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구사 제도 역사와 현황
5. 논의
근대사회에서 의료의 전문화가 진행되고 '과학적 의학'이라는 근대적 담론에 배치되는 의학이론과 시술법들이 소멸되거나 공식의료체계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상은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제하에서 한방과 침구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근대의료체계의 기반이 충분하게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부족한 의료공급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만 그 역활이 인정되었을 뿐이다. 건국이후 의사들에 의하여 한방과 침구제도의 폐지가 꾸준하게 주장되었던 것은 이러한 근대성 담론이 작용했던 결과였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방은 살아남고 침구사 제도는 폐지되었던 데에는 서로 다른 요인이 작용하였다. 한방의 경우에는 근대성 담론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담론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침구사 제도는 민족주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근대성 담론에 밀려서 폐지되고 말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은 한의사들의 전략이다. 한의사들은 한의사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민족주의에 기대었지만 일단 한의사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이들은 의사가 밟아 온 전문화 과정을 답습하였고 이후 침구사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의사가 한의사제도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은 침구를 포함하여 동양의학 분야에서 전문화된 의료인력이고 침구사들은 자질이 부족한 부정의료업자로 격하시켜면서 침구사제도의 존속에 반대하였다. 이후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민족의학'이라는 점을 계속 부각시켰지만 내부적인 발전전략은 전문화를 지향하는 양면전력을 구사한다. 이에 따라 한편으로는 한의학을 한의학이라고 명칭변경 하면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 서양의학체계와 유사하게 전문의제도를 도입하거나 종합병원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반전전략은 1930년대에 의사와 한의사들 간에 한방논쟁이 있었을 때 조헌영(1942: 181~204)이 제시했던 한방의 발전전략과는 크게 대비된다. 조헌영은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생활주변에서 손쉽게 약재를 구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배워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민중보건에 크게 기여할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한방의 시술자에 대해서도 '해방주의'와 '엄선주의'를 병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방을 전업으로 하려는 경우에는 자격시험을 치러서 유자격자를 걸러낼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일정한 학식이 있는 자가 스스로 한의학를 배워서 이용하는 것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한의학 자체가 수천년 동안 해방주의 전통을 갖고 있었고 해방주의를 취하면 민중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무자격자가 걸러질 것으로 보았다. 조헌영은 일제가 잠정적으로 인정했던 의생제도를 곧 폐지할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서도 한의학이 살 길은 민중과 함께 하면서 해방주의를 취하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그런데 건국 이후 한의학의 발전과정은 이와는 달리 엄선주의만을 지향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해방주의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최근의 대중적 침술의 부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료분야에서의 민족주의 담론의 성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방과 침구의 존폐가 논의되던 50~60년대에 보건의료분야에서의 민족주의는 단순히 근대성에 대립되는 정치적 지향만은 아니었다. 근대의료체계가 지향한 전문직 중심주의의 필연적 결과인 의료서비스의 불평등 분포에 대응하여 '중간수준의 의료시술자'들을 양성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중간수준 시술자에 의한 1차보건의료 체제로 후진국 의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가 1970년대에 만들어졌던 점을 생각할 때 한국의 경우는 그보다 일찍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침구사제도의 폐지와 함께 의료체계는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민중지향적인 속성을 상실하고 전문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한의사들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아직도 민족주의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더 이상 민중지향적으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의사들 자신이 이미 전문화되어 있고 한방의료 생산체계가 상당히 고가의 자본과 비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방의료는 더 이상 근대의료에 대한 비용효과적 대안은 아닌 것이다. 이들의 민족주의는 의사에게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이와 대비하여 대중적 침구술은 서양식 근대의료와 한방의료 모두에 대립하는 대안적 성격을 갖고 있다. 즉 대중적 침구술은 전문화 전략을 거부하고 일반대중을 침구시술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시술자들은 암암리에 침구시술을 생업으로 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건강관리를 목적으로 침을 배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에서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의식이 건강문제와 관련하여 전문화된 의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상태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기건강관리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일상적 건강관리 목적의 침구사용에는 단기간의 학습만으로도 가능하고 별다른 비용부담도 없다는 특성 때문에 침구는 쉽게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전문화는 지식의 독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문화된 의사나 한의사는 이러한 새로운 대중적 욕구(즉 지식 나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침이 이원적으로 존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체계를 정당화해주는 담론체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담론의 등장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중적 침구술의 등장으로 한의사와 침구사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의사와의 관계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침구를 둘러싼 정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과거에 침구를 전근대적인 유물로 간주하던 의사들이 이제는 침구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침구를 배우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 침구사제도 폐지에 의사와 한의사가 협력하였던 점이 주효한 성공요인이었다면 이제 의사가 침구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새로운 역학관계가 만들어졌다. 아직은 의사들이 의사회나 관련 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침구사제도의 부활 같은 것을 주장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의사들이 침구에 관한 지식을 한의사가 아닌 침구사나 외국의 침구사들로부터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침구사의 사회적 존재를 인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전문직간의 협력관계가 준전문직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Halpern(1992)의 연구와도 일치되는 현상이다.
전문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침구의 이원적 존재는 결국 그동안 진행되어 온 한의학의 전문화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의사들은 한의학을 대학교육화하는 등 제도화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침구사와의 관계에서 이들을 흡수하거나 위계적 통제구조하에 두지않고 베제한 결과 상황의 변화와 함께 부메랑이 되어 침구영역에 대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후적인 가정일 뿐 거대한 의사집단을 상대하면서 생존을 모색하던 한의사들에게는 전문화를 통한 성장발전과 침구사폐지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침구를 둘러싼 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전문화된 한의학과 대중적 침구술은 그 구성논리나 지향점이 크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영역갈등론의 관점에서 시사하듯이 누가 더 사회적으로 설득력 있고 세련된 담론체계를 구성하는 가에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침구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충분히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재야침구사들의 침구담론 역시 대중성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세련된 형태는 아니고 의사나 한의사들 역시 아직은 변화하는 상황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영역갈들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 현재와 같은 침구의 이원적 존재가 그대로 제도화되었다면 이것은 의료의 탈전문화에 신기원이 될 것이다.
[입법공청회 자료집 (2005.8.29)에 수록된 글이다.]
5. 논의
근대사회에서 의료의 전문화가 진행되고 '과학적 의학'이라는 근대적 담론에 배치되는 의학이론과 시술법들이 소멸되거나 공식의료체계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상은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제하에서 한방과 침구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근대의료체계의 기반이 충분하게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부족한 의료공급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만 그 역활이 인정되었을 뿐이다. 건국이후 의사들에 의하여 한방과 침구제도의 폐지가 꾸준하게 주장되었던 것은 이러한 근대성 담론이 작용했던 결과였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방은 살아남고 침구사 제도는 폐지되었던 데에는 서로 다른 요인이 작용하였다. 한방의 경우에는 근대성 담론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담론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침구사 제도는 민족주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근대성 담론에 밀려서 폐지되고 말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은 한의사들의 전략이다. 한의사들은 한의사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민족주의에 기대었지만 일단 한의사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이들은 의사가 밟아 온 전문화 과정을 답습하였고 이후 침구사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의사가 한의사제도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은 침구를 포함하여 동양의학 분야에서 전문화된 의료인력이고 침구사들은 자질이 부족한 부정의료업자로 격하시켜면서 침구사제도의 존속에 반대하였다. 이후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민족의학'이라는 점을 계속 부각시켰지만 내부적인 발전전략은 전문화를 지향하는 양면전력을 구사한다. 이에 따라 한편으로는 한의학을 한의학이라고 명칭변경 하면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 서양의학체계와 유사하게 전문의제도를 도입하거나 종합병원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반전전략은 1930년대에 의사와 한의사들 간에 한방논쟁이 있었을 때 조헌영(1942: 181~204)이 제시했던 한방의 발전전략과는 크게 대비된다. 조헌영은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생활주변에서 손쉽게 약재를 구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배워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민중보건에 크게 기여할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한방의 시술자에 대해서도 '해방주의'와 '엄선주의'를 병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방을 전업으로 하려는 경우에는 자격시험을 치러서 유자격자를 걸러낼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일정한 학식이 있는 자가 스스로 한의학를 배워서 이용하는 것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한의학 자체가 수천년 동안 해방주의 전통을 갖고 있었고 해방주의를 취하면 민중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무자격자가 걸러질 것으로 보았다. 조헌영은 일제가 잠정적으로 인정했던 의생제도를 곧 폐지할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서도 한의학이 살 길은 민중과 함께 하면서 해방주의를 취하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그런데 건국 이후 한의학의 발전과정은 이와는 달리 엄선주의만을 지향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해방주의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최근의 대중적 침술의 부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료분야에서의 민족주의 담론의 성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방과 침구의 존폐가 논의되던 50~60년대에 보건의료분야에서의 민족주의는 단순히 근대성에 대립되는 정치적 지향만은 아니었다. 근대의료체계가 지향한 전문직 중심주의의 필연적 결과인 의료서비스의 불평등 분포에 대응하여 '중간수준의 의료시술자'들을 양성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중간수준 시술자에 의한 1차보건의료 체제로 후진국 의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가 1970년대에 만들어졌던 점을 생각할 때 한국의 경우는 그보다 일찍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침구사제도의 폐지와 함께 의료체계는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민중지향적인 속성을 상실하고 전문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한의사들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아직도 민족주의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더 이상 민중지향적으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의사들 자신이 이미 전문화되어 있고 한방의료 생산체계가 상당히 고가의 자본과 비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방의료는 더 이상 근대의료에 대한 비용효과적 대안은 아닌 것이다. 이들의 민족주의는 의사에게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이와 대비하여 대중적 침구술은 서양식 근대의료와 한방의료 모두에 대립하는 대안적 성격을 갖고 있다. 즉 대중적 침구술은 전문화 전략을 거부하고 일반대중을 침구시술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시술자들은 암암리에 침구시술을 생업으로 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건강관리를 목적으로 침을 배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에서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의식이 건강문제와 관련하여 전문화된 의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상태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기건강관리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일상적 건강관리 목적의 침구사용에는 단기간의 학습만으로도 가능하고 별다른 비용부담도 없다는 특성 때문에 침구는 쉽게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전문화는 지식의 독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문화된 의사나 한의사는 이러한 새로운 대중적 욕구(즉 지식 나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침이 이원적으로 존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체계를 정당화해주는 담론체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담론의 등장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중적 침구술의 등장으로 한의사와 침구사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의사와의 관계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침구를 둘러싼 정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과거에 침구를 전근대적인 유물로 간주하던 의사들이 이제는 침구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침구를 배우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 침구사제도 폐지에 의사와 한의사가 협력하였던 점이 주효한 성공요인이었다면 이제 의사가 침구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새로운 역학관계가 만들어졌다. 아직은 의사들이 의사회나 관련 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침구사제도의 부활 같은 것을 주장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의사들이 침구에 관한 지식을 한의사가 아닌 침구사나 외국의 침구사들로부터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침구사의 사회적 존재를 인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전문직간의 협력관계가 준전문직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Halpern(1992)의 연구와도 일치되는 현상이다.
전문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침구의 이원적 존재는 결국 그동안 진행되어 온 한의학의 전문화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의사들은 한의학을 대학교육화하는 등 제도화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침구사와의 관계에서 이들을 흡수하거나 위계적 통제구조하에 두지않고 베제한 결과 상황의 변화와 함께 부메랑이 되어 침구영역에 대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후적인 가정일 뿐 거대한 의사집단을 상대하면서 생존을 모색하던 한의사들에게는 전문화를 통한 성장발전과 침구사폐지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침구를 둘러싼 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전문화된 한의학과 대중적 침구술은 그 구성논리나 지향점이 크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영역갈등론의 관점에서 시사하듯이 누가 더 사회적으로 설득력 있고 세련된 담론체계를 구성하는 가에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침구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충분히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재야침구사들의 침구담론 역시 대중성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세련된 형태는 아니고 의사나 한의사들 역시 아직은 변화하는 상황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영역갈들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 현재와 같은 침구의 이원적 존재가 그대로 제도화되었다면 이것은 의료의 탈전문화에 신기원이 될 것이다.
[입법공청회 자료집 (2005.8.29)에 수록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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