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미얀마로'(계간 구당 2016 여름)
정ㅇㅇ(뜸사랑 정회원 27기)
은퇴 후 찾아온 반가운 因緣
내게 뜸사랑과의 인연은 어쩌면 주어진 運命이었는지도 모른다. 40년 가까운 세월 정신없이 일하다 은퇴하고 이제 좀 편히 쉬면서 놀러도 다니고 늘그막에 취미 생활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인천공황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구당 선생님의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가 손에 들어왔겠는가 말이다.
뉴욕에 도착하니 미처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마침 이웃 동네에서 灸堂 선생님이 뜸자리 잡기 시연을 하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작정 달려가서 구당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선생님의 자상한 설명에 나는 침뜸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침뜸공부를 해서 아픈 사람들을 성심껏 돕는다면 내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세상에 빚진 것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나는 그해(2012년) 봄부터 뜸사랑 대구지부에 유학을 하게 됐다. 아마도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중 하나가 아닐가하는 자부심이 생긴다. 공부하는 동안에나마 연로하신 친정어머니와 오붓한 시간을 가졌고(당시에는 94셌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마지막 못 다한 孝道를 매일 뜸해 드리는 일로 대신하였다.
지금은 美國에서 여러 환자들을 만나며 성심을 다해 치료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면서 제2의 인생을 나름 보람 있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것이 바로 구당 선생님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게 된 契機(계기)
그 중 한분은 나의 오랜 지인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1950년대에 미국에 유학을 왔는데, 동양의학에는 별로 신뢰를 갖지 않은 79세의 여성분이다. 파킨슨병은 약 3년 전부터 진행되었다는데, 뉴욕 콜롬비아대학의 主治醫도 특별한 방법은 없고 약물 치료는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주치의가 말하길 "어쩌면 鍼 치료가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 시도를 해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섣불리 나설 수도 없어서 그저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럭저럭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나가는 동안 그분은 中國人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일주일에 한 번 침을 맞으러 다녔는데, 너무 아파서 침을 한 차례 맞고 나면 다음날 까지 거의 초죽음이 된다고 했다.
도저히 안 되어서 마침 한국에서 한의학 교수를 하던 분이 한방병원을 개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에도 두 달 가량을 다녔는데 그 병원에서는 또 "환자 몸이 허약하여 침은 맞을 수가 없으니 약을 먹고 기운이 회복된 후에나 침을 맞을 수 있겠다."며 딱 한 번만 침시술을 해주었는데, 마찬가지로 기절초풍할 만큼 아프고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아 치료를 그만두게 됐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서야 내가 "그럼 제가 침을 놓아 드릴 테니 견딜만한지, 또 효험이 있겠는지 시험을 해 보시지요." 하고 제의 했더니 무척 고마워하셨다.
입소문을 타고 퍼진 침뜸 효과
나는 미리 서약을 받고(반드시 내가 자리 잡아준 곳에 뜸을 꾸준히 뜰 것) 첫 번째 시술을 해 드렸다. 처음부터 자리가 너무 많으면 안 될 것 같아 무극보양뜸 자리와 기본침만 시술해 드렸다. 그런데 시술 중 아예 코를 골면서 모든 긴장을 풀어놓고 잠이 드셨다. 그러고는 아프지 않은게 너무 이상하다며 계속 치료를 해달라고 두 내외가 사정을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치료가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행하는 치료는 一週日에 한 번 침과 뜸(내가 여행 가지 않고 뉴저지 집에 있을 때만)으로 시술하고, 환자 집에서 뜸은 거의 매일 뜨고 있다.
환자에게 취한 침뜸 자리
침: 기본침, 심유, 흉789, 요345, 거궐, 전중, 삼음교, 중저, 외관, 비노, 견우, 수삼리, 천추, 대거, 기해, 신맥, 후계, 두요
뜸: 무극보양뜸, 전중, 심유, 흉789, 요345, 거궐, 삼음교, 기해, 천추
상기 치료점은 구당 선생님의 가르침에 환자의 병 증세를 맞추어 추가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분은 파킨슨 병 외에도 요실금, 허리 디스크, 등이 굽은 것 등, 여기 저기 아픈 데가 많은 분이었다. 시술 후 약 한 달을 지나니 요실금이 없어지고 굽었던 등뼈가 펴지면서 뜸자리가 거의 1센티미터 가량 늘어지고, 허리 디스크 때문에 바로 눕지 못하던 분이 반듯하게 누워서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팔이 아파 어께 위로는 잘 올리지도 못했던 걸 이제는 혼자서도 문제없이 뒷머리 손질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침을 맞고 난 직후에 이틀 정도는 전혀 떨림 현상이 없고, 파킨슨병의 진행 속도도 현저히 느려지고 있어서 환자 및 가족들이 희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이의 남편 되는 분도 내가 잡아준 뜸자리(무극보양뜸과 추가 혈자리)에 열심히 뜸을 뜬 덕분에 화장실 가는 횟수가 월등히 줄어(그 전에는 밤에 서너 번은 소변을 봐야 할 정도였다) 이제는 편히 잠을 자고, 어디를 가더라도 소변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어졌다고 좋아하셨다.
이분들 외에도 허리 아픈 사람, 어깨 아픈 사람, 기침하는 사람, 설사하는 사람, 불면증 있는 사람 등등, 주위에 있는 많은 이들이 침뜸의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굳이 사례를 하겠다고 우기는 분들께는 나를 키워주신 뜸사랑 대구지부에 후원을 해주십사하고 말씀드린 후 후원금을 받아서 보낸드린다. 그렇게 모인 것을 2016년 3월까지 세 번, 900달러를 보냈다.
미얀마에서 시작된 침뜸 봉사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미얀마에서도 침뜸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1월, 우리 내외는 미얀마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2주 동안 수련을 하고 왔다. 그곳에 계시는 한국 출신 비구니 스님(한국인의 명상을 돕고, 통역을 비롯해 명상센터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분)은 과중한 업무에 건강 상태가 아주 나빠 보였다. 얼굴은 검은 빛이 돌고, 눈을 계속 깜박거리시며 통역을 하는 동안 자주 기침을 하였다.
언뜻 보기에도 肝 기능과 肺 기능이 아주 약해 보여서 여쭤 보니 어떻게 아느냐며 깜짝 놀라셨다. 그분은 간경화 초기 증상을 갖고 있었는데, 열악한 환경(명상센터 안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시술할 수가 없고, 가지고 있는 침과 뜸의 양도 충분치 않았다)속에서 일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환자에게 취한 침뜸 자리
기본침+지양, 간유, 비유, 우장문, 우 기문, 우 양문
무극보양뜸+ 지양, 비유, 간유, 우 장문, 우 양문, 기해
열악한 환경에서의 침뜸 봉사
그렇게 시술을 하고 나니 다음날 아침 스님께서 모처럼 너무 편히 잠을 잤다고 하며 오전 내내 기침을 안하시는 것이었다. 또한 보는 사람마다 낯빛이 달라지셨다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뜸이 반 통 정도뿐이라는 것이었다. 치료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않고 혹여나 하는 생각에 가져간 도구가 전부였다. 침이야 매번 끓여서 소독해서 쓰면 된다지만 뜸 재료가 문제였다. 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많고, 그래서 최대한으로 아껴서 쌀알 반보다 더 작게 뜸을 떴다.
걱정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떠나더라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할 텐데, 어쩌면 좋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던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뜸 릴레이'를 시도하면 될 것이었다. 우선 뜸을 해줄 수 있는 가능한 候補者(후보자)를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그 당사자도 몸이 허약해서 뜸이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명상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15일 내지 한 달 정도 있으면 떠나니까 이런 식으로 릴레이를 해야만 센터에서 뜸 치료가 지속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센터에서 '뜸 릴레이'를 시작하다
다행히 후보자 한 사람을 찾아서 스님은 전체적으로 내가 잡아준 뜸자리대로 뜸을 떠드리고, 후보자에게는 중완, 전중, 곡지, 족삼리, 수도, 중극, 즉 본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앞면 뜸자리 잡는 법을 알려주며 직접 뜨는 법을 몇 번씩 시도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시술해주는 사람도 틀림없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고, 스님도 계속 뜸 치료를 받으실 수 있을 것이니 상호 이로운 일이다. 뜸 시술자에게는 센터를 떠나기 전 반드시 다음 후보자를 찾아 내가 가르친대로 뜸 자리 잡는 법과 뜸뜨는 요령 등을 잘 전수하고 떠날 것을 다짐 받았다. 내게 치료받은 이들이 한국에 돌아가는 대로 뜸쑥을 사서 미얀마로 보내주기로 했으니, 뜸릴레이는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았다.
미얀마 명상 센터에 있는 동안에 매일 한 두사람씩을 치료해 주었는데 모두가 아주 좋은 효과를 보았다. 무릎 아픈 사람, 설사하는 사람,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 아무튼 가는 곳 마다 아픈 사람투성이였다. 그러니 내 스스로가 뜸 傳道師가 된 기분었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鍼灸師로 살아가려면...
美國에 돌아온 후엔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뜸사랑 대구지부 졸업생인 정ㅇㅇ 선생을 만나 격려와 조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지금 사우스베일로 大學에서 유학 중인데 아마도 그동안 내가 적극적인 권유를 한 까닭에 미국에서 침구 면허를 받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래서 몇 가지 당부를 해주었다.
첫째, 반드시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 왜냐하면 앞으로의 치료 대상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세계인이며,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對話(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졸업과 동시에 큰 미국 종합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라. 미국의 큰 병원에서는 거의 다 대체의학, 침술과 요가, 명상 등을 병행하고 있다.
셋째, 크리스찬이나 이왕이면 미국 敎會(교회)를 나가라. 거기서 미국 사람들의 설교를 듣고, 친구를 만들고, 그들의 사고를 이해하고 배워라.
실력과 자질을 갖춘 진정한 침구사 되기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후배님이 미국에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세요?"
그는 어리둥절한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왜냐하면 정 선생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이곳에 와서 공부할 수도 있을 많은 뜸사랑 후배들의 龜鑑(귀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해보세요. 언젠가 한,미 간 의료 FTA가 완전개방될 때 준비된 미국 한의사가 와서 침뜸 시술을 한다면 누가 감히 대적을 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醫師로서 당당한 면모를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말한 몇 가지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정선생은 짬이 나는 대로 南美 쪽의 해외봉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기에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봉사도 중요하지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우선은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미국을 익히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후에도 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첫째도 실력이요, 둘째도 실력입니다. 실력이란 내 침뜸술의 실력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나 자신의 자질을 향상시켜서 말하지 않아도 환자들이 편안함과 믿음을 가지는 그런 실력을 뜻합니다."하고 당부했다.
정선생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마 3년쯤 뒤면 면허증을 취득하지 않겠나 싶다.
뜸사랑이 일깨워준 변화와 행복
침뜸을 알고부터는 이렇게 매일매일 나와 내 가족, 그리고 타인에게도 有益(유익)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잡담과 방황으로 때우는데,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두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나를 이끌어 주신 구당 선생님과 뜸사랑 대구지부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봉사하고 있는 선후배님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 뜸사랑 회원 모두가 큰 使命感(사명감)을 가지고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준다면 언젠가는 법이 바뀌어 면허증 있는 침구사가 될 그날 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 모두 힘을 내어 봉사하고, 뜨겁게 사랑하며 살자. 뜸사랑 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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