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會(백회) 뜸의 기운'(계간 구당 2016 봄)
현ㅇㅇ(정회원 31기)
[퇴원 후에 奉仕室의 가파른 3층 계단을 오를 때는 다리에 힘이 없어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스티로폼으로 계단 폭을 줄여주면 하나하나 겨우 밟고 올라갔다. 가는 길은 힘들어도 교수님들과 반원들의 정겨운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한없이 기뻤다. 두 달 정도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나는 남편과 아들이 교대로 대리 出席(출석)하여 錄音(녹음)해온 자료를 침대에 누워서 들으며 공부했다.]
신통한 뜸의 효능에 好奇心이 번쩍
초등학교 敎師로 40년간 근무하고 퇴직을 한 후 그동안 하고 싶었던 趣味(취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참으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꿈을 펼치고 싶은 마음에 가슴에 벅찼다.
친구의 권유로 구미에 소재한 경북환경연수원의 山野草 반에 들게 되었다. 어느날 현장 실습을 가던 버스 안에서 한 선배님이 특기를 발휘하였다. 뜸의 효능에 대한 열변을 토하였는데, 그날 灸堂(구당) 선생님의 존함을 처음 들었고 好奇心이 발동하였다. 그분이 버스 멀미를 하지 않는 뜸자리를 알려주고 '곡지'에도 뜸을 떠주었는데 뜸을 뜬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 하였다. 그다음 연수 시간에는 연수생들에게 百會에 뜸을 차례로 떠주었는데, 뜸을 뜨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피로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뜸의 효능이 신기했던 나는 바로 이거다 싶어 자세히 여쭈어보았다. 선배님은 기초부터 배우고 뜸을 매일 뜨면 신비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침뜸에 대한 공부를 이 나이에 할 수 있겠나 싶어 우선은 무릎과 허리 통증 치료부터 받자는 생각으로 大邱(대구) 뜸사랑 봉사실을 찾게 되었다. 세 번의 치료를 받은 후 무릎의 통증이 가벼워짐을 느끼고, 신기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입증해 보이려고 애를 써서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여러 교수님들의 친절함에 이끌려 331차 초급반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우리반은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會員들로 구성되었다. 가장 나이가 많으신 75세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사위, 손자가 모두 醫師인 집안이었다. 연로하시지만 무척 머리가 명석하고 노력하고 분이셨다. 나는 그다음 두번째로 나이가 많은 할머니다. 회원들의 추천으로 초급반의 班長(반장)이 되었는데, 농담 섞인 말에 의하면 반장을 맡으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해서 늘 勞心焦思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징크스를 깨고자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일단 治療(치료)를 목적으로 교육원 등록을 하긴 했지만 수업을 듣고 경락경학을 공부하다 보니 재미가 날로 더했다. 한자 뜻풀이는 그동안 몰랐던 것을 깨치게 해주어서 정말로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늦은 나이게 하는 공부라 그런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어느 땐 몸만 덩그러니 있을 때도 있었다.
불현듯 당한 사고
한창 침뜸의 깊은 맛을 알아가던 중급반 2개월 차에 뜻밖의 事故가 일어났다. 비가 오는 8월 어느 날, 현관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계단 모퉁이에 허리를 부딪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남편의 부축으로 현관으로 옮겨진 뒤 119를 부르기 전 아프 부위에 뜸을 여러 장 떠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痛症(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뜸을 뜨는 법을 익혔지만 별로 탐탁지 않아 하던 남편이었는데 워낙 급하니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날 새삼 남편의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救急車를 불러서 가는 도중에도 또박또박 물음에 답할 정도로 통증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 도착해서 요추 2번이 찌그러지고 금이 갔다는 골절 진단을 받았다. 6주 진단이 나왔다.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정도의 심한 골절이어서 반듯하게 누워만 있어야 하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뒤로 넘어졌다면 뇌를 심하게 다쳤을 것이고, 골반을 다쳤다면 하반신 마비까지 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마 옆으로 넘어져서 多幸(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지 않고 自然治癒(자연치유)를 선택했다. 침뜸으로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었기 때문이다. 빨리 나아서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반장으로서 職分(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아쉬웠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었다.
老化로 인해 뼈와 근력이 약해지고, 비신양허로 腎氣가 허약해져 下體에 힘이 없는 가운데 넘어져서 골절을 당한 것이다. 침은 아직 배우지 않은 상태였기에 집에서 뜸 치료를 해야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4주만에 무리한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입원 중에는 남편이 뜸을 해주다가 병원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었었다. 감염될 수도 있다고 절대 못하게 했다. 입원 중에 같은 호실의 젊은 환자에게 뜸의 효능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그도 내 얘기에 솔깃하여 결국엔 大邱 봉사실을 찾아가 수업 등록을 하고 현재는 중급반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당시 강렬하게 든 생각은 '뜸을 해야만 빨리 나을 텐데'하는 것이었다. 정말 내 생각대로 退院(퇴원)을 하고 계속 뜸을 뜨니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빠른 속도로 골절 부위가 좋아졌다. 병원에서도 60대 중반인데도 불구하고 回復(회복) 속도가 좋으며 골절 부위가 빨리 아물었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누워만 있어서 체중이 많이 늘고 변비가 심했으며, 오장의 기능과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다.
남편과 아들의 보살핌으로 공부의 참맛을 알아가다
아픈 나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 가며 뜸을 해주었다. 全身의 기혈 순환과 면역력 향상을 위해 무극보양뜸을 기본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천추, 대장유, 골절 부위인 요추 2번과 신유, 디스크가 있는 4, 5번 요추, 통증 부위 아시혈에 매일 5장씩 5개월 동안 뜸을 떴다. 그리고 一週日에 두 번씩 봉사실에서 침 치료도 받았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 이후 기본에 있던 요추 4, 5번의 허리 디스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디스크 부분에 뜸을 시작한 지 10개월 되었는데, 골절 덕분에 디스크까지 사라지다니 뜸의 놀라운 효능을 발견하며 공부에 더욱 매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퇴원 후에 봉사실의 가파른 3층 계단을 오를 때는 다리에 힘이 없어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스티로폼으로 계단 폭을 줄여주면 하나하나 겨우 밟고 올라갔다. 가는 길은 힘들어도 교수님들과 반원들의 정겨운 모습을 다시보게 되어 한없이 기뻤다. 두 달 정도 수업을 들을 수 없던 나는 남편과 아들이 교대로 대리 출석하여 錄音(녹음)해온 자료를 침대에 누워서 들으며 공부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책을 볼 힘조차 없었다.
그 일을 격고 나서 우리 집에 찾아온 반가운 변화라면 침과 뜸으로 健康을 회복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아들은 지금 고급반에서 나의 대를 이어 반장을 맡고 있다. 근무를 하면서 피곤한 와중에도 공부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만 한데, 그래도 재미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힘과 총명함을 준 백회 뜸
사람 나이 예순이 넘어서면 책을 읽어도 바로 윗줄의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구미에서 大邱로 다니려니 힘에 벅차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는데 首席(수석)이라고 하니 믿기질 않았다. 특별한 공부 비법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경락경혈 이론 부분에서 滿點(만점)이 나온 것은 혈자리 첫 자만 따서 지명, 학교명, 상호명 등 여러 가지를 대입시켜 재미있게 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수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녹음을 해놓고 반복을 하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점을 발가락 손가락에 적어가며 외우고, 棉掌匣(면장갑)에 펜으로 적어서 하는 것도 시도했다.
문제집은 '구당'지와 기출문제집 등을 골고루 살펴봤고, 그룹으로 공부한 것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업 시간중 교수님께서 ''百會(백회)는 서울大 뜸''이라고 하셨다. 바로 그거다! 백회에 뜸을 뜰 때마다 全身의 시원함과 개운함을 느꼈으며 쇠약한 나에게는 輔藥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험 수석은 백회 뜸 덕분인 것 같고,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가르침에 보답할 수 있어서 나로서는 무척 큰 영광이다. 반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에도 감사하고 있다.
침뜸을 배우고 고마운 점이 또 하나 있다면 올해 메르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집에서 스스로 免疫力(면역력)을 키워가며 自家 치료를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의학 중의 醫學이 아니냐고 자부한다. 아직도 침뜸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앞으로도 살면서 危機(위기)의 순간은 얼마든지 올 것이다. 하지만 내게 지혜로운 침뜸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지금 당장 수석의 기쁨보다도 봉사를 一等(일등)으로 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며, 그런 마음가짐이야말로 진정한 灸堂 선생님의 가르침이라고 가슴 깊이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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