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향년 105세로 별세한 김남수 옹. 생전 진료 모습./조선일보 DB
'침과 뜸 대중화'에 한평생 바친 구당 김남수옹 별세, 향년 105세
조홍복 기자
입력 2020. 12. 28
고향 장성 자택서 27일 타계
유족 "지병 없이 평화롭게 생 마감"
평생 침·뜸 대중화에 매진했던 ‘침구(鍼灸)계의 큰 별’ 구당(灸堂) 김남수(金南洙) 옹이 향년 105세로 별세했다.
28일 전남 장성군과 유족에 따르면, 구당은 지난 27일 오후 4시 50분쯤 장성군 서삼면 금계마을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금계마을 뒷산에 조상의 무덤이 있다. 구당은 2015년 10월 고향 장성에서 무극보양뜸센터를 열고 침과 뜸을 놓는 무료 의료 활동을 이어왔다. 선영(先塋)이 있는 금계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큰딸과 지냈다.
2018년 4월, 다소 몸이 쇠약해지자 침과 뜸 기구를 내려놨다. 당시 103세였다. 28세 때부터 지속한 침구사(鍼灸師)로서의 의료행위가 75년 만에 공식적으로 중단된 것이다. 제자들과 교류는 멈추지 않았다.
임종을 지킨 장녀 김관순(71)씨는 본지 통화에서 “아버지는 2년 전 정신이 또렷하고 몸도 건강했지만 고령이라 일을 중단했다”며 “지병으로 고생하는 일 없이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빈소는 장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29일.
1915년 5월 전남 광산군 하남면(지금의 장성군)에서 태어난 김남수 옹의 아호 구당은 말 그대로 ‘뜸(灸)을 뜨는 집(堂)’이라는 뜻이다. 부친 김서중씨로부터 11세부터 뜸과 침을 배웠다는 구당은 대가 없이 주민들에게 무료 시술을 했다. 그때 비롯된 아호가 구당이다.
일제시대 1943년 침사(鍼士·침을 놓는 사람) 자격증을 딴 구당은 구사(灸士·뜸 놓는 사람) 자격 없이 침과 뜸 시술을 병행했다. 구당은 28세 나이인 1943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서 남수침술원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구당이 한의학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떠오른 것은 침술원을 연 지 65년 만인 93세에 이르러서였다. 2008년 방영된 공중파의 추석 특집프로그램이 계기가 된 것이다.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가 두 편을 거쳐 방송됐고, 시청률은 20%가 넘었다.
구당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방송에서 선보인 자가(自家) 뜸 치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전국적으로 뜸 열풍이 불었다. 구당이 소설가 조정래, 시인 김지하, 배우 고(故) 장진영, 수영선수 박태환, 김춘진 의원(민주당) 등을 시술한 사실도 알려졌다. ‘현대판 화타(명의)’ ‘뜸 전도사’ ‘뜸 대가’ 등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구당의 손만 거치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말까지 퍼졌다. 구당은 자서전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장준하 선생,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도 치료했다”고 주장해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한의사협회는 “구당의 이력이 과장됐고, 신분도 침구사가 아닌 침만 놓는 침사로 뜸을 뜰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무면허 의료행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대판 화타’에서 ‘무면허 침술가’라는 엇갈린 꼬리표가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서울시가 쐐기를 박았다. 시는 2008년 10월 구당의 남수침술원 의료행위를 45일간 정지하는 자격 정지처분을 내렸다. 법원도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구당은 침술원을 폐쇄하고 중국과 미국으로 건너가 뜸 시술을 전파했다. 동시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11월 “침사에 의한 뜸 치료도 안전한 시술”이라며 그전 서울시의 행정처분과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모두 뒤집었다. 3년간의 족쇄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한의사협회의 ‘불법도 오래하면 합법이 되는가’라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잠재우지 못했다.
2017년 8월, 대법원이 구당이 수강생들에게 돈을 받고 침·뜸 실습 교육을 한 것은 불법 의료 행위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한의사 면허 없이 유료 침·뜸 교육을 한 혐의(부정 의료)로 재판에 넘겨진 구당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구사 자격이 없는 뜸 시술 행위가 법적으로 처벌받은 것이다.
반면 구당의 제자들은 2018년 8월 재판에서 ‘뜸 시술이 불법 의료행위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받았다. 당시 대전지법은 “의료인 아닌 사람이 뜸 시술을 해도 일반 공중의 위생에 위험을 가져온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녀 김관순씨는 “침사에게 뜸은 기술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아버지의 평소 생각이었다”며 “침과 뜸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노력한 아버지는 인체에 해가 없는 뜸으로 돈벌이보다는 봉사에 전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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