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사랑, 새로운 유턴(U-turn)'

 

송ㅇㅇ(뜸사랑 정회원 31기)

 

[초급 수업을 들을 땐 半信半疑(반신반의) 하는 마음도 있었고, 젊은 나이에 몸에 傷處(상처) 나는게 싫어 몇 달 동안 무극보양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뜸에 대한 信賴(신뢰)도 생기고, 몸이 좋아지는 동기 선생님들을 보며 나도 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상처는 생기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려면 나부터 確信(확신)이 서고 경험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과연 幸福한가'라는 끝없는 질문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행복해지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고 배워왔다. '좋은 大學에 들어가고, 大企業에서 일해야 행복할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도 그다지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선배나 동기들과는 모여서 술을 마시며 恨歎(한탄)하는 일이 전부였다. 대학 졸업 후 겪은 就業亂(취업난) 속에서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좋은 회사를 들어가는 노력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選擇(선택)했다.

 

바리스타는 5년 넘게 해왔지만 제한된 환경과 競爭(경쟁) 구도에서 회의감을 느꼈고, 經絡(경락)을 배웠던 경험을 떠올리니 뭔가 다른 길이 보일 것도 같았다. 사람 대하는 것을 워낙 좋아했고, 내게 경락을 받은 사람들이 幸福해 하는 표정을 보았을 때의 뿌듯함과 가슴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었느니까. 손의 기운이 좋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고.

오래전 친구를 따라 哲學館에 간 적이 있었는데, 어디라도 기대고 싶을 만큼 고민이 많았던 때였다. 의욕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었는데 막상 누구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때였는데, 철학관을 나올 무렵 어르신이 나의 뒤통수에 나지막한 한마디를 남겼다.

 

''穴을 잡는 일을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말이 몇 해 동안 腦裏(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스물아홉 살의 어느날, 進路(진로)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已往(이왕)이면 나 자신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運命 처럼 뜸사랑을 알게됐다.

 

경이로움, 그리고 확신

 

당시 나는 醫學에도 관심이 많았고, 경락을 배운 경험을 살려 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또 몸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아 건강에 대한 好奇心도 커지고 있던 시기였다.

어릴 때부터 허약한 편이긴 했지만 큰 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었는데, 20대 후반부터 이유 없는 疲勞感, 消化不良 등을 달고 살았다.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친구와 놀 때도 이유 없이 피곤하고 속이 아프니 마음 편히 어딜 가지도 못했다. 하루 10시간을 넘게 자도 피곤하고, 소화가 안 되니 몸은 마르고 氣力이 점점 떨어졌다. 몇 년 동안 현대인의 고질병인 목, 어깨의 痛症(통증)을 안고 살면서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神經이 날카로웠다.

처음에는 뼈의 문제인 줄 알고 통증클리닉도 가고 추나요법도 받아 보았다. 병원에서 CT촬영과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일자목'이란 진단후 手術(수술)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한의원에선 침을 꾸준히 맞으라고 했지만 6개월 넘는 치료에도 好轉(호전)이 없어 무척 속상하기도 했다. 월급의 1/3이 치료비로 나가도 몸에 차도는 없어 모든게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幸運처럼 찾아온 뜸사랑이 나를 이렇게 달라지게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참 신기했다. 무극보양뜸이 내 통증을 하루 만에 없애버렸으니까.

초급 수업을 들을 땐 半信半疑하는 마음도 있었고, 젊은 나이에 몸에 상처 나는게 싫어 몇 달 동안 무극보양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뜸에 대한 信賴도 생기고, 몸이 좋아지는 동기 선생님들을 보며 나도 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상처는 생기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려면 나부터 확신이 서고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처음엔 뜨거워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정말 작은 半米粒大(반미립대)크기로 말아서 했는데,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워서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싶었다.

그렇지만 악바리 精神으로 버티자고 생각했고, 3壯(장)씩 뜨는 뜸을 주먹 꽉 쥐고 떠보았더니 온몸이 나른하고 따뜻해지며 便安(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수업 들을 때 있었던 목, 어깨쪽의 뻐근한 통증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건 뭐지?'하는 생각에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이 작은 쑥 한 줌과 향 하나로 수년간 느껴던 고통이 사라지다니, 마치 누가 魔法을 부린 것 같았다.

 

그 이후 뜸에 대한 확신을 키웠다. 消化(소화)가 안될 때는 중완, 거궐에 뜸을 뜨고, 내관에 자침, 합곡과 태충도 잊지 않고 자침했다. 목, 어깨가 안 좋을 때에는 동기인 로이 선생님, 강ㅇㅇ선생님께 자주 부탁하여 폐유, 고황에 뜸을 뜨고, 목에는 스스로 뇌공, 천주, 풍지 등에 자침하여 통증을 없앨 수 있었다. 同苦同樂할 수 있는 동기 선생님들과 만났음을 감사했다. 한주 내내 수업받는 토요일만 기다릴 정도로 뜸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紹介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밝히는 빛

 

뜸사랑을 만나 幸福을 느끼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엄마에게 침뜸을 해드리게 된 일이다.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을 많이 하셔서 안 아픈데가 없었고, 항상 '아이고' 하는 소리를 달고 사셨다. 40대에는 몇 년 동안 氣力도 없고, 어지럼증 때문에 누워있는 날이 많으셨고, 매달 큰 병원에서 한 달 치의 약을 탈 정도로 항상 양약에 의지해 사셨다. 평생 많은 藥을 먹는 것도 엄마에겐 고통이고, 병증이 나아지지도 않아 가족들 역시 늘 걱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침뜸을 배우면서 엄마의 삶에도 變化가 찾아왔다. 실력이 좋지 않지만 엄마는 딸을 믿어주셨다. 처음엔 많이 뜨거워하셨고, 하루만에 고쳐질 병이 아니니 半信半疑 하는 마음으로 뜸을 뜨셨는데, 침을 배운 이후로는 침과 뜸을 竝行(병행)하면서 어머니 스스로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셨다.

처음엔 내가 ''뜸 떠줄까?'' 이러면, ''아니, 내일 해줘'' 하시던 분이 요즘엔 하루만 걸러도 안해준다고 成火(성화)시니 뜸사랑의 무극보양뜸과 구당 상용침의 효과는 충분히 立證된 셈이다.

 

나에게도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3년 전에 '배란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배란일에 알 수 없는 下血이 있는 증상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2년 동안 지속되고, 아랫배가 묵직하고 생리통도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 또한 중극, 수도에 뜸을 떴더니 거짓말처럼 증상이 없어졌다.

수많은 병원에서 숱한 醫師를 만나봤지만 그들이 과연 내 병에 關心이나 있는지 疑問을 가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뜸사랑을 만났으니 나는 참 福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병의 豫防(예방)에서 치료까지, 나 自身을 비롯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으니까.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未知數지만 뜸사랑에서 내 삶의 의미와 함께 건강을 찾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이 簡便(간편)하고 놀라운 침뜸을 널리 소개해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에게 말이다. 그래서 더는 世上에 아픈 사람이 없기를, 서로 도우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행복할 資格(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분들은 젊은 나이에 침뜸을 시작했다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 臨床이 부족하고 인생경험도 부족해 채워갈 부분이 많다. 다만 침뜸에 대한 熱情만은 누구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내가 가진 젊음과 열정으로 더 열심히 工夫하고 임상 경험도 차곡차곡 쌓아 침뜸을 알리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努力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밝히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 그리고 이 멋진 '침뜸'을 만들어주신 灸堂 선생님께 無限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