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토보서 2


염불로 현응한 이야기(念佛現應)

천축天竺 계두마사雞頭摩寺의 오통보살五通菩薩이 신통력으로 안락국에 가서 아미타불을 뵙고 아뢰었다.
“사바세계 중생들이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나 부처님의 형상(儀形)을 뵈올 수 없으니 강림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응답하셨다.
“네가 먼저 가면 내가 너를 따라 그곳에 나타나리라.”
오통보살이 돌아와 보니 부처님의 형상(聖儀)이 벌써 도착하였는데, 한 분의 부처님과 50보살이 각기 나뭇잎 위의 연꽃에 앉아 계셨다. 오통보살은 이를 그려 유포하였다.
부처님의 형상을 청하다(請佛形儀)43)
念佛現應
天笁雞頭摩寺。五通菩薩。以神力。徃
安樂國。見阿彌陀佛。陳云娑婆衆生。
願生淨土。無佛儀形。請垂降許。佛言
汝應先行。尋當現彼。五通還。聖儀已
至。一佛五十菩薩。各坐蓮華。在樹葉
上。遂寫流布 請佛形儀。

장로 종색長蘆宗賾 선사禪師는 여산 혜원이 남겨 놓은 가르침을 따라 연화승회蓮花勝會를 만들어 널리 염불을 권장하였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검은 두건에 흰 옷을 입었고 풍채와 얼굴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가 읍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연화승회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부디 제 이름도 적어 주소서.” 종색 선사가 이름을 물어 보자 보혜普慧라고 대답하였다. 이름을 적자, 그는 다시 그 형인 보현普賢의 이름도 함께 적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종색 선사가 꿈을 깨고 나서 『화엄경』을 찾아보니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두 보살의 이름이 있어 결국 연화승회의 머리(會首)44)로 삼았다.
연화승회에 이름을 적다(勝會書名)45)
長蘆宗賾禪師。遵遠祖遺範。建蓮華勝
會。普勸念佛。一夕夢一人。烏巾白衣
半貌淸美。揖而曰。欲入公蓮華勝會。
乞書一名。賾問何名。荅曰普慧。書已。
又云家兄普賢。亦乞併書。賾覺而檢華
嚴。離世間品。有二菩薩名。遂以爲會
首云 勝會書名。

당나라 혜일慧日이 큰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천축국에 이르러 선지식들을 찾아뵙고 요법要法에 이르는 지름길을 여쭈었는데 모두 정토를 찬미하였다.
건다라국健馱羅國에 갔을 때 큰 산에 관음상이 있어 혜일은 7일 동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예경하였다. 또 목숨이 마칠 때까지 단식하기로 기약하였는데, 이레가 되는 날 홀연히 자금색 몸으로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뵈었다. 관음보살은 손을 내려 정수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법을 전하여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하거든 극락세계 아미타불만 염念하라. 마땅히 정토문이 다른 모든 수행보다 뛰어남을 알 것이다.” 보살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혜일은 장안으로 돌아와 널리 염불을 권하였다.
염불법문이 가장 뛰어나다(法門最勝)46)
唐慧日。泛舶渡海。達天笁。叅訪知識
咨禀捷經要法。天笁學者皆讃淨土。至
健䭾羅國。大山有觀音像。日乃七日叩
頭。又斷食。畢命爲期。至苐七日夜。忽
見觀音現紫金身。坐寶蓮華。垂手摩頂
曰。汝欲傳法。自利利人。惟念極樂世
界阿彌佛。當知淨土一門。勝過諸行。說
已忽滅。日回長安。普勸念佛 法門最勝。

송나라 갈제지葛濟之는 구용句容 사람으로 치천稚川47)의 후손이다. 당시 사람들이 선학仙學에 힘쓸 때 부인 기씨紀氏는 홀로 염불에 정성을 쏟았다.
원가元嘉 13년(436년) 기씨가 베틀에 앉아 있을 때 홀연히 공중이 밝아지는 것을 깨닫고는 북을 놓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四表)을 바라보았다. 서방의 부처님이 현신하여 보개寶蓋48)와 당번幢幡49)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고, 기씨는 기뻐서 경에 말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바로 이 분이시다 하면서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였다. 갈제지가 놀라고 기이한 생각이 들어 다가가니 부인이 부처님 계신 곳을 가리켰다. 갈제지 역시 부처님의 반신을 보았는데 조금 후에 사라졌다.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이로부터 불법에 귀의하는 자가 많았다.
부부가 부처님을 뵙다(夫婦見佛)50)
宋葛濟之。句容人。稚川後也。世事仙。學
妻紀氏。獨精誠念佛。元嘉十三年。
方在機杼。忽覺空中淸明。因投杼仰瞻
四表。見西方有佛現身。寶盖幢幡。映
蔽雲漢。喜曰經言無量壽佛。其即此耶。
面佛作禮。濟之驚異就之。紀氏指示佛
所。濟之亦見半身。俄而隱沒。親里自
是。多歸佛法 夫婦見佛。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나찰羅剎이 사는 곳과 이웃하였다. 나찰이 제멋대로 사람을 잡아먹자 왕은 이제부터 나라 안에 한 집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보내 줄 것을 약속하며 함부로 죽이지 않도록 하였다.
불법을 믿는 집안인데 아들이 하나만 있는 집에서 보낼 차례가 되었다. 그 부모가 슬피 울며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도록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나찰은 부처님의 위력 때문에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다음 날 새벽에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찰의 근심이 이 때문에 마침내 그쳤다.
귀신이 감히 잡아먹지 못하다(鬼不敢噉)51)
佛世。有一國。隣于羅刹。羅刹食人無度。
王約自今國中。家以一人。次苐送與
弗得枉殺。有奉佛家。止生一子。次當
充行。父母哀號。囑令至心念佛。以佛
威力。鬼不得近。明晨還家。羅刹之患。
由此遂止 鬼不敢噉。

망강望江의 진기陳企는 일찍이 멋대로 사람을 죽여 귀신 앞에 끌려갔다. 그가 두려워 황급히 아미타불을 염念하자 귀신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고, 염불을 그치지 않자 귀신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후에 항상 염불하였으며 앉은 채로 임종하였다.
반년이 흐른 후 손녀 묘광妙光에게 붙어서(附)52) 이르기를 “나는 염불을 한 덕으로 이미 극락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는데, 거동과 언어가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삼 일 지나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단정한 모습이 평소와 같았다. 유독 얼굴이 더 젊어 보인 것은 서방 세계에서는 장생불로長生不老하기 때문이다. 그 머리가 부처님의 소라머리53)와 같았는데 이는 곧 성불의 조짐이었다.
염불하여 귀신을 물리치다(念佛却鬼)54)
望江陳企。甞妄殺人。後見鬼現。企畏
懼。急念阿彌陀佛。鬼不敢近。企念佛
不已。鬼遂不現。後常念佛。臨終坐化。
後半年。附本家孫女妙光云。我因念佛。
已生極樂。擧動言語。一如平日。至兩
三日。企遂現。儼然如平生。唯面帶少
顏。盖西方長生不老。其頭如佛之螺䯻。
蓋成佛之漸也 念佛却鬼。

수나라 남악南嶽 혜사 대사慧思禪師55)는 정성된 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겼다. 이에 아미타불이 나타나 그에게 설법하는 꿈을 꾸었다. 이때부터 총명함과 지혜가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설법하는 재능에 걸림이 없었다.
염불하여 총명과 변재를 얻다(念佛聰辯)56)
南岳慧思大師。精心事佛。因夢阿彌陀
佛。與之說法。自是聰慧過人。辯才無
礙 念佛聰辯。

송나라 진강鎭江의 장계조張繼祖는 서방정토를 독실하게 믿었다. 그의 유모가 죽자 염불하여 추천追薦하였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유모가 나타나 사례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염불 덕에 이미 선취善趣57)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다.
염불하여 천도하다(念佛薦亡)58)
宋鎭江張繼祖。篤信西方。其乳母死。
爲念佛追薦。一夜夢母謝云。荷君念佛。
已生善趣 念佛薦亡。

송나라 회령현懷寧縣 영전장營田庄에 완념삼阮念三의 형수가 있었다. 두 눈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늘 아미타불을 염念하여 마침내 눈이 밝아졌다.
염불하여 눈이 밝아지다(念佛眼明)59)
宋懷寧縣營田庄。有阮念三嫂。患兩目
將盲。常念阿彌陀佛。遂得開明 念佛眼明。

송나라 진강鎭江 금단현金壇縣의 장蔣씨 노파는 70세의 나이로 죽어 지옥에 가게 되었으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아 되돌아오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는 불경을 염송할 수 있겠느냐?”
노파가 잘 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염라대왕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좋겠다.”
돌아온 후에 노파가 생각하기를, 염라대왕이 나에게 염불을 가르쳐 주었으니 다시 의심할 것 없겠다 하고 언제나 염불을 계속하였다. 노파는 백이십 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정토에 왕생하였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염라왕이 노파에게 권하다(閻王勸婆)60)
宋鎭江金壇縣蔣婆。年七十。死至陰府。
命未盡當還。閻王問云。汝能念經否。
對曰不能。王曰汝可念阿彌陀佛。旣放
還。婆謂王敎我念佛。更無可疑。故常
念佛。百二十歲方終。其生淨土。斷可
必矣 閻王勸婆。

송나라 유중혜劉仲慧는 호주湖州 장흥長興 사람이다. 밤에 무서운 꿈을 자주 꾸어 근심하자 친구가 염불을 권하였다. 유중혜는 지극한 정성으로 소리 높여 백팔 번 염불한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밤 비로소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이때부터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잠자리가 편안해지다(睡寢得安)61)
宋劉仲慧。湖州長興人。患夜夢多恐惧。
友勸念佛。仲慧至誠高聲。念百八徧
然後就寢。其夜神魂晏然。自是繼念不
輟 睡寢得安。

송나라 진강晉江 소표邵彪의 자는 희문希文이다. 선비로 있었을 때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소표가 어느 관부에 이르자 사람들이 모두 “편안히 위무하시오(按撫).”라 하였다. 다가가 그들 앞에 이르러서 한 관리
를 보았는데, 그는 “당신이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이유를 압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관리는 소표를 데리고 가서 끓는 물에서 고통 받는(大鑊煮)62) 조개를 보여 주었다. 조개들은 소표를 보고 사람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소표는 곧바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는데, 염불 소리를 한 번 내자마자 조개들이 모두 황작黃雀이 되어 날아갔다.
소표는 후에 과연 급제하여 안무사按撫使63) 벼슬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보면 살생은 사람의 앞길을 막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크고 넓은 부처님 위력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음도 알 수 있다.
염불하여 어려움을 벗어나다(念佛脫難)64)
宋晋江邵彪。字希文。爲士人時。夢至
一官府。人皆稱安撫。行至前。見一官
問曰汝知汝未及苐因否。對云不知。令
引彪去。見一大鑊煮蛤蜊。見彪。乃作
人言。呌其姓名。彪遂念阿彌陀佛。方
念一聲。蛤蜊皆變作黃雀飛去。彪後果
及苐。至安撫使。以此見殺生阻人前程
不可不戒。又見佛力廣大。不可不敬也
念佛脫難。

송나라 왕용서王龍舒65)가 배를 타고 진강鎭江에 이르렀다. 수문의 물이 부족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가까운 금산사에서 불경을 빌렸는데 곧 『아미타경』이었다. 그는 책을 교감하고 판에 새겨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붓을 들 때 오른손에 풍기가 있어 손이 저절로 떨렸다. 그는 글씨 쓰기가 불편하여 손가락을 들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몇 차례 염불하면서, 풍기를 없애어 사경공덕을 성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기도를 마치자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고 책을 완성할 때까지 아무 탈이 없었다. 이를 통해 보면 불보살은 바로 눈앞 가까이에 있는데 다만 사람들의 신심이 이르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염불하여 병을 고치다(念佛止疾)66)
宋王龍舒。舟行至鎭江。于金山寺。借
佛經。即彌陀經。欲勘校。刻梓廣傳。擧
筆之時。右手有風。其指自掉。寫字不
便。乃擧指念阿彌陀佛。與觀世音菩薩
數聲。禱除風疾。以成就寫經。禱畢。指
遂不掉。以至終帙無恙。以此見佛菩薩。
只在目前。但人信心不至 念佛止疾。

한 늙은 아낙네가 두 눈이 멀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다녔는데 항상 아미타불을 염念하였다. 어느 날 썩어 가는 낡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집이 기우뚱 무너졌다. 어린아이는 뛰쳐나왔으나 늙은 아낙네는 나오지 못하였다. 마침 나무 기둥 두 개가 맞부딪쳐 아낙네 머리 위에서 보호해 주어 압사를 당하지 않았다.
염불하여 죽음을 면하다(念佛免死)67)
有一老婦雙瞽。令小兒牽行。常念阿彌
陀佛。一日息于杇屋之下。忽傾倒。小
兒走出。老婦在下。乃有二木相拄。護
于老婦之上。得不壓死 念佛免死。

송나라 이자청李子清은 오랫동안 학질에 시달렸다. 용서 거사龍舒居士는 그에게 병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오로지 염불에만 뜻을 둔 다음에 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주었다. 이를 따라 했더니 그날 고통이 반으로 줄었고 다음 날은 또 그 반으로 줄어 마침내 완쾌되었다. 이때부터 염불을 독실하게 믿었다.
염불하여 병이 낫다(念佛辟痁)68)
宋李子淸。久苦痁疾。龍舒居士。授之
一方。臨發時。專志念佛。然後服藥。子
淸從之。當日減半。次日復如是。遂全
愈。自是篤信念佛 念佛辟痁。

송나라 장주贑州 염廉 중대부中大夫69)의 부인이 장육신丈六身 아미타불을 수놓았는데 반쯤 완성했을 때 갑자기 채색 비단에서 사리가 나왔다. 온 집안이 다 놀라고 찬탄하였다.
사리가 나오다(舍利迸現)70)
宋贑州廉中大夫。恭人。繡丈六身阿彌
陀佛。方及半。忽有舍利。現綵縷中。擧
家驚嘆 舍利迸現。

진주眞州에 사는 종리소사鍾離少師의 임任씨 부인이 서방정토업을 닦으면서 아미타불상을 조각하였다. 길이는 4촌 8푼이고 모셔 두는 감실의 장식이 매우 장엄하였다. 항상 머리에 이고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상의 눈썹 사이에서 사리가 나왔다. 사리는 기장쌀만한 크기였고 광채가 나와 사람들을 비추었다.
사리가 나오다(舍利迸現)71)
眞州鍾離少師。任氏夫人。修西方。雕
阿彌陀佛像。長四寸八分。龕飾甚嚴。
常頂戴行道。其像眉間。忽迸舍利。大
如黍米。光彩照人 同上。

송나라 수주秀州에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는데 낫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그 고을 사람들이 그를 부처님처럼 존경하고 믿었다.
병을 고쳐 낫게 해주다(治病得愈)72)
宋秀州一僧。常念阿彌陀佛。爲人治病。
無不痊愈。州人敬信如佛 治病得愈。

송나라 진강鎭江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꼭 합장한 손을 이마 위로 올리면서 아미타불을 염念하였다. 두세 살쯤 된 손자가 노인을 따라 밭에 이르렀는데 문득 아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노인이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는데 며칠 뒤 어떤 사람이 시내 저편에 있다고 알려 주어 찾을 수 있었다. 아이의 발자취가 물가 곳곳에 있었다. 그 시내는 매우 깊었는데 아이가 어떻게 강을 건넜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 오랫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지성으로 염불하여 감응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이가 어려움을 면하다(兒孫免難)73)
宋鎭江村落。有一老人。每有事。必合
掌至額。念阿彌陀佛。其孫方二三歲。
因隨至田野。忽失之。老人尋訪不見。
後數日。人告云。在溪外。果尋得之。足
跡徧于灘上。其溪甚深。不知此兒。何
緣過彼。又久而無恙。人以爲其祖。至
誠念佛所感也 兒孫免難。

원나라 지정至正 연간(1341~1367년)에 장사성張士誠이 호주湖州를 공략하여 강절승상江浙丞相과 교전하였다. 40명의 포로를 잡아 함거檻車에 가두어 보내 죽이려 하던 중 밤이 되어 서호西湖 조과사鳥窠寺에 유숙하였다.
이때 마침 대유 모大猷謀 선사가 회랑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포로들이 구해 달라고 하자 대사는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구고구난아미타불南無救苦救難阿彌陀佛’을 염불하라고 하였다. 그 중 세 명이 대사의 말을 믿고 받아들여 입으로 염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날이 밝아 출발할 때 족쇄를 바꿔 채우는데, 그 세 사람에 이르러서는 형구가 부족하여 밧줄로만 묶어놓았다. 이후 심문할 때 양민으로 잡혀온 자라는 것이 밝혀져 결국 풀려날 수 있었다.
염불하여 형틀을 벗다(念佛脫械)74)
元至正中。張士誠。攻湖州。江浙丞相
與戰擒四十人。囚檻送戮。夜宿西湖鳥
窠寺。適大謀禪師。徐步廊下。囚因
求救。師敎至心。念南無救苦救難阿彌
陀佛。中有三人。信受其語。念不絶口。
天曉發囚。易枷鎻。至三人。刑具不足。
惟繫以繩。旣以審鞫。知良民被虜者
遂得釋 念佛脫械。

명나라 해창海昌의 촌민으로 한 노파가 있었다. 죽은 뒤 가족에게 붙어서, 살았을 적에 행한 일과 저승에 가서 받은 인과응보를 상세하게 이야기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한 사람이 문득 마음을 집중하여(攝心) 염불하였다.
노파가 말하였다.
“네가 항상 이와 같이 하면 어찌 불도를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겠느냐?”
이유를 묻자 대답하였다.
“네 마음이 아미타불을 염念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일자무식이었으나 별안간 한번 염불하여 오히려 귀신의 공경을 받았다. 하물며 오래도록 닦고 익힌 사람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염불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염불하여 귀신이 공경하다(念佛鬼敬)75)
明海昌村民。有老媼。死附家人。言平
生事。及陰府報應甚悉。鄕人環而聽之。
有一人在衆中。忽攝心念佛。媼謂曰
汝常如此。何患不成佛道。問何故。曰
汝心念阿彌陀佛故。問何以知之。曰見
汝身有光明故。村民不識一字。瞥爾一
念。尙使鬼敬。况久脩習者乎。是故念
佛功德。不可思議 念佛鬼敬。

청나라 항군杭郡 왕삼관王三官의 모친이 청상과부로 늙었다. 매일 오직 염불에 힘썼고 저금한 돈 10여 금을 모두 영은사에 시주하였다. 강희康熈 원년(1662년) 5월에 병으로 죽었다가 반나절 만에 살아나서 말하였다. “내가 어느 사내아이의 탯줄로 들어갔는데 아직 태어날 때가 안 되어서 되돌아와 너희들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반나절 정도 쉬다가 숨을 거두었다.
여자가 남자 몸이 되다(女轉男身)76)
太淸杭郡王三官之母。孀居年老。日唯
念佛。所積十餘金。悉施靈隱。康熙元
年五月。病死。半日復蘇曰。我去投一
男胎。因彼處生時未到故。我轉來。與
你說。更憇半餉而沒 女轉男身。

청나라 유행민兪行敏의 부인 탁씨는 평소 성품이 곧고 마음이 자애로웠다. 불법을 독실하게 믿어 옥림玉林 대사와 구덕具德 대사를 존경하여 예로 대하였고 틈틈이 재물도 보시하였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만나면 불쌍히 여겼고 법에 의지하여 정토업을 닦았다. 염불을 일과로 하였고 『미타경』을 염송하였다. 6년이 지난 강희康熙 정미년(1667년)에 가볍게 앓다가 편안하게 앉아 입적하였다. 염습할 때 안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기뻐하는 얼굴이 생생해서(歡容可挹) 대중들이 모두 찬탄하였다. 35일째 되는 날 밤에 며느리 꿈에 나타나 “당시에 천신天神이 나를 영접하여 바로 따라갔다.”고 하였다.
염불하여 극락에 나다(念佛生天)77)
太淸兪行敏妻卓氏。平生性直心慈。篤
信佛法。尊禮玉林具德兩大師。間亦捨
施。遇貧病人。必矜恤之。依法脩淨業。
日課念佛。誦彌陀經。經六載。康熙丁
未。示微疾。安然坐逝。及殮時。顏色如
生。歡容可挹。衆咸嘉嘆。至五七之夜。
託夢兒媳云。前者天神迎我。故我即去
矣 念佛生天。


▪︎ 일과염불日課念佛
송나라 장륜張掄은 날마다 염불을 만 번씩 하였다.
송나라 손량孫良은 날마다 부처님 명호를 만 번씩 소리 내어 외웠다.
송나라 육원도陸沅道는 날마다 『법화경』을 한 번 염송하였고, 염불을 소리 내어 만 번씩 하였다.
명나라 주강朱綱은 날마다 염불을 3만 번씩 소리 내어 하였다.
송나라 승려 용흠用欽도 염불을 매일 3만 번씩 하였다.
당나라 승려 회옥懷玉은 부처님 명호를 5만 번씩 불렀다.
당나라 승려 보상寶相은 6만 번을 한도로 염불하였다.
당나라 승려 도작道綽은 7만 번을 한도로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영명 수永明壽 선사는 매일 아미타불을 10만 번씩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승현僧衒은 90세에 매일 천 배를 하였다.
日課念佛
宋張掄。日課念佛萬徧 1)◆宋孫良。日
誦佛號萬聲 ◆宋陸沅道。日誦法華經
一徧。念佛萬聲 ◆明朱綱。日念佛三
萬聲 ◆宋僧用欽。亦課念三萬徧 ◆
唐僧懷玉。課呼佛號五萬聲 ◆唐釋寶
相。六萬聲爲限 ◆唐釋道綽。以念佛
七萬聲爲限 ◆永明壽禪師。日念彌陀
佛十萬聲 ◆僧衒年九十。日禮千拜。
底本附號各異{編}。


▪︎ 역대의 존숙(歷代尊宿)78)
여산 혜원廬山慧遠79) 조사는 마하반야摩訶般若80)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호법보살東方護法菩薩이라 불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종일 염불하여 세 번이나 부처님 얼굴(聖容)을 뵈었고 정토에 왕생하였다.
歷代尊宿
廬山遠祖師。悟摩訶般若深旨。號東方
護法菩薩。而六時念佛。三覩聖容。徃
生淨土。

천태 지자天台智者81) 대사는 『 법화경』의 요체를 깊이 깨달은 분으로 교관敎觀으로 일가를 이루어 만대의 종조宗祖82)가 되었다. 앉을 때면 서쪽을 향하였으며, 「십종의十種疑」를 변증하고 『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주석하여 정토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天台智者大師。妙悟法華。一家敎觀。
萬代宗祖。而坐則面西。辯十種疑。䟽
十六觀。極談淨土。

백장 대지百丈大智83) 선사는 마조馬祖의 적통을 이은 분으로 천하의 총림이 모두 종조로 삼았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고 입적한 스님을 천도하여 모두 정토에 돌아가도록 하였다.
百丈大智禪師。馬祖嫡嗣。天下叢林
共宗而祈禱病僧。化送亡僧。悉歸淨土。

영명 연수永明延壽84) 선사는 걸림 없는 변재辯才를 얻어 종문宗門의 주춧돌이 된 분이다. 서방의 상품상생上品上生을 두루 찬양하여 명부冥府에서도 공경을 받았다.
永明延壽禪師。得無礙辯才。柱石宗門
而徧讃西方上品上生。敬及冥府。

사심 오신死心悟新85) 선사는 황룡黃龍 선사86)의 법석을 이어 종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정업淨業에 간절하게 뜻을 두고 염불을 권하는 글을 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애긍심을 발하여 믿음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死心悟新禪師。繼席黃龍。宗風大振而
切意淨業。著勸念佛文。令人發哀起信

진헐 청료眞歇淸了87) 선사는 단하 순공丹霞淳公을 계승한 분으로 동하종洞下宗88)이 대사에 이르러 크게 드러났다. 탁암卓庵 보타암補陀庵에서 오로지 서방에 뜻을 두었다. 『정토집淨土集』이 세상에 전한다.
眞歇淸了禪師。嗣丹霞淳公。洞下一宗
至師大顯。而卓庵補陀。專意西方。有
淨土集。行世。

자수 회심慈受懷深89) 선사는 장로 신공長蘆信公 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오로지 염불에 마음을 쏟았다. 수행의 지름길은 정토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고 여겨 서방도량西方道場을 세워 대중들에게 간절히 염불을 권하였다.
慈受懷深禪師。得法于長蘆信公。專心
念佛。而謂修行捷徑。無越淨邦。建西
方道場。苦口勸衆。

원조 종본圓照宗本90) 선사는 천의天衣 선사의 도맥을 이은 분으로 설두雪竇 선사의 종지를 홍포하여 불법의 우렛소리(法雷)91)가 땅을 흔들었고 두 왕조에 걸쳐 사표師表가 되었다. 정업을 함께 닦아 상품上品에 이름을 올렸다.
圓照宗本禪師。道續天衣。宗弘雪竇。
法雷震地。師表兩朝。而淨業兼脩。標
名上品。

석지효石芝曉 법사는 월당 순공月堂洵公의 대를 이은 분으로 교학에 훤히 통달하였고, 정업淨業으로 대중을 교화하였다. 일찍이 대장경의 여러 책들을 집성하였는데 그중에 『낙방문류樂邦文類』가 세상에 유포되었다.
石芝曉法師。嗣月堂洵公。洞徹敎部
以淨業化人。甞集大藏諸書。有樂邦文
類。行世。

적당 원寂堂元 선사는 밀암 함걸密庵咸傑92)의 대를 이은 분으로 염불삼매를 독실하게 행하였다. 금빛 갑옷을 입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감득하였고, 홍련화가 땅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었다. 이로 말미암아 온 세상(十洲)에 연종蓮宗이 크게 퍼졌다.
寂堂元禪師。嗣密庵傑。篤行念佛三昧
感金甲神。自天而降。夢紅蓮華。從地
而出。由是十洲。蓮宗大行。

중봉 명본中峯明本93) 선사는 고봉 원묘高峯原妙의 법통을 이은 분으로 대중들이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존경하였다. 말하기를 선은 정토의 선이요, 정토는 선의 정토라 하였다. 「정토를 그리는 시(懷淨土詩)」 백 수를 지어 대중들에게 염불을 권하였다.
中峯本禪師。得法高峯。人仰如山斗
而云禪者。淨土之禪。淨土。禪之淨土。
有懷淨土詩百首。勸人念佛。

우담 종주優曇宗主94)는 여산盧山 동림사東林寺의 선법당善法堂에 주석하여 『연종보감蓮宗寶鑑』을 지었다. 임금의 뜻을 받들어 판각 유통시켜 정토 중흥의 계기가 되었다.
優曇宗主。居盧山東林善法堂。著蓮宗
寶鑑。奉旨板行。爲淨土中興。

연지 대사蓮池大師95)가 말하였다. “혜원 조사로부터 우담 종주에 이르기까지 역대 존숙으로서 정토를 높이 받들지 않은 이가 없다. 근기 낮은 범부들이여, 어찌 의심을 끊고 결심하여 용맹스럽고 날카롭게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96)
蓮池大師曰。自遠祖至優曇。歷代尊宿
無不崇奉淨土。下劣凡夫。安可不斷疑
決志。勇猛銳進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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