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보서 6


• 비구니가 왕생한 이야기1~6
• 부녀자가 왕생한 이야기1~37

비구니가 왕생한 이야기
尼衆徃生類

 1. 수隋 비구니 대명大明은 뜻이 높고 청정한 수행을 한 분이다. 정토에 나기를 기원하여 언제나 법당에 들어가 예념하였다. 예념할 때는 먼저 정갈한 옷을 입고 입에는 침향沈香318)을 머금었는데 문제후文帝后가 그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隋尼大明。志尙淸脩。誓生淨土。每入
室禮念。先着淨衣。口含沉香。文帝后
甚重之。

임종하는 날 대중들은 홀연히 방에 가득한 침향의 향을 맡았고, 갑자기 구름 같은 밝은 빛이 뭉게뭉게(隱隱)319) 서쪽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320)
將終之日。衆忽聞沉香滿室。
俄而光明如雲。隱隱向西沒焉。


 2. 당唐 비구니 오성悟性은 여산廬山에 주석하였는데, 조照 대사(闍黎)321)가 발원 염불할 것을 권하여 주야로 정진하였고 마음을 집중하여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唐尼悟性。居廬山。遇照闍黎。敎以發
願念佛。六時精進。一心不亂。

대력大曆 6년(771년) 갑자기 전염병에 걸렸는데, 음악 소리가 서쪽 공중에서 들려오는 것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혼이 극락에서 노니는데 이미 중품상생中品上生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는데 얼굴은 황금빛을 띠었다. 당시 나이 24세였다.322)
大曆六年。忽染疾。聞空中音樂西來。謂左右
曰。我神遊極樂。已得中品上生。言已
而逝。面現黃金色。時年二十四。

 3. 송宋 비구니 능봉能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정토업을 전일하게 닦았다. 일찍이 꿈에 부처님 광명이 몸을 비추고 공중에서 좋은 말로 타일러 위로하는(開慰)323) 말을 듣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제가 왕생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宋尼能奉。錢塘人。專脩淨業。嘗夢佛
光照身。及聞空中善言開慰。告其徒曰
吾徃生時至。

조금 후 능봉이 매우 크게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능봉은 합장하고 서쪽을 향해 앉아 입적한 뒤였다. 신이한 향내가 방에 가득했고 음악 소리는 서쪽으로 사라졌다.324)
少頃聞奉念佛聲甚厲。奔
徃視之。則合掌面西坐逝矣。異香滿室。
樂音西邁。


 4. 송宋 비구니 법장法藏은 금릉金陵에 주석하였다.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염불하였는데, 매년 1월·4월·7월·10월 초하루가 되면 동지들을 모아 경을 읊고 다라니를 외웠다(持呪). 신심 깊은 대가大家들이 오순도순(翕然)325) 교화를 잘 따랐다. 입적하던 날 밤에 불보살의 금빛 형상이 방안에 나타나고 광명이 절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326)
宋尼法藏。居金陵。戒德甚嚴。勤苦念
佛。每歲四孟月朔。集同志諷經持呪
大家善信。翕然從化。示寂。夜見佛菩
薩金像。現其室中。光明炤寺。端坐脫
去。


 5. 명明 비구니 무위無為는 소산蕭山 내씨來氏의 딸로 어릴 적 시집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염불을 하였다. 20세에 머리를 깎고 초막을 짓고 정토업을 전일하게 닦았다. 30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학업을 탐구하였는데 지나는 곳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자가 있으면 병자의 상태에 따라 진단을 해서 탕약을 끓여 먹여 낫게 하였다.
明尼無爲。蕭山來氏女。幼誓不嫁。蔬食
念佛。年二十薙髮。結茆專脩淨業。三
十遊方叅學。凡所曆處。有病苦者。隨
物取與。煎湯服之即愈。

가정嘉靖 연간(1522~1566년)에 궁중에 돌림병이 있었다. 궁에서도 소문을 듣고 무위를 불러 치료하니 효험이 있었다. 이에 무위심無為心 선사라는 호를 내려주고 옛 집으로 돌려보냈다. 임종할 때 한 신승神僧이 초막에 투숙하려 했다. 무위는 두세 차례 거절하였으나 신승은 타이르며 들어와서 제 마음대로 선상禪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보니 보이지 않아 비로소 신승임을 알았다. 문득 일어나 앉아 게偈를 읊었다.
嘉靖間。宮中時疫。風聞于朝。召赴有驗。賜無爲心
禪師之號。送歸故廬。將終日。有神僧
投宿。無爲却之再三。神僧勸誠而進。
權宿禪牀。睡醒不見。知是神僧。便起
坐。偈云。

六十四年活計   육십사 년 동안의 살림
今朝撤手歸西   오늘 아침 손 놓고 서쪽으로 돌아가네.
得箇菩提三昧   보리 삼매 얻고 보니
依然明月淸風   여전히 밝은 달이요 시원한 바람이네.

게를 읊고는 입적하였다. 다비할 때 사리 한 과가 나왔으며, 탑은 관산冠山에 세웠다.327)
六十四年活計。今朝撤手歸
西。得箇菩提三昧。依然明月淸風。即
逝茶毘。一團舍利。塔于冠山。


 6. 청清 비구니 월랑月朗은 송강松江의 세족世族인 오씨吳氏의 딸이다. 부모가 배필을 정하려 하였으나 완강히 반대하여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17세에 화연化緣328) 재승齋僧329)인 항주의 비구니 천강千江을 만나 간절히 출가하고자 하였다.
太淸尼月朗。松江世族吳氏女。父母
欲爲擇配。力阻弗擇。年十七。遇杭州
尼千江。化緣齋僧。懇求出家。

이듬해 봄 할머니와 온 가족을 따라 천축사에서 향을 올리고 그 틈에 천강암千江庵에 가서 발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뜻이 없음을 보였다.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권했으나 굳게 다짐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은 함께 돌아가기 어려움을 알았다.330) 빠진 글이 있다.
次年春。隨祖母諸眷屬。天笁進香。乘便至千江
庵住足。示無歸意。咸徃勸之歸。決志
不允。衆知不可 有闕文。


■ 부녀자가 왕생한 이야기
婦女徃生類

 1. 수隋 문제文帝의 황후 독고獨孤씨는 비록 왕궁에 있었으나 여자인 것을 매우 싫어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8월 갑자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는 갖가지 음악이 저절로 울려나오고 신이한 향기가 공중으로부터 와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문제가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라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이름을 아미타라 합니다. 황후께서 쌓은 업이 높아서 저 극락국에 올라가므로 이 상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331)
隨文帝后。獨孤氏雖處王宮。深厭女質。
常念阿彌陀佛。以八月甲子命終。時永
安宮北。種種音樂。自然震响。異香滿
室。從空而至。帝問闍提斯那。是何祥
瑞。對曰淨土有佛。號阿彌陀。皇后業
高。超登彼國。故現斯瑞耳。

 2. 당唐 요姚 할머니는 범행范行 노파의 권유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다. 후에 임종할 때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뵈었다. 부처님께 고하기를 “아직 범행 노파와 작별하지 못했으니 잠시 공중에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범행 할머니가 이르자 요 할머니는 선 채로 입적하였다.332)
唐姚婆。因范行婆。勸令念佛。後臨終
見佛菩薩來迎。告佛言。未與范行婆別
請佛暫住空中。范至。姚婆立化。

 3. 송宋 의인宜人333) 육陸씨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조청朝請334)인 왕여王璵의 아내이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정토에 돈독한 뜻을 두어 예참을 한 번 할 때마다 만 번씩 소리 내어 염불하기를 30년이나 하였다. 작은 병환이 있었는데 문득 하늘 북이 저절로 울리는 것을 들었다. 남들이 바야흐로 놀라 이상하게 여겼다. 곧 서쪽을 마주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35)
宋宜人陸氏。錢塘人。朝請王璵妻也。
嘗誦法華。篤意淨土。禮懺一會。念佛
萬聲。凡三十年。因微疾。忽聞天鼓自
鳴。人方驚異。即面西端坐而逝。

 4. 송宋 호장胡長 할머니인 이李씨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뒤 밤낮으로 고성염불高聲念佛하고 『미타경』을 10여 년 동안 독송하였다. 하루는 붉은 비단 일산을 쓴 한 스님을 보았는데 “그대는 15일 자시子時에 왕생할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스님에게 누구인지 묻자 “그대가 염念하던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드디어 친척들과 작별하였다.
宋胡長婆李氏。上虞人。夫喪後。日夜
高聲念佛。及誦彌陀經。凡十餘年。一
日見有僧。覆以緋盖曰。汝十五日子時
徃生。問師何人。曰是汝所念者。婆遂
別諸親。

기약한 날이 되자 이채로운 향기와 광명이 있었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7일 후에 다비를 하였는데 이는 백옥 같고, 혀는 붉은 연꽃 같고, 눈동자는 포도 같았는데 모두 살아 있을 때처럼 견정堅精하여 문드러지지 않았으며 사리는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다비한 곳에서 흰 양귀비 같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336)
至期有異香光明。端坐而逝
七日焚化。齒如白玉。舌如紅蓮。睛如
葡萄。皆堅精不壞。舍利不可數計。次
日焚處。生一華。如白1)粟云。

 5. 송宋 전당錢塘의 공龔씨는 밤낮으로 염불하고 『미타경』을 독송하였다. 후에 병환이 있어 형亨 율사를 모셔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다. 설법이 끝나기 전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늙은 첩인 우于씨 또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꿈에 공씨가 “나는 이미 정토에 왕생했소. 당신도 왕생할 것이오.”라고 하였다.337)
宋錢塘龔氏。晝夜念佛。誦彌陀經。後
有疾。請亨律師指示。陳說未終。端坐
而化。老妾于氏。亦念佛不輟。夢龔氏
告云。我已生淨土。汝亦當生。

 6. 송宋 정鄭씨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관음경』을 일과로 읽었고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후에 병환 중에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에게 말하기를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께서 장차 오시려 한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합장하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불보살께서 오신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金臺를 쥐고 여래께선 나를 접인하여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라 하며 조용히 입적하였다.338)
宋鄭氏。錢塘人。日課觀音經。念佛不
輟。後病中。索浴西向坐。問家人云。聞
磬聲乎。淨土諸聖且至。已而合掌喜曰
佛菩薩來。觀音手執金臺。如來接我登
座。遂奄然而化。

 7. 송宋 황黃씨는 사명四明 사람으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부친의 집에 돌아와 정토업을 정성으로 닦았다. 임종할 때에 부처님께서 와서 맞이하신 것을 뵙고 인印을 맺고 천천히 걸어가다 갑자기 선 채로 입적하였다. 가족들이 땅에다 재를 체로 쳐서 왕생처를 표시하였는데 한 송이 연꽃이 재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339)
宋黃氏。四明人。早喪夫。因歸父舍。精
修淨業。臨終見佛來迎。結印徐行。儼
然立化。家人篩灰于地。以驗生處。見
蓮華一朶生灰中。

 8. 송宋 삽천霅川 주朱씨는 염불을 30년이나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끊고 40일 동안 물만 먹으며 염불하였다. 꿈에 세 스님이 각각 연꽃을 쥐고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대를 위해 이 꽃을 심으니, 이제 마땅히 왕생하리라.” 하였다. 잠에서 깬 후에 스님을 청해 조념助念 염불을 하도록 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40)
宋霅川朱氏。念佛三十年。忽絕食四十
日。唯飮水念佛。夢三僧。各執蓮華謂
曰。吾先爲汝種此華。今當徃生。旣寤
請僧助念。端坐而逝。

 9. 송宋 항項씨의 법명은 묘지妙智로 은현鄞縣 사람이다. 과부살이를 하였으며 두 딸을 모두 스님으로 출가시키고 염불에 정성과 수고를 다하였다. 하루는 문득 말하기를 “나는 앉은 채 입적하고 싶은데 관을 만드는 것은 어긋난 일이다.”라 하였다. 딸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도 금으로 만든 관을 쓰셨으니 꺼릴 것이 없습니다.”라 하자 기뻐하였다. 갑자기 이채로운 향이 방안에 가득하였고, 서쪽을 향하여 입적하였다.341)
宋項氏。法名妙智。鄞縣人。寡居。悉令
二女爲尼。精勤念佛。一日忽曰。我欲
坐脫。錯與作棺。女曰佛用金棺。無嫌
也。母喜。俄而異香滿室。向西而逝。

 10. 송宋 분양汾陽 배裴씨의 딸은 염불에 전일하게 뜻을 두었다. 업보가 다한 날을 알리고 향불을 사르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시니 마땅히 왕생하리라.” 하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편안히 앉아 입적하였다.342)
宋汾陽裴氏女。專志念佛。報盡日。索火焚香。
言佛來迎我。我當徃生。已而天華飛墜。安坐而逝。

 11. 송宋 심沈씨는 자계慈谿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염불을 하였다. 장章씨에게 시집가서 한마음으로 변하지 않았고, 시주미를 베풀고 이불을 주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후에 병이 있어 염불에 더욱 힘을 쏟았다. 홀연히 불보살들이 모두 눈앞에 나타나고 등불 천 개가 빛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지개 다리 같았다. 바로 그날 상서로움을 보이고 입적하였다.343)
宋沈氏。慈谿人。自幼蔬食念佛。歸章
氏。一心不變。施米貸被。以濟飢凍。後
有疾。念佛尤力。忽見佛菩薩。普現目
前。燈光千㸃。狀若虹橋。即日吉祥而逝。

 12. 송宋 루樓씨는 사부寺簿 주원경周元卿의 아내이다. 항상 『전등록』을 읽어 깨달음의 지견을 높여 갔다. 더욱이 정토업을 진실한 수행이라 여겨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만년에는 병환이 있었는데, 문득 연화대에 응화불이 무수히 많은 것을 보았고, 신이한 향이 방안에 가득하자 가족들에게 어서 염불하라고 말한 뒤에 바로 입적하였다.344)
宋樓氏。適寺簿周元卿。嘗閱傳燈。發
明見地。尤以淨業爲眞修。念佛不輟。
晩年被疾。忽見蓮臺。化佛無數。異香
滿室。語家人亟令念佛。頃刻而化。

 13. 송宋 주周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어머니가 연화대에 왕생하는 상서로움에 감동하여 독실하게 염불에 뜻을 두고 안양에 왕생하기를 기약하였다. 병환 중에 스님을 청해 예참을 행하였는데, 스스로 정갈한 옷(淨衣)345)을 입고 누각에서 예를 갖추어 염불하는 모습을 보이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부지런히 정토업을 닦아 서방에서 만납시다.”라고 하며 오른쪽 옆구리를 서쪽으로 향하여 입적하였다.346)
宋周氏妙聰。元卿之女。因感其母。華
臺徃生之瑞。篤志念佛。期生安養。病
中請僧行懺。自見身着淨衣。在樓閣上。
作禮念佛。謂家人曰。勤修淨業。西方
相待。右脇西向而逝。

 14. 송宋 진秦씨 정견淨堅은 송강松江으로 시집을 갔는데, 여자 된 몸을 싫어하였고 남편과 다른 거처에서 살면서 재계齋戒347)를 엄정하게 지켰으며 『화엄경』 등 여러 경전을 자세히 읽어 허비하는 날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미타참을 닦아 천 배를 올렸는데 오래되자 광명이 방안에 들어오는 상서로움이 있었다. 서쪽을 향하여 편안히 앉아 생을 마쳤다.348)
宋秦氏淨堅。家松江。厭惡女身。與夫
別處。精持齋戒。閱華嚴諸經。無虛日。
晨昏修彌陀懺。禮佛千拜。久之有光明
入室。面西安坐而終。

 15. 송宋 가화嘉禾 땅의 종鍾 노파는 『미타경』을 염송하고 염불하기를 20년 동안 일과로 삼았다. 하루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흰 연꽃이 무수히 많고, 여러 성인들이 이곳에 계시는 게 보인다.”라고 하며 단정히 앉아 몸을 세운 채 입적하였다.349)
宋嘉禾鍾婆。誦彌陀經。念佛二十年。
爲常課。一日語子曰。見白蓮華無數
衆聖在此。端坐聳身而化。

 16. 송宋 전당錢塘의 손孫씨는 항상 염불하고 다라니를 지송하였다. 병이 들어 청조清照율사를 초청해 이르기를 “오랜 병으로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왕생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정토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자 매우 기뻐하였다.
宋錢塘孫氏。常念佛持呪。因病請淸照
「」疑「罌」{編}。 "律師。至謂曰久病厭世。願求徃生。師
爲談淨土因緣。大喜。

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사가 준 약 한 사발을 마시자 땀이 흐르고 마음과 몸이 경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3일 후 대중에게 말하기를 “가섭 존자께서 이곳으로 오셔서 금빛 연꽃 좌대로 반기신다.”라고 하며 눈을 감고 입적하였다.350)
夜夢師授藥一盞服之流汗。身心輕快。三日後語人曰
迦葉尊者來此。好金蓮華座。即瞑目而逝。

17. 송宋 양梁씨 딸은 분양汾陽에 살았는데 두 눈이 모두 멀었다. 한 스님을 만났는데 염불을 권하였다. 3년이 지나 두 눈이 밝아졌고 후에 불보살이 일산을 들고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그날로 세상을 떠났다.351)
宋梁氏。居汾陽。兩目俱盲。遇沙門。勸
令念佛。越三年。雙目開明後。見佛菩
薩幡盖來迎。即日命終。

 18. 송宋 조산潮山의 황黃 노파는 『금강경』과 『법화경』을 지송하고 전일한 마음으로 염불하였다. 그런데 돌연 이질을 앓게 되어 물만 마시고 밥은 먹지 못하였다. 이웃에 있는 절의 선수善修 스님 꿈에 노파가 나타나 “장차 서방에 왕생하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틀이 지나 노파는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며 입적하였는데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노파의 집 위에 붉은 노을이 덮이는 것을 보았다.352)
宋潮山黃婆。持金剛法華。專心念佛。
忽患痢疾。但飮水不食。隣庵僧善修夢
婆謂曰。將徃西方。越二日。婆西向端
坐。念佛而化。遠近皆見紅霞覆婆屋。

 19. 송宋 길안吉安의 왕王씨는 매일 『미타경』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제도받기를 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염습했는데도 유혈이 낭자하여 서원하기를 “제 효심이 부처님을 감응한다면 더러운 기운을 그치게 하소서.”라고 하자 피가 그쳤다. 아버지가 둘째 부인을 들였는데 그와 함께 정토를 닦았다. 임종할 때에 스님을 청해 정토 관법을 설법하도록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吉祥)하였다가 누워서 대자대비 부처님이 쥐고 계신 번幡을 잡고 조용히 입적하였다.353)
宋吉安王氏。日誦彌陀經。念佛求度。
母死旣殮。流血淋瀝。誓云若我孝心感
佛。願穢氣不作。言訖血止。父娶繼室
與之同修淨土。女臨終。請僧說淨土觀
法。更衣吉祥而臥。攬大悲所執幡。寂
然化去。

 20. 송宋 동평東平 양梁씨의 유모인 최崔 노파는 치주淄州 사람이다. 평소에 채식을 하였고 너무 어리석어 동년배들과 길고 짧음도 다투지 못하였다. 양씨의 친어머니인 조晁 부인은 선학禪學에 뜻을 두었는데 최 노인은 아침저녁으로 그 곁에서 아미타불만 염송할 뿐이었다. 잠깐이라도 그침이 없었는데, 염주도 없어서 몇 천만 번을 했는지도 몰랐다. 72세가 되어 병을 얻었으나 침상에 눕지 않았으며 더욱 독실하게 염불을 하였다. 홀연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宋東平梁氏。乳媼崔婆。淄州人。平生
茹素。極愚不能與同軰爭長短。主母晁
夫人。留意禪學。崔朝夕在傍。但誦阿
彌陀佛。不少輟。不持素珠。莫知其幾
千萬徧。年七十二得疾。不下床。然持
念愈篤。忽若無事時。倡偈曰。

西方一路好修行  서방 한 길은 수행하기 좋은 길
上無條嶺下無坑  위로는 험한 고개 없고 아래로는 웅덩이 없어
去時不用着鞋襪  그곳에 갈 때는 신과 버선 신을 필요 없고
脚踏連華步步生  발걸음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리.

노래가 입에서 끊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누구의 말이냐고 묻자 노파는 자신이 지었다고 하였다. 또 노파에게 어느 때에 왕생할 것인가 묻자 신시申時에 갈 것이라고 답하였는데 또 과연 그러하였다. 스님의 예법에 따라 화장하였다. 혀는 타지 않았는데 마치 연꽃과 같았다.354)
咏不絕口人問誰語。曰我所作。曰婆何時行。曰
申時去。果然用僧法焚之。舌獨不化
如蓮華然。

 21. 원元 정鄭씨 정안淨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염불함에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병을 얻었을 때 공중에서 “그대 떠날 날이 정해져 있으니 게으름 부리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금빛 부처님 몸을 보자마자 즉시 떨쳐 일어나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출가한 아들 의수義修를 불러 『미타경』을 읊도록 한 뒤 홀연히 입적하였다. 딸의 꿈에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정토에 왕생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출가한 의수 스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355)
元鄭氏淨安。錢塘人。念佛日無虛度。
得疾聞空中聲曰。汝行有期。無得自怠。
又見佛身金色。卽奮起面西端坐。召其
出家子義修。諷彌陀經。倐然而化。其
女夢母報曰。吾已得生淨土。可聞諸修
師云。

 22. 원元 도陶씨는 상숙常熟 사람이다. 26세에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었다. 정토에 나기를 서원하여 항상 『미타경』과 『관세음경』을 수지하고 외웠다. 홀연히 흰 옷 입은 사람이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먹으라고 주는 꿈을 꾸었다. 깨어난 후 마음과 정신이 자못 평소와 달랐다. 이어서 작은 전각 하나를 꾸며 서쪽을 향하여 경을 읽고 염불하였다. 3년째 되는 날 부처님이 광명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는데, 경을 보관하는 궤 위에 탄알 같은 불덩이가 타올랐다. 도씨는 경이 탈까 걱정되어 급히 손으로 쳐서 결국 사리 하나를 얻었다. 임종할 때 응화불이 와서 맞이하였다.356)
元陶氏。常熟人。年二十六。寡居無子。
願生淨土。恒持念彌陀觀世音經。忽夢
白衣人。挈蓮華一朶。與食之。覺後心
神頗異。嗣裝一小閣。西向誦經念佛
甫三年。見佛現光明。經凾上有火團如
彈子。陶恐燒經。急以手撲。乃得舍利
一顆。臥終時。化佛來迎。

 23. 원元 은현鄞縣 보당시寶幢市의 주周 노파는 정토업을 정성껏 닦았다. 연초가 되면 남과 말하지 않고 밤낮 앉아 있다가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그치곤 하였다. 음력 6월이 되면 차를 달여 베풀기를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큰 연잎이 마을 전체를 덮었는데 자기 몸에 염주를 지니고 연꽃잎 위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의 꿈을 꾸었다. 얼마 후 가벼운 병을 앓았는데 이웃 사람이 당번幢幡과 보개寶葢가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보니 노파는 이미 염불하며 입적한 뒤였다.357"
元鄞縣寶幢市周婆。精修淨土。遇歲首
持不語。晝夜常坐。盡月而止。遇暑月
則施茶湯。歷久不廢。一夕夢大荷葉。徧
覆一市。覺自身持數珠。行道葉上。旣
而微疾。隣人見幢盖入其家。黎明婆已
念佛而逝。"

24. 명明 설薛씨는 무당武塘 세족世族의 딸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샛별(長庚)358)이 몸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후에 주생周生에게 시집가 아들 다섯을 낳고 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수절하면서 몸소 관음보살께 향불을 공양하고 서원하자 향 연기가 연꽃에 서려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정토업에 전일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았고 15년 동안 한결같이 염불을 하였다.
"明薛氏。武塘世族女也。生時母夢長庚
入懷。後歸周生五子而寡。秉節自誓
供觀音。香煙結蓮華。人異之。專心淨
業。好施不倦。念佛十五年如一日。

만력 정해년(1587년) 5월에 병을 얻었는데도 곡기와 약을 물리쳤다. 9월 6일에는 스님을 청해 예참을 행하며 말하기를 “4일이면 내 일을 마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곧 서쪽을 향하여 미타상을 마주하고 밤낮 계념繫念359)하며 여러 아들에게 부탁하여 찬송을 도우라고 하였다. 깨끗한 옷(淨衣)을 입고 지공의 모자(誌公帽)360)를 쓰고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찬불게를 염송하며 삼귀의를 불렀다. 또 염주를 굴리며 백팔 번을 염불하였다. 정오가 되어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는데 연꽃 향이 방안에 가득했다.361)
萬曆丁亥五月得疾。遂絶粒屏藥。至九月
六日。延僧禮懴。且曰四日足吾事畢矣。
乃西向對彌陀像。晝夜繫念。囑諸子翊
賛。着淨衣。戴誌公帽。長跪佛前。念讃
佛偈。唱三歸依。輪珠念佛。一百八徧
逮午趺坐而化。蓮華香滿室中。

 25. 명明 우于 노파는 창평주昌平洲 소촌邵村 사람 우귀于貴의 어머니로, 오랫동안 염불 공덕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빨아 지극히 정결하게 하고서 아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곧 정토에 날 것이다.”라 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기한이 되자 궤几362)를 뜰 가운데 놓고 그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과 하늘음악이 이웃에 다 퍼졌다.363)
明于媼。昌平州邵村于貴之母。久積念
佛。一日浣衣甚潔。謂其子曰。予將生
淨土。子未信。至期取几。置庭心。坐几
上脫去。異香天樂。比隣皆聞。

 26. 명明 방方씨는 제생諸生 오응도吳應道의 아내이다. 삼십에 과부가 되어 수절하였으며, 불교에 귀의하여 정토를 전일하게 닦았다. 어떤 노파 또한 재계齋戒하면서 방 씨와 서로 의지하였다. 그런 지 거의 20년이 흘러 만력 을유년(1585년), 나이 50세에 때 작은 병이 있어 노파를 불러 서로 마주하고 염불을 그치지 않았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른 일도 하지 않았다. 죽기 하루 전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향을 피우며 예불하였다. 둘은 평상에 마주 앉아 함께 세상을 떠났다. 아들 용선用先은 진사에 오른 사람으로 성품이 곧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 일을 적어 명銘에 새기기를 부탁했다고 한다.364)
明方氏。諸生吳應道室。三十寡。守志
歸佛。專修淨土。一老媼。亦齋戒相隨
逐二十年。萬曆乙酉年五十矣。小疾呼
老媼。相對念佛不輟。無一語及他務
卒前一日。沐浴更衣。然香禮佛。還坐
一榻而逝。子用先第進士。質直不妄語
狀其事。乞傳銘云。

 27. 명明 장모張母 도陶씨는 장수長水의 수령인 약約 거사의 둘째 부인이다. 거사가 불법을 받들자 부인도 교화되어 염송을 일과로 하였는데 거르는 일이 없었다. 거사가 보타사普陀寺에 예불하러 나간 사이 부인은 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시심작불 시심시불是心作佛 是心是佛’365)이라는 두 마디 말을 참구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明張母陶氏。爲長水守約繼室。居士奉
佛。氏化之。日課誦無間。
居士出禮普陀。母謂二子曰。
吾平日叅是心作佛 是心是佛二語。今始悟。

초나흘에 나는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어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거사가 돌아와 염을 하였는데 갑자기 관에서 청련화 다섯 송이가 피어 올라 크게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初四日吾行矣及期端坐而逝。
次日居士歸。成殮。俄棺上出靑蓮華五朶。
居士大駭異。

그리고 아내의 도행道行이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를 보거나 듣고서 찬탄하여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366)
自愧不知其道行如此。遠近見聞。無不嘆慕

 28. 명明 중관中官 손명지孫名之의 어머니는 일생을 재계齋戒하고 염불하였다. 나이가 들어 작은 병이 있었는데 스스로 죽을 때를 미리 알아 아들에게 좌탈하겠노라고 말하였다.
明中官孫名之母。一生齋戒念佛。年老
微恙。自知時至。告其子欲坐脫。

아들이 흐느끼며 만류하였으나 막지 못하여 곧 감실을 만들었다. 약정한 날에 감실에 들어가 편안히 앉아 입적하였다.367)
子哀泣。止之不得。乃爲作龕。至期入龕。安
坐化去。

 29. 명明 육모陸母 서徐씨는 청상과부로 정토업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남편이 빌려준 돈 1천 금이 있었으나 차용증을 태우고 받지 않았으며 화장대와 장식한 옥경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언제나 불당에서 예송을 그치지 않았는데 이를 10년 동안이나 하였다.
一夕忽呼侍人曰。看東方光發否。我待徃生時
至矣。汝軰可助我高聲念佛。合掌而逝。

어느 날 저녁에는 홀연 시자를 불러 말하기를 “동쪽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느냐? 내가 기다렸던 왕생할 순간이 왔다. 너희들은 나를 도와 큰 소리로 염불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합장하며 입적하였다.368)
明陸母徐氏。孀居。刻志淨業。未有千
金出貸。焚券不取。奩飾罄以施人。恒
于佛所。禮誦不輟。如是十載。

 30. 명明 유도융劉道隆의 어머니 이李씨는 사십 세로, 오랫동안 재계(長齋)369)하고 염불하며 조용한 방370) 한 칸을 마련해 두고 불보살상에 공양하며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였다.
明劉道隆母李氏。年四十。長齋念佛
修靜室一間。供佛菩薩像。朝夕稱禮。

매번 생일에 며느리에게 잔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 동안 오직 예참371)을 하였는데, 이를 25년 동안이나 하였다. 임종하기 1년 전에 스님을 초대해 7일간 예참을 올렸다. 꿈에 보살(大士)이 염주 한 꾸러미를 잡고 보여 주며 “이를 너에게 주노라. 염주의 수는 곧 왕생의 기약이니라.” 하였다.
每誕日。誡子婦。母設慶席。惟禮懴一
日或三日。如此者二十五年。將終前一
歲。延僧禮懴七晝夜。夢大士持素珠一
串。示之曰。以此授汝。珠數乃徃生期
也。

꿈속에서 세어 보니 53개였으나 그 뜻을 헤아릴 수는 없었다. 경자년 5월 13일이 되자 느닷없이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오늘 떠날 것이다. 온 가족이 큰 소리로 염불하여 나의 서방 왕생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였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372)
夢中數之。五十三顆。不解其義。至
庚子五月十三日。忽告家人曰。吾今日
行矣。可擧家大聲念佛。助我西行。即
面西念佛。端坐而逝。

 31. 명明 진모陳母 주朱씨는 오군吳郡 사람으로 준천濬川 거사의 부인이다. 효성스럽고 자애로운 성품으로 평소에 삼보를 가까이하였다. 81세 되던 해 아들이 운서 대사의 설법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염불왕생을 인도하여 마침내 정토업淨土業에 뜻을 두었다.
明陳母朱氏。吳郡人。濬川居士室也。
孝慈天植。素向三寶。年八十一。其子
叅雲棲歸。導以念佛徃生。遂篤志淨業。

두 해가 지난 후 병을 보였는데, 죽기 사흘 전 집 앞에서 어머니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이 셋이 있었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푸른 옷을 입은 동자373) 두 명이 이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이때 병이 더욱 심해졌는데 갑자기 뛸 듯이 일어나 허리를 세우고 단정히 앉았다.
越二載示疾。卒之前三日。堂前大呼母
名者三。母云有二靑衣在此。時病久孱
困。忽躍起。竪脊端坐。

여러 아들이 누워 쉬도록 권하였는데 곧 가부좌(吉祥)한 채 입적하였다. 중당中堂374)에 시신을 안치하여 반듯이 눕히자 시신이 저절로 굴러 서쪽을 향하였다. 순간 사람들이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375)
諸子勸其寢息。
乃吉祥而逝。迎尸中堂。仰臥之。尸自
轉向西。一時人以爲駭異焉。

 32. 명明 종鍾씨는 인화仁和 장후계張後溪의 둘째 부인이다. 40세에 남편을 잃고 그 뒤로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을 독실하게 믿기를 40여 년이나 하였다. 평시에는 항상 하늘음악이 공중에서 울리는 것을 들었고 밤에는 항상 문 밖에서 크게 나는 부처님 소리를 들었다.
明鍾氏。仁和張後溪之繼室。年四十夫
喪。遂持長齋。篤信念佛者。四十餘載。
居常聞天樂鳴空。又夜常聞戶外佛聲
浩浩。

그러나 문을 열어 보면 아무 자취가 없었다. 이와 같은 신이한 징조가 여러 번 나타났다. 태창 원년(1620년) 12월 16일 병이 들어 다음 해 새해 첫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방 가득히 연꽃이 보이고 또 번개幡蓋376)가 침상 앞에 매달려 있다.”고 말하고는 염불하며 입적하였다.377)
啓視杳無人跡。如是異徵。屢屢
槩見。泰昌元年臈月十六日臥病。次年
元旦。謂家人曰。見徧室蓮華。并有幡
盖。縣于床前。念佛而化。

 33. 명明 예장豫章 사람 양선일楊選一의 부인은 서른 살에 아들을 낳은 후 남편과 별거하였다. 그 후 첩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로부터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하기를 기축년까지 15년간 하였다.
明豫章人楊選一妻。三十生子。後即與
夫別居。聽其置妾。自日長齋念佛。至
己丑十五年矣。

8월에 문득 등에 병이 나서 심한 통증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그때 한 악귀가 칼로 등쪽 살을 자르자 큰 힘을 지닌 신(大力神)이 쫓아버리는 광경을 보았는데, 아픈 것이 씻은 듯 나은 듯했다.
八月忽生發背。痛楚入
骨。見一惡鬼。以刀割其背肉。有大力
神。駈之去。苦若脫。

남편에게 말하기를 “저는 이제 떠납니다. 동자 네 명이 맞이하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남편은 병중의 잠꼬대인 줄 알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에 서방으로 간다고 말하고는 바로 입적하였다.378)
謂夫曰。吾將行矣。
有童子四人相迎。夫疑病中囈語。問何
徃。荅曰徃西方。遂化。

34. 명明 강령江寧의 도인道人 탕湯 공보公甫의 어머니는 81세로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하였다. 매일 일과로 아침저녁으로 만 번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明江寧湯道人公甫母。八十一歲。向來
長齋念佛。每晨夕萬聲爲課。

경인년 새해 첫날 공보가 융오融悟와 관여觀如 두 계사戒師를 초빙하여 경건하게 대미타참大彌陀懺을 닦았다."
庚寅元旦公甫請融悟觀如兩戒師。虔修大彌陀懴。"

"초나흘 오경에 단壇에 나아갔는데 당 도인唐道人이라는 자가 단 밖에서 죽음을 알리는 종을 쳤다. 해 뜰 무렵 백학 수십 마리가 지붕 위를 빙빙 돌았다.
以初四日五鼓進壇。有唐道人者
在壇外打報鍾。平明見白鶴數十。旋繞
屋上。

단 안에 있던 승속의 사람들이 모두 연꽃이 부처님 자리에서 피어나고, 금빛이 안팎으로 허공을 비추며, 산하와 대지가 떨어지거나 막힘없이 확 뚫려 보여 단 아래에서 바야흐로 흩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壇內緇素。悉見蓮華。生佛座下
內外金光覆空。山河大地。了無隔礙。
下壇方散。

이것은 모두 탕 어머니가 정토를 정성껏 닦은 결과 나타난 징표들이다. 그분이 상품上品에 왕생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당의지唐宜之가 본 바를 적어 놓았다가 실을 책을 구하였다.379)
此皆湯母虔修淨土之現證
也。其徃生上品必矣。唐宜之。目擊。載
已求書。

 35. 청清 여요餘姚의 서徐씨는 오산烏山의 호진악胡振嶽에게 시집가 살았다.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었고 40여 세에 남편을 잃었다. 그 뒤로 집안일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규방에 깊이 들어가 지극한 마음으로 미타불을 천 번 소리 내어 예념하기를 20여 년 동안 하였다.
太淸餘姚徐氏。適烏山胡振嶽。擧四子
一女。年四十餘夫喪。遂託委家事。深
居閫內。至心禮念彌陀佛千聲。如是者
二十餘載。

하루는 아무런 병이 없었는데 문득 가족을 불러 말하기를 “금빛 동자(金童) 여럿이서 보개寶蓋를 들고 나를 맞이하는구나. 사흘 뒤에 함께 갈 것이다.”라 하였다.
一日無疾。忽謂家人曰。多
有金童。執寶盖迎接。越三日。

약속한 날 가족들을 불러 작별 인사할 때, 사람은 마땅히 염불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른 자세로 앉아 입적하였다.380)
當與偕行。届期呼家人。囑訣曰。人當念佛。正坐而逝。

 36. 청清 항군杭郡의 태군太君381)인 강江씨는 인공엄訒公嚴 선생의 계비繼妃요 도련都諫 호정공灝亭公 항沆의 생모이다. 태군은 명망 있는 집안 출신으로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정숙했으며 인자하였다.
太淸杭郡太君江氏。訒公嚴先生繼配
都諫灝亭公抗之生母也。太君產於望
族。賦質賢淑。秉性仁慈。

15세에 인공에게 시집가서 웃어른을 효성으로 섬기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기를 무릇 50여 년간 하였다. 처음에 인공이 연지蓮池 대사에게 귀의하여 정토를 독실하게 믿자 청년이었던 태군 또한 가르침을 받들어 경건하게 닦았다.
年十五。適訒公。孝以承先。慈以逮下。凡五十餘年。初訒公歸依蓮池大師。篤信淨土。太君方靑年。亦奉敎虔修。

매일 닭이 울 때 일어나 부처님 앞에 몸을 펴서 무릎을 길게 꿇고(長跪), 경을 염송하며 염불을 소리 내어 천 번씩 하였다. 언제나 저녁 일에 노비를 깨우지 않았고, 어떤 이가 사서 고생하지 말라 하니, “이만한 일로 너희들에게 누를 끼친다면 어찌 불도를 배우는 사람이라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每鷄鳴輙起。長跪佛前。誦經念佛千聲。凡諸夜役。不呼睡婢。或勸無自苦。曰以此累若軰。豈學道人所宜。

강희 무신년(1668) 3월 6일 새벽에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예불을 하고서 아침이 되자 병으로 누웠다. 문득 큰 소리로 “관음보살님이 오신다.” 하고 목욕하여 몸을 정결케 한 후 잠이 든 채 세상을 떠났다.382)
康熙戊申三月六日。晨課一如平時。達且仍寢疾。忽大聲曰。" 觀音菩薩來矣。湯浴淨體。就枕而逝。

 37. 청清 심이생沈易生의 부인 부傅씨는 법명이 덕련德蓮으로 평소 믿음이 돈독하여 계율을 지키고(持齋) 염불을 하였다. 심이생은 소경으로 점을 쳐 얻은 것을 모두 스님에게 공양하였다.
太淸沈易生妻。傅氏。法名德蓮。素敦
信向。持齋念佛。沈以瞽者。賣卜所得。
悉以飯僧。

사방의 떠돌이 스님들(瓢衲)이 소문을 듣고 모두 찾아왔는데 부씨는 귀찮게 여기지 않고 정성스레 공양하기를 16년이나 하였다. 강희 임자년(1672년) 7월에 가벼운 병이 들었다.
四方瓢衲。聞風沓至。傅氏
不憚勞苦。而虔供者。十有六載。康熙
壬子七月小疾。

윤7월 초하룻날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옷을 갈아입고 친척들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어떤 금동金童이 나를 맞이하러 온다.”고 하였다. 부축하여 몇 발짝 가다가 다시 앉아 합장하고 염불하며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첨산瞻山의 법경法慶 화상이 그를 위해 게를 지었다.
至閏七月初一。索浴更
衣。謂親屬曰。此有金童。來相接引。扶
行數步。復坐合掌念佛。瞑目而逝。瞻
山法慶和尙。爲說偈曰。

老婆弘願自剛强  노파의 큰 서원 굳고 굳세어
典座行堂一力當  전좌典座383)와 항당行堂384) 일 혼자 해냈네.
大道本無男女相  깨달음(大道)은 본래 남녀 차별상 없고
眞心不落斷常坑  진심은 단견斷見 상견常見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는다네.
生前夙植華開日  생전에 일찍 심은 연꽃 피는 날
展臂高超徃上方  팔 벌려 저 높이 상품에 오르리니
豈讓靈昭能撒手  어찌 영소靈昭385)를 양보하고 손 놓을(撒手)386) 수 있으리오.
蓮生火內更馨香  연꽃이 불꽃 속에서 피어 향기까지 풍기네.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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