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오후 不食하라...디너(dinner)는 만병의 근원
 
도올 김용옥
 
 
● “선생님, 저는 지금 수승화강水昇火降의 비결을 전수받을 생각만 하고 있는데..?”
 

― 비결의 전수는 어려운 것이다. 그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비결은 비결이 되지 아니 한다. 나의 몸은 거대 사회(Society)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국가라고 부르는 사회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병원이었고 대가였다. 그래서 아버지 생신잔치를 비롯하여 교회잔치 등 일년 내내 여러 형태의 잔치가 많았다.
 
그러면 천안 읍내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상을 받는다. 우리 집의 모든 방이 꽉꽉 들어찼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모든 잔치가 저녁이 아니라 아침밥을 먹는 것이었다. 요즈음 감각으로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가친척과 동네아낙들이 부엌에 모여 며칠을 준비하고 전을 부치고, 당일 새벽부터 본격적인 잔치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어디서 그렇게 사람이 몰려오는지 아침 7시 정도만 되면 집안이 꽉 들어찬다. 물론 읍내 주변의 거지들도 같이 몰려든다. 내가 아까 삶의 양식(Lebensform)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와 같은 삶의 양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꼭 이러한 양식의 음식문화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우리 동방인에게는 “디너(Dinner)”라는 개념이 저녁밥이 아니라 아침밥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자라날 때만 해도 주변의 대부분의 현실은 읍내를 빼놓고는 전기가 없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장자 莊子가 이상으로 삼은 “일출이작日出而作하고 일입이식日入而息”하는 삶, 즉 해가 지면 더불어 자고 해가 뜨면 더불어 활동하는 그러한 삶의 리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농부가 새벽 4시면 일어난다. 우선 소죽을 쑨다. 그리고 들판을 돌아보고 충분한 활동을 한 후에 아침상을 받는다. 그래서 아침이 엄청 거하다. 아침이 곧 디너인 것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일하면서 들판에서 점심과 새참을 먹고 저녁 때는 매우 간략히 먹고 일찍 잔다. 저녁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거한 상을 차릴 여력이 없는 것이다. 황혼이 깃들면 오직 휴식의 분위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옛날의 유자儒者들은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다. 나의 조부도 동복 군수를 지내다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여 은퇴한 분인데 저녁은 평생토록 흰 죽 한 사발만 간략히 자셨다고 한다.
 
그런데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즉 서양을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즉 서양적 삶을 자신의 레벤스포름으로 생각하면서, 개념이 바뀌고 서양식 “디너” 개념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시민 사회의 도시문명화라는 구조적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중·고등학교의 서양적 삶을 동경하는 공민 선생이 아침을 거하게 먹는 조선인의 습관을 비판하고, 문깐에서 배달된 우유 한 컵만 마시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서양인의 간편한 삶을 찬양하는 소리를 누누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삶이 요즈음 사람들의 동경 아닌 현실이 되었다.
 
내가 나의 클리닉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하루 식사를 몇 끼를 하냐고 물으면 거의 두 끼만 먹는다고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을 안 먹는 두 끼 생활자는 한 명도 없다. 모두 아침은 굶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두 끼가 아니다. 밤새 처먹고 늦잠을 잤으니 아침에 일어난들 밥생각이 있을 수 없다. 아침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이다.
 
그리고 부스스 눈 비비고 오전을 띵하게 지내다가 점심 먹고 정신차리고, 오후에 활동하다가 저녁을 거하게 차려먹고, 껏도 분명히 미원투성이의 외식! 그리고 야참을 잔뜩 먹고 새벽녘이나 되어 잠자리에 들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 현대시민사회적 삶의 표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우리는 매우 중요한 천지코스몰로지적 식생활의 대명제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디너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다. The dinner is the source of all human disease."
 
이것은 서양사람들에게는 매우 괴이하게 들리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태괘泰卦와 비괘否卦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메시지요, 삶의 지혜다. 우리는 모든 서양적 가치를 전도(transvaluation)시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미얀마나 스리랑카와 같은 남방불교의 문화국을 가보면 승려들이 “오후불식午後不食”이라는 계율을 꼭 지킨다. 불교를 운운하지 않아도 인도의 힌두이즘문화권 속에서도 브라흐마차리야의 삶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오후불식”의 계율이 들어있다.
 
“오후불식”이란 매일 낮 정오로부터 그 다음날 새벽 먼동이 틀 때까지 일체의 음식을 삼가는 것이다. 매일 단식斷食인 셈이다. 그런데 단식을 표방하는 이슬람문화권의 라마단(무슬림역 상의 제9월)은 오히려 거꾸로 해가 지고 나서 먼동이 틀 때까지 진냥 먹고 마신다. 문명의 레벤스포름은 이와 같이 다르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할까? 제각기 문화적 이유가 있겠지만 의학상으로 보면 “오후불식”이야말로 인간을 건강케 만드는 정답인 것이다.
 
불길은 항상 아래서 위로 치솟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체에서는 하초에서 상초로 치솟는다. 사람이 드러누워 자도, 불길은 횡적이지만 머리 쪽으로 상향한다. 음식은 일단 중초(胃腸)로 들어가 불을 형성한다. 불은 에너지다. 무형의 태양에너지가 광합성에 의해 유형화된 것이 지미地味의 기본이다.
 
인간은 잠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잠이야말로 나의 몸의 엔트로피 증가를 감소시키는 역행의 생명현상이다. 잠이 없으면 인간은 피로(Fatigue)로 죽는다. 인간 이성의 적은 피로요, 이성의 친구는 잠이다. 잠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잠은 생명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데 잠이란 기본적으로 고등생물에 있어서 신경활동의 고도성과 관련되며 반드시 휴식을 요구케 되는 리듬의 한 표현이다.
 
신진대사나 의식의 상태가 정상을 회복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생리기능의 저하를 동반하는 릴랙세이션(relaxation)이다. 그런데 이 수면기간 동안에 보통 타율신경계는 확실하게 휴식을 취하지만 자율신경계는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잠잔다고, 팔뚝의 근육은 휴식을 취하지만, 심장의 근육은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소화기계도 음식물이 들어가면 소화작용을 자율적으로 계속할 수밖에 없다.
 
잠잘 동안에 완벽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인간 유기체의 건강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잠을 위한 가장 직접적으로 현명한 방법은 중초에 “땔감”을 주지 않는 것이다. 장작은 잔뜩 넣어놓은 난로는 밤새 훨훨 타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돌보지 않는 난로는 장작이 불완전연소를 할 때가 많다. 연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작을 아예 넣지 않은 난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 학동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려서부터 학관이나 시험 공부에 시달리어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앉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안스러운 엄마는 아이의 체력이 딸릴까봐 무서워서 계속 야참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면 밤늦게 1·2시까지 잔뜩 먹고 자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서부터의 습관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평생을 지배하게 된다.
 
밤에 배를 똥똥하게 채우고 자면 우선 소화기계 전체가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그리고 번열煩熱이 발생하여 몸이 더워지고, 허화虛火가 위로 뜨며, 그 불길은 중추신경계를 전체적으로 자극한다. 그래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활동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대사는 불완전하게 이루어져 가스가 많이 발생하고 더러운 대기大氣가 몸의 하늘을 휘덮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얼굴이 탁해지고 여드름이 많이 발생하며 목덜미나 여타 상초 부위에 종기가 많이 솟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골치가 띠~잉하다. 그리고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방귀가 많이 나오고, 똥을 눠도 악취가 심하다. 악취가 없는 중용의 황금똥이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반면 저녁을 안 먹고 빈속으로 자게 되면 번열이 생기지 않아 이불을 폭 덮은 채 자게 되며 모든 몸의 기능이 골고루 저하되면서 의식의 상실이 일어나고 완벽한 수면을 취하게 된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꿈이 없는 잠”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개소리에 불과하다. 꿈을 꾸는 잠은 저질스러운 잠이다. 꿈이 없는 잠이야말로 인간해탈의 첩경이다. 꿈이 없는 잠의 이상이야말로 우파니샤드 경전에서부터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빈속으로 자면 꿈이 없는 해탈의 잠을 성취하게 된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자며 아침에 일어나면 저 먼동의 푸른 하늘처럼 머리가 상쾌하다. 그리고 허기를 느낀다. 그리고 대변을 보게 되면 시중의 황금똥이 기다란 흰떡 모양으로 나온다. 빈속으로 자는 잠이야말로 수승화강을 실현하는 첩경이다. 잠자는 동안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게 된다. 아침에 머리에 내설악의 백담 같은 옥색 물결이 넘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의미맥락의 본의는 가족공동체적 삶의 회복에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 없는 삶”이야말로 생리적으로는 가장 위대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서구적 인간의 가치의 전도(the transvaluation of all Western values)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녁을 안 먹고 자게 되면 아침에 허기가 지기 때문에 아침을 맛있게 많이 먹게 된다. 그리고 아침은 약간 과식을 한다 해도 낮의 활동을 통하여 건강한 에너지로 연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낮에 건강한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아침에 고단백의 밥을 든든이 잘 먹은 사람은 저녁이 되어도 허기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을 안 먹는 것이 가능해진다.
 
“저녁을 먹지 말것!” 이 말은 매우 가혹하고 비성식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 한마디의 정당성과 그 생활양식을 이해하게 되면 만병이 사라진다. 위통이 고생하는 자, 소화불량이 있는 자, 꿈을 많이 꾸는 자, 골치아픈 자, 아침에 얼굴이 붓는 자, 아토피가 있는 자(아토피 환자는 우선 육식을 금해야 한다), 얼굴 피부가 나쁜 자, 종기가 많이 나는 자, 변비로 고생하는 자, 혈압이 높은 자... 온갖 병변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이 비결 하나로 비괘에서 태괘로 갈 수 있다. 나는 이 하나의 처방으로 나의 클리닉을 찾아온 수천 명의 환자들에게 완벽한 건강을 돌려주었다. 백발백중의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처방을 권유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배고프면 잠이 안 와요”하는 말이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왜곡된 삶의 습관이 누적되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고프면 당연히 잠이 더 잘 오게 되어있는 것이 우리 신체의 정상이다. “사흘만 참으시오.” 사흘만 빈속으로 자버릇하면 배고플수록 잠은 더 잘 온다. 그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습관이 바뀌면 배부를수록 잠이 오질 않는다. 식곤증과 잠은 별개의 문제다. 잠을 촉진하는 것은 피로이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은 낮의 勞動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정신적 충격은 특수한 상황이다.
 
한의학에서는 정신병의 상당부분도 “위중불화胃中不化”로 설명한다. 내가 말한 음식의 시중이 이루어지지 않아 허화虛火가 상초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빈속으로 자는 것처럼 우리 신체에 고귀한 경험은 없다. 누구든지 체질을 불문하고 약을 먹을 일이 있다면 약 대신에 “저녁불식”을 실천해보라! 한 달만 실천해도 엄청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수승화강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실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현대적 도시 삶의 구조 속에서, 혹은 직장상의 이유를 핑계 삼아 실천의 어려움을 말한다. 물론 싫으면 안해도 된다. “修身”은 오직 자율적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 삶 속에서 자연인의 삶을 회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축복의 경험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21세기 문명의 한 복판에서 모든 이기를 누리며 고조선의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은 오늘 21세기 한국인 모두에게 부여되어 있다.
 
나의 몸에 관한 한 핑계는 없다. 직장생활의 핑계도 결국 본인이 그런 타락된 삶을 원하는 것일 뿐이다. 밤의 낭만? 일찍 자고 새벽의 낭만을 즐기는 것이 더욱 낭만적이다. 불가피한 저녁 외식 때도 먹는 척만 하면 될 것이다. 내가 안 먹으면 가축이 다 먹게 되어있다. 죄의식을 느낄 필요없다. 세상 정크푸드로 내 몸을 오염시키지 말고 굶어라! “배고픈 홍안의 미소년(녀)”이 되어 잠자리에 들라!
 
현대생활에 있어서 “오후불식”은 너무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오후불식五後不食”으로 그 의미를 바꾸었다. 즉 오후 5시 이후에는 일체 음식을 취하지 말것!
 

● “선생님의 말씀은 평범한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적 우주를 혁명시키는 듯한, 파격적이면서도 정도의 첩경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후불식을 꼭 실현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5시 이후에는 물도 먹으면 안되는지?”
 

― 물도 먹지 마라! 몸을 철저히 비우고 자야 수승화강을 체험할 수 있다. 한 3년 정도만 철저히 지키다 보면 점점 고수가 되어가면서 응변의 도리를 깨닫게 된다. 수신修身의 기본은 오후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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