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 頭 言
'침과 뜸을 안고 故鄕으로 갑니다.'
김남수 (본지 발행인, 한국정통침구학회 회장)
뜸사랑 會員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작년엔 세월호 관련해서 온 나라가 어수선하더니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질환)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뜸사랑 회원여러분들은 뜸을 뜨면서 잘 對處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참 많은 歲月이 흘렀습니다. 선친의 발치 아래서 익혔던 침과 뜸은 그 세월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世上을 보게 했습니다. 침뜸은 우리의 위대한 文化였고, 寶物이었습니다. 선조들은 침과 뜸의 가치를 인정하고, 건강을 지키며 병을 치료하는데 최고의 가치로 이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미경을 통해 세균을 죽이고, 메스로 잘라내는 맞보기 의학인 서양의학이 유입되면서 털 한 올도 손상되지 않게 원인을 찾아 근본을 다스리는 우리의 침뜸의학과 대척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한 이치를 모르는 위정자들은 서양의학과 부합하여 침과 뜸을 말살하려 들었고, 해괴하게도 침과 뜸을 한의사라는 명칭으로 둔갑시켜 전통적으로 침뜸을 해온 우리들의 손발을 묶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침뜸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나는 '침과 뜸이 없어져서는 절대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 침구사 부활운동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침뜸 교육을 시작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교육을 하고 침과 뜸으로 건강을 지키고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속절없는 세월은 流水와 같이 흐르고, 많은 침구사들은 恨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정부가 발행하는 면허 있는 침국사는 나를 포함하해 헤아리기도 부끄러운 소수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교육을 통해 침과 뜸을 익힌 자격 있는 뜸사랑 회원이 5천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은 정부가 침뜸 검정고시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진료선택권을 도둑맞은 상태이고, 침뜸을 하는 많은 사람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침구사 부활'과 '뜸시술 자율화'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여러분이 공부한 '구당침'과 '무극보양뜸뜸'은 세계 각국이 익히고자 100살이 된 노구인 나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도 언젠가는 여러분이 直接(직접)해야 합니다. 여러 회원들은 나와 같은 붕어빵이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생을 바친 정든 침과 뜸을 안고 이제 故鄕으로 갑니다.
중국의 경전인 예기에도 '首丘初心(수구초심)'이라 하여 근본을 잊지 말라 했고, 宋나라 시대의 유명한 도연명 시인도 歸去來辭(귀거래사)로 故鄕을 한가롭게 읊었습니다.
우리나라 詩人 노천명은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목화꽃이 고운 내 故鄕으로~~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 순을 꺽다 나면 꿈이었다.'
라며 고향을 애타게 그렸고,
시인 이은상도
'내 故鄕 南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가고파라 가고파라'
라고 고향을 노래했습니다.
故鄕이 그리운 것이 어디 사람뿐입니까? 여우도, 제비도, 연어도 때가 되면 고향인 韓國을 찾아오고, 멀리 太平洋으로 갔다가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렇듯 모두가 때가 되면 故鄕을 찾아갑니다. 포근함이 있고, 그리움이 있으며, 애잔함이 있는 곳, 태어난 그곳 故鄕으로 向합니다. 모든 人生은 태어나면서부터 할 수밖에 없는 단 한 번의 旅行(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故鄕을 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故鄕 '장성 금계'. 이곳은 금닭이 알을 낳았다는 傳說이 있는 곳입니다. 나는 이곳에 '구당 뜸집'을 지었습니다. 이곳에서 마당을 거닐고, 뜰에 핀 꽃과 나무와 얘기하며 서울에서 키우던 앵무새와 즐거운 對話를 하고, 금붕어의 아름다운 교태(?)도 넌지시 바라보려 합니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에게 무극보양뜸도 떠주고, 침도 놓아주며 치료를 해줄 것입니다. 변해서는 안 되고, 변할 수 도 없는 우리 고유의 文化이자 醫術인 침뜸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용한지 낱낱이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들의 침과 뜸이 있는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香氣로운 무극보양뜸으로 利他的인 시간을 가진다면 '박주산채'일 망정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