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프다(계간구당 1018 가을)
이정자 교수
뜸사랑 봉사실에서 하얀 피부의 외국인을 봉사자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모로코 사람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봉사자가 말했다. 그 나라 왕비님을 알아요.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였지요?
나는 속으로 얼른 그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레이스 켈리. 그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모나코와 모로코는 다른 나라란다. 모나코는 조그마한 나라이지만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큰 나라란다. 나는 그가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침뜸을 어떻게 알고 공부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러나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이것저것 자꾸 물어본다는 게 예의가 아닐 듯싶었다. 다른 남자 봉사자에게 자세하게 물어봐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외국인들은 개인적인 질문은 별로 안 좋아해요. 뭐가 그렇게 알고 싶은 게 많나요.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등 시큰둥 하게 말했다. 나는 정말 궁금한 게 많아요.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지요. 글 쓰는 사람이 잖아요. 내가 웃으며 농담처럼 대답했다.
"애달픈 것이 많군요. 얼마나 애가 타겠어요. 심장이 상할지도 모르는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며 누군가 말했다. 애달프다는 그 말이 물 위에 확 퍼지는 선명한 물감처럼 순식간에 내 마음에 번진다.
무엇이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을 때가 평안하고 좋은 시절이라 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느낄 때 머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다리가 아프다고 느낄 때 다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시점이 된다. 머리가 안 아플 때 사람들은 머리가 있는지 모르고 산다. 마치 머리가 없는 것 처럼. 다리가 안 아플 때 사람들은 다리가 없는 것 처럼 다리에 대한 인식이 없다.
나는 빈궁마마가 되고 난 후에 여러 가지 통증에 몸져누웠었다. 우리나라는 자궁적출수술이 세계 1위라고 한다. 나도 그것에 일조를 한 것이다. 친구들이 불러 주던 빈궁마마라는 호칭. 그 호칭은 누가 지었는지 정말 상을 주고 싶다. 장기 하나가 없는 사람들을 마마라고 부르며 서로 위로하는 그 마음이 애달프기도 하다.
서양의학의 개념으로는 자궁이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난 후는 별로 할일이 없는 기관이라고 인식하는 듯 하다. 우리나라 최고를 다투는 대형병원 의사는 머뭇거리는 나에게 더 이상 아이를 낳을 나이도 아닌데 무엇을 망설이냐며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동야의학의 개념에 모든 장기는 있어야 할 이유가 반드시 있으며 전신의 장기는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수술 후유증으로 생긴 여러 통증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발바닥 통증이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발을 디디면 무수히 많은 예리한 칼날이 발바닥을 찔렀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 진땀이 났다. 발바닥이 내게 있다는 것을 매일 매일 느끼며 사는 것은 내 마음이 발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것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했다.
걷지도 못하고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중학교 동창 친구가 뜸을 알려 주었다. 구십이 되어가는 할아버지가 뜸으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한다고 했다. 나도 그곳에 갔고 뜸을 떠서 몸이 좋아졌다. 빈궁마마가 된 여인들 중에 나처럼 발바닥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 전신은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생각이 정말 들었다. 어쨌든 장기를 없애는 수술은 이것저것을 다 해 본 후 최후에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뜸은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 전통 치료법이고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뜸을 아는 사람도 드물어지고 또한 기득권층의 아집으로 이제 우리 나라에서 일반인이 뜸을 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뜸 치료법을 외국인이 배웠다니 어찌 신기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뜸은 작은 흉터가 남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 선호하지 않아 머지않아 뜸이 사라질 것만 같아 나는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요즘은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이 최후의 치료법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뜸사랑 봉사자 중에는 본인이 아프거나 가족이 아픈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느 누가 불법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을 배우고 싶을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뜸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들이 왜 뜸을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고통 때문이라니 애달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뇌가 있음을 느끼고 폐와 난소와 위가 있음을 느끼고 뼈가 있음을 느끼며 뇌하수체가 있음을 느낀다. 이웃 언니가 인간에게는 고통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모든 인간이 겪는 고통의 총량은 동일하단다. 이런 고통이 많으면 저런 고통은 적으니 세상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육신의 고통이 있는 사람에게 다른 고통이라도 줄어든다면 정말 다행이겠다.
다시 한 주가 흘러 모로코 봉사자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같이 한 조를 이루어 봉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자신 있게 물어볼 수 있었다. 이미 지난주에 안면도 있었으니까. 그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에 갔다고 했다. 모로코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쓴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한국 여인을 만나 결혼해서 5살 딸도 있고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단다. 가벼운 감기몸살 등으로 몸이 안 좋아 한방병원에 갔는데 침과 뜸 치료를 받고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고 싶다고 했고 아내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행복한 경우에 속해서 다행이다. 뜸을 알고 오는 사람들은 애달픈 경우가 더 많이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무엇인가가 궁금해서 사람에게 묻는다. 그러나 잘 이야기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병을 자랑하라는 말도 있지만, 아직 그만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은 숨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다. 심보가 사납다 할 때 심보라는 말은 심포에서 온 말이란다.
심포는 심장을 싸고 있는 막에 해당하는데 우리의 감정이 심포를 통해서 조절되고 현대 의학에서 뇌의 감정 중추가 하는 역활을 한의학에서는 심포가 그 역활을 담당한단다. 우리 몸의 통증은 대부분 감정 즉 스트레스와 관계가 있는데 마음 씀이 그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알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그들의 거부를 받으면 어떨 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상하고 얼굴이 약간 상기된다. 가슴이 약하게 뛰고 가슴부터 옆구리에 걸쳐 작지만 아픔도 온다. 궁금한 것이 많은 내 심보 때문에 나는 오늘도 애달프다.
<수를 놓다>(인간과문학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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