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 침뜸으로 아내와 손자 치료"(계간 구당 2016 여름)

 

권ㅇㅇ(정회원 32기)

 

 

 

세월에 장사 없고

"당신, 침뜸 공부 좀 해보시지 그래요?"

2년 전 어는 날 아내가 나에게 그랬다. 침뜸을 배운 분을 만났는데 생활에 매우 요긴하게 쓰이며, 老境(노경)의 우리 건강을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즈음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몸의 적신호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별다른 증상을 모르고 지냈지만 퇴직 후 세월이 흐르니 조금씩 건강상의 문제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우리를 괴롭히게 된 것이다. 아내도 근간에 별 힘든 일 없이 지내다가 손자들을 돌봐 주면서 몹시 힘들어 했고, 팔목 관절통을 전에부터 달고 살던 고질병이었다.

 

 

 

고약한 어느 한의원

어느 날엔가는 耳鳴(이명) 치료에 특별한 비방이 있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서울 시내에 있는 '5대 ㅇㅇ한의원'이라는 말에 혹하여 찾아간 것이다. 5대 한의원이라는 간판을 달았으니 5대째 내려오는 의원 가문의 후손일 거싱고, 그 정도라면 여러 가지 비방을 전수받은 뛰어난 의원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간판이 아닌가?

 

그런데 원장이라는 사람이 진맥을 하더니 몇 군데 침을 놓고 배꼽 아래 한 군데에 뜸을 뜨고는 약을 한 제 먹으라고 하였다. 얼마나 먹어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어쩌면 평생 먹어야 될지 모른다고 하였다. 한의학 지식이 전무하던 나였지만, 한의사 처방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한의원을 나서면서 뜸을 한 군데만 뜬 것이 이상해서 그게 무슨 자리냐고 물었더니 丹田이라고 하였다. 그때는 그런가 하고 여겼는데, 뒤에 침뜸을 공부하고 나서는 그 뜸자리가 터무니 없는 엉터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고약한 의원이 있나!' 하지만 내 알량한 체면에 그냥 나오기가 민망해 수십만 원짜리 한약을 한 제 짓고 대금을 지불했다. 그러곤 집에 와서 아내로부터 어리석은 짓 했다는 소리를 바가지째로 들어야 했다. 택배로 보내온 약을 그냥 버릴수가 없어서 먹기는 했지만, 애초에 아무런 효과를 기대하지도 않았고,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손자의 비염을 고칠 수 있다면

우리 집 서가에는 오래 전에 사둔 "뜸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이있다. 신문의 서평을 보고 샀는데, 책을 구입할 당시에는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묵혀두고 있었는데, 침뜸 공부를 하면서 이 책의 진가를 점차 알게 되었다. 시작 단계에서의 침 공부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 몸이 시험처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뽀족한 침으로 스스로의 몸을 찌른다는 게 여간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졌다.

 

서울에 사는 자식들과 합류하면서 제일 마음 아팠던 것은 비염으로 고통 받고 있는 손자였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데, 우리가 서울에 왔을 때는 2학년 후반기였다. 아이는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까지는 코 푸는 것이 일이었다. '이 침뜸을 제대로 공부해서 비염만은 내 손으로 꼭 치료해 줘야지'라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뜸 효과로 비염이 나아지다

현대의학으로 비염은 근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전문의로 부터 들은 적이 있다. 다만 증세가 심할 때 임시적으로 우선의 고통을 잠시 덜어줄 뿐이란다. 그런데 침뜸 공부를 하면서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병증을 침뜸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비염도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는 내가 이 공부 시작하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이 손자는 비염 치료를 하자는 내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침으로 다스리려 하였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법이 못 된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폐의 기능이고, 그 기능을 살리는 길은 뜸이 최고라는 것도 치료의 횟수를 거듭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폐유, 신주, 신유에 뜸을 자주 뜨면서 침은 보조 수단으로 더하였다. 치료 횟수를 거듭하면서 아이의 비염은 가족 모두가 확연히 느낄 정도로 좋아져 갔다. 지난겨울과 이번 봄 환절기에는 감기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코 푸는 일이 없었다. 뜸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淸肺(청폐)를 위해 폐유에 뜸을 뜨자

며칠 전엔 설악산 일대 여행을 다녀왔다. 山의 공기가 얼마나 청정한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신선함 속에서 육신의 찌꺼기가 모두 씻겨 나가는 듯, 그 속에서 내 영혼도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아, 맑은 공기가 이렇게 좋다니! 종일 운전하고 산행을 하였는데도 피곤할 줄 모르겠다고 아내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뉴질랜드 여행을 하면 하루 종일을 걸어도 피로한 줄을 모르는데, 그 비결은 맑은 공기라고 우리는 서로 공기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건강을 지키는 데 맑은 공기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늘 뉴질랜드에 살 수 없고 늘 설악산에서 살 수는 없으니, 결국은 또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감히 말한다. 폐유에 뜸을 뜨시라고. 그것이 맑은 공기를 대신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요즈음 신문 광고란을 수시로 장식하는 것 중의 하나가 '청폐하면 百歲 산다'는 어느 한의원의 선전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한의원의 약을 사 먹으려면 수백의 거금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폐유에 뜸을 뜨고 그래도 안 되면 중부, 유부 등 몇 군데 추가하면 돈 들이지 않고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안타깝고 가소로운 일이다.

 

 

 

뜸으로 다스린 팔목 건초염

아내의 팔목 관절통도 그 실체가 '건초염'인 것을 "뜸의 이론과 실제"를 탐독하면서 알았고, 뜸을 뜨는 것이 해결법인 것도 알았다.

 

매일 부엌에서 칼질을 하면서 손목을 움직이니 그 부근의 筋腱(근건)이 견디지 못하고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관절염의 명의로 이름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별 효과를 못 본 아내의 팔목 관절통은 이렇게 뜸 뜨는 일로 시작하여 어렵지 않게 해결하였다. 시술도 간단했다. 아시혈 몇 군데 뜸을 뜨는 일이 전부였다. 부은 자리에 뜸을 뜨자니 그 고통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뜸의 뜨거움이 염증으로 받는 고통에 비할까? 뜸을 무서워하는 아내를 설득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는 하였지만, 결국 설득 끝에 뜸 치료를 하여 아내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감동으로 다가온 구당 선생님의 일화

침뜸 공부를 하면서 교수님들로부터 구당 선생님에 관한 일화를 많이 들었다. 그간 서가에 묵혀 두었던 "뜸의 이론과 실제" 저자도 구당 선생님인 것을 침뜸 공부를 하면서야 알았다. 구당 선생님은 가히 신화적인 존재다. 선생님의 뛰어난 의술을 교수님들로부터 전해들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수강생들의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위중한 환자라도 처음 촉진할 때 환자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하면 고통 받던 환자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거의 반이나 치료가 된 듯 감격한다고 하였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내가 마치 당사자가 된 듯 전율에 젖곤 하였다.

 

아마도 그 환자는 이 분야 권위자로부터 치료를 받는 다는 안도감에 큰 위로가 겹쳐져 치유의 상승 효과를 낸것이리라. 구당 침술원에는 다른 병원에서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위중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란다. 그러니 이곳을 찾는 환자들은 진료 차례를 남에게 양보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어느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할딱거리는 환자가 찾아왔다. 앞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도 이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차례를 양보하여 주었고, 구당 선생님이 그의 郄門穴(극문혈, 대릉상 5촌, 수궐음심포경)자리에 침을 한 대 놓으니 할따거리던 숨결이 잦아들면서 평안을 찾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한 교수님은 우리에게 극문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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