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제1권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
의정(義淨) 한역
권영대 번역
그때 박가범(薄伽梵)께서 겁비라성(劫比羅城)의 니구율타 동산[尼俱律陀園]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이때 이 성안의 여러 석가 자손들이 한 곳에 모여 앉아 서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묻기를 ‘석가 종족 중에 누가 최초이며, 어디에서 태어났는가.1) 또한 어떻게 계승되었기에 존귀하며, 그 주자(胄子)2)는 대체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우리들은 이와 같은 차례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들 모두 세존께 가서 이것을 여쭈어 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받들어 따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의논한 여러 석가 자손들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에 가서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한쪽에 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그 일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저희들에게 묻기를 ‘석가 종족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누가 가장 먼저 태어났느냐, 누가 존귀한가, 적장자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저희는 이 일 때문에 이렇게 와서 여쭙는 것이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어 말씀해 주소서. 저희는 부처님의 지시대로 받들어 지니겠나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묵묵히 생각하셨다.
‘만약 나 자신이 석가 종족 가운데 존귀한 자가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여러 외도들은 ≺사문 교답마(喬答摩:싯다르타 고타마)가 스스로 석가 종족을 찬양하여 존귀해지기를 바란다≻고 비난할 것이다.’
또 생각하셨다.
‘나의 제자 가운데 누가 능히 석가 종족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대목련(大目連)이 이 일을 잘 말하여 줄 것이라 여기시고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선정에 들 것이니, 네가 석가 종족을 위하여 그 인연을 설명하여라.”
목련은 묵묵히 부처님의 지시를 받들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승가지(憎伽胝:憎伽梨)를 네 번 접어서 머리에 베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워 두 발을 포갠 뒤, 광명상(光明想)과 정념기상(正念起想)을 지어 이와같이 선정에 드셨다.
이때 구수(具壽:大德) 대목건련이 생각하였다.
‘지금 나도 이와 같이 선정에 들어 생각하고 관찰하면 석가 종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대중 앞에 나아가 높은 자리에 올라 가부좌를 하고 여러 석 가 종족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잘 들으시오. 이 세계가 처음 생길 때 이 대지는 하나의 바닷물이었으며 바람에 세차게 흔들려 마치 끓는 우유처럼 하나로 화합되었습니다. 이윽고 차갑게 식고 나니 응결이 생겼습니다. 바닷물 위도 역시 이와 같아서 지미(地味)3)가 생겨나고 색(色)과 향(香)과 맛[美] 등이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가 성립되었을 때 한 유정(有情)의 부류가 복명(福命)이 모두 끝나, 죽어서 광음천(光音天)으로부터 이곳으로 와서 태어났는데, 모든 감각을 온전히 다 갖추고, 몸엔 광채를 띤 채 허공을 타고 오고 가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음식을 삼고, 수명도 아주 길었습니다. 이때 이 세계는 해도 달도 별도 밤낮도 계절도 없었고,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나 신분의 귀천도 없었으며, 다만 서로서로 ‘살타살타(薩埵薩埵)’라는 말만 주고받을 뿐이었습니다.
이때 대중 가운데 한 중생이 탐욕의 성품이 있어 갑자기 손가락으로 지미(地味)를 찍어 맛보게 되었습니다. 맛을 봄에 따라 애착이 생겼고, 애착하였기 때문에 음식물[段食]4)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그 일이 처음으로 음식물을 섭취했던 일이었으니, 나머지 다른 중생들도 이렇게 먹는 것을 보고, 곧 서로 먹는 것을 배웠습니다. 먹고 나니 몸이 차츰 굳어지고 무거워졌으며, 광채도 없어져 모두 다 캄캄해졌고, 또 먹는 분량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자 얼굴빛이 차츰 퇴색하게 되었습니다.
빛이 차츰 감소하게 되니까 서로서로 ‘내 몸은 빛이 나서 기쁜데 네 몸은 빛이 줄었다’고 이야기하게 되었으며, 빛이 나서 즐거운 자는 자기의 빛을 의식하여 드디어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으며, 이 나쁜 마음 때문에 지미가 드디어 소멸되었습니다. 지미가 소멸되고 나니, 모든 중생들이 모여들어 서로 원망하고 한탄하는 마음을 일으켜 슬피 울고 고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
마치 세상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늘 그 좋은 맛을 기억하여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 신기하여라, 좋은 맛이여’라고 말하듯이 말입니다. 말은 비록 이렇게 하지만 그 뜻이 좋은 인연인지 나쁜 인연인지, 무슨 연유로 지미가 사라졌다고 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또 중생의 업 때문에 지병(地餅)이 나왔는데, 빛깔과 향기와 좋은 맛을, 마치 금빛 꽃이나 갓 익은 꿀처럼 다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병을 먹으며 장수하였습니다.
소식(少食)하는 자는 몸에 광채가 나지만 서로 경멸하고 업신여김으로 인하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결국 지병은 다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여러 중생들이 한 곳에 모여서 근심하고 걱정하며 서로 보고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괴롭고 괴롭구나. 우리들이 예전에 일찍이 이러한 나쁜 일을 만난 적이 있던가.’
이 모든 중생들은 지병이 없어지자 또한 역시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뜻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지병이 없어졌을 때에 모든 유정들의 복력으로 말미암아 임등(林虅)5)이 나왔는데, 빛깔과 향기와 맛이 갖추어져 마치 옹채화(雍菜花)나 새로 익은 꿀과 같았습니다. 이 임등을 먹으면서 장수하였습니다. 소식하는 자는 몸에 광채가 났는데 서로 경멸하고 업신여김으로 인하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임등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여러 중생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근심하고 걱정하며 서로 보면서 ‘너는 내 앞을 떠나라, 너는 내 앞을 떠나라’라고 하며, 마치 몹시 화가 나서 앞에 있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같아서……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임등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모든 중생들은 향기롭고 좋은 맛의 벼를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 않아도 저절로 나고, 겨나 쭉정이가 전혀 없었으며, 길이는 손가락 네 마디 정도였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베어내도 싹이 금방금방 돋아나와 아침저녁으로 익으며 자주 거두어들여도 이상이 없었고 이것을 먹으며 장수를 누렸습니다.
그때 저 중생들은 음식물을 섭취하였기 때문에 찌꺼기가 몸속에 쌓이게 되었으며, 이 찌꺼기를 배출하기 위해 곧 두 기관이 만들어졌고, 이 두 기관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남녀의 생식기가 생겨 서로 욕망이 불붙게 되었으며, 욕망이 불붙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서로 친근해져서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중생들은 이러한 일을 볼 때 오물과 쓰레기, 돌멩이를 그들에게 던지면서 ‘너는 못된 중생이구나, 이렇게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다니. 쯧쯧, 너는 왜 중생을 더럽히느냐?’라고 하면서 하룻밤, 나아가 일곱 밤을 같이 머물지 않고 대중들의 경계 밖으로 쫓아내기를, 마치 지금 시집가고 장가갈 때 향이나 꽃 등의 잡동사니들을 던지면서 ‘언제까지 편안하고 즐거워라’라고 축원하는 것과 같이 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옛적에 법이 아니던 것이 지금은 법이 되었고, 옛적에 율이 아니던 것이 지금은 율이 되었으며, 옛적에 혐오하고 천시하던 것을 지금은 아름답고 훌륭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쫓겨난 사람들이 악한 일을 행하기를 즐기면서 함께 모여 집과 방을 만들고 몸뚱이를 덮고 가려서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집을 짓게 된 최초의 동기이니, 사람들은 이로 인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법대로 하고 법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법 아닌 것을 법으로 여기고 행동하였습니다. 그 중생들은 배가 고프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벼를 갖고 와서 주린 배를 채우면서 다른 중생을 위해 남겨 놓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중생은 게을러서 아침에 일어나 벼를 가지러 갈 때 아예 저녁에 가져올 벼까지 합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저녁이 되어 동반자가 ‘벼를 가지러 가자’고 부르면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너 혼자 가지러 가라. 나는 아침에 벼를 가지고 올 때 이미 두 끼분의 양식을 한꺼번에 가지고 왔으니, 너 혼자 가야겠다. 나는 번거롭게 갈 필요가 없다.’
그러자 동반자는 이 말을 듣고 곧 마음속으로 찬탄하였습니다.
‘그거 매우 참 좋은 생각이다. 나도 가지러 갈 때 이틀분의 양식을 가지고 와야겠다.’
그때 또 다른 한 동반자가 이 말을 듣고 다시 말하였습니다.
‘그럼 나는 3일분의 벼를 가지고 와야지.’
또 다른 동반자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7일분의 벼를 가지고 와야지.’
그리고는 즉시 7일분의 벼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한 동반자가 와서 그 사람을 불러 함께 벼를 가지러 가자고 말하자,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지난번에 이미 7일분의 벼를 다 가지고 왔으니, 번거롭게 다시 갈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참 편리하겠구나. 나도 오늘 가면 보름이나 한 달분의 벼를 가지고 와야지.’
이렇게 하여 수가 점점 갑절로 늘어남에 따라 탐하는 마음도 날마다 더욱 불어나게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벼에서 겨와 쭉정이가 생기게 되었다. 또 처음엔 벼가 아침에 배면 저녁에 다시 돋고 저녁에 베면 아침에 다시 돋아나도 그 열매가 영글었었는데, 이와 같은 탐심과 애욕으로 인하여 벼를 한 번 벤 뒤에는 벼가 다시는 나지 않았으며, 설령 나더라도 그 열매가 점점 작아지고 영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여러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베어 갔으며, 어쩌다 남아 있던 벼는 점점 작아지고 영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러 중생들이 다시 한 곳에 모여서 서로 함께 슬피 탄식하며 말하였습니다.
‘옛적에 우리들은 몸에 빛이 나고 자유자재로 날아다녔으며, 단정함과 위엄을 갖추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음식을 삼아 배를 채웠다. 그 뒤에 지미(地味)로 먹이를 삼아 그것을 먹을 때는 오히려 향기롭고 맛이 있었는데, 그 지미를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우리들의 몸은 굳어지고 무거워졌으며, 나중엔 광명이 없어지고 신통력마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둡고 해로운 갖가지 일들을 잇달아 당하게 되었다.
모두들 슬피 울면서 마음 아파하자,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났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음) 많이 먹은 사람은 몸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고 적게 먹은 사람은 아직도 몸이 빛나고 기분이 좋았다. 이 두 가지 식사 때문에 마침내 두 종류의 얼굴이 생겼으며, 이 두 종류의 얼굴 때문에 그들은 서로 경멸하고 천대하면서 ≺나는 잘 생겼고 너는 못생겼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 사람이 서로 경시하고 헐뜯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차츰차츰 착하지 못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지미(地味)도 다 사라지게 되어 사람들은 이를 슬퍼하며 한탄하였다.
그 뒤에 지병(地餠)이 나와서 빛깔과 향기가 훌륭한 맛을 다 갖추었기에 우리들은 그것을 먹고 오래오래 살았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사람은 몸의 광채가 어둡게 변했고 적게 먹은 사람은 몸이 아직 빛나고 편안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얼굴 때문에 마침내 두 종류의 좋고 나쁜 무리가 생겨 서로 경시하고 헐뜯게 되었으며, 경시하고 헐뜯음으로 말미암아 점차 착하지 못한 마음으로 바뀌었고, 지병도 다 사라지게 되어 우리들은 슬퍼하고 고뇌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 임등이 나오게 되었는데, 좋은 빛ㆍ향기ㆍ맛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우리들이 그것을 먹고 오래오래 살게 되어 오래 사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몸의 광채가 줄어들어 어두워졌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몸이 빛나고 편안했다. 결국 임등이 사라지고 다시 벼라는 곡식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벼는 심지 않아도 저절로 났고 겨나 쭉정이가 없었으며 길이는 손가락 네 마디만하고 향내와 좋은 맛이 갖추어져 우리들은 그것을 먹고 몸이 건강했다. 이 벼를 먹은 사람은 세상에 오래도록 살게 되었지만, 탐욕의 마음이 쌓이게 되자 그 벼는 작고 부실하게 되었으며, 겨와 쭉정이는 더욱 심하게 되었다. 또 그 벼는 힘이 없게 되었고, 한 번 베면 다시는 나오지 않게 되어 어쩌다가 조금 남게 되었다.’
이것을 들은 여러 중생들은 다시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땅을 나누어 경계를 만들자.’
이때 땅을 측량하여 경계를 만들게 되었는데, 각각 그것을 측량하여 경계를 만들어 나누어 가져서 ‘이것은 네 땅이고, 이것은 내 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간에서는 땅에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경계와 밭두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 어떤 중생이 자기의 밭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곡식을 훔쳤는데, 이를 본 어떤 중생이 그에게 ‘너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곡식을 훔치느냐. 이번 한 번은 훔친 것은 눈감아 주겠지만 이 뒤로 다시는 훔치지 말라’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생은 훔칠 생각을 그치지 않고 그 이튿날도 셋째 날도 역시 훔쳤습니다.
이를 본 여러 사람들이 다시 충고하기를 ‘너는 세 번씩이나 훔쳤으며 여러 번 훔치지 말기를 권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군중들에게 끌고 가서 모든 것을 다 말하였습니다. 군중들은 모두 그에게 ‘너는 너의 밭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밭에 있는 곡식을 세 번씩이나 훔치느냐’라고 충고하고는 즉시 놓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벼를 훔친 자가 대중에게 말하길 ‘고작 하찮은 벼 때문에 지금 나를 붙들어 추궁하고, 대중 앞에서 나를 헐뜯고 욕하는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대중은 다시 그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하찮은 벼 때문에 사람을 붙잡고 욕하고 헐뜯었다고 생각하여 도리어 대중을 향해 욕하느냐?’라고 하니, 그 뒤에야 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도둑으로 인하여 서로 헐뜯고 욕하는 것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대중들은 모두 모여서 의논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번 일을 다 보았다. 다른 사람의 곡식을 훔친 자와 그를 본 대중이 서로 헐뜯고 있으니,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죄인인지 알 수 없다. 우리들의 생각으론 대중 가운데서 얼굴빛이 단정하고 그 모습이 완전하며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지주(地主)로 삼아서 허물이 있는 자는 벌(罰)로 다스리고 허물이 없는 자는 양육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들이 농사짓는 밭은 각자 법대로 여섯 등분하여 그 중 한 등분을 지주에게 주도록 하자.’
그때 대중 가운데 위에서 말한 조건을 두루 갖춘 덕 있는 사람을 뽑아서 즉시 지주(地主)로 삼았습니다. 그때 대중들은 지주에게 말했습니다.
‘대중 가운데 이를 어기는 자가 있거든 법에 따라 벌로써 다스리고, 어기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보호해 주기를 청합니다. 우리들이 농사짓는 밭은 모두 법대로 여섯 등분하여 그 가운데 한 등분을 주겠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주가 생겨났습니다. 그때 지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허물이 있는 자는 법에 따라 벌로써 다스리고, 범하지 않은 자는 법에 따라 보호하겠다.’
그때 대중들은 곡식을 심을 만한 밭을 모두 법에 의해 여섯 등분으로 나누고, 그 중 한 등분은 지주에게 주었습니다.
대중들이 다 동의하여 지주로 세웠으므로 대동의(大同意)라 이름하였고, 못나고 약한 자를 능히 옹호했으므로 찰제리(刹帝利)라 이름하였으며, 능히 법대로 나라를 다스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계행(戒行)과 지혜를 기뻐하도록 하였으므로 또한 이름을 대동의왕(大同意王)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왕이 취임할 때 사람들은 그를 유정대등의왕(有情大同意王)이라고 불렀으며, 그 아들의 이름은 의요(意樂)인데 곧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중생들은 그를 근래의요왕(近來意樂王)이라 불렀으며, 그 아들의 이름은 선덕(善德)이었습니다.
여러분, 선덕왕(善德王) 때 모든 중생들은 그를 염자선덕왕(黶子善德王)이라고 불렀고, 아들의 이름은 최승선(最勝善)이라고 불렀는데,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또 그때 중생들은 그를 운인최승선왕(雲咽最勝善王)이라고 불렀으며, 그 자식은 장정(長淨)이라고 불렀는데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중생[有情]들은 왕을 다라상가장정왕(多羅尙伽長淨王)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정수리 위에는 조그만 부스럼 자국이 있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이 마치 부드러운 목화솜이 겹겹으로 쌓인 것 같았고, 이것이 점차 불어났지만 한 번도 아프거나 괴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 차츰 농후해지더니 결국 터져서 한 어린아이를 출생하였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상(大丈夫相)을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정수리로부터 출생하였으므로 정생(頂生)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장정왕(長淨王)은 부인이 6만 명이었습니다. 그때 부왕(父王)이 정생을 데리고 후궁6)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6만 부인은 정생을 보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내니 젖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왕에게 ‘내가 기르겠어요. 내가 기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다시 지양(持養)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지양은 즉위하여 왕이 되었는데, 그때 중생들은 모두 사유(思惟)하고 서로 묻고 의논하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였으며, 각각 한 가지의 재주를 익혔습니다. 이때 저 중생들은 자세히 헤아렸으며, 미노사(未努沙)이곳 말로 인(人)이다.는 앞의 여섯 왕과 같이 무량한 수명을 누리면서 오래오래 세상에 살았습니다.
이때 지양왕은 오른쪽 넓적다리에 종기가 하나 생겼는데, 부드럽기가 목화솜 같았고 점점 불어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점차로 농후해지더니 마침내 터지자, 그곳에서 동자 한 명이 나왔는데, 용모가 단정하였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단정했기 때문에 이름을 단엄(端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즉위하여 왕이 되었는데, 큰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대주(四大洲)에서 자유자재하였습니다.
단엄왕은 왼쪽 넓적다리에 종기가 생겼는데, 부드럽기가 목화솜 같아서 차츰차츰 커져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농후해져 터져서 한 동자를 낳았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로 그 몸을 장엄하여, 단엄하기가 왕에 가까웠으므로, 이름을 근단엄(近端嚴)이라 하였습니다. 곧 그는 왕이 되었는데, 역시 위력이 있어 3대주(大洲)를 다스림에 그 풍화(風化)가 자재했습니다.
그 단엄왕의 오른쪽 발 위에 갑자기 종기가 났는데 부드럽기가 마치 솜털 같았고 날마다 자라났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차츰 익은 뒤엔 터져서 한 동자를 낳았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구비하여서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그는 오른쪽 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단엄족생(端嚴足生)이라 하였는데, 그는 즉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위덕이 자재하여 왕으로서 2대주(大洲)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단엄족왕의 왼쪽 발 위에 갑자기 종기가 났는데 부드럽기가 마치 솜털과 같았고, 날마다 자라났으나 아프지 않았으며, 차츰 익은 뒤엔 터져서 한 동자를 낳았는데, 서른두 가지 상호를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였습니다. 그는 왼쪽 발에서 단엄을 내기 태문에 극단엄(極端嚴)이란 이름하였습니다. 그는 즉위하여 왕이 되었고, 위덕이 자재하여 1대주(大洲)의 왕이 되었습니다.
대동의왕(大同意王)의 자식은 이름이 의요(意樂)이고, 의요왕의 자식은 이름이 선덕(善德)이며, 선덕왕의 자식은 이름이 최승(最駱)이요, 최승왕의 자식은 이름이 장정(長淨)이요, 장정왕의 자식은 이름이 지양(持養)이요, 지양왕의 자식은 이름이 단엄(端嚴)이요, 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근단엄(近端嚴)이요, 근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유단엄(有端嚴)이며, 유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극단엄(極端嚴)이요, 극단엄왕의 자식은 이름이 애락(愛樂)이요, 애락왕의 자식은 이름이 선락(善樂)이요, 선락왕의 자식은 이름이 능사(能捨)요, 능사왕의 자식은 이름이 극사(極捨)요, 극사왕의 자식은 이름이 지거(支車)요 ,
지거왕의 자식은 이름이 엄거(嚴車)요, 엄거왕의 자식은 이름이 소해(小海)요, 소해왕의 자식은 이름이 중해(中海)요, 중해왕의 자식은 이름이 대해(大海)요, 대해왕의 자식은 이름이 서조(瑞鳥)요, 서조왕의 자식은 이름이 대서조요, 대서조왕의 자식은 이름이 향초요, 향초왕(香草王)의 자식은 이름이 근향초(近香草)요, 근향초왕의 자식은 이름이 대향초(大香草)요, 대향초왕의 자식은 이름이 선견(善見)이요, 선견의 자식은 이름이 대선견(大善見)이요, 대선견의 자식은 이름이 극애(極愛)요,
극애의 자식은 이름이 대애(大愛)요, 대애의 자식은 이름이 묘성(妙聲)이요, 묘성의 자식은 이름이 대묘성(大妙聲)이요, 대묘성의 자식은 이름이 작광(作光)이요, 작광의 자식은 이름이 유위(有威)요, 유위의 자식은 이름이 광대(廣大)요, 광대의 자식은 이름이 대미루(大彌樓)요, 대미루의 자식은 이름이 유미루(有彌樓)요, 유미루의 자식은 이름이 광혜(廣慧)요, 광혜의 자식은 이름이 염광(艶光)이요, 염광의 자식은 이름이 유염(有艶)이요, 유염의 자식은 이름이 대염(大艶)이었습니다.
대염왕의 아들ㆍ손자ㆍ증손ㆍ현손들은 부다라성(富多羅城)에서 다시 자손들을 낳아 백대(百代)까지 내려갔으며, 마지막 왕은 이름이 조원(調怨)이었습니다. 이 조원은 원망하고 적대시하는 모든 상대를 능히 조복(調伏)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조원왕이라 한 것입니다.
이 조원왕의 무투성(無鬪城)에서 대대로 왕 노릇을 하며 5만 4천 대(代)에 이르렀는데, 그 성(城)에서 바른 법(正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무능승(無能勝)인데, 바라닐사성(波羅痆斯城)에서 자손대대로 왕 노릇하며 6만 3대(代)에 이르도록 그 성안에서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최후의 왕이 난당난당왕(難當難當王)인데, 옛적 금비라성(金毗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8만 4천 대에 이르렀습니다. 맨 마지막 왕의 이름은 범수(梵授)였는데, 범수왕은 상조성(象造城) 안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3만 7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상수(象授)였는데, 이 상수왕은 삭석성(削石城) 중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5천 대를 지났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급시왕(及時王)이었는데, 급시왕은 광견골성(廣肩骨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3만 2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은 동승력(童勝力)이었는데, 그 다음 대의 승력왕(勝力王)이 무승성(無勝城) 중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3만 2천 대(代)가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은 상승(上勝)이었는데, 그 다음 대의 상승왕(上勝王)이 묘동녀성(妙童女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1만 2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승군(勝軍)이었는데, 승군왕(勝軍王)은 섬바성(贍婆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1만 8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용천(龍天)인데, 그 용천왕은 말리성(末利城)에서 자손 대대로 2만 5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인천(人天)인데, 인천왕은 다마율지성(多摩栗坻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을 하며 1만 2천 대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해천(海天)인데, 해천왕은 환희성(歡喜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1만 8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이 선혜(善惠)인데, 이 선혜왕은 왕사성(王舍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2만 5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제암(除闇)인데, 이 제암왕은 바라닐사성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백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대제군(大帝軍)인데, 그 대제군왕은 구시나성(俱尸那城)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8만 4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했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해신(海神)인데, 그 해신왕은 포다라성(布多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1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수행(修行)인데, 그 수행왕은 구시나성에서 자손 대대로 왕 노릇하여 8만 4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광면(廣面)인데, 그 광면왕은 역시 바라닐사성에서 자손 대대로 10만 대가 지니도록 바른 법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지주(地主)인데, 그 지주왕은 무전성(無戰城)에서 자손 대대로 1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지대지(持大地)인데, 그 지대지왕은 미치라성(彌恥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8만 4천 대에 이르도록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대천(大天)인데, 그 대천왕은 역시 미치라성 중에서 자손 대대로 대천이란 이름으로 왕 노릇하며 선통(仙通)을 얻고 계행을 닦아서 바른 법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이 니미(你彌)이며, 니미왕의 자식은 이름이 정사왕(正謝王)이었습니다. 그의 자식은 이름이 견(堅)이요, 그 다음은 이름이 거로(佉努)이며, 그 다음은 근거로(近佉努)이며, 그 다음은 유거로(有佉努)이며, 그 다음은 극거로(極佉努)이며, 그 다음은 선견(善見)이며, 그 다음은 정견(正見)이며, 그 다음은 군청(軍聽)이며, 그 다음은 오료(悟了)이며, 그 다음은 대오(大悟)이며, 그 다음은 오군(悟軍)이며, 그 다음은 무(無憂)이며, 그 다음은 이우(離憂)이며, 그 다음은 속과(續果)이며, 그 다음은 선합(善合)이며, 그 다음은 대성(大聲)이며, 그 다음은 살대성(殺大聲)이며, 그 다음은 명단(明旦)이며, 그 다음은 방주(坊主)며, 그 다음은 투전(鬪戰)이며, 그 다음은 생포(生怖)며, 그 다음은 경희(慶喜)며, 그 다음은 경문(鏡門)이며, 그 다음은 능생(能生)이며, 그 다음은 보생(普生)이며, 그 다음은 최승(最勝)이며, 그 다음은 음식(飮食)이며, 그 다음은 다음식(多飮食)이며, 그 다음은 난승(難勝)이며, 그 다음은 극난승(極難勝)이며, 그 다음은 안립(安立)이며, 그 다음은 선립(善立)이며, 그 다음은 대력(大力)이며, 그 다음은 승대력(勝大力)이며, 그 다음은 선혜(善慧)이며, 그 다음은 승견고(勝堅固)이며, 그 다음은 십궁(十弓)이며, 그 다음은 백궁(百弓)이며, 그 다음은 신궁(新弓)이며, 그 다음은 묘색궁(妙色弓)이며, 그 다음은 승궁(勝弓)이며, 그 다음은 견궁(堅弓)입니다. 또 그 다음은 십만(十䡬)이며, 그 다음은 백만(百䡬)이며, 그 다음은 천만(千䡬)이며, 그 다음은 모색만(妙色䡬))이며, 그 다음은 뇌만(牢䡬)입니다.
여러분, 이 뇌만왕은 선의성(善議城)에서 자손들이 7만 7천 대를 이어갔으며 그 마지막 왕의 이름은 과선왕(果仙王)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과선왕에게 자식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용호(龍護)였으며 이 용호는 저 바라닐사성(波羅痆斯城)에서 자손들이 대를 이어 백한 대에 이르렀습니다. 그 맨 마지막 왕의 이름은 길지(吉枳)였는데, 그때 가섭파(迦葉波)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박가범(佛薄伽梵)께서 세상에 오셨으며, 이때 석가모니보살(釋迦牟尼菩薩)이 가섭불(迦葉佛)의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 청정한 행을 닦고, 도사다천(都史多天: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길지왕(吉枳王)에게 자식이 있었는데, 이름이 선생(善生)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선생왕은 보다라성(補多羅城)에서 자손 대대로 이어가며 백한 대를 지났습니다. 맨 마지막 왕의 이름이 이생(耳生)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생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는 교답마(喬答摩:고타마)요, 하나는 파라타사(波羅墮闍)였습니다. 교답마는 출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파라타사는 국왕이 될 생각을 가졌습니다. 교담마가 부왕을 보니, 그릇된 법이 올바른 법이 되고 올바른 법이 그릇된 법이 된 채 나라를 다스리고 정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약 부왕이 죽고 나면 내가 왕이 될 텐데, 올바른 법이 그른 법이 되고 그릇된 법이 올바른 법이 되었으니, 이렇게 나라를 다스리면 나는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게 된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어떤 방편을 써야만 출가하여 괴로움을 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부왕의 처소로 가서 절하고 합장한 뒤 부왕께 말씀드려 즉시 출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보시하여 천신(天神)에게 공양하고 불을 섬기며 고행하면서 국왕의 자리를 구하는데, 너는 지금 그 자리를 이미 얻어서 내가 죽고 나면 네가 그 자리를 이을 텐데, 너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것을 버리고 출가하려고 하느냐?’
교답마가 아뢰었습니다.
‘제가 보니 국왕께서는 그른 법을 올바른 법으로 삼고 올바른 법을 그른 법으로 삼으시는데, 이 죄업으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것이 두려워 출가를 하려고 하니, 대왕께서는 자비심으로 저의 이 소원을 들어주소서.’
그때 왕은 아들이 끝내 출가하리라고 마음먹은 것을 알고는 곧 말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놓아줄 터이니, 네 뜻대로 가거라.’
그때 왕자는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매우 즐거워하였습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이름이 흑색(黑色)이었습니다. 왕자는 부왕과 모든 권속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하직하고는, 그곳을 떠나 흑색 선인에게로 가서 법대로 꿇어 앉아 두 발에 절하고 선인에게 말하기를 ‘저는 지금 출가하고 싶으니, 선인께서는 자비심을 베풀어 저의 출가를 허락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인은 즉시 그 소원을 들어주었고, 왕자는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과일과 나무껍질 그리고 나무뿌리를 먹고 살았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교답마 선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부왕은 곧 명을 내려 둘째 왕자 파라타사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때 교답마 선인은 늘 과일과 나뭇잎만 먹은 탓으로 곧 병에 걸리게 되자, 스승[鄔波馱耶]7)에게 ‘저는 지금 마을로 가서 음식을 얻어먹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흑색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인에게 법이 있으니, 바로 6근(根)은 단속하고 6경(境)은 멀리 여의는 것이다. 산골짜기에 있거나 마을에 들어가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만약 네가 이 선법(仙法)만 지닌다면, 네 뜻대로 가도 좋다. 가까운 보다라성(補多羅城)에 가서 초막을 짓고 머물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교답마는 스승의 지시를 받고 절한 뒤에 떠났다. 보다라성 근처에 이르러 조용한 숲속에 초막을 짓고 걸식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이때 보다라성에는 초현(招賢)이라는 음란한 여자가 있었는데, 겉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여러 사람들 좋아하였다. 또 이때 밀날라(密捺羅)라는 좋지 못한 사람이 살았는데 음란한 마음을 품고 영락과 좋은 옷을 그 음녀에게 보내어 그녀에게 장가들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그 여인은 보내온 영락과 좋은 옷을 입고 그에게 가려고 문을 나섰습니다.
그때 문 옆에 지키고 있던 한 사람이 은전 5백을 그녀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나와 함께 즐기자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 은전 5백이 나의 눈앞에 있는데 어찌 내가 이것을 갖지 않겠는가. 내가 이것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즉시 돈을 받고는 그와 함께 즐겼습니다. 그리고 음녀는 자기의 여종을 밀날라에게 보내어 ‘아직 몸단장이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 뒤에 가겠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여종은 그 여인의 지시대로 밀날라의 처소로 가서 그대로 말했습니다.
이때 은전 주인은 다른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있다가 그냥 가버렸습니다. 음녀는 다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가버렸으니 당초의 약속대로 간다고 해도 늦지 않겠구나’ 하고, 여자 종을 시켜 밀날라에게 가서 ‘내 몸단장이 이제 끝났으니 어느 숲에서 만나면 되겠느냐’고 묻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종은 그의 말대로 밀날라에게 가서 그녀가 시킨 대로 말하였습니다.
이때 밀날라는 대답하기를 ‘어리석은 너의 아씨는 아직 몸단장을 덜했다고 했다가 이제는 또 몸단장을 다 했다고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 여종은 아씨인 음녀와 묵은 감정이 있던 터라 즉시 밀날라에게 말하기를 ‘우리 아씨는 아직 화장을 덜 마친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준 영락과 좋은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 다른 사내를 만나러 갔던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밀날라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음욕의 마음은 싹 사라지고, 그 여인을 해쳐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시녀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너희 아씨에게 가서 몸단장이 끝났으면 아무개 숲으로 오라고 말하여라.’
시녀는 즉시 음녀에게 가서 그가 말한 대로 전했습니다. 음녀는 그 말을 듣고 영락으로 몸을 장식하고 즉시 그 숲으로 가서 밀날라를 만났습니다. 밀날라는 성난 목소리로 ‘이 고얀 음란한 계집아, 어찌하여 너는 내가 준 영락과 옷으로 단장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음녀는 곧 ‘거룩한 이[聖子]여, 여인네란 늘 이런 허물이 있는 것이니 용서하시오’라고 애원하였으나, 밀날라는 분을 참지 못하고 즉시 날카로운 칼을 빼서 그 음녀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때 음녀의 여종은 즉시 큰 소리로 ‘도적이 우리 아씨를 살해하였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리를 들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때 이 숲속의 한 초막에는 교답마 선인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밀날라는 군중들이 모여들자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피할 곳이 없게 되자 마침내 피가 묻은 칼을 들고 교답마 선인이 머무는 초막으로 가서 초막 앞에 칼을 세워두고 자신은 군중 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음녀의 죽음을 본 군중들은 범인의 자취를 쫓다가 초막 앞에 있는 피가 묻은 칼을 보고, 즉시 선인(仙人)을 붙잡고 말하였습니다.
‘너는 선인의 탈을 쓰고 어찌 이렇게 못된 짓을 저지를 수 있느냐?’
이때 선인은 말하였습니다.
‘내게 무슨 허물이 있느냐?’
군중은 다시 말하였습니다.
‘너는 여인과 더불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고, 더구나 그 생명까지 빼앗았다.’
선인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그와 같은 악업을 짓지 아니하였다.’
그렇지만 군중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즉시 선인을 묶어서 왕에게 데리고 가서 아뢰었습니다.
‘이 사람은 음녀와 더불어 나쁜 짓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을 살해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왕은 재차 심문하지 않고 즉시 벌을 줄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 선인을 뾰족한 나무 위에 앉히고 머리에는 붉은 가발을 씌우고는, 푸른 옷을 입은 전다라(旃陀羅)들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선인의 주위를 둘러싸고 선인을 데리고 북을 치며 성안을 돌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이 선인이 이와 같은 죄를 저질렀음을 모두 아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남문으로 나와서 뾰족한 나무 위로 선인을 던졌습니다.
이때 흑색 선인이 이 선인을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여 곳곳으로 찾아다니다가, 뾰족한 나무 위에 내던져진 선인을 보자 마음이 상하여 슬피 울면서 물었습니다.
‘너는 무슨 일로 이와 같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냐?’
이때 교답마 선인은 목메어 슬피 울면서 스승에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업보인데, 누구인들 피할 수 있으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오파타야가 다시 물었습니다.
‘선자(善子)여, 너는 이렇게 상처를 입었으니 모든 법을 행함에 있어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겠는가?’
선인이 스승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 몸은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마음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말하였습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선인이 스승에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사실만을 말하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의 마음이 참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스승의 검은 얼굴이 금빛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 선인은 금빛으로 변하였고, 흑색 선인이 금색으로 변했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 말이 사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 스승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도 신기하고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교답마 선인은 다시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지금 목숨을 버린다면 어떤 세상에 태어나겠습니까?’
스승이 다시 물었습니다.
‘선자(善子)여, 외도인 참된 바라문법에서는 아들이 없는 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고들 말한다. 너는 아들이 있느냐?’
교답마가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옛적 궁중에서 어릴 적부터 수도(修道)하기를 좋아하여 늘 집을 버리고 나가 범행(梵行)을 닦았는데, 어떻게 자식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스승이 말하였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마땅히 지난 일을 생각해 보아라.’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상처를 입어 어찌나 아픈지 마치 칼로 마디마디를 베어내는 것과 같아 오직 목숨을 버릴 생각만 하는데, 무슨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스승의 신통력으로 큰 비바람을 일으켜서 교답마의 몸을 씻어내자, 마침내 고통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옛날 행했던 음욕(淫欲)의 일이 생각나면서 몸 안에 있던 두 방울의 정혈(精血)이 몸 밖으로 나와 땅에 떨어지더니, 업력(業力)으로 인하여 두 개의 알이 되었습니다. 다른 경들에 있는 설명을 따르면, 네 가지 부사의(不思議)한 일이 있으니, 첫째 모든 부처님 경계의 부사의함이요, 둘째 용(龍)의 부사의함이며, 셋째 세간 심의(心意)의 부사의함이고, 넷째 모든 중생들의 업력인 이숙(異熱)의 부사의함인데, 바로 이 업력으로 말미암아 알이 된 것입니다. 그 알은 햇빛을 받아 차츰 성숙되어 각각 한 명의 동자(童子)로 태어났습니다. 알이 생긴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감자원(甘蔗園)이 있었는데 두 동자는 그 동산에서 놀았으며, 복력(福力)으로 인하여 얼굴이 날마다 좋아졌습니다.
교답마는 햇볕에 그을리다가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금색으로 변했던 선인이 그 이튿날 아침에 가보니, 교답마는 벌써 명이 다하였고 땅 위에는 알은 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동자의 발자국을 따라 찾아가다가 감자원에 이르러 동자를 만났습니다. 이때 선인은 선정에 들어서 이 두 동자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구의 아들인가를 관찰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교답마의 몸에서 난 자식들임을 알게 되자 곧 사랑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동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매일 잘 보살피고 키우니, 동자들은 점차 장대해졌다. 그들의 이름을 난생(暖生)이라고 하였으니, 이로 인해 일종(日種)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교답마(喬答摩)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하여 교답마(喬答摩)라고 이름하였으며, 또한 본 몸[本身]에서 났다고 하여 신생(身生)이라고 이름했으며, 감자원에서 얻었다고 하여 감자종(甘蔗種)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네 가지의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 뒤 어느 때 파라타사왕(波羅墮闍王)이 아들이 없이 죽자, 여러 신하들은 모여서 ‘왕에게 아들이 없으니, 누구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할까’ 하고 함께 염려하였습니다. 어느 신하가 ‘왕에게 교답마라는 형이 있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도를 닦으려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왕족의 서열에 따르면 그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참으로 합당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논의하고 곧 금색 선인의 처소로 가서 절하고 합장한 뒤 물었습니다.
‘위대한 선인이여, 우리 국왕의 형이신 교답마 선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금색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너희들이 살해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신하들은 다시 선인에게 물었습니다.
‘교답마께서 출가하신 이래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어떻게 살해할 수 있습니까?’
금색 선인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것에 대해 알려 주겠다. 고답마는 일찍이 아무런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너희들에게 살해되었느니라.’
신하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살해를 했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그 금색 선인은 즉시 앞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우리들의 죄입니다’ 하고 말하자, 두 동자가 곧 금색 선인의 곁으로 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두 동자는 어느 종족입니까?’
금색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교답마의 아들이오.’
여러 사람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두게 되었으며, 이름은 무엇입니까?’
금색 선인은 곧 앞에서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곧바로 손위 동자를 선인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를 모셔 호위하고, 귀국하는 대로 왕으로 책봉하였는데, 그 왕도 나라를 맡아 다스린 지 오래지 않아서 자식이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산중으로 들어가 그의 아우인 동자를 맞아 와서 왕위를 잇게 하였는데, 이름을 감자왕(甘蔗王)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감자왕은 보다륵가성(補多勤迦城)당나라 말로 유소(幼小)이다.에서 자손 대대로 계승하여 백일(百一) 대(代)를 지났는데, 둘째 임금 이하 모두 감자종(甘蔗種)으로 이름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때의 임금 이름은 군장왕(軍將王)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감자군장왕(甘蔗軍將王)으로 알았으며, 또 일명 증장(增長)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임금은 네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각각 일남 일녀씩 두었습니다. 네 왕자 이름은 첫째가 화거면(火炬面), 둘째가 대이(大耳), 셋째가 상행(象行), 넷째가 보천왕(寶釧王)이었습니다. 네 명의 부인이 다 죽자, 감자군장왕은 궁궐 안에서 슬픔과 시름으로 고뇌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입궁하여 군장왕이 시름에 젖어 편안치 못한 것을 보고 왕께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왕께서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시름에 젖어 있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 나라의 왕비들이 다 죽었는데, 어찌 내가 시름에 젖지 않을 수 있느냐?’
그때 여러 신하들이 왕께 아뢰었습니다.
‘왕께서 그런 것 때문에 근심하시다니요. 이웃 나라의 왕들에게 모두 훌륭한 공주들이 있으니, 왕께서는 저희들에게 후비(后妃)를 책봉토록 명을 내리시기만 하소서.’
왕이 다시 말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고 모두 장성하여 후사가 될 수 있는데, 누가 나의 왕비가 되겠느냐?’
여러 신하들이 다시 말하였습니다.
‘왕께서는 다만 신들에게 명령만 하십시오. 왕을 위하여 사방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이때 어느 한 나라에 공주가 있었는데, 매우 단정하여 왕후로 책봉될 만하였습니다, 다 알아보고 난 신하들은 즉시 와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신 등이 지금 알아보니, 아무개 나라의 왕녀가 얼굴이 매우 단정하여 왕후가 될 만합니다.’
왕은 ‘좋다’고 허락하였습니다. 사신은 즉시 떠나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왕에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국왕이 사신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라는 후미진 나라인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그때 사신이 아뢰었습니다.
‘우리 군장왕께서 대부인이 죽자, 왕의 따님이 왕후가 될 만하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를 보내어 그 일을 상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왕은 즉시 허락하였고, 또 사신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너희 왕이 만약 나와 친교를 맺겠다면, 마땅히 먼저 나와 맹세할 것이 있다. 나의 딸이 아들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사신은 이 말을 듣고, 본국에 돌아가면 그러한 왕의 뜻을 모두 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신은 본국에 돌아가 왕에게 절하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나에게는 장자(長子)가 있다. 설령 그 왕녀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왕위를 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군신들은 함께 왕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왕께서는 다만 그녀를 왕후로 책봉만 하소서. 그녀는 사내아이를 낳은 수도 있고, 혹은 딸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혹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석녀(石女)일 수도 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일을 미리 걱정하십니까? 원컨대 왕께서는 어서 본래의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기나 하소서.’
왕은 ‘좋다’고 하였습니다. 즉시 그 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맹세를 지키겠다고 하고, 곧 국법에 의해 그 여자를 맞아 왕후로 삼았습니다.
증장왕(增長王:군장왕의 다른 이름)은 그의 부인과 더불어 궁궐 깊숙한 곳에서 환락에 빠져서 탐욕과 애욕이 더욱 불타올라 이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지속하였습니다. 부인은 곧 태기가 있어 열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증장왕은 여덟 명의 유모로 하여금 양육하게 하였습니다.
앞서 이 부인에게 장가들 때 왕과 신하들은 함께 모여 맹세하기를 ‘이 부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마땅히 왕으로 세우겠으며, 이름은 애락(愛樂)이라 부르리라’고 하였었는데, 애락이 점점 자라서 물 위에 나온 연꽃처럼 얼굴이 확 피게 되자, 증장왕은 장자를 태자로 책립하고, 애락을 태자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 소식은 들은 왕후의 부왕(父王)은 즉시 사신을 통해 서찰을 보내어 증장왕에게 통고하였습니다.
‘왜 이제 와서 먼저 했던 맹세를 어기는가. 군대를 일으켜 너의 나라를 칠 것이니, 너는 군사를 정비하고 나를 기다려라.’
이때 이 서찰을 본 증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서찰을 보이면서 말하였습니다.
‘황후의 부왕이 서찰을 보내왔다. 우리는 어떤 계책을 세워 대비해야 하겠느냐?’
신하들이 의논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 왕은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애락을 태자로 책립해야 합니다.’
증장왕은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장자가 있는데, 어떻게 작은 아들을 태자로 책립한단 말이냐?’
이때 신하들은 다시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 국왕은 군대[四兵]가 강성합니다. 왕께서 만약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침략을 당할 것입니다. 이제 대왕께 청하오니 애락을 태자로 책립하시고, 다른 네 명의 아들은 국경 밖으로 내보내소서.’
이때 증장왕은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네 아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어떻게 나라 밖으로 내쫓는단 말이냐?’
신하들은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왕의 신하로서 어떻게 하면 왕을 이롭게 해드릴까 하는 염려에서일 뿐, 저희들도 죄 없는 사람을 버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말없이 가만 있었습니다.
모든 대신들은 한 곳에 모여서 서로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의논하여 일을 도모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이 일을 꾸며서 왕께서 저 네 왕자를 미워하도록 만듭시다.’
그들은 정원 하나를 만들어 물을 뿌려 깨끗이 쓸고는, 향과 꽃을 뿌리고 깃발[幡]도 달고 일산도 세워서 매우 장엄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때 네 왕자는 바깥에 나가 놀다가 멀리서 그 정원을 보자 호기심이 생겨서 그 정원의 정문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때 정원 공사를 맡은 관리가 장엄을 끝내고 문으로 막 나오는 것을 보고는 왕자들이 물었습니다.
‘지금 이 정원은 누구의 것이오?’
관리가 국왕의 정원이라는 대답을 하자, 네 왕자는 즉시 발길을 되돌렸습니다. 신하가 다시 왕자들에게 물었다.
‘정원으로 들어가시지 않고 어찌하여 되돌아가십니까?’
네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부왕의 정원인데, 우리들이 어찌 감히 들어가겠느냐?’
여러 신하들이 다시 말하였다.
왕과 왕자께서 함께 노신들 무슨 허물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왕자들은 들어가서 놀았습니다. 이것을 본 신하들은 즉시 왕에게 달려가서 고했습니다.
‘대왕께 아룁니다. 대왕께서 만들라고 명하신 정원이 이제 완성되어 깨끗하고 장엄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친히 가셔서 구경하소서.’
증장왕은 즉시 누가 놀고 있는가 알아보라 명하였고, 신하들은 지금 네 왕자가 놀고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보고를 들은 왕은 크게 진노하여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를 위해 그들을 죽여 없애라.’
신하들이 모두 꿇어앉아 자비를 베풀어 목숨만은 끊지 말고, 정 미우시면 나라 밖으로 내쫓으라는 명을 내리라고 청하자, 왕은 그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왕명을 받들어서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이고는, 곧 나라 밖으로 나갈 것을 알렸습니다. 네 왕자들은 사지를 땅에 붙이고 왕께 말했습니다.
‘저희들 네 자식은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부왕께서는 부디 저희들을 따라가고자 원하는 권속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자비로써 허락하소서.’
왕이 왕자들에게 소원대로 하기를 허락하자, 네 왕자들은 각기 누이들을 데리고 나라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따라가기를 원하여 일주일 안에 온 나라 백성들이 다 따라갈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왕에게 ‘만약 성문을 닫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왕자들을 따라가서 성안이 텅 비게 될지 모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급히 성문을 닫아서 백성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1)
석가(釋迦) 종족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2)
임금으로부터 경ㆍ대부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가는 맏아들을 말한다.
3)
대지의 정분(精分), 대지로부터 나타나는 아주 기름지고 좋은 음식물을 말한다.
4)
4식(食)의 하나로서, 밥ㆍ국ㆍ나물 따위와 같이 형체가 있는 음식을 이르는 말이다.
5)
사람이 식용하던 식물이다. 등(藤)에서 나와 수풀을 이루었기 때문에 임등(林虅)이라 한다.
6)
궁전의 뒤쪽에 있는 궁전, 즉 후비가 거처하는 궁전이다. 이것이 전변하여 후비(后妃)를 뜻하게 되었다.
7)
범어인 upādhyāya의 음역이다. 스승인 바라문을 뜻하며, 출가 수계(受戒)할 때의 스승을 말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제2권
의정 한역
권영대 번역
“그때 네 왕자와 사람들은 계속 길을 가다가 설산(雪山) 아래 긍가하(弶伽河:恒河, 갠지스 강) 근처 겁비라(劫比羅) 선인(仙人)이 머물고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1) 이때 네 왕자와 많은 사람들은 각각 풀을 베어 집을 만들고 거기서 머물렀으며, 그들은 서로 함께 나물을 캐고 짐승을 잡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이때 네 왕자는 하루에 세 번씩 겁비라 선인의 처소에 가서 몸소 공양했습니다. 네 왕자는 이미 나이가 차고 장성하였지만 아내가 없어 몸이 퍽 수척하였습니다. 이에 선인이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어째서 점점 수척해지느냐?’
왕자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들은 한창 나이인데, 아내가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니, 어떻게 수척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누이들과 서로 짝을 지으라.’
왕자들은 말했습니다.
‘그것이 합당한 일인지 아닌지 저희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가 같지 않으므로 그 일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때 왕자들은 각자 생각하기를 ‘우리 형제들은 이미 본국을 떠나 왔고, 이곳엔 우리와 혼인할 다른 사람이 없으니, 선인의 이러한 지시가 우리의 소원과 부합하는구나’ 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서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으며, 오래되지 않아 각기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네 왕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처자(妻子)를 데리고 선인의 처소에 자주 찾아갔으며, 이로 인하여 이곳은 시끄럽게 변했습니다. 선인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왕자들에게 일렀습니다.
‘너희들은 이곳에 안착하여 잘 살아라. 나는 이곳을 떠나겠다.’
왕자가 아뢰었습니다.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선인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시끄럽게 하여 나의 선정을 어지럽게 하니, 마치 맨발로 가시를 밟는 것 같구나.’
왕자들은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선인은 이곳에 머무십시오. 저희들이 살기 좋은 다른 곳을 찾아 가서 살겠습니다.’
선인은 ‘그렇게 하거라’라고 하고는 선인이 신통력을 부리니, 필요한 물건들과 도구들이 생겨났습니다. 선인이 금병(金甁)에 물을 가득 담아 다른 곳으로 가서 물을 뿌려 경계를 만들고, 왕자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이곳에서 안주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왕자들은 선인의 지시를 받들어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거주하였으며, 선인은 물을 뿌려서 국경을 만들고 이름을 겁비라성(劫比羅城:카비라성)이라고 지었습니다.
차츰 백성들의 수가 불어나자 이 성은 비좁게 되었는데, 이때 천신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 곧 다른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곳은 넓고 넉넉했으므로 그곳으로 가서 새로 성을 지어 만들고, 이름을 천시(天示)라고 하였습니다.2)
그때에 여러 왕자는 모여서 의논하였습니다.
‘우리의 부왕께서는 후처에게 장가드는 바람에 우리 형제가 본국을 떠나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함께 약속하여 한 부인만을 두고서 절대로 다시 결혼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이때 증장왕은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네 왕자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신하들은 대답했습니다.
‘왕자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왕명에 의해 쫓겨난 후 자매들과 함께 지금 설산 아래 천시성에 살고 있으며, 스스로 성읍을 넓혀 다스리고 있습니다.’
증장왕은 말했습니다.
‘나의 아들들이 어찌 이렇게 큰일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었단 말이냐?’
신하들이 ‘능히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증장왕은 크게 기뻐하여 껑충껑충 뛰다가 단정히 앉아서 손을 들고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들들이 참으로 대단하구나[我子大能]. 내 아들들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아들들의 대위덕(大威德)을 ‘참으로 대단하고 참으로 대단하구나[大能大能]’라고 했기 때문에 석가(釋迦)란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3)
그 후에 증장왕이 죽자, 애락(愛樂) 태자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애락왕도 역시 자식이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신하들은 서로 의논한 뒤 천시성으로 가서 첫째 왕자인 거면(炬面)을 모셔다가 왕을 삼았는데, 그의 자식이 곧 죽자, 다른 자식을 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둘째인 대이(大耳) 왕자를 왕으로 책봉하였는데 대이도 또한 아들이 없이 죽자, 셋째인 상행(象行)을 잭봉하여 왕으로 삼았으며 상행이 아들이 없이 죽자, 또 넷째인 보천(寶釧)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보천에겐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을 근보천(近寶釧)이라 하였고, 왕위를 이었습니다. 근보천의 아들은 천문(天門)인데, 역시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또한 여러분, 이 천문왕은 겁비라 대성(大城)에서 자손을 대대로 이어가면서 5만 5천 대(代)를 지나도록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맨 마지막 왕이 십거(十車)였으며, 십거의 아들은 백거(百車), 백거의 아들은 엄거(嚴車), 엄거의 아들은 승거(勝車), 승거의 아들은 견거(堅車)였습니다. 견거의 아들은 십궁(十弓)이었으며, 십궁의 아들은 백궁(百弓), 백궁의 아들은 구십궁(九十弓), 구십궁의 아들은 최승궁(最勝弓), 최승궁의 아들은 엄궁(嚴弓), 엄궁의 아들은 견궁(堅弓)이었습니다.
또한 여러분, 그 견궁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아들은 사자협(師子頰)이요, 둘째 아들은 사자후(師子吼)였습니다. 이 섬부주(膽部洲) 안에 있는, 활을 잘 쏘는 모든 사람 중에서 이 사자협왕이 으뜸이었습니다. 사자협왕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정반(淨飯)이요, 둘째가 백반(白飯), 셋째가 곡반(斛飯), 넷째가 감로반(甘露飯)이었습니다. 사자협왕은 또 네 명의 딸을 두었는데, 첫째는 청정(淸淨)이요, 둘째는 순백(純白), 셋째는 순곡(純斛), 넷째는 감로(甘露)였습니다.
정반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태자(太子)가 바로 우리의 박가범(薄伽梵)이시고, 둘째가 바로 구수 난타입니다. 백반왕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항성(恒星)이요, 둘째가 현선(賢善)입니다.
곡반왕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대명(大名)이요, 둘째가 아나율(阿那律)입니다. 감로반왕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의 이름은 경희(慶喜), 둘째의 이름은 천수(天授)입니다.
딸 청정(淸淨)은 한 아들을 두었는데 그 이름은 선오(善悟)이며, 순백(純白)의 아들은 이름이 유만(有鬘)입니다. 순곡의 아들은 이름이 승력(勝力)이며, 감로(甘露)의 아들은 이름이 대력(大力)입니다.
우리 박가범의 아들은 이름이 라후라(羅睺羅)인데, 처음 지주대왕(地主大王)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라후라 대에 이르러 후사가 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라후라는 무생과(無生果)를 증득하여 생사(生死)의 종자를 끊었기 때문에 대를 이을 후사가 끊긴 것입니다.”
존자 대목건련은 모든 석씨 종족의 대중을 위해 석가(釋迦) 종족에 대한 설법을 끝마치고, 물러앉아 묵묵히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석가 종족에 대한 대목련의 설명이 끝난 것을 아시고, 곧 누웠던 몸을 일으켜 단정하게 앉으시더니, 대목련에게 이르셨다.
“잘했구나. 네가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우리 석가 종족의 유래와 갈래를 법에 맞게 잘 설명하였구나.”
그리고 다시 목련에게 이르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석가 종족을 설명했다면, 이 선남자는 기나긴 밤에 큰 이익을 얻어 항상 안락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거듭 여러 대중과 비구니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나의 옛 석가 종족의 유래와 소재를 받아 지니고 법대로 잘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너희는 능히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이의(利義)를 갖추기 때문이고, 법의(法義)를 갖추기 때문이며, 범행(梵行)을 갖추기 때문에 마땅히 위에서와 같은 공덕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니는 마땅히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때 겁비라성 안에 있던 모든 석가 종족들은 석가족의 유래와 서열에 대한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절하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근본설일체유부 비나야파승사
2023. 1. 20.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