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이정자 뜸사랑 16기, 정통침뜸평생교육원 교수

 

 

뜸사랑 봉사실에서 하는 인사는 색다르다.

"오늘은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침상에 오는 환자들에게 봉사자들이 눈을 맞추며 하는 인사법이다. 처음엔 굉장히 쑥스러웠는데 이젠 제법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는 몸이 아픈 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인사법이 바뀐 것이다.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아픈 곳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환자에게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더운 날인데도 긴 옷을 입은 남루한 모습의 남자가 들어왔다.

"오늘은 어디가 제일 안 좋으세요?"

"오른쪽 손가락이 너무 아파요."

순간적으로 그 사람의 오른쪽 팔을 쳐다보았다. 긴 소매 속에 오른팔이 없었다. 차트에는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고 적혀있었다. 순간 마음이 아득해졌다. 그 사람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있었다.

 

봉사국장님이 팔이 잘려나간 뭉툭한 어깨를 한참 동안 감싸며 어루만져주었다. 뜸을 담당하는 내게도 만져보라고 했는데 뭉툭한 어깨에 냉기가 흘렀다. 팔과 손가락으로 흘러야할 혈액과 따뜻한 기가 차가운 바람이 되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같았다. '이렇게 차가운 냉기에는 뜸이 제격이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봉사국장님은 없는 오른쪽 팔의 새끼손가락이 아프다는 사람에게 있는 쪽인 왼쪽 팔의 새끼손가락에 뜸을 해주었다. 뜸을 뜨자 환자는 너무 시원하다고 했다. 뜸을 뜨고 가면 며칠 동안은 고통 없이 지낸다고 했다. 뜸사랑에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했는데 그렇게 해 드릴수 없어 미안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올 수 있다고 했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분이라 집에서 뜸을 뜰 수도 없다니 안타까웠다.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나 장기가 그대로 있는 것 처럼 통증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을 환상통(phantom pain) 이라고 한다. 영어의 phantom이라는 단어의 뜻이 '유령' '환상'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하니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사지기형인 사람들도 이런 환상통을 느끼기도하고 유방이나 내장을 절제한 후에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수십 년 동안 환상통을 심리적인 원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신체적인 원인, 즉 뇌에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는 추세다. 절단 후 사지와 연결되었던 신경들이 스스로 재결합하여 신경회로를 구축하여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없는 팔이 아프니 그 마음이 어떨까 하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나도 환상통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다가 없어진 것들 그것 때문에 내가 앓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강남에 있던 아파트, 지칠 줄 모르고 활기찼던 젊은 시절, 그리고 글 쓰는 재능... .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글을 써서 서울까지 와서 사응ㄹ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조금이나마 재주가 있었을 텐데... . 수십 년을 잊고 살다가 이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나는 늘 아프다. 글을 쓰고 있어도 마음이 아프고 쓰지않고 놀고 있어도 마음이 아프다. 글을 쓰다보면 재주 없는 내가 야속해서 아프고 글을 안 쓰고 놀고 있으면 마음 한 곳이 허허로워서 아프다. 없는 것이 있는 것 마냥 아픈 것이 더 기막힌 아픔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나의 환상통은 어찌해야 하나.

 

- <나는 빨강이 좋다>(인간과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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