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여래행적송 하권釋迦如來行蹟頌 下卷 3


[138]
此法行彼土      이 불법佛法이 저 인도 땅에서 행해진 지
一千餘許載      1천여 년 지난 뒤
東流至震旦      동쪽으로 흘러 중국(震旦)에 이르니
後漢明帝時      후한 명제 시절이라.

[139]
賫來者是誰      가지고 온 자는 누구인가?
摩藤竺法蘭      가섭마등1)과 축법란2)이니
君臣及士庶      군신과 사대부와 서민들
皆信受奉行      모두 믿고 받아들여 봉행하였네.

[140]
因建白馬寺      백마사를 세우고
安舍利經像      사리와 경전과 불상을 봉안하니
此土諸塔寺      중국 땅의 모든 탑과 절은
由玆始興起      이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네.

『파사론破邪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한 명제 영평 3년 경신년 왕이 금인金人의 꿈을 꾸었는데, 키가 1장 6척이나 되었고, 목에는 일광日光을 둘렀으며, 궁전 앞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고 기쁘게 맞이하는 꿈이었다. 이튿날 아침 왕이 여러 신하에게 두루 물었다.
“이것은 무슨 신인가?”
통사사인通事舍人3) 부의傅毅4)가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로, 천축에 득도한 분이 계셨는데 이름을 부처라 하옵니다. 아마도 그 신이 분명합니다.”
국자박사國子博士5) 왕준王遵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서이기周書異記』에 이르기를, 소왕昭王 때 성인이 서쪽에 태어났다 하였고, 태사太史 소유蘇由는 천년 뒤 그 가르침이 이 땅에 미치리라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꿈꾸신 것은 분명 이것일 것입니다.”
황제는 진실로 그렇다고 믿고, 곧 중랑中郞 채음蔡愔과 박사博士 왕준王遵 등 18인을 파견하여 서역에 함께 가서 불법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월지국에 가서 가섭마등과 축법란 등 두 서역 스님을 만나 그들이 지니고 있던 흰 모포(白氎)에 그린 석가여래상과 사리와 아울러 『사십이장경』6)을 백마에 싣고서 낙양에 돌아오니, 그것이 바로 영평 10년이었다. 황제는 매우 기뻐하며 『사십이장경』을 번역하게 하였으며, 정사精舍를 세워 백마사白馬寺라 하고, 그들을 머물게 하였다. 이 땅에 삼보三寶라는 이름이 있게 된 것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141]
是時於此方      이때 이곳 중국에는
道法廣興布      도교의 법이 널리 퍼져 있어
五岳諸道士      오악五嶽의 도사들
六百九十人      690명이

[142]
僉議上䟽云      모두 의논하여 이렇게 상소하였네.
莫信胡神說      “오랑캐 신의 말을 믿지 마소서.
聖上若信此      성상께서 이를 믿으신다면
華俗盡歸邪      중화의 풍속이 모두 삿되어지리다.

[143]
彼我法眞僞      저들 법과 우리 법의 참과 거짓을
願須火試之      원컨대 반드시 불로 시험하소서.”
帝即頷其言      황제가 곧 그 말을 받아들여
命集白馬寺      백마사에 모이도록 명하였다.

[144]
爾時道士衆      그때 도사의 무리들이
各賫道經來      제각기 도교의 경전을 가져와
分置於兩壇      양쪽 단에 나누어 안치하니
威儀甚嚴潔      위의威儀가 매우 엄숙하였다.

[145]
舍利與經像      사리와 경전과 불상은
別安於道西      따로 도교 경전의 서쪽 단에 안치하고서
道衆爇名香      도사의 무리는 명향名香을 사르고
遶壇而泣曰      단 주위를 돌면서 울며 말하였다.

[146]
我道之興替      “우리 도교의 흥망성쇠가
但在於今日      오로지 오늘에 달려 있사옵니다.”
向天陳願志      하늘 향해 원하는 바를 말하고서
便縱火焚之      곧바로 불을 놓아 경전들을 불태웠네.

[147]
道經盡爲灰      도경道經은 모두 재가 되었으나
梵經完不燒      범경梵經은 완전히 타지 않았고
舍利直上空      사리는 곧장 허공에 솟아
放五色光明      오색 광명을 내뿜더라.

[148]
映蔽白日光      그 빛이 햇빛을 가려 버리고
旋環如盖覆      보개寶蓋처럼 선회하며 덮으니
摩藤涌在空      가섭마등이 허공에 솟아올라
廣現諸神變      갖가지 신통변화 널리 나투더라.

[149]
出大梵音聲      큰 범음梵音 소리를 내서
歎佛功德海      바다 같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又說出家德      또 출가한 공덕에 대해 말하기를
諸善中第一      “모든 선행 중에 제일”이라 하네.

[150]
帝聞大忻悅      황제가 듣고 매우 기뻐하고
群疑亦皆息      여러 가지 의혹도 모두 멈추니
爾時諸大臣      그때 모든 대신과
尊卑士女等      높고 낮은 사대부와 부인들

[151]
一千三百人      1천3백 인이
一時俱出家      일시에 모두 출가하였고
彼諸道士衆      저들 도사의 무리들도
示順伏出家      순순히 승복하고 출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네.

영평 14년 신미년 정월 초하루 오악五岳 모든 산의 도사들이 황제께 세배 드리는 모임(朝正)을 하던 차에 그들이 말하기를, “천자께서 우리 도교의 법을 버리고 멀리 오랑캐의 가르침을 구하시니, 지금 조정에 모인 것을 기회로 그것을 항의해 볼 만하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表를 올렸다.
“오악 18산의 도교 사원에 있는 태산삼동太山三洞의 제자 저선신褚善信 등은 죽을죄를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신들이 듣기로, 태상太上은 형상도 이름도 없으며, 끝도 없고 위도 없으며 텅 빈 그대로이어서 대도大道는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나왔으므로 상고시대부터 한결같이 받들었고, 모든 왕들도 바꾼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도는 복희씨와 황제씨를 넘어서고, 덕은 요임금과 순임금을 능가하거늘,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아 서역의 가르침을 구하시니, 섬기는 것은 오랑캐의 신이요, 말하는 것도 중국에 맞지 않사옵니다. 원컨대 신 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과 함께 시험해 볼 것을 허락하소서. 신 등 모든 산의 도사들은 꿰뚫어 보고 멀리 듣는 이가 많이 있으며, 경전에 통달하여 옥황상제(元皇)7) 이래로 태상군록太上群錄과 태허부주太虛符呪를 단련하지 않은 이가 없사옵니다. 그 궁극의 경지에 통달하면, 혹은 귀신을 다그쳐 부리며, 혹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혹은 물 위를 걸어도 빠지지 않으며, 혹은 한낮에 하늘에 오르며, 혹은 몸을 숨겨 헤아릴 수 없으며, 방술方術8)이나 약이藥餌9)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원컨대 그들과 겨룰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첫째 성상의 뜻이 편안할 것이며, 둘째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며, 셋째 대도大道로 돌아감이 있을 것이며, 넷째 중국의 풍속을 어지럽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신 등이 만약 진다면 뜻대로 엄한 꾸짖음을 내려 주시고, 만약 이긴다면 허망한 저들을 없애 주시길 비나이다.”
황제가 칙서를 내려 상서령 송상宋庠을 장락궁長樂宮10)으로 불러 그달 15일을 기하여 백마사에 모이도록 하였다. 도사들은 세 개의 단을 차리고 24문을 열었다. 남악 도사 저선신褚善信, 화악의 유정념劉正念, 북악의 환문도桓文度, 동악의 초득심焦得心, 중악의 여혜통呂慧通과 곽산·천목산·오대산·백록산 등 18산의 도사 기문신祁文信 등 도합 690명이 제각기 『영보진문靈寶眞文』과 『태상옥결太上玉訣』과 『삼원부록三元符籙』 등 509권을 가지고 와서 서쪽 단에 두었다. 모성자茅成子·허성자許成子·노자老子 등 27인의 책 315권은 중앙단에 두고, 모든 신께 공양할 음식은 동쪽 단에 차리고, 부처님 사리와 경전과 불상은 도교의 서쪽에 두었다.
도사들은 침향沉香으로 횃불을 삼아 경 주위를 돌면서 울며 말하였다.
“신들은 아뢰옵니다. 태극이시며 대도이시며 근원이신 천존天尊과 모든 신선과 신령들이시여! 지금 오랑캐의 신이 중국을 어지럽히니, 임금이 삿된 것을 믿어 바른 가르침이 자취를 감추고 현풍玄風의 실마리가 떨어지려 합니다. 신들이 감히 단 위에 경전을 놓고 불을 놓아 시험함으로써 군중의 마음에 열어 보이게 하여 진위를 가려낼 수 있게 하고자 하옵니다.”
그리하여 불을 놓아 경전을 불사르니, 도교의 경전은 불길을 따라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불경은 엄연히 남아 있었고, 사리는 공중으로 솟아올라 오색 광명을 내뿜으며 보개寶蓋처럼 선회하며 대중들을 두루 덮었고, 마등 법사도 공중으로 솟아올라 신통변화를 널리 나투었다.
그때 하늘에서는 보배 꽃이 내리고 하늘 음악이 들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대중들이 모두 기뻐하며 모두 축법란 법사의 주위를 돌면서 법의 요체를 설해 주기를 청하였다. 법사는 우렁차게 범음梵音을 내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대중들이 삼보를 칭송하게 하고, 모든 법의 요체를 설한 뒤에 다만 출가하는 복덕이 가장 으뜸이며, 처음 절을 짓는 것은 범천의 복덕과 같다고 설하였다.
이때 사공 양성후 유준劉峻이 궁인·선비·백성 등 1천여 명과 함께 출가하였고, 오악의 도사 여혜통 등 628명이 출가하였고, 궁전의 비빈과 궁녀 등 230명이 출가하였다. 도사 저선신은 기가 막혀 죽어 버렸고, 그중 승복하지 않고 혀를 깨물어 자살한 이가 50여 명이었다. 이에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열 곳에 절을 세웠는데, 일곱 곳은 성 밖에 지어 비구를 살게 하였고, 세 곳은 성안에 지어 비구니를 살게 하였다.

[152]
自漢至於唐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貝牒多出來      패엽이 많이 전해져서
譯之成部裘      번역하여 두루마리 책을 만드니
六千有餘軸      6천여 축軸이나 되더라.

서진西晋 때 번역한 경이 260부, 세운 절이 180곳, 승려가 3천7백 명이었다. 동진東晋 때 번역한 경이 260부, 세운 절이 1,768곳, 승려가 2만 4천 명이었다. 송宋 때 번역한 경이 110부, 세운 절이 1,913곳, 승려가 3만 6천 명이었다. 제齊 때 번역한 경이 72부, 세운 절이 2,010곳, 승려가 3만 2천5백 명이었다. 양梁 때 번역한 경이 230부, 세운 절이 2,846곳, 승려가 8만 2천7백여 명이었다. 후량後粱 때 세운 절이 180곳, 승려가 3천2백 명이었다. 진陳 때 번역한 경이 11부, 세운 절이 1,232곳, 승려가 3만 2천 명이었다. 북위北魏 때 번역한 경이 49부, 세운 절이 3만 850곳, 승려가 2백만 명이었다. 북제北齊 때 번역한 경이 14부, 세운 절이 43곳, 승려는 그 수가 전하지 않는다. 주周 때 번역한 경이 16부, 세운 절이 931곳이었다. 수隋 때 번역한 경이 82부, 세운 절이 3,985곳, 승려가 23만 6천2백 명이었다.
한漢 영평永平부터 진晋 영가永嘉까지11) 42곳의 절이 있었을 뿐이고, 후위後魏가 낙양에 도읍한 뒤 절을 1천여 곳 지었으며, 후조後趙가 업鄴에 도읍을 정하고, 절을 8백여 구區에 지었으니, 이들 16국에서 경을 번역하고 절을 세운 일과 승려 수에 대한 것이 없지 않지만, 과장된 거짓이라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唐과 오대五代부터 대송大宋과 금金까지는 기록이 빠져 있다. 그러나 불교가 융성하기로는 당·송·금 3조朝만 한 것이 없으니, 비록 기록이 없더라도 위의 예에 견주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장음의大藏音義』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12)는 『전법륜경』을 시작으로 하여 『대열반경』을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까지를 말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총 1백억 부部이며, 부마다 권卷과 질秩이 몇 배나 되어 헤아리기 어렵다. 금관金棺이 빛을 거둔 지 1천 년 뒤, 마침내 나한보살(羅漢闓士)13)과 삼장 비구(三藏除饉)14)가 함께 세상에서 대립하여 두 문도의 무리들이 서로 비방하며 헐뜯고 서로 상대방 스승을 죽이니, 이로부터 그 후 사마와 외도가 번성하여 바른 가르침을 침해하였다. 이에 사갈라 대용왕이 부처님께서 남기신 부촉付囑을 찾아 경과 율을 가지고서 용궁으로 들어가 봉안하니, 이것이 해장海藏이다. 그 뒤 마등과 축법란 등 여러 대덕이 제각기 서쪽 인도에서 용장龍藏에 넣고 남은 것을 가지고 동쪽 진단으로 와서 번역하여 역대에 널리 전한 것이 겨우 4천4백여 권이며, 잡록과 전기가 도합 639함函이다. 아! 이것은 해와 같은 부처님의 남은 빛이요, 바다 같은 깨달음의 한 방울 물일 뿐이다. 마치 가느다란 먼지 하나로 대지를 알고, 한 포기 풀로 수미산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석씨회요釋氏會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명제 정묘년(67)에서 당 개원 경오년(735)까지 세상에 유포된 대승 삼장은 총 686부 도합 2,762권이며, 소승 삼장은 총 330부 도합 1,762권이다. 이상을 모두 헤아리면 4,507권이 된다.”

[153]
歷代諸帝王      역대 모든 제왕과
及與臣僚衆      신료의 무리가
同心大弘闡      한마음으로 크게 드날리니
國泰亦身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도 편안하더라.

[154]
其有毁謗者      헐뜯고 비방하는 자 있으면
現世便招殃      현세에 바로 재앙을 부르고
後苦亦應大      후세에 받을 고통 역시 크리니
悔之何所及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아!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역대 여러 나라 왕王과 공公과 대신大臣들이 경을 번역하고 절을 지어 성인의 교화를 빛내고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함이 이와 같구나. 부처님의 가르침과 분부하심을 받은 홍법의 보살(弘法大士)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헐뜯고 훼방하여 재앙을 받은 이가 있었던 것은 슬픈 일이로다. 어찌 작은 미혹을 그치지 못하고서 오랜 겁 동안 큰 괴로움에 걸려드는가. 이러한 사례는 전기에 많이 실려 있는데, 다 기록할 겨를이 없기에 여기서는 간략히 인용하여 한두 가지만 보이겠다.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15)는 처음에는 불교를 공경하여 매번 고승을 모셔 함께 법담을 나누고 불상을 많이 세우고 갖가지로 공양하였다. 사도司徒16) 최호崔浩17)라는 자가 있었는데, 불교를 믿지 않아 황제와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비방하였다. 황제는 그 말솜씨가 해박하므로 자못 그의 말을 믿고, 불교에 대한 마음이 차츰 엷어지게 되었다.
황제가 훗날 서쪽을 정벌하다가 장안에 이르러 절에 들어가 둘러보았는데, 사문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방에 들어가 보니 재물과 무기 그리고 관리나 부자들이 맡겨 놓은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
황제는 이에 화가 나서 곧바로 조서를 내려 “장안의 사문들을 죽이고 불상을 불태워 없애라.” 하고, 사방에 영을 내려 “장안에서 행한 대로 하되, 만일 사문을 숨겨 주는 이 있다면 그 가문 모두를 베어라.” 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옛날 한나라 이후로 믿음이 황폐해지고 삿되고 거짓된 것에 미혹되어 하늘의 도리(天常)를 어지럽히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바른 교법이 시행되지 않고, 예의가 크게 무너져 귀신의 도가 치성하고 왕의 법이 멸시됨을 보게 되었다. 이로부터 대를 이어 환란이 일어나고 천벌이 극에 달해 백성이 거의 다 죽고, 영토(五服18) ) 안이 차츰 빈터로 변하고, 천 리가 황량해져 사람의 자취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모두가 이 때문이로다.
짐이 천자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나 때마침 궁색한 운수를 만났으니, 거짓을 없애고 참됨을 결정하여 다시 복희와 신농의 정치(羲農之政)를 회복하고, 오랑캐 신을 쫓아내어 그 자취를 없애고자 한다. 오늘 이후로 오랑캐 신을 섬기는 자와 그 형상을 진흙이나 청동으로 만드는 자 있거든 그 가문까지 모두 목을 베리라.
모두 한대漢代의 유원진劉元眞과 여백강呂伯强의 무리가 걸식하는 오랑캐의 과장된 말을 받아들이고, 장자와 노자의 허황되고 거짓된 것을 가지고 덧붙이고 보태니, 모두 진실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왕의 법으로 폐지시켜 행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이르렀도다. 세상에는 비상한 사람이 있어 비상한 일을 행하는 것인데, 짐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듯 여러 대를 거쳐 온 거짓된 것들을 없앨 수 있겠는가. 모든 불상과 오랑캐의 경전은 모두 쳐부수거나 불태우고, 사문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묻어 버려라.”
이때가 진군眞君 7년 3월이었는데, 13년 2월에 이르러 황제는 문둥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북주北周의 무제武帝19)가 불교를 훼손하려 할 때 정애靜藹라는 사문이 있었는데, 나이와 덕이 높아 도속道俗의 귀의를 받고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이미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어찌 이렇듯 몰락하는 것을 보고서도, 이 몸뚱이 그대로 앉아서 태연히 스스로 고요함을 누리겠는가?” 말하며, 곧 표表를 올려 항의하였다. 황제는 비록 그 말을 납득하였지만, 마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므로 허락하지 않았다.
정애는 마침내 남산으로 들어가 돌 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願捨此身已      원컨대 이 몸을 버린 뒤에
速令身自在      속히 몸이 자유롭게 되어
隨有利益處      이익됨이 있는 곳마다
護法救衆生【云云】     법을 지키며 중생을 구제하게 하소서. …….

스스로 자신의 살을 베어 돌 위에 늘어놓고 창자를 꺼내 나무에 건 뒤 심장을 움켜쥔 채 죽고 말았다.
의주宜州의 사문 도적道積이라는 자는 뒤이어 나아가 간언하였으나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동지 7인과 함께 미륵상 앞에 나아가 먹지 않고 예참하기를 7일간 마치더니, 일시에 다 함께 죽고 말았다.

제齊 승광承光 1년 춘분에 황제가 사문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짐은 천명을 받들어 온 천하(一區宇)를 편안하게 하였다. 세상에 삼교三敎가 널리 퍼져 있어 이제 다 함께 폐지하려 한다. 그러나 유교는 정치하는 방법과 예의와 충효를 글로써 널리 펴므로 세상에 이익이 있으니,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어 멀리서 공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면 되는데, 불교 경전에서는 부도와 탑을 세우는 것을 널리 찬탄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게 고치거나 새로 지으면 지극히 많은 복덕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들은 실로 무정물이거늘, 어떻게 은혜를 베풀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무조건 믿어서 진귀한 재물을 바쳐 헛되이 낭비하므로 없애 버려야 마땅할 것이다. 무릇 경전과 불상은 모두 없애 버려라. 부모의 은혜가 막중한데 사문들은 공경하지 않고 도리에 어긋남이 매우 심하다. 아울러 집으로 돌려보내 효도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숭상하게 하라. 짐의 뜻이 이와 같은데 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
이때 사문 상통上統 등 5백여 명이 서로 돌아보며 낯빛을 잃고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는데, 혜원慧遠20) 법사가 마침내 나서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하신 것은 진실로 천자의 뜻과 같습니다. 다만 귀와 눈에 의존하는 중생들은 경에 의지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불상에 의지하여 참된 모습을 나타냅니다. 지금 그것을 폐하신다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킬 방법이 없사옵니다.”
황제가 대답하였다.
“허공이 참된 부처라는 것을 모두 스스로 알고 있으니, 경이나 불상을 빌릴 필요가 없느니라.”
혜원이 말하였다.
“한 명제 이전 경전과 불상이 이 땅에 오기 전에는 중생들이 어찌하여 허공이 참된 부처임을 알지 못했습니까. 만일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법을 알 수 있다면, 삼황三皇21) 이전 아직 문자가 있지 않았을 때에도 사람들은 오상五常22) 등의 법을 알고 있었을 터인데, 당시 사람들은 어찌 어미만 알고 아비는 모르는 새나 짐승과 같았습니까?”
황제가 대답을 못하자 혜원이 다시 말하였다.
“만일 형상이 없는 무정물이어서 복을 주는 일이 없다고 하신다면, 국가의 칠묘七廟에 모신 형상은 어찌 유정물이기에 허망하게 형상을 섬기시는 것입니까?”
황제는 이 비난에 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불교의 경전은 외국의 가르침이라 이 땅에는 필요하지 않으니 없애려는 것일 뿐이다. 칠묘는 윗대에서 세운 것이지만, 짐 또한 옳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장차 함께 없애려 한다.”
혜원이 말하였다.
“만일 외국의 가르침이어서 이 땅에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자(仲尼)의 말씀은 노魯나라에서 나왔으니, 진秦이나 진晋의 땅에서는 또한 행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칠묘가 그르다 하여 장차 없애고자 한다면, 이는 조상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상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소목昭穆23)의 질서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곧 오경五經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전에 유교는 남겨 두겠다는 그 말씀은 어디로 갔습니까? 만일 삼교三敎를 함께 없애신다면 장차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려 하십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노魯나 진秦이나 진晋은 봉토가 다르지만 왕이 동일하게 교화하지 않음이 없으니, 불경에 대한 비난과는 유사하지 않다.”
혜원이 말하였다.
“진秦이나 진晋이 동일한 왕의 교화를 함께 받든다 하여 경전과 가르침이 통용될 수 있다면, 진단과 천축은 국경이 비록 다르지만 모두 염부제 사해四海 안에 있으면서 전륜왕의 동일한 교화를 받지 않음이 없거늘, 어찌하여 불경은 동일하게 받들지 않고 유독 없애시려 하십니까?”
황제가 또 대답을 못하자 혜원이 말하였다.
“승가에서 물러나 속가에 돌아가 효도하고 봉양함을 숭상해야 한다고 하신 것은, 공자의 경전에도 ‘출세하고 도를 행하여 부모의 명예를 드날려야 곧 이것이 효도이다’ 하였거늘, 어찌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부모의 은혜는 막중하여 물자를 바치며 부드러운 안색으로 봉양해야 하거늘, 가까이해야 할 것을 버리고 멀리해야 할 것을 향하니, 지극한 효도가 되지 못한다.”
혜원이 말하였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뜻과 같다면, 폐하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도 모두 양친이 있거늘 어찌하여 놓아주지 않고 5년씩이나 오래도록 사역을 시키며 부모를 만나지 못하게 하십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짐도 상하의 순번대로 돌아가 봉양케 하느니라.”


혜원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승려들에게 겨울이나 여름에는 인연 따라 도를 닦다가 봄이나 가을에는 집으로 돌아가 봉양케 하셨습니다.

목건련은 걸식하여 어머니를 봉양24)하였고, 여래께서는 관을 메고 장례에 임하셨으니,25) 이러한 이치는 모두에 통하는 것으로 유독 불교만을 없앨 수 없사옵니다.”


황제가 대답을 못하자, 혜원은 항의하며 소리 높여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지금 세력을 믿고 마음대로 삼보를 파괴하시니, 이는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입니다.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황제가 발끈하여 낯빛을 바꾸고 혜원을 쏘아보며 말하였다.
“백성들을 안락하게 할 수만 있다면, 짐은 지옥의 고통도 사양하지 않겠다.”
혜원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삿된 법으로 사람들을 교화하여 현세에 고통의 업을 심게 한다면, 장차 폐하와 함께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니 무슨 안락이 있겠습니까?”


황제는 또한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승려들은 우선 돌아가라 하였다.
이때 모든 사원(寺廟)을 헐어 왕공王公에게 주어 저택을 삼게 하고, 승려 3백만 명을 환속시켜 모두 군역을 지닌 백성으로 복귀시키고 호적에 편입하도록 돌려보냈다. 불상은 녹이고 잘라내고, 경전은 불사르고 삼보의 재물은 기록하여 궁전에 들여보냈다. 황제는 한 달이 차기 전에 염병의 기운이 속에서 끓어 운양궁雲陽宮에 은거하다가 곧 사망하였다.

당唐 『명보기冥報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원황제天元皇帝26)가 즉위하여 천하의 환속한 승려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깎되 수염은 남겨라’ 영을 내리고, ‘전에 왕공에게 주었던 사찰들은 모두 환수하여 절을 만들어 사문들에게 주어 머물게 하라’, ‘궁으로 들어온 삼보의 재물은 불상을 조성하여 각각 안치하되, 하나같이 모두 예전처럼 하라’ 명하였다. 이로 인하여 큰 가르침이 다시 세상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당唐 『명보기』에서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隋 개황開皇 8년 경조京兆27) 두기杜祈가 죽은 지 3일 만에 살아나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염라대왕을 보았는데, 염라대왕이 ‘그대의 아버지는 어떤 관직을 지냈는가?’ 하기에, ‘신의 아비는 주나라 조정의 사명상사司命上士를 지냈습니다’라고 하였다. 염라대왕이 ‘그렇다면 너를 잘못 데려왔으니 속히 돌려보내리라’ 하였다. 그리고는 ‘그대는 주나라 무제를 아는가?’라고 물었다. ‘매우 잘 압니다’ 하였더니, 염라대왕이 ‘가서 그를 보아라’라고 하였다. 어떤 관리가 한 곳으로 인도하니, 문과 창과 서까래와 기와가 모두 무쇠로 되어 있었고, 철창 안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야위어 몸은 무쇠 빛이며 무쇠 칼을 쓰고 있었다.
두기가 보고는 울면서 ‘어르신께서는 어찌 이 같은 고통을 당하십니까’하니, ‘나는 위원숭衛元崇28)의 말을 믿고 불교를 훼손하여 이 같은 고통을 받고 있소’ 하였다. 두기가 ‘어르신께서는 어찌하여 위원숭의 일을 진술하여 잡아오게 하지 않으십니까’ 말하니, ‘나도 곧 진술하였으나, 저승사자가 찾아 삼계를 다 뒤져도 볼 수 없다고 하네. 만일 그가 아침에 온다면 나는 저녁에 풀려날 수 있을 텐데’라고 하였다.
곧이어 ‘대수大隋의 천자29)는 옛날에 나와 무관(倉庫)의 밥을 함께 먹었고, 문관(玉帛)일 때에도 내가 부관이었으니, 그대가 지금 돌아가거든 이 사실을 천자에게 들려주어 나를 위해 큰 공덕을 지어 구제해 달라 청하게. 또한 위원숭에게는 복을 짓도록 속히 와서 구제해 달라 하게. 그가 오지 않으면 벗어날 기약이 없다네’라고 하였다. 두기가 환생하여 모든 것을 아뢰자, 문제文帝가 듣고는 천하 사람들에게 영을 내려 한 푼씩 내어 그의 명복을 비는 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당唐 무종武宗30)의 이름은 염炎이다. 회창會昌 5년(845) 조귀진趙歸眞과 유원정劉元正 등의 말을 따라 막대한 훼불을 단행하였다. 천하에 있는 사원을 없애라는 영을 내렸다.
“상주上州에 각각 한 곳만 남기고, 상도上都·하도下都 거리마다 절을 두 곳씩 남기고, 각각 승려 30명만 남겨라. 천하에 폐지된 사원의 구리로 된 불상은 염철사鹽鐵使31)에게 맡겨 돈을 주조하게 하고, 철로 된 불상은 주조하여 농기구를 만들고, 금이나 은으로 된 불상은 녹여서 탁지부度支部32)에 맡기도록 하여라. 귀족이나 서민들이 가지고 있는 금이나 은으로 된 불상은 영을 내린 뒤 한 달을 기한으로 한다. 만일 어기는 자가 있으면 금고법禁錮法에 따라 처분하리라.”
그때 천하에서 훼손된 큰 사찰이 4천6백여 곳이며, 아란야가 4만여 곳, 퇴속한 승니가 속인이 된 사람이 26만 5백여 명이었다. 회창 6년 3월에 이르러 황제는 어떤 병을 얻어 기뻐하다 성내다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병이 더욱 심해지자 10여 일 동안 말문이 막혀 대신들이 뵙기를 청하여도 허락하지 않으니, 나라 안팎에서 그의 안부를 알 수 없었다. 그 달 23일에 죽으니, 그해 나이 33세이었다.
선종宣宗은 즉위하여 연호를 대중大中이라 고치고, “훼손된 사원에 덕 있는 대덕이나 이름난 승려가 있거든 다시 복구하고 수리하여 머물게 하라.” 영을 내리고, 마침내 도사 유현정 등 열두 명의 목을 베니, 이로 인해 삿된 바람이 홀연히 멈추고 부처님(佛日)이 다시 빛을 내어 어리석은 백성들의 의지할 바가 되었고, 황제의 덕이 더욱 높아졌다.

후주後周의 세종世宗33) 영榮은 현덕顯德 2년 을묘년(955)에 명령을 내려, “천하의 사원 가운데 사액賜額을 받지 않은 곳은 모두 헐어 버려라.” 하니, 모두 3만 336곳의 사원에서 불상을 헐어 돈을 주조하고, 비구 4만 2440명, 비구니 8,756명을 환속시켰다. 황제는 오래지 않아 범상치 않게 세상을 떠났다.
북위의 태무제·당의 무종·후주의 세종은 불교를 없애 버리고 나서 곧 범상치 않은 병을 얻어 천수를 기다리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행적이 전기에 나타나 있지만, 후세에 벌을 받았다는 글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나라 무제의 예를 보면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오역죄를 지으면, 목숨을 마칠 때 마치 창이 손을 떠나가듯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천만억 겁 동안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무엇이 오역죄인가? 첫째는 부처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정법을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요, 셋째는 탑과 절을 파괴하는 것이요, 넷째는 아사리阿闍梨를 죽이는 것이요, 다섯째는 화합 승단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단 하나라도 범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 말을 믿는다면, 저 어리석은 왕들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악한 마음으로 절과 탑을 파괴하고 불상을 녹이고 잘라내며 경전을 불사르고 사문들을 파묻고 승니를 퇴속시켜 속인이 되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오역죄를 모두 짓고도 목숨이 다한 후 아비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이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슬프고 슬픈 일이로다.

그리고 신하와 관료들도 불법을 훼손하고 비방하여 현세에 재앙을 부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천태지관론보주』34)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용하여 말한다.
“북주北周의 재상 위원숭은 불교를 없애려고 천화天和 2년에 표表를 올려 말하기를, ‘당唐과 우虞의 시절35)에는 불교가 없었어도 나라가 편안하였고, 제齊와 양梁 때에는 절이 있었어도 왕조가 끊겼습니다. 다만 나라와 백성에 이익이 된다면, 그대로 불심佛心이라 할 만합니다. 부처란 대자비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결코 백성들을 고생스럽게 부역하여 흙이나 나무토막에 공경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컨대 평영대사平迎大寺를 지어 사해의 만백성을 수용할지언정 잘못된 소견으로 가람을 세우고, 이승의 5부 경전(二乘五典)36)만 봉안하는 일을 권장하지 마옵소서. 평영대사란 도속道俗을 묻지 않고 원친寃親을 가리지 않으며, 성황城隍으로 탑사를 삼으니, 주나라 황제가 곧 여래인 것입니다. 성곽과 도읍으로 승방을 삼고, 평범한 부부로 성중聖衆을 삼고, 덕 있는 자를 추대하여 삼강三綱37)을 삼고, 나이 많은 이를 상좌上座로 모시고, 어질고 지혜로운 이를 찾아 집사執事를 충당하고, 용기와 지략 있는 자를 구하여 법사法師를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육합六合에 원망하는 소리가 없고 팔방八方에 북주北周를 영탄하는 노래가 있을 것이며, 날벌레 길짐승까지도 보금자리에서 편안할 것이며, 물짐승 땅 짐승까지 장생을 누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이 모두 15가지 일을 상소하였는데, 이후에 몸에 악창이 생겨 마침내 사망하였다.”
『명보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혁傅奕38)이 무덕武德 초기부터 정관貞觀 14년까지 항상 부처님과 승가를 헐뜯고 배척하더니, 그해 가을 갑자기 죽어 월주越州의 지옥에 들어갔고, 사도 최호崔浩는 북위北魏 무제武帝를 도와 불교를 훼손하고 없애다가 마침내 오형五刑의 죄를 다하니, 죽어서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졌다.”39)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동진東晋 태원太元 19년 도안道安40) 법사가 양양襄陽 서도西都에서 1장 8척이나 되는 무량수불상 한 구軀를 조성하였는데, 자못 영험한 일이 있었다. 주 무제가 불법을 없애려 할 때, 양주의 진장鎭將 손철孫哲이 뜻으로 불법을 믿지 않아 먼저 이 금 불상을 훼손하려고 하니, 도읍 안 남녀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거리에 넘쳐났다. 손철은 슬퍼하는 도속을 보자 화가 더욱 치밀어 시종들을 다그쳐 속히 부숴 버리게 하였다. 먼저 1백 명에게 밧줄로 불상의 머리를 묶어 잡아당기게 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며, 감독하는 이를 곤장을 쳤다. 다시 1백 명을 더하여 끌게 하였으나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3백 명을 더하였으나 움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5백 명을 더하여 끌어당기니 마침내 넘어졌다. 그 소리가 땅에 진동하여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유독 손철만이 뛸 듯이 기뻐하며 곧 녹여 없애라고 명하고, ‘통쾌하다’소리 높여 외쳤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겨우 1백 걸음을 가자마자 홀연히 말에서 떨어져 말문을 잃고 앞만 쳐다보며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다가 밤이 되어 곧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41)
이부시랑吏部侍郞 한유韓愈42)는 「간불골소諫佛骨䟽」에서 “부처에게 영험이 있어 화와 복을 이룰 수 있다면 무릇 재앙의 허물은 마땅히 신의 몸에 내려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진언을 듣고 왕이 매우 노하여 죽이고자 하니, 급사중給事中 최식崔植과 여러 간관諫官들이 모두 상소하여 구제하기를 청하였고, 자신 또한 뉘우쳐 죄를 빌었다. 왕이 관용을 베풀어 죽음을 면하게 하고 멀리 조주潮州로 쫓아 버렸다. 이와 같은 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155]
法住於世間      불법이 세상에 머문 것이
一萬二千年      1만 2천 년이니
正像各千歲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이 각각 1천 년
末法一萬年      말법末法은 1만 년이라.

[156]
中分五牢固      그중에 오뇌고五牢固로 나뉘어
各歷五百年      제각기 5백 년을 지날 때마다
機根漸變移      근기가 점점 달라지고
法亦隨減滅      법도 차츰 줄어들어 사라진다네.

[157]
第一解脫牢      첫째는 해탈뇌고解脫牢固이니
此時人根利      이때 사람들은 근기가 예리하여
會正取道易      바른 법을 만나 도를 얻기 쉬워
與佛世無異      부처님 세상과 다를 것이 없네.

[158]
二名禪定牢      둘째는 선정뇌고禪定牢固이니
人根稍微劣      사람들 근기가 조금 낮아져
久久習禪那      오래도록 선정을 닦아야
乃得三達智      마침내 삼달지三達智43)를 얻네.

[159]
三曰多聞牢      셋째는 다문뇌고多聞牢固이니
情識漸愚鈍      사람들 근기가 점차 우둔해져
雖得多聞法      비록 불법을 많이 듣더라도
慧擇未能明      지혜로 결택함이 분명하지 않네.

[160]
四稱塔寺牢      넷째는 탑사뇌고塔寺牢固이니
人爭起佛廟      사람들이 다투어 불탑을 세우고
處處設道場      곳곳에 도량을 세우지만
修證者萬一      닦아서 증득하는 이는 만에 하나라네.

[161]
五爲鬪諍牢      다섯째 투쟁뇌고鬪爭牢固이니
但諍論諸法      모든 법에 대해 논쟁만 할 뿐
未了深密義      깊고 오묘한 이치 알지 못해
憍己愌他宗      자기만 높이고 남의 주장은 업신여기네.

도선道宣 율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맨 처음 1천 년을 정법시대正法時代라 하는 것은, 정법을 만나 성인의 지위를 이루되, 근기와 깨달음이 부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1천 년을 상법시대像法時代라 하는 것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익히되, 사람들이 점차 둔해져서 진리를 만나도 지위에 올라서지 못하고, 청정함을 거두어 주지住持하여도 성스러운 진리와 조금만 통할 뿐이다. 지혜로 결택함에 있어서도 깊게 닦아 분명하지 못해 바른 도道와 유사할 뿐이므로 상법시대라 한다.
세 번째 천년 이후를 말법시대末法時代라 하는 것은, 처음부터 1만 년까지 선정과 지혜의 도를 떠나 다만 세속의 계율만 펴고자 하며 위의만 거두어 지켜 모습은 선객 같아도 마음 씀이 들뜨고 산란하여 정수正受44)에 완전히 어긋난다. 때문에 말법시대라 한다.”
『선견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법시대가 천년, 상법시대 또한 천년인데, 여인을 출가시켰기 때문에 정법이 5백 년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인이 팔경법八敬法을 지켜 여법如法하게 도를 행하면,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다시 천년이 될 수 있다. 불법이 세상에 머문 지 1만 년인데, 처음 5천 년에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삼달영지三達靈智45)를 얻지만, 이후 5천 년 뒤에는 출가하여 도를 닦아도 삼달영지를 얻지 못한다. …….”46)

비구니가 행해야 할 팔경법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비구가 대계大戒를 받았다면, 비구니는 그에게 정법을 받되, 가벼이 여기거나 잘난 체하거나 장난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비구가 대계를 받은 지 반달이 지났다면, 비구니는 그에게 절을 하고 섬겨서 새로 발심한 뜻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셋째, 비구와 비구니는 한 곳에 함께 살거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넷째, 서로 점검하여 살펴 주면서 만약 삿된 말이 있으면 받기는 하되 답하지 말아야 한다. 들어도 듣지 않은 듯이, 보아도 보지 않은 듯이 해야 한다.
다섯째, 허물과 잘못을 스스로 살펴서 소리 높여 큰 소리로 말하거나 욕심내는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비구에게 경과 율에 관한 것만을 묻되, 세간일 등 다급하지 않은 것을 함께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불법의 율을 어겼거든 보름에 대중에게 나아가 참회해야 한다.
여덟째, 비구니는 백 년 동안 대계를 지녔더라도, 새로 대계를 받은 비구의 아랫자리에 앉아서 겸손히 공경하고 예를 올려야 한다.
만약 비구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러한 팔경법을 지킨다면,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다시 천년이 될 수 있다.

[162]
最後五百年      마지막 5백 년에도
亦有修證者      닦아서 증득할 이 있지만
自後至萬年      이후부터 만년까지는
多修無一得      닦는 이 많아도 증득할 이 하나 없네.

『법화경法華經』에서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멸도하신 이후 마지막 5백 세인 오탁악세五濁惡世 가운데 만일 사부대중47)이 있어 이 『법화경』을 닦아 익히고자 삼칠일 동안 일심으로 정진하여 삼칠일을 채운다면, 저는 여섯 상아의 흰 코끼리상을 타고 한량없는 보살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 설법을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봄으로써 곧 삼매와 다라니를 얻을 것이니, 그 이름을 선다라니旋陀羅尼, 백천만억선다라니百千萬億旋陀羅尼라 합니다. …….”48)
이것으로 보아 마지막 5백 년에도 닦아 증득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5백 년은 곧 말법시대의 처음을 말한다.
『묘승정경妙勝定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뜨신 이후 1백 년 동안 10만 명이 출가하여 9만 명이 득도하였고, 2백 년 동안에는 10만 명이 출가하여 1만 명이 득도하였고, 나아가 5백 년 동안에는 10만 명이 출가하여 한 사람만이 득도한다. …….”
또 『월장경月藏經』49)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말법시대에는 수억의 중생이 수행하여 도를 닦아도 단 한 사람도 증득하지 못할 것이다. …….”
이것으로 보건대 말법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수행한다 하더라도 현전에서 증득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다만 미래의 인연을 심을 뿐이다.

[163]
此時所生人      이때 태어나는 사람은
福薄障濃厚      복은 얇고 장애는 두터워서
多行不善事      선하지 않은 일을 많이 하므로
死當墮惡道      죽어서는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리라.

[164]
雖是依敎人      비록 가르침에 의지하는 사람이라도
其心貪利養      그 마음은 이양利養을 탐하여
曾無一念信      단 한 번의 신심도 낸 적 없는데
法豈染其神      법이 어찌 그 마음을 물들여 주랴.

[165]
譬如師子蟲      비유하면 사자 몸에 생긴 벌레가
乃自食其肉      저절로 그 살을 먹는 것과 같나니
法中人亦尒      불법佛法 안의 사람도 그러하여
依之還自破      불법에 의지하면서 도리어 스스로 파괴하네.

『칠몽경七夢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자가 죽고 며칠이 지나도 뭇 짐승이 살아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여 모두 감히 접근하지 못하다가 여러 날 후에 사자 몸에서 저절로 생긴 벌레가 사자의 살덩이를 모두 먹어 치운다.”50)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자 외도가 돌아와 조복하는 것은, 마치 사자가 두려움 없이 돌아다닐 때 뭇 짐승이 숨어 버리는 것과 같다. 여래께서 멸도하신 이후 남겨진 교법은 마치 사자가 죽은 뒤의 몸과 같다. 여러 날 동안 뭇 짐승이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부처님의 정법이 1천7백 년 동안 외도와 천마天魔가 감히 훼손하거나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며칠 뒤 사자의 몸에서 생겨난 벌레가 사자의 살덩이를 스스로 모두 먹어 치우는 것은, 마치 부처님 멸도 이후 1천7백 년 뒤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파계하고 악행을 저질러 스스로 부처님 가르침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166]
又有天魔王      또 어떤 천마왕天魔王은
作佛弟子形      불제자의 모습을 하고
現怪而惑衆      기이함을 나타내 중생을 미혹시키며
毁佛讃魔法      불법을 훼손하고 마법魔法을 찬양하네.

[167]
佛法迸其心      불법은 그의 마음에 거슬리므로
弃之如脫屣      헌신짝 버리듯 던져 버리고
魔法順於情      마법은 마음에 들기 때문에
從之如渴飮      목마른 자 물 마시듯 쫓아다니네.

『능엄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들 열 종류의 마구니는 말법시대에 우리들 법 가운데 있으면서 출가하고 수도하여 스스로 ‘정변지각正遍知覺을 이루었다’ 말하면서 음욕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율의를 깨뜨리리라.”51)
또 『열반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세에 마구니의 권속은 비구와 아라한 등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정법을 어지럽히며 파괴하고, 계율을 비방하고 훼손하리라.”

[168]
佛滅七千年      부처님 멸도하시고 7천 년 뒤에는
人壽止三十      사람 수명이 30세에 그치고
從玆到十歲      이로부터 10세에 이르기까지
三灾次第起      세 가지 재난이 차례로 일어나리라.

[169]
飢劫諸糓滅      기근겁(飢劫)에는 모든 곡식이 사라지니
何處得精味      어디에서 좋은 음식 얻으리오.
人唯煎骨飮      사람들이 오직 뼈만 삶아 마시니
飢羸多滅亡      주리고 지쳐 죽는 이 많으리라.

[170]
病劫非人盛      질병겁(病劫)에는 사람 아닌 것(非人)52)이 치성하여
吐毒如猛燄      사나운 불꽃처럼 독을 토해내니
遇者即殞命      쏘이는 자 곧 수명을 다하여
屍遍一天下      주검이 온 천하에 두루하리라.

[171]
刀劫人多恚      전쟁 겁(刀劫)에는 사람들 성냄이 많아
隨執皆成刃      잡는 대로 모두 무기가 되리니
父子互相殘      부자간에도 서로 해쳐
人民皆略盡      백성들 모두가 거의 다 사라지리라.

『유가론瑜伽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수명이 30세일 때 기근의 재앙(飢儉災)이 있다. 이때에는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행하여 천룡天龍이 분노하고 꾸짖어 단비를 내리지 않아서 좋은 음식을 다시는 얻을 수 없다. 오직 썩은 뼈를 삶아서 함께 잔치하듯 먹는다. 한 톨의 벼나 보리, 조나 피를 얻으면 마니주와 같이 소중히 여겨 굳게 감추고 수호한다. 그 중생들은 대부분 기력이 없어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 버려서 인종이 사라질 지경이다. 이러한 기근의 재앙은 7년 7월 7일 밤낮을 지나서야 멈추게 된다.
인간의 수명이 20세일 때 질병의 재앙(疾疫災)이 있다. 이때에는 백성이 선하지 않은 일을 많이 행하여 모두 죄를 짓기 때문에 사람 아닌 것(非人)이 독을 토해 질병이 유행한다. 걸리기만 하면 목숨을 잃어 치료하기 어렵다. 누구도 의원이나 약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죽어 버려 인종이 거의 사라질 지경이다. 이러한 질병의 재앙은 7월 7일 밤낮을 지나서야 멈추게 된다.
인간의 수명이 10세일 때 전쟁의 재앙(刀兵災)이 있다. 이때에는 중생들이 업력 때문에 부모형제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제각기 맹렬하게 죽이려는 마음을 일으켜 풀이나 나무, 기와나 돌 잡는 대로 모두 무기가 되어 서로 해친다. 이와 같은 전쟁의 재앙은 7일 밤낮을 지나서야 멈추게 된다. 재앙이 없어지고 난 뒤 이 염부제에는 1만여 명이 남을 뿐이다. …….”53)
『바사론婆娑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루 낮 하루 밤이라도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니면 전쟁의 재앙을 만나지 않고, 한 알의 아리륵과阿梨勒果54)라도 스님들께 보시하면 질병의 재앙을 만나지 않고, 한 덩어리 밥이라도 중생에게 보시하면 기근의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55)

석존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인간 수명 1백 세에 해당하는데, 입멸하신 뒤로 대원大元 천력天曆 무진년(1328)까지는 2,277년이니, 다시 4,723년을 지나면 인간 수명이 30세에 그치게 된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1백 년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줄어 1천 년이 지나면 10세가 줄기 때문이다.

[172]
經像雖存世      경전과 불상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無一崇奉者      누구 한 사람 우러러 받드는 이 없고
比丘行俗行      비구는 속인의 짓만 행하니
聖賢亦不興      성현 또한 나타나지 않네.

[173]
爾時像自頹      그때 불상이 스스로 무너지고
經盡歸龍宮      경전은 모두 용궁으로 돌아가리니
唯有彌陀法      다만 아미타불의 교법만이
百年留世間      백 년 동안 세상에 머무르리라.

[174]
噵諸有緣衆      모든 인연 있는 대중을 인도하여
盡生極樂國      모두 극락국에 왕생케 하리니
是知彌陀佛      이는 아미타불의 비원悲願이
悲願最深切      가장 깊고 간절하기 때문임을 알라.

정법과 상법의 시대에는 사람들 마음이 순수하고 소박하여 많은 성현이 범부의 모습을 하고 화광동진和光同塵56)하여 법을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한다. 말법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사람들은 의심하고 아첨하는 이 많고 바른 법을 등지고 삿된 법을 쫓아서 교화 받을 이가 없다는 것은 성현들이 숨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사론』에서는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지 1만 년 뒤에 불상이 스스로 무너지고 경전은 용궁으로 돌아가니, 모든 비구 대중은 세속의 무리와 같고, 다만 가사 입고 머리를 깎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무량수경』에서는 “말세에 불법이 사라져 용궁으로 들어가지만, 특별히 이 경전만은 남아 1백 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을 인도하여 저 극락국에 왕생케 한다.”라고 하였다.
이상으로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강을 간략히 보여 주었다. 이하에서는 권하고 경계하는 뜻을 거칠게나마 서술하겠다.

[175]
咄我等衆生      슬프다. 우리 중생은
無始業障濃      무시이래로 업장이 두터워서
晚生濁惡世      뒤늦게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니
聞法不生信      법을 듣고도 신심을 내지 않네.

[176]
雖然亦可快      그럼에도 기뻐할 것이 있으니
幸及未墜時      다행히 부처님 법이 쓰러지기 전
人身固難得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作男子亦難      남자로 태어나기도 어려우며

[177]
出家最甚難      출가하기 가장 어렵고
聞法難復難      법문 듣기 어렵고 또 어려운데
如今獲四難      지금처럼 네 가지 어려운 것 다 얻었으니
此誠非小緣      이는 진실로 작은 인연이 아니로다.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다’라는 것은, 경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바늘을 잃고서 그 바늘을 찾아도 찾지 못하더니, 나중에 다시 배를 타고 가다가 문득 그 바늘을 찾았다고 하자.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은 이보다 더한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다’라는 것은, 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 남자 몸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석가세존께서 보살도를 행하실 때에 7만 5천 부처님을 만나 항상 범행梵行을 닦고서야 여자 몸을 벗어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선묘善妙 비구니는 여자 몸을 벗어나기 위하여 27생 동안 매번 그 몸을 버려 중생에게 보시하고, 나아가 삼보에 공양하여 마지막 생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여자 몸을 버리지 못하고서 초과初果를 증득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어찌 의심할 일이겠는가?
‘출가하기 어렵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중생이 여러 겁 동안 육도를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은, 진실로 무시이래로 탐욕과 애착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탐욕과 애착의 근본은 바로 처자식이니, 만일 처자식이 없다면 번뇌가 곧 없어져서 세속을 벗어나기 쉬울 것이다. 옛날 제齊나라 왕 고씨高氏는 숯을 지고 가는 병사들을 보았는데, 형색이 초췌하였으므로 그 고통을 가엾이 여겨 출가를 권하였지만, 한 사람만이 기꺼이 떠나갔다. 제나라 왕은 “사람들은 모두가 사랑하는 권속이 있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탄식하였다. 더구나 일찍 출가한 이도 오히려 환속하여 세속의 일을 하는 이가 많으니, 출가하기 어렵다는 이치를 알 만하다.
‘법문 듣기 어렵다’라는 것은, 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면 애꾸눈 거북이 바다 밑에 잠겨 있다가 1백 년이 지나 물 위로 떠올라 떠 있는 나무를 뜻대로 만나 그 과보를 바꾸고자 하는 것과 같다. 나무가 서쪽에 떠 있는데 거북이 동쪽에서 나오거나, 남쪽에 떠 있는데 북쪽에서 나온다.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면 다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또 1백 년을 지나야 바다에 나온다. 이처럼 반복하다가 무수한 겁이 지난다. 불법佛法 듣기 어려움은 그것보다 곱절 이상 어렵다.”
아! 위에서 인용한 네 가지 어려움은 어려움 중의 어려움인데, 우리들은 이미 그것을 면하여 석문釋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실로 천만다행한 일이다. 마땅히 제각기 용맹심을 발휘하여 부낭浮囊을 잘 보호하고 큰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에 오르라. 보배 동산에 빈손으로 오가는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178]
勸諸新學輩      새로 배우는 모든 이에게 권하노니
應生忻慶心      기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라.
又念無常身      그리고 무상無常한 이 몸은
猶如石火光      부싯돌의 빛과 같다고 생각하라.

[179]
井枯魚少水      우물이 마르니 물고기 마실 물이 줄고
象逼鼠侵藤      코끼리가 뒤쫓고 쥐는 칡덩굴을 갉아
念念命隨減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들거늘
嚊吸安容保      이 목숨을 어찌 보전하리오.

[180]
時時愼三業      그때그때 삼업三業을 삼가고
莫與惡相交      악한 이와 서로 사귀지 말라.
歸依三寶戒      삼보에 귀의하고
五戒與八戒      오계와 팔계

[181]
十重六八輕      10중대계와 48경계
乃至八萬戒      나아가 8만 계에 귀의하라.
雖未具堅持      비록 모두 지키지 못하더라도
但可日誦念      날마다 염송만 해도 좋으리.

『출요경出曜經』에서는 “이날이 지나면 목숨이 줄어드는 것이, 마치 마실 물이 줄어드는 물고기와 같다. 이것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57)하였다. 우물은 사람 몸을, 물은 세월을, 물고기는 사람 목숨을, 마르고 줄어드는 것은 무상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빈두로위우타연왕설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광야를 지나가다가 매우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자 미칠 듯이 무서웠지만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한 언덕에 우물이 있는 것을 보고서 곧 나무뿌리를 찾아 우물로 숨어 들어가니, 위에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어금니로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 우물 네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 사람을 물려 하고, 이 우물 바닥에는 세 마리 독룡이 있었습니다. 옆으로는 네 마리 뱀이 두렵고, 밑으로는 세 마리 용이 무서운데, 매달려 있는 나무는 그 뿌리마저 흔들리고, 그 위로 꿀 두세 방울이 그의 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나무가 흔들려서 벌집을 건드려 벌떼들이 날아와 그 사람을 쏘아대고, 광야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워 오고 있었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사람의 괴로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가 얻은 맛은 매우 적고, 고통과 근심은 매우 많습니다. 광야는 생사를, 사람은 범부를, 코끼리는 죽음(無常)을,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뿌리는 사람 목숨을,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는 낮과 밤을, 나무뿌리를 갉아먹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것을, 네 마리 뱀은 사대四大를, 꿀은 오욕락五欲樂을, 벌은 나쁜 지식(惡覺)을, 불은 늙음을, 세 마리 용은 삼악도三惡道를 비유합니다.”58)

‘삼업’이란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업을 말한다. 모든 죄와 선은 삼업으로 짓지 않는 것이 없다. 말하자면 신업이란 살생·도둑질·간음이며, 구업이란 거짓말·속이는 말·이간질하는 말·험한 말이며, 의업이란 탐냄·성냄·어리석음이다. 삼업을 멋대로 하면 10악이 되고, 삼업을 삼가면 10선이 된다. 10악은 삼악도의 괴로운 과보를 받고, 10선은 인간 세계와 천상 세계의 즐거운 과보를 받으니, 세간을 벗어나 성불하는 원인이 된다.
‘삼보에 귀의한다’라는 것은, 시방 삼세 모든 곳에 상주하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다. 삼보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동체삼보同體三寶·별체삼보別體三寶·주지삼보住持三寶 등을 말한다.
동체삼보란 하나의 진여眞如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한 것이다. 첫째 진여는 깨달음의 본성이니 불보佛寶라 하며, 둘째 진여에는 궤범과 주지(軌持59) )의 뜻이 있으니 법보法寶라 하며, 셋째 진여에는 화합의 뜻이 있으니 승보僧寶라 한다.


별체삼보란 소승에서는 1장 6척의 부처님의 몸을 불보라 하며, 사제四諦·12인연十二因緣·생공生空60)을 법보라 하며, 사과四果61)·연각緣覺을 승보라 한다.

대승에서는 법신·보신·화신 삼신三身의 여래를 불보라 하며, 아我와 법法 두 가지 공空의 가르침을 법보라 하며, 삼현三賢·10성十聖을 승보라 한다.

주지삼보란 금이나 나무에 새기거나 그린 부처님이 불보이며, 삼장의 문구가 법보이며, 삭발하고 물들인 옷을 입은 스님들이 승보이다.
그러나 그 근본은 하나이니, 범부가 발심하여 귀의한다면 별체삼보 같은 것은 없다. 왜 그러한가? 불보에 귀의할 때에는 법신·보신·응신의 삼신이 한 몸으로 차별이 없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아서 자식들의 모든 고통을 없애 주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법보에 귀의할 때에는 경·율·논 삼장이 대승과 소승의 차별이 없고, 좋고 훌륭한 약이어서 중생의 세 가지 미혹의 병을 치료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게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승보에 귀의할 때에는 성인·현인·범부의 세 가지 부류의 높고 낮음에 차별이 없고, 큰 복전이어서 중생들의 빈궁과 고통을 없애 주고 온갖 복락을 주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성인·현인·범부란, 대승에서는 등각等覺부터 초지初地까지를 ‘성인’이라 하고, 10회향十回向·10행十行·10주十住를 ‘현인’이라 하고, 10신十信·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62)를 ‘범부’라 한다. 소승에서는 벽지불壁支佛·사과四果를 성인이라 하고, 칠방편위七方便位63)를 현인 또는 범부라 한다.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보는 귀의해야 할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제하고 보호해 준다는 의미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어 다른 나라에 투항하여 구호받기를 청하였더니, 다른 나라 왕이 ‘그대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라. 우리 국경을 벗어나지 않고 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대를 구호하리라’ 하는 것과 같다. 진실한 마음으로 삼보를 섬겨 다른 것을 향하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면 마왕의 사악함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64)
『절복나한경折伏羅漢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 도리천의 천자가 수명이 다하려 할 때 다섯 가지의 시드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목숨이 다한 뒤 돼지의 태에 들어가는 것을 관하고는 걱정스러워서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자 한 천인이 ‘부처님께서 그대의 죄를 벗어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예를 올리니, 묻기도 전에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체만물은 모두 죽음(無常)으로 돌아간다. 그대도 본래 아는 바인데 어찌하여 근심하는가?’라고 하셨다. 천자가 부처님께 모든 것을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돼지의 몸을 벗어나려거든 삼귀의를 염송하라’ 하셨다.
바로 부처님 말씀을 좇아 새벽부터 밤까지 스스로 귀의하더니, 7일 만에 목숨이 다하자 유야리국維耶離國(Vaiśāli)에 하생하여 장자의 아들이 되었다. 어머니의 태에서도 날마다 세 번씩 스스로 귀의하고, 처음 태어나 땅에 떨어져서도 무릎을 꿇고 스스로 귀의하니, 온 집안사람들이 몹시 기이하게 여겨 그를 재앙의 조짐(熒惑)이라 하면서 죽이려고 하였다. 다만 그 아버지만이 식견이 있어 ‘이 아이는 범상한 부류가 아니다.

세상 사람은 백 살이 되어도 스스로 삼보에 귀의할 줄 모르는데, 하물며 처음 땅에 떨어져서 나무불南無佛을 칭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잘 보살펴 길렀는데, 아이가 일곱 살이 되자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부모는 기이하게 여겨 허락하고서 공양할 것들을 준비해 주었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오시어 아이의 공양을 받고 그를 위해 설법하시니, 아이와 부모 모두 불퇴전의 경지(阿惟越致)65)를 얻게 되었다. …….”66)

‘오계五戒’란, 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하지 말라, 셋째 사음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음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팔계八戒’란, 앞의 다섯 가지에 셋을 더한 것이다. 첫째 정오를 지나서는 먹지 말라, 둘째 화려한 머리 장식이나 영락을 달지 말며 높고 넓은 큰 침상에 앉지 말라, 셋째 노래하고 춤추며 악기를 연주하는 데 가서 보거나 듣지 말라는 것이다.

‘10중계十重戒’란, 첫째 살생, 둘째 투도, 셋째 부정한 음행, 넷째 거짓말, 다섯째 술장사, 여섯째 다른 이의 허물 말하기, 일곱째 자기를 칭찬하기, 여덟째 탐욕, 아홉째 성냄, 열째 삼보를 비방함이다.

‘48경계四十八輕戒’란 다음과 같다. 첫째, 화상和尙이나 아사리, 나아가 함께 수행하는 이를 보거든 일어나 영접하여 예를 올려 여법하게 공양해야 한다. 둘째, 고의로 술을 마시거나 남에게 마시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일체의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넷째, 오신채를 먹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계를 범한 이를 보거든 참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여섯째, 대승 법사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거든 맞이하여 공양하고 삼시설법三時說法을 청해야 한다. 일곱째, 법을 강설하는 곳이 있거든 모두 가서 들어야 한다. 여덟째, 병든 이를 보거든 항상 공양하기를 부처님과 다를 바 없이 해야 한다. 아홉째, 마음으로 대승을 등지고 이승二乘을 받아 지니지 말아야 한다. 열째, 칼·막대기·활·화살 등 전쟁하고 살생하는 도구를 쌓아 두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10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첫째,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군대에 오고 가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양민·노비·여섯 가지 짐승67)을 판매하거나 시장에서 관棺 자재 등 시신 담는 기구를 거래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선량한 타인이나 나아가 국왕 대신을 비방하여 오역죄 등의 무거운 죄를 범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불을 놓아 산과 들을 태우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불제자부터 모든 원수나 친지까지 대승의 경과 율을 받아 지니도록 가르쳐서 보리심을 내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먼저 대승의 법을 배운 이는 새로 배우기 시작한 보살이 와서 경과 율을 구하는 것을 보거든 여법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일곱째, 국왕 대신과 가깝다 하여 위세를 떨거나 금전과 물건을 함부로 취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육시六時 밤낮으로 보살계를 받아 지니되, 계율의 인연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위해 스승이 되어 계를 주지 말아야 한다. 아홉째, 계를 지니는 비구를 보거든 속이거나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열째, 항상 방생을 행하고 살생하는 사람을 보거든 방편으로 구호하며, 부모 형제가 죽은 날에는 법사를 청하여 『보살계경菩薩戒經』을 강설하게 하여 망자의 복을 빌어야 한다. 이와 같은 10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첫째, 어떤 사람이 나의 부모 형제를 죽이더라도 보복을 가해서는 안 된다. 둘째, 총명함과 부유함을 스스로 믿어 먼저 배운 법사에게 경과 율을 묻지 않고 받지 않아서는 안 된다. 셋째, 자신은 경과 율을 이해하면서 어떤 신학 보살이 와서 묻는 것을 경멸하는 마음과 악한 마음으로 답하기를 꺼려서는 안 된다. 넷째, 경과 율은 방치하고 반대로 삿된 소견인 외도의 속된 경전을 배워 도道의 인연을 막아서는 안 된다. 다섯째, 설법주說法主나 승방주僧坊主가 되거든 삼보의 상주물을 잘 지켜야 하고, 법도에 어긋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먼저 승방에 머물거나 대중 속에 머물 때 손님으로 보살이나 비구가 오거든 일어나서 맞이해야 하며, 갖가지 공양거리로 배웅해야 한다. 어떤 시주자(檀越)가 와서 스님들을 청하거든 승방주는 먼저 객승을 보내야 한다. 일곱째, 따로 초청함(別請)68)을 받아 이양利養이 자신에게만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스님들을 청하여 소원을 구할 때에는 차례대로 청해야 하며, 따로 청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이익을 위해 남녀의 색色을 판매하거나 손수 밥을 짓거나 스스로 갈고 찧거나 길흉을 점치는 일체의 주술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열째, 세속 사람들을 위하여 남녀를 만나게 해 주는 일을 주선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10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 첫째, 외도나 온갖 악인이 불보살의 형상이나 경과 율을 매매하는 것을 보거든 교화하여 재물을 가지고 가서 바꾸어 와야 한다. 둘째, 저울추를 가볍게 하거나 되를 작게 만들어 사람을 속여 물건을 취하지 말아야 하며, 고양이·살쾡이·돼지·개를 기르지 말아야 한다. 셋째, 남녀 등의 싸움이나 군대의 장병들 싸움을 구경하지 않아야 하며, 금슬琴瑟·공후箜篌 등 악기 연주하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하며, 투전(樗捕)·바둑(圍棊)·쌍륙(六博) 등의 노름이나 나아가 손톱을 비추어 점치는 것, 버들가지로 점치는 것 등의 나쁜 재주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넷째, 금계禁戒 지니기를 밤낮 육시로 한결같이 하고 이 계를 독송하되, 마치 금강金剛과 같이, 혹은 부낭浮囊을 지키듯이 해야 한다. 스스로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부모와 스승과 삼보에게 효도하고 순종해야 하며, ‘좋은 스승과 좋은 벗을 얻어 나에게 대승을 가르쳐서 내가 개오開悟하고 이해하도록 하고, 여법하게 수행하여 한순간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해야 한다. 여섯째,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지니고 서원하기를, ‘차라리 이 몸을 활활 타오르는 맹렬한 불구덩이와 칼산에 던질지언정, 끝내 모든 부처님의 경과 율을 훼손하고 범하여 여인들과 부정한 음행을 짓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천 겹의 철망으로 몸을 얽어맬지언정, 끝내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시주자가 시주하는 어떠한 의복도 받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고 백천 겁을 지날지언정, 끝내 파계한 입으로 신심 있는 시주자가 시주하는 어떠한 음식도 받지 않겠습니다,’ 나아가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하여지이다’라고 서원해야 한다. 일곱째, 항상 봄과 가을 두타행頭陀行69)을 하고, 여름과 겨울 좌선을 한다. 양지楊枝70)·비누(藻頭71))·삼의三衣72)·물병(甁)·발우(鉢)·방석(坐具)·석장錫杖73)·향로香爐·녹수낭漉水囊74)·수건·칼(刀子)·부싯돌(火鐆)·족집게(鑷子)·승상繩床·경률經律·불상·보살상 등 이러한 18가지 물건을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

두타행을 하거나 좌선을 할 때 곤란한 곳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이를테면 포악한 왕의 국토, 초목이 깊이 우거진 곳, 사자·호랑이·이리가 있는 곳, 물·불·바람 등의 재난이 있는 곳, 도적이나 독사가 있는 곳 등을 말한다. 여덟째, 여법한 차례대로 앉되, 노소와 귀천을 묻지 않고 먼저 계를 받은 이가 앞에 앉고, 나중에 계를 받은 이는 뒤에 앉아야 한다. 아홉째, 항상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승방이나 불탑 등 일체 수행처를 건립해야 한다. 질병이나 국난이나 도적의 난이 있을 때, 부모 형제가 죽은 날, 모든 재 모임(齋會), 나아가 물난리와 불난리 그리고 나찰의 난리가 있거나, 수갑·목칼·족쇄 등으로 몸이 결박될 때,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많을 때에는 모두 이 경과 율을 독송하고 설해야 한다. 이와 같은 9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다음으로 첫째, 남에게 계를 줄 때에는 모든 국왕·대신·비구·비구니·청신남·청신녀·음남婬男·음녀婬女·무근無根75)·이근二根76) 나아가 일체 귀신과 축생까지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법사의 말을 이해하는 자라면 모두 계를 줄 수 있는데, 단 칠차칠역죄七遮七逆罪77를 범한 자는 제외한다. 그리고77) 출가자는 국왕과 부모와 육친六親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둘째, 명예와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일체의 경과 율을 아는 체하며 다른 사람에게 계를 주지 말아야 한다. 셋째, 아직 보살계를 받지 않은 사람 앞에서나 외도와 삿된 견해를 지닌 사람 앞에서 이러한 대승의 계를 설하지 말아야 한다. 단 국왕은 제외한다. 넷째, 바른 계戒를 받고도 훼손하고 범하는 자는 시주자의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고, 국왕의 땅을 밟거나 국왕의 물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왜 그러한가? 이 사람은 법 가운데 큰 도적이므로 축생과 다를 것이 없고, 나무토막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승의 경과 율을 받아 지니되, 가죽을 벗기고 피를 뽑고 뼈를 꺾듯이 서사書寫해야 한다. 나아가 나무껍질·종이·비단·대나무에도 가능하니, 항상 칠보와 향과 꽃으로 여법하게 공양해야 한다.

여섯째, 일체중생을 보거든, “너희들은 모두 삼귀의계와 10계를 받아야 한다.”라고 외치고, 나아가 소·말·돼지·양 일체의 축생을 보거든, ‘너희들은 축생이지만 보리심을 내어야 한다’라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해야 한다.

일곱째, 항상 교화를 행하되, 시주자의 집에 들어가면 선 채로 속인을 위하여 설법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높은 자리를 만든 뒤 올라가 앉아 설법하고, 사람들은 아래에 앉아 들어야 한다. 여덟째, 고의로 불법을 파괴하는 자가 되어 우리 사부 제자四部弟子78)들의 출가와 수도를 거부해서는 안 되며, 불상이나 불탑이나 경과 율을 조성하는 일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아홉째, 명예를 위해 국왕이나 모든 관리 앞에서 불법佛法과 계를 설하거나, 함부로 계를 범한 이에게 형벌(繫縛)을 주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외도와 악인들이 부처님의 계를 비방하는 것을 듣거든 3백 개의 창으로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여겨서, ‘차라리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백겁을 지날지언정 부처님의 계를 파괴하는 나쁜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으리라’라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은 9계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이상의 10중계와 48경계는 『범망경』79)에 나온다.

그리고 보살의 4백 계, 비구의 250계, 비구니의 5백 계, 3천의 위의계威儀戒,80) 8만의 세행계細行戒81)가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계는 다음과 같은 삼취정계三聚淨戒가 총론이다. 첫째, 섭률의계攝律儀戒이니 악을 떠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둘째, 섭선법계攝善法戒이니 선을 쌓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셋째,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니 중생을 제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들 모든 계戒는 처음 발심한 범부들도 다 지키기 어려운데, 하물며 지금은 계를 지니는 것이 견고하던 시대가 이미 780여 년이 지났으므로 이 때문에 시대가 혼탁하고 근기가 하열하며, 장애는 깊고 믿음은 얕아서 계를 지니기 어려우니, 비록 모두 지키지 못하더라도 다만 암송하기만 해도 좋으리라.

나아가 삼귀의계와 오계만을 지니고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파괴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장한 일이로다. 그렇지 않다면 7일 내지 단 하루만 지켜도 좋다. 무슨 까닭인가?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서는 “하루 낮 하루 밤 사미계沙彌戒를 지니기만 하여도 목숨을 마치면 곧 극락세계 중품중위中品中位82)에 왕생하리라.”83) 하였고,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도리천자忉利天子도 7일 동안 삼귀의계를 스스로 암송하고서 열등함을 바꾸어 수승함을 얻었다고 한 것과 같다.


‘계戒’라는 말은 ‘금한다’, ‘단속한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원숭이에게 사슬을 채우듯 정욕을 금하고,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 몸과 입을 단속하는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큰 병에는 계戒가 좋은 약이며, 큰 두려움에는 계가 수호자이며, 죽음의 어둠 속에서는 계가 밝은 등불이며, 삼악도에서는 계가 다리이며,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84)의 바다에서는 계가 큰 배이다.”85)라고 하였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어떤 사람이 집을 지으려고 하면 먼저 그 기틀을 정돈해야 하듯이, 보살도 그러하다. 만행을 닦고자 하면 먼저 계(尸羅, śīla)를 깨끗이 해야 한다.”88라고 하였다.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는86) “처음 계를 받은 사람은 부처님과 동등하다.”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계를 받은 사람은 육도에 태어나는 곳마다 모두 왕이 된다.”라고 하였고, “앉아서 받고 일어나서 파괴하더라도 받지 않은 것보다 낫다.” 하였다. 그러므로 계의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자세히는 『범망경』·『능엄경』 등의 경장과 모든 율장(毘奈耶, vinaya)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자세히 알고자 하면 살펴보기 바란다.

[182]
布施及安忍      보시와 인욕
精進修禪智      정진과 선정 그리고 지혜
讀誦書經論      경론을 독송하고 서사하기
禮念佛菩薩      불보살을 예념하기

[183]
或修營佛廟      불전(佛廟)을 짓거나 수리하기
或造建僧坊      승방을 조성하기
或塑畫聖形      성인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리기
或修古經像      오래된 경전이나 불상을 보수하기

[184]
或歌詠三寶      삼보를 노래하고 찬탄하기
或掃塔獻花      탑을 청소하거나 꽃을 올리기
或燒香然燈      향을 사르거나 등을 밝히기
或作樂供養      악기를 연주하여 공양하기

[185]
或奉養師親      스승과 부모를 봉양하기
或行世仁義      세속의 인의仁義를 행하기
或敬老慈幼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기
或悲諸有情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186]
或隨喜他善      남의 선을 따라 기뻐하기
或謙心軟語      겸손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말 하기
隨冝但行一      형편에 따라 한 가지만 행해도
亦當成佛道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



‘보시’란 범어로는 단檀(dāna)이라고 한다. 세 가지가 있으니, 즉 신명시身命施·재시財施·법시法施를 말한다.
신명시는 머리와 눈, 손과 발을 보시하는 것이니, 법인을 얻은 보살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리자(身子, Śāriputra)는 제6심87)에 이르고서도 물러났다.
재시는 노비·코끼리·말과 여러 진귀한 보물 등을 보시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분수껏 정성을 다하면 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여인은 두 푼을 보시하고도 현세에 왕비가 되었고,88) 어떤 노모는 쉰 쌀뜨물을 보시하고도 천상에 태어났다.89) 어떤 이는 “몸을 보시하는 것도 재시에 속한다.”라고 말한다.
법시는 여러 부처님과 선지식으로부터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에 대해 설하는 것을 듣거나 경론에서 들은 것을 청정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주는 것으로서, 모두를 법시라고 한다. 재시를 법시에 비교하면 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루에 세 번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몸을 보시하고,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록 몸을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지니거나 나아가 한 구절이라도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그 복덕이 앞의 것보다 수승하다.”90)라고 하였다.

‘인욕’이란, 범어로는 찬제羼提(kṣānti)라고 한다. 안으로 마음이 편안하면 밖에서 욕을 당하는 지경도 견딜 수 있다. 인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을 말한다. 중생인은 바깥사람이 성내고 꾸짖고 때리고 해치는 일 등을 참는 것이다. 법인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굶주림과 목마름, 늙음과 병듦 등을 참는 것이다. 이러한 두 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편안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부루나富樓那는 인욕을 닦을 때, 어떤 이가 와서 꾸짖으면 주먹질 하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주먹질 하는 이를 만나면 몽둥이로 치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몽둥이로 치는 이를 만나면 칼로 찌르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칼로 찌르는 이를 만나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일찍이 오음의 독이 든 몸을 버리고자 하였더니, 다행히 좋은 벗이 있어 내 괴로움의 뿌리를 끊어 주려 하니,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마음을 쓰면 다만 원한을 끊을 뿐만 아니라 복덕과 지혜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91) 그러므로 영가永嘉92) 대사는 “욕하는 것을 관하는 것은 공덕이니, 이것은 나를 선지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93)라고 하였다.

‘정진精進’이란, 범어로는 비리야毘離耶(vīrya)라고 한다. 선법을 부지런히 행하여 스스로 방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정진이요, 둘째는 마음의 정진이다. 이를테면 성인의 모습을 새기거나 그리고 경전을 서사하고 예배하고 암송하고 강설하는 등 모든 선법을 닦음에 멈춤이 없는 것을 몸의 정진이라 한다. 선도善道와 선정과 지혜를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음과 마음이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을 마음의 정진이라 한다. 정진 이 한 가지 바라밀의 힘으로도 다섯 가지 바라밀이 원만해진다.

예를 들면 석존께서 인행因行을 닦을 때 7일 동안 한 발을 들고(翅足) 정진하신 공덕이 미륵을 뛰어넘은 것은 실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어느 한 법도 게으름에서 생겨나는 것은 없다.……”라고 하였다.

‘선정禪定’이란, 범어로 갖추어 말하면 선나禪那(dhyāna)라고 한다. 여기서는 사유수思惟脩라고 한다. 선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즉 세간선世間禪과 출세간선出世間禪을 말한다. 세간선이란 근본사선根本四禪·사무량심四無量心·사무색정四無色定으로, 이는 범부들이 수행하는 선법이다.

출세간선이란 육묘문六妙門94)·16특승十六特勝95)·통명通明96) 나아가 삼명육통三明六通97)으로, 이는 이승과 공통되는 선법이다.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등 108삼매와 제불부동삼매諸佛不動三昧 등 120삼매는 불보살들이 닦는 선법으로, 범부와 이승과는 공통되지 않는다.

무릇 선禪의 효용이 있는 까닭은 모든 잡된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마음을 한 곳에 제어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때문이다. 삼세제불과 일체보살은 모두 이 문門을 따라 들어오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옛 스님이 말하기를, “비록 만년이 지나더라도 여러 가지 산란한 마음으로 선업을 닦는다면, 잠깐 사이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선정(靜慮)에 든 것만 못하다.……” 하였다. 또한 그 삿됨과 바름과 관을 닦는 방편을 논하자면 문장이 번거로울 것 같아 기록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상세히 알고자 하면 천태 대사의 『마하지관摩訶止觀』을 보기 바란다. 거기에서는 선문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가려내고 편벽된 것과 원만한 것을 밝혀 놓은 것이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듯 훤하고 명백하다.


‘지혜智慧’란, 범어로는 반야般若(prajñā)라고 한다. 일체 제법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되, 일체를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지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성문聲聞을 구하는 지혜이니, 먼저 사념처四念處로부터 사제四諦를 관함으로 인하여 나아가 무생지無生智98)를 증득하는 것이다.

둘째, 연각緣覺을 구하는 지혜이니, 12인연을 관하여 무생지를 깨닫는 것이다.

셋째, 불도佛道를 구하는 지혜이니, 보살이 처음 발심한 이래로 육바라밀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구니를 부수고 번뇌(結99) )를 끊어 마침내 정각을 이루고, 나아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살은 청정한 마음으로 이 세 가지 지혜를 닦기 때문에 반야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은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100)라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또 이 반야는 중생과 부처 모두에게 있지만,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에 따라 높고 낮음이 나뉜다. 이러한 도리를 알아서 마음을 연마하면, 곧 본래부터 있는 평등한 큰 지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데 어찌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명경淨名經』에서는 “평등한 진법계眞法界에서는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 없다.”101) 하였고, 어떤 이는 “보살이 반야를 듣지 못하면 불도와 멀어지고, 비록 범부라 해도 반야를 배운 이는 ‘미래에 이루어질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보살의 만행萬行은 육바라밀을 벗어나지 않고, 이 육바라밀에서는 반야가 전부이다. 만약 반야를 수행하면 이미 육바라밀 모두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의 공덕 인연을 말한다면 겁이 다하도록 다함이 없다.……”라고 하셨다.

‘경론을 독송한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일대시교에는 경·율·논 삼장이 있고, 그중에 또한 대승과 소승, 현교와 밀교가 있다. 부처님의 경계는 본래 이승과 삼승, 대승과 소승의 차별이 없지만, 중생의 근기에 수순하기 때문에 이와 같을 뿐이다.

또한 여래께서 세간에 나오신 큰 뜻은 중생을 모두 대승에 들어가게 하고자 함이지만, 소승의 근기가 있어 대승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스스로 삼승을 설하여 소승의 이익을 얻게 한 다음 점차 대승에 들도록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대승에 들어가는 것이 근본이기 때문에 이 경을 설한다.”102)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모든 수행자는 이러한 뜻이 경이나 논서에 있음을 반드시 알아서 대승과 소승을 가리지 말고 감당할 수 있는 바에 따라 모두 받아 지녀야만 한다.

슬프다. 지금 대승을 배우는 이들은 다만 반야부와 방등부 안에서 융통하는 말과 대승을 찬탄하고, 소승을 배척하는 글만 보고서 여래께서 근기에 따라 교법을 시설하신 미묘하고 비밀스런 뜻은 깊이 살피지 않고, 큰 교만의 깃발을 세워 소승을 비난하고 꾸짖으니, 다소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러한가? 방등부 안에서 대승을 찬탄하고 소승을 배척한 것은, 이승의 사람들이 소승을 취하여 만족하고 돌이키지 못하므로 여래께서 그들이 소승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고자 배척하신 것이고, 그들이 대승을 흠모하도록 하고자 다음으로 (방등부를) 설하시고, 그들이 대승에 들어오도록 하고자 다음으로 반야부를 설하시어 융통시키고 도태시켰기(融通淘汰103) )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마디 한마디 점검하고 경책하여 일승一乘에 들도록 인도하셨으니, 분명히 알라. 꾸짖고 배척하신 것은 다만 당기중當機衆104)에 해당하는 것이지, 후세의 초심 범부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승법이 중생에게 이익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가섭과 아난이 경을 결집하던 차에 어찌하여 버리지 않고 수집하여 한 경장經藏 안에 두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부처님 재세 시 당기중에도 오히려 근기가 날카로운 자와 둔한 자가 있어 근기가 날카로운 자는 대승에 단박 들고 근기가 둔한 자는 소승을 거쳐 대승에 들어갔다. 이런 까닭으로 교법에 대승과 소승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말법시대인데, 교법을 받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어찌 우열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우세한 근기는 대승을 좋아하고, 열등한 근기는 소승을 쫓아 각각 원하는 바가 있어서 이치에 걸림이 없는데, 어찌하여 그르다고 하겠는가.


또 소승이 허물이 되는 까닭은 다만 소승에 집착하여 대승을 잊기 때문이다. 마음을 돌이켜 대승을 향한다면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예를 들면 장자가 아이에게 반 글자씩만 가르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꾸짖은 대로 수행할 때에 지난 법(往, 소승법)을 말미암지 않고 곧장 대도로 갈 수 있다면 이처럼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 천하의 백성들이 순전히 군자라면 진실로 그렇다 하겠지만, 야인野人이 섞여 있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무엇 때문인가? 야인들을 대도로 가게 하는 일은, 마치 순록을 몰아서 성안의 저잣거리를 지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근기와 교법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 이로움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경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독송만 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 마치 헛방아를 찧는 것처럼 끝내 이로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이 국집局執된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 중에는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있어, 지혜로운 이는 뜻을 취하고 어리석은 이는 글만 고집한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마음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깊은 이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만 경문을 독송하기만 해도 수승하다’라고 말하는 까닭에 그 현묘한 뜻을 찾는 데 게으른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런 사람을 특별히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이지, 어리석은 사람 모두를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정丁 자를 놓고도 한 일一 자를 모르는데, 하물며 현묘한 이치를 분명히 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마음을 돌려 도道를 향하기 어렵다. 마음을 돌려 도를 향하더라도 독송하기 또한 어렵다. 이런 까닭으로 독송만 하여도 그대로 선업이 되기 때문에 큰 성인께서 반드시 기뻐하실 것이다. 감탄하고 칭찬할지언정, 어찌 질책하여 그들을 실망시키겠는가.

어리석은 사람 모두를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이라면, 이들은 법에 영원히 인연이 없는 자들이어서 오래도록 악취惡趣를 윤회하며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가 여래를 정변지正遍知, 즉 평등한 자비심을 일으켜 큰 방편으로 눈먼 대중을 널리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하겠는가.
이들 어리석은 사람들 역시 꾸짖어야 할 때가 있다. 그 뜻은 알지 못하더라도 독송하는 것을 마음에 익혀 달이 쌓이고 해가 깊어지면, 공덕이 익어 뜻이 통하게 되는데, 이것을 망령되이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면, 막혀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시기를 맞으면 바로 경책하여 앞으로 나아가도록 권장해야지, 적절한 때가 아닌 데 질책하고 경책하여 중생이 물러서는 마음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현세에 공부가 비록 성취되지 못하더라도 선근의 싹을 이미 심었으므로 반드시 점차 자라나 후세에는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 지혜로운 사람도 전생에는 독송만 하던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억측으로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경론에 널리 있으니 볼 수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예를 들어 다라니陀羅尼처럼, 뜻은 알지 못하는데 암송만 하여도 어떻게 죄를 멸하고 복을 낳는가?

그리고 전기傳記에는 행의 수나 글자 수를 세다가 지혜가 열린 사람이 있고, 어린아이가 대충 듣고서도 법사가 된 경우가 있고, 독사나 조개류가 독경 소리에 훈습되어 과보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런 부류들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겠는가?

수도하는 사람은 이런 뜻을 알아서 교법의 대소, 사람의 귀천, 남자와 여자, 재가와 출가, 노인과 아이,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이해함과 이해하지 못함, 정진과 게으름, 많고 적음, 길고 짧음을 논하지 않고, 다만 분수에 맞게 독송한다면, 그 공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공이 빨리 이뤄지고 늦게 이뤄지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달려 있을 뿐이다.

또 남의 스승이 되는 사람은 제자의 마음속에 품은 즐거움을 따라 인도하지 않는다면, 모난 나무를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이를 ‘소경과 절름발이 사제지간’이라 하니, 두 사람 모두 타락하고 말 것이다. 독송은 자신에게 이롭고, 해설하고 서사하는 것은 타인에게 이롭다. 두 가지 이로움을 함께 닦아야 보살이라 말한다. 또 다섯 가지 수행(五種行)105) 가운데 해설하고 서사하는 공덕보다 수승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우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불보살을 (예)념하기’란 다음과 같다.
시방 삼세의 모든 불보살은 그 수가 한량없고 이름도 같지 않다. 만일 불보살 전체를 염한다면 경계가 넓어 마음이 산란하여 삼매가 이뤄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인연 있는 한 부처님이나 한 보살을 따라 오롯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염하면 감응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곧 진신眞身을 뵙고 법을 듣고 도를 깨달아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이 바다처럼 모여 둘러싸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현세에 친히 뵙지 못한다면 후세에 뜻대로 그곳에 반드시 왕생하여 직접 공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토론淨土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부처님의 공덕과 모든 부처님의 공덕은 차이가 없다. 동일한 법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부처님을 염할 때 곧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 된다. …….”106)
어떻게 인연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는가? 선지식에게서 듣거나 경에서 보았을 때 그 보고 들은 바에 따라 믿는 마음이 가는 분이 그분이다. 대체로 보아 중생은 업장이 많기 때문에 모든 도업을 닦더라도 중간에 그만두는 이가 많지만, 오직 염불하는 이는 만에 하나라도 누락되는 일이 없다. 비유하자면 세간에 박덕한 사람이 왕의 힘을 빌리면 가는 곳마다 능멸하거나 범하는 이가 없고, 필요한 것이 모자람이 없고, 몸과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염불하는 이도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거두어 주시기 때문에 천마와 외도가 어지럽히지 못하고 장애가 소멸하고 지혜가 증장되며 세세생생 항상 부처님 계신 곳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오정심법五停心法107)에서는 “장애가 많은 중생은 염불관念佛觀을 닦으라.”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염불하고 오체투지하면 천상에 태어날 업을 짓는 것이고,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손을 들어 합장한다면 인간 세상에 태어날 업을 짓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 수승하고 오묘한 즐거움을 받으며, 마지막에는 부처님을 뵙고 묘과妙果108)를 증득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불전을 짓거나 수리하기, 승방을 조성하기’란 다음과 같다.
부처님 사리와 성스러운 형상을 봉안한 곳을 불전(佛廟)이라 하고, 스님들이 거닐고 앉고 눕는 곳을 승방僧房이라 한다. 사람들이 삼보를 공경하여 새로 짓거나 보수한다면, 얻는 공덕이 한량없을 것이다.

『비바사론毗波沙論』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구가 정사를 지을 때 다섯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고, 둘째 불법을 오래도록 성장시키기 위함이고, 셋째 평범하고 열등한 중생들이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없애기 위함이고, 넷째 장래의 제자들의 교만과 호사를 꺾기 위함이고, 다섯째 장래의 복업을 일으키기 위함이다.”109)

『현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수달 장자須達長者의 막내딸이 단정하기가 비할 데 없었는데, 국왕의 부인이 된 뒤 회임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곧 열어 보니 열 명의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외모가 단정하고 용맹함이 범상치 않았다. 장자가 기이하게 여겨 부처님 계신 곳에 데리고 나아가니, 부처님께서 설법을 해 주시어 어미와 열 명의 아이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아난이 그 숙세의 인연을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과거 비바시불毘波尸佛(Vipaśyin)께서 멸도하신 뒤 사리를 나누어 무수한 탑을 세웠다. 그중 한 탑이 무너지려 하는데, 한 노모가 그것을 보수하였다. 마침 열 명의 소년이 지나가다 우연히 보고 함께 수리하였는데, 이로부터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세상에 항상 함께 태어나 복락을 받더니, 이제 나를 만났으므로 출가하여 도를 얻은 것이다’라고 하셨다.”110)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위불維衛佛(Vipaśyin)께서 멸도하신 뒤 말법시대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불탑이 조금 무너진 것을 보고 진흙을 개어 보수하고, 아울러 금박을 사서 그 위에 발랐다. 이로부터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몸이 항상 금빛이었다. 마지막 생에는 가라위성迦羅衛城(Kapila) 한 장자의 집에 태어났다. 몸이 역시 금빛이니, 세상에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몸의 빛이 비추는 것은 모두 금빛이 되었다. 점차 나이 들어 부처님께 출가하니, 아라한과를 얻었다.”111)

『법구비유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한 아라한이 있어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지니고 계빈국罽賓國(Kaśmīra)에 이르러 남산에 탑을 세웠다. 항상 5백 아라한이 아침저녁으로 탑 주위를 돌며 예경하였다. 그때 산중에는 5백 마리의 원숭이가 있어 스님들이 탑 주위를 도는 것을 보고, 다 함께 돌을 짊어다가 스님들 흉내를 내어 탑을 세우고, 그 주위를 돌면서 예배하였다.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산이 무너지고 냇물이 넘쳐 원숭이들이 일시에 물에 빠져 죽어 버렸는데, 도리천에 태어나서는 곧장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5백 천자天子 모두 동시에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얻었다. …….”112)

여기서 인용한 한두 가지 인연은 모두 조그만 일로 인연을 맺은 것이니, 이와 같이 미약한 인연으로 받은 보답이 오히려 이 정도인데, 하물며 처음부터 선한 마음을 내어 전적으로 주관하고 운영하는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저 원숭이들이 스님 흉내를 내어 장난으로 한 것이 과보를 바꾸어 도를 증득한 것도 모골이 송연할 일인데, 하물며 타인을 위하여 정성껏 보시하고 얻은 공덕이야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성인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린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참 부처님은 형상이 없는데 거짓으로 형상을 세우고 귀의하여 소원을 비는 것은 전도된 것과 같다. 그러나 형상에 집착하는 범부들은 빈 곳을 향하여 공경심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형상을 빌어 참된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예를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이가 풀로 용을 만들어 빌면, 진짜 용이 비를 내려 주는 것과 같다. 거짓 형상이라도 세워 공경하면 참 부처님이 감응을 내려 주시니, 어찌 참인가 거짓인가 분별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타연왕경優陁延王經』113)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존께서 도리천에 오르시니 우타연왕이 우러러 흠모하는 마음을 품고 전단栴檀나무에 새겨 불상을 조성하고 공양하였다. 세존께서 내려오시니 불상이 일어나 문밖을 나서며 머리 숙여 공경히 맞이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사양하며 이르시기를, ‘나는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 것이지만, 불상은 스스로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복되고 이롭게 하리니, 내가 감히 그대 불상에 미칠 수 있겠는가’ 하시었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여 불상이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해 불상을 조성하는 공덕에 대해 곧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면 그 공덕은 한량없어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 복락을 누리며, 몸은 항상 금빛이고 눈은 청정하며, 모습이 단정하고 모든 상호가 구족되리라.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항상 제왕이나 대신이나 장자의 현명하고 선량한 집에 태어나 호사와 부귀를 누릴 것이다. 제왕이 되면 왕 중에 특별히 존귀할 것이고, 전륜왕이 되면 사천하를 다스리고, 천상에 태어나면 천인 가운데 가장 수승하고, 나아가 육욕천의 왕이 되어서 육욕천 중에 으뜸이 되고, 범천에 태어나면 항상 모든 범천의 존경을 받고, 마지막에는 무량수국無量壽國에 태어나 모든 보살 중에 으뜸이 되리라.”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임종할 때 남에게 불상을 조성하라 말한다면, 그 크기가 보리쌀만 하더라도, 이 사람은 80억 겁 동안에 지은 생사의 죄를 소멸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경에서는 “불상을 수리하는 것이 새로 짓는 것보다 수승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예전에 어떤 가난한 여인이 불상의 얼굴이 조금 손상된 것을 보수한 뒤 세세생생 얼굴이 금빛이고 부귀와 즐거움이 자재하였으며, 마지막 생에는 부처님을 만나 과위果位를 증득하였다. 또 어떤 장자는 손상된 손가락 하나를 보수하고 나서 세세생생 손가락에서 등불 같은 광명이 났고, 시체 보배(尸寶)114)가 항상 따라다녀 궁핍함이 없었고,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다.

아! 이와 같이 매우 작은 일을 했더라도 얻은 이익이 큰 것은 모두 위없는 복전에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봄에 한 알의 곡식을 심어 가을에 만 알의 곡식을 얻는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리라.

‘삼보를 노래하고 찬탄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경에서 말하였다.
“사바세계 중생은 이근耳根이 예리하기 때문에 음성으로 불사佛事를 삼는다. 그러므로 노래하고 찬탄할 때 다만 자기 마음만 공경심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저승과 이승의 일체중생도 보고 듣고 환희심을 내어 도道에 대한 마음이 늘어나니, 자신과 타인 모두를 이롭게 하는 공덕이 막대하다.”

‘탑을 청소하는 공덕’에 대하여 『보살본행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정광불定光佛이 멸도하신 뒤 정법의 시대가 끝날 무렵 어떤 가난한 사람이 땔나무를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땔나무를 주우러 숲으로 가다가 멀리 숲 속에 탑사塔寺가 있는 것을 보았다. 곧 그곳으로 가서 우러러뵙고 절을 하였는데, 다만 새와 짐승이 묵던 자리와 초목과 가시덤불 그리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 사람 자취가 끊어져 공양하는 이 하나 없는 것을 보았다. 가난한 이는 그것을 보고 슬픈 생각이 일어났다. 여래의 신비한 공덕을 분명히 아는 바는 없었지만, 다만 기꺼이 풀과 나무를 베어내고 더러운 것을 치우고 절을 하고는 돌아갔다. 이런 인연으로 목숨이 다한 뒤 그는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나 한량없는 복락을 누렸고, 천수天壽를 다한 뒤에는 1백 번 반복하여 전륜왕이 되어 사천하를 다스렸으며, 전륜왕의 복이 다한 뒤에는 항상 국왕이나 큰 가문의 장자가 되어 재물과 부귀가 한량없었다. 용모가 단정하여 보는 이마다 사랑하고 공경하였으며, 길을 나서고자 하면 도로가 저절로 깨끗해지고 허공에서는 꽃비가 흩어져 내렸다. 이와 같은 과보를 받으며 90겁이 지나고, 마지막 생에는 석가여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으니, 지금의 바다갈리婆多竭利 존자가 그 사람이다.”115)

『아함경阿含經』에서는 “어떤 사람이 온 염부제의 땅을 청소한다 하더라도, 소 한 마리 누울 만한 땅의 불탑을 청소한 것만 못하다.” 하였고, 어떤 이는 “목숨을 마치면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리라.……” 하였다.

‘꽃을 올린 공덕’에 대하여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위불維衛佛이 법을 남기신 가운데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탑에 이르러 보니, 꽃이 먼지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바로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공양을 올렸는데, 이 인연으로 91겁 동안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니, 몸이 유연하고 얼굴빛이 깨끗하며 재산과 부귀가 한량없고 큰 위덕威德이 있었다. 마침내 석존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으니, 지금의 위덕威德 비구가 그 사람이다.”116)

시든 꽃의 먼지를 털어 공양한 것이 감응 받은 바가 이러한데, 하물며 특별히 만들어서 공양한다면 그 복을 다 논할 수 없을 것이다.

‘향을 사르는 공덕’에 대하여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비바시불毘婆尸佛이 멸도한 뒤 법을 남기신 가운데 어떤 사람이 불탑에 들어갔다가 전단향을 태워 부처님 사리에 공양하였다. 이 인연으로 91겁 동안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났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전단향이 났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아라한과를 얻으니, 지금의 전단향栴檀香 비구가 그 사람이다.”117)

‘등을 밝히는 공덕’에 대하여 『현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위국舍衛國에 난타難陁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빈궁하고 외로운 몸으로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국왕 대신들이 다투어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난하고 천한 곳에 태어나 복전을 만났어도 심을 씨앗이 없으니, 훗날 받을 과보를 알 만하구나’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감상에 젖어 스스로 근심하다가, 곧바로 공양할 것을 마련하고자 종일토록 구걸을 하여 겨우 2전錢을 얻었다. 그것을 지니고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사는 데 쓰니, 등 하나 살 돈은 족히 되었다. 등을 가지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 앞에 밝히면서 발심하여 서원하기를, ‘제가 내세에는 지혜의 등불을 얻어 일체의 어둠을 소멸하게 하여지이다’이렇게 발원하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나갔다. 두터운 신심 때문에 여러 등불 가운데 그 불빛은 유독 밝고 아름다웠다. 새벽녘 하늘이 밝아올 무렵 목건련이 등불을 끄고자 하는데, 아무리 힘을 다해도 꺼지지 않으니, 부처님께서 이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크게 발심한 사람이 보시한 등이어서 그대들 성문이 움직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설령 그대가 사해의 바닷물을 붓는다 해도, 맹렬한 바람(毘嵐猛風)118)일지라도 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새벽이 되어 난타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자 부처님께서 ‘그대는 내세에 2아승기겁을 지나 장차 부처가 되리니, 이름이 등광왕불燈光王佛이며, 10호를 구족하리라’ 수기하셨다. 난타가 기뻐하며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니, 대중들에게 우러름을 받았다.”119)



『비유경譬喩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나율阿那律 존자는 과거세에 강도였다. 불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고 할 때에 탑 안의 불상 앞에 있는 등불이 꺼지려고 하였다. 화살로 바로잡아 밝혀 주었는데, 불상이 장엄하고 수려한 것을 보고는 털이 곤두서서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재물을 희사하여 복을 구하는데, 나는 어찌하여 훔치려 한다는 말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곧 버려두고 가 버렸다. 이것으로 91겁 동안 항상 좋은 곳에 태어나고 점차 모든 악을 버려서 복이 날로 늘어났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천안제일天眼第一의 과보를 얻으니, 삼천대천세계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과菴摩勒果 열매를 보듯 하였다.”120)
『대지도론』에서는 “다만 등촉만을 보시하고도 육천121)에 태어났으니, 몸에서는 항상 광명이 빛났다.”122)라고 하였다.

‘악기를 연주하여 공양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백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가비위성迦毘衛城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 집안이 매우 부유하여 재물과 보배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부인이 회임하여 열 달 만에 고깃덩어리(肉端) 하나를 낳으니, 불길하다 하여 곧 부처님께 가서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다만 잘 양육하여라’ 말씀하셨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났다. 7일째가 되었을 때 고깃덩어리가 열렸는데, 1백여 명의 동자가 있었고, 그 모습이 매우 단정하였다. 나이가 들어 형제 1백 명은 부처님께 출가하여 동시에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대중이 이를 보고 부처님께 전생의 인연을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과거 비바시불이 멸도한 뒤 왕이 탑을 세워 부처님 사리를 안치하고 공양하였다. 그때 같은 고을 1백여 명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며 그 탑에 공양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91겁 동안 인간 세상과 천상에 태어나고 복락을 누리더니, 이제 나를 만나 출가하여 과위를 증득한 것이다’라고 하셨다.”123)

‘스승과 부모를 봉양한다’라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간의 깊은 은혜는 부모보다 더한 것이 없고, 출세간의 큰 은혜는 스승을 앞서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부처님이 안 계시는 시대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곧 부처님께 공양하는 복덕과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타람본경墮藍本經』에서는 간단히 요약하여 말한다.
“어떤 사람이 복을 구하기 위하여 항상 보시를 행하는데, 금 발우에는 은 곡식을 담고 은 발우에는 금 곡식을 담으며, 금 솥에는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갖추고 보배 평상 위에 침구를 펴며,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보석들로 장식하였다. 이와 같은 물건의 수가 8만 4천이 되도록 남에게 보시하는 데 쓴다면 얻는 복덕이 한량없겠지만, 한술의 밥을 한 구도인求道人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1백의 구도인에게 공양한 것이 첫 번째 과를 얻은 이(初果人, 수다원)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첫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두 번째 과를 얻은 한 사람(二果人, 사다함)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두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세 번째 과를 얻은 한 사람(三果人, 아나함)에게 보시한 것만 못하고, 세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네 번째 과를 얻은 한 사람(四果人, 아라한)에게 공양한 것만 못하고, 네 번째 과를 얻은 1백 명에게 공양한 것이 부모에게 효도한 것만 못하다.”

『미륵보살권효게彌勒菩薩勸孝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堂上有佛二尊     안방에 계시는 존귀한 두 부처님
懊惱世人未識     번뇌하는 세상 사람들 알지 못하네.
不用金彩粧成     금빛 채색으로 단장하지 않았고
非是檀香雕刻     전단향으로 조각하지 않았네.
祇看現世爺娘     현세의 부모님이
便是釋迦彌勒     그대로 석가와 미륵인 줄 알아라.
若能供養得他     만일 그분들께 공양할 수 있다면
何用別作功德     별난 공덕을 짓는 일이 무슨 필요 있으랴.
乃至云在生甘旨無虧  살아 계실 때 봉양(甘旨)을 그치지 않으면
死後不須追憶     돌아가신 뒤 추모할 필요가 없나니
君能如是用心     그대 이와 같이 마음 쓴다면
天地龍神佑翼     하늘과 땅, 용신龍神이 도와주리라.

『보은경報恩經』에서는 “부모는 삼계에서 가장 수승한 복전이니라.”124) 하였고, 비나야毘奈耶에서는 “부처님께서는 비구가 마음을 다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부모에게 공양하는 것을 허락하셨나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받을 것이다.”125)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멋대로 계를 파괴할지언정 부모와 스승, 궤범사軌範師126)와 병자 등은 응당 공양해야 한다.” 하였고, “출가한 사람으로서 부모를 공양하는 이는 삼의三衣 이외에 자기에게 남는 물건, 혹 시주자에게 탁발한 것이거나 혹 승가에서 얻은 이양이거나 혹 승가에서 항상 먹는 것을 절반으로 나누어 공양할 수 있다. 항상 걸식하거나 자기 배 부를 만큼 주어지는 음식의 한도 내에서 절반을 취하여 그 부모를 구제하는 것을 허락한다.”127)라고 하였다.

『부사의광경不思議光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갖가지 음식과 진귀한 보배 등 갖가지로 공양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다. 인도하여 정법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은혜를 갚는 것이다.”128)

『자비참경慈悲懺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를 넘어선다. 왜 그러한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삼계三界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스승은 선법을 가르쳐서 삼유三有를 벗어나 깨달음을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129)

전기傳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세 마을에 아버지를 일찍 여읜 사람들이 자식 없는 노인 하나를 다 함께 아버지로 삼고 지성으로 봉양하여 현세에 천신의 도움을 받았다. 다섯 고을 사람들 중에서 어머니를 여읜 사람이 자식 없는 노파 하나를 다 함께 어머니로 삼고 마음을 다해 끝까지 효도하여 현세에 임금의 상으로 관직을 받았다.”

아! 타인을 부모로 삼고 섬겨도 그 효험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자기 몸을 받은 부모를 받들어 효로써 봉양한다면, 그 복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또 어떤 이는 대나무를 껴안고 울었더니 눈 속에서 죽순이 나왔고,130) 얼음을 두드리며 곡을 했더니 물 위로 물고기가 솟아올랐다131)는 이런 일도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스승과 부모는 버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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