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스승(계간 구당 2019 여름)

 

ㅇㅇㅇ 35기

 

 

[예전부터 침술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 헤맸지만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었다. 2002년 교직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우여곡절 끝에 작년에서야 구당 선생님을 내생애 마지막 스승님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승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나의 일생을 거쳐 살아오면서 곤충이 탈바꿈하듯이 몇 단계의 변화 과정을 겨쳤는데 그 과정마다 운좋게 훌륭한 스승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 국선도를 가르쳐주신 청선 선사님, 氣를 가르쳐 주신 김준원 큰 스승님, 그리고 궁중무술, 국술원, 합기도를 지도하여 주신 서인혁 세계국술원연맹 총재님. 이들 세분이 바로 나의 스승님이셨다.

 

1974년에 청산 선사님을 만나 국선도에 입문하여 46년간 수련하고 있으며 현재 법사로서 국선도 기문화연구원과 풍암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에 김준원 큰 스승님을 만나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12년간 스승님의 기 지도를 받을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분을 만나서 나 자신이 날로 정신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준원 큰 스승님을 통히서 나는 우리가 믿는 과학이란 것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를 깨우쳤다. 과학이라는 잣대로만 세상을 잰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며, 우리 인간은 그 과학이 만든 감옥 속에 스스로 같혀 과학 너머의 우주를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서인혁 총재님은 현재 미국에서 전 세계에 650여 개가 넘는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출신 무도인이시다. 서인혁 국사님에게 궁중무술 국술원 합기도를 직접 지도를 받고, 1970년에 전남, 광주 국술원 총관장으로 무도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나의 마지막 목표이며 현재 노년의 삶의 목적인 침술과 인연을 맺게된 동기가 되었다.

 

1975년부터 침술을 배우기 위해 마지막 스승을 찾아헤맸지만 흡족한 스승님을 만나지 못하고 2002년 교직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난 후에 이 시대의 침성이신 구당 김남수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기로 결심하고 기회를 찾았지만 그럴 때마다 예기치 못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해서 뜸사랑에 등록할 기회를 놓치거나 포기해야만 했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가끔 이런 회의에 빠지곤 했다.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스스로 얻어낸 나대로의 결론은 우주의 DNA가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맏게 되었다.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상활들은 이미 200억 년 전에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탄생될 때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이, 시간이라고 하는 필름에 실려 상영되고 있는 영화처럼, 현재의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정년 후 "뜸사랑과 인연 맺기"를 가로막은 일들은 크게 3가지 였다. 대학원 진학과 졸업 그리고 보건학석사학위 취득, 나의 대장암 발생과 치료 기간, 이어서 집사람의 폐암 발생으로 5년간 간병 및 보호 등으로 16년을 흘려버리고 처가 전화도 안 되는 먼 곳으로 먼저 떠나버린 후 2018년 3월 광주 뜸사랑 426차로 등록을 마치고 나의 마지막 꿈을 이루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160년만큼 길고 초조한 16년

 

정년 후의 16년의 세월은 나에게는 160년만큼 길고 초조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연만하신 구당 선생님께서 유고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나는 구당 선생님의 제자가 영영 될 수 없는 걸까". 1년 1년 이렇게 시간이 가는 것이 무섭고 초조했다. 구당 선생님이 두 세기에 걸쳐 백수를 훨씬 넘게 생존해 주신 데 대해서 우리 모두 하늘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정말 하늘이 주신 인연이며 하늘이 구당 선생님께 주신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우주가 생기고 200억년, 다시 지구가 생기고 50억년,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50만년~100만년이라고 하니, 우리가 구당 선생님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고 또 세계 70억 이 넘는 인구 중에 유럽이나 미국 아프리카가 아닌 같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1만 5천 가지가 넘는 직업들 중에서 "뜸사랑"이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은 인간의 컴퓨터로는 계산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인연인가... .

 

이렇게 어려운 확률을 뚫고 이 시대의 침구의학의 제일인자이신 구당 선생님의 제자로서 인연이 이어져 앞으로 침구의학의 흐름에 하나의 확실한 계통을 인정받게 된 것은 나의 자부심이며 또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구멍 난 책장

 

1975년 공부를 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스승님을 찾아다닐 때 유명한 한의사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2주간 찾아가 사정한 끝에 바빠서 지도는 못 해주어도 틈나는 대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견학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침보다는 변증과 약처방이 탁월하신 분이셨다.

 

한 3년쯤 할아버지 곁에서 무릎을 끓고 견학을 하던 해 설날 세배를 간 적이 있었는데 세배가 끝나고 선반 위에서 7~8권쯤 됨직한 낡은 책들을 내 앞에 내려놓으셨다.

 

얼른 보아도 손떼로 얼룩진 韓紙를 겹쳐서 제본한 고서였는데 책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몇몇 책들은 엄지와 검지로 잡고 책장을 넘기는 아랫부분이 닳아서 구멍이 나 있기도 하고 곧 뚫어질 듯이 후면의 검지가 비쳐 보이기도 했었다. 변증과 약효가 놀랍도록 탁월했던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고 그 책을 나에게 보여주신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책장을 넘기며 공부를 하셨기에 한지 책장이 막 구멍이 났을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후부터는 나는 읽어야 할 책이 결정되면 100번을 읽기로 결심했다. 맨 처음 선택한 책이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인 이용태 최수호 공저의 행림사 편 '정해 침구학'이었다. 가장 훌륭한 전문 서적이었지만 너무 어려워 백독은 커녕 일독도 채 못하고 중단 했으며 다음에 대구한의대 대학 안기여 교수의 편저인 '경혈학총서'를 구입하여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는 책이 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는 속담처럼 자침해야 할 기회도 생기고 기량이 점점 향상 되어 주로 친한 친구의 가족이나 내가 지도하는 도장 회원들의 가족들만을 대상으로 봉사를 했는데 목발을 짚고 가족의 부축으로 들어왔던 환자가 목발을 들고 자기 발로 걸어 나갈 때, 와사증이 나서 칠팔 년이 지나 포기하고 살던 환자가 5~6회 시술로 제 모습을 찾았을 때, 요통이나 회전근계 문제와 오십견 등으로 옷도 못 입고 세수도 못 할 정도로 고생하던 환자들.

 

대개 이런 사람들은 병원이란 병원을 다 다녀 치료를 받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찾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1, 2회 침을 맞고 회복되어 감사를 연발할 때 시술자의 내적 충만감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오직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코다테의 백만 불짜리 야경

 

침뜸을 공부하는 뜸사랑 회원들과 나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사혈침에 관한 나의 경험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흔히 우리는 일상생활중 크고 중요한 것만 챙기고 사소한 것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대단한 결과를 가져왔던 경험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지부 초청으로 2000년 가을 일본 북해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스케줄에 따라 하코다테의 백만불짜리 야경을 보려 관광버스가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행 중 한 여자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여 인솔자는 차를 세우고 기사와 대책을 협의했다.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행들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백만 불짜리 야경을 놓칠까 봐 편치 않은 표정들이었다. 배가 아프면 호텔에 남아 있지 왜 남의 관광을 방해하는가 하는 분위기였다. 외국 관광 중 이럴 때가 제일 난처한 경우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고 대책이 없었다.

 

나는 그 여자의 남편 겉으로 가서 사혈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환자의 양손 소상과 상양에 사혈을 하고 양손 합곡을 나의 엄지손톱 부분으로 강하게 지압을 하면서 그녀 남편에게 오바이트에 대비해 비닐봉지를 들고 있게 했다. 가끔 이런 경우가 효과가 있으면 환자가 구토를 하거나 화장실로 달려가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사전에 취한 조치였다. 아니다 다를까 환자는 곧 큰 소리와 함께 토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호텔에서 먹은 저녁 식사가 체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하코다테의 백만 불짜리 야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날의 명의는 유명한 내과병원 원장도 아니고 대학병원의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의료 장비도 아닌 단돈 만 원짜리도 못되는 하찮은 사혈침이었다. 사혈침은 이동식 휴대용 종합병원 몫을 단단히 할 때가 많다. 나는 이런 경우를 종종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사혈침을 철저히 몸에 지니고 외출한다.

 

 

친구의 열이 심한 손자

 

또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저녁 모임이 있어 외식을 하고 있는 중에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무조건 내가 있는 곳으로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당황하고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전화 음성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친구를 따라간 곳은 유명한 소아과 병원이었다. 손자가 열이 심하여 병원에 4일째 입원해 있는데 딸과 사위는 직장인이라 밤샘을 할 수가 없어 부득불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밤샘을 하면서 간호를 하는데 밤이면 더 심하고 간호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하여 체력이 한게점에 와있다는 것이다.

 

남의 병원 입원 환자에게 밤중에 침 치료를 해주라니 난감했지만,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린애의 양쪽 耳尖에 사혈을 해주고 돌와왔었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밤에 열이 내려 환자나 보호자가 잠을 잘 자고 이제 퇴원해 집에 와있다는 것이다.

 

어린애는 열이 심할 때, 이첨이 효과적이고 성인은 소상과 상양이 효과적이었다. 펄펄 끓는 환자의 손을 잡고 소상과 상양에 사혈을 하고 손도 아직 놓기 전에 벌써 환자의 손이 식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침, 뜸 치료법은 그래서

 

* 부작용이 거의 없는 치료법

*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치료법

* 저비용 고효율의 치료법

* 이동성과 간편성이 우수한 치료법이 아닌가!

 

이렇게 편리하고 간단한 구급 의료도구인 사혈침을 항상 휴대하는 것을 습관화하기를 권장하고 싶다.

 

 

구안와서 환자의 침뜸 동시 치료

 

모든 질병은 치료 적기가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구안와사는 생명과 관계되는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얼굴의 외형이 변하는 질병이어서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발병 3~7일 정도 경과한 환자는 얼굴에 침 치료만으로 잘 나았다.

 

그러나 와사증이 나면 먼저 침 치료를 받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먼저 병원을 찾는다. 이 병원 저 병원 대학병원 등을 헤매도 낫지 않으면 한의원을 찾는다. 그래도 낫지않으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보고 마지막으로 골든타임을 다 놓치고 나서 침구사를 찾는다.

 

이런 환자를 두 사람 치료해본 경험이 있다. 한 분은 발병 후 4년이 된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발병 후 7년이 된 분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대학병원에서 더 이상은 치료가 안 되니 불편하지만 그대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절망적인 조언을 받고 찾아온 분들이었다. 나는 치법을 고심했다. 얼굴에 침 치료만으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하고 뜸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얼굴에 침혈은 위경을 주혈로 찬죽투 어요, 양백투 어요, 사백투 거료, 거료투 지창, 협거투 지창, 지창투 승장과 삼초경의 예풍, 담경의 완골, 풍지를 취혈하고 뜸 혈로는 구당 무극보양뜸을 취혈하여 반미립대로 3장씩부터 실시하였다.

 

시술자가 운이 좋았던지 아니면 환자가 운이 좋았던지 대학병원에서도 더 이상은 치료가 안 된다고 포기한 환자를, 주 2회씩 실시하여 8회를 넘기기 전에 치료를 종료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중의 한 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으며 다른 한 분은 보험회사 지사장으로 많은 여자직원들 앞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구당 선생님의 제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77년 세계보건기구는 인류 전체 질병의 75%는 침법을 활용한 1차 보건 진료만으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평가하였으며 회원국에게 현대 의료에 침뜸을 병행하여 치료하도록 권장하고 과학적 검증을 거쳐 1998년 1월 27일 "300여 종의 질병을 침으로 고칠 수 있다."고 확인 발표한 바 있다. 침구 의학은 인체의 정기를 강화해 스스로 질병에 대한 저항력과 자연치유력을 길러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예방의학적 측면이 더 강하다. 서양의학은 현재 나타난 질병 자체를 제거하여 무병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치료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 정상인 상태를 건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동서의학의 치법 상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을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으며 치료 중점에서 간강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의를 보는 개념이 바뀌고 있다. 금세기 중 미래 의학은 침술과 같은 대체의학과 현대의학이 통합의학으로 발절되어 갈 것으로 믿는다.

 

건강이란 타율적 치료에 의지할 것이 아니고, 자율적 능동성을 발휘하여 자기 건강은 자기가 관리하고 책임지는 자기 자신의 주치의가 되어야 한다. 병이 나면 어떤 병이라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의사보다 병이 아예 나지 않게 하는 의사가 더 훌륭한 의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자신의 건강관리를 잘하여 병이 아예 나지 않게 한다면 자신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가 되는 셈이다.

 

침뜸 의술을 갈고 닦아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을 관리하여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한 질 높은 삶을 영위하여 헌신과 봉사로 이웃의 건강지킴이가 되어 "배워서 남 주자"는 구당 선생님의 의료철학이 세계화되도록 자부심을 가지고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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