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구사 제도 역사와 현황

4. 대중적 침술의 부활

침구사법 제정청원은 70년대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있어왔지만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적극적인 입법논의는 되지 않으며 침구는 한의사들의 영역으로 굳어지게 된다. [표2]를 보면 90년대를 들어 6번에 걸쳐 침구사제도 부활과 관련된 법안이 국회의원들에 의하여 발의되었지만 매번 상임위원회에서 한두번 논의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국회 논의에서 핵심 사안은 기존 한의사가 있는데 별도로 침구사 제도를 둘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침구의 대체의학으로서의 활용가치나 비용의 경제성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되었지만 이러한 문제는 한의사제도의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지 별도의 침구사제도를 도입하면 의료시장에 혼란을 유발한다는 반대의견이 더 많았다. 이것은 의료의 공식부문에서는 한의사의 지위가 확고하게 인정받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한의사의 업무영역에 도전하는 시도는 더 이상 국회차원에서 지지를 얻기 어려워졌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표2]에서 주목할 점은 7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던 침구사법 제정운동이 이후 20여 년간 거의 사라졌다가 90년대 들어와 6차례나 시도될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중영역에서 침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되고 있고 침구부활운동 역시 과거보다 조직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90년대에는 대중영역에서 침구의 담론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연의술로서의 침구의 효용성이 인식되면서 대중영역에서 침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수십 개소의 침구강좌가 개설되었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침구강좌를 개설하는 정규학교로는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과 경기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이 있다. 전문대학인 송원대학에 2년제 자연요법과가 설치되어 뜸요법을 강의하고 있다. 정규학교보다 일반 교습소에서 더욱 활발하게 침구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대학부설 사회교육원의 경우가 많고 다음으로 침구관련단체에서 제공하는 강좌들이 있다. 강좌기간은 주2회 강연에 1~2년 정도가 보통이다. 강사진은 대부분 재야 침구사들이다.

침구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지식수준도 높아져 일반인들은 물론 이제는 의사들도 침구를 배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침구를 비과학적이라 여기며 경원시하던 의사들이 침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획기적인 상황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 중에도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도 상당수 있으며 침구를 배우려는 목적도 자기건강관리와 생명과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외선교 목적으로 침구를 배워 파송되는 경우들도 생겨났다. 대중영역에서의 침구의 유행은 기공이나 단전호흡과 같은 전통적인 수체수련이나 아로마 요법과 같은 서구에서 개발된 대체요법들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것과 유사한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고비용의 의료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의술의 가치에 주목하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침구는 더 이상 과학성 논란이나 의료불평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안적인 삶과 자연의술의 상징으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화된 한의사들이 침 시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구에 대한 새로운 대중적인 욕구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것의 상당부분이 재야 침구사들을 중심으로 해결되고 있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대중영역에서 새로운 침법이 개발되고 있는 점도 유의할만한 사실이다.

수지침 같은 새로운 침법이 비제도권에서 개발되었고 특히 수지침은 이미 전국적인 조직을 갖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이들 침구운동가들은 대체의학의 한 부분으로 침구를 받아들임으로써 한의사 이외의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일반인들도 침구를 배워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만성병이나 노인의료에 있어서 침구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비용효과가 높기 때문에 침구사를 많이 양성하여 이에 대비토록 하자는 주장까지 건개하고 있다(침뜸살리기 국민연대 준비모임, 2002). 이러한 주장이 아직은 정치적으로 큰 지지세력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는 대체의학과 자기치료(self-care)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문제는 계속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소지가 크다.

물론 법적으로 침구는 한의사들이 독점 영역으로 규정되어 있다.과거에 한의사들에게 침구시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던 법원도 이제는 침구는 한의사들의 영역으로 판정하고 있다. 한의사 제도가 공인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침구사를 별도로 인정하는 법제도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침구가 대중적인 간심사로 대두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침구사가 법제화되어 있는 일본의 경우는 한국처럼 침구에 대한 대중적인 운동이 없고 침구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변화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침구사라는 전문가가 이미 오래전부터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침구에 대한 새로운 수요는 이들 침구전문가를 중심으로 해결되는 방식이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침구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관심이 제기되었을 때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중영역 내의 무자격 전문가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침구전달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의사들이 침구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주장하면서 한의사 이외의 다른 집단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기 때문에 정작 침구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의사들도 제도권 내의 침구 전문가인 한의사들로부터 침구를 배우기 보다는 대중영역의 비제도권 전문가들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안의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한의사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재야 침구사들은 침구술 부활이라는 목적 때문에 대중 누구에게나 침구를 전수하는데 열성을 보이기 때문에 침구를 배워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려는 사람들과 쉽게 목적이 일치되지만 전문화를 지향하는 한의사들의 경우는 이러한 식의 지식 나눔이 원천적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결국 지난 60년대에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연대하여 침구사와 제도화를 방지하고 침구사들을 비제도권으로 몰아냄으로써 동양의학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비제도권 내에서의 침구의 존재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사회적 상황의 변화와 함께 이것은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옥죄는 요인이 되었다. 만일 한의사들이 침구사 제도를 허용하였거나 아니면 침구사들을 한의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완전히 단일적인 동양의학 전문가 집단으로 발전하였다면 현재의 상황은 환전히 달라졌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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