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그 비밀의 만트라 속으로
(이 책을 겔라 린포체와 도제 린포체, 따시 린포체와 3세 리메 법왕 켄체 린포체께 바칩니다.)
시작하며
1997년 초겨울에 여러 해 동안 발행하던 문학잡지를 그만두고 티베트로 떠나기로 결심한 나는 서가에서 '히말라야의 성자 미라래빠'와 '티벳 사자의 서' 두 권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2003년 11월 황엽
1부 티베트로
2부 아라사
3부 인도로
4부 다시 티베트로
1부 티베트로
몇 권의 책들, 그리고 꿈
*티베트Tibet라는 말은 사실 서양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일 뿐,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나라를 '뵈'라 하고 티베트 사람은 '뵈바'라고 한다.
미라래빠
복수는 성공했지만 죄책감이 미라래빠를 괴롭혔다. 그는 통절한 참회끝에 위대한 역경사 마르빠를 찾아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스승 곁에서 6년 8개월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허물어진 옛집에 어머니의 해골이 뒹굴고 있었고 여동생은 거지가 되어 타향을 떠돌고 있었다. 그는 고향 남쪽 지방의 동굴에서 9년을 고행하며 수행하였다.
미라래빠는 쐐기풀로 생명을 이어 갔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과 혹한에도 무명옷마 입거나 때로는 옷도 음식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직 수행에 열중했다. 오랜 고행 끝에 붓다의 경지에 이른 그는 84세 되던 해에 그를 시기한 학자가 보낸 독을 마시고 육신의 옷을 벗을 때 까지 깨달음을 노래했는데 이것을 엮은 '미라래빠의 십만송'이 지금 까지 전해지고 있다.
미라래빠는 숫수룡해 첫가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쓰고, 여기에 목화토금수의 오행에 암수의 음양을 조합해 만든 60진법이 쓰이는데 미라래빠가 태어난 숫수룡해는 육십갑자로 따지면 임진년이 된다. 1038년 이나 1040년 혹은 1052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세사을 떠난 것은 84세 되던 나무토끼해, 즉 을묘년 이라고 되어 있었다.
'티벳 사자의 서'를 간략하게 말하면 '죽음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지인즉 사람이 죽으면 49일간 바르도라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데, 이 죽음과 바르도, 재탄생의 체험을 잘만 활용하면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빠드마삼바바라고 알려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흔히 그를 '구루(어둠을 몰아내는 자) 린포체(보석)' 라고 부른다.
'티벳 사자의 서' 및 이를 설명하는 스승들의 여러 저서에 의하면 사람의 육체는 지, 수, 화, 풍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감각 의식은 이 원소들로 부터 생겨난다.
보통 사람은 죽음이 닥쳐와 육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차례로 분해되고 두 개의 빈두가 아나하따 차끄라에서 만나 최후의 순간에 정명광이 현현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데 극도의 혼돈과 공포와 고통을 겪기 때문에 이 과정을 인식할 틈도 없다.
그래서 근원적 광명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바로 바르도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자가 살아 생전 명상수행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그는 이런 모든 죽음의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척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볼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투명한 빛이 일어날 때 그것이 자신의 본성임을 깨닫고 그 근원적 광명과 합일해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베이징
나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갈 것인지 티베트로 갈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본토 티베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성취자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40년 가까이 티베트의 동굴에서 밀실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로상교수가 말했다.
티비트가는 길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는 난주였다.
'황선생, 지금 이 도시에 따시 린포체라는 분이 내려와 있는데, 그는 내가 지난번 말했던 성취자의 마음의 아들입니다. 성취자가 평생 바위동굴에서 수행만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거기까지 간다고 해도 만날수 있을지, 만난다 해도 제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그의 바위동굴까지 가는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죠. 따시 린포체는 그 성취자로부터 모든 법을 전수받았어요. 그를 만나기도 그의 스승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침 인도에서 온 성자들을 마중하기 위해 여기 와 있다는 말을 듣고 당신에게 알려주려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그를 만나 보겠어요?'
로상이 무릎걸음으로 따시 린포체 앞에 다가가 통증을 호소하며 오른쪽 어께를 내밀었다. 린포체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어께에 훅~ 하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무슨 거창한 의식도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신비한 주문을 외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전까지 움직이지도 못했던 어께가 자연스럽게 앞뒤로 돌아갔다. 로상과 닝란은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로상이 따시 린포체에게 나를 소개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소?'
'미라래빠와 같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미라래빠와 같은 스승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요?'
'바르도 퇴돌과 같은 밀교의 법을 구하고 싶습니다.'
'법을 얻으면 무얼 하고 싶은 거요?'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라싸는 높은 곳이라, 처음 가는 사람은 비행기보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하오. 게다가 당신은 지금 심한 고산반응을 겪고 있으니 비행기는 더욱 위험하오. 지금 상태로 라싸에 가면 죽지는 않겠지만 실려 내려오게 될 거요. 라싸에 갔다가 바로 실려 내려오는 외국인들을 나는 종종 보았소. 그렇지 않은가, 로상?'
'가서 표를 물러 와라. 당장!'
'내일 아침 8시에 숙소로 차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시오.'
입문
다음날 으른 아침, 나는 따시 린포체가 보낸 차를 타고 시닝 시내를 벗어났다. 차는 몇 시간을 달려 작은 암자 앞에 멈추었다.
나는 이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서 다시 따시 린포체와 마주 앉았다.
'그래, 당신은 어떤 수행법을 얻고자 하오?'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수행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응시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법을 줄 수는 있소. 그런데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밟아야 하오. 지금 당장 당신에게 법을 줄 수는 없고, 준다 한들 당신이 소화할 수도 없소. 네 가지의 기초 수행을 마치고 나면 당신에게 법을 주겠소.'
'밀법을 수행하려면 먼저 '귀의'를 해야 하오. 윤회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불 법 승(삼보)를 의지하는 것이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는 불법승 삼보는 스승을 통해 체현된다오. 나에게 법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스승이니 스승과 불법승에 사귀의 한다고 해야 할 것이오.
불법승 삼보와 스승께 귀의 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본질적으로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윤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오. 불경에서는 이때 마치 개에게 쫓기던 어린이가 공포에 질린 채로 어머니의 품으로 뛰어드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오.'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려면 먼저 관정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빠드마삼바바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밀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으로부터 받는 관정이다. 관정을 받음으로써 스승에 대한 큰 믿음을 갖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입문식은 사원 안의 오래된 건물에서 치러졌다.
상 맞은 편에 따시 린포체가 황금색 띠를 두른 굽이 높은 모자를 쓰고 노란색 가사를 두르고 앉아 있고, 그 옆에 다섯 명의 승려가 서 있었다. 두 명은 인도에서 왔다는 성자와 그의 시자였다. 나는 그 방에서 관정을 받기 위해 따시 린포체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긴 입문식이 끝나고 나는 따시 린포체가 따라주는 감로를 받아 마셨다.
'나는 네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전생에 우리 법통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따시 린포체는 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냈다. 그리고 잘라낸 머리카락을 힌 종이 위에 얹어 나에게 주었다. 추잉뻬마 라는 법명도 함께 내려 주었다.
'추잉은 40년째 바위 동굴 속에서 밀실수행을 하고 계시는 내 스승님의 이름이다. 스승님을 기리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따서 네 이름을 지었다. 추잉은 법계라는 뜻이고, 뻬마는 연꽃이라는 뜻이니라. 잘라낸 머리카락은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나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거라.'
'이것은 길상초라고 하니라. 오늘 밤 이것을 베개 밑에 두고 자거라.'
암자를 떠나 다시 시내로돌아갈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한참을 달려 산을 내려온 우리는 전날의 그 아파트로 갔다. 전등이 없는 아파트의 복도는 칠흑처럼 어두었다.
집안에서는 세 명의 어린 비구니들이 희미한 램프불 아래서 소리 없이 움직이며 재빨리 음식을 차렸다. 한참만에 차려진 음식은 티베트식 수제비, 탠둑이었다.
'네 머리속은 너무 복잡하구나, 이제 책은 그만 봐라.'
식사가 끝나고 따시 린포체는 나를 예의 텅빈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입문하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네 가지 수행법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이 네가지는 '기초수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 일정한 횟수만큼만 해 버리고 나서 수행이 높은 단계로올라가면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도제셈바 정화 수행법과 구루요가는 평생토록 해야만 하는 수행이다. 티베트의 스승님 중에는 평생 동안 구루요가를 수행하신분도 있다.'
'이 네가지 기초 수행은 각각 10만 번씩 행해야 한다. 만트라를 한번 외울 때마다 오체투지를 한 번씩 하거라. 그렇게 10만 번, 그러나까 총 40만 번이다. 네 가지 기초 수행은 1년 안에 마쳐야 한다.'
네 가지 기초 수행
베이징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네 가지 기초 수행을 시작하지 못했다. 나는 한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따시 린포체가 주신 책을 앞에 두고 절을 시작했다. 첫날 나는 1천 번의 오체투지를 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난 어느날 아침.
절의 횟수는 오만 번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통증은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속에 만트라가 녹음되어 있다. 이 테이프를 들으며 수행하면 훨씬 쉬울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 '이분은 나왕 초펠 상보 린포체이시다. 우리는 그를 겔라 린포체라고 부른단다. 훌륭한 수행자이자 학자이며 티베트에 있는 우리 사원 아라사의 교수시다. 아까 나온 오두막은 그분이 수행하셨던 곳이란다. 그분은 전생에 나의 제자였고, 금생에는 다시 나의 스승이 되셨다.'
따시 린포체는 밀실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낭시로 떠났다.
'여기서 며칠 쉬다가 돌아가 다시 절을 계속해라.'
'내일 베이징으로 돌아가겠어요.'
무엇보다 몇년간이나 나의 꿈에 나타났던 할아버지가 스승의 스승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회의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산
비행기는 두 시간 만에 베이징 비행장에 도착했다. 36시간이나 걸려간 멀고 먼 길이었다.
하루에 1천배 2천배 많을 때는 3천배까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절을 했다.
절이 5만 번을 넘어가자 척추에서 가느다란 핏줄 같은 열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열은 점점 강해져서 등줄기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열기가 솟구쳐 오르고 온몸에서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 나왔다. 몇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등줄기를 타고 떠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강렬한 열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붙어 있던 살점이 모두 빠져 나갔고 정수리를 중심으로 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해서 백발이 되어 버렸다.
나는 놀랐다. 나는 수억만 개로 분리된 개체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였다.
이제 절은 20만 번을 넘어가고 있었다.
불의 강을 건너서
따시 린포체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2000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기초 수행을 마칠때까지 40만번의 절을 한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내일 시닝으로 오너라.'
그날 밤 나는 비밀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빼마, 네가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 책속에는 '바르도 퇴돌'이 들어있었다.
'명심하거라. 세상에 한번만 듣고 해탈에 이르는 법은 없단다. 살아 있을 때 부지런히 '바르도 퇴돌'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야.'
'네 딸이 귀의하지 않더라도 '바르도 퇴돌'을 듣는 것만은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된단다. 나중에 딸이 바르도에 가게 되었을 때, 살아 있을 때 들었던 '바르도 퇴돌'의 가르침을 모두 기억하고 이해하데 될 테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평상시에 '바르도 퇴돌'을 외우면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2부 아라사
난주
티베트 동부 캄 지방에서 높은 스승으로 추앙받던 통총 데빠는 1881년 티베트의 데게에서 태어났다.
평생 밀실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던 그가 1954년 어느날 제자를 불렀다.
'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난다. 나는 다음 생에 사원으로 돌아와 파괴된 사원을 복구하고 더 많은 중생과 불연을 맺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통총 데빠의 환생 따시 린포체는 그의 사원으로 돌아갔고 전생에 약속대로 파괴된 사원을 복구하는데 힘을 썼다. 2001년 5월, 내가 따시 린포체의 부름을 받고 난주로 갔을 때, 그는 복원사업의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8월이면 사원이 완공된다. 그러면 나는 사원을 복구하는데 시주한 중국인 제자들과 시주자들을 사원으로 초대해서 개막식을 하려고 한다. 그때 너도 티베트에 있는 우리 사원에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8월이 지나면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왼쪽 손목에 감겨 있던 염주를 벗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가 수행하거나 독경을 할때 늘 그 염주를 손에쥐고 돌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라사
몇 달 뒤, 나눈 불학원 완공식에 참석하느라 따시 린포체의 초청을 받고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난주에 도착했다. ...그러고도 하루를 더 달려 '낭시'라는 작고 초라한 읍에서 이틀째 밤을 맞았다.
'여기부터는 신의 땅이다.'
따시 린포체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엄격한 스승에게도 고향은 안도와 기쁨을 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해발 5천 미터를 넘어 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차는 6천 미터의 고갯길을 넘은 후에 비로소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장장 5일간의 고통스러운 여장 끝에 도착한 곳은 티베트 동부 캄 지방 참도에 자리한 작고 유서 깊은 사원 아라사였다.
해발 3천 미터에 자리한 아라사는 팔을 벌리고 있는 산들의 품속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나왕 초펠 상보, 겔라 린포체
다음날 새벽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아라사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
'코리아, 코리아.'
다와는 길에서 만난 승려들에게 이렇게 나를 소개했다. 승려들은 '코리아'라는 말을 듣고는 매우 우호적인 표정으로 합장해 인사를 보내 왔다.
'당신에게 줄 것이 있어요.'
'나왕 초펠 상보 린포체세요. 우리는 그분을 겔라 린포체라고 불렀답니다.'
'겔라 린포체는 아주 훌륭한 스님이세요. 따시 린포체의 전생의 제자였고, 금생에는 스승이었어요. 저의 스승이시기도 하고요. 그분은 60년을 밀실에서 수행하셨는데 경전의 지식과 수행과 체험을 다 갖춘 아주 훌륭한 분이셨어요. 돌아가실 무렵에는 몸이 점점 작아져서 어린애만했어요. 이분처럼 몸이 자꾸 작아지는 것은 그분의 수행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나는 직접 따시 린포체를 찾아갔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시선을 네 안으로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너는 몰랐겠지만 여기에 중국 경찰이 와 있다. 아라사에서 법회를 할 때도 경찰이 줄곧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외국인에게는 여행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 알고 있니? 그러니까 나는 법을 어기고 너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이다. 안탑깝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꿈 속의 움막
채마밭 건너편에 오두막이 있었다.
'나는 늘 이렇게 앉아 있었어.'
그 순간에 멀고 먼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뒤늦게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고 여기까지 다시 찾아온 나와, 지난 생에 여기서 채마밭에 코스모스를 키우고 밀실수행 하시는 겔라 린포체를 시중들었던 내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와는 이렇게 말했다.
'겔라 린포체의 여성 제자 이야기를 못 들었나요? 그분은 아주 형편없는 동굴에서 18년간 살았어요. 그 동굴에 작년에 따시 린포체와 함께 갔는데, 있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깔고 앉은 비닐과 나무를 대충 엮어서 만든 테이블뿐이었어요. 음식은 짬바가 전부였고요. 거기서 그 여성 제자는 사르바붓다 요기니 만트라를 1억 번 했대요. 그리고 성취자가 되었어요.'
그날 밤, 따시 란포체는 자신의 처소에 나를 불렀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수행할 시간도 없이 사원 복원에 전념했다. 원래 나는 사원이 복원되면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나의 스승이신 도제 린포체께 보내서 수행을 계속할수 있게 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네가 인도에 다녀오고 싶다니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다녀오너라. 그리고 인도에 가거든 근본 스승이신 잠양 켄체 법왕을 찾거라.'
'따시델레!'
3부 인도로
잠양 켄체 린포체
3대 리메 법왕은 부탄 왕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와 한 남자의 극적인 만남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는 1958년 동부 티베트 캄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병중에 있던 소년의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너는 리메 법왕이 증서를 써 준 텍충 텐빠의 화신이니라. 네가 어디에 있든 리메 법왕의 이름을 듣거든 바로 그를 찾아가라'고 말해 주었다.
마을 큰 사원에 안도에서 온 스님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리메법왕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을 만난듯 기뻐하며 그에게 머리를 맞대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텍충 텐빠의 화신임을 확인해 주고 하루빨리 사원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자기의 사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행을 계속했다. 그 사이 그는 도제 린포체로부터 비구계를 받고 그의 제자이자 마음의 아들이 되었으며 뚤꾸의 신분을 밝히고 따시 린포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여러해가 지난후 그는 티베트에 있는 그의 사원 아라사에 돌아갔다. 그의 전신인 택충 텐빠가 입적한 지 43년 만이었다.
다람살라
나는 3대 리메 법왕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는 채 무작정 인도로 갔다. 먼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가 볼 작정이었다.
뉴델리 공항. 13시간을 달려 아침 무렵에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관정식이 끝나고 한국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의 왕궁으로갔다. 거기 접견실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대신해서 달라이 라마께 요청했다.
'제가 티베트에서 만난 승려들은 성하를 너무도 사모하여 성하의 이름만 듣고도 눈물을 흘립니다. 티베트에 남아 있는 승려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다시 티베트로 돌아가면 꼭 그들에게 성하의 말씀을 전해주겠습니다.'
'수행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모든 중생,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티베트에 있더라도 열심히 수행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내가 데라둔으로 떠나는 날, 쌈뗀은 정거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데라둔
15시간 후에 버스는 데라둔에 도착했다.
... 기차는 바라나시까지 가기 위해 24시간 동안이나 느릿느릿 달렸다.
바라나시
한밤에 바라나시 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는 '강가(갠지스)'가 있었기 때문에 며칠머물기로 했다. 나는 그 화장터에 가 보고 싶었다.
사르나트
날이 밝자마자 강가 부근의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역전의 방갈로로 숙소를 옮겼다.
부처님이 35세에 득도하고 아야교진여 등 5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을 하셨던 곳, 그곳에 가면 싱싱한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을 것만 같았다.
소노우리
네팔 국경까지 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버스는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출발당일 아침에 취소되어 버렸다. 어쩔수 없이 시외버스를 탔다.
부다나트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카트만두까지는 다시 버스로 10시간을 가야 했다.
카트만두 부다나트에는 싸캬 티진 성하께서 이야기하셨던 대로 세상에서 제일 큰 스투파가 있었다. 스투파는 너무나 컸기 때문에 탑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였다.
저 빛나는 지붕을 가진 사원 어딘가에 근본 스승님, 켄체 법왕께서 계실 터였다.
나는 사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3대 리메 법왕, 종사르 켄체 린포체
켄체 법왕의 시자가 전화를 해서 마을 서쪽에 있는 시첸 사원으로 오라고 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오래 된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그를 본 날로부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동굴을 깨버릴 듯이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좌중을 압도하던 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신비한 힘의 에너지. 어둠속에서 빛나던 강렬한 눈빛...
'이거 나 맞아요.'
그는 만다라 공양을 하고 있었다. 오른 손으로 좁쌀을 쓸어 담고 완손으로는 염주를 돌려 횟수를 세고 있었다.
'...억압받아서 변형되지 않은 원래의 불교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이야가를 해주고 싶군요. 첫째 모든 복합적인 것은 변화한다. 나는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티베트 불교는 1백년 전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나는 한국에 간 적이 있었어요. '컵'이라는 영화를 알고 있나요?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바로 나에요.'
'나는 현대에는 미디어가 가장 강력한 도구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리틀 부다'라는 영화를 찍을 때 조언자로 영화에 참여했어요. 그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영화란 1백개의 사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오늘 당신을 부른 것은 헤어지기에 앞서 당신에게 조언을 해 주고 싶어서에요. 앞으로 당신이 어디에 있든 이 3가지를 기억한다면 도움이 될거에요.
첫째, 스승을 백퍼센트 믿고 의지하세요.
당신이 스승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든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지 간에 그 스승에게 백퍼센트 헌신할수 있다면 그것은 역시 전생에 쌓은 선업 때문입니다.
둘째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셋째 당신이 무엇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꼬라를 마쳤을 때 이렇게 기도 하세요. '나의 수행을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돌려 주십시오.'라고요. 이것이 당신에게 주는 나의 조언이에요.'
'나는 그 동안 여기서 만다라 공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것중에 고른 겁니다. 여기에 나의 축복이 들어 있어요.'
그의 섬세한 손가락 뒤에 작고 동그란 터키석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파랗고 예쁘고 따뜻했다. 법왕의 웃는 얼굴이 등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환하고 눈부셨다.
까르마 띤레
'저는 도제 린포체의 제자에요. 따시 린포체도 도제 린포체의 제자지요.'
'린포체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 실제로는 외삼촌이시고요.'
룸비니
버스가 룸비니에 멈추었을 때 그곳은 우윳빛처럼 짙은 안개에 싸인 채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부처님의 탄생지.
웃는 린포체
한국사람과 티베트 사람들은 아주 닮았다.
나는 승려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고락푸르까지 가기로 했다.
라마 쌈뗀
기차는 14시간 만에 올드델리 역에 도착했다. 일단 난민촌까지 가서 탠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람살라는 몹시 추웠다.
내가 샹그릴라에 들어갔을 때, 쌈뗀은 부엌에서 능숙하게 칼질을 하고 있었다.
며칠을 히말라야의 강풍에 떨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람살라를 떠났다. 떠나는 날 또 버스 정거장까지 배웅해준 쌈뗀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오랬동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4부 다시 티베트로
성도에서
도제 린포체를 만나기 위해 티베트로 가기에 앞서 중국 서부 사천성의 성도로 갔다. 나왕이라는 승려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성도에 거쳐 가신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제 고향은 성도에서 가까운 곳이에요. 10여 년 전에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사원을 나와 히말라야를 넘었었요. 가족들에게 제가 잘 있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2년후에는 티베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겠다고도 전해주세요.'
성도는 분지라서 덮고 습기차고 그래서 매운 음식을 잘 먹기로 유명한 곳이다.
시닝
나왕의 형과 헤어져 4일 후에 기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도시 시닝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하루 이상 들어가야 목적지 낭시에 갈 수 있다.
따시 린포체께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하지 못했다. 결국 전화통화를 못 하고 버스터미널에서 낭시로 가는 침대 버스를 탔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도합 36시간을 달리니 낭시가 가까워졌는지 군데군데 나무가 보이고 아스팔트 길도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왔다.'
거대한 야크 해골로 장식된 문을 지나자 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렀다. 문에는 '낭시에 오시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글이 씌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흥겹고 즐거운 노래였다. 침착한 표정으로 줄담배만 피우던 사람들이 비누풍선처럼 와글와글 들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년들처럼 고향이 주는 안도감과 기쁨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낭시
버스에서 내리자 장총을 둘러멘 경찰들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승객들, 특히 남자들을 조사했다.
저녁에 까르마의 사촌누이와 남편이 호텔로 찾아왔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도제 린포체를 만나 뵙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따시 린포체의 제자라고 밝히고 스승의 스승이신 도제 린포체께서 위험에 처했다면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내가 따시 린포체의 제자라는 말에 기뻐했다.
'언젠가 린포체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린포체가 한 그루 나무라면 당신의 가족은 나무를 감싸고 있는 화분이라고요. 옛날에 당신의 가족들이 린포체께서 수행을 계속하실 수 있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어미 양은 산 위에
새끼 양은 산 아래에 있네
목동이여, 목동이여
어미와 새끼가
만날 수 있게 해 주오.'
누이의 어머니가 노래를 불렀다.
원래 린포체께서 40년 간 밀실수행을 하셨던 동굴은 바로 이 바위틈에 있었다.
'여기에는 병에 걸려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다 환자들이에요.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해요.'
이윽고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일어나 흰 카닥을 양 손에 걸치고 어두운 입구를 향해 섰다. 그리고 도제 린포체께서 들어오셨다. 린포체는 키가 큰 데다 몹시 말랐기 때문에 거인같이 보였다. 린포체는 끊임없이 '옴, 아, 훔' 이라고 웅얼거리며 카닥을 받으시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주셨다.
그는 맑고, 희고,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고,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빛나는 것은 그가 지어 주는 미소였다. 그 미소는 8월의 초원처럼 시원하고 환했으며 그러면서도 따뜻했다. 사람이 저처럼 웃을 수도 있다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마음 속 구비구비 감추어진 찌든 때를 녹아내리게 만들 것 같았다.
'지금 린포체께서는 금언 중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못 하세요.'
누이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린포체께서는 말 대신 계속 진언만을 외우고 계셨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내 앞에 선 린포체는 손녀딸을 대하듯 웃음을 띤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액체를 가슴과 등에 뿜어 주시고 병을 기울여 뿌연 색깔을 띤 액체를 따라 주셨다.
린포체는 모두에게 액체를 뿜어 주시고 다시 처음 사람에게로 가서 이번에 불붙인 향으로 상처를 지져 주셨다. 나는 절을 하다가 다친 무릎을 내밀었다. 그는 길고 홀쭉한 몸을 굽혀 나의 무릎을 약 1~2초 정도 들여보았다. 그리고 무릎의 안쪽에 천천히 향을 대어 주었다.
'린포체께서 며칠 후에 금언을 풀고 당신을 만나 주실 거예요. 린포체를 만나고 나면 저와 어머니는 집으로 내려갈 테니 당신은 여기에 머무세요.'
따실레의 레빠
하늘은 깊은 바다를 옮겨 놓은 것처럼 짙푸렀다.
그날 오후에 손님이 한 명 더 늘었다. 그는 곱슬머리를 어께까지 기르고 붉은 치마 대신 흰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흰색 치마를 입은 것은 그가 뚬모 수행의 대가인 '래빠'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목구비가 너무 뚜렸하고 눈빛이 매섭게 빛나서 정색하고 쳐다보면 조금 무서운 따실레의 래빠는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나에게 매운 고추기름을 가져다 주었다. 지독하게 매운 이 고추기름은 따실레의 유일한 반찬이었다.
'저분은 원칭 라마라는 분인데 아주 오랫동안 밀실수행을 하셨어요. 그는 명상중에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고 무의식중에 무드라를 짓곤 한답니다.
린포체께서 그에게 특별히 흰색 치마 입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평상시에 그는 동굴에서 밀실수행만을 합니다. 그가 몇 년째 밀실수행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수행처를 떠나 바깥으로 나왔어요.'
까르마의 누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우리 앞을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구석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는 소녀 비구니에게 갔다. 비구니는 그의 부탁을 받고 밀가루가 발효되는 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린포체의 주방'은 금세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 찼다.
바위가 새긴 옴, 아, 훔
아침 일찍 나는 린포체께서 외우는 만트라와 종소리가 미풍처럼 간간이 들려오는 동굴 밖 소로에 서 있었다.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동굴에 가 볼래요?'
그런데 실제로 본 그곳은 동굴이라고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단지 집채만큼 큰 세 개의 바위가 겹쳐 있고, 그리고 그 밑에 겨우 생긴 약간의 틈에 불과했다. 안전한 입구나 긴 통로, 혹은 아늑한 공간 같은 것은 아예 없이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자리인지 방석이 깔려 있고 카닥이 걸려 있었다. 축축한 동굴 벽에 손을 대니 습기차고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밀려 올라왔다. 이런 곳에서, 외부와 차단시켜 주는 엉성한 문 하나없이 혹독한 티베트의 겨울을 어떻게 몇십 년 간 견디셨단 말인가?
린포체 역시 뚬모 수행으로 내부열을 깨우신 것이 분명하다.
'여기 글자가 보이죠?'
캠보가 벽에 어스름히 보이는 '옴, 아, 훔' 세 글자를 가리켰다. 그중에서도 '옴' 자는 가장 선명했고 글씨 표면이 다른 곳보다 밝게 보였다.
'이 글자들은 조각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솟아난 것입니다. 작년 겨울에 이 동굴에서 물이 솟아났어요. 이런 산꼭대기에 물이 솟아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엄동설한인데 린포체의 수행동굴 주변에 꽃들이 잔뜩 피어났어요. 그리고 진동과 같은 소리도 울렸어요.'
'밀라래빠의 십만송'
그는 제자들에게 '생명 에너지와 마음의 작용을 완전히 통달한 수행자는 사람의 몸을 이루는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원소의 본질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어떤 몸으로든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티베트의 모처에 수행을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드디어 린포체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 밤이 지나면 린포체께서는 또 깊은 명상속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방은 좁고 춥고 누추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8월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때까지는 나는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7월에 제자들을 위해 이따실레에서 법회를 열 예정입니다. 그 법회가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지요.'
'불교의 수행법을 얻기 위해 티베트로 온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따시 린포체께 수행을 배웠습니다. 지금 저의 유일한 소망은 수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린포체께 수행법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살펴보니 당신은 아주 좋은 안연을 갖고 있어요. 오늘부터 나는 당신이 나의 제자로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도제 린포체의 제자가 되어 관정을 받았다.
다음 날부터 린포체는 다시 밀실수행을 시작하셨다. 그 수행은 7월, 법회가 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동안 나는 린포체께서 특별히 마련해 주신 방에 머물렀다. 방은 린포체가 계시는 곳 바로 아래층이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계시라고 해서 미안해요.'
때에 절어 번질번질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여성이 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캠보의 누나인데 다들 공행모라고 불렀다. 그녀를 공행모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는 수행도 높고 사원에서의 지위도 높은 것 같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끄어억ㅡ' 하고 트림을 했다. 트림이라기 보다는 배의 맨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천둥이 용트림을 하면서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 거대한 진동이었다.
공행모뿐 아니라 따실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트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천둥의 트림'에 대해 내가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무슨 말씀을 요, 여기는 호텔이나 바름없는 걸요. 내가 묵었던 어떤 호텔보다 좋아요.'
확실히 풍경만은 최고였다. 나는 돌벽으로 쌓아올린 흙침대에 앉아 빈약한 창문으로 내다보았던 해발 4천 미터의 풍경과 5월에도 내리는 폭설과 그 폭설이 만들어 내는 설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고산반응은 어때요?'
'이것은 린포체께서 축복하신 거예요. 머리가 계속 아프면 이걸 먹어 보세요. 두통, 감기에 효과가 아주 좋아요.'
종이 안에는 엄지손톱만한 흰색 환약이 들어 있었다.
'이건 이 지역에서만 나는 특별한 흙으로 만들었어요.'
'정말 두통이 사라졌어요.'
린포체의 동굴에 문과 창문을 새로 달았고 바닥을 골라내고 거친 카펫을 깔았다. 공사가 끝나자 린포체는 임시 거처에서 다시 동굴로 돌아가셨다.
날씨가 풀려도 주방의 화로에 하루 종일 불을 때야 했다. 두끼의 식사 외에 차도 끓여야 하고 세숫물이며 설거지물도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의 고원에서 연료로 쓰이는 것은 야크똥이다. 야크란 짐승이 채식만 하기 때문인지 똥이라도 악취가 전혀 없고 연소도 잘 된다.
'진짜 아름답다......'
며칠 후 나는 그의 넋을 나가게 했던 회색 티셔츠를 깨끗하게 빨아서 그를 찾아갔다. 그의 집은 2평이나 될까, 성냥갑처럼 작았는데 그 안에 작은 흙침대ㅡ그의 침대도 린포체의 침대처럼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다. 그도 밤이면 누워서 자지 않는다. 린포체의 사원에 있는 승려 중에는 누워서 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ㅡ 와 부뚝막과 몇 가지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식사했어요? 짬바 드릴까요? 아니면 양젖이나 뜨거운 물을 드릴까요?'
아름다운 아버지, 도제 린포체
7월이 되자 따실레 사람들은 법회 준비로 눈코뜰새없이 바빠졌다. 산꼭대기 평지에 커다란 차양을 설치하고 란포체가 앉으실 자리와 테이블을 준비했다.
텐트생활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활해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법회 때 린포체께서 '바르도 퇴돌' 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첫날, '바르도 퇴돌' 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찰나, 나는 린포체의 뒤편으로 검은 구름이 허겁지겁 몰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후로도 란포체께서 '바르도 퇴돌' 에 대한 법문만 시작하시면 하늘은 정해진 순서처럼 구름이 몰려 들었고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그때까지 우산을 받치고 계시던 린포체께서 말씀을 멈추고 찢어진 차양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수염을 잡고 매달리는 철없는 장난꾸러기 손자를 보듯이 그렇게 웃음을 띤 표정을 지으시고 그날의 법문을 멈추었다.
'미라래빠 전기'에 그가 법문을 할 때면 하늘로부터 천신과 다끼니들이 내려와 그 법문을 듣는다고 하였다.
이상한 것은 날씨뿐이 아니었다. 나는 린포체께서 법문을 하실 때 몇몇 티베트 사람들 중에 ㅡ승려들도 있고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ㅡ 이상한 상태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 버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트랜스 상태에서 아름다운 무드라를 짓는가 하면 치솟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펄쩍펄쩍 뛰어 다니기도 했다. 고함을 지르면서 앚은자세로 차양의 천장까지 치솟으며 뛰어 오르는 이도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상태로 빠져들어 마치 광적인 마법사의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오후 법회 시간 내내 나는 몸에 떨림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한겨울에 서리맞은 것처럼 덜덜덜 떨리면서도 등줄기가 화끈거리고, 더운 열기가 치솟아 올라 온몸은 화로처럼 뜨거웠다.
'어제 아마 린포체께서 당신에게 포와의식을 하신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람은 본디 생명의 바람 뿌라나, 빈두, 그리고 뿌라나와 빈두가 다니는 통로인 나디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다시 복잡하고 세부적인 하부구조로 나뉘어 있다. 수행이란 이 모든 뿌라나, 나디, 빈두를 정화하고 막힌 곳을 뚫어 주는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마침내 '붓다가 되는 것'이다.
밀교수행자는 생기와 원만의 두 방편을 통해 여러 층차의 감응을 차례로 거치면서 자기 몸의 뿌라나, 빈두, 나디 등을 정화해 나가고 그 정화가 완성될 때 법신, 보신, 화신의 불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밤의 신비의식
법회 마지막 날이었다. 해가 지고 한참이나 됐는데 투도 라마가 텐트로 찾아왔다.
'저녁에 진짜 법회가 열릴 겁니다. 다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한밤중의 법회에는 린포체의 초대를 받은 사람만 참석할 수 있었다.
이윽고 린포체께서 짧은 법문을 하시고 만트라를 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또다시 마술에 걸린 사람들처럼 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앉은채로 2m 높이까지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가 하면, 트랜스 상태에서 무드라를 짓고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점차 린포체의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춤도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끊어내려는 듯 거샌 몸짓으로 구르고 뛰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또다시 열과 떨림이 온몸을 휩싸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온몸이 커다란 산이나 바위처럼 점점 커지고 있다는 느낌과 동시에 전기충격 같은 진동이 꼬리뼈와 정수리를 잇는 통로를 뚫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를 모두 포기하고 빛의 몸 앞에 엎드린 순간, 나는 그가 내가 모시고 있는 탱화 속 분노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음 순간 분노존은 빠드마삼바바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빠드마삼바바의 얼굴은 린포체의 자애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캠보와 따실레의 래빠가 옆에 서 있었다.
'이런 상태에 빠졌을 때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안 되거든요.'
'내 눈앞에 글씨가 지나가요. 나는 다만 그 글씨를 보고 노래를 부를 뿐이에요.'
'투도 라마는 뗄뙨이에요. 그는 감응을 받을 때마다 신비세계로부터 숨겨진 비법을 캐온답니다. 이번 법회에서 린포체께서 가르쳐 주셨던 아미타불 만트라도 투도 라마가 새로 찾아낸 것이에요.'
뗄뙨,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굴장사이다. 그 옛날 티베트에 처음 불교를 가져온 빠드마삼바바가 세상에 공개할 때가 이르지 않은 비밀의 경전을 여러 동굴에 숨겨 놓으셨다.
상상외로 트림은 체력을 많이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이건 몸 속에 있는 탁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예전에 린포체께서도 그렇게 트림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아주 좋은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뭐야?'
나는 꺄숑의 목에 매달려 반짝이는 작은 팬던트를 발견했다.
'이 안에 린포체의 사리가 들어 있어요. 우리들은 다 하나씩 갖고 있는데 아말라ㅡ카르마의 동생 다섯명은 모두 나를 아말라, 어머니라고 부렀다ㅡ 는 사리를 안 갖고 있어요? 그럼 린포체께 달라고 하세요, 틀림없이 주실거예요.
린포체의 이가 빠지면 거기서 사리가 계속 생겨나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수행을 하시다 일어난 자리에서도 사리가 나오고, 콧물을 닦는 수건에서도 나와요. 잘라낸 머리카락도 유리같은 사리로 변하는 걸요.
사람들은 린포체를 마르빠의 화신이라고 하고, 빠드마삼바바의 화신이라고도 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린포체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만 린포체께서는 인연을 살펴보시고 좋은 인연만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제자가 되면 꼭 사리 한 과씩 내려 주세요.
비밀의 만트라 속으로
며칠 후 나는 린포체의 부름을 받고 2층에 있는 동굴 방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입으니 꼭 티베트 사람 같구나.'
그때 나는 공행모가 준 티베트 전통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순모ㅡ티베트에서는 흔하디 흔한ㅡ 로 만들어져 따뜻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괜찮으니 입을 막지 말아라. 트림은 몸 속의 나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아주 좋은 것이다. 나는 네가 이번 법회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밤, 비밀의 의식을 행할 때 보았던 불붙는 푸른빛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그 분노존이 왼손에 돌제를 들고 오른 손에는 굽이진 칼을 들었더냐?'
'네가 본 것은 빠드마삼바바의 분노존이다. 그 분노존은 또한 나의 호법신이기도 하다. 역시 너는 아주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구나. 또한 매우 신실하며 수행에 부지런하기 때문에 나는 네가 앞으로도 수행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따실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 확실히 여기는 매우 좋은 곳이다. 일찍이 나의 스승이신 잠공 콩튤 린포체께서도 이곳에 오셔서 '아주 좋다' 라고 말씀하셨다.
1940년대에 쌰캬빠의 나왕 캠보가 제자들과 함께 여기에서 나로 공행모 수행을 하실때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뜨고, 꽃비가 내리고 땅이 붉은색으로 물들기도 했단다. 내가 여기에 너를 위하여 작은 집을 지어 줄 테니 매년 여름에 여기와서 내 곁에 수행을 하면 어떻겠니?
위치는 저 샘터 옆이 어떨까 생각하는데, 마음에 드느냐? 샘터 옆이면 물을 긷기도 편하고 여기에 오기도 가까울 것이다. 지금 티베트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여름마다 여기와 와 있으면 티베트어 선생님도 찾아 주도록 하마.'
'나는 지난 40년 간 이 동굴에서 혼자서 수행을 해 왔다. 여기서 문화혁명도 겪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위험했단다. 그 동안 열심히 수행한 덕분에 지난 겨울에 내 수행이 비로소 하나의 고비를 넘어섰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넘어야 할 수행의 고비가 2개나 남아 있단다.'
10살에 출가했고 40년 이상 동굴에서 짬바만 드시며 밀실수행을 하고 계신 분이, '성취자'라고 불리며 몸에서 사리를 만들어 '이제 겨우 수행의 한 고비를 넘어섰을 뿐'이라고 말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9월에 들어서면서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있었다.
'괜찮다. 아주 좋은 일이다. 밀법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빈두가 정수리에 있는데 그 빈두가 터져서 트림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한국에 가서도 트림이 멈추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왜 트림을 하는지 설명해주렴. 트림은 린포체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것이며 몸 속의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좋은 것이라고 말이야.'
'따시가 너에게 40만 번이나 오체투지를 시켰다고 했지?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오체투지를 하면서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 온몸의 근육과 함께 나디도 움직이게 돼서 막힌 나디를 풀어준단다. 또한 척추의 동공을 따라 중앙 에너지 통로인 수슘나가 있는데, 오체투지를 하면 뿌라나와 빈두가 이 중앙에너지가 통로로 모아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오체투지는 아주 중요하다. 힘이 들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많이 할수록 좋단다. 나는 네가 티베트 사람들을 빼고는 내 제자들중에서 가장 수행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생에도 수행을 많이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오체투지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르도 퇴돌' 의 만트라를 한 번 들려 주실 수 있을 까요?'
'응.... 어렵지 않다.'
린포체께서도 섭섭하셨단 것일까? 내가 절을 하고 동굴 방을 떠날 때 린포체는 길고 가는 손을 들어서 자꾸 '따시델레'를 외처 주었다.
아침 일찍 따실레를 떠났다. 주방에서 일하던 어린 비구니들이 잠을 자다가 내가 간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나왔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이마에 이마를 대고 '따실델레'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곳을 머릿속에 입력시키려는 듯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언덕을 넘어 밀실수행처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갔다.
'모르세요? 여기서 수행하는 분 , 따시 린포체세요.'
'따시 린포체를 만날 수 있어?'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단호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 집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그저 서 있었다.
나는 벽 건너편에 있는 따시 린포체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다시 언덕길을 내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까마득히 높은 벼랑 끝에서 따시 린포체의 제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기
한국으로 돌아와 3달 내내 이 책을 썼다. 책을 쓰기 전에도 그랬지만 쓰는 동안에도 줄곧 여러 스승님들께 기도를 드렸다.
네팔에서 켄체 린포체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따시 린포체와 도제 린포체께도 이런 내용을 책으로 써도 될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스승님들은 모두 흔쾌히 '좋다' 고 말씀하셨다. 여러 스승님의 축복을 받은 이 책이 세상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