덕 화상이 영은사에서 설법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로부터 염불에 더욱 간절하고 굳은 뜻을 가졌다.
順治癸巳冬。奉討不庭。相攜入閩。道出武林。聞具
德和尙。說法靈隱。同徃叅問。親承開
示。自此潜心念佛。愈切愈堅。
신축년(1661년) 여름에 서울로 돌아와 전당錢塘 강간江干에 주둔할 때(駐節) 김공이 갑자기 병이 들자 아내는 의원을 부르려 했으나 광전이 말리며 말하기를 “내가 예전에 당신과 함께 영은사에 갔었고, 이제 바로 여기에서 몸을 바꾸는 활계(轉身之活計)245)를 이루어 화상이 설법하신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을 따름이오. 어찌 약을 쓰겠소?”라고 하였다. 아내는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이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를 줄 몰랐습니다.”라 하고 드디어 거처를 옮겨 숭성암崇聖菴으로 들어갔으니 남편이 세상을 떠날 장소를 얻으려 한 것이다.
辛丑夏。還京。駐節錢塘江干。金忽示疾。龔爲
延醫。光前止之曰。我昔與汝。親叩靈
隱。今正欲于此。作轉身之活計。求和
尙一證明耳。何以藥爲。龔大笑曰。不
意光前。亦得到此田地。遂徙帳入崇聖
菴。盖欲夫死得其所也。
암자에 10일 머물다가 아내는 관 두 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와 남편이 함께 갈 것입니다만, 돌아보건대 공을 위해서 뒷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저는 뒷일을 마친 후 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광전이 이 말을 듣고 기쁜 빛을 띠며 입적하였다. 아내는 일을 마친 후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하루는 몸이 점점 피곤함을 느끼고 관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 깨어나서 “때가 되었다.”라 말하고 단정하게 입적하였다. 얼굴빛이 생기가 있었다.246)
菴居旬日。龔造二棺。謂人曰。妾與金公偕行矣。顧
無人爲公畢後事耳。事畢我當徃矣。光
前聞之。即怡然長逝。龔事畢屏絶飮食
晝夜不臥。一心念佛。一日覺身稍倦
倚棺而眠。少頃醒曰。時至矣。端然趨
寂。顏色如生。
티베트 그 비밀의 만트라 속으로
티베트 그 비밀의 만트라 속으로
(이 책을 겔라 린포체와 도제 린포체, 따시 린포체와 3세 리메 법왕 켄체 린포체께 바칩니다.)
시작하며
1997년 초겨울에 여러 해 동안 발행하던 문학잡지를 그만두고 티베트로 떠나기로 결심한 나는 서가에서 '히말라야의 성자 미라래빠'와 '티벳 사자의 서' 두 권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2003년 11월 황엽
1부 티베트로
2부 아라사
3부 인도로
4부 다시 티베트로
1부 티베트로
몇 권의 책들, 그리고 꿈
*티베트Tibet라는 말은 사실 서양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일 뿐,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나라를 '뵈'라 하고 티베트 사람은 '뵈바'라고 한다.
미라래빠
복수는 성공했지만 죄책감이 미라래빠를 괴롭혔다. 그는 통절한 참회끝에 위대한 역경사 마르빠를 찾아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스승 곁에서 6년 8개월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허물어진 옛집에 어머니의 해골이 뒹굴고 있었고 여동생은 거지가 되어 타향을 떠돌고 있었다. 그는 고향 남쪽 지방의 동굴에서 9년을 고행하며 수행하였다.
미라래빠는 쐐기풀로 생명을 이어 갔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과 혹한에도 무명옷마 입거나 때로는 옷도 음식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직 수행에 열중했다. 오랜 고행 끝에 붓다의 경지에 이른 그는 84세 되던 해에 그를 시기한 학자가 보낸 독을 마시고 육신의 옷을 벗을 때 까지 깨달음을 노래했는데 이것을 엮은 '미라래빠의 십만송'이 지금 까지 전해지고 있다.
미라래빠는 숫수룡해 첫가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쓰고, 여기에 목화토금수의 오행에 암수의 음양을 조합해 만든 60진법이 쓰이는데 미라래빠가 태어난 숫수룡해는 육십갑자로 따지면 임진년이 된다. 1038년 이나 1040년 혹은 1052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세사을 떠난 것은 84세 되던 나무토끼해, 즉 을묘년 이라고 되어 있었다.
'티벳 사자의 서'를 간략하게 말하면 '죽음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지인즉 사람이 죽으면 49일간 바르도라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데, 이 죽음과 바르도, 재탄생의 체험을 잘만 활용하면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빠드마삼바바라고 알려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흔히 그를 '구루(어둠을 몰아내는 자) 린포체(보석)' 라고 부른다.
'티벳 사자의 서' 및 이를 설명하는 스승들의 여러 저서에 의하면 사람의 육체는 지, 수, 화, 풍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감각 의식은 이 원소들로 부터 생겨난다.
보통 사람은 죽음이 닥쳐와 육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차례로 분해되고 두 개의 빈두가 아나하따 차끄라에서 만나 최후의 순간에 정명광이 현현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데 극도의 혼돈과 공포와 고통을 겪기 때문에 이 과정을 인식할 틈도 없다.
그래서 근원적 광명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바로 바르도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자가 살아 생전 명상수행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그는 이런 모든 죽음의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척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볼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투명한 빛이 일어날 때 그것이 자신의 본성임을 깨닫고 그 근원적 광명과 합일해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베이징
나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갈 것인지 티베트로 갈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본토 티베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성취자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40년 가까이 티베트의 동굴에서 밀실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로상교수가 말했다.
티비트가는 길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는 난주였다.
'황선생, 지금 이 도시에 따시 린포체라는 분이 내려와 있는데, 그는 내가 지난번 말했던 성취자의 마음의 아들입니다. 성취자가 평생 바위동굴에서 수행만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거기까지 간다고 해도 만날수 있을지, 만난다 해도 제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그의 바위동굴까지 가는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죠. 따시 린포체는 그 성취자로부터 모든 법을 전수받았어요. 그를 만나기도 그의 스승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침 인도에서 온 성자들을 마중하기 위해 여기 와 있다는 말을 듣고 당신에게 알려주려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그를 만나 보겠어요?'
로상이 무릎걸음으로 따시 린포체 앞에 다가가 통증을 호소하며 오른쪽 어께를 내밀었다. 린포체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어께에 훅~ 하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무슨 거창한 의식도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신비한 주문을 외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전까지 움직이지도 못했던 어께가 자연스럽게 앞뒤로 돌아갔다. 로상과 닝란은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로상이 따시 린포체에게 나를 소개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소?'
'미라래빠와 같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미라래빠와 같은 스승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요?'
'바르도 퇴돌과 같은 밀교의 법을 구하고 싶습니다.'
'법을 얻으면 무얼 하고 싶은 거요?'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라싸는 높은 곳이라, 처음 가는 사람은 비행기보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하오. 게다가 당신은 지금 심한 고산반응을 겪고 있으니 비행기는 더욱 위험하오. 지금 상태로 라싸에 가면 죽지는 않겠지만 실려 내려오게 될 거요. 라싸에 갔다가 바로 실려 내려오는 외국인들을 나는 종종 보았소. 그렇지 않은가, 로상?'
'가서 표를 물러 와라. 당장!'
'내일 아침 8시에 숙소로 차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시오.'
입문
다음날 으른 아침, 나는 따시 린포체가 보낸 차를 타고 시닝 시내를 벗어났다. 차는 몇 시간을 달려 작은 암자 앞에 멈추었다.
나는 이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서 다시 따시 린포체와 마주 앉았다.
'그래, 당신은 어떤 수행법을 얻고자 하오?'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수행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응시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법을 줄 수는 있소. 그런데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밟아야 하오. 지금 당장 당신에게 법을 줄 수는 없고, 준다 한들 당신이 소화할 수도 없소. 네 가지의 기초 수행을 마치고 나면 당신에게 법을 주겠소.'
'밀법을 수행하려면 먼저 '귀의'를 해야 하오. 윤회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불 법 승(삼보)를 의지하는 것이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는 불법승 삼보는 스승을 통해 체현된다오. 나에게 법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스승이니 스승과 불법승에 사귀의 한다고 해야 할 것이오.
불법승 삼보와 스승께 귀의 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본질적으로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윤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오. 불경에서는 이때 마치 개에게 쫓기던 어린이가 공포에 질린 채로 어머니의 품으로 뛰어드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오.'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려면 먼저 관정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빠드마삼바바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밀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으로부터 받는 관정이다. 관정을 받음으로써 스승에 대한 큰 믿음을 갖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입문식은 사원 안의 오래된 건물에서 치러졌다.
상 맞은 편에 따시 린포체가 황금색 띠를 두른 굽이 높은 모자를 쓰고 노란색 가사를 두르고 앉아 있고, 그 옆에 다섯 명의 승려가 서 있었다. 두 명은 인도에서 왔다는 성자와 그의 시자였다. 나는 그 방에서 관정을 받기 위해 따시 린포체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긴 입문식이 끝나고 나는 따시 린포체가 따라주는 감로를 받아 마셨다.
'나는 네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전생에 우리 법통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따시 린포체는 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냈다. 그리고 잘라낸 머리카락을 힌 종이 위에 얹어 나에게 주었다. 추잉뻬마 라는 법명도 함께 내려 주었다.
'추잉은 40년째 바위 동굴 속에서 밀실수행을 하고 계시는 내 스승님의 이름이다. 스승님을 기리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따서 네 이름을 지었다. 추잉은 법계라는 뜻이고, 뻬마는 연꽃이라는 뜻이니라. 잘라낸 머리카락은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나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거라.'
'이것은 길상초라고 하니라. 오늘 밤 이것을 베개 밑에 두고 자거라.'
암자를 떠나 다시 시내로돌아갈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한참을 달려 산을 내려온 우리는 전날의 그 아파트로 갔다. 전등이 없는 아파트의 복도는 칠흑처럼 어두었다.
집안에서는 세 명의 어린 비구니들이 희미한 램프불 아래서 소리 없이 움직이며 재빨리 음식을 차렸다. 한참만에 차려진 음식은 티베트식 수제비, 탠둑이었다.
'네 머리속은 너무 복잡하구나, 이제 책은 그만 봐라.'
식사가 끝나고 따시 린포체는 나를 예의 텅빈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입문하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네 가지 수행법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이 네가지는 '기초수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 일정한 횟수만큼만 해 버리고 나서 수행이 높은 단계로올라가면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도제셈바 정화 수행법과 구루요가는 평생토록 해야만 하는 수행이다. 티베트의 스승님 중에는 평생 동안 구루요가를 수행하신분도 있다.'
'이 네가지 기초 수행은 각각 10만 번씩 행해야 한다. 만트라를 한번 외울 때마다 오체투지를 한 번씩 하거라. 그렇게 10만 번, 그러나까 총 40만 번이다. 네 가지 기초 수행은 1년 안에 마쳐야 한다.'
네 가지 기초 수행
베이징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네 가지 기초 수행을 시작하지 못했다. 나는 한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따시 린포체가 주신 책을 앞에 두고 절을 시작했다. 첫날 나는 1천 번의 오체투지를 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난 어느날 아침.
절의 횟수는 오만 번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통증은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속에 만트라가 녹음되어 있다. 이 테이프를 들으며 수행하면 훨씬 쉬울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 '이분은 나왕 초펠 상보 린포체이시다. 우리는 그를 겔라 린포체라고 부른단다. 훌륭한 수행자이자 학자이며 티베트에 있는 우리 사원 아라사의 교수시다. 아까 나온 오두막은 그분이 수행하셨던 곳이란다. 그분은 전생에 나의 제자였고, 금생에는 다시 나의 스승이 되셨다.'
따시 린포체는 밀실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낭시로 떠났다.
'여기서 며칠 쉬다가 돌아가 다시 절을 계속해라.'
'내일 베이징으로 돌아가겠어요.'
무엇보다 몇년간이나 나의 꿈에 나타났던 할아버지가 스승의 스승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회의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산
비행기는 두 시간 만에 베이징 비행장에 도착했다. 36시간이나 걸려간 멀고 먼 길이었다.
하루에 1천배 2천배 많을 때는 3천배까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절을 했다.
절이 5만 번을 넘어가자 척추에서 가느다란 핏줄 같은 열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열은 점점 강해져서 등줄기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열기가 솟구쳐 오르고 온몸에서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 나왔다. 몇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등줄기를 타고 떠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강렬한 열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붙어 있던 살점이 모두 빠져 나갔고 정수리를 중심으로 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해서 백발이 되어 버렸다.
나는 놀랐다. 나는 수억만 개로 분리된 개체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였다.
이제 절은 20만 번을 넘어가고 있었다.
불의 강을 건너서
따시 린포체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2000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기초 수행을 마칠때까지 40만번의 절을 한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내일 시닝으로 오너라.'
그날 밤 나는 비밀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빼마, 네가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 책속에는 '바르도 퇴돌'이 들어있었다.
'명심하거라. 세상에 한번만 듣고 해탈에 이르는 법은 없단다. 살아 있을 때 부지런히 '바르도 퇴돌'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야.'
'네 딸이 귀의하지 않더라도 '바르도 퇴돌'을 듣는 것만은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된단다. 나중에 딸이 바르도에 가게 되었을 때, 살아 있을 때 들었던 '바르도 퇴돌'의 가르침을 모두 기억하고 이해하데 될 테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평상시에 '바르도 퇴돌'을 외우면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2부 아라사
난주
티베트 동부 캄 지방에서 높은 스승으로 추앙받던 통총 데빠는 1881년 티베트의 데게에서 태어났다.
평생 밀실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던 그가 1954년 어느날 제자를 불렀다.
'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난다. 나는 다음 생에 사원으로 돌아와 파괴된 사원을 복구하고 더 많은 중생과 불연을 맺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통총 데빠의 환생 따시 린포체는 그의 사원으로 돌아갔고 전생에 약속대로 파괴된 사원을 복구하는데 힘을 썼다. 2001년 5월, 내가 따시 린포체의 부름을 받고 난주로 갔을 때, 그는 복원사업의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8월이면 사원이 완공된다. 그러면 나는 사원을 복구하는데 시주한 중국인 제자들과 시주자들을 사원으로 초대해서 개막식을 하려고 한다. 그때 너도 티베트에 있는 우리 사원에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8월이 지나면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왼쪽 손목에 감겨 있던 염주를 벗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가 수행하거나 독경을 할때 늘 그 염주를 손에쥐고 돌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라사
몇 달 뒤, 나눈 불학원 완공식에 참석하느라 따시 린포체의 초청을 받고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난주에 도착했다. ...그러고도 하루를 더 달려 '낭시'라는 작고 초라한 읍에서 이틀째 밤을 맞았다.
'여기부터는 신의 땅이다.'
따시 린포체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엄격한 스승에게도 고향은 안도와 기쁨을 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해발 5천 미터를 넘어 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차는 6천 미터의 고갯길을 넘은 후에 비로소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장장 5일간의 고통스러운 여장 끝에 도착한 곳은 티베트 동부 캄 지방 참도에 자리한 작고 유서 깊은 사원 아라사였다.
해발 3천 미터에 자리한 아라사는 팔을 벌리고 있는 산들의 품속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나왕 초펠 상보, 겔라 린포체
다음날 새벽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아라사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
'코리아, 코리아.'
다와는 길에서 만난 승려들에게 이렇게 나를 소개했다. 승려들은 '코리아'라는 말을 듣고는 매우 우호적인 표정으로 합장해 인사를 보내 왔다.
'당신에게 줄 것이 있어요.'
'나왕 초펠 상보 린포체세요. 우리는 그분을 겔라 린포체라고 불렀답니다.'
'겔라 린포체는 아주 훌륭한 스님이세요. 따시 린포체의 전생의 제자였고, 금생에는 스승이었어요. 저의 스승이시기도 하고요. 그분은 60년을 밀실에서 수행하셨는데 경전의 지식과 수행과 체험을 다 갖춘 아주 훌륭한 분이셨어요. 돌아가실 무렵에는 몸이 점점 작아져서 어린애만했어요. 이분처럼 몸이 자꾸 작아지는 것은 그분의 수행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나는 직접 따시 린포체를 찾아갔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시선을 네 안으로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너는 몰랐겠지만 여기에 중국 경찰이 와 있다. 아라사에서 법회를 할 때도 경찰이 줄곧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외국인에게는 여행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 알고 있니? 그러니까 나는 법을 어기고 너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이다. 안탑깝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꿈 속의 움막
채마밭 건너편에 오두막이 있었다.
'나는 늘 이렇게 앉아 있었어.'
그 순간에 멀고 먼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뒤늦게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고 여기까지 다시 찾아온 나와, 지난 생에 여기서 채마밭에 코스모스를 키우고 밀실수행 하시는 겔라 린포체를 시중들었던 내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와는 이렇게 말했다.
'겔라 린포체의 여성 제자 이야기를 못 들었나요? 그분은 아주 형편없는 동굴에서 18년간 살았어요. 그 동굴에 작년에 따시 린포체와 함께 갔는데, 있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깔고 앉은 비닐과 나무를 대충 엮어서 만든 테이블뿐이었어요. 음식은 짬바가 전부였고요. 거기서 그 여성 제자는 사르바붓다 요기니 만트라를 1억 번 했대요. 그리고 성취자가 되었어요.'
그날 밤, 따시 란포체는 자신의 처소에 나를 불렀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수행할 시간도 없이 사원 복원에 전념했다. 원래 나는 사원이 복원되면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나의 스승이신 도제 린포체께 보내서 수행을 계속할수 있게 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네가 인도에 다녀오고 싶다니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다녀오너라. 그리고 인도에 가거든 근본 스승이신 잠양 켄체 법왕을 찾거라.'
'따시델레!'
3부 인도로
잠양 켄체 린포체
3대 리메 법왕은 부탄 왕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와 한 남자의 극적인 만남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는 1958년 동부 티베트 캄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병중에 있던 소년의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너는 리메 법왕이 증서를 써 준 텍충 텐빠의 화신이니라. 네가 어디에 있든 리메 법왕의 이름을 듣거든 바로 그를 찾아가라'고 말해 주었다.
마을 큰 사원에 안도에서 온 스님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리메법왕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을 만난듯 기뻐하며 그에게 머리를 맞대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텍충 텐빠의 화신임을 확인해 주고 하루빨리 사원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자기의 사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행을 계속했다. 그 사이 그는 도제 린포체로부터 비구계를 받고 그의 제자이자 마음의 아들이 되었으며 뚤꾸의 신분을 밝히고 따시 린포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여러해가 지난후 그는 티베트에 있는 그의 사원 아라사에 돌아갔다. 그의 전신인 택충 텐빠가 입적한 지 43년 만이었다.
다람살라
나는 3대 리메 법왕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는 채 무작정 인도로 갔다. 먼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가 볼 작정이었다.
뉴델리 공항. 13시간을 달려 아침 무렵에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관정식이 끝나고 한국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의 왕궁으로갔다. 거기 접견실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대신해서 달라이 라마께 요청했다.
'제가 티베트에서 만난 승려들은 성하를 너무도 사모하여 성하의 이름만 듣고도 눈물을 흘립니다. 티베트에 남아 있는 승려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다시 티베트로 돌아가면 꼭 그들에게 성하의 말씀을 전해주겠습니다.'
'수행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모든 중생,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티베트에 있더라도 열심히 수행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내가 데라둔으로 떠나는 날, 쌈뗀은 정거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데라둔
15시간 후에 버스는 데라둔에 도착했다.
... 기차는 바라나시까지 가기 위해 24시간 동안이나 느릿느릿 달렸다.
바라나시
한밤에 바라나시 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는 '강가(갠지스)'가 있었기 때문에 며칠머물기로 했다. 나는 그 화장터에 가 보고 싶었다.
사르나트
날이 밝자마자 강가 부근의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역전의 방갈로로 숙소를 옮겼다.
부처님이 35세에 득도하고 아야교진여 등 5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을 하셨던 곳, 그곳에 가면 싱싱한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을 것만 같았다.
소노우리
네팔 국경까지 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버스는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출발당일 아침에 취소되어 버렸다. 어쩔수 없이 시외버스를 탔다.
부다나트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카트만두까지는 다시 버스로 10시간을 가야 했다.
카트만두 부다나트에는 싸캬 티진 성하께서 이야기하셨던 대로 세상에서 제일 큰 스투파가 있었다. 스투파는 너무나 컸기 때문에 탑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였다.
저 빛나는 지붕을 가진 사원 어딘가에 근본 스승님, 켄체 법왕께서 계실 터였다.
나는 사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3대 리메 법왕, 종사르 켄체 린포체
켄체 법왕의 시자가 전화를 해서 마을 서쪽에 있는 시첸 사원으로 오라고 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오래 된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그를 본 날로부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동굴을 깨버릴 듯이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좌중을 압도하던 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신비한 힘의 에너지. 어둠속에서 빛나던 강렬한 눈빛...
'이거 나 맞아요.'
그는 만다라 공양을 하고 있었다. 오른 손으로 좁쌀을 쓸어 담고 완손으로는 염주를 돌려 횟수를 세고 있었다.
'...억압받아서 변형되지 않은 원래의 불교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이야가를 해주고 싶군요. 첫째 모든 복합적인 것은 변화한다. 나는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티베트 불교는 1백년 전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나는 한국에 간 적이 있었어요. '컵'이라는 영화를 알고 있나요?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바로 나에요.'
'나는 현대에는 미디어가 가장 강력한 도구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리틀 부다'라는 영화를 찍을 때 조언자로 영화에 참여했어요. 그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영화란 1백개의 사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오늘 당신을 부른 것은 헤어지기에 앞서 당신에게 조언을 해 주고 싶어서에요. 앞으로 당신이 어디에 있든 이 3가지를 기억한다면 도움이 될거에요.
첫째, 스승을 백퍼센트 믿고 의지하세요.
당신이 스승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든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지 간에 그 스승에게 백퍼센트 헌신할수 있다면 그것은 역시 전생에 쌓은 선업 때문입니다.
둘째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셋째 당신이 무엇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꼬라를 마쳤을 때 이렇게 기도 하세요. '나의 수행을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돌려 주십시오.'라고요. 이것이 당신에게 주는 나의 조언이에요.'
'나는 그 동안 여기서 만다라 공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것중에 고른 겁니다. 여기에 나의 축복이 들어 있어요.'
그의 섬세한 손가락 뒤에 작고 동그란 터키석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파랗고 예쁘고 따뜻했다. 법왕의 웃는 얼굴이 등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환하고 눈부셨다.
까르마 띤레
'저는 도제 린포체의 제자에요. 따시 린포체도 도제 린포체의 제자지요.'
'린포체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 실제로는 외삼촌이시고요.'
룸비니
버스가 룸비니에 멈추었을 때 그곳은 우윳빛처럼 짙은 안개에 싸인 채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부처님의 탄생지.
웃는 린포체
한국사람과 티베트 사람들은 아주 닮았다.
나는 승려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고락푸르까지 가기로 했다.
라마 쌈뗀
기차는 14시간 만에 올드델리 역에 도착했다. 일단 난민촌까지 가서 탠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람살라는 몹시 추웠다.
내가 샹그릴라에 들어갔을 때, 쌈뗀은 부엌에서 능숙하게 칼질을 하고 있었다.
며칠을 히말라야의 강풍에 떨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람살라를 떠났다. 떠나는 날 또 버스 정거장까지 배웅해준 쌈뗀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오랬동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4부 다시 티베트로
성도에서
도제 린포체를 만나기 위해 티베트로 가기에 앞서 중국 서부 사천성의 성도로 갔다. 나왕이라는 승려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성도에 거쳐 가신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제 고향은 성도에서 가까운 곳이에요. 10여 년 전에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사원을 나와 히말라야를 넘었었요. 가족들에게 제가 잘 있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2년후에는 티베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겠다고도 전해주세요.'
성도는 분지라서 덮고 습기차고 그래서 매운 음식을 잘 먹기로 유명한 곳이다.
시닝
나왕의 형과 헤어져 4일 후에 기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도시 시닝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하루 이상 들어가야 목적지 낭시에 갈 수 있다.
따시 린포체께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하지 못했다. 결국 전화통화를 못 하고 버스터미널에서 낭시로 가는 침대 버스를 탔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도합 36시간을 달리니 낭시가 가까워졌는지 군데군데 나무가 보이고 아스팔트 길도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왔다.'
거대한 야크 해골로 장식된 문을 지나자 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렀다. 문에는 '낭시에 오시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글이 씌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흥겹고 즐거운 노래였다. 침착한 표정으로 줄담배만 피우던 사람들이 비누풍선처럼 와글와글 들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년들처럼 고향이 주는 안도감과 기쁨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낭시
버스에서 내리자 장총을 둘러멘 경찰들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승객들, 특히 남자들을 조사했다.
저녁에 까르마의 사촌누이와 남편이 호텔로 찾아왔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도제 린포체를 만나 뵙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따시 린포체의 제자라고 밝히고 스승의 스승이신 도제 린포체께서 위험에 처했다면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내가 따시 린포체의 제자라는 말에 기뻐했다.
'언젠가 린포체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린포체가 한 그루 나무라면 당신의 가족은 나무를 감싸고 있는 화분이라고요. 옛날에 당신의 가족들이 린포체께서 수행을 계속하실 수 있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어미 양은 산 위에
새끼 양은 산 아래에 있네
목동이여, 목동이여
어미와 새끼가
만날 수 있게 해 주오.'
누이의 어머니가 노래를 불렀다.
원래 린포체께서 40년 간 밀실수행을 하셨던 동굴은 바로 이 바위틈에 있었다.
'여기에는 병에 걸려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다 환자들이에요.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해요.'
이윽고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일어나 흰 카닥을 양 손에 걸치고 어두운 입구를 향해 섰다. 그리고 도제 린포체께서 들어오셨다. 린포체는 키가 큰 데다 몹시 말랐기 때문에 거인같이 보였다. 린포체는 끊임없이 '옴, 아, 훔' 이라고 웅얼거리며 카닥을 받으시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주셨다.
그는 맑고, 희고,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고,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빛나는 것은 그가 지어 주는 미소였다. 그 미소는 8월의 초원처럼 시원하고 환했으며 그러면서도 따뜻했다. 사람이 저처럼 웃을 수도 있다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마음 속 구비구비 감추어진 찌든 때를 녹아내리게 만들 것 같았다.
'지금 린포체께서는 금언 중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못 하세요.'
누이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린포체께서는 말 대신 계속 진언만을 외우고 계셨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내 앞에 선 린포체는 손녀딸을 대하듯 웃음을 띤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액체를 가슴과 등에 뿜어 주시고 병을 기울여 뿌연 색깔을 띤 액체를 따라 주셨다.
린포체는 모두에게 액체를 뿜어 주시고 다시 처음 사람에게로 가서 이번에 불붙인 향으로 상처를 지져 주셨다. 나는 절을 하다가 다친 무릎을 내밀었다. 그는 길고 홀쭉한 몸을 굽혀 나의 무릎을 약 1~2초 정도 들여보았다. 그리고 무릎의 안쪽에 천천히 향을 대어 주었다.
'린포체께서 며칠 후에 금언을 풀고 당신을 만나 주실 거예요. 린포체를 만나고 나면 저와 어머니는 집으로 내려갈 테니 당신은 여기에 머무세요.'
따실레의 레빠
하늘은 깊은 바다를 옮겨 놓은 것처럼 짙푸렀다.
그날 오후에 손님이 한 명 더 늘었다. 그는 곱슬머리를 어께까지 기르고 붉은 치마 대신 흰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흰색 치마를 입은 것은 그가 뚬모 수행의 대가인 '래빠'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목구비가 너무 뚜렸하고 눈빛이 매섭게 빛나서 정색하고 쳐다보면 조금 무서운 따실레의 래빠는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나에게 매운 고추기름을 가져다 주었다. 지독하게 매운 이 고추기름은 따실레의 유일한 반찬이었다.
'저분은 원칭 라마라는 분인데 아주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하셨어요. 그는 명상중에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고 무의식중에 무드라를 짓곤 한답니다.
린포체께서 그에게 특별히 흰색 치마 입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평상시에 그는 동굴에서 밀실수행만을 합니다. 그가 몇 년째 밀실수행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수행처를 떠나 바깥으로 나왔어요.'
까르마의 누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우리 앞을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구석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는 소녀 비구니에게 갔다. 비구니는 그의 부탁을 받고 밀가루가 발효되는 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린포체의 주방'은 금세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 찼다.
바위가 새긴 옴, 아, 훔
아침 일찍 나는 린포체께서 외우는 만트라와 종소리가 미풍처럼 간간이 들려오는 동굴 밖 소로에 서 있었다.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동굴에 가 볼래요?'
그런데 실제로 본 그곳은 동굴이라고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단지 집채만큼 큰 세 개의 바위가 겹쳐 있고, 그리고 그 밑에 겨우 생긴 약간의 틈에 불과했다. 안전한 입구나 긴 통로, 혹은 아늑한 공간 같은 것은 아예 없이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자리인지 방석이 깔려 있고 카닥이 걸려 있었다. 축축한 동굴 벽에 손을 대니 습기차고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밀려 올라왔다. 이런 곳에서, 외부와 차단시켜 주는 엉성한 문 하나없이 혹독한 티베트의 겨울을 어떻게 몇십 년 간 견디셨단 말인가?
린포체 역시 뚬모 수행으로 내부열을 깨우신 것이 분명하다.
'여기 글자가 보이죠?'
캠보가 벽에 어스름히 보이는 '옴, 아, 훔' 세 글자를 가리켰다. 그중에서도 '옴' 자는 가장 선명했고 글씨 표면이 다른 곳보다 밝게 보였다.
'이 글자들은 조각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솟아난 것입니다. 작년 겨울에 이 동굴에서 물이 솟아났어요. 이런 산꼭대기에 물이 솟아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엄동설한인데 린포체의 수행동굴 주변에 꽃들이 잔뜩 피어났어요. 그리고 진동과 같은 소리도 울렸어요.'
'밀라래빠의 십만송'
그는 제자들에게 '생명 에너지와 마음의 작용을 완전히 통달한 수행자는 사람의 몸을 이루는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원소의 본질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어떤 몸으로든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티베트의 모처에 수행을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드디어 린포체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 밤이 지나면 린포체께서는 또 깊은 명상속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방은 좁고 춥고 누추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8월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때까지는 나는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7월에 제자들을 위해 이따실레에서 법회를 열 예정입니다. 그 법회가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지요.'
'불교의 수행법을 얻기 위해 티베트로 온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따시 린포체께 수행을 배웠습니다. 지금 저의 유일한 소망은 수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린포체께 수행법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살펴보니 당신은 아주 좋은 안연을 갖고 있어요. 오늘부터 나는 당신이 나의 제자로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도제 린포체의 제자가 되어 관정을 받았다.
다음 날부터 린포체는 다시 밀실수행을 시작하셨다. 그 수행은 7월, 법회가 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동안 나는 린포체께서 특별히 마련해 주신 방에 머물렀다. 방은 린포체가 계시는 곳 바로 아래층이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계시라고 해서 미안해요.'
때에 절어 번질번질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여성이 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캠보의 누나인데 다들 공행모라고 불렀다. 그녀를 공행모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는 수행도 높고 사원에서의 지위도 높은 것 같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끄어억ㅡ' 하고 트림을 했다. 트림이라기 보다는 배의 맨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천둥이 용트림을 하면서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 거대한 진동이었다.
공행모뿐 아니라 따실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트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천둥의 트림'에 대해 내가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무슨 말씀을 요, 여기는 호텔이나 바름없는 걸요. 내가 묵었던 어떤 호텔보다 좋아요.'
확실히 풍경만은 최고였다. 나는 돌벽으로 쌓아올린 흙침대에 앉아 빈약한 창문으로 내다보았던 해발 4천 미터의 풍경과 5월에도 내리는 폭설과 그 폭설이 만들어 내는 설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고산반응은 어때요?'
'이것은 린포체께서 축복하신 거예요. 머리가 계속 아프면 이걸 먹어 보세요. 두통, 감기에 효과가 아주 좋아요.'
종이 안에는 엄지손톱만한 흰색 환약이 들어 있었다.
'이건 이 지역에서만 나는 특별한 흙으로 만들었어요.'
'정말 두통이 사라졌어요.'
린포체의 동굴에 문과 창문을 새로 달았고 바닥을 골라내고 거친 카펫을 깔았다. 공사가 끝나자 린포체는 임시 거처에서 다시 동굴로 돌아가셨다.
날씨가 풀려도 주방의 화로에 하루 종일 불을 때야 했다. 두끼의 식사 외에 차도 끓여야 하고 세숫물이며 설거지물도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의 고원에서 연료로 쓰이는 것은 야크똥이다. 야크란 짐승이 채식만 하기 때문인지 똥이라도 악취가 전혀 없고 연소도 잘 된다.
'진짜 아름답다......'
며칠 후 나는 그의 넋을 나가게 했던 회색 티셔츠를 깨끗하게 빨아서 그를 찾아갔다. 그의 집은 2평이나 될까, 성냥갑처럼 작았는데 그 안에 작은 흙침대ㅡ그의 침대도 린포체의 침대처럼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다. 그도 밤이면 누워서 자지 않는다. 린포체의 사원에 있는 승려 중에는 누워서 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ㅡ 와 부뚝막과 몇 가지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식사했어요? 짬바 드릴까요? 아니면 양젖이나 뜨거운 물을 드릴까요?'
아름다운 아버지, 도제 린포체
7월이 되자 따실레 사람들은 법회 준비로 눈코뜰새없이 바빠졌다. 산꼭대기 평지에 커다란 차양을 설치하고 란포체가 앉으실 자리와 테이블을 준비했다.
텐트생활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활해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법회 때 린포체께서 '바르도 퇴돌' 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첫날, '바르도 퇴돌' 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찰나, 나는 린포체의 뒤편으로 검은 구름이 허겁지겁 몰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후로도 란포체께서 '바르도 퇴돌' 에 대한 법문만 시작하시면 하늘은 정해진 순서처럼 구름이 몰려 들었고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그때까지 우산을 받치고 계시던 린포체께서 말씀을 멈추고 찢어진 차양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수염을 잡고 매달리는 철없는 장난꾸러기 손자를 보듯이 그렇게 웃음을 띤 표정을 지으시고 그날의 법문을 멈추었다.
'미라래빠 전기'에 그가 법문을 할 때면 하늘로부터 천신과 다끼니들이 내려와 그 법문을 듣는다고 하였다.
이상한 것은 날씨뿐이 아니었다. 나는 린포체께서 법문을 하실 때 몇몇 티베트 사람들 중에 ㅡ승려들도 있고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ㅡ 이상한 상태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 버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트랜스 상태에서 아름다운 무드라를 짓는가 하면 치솟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펄쩍펄쩍 뛰어 다니기도 했다. 고함을 지르면서 앚은자세로 차양의 천장까지 치솟으며 뛰어 오르는 이도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상태로 빠져들어 마치 광적인 마법사의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오후 법회 시간 내내 나는 몸에 떨림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한겨울에 서리맞은 것처럼 덜덜덜 떨리면서도 등줄기가 화끈거리고, 더운 열기가 치솟아 올라 온몸은 화로처럼 뜨거웠다.
'어제 아마 린포체께서 당신에게 포와의식을 하신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람은 본디 생명의 바람 뿌라나, 빈두, 그리고 뿌라나와 빈두가 다니는 통로인 나디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다시 복잡하고 세부적인 하부구조로 나뉘어 있다. 수행이란 이 모든 뿌라나, 나디, 빈두를 정화하고 막힌 곳을 뚫어 주는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마침내 '붓다가 되는 것'이다.
밀교수행자는 생기와 원만의 두 방편을 통해 여러 층차의 감응을 차례로 거치면서 자기 몸의 뿌라나, 빈두, 나디 등을 정화해 나가고 그 정화가 완성될 때 법신, 보신, 화신의 불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밤의 신비의식
법회 마지막 날이었다. 해가 지고 한참이나 됐는데 투도 라마가 텐트로 찾아왔다.
'저녁에 진짜 법회가 열릴 겁니다. 다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한밤중의 법회에는 린포체의 초대를 받은 사람만 참석할 수 있었다.
이윽고 린포체께서 짧은 법문을 하시고 만트라를 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또다시 마술에 걸린 사람들처럼 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앉은채로 2m 높이까지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가 하면, 트랜스 상태에서 무드라를 짓고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점차 린포체의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춤도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끊어내려는 듯 거샌 몸짓으로 구르고 뛰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또다시 열과 떨림이 온몸을 휩싸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온몸이 커다란 산이나 바위처럼 점점 커지고 있다는 느낌과 동시에 전기충격 같은 진동이 꼬리뼈와 정수리를 잇는 통로를 뚫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를 모두 포기하고 빛의 몸 앞에 엎드린 순간, 나는 그가 내가 모시고 있는 탱화 속 분노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음 순간 분노존은 빠드마삼바바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빠드마삼바바의 얼굴은 린포체의 자애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캠보와 따실레의 래빠가 옆에 서 있었다.
'이런 상태에 빠졌을 때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안 되거든요.'
'내 눈앞에 글씨가 지나가요. 나는 다만 그 글씨를 보고 노래를 부를 뿐이에요.'
'투도 라마는 뗄뙨이에요. 그는 감응을 받을 때마다 신비세계로부터 숨겨진 비법을 캐온답니다. 이번 법회에서 린포체께서 가르쳐 주셨던 아미타불 만트라도 투도 라마가 새로 찾아낸 것이에요.'
뗄뙨,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굴장사이다. 그 옛날 티베트에 처음 불교를 가져온 빠드마삼바바가 세상에 공개할 때가 이르지 않은 비밀의 경전을 여러 동굴에 숨겨 놓으셨다.
상상외로 트림은 체력을 많이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이건 몸 속에 있는 탁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예전에 린포체께서도 그렇게 트림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아주 좋은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뭐야?'
나는 꺄숑의 목에 매달려 반짝이는 작은 팬던트를 발견했다.
'이 안에 린포체의 사리가 들어 있어요. 우리들은 다 하나씩 갖고 있는데 아말라ㅡ카르마의 동생 다섯명은 모두 나를 아말라, 어머니라고 부렀다ㅡ 는 사리를 안 갖고 있어요? 그럼 린포체께 달라고 하세요, 틀림없이 주실거예요.
린포체의 이가 빠지면 거기서 사리가 계속 생겨나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수행을 하시다 일어난 자리에서도 사리가 나오고, 콧물을 닦는 수건에서도 나와요. 잘라낸 머리카락도 유리같은 사리로 변하는 걸요.
사람들은 린포체를 마르빠의 화신이라고 하고, 빠드마삼바바의 화신이라고도 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린포체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만 린포체께서는 인연을 살펴보시고 좋은 인연만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제자가 되면 꼭 사리 한 과씩 내려 주세요.
비밀의 만트라 속으로
며칠 후 나는 린포체의 부름을 받고 2층에 있는 동굴 방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입으니 꼭 티베트 사람 같구나.'
그때 나는 공행모가 준 티베트 전통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순모ㅡ티베트에서는 흔하디 흔한ㅡ 로 만들어져 따뜻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괜찮으니 입을 막지 말아라. 트림은 몸 속의 나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아주 좋은 것이다. 나는 네가 이번 법회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밤, 비밀의 의식을 행할 때 보았던 불붙는 푸른빛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그 분노존이 왼손에 돌제를 들고 오른 손에는 굽이진 칼을 들었더냐?'
'네가 본 것은 빠드마삼바바의 분노존이다. 그 분노존은 또한 나의 호법신이기도 하다. 역시 너는 아주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구나. 또한 매우 신실하며 수행에 부지런하기 때문에 나는 네가 앞으로도 수행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따실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 확실히 여기는 매우 좋은 곳이다. 일찍이 나의 스승이신 잠공 콩튤 린포체께서도 이곳에 오셔서 '아주 좋다' 라고 말씀하셨다.
1940년대에 쌰캬빠의 나왕 캠보가 제자들과 함께 여기에서 나로 공행모 수행을 하실때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뜨고, 꽃비가 내리고 땅이 붉은색으로 물들기도 했단다. 내가 여기에 너를 위하여 작은 집을 지어 줄 테니 매년 여름에 여기와서 내 곁에 수행을 하면 어떻겠니?
위치는 저 샘터 옆이 어떨까 생각하는데, 마음에 드느냐? 샘터 옆이면 물을 긷기도 편하고 여기에 오기도 가까울 것이다. 지금 티베트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여름마다 여기와 와 있으면 티베트어 선생님도 찾아 주도록 하마.'
'나는 지난 40년 간 이 동굴에서 혼자서 수행을 해 왔다. 여기서 문화혁명도 겪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위험했단다. 그 동안 열심히 수행한 덕분에 지난 겨울에 내 수행이 비로소 하나의 고비를 넘어섰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넘어야 할 수행의 고비가 2개나 남아 있단다.'
10살에 출가했고 40년 이상 동굴에서 짬바만 드시며 밀실수행을 하고 계신 분이, '성취자'라고 불리며 몸에서 사리를 만들어 '이제 겨우 수행의 한 고비를 넘어섰을 뿐'이라고 말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9월에 들어서면서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있었다.
'괜찮다. 아주 좋은 일이다. 밀법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빈두가 정수리에 있는데 그 빈두가 터져서 트림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한국에 가서도 트림이 멈추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왜 트림을 하는지 설명해주렴. 트림은 린포체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것이며 몸 속의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좋은 것이라고 말이야.'
'따시가 너에게 40만 번이나 오체투지를 시켰다고 했지?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오체투지를 하면서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 온몸의 근육과 함께 나디도 움직이게 돼서 막힌 나디를 풀어준단다. 또한 척추의 동공을 따라 중앙 에너지 통로인 수슘나가 있는데, 오체투지를 하면 뿌라나와 빈두가 이 중앙에너지가 통로로 모아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오체투지는 아주 중요하다. 힘이 들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많이 할수록 좋단다. 나는 네가 티베트 사람들을 빼고는 내 제자들중에서 가장 수행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생에도 수행을 많이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오체투지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르도 퇴돌' 의 만트라를 한 번 들려 주실 수 있을 까요?'
'응.... 어렵지 않다.'
린포체께서도 섭섭하셨단 것일까? 내가 절을 하고 동굴 방을 떠날 때 린포체는 길고 가는 손을 들어서 자꾸 '따시델레'를 외처 주었다.
아침 일찍 따실레를 떠났다. 주방에서 일하던 어린 비구니들이 잠을 자다가 내가 간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나왔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이마에 이마를 대고 '따실델레'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곳을 머릿속에 입력시키려는 듯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언덕을 넘어 밀실수행처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갔다.
'모르세요? 여기서 수행하는 분 , 따시 린포체세요.'
'따시 린포체를 만날 수 있어?'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단호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 집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그저 서 있었다.
나는 벽 건너편에 있는 따시 린포체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다시 언덕길을 내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까마득히 높은 벼랑 끝에서 따시 린포체의 제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기
한국으로 돌아와 3달 내내 이 책을 썼다. 책을 쓰기 전에도 그랬지만 쓰는 동안에도 줄곧 여러 스승님들께 기도를 드렸다.
네팔에서 켄체 린포체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따시 린포체와 도제 린포체께도 이런 내용을 책으로 써도 될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스승님들은 모두 흔쾌히 '좋다' 고 말씀하셨다. 여러 스승님의 축복을 받은 이 책이 세상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
정토보서 3
정토보서 3
정토과험
淨土果驗
스님이 왕생한 이야기1~46
沙門徃生類
1.97) 진晉 혜영慧永은 하내河內 사람으로 12세에 출가하여 원공遠公98)과 함께 안安 법사에 의지하였다. 태원太元 초에 여산에 주석하였는데, 자사刺史 도범陶範이 집을 희사하여 서림사西林寺99)로 삼고 거처하며 속세에 뜻을 끊고 안양에 마음을 두었다. 후에 병을 보이고서 문득 옷을 여미고 신을 신으며 일어서려 하자 대중들이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혜영은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시기 때문이네.”라 하며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다. 당 현종이 각적覺寂 대사라는 시호를 내렸다.100)
晋慧永。河內人。十二出家。旣而與遠公
同依安法師。太元初駐錫廬山。刺史陶
範。捨宅爲西林以居之。絕志塵囂。標
心安養。後示疾。忽歛衣求屣欲起。衆
驚問。荅曰佛來迎我。言訖而化。唐玄
宗。追謚覺寂大師。
晋遠法師。倡修淨土。嗣後徃生者。不一而足。至於叔季。世愈下
而徃愈寡。上代之徃生者。人或稔聞熟知故。十取二三。自宋以下。人皆寡聽故。十取其九云
2. 송宋 담감曇鑒은 평소에 작은 선업을 행할 때마다 서방에 회향하며 부처님 뵙기를 서원하였다. 하루는 삼매 중에 아미타불을 뵈었는데 부처님이 담감의 낯에 물을 뿌리며 말하기를 “너의 번뇌(塵垢)를 털어내고 마음(心念)과 몸과 입(身口)의 업을 씻어 모두 엄정하고 정결케 하노라.” 하고 나서 병 속의 연꽃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宋曇鍳。平生片善。廻向西方。誓願見
佛。一日定中。見阿彌陀佛。水洒其面曰
滌汝塵垢。浴汝心念。及汝身口。皆悉
嚴淨。又于缾中出蓮花。授之。
선정에서 일어나 절의 스님들과 작별을 고하고 밤이 깊도록 홀로 행랑을 걸으며 염불하였다. 오경이 되자 염불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다음 날 제자가 평소처럼 문안드리러 와서 보니 이미 가부좌한 채 입적한 뒤였다.101)
定起。乃與寺僧叙別。夜深獨步廊下念佛。至五
鼓。其聲彌厲。及明弟子依常問訊。趺
坐已逝矣。
3. 제齊 승유僧柔는 방등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배웠으나 정업淨業만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입적하던 날 1천 좌의 응화불應化佛102)을 뵈었고, 방 안팎에서 모두 신이한 향기가 났다. 이에 서쪽을 향하여 예경하고 입적하였다.103)
齊僧柔。學方等諸經。惟以淨業爲懷。卒
之日。見化佛千數。室內外。俱聞異香。
向西敬禮而化。
4. 수隋 법희法喜는 평소에 방등참법方等懺法104)을 행하였다. 어느 날 꿩 한 마리가 법희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자(索命) 어떤 신인神人이 꾸짖어 말하기를 “법사께서는 마땅히 정토에 왕생할 분인데, 어찌 너의 목숨을 대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후에 병이 들어 발원하기를 “한평생 행한 업을 서방에 회향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불보살이 맞이하러 오는 것을 뵙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105)
隋法喜。常行方等懴法。忽一雉索命。有
神人呵曰。法師當徃生淨土。豈償汝命
後病中發願。以一生行業。廻向西方
至心念佛。見佛菩薩來迎。端坐而化。
5. 수隋 도유道喻는 아미타불을 염念하여 밤낮 그치지 않았다. 그가 불상을 만들었는데 겨우 세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후에 선정에 들었을 때 부처님께서 물었다. “그대가 만든 나의 상은 왜 그리 작은가?” 대답하였다. “마음이 크면 불상도 크고, 마음이 작으면 불상도 작습니다.” 말을 마치고 부처님 몸을 보니 허공에 가득 차 있었다.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서 깨끗이 씻어 청정하게 하라. 내일 새벽에 그대를 맞이하러 가겠다.”라고 하였다. 때가 되자 과연 부처님께서 오셔서 광명이 방에 가득하였다. 마침내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106)
隋道喩。念阿彌陀佛。日夜不廢。造像
僅三寸。後于㝎中。見佛謂曰。汝造我
像何小。喩曰心大即大。心小即小。言
訖。見像身。遍滿虛空。告曰汝當澡浴
淸淨。明晨我來迎汝。至時果見佛來
光明滿室。遂坐而化。
6. 수隋 문주汶州 땅에 두 사미가 있어 염불에 뜻을 함께 하였다. 큰 사미가 갑자기 죽어 정토에 이르렀다. 부처님을 뵙고 말씀드리기를 “함께 정토업을 닦던 동생 사미가 있습니다. 함께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그대에게 권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비로소 발심하였으니 돌아가서 더욱 정업에 힘쓰도록 하라. 3년 후에 마땅히 함께 이곳에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어 두 사람은 함께 부처님께서 맞이하러 오시는 것을 뵈었다. 그때 대지가 진동했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둘은 같은 시간에 입적하였다.107)
隋汶州二沙彌。同志念佛。長者忽亡至
淨土。見佛白言。有小沙彌同修。可得
生否。佛言由彼勸汝。汝方發心。汝今
可歸。益勤淨業。三年之後。當同來此
至期。二人俱見佛來。地震雨華。一時
同化。
7. 당唐 선주善胄는 무덕武德 3년(620년)에 병이 깊어져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생을 바르게 믿었으니 정토에 틀림없이 날 것을 믿는다.”라고 하였다. 곧 방을 청결하게 하고 향을 피워 엄정하게 기다렸다. 병이 오래되어 누워 있다가(委臥) 갑자기 일어나 합장하며 시자에게 말하기를 “세존께서 앉으실 자리를 마련하라.” 하였고, 또 스스로 참회의 말을 하였다. 잠시 후 “세존께서 떠나신다.”고 하며 몸을 낮춰 보내는 것처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누워 “방금 전에 아미타불께서 오셨는데 너희들도 보았느냐? 머지않아 나는 마땅히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입적하였다.108)
唐善胄。武德三年。病草。謂門人曰。吾
一生正信。不慮淨土不生。即令拂拭房
宇。燒香嚴待。病久委臥。忽起合掌。語
侍人曰。安置世尊令坐。又自陳懺悔。
良久曰。世尊去矣。低身似送。因臥曰
向者阿彌陀佛來。汝等還見否。不久
吾當去耳。少頃而逝。
8. 당唐 유안惟岸은 병주并州 사람으로 오로지 십육관十六觀법을 닦았다. 이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공중에 출현하여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유안은 정례頂禮하며 눈물을 빗물처럼 흘리며 탄식하기를 “요행히 육안으로 성인의 얼굴(聖容)을 뵈었으나 후세에 전할 길이 없음이 한스럽다.”라고 하였다. 홀연히 화공畵工이라 자칭하는 두 사람이 나타나 순식간에 성인의 형상을 다 그리고 마친 뒤에 사라졌다.
唐惟岸。并州人。專修十六觀。因出見
觀音勢至二菩薩。現于空中。良久不滅。
岸頂禮雨淚而嘆曰。幸以肉眼。得見聖
容。所恨後世無傳。忽有二人。自稱畫
工。未展臂間。聖相克就。已而人亦不
見。
제자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에 대해 여쭈었다. 유안이 말하였다.
“이분들이 어찌 화공이겠느냐. 나는 지금 왕생하노라. 누가 함께 가겠느냐?”
작은 동자가 말하였다.
“스님을 따라 왕생하고 싶습니다.”
유안이 말하였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말씀드려라.”
弟子怪問之。岸曰此豈畫工哉。又
曰吾今徃生。誰偕行者。小童云。願從
師徃。岸曰可歸告父母。
그 부모는 이를 듣고서 비웃으며 아이를 꾸짖었다. 동자는 절로 돌아와 향탕香湯에 목욕하여 아미타불상 앞에 결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유안은 등을 어루만지며 “어린아이가 어찌 먼저 가노?”라고 한 후 분향하고 보살 그림 앞에서 게송을 썼다.
父母聞而笑罵之。童乃歸寺。香湯沐浴。于彌陀像前。
趺坐而化。岸撫其背曰。小子何乃先去
遂焚香。向所畫菩薩前。書偈云。
觀音助遠接。勢至輔遙迎。寶缾冠上顯。化
佛頂前明。俱遊十方刹。持華候九生。
願以慈悲手。提奬共西行。
觀音助遠接 관세음보살은 미타님 도와 멀리 오셔서 접인하고
勢至輔遙迎 대세지보살은 미타님 도와 멀리 오셔서 영접하네.
寶瓶冠上顯 보배로 수놓은 병109)은 관冠 위에 드러나고
化佛頂前明 화현하신 부처님110)은 머리맡에 빛나네.
俱遊十方剎 모두 시방의 국토에 노닐며
持華候九生 꽃 들고 구생九生111)을 구제하시네.
願以慈悲手 바라옵나니 자비로운 손길로
提獎共西行 서방으로 함께 가자 이끌어 주시길.
드디어 제자들에게 조성염불助聲念佛112)을 하도록 하였고, 눈을 들어 서쪽을 보며 입적하였다.113)
遂令弟子 助聲念佛。仰目西顧而亡。
9. 당唐 대행大行은 보현참법普賢懺法을 닦았는데 3년 만에 보현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감득感得하였다. 늦은 나이에 대장각大藏閣에 들어가 서원을 말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골라 『아미타경』을 얻었다.
唐大行。修普賢懺法。三年感大士現身。
晩歲入大藏陳願。隨手取卷。得彌陀經。
밤낮 외우고 읊기를 21일 동안 하여 유리지琉璃地 위에 계신 부처님과 두 보살의 현신을 보았다. 희종 황제僖宗皇帝가 그 이야기를 듣고 궁궐에 들어오라 하여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는 호를 내렸다. 1년 후 유리지琉璃地가 다시 나타났고 그날 바로 입적하니 이채로운 향기가 열흘 넘게 났고 육신은 썩지 않았다.114)
晝夜誦咏。至三七日。覩琉璃地上。佛
及二大士現身。僖宗聞其事。詔入內
賜號常精進菩薩。後一年。琉璃地復現
即日而終。異香經旬。肉身不壞。
10. 송宋 오은晤恩은 13세에 『미타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출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하루 한 끼만 먹고 옷과 발우를 항상 지니고 있었으며 재물 보화를 쌓아 두지 않았다. 누울 땐 반드시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앉을 때는 반드시 결가부좌하였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서방의 정토업을 닦을 것을 가르쳤다. 옹희雍熙 2년(985년) 8월 초하룻날 밤에 밝은 빛이 우물에서 나왔다. 문인들에게 “나는 장차 떠나련다.” 하고 곡기를 끊은 채 말을 하지 않았다. 일심으로 염불하여 25일에 이르러 설법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입적하였다. 사람들이 요령과 목탁 소리가 공중에서 낭랑하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115)
宋晤恩。年十三聞誦彌陀經。遂求出家。
終日一食。不離衣鉢。不畜財寶。臥必
右脅。坐必跏趺。徧誨人以西方淨業。
雍熙二年八月朔日。夜覩白光。自井而
出。謂門人曰。吾將逝矣。絶粒禁言。一
心念佛。至二十五日。說法畢。端坐而
化。人聞鈴鐸之音。嘹喨空中。
11. 송宋 본여本如는 호가 신조神照로서 동산東山 승천사承天寺에 주석하면서 군수 장순張郇과 결사를 결성하였다. 하루는 법석에 올라 설법할 때 대중들과 결별을 고한 뒤 물러나 앉아서 입적하였다. 이때 강가의 어부가 구름 끝으로 한 스님이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이듬해 탑을 열었는데 얼굴과 모습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연꽃이 탑 앞에서 솟아났다.116)
宋本如。號神照。住東山承天寺。與郡
守張郇結社。一日升座說法。與衆訣別。
退而坐逝。時江上漁人見雲端。有僧西
去。明年啓塔。顏䫉如生。蓮生塔前。
12. 송宋 기 법사基法師는 보운寶雲 스님에게 배웠으며 염불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루는 몸이 편찮았는데 제자를 위해 설법하던 중 대중들이 문득 서방에 빛이 나는 것을 보았고 공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대사가 말씀하기를 아미타 부처님과 두 보살께서 모두 오셨다 하였고, 곧 오른쪽 옆구리를 서쪽을 향하여 돌아가셨다. 문인들 중에는 꿈에 아미타 부처님께서 수기하여 초세여래超世如來로 삼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고, 또 꿈에 대사께서 청연화대靑蓮花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다.117)
宋基法師。學于寶雲。精意念佛。一日
示疾。爲弟子說法。衆忽見西方現光
空中奏樂。師曰阿彌陀佛。與二大士俱
至。即右脇向西而化。門人夢阿彌陀佛
授記爲超世如來。又夢師坐靑蓮華臺
上。
13. 송宋 약우若愚는 운천雲川 선담仙潭에 살았다. 무량수불각을 세우고 승속을 막론하고 염불을 권장하기를 30년이나 하였다. 도잠道潛과 칙장則章 두 대사를 벗으로 사귀었는데 도잠은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났다. 약우는 칙장과 함께 오직 진실한 수행(實行)에 힘썼다.
宋若愚。居雲川仚潭。建無量壽佛閣。
勸道俗念佛。精勤三十年。與道潜則章
二師爲友。潜能詩近名。愚與章。惟務
입적할 때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말하기를 “너의 동학 칙장이 보현행원普賢行願 삼매를 얻어 이미 정토에 나서 바로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였다. 약우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대중에게 『관무량수경』을 외우도록 하였고, 단정히 앉아 말없이 있다가 갑자기 “정토가 눈앞에 펼쳐지니 나는 지금 가야겠다.”라고 하였다. 게를 쓰고 입적하였는데 게는 이렇다.
實行。將順世。夢神人告曰。汝同學則
章。得普賢行願三昧。已生淨土。彼正
待汝。愚沐浴更衣。命衆諷觀經。端坐
默然。忽云淨土現前。吾當行矣。書偈
而化。
偈曰空裡千華羅網。夢中七寶蓮
池。踏得西方路穩。更無一點狐疑。
空裏千華羅網 허공 속엔 천 송이 꽃 비단 그물 있고
夢中七寶蓮池 꿈속에선 칠보로 된 연못 보았네.
踏得西方路穩 밟아 나가면 서방의 길 평탄해지리니
更無一點狐疑 다시 한 점의 의심도 하지 말기를.118)
14. 송宋 수진守眞은 영흥永興 사람으로 『기신론起信論』 법계관法界觀을 강의하였다. 항상 한밤중에 무량수불왕생비밀인無量壽佛往生秘密印을 맺고 서방에 생각을 집중하였다. 어느 날 저녁 하늘이 밝아지더니 스스로 몸이 정토에 오르는 것을 깨닫고 눈을 들어 부처님을 보았다. 이에 부처님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48대원으로 능히 나를 제도하실 분이시여!”라고 하였다. 이에 향과 꽃을 잡고 전殿에 들어가 공양하였는데 앉자마자 입적하였다.119)
宋守眞。永興人。講起信論法界觀。常於
中夜。結無量壽佛徃生秘密印。繋念西
方。一夕天曉。自覺身登淨土。擧目見
佛。因伏像前。忽曰四十八願。能度我
者。乃持香華。入殿供養。就坐而化。
15. 송宋 유엄有嚴은 숭선사崇善寺에 주석하신 분으로 신조神照 대사에 의지하여 천태교天台教를 배웠다. 만년에 명자나무 아래 띠집을 얽어 호를 사암樝菴이라 했다. 평소에 독실하게 정토를 닦아 「안양 고향을 그리는 시懷安養故鄉詩」를 남겼고 당시에 널리 전해졌다. 임종할 때 보배 연못의 큰 연꽃과, 하늘 음악을 네 줄로 서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정토에 돌아가며 전별하는 시餞歸淨土詩」를 지어 대중에게 보였다. 7일 뒤에 결가부좌한 채 열반하였다. 탑 위에 달같이 환한 빛이 나타나 사흘 뒤에야 사라졌다.120)
宋有嚴。住崇善寺。依神照。學天台敎
晩年結茆樝木之下。號曰樝菴。平生篤
修淨土。有懷安養故鄕詩。爲時所傳
將終。見寶池大蓮華。天樂四列。乃作
餞歸淨土詩示衆。後七日跏趺而化。塔
上有光如月。三夕方隱。
16. 송宋 사찬師贊은 옹주雍州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스님이 되었다. 14세에 염불을 그치지 않았는데 병이 들어 갑자기 죽었다. 조금 후에 다시 소생하여 스승과 부모에게 말씀드리기를 “아미타 부처님이 여기에 오셔서 저는 따라가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공중에 보배 장식의 좌대와 오색의 이채로운 빛이 서쪽을 향하여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121)
宋師賛。雍州人。爲僧童年。十四念佛
不絶。忽遇疾暴亡。俄而復甦。謂師及
父母曰。阿彌陀佛來此。兒當隨行。隣
人見空中寶臺。五色異光。向西而沒。
17. 송宋 지례知禮의 호는 법지法智이다. 『묘종초妙宗鈔』라는 책을 저술하여 관심觀心과 관불觀佛의 요지를 크게 현창하였다. 매해 2월 보름에 염불시계회念佛施戒會를 열었는데 항상 만 명이 넘었다. 후에 새해 첫날에는 광명참光明懺을 열었는데 5일에 이르러 대중 설법 중에 부처님 명호를 수백 번이나 한꺼번에 소리 내어 부르다 갑자기 입적하였다. 청헌공淸獻公 조변趙抃이 그 탑에 명銘을 썼다.122)
宋知禮。號法智。述妙宗鈔。大彰觀心
觀佛之旨。每歲二月望日。建念佛施戒
會。動逾萬人。後於歲旦。建光明懺。至
五日。召大衆說法。驟稱佛號數百聲。
奄然坐逝。淸獻公趙抃。銘其塔。
18. 송宋 지렴智廉은 화도사化度寺에 주석하였다. 젊었을 때는 종문宗門123)을 참구하다가 만년에는 오로지 서방정토에만 뜻을 두었다. 경원慶元 연간(1195~1200년)에 대중과 작별하며 말하였다. “꿈에 아미타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 설법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여러 선인들이여, 마땅히 정토업 닦는 데 전념하여 나의 국토에 왕생토록 하라’고 하셨다. 나는 아미타불의 빼어난 모습을 보았으니 왕생은 틀림없을 것이다.”라 하면서 게를 썼다.
雁過長空 기러기 너른 창공 지나갈 때
影沉寒水 그림자 늦가을 강물에 빠져드누나.
無滅無生 소멸도 없고 태어남도 없으리
蓮華國裏 연화국 안에서는.
게를 다 쓴 후 서쪽으로 몸을 돌려 수인手印을 맺고 입적하였다.124)
宋智廉。居化度寺。初叅宗門。晩節一
意西方。慶元中別衆曰。我夢中見阿彌
陀佛。大衆圍遶說法。佛云諸善人等
當須專心淨業。來生我國。我見勝相
徃生必矣。乃書偈曰。鴈過長空。影沉
寒水。無滅無生。蓮華國裡。書畢回身
向西。結印而逝。
19. 송宋 처겸處謙은 정토를 정성으로 닦은 분이다. 어느 날 저녁에 『미타경』을 다 외우고 정토를 찬미하며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무생법인無生法印으로써 정토에 왕생한다.” 하고는 선정에 들어간 듯이 홀연히 입적하였다.125)
宋處謙。精修淨土。一夕誦彌陀經畢
稱讃淨土。告衆曰。吾以無生而生淨土
如入禪定。奄然而化。
20. 송宋 회의懷義는 온주溫州 악청樂淸 사람이다. 아버지는 어부였다. 어렸을 때 뱃고물에 앉아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면 몰래 물속에 던져 살려 주었다. 아버지가 화를 내고 회초리를 때려도 후회하지 않았고 결국엔 부모를 하직하고 출가하였다. 천성天聖 연간(1022~1031년)에 경전시험을 보아 도첩度牒을 얻었고 취봉翠峰 선사에게 법을 전해 받았다. 모두 다섯 번 도량에 머무르며 오직 대중에게 염불을 권하여 『권수정토설勸修淨土說』을 남겼다. 입적하던 날 저녁에 지재智才라는 문도가 “탑 쌓는 것은 이미 마쳤습니다. 어떤 것이 필경의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대사는 주먹을 세워 보이고 베개를 밀치고 입적하였다.126)
宋懷義。溫州樂淸人。父業漁。義穉時。
坐船尾。隨父得魚。私投水中。父怒。受
撻無悔。遂辭親出家。天聖中。試經得
度。禀法于翠峰。凡五住道場。唯化衆
念佛。有勸修淨土說。示寂之夕。其徒
智才。問壘塔已畢。如何是畢竟事。師
竪拳示之。推枕而逝。
21. 송宋 원조 율사元照律師는 영지사靈芝寺에 주석한 분으로 율학律學을 널리 폈고 정토업에 돈독한 뜻을 두어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제자에게 『관무량수경』과 「보현행원품」을 외우라고 한 후에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서호의 어부들이 모두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127)
宋元照律師。住靈芝。弘律學。篤意淨
業。念佛不輟。一日令弟子。諷觀經及
普賢行願品。趺坐而化。西湖漁人。皆
聞空中樂聲。
22. 송宋 희담晞湛은 산음山陰 사람이다. 어려서는 유생儒生이었는데 홀연히 세상에 싫증을 내어 출가하였다. 형행瑩行 사람과 함께 완두阮杜에 무량수불전을 짓고 오로지 정토업을 닦았다. 앉을 때에는 서쪽을 등지는 일이 없었고, 관불삼매를 오래도록 하여 항상 부처님과 두 보살의 상호를 보았다. 어느 날 저녁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고 입적하였다.128)
宋睎湛。山陰人。少爲儒生。忽厭世出
家。與瑩行人。建無量壽佛殿于阮杜。
專修淨業。坐不背西。久之常見佛及二
菩薩相。一夕面西。念佛而化。
23. 송宋 승장僧藏은 분주汾州 사람으로 일생 동안 승속 간에 예법에 따른 인사를 받지 않고 오로지 정토업만 닦았다. 임종할 때 하늘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보살들이 차례로 내려와 맞이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서방 부처님이 이르러서야 대중과 작별하고 입적하였다.129)
宋僧藏。汾州人。一生不受道俗禮拜。
專修淨土。將終。天樂。次苐來迎。皆不
赴。及西方佛至。別衆而化。
24. 송宋 지원智圓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서 주석하였다. 여러 경전에 널리 능통하였으나 정토를 마음에 새겨 『미타소彌陀疏』와 『서자초西資鈔』를 지었고 이를 통해 왕생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권하였다. 임종할 때 무덤에 도기陶器를 묻었는데 15년 뒤 장맛비에 산이 무너졌다. 도기를 열어 보니 용모가 옛 모습 그대로였고 손톱과 터럭이 길게 자라 있었다.130)
宋智圓。居西湖孤山。廣解諸經。刻心
淨土。造彌陀䟽及西資鈔。勸發徃生。
將終。以陶哭合瘞。後十五年。積雨山
頽。啓視陶哭。形質儼然。爪髮俱長。
25. 송宋 사정思淨은 성은 유喻씨이고 자호는 정토자淨土子다. 일찍이 영 법사瑛法師를 시봉하였으며 『법화경』을 강의하였다. 후에는 염불에만 오롯이 마음을 두었다. 틈만 나면 불상을 그렸는데 그림을 그릴 때면 반드시 깨끗한 방에서 삼매에 들어가 미타의 광명을 뵙고서야 그리기 시작하였다. 소흥紹興 정사년(1137년)에 7일을 단정히 앉아 있다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하고 입적하였다.131)
宋思淨。喩姓。自號淨土子。早侍瑛法
師。講法華。後專心念佛。暇則畫佛像
凡畫。必于淨室寂想。見佛光時。乃下
筆。紹興丁巳。端坐七日。一心念佛而
化。
26. 송宋 태미太微는 전당錢塘의 안 법사安法師를 따라 출가한 분이다. 처음에 『미타경』을 전수받았는데 외우기를 잘했다. 구족계를 받고서는 문을 닫고 틀어박혀 부지런히 염불에 정진하였다. 항상 뒷산 산보하기를 즐겼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듣고 시원하게 깨우쳤다. 이때부터 그는 피리 하나를 지니고 다니며 스스로 즐겨 하였다.
宋太微。投錢塘安法師出家。初授彌陀
經。便能背誦。及受具。扃門念佛。精進
不怠。常縱步後山。忽聞笛聲。豁然開
悟。因畜一笛。自娛。
능감부凌監簿라는 이가 정토업에 뜻을 같이하였는데 그는 태미를 정토향의 어른이라 불렀다. 하루는 문을 두드리며 “정토향의 아우가 형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태미는 “내일 정토에서 만나려면 지금은 열심히 염불을 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대사가 미음을 먹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가서 보니 피리와 발우와 의자를 불사르고 땅바닥에 가부좌한 채 열반해 있었다.132)
有凌監簿者。同志淨業。稱微爲淨土鄕長。一日叩門曰
淨土鄕弟相見。微曰明當相見于淨土。
今誦佛正冗耳。翌朝人怪其不赴粥。徃
視之。見笛鉢禪椅已焚。跏趺地上而化。
27. 송宋 형가瑩珂는 삽천霅川 요산瑤山에게 수업한 분이다. 술과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었는데 문득 계율을 지키지 않아 윤회 유전할까 두려워하여 계주 선사戒珠禪師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읽었다. 『왕생전』 한 편을 읽으면 머리를 한 번 끄덕였다.
宋瑩珂。受業霅川瑤山。酒炙無擇。忽
自念梵行虧缺。恐從流轉。取戒珠禪師
徃生傳讀之。讀一傳。一首肯。
방안에서 서쪽을 향해 참선하는 의자에 앉아 음식을 끊고 염불하였다. 사흘째가 되자 꿈에 부처님이 말하기를 “너는 10년을 더 살 것이니 마땅히 스스로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형가는 말하기를 “더 일찍 안양 땅에 나서 여러 성인들을 받들어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의 뜻이 이와 같으니 사흘 후에 너를 맞이하겠노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에 이르러 곧 말하기를 “부처님이 오셨다.”라고 하고 조용히 입적하였다.133)
室中面西。設禪椅。絶食念佛。越三日。夢佛告
曰。汝尙壽十年。且當自勉。珂曰願早
生安養。奉事衆聖。佛言汝志如是。後
三日迎汝。至期乃曰。佛來。寂然而化。
28. 원元 선주善住의 자는 운옥雲屋으로 소주蘇州 사람이다. 하루 종일 문을 잠그고 염불하였다. 오랜 병에도 이를 바꾸지 않아 임종할 때 이채로운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안양전安養傳』과 『곡향집谷響集』이 세상에 전한다.134)
元善住。字雲屋。蘇州人。掩關六時念
佛。病久不易。終時。異香滿室。有安養
傳。谷響集。行世云。
29. 원元 묘문妙文은 아홉 살에 출가하였다. 30세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 자유자재로 설법함에 걸림이 없었으니 마치 산골짜기 물이 거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후에 오로지 염불삼매를 닦아 임종 시에는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 여러 제자들에게 아미타불을 소리 높여 부르도록 하고서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135)
元妙文。九歲出家。三十始出世。縱無
礙辯。若峽倒川奔。後專修念佛三昧。
臨預知時至。命諸弟子。高稱阿彌陀
佛。面西趺坐而蛻。
30. 원元 반곡盤谷은 용모는 볼품이 없었으나 뜻과 기상이 활달하고 호방하였다. 산수를 좋아하여 항상 말하기를 “나의 발자취는 세상의 반을 밟을 것이요, 시의 명성은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하였다. 당시에 고려 심왕瀋王136)이 대사의 덕망을 듣고 초빙하여 『화엄경』을 강의하도록 하였다. 모든 승려와 신도들이 진심으로 감복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후에 송군(松郡: 개경)에 이르러 정사精舍를 짓고 정토업에 힘썼다. 염불을 일과로 삼았고 70년을 질병 없이 살다가 떠날 때를 예고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137)
元盤谷。狀貌不揚。而志氣超邁。性耽
山水。甞云足跡半天下。詩名滿世間。
時高麗瀋王。聞師德望。聘講華嚴。七
衆傾服。王大悅。後至松郡。搆精舍。勤
修淨業。日倮念佛。年七十無疾。預告
以時。端坐而寂。
31. 원元 천여 유칙天如惟則은 중봉中峰 화상의 법을 이은 분으로 신묘한 깨달음이 남달랐다. 소성蘇城에 사자림보리정종사師子林菩提正宗寺를 지었는데 와설당臥雪堂과 입설당立雪堂 두 거처가 있어 매일 그곳에서 염불하였다. 『정토혹문淨土或問』을 지어 사람들에게 권장하였는데, 임종할 때 상서로운 감응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138)
元天如惟則。得法中峰。妙悟出人。建
師子林菩提正宗寺于蘇城。有臥雪立
雪二室。日坐其中念佛。又著淨土或問
勸人。終時瑞應非一。
32. 원元 조휘祖輝는 사명군四明郡 성불각城佛閣에 거주한 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다만 ‘아미타불설역설부득阿彌陀佛說亦說不得’이라 하여 사람들이 호를 ‘설부득說不得 화상’이라 하였다. 은현鄞縣의 위왕尉王 용향用享 부부가 공경으로 대하였다. 하루는 집에 가면서 특별히 말하기를 “내일 떠난다.”고 하였는데 다음 날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139)
元祖輝。住四明郡城佛閣。逢人俱云
阿彌陀佛。說亦說不得。人因號說不得
和尙。鄞縣尉王用享夫婦。敬事之。一
日詣其家。別云吾明日行矣。及明果化
33. 명明 초기楚琦는 촉蜀 사람으로 서방극락을 독실하게 믿은 분이다. 연경燕京에 이르러 누각에서 치는 북소리를 듣고 크게 깨우쳤다. 후에 집을 지어 당호를 서재西齋라 하고 정토업淨土業에 전일하게 뜻을 두었다. 일찍이 큰 연꽃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미타불이 중앙에 계시고 여러 성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돌아가실 때에 임종게를 써서 대중에게 보이고 입적하였다.140)
明楚琦。蜀人。篤信西方。因抵燕京。聞
樓鼓聲大徹。後築室號西齋。一意淨業
甞見大蓮華。充滿世界。彌陀在中。衆
聖圍繞。將示寂。書偈示衆而逝。
34. 명明 보주寶珠는 일찍이 항군杭郡 가화嘉禾 근처에서 떠돌이로 지냈다. 더우나 추우나 한 벌 옷으로 지냈으며 걸식으로 살아갔고 일정한 거처가 없었다. 다만 평소에 염불 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들이 부를 때 잠깐 응대할 뿐 곧바로 염불 소리를 이어 냈고 다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루는 대중에게 알리기를 “나는 가노라.” 하고 삭발과 목욕을 마친 후에 입적하였다.141)
明寶珠。常遊杭郡嘉禾間。冬夏一衲。
乞食自活。宿無恒居。平時惟念佛不絶
口。人喚之。纔應對。即連聲念佛。更無
雜語。一日告衆曰。吾行矣。索浴畢。化
去。
35. 명明 혜일慧日의 호는 동명東溟이요, 성은 가賈씨다. 송나라 재상 가사도賈似道의 손자이다. 가사도가 귀양 갔을 때 대사는 아직 어렸으나 출가에 뜻을 두었다. 지정至正 연간에 하천축사下天竺寺142)에 화재가 나 중신重臣인 고납린高納麟이 대사에게 중건하도록 청하였다. 홍무 2년(1369년)에 봉천전奉天殿에서 임금을 알현하였는데 붉은 얼굴 흰 눈썹으로 갖추어 말하는 바가 임금의 뜻에 잘 들어맞았다.
明慧日。號東溟。姓賈氏。即宋相似道
之諸孫。似道謫戌時。師尙幼。志求出
家。至正間。下天笁災。元臣高納麟。請
師新之。至洪武二年。上召見奉天殿。
朱顏白眉。備奏稱旨。
태조가 주변의 여러 승려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어찌하여 여러 불경의 깊은 뜻을 백미 법사白眉法師에게 물어보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임금에게 알현할 때에는 백미 대사로 불렸다. 그 후 상축사에 돌아와 날마다 미타참彌陀懺을 닦아 정토업을 지극하게 닦았다. 어느 날 저녁에 푸른 연꽃이 네모난 땅143)에서 피어나는 꿈을 꾸고 깨어서 대중에게 말하기를 “내가 정토에 나는 상서로운 광경을 보았다.”고 하였다. 나흘 후 합장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144)
大祖顧謂衆僧曰
爾等何不質諸經奧義於白眉法師。嗣
後召見。但以白眉呼之。後歸上笁。日
修彌陀懺。以臻淨業。一夕夢靑蓮生方
地中。寤告衆曰。吾生淨土之祥見矣。
後四日。合爪趺坐而化。
36. 명明 진청眞青은 십구 세에 출가하여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다가 배가 나루에 닿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후에는 화정華頂 천주봉天柱峯으로 옮겨 대·소미타참大小彌陀懺을 닦아 꿈에 서방의 세 성인을 보았다. 만력 계사년(1593년) 정월에 임종을 고하였는데 이때 대중들이 묻기를 “스님은 어느 품에 왕생하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답하기를 “계율의 향만 쐬었기 때문에(戒香145)所熏) 중품中品에 그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씀을 마치고는 바로 열반하였다.146)
明眞靑。十九出家。叅無字語。聞舟觸
岸聲。有省。後遷華頂天柱峯。修大小
彌陀懺。夢見西方三聖。萬曆癸巳正月
告終。衆曰和尙徃生何品。曰中品中生
也。胡不上品生耶。曰吾戒香所熏。位
止中品。言畢而化。
37. 명明 조향祖香은 강서江西 신유인新喻人으로 산동山東 용담사龍潭寺에서 정토업을 정성으로 닦았다. 왕걸王傑이라는 거사가 절을 짓고 대사를 초빙하였는데 얼마 있다가는 “몇 월 며칠에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중들이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조향은 “안양의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에 자리를 펴고 서쪽을 향하여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관을 들고 산에 들어가자 혼불이 저절로 몸을 태웠다.147)
明祖香。江西新喩人。於山東龍潭寺。
精修淨業。有居士王傑。築庵延之。未
幾語傑云。某日當歸家。衆苦留。香云
歸安養家耳。及期敷座西向坐逝。擧龕
入山。化火自焚。
38. 명明 연지 대사蓮池大師의 휘는 주굉袾宏이고 자는 불혜佛慧이며 항주杭州 심沈씨이다. 약관의 나이에 불법(佛乘)에 뜻을 두어 가정嘉靖 연간 병인년(1566년)에 무문 성천無門性天을 은사로 하여 머리를 깎았다. 얼마 후에 구족계를 받았고 바리때 한 벌과 신발 한 켤레로 선지식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明蓮池大師。諱袾宏。字佛慧。杭州沈
氏。弱冠棲心佛乘。嘉靖丙寅。依無門
性天薙染。尋具戒。單瓢隻履。遍歷知
識。
당시에 판융辨融 대사와 소암笑巖 대사가 선종禪宗에서 가장 이름이 났는데 나아가 참구하자 서로 맞아떨어지는 바가 많았다. 북쪽으로는 오대산에 유람하여 문수보살이 방광放光하는 것을 감응하였다. 신미년(1571년)에는 운서산雲棲山의 풍광이 깊고 고요한 것을 보고 띠집을 지어 마칠 때까지 머물렀다. 온 산에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일이 많았는데 대사가 경을 읽어 시식施食하자 그런 일이 사라졌다. 가뭄이 든 해에는 밭을 돌며 염불하였는데 발길이 닿는 데를 따라서 때마침 비가 내려 적셨다. 이때부터 교화가 널리 퍼졌다.
時辨融笑巖兩禪宗最著。就叅多
所契合。北遊五臺。感文殊放光。辛未
見雲棲山水幽寂。遂結茆終焉。環山多
虎災。師爲諷經施食。虎患以寧。歲旱
循田念佛。隨足所至。時雨添澍。自此
化道大行。
대사는 홀로 염불 정토문을 열었는데, 삼장三藏을 두루 융회하여 일심으로 돌아가도록 지도하였다. 사방의 승속들이 예를 표하여 도를 들으러 왔고, 이름난 벼슬아치들도 마음으로 감복하여 귀의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또한 성 안팎의 모든 산에 방생하는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자성태후慈聖太后가 환관을 보내 불법을 묻고 자주색 가사148)와 황금을 하사하였다. 사자가 돌아가자 금은 상주물常住物149)로 보내 버리고 가사는 높은 누각에 모셔 두고는 한 번도 몸에 걸치지 않았다.
師獨闢念佛一門。融會三藏。
指歸一心。四方緇白。頂禮聞道。名公
巨卿。靡不心折歸依。又城內外山中
俱置放生池。慈聖太后。遣中貴詢法
賜紫衣黃金。使者出。金歸常住。衣奉
高閣。未甞掛體。
염불삼매로써 삼근三根150)을 널리 아울렀으며 『미타소초彌陀疏鈔』와 『운서법휘雲棲法彚』 등 20여 종을 남겼다. 임종하기 보름 전에 성에 들어가 친구와 제자들에게 “나는 곧 그곳에 왕생한다.” 하며 작별하였고 산을 돌며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작별을 고하였으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헤아리지 못하였다. 때가 되자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였고 단정히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연종蓮宗의 8대조151)라 부른다.152)
以念佛三昧。普攝三
根。著彌陀䟽鈔。雲棲法彙二十餘種
行世。臨終半月前。入城別故舊弟子等
曰。吾將他徃。還山與衆詬別。亦如之。
衆皆莫測。至期面西念佛。端坐而逝。
世稱蓮宗八祖云。
39. 명明 불석佛石의 별호는 법우 노인法雨老人이다. 어머니가 한 스님이 가사(伽黎)로 몸을 덮는 태몽을 꾼 후 태어났다. 어릴 때는 생선 비린내 맡기를 싫어하였고 열네 살에 출가하여 열여덟 살에 연지 대사蓮池大師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30세에 금릉에서 자백 선사紫栢禪師를 뵙고 친히 수기授記를 받았다.
대사는 고고(孤卓)한 품성을 지녔으며 세상 인연을 맺지 않았다. 만년에는 손님과 응대하지 않고 이를 피해 무림봉의 정상으로 거처를 옮겨 방 한 칸을 얽고 구덩이를 하나 파고 말하기를 “살았을 제 가히 지낼 만하고 죽을 제 가히 묻을 만하구나.”라 하였다. 오랜 후에 병색을 드러내었다. 제자가 게송을 청하자 대사가 휘둘러 쓰기를,
明佛石。別號法雨老人。母夢僧以伽黎
覆體而生。幼時惡聞腥羶。十四剃染。
十八受具於蓮池大師。三十謁紫栢禪
師於金陵。親承授記。師性孤卓。不事
世緣。晩歲謝客。避居於武林峰頂。搆
一室開一壙曰。吾生可棲。死可葬。旣
久示疾。弟子請留偈。師走筆書曰。
一句彌陀五十年 ‘미타불’ 한 구절로 오십 년을 살았으니
分明掘地討靑天 분명히 땅을 뚫고 하늘을 쳤겠구나.
而今好箇眞消息 지금 이 한 구절 참다운 소식이니
半夜鍾聲到客船 한밤의 종소리 여객선에 이르도다.
하고 붓을 던진 후 입적하였다.153)
一句彌陀五十年。分明掘地討靑天。而今
好箇眞消息。半夜鍾聲到客船。投筆而
逝。
40. 명 황주黃州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승려가 있었다. 그는 아미타불에 전념하여 밤낮 그치지 않았고 눈으로 보는 것마다 모두 아미타불이라 불렀다. 숭정 연간(1628~1644년)에 황주의 총융總戎인 정鼎이 황주성을 지키는데 대사가 염불하는 소리가 길에 시끄럽게 들리자 그를 붙잡아 두었다. 마침 장헌충張獻忠이 황주를 공격할 때 대사 역시 성 위에 머물러 있다가 야간에 염불하여 자주 시끄럽게 잠을 깨우자 군사들이 매우 싫어하여 묶어서 성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러나 조금 후에 다시 성위에서 염불하기를 네 차례나 반복하자 총융이 비로소 예로써 공경하였다.
明黃州。有無名僧。專念阿彌陀佛。晝
夜不撤。隨其所見。皆稱阿彌陀佛。崇
禎間。黃總戎鼎。守郡城。師大聲念佛
衝其道。執之。適張獻忠。攻黃州。師亦
留城上。夜間念佛。且頻呼醒睡。軍士
恨之。縛投城下。未幾復在城上念佛。
如是四次。總戎始敬禮焉。
이때 황주에 큰 기근이 있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사가 성 밖으로 나가자 굶주린 백성들이 칼을 들고 대사의 몸을 희사하기를 요구하였다. 대사는 옷을 벗어 대중에게 보여 주며 말하기를 “내가 염불을 천 번 할 동안 기다린 후에 나를 먹으시오.”라고 하였다. 염불을 3백 번 정도 했을 때 대중들이 갑자기 칼로 베고자 하였다. 이때 불현듯 병마兵馬가 공중에서 내려와 굶주린 사람들이 놀라 흩어졌는데 대사는 이미 성안에 들어와 있었다.
時黃州大飢人相食。師出城外。飢民持刀。乞師捨
身。師解衣示云。俟我念佛千聲。即食
我。念至三百聲。衆急欲加刃。忽有兵
馬。從空中來。飢民驚散。而師已在城
中矣。
산속에 사냥꾼이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 대사는 이를 사들여 방생하려 하였다. 사냥꾼이 30금을 달라 하였으나 대사는 넉 돈의 금만 가지고 있었다. 사냥꾼이 말하기를 “스님께서 호랑이 귀를 잡고 세 바퀴 돌리되 호랑이가 스님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 호랑이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마침내 호랑이에게 수기授記를 주고 귀를 잡아 세 번 돌리고 달아나게 하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대사에게 귀의하여 떠나가지 않아 둘이 함께 황마산黃麻山 금강동金剛洞에 머물렀다.
山中獵人。得一大虎。師募之放
生。獵人索三十金。師止得四金。獵人
云。汝能執虎耳三匝。而不傷汝。則與
汝虎。師遂授記虎。執虎耳三匝。縱之
逸。虎歸依師不去。師與虎。同住黃麻
山金剛洞中。
내상內相154) 노구덕盧九德이 병사들을 감독하러 황주를 지날 때 산에 이르러 호랑이를 보고자 하였다. 대사는 호랑이에게 다만 머리만 밖으로 내보이도록 하였으나, 노구덕이 호랑이 전신을 보려 하자 호랑이는 크게 소리 지르며 뛰쳐나갔다. 노구덕 역시 불법佛法에 귀의하였다.
內相盧九德。督兵過黃州
詣山欲見虎。師令虎。止出頭于外。廬
欲見全身。虎大呌躍出。盧亦歸依焉。
대사가 하루는 거리를 걷던 중에 닭 한 마리를 보고 고성으로 염불하자 닭 역시 그 소리를 따라 염불하였다. 신이하기가 이와 같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경인년(1650년)에155) 대사가 무림武林으로 가다가 길에서 전공錢公을 만났는데 대사에게 수행의 요체를 알려달라고 간청하였다. 대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아미타불을 외우라고 하며 다시 말하기를 “내가 떠난 후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각랑覺浪에게 물어보라. 그 사람은 눈이 밝은 사람(明眼人)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염불하고 앉아 입적하였다.156)
師一日行街中。見一鷄。高聲念佛。雞
亦隨聲而念。神異如是非一。唐寅師之
武林。道遇錢公。公懇示修行之要。師
云一心念彌陀。復云我行後。有所疑
問覺浪。此明眼人也。後念佛坐化。
41. 청淸 구종具宗 스님은 무석無錫 사람이다. 염불삼매로 대중을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다. 순치順治 기해년(1659년)에 병색을 보이다가 스스로 기약한 시간에 목욕하고 한쪽 신만 신었는데, 이는 외짝 신발로 서쪽으로 돌아가는 뜻(隻履西歸)157)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미타경』을 다 염송하고 아미타불을 열 번 소리 내어 염불하였으며, 큰 글씨로 ‘공허하고 신령스럽게 텅 비어(廓落靈虛) 갈 곳도 없고 올 곳도 없다(無往來處)’라고 쓴 후 붓을 던지고 입적하였다.158)
太淸釋具宗。無錫人。以念佛三昧。誨
人不倦。順治己亥。示疾約時沐浴。但
著一履。密表隻履歸西之意。誦彌陀經
畢。念阿彌陀佛十聲。擧筆書大字云
廓落靈虗。無徃來處。擲筆而化。
42. 청淸 신심新心의 휘는 대진大眞이다. 어려서 무림武林 연거암蓮居菴에 출가한 분으로 소각紹覺 대사의 법을 이어 반주삼매般舟三昧159)를 행하였다. 임종할 때에 여러 제자들이 같은 꿈을 꾸었는데 허공에 가득한 천신이 향과 꽃을 들고 말하기를 “신심 대사가 서방에 태어날 것이므로 맞이하러 왔다.”고 하였다. 아침이 되자 제자들이 모여 안부를 물었는데, 몸 건강히 염불하고 있는 대사의 모습이 전과 다름없었다. 사흘이 지난 후 홀연히 앉은 채 입적하였다.160)
太淸新諱大眞。童身出家武林蓮居
庵。受紹覺師之法。行般舟三昧。終時
諸弟子。同夢見滿空天神。執持香華
唱云迎新大師。生西方。及旦。弟子
聚而候之。師身康念佛。相見如常。
過三日。忽坐化。
43. 청淸 임곡林谷은 소흥紹興 사람으로 나산羅山의 서쪽에 주석하였다. 해진 가사와 미투리 차림으로 남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것을 제일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임종할 때에 흰 구름 위에 서 계신 부처님이 오셔서 영접하는 것을 뵙고 입적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그 암자를 고쳐 백운암이라 하였다.161)
太淸林谷。紹興人。住羅山之西界。破
衲麻鞋。唯勸人念佛。爲要務。至終時。
見白雲立佛來迎而化。土人改其菴曰
白雲。
44. 청淸 도추道樞는 인화仁和 사람으로 언제나 사람들에게 염불을 길잡이(前茅)162)로 삼도록 하였다. 평소에 염불에 용맹 정진하였고 세상 인연에 얽매이지 않았다. 순치順治 을미년(1655년)에 신령한 스님과 함께 옥병봉 정상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병신년(1656년) 6월에 병색을 보였다. 26일 아침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지난밤 꿈에 신령한 스님이 나를 맞으러 오셨는데 아마도 옛날 옥병봉에 같이 올라갔던 분이 아닌가 싶다.”라고 하였다. 술시(오후 7~9시)에 홀연 일산이 하늘에 가득하고 연꽃이 땅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 곧바로 가부좌하고 합장하여 아미타불을 백여 번 염송한 뒤 편안하게(安詳)163) 입적하였다. 관에서 기이한 향기가 났다.164)
太淸道樞。仁和人。每勸人以念佛爲前
矛。平居勇猛念佛。不勤世緣。順治乙
未。夢與神僧。登玉屏峰頂。丙申六月。
示疾。二十六日蚤。語衆曰。夜夢神僧
來迓。豈即昔之登玉屏峯者邪。至戌時。
忽見幡盖盈空。蓮華布地。即趺坐合掌。
念彌陀佛號百餘聲。安詳而逝。龕有異
香。
45. 청淸 만연萬緣의 속성은 교喬씨로 장흥長興 사람이다. 사람됨이 우둔하여 평소에 꾸짖어도 화를 내지 않고 칭찬해도 기뻐하지 않으며 오직 아미타불 명호만 수십 년간 지송持誦하였다. 강희 2년(1663년) 6월 아픈 기색 없었는데 홀연 스스로 풀로 엮은 감실을 만들었다. 9월 초엿새에 스스로 그곳에 들어가 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165)
太淸萬緣。俗姓喬。長興人。爲人愚鈍。
平日詈之弗嗔。譽之不喜。專持彌陀佛
號數十年。康熈二年六月。無疾。忽自
縛草龕。九月初六日。自入草龕。趺坐
而逝。
46. 청淸 항군杭郡 장가사張家寺의 본충 선사本冲禪師는 평소에 법석法席166)에만 전념하여 여러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도를 펴신 분이다. 강희康熙 11년(1672년) 9월에 병색을 보이고 말하기를 “나는 죽는다.”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다시 살아나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평소에 염불 공부를 하지 않아 지금 가보니 앉을 자리가 없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나를 도와 염불해 달라.”고 하여 대중들이 합장하여 칭념稱念167)하자 바로 입적하였다.
이를 보면 염불법문은 범속함을 뛰어넘어 성인에 이르는 것으로 그 이익이 범상치가 않으니 절대로 조금이라도 늦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168)
太淸杭郡張家寺禪師本冲。素專法席。
開道羣蒙。康熈十一年九月。示疾云亡。
有頃復甦。謂大衆曰。我平日缺念佛工
夫。今去無坐位。汝等當助我念佛。衆
爲合掌稱念。逾時而逝。觀此則知念佛
法門。超凡入聖。利益非常。斷斷不可.
근본설일체유부 비나야파승사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제1권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
의정(義淨) 한역
권영대 번역
그때 박가범(薄伽梵)께서 겁비라성(劫比羅城)의 니구율타 동산[尼俱律陀園]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이때 이 성안의 여러 석가 자손들이 한 곳에 모여 앉아 서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묻기를 ‘석가 종족 중에 누가 최초이며, 어디에서 태어났는가.1) 또한 어떻게 계승되었기에 존귀하며, 그 주자(胄子)2)는 대체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우리들은 이와 같은 차례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들 모두 세존께 가서 이것을 여쭈어 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받들어 따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의논한 여러 석가 자손들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에 가서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한쪽에 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그 일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저희들에게 묻기를 ‘석가 종족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누가 가장 먼저 태어났느냐, 누가 존귀한가, 적장자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저희는 이 일 때문에 이렇게 와서 여쭙는 것이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어 말씀해 주소서. 저희는 부처님의 지시대로 받들어 지니겠나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묵묵히 생각하셨다.
‘만약 나 자신이 석가 종족 가운데 존귀한 자가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여러 외도들은 ≺사문 교답마(喬答摩:싯다르타 고타마)가 스스로 석가 종족을 찬양하여 존귀해지기를 바란다≻고 비난할 것이다.’
또 생각하셨다.
‘나의 제자 가운데 누가 능히 석가 종족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대목련(大目連)이 이 일을 잘 말하여 줄 것이라 여기시고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선정에 들 것이니, 네가 석가 종족을 위하여 그 인연을 설명하여라.”
목련은 묵묵히 부처님의 지시를 받들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승가지(憎伽胝:憎伽梨)를 네 번 접어서 머리에 베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워 두 발을 포갠 뒤, 광명상(光明想)과 정념기상(正念起想)을 지어 이와같이 선정에 드셨다.
이때 구수(具壽:大德) 대목건련이 생각하였다.
‘지금 나도 이와 같이 선정에 들어 생각하고 관찰하면 석가 종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대중 앞에 나아가 높은 자리에 올라 가부좌를 하고 여러 석 가 종족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잘 들으시오. 이 세계가 처음 생길 때 이 대지는 하나의 바닷물이었으며 바람에 세차게 흔들려 마치 끓는 우유처럼 하나로 화합되었습니다. 이윽고 차갑게 식고 나니 응결이 생겼습니다. 바닷물 위도 역시 이와 같아서 지미(地味)3)가 생겨나고 색(色)과 향(香)과 맛[美] 등이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가 성립되었을 때 한 유정(有情)의 부류가 복명(福命)이 모두 끝나, 죽어서 광음천(光音天)으로부터 이곳으로 와서 태어났는데, 모든 감각을 온전히 다 갖추고, 몸엔 광채를 띤 채 허공을 타고 오고 가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음식을 삼고, 수명도 아주 길었습니다. 이때 이 세계는 해도 달도 별도 밤낮도 계절도 없었고,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나 신분의 귀천도 없었으며, 다만 서로서로 ‘살타살타(薩埵薩埵)’라는 말만 주고받을 뿐이었습니다.
이때 대중 가운데 한 중생이 탐욕의 성품이 있어 갑자기 손가락으로 지미(地味)를 찍어 맛보게 되었습니다. 맛을 봄에 따라 애착이 생겼고, 애착하였기 때문에 음식물[段食]4)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그 일이 처음으로 음식물을 섭취했던 일이었으니, 나머지 다른 중생들도 이렇게 먹는 것을 보고, 곧 서로 먹는 것을 배웠습니다. 먹고 나니 몸이 차츰 굳어지고 무거워졌으며, 광채도 없어져 모두 다 캄캄해졌고, 또 먹는 분량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자 얼굴빛이 차츰 퇴색하게 되었습니다.
빛이 차츰 감소하게 되니까 서로서로 ‘내 몸은 빛이 나서 기쁜데 네 몸은 빛이 줄었다’고 이야기하게 되었으며, 빛이 나서 즐거운 자는 자기의 빛을 의식하여 드디어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으며, 이 나쁜 마음 때문에 지미가 드디어 소멸되었습니다. 지미가 소멸되고 나니, 모든 중생들이 모여들어 서로 원망하고 한탄하는 마음을 일으켜 슬피 울고 고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
마치 세상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늘 그 좋은 맛을 기억하여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라고 말하듯이 말입니다. 말은 비록 이렇게 하지만 그 뜻이 좋은 인연인지 나쁜 인연인지, 무슨 연유로 지미가 사라졌다고 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또 중생의 업 때문에 지병(地餅)이 나왔는데, 빛깔과 향기와 좋은 맛을, 마치 금빛 꽃이나 갓 익은 꿀처럼 다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병을 먹으며 장수하였습니다.
소식(少食)하는 자는 몸에 광채가 나지만 서로 경멸하고 업신여김으로 인하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결국 지병은 다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여러 중생들이 한 곳에 모여서 근심하고 걱정하며 서로 보고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괴롭고 괴롭구나. 우리들이 예전에 일찍이 이러한 나쁜 일을 만난 적이 있던가.’
이 모든 중생들은 지병이 없어지자 또한 역시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뜻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지병이 없어졌을 때에 모든 유정들의 복력으로 말미암아 임등(林虅)5)이 나왔는데, 빛깔과 향기와 맛이 갖추어져 마치 옹채화(雍菜花)나 새로 익은 꿀과 같았습니다. 이 임등을 먹으면서 장수하였습니다. 소식하는 자는 몸에 광채가 났는데 서로 경멸하고 업신여김으로 인하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임등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여러 중생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근심하고 걱정하며 서로 보면서 ‘너는 내 앞을 떠나라, 너는 내 앞을 떠나라’라고 하며, 마치 몹시 화가 나서 앞에 있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같아서……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임등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모든 중생들은 향기롭고 좋은 맛의 벼를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 않아도 저절로 나고, 겨나 쭉정이가 전혀 없었으며, 길이는 손가락 네 마디 정도였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베어내도 싹이 금방금방 돋아나와 아침저녁으로 익으며 자주 거두어들여도 이상이 없었고 이것을 먹으며 장수를 누렸습니다.
그때 저 중생들은 음식물을 섭취하였기 때문에 찌꺼기가 몸속에 쌓이게 되었으며, 이 찌꺼기를 배출하기 위해 곧 두 기관이 만들어졌고, 이 두 기관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남녀의 생식기가 생겨 서로 욕망이 불붙게 되었으며, 욕망이 불붙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서로 친근해져서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중생들은 이러한 일을 볼 때 오물과 쓰레기, 돌멩이를 그들에게 던지면서 ‘너는 못된 중생이구나, 이렇게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다니. 쯧쯧, 너는 왜 중생을 더럽히느냐?’라고 하면서 하룻밤, 나아가 일곱 밤을 같이 머물지 않고 대중들의 경계 밖으로 쫓아내기를, 마치 지금 시집가고 장가갈 때 향이나 꽃 등의 잡동사니들을 던지면서 ‘언제까지 편안하고 즐거워라’라고 축원하는 것과 같이 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옛적에 법이 아니던 것이 지금은 법이 되었고, 옛적에 율이 아니던 것이 지금은 율이 되었으며, 옛적에 혐오하고 천시하던 것을 지금은 아름답고 훌륭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쫓겨난 사람들이 악한 일을 행하기를 즐기면서 함께 모여 집과 방을 만들고 몸뚱이를 덮고 가려서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집을 짓게 된 최초의 동기이니, 사람들은 이로 인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법대로 하고 법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법 아닌 것을 법으로 여기고 행동하였습니다. 그 중생들은 배가 고프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벼를 갖고 와서 주린 배를 채우면서 다른 중생을 위해 남겨 놓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중생은 게을러서 아침에 일어나 벼를 가지러 갈 때 아예 저녁에 가져올 벼까지 합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저녁이 되어 동반자가 ‘벼를 가지러 가자’고 부르면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너 혼자 가지러 가라. 나는 아침에 벼를 가지고 올 때 이미 두 끼분의 양식을 한꺼번에 가지고 왔으니, 너 혼자 가야겠다. 나는 번거롭게 갈 필요가 없다.’
그러자 동반자는 이 말을 듣고 곧 마음속으로 찬탄하였습니다.
‘그거 매우 참 좋은 생각이다. 나도 가지러 갈 때 이틀분의 양식을 가지고 와야겠다.’
그때 또 다른 한 동반자가 이 말을 듣고 다시 말하였습니다.
‘그럼 나는 3일분의 벼를 가지고 와야지.’
또 다른 동반자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7일분의 벼를 가지고 와야지.’
그리고는 즉시 7일분의 벼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한 동반자가 와서 그 사람을 불러 함께 벼를 가지러 가자고 말하자,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지난번에 이미 7일분의 벼를 다 가지고 왔으니, 번거롭게 다시 갈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참 편리하겠구나. 나도 오늘 가면 보름이나 한 달분의 벼를 가지고 와야지.’
이렇게 하여 수가 점점 갑절로 늘어남에 따라 탐하는 마음도 날마다 더욱 불어나게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벼에서 겨와 쭉정이가 생기게 되었다. 또 처음엔 벼가 아침에 배면 저녁에 다시 돋고 저녁에 베면 아침에 다시 돋아나도 그 열매가 영글었었는데, 이와 같은 탐심과 애욕으로 인하여 벼를 한 번 벤 뒤에는 벼가 다시는 나지 않았으며, 설령 나더라도 그 열매가 점점 작아지고 영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여러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베어 갔으며, 어쩌다 남아 있던 벼는 점점 작아지고 영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러 중생들이 다시 한 곳에 모여서 서로 함께 슬피 탄식하며 말하였습니다.
‘옛적에 우리들은 몸에 빛이 나고 자유자재로 날아다녔으며, 단정함과 위엄을 갖추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음식을 삼아 배를 채웠다. 그 뒤에 지미(地味)로 먹이를 삼아 그것을 먹을 때는 오히려 향기롭고 맛이 있었는데, 그 지미를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우리들의 몸은 굳어지고 무거워졌으며, 나중엔 광명이 없어지고 신통력마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둡고 해로운 갖가지 일들을 잇달아 당하게 되었다.
모두들 슬피 울면서 마음 아파하자,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났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음) 많이 먹은 사람은 몸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고 적게 먹은 사람은 아직도 몸이 빛나고 기분이 좋았다. 이 두 가지 식사 때문에 마침내 두 종류의 얼굴이 생겼으며, 이 두 종류의 얼굴 때문에 그들은 서로 경멸하고 천대하면서 ≺나는 잘 생겼고 너는 못생겼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 사람이 서로 경시하고 헐뜯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차츰차츰 착하지 못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지미(地味)도 다 사라지게 되어 사람들은 이를 슬퍼하며 한탄하였다.
그 뒤에 지병(地餠)이 나와서 빛깔과 향기가 훌륭한 맛을 다 갖추었기에 우리들은 그것을 먹고 오래오래 살았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사람은 몸의 광채가 어둡게 변했고 적게 먹은 사람은 몸이 아직 빛나고 편안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얼굴 때문에 마침내 두 종류의 좋고 나쁜 무리가 생겨 서로 경시하고 헐뜯게 되었으며, 경시하고 헐뜯음으로 말미암아 점차 착하지 못한 마음으로 바뀌었고, 지병도 다 사라지게 되어 우리들은 슬퍼하고 고뇌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 임등이 나오게 되었는데, 좋은 빛ㆍ향기ㆍ맛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우리들이 그것을 먹고 오래오래 살게 되어 오래 사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몸의 광채가 줄어들어 어두워졌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몸이 빛나고 편안했다. 결국 임등이 사라지고 다시 벼라는 곡식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벼는 심지 않아도 저절로 났고 겨나 쭉정이가 없었으며 길이는 손가락 네 마디만하고 향내와 좋은 맛이 갖추어져 우리들은 그것을 먹고 몸이 건강했다. 이 벼를 먹은 사람은 세상에 오래도록 살게 되었지만, 탐욕의 마음이 쌓이게 되자 그 벼는 작고 부실하게 되었으며, 겨와 쭉정이는 더욱 심하게 되었다. 또 그 벼는 힘이 없게 되었고, 한 번 베면 다시는 나오지 않게 되어 어쩌다가 조금 남게 되었다.’
이것을 들은 여러 중생들은 다시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땅을 나누어 경계를 만들자.’
이때 땅을 측량하여 경계를 만들게 되었는데, 각각 그것을 측량하여 경계를 만들어 나누어 가져서 ‘이것은 네 땅이고, 이것은 내 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간에서는 땅에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경계와 밭두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 어떤 중생이 자기의 밭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곡식을 훔쳤는데, 이를 본 어떤 중생이 그에게 ‘너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곡식을 훔치느냐. 이번 한 번은 훔친 것은 눈감아 주겠지만 이 뒤로 다시는 훔치지 말라’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생은 훔칠 생각을 그치지 않고 그 이튿날도 셋째 날도 역시 훔쳤습니다.
이를 본 여러 사람들이 다시 충고하기를 ‘너는 세 번씩이나 훔쳤으며 여러 번 훔치지 말기를 권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군중들에게 끌고 가서 모든 것을 다 말하였습니다. 군중들은 모두 그에게 ‘너는 너의 밭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밭에 있는 곡식을 세 번씩이나 훔치느냐’라고 충고하고는 즉시 놓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벼를 훔친 자가 대중에게 말하길 ‘고작 하찮은 벼 때문에 지금 나를 붙들어 추궁하고, 대중 앞에서 나를 헐뜯고 욕하는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대중은 다시 그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하찮은 벼 때문에 사람을 붙잡고 욕하고 헐뜯었다고 생각하여 도리어 대중을 향해 욕하느냐?’라고 하니, 그 뒤에야 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도둑으로 인하여 서로 헐뜯고 욕하는 것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대중들은 모두 모여서 의논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번 일을 다 보았다. 다른 사람의 곡식을 훔친 자와 그를 본 대중이 서로 헐뜯고 있으니,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죄인인지 알 수 없다. 우리들의 생각으론 대중 가운데서 얼굴빛이 단정하고 그 모습이 완전하며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지주(地主)로 삼아서 허물이 있는 자는 벌(罰)로 다스리고 허물이 없는 자는 양육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들이 농사짓는 밭은 각자 법대로 여섯 등분하여 그 중 한 등분을 지주에게 주도록 하자.’
그때 대중 가운데 위에서 말한 조건을 두루 갖춘 덕 있는 사람을 뽑아서 즉시 지주(地主)로 삼았습니다. 그때 대중들은 지주에게 말했습니다.
‘대중 가운데 이를 어기는 자가 있거든 법에 따라 벌로써 다스리고, 어기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보호해 주기를 청합니다. 우리들이 농사짓는 밭은 모두 법대로 여섯 등분하여 그 가운데 한 등분을 주겠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주가 생겨났습니다. 그때 지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허물이 있는 자는 법에 따라 벌로써 다스리고, 범하지 않은 자는 법에 따라 보호하겠다.’
그때 대중들은 곡식을 심을 만한 밭을 모두 법에 의해 여섯 등분으로 나누고, 그 중 한 등분은 지주에게 주었습니다.
대중들이 다 동의하여 지주로 세웠으므로 대동의(大同意)라 이름하였고, 못나고 약한 자를 능히 옹호했으므로 찰제리(刹帝利)라 이름하였으며, 능히 법대로 나라를 다스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계행(戒行)과 지혜를 기뻐하도록 하였으므로 또한 이름을 대동의왕(大同意王)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왕이 취임할 때 사람들은 그를 유정대등의왕(有情大同意王)이라고 불렀으며, 그 아들의 이름은 의요(意樂)인데 곧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중생들은 그를 근래의요왕(近來意樂王)이라 불렀으며, 그 아들의 이름은 선덕(善德)이었습니다.
여러분, 선덕왕(善德王) 때 모든 중생들은 그를 염자선덕왕(黶子善德王)이라고 불렀고, 아들의 이름은 최승선(最勝善)이라고 불렀는데,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또 그때 중생들은 그를 운인최승선왕(雲咽最勝善王)이라고 불렀으며, 그 자식은 장정(長淨)이라고 불렀는데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중생[有情]들은 왕을 다라상가장정왕(多羅尙伽長淨王)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정수리 위에는 조그만 부스럼 자국이 있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이 마치 부드러운 목화솜이 겹겹으로 쌓인 것 같았고, 이것이 점차 불어났지만 한 번도 아프거나 괴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 차츰 농후해지더니 결국 터져서 한 어린아이를 출생하였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상(大丈夫相)을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정수리로부터 출생하였으므로 정생(頂生)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장정왕(長淨王)은 부인이 6만 명이었습니다. 그때 부왕(父王)이 정생을 데리고 후궁6)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6만 부인은 정생을 보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내니 젖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왕에게 ‘내가 기르겠어요. 내가 기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다시 지양(持養)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지양은 즉위하여 왕이 되었는데, 그때 중생들은 모두 사유(思惟)하고 서로 묻고 의논하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였으며, 각각 한 가지의 재주를 익혔습니다. 이때 저 중생들은 자세히 헤아렸으며, 미노사(未努沙)이곳 말로 인(人)이다.는 앞의 여섯 왕과 같이 무량한 수명을 누리면서 오래오래 세상에 살았습니다.
이때 지양왕은 오른쪽 넓적다리에 종기가 하나 생겼는데, 부드럽기가 목화솜 같았고 점점 불어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점차로 농후해지더니 마침내 터지자, 그곳에서 동자 한 명이 나왔는데, 용모가 단정하였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단정했기 때문에 이름을 단엄(端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즉위하여 왕이 되었는데, 큰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대주(四大洲)에서 자유자재하였습니다.
단엄왕은 왼쪽 넓적다리에 종기가 생겼는데, 부드럽기가 목화솜 같아서 차츰차츰 커져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농후해져 터져서 한 동자를 낳았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로 그 몸을 장엄하여, 단엄하기가 왕에 가까웠으므로, 이름을 근단엄(近端嚴)이라 하였습니다. 곧 그는 왕이 되었는데, 역시 위력이 있어 3대주(大洲)를 다스림에 그 풍화(風化)가 자재했습니다.
그 단엄왕의 오른쪽 발 위에 갑자기 종기가 났는데 부드럽기가 마치 솜털 같았고 날마다 자라났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차츰 익은 뒤엔 터져서 한 동자를 낳았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구비하여서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그는 오른쪽 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단엄족생(端嚴足生)이라 하였는데, 그는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위덕이 자재하여 왕으로서 2대주(大洲)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단엄족왕의 왼쪽 발 위에 갑자기 종기가 났는데 부드럽기가 마치 솜털과 같았고, 날마다 자라났으나 아프지 않았으며, 차츰 익은 뒤엔 터져서 한 동자를 낳았는데, 서른두 가지 상호를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그는 왼쪽 발에서 단엄을 내기 태문에 극단엄(極端嚴)이란 이름하였습니다. 그는 즉위하여 왕이 되었고, 위덕이 자재하여 1대주(大洲)의 왕이 되었습니다.
대동의왕(大同意王)의 자식은 이름이 의요(意樂)이고, 의요왕의 자식은 이름이 선덕(善德)이며, 선덕왕의 자식은 이름이 최승(最駱)이요, 최승왕의 자식은 이름이 장정(長淨)이요, 장정왕의 자식은 이름이 지양(持養)이요, 지양왕의 자식은 이름이 단엄(端嚴)이요, 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근단엄(近端嚴)이요, 근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유단엄(有端嚴)이며, 유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극단엄(極端嚴)이요, 극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애락(愛樂)이요, 애락왕의 자식은 이름이 선락(善樂)이요, 선락왕의 자식은 이름이 능사(能捨)요, 능사왕의 자식은 이름이 극사(極捨)요, 극사왕의 자식은 이름이 지거(支車)요 ,
지거왕의 자식은 이름이 엄거(嚴車)요, 엄거왕의 자식은 이름이 소해(小海)요, 소해왕의 자식은 이름이 중해(中海)요, 중해왕의 자식은 이름이 대해(大海)요, 대해왕의 자식은 이름이 서조(瑞鳥)요, 서조왕의 자식은 이름이 대서조요, 대서조왕의 자식은 이름이 향초요, 향초왕(香草王)의 자식은 이름이 근향초(近香草)요, 근향초왕의 자식은 이름이 대향초(大香草)요, 대향초왕의 자식은 이름이 선견(善見)이요, 선견의 자식은 이름이 대선견(大善見)이요, 대선견의 자식은 이름이 극애(極愛)요,
극애의 자식은 이름이 대애(大愛)요, 대애의 자식은 이름이 묘성(妙聲)이요, 묘성의 자식은 이름이 대묘성(大妙聲)이요, 대묘성의 자식은 이름이 작광(作光)이요, 작광의 자식은 이름이 유위(有威)요, 유위의 자식은 이름이 광대(廣大)요, 광대의 자식은 이름이 대미루(大彌樓)요, 대미루의 자식은 이름이 유미루(有彌樓)요, 유미루의 자식은 이름이 광혜(廣慧)요, 광혜의 자식은 이름이 염광(艶光)이요, 염광의 자식은 이름이 유염(有艶)이요, 유염의 자식은 이름이 대염(大艶)이었습니다.
대염왕의 아들ㆍ손자ㆍ증손ㆍ현손들은 부다라성(富多羅城)에서 다시 자손들을 낳아 백대(百代)까지 내려갔으며, 마지막 왕은 이름이 조원(調怨)이었습니다. 이 조원은 원망하고 적대시하는 모든 상대를 능히 조복(調伏)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조원왕이라 한 것입니다.
이 조원왕의 무투성(無鬪城)에서 대대로 왕 노릇을 하며 5만 4천 대(代)에 이르렀는데, 그 성(城)에서 바른 법(正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무능승(無能勝)인데, 바라닐사성(波羅痆斯城)에서 자손대대로 왕 노릇하며 6만 3대(代)에 이르도록 그 성안에서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최후의 왕이 난당난당왕(難當難當王)인데, 옛적 금비라성(金毗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8만 4천 대에 이르렀습니다. 맨 마지막 왕의 이름은 범수(梵授)였는데, 범수왕은 상조성(象造城) 안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3만 7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상수(象授)였는데, 이 상수왕은 삭석성(削石城) 중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5천 대를 지났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급시왕(及時王)이었는데, 급시왕은 광견골성(廣肩骨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3만 2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은 동승력(童勝力)이었는데, 그 다음 대의 승력왕(勝力王)이 무승성(無勝城) 중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3만 2천 대(代)가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은 상승(上勝)이었는데, 그 다음 대의 상승왕(上勝王)이 묘동녀성(妙童女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1만 2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승군(勝軍)이었는데, 승군왕(勝軍王)은 섬바성(贍婆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1만 8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용천(龍天)인데, 그 용천왕은 말리성(末利城)에서 자손 대대로 2만 5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인천(人天)인데, 인천왕은 다마율지성(多摩栗坻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을 하며 1만 2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해천(海天)인데, 해천왕은 환희성(歡喜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1만 8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선혜(善惠)인데, 이 선혜왕은 왕사성(王舍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2만 5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제암(除闇)인데, 이 제암왕은 바라닐사성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백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대제군(大帝軍)인데, 그 대제군왕은 구시나성(俱尸那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8만 4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해신(海神)인데, 그 해신왕은 포다라성(布多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1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수행(修行)인데, 그 수행왕은 구시나성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8만 4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광면(廣面)인데, 그 광면왕은 역시 바라닐사성에서 자손 대대로 10만 대가 지니도록 바른 법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지주(地主)인데, 그 지주왕은 무전성(無戰城)에서 자손 대대로 1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지대지(持大地)인데, 그 지대지왕은 미치라성(彌恥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8만 4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대천(大天)인데, 그 대천왕은 역시 미치라성 중에서 자손 대대로 대천이란 이름으로 왕 노릇하며 선통(仙通)을 얻고 계행을 닦아서 바른 법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니미(你彌)이며, 니미왕의 자식은 이름이 정사왕(正謝王)이었습니다. 그의 자식은 이름이 견(堅)이요, 그 다음은 이름이 거로(佉努)이며, 그 다음은 근거로(近佉努)이며, 그 다음은 유거로(有佉努)이며, 그 다음은 극거로(極佉努)이며, 그 다음은 선견(善見)이며, 그 다음은 정견(正見)이며, 그 다음은 군청(軍聽)이며, 그 다음은 오료(悟了)이며, 그 다음은 대오(大悟)이며, 그 다음은 오군(悟軍)이며, 그 다음은 무(無憂)이며, 그 다음은 이우(離憂)이며, 그 다음은 속과(續果)이며, 그 다음은 선합(善合)이며, 그 다음은 대성(大聲)이며, 그 다음은 살대성(殺大聲)이며, 그 다음은 명단(明旦)이며, 그 다음은 방주(坊主)며, 그 다음은 투전(鬪戰)이며, 그 다음은 생포(生怖)며, 그 다음은 경희(慶喜)며, 그 다음은 경문(鏡門)이며, 그 다음은 능생(能生)이며, 그 다음은 보생(普生)이며, 그 다음은 최승(最勝)이며, 그 다음은 음식(飮食)이며, 그 다음은 다음식(多飮食)이며, 그 다음은 난승(難勝)이며, 그 다음은 극난승(極難勝)이며, 그 다음은 안립(安立)이며, 그 다음은 선립(善立)이며, 그 다음은 대력(大力)이며, 그 다음은 승대력(勝大力)이며, 그 다음은 선혜(善慧)이며, 그 다음은 승견고(勝堅固)이며, 그 다음은 십궁(十弓)이며, 그 다음은 백궁(百弓)이며, 그 다음은 신궁(新弓)이며, 그 다음은 묘색궁(妙色弓)이며, 그 다음은 승궁(勝弓)이며, 그 다음은 견궁(堅弓)입니다. 또 그 다음은 십만(十䡬)이며, 그 다음은 백만(百䡬)이며, 그 다음은 천만(千䡬)이며, 그 다음은 모색만(妙色䡬))이며, 그 다음은 뇌만(牢䡬)입니다.
여러분, 이 뇌만왕은 선의성(善議城)에서 자손들이 7만 7천 대를 이어갔으며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은 과선왕(果仙王)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과선왕에게 자식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용호(龍護)였으며 이 용호는 저 바라닐사성(波羅痆斯城)에서 자손들이 대를 이어 백한 대에 이르렀습니다. 그 맨 마지막 왕의 이름은 길지(吉枳)였는데, 그때 가섭파(迦葉波)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박가범(佛薄伽梵)께서 세상에 오셨으며, 이때 석가모니보살(釋迦牟尼菩薩)이 가섭불(迦葉佛)의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 청정한 행을 닦고, 도사다천(都史多天: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길지왕(吉枳王)에게 자식이 있었는데, 이름이 선생(善生)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선생왕은 보다라성(補多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이어가며 백한 대를 지났습니다. 맨 마지막 왕의 이름이 이생(耳生)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생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는 교답마(喬答摩:고타마)요, 하나는 파라타사(波羅墮闍)였습니다. 교답마는 출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파라타사는 국왕이 될 생각을 가졌습니다. 교담마가 부왕을 보니, 그릇된 법이 올바른 법이 되고 올바른 법이 그릇된 법이 된 채 나라를 다스리고 정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약 부왕이 죽고 나면 내가 왕이 될 텐데, 올바른 법이 그른 법이 되고 그릇된 법이 올바른 법이 되었으니, 이렇게 나라를 다스리면 나는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게 된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어떤 방편을 써야만 출가하여 괴로움을 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부왕의 처소로 가서 절하고 합장한 뒤 부왕께 말씀드려 즉시 출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보시하여 천신(天神)에게 공양하고 불을 섬기며 고행하면서 국왕의 자리를 구하는데, 너는 지금 그 자리를 이미 얻어서 내가 죽고 나면 네가 그 자리를 이을 텐데, 너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것을 버리고 출가하려고 하느냐?’
교답마가 아뢰었습니다.
‘제가 보니 국왕께서는 그른 법을 올바른 법으로 삼고 올바른 법을 그른 법으로 삼으시는데, 이 죄업으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것이 두려워 출가를 하려고 하니, 대왕께서는 자비심으로 저의 이 소원을 들어주소서.’
그때 왕은 아들이 끝내 출가하리라고 마음먹은 것을 알고는 곧 말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놓아줄 터이니, 네 뜻대로 가거라.’
그때 왕자는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매우 즐거워하였습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이름이 흑색(黑色)이었습니다. 왕자는 부왕과 모든 권속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하직하고는, 그곳을 떠나 흑색 선인에게로 가서 법대로 꿇어 앉아 두 발에 절하고 선인에게 말하기를 ‘저는 지금 출가하고 싶으니, 선인께서는 자비심을 베풀어 저의 출가를 허락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인은 즉시 그 소원을 들어주었고, 왕자는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과일과 나무껍질 그리고 나무뿌리를 먹고 살았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교답마 선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부왕은 곧 명을 내려 둘째 왕자 파라타사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때 교답마 선인은 늘 과일과 나뭇잎만 먹은 탓으로 곧 병에 걸리게 되자, 스승[鄔波馱耶]7)에게 ‘저는 지금 마을로 가서 음식을 얻어먹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흑색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인에게 법이 있으니, 바로 6근(根)은 단속하고 6경(境)은 멀리 여의는 것이다. 산골짜기에 있거나 마을에 들어가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만약 네가 이 선법(仙法)만 지닌다면, 네 뜻대로 가도 좋다. 가까운 보다라성(補多羅城)에 가서 초막을 짓고 머물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교답마는 스승의 지시를 받고 절한 뒤에 떠났다. 보다라성 근처에 이르러 조용한 숲속에 초막을 짓고 걸식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이때 보다라성에는 초현(招賢)이라는 음란한 여자가 있었는데, 겉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여러 사람들 좋아하였다. 또 이때 밀날라(密捺羅)라는 좋지 못한 사람이 살았는데 음란한 마음을 품고 영락과 좋은 옷을 그 음녀에게 보내어 그녀에게 장가들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그 여인은 보내온 영락과 좋은 옷을 입고 그에게 가려고 문을 나섰습니다.
그때 문 옆에 지키고 있던 한 사람이 은전 5백을 그녀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나와 함께 즐기자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 은전 5백이 나의 눈앞에 있는데 어찌 내가 이것을 갖지 않겠는가. 내가 이것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즉시 돈을 받고는 그와 함께 즐겼습니다. 그리고 음녀는 자기의 여종을 밀날라에게 보내어 ‘아직 몸단장이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 뒤에 가겠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여종은 그 여인의 지시대로 밀날라의 처소로 가서 그대로 말했습니다.
이때 은전 주인은 다른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있다가 그냥 가버렸습니다. 음녀는 다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가버렸으니 당초의 약속대로 간다고 해도 늦지 않겠구나’ 하고, 여자 종을 시켜 밀날라에게 가서 ‘내 몸단장이 이제 끝났으니 어느 숲에서 만나면 되겠느냐’고 묻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종은 그의 말대로 밀날라에게 가서 그녀가 시킨 대로 말하였습니다.
이때 밀날라는 대답하기를 ‘어리석은 너의 아씨는 아직 몸단장을 덜했다고 했다가 이제는 또 몸단장을 다 했다고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 여종은 아씨인 음녀와 묵은 감정이 있던 터라 즉시 밀날라에게 말하기를 ‘우리 아씨는 아직 화장을 덜 마친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준 영락과 좋은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 다른 사내를 만나러 갔던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밀날라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음욕의 마음은 싹 사라지고, 그 여인을 해쳐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시녀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너희 아씨에게 가서 몸단장이 끝났으면 아무개 숲으로 오라고 말하여라.’
시녀는 즉시 음녀에게 가서 그가 말한 대로 전했습니다. 음녀는 그 말을 듣고 영락으로 몸을 장식하고 즉시 그 숲으로 가서 밀날라를 만났습니다. 밀날라는 성난 목소리로 ‘이 고얀 음란한 계집아, 어찌하여 너는 내가 준 영락과 옷으로 단장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음녀는 곧 ‘거룩한 이[聖子]여, 여인네란 늘 이런 허물이 있는 것이니 용서하시오’라고 애원하였으나, 밀날라는 분을 참지 못하고 즉시 날카로운 칼을 빼서 그 음녀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때 음녀의 여종은 즉시 큰 소리로 ‘도적이 우리 아씨를 살해하였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리를 들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때 이 숲속의 한 초막에는 교답마 선인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밀날라는 군중들이 모여들자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피할 곳이 없게 되자 마침내 피가 묻은 칼을 들고 교답마 선인이 머무는 초막으로 가서 초막 앞에 칼을 세워두고 자신은 군중 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음녀의 죽음을 본 군중들은 범인의 자취를 쫓다가 초막 앞에 있는 피가 묻은 칼을 보고, 즉시 선인(仙人)을 붙잡고 말하였습니다.
‘너는 선인의 탈을 쓰고 어찌 이렇게 못된 짓을 저지를 수 있느냐?’
이때 선인은 말하였습니다.
‘내게 무슨 허물이 있느냐?’
군중은 다시 말하였습니다.
‘너는 여인과 더불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고, 더구나 그 생명까지 빼앗았다.’
선인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그와 같은 악업을 짓지 아니하였다.’
그렇지만 군중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즉시 선인을 묶어서 왕에게 데리고 가서 아뢰었습니다.
‘이 사람은 음녀와 더불어 나쁜 짓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을 살해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왕은 재차 심문하지 않고 즉시 벌을 줄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 선인을 뾰족한 나무 위에 앉히고 머리에는 붉은 가발을 씌우고는, 푸른 옷을 입은 전다라(旃陀羅)들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선인의 주위를 둘러싸고 선인을 데리고 북을 치며 성안을 돌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이 선인이 이와 같은 죄를 저질렀음을 모두 아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남문으로 나와서 뾰족한 나무 위로 선인을 던졌습니다.
이때 흑색 선인이 이 선인을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여 곳곳으로 찾아다니다가, 뾰족한 나무 위에 내던져진 선인을 보자 마음이 상하여 슬피 울면서 물었습니다.
‘너는 무슨 일로 이와 같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냐?’
이때 교답마 선인은 목메어 슬피 울면서 스승에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업보인데, 누구인들 피할 수 있으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오파타야가 다시 물었습니다.
‘선자(善子)여, 너는 이렇게 상처를 입었으니 모든 법을 행함에 있어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겠는가?’
선인이 스승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 몸은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마음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말하였습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선인이 스승에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사실만을 말하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의 마음이 참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스승의 검은 얼굴이 금빛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 선인은 금빛으로 변하였고, 흑색 선인이 금색으로 변했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 말이 사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 스승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도 신기하고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교답마 선인은 다시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지금 목숨을 버린다면 어떤 세상에 태어나겠습니까?’
스승이 다시 물었습니다.
‘선자(善子)여, 외도인 참된 바라문법에서는 아들이 없는 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고들 말한다. 너는 아들이 있느냐?’
교답마가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옛적 궁중에서 어릴 적부터 수도(修道)하기를 좋아하여 늘 집을 버리고 나가 범행(梵行)을 닦았는데, 어떻게 자식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스승이 말하였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마땅히 지난 일을 생각해 보아라.’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상처를 입어 어찌나 아픈지 마치 칼로 마디마디를 베어내는 것과 같아 오직 목숨을 버릴 생각만 하는데, 무슨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스승의 신통력으로 큰 비바람을 일으켜서 교답마의 몸을 씻어내자, 마침내 고통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옛날 행했던 음욕(淫欲)의 일이 생각나면서 몸 안에 있던 두 방울의 정혈(精血)이 몸 밖으로 나와 땅에 떨어지더니, 업력(業力)으로 인하여 두 개의 알이 되었습니다. 다른 경들에 있는 설명을 따르면, 네 가지 부사의(不思議)한 일이 있으니, 첫째 모든 부처님 경계의 부사의함이요, 둘째 용(龍)의 부사의함이며, 셋째 세간 심의(心意)의 부사의함이고, 넷째 모든 중생들의 업력인 이숙(異熱)의 부사의함인데, 바로 이 업력으로 말미암아 알이 된 것입니다. 그 알은 햇빛을 받아 차츰 성숙되어 각각 한 명의 동자(童子)로 태어났습니다. 알이 생긴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감자원(甘蔗園)이 있었는데 두 동자는 그 동산에서 놀았으며, 복력(福力)으로 인하여 얼굴이 날마다 좋아졌습니다.
교답마는 햇볕에 그을리다가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금색으로 변했던 선인이 그 이튿날 아침에 가보니, 교답마는 벌써 명이 다하였고 땅 위에는 알은 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동자의 발자국을 따라 찾아가다가 감자원에 이르러 동자를 만났습니다. 이때 선인은 선정에 들어서 이 두 동자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구의 아들인가를 관찰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교답마의 몸에서 난 자식들임을 알게 되자 곧 사랑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동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매일 잘 보살피고 키우니, 동자들은 점차 장대해졌다. 그들의 이름을 난생(暖生)이라고 하였으니, 이로 인해 일종(日種)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교답마(喬答摩)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하여 교답마(喬答摩)라고 이름하였으며, 또한 본 몸[本身]에서 났다고 하여 신생(身生)이라고 이름했으며, 감자원에서 얻었다고 하여 감자종(甘蔗種)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네 가지의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 뒤 어느 때 파라타사왕(波羅墮闍王)이 아들이 없이 죽자, 여러 신하들은 모여서 ‘왕에게 아들이 없으니, 누구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할까’ 하고 함께 염려하였습니다. 어느 신하가 ‘왕에게 교답마라는 형이 있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도를 닦으려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왕족의 서열에 따르면 그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참으로 합당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논의하고 곧 금색 선인의 처소로 가서 절하고 합장한 뒤 물었습니다.
‘위대한 선인이여, 우리 국왕의 형이신 교답마 선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금색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너희들이 살해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신하들은 다시 선인에게 물었습니다.
‘교답마께서 출가하신 이래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어떻게 살해할 수 있습니까?’
금색 선인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것에 대해 알려 주겠다. 고답마는 일찍이 아무런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너희들에게 살해되었느니라.’
신하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살해를 했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그 금색 선인은 즉시 앞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우리들의 죄입니다’ 하고 말하자, 두 동자가 곧 금색 선인의 곁으로 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두 동자는 어느 종족입니까?’
금색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교답마의 아들이오.’
여러 사람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두게 되었으며, 이름은 무엇입니까?’
금색 선인은 곧 앞에서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곧바로 손위 동자를 선인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를 모셔 호위하고, 귀국하는 대로 왕으로 책봉하였는데, 그 왕도 나라를 맡아 다스린 지 오래지 않아서 자식이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산중으로 들어가 그의 아우인 동자를 맞아 와서 왕위를 잇게 하였는데, 이름을 감자왕(甘蔗王)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감자왕은 보다륵가성(補多勤迦城)당나라 말로 유소(幼小)이다.에서 자손 대대로 계승하여 백일(百一) 대(代)를 지났는데, 둘째 임금 이하 모두 감자종(甘蔗種)으로 이름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때의 임금 이름은 군장왕(軍將王)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감자군장왕(甘蔗軍將王)으로 알았으며, 또 일명 증장(增長)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임금은 네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각각 일남 일녀씩 두었습니다. 네 왕자 이름은 첫째가 화거면(火炬面), 둘째가 대이(大耳), 셋째가 상행(象行), 넷째가 보천왕(寶釧王)이었습니다. 네 명의 부인이 다 죽자, 감자군장왕은 궁궐 안에서 슬픔과 시름으로 고뇌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입궁하여 군장왕이 시름에 젖어 편안치 못한 것을 보고 왕께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왕께서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시름에 젖어 있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 나라의 왕비들이 다 죽었는데, 어찌 내가 시름에 젖지 않을 수 있느냐?’
그때 여러 신하들이 왕께 아뢰었습니다.
‘왕께서 그런 것 때문에 근심하시다니요. 이웃 나라의 왕들에게 모두 훌륭한 공주들이 있으니, 왕께서는 저희들에게 후비(后妃)를 책봉토록 명을 내리시기만 하소서.’
왕이 다시 말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고 모두 장성하여 후사가 될 수 있는데, 누가 나의 왕비가 되겠느냐?’
여러 신하들이 다시 말하였습니다.
‘왕께서는 다만 신들에게 명령만 하십시오. 왕을 위하여 사방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이때 어느 한 나라에 공주가 있었는데, 매우 단정하여 왕후로 책봉될 만하였습니다, 다 알아보고 난 신하들은 즉시 와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신 등이 지금 알아보니, 아무개 나라의 왕녀가 얼굴이 매우 단정하여 왕후가 될 만합니다.’
왕은 ‘좋다’고 허락하였습니다. 사신은 즉시 떠나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왕에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국왕이 사신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라는 후미진 나라인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그때 사신이 아뢰었습니다.
‘우리 군장왕께서 대부인이 죽자, 왕의 따님이 왕후가 될 만하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를 보내어 그 일을 상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왕은 즉시 허락하였고, 또 사신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너희 왕이 만약 나와 친교를 맺겠다면, 마땅히 먼저 나와 맹세할 것이 있다. 나의 딸이 아들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사신은 이 말을 듣고, 본국에 돌아가면 그러한 왕의 뜻을 모두 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신은 본국에 돌아가 왕에게 절하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나에게는 장자(長子)가 있다. 설령 그 왕녀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왕위를 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군신들은 함께 왕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왕께서는 다만 그녀를 왕후로 책봉만 하소서. 그녀는 사내아이를 낳은 수도 있고, 혹은 딸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혹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석녀(石女)일 수도 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일을 미리 걱정하십니까? 원컨대 왕께서는 어서 본래의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기나 하소서.’
왕은 ‘좋다’고 하였습니다. 즉시 그 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맹세를 지키겠다고 하고, 곧 국법에 의해 그 여자를 맞아 왕후로 삼았습니다.
증장왕(增長王:군장왕의 다른 이름)은 그의 부인과 더불어 궁궐 깊숙한 곳에서 환락에 빠져서 탐욕과 애욕이 더욱 불타올라 이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지속하였습니다. 부인은 곧 태기가 있어 열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증장왕은 여덟 명의 유모로 하여금 양육하게 하였습니다.
앞서 이 부인에게 장가들 때 왕과 신하들은 함께 모여 맹세하기를 ‘이 부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마땅히 왕으로 세우겠으며, 이름은 애락(愛樂)이라 부르리라’고 하였었는데, 애락이 점점 자라서 물 위에 나온 연꽃처럼 얼굴이 확 피게 되자, 증장왕은 장자를 태자로 책립하고, 애락을 태자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 소식은 들은 왕후의 부왕(父王)은 즉시 사신을 통해 서찰을 보내어 증장왕에게 통고하였습니다.
‘왜 이제 와서 먼저 했던 맹세를 어기는가. 군대를 일으켜 너의 나라를 칠 것이니, 너는 군사를 정비하고 나를 기다려라.’
이때 이 서찰을 본 증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서찰을 보이면서 말하였습니다.
‘황후의 부왕이 서찰을 보내왔다. 우리는 어떤 계책을 세워 대비해야 하겠느냐?’
신하들이 의논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 왕은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애락을 태자로 책립해야 합니다.’
증장왕은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장자가 있는데, 어떻게 작은 아들을 태자로 책립한단 말이냐?’
이때 신하들은 다시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 국왕은 군대[四兵]가 강성합니다. 왕께서 만약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침략을 당할 것입니다. 이제 대왕께 청하오니 애락을 태자로 책립하시고, 다른 네 명의 아들은 국경 밖으로 내보내소서.’
이때 증장왕은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네 아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어떻게 나라 밖으로 내쫓는단 말이냐?’
신하들은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왕의 신하로서 어떻게 하면 왕을 이롭게 해드릴까 하는 염려에서일 뿐, 저희들도 죄 없는 사람을 버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말없이 가만 있었습니다.
모든 대신들은 한 곳에 모여서 서로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의논하여 일을 도모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이 일을 꾸며서 왕께서 저 네 왕자를 미워하도록 만듭시다.’
그들은 정원 하나를 만들어 물을 뿌려 깨끗이 쓸고는, 향과 꽃을 뿌리고 깃발[幡]도 달고 일산도 세워서 매우 장엄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때 네 왕자는 바깥에 나가 놀다가 멀리서 그 정원을 보자 호기심이 생겨서 그 정원의 정문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때 정원 공사를 맡은 관리가 장엄을 끝내고 문으로 막 나오는 것을 보고는 왕자들이 물었습니다.
‘지금 이 정원은 누구의 것이오?’
관리가 국왕의 정원이라는 대답을 하자, 네 왕자는 즉시 발길을 되돌렸습니다. 신하가 다시 왕자들에게 물었다.
‘정원으로 들어가시지 않고 어찌하여 되돌아가십니까?’
네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부왕의 정원인데, 우리들이 어찌 감히 들어가겠느냐?’
여러 신하들이 다시 말하였다.
왕과 왕자께서 함께 노신들 무슨 허물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왕자들은 들어가서 놀았습니다. 이것을 본 신하들은 즉시 왕에게 달려가서 고했습니다.
‘대왕께 아룁니다. 대왕께서 만들라고 명하신 정원이 이제 완성되어 깨끗하고 장엄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친히 가셔서 구경하소서.’
증장왕은 즉시 누가 놀고 있는가 알아보라 명하였고, 신하들은 지금 네 왕자가 놀고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보고를 들은 왕은 크게 진노하여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를 위해 그들을 죽여 없애라.’
신하들이 모두 꿇어앉아 자비를 베풀어 목숨만은 끊지 말고, 정 미우시면 나라 밖으로 내쫓으라는 명을 내리라고 청하자, 왕은 그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왕명을 받들어서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이고는, 곧 나라 밖으로 나갈 것을 알렸습니다. 네 왕자들은 사지를 땅에 붙이고 왕께 말했습니다.
‘저희들 네 자식은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부왕께서는 부디 저희들을 따라가고자 원하는 권속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자비로써 허락하소서.’
왕이 왕자들에게 소원대로 하기를 허락하자, 네 왕자들은 각기 누이들을 데리고 나라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따라가기를 원하여 일주일 안에 온 나라 백성들이 다 따라갈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왕에게 ‘만약 성문을 닫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왕자들을 따라가서 성안이 텅 비게 될지 모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급히 성문을 닫아서 백성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1)
석가(釋迦) 종족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2)
임금으로부터 경ㆍ대부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가는 맏아들을 말한다.
3)
대지의 정분(精分), 대지로부터 나타나는 아주 기름지고 좋은 음식물을 말한다.
4)
4식(食)의 하나로서, 밥ㆍ국ㆍ나물 따위와 같이 형체가 있는 음식을 이르는 말이다.
5)
사람이 식용하던 식물이다. 등(藤)에서 나와 수풀을 이루었기 때문에 임등(林虅)이라 한다.
6)
궁전의 뒤쪽에 있는 궁전, 즉 후비가 거처하는 궁전이다. 이것이 전변하여 후비(后妃)를 뜻하게 되었다.
7)
범어인 upādhyāya의 음역이다. 스승인 바라문을 뜻하며, 출가 수계(受戒)할 때의 스승을 말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제2권
의정 한역
권영대 번역
“그때 네 왕자와 사람들은 계속 길을 가다가 설산(雪山) 아래 긍가하(弶伽河:恒河, 갠지스 강) 근처 겁비라(劫比羅) 선인(仙人)이 머물고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1) 이때 네 왕자와 많은 사람들은 각각 풀을 베어 집을 만들고 거기서 머물렀으며, 그들은 서로 함께 나물을 캐고 짐승을 잡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이때 네 왕자는 하루에 세 번씩 겁비라 선인의 처소에 가서 몸소 공양했습니다. 네 왕자는 이미 나이가 차고 장성하였지만 아내가 없어 몸이 퍽 수척하였습니다. 이에 선인이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어째서 점점 수척해지느냐?’
왕자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들은 한창 나이인데, 아내가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니, 어떻게 수척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누이들과 서로 짝을 지으라.’
왕자들은 말했습니다.
‘그것이 합당한 일인지 아닌지 저희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가 같지 않으므로 그 일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때 왕자들은 각자 생각하기를 ‘우리 형제들은 이미 본국을 떠나 왔고, 이곳엔 우리와 혼인할 다른 사람이 없으니, 선인의 이러한 지시가 우리의 소원과 부합하는구나’ 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서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으며, 오래되지 않아 각기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네 왕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처자(妻子)를 데리고 선인의 처소에 자주 찾아갔으며, 이로 인하여 이곳은 시끄럽게 변했습니다. 선인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왕자들에게 일렀습니다.
‘너희들은 이곳에 안착하여 잘 살아라. 나는 이곳을 떠나겠다.’
왕자가 아뢰었습니다.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시끄럽게 하여 나의 선정을 어지럽게 하니, 마치 맨발로 가시를 밟는 것 같구나.’
왕자들은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선인은 이곳에 머무십시오. 저희들이 살기 좋은 다른 곳을 찾아 가서 살겠습니다.’
선인은 ‘그렇게 하거라’라고 하고는 선인이 신통력을 부리니, 필요한 물건들과 도구들이 생겨났습니다. 선인이 금병(金甁)에 물을 가득 담아 다른 곳으로 가서 물을 뿌려 경계를 만들고, 왕자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이곳에서 안주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왕자들은 선인의 지시를 받들어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거주하였으며, 선인은 물을 뿌려서 국경을 만들고 이름을 겁비라성(劫比羅城:카비라성)이라고 지었습니다.
차츰 백성들의 수가 불어나자 이 성은 비좁게 되었는데, 이때 천신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 곧 다른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곳은 넓고 넉넉했으므로 그곳으로 가서 새로 성을 지어 만들고, 이름을 천시(天示)라고 하였습니다.2)
그때에 여러 왕자는 모여서 의논하였습니다.
‘우리의 부왕께서는 후처에게 장가드는 바람에 우리 형제가 본국을 떠나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함께 약속하여 한 부인만을 두고서 절대로 다시 결혼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이때 증장왕은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네 왕자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신하들은 대답했습니다.
‘왕자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왕명에 의해 쫓겨난 후 자매들과 함께 지금 설산 아래 천시성에 살고 있으며, 스스로 성읍을 넓혀 다스리고 있습니다.’
증장왕은 말했습니다.
‘나의 아들들이 어찌 이렇게 큰일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었단 말이냐?’
신하들이 ‘능히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증장왕은 크게 기뻐하여 껑충껑충 뛰다가 단정히 앉아서 손을 들고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들들이 참으로 대단하구나[我子大能]. 내 아들들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아들들의 대위덕(大威德)을 ‘참으로 대단하고 참으로 대단하구나[大能大能]’라고 했기 때문에 석가(釋迦)란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3)
그 후에 증장왕이 죽자, 애락(愛樂) 태자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애락왕도 역시 자식이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신하들은 서로 의논한 뒤 천시성으로 가서 첫째 왕자인 거면(炬面)을 모셔다가 왕을 삼았는데, 그의 자식이 곧 죽자, 다른 자식을 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둘째인 대이(大耳) 왕자를 왕으로 책봉하였는데 대이도 또한 아들이 없이 죽자, 셋째인 상행(象行)을 잭봉하여 왕으로 삼았으며 상행이 아들이 없이 죽자, 또 넷째인 보천(寶釧)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보천에겐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을 근보천(近寶釧)이라 하였고, 왕위를 이었습니다. 근보천의 아들은 천문(天門)인데, 역시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또한 여러분, 이 천문왕은 겁비라 대성(大城)에서 자손을 대대로 이어가면서 5만 5천 대(代)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맨 마지막 왕이 십거(十車)였으며, 십거의 아들은 백거(百車), 백거의 아들은 엄거(嚴車), 엄거의 아들은 승거(勝車), 승거의 아들은 견거(堅車)였습니다. 견거의 아들은 십궁(十弓)이었으며, 십궁의 아들은 백궁(百弓), 백궁의 아들은 구십궁(九十弓), 구십궁의 아들은 최승궁(最勝弓), 최승궁의 아들은 엄궁(嚴弓), 엄궁의 아들은 견궁(堅弓)이었습니다.
또한 여러분, 그 견궁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아들은 사자협(師子頰)이요, 둘째 아들은 사자후(師子吼)였습니다. 이 섬부주(膽部洲) 안에 있는, 활을 잘 쏘는 모든 사람 중에서 이 사자협왕이 으뜸이었습니다. 사자협왕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정반(淨飯)이요, 둘째가 백반(白飯), 셋째가 곡반(斛飯), 넷째가 감로반(甘露飯)이었습니다. 사자협왕은 또 네 명의 딸을 두었는데, 첫째는 청정(淸淨)이요, 둘째는 순백(純白), 셋째는 순곡(純斛), 넷째는 감로(甘露)였습니다.
정반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태자(太子)가 바로 우리의 박가범(薄伽梵)이시고, 둘째가 바로 구수 난타입니다. 백반왕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항성(恒星)이요, 둘째가 현선(賢善)입니다.
곡반왕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대명(大名)이요, 둘째가 아나율(阿那律)입니다. 감로반왕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의 이름은 경희(慶喜), 둘째의 이름은 천수(天授)입니다.
딸 청정(淸淨)은 한 아들을 두었는데 그 이름은 선오(善悟)이며, 순백(純白)의 아들은 이름이 유만(有鬘)입니다. 순곡의 아들은 이름이 승력(勝力)이며, 감로(甘露)의 아들은 이름이 대력(大力)입니다.
우리 박가범의 아들은 이름이 라후라(羅睺羅)인데, 처음 지주대왕(地主大王)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라후라 대에 이르러 후사가 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라후라는 무생과(無生果)를 증득하여 생사(生死)의 종자를 끊었기 때문에 대를 이을 후사가 끊긴 것입니다.”
존자 대목건련은 모든 석씨 종족의 대중을 위해 석가(釋迦) 종족에 대한 설법을 끝마치고, 물러앉아 묵묵히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석가 종족에 대한 대목련의 설명이 끝난 것을 아시고, 곧 누웠던 몸을 일으켜 단정하게 앉으시더니, 대목련에게 이르셨다.
“잘했구나. 네가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우리 석가 종족의 유래와 갈래를 법에 맞게 잘 설명하였구나.”
그리고 다시 목련에게 이르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석가 종족을 설명했다면, 이 선남자는 기나긴 밤에 큰 이익을 얻어 항상 안락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거듭 여러 대중과 비구니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나의 옛 석가 종족의 유래와 소재를 받아 지니고 법대로 잘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너희는 능히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이의(利義)를 갖추기 때문이고, 법의(法義)를 갖추기 때문이며, 범행(梵行)을 갖추기 때문에 마땅히 위에서와 같은 공덕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니는 마땅히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때 겁비라성 안에 있던 모든 석가 종족들은 석가족의 유래와 서열에 대한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절하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정토보서 2
● 정토보서 2
염불로 현응한 이야기(念佛現應)
천축天竺 계두마사雞頭摩寺의 오통보살五通菩薩이 신통력으로 안락국에 가서 아미타불을 뵙고 아뢰었다.
“사바세계 중생들이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나 부처님의 형상(儀形)을 뵈올 수 없으니 강림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응답하셨다.
“네가 먼저 가면 내가 너를 따라 그곳에 나타나리라.”
오통보살이 돌아와 보니 부처님의 형상(聖儀)이 벌써 도착하였는데, 한 분의 부처님과 50보살이 각기 나뭇잎 위의 연꽃에 앉아 계셨다. 오통보살은 이를 그려 유포하였다.
부처님의 형상을 청하다(請佛形儀)43)
念佛現應
天笁雞頭摩寺。五通菩薩。以神力。徃
安樂國。見阿彌陀佛。陳云娑婆衆生。
願生淨土。無佛儀形。請垂降許。佛言
汝應先行。尋當現彼。五通還。聖儀已
至。一佛五十菩薩。各坐蓮華。在樹葉
上。遂寫流布 請佛形儀。
장로 종색長蘆宗賾 선사禪師는 여산 혜원이 남겨 놓은 가르침을 따라 연화승회蓮花勝會를 만들어 널리 염불을 권장하였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검은 두건에 흰 옷을 입었고 풍채와 얼굴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가 읍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연화승회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부디 제 이름도 적어 주소서.” 종색 선사가 이름을 물어 보자 보혜普慧라고 대답하였다. 이름을 적자, 그는 다시 그 형인 보현普賢의 이름도 함께 적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종색 선사가 꿈을 깨고 나서 『화엄경』을 찾아보니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두 보살의 이름이 있어 결국 연화승회의 머리(會首)44)로 삼았다.
연화승회에 이름을 적다(勝會書名)45)
長蘆宗賾禪師。遵遠祖遺範。建蓮華勝
會。普勸念佛。一夕夢一人。烏巾白衣
半貌淸美。揖而曰。欲入公蓮華勝會。
乞書一名。賾問何名。荅曰普慧。書已。
又云家兄普賢。亦乞併書。賾覺而檢華
嚴。離世間品。有二菩薩名。遂以爲會
首云 勝會書名。
당나라 혜일慧日이 큰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천축국에 이르러 선지식들을 찾아뵙고 요법要法에 이르는 지름길을 여쭈었는데 모두 정토를 찬미하였다.
건다라국健馱羅國에 갔을 때 큰 산에 관음상이 있어 혜일은 7일 동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예경하였다. 또 목숨이 마칠 때까지 단식하기로 기약하였는데, 이레가 되는 날 홀연히 자금색 몸으로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뵈었다. 관음보살은 손을 내려 정수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법을 전하여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하거든 극락세계 아미타불만 염念하라. 마땅히 정토문이 다른 모든 수행보다 뛰어남을 알 것이다.” 보살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혜일은 장안으로 돌아와 널리 염불을 권하였다.
염불법문이 가장 뛰어나다(法門最勝)46)
唐慧日。泛舶渡海。達天笁。叅訪知識
咨禀捷經要法。天笁學者皆讃淨土。至
健䭾羅國。大山有觀音像。日乃七日叩
頭。又斷食。畢命爲期。至苐七日夜。忽
見觀音現紫金身。坐寶蓮華。垂手摩頂
曰。汝欲傳法。自利利人。惟念極樂世
界阿彌佛。當知淨土一門。勝過諸行。說
已忽滅。日回長安。普勸念佛 法門最勝。
송나라 갈제지葛濟之는 구용句容 사람으로 치천稚川47)의 후손이다. 당시 사람들이 선학仙學에 힘쓸 때 부인 기씨紀氏는 홀로 염불에 정성을 쏟았다.
원가元嘉 13년(436년) 기씨가 베틀에 앉아 있을 때 홀연히 공중이 밝아지는 것을 깨닫고는 북을 놓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四表)을 바라보았다. 서방의 부처님이 현신하여 보개寶蓋48)와 당번幢幡49)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고, 기씨는 기뻐서 경에 말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바로 이 분이시다 하면서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였다. 갈제지가 놀라고 기이한 생각이 들어 다가가니 부인이 부처님 계신 곳을 가리켰다. 갈제지 역시 부처님의 반신을 보았는데 조금 후에 사라졌다.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이로부터 불법에 귀의하는 자가 많았다.
부부가 부처님을 뵙다(夫婦見佛)50)
宋葛濟之。句容人。稚川後也。世事仙。學
妻紀氏。獨精誠念佛。元嘉十三年。
方在機杼。忽覺空中淸明。因投杼仰瞻
四表。見西方有佛現身。寶盖幢幡。映
蔽雲漢。喜曰經言無量壽佛。其即此耶。
面佛作禮。濟之驚異就之。紀氏指示佛
所。濟之亦見半身。俄而隱沒。親里自
是。多歸佛法 夫婦見佛。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나찰羅剎이 사는 곳과 이웃하였다. 나찰이 제멋대로 사람을 잡아먹자 왕은 이제부터 나라 안에 한 집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보내 줄 것을 약속하며 함부로 죽이지 않도록 하였다.
불법을 믿는 집안인데 아들이 하나만 있는 집에서 보낼 차례가 되었다. 그 부모가 슬피 울며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도록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나찰은 부처님의 위력 때문에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다음 날 새벽에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찰의 근심이 이 때문에 마침내 그쳤다.
귀신이 감히 잡아먹지 못하다(鬼不敢噉)51)
佛世。有一國。隣于羅刹。羅刹食人無度。
王約自今國中。家以一人。次苐送與
弗得枉殺。有奉佛家。止生一子。次當
充行。父母哀號。囑令至心念佛。以佛
威力。鬼不得近。明晨還家。羅刹之患。
由此遂止 鬼不敢噉。
망강望江의 진기陳企는 일찍이 멋대로 사람을 죽여 귀신 앞에 끌려갔다. 그가 두려워 황급히 아미타불을 염念하자 귀신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고, 염불을 그치지 않자 귀신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후에 항상 염불하였으며 앉은 채로 임종하였다.
반년이 흐른 후 손녀 묘광妙光에게 붙어서(附)52) 이르기를 “나는 염불을 한 덕으로 이미 극락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는데, 거동과 언어가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삼 일 지나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단정한 모습이 평소와 같았다. 유독 얼굴이 더 젊어 보인 것은 서방 세계에서는 장생불로長生不老하기 때문이다. 그 머리가 부처님의 소라머리53)와 같았는데 이는 곧 성불의 조짐이었다.
염불하여 귀신을 물리치다(念佛却鬼)54)
望江陳企。甞妄殺人。後見鬼現。企畏
懼。急念阿彌陀佛。鬼不敢近。企念佛
不已。鬼遂不現。後常念佛。臨終坐化。
後半年。附本家孫女妙光云。我因念佛。
已生極樂。擧動言語。一如平日。至兩
三日。企遂現。儼然如平生。唯面帶少
顏。盖西方長生不老。其頭如佛之螺䯻。
蓋成佛之漸也 念佛却鬼。
수나라 남악南嶽 혜사 대사慧思禪師55)는 정성된 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겼다. 이에 아미타불이 나타나 그에게 설법하는 꿈을 꾸었다. 이때부터 총명함과 지혜가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설법하는 재능에 걸림이 없었다.
염불하여 총명과 변재를 얻다(念佛聰辯)56)
南岳慧思大師。精心事佛。因夢阿彌陀
佛。與之說法。自是聰慧過人。辯才無
礙 念佛聰辯。
송나라 진강鎭江의 장계조張繼祖는 서방정토를 독실하게 믿었다. 그의 유모가 죽자 염불하여 추천追薦하였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유모가 나타나 사례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염불 덕에 이미 선취善趣57)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다.
염불하여 천도하다(念佛薦亡)58)
宋鎭江張繼祖。篤信西方。其乳母死。
爲念佛追薦。一夜夢母謝云。荷君念佛。
已生善趣 念佛薦亡。
송나라 회령현懷寧縣 영전장營田庄에 완념삼阮念三의 형수가 있었다. 두 눈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늘 아미타불을 염念하여 마침내 눈이 밝아졌다.
염불하여 눈이 밝아지다(念佛眼明)59)
宋懷寧縣營田庄。有阮念三嫂。患兩目
將盲。常念阿彌陀佛。遂得開明 念佛眼明。
송나라 진강鎭江 금단현金壇縣의 장蔣씨 노파는 70세의 나이로 죽어 지옥에 가게 되었으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아 되돌아오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는 불경을 염송할 수 있겠느냐?”
노파가 잘 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염라대왕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좋겠다.”
돌아온 후에 노파가 생각하기를, 염라대왕이 나에게 염불을 가르쳐 주었으니 다시 의심할 것 없겠다 하고 언제나 염불을 계속하였다. 노파는 백이십 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정토에 왕생하였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염라왕이 노파에게 권하다(閻王勸婆)60)
宋鎭江金壇縣蔣婆。年七十。死至陰府。
命未盡當還。閻王問云。汝能念經否。
對曰不能。王曰汝可念阿彌陀佛。旣放
還。婆謂王敎我念佛。更無可疑。故常
念佛。百二十歲方終。其生淨土。斷可
必矣 閻王勸婆。
송나라 유중혜劉仲慧는 호주湖州 장흥長興 사람이다. 밤에 무서운 꿈을 자주 꾸어 근심하자 친구가 염불을 권하였다. 유중혜는 지극한 정성으로 소리 높여 백팔 번 염불한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밤 비로소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이때부터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잠자리가 편안해지다(睡寢得安)61)
宋劉仲慧。湖州長興人。患夜夢多恐惧。
友勸念佛。仲慧至誠高聲。念百八徧
然後就寢。其夜神魂晏然。自是繼念不
輟 睡寢得安。
송나라 진강晉江 소표邵彪의 자는 희문希文이다. 선비로 있었을 때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소표가 어느 관부에 이르자 사람들이 모두 “편안히 위무하시오(按撫).”라 하였다. 다가가 그들 앞에 이르러서 한 관리
를 보았는데, 그는 “당신이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이유를 압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관리는 소표를 데리고 가서 끓는 물에서 고통 받는(大鑊煮)62) 조개를 보여 주었다. 조개들은 소표를 보고 사람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소표는 곧바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는데, 염불 소리를 한 번 내자마자 조개들이 모두 황작黃雀이 되어 날아갔다.
소표는 후에 과연 급제하여 안무사按撫使63) 벼슬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보면 살생은 사람의 앞길을 막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크고 넓은 부처님 위력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음도 알 수 있다.
염불하여 어려움을 벗어나다(念佛脫難)64)
宋晋江邵彪。字希文。爲士人時。夢至
一官府。人皆稱安撫。行至前。見一官
問曰汝知汝未及苐因否。對云不知。令
引彪去。見一大鑊煮蛤蜊。見彪。乃作
人言。呌其姓名。彪遂念阿彌陀佛。方
念一聲。蛤蜊皆變作黃雀飛去。彪後果
及苐。至安撫使。以此見殺生阻人前程
不可不戒。又見佛力廣大。不可不敬也
念佛脫難。
송나라 왕용서王龍舒65)가 배를 타고 진강鎭江에 이르렀다. 수문의 물이 부족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가까운 금산사에서 불경을 빌렸는데 곧 『아미타경』이었다. 그는 책을 교감하고 판에 새겨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붓을 들 때 오른손에 풍기가 있어 손이 저절로 떨렸다. 그는 글씨 쓰기가 불편하여 손가락을 들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몇 차례 염불하면서, 풍기를 없애어 사경공덕을 성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기도를 마치자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고 책을 완성할 때까지 아무 탈이 없었다. 이를 통해 보면 불보살은 바로 눈앞 가까이에 있는데 다만 사람들의 신심이 이르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염불하여 병을 고치다(念佛止疾)66)
宋王龍舒。舟行至鎭江。于金山寺。借
佛經。即彌陀經。欲勘校。刻梓廣傳。擧
筆之時。右手有風。其指自掉。寫字不
便。乃擧指念阿彌陀佛。與觀世音菩薩
數聲。禱除風疾。以成就寫經。禱畢。指
遂不掉。以至終帙無恙。以此見佛菩薩。
只在目前。但人信心不至 念佛止疾。
한 늙은 아낙네가 두 눈이 멀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다녔는데 항상 아미타불을 염念하였다. 어느 날 썩어 가는 낡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집이 기우뚱 무너졌다. 어린아이는 뛰쳐나왔으나 늙은 아낙네는 나오지 못하였다. 마침 나무 기둥 두 개가 맞부딪쳐 아낙네 머리 위에서 보호해 주어 압사를 당하지 않았다.
염불하여 죽음을 면하다(念佛免死)67)
有一老婦雙瞽。令小兒牽行。常念阿彌
陀佛。一日息于杇屋之下。忽傾倒。小
兒走出。老婦在下。乃有二木相拄。護
于老婦之上。得不壓死 念佛免死。
송나라 이자청李子清은 오랫동안 학질에 시달렸다. 용서 거사龍舒居士는 그에게 병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오로지 염불에만 뜻을 둔 다음에 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주었다. 이를 따라 했더니 그날 고통이 반으로 줄었고 다음 날은 또 그 반으로 줄어 마침내 완쾌되었다. 이때부터 염불을 독실하게 믿었다.
염불하여 병이 낫다(念佛辟痁)68)
宋李子淸。久苦痁疾。龍舒居士。授之
一方。臨發時。專志念佛。然後服藥。子
淸從之。當日減半。次日復如是。遂全
愈。自是篤信念佛 念佛辟痁。
송나라 장주贑州 염廉 중대부中大夫69)의 부인이 장육신丈六身 아미타불을 수놓았는데 반쯤 완성했을 때 갑자기 채색 비단에서 사리가 나왔다. 온 집안이 다 놀라고 찬탄하였다.
사리가 나오다(舍利迸現)70)
宋贑州廉中大夫。恭人。繡丈六身阿彌
陀佛。方及半。忽有舍利。現綵縷中。擧
家驚嘆 舍利迸現。
진주眞州에 사는 종리소사鍾離少師의 임任씨 부인이 서방정토업을 닦으면서 아미타불상을 조각하였다. 길이는 4촌 8푼이고 모셔 두는 감실의 장식이 매우 장엄하였다. 항상 머리에 이고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상의 눈썹 사이에서 사리가 나왔다. 사리는 기장쌀만한 크기였고 광채가 나와 사람들을 비추었다.
사리가 나오다(舍利迸現)71)
眞州鍾離少師。任氏夫人。修西方。雕
阿彌陀佛像。長四寸八分。龕飾甚嚴。
常頂戴行道。其像眉間。忽迸舍利。大
如黍米。光彩照人 同上。
송나라 수주秀州에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는데 낫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그 고을 사람들이 그를 부처님처럼 존경하고 믿었다.
병을 고쳐 낫게 해주다(治病得愈)72)
宋秀州一僧。常念阿彌陀佛。爲人治病。
無不痊愈。州人敬信如佛 治病得愈。
송나라 진강鎭江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꼭 합장한 손을 이마 위로 올리면서 아미타불을 염念하였다. 두세 살쯤 된 손자가 노인을 따라 밭에 이르렀는데 문득 아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노인이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는데 며칠 뒤 어떤 사람이 시내 저편에 있다고 알려 주어 찾을 수 있었다. 아이의 발자취가 물가 곳곳에 있었다. 그 시내는 매우 깊었는데 아이가 어떻게 강을 건넜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 오랫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지성으로 염불하여 감응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이가 어려움을 면하다(兒孫免難)73)
宋鎭江村落。有一老人。每有事。必合
掌至額。念阿彌陀佛。其孫方二三歲。
因隨至田野。忽失之。老人尋訪不見。
後數日。人告云。在溪外。果尋得之。足
跡徧于灘上。其溪甚深。不知此兒。何
緣過彼。又久而無恙。人以爲其祖。至
誠念佛所感也 兒孫免難。
원나라 지정至正 연간(1341~1367년)에 장사성張士誠이 호주湖州를 공략하여 강절승상江浙丞相과 교전하였다. 40명의 포로를 잡아 함거檻車에 가두어 보내 죽이려 하던 중 밤이 되어 서호西湖 조과사鳥窠寺에 유숙하였다.
이때 마침 대유 모大猷謀 선사가 회랑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포로들이 구해 달라고 하자 대사는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구고구난아미타불南無救苦救難阿彌陀佛’을 염불하라고 하였다. 그 중 세 명이 대사의 말을 믿고 받아들여 입으로 염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날이 밝아 출발할 때 족쇄를 바꿔 채우는데, 그 세 사람에 이르러서는 형구가 부족하여 밧줄로만 묶어놓았다. 이후 심문할 때 양민으로 잡혀온 자라는 것이 밝혀져 결국 풀려날 수 있었다.
염불하여 형틀을 벗다(念佛脫械)74)
元至正中。張士誠。攻湖州。江浙丞相
與戰擒四十人。囚檻送戮。夜宿西湖鳥
窠寺。適大謀禪師。徐步廊下。囚因
求救。師敎至心。念南無救苦救難阿彌
陀佛。中有三人。信受其語。念不絶口。
天曉發囚。易枷鎻。至三人。刑具不足。
惟繫以繩。旣以審鞫。知良民被虜者
遂得釋 念佛脫械。
명나라 해창海昌의 촌민으로 한 노파가 있었다. 죽은 뒤 가족에게 붙어서, 살았을 적에 행한 일과 저승에 가서 받은 인과응보를 상세하게 이야기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한 사람이 문득 마음을 집중하여(攝心) 염불하였다.
노파가 말하였다.
“네가 항상 이와 같이 하면 어찌 불도를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겠느냐?”
이유를 묻자 대답하였다.
“네 마음이 아미타불을 염念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일자무식이었으나 별안간 한번 염불하여 오히려 귀신의 공경을 받았다. 하물며 오래도록 닦고 익힌 사람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염불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염불하여 귀신이 공경하다(念佛鬼敬)75)
明海昌村民。有老媼。死附家人。言平
生事。及陰府報應甚悉。鄕人環而聽之。
有一人在衆中。忽攝心念佛。媼謂曰
汝常如此。何患不成佛道。問何故。曰
汝心念阿彌陀佛故。問何以知之。曰見
汝身有光明故。村民不識一字。瞥爾一
念。尙使鬼敬。况久脩習者乎。是故念
佛功德。不可思議 念佛鬼敬。
청나라 항군杭郡 왕삼관王三官의 모친이 청상과부로 늙었다. 매일 오직 염불에 힘썼고 저금한 돈 10여 금을 모두 영은사에 시주하였다. 강희康熈 원년(1662년) 5월에 병으로 죽었다가 반나절 만에 살아나서 말하였다. “내가 어느 사내아이의 탯줄로 들어갔는데 아직 태어날 때가 안 되어서 되돌아와 너희들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반나절 정도 쉬다가 숨을 거두었다.
여자가 남자 몸이 되다(女轉男身)76)
太淸杭郡王三官之母。孀居年老。日唯
念佛。所積十餘金。悉施靈隱。康熙元
年五月。病死。半日復蘇曰。我去投一
男胎。因彼處生時未到故。我轉來。與
你說。更憇半餉而沒 女轉男身。
청나라 유행민兪行敏의 부인 탁씨는 평소 성품이 곧고 마음이 자애로웠다. 불법을 독실하게 믿어 옥림玉林 대사와 구덕具德 대사를 존경하여 예로 대하였고 틈틈이 재물도 보시하였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만나면 불쌍히 여겼고 법에 의지하여 정토업을 닦았다. 염불을 일과로 하였고 『미타경』을 염송하였다. 6년이 지난 강희康熙 정미년(1667년)에 가볍게 앓다가 편안하게 앉아 입적하였다. 염습할 때 안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기뻐하는 얼굴이 생생해서(歡容可挹) 대중들이 모두 찬탄하였다. 35일째 되는 날 밤에 며느리 꿈에 나타나 “당시에 천신天神이 나를 영접하여 바로 따라갔다.”고 하였다.
염불하여 극락에 나다(念佛生天)77)
太淸兪行敏妻卓氏。平生性直心慈。篤
信佛法。尊禮玉林具德兩大師。間亦捨
施。遇貧病人。必矜恤之。依法脩淨業。
日課念佛。誦彌陀經。經六載。康熙丁
未。示微疾。安然坐逝。及殮時。顏色如
生。歡容可挹。衆咸嘉嘆。至五七之夜。
託夢兒媳云。前者天神迎我。故我即去
矣 念佛生天。
▪︎ 일과염불日課念佛
송나라 장륜張掄은 날마다 염불을 만 번씩 하였다.
송나라 손량孫良은 날마다 부처님 명호를 만 번씩 소리 내어 외웠다.
송나라 육원도陸沅道는 날마다 『법화경』을 한 번 염송하였고, 염불을 소리 내어 만 번씩 하였다.
명나라 주강朱綱은 날마다 염불을 3만 번씩 소리 내어 하였다.
송나라 승려 용흠用欽도 염불을 매일 3만 번씩 하였다.
당나라 승려 회옥懷玉은 부처님 명호를 5만 번씩 불렀다.
당나라 승려 보상寶相은 6만 번을 한도로 염불하였다.
당나라 승려 도작道綽은 7만 번을 한도로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영명 수永明壽 선사는 매일 아미타불을 10만 번씩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승현僧衒은 90세에 매일 천 배를 하였다.
日課念佛
宋張掄。日課念佛萬徧 1)◆宋孫良。日
誦佛號萬聲 ◆宋陸沅道。日誦法華經
一徧。念佛萬聲 ◆明朱綱。日念佛三
萬聲 ◆宋僧用欽。亦課念三萬徧 ◆
唐僧懷玉。課呼佛號五萬聲 ◆唐釋寶
相。六萬聲爲限 ◆唐釋道綽。以念佛
七萬聲爲限 ◆永明壽禪師。日念彌陀
佛十萬聲 ◆僧衒年九十。日禮千拜。
底本附號各異{編}。
▪︎ 역대의 존숙(歷代尊宿)78)
여산 혜원廬山慧遠79) 조사는 마하반야摩訶般若80)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호법보살東方護法菩薩이라 불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종일 염불하여 세 번이나 부처님 얼굴(聖容)을 뵈었고 정토에 왕생하였다.
歷代尊宿
廬山遠祖師。悟摩訶般若深旨。號東方
護法菩薩。而六時念佛。三覩聖容。徃
生淨土。
천태 지자天台智者81) 대사는 『 법화경』의 요체를 깊이 깨달은 분으로 교관敎觀으로 일가를 이루어 만대의 종조宗祖82)가 되었다. 앉을 때면 서쪽을 향하였으며, 「십종의十種疑」를 변증하고 『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주석하여 정토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天台智者大師。妙悟法華。一家敎觀。
萬代宗祖。而坐則面西。辯十種疑。䟽
十六觀。極談淨土。
백장 대지百丈大智83) 선사는 마조馬祖의 적통을 이은 분으로 천하의 총림이 모두 종조로 삼았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고 입적한 스님을 천도하여 모두 정토에 돌아가도록 하였다.
百丈大智禪師。馬祖嫡嗣。天下叢林
共宗而祈禱病僧。化送亡僧。悉歸淨土。
영명 연수永明延壽84) 선사는 걸림 없는 변재辯才를 얻어 종문宗門의 주춧돌이 된 분이다. 서방의 상품상생上品上生을 두루 찬양하여 명부冥府에서도 공경을 받았다.
永明延壽禪師。得無礙辯才。柱石宗門
而徧讃西方上品上生。敬及冥府。
사심 오신死心悟新85) 선사는 황룡黃龍 선사86)의 법석을 이어 종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정업淨業에 간절하게 뜻을 두고 염불을 권하는 글을 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애긍심을 발하여 믿음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死心悟新禪師。繼席黃龍。宗風大振而
切意淨業。著勸念佛文。令人發哀起信
진헐 청료眞歇淸了87) 선사는 단하 순공丹霞淳公을 계승한 분으로 동하종洞下宗88)이 대사에 이르러 크게 드러났다. 탁암卓庵 보타암補陀庵에서 오로지 서방에 뜻을 두었다. 『정토집淨土集』이 세상에 전한다.
眞歇淸了禪師。嗣丹霞淳公。洞下一宗
至師大顯。而卓庵補陀。專意西方。有
淨土集。行世。
자수 회심慈受懷深89) 선사는 장로 신공長蘆信公 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오로지 염불에 마음을 쏟았다. 수행의 지름길은 정토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고 여겨 서방도량西方道場을 세워 대중들에게 간절히 염불을 권하였다.
慈受懷深禪師。得法于長蘆信公。專心
念佛。而謂修行捷徑。無越淨邦。建西
方道場。苦口勸衆。
원조 종본圓照宗本90) 선사는 천의天衣 선사의 도맥을 이은 분으로 설두雪竇 선사의 종지를 홍포하여 불법의 우렛소리(法雷)91)가 땅을 흔들었고 두 왕조에 걸쳐 사표師表가 되었다. 정업을 함께 닦아 상품上品에 이름을 올렸다.
圓照宗本禪師。道續天衣。宗弘雪竇。
法雷震地。師表兩朝。而淨業兼脩。標
名上品。
석지효石芝曉 법사는 월당 순공月堂洵公의 대를 이은 분으로 교학에 훤히 통달하였고, 정업淨業으로 대중을 교화하였다. 일찍이 대장경의 여러 책들을 집성하였는데 그중에 『낙방문류樂邦文類』가 세상에 유포되었다.
石芝曉法師。嗣月堂洵公。洞徹敎部
以淨業化人。甞集大藏諸書。有樂邦文
類。行世。
적당 원寂堂元 선사는 밀암 함걸密庵咸傑92)의 대를 이은 분으로 염불삼매를 독실하게 행하였다. 금빛 갑옷을 입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감득하였고, 홍련화가 땅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었다. 이로 말미암아 온 세상(十洲)에 연종蓮宗이 크게 퍼졌다.
寂堂元禪師。嗣密庵傑。篤行念佛三昧
感金甲神。自天而降。夢紅蓮華。從地
而出。由是十洲。蓮宗大行。
중봉 명본中峯明本93) 선사는 고봉 원묘高峯原妙의 법통을 이은 분으로 대중들이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존경하였다. 말하기를 선은 정토의 선이요, 정토는 선의 정토라 하였다. 「정토를 그리는 시(懷淨土詩)」 백 수를 지어 대중들에게 염불을 권하였다.
中峯本禪師。得法高峯。人仰如山斗
而云禪者。淨土之禪。淨土。禪之淨土。
有懷淨土詩百首。勸人念佛。
우담 종주優曇宗主94)는 여산盧山 동림사東林寺의 선법당善法堂에 주석하여 『연종보감蓮宗寶鑑』을 지었다. 임금의 뜻을 받들어 판각 유통시켜 정토 중흥의 계기가 되었다.
優曇宗主。居盧山東林善法堂。著蓮宗
寶鑑。奉旨板行。爲淨土中興。
연지 대사蓮池大師95)가 말하였다. “혜원 조사로부터 우담 종주에 이르기까지 역대 존숙으로서 정토를 높이 받들지 않은 이가 없다. 근기 낮은 범부들이여, 어찌 의심을 끊고 결심하여 용맹스럽고 날카롭게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96)
蓮池大師曰。自遠祖至優曇。歷代尊宿
無不崇奉淨土。下劣凡夫。安可不斷疑
決志。勇猛銳進哉。
정토보서淨土寶書 1
《정토보서淨土寶書》
백암 성총栢庵性聰
서문
정토보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인지因地
불설아미타경
염불로 현응한 이야기(念佛現應)
정토과험淨土果驗
• 스님이 왕생한 이야기1~46
• 왕과 신하가 왕생한 이야기
• 선비와 백성이 왕생한 이야기
• 비구니가 왕생한 이야기1~6
• 부녀자가 왕생한 이야기1~37
• 악인이 왕생한 이야기
• 축생이 왕생한 이야기
• 왕생정토다라니
정토보서
[淨土寶書]
■ 서문序文
1)淨土寶書序
현겁賢劫1) 제4존第四尊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교화를 펴심에 오묘한 방편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 현묘한 진리에 곧바로 이르는 지름길을 구한다면 염불하여 정토를 구하는 일보다 나은 것이 없다. 연지 대사蓮池大師2)께서 “염불법문이야말로 바로 오늘 시급히 힘써야 할 종지宗旨일진저!”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내가 요즘 중국 정토 관련 서적을 10여 질 얻어 강의하고 독송하는 여가에 조용히 앉아 살펴보니, 비록 자세하고 간략한 차이는 있으나, 한결같이 노파심으로 사람들에게 왕생을 권하고자 하는 뜻은 대체로 같았다. 염불은 참으로 현세를 뛰어넘는 지름길이요 정토로 가는 자량資糧3)이로다.
賢劫苐四尊。一代施化。莫非善巧方便
然於一切方便中。求其直捷要玅者。莫
念佛求淨土之若也。蓮池大師云。念佛
法門。正今日之急務旨哉。斯言也。不
慧近獲唐本。淨土著述。無慮十有餘秩
講誦之隟。靜坐繙披。雖博約有殊。一
以婆心。斷斷無他。而勸人徃生之指趣
則懸同。誠超世之徑路。淨土之資糧也。
우리 동방은 땅이 좁고 사람들의 도량도 작은 탓에 사악함에 물들어 패악悖惡한 자는 많고 인과因果를바르게 믿는 이는 드물다. 책과 문자에 이르러서는 넓고 다양하게 섭렵해야 하는데, 낮은 근기와 얕은 지식으로 이를 번거롭게 여기고 마음을 참지 못하여 문득 시렁에 올려놓고는 돌아보지 않으니, 믿음이 어디에서 생겨나겠는가.
盖吾東方地褊哭小。染邪悖惡者夥。正
信果因者尠。至於簡筞文字。涉乎浩繁
則淺機膚識。煩不耐心。便束之高閣而
不之顧。然則信何由生。
이에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생각지 않고, 여러 저술을 모으고 그 가운데에서 훌륭한 격언과 고금 왕생의 아름다운 글들을 가려 뽑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낸다. 지극히 간단하면서 쉽고 사리에 맞게 하려 하였으나 감히 옛 사람과 겨룰 정도는 아니고, 또 서로 다른 내용이 있으면 억지로 같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외람되이 승단의 한켠에 있는 사람으로서 불교의 성쇠에 함께 책임이 있을 것이니, 이 책을 펴내 유통시키는 것을 진실로 나의 직분으로 삼고자 한다. 한 점의 티끌은 태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한 줄기 빛을 빌려 온갖 깊은 어두움을 깨뜨릴 수 있음을 알 뿐이다. 만약 이 책을 상자에 넣어 두고 널리 전하지 않으면 이는 진실로 여러 미혹한 중생에게 널리 은혜를 입히는 것이 아니며, 자신만 홀로 알고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선을 남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방편을 베풀어서 왕생을 권장하신 뜻은 무엇 때문인가.
극락을 흠모하는 자가 이 글을 따라 행한다면 어찌 안양安養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여러 동지들이여, 부디 이를 소홀히 하지 말기 바란다.
肆以不揣愚瞽
遂蒐獵諸述。採掇格言及古今徃生之
章章者。輯成一編。至爲簡易穩當。而
非敢與古人競。異亦不必强同焉。不慧
濫厠緇伍。斯道洿隆與有責矣。梓行流
通。誠爲職分。固知塵點無補於太山。
亦以借光可破諸幽暗耳。若乃藏諸篋
笥。而不廣其傳。則固非普被群迷。專
於己私。而不兼乎衆。則又非善與人同
其於吾佛。設方便。勸徃生之義。爲何
如也。慕樂邦者。循此而行。何安養之
不歸哉。請諸同志。幸母忽諸。
병인년(1686년) 초하(4월) 초파일 백암사문栢庵沙門 성총性聰은 삼가 쓰다.
丙寅初夏。浴佛日。栢庵沙門性聰謹
書。
{底}康熙二十五年全羅道樂安澄光寺開刊本(東
國大學校所藏)。
1)
현겁賢劫 : 현재의 일대겁一大劫(成住異滅의 四劫)의 호칭으로 천불·천오백불 등 많은 현인이 출세하여 중생을 구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현재의 겁, 지금 세상.
2)
연지 대사蓮池大師 : 운서 주굉雲棲袾宏. 1536~1615년. 중국 명나라의 승려. 처음에는 유교를 배우다가 30세에 출가하였다. 여러 해 동안 행각하다가 항주 운서산에 있으면서 선림禪林을 세우고 염불을 권하며 계율을 엄하게 지켰다. 그의 전집으로 『운서법휘雲棲法彙』가 있다.
3)
자량資糧 : 자재, 밑천과 식량.
1)
{底}康熙二十五年全羅道樂安澄光寺開刊本(東國大學校所藏)。
■ 정토보서淨土寶書
▪︎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인지因地(阿彌陀佛因地)4)
『 비화경悲華經』에 말하였다.
옛날 전륜왕轉輪王은 이름이 무쟁념無諍念5)으로 4천하四天下6)를 다스렸다. 신하인 보해寶海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출가하여 성불하니 보장불寶藏佛이시다. 왕이 공양 올리기를 청하자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어 대광명大光明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니 그 가운데는 정토도 있고 예토도 있었다.
淨土寶書
1)栢庵性聰集。
阿彌陀佛因地
悲華經曰。昔有轉輪王。名無諍念。王
四天下。有臣名寶海。生子出家成佛
號寶藏佛。王請供養。佛入三昧。放大
光明。現十方世界。或淨或穢。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이유로 세계에 정토도 있고 예토도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원력으로 청정토淸淨土를 취하기도 하고 부정국不淨國을 취하기도 하느니라.”
왕이 여쭈었다.
“나 이제 발원하노니, 내가 성불할 때 국토에 삼악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생들이 모두 금색이며 갖가지로 장엄하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서방으로 1항하사 아승기겁7)을 지나가면 그 세계를 안락安樂이라 할 것이니, 그대는 이때에 성불하여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8)가 되리라.”
王白佛言。何故世界。有淨有不淨。佛言菩薩
以願力故。取淸淨土。復有菩薩。以願
力故。取不淨國。王言我今發願。願成
佛時。國無三惡道。皆眞金色。種種莊
嚴。佛告王言。汝於西方過一恒河沙阿
僧祗劫。是時世界。轉名安樂。汝當作
佛。號無量壽如來。
『고음왕경鼓音王經』에 말하였다.
과거 묘희국妙喜國에 교시가憍尸迦 왕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청태국왕淸泰國王, 아버지는 월상전륜왕月上轉輪王, 어머니는 수승묘안殊勝妙顔이었다. 세 아들의 이름은 첫째는 월명月明, 둘째는 교시가憍尸迦, 셋째는 제중帝衆이었다. 이때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으니 세자재왕世自在王이시다. 교시가가 도를 닦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나라를 버리고 출가하니 바로 법장法藏 비구이시다. 법장 비구는 사십팔 대원을 세우고 만약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시니, 이때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묘화妙華가 내렸으며, 공중에서는 합창하며 찬양하기를 “반드시 성불하리라.” 하였다.
又鼓音王經曰。過去有國妙喜。王名憍
尸迦。祖淸泰國王。父月上轉輪王。母
殊勝妙顏。有三子。長曰月明。次曰憍
尸迦。三曰帝衆。時有佛出。名世自在
王。憍尸迦心發道意。棄國出家。號曰
法藏。發四十八願。若不爾者。誓不成
佛。是時大地震動。天雨妙華。空中同
聲讃言。決定成佛。
『법화경法華經』에 말하였다.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때에 열여섯 명의 왕자가 일시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나중에 모두 성불하였다. 그중 아홉째 왕자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대승방등총지왕경大乘方等緫持王經』에 말하였다.
무구염칭기왕불無垢焰稱起王佛 때에 어떤 청정 비구가 경전 14억 부를 모두 가지고 중생의 서원을 따라 널리 설법하였다. 그 비구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현겁경賢劫經』에 말하였다.
운뢰후雲雷吼 여래 때에 정복보중음淨福報衆音이라는 왕자가 부처님을 공양하였는데, 그 왕자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또 『현겁경賢劫經』에 말하였다.
금룡결광불金龍決光佛 때에 무한량보음행無限量寶音行이라는 법사가 경법을 힘써 홍포하였는데, 그 법사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 말하였다.
공왕불空王佛 때 마음에 번뇌가 가득 덮여 있는 네 비구가 있었다. 공중에서 부처님을 관觀하라는 가르침이 있어 마침내 염불삼매를 얻었다. 그 셋째 비구가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여환삼마지무량인경如幻三摩地無量印經』에 말하였다.
사자유희금광師子遊戱金光 여래 때에 승위존중勝威尊重이라는 국왕이 그 부처님을 공양하고 선정행禪定行을 닦으셨다. 그 국왕이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일향출생보살경一向出生菩薩經』에 말하였다.
옛날 한 태자가 이 미묘한 법문을 듣고서 받들어 지니고 정진하여 다시 팔천만억 사람을 교화하고 불퇴전을 얻었다. 그 태자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이상에서 아홉 권의 경전만 대략 소개했지만 다겁의 세월에 여러 가지 인因을 쌓은 것에 의거해 보면 그 응함이 한량없다.
又法華經。大通智勝佛時。十六王子
俱時出家。常說法華經。後悉成佛。其
2)苐九王子。今阿彌陀佛是也。
又大乘方等緫持王經云。無垢熖稱起
王佛時。有淨比丘。緫持諸經十四億部
隨衆生願。廣爲說法。彼比丘者。今阿
彌陀如來是也。
又賢劫經云。雲雷吼如來時。有王子
名淨福報衆音。供養彼佛。彼王子者
今阿彌陀佛是也。
又彼經云。金龍決光佛時。有一法師
名無限量寶音行。力弘經法。彼法師者
今阿彌陀是也。
又觀佛三昧經云。空王佛時。有四比丘
煩惱覆心。空中敎令觀佛。遂得念佛三
昧。彼苐三比丘。今阿彌陀佛是也。
又如幻三摩地無量印經云。師子遊戱
金光如來時。有國王。名勝威尊重。供
養彼佛。修禪定行。彼國王者。今阿彌
陀佛是也。
又一向出生菩薩經云。昔有太子。聞此
微妙法門。奉持精進。復敎化八千萬億
人。得不退轉。彼太子者。今阿彌陀佛
是也上雖畧擧九經。若其多劫多因。即應無量。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인지因地(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因地)
『비화경悲華經』에 말하였다.
이때 보장寶藏 여래께서 다시 제1 불순不眴 태자즉 앞에 소개한 전륜왕의 태자이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를 관세음觀世音이라 부를 것이니, 그대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 열반涅槃한 후에 불도를 이루어 보광공덕산왕普光功德山王 여래라고 불릴 것이다.”
또 제2 니마尼摩9)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관세음보살 다음에 부처가 되어 선주공덕보왕善住功德寶王 여래라 불릴 것이니, 그대가 원력으로 청정토淸淨土를 취한다면 그대를 대세지大勢至라 부르리라.”10)
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因地
悲華經曰。爾時寶藏如來。復告苐一不
眴太子即前轉輪王太子也今當號汝爲觀世音。無
量壽佛。般涅槃後。當成佛道。號普光
功德山王如來。又告苐二摩尼太子。次
當作佛。號善住功德寶王如來。汝以願
力。取淸淨土。復號汝爲大勢至。
• 정토기신문淨土起信文
부처님과 보살은 중생이 고해에서 깊이 빠져 나올 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스스로 서원하기를 ‘위력으로 사람들에게 정토에 나기를 권하리라’ 하였으나, 다만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하여, 만약 믿는 마음으로 기꺼이 왕생하려 한다면 비록 죄악이 있더라도 왕생하지 못하는 이가 없게 하였다. 대개 자비롭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 없고,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으며, 큰 위력이 없으면 부처가 될 수 없다. 자비를 행하기 때문에 중생이 괴로움에 빠진 것을 보고 제도할 생각을 하며, 위력이 있기 때문에 제도하려는 마음을 이룰 수 있고 제도하는 공을 완성할 수 있나니, 이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까닭이다.
무릇 믿음은 일념一念이다. 사람이 살아갈 때, 마음이 가고자 하면 몸이 따라가고, 마음이 머물고자 하면 몸도 따라 머무나니, 몸은 항상 생각을 따르기 때문이다. 몸이 죽을 때에도 오직 일념一念일 따름이다. 일념一念이 정토에 있으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불보살이 사람들을 왕생하도록 이끌어 줌에 있어서랴.
淨土起信文
佛與菩薩。憫念衆生沉淪苦海。無由得
出。故自誓願威力。勸人生淨土。唯恐
人之不信。若信心肯徃。雖有罪惡。亦
無不生。盖不慈悲。不足爲佛。不度衆
生。不足爲佛。不有大威力。不足爲佛。
爲慈悲故。見衆生沉苦。而欲濟渡。有
威力故。能遂濟渡之心。能成濟渡之功。
此所以爲佛也。盖信者。一念也。若人
生時。心念要去。身則隨去。心念要住
身則隨住。是身常隨念。若身壞時。唯
一念而已。是以一念在淨土。則必生淨
土。况佛菩薩。又引人徃生乎。
『화엄경』에 말하였다.
믿음은 손이다. 사람이 손이 있으면 보배 있는 곳에 이르러 마음대로 집어 가질 것이나, 손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법에 입문하는 자는 신심信心의 손으로 마음껏 불법(道法)의 보배를 집어 가지지만, 만약에 신심이 없으면 얻는 바가 없을 것이다.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큰 성城에 들어가면 반드시 먼저 편히 쉴 곳을 찾은 다음 나가서 일을 보고, 저물녘에 어둠이 밀려오면 투숙할 곳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쉴 곳을 찾는다는 것은 정토를 닦는 것을 말한다. 저물어 어둠이 밀려온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한다. 투숙할 곳이 있다는 것은 연꽃 가운데 태어나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又華嚴經中說。信爲手。如人有手。至
撰者名。依序文補入{編}。「苐」通用「第」以下
倣此不更加註{編}。
於寶所。隨意採取。若能無手。空無所
獲。如是入佛法者。有信心手。隨意採
取道法之寶。若無信心。空無所得。
譬如人入大城中。必先覔安下處。却出
幹事。抵暮昏黑。則有投宿之地。覔安
下處者。修淨土之謂也。抵暮昏黑者。
大限到來之謂也。有投宿之地者。生蓮
華中。不落惡趣之謂也。
또 비유하건대, 봄에 먼 길을 갈 때 미리 비옷을 준비하는 것은 소나기가 갑자기 내릴 때 흠뻑 적셔 낭패당하는 근심을 겪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다. 미리 비옷을 준비하는 것은 정토를 닦는 것을 말한다.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는 것은 대명大命이 장차 다할 것을 말한다. 흠뻑 젖는 낭패의 근심이 없다는 것은 악취에 흠뻑 빠져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먼저 편안히 쉴 곳을 찾는다면 맡은 일을 방해받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미리 비옷을 준비한다면 먼 행로를 방해받지 않고 갈 수 있을 것이니, 정토업을 닦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믿음의 원(信願)을 일으켜야 한다.
옛날에 명침明琛은 뱀을 잘 그린 사람으로 상산의 뱀 형세(常山蛇勢)11)를 그렸다. 사론蛇論을 하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뱀이 되었다. 이백시李伯時는 말을 잘 그린 사람으로, 채찍질하여 달려가는 말의 형세(打輥馬勢)를 그리자 말의 형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염불하면 결정코 성불하며 일심으로 정토를 믿으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又如春月遠行
先備雨具。驟雨忽至。則無淋漓狼狽之
患。先備雨具者。修淨土之謂也。驟雨
忽至者。大命將盡之謂也。無淋漓狼狽
之患者。不至沉淪惡趣受苦之謂也。且
先覓安下處者。不害其幹事也。先備雨
具者。不害其遠行也。修淨土者。必先
起信願也。
昔有明琛。能畫蛇。作常山蛇勢。及爲
蛇論。生身變作蛇。李伯時畫馬。作打
輥馬勢。活現馬形。驗此二事。顯明念
佛。決定成佛。一心信淨土。必生淨土
矣。
정토업 닦을 것을 권함(勸修淨土之業)
참선하여 크게 깨달으면 마침내 생사윤회를 벗어날 것이다. 이는 실로 좋은 방법이지만 여기에 이르는 자는 백 명 중에 두세 명도 안 된다. 그러나 서방西方 정토업을 닦으면
윤회에서 빨리 벗어나 생사에 구애받지 않을 것은 너무 분명하여 만 명 중에 한 명도 빠뜨림이 없을 것이다. 만약 서방 정토업을 닦지 않으면 업연業緣을 따라가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청초당靑草堂 계선사戒禪師12) 진여철眞如喆 같은 이들도 모두 윤회에 빠졌으니, 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다리를 수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리를 허무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천당과 지옥에 가는 작은 원인이 된다. 그리고 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천당과 지옥의 작은 결과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니, 항상 이렇게 마음을 보존하여 정토를 닦는다면 상품상생上品上生을 어찌 다시 의심하겠는가.
勸脩淨土之業
叅禪大悟。遂脫生死輪廻。固爲上矣。
然至於此者。百無二三。若修西方。則
徑出輪廻。生死自如。萬不漏一。若不
修西方淨土之業。不免隨業緣去。雖如
靑草堂戒禪師眞如喆。皆汨沒輪廻。誠
可畏也。
世有修橋人。有毁橋人。此天堂地獄之
小因也。有坐轎人荷轎人。此天堂地獄
之小果也。觸類長之。皆可見矣。常如
是存心。以脩淨土。上品上生。復何疑
哉。
서방을 찬탄하는 책13)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계선사戒禪師의 후신은 소동파(蘇子瞻), 청초당青草堂의 후신은 증노공曾魯公, 손장로遜長老의 후신은 이시랑李侍郎, 남암주南庵主의 후신은 진충숙陳忠肅, 지장승知藏僧의 후신은 장문정張文定, 엄수좌嚴首座의 후신은 왕귀령王龜㱓이다. 그 다음으로 승선사乘禪師는 한씨의 아들(韓氏子), 경사승敬寺僧은 기왕의 아들(歧王子)이 되었다. 또 그 다음으로 선민善旻은 동사호의 딸(董司戶女), 해인海印은 주방어의 딸(朱防禦女)이 되었고, 더욱이 안탕雁蕩의 승려는 진씨 아들 회(秦氏子檜)가 되었다.’
이들은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악업을 지었던 사람들이니, 만약 정토를 정성껏 구했더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대원大願과 대력大力으로 영수靈樹14) 같은 이는 여러 번 스님의 몸을 받아 태어났고, 운문雲門15) 같은 이는 세 번씩이나 국왕이 되었지만 마침내 신통력을 잃었다. 백대 이후 운문 같은 이는 몇 사람이나 있겠으며, 더군다나 영수 같은 사람은 몇이나 있겠는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여인이 되고, 악인이 되어 점점 더 근기 낮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니, 훌륭한 신하는 또한 계획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실로 서방에 태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이 널리 선업을 닦으나 성취하기 어려운 것은 스스로의 힘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讃西方者。記戒禪師後身。爲蘇東坡。
靑草堂後身。爲曾魯公。遜長老後身。
爲李侍郞。南庵主後身。爲陳忠肅。知
藏僧後身。爲張文定。嚴首座後身。爲
王龜㱓。其次乘禪師。爲韓氏子。敬寺
僧爲歧王子。又其次善旻。爲董司戶女
海印爲朱防禦女。又甚而雁蕩僧。爲秦
氏子檜。居權要。造惡業。此數公者。向
使精求淨土。則焉有此事。余謂大願大
力。如靈樹。生生爲僧。而雲門三作國
王。遂失神通。百世而下。如雲門者。能
有幾人。况靈樹乎。爲常人。爲女人。爲
惡人。則展轉下劣。即爲諸名臣。亦非
計之得也。甚哉。西方之不可不生。
衆生泛修善業。唯依自力。故難成就。
만약 정토를 닦아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한다면 성취하기 쉬울 것이다.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큰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데, 한 사람은 반드시 배를 만들어서 가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방편선(便船)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자력으로 수행하는 자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는 자가 서방에 태어나는 것도 이와 같다.
훌륭하도다, 아미타불이시여. 두 보살과 함께 큰 서원의 배를 타고 이 사바, 탁악濁惡한 세상에 와서 일체 중생을 불러 이끌고 생사 바다를 넘어 서방 피안에 도착함이여. 이 얼마나 편리한가.
석지石芝16) 대사가 말하기를, 염불 중생은 반드시 세 가지 힘을 가져야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중생본유불성력衆生本有佛性力17)즉 본훈력本熏力이고, 둘은 미타자광섭취력彌陀慈光攝取力18)이며, 셋은 신원염불공훈력信願念佛功勳力19)둘과 셋은 외연신훈력外緣新熏力이다. 이 세 가지 힘은, 마치 세 가닥의 줄을 한 가닥으로 합하여 무거운 물건들을 이끌 수 있는 것과 같아서, 서방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또 ‘본래 지니고 있는 것(本有)’은 배와 같고, ‘염불’은 돛과 같으며, ‘부처님의 자비를 섭취하는 것(佛攝)’은 바람과 같으니, 이 세 가지가 두루 원만하면 반드시 피안에 오를 것이다.
若修淨土。依佛願力。得易成就。譬如
二人。欲渡大海。一必造船以徃。一候
便船。自力修行。與依佛願力。得生西
方者。亦復如是。大哉。阿彌陀佛。與二
菩薩。乘大願船。就此娑婆濁惡之鄕
呼引一切衆生。越生死海。到西方彼岸。
何其便哉。石芝云。念佛衆生。必具三
種力。得生淨土。一衆生本有佛性力
即本熏力 二彌陀慈光攝取力。三信願念佛
功勳力後二即外緣新熏力 此三種力。如三條繩
紏合爲一。能牽重物。至西方也。又本
有如船。念佛如帆。佛攝如風。三事周
圓。必登彼岸矣。
▪︎ 염불법문念佛法門
불법을 배우는 이는 겉모습을 꾸미는 데(莊嚴形迹) 사로잡히지 말고, 진실한 수행(眞實修行)20)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재가거사在家居士는 꼭 치의緇衣를 입고 도건道巾을 쓸 필요는 없다. 머리가 긴 사람은 평상복으로 염불해도 좋고 꼭 목어를 두드리고 북을 칠 필요는 없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요히 말없이(寂黙) 염불해도 좋고 여럿이 모임을 만들 필요는 없다. 소심한 사람은 문을 닫고 염불하면 되고 반드시 절에 들어가 경을 들을 필요는 없다. 글을 아는 이는 교敎에 의지해서 염불하면 될 것이다. 천리 밖의 절에 가서 향을 사르는 것보다 집에 편안히 앉아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삿된 승려에게 공양하기보다는 부모에게 효순하며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정법을 방해하는 친구를 여럿 사귀는 것보다는 혼자 몸으로 청정하게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念佛法門
夫學佛者。無取莊嚴形迹。只貴眞實修
行。在家居士。不必定要緇衣道巾。帶
髮之人。自可常服念佛。不必定要㪣魚
伐鼓。好靜之人。自可寂嘿念佛。不必
定要成羣聚會。怕事之人。自可閉門念
佛。不必定要入寺聽經。識字之人。自
可依敎念佛。千里燒香。不如安坐家舍
念佛。供養邪師。不如孝順父母念佛。
廣交魔友。不如獨身淸淨念佛。
불교 아닌 다른 외도의 글을 읽는 것보다 일자무식으로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망령되이 선의 본령을 깨달았다고 스스로를 높이는 것보다는 성실하게 계율을 지키며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요귀들과 감응하여 통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인과因果를 바로 믿어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마음을 바로잡아 악을 없애고 이와 같이 염불하는 이를 선인善人이라 부르며, 마음을 가다듬어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이와 같이 염불하는 이를 현인賢人이라 부르며, 마음을 깨우쳐 의혹을 끊은 채 이와 같이 염불하는 이를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진실한 염불(眞實念佛)
習學外家文書。不如一字不識念佛。妄以禪理
自高。不如老實持戒念佛。希求妖鬼靈
通。不如正信因果念佛。以要言之。端
心滅惡。如是念佛。號曰善人。攝心除
散。如是念佛。號曰賢人。悟心斷惑。如
是念佛。號曰聖人 實念佛。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 말하였다.
고성高聲으로 염불하고 송경誦經하는 데 열 가지 공덕이 있다. 첫째, 졸음을 쫓을 수 있다. 둘째, 파순마왕(天魔)21)이 놀라고 두려워한다. 셋째, 소리가 시방에 두루 퍼진다. 넷째, 삼악도三惡途의 괴로움이 없어진다. 다섯째, 바깥의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섯째,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일곱째, 용맹정진하게 한다. 여덟째, 모든 부처님이 매우 기뻐한다. 아홉째, 삼매三昧가 눈앞에 나타난다. 열째, 정토에 왕생한다.
業報差別經曰。高聲念佛誦經。有十種
功德。一能排睡魔。二天魔驚怖。三聲
徧十方。四三塗息苦。五外聲不入。六
令心不散。七勇猛精進。八諸佛歡喜。
九三昧現前。十徃生淨土。
『대집십장경大集十藏經』에 ‘작은 염불로는 작은 부처를 볼 것이요 큰 염불로는 큰 부처를 볼 것이다’라고 하며, 풀이하기를 ‘큰 염불은 큰 소리로 염불하는 것이고 작은 염불은 작은 소리로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염불하면 삼매를 쉽게 이루고 작은 소리로 염불하면 결국 여러 갈래로 산만해진다는 것을 권계한 것이다. 이는 지혜로운 자라야 알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출전은 귀원직지歸元直指
大集十藏經云。小念見小佛。大念見大
佛。釋云大念者。大聲念佛也。小念者。
小聲念佛也。奉勸世人。勵聲念佛。三
昧易成。小聲念佛。遂多馳散。智者方
知。非常人所能曉也 出歸元直指。
불보살의 명호를 수지하는 법에는 일정한 원칙이 없다.
큰 소리로 염하거나(高聲念) 낮은 소리로 염하며(低聲念), 물이 흐르듯이 염하거나(流水念) 정례頂禮22)하면서 염하며(頂禮念), 수를 세면서 염하거나(記數念) 세지 않고 염하며(不記數念), 걸어가면서 염하거나(行步念) 똑바로 선 채 염하며(住立念), 조용히 앉아서 염하거나(靜坐念) 옆으로 누워서 염하며(側臥念), 소리 내지 않고 염하거나(黙念) 눈을 뜬 채 염하며(明念), 입술과 혀를 조금 움직이면서 염하거나(微動唇舌念), 숨 한 번 쉬는 동안 여러 번 소리를 내어 염하며(一氣數聲念), 병들고 두려울 때 숨을 따라 호흡하면서 염하며(病怯隨氣呼吸念), 자기 혼자서 염하거나(獨自念) 여러 사람과 함께 염하는(與衆同念) 방법들이 있다. 이 방법들은 모두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持名之法。亦無定則。或高聲念。或低
聲念。或流水念。或頂禮念。或記數念。
或不記數念。或行步念。或住立念。或
靜坐念。或側臥念。或默念。或明念。或
微動唇舌念。或一氣數聲念。或病怯隨
氣呼吸念。或獨自念。或與衆同念。惟
盡在令心不亂。
예불을 할 때에는 ‘내 몸은 연꽃에서 경건하게 예배하고, 부처님은 연꽃에서 나의 예배를 받아 주신다’는 생각을 관觀하라.
염불할 때에는 ‘내 몸이 연꽃에서 결가부좌하고 부처님은 연꽃에서 나를 접인接引하신다’는 생각을 관한 후에 일심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수지受持하라.
옛날에 두 스님이 연꽃이 피었다 지는 생각을 일으켜 마침내 왕생하였다. 하물며 여기에 부처님의 명호를 수지한다면 어찌 왕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념할 때 관상하는 법(禮念時觀想法)
當禮佛時。觀想己身。在蓮華中。恭虔
作禮。佛在蓮華中。受我禮敬。當念佛
時。觀想己身。在蓮華中。結跏趺坐。佛
坐蓮華中。接引於我然後。一心持名。
昔有二僧。作蓮華開合想。遂得徃生。
况加之以持名。有不徃生者耶 禮念時
觀想法。
재계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마음을 맑혀 생각을 고요하게 하라. 서쪽을 향해 말없이 앉아 눈을 감고 관상觀想하되, ‘순금으로 빛나는 아미타불이 칠보 연못의 연꽃 위에 앉아 계신다. 키는 1장丈 6척尺이고, 눈썹 사이에 위로 향하여 난 백호白毫 한 가닥이 있다. 팔각의 백호는 가운데가 비었으며, 오른쪽으로 다섯 번 꼬여 투명하게 빛나 부처님 얼굴을 비춘다’는 생각을 관하라. 백호에 생각을 집중하여 조금의 잡념도 없어야 하며, 눈을 뜨나 감으나 언제나 그 광경을 떠올리도록 하라. 이렇게 오래도록 하여 염하는 마음(念心)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감응하여 부처님의 전신全身을 볼 것이니, 이것이 염불의 여러 방법 중 최상의 방법이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떠올리면 이 마음이 곧 부처다’23)라고 말했으니, 관상하는 염불은 또한 입으로 하는 염불보다 나은 것이다. 관상 염불하는 사람은 후에 반드시 구품연화대의 상품上品에 왕생하리라. 당나라의 계방啓芳과 원과圓果 두 사람이 관상법觀想法을 하였는데 단지 다섯 달 만에 자신들의 몸이 정토에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듣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부처님의 백호를 관하는 법(觀佛白毫法)
齋戒潔己。淸心靜慮。面西默坐。閉目
觀想阿彌陀佛眞金色身。在七寶池中
蓮華上坐。身長丈六。眉間向上。白毫
一條。八稜中空。右旋五遭。光明瑩澈。
照映金面。注想白毫。不得妄有分毫他
念。閉眼開眼。悉皆見之。如是久久。念
心成熟。自然感應。見佛全身。此爲最
上。謂心想佛時。此心即佛。又過於口
念也。身後必生上品。唐啓芳圓果二人
作觀想法。只五月。自覺身到淨土。見
佛聞法 觀佛白毫法。
앉아 있을 때 먼저 내 몸이 원광圓光 가운데 있음을 관상하고, 코끝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出入息)을 관상하라.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아미타불 한마디를 속으로 염불하고,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적당히 숨을 고르면 마음과 호흡이 같아진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따라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모두 이를 행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항상 스스로 밀지密持24)하고 점점 나아가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가면 호흡과 생각을 다 잊을 것이다. 이에 오래도록 익숙해지면 마음의 눈(心眼)이 시원히 열리고 삼매가 현전現前하리니, 이것이 곧 유심정토唯心淨土이다.
호흡을 세며 염불하는 법(數息念佛法)
凡坐時。先想己身。在圓光中。默觀鼻
端。想出入息。每一息。默念阿彌陀佛一
聲。方便調息。不緩不急。心息相依。隨
其出入。行住坐臥。皆可行之。勿令間
斷。常自密持。乃至深入禪定。息念兩
亡。久久純熟。心眼開通。三昧現前。即
是唯心淨土 數息念佛法。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서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옥구슬·금강·목환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염주로 삼지만,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으로 염주를 삼는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한 숨에 따라 부처님이 있으니, 어찌 한 호흡(一息)이 돌아오지 않아 죽을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움직이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사이에 항상 이 ‘염주’를 사용한다. 저녁에 잘 때에도 부처님 명호를 머금은 채 잠을 자고, 잠이 깨면 다시 계속한다. 반드시 꿈속에서도 저 부처님을 뵐 것이고 이러한 꿈을 계속 꾸어 삼매를 이룰 것이니, 직접 부처님의 옥호玉毫를 뵙고 친히 수기를 받는 것은 만에 하나도 예외가 없는 일이다.
호흡을 세며 염불하는 법(數息念佛法)
寶王論云。世人多以珠玉金剛木槵。爲
數珠。余則依出入息。爲數珠焉。稱佛
名號。隨之於息。有大恃怙。安懼一息
不還。屬後世哉。余於四儀。常用此珠。
縱令昏寐。含佛而寢。覺即續之。必
於夢中。得見彼佛。夢之不已。三昧
成焉。面覩玉毫。親蒙授記。萬無一失
也 同上。
무릇 염불하는 사람이 참선하여 견성見性하고자 한다면 조용한 방에 단정히 앉아 인연으로 얽매인 것(緣累)을 쓸어 없애고 정의 번뇌(情塵)를 끊어 버리도록 하라. 밖으로는 경계(境)에 집착하지 말고 안으로는 정定에 머무르지 말라. 지혜의 빛을 돌려 한 번 비추어(回光一照)25) 안과 밖이 다 고요해진 후에 밀밀密密히26) 나무아미타불을 열다섯 번 염불하고, 지혜의 빛을 돌려 스스로 보고(看) 말하라. “견성見性하면 성불하리니, 결국 무엇인가? 나의 본성인 아미타불이로다.” 다시 또 스스로 보는 것을 비추어 보되(覷看), 지금 들어서 염하고 있는 이 일념은 어디서부터 일어나는가를 보고, 이 일념이 사라지는 것을 보라. 다시 또 이 일념이 사라지는 것을 보되, 보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한참 동안 참구하라. 또 아미타불을 염불하고 반복해서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참구하되, 급하고 간절하게 하여 끊어지게 하지 말고 성성불매惺惺不昧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하라.
가고 머무르며 앉고 눕는 사이에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참구하면, 홀연히 가고 머무르며 앉고 눕는 곳에서 소리를 듣고 사물을 바라볼 때에 시원하고 통쾌하게 깨우쳐 본성인 미타를 직접 보고 안팎의 마음과 몸이 동시에 투탈透脫27)하리니, 이것이 바로 곧장 나아가는 수행의 바른 길이다.
불법을 참구함(參究佛法)
夫念佛人。若欲叅禪見性。端坐靜室。
掃除緣累。截斷情塵。外不着境。內不
住定。回光一照。內外俱寂然後。密密
擧念南無阿彌陀佛三五聲。回光自看
云。見性則成佛。畢竟那箇。是我本性
阿彌陀佛。却又照覷看。只今擧底這一
念。從何處起。覷破這一念。復又覷破
這覷底是誰。叅良久。又擧念阿彌陀佛
又如是覷如是叅。急切做工夫。勿令間
斷。惺惺不昧。如雞抱卵。四威儀中。如
是擧如是看如是叅。忽於行住坐臥處
聞聲見色時。割然明悟。親見本性彌陀
內外身心。一時透脫。即此是直捷修行
正道 叅究佛法。
홍무(洪武, 1368~1398년)와 영락(永樂, 1403~1424년) 연간에 공곡空谷, 천기天奇, 독봉毒峯 대사가 모두 염불에 대하여 거론하였다. 천기와 독봉은 다 염불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간看하도록 가르쳤는데, 오직 공곡은 “다만 염念만 하라. 그래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 견해는 각기 근기에 따라 편의적으로 한 것이므로 모두 옳다. 그러나 공곡은 다만 염念만 해도 좋다고 하였을 뿐이지 참구參究가 그르다고 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참구는 견성見性을 위주로 하므로 오로지 부처님 명호를 수지守持해야만 절대적으로 왕생할 것이라고 하여 참구하는 것을 폐지하고 수지하는 것만 일삼으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경전에는 다만 ‘명호를 집지하라’고만 설하였지 참구하라는 설은 없다고 말한다. 이 논리는 매우 일리가 있어 이에 따라 수행한다면 반드시 왕생하겠지만, 이것은 두고 저것은 폐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개 염불하는 사람이 견성하면 이는 바로 상품상생上品上生의 일이니, 오히려 왕생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옛 사람이 두 가지를 그대로 두고 근기에 따라 선택하였던 것이니 의심하지 말기 바란다.
참구와 염불을 변증함(辨參究念佛)
洪永間。有空谷天奇毒峯三大老。共
論念佛。天毒二師。俱敎人看念佛是誰
唯空谷謂。只直念去。亦有悟日。此二各
隨機宣。皆是也。而空谷但言直念亦可
不曰叅究爲非也。疑者謂叅究。主於見
性。單持乃切徃生。欲癈叅究而事單持
言經中止云。執持名號。曾無叅究之說。
此論亦甚有理。依而行之。決定徃生
但欲存此癈彼則不可。盖念佛人見性
正上品上生事。反憂其不生耶。故古人
兩存而待擇。請勿疑焉 辨叅究念佛。
문 정토에 왕생하는 데 일념一念이 옳습니까, 십념十念이 옳습니까?정토에 왕생하는 데 일념一念이 옳습니까, 십념十念이 옳습니까?
답 오로지 일념으로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地)28)에 머문다면 일념이 옳은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부처를 비방하고 경을 훼손하여 오역사중죄五逆四重罪29)를 범하는 것은 모두 일념의 악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이들이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화살처럼 빠를 것이다. 이제 염불하여 정토에 나는 것 또한 일념의 선업으로 이룬 것이니, 곧 극락왕생이 팔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전前 일념에 오음五陰30)이 사라지고 후後 일념에 오음이 생기니, 마치 밀초 도장으로 도장을 찍으면 도장은 녹아 없어지되 무늬는 남는 것과 같다. 전후의 두 염念도 필요가 없는데 어찌 반드시 십념까지 가겠는가. 또 경에서 밀락(酪)31)을 좋아하던 사미가 일념의 탐애심을 내어 후에 밀락 속의 벌레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는 모두 일념이지 십념이 아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말하는 십념은 대개 병들고 야윈 사람, 힘이 약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을 위한 것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 불러 그 염念을 도와준 것이다. 만약 마음이 건강하고 어둡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념으로 왕생한다. 이는 마치 머리카락 같은 가는 묘목이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로 자라는 것과 같다.
일념으로 왕생하는 것을 변증함(辨一念往生)
問一念十念。徃生淨土。何者爲正。曰
但一念徃生。住不退地。此爲正也。如
佛說謗佛毁經。五逆四重。皆一念惡業
成。墮無間獄。猶如箭射。今念佛生淨
土。亦一念善業成。即登極樂。猶如屈
臂。前一念五陰滅。後一念五陰生。如
蠟印印泥。印壞文成。尙不須兩念。豈
必至十念哉。又如經云。愛酪沙彌。生
一念愛心。後生酪中作虫。斯皆一念
非十念也。觀經十念。盖爲遘疾尩羸
力微心劣。故十稱彌陀。以助其念。若
心盛不昧。一念生焉。亦猶栽植毫髮
其茂至百圍也 辨一念徃生。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리한 근기를 가진 사람들은 염불을 경시하여 어리석은 사람들(愚夫愚婦)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다만 우부愚夫가 입으로는 부처님 명호를 외우나
마음은 천리 밖에 노니는 것만 볼 뿐이며, 이것은 독불讀佛이지 염불이 아니라는 것은 모른다. 염念은 마음을 따르는 것이니, 마음에 생각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기 때문에 ‘염’이라 한다. 이를 유학자에 비유해 보자. 유학자가 끊임없이 공자를 마음에 담아 두면 공자에 거의 가깝게 되지 않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생각마다 오욕五欲을 떠올리면서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염불을 그르다 여긴다. 아, 이처럼 일생을 헛되이 보내니 어찌 그리 말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들(愚夫愚婦)’이 아니겠는가. 애석하도다. 염불은 지혜로운 이가 할 수 있는 것이요, 어리석은 이는 할 수 없는 것이로다.
염불을 멸시하는 것을 변증함(辨蔑視念佛)
世之稍利根者。便輕視念佛。謂是愚夫
愚婦。勾當彼徒見愚夫口誦佛名。心游
千里。而不知此等。是名讀佛。非念佛
也。念從心。心思憶。而不忘故名曰念
試以儒喩。儒者念念憶孔子。其去孔子
不亦庶幾乎。今人念念思五欲。不以爲
非。反以念佛爲非。噫 似此一生空過
何如作愚夫愚婦耶。惜乎。智可能也。愚
不可能也 辨蔑視念佛。
문 요즘 사람들을 보니 염불하는 이는 많으나 서방에 나서 성불하는 이는 적으니 왜 그러한가?
답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입으로는 염불하나 마음이 착하지 못하여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둘은 입으로는 염불하나 마음에 잡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여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셋은 입으로는 염불하나 마음으로는 다만 부귀 얻을 생각만 하여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당부하노라. 염불하는 사람은 확고한 신념으로 서방에 나기를 구해야 하며, 혹시 왕생치 못할까 의심하지 말라. 성현들은 모두 이와 같이 하였으며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가 어찌 서방에 나지 않는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겠느냐. 문득 광대한 마음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서원하기를 ‘왕생하여 부처님 뵈옵고 법문을 들어 무상과無上果를 얻은 후 중생을 널리 구제하겠다’라고 다짐하라. 이와 같이 해야 비로소 진정한 염불인이 되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염불하여 왕생한 이가 적다는 것에 대해 변증함(辨念佛往生者少)
或問今見世人。念佛者多。生西方成佛
者少。何也。荅此有三故。一者口雖念
佛。心中不善。以此不得徃生。二者口
雖念佛。心中胡思亂想。以此不得徃生。
三者口雖念佛。心中只願求生富貴。以
此不得徃生。奉勸世人。凡念佛者。決
意求生西方。休得疑惑。聖賢盡是凡夫
做得來。安知你不生西方也。便可發廣
大心。立堅固志。誓願徃生。見佛聞法
得無上果。廣度衆生。如此方是念佛之
人。定得成佛 辨念佛徃生者少。
부처님께서 보이신 염불의 열 가지 공덕(佛示念佛十種功德)
어떤 사람이 한 부처님의 명호를 수지하면 현세에 틀림없이 열 가지의 공덕과 이익을 얻을 것이다.
1.모든 하늘의 큰 힘을 가진 신장神將과 그 권속들이 형체를 숨겨 밤낮으로 항상 염불하는 사람을 지켜 보호하신다.
2. 관음보살 같은 25대보살과 일체 보살이 항상 보호하신다.
3. 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항상 호념 護念하시고 아미타불은 항상 광명을 놓으셔서 섭수攝受하신다.
4. 야차나 나찰 같은 일체의 악귀들이 전혀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고, 모든 독사나 독룡이나 독약들도 다 해를 끼치지 못한다.
5. 일체의 화재, 수재, 원적寃賊의 칼과 화살, 감옥에서의 횡사를 당하지 않는다.
6. 이전에 지은 죄가 모두 소멸되고, 살인의 억울한 운명을 벗어나며, 더 이상 죄목을 다그침 당하는 일이 없다.
7. 잠잘 때 좋은 꿈만 꾸며 때때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미타불의 형상을 본다.
8. 마음이 항상 기쁨으로 차 있고 얼굴은 빛이 나며 기력은 왕성하여 하는 일에 행운이 있고 이롭다.
9. 언제나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처럼 공경과 공양과 예배를 받는다.
10. 임종할 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바른 생각(正念)이 나타나며,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들이 금대金臺를 손에 들고 서방정토에 왕생하도록 손잡고 인도하고, 미래의 시간 이 다하도록 빼어나게 오묘한 즐거움을 누린다.32)
佛示念佛十種功德
若人受持一佛名號者。見世當獲十種
功德利益。
一晝夜常得諸天大力神將。并諸眷屬
隱形守護。
二常得二十五大菩薩。如觀音等。及一
切菩薩常護。
三常爲諸佛。晝夜護念。彌陀常放光明
攝受此人。
四一切惡鬼。若夜叉羅刹。皆不能害
一切毒蛇毒龍毒藥。悉不能害。
五一切火難水難。寃賊刀箭。牢獄橫死。
悉皆不受。
六先所作罪。皆悉消滅。所殺寃命。彼
蒙解脫。更無質對。
七夜夢正直。或復夢見阿彌陀佛勝妙
色身。
八心常歡喜。顏色光澤。氣力充盛。所
作吉利。
九常爲一切世間人民。恭敬供養禮拜
猶如敬佛。
十命終之時。心無怖畏。正念現前。得
見阿彌陀佛。并諸菩薩聖衆。手持金臺
接引徃生西方淨土。盡未來際。受勝妙
樂。
염불과 송경으로 왕생한 이야기(念佛兼誦經往生)
양나라 도진道珍 법사는 『 열반경』을 강의하였는데, 천감天監 연간(502~519년)에 여산廬山에 머무르며 혜원 대사의 정토업淨土業을 흠모하였다. 좌선하는 중에 홀연히 바다 위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보배로 장식한 배를 타고 순항하는 것을 보았다. 법사가 그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들은 극락으로 간다고 하였다. 법사는 그들에게 함께 타고 가자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법사께서는 강경을 잘 하시지만 『 미타경』을 외우지 않았으니, 어찌 함께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법사는 드디어 강경講經을 그치고 염불하며 『미타경』 외우기를 한 해가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임종하기 28일 전 한 밤(四鼓)에 서쪽에서 은대銀臺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하늘이 대낮처럼 밝았다. 그때 “그대는 어서 대에 올라 타 왕생하시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의 대중들이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念佛兼誦經徃生
梁道珍法師。講涅槃經。天監中。憇錫
廬山。慕遠公淨業。禪坐中。忽見海上
數百人。乘寶舫前邁。師問何之。答徃
極樂國。因求附載。報云法師雖善講經
然未誦彌陀經。豈得同徃。師遂廢講念
佛。誦彌陀經。歷年不輟。將終四七日
前。夜四鼓。見西方銀臺來至。空中皎
如白日。聲云法師當乘此臺徃生。時衆
咸聞。
■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훌륭한 비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함께한 이들은 모두 위대한 아라한阿羅漢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들이었다. 장로長老 사리불舍利弗, 마하摩訶 목건련目乾連, 마하 가섭迦葉, 마하 가전연迦栴延, 마하 구치라拘絺羅, 이바다離婆多, 주리반타가周梨槃陀迦, 난타難陀, 아난다阿難陀, 라후라羅睺羅, 교범바제憍梵波提, 빈두로파라타賓頭盧頗羅墮, 가루타이迦留陀夷, 마하 겁빈나劫賓那, 박구라薄俱羅, 아누루타阿樓馱와 같은 훌륭한 제자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인 문수사리文殊師利 법왕자法王子, 아일다阿逸多보살, 건타하제乾陀訶提보살, 상정진常精進보살 등과 같은 위대한 보살들, 그리고 석제환인釋提桓因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늘의 대중들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佛說阿彌陀經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祗樹給孤
獨園。與大比丘僧千二百五十人俱。皆
是大阿羅漢。衆所知識。長老舍利弗
摩訶目犍連。摩訶迦葉。摩訶迦旃延。
摩訶俱絺羅。離婆多。周利槃陀伽。難
陀。阿難陀。羅睺羅。憍梵婆提。賓頭羅
頗羅墮。迦留陀夷。摩訶劫賓那。薄拘
羅。阿㝹樓䭾。如是等諸大弟子。并諸
菩薩摩訶薩。文殊師利法王子。阿逸多
菩薩。乾陀訶提菩薩。常精進菩薩。與
如是等諸大菩薩。及釋提桓因等。無量
諸天大衆俱。
그때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極樂이라 한다. 그 불국토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을 아미타阿彌陀라 하며 현재에도 설법하고 계신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를 무슨 까닭에 극락이라 이르는가? 그 나라의 중생들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여러 가지 즐거움만 누리므로 극락이라 이름한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에는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그물과 일곱 겹의 가로수가 모두 네 가지 보배(금·은·유리·파려)로 장식되어 빙 둘러싸여 있으므로 나라 이름을 극락이라 한다.
또 사리불이여, 극락세계에는 칠보 연못이 있어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물이 그 안에 가득하다. 연못 바닥은 순전히 금모래만 깔려 있고, 연못가 사방의 섬돌은 금·은·유리琉璃· 파려玻瓈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위에는 누각이 있어 금·은·유리·파려·자거(硨磲)·붉은 구슬(赤珠)·마노瑪瑙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다. 연못의 연꽃은 크기가 수레바퀴만한데, 푸른 꽃에서는 푸른 빛이, 노란 꽃에서는 노란 빛이, 붉은 꽃에서는 붉은 빛이, 흰 꽃에서는 흰 빛이 나며, 아름답고 향기롭고 깨끗하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爾時佛告長老舍利弗。從是西方。過十
萬億佛土。有世界。名曰極樂。其土有
佛。號阿彌陀。今現在說法。舍利弗。彼
土何故。名爲極樂。其國衆生。無有衆
苦。但受諸樂。故名極樂。
又舍利弗。極樂國土。七重欄楯。七重
羅綱。七重行樹。皆是四寶。周匝圍繞
是故彼國。名爲極樂。
又舍利弗。極樂國土。有七寶池。八功
德水。充滿其中。池底純以金沙布地
四邊階道。金銀琉璃玻瓈合成。上有樓
閣。亦以金銀琉璃玻瓈硨磲赤珠瑪瑙
而嚴飾之。池中蓮華。大如車輪。靑色
靑光。黃色黃光。赤色赤光。白色白光。
微妙香潔。舍利弗。極樂國士。成就如
是功德莊嚴。
또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에는 항상 하늘 음악이 울리고, 황금 땅에는 밤낮 쉼없이 만다라 꽃비가 내린다. 그 나라 중생들은 새벽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을 바구니에 담아 다른 곳의 10만억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공양할 때가 되면 바로 극락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고 산책을 한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그리고 사리불이여, 저 나라에는 항상 여러 가지 아름답고 울긋불긋한 빛깔의 새들이 있다. 흰 고니, 공작, 앵무새, 사리, 가릉빈가, 공명조 등 갖가지 새들이 밤낮으로 항상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오근五根,33) 오력五力,34) 칠보리분七菩提分,35) 팔성도八聖道36) 등의 법을 소리 내어 읊는다. 저 국토의 중생들은 이 소리만 들어도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한다.
又舍利弗。彼佛國土。常作天樂。黃金
爲地。晝夜六時。雨天曼陀羅華。其土
衆生。常以淸旦。各以衣裓。盛衆妙華
供養他方十萬億佛。即以食時。還到本
國。飯食經行。舍利弗。極樂國土。成就
如是功德莊嚴。
復次舍利弗。彼國常有種種奇妙雜色
之鳥。白鶴孔雀。鸚鵡。舍利。迦陵頻伽。
共命之鳥。是諸衆鳥。晝夜六時。出和雅
音。其音演暢。五根五力七菩提分八聖
道分。如是等法。其土衆生。聞是音已
皆悉念佛念法念僧。
사리불이여, 그대는 이 새들이 실로 죄를 지은 과보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저 불국토에는 삼악취三惡趣37)가 없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그 불국토에 삼악도라는 이름도 없는데, 어떻게 삼악도가 실제로 있겠는가. 여러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께서 법음法音을 널리 베풀고자 화현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에 미풍이 살짝 불면 갖가지 보배 나무와 보배 그물이 미묘한 소리를 내는데, 마치 백천 가지 악기가 함께 울리는 것과 같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舍利弗。汝勿謂此
鳥。實是罪報所生。所以者何。彼佛國
土。無三惡道。舍利弗。其佛國土。尙無
惡道之名。何况有實。是諸衆鳥。皆是
阿彌陀佛。欲令法音宣流。變化所作。
舍利弗。彼佛國土。微風吹動。諸寶行
樹。及寶羅網。出微妙音。譬如百千種
樂。同時俱作。聞是音者。自然皆生念
佛念法念僧之心。舍利弗。其佛國土
成就如是功德莊嚴。
사리불이여, 그대는 저 부처님을 무슨 이유로 아미타불이라 부른다고 생각하는가?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 시방 세계를 비추어도 걸림이 없는 까닭에 아미타불이라 부른다. 또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과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인 까닭에 아미타불이라 부른다. 사리불이여,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지 이미 10겁劫의 세월이 지났느니라.
또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문聲聞 제자들이 있어, 모두 아라한의 깨달음을 이루었는데, 그 수는 셈하여 알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여러 보살들도 이와 같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는 이와 같은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또 사리불이여,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모두 불퇴전의 지위(阿鞞跋致)38)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는 일생보처一生補處39)에 오른 이들이 많으며, 그 수효가 매우 많아 셈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이라 말할 뿐이다.
舍利弗。於汝意云何。彼佛何故號阿彌
陀。舍利弗。彼佛光明無量。照十方國
無所障礙。是故號爲阿彌陀。又舍利弗
彼佛壽命。及其人民。無量無邊阿僧祗
劫。故名阿彌陀。舍利弗。阿彌陀佛。成
佛已來。於今十劫。又舍利弗。彼佛有
無量無邊聲聞弟子。皆阿羅漢。非是筭
數之所能知。諸菩薩衆。亦復如是。舍
利弗。彼佛國土。成就如是功德莊嚴。
又舍利弗。極樂國土。衆生生者。皆是
阿鞞跋致。其中多有一生補處。其數甚
多。非是算數。所能知之。但可以無量
無邊阿僧祗說。
사리불이여, 이 설법을 듣는 중생들은 마땅히 서원을 세워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같은 가장 선량한 사람들과
한곳에 모여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작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는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
사리불이여,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이름을 마음 깊이 새겨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나 나흘이나 닷새나 엿새, 혹은 이레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인들과 함께 그 앞에 나타나신다. 그 사람은 죽을 때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곧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와 같은 이익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나니, 이 설법을 들은 중생들은 마땅히 저 국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舍利弗。衆生聞者。應當發願。願生彼
國。所以者何。得與如是諸上善人。俱
會一處。舍利弗。不可以少善根福德因
緣。得生彼國。舍利弗。若有善男子善
女人。聞說阿彌陀佛。執持名號。若一
日若二日若三日若四日若五日若六日
若七日。一心不亂。其人臨命終時。阿
彌陀佛。與諸聖衆。現在其前。是人終
時。心不顚倒。即得徃生阿彌陀佛極樂
國土。舍利弗。我見是利。故說此言。若
有衆生。聞是說者。應當發願生彼國土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한 것처럼 동방 세계에도 아촉비불阿閦鞞佛, 수미상불須彌相佛, 대수미불大須彌佛, 수미광불須彌光佛, 묘음불妙音佛 등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계신다. 이분들은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廣長舌相)40)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41)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남방 세계에는 일월등불日月燈佛, 명문광불名聞光佛, 대염견불大焰肩佛, 수미등불須彌燈佛, 무량정진불無量精進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舍利弗。如我今者。讃歎阿彌陀佛不可
思議功德之利。東方亦有阿閦鞞佛。須
彌相佛。大須彌佛。須彌光佛。妙音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
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
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
一切諸佛所護念經。
舍利弗。南方世界。有日月燈佛。名聞
光佛。大燄肩佛。須彌燈佛。無量精進
佛。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
出廣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
實言。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
功德。一切諸佛所護念經。
사리불이여, 서방 세계에는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상불無量相佛, 무량당불無量幢佛, 대광불大光佛, 대명불大明佛, 보상불寶相佛, 정광불淨光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북방 세계에는 염견불焰肩佛, 최승음불最勝音佛, 난저불難沮佛, 일생불日生佛, 망명불網明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舍利弗。西方世界。有無量壽佛。無量
相佛。無量幢佛。大光佛。大明佛。寶相
佛。淨光佛。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
於其國。出廣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
界。說誠實言。汝等衆生。當信是稱讃
不可思議功德。一切諸佛所護念經。
舍利弗。北方世界。有燄肩佛。最勝音
佛。難沮佛。日生佛。網明佛。如是等恒
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長舌相
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汝等衆
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一切諸
佛所護念經。
사리불이여, 하방 세계에는 사자불師子佛, 명문불名聞佛, 명광불名光佛, 달마불達摩佛, 법당불法幢佛, 지법불持法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상방 세계에는 범음불梵音佛, 숙왕불宿王佛, 향상불香上佛, 향광불香光佛, 대염견불大焰肩佛, 잡색보화엄신불雜色寶華嚴身佛,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 보화덕불寶華德佛, 견일체의불見一切義佛, 여수미산불如須彌山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舍利弗。下方世界。有師子佛。名聞佛。
名光佛。達摩佛。法幢佛。持法佛。如
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長
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
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
一切諸佛所護念經。舍利弗。上方世界。
有梵音佛。宿王佛。香上佛。香光佛。大
燄肩佛。雜色寶華嚴身佛。娑羅樹王佛。
寶華德佛。見一切義佛。如須彌山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
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
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
一切諸佛所護念經。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슨 까닭에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경(一切諸佛所護念經)’이라 이르는가? 사리불이여, 만약 이 경을 듣고 마음 깊이 새기거나(受持) 여러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 선남자 선여인들은 모든 부처님이 함께 호념하시며, 또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42)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는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내 말과 여러 부처님들의 말씀을 믿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미 발원하였거나, 지금 발원하거나, 장차 발원하여 아미타불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이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어 저 국토에 이미 왕생하였거나 지금 왕생하거나 또 장차 왕생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이여,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내 가르침을 믿는 이들은 마땅히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舍利弗。於汝意云何。何故名爲一切諸
佛所護念經。舍利弗。若有善男子善女
人。聞是經受持者。及聞諸佛名者。是
諸善男子善女人。皆爲一切諸佛之所
護念。皆得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
菩提。是故舍利弗。汝等皆當信受我語
及諸佛所說。
舍利弗。若有人。已發願。今發願。當發
願。欲生阿彌陀佛國者。是諸人等。皆
得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於
彼國土。若已生。若今生。若當生。是故
舍利弗。諸善男子善女人。若有信者。
應當發願。生彼國土。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여러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함과 같이 저 부처님들도 나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으로 어렵고 희유한 일을 하셨도다. 사바세계의 오탁악세五濁惡世-겁탁劫濁·견탁見濁·번뇌탁煩惱濁·중생탁衆生濁·명탁命濁-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세상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법’을 말씀하셨도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나는 이 오탁악세에서 어려운 일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해 이처럼 믿기 어려운 법을 설하느니라.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일진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말씀하셨다. 사리불과 여러 비구들, 모든 세상의 천신과 인간, 아수라 등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믿어 마음에 새긴 채 예경하고 물러났다.
舍利弗。如我今者。稱讃諸佛不可思議
功德。彼諸佛等。亦稱讃我不可思議
功德。而作是言。釋迦牟尼佛。能爲甚
難希有之事。能於娑婆國土。五濁惡世
劫濁見濁煩惱濁衆生濁命濁中。得阿
耨多羅三藐三菩提。爲諸衆生。說是一
切世間難信之法。舍利弗。當知。我於
五濁惡世。行此難事。得阿耨多羅三藐
三菩提。爲一切世間。說此難信之法。
是爲甚難。佛說此經已。舍利弗。及諸
比丘。一切世間天人阿脩羅等。聞佛所
說。歡喜信受。作禮而去。
佛說阿彌陀經。
관세음보살 왕생정토 본연경
●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
觀世音菩薩往生淨土本緣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영취산 봉우리에서 큰 비구 대중과 모든 대보살들과 천룡팔부 인비인 등과 함께 계셨는데 대보살들을 위하여 본생(本生)의 인연을 설하셨다.
如是我聞。一時佛在王舍城鷲峰山頂。與大比丘眾及諸大菩薩天龍八部人非人等。恭敬圍遶。而為說大菩薩本生因緣。
이때 부처님 앞에 큰 광명이 나타나 남염부제를 두루 비추고 점차 타방불국토까지 비추었는데 그 광명 가운데서 게송을 설하는 음성이 들렸다.
爾時佛前有大光明。遍照南閻浮提。漸及佗方國土。而光明中說偈言曰。
대비와 해탈문을 성취하시고,
항상 사바세계의 보타산에 계시면서,
주야로 여섯 번 변하여 세간을 관찰하시니,
전생의 서원과 인연으로 일체중생에게 이익을 준다네.
成就大悲解脫門 常在娑婆補陀山
晝夜六變觀世間 本願因緣利一切
이때 법회의 대중들은 이 광명을 보고 게송을 듣고 나서 희유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이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차례차례 그 인연을 물었지만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是時眾會見此光明。聞說偈言。生未曾有想。莫不疑怪。次第問因緣無答者。
이때 대중 가운데 총지자재(總持自在) 보살마하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 광명이 나타나며, 누가 이 광명을 놓았습니까? 저희들 대중은 이 광명을 보고 게송을 듣고 그 인연을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그 인연을 설해 주옵소서.”
爾時眾中。有一菩薩摩訶薩。名曰總持自在。從座而起。便白佛言。世尊。有何因緣。現此光明。誰人所放。我等大眾。見斯光明。聞說偈頌。未知因緣。願為我等。當說其因緣。
부처님께서 총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좋구나, 좋구나!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이 곳에서 서쪽으로 이십항하사불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극락(極樂)이다. 그 국토의 중생들은 모든 고통이 없고 오직 모든 즐거움만을 받는다. 그 국토에 부처님이 게시니 명호가 아미타불이며, 삼승의 성중(聖衆)이 그 국토에 충만하다. 그 가운데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로 오랫동안 선근을 심고 대비심의 행원(大悲行願)을 성취하였는데 지금 이 국토에 와서 정토에 왕생하는 본말인연을 보여주고자 하여 이 광명이 나타나서 널리 세계를 비추었느니라. 오래지 않아서 스스로 올 것이니 너희들은 그에게 게송의 인연을 물어라.”
佛告總持自在菩薩。善哉善哉。汝等諦聽。從此西方。過二十恒河沙佛土。有世界。名曰極樂。其土眾生無有眾苦。但受諸樂。其國有佛。號阿彌陀。三乘聖眾充滿。其中有一生補處大士。名觀世音自在。久植善根。成就大悲行願。今來此土。為欲顯示往生淨土本末因緣。現此光明。普照世界。不久自來。汝等當問偈頌因緣。
☞ 주(註) 일생보처 : 한 생만 지나면 성불하여 부처가 되는 대보살. 등각(等覺)의 지위. ☜
이때 관세음보살마하살이 백천의 큰 보살대중을 데리고 함께 영취산 봉우리에 와서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찬탄하며 공양을 마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爾時觀世音菩薩摩訶薩。百千大菩薩眾。俱共來詣鷲山頂。頭面禮佛。讚嘆供養已。退坐一面。
이때 총지자재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관세음보살 앞에 가서 서로 위문하고 나서 관세음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광명을 놓고 미묘한 게송을 연설하신 본말인연을 알지 못하겠으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時總持自在菩薩。承佛威力。往觀世音所。共相慰問。白觀世音言。善男子。所放光明。演說微妙伽陀。未識本末因緣。其意云何。
이때 관세음보살이 총지자재보살에게 말했다. “과거의 말할 수 없는 아승지겁전에 남염부제에 한 국토가 있었는데 이름이 ‘마열바타’였다. 그 국토에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이 장나(長那)였으며 그 집안은 부유했다. 그에게 아내가 있으니 이름이 ‘마나사라’였는데 자식이 없어서 부부가 항상 한탄하며 말하기를 ‘우리들은 재산이 풍족하지만 자식이 없으니 이것이 한이 되니 천신에게 기도하여 자식을 구합시다.’고 하였다.”
時觀世音告總持自在言。乃往過去。不可說阿僧祗劫前。當於南閻天竺。有一國。名摩涅婆吒。其國有一梵士。名曰長那。居家豐饒。有妻□名摩那斯羅。未有子息。夫婦常歎恨。我等財產雖豐足。亦無餘念。未有子息。是為遺恨。祈禱天神。慇重求子。
그 처는 오래지 않아서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단정하기가 비할 데가 없었다. 아들이 세 살이 되자 또 아들을 낳았다. 바라문은 두 아들을 얻고 환희하여 뛸 듯이 기뻐서 점쟁이를 불러서 두 아들의 점을 보게 했다.
其妻未久之間。有身月滿。生男子。端正無比。至有三歲。復生男子。梵士得二子。歡喜踊躍。招占相使見二子。
점쟁이는 두 아들을 보고 기뻐하지 않고 말없이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이 아이들은 비록 잘 생겼지만 머지 않아 부모와 헤어질 것입니다. 형의 이름을 조리(早離)라 하고, 동생의 이름을 속리(速離)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비록 이런 말을 들었지만 부부는 서로 함께 두 아이를 사랑하고 길러서 싫증이 없었다.
相者見而不悅。良久告言。此兒雖端正。別離父母不久。兄號早離。弟名速離。雖聞此言。夫妻相共愛養無厭。
조리가 일곱 살이 되고 속리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마나사라는 사대(四大)가 어긋나서 중병이 들어 형체와 빛깔이 초췌해지고 병고로 신음하여 편안히 눕지 못했으며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죽음의 문에 다다랐다. 이때 두 아들은 어머니의 좌우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 보고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울고 있었다.
早離年至七歲。速離年至五歲。時母摩那斯羅。四大乖違。重病卒起。形色衰損。辛苦病惱。不得安臥。水食絕將。入死門時。二子有母左右。瞻仰面目。憂悲啼哭。
어머니는 자식들이 슬피 울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듣고 병상에서 일어나서 좌우의 손으로 두 아들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생사는 무너지는 것이라 면하거나 벗어날 수 없단다. 점쟁이의 말대로 그렇게 되는구나. 한이 되는 것은 너희들이 아직 다 자라지 못하였는데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죄업의 과보가 있길래, 너희들은 어찌 그리 불행하단 말이냐.”
長母聞子悲聲。血淚交流。從病牀而起。以左右手。摩二子頭言。生死敗壞。不可免脫。占相所言。有實唯然。所恨汝等未及盛年。捨而別離。我有何罪報。汝等何無幸。
이때 조리는 침상의 옆에서 기절하여 쓰러졌다가 한참 뒤에 깨어 일어나서 하늘에 호소했다. “저희들은 지금 어려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누가 밝게 갈 길을 알려주겠습니까? 천지가 텅 비어 공허하고 마음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찌 우리들을 버리고 이별을 고하십니까?” 자비로운 어머니가 비유로 타일러서 말했다. “세간법은 본래 그런 것이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소멸하는 것이니 마치 급류가 흐르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슬픈 목소리를 들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구나.” 또한 속리는 어린 마음에 두 손을 뻗어 목을 감싸고 소리높여 울었다.
爾時早離在枕側。悶絕而臥。良久蘇起。呼天唱言。我等如今者幼稚無識。非生母者。誰示明操道。天地空曠。神心無據。一何捨告別離。悲母則誘諭言。世間法爾。生者必滅。譬如駛流。必不久住。今聽悲聲。深生病惜。又速離以幼稚心。舒於二手。繁細頸。高聲啼哭。
이때 마나사라는 두 아들에게 말했다. “지극한 도(至道)를 말하자면 보리심(菩提心)을 내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보리심이란 대비(大悲)가 곧 이것이다. 너희가 커서 네 가지 은혜(四恩)를 갚으려면 마땅히 꼭 발심해야 한다. 너희들은 울지 말아라. 나는 비록 죽지만 너희들에게는 아버지가 있지 않느냐?”
是時摩那斯羅語二子言。明操至道。無過發菩提心。菩提心者大悲是。若至老大時。欲報四恩。宜須發心。如只今者。汝莫啼哭。我雖死亡。共父住。
곧 남편 장나를 불러서 유언을 했다. “나와 당신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새의 두 날개와 같이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이 두 아들을 사랑하고 잘 길러서 내가 살아있을 때와 다름없이 하시고, 다른 여자를 얻더라도 이 마음을 변하지 마십시오.”
即呼長那。而語遺言。我今與汝。如車輪。如鳥翼。而有二子。我死汝生。汝愛養不異我生時。曾從佗緣。莫心改變。
바라문은 아내의 유언을 듣고 기절해서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깨어나 말했다. “수레는 한 바퀴가 없으면 촌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새는 한 날개가 없으면 공중을 날 수 없는데, 당신이 죽고 나면 나는 누구와 함께 두 아들을 키운단 말이오. 부부가 헤어지면 은혜와 애정으로 슬픔이 지극하여 나는 더이상 세간을 즐기고 싶지 않으니, 당신을 따라 목숨을 버리고 죽고 싶소.” 이때 아내가 다시 말했다. “두 아들은 당신과 내가 같이 낳았습니다. 원컨대 이제 그만 이별하오니 두 아들을 잘 키우세요.”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梵士聞婦遺言。悶絕僻地。蘇起唱言。車無一輪。不進寸步。鳥無一翼。不飛尺空。汝入死門。我與誰人。養育二子。夫婦別離。恩愛至悲。我不樂世間。將捨命入死門。時婦復言。二子者。汝與我共生。願止別離養二子。言訖閉眼。
아버지와 두 아들은 그 유언을 간직하고 장사를 치른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아버지의 오른쪽 무릎위에 있으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동생은 왼쪽 무릎위에 있으면서 배고파 울었다. 바라문은 근심하며 생각했다. “나는 어린 두 아들을 키울 능력이 없으니 다른 여자를 얻어서라도 어린 아들들을 키울 수 밖에 없다.” 이때 ‘비라’라는 바라문에게 한 딸이 있었는데 심성이 어질고 착했다. 그래서 장나는 그 여자를 얻어서 아내로 삼았다.
父及二子取其遺言。葬死屍還家。兄在右膝上。戀慕母。弟在左膝上。求食而悲。梵士憂懷中。而作是念。我無力。求佗女為婦。養育稚子。爰有梵士。名毗羅。有一女。心情貞良。即取彼女。收為婦。
이때 온 세상은 기근으로 굶주려 재물과 곡식이 점차 고갈되었고 창고는 비어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장나는 곧 처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북쪽으로 일주일 가면 ‘단라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진두’라는 단 맛의 과일이 있다고 하니 내가 그 산에 가서 과일을 따 가지고 오면 당신과 두 아들을 잘 거둘 수 있을 것이오. 내가 돌아올 동안 아이들을 잘 돌보시오.” 처는 그 말을 듣고 두 아이를 마치 생모처럼 잘 길렀다.
時舉世飢苦。財穀漸盡。庫藏空無。生活無憑。長那即語妻言。我聞從是北往七日。有山名檀羅山。有甘菓名鎮頭。將行彼山取妙菓。養汝及二子。汝我還來間。將可養育。妻受其語。養育二子。如生母。
그런데 남편은 저 산에 홀로 간지 14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처는 생각이 바뀌어서 이렇게 생각했다. “장나가 만약 저 산에서 오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두 아들을 기르겠는가? 만약 과일을 따서 오더라도 저 사람은 두 아들을 사랑하니 나에게 얼마나 나누어 주겠는가? 이제 방법을 써서 두 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자.”
夫差彼山獨往。去後二七日。更不還來。時妻生異念。作是思惟。長那若住彼山不來者。我如何養育二子。若採菓雖來。彼愛念二子。我有何等分。今以方便。除遣二子。
이렇게 생각하고는 미리 뱃사공에게 말해서 떠날 시간을 약속하고 두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혼자서 너희들을 기를 능력이 없다. 너희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서 남쪽으로 섬이 있는데 바닷가의 외로운 섬으로 그 해안에는 단 과일이 있고 좋은 초목이 있다고 하니 나와 너희들이 같이 저 섬에 가자.” 그리고 곧 뱃사공을 찾아갔다.
思惟已語海師。定出時已。更告二子。我汝等養無力。汝父既未還。從此南方。近有島。海岸孤絕。岸有甘菓。濵有美草。我與汝等。共往絕島。即詣船師所。
두 아들은 배에 올라 바다에 나가서 절해고도의 해안에 도착했다. 계모는 두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먼저 내려서 해안가 모래밭에서 놀고 있어라. 내가 배에 가서 먹을 것을 요리해서 가져올 것이니 그때 과일나무를 찾아보자.” 두 아들은 배에서 내려서 동서로 달리면서 놀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몰랐다. 계모는 은밀하게 배에 타고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二子俱乘船渡海。到絕島岸。語二子。汝等二人先下。戲濵挊沙。我在船中。料理餘糧。次下欲求草菓。二子即下。東西馳走遊戲。不知餘事。後母密乘本船。還古鄉。
두 아들은 나중에 배가 도착했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배가 없었다. 또한 새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해안가를 다니며 찾느라고 피곤하고 지쳐서 소리높여 어머니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두 아들은 밤낮으로 슬퍼하고 통곡했다. 형 조리는 이렇게 말했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사별한 후 한 번 가니 다시 오지 않는구나. 자비로운 아버지는 단나라산에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네. 새어머니는 우리를 절해고도에 버리고 몰래 가버렸으니 어찌해야 살아날 수 있을까?”
二子還到本濵。見之無船。及母不知去所。海側走疲。舉聲呼母。更無答者。二子晝夜悲哭。兄早離作如是言。悲母告別離。一去更不來。慈父往檀那羅山。更不還來。後母者置絕島。密還去。如何存身命耶。
이때 낳아주신 어머니의 유언을 생각하고 이렇게 서원을 세웠다. “나는 위없는 도를 구하는 마음(보리심)을 내고 보살의 대비심을 성취하리라. 해탈문을 수행하고 먼저 남을 제도하고 난 후에 나는 성불하리라. 만약 부모가 없는 사람에게는 부모의 모습을 나타내고, 스승과 어른이 없는 사람에게는 스승의 모습을 나타내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에게는 부귀한 몸을 나타내고, 국왕、대신이나 장자、거사나 재관、바라문이나 사중팔부(四衆八部)의 일체의 부류의 중생들을 따라 몸을 나타내지 않음이 없으리라. 원컨대 나는 항상 이 섬에 머물면서 시방세계의 국토에 나타나 능히 중생들에게 안락(安樂)을 베풀리라. (내 몸이) 산하대지로 변하고 초목이나 오곡이나 단 과일 등으로 변하여 이것을 먹고 수용하는 사람이 빨리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게 되기를 서원합니다! 원컨대 나는 어머니께서 태어난 곳을 따라 태어나고, 아버지가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기를 서원합니다!” 이와 같이 100가지의 서원을 세우고 목숨을 마쳤다.
時憶念生母遺言。我須發無上道心。成就菩薩大悲。行解脫門。先度他人。然後成佛。若為無父母者。現父母像。若為無師長者。現師長身。若為貧賤者。現富貴身。國王大臣。長者居士。宰官婆羅門。四眾八部。一切隨類。無不現之。願我常在此島。於十方國。能施安樂。變作山河大地。草木五穀。甘菓等。令受用者。早出生死。願我隨母生處。不離父生處。如是發一百願。壽終。
☞ 주(註) 관세음보살(조리)은 이와 같은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 서원대로 다 성취했다.
① 보리심과 대비심을 성취했으며,
② 남을 먼저 제도하겠다고 서원을 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수없이 많은 중생을 먼저 제도하고 있으며,
③ 사중팔부의 중생들에 따라 가지가지 몸을 나타내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항상 32가지의 몸(응신.화신)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며,
④ 항상 그 섬에 머물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남해(南海)의 보타락가산(普陀洛伽山)에 머물고 계시며,
⑤ 어머니께서 태어난 곳을 따라 태어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아미타불(생모 마나사라)이 계신 극락세계에 최초로 태어나 현재에도 극락세계에 계시며,
⑥ 아버지가 태어나는 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석가모니불(아버지 장나)께서 태어나고 성불한 이 사바세계를 항상 떠나지 않는 것이다. ☜
아버지 장나는 단나라산에서 진두의 과일을 따서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두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계모는 대답했다. “당신 아들들은 지금 음식을 빌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 아버지에게는 친구의 집에 찾아가서 아들의 소재를 물었다. 친구는 대답했다. “자네가 집을 떠난 후 14일이 되어 계모가 아이들을 남해의 절해고도에 보내버렸으니 굶어죽었음에 틀림없다.” 이때 장나는 탄식하고 흐느껴 울며 후회하고 자책했다. “내가 단나라산에 가서 단 과일을 따오려고 한 것은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함이었는데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홀연히 두 아들과 이별한단 말인가? 먼저 아내와 이별할 때도 슬픔을 참기 어려웠는데 이제 또 생이별을 한다니 참으로 괴롭구나.” 이에 곧 작은 배를 구해 절해고도의 바닷가에 도착하여 사방으로 달리며 찾았다. 오직 백골이 한곳에 모여있을 뿐이었으며 옷은 여기 저기 해안가에 널려 있었다. 이에 “이것이 내 아들들의 죽은 뼈로구나.” 하고 알았으며 옷과 뼈를 수습했다.
父長那從檀那羅山。採鎮頭菓。還來本宅。先問其二子。後母即答言。汝子只今乞求飲食遊出。其父有朋友。往其所。問子在所。彼答言。汝出後。過二七日。後母送置南海絕島。餓死定不疑。爾時長那。嗚呼甚自責。我往檀那羅山。取甘菓來者。為養二子。而有何罪。忽遇二別離悲。先別離難忍。今亦值生別離。不堪任。即求覔小船。到絕島濵。四方奔求。唯是白骨一處聚集。衣服散在海濵。知是我子死骨。懷衣骨。
(장나는) 울며 통곡하고 나서 서원을 세웠다. “원컨대 나는 모든 악한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고 속히 성불하리라. (내 몸이) 혹은 대지로 변하고 물과 불과 바람으로 변하며, 초목과 숲으로 변하여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고, 혹은 오곡으로 변하여 이 곡식을 먹는 중생들의 몸을 배부르게 하고, 혹은 천신이나 인간이나 귀신이나 일체 귀천의 가지가지 형상으로 어느 불국토라도 몸을 나타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오백 가지 서원을 세웠다. 또한 서원하기를 “나는 항상 사바세계에 머물고 설법하고 교화하리라.” 이때 음식을 먹지 않고 목숨을 마쳤다. 이때 염부제는 크게 진동하고 모든 천신들이 와서 모였으며, 들짐승과 날짐승들은 슬프게 울부짖고 편안치 않았고 새들은 공중으로 날아갔고, 모인 천신들은 백골에 공양했다.
啼哭發願。願我度脫諸惡眾生。速成佛道。或變大地。或水火風。或變草木藂林。為眾生作依止。或變五穀增益佗身。或若天若人若神。一切貴賤種形色。無剎不現身。如是發五百願。又願我常住娑婆世界。說法教化。如此時間。不食命終。閻浮提大動。諸天來會。禽獸悲鳴不安。空中散化。供養白骨。
☞ 주(註) 석가모니불의 전신인 장나는 이런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 서원을 모두 성취했다.
① 악한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한다는 서원 때문에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악한 세상에 태어나 중생들을 제도한 것이며,
② 속히 성불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천 번이나 다른 중생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 보시하였고 스승이었던 미륵보살보다 9겁이나 앞서서 성불했으며,
③ 어느 국토라도 가지가지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지금도 시방세계에 화신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④ 항상 사바세계에 머물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타방불국토에 태어나지 않고 오직 이 사바세계의 육도에서 바라밀을 닦고 중생들을 제도하여 이곳에서 성불하신 것이다. ☜
이때 바라문 장나는 지금의 석가모니여래의 몸이었고, 낳아주신 어머니 마나라사는 서방의 아미타여래의 몸이었으며, 형 조리는 나의 몸이었고, 동생 속리는 대세지보살의 몸이었습니다. 친구는 그대 총지자재보살의 몸이었으며, 과거의 단나라산은 지금의 영취산이며, 과거의 절해고도는 지금의 보타락가산입니다.
爾時梵士長那者。今釋迦牟尼如來是也。母摩那斯羅者。西方阿彌陀如來是也。兄早離者。我身是也。弟速離者。大勢至菩薩是也。朋友者。總持自在菩薩是也。昔檀那羅山者。今靈山是也。昔絕島者。今補陀落山是也。
겁이 무너질 때(壞劫) 기세간(器世間)이 비록 무너지지만, 겁이 이루어질 때(成劫)는 먼저 이 산(보타락가산)의 모양이 다시 나타나며, 저 산의 북쪽에는 굴이 있는데 그 안에 금강(金剛)과 같은 큰 바위가 있으니 이름을 보업(寶業)이라고 하는데 나는 항상 그 바위 위에 있으면서 대비와 해탈문을 설하여 중생들을 성취시킵니다. 이곳은 옛적에 조리의 몸이였을 때 발원한 곳이니 보타락가산의 봉우리에 기묘하게 장엄된 칠보(七寶)의 전당이 있어 나는 항상 이 보배궁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불법을 보이고(示)、가르치고(敎)、이익을 주고(利)、기쁘게 합니다(喜). 이 산은 과거에 부모를 찾던 곳이며, 나는 저곳에 의지해서 정토에 왕생하여 불퇴전의 보살지위에 오르기를 사유하고 과거에 몸을 버린 곳을 사유했으므로 항상 저 산에 머무는 것입니다. 많은 종류의 들짐승과 날짐승들을 과거에 내가 교화했었으며 초목은 몸을 버렸던 곳을 향해서 그 잎을 늘어뜨리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광명 가운데 게송의 뜻은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말의 인연이 이와 같습니다.
劫壞之時。器界雖壞。劫成時。先相還現。彼山北面有堀。若金剛有大石。號寶業。我常在彼石上。說大悲行解脫門。成就眾生。昔為早離時發願。處山頂。有七寶殿堂莊嚴奇妙。我常在寶宮殿。示教利喜。昔呼父母處也。我依彼思往生淨土得不退位。思昔捨身。故常在彼山。異類禽獸。昔我所化。現草木。向捨身所。而低其葉。當知光明中偈頌亦如是。始末因緣。
이때 석가모니여래께서 관세음보살을 찬탄하셨다. “좋구나, 좋구나! 그대의 말과 같다. 왕생인연의 하나하나가 이와 같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오늘과 마찬가지로 나와 아미타불은 한 교화의 시작과 끝(一化始終)이 되느니라. 바치 부모에게 한 아들이 있는데 어려서 우물 밑바닥에 떨어진 사고를 당한 것과 같으니라. 그 아버지는 우물바닥에 들어가서 그 아들을 구해서 언덕 위로 내놓으면, 그 어머니가 언덕 위에 있다가 아들을 받아서 안아 키우며, 모든 친속들이 어머니의 양육을 도와 그 아들과 친구를 맺으면 그 아들은 다시는 본래 우물의 더러운 곳에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다.”
爾時釋迦牟尼如來。讚嘆觀世音菩薩。善哉善哉。誠如所言。往生因緣。一一如斯。汝等當知。如今日者。我及阿彌陀一化始終也。譬如父母。有一子。劫稚墮井底。其父入井底。救其子置岸上。其母在岸。抱取養育。諸親屬助母養志。結朋友儀。不還本井穢中。
“나는 자비로운 아버지와 같고, 오탁악세의 중생들은 마치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와 같으며, 아미타불은 마치 언덕 위에 있는 어머니와 같고, 정토의 관세음보살 등은 마치 친구와 같으니, 한 번 불퇴전을 얻으면 다시 오탁의 더러움에 돌아가지 않느니라. 마땅히 알라, (내가) 이 사바세계의 오탁의 더러움 가운데 들어가 육도의 어리석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이 중생들이 정토에 태어나면 아미타불이 이들을 인도하여 버리지 않으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지켜 보호하고, 이들이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이 되면 다시 오탁의 더러움에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이 과거 전생의 서원의 인연에 의지한 것이니라.”
我如慈父。五濁眾生如隨井底。阿彌陀如悲母在岸上。如淨土觀世音等。如朋友。得不退。如不還。當知入娑婆五濁穢中。教化六道愚癡眾生。今生淨土。彌陀引不捨。觀世音大勢至守護。令不退還。皆依往昔誓願因緣也。
이때 아미타불께서 무수한 백천의 성인 대중들과 함께 공중에 나타나셔서 게송을 설하셨다.
爾時阿彌陀如來無數百千聖眾。現空中。說偈言。
좋구나! 석가모니불이여!
오탁악세의 더러움 가운데서 중생을 이롭게 하네.
나의 이름을 듣는 자나 몸을 보는 자는,
결정코 성불하나니,
과거 전생의 인연 때문이니라.
내가 이제 와서 공중에서 몸을 나타내니,
나의 국토에 와서 태어나고자 인연(因)을 닦는 자는,
(그가 임종시에 내가) 반드시 와서 서방에 영접하리라.
善哉釋迦文 在濁利眾生 聞名見身者
決定成佛道 往昔因緣故 今來現空中
欲生我因者 必來迎西方
이때 석가모니불께서 아미타불을 찬탄항려 게송으로 설하셨다.
爾時釋迦牟尼佛讚阿彌陀。說偈曰。
좋구나! 양족존이여!
능히 사바세계를 이롭게 하고,
진실한 법을 증명하시며,
대자대비로 일체중생에게 베푸시니,
만약 무거운 악업의 장애 있으면,
정토에 태어날 인연이 없지만,
아미타불의 서원의 힘에 이끌려,
반드시 안락국에 태어나리라.
만약 사람이 많은 죄업을 지으면,
마땅히 지옥 가운데 떨어져야 하지만,
(임종시) 잠깐 아미타불의 이름 들으면,
맹렬한 지옥불이 즉시 청량해지리라.
만약 아미타불을 염하면,
곧 한량없는 죄업을 소멸하고,
현생에는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받고,
후생에는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리라.
善哉兩足尊 能利娑婆界 證明真實法
慈悲施一切 若有重業障 無生淨土因
乘彌陀願力 必生安樂國 若人造多罪
應墮地獄中 纔聞彌陀名 猛火為清凉
若念彌陀佛 即滅無量罪 現受無比樂
後必生淨土
이때 관세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게송을 설했다.
爾時觀世音從座而起。說偈言。
두 부처님은 마치 해가 뜬 것과 같아,
능히 생사의 어둠 깨뜨리네.
정토에 왕생하는 인연을 나타내시니,
(이 인연은) 겁을 지나도록 무너지지 않네.
나는 무량겁 전에,
절해고도에서 발심할 때의 인연을 생각하여,
항상 보타락가산에 머무르나니,
과거에 생사의 세계에 있을 때,
두 부처님이 나의 부모가 되시고,
이제 한분은 정토, 한분은 예토에 계시니,
두 부처님이 서로 도와서 세간을 교화한다네.
二尊如日出 能破生死闇 顯示往因緣
經劫不敗亡 我念無量劫 在於絕島側
發心時因緣 常在補陀落 昔在生死時
二尊為父母 今在淨穢土 互助化世間
이때 대세지보살이 게송을 설했다.
爾時大勢至說偈言。
나는 초발심한 때로부터,
두 부처님 따라서 떠나지 않았으며,
이제 과거의 인연을 듣고,
인연이 다하지 않았음을 능히 알아서,
내가 한 발을 움직일 때는,
삼악도의 중생들 고뇌를 여의고,
만약 정토에 태어날 때는,
내가 손을 내밀어 서방에 영접하리라.
我從初發心 隨二尊不離 今聞昔因緣
能知緣不已 我動一足時 三惡離苦惱
若生淨土時 授手迎西方
이때 총지자재왕보살이 역시 게송을 설했다.
爾時總持自在王亦復偈說言。
나는 옛적에 친구였나니,
오늘에 능히 이 인연 알았네.
미래에 이 인연 듣는 사람은,
결정코 정토에 왕생하리라.
我昔為朋友 今日能知之 當來得聞者
決定生淨土
이때 아미타불이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대중들은 환희하고 예배하고 물러갔다.
爾時阿彌陀佛忽念不現。大眾歡喜。作禮而去。
觀世音菩薩往生淨土本緣經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