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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설전법륜경(佛說轉法輪經)
후한(後漢) 안식삼장(安息三藏) 안세고(安世高) 한역
최민자 번역
後漢安息三藏安世高譯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한때, 부처님께서 바라나국(波羅㮈國)의 녹야원(鹿野苑)에서 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一時,佛在波羅捺國鹿野樹下坐,
그때 천 명의 비구와 모든 천인(天人)과 귀신들이, 모두 모여 공중을 가득 메웠다.
이때 저절로 법륜(法輪)이, 날아와 부처님 앞에서 굴렀다.
時有千比丘諸天神,皆大會側塞(측새)空中,於是有自然法輪,飛來當佛前轉。
부처님께서 손으로 바퀴[輪]를 어루만지시면서 말씀하셨다. “멈추어라.
佛以手撫(무)輪曰:“止!
옛날 나는 무수겁(無數劫) 전부터, 명색(名色)으로 비롯된 괴로움[苦]을 받은 것이 한량이 없었다.
往(주)者吾從無數劫來,爲名色轉受苦無量,
지금은 어리석음과 애욕의 뜻이 이미 그쳤고, 번뇌의 마음[漏結之情]에서 이미 해탈하였고,모든 근(根)이 이미 안정(定)되고 나고 죽음이 이미 끊어져, 다시는 5도(道)를 윤회[轉]하지 않을 것이다.”
今者癡(치)愛之意已止,漏結之情已解,
諸根已定生死已斷,不復轉於五道也。”
바퀴가 곧 멈추었다.
輪卽止。
이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간(世間)에서 두 가지 일이 있어 극단적인 행[邊行]에 떨어지니, 도를 행하는 제자와 출가자들은, 목숨이 다하도록 그것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於是,佛告諸比丘:“世閒有二事墮邊(타변)行,行道弟子捨(사)家者,終身不當與從事。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생각이 탐욕에만 있고 청정한 뜻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몸과 애욕에 기대고 집착하여 정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何等二?一爲念在貪欲無淸淨志,二爲猗著(아저)身愛不能精進。
그런 까닭에 극단적인 행으로 물러나, 도(道)와 덕(德)을 갖춘 진인(眞人)1)인 부처를 만나지 못한다.
是故退邊行,不得値(치)佛道德具人。
만일 비구가 탐욕을 생각하지 않고 몸과 애욕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하면, 중도(中道)를 받아 지닐 수 있다. 여래ㆍ최정각(最正覺)은 안목(眼)을 얻고 지혜를 얻어, 양쪽의 극단적인 행에서 벗어나 스스로 니원(泥洹:열반)에 이르렀다.
若此比丘不念貪欲著身愛行,可得受中,
如來最正覺得眼得慧,從兩邊度自致泥洹。
무엇을 중도를 받아 지닌다고 하는가? 8정도(正道)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니, 첫째는 정견(正見)이요, 둘째는 정사(正思)요, 셋째는 정언(正言:正語)요, 넷째는 정행(正行:正業)이요, 다섯째는 정명(正命)이요, 여섯째는 정치(正治:正精進)요, 일곱째는 정지(正志:正念)요, 여덟째는 정정(正定)이다.
何謂受中?謂受八直之道,一曰正見,二曰正思,三曰正言,四曰正行,五曰正命,六曰正治,七曰正志,八曰正定。
만일 비구가 본래 도를 듣지 못했으면2) 마땅히 어떻게 괴로움이 진제(眞諦:道諦)가 되는가를 알아야 하니, 한결 같은 마음으로 안목을 받아 지니고 선정(禪定)을 받아 지니고 지혜로운 견해[慧見:부처의 지혜]를 받아 지니고, 깨어 있는 생각[覺所念]을 받아 지녀 의미를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마땅히 어떻게 고제(苦諦)ㆍ습제(習諦:集諦)ㆍ진제(盡諦:滅諦)가 진제(眞諦)가 되는가를 알아야 하니, 안목을 받아 지니고, 선정을 관(觀)하고, 지혜로운 견해ㆍ깨어 있는 생각을 받아 지녀 의미를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진제(盡諦)가 진제(眞諦)가 되는가를 알아야 한다.
若諸比丘本末聞道,當已知甚苦爲眞諦,已一心受眼受禪思受慧見,覺所念令意解,當知甚(심)苦習盡爲眞諦,已受眼觀禪思慧見,覺所念令意解,如是盡眞諦。
무엇이 고제인가? 이를테면 태어나고 늙는 괴로움, 병드는 괴로움, 근심하고 슬퍼하고 번뇌하는 괴로움, 미워하는 것이 모인 괴로움, 아끼는 것이 나누어지는 괴로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5음(陰)으로 이루어진 몸이 치성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何謂爲苦?謂生老苦、病苦、憂、悲、惱苦、怨憎會苦,所愛別苦,求不得苦,要從五陰受盛(성)爲苦。
무엇이 고습제(苦習諦:苦集諦)인가? 이를테면 애욕을 따르기 때문에 다시 즐기려는 성향이 생겨 떠나지 않는다. 있는 곳마다 즐거움을 탐내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가 모여[習] 괴로움이 된다.
何謂苦習?謂從愛故而令復有樂性,不離在在貪憙,欲愛、色愛、不色之愛,是習爲苦。
무엇이 고진제(苦盡諦:苦滅諦)인가? 이를테면 애욕에서 다시 즐거움과, 음욕의 생각이 생기지만 받아들이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아 남음도 없고 음욕이 없으며, 이것을 버려 없게 하여 다시 선정에 잠기니, 이와 같은 것을 괴로움의 모임이 없어지는 것[苦習盡]이라고 한다.
何謂苦盡?謂覺從愛復有所樂,婬念不受,不念無餘無淫,捨之無復禪,如是爲習盡。
무엇이 괴로움의 모임이 없어져 도를 받아 지니려고 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8정도를 받아 행하는 것이니, 정견ㆍ정사ㆍ정언ㆍ정행ㆍ정명ㆍ정치ㆍ정지ㆍ정정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모임이 없어져 도진제(道眞諦)를 받아 지니는 것이다.
何謂苦習盡欲受道?謂受行八直道,正見、正思、正言、正行、正命、正治、正志、正定,是爲苦習盡受道眞諦也。
또 비구들이여, 괴로움이 진제(眞諦)가 되고, 괴로움이 모임으로 말미암은 것이 진제가 되고, 괴로움의 모임이 없어지는 것이 진제가 되고, 괴로움의 모임이 없어져 도를 받아 지니려 하는 것이 진제가 된다. 만일 옛날부터 이 법을 본래 듣지 못한 이는, 마땅히 안목을 받아 지니고 선정에 들어 관행(觀行)하고, 지혜로운 견해, 깨어 있는 생각을 받아지녀 그 뜻을 깨우쳐야 한다.
又是,比丘!苦爲眞諦,苦由習爲眞諦,苦習盡爲眞諦,苦習盡欲受道爲眞諦,若本在昔未聞是法者,當受眼觀禪行受慧見受覺念令意得解。
만일 이 자리에 있으면서 아직 이 4제법(諦法)을 듣지 못했던 이들은, 마땅히 도안(道眼)을 받아 지니고, 선정[禪思]을 받아 지니고, 지혜로운 견해와 깨어 있는 생각을 받아들여 그 뜻을 깨우쳐야 한다.
若令在斯(사)未聞是四諦法者,當受道眼、受禪思、受慧覺,令意行解。
만일 다른 곳에 있어서 이 4제법을 듣지 못한 이도, 또한 마땅히 도안을 받아 지니고, 선정을 받아 지니고, 지혜로운 견해를 받아들이고, 깨어 있는 생각을 받아들여 그 뜻을 깨우쳐야 한다. 이것이 4제(四諦)를 세 번 굴려[三轉] 합하여 열두 가지의 일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알고도 청정해지지 않는 이들은 나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若諸在彼不得聞是四諦法者,亦當受眼、受禪、受慧、受覺,令意得解,是爲四諦三轉合十二事,知而未淨者吾不與也。
모든 세간의 모든 천인ㆍ사람ㆍ범천(梵天)ㆍ마구니ㆍ사문ㆍ범지(梵志)들이 스스로 알아 증득하고,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을 받아 행하면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이룰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의 가장 훌륭한 법[四極]이니,
一切世閒諸天人民,若梵、若魔、沙門、梵志,自知證已,受行戒、定、慧、解、度知見成,是爲四極。
이 생(生) 후에는 다시 몸을 받지 않아, 세간을 영원히 떠나 다시는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이다.”
是生後不復有,長離世閒無復憂患。”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현자 아야구린(阿若拘鄰) 등과 8천 해(★)의 천인들이, 모두 번뇌를 멀리 떠나서 법안(法眼)이 생겼으며,
佛說是時,賢者阿若拘鄰等及八千姟天,皆遠塵(진)離垢(구)諸法眼生。
1천명의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뜻이 열려 모두 아라한(阿羅漢)을 성취하였다. 그리고 위로는 모든 괴로움이 모인 법[習法]을 마땅히 없애야 하는 것[盡]을 모두 보이신[轉] ,
其千比丘漏盡意解,皆得阿羅漢,及上諸習法應當盡者一切皆轉。
중우(衆祐:여래, 바가바)께서 소리내어 법륜을 세 번 굴리시자, 모든 하늘과 세간의 법지(法地)에 있는 이들은 듣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그 소리가 제14천왕ㆍ도리천(忉利天)ㆍ염천(焰天)ㆍ도술천(兜術天)ㆍ불교락천(不驕樂天)ㆍ화응성천(化應聲天)까지이르고, 범천들이 머무는 곳까지 이르러 잠깐 사이에 두루 들렸다.
衆祐法輪聲三轉,諸天世閒在法地者莫不遍聞,至于(우)第一四天王、忉利天、焰天、兜術天、不驕樂天、化應聲天,至諸梵界須臾(수유)遍聞。
그때, 부처님 세계의 3천의 해와 달, 1만 2천의 천지가 모두 크게 진동하였다. 이것이 (佛)중우께서, 처음 바라나에서 아직 굴린 적 없는 가장 훌륭한 법륜을 굴리시어, 셀 수 없이 많은 곳을 비추시고 모든 천인과 사람들을 제도하신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모두 도를 증득하였다.
爾時,佛界三千日月萬二千天地皆大震動,是爲佛衆祐,始於波羅捺以無上法輪轉未轉者,照無數度諸天人從是得道。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자,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佛說是已,皆大歡喜。
佛說轉法輪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고려본에는 구(具)로 되어 있으나 송본ㆍ원본ㆍ명본의 진(眞)을 따랐다.
2)
고려본에는 말(末)로 되어 있으나 원ㆍ명본의 미(未)를 따랐다."
● 불설삼전법륜경(佛說三轉法輪經)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이 명을 받들어 한역
최민자 번역
三藏法師 義淨奉制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한때, 박가범(薄伽梵)께서 바라닐사(波羅泥斯)의 선인이 떨어진 곳인 시록림(施鹿林:鹿野苑)에 계셨다.
一時,薄伽梵在婆羅痆斯仙人墮(타)處施鹿林中。
그때 세존(世尊)께서 다섯 필추(苾蒭)들에게 말씀하셨다.
爾時,世尊告五苾芻曰:
“그대들 필추여, 고성제(苦聖諦)에 대하여, 들은 법(法)을 이치(理致)대로 생각하여, 눈[眼]ㆍ지혜[智]ㆍ증명[明]ㆍ깨달음[覺]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聖諦,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 이 괴로움의 쌓임[苦集], 괴로움의 사라짐[苦滅], 괴로움이 사라짐에 이어지는 도성제(道聖諦)의 법을,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集、苦滅、順苦滅道聖諦之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 이 고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서,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차)苦聖諦是所了法,如是應知,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 이 고집성제(苦集聖諦)는 알아야 할 법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끊어서,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集聖諦是所了法,如是應斷,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 이 고멸성제(苦滅聖諦)는 알아야 할 법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증득하여,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滅聖諦是所了法,如是應證,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 이 괴로움이 사라짐에 이어지는 도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닦아서,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順苦滅道聖諦是所了法,如是應修,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이 고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니,이와 같이 이미 알았다면,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聖諦是所了法,如是已知,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이 고집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니,이와 같이 이미 끊었다면,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集聖諦是所了法,如是已斷,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이 고멸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니,이와 같이 이미 증득하였다면,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苦滅聖諦是所了法,如是已證,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이 괴로움이 사라짐에 이어지는 도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니, 이와 같이 이미 닦았다면, 들은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여,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내어야 한다.
汝等苾芻!此順苦滅道聖諦是所了法,如是已修,於所聞法如理作意,能生眼智明覺。
그대들 필추여, 만일 내가 이 4성제법(聖諦法)에 대하여 3전(轉)하는 12상(相)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면,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모두 내지 못하여, 나는 곧 모든 천인ㆍ마구니ㆍ범천(梵天)ㆍ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ㆍ모든 세간에 대하여 번뇌를 떠나 마음이 해탈을 얻지 못하고,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汝等苾芻!若我於此四聖諦法未了三轉十二相者,眼智明覺皆不得生,我則不於諸天魔梵、沙門婆羅門一切世閒,捨(사)離煩惱心得解脫,不能證得無上菩提。
그대들 필추여, 나는 이 4성제법에 대하여 3전하는 12상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에, 눈ㆍ지혜ㆍ증명ㆍ깨달음을 모두 내어, 모든 천인ㆍ마구니ㆍ범천ㆍ사문ㆍ바라문ㆍ모든 세간에 대하여, 번뇌를 떠나 마음이 해탈을 얻어, 곧 무상보리를 증득할 수 있었다.”
汝等苾芻!由我於此四聖諦法解了三轉十二相故,眼智明覺皆悉(실)得生,乃於諸天魔梵、沙門婆羅門一切世閒,捨(사)離煩惱心得解脫,便能證得無上菩提。”
그때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 구수(具壽) 교진여(憍陳如)와 8만의 모든 천인들이, 번뇌에서 멀리 벗어나 법안(法眼)이 청정하게 되었다.
爾時世尊說是法時,具壽憍陳如及八萬諸天,遠塵(진)離垢(구)得法眼淨。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법을 알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이미 알았습니다,세존이시여.”
佛告憍陳如:“汝解此法不?”答言:“已解。世尊!”
“그대가 이 법을 알았느냐?”
교진여가 대답하였다.
“이미 알았습니다,선서(善逝)시여.”
“汝解此法不?” 答言:“已解。善逝!”
교진여가 이 법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아야(阿若)는 깨달아 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由憍陳如解了法故,因此卽名阿若憍陳如阿若是 解了義。
이때 지거(地居) 약차(藥叉)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큰 소리를 내어, 사람들과 천인들에게 알렸다.
是時地居藥叉聞佛說已,出大音聲,告人天曰: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닐사의 선인이 떨어진 곳인 시록림에서, 3전(轉)하는 12행상(行相)의 법륜(法轉)을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천인ㆍ사람ㆍ마구니ㆍ범천ㆍ사문ㆍ바라문과 모든 세간에, 큰 이익을 주시고, 또한 범행(梵行)을 닦는 이들이 편안한 열반(湟槃)에 빨리 이르게 하셨으니, 사람과 천인은 더욱 늘어나고 아소라(阿蘇羅)는 줄어들 것입니다.”
“仁等當知,佛在婆羅痆斯仙人墮(타)處施鹿林中,廣說三轉十二行相法輪,由此能於天人魔梵、沙門婆羅門一切世閒,爲大饒(요)益,令(령)同梵行者速至安隱涅槃之處,人天增盛阿蘇羅減少。
그 약차가 이렇게 알리니, 허공에 있는 모든 하늘과 사천왕(四天王)들이 모두 다 듣고 알았다.
”由彼藥叉作如是告,虛空諸天四大王衆皆悉(실)聞知。
이렇게 차츰차츰 전해져서 찰나 사이에 모든 6욕천(欲天)과, 잠깐 동안에 범천까지 그 소리가 두루 들렸다. 범천들이 듣고 나서 다시 앞에서와 같이 자세히 말하였다. 그로 인하여 이 경의 이름을 『삼전법륜경』이라고 하였다.
如是展轉於剎那頃(경)盡六欲天,須臾(수유)之閒(한)乃至梵天普聞其響(향),梵衆聞已復皆遍告廣說如前,因名此經爲三轉法輪。
그때 다섯 필추와 사람들과 천인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모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時五苾芻及人天等,聞佛說已,歡喜奉行。
佛說三轉法輪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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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법륜경
담마짝깝빠왓따나 경
(Dhammacakkappavattana suttaṃ, 가르침의 수레바퀴에 대한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 계셨다.
2. 그 때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의 극단을 섬기지 않는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3. 수행승들이여,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탐착을 일삼는 것은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도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가지의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
4. 그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涅槃으로 이끈다.”
5. 1) [세존]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줄여서 말하지면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다발(五蘊)이 모두 괴로움이다.
2)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바로 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에 환희하며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갈애이다. 곧,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3)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갈애渴愛를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포기하고 버려서 집착 없이 해탈하는 것이다.
4)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6.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는 상세히 알려져야 한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가 상세히 알려졌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7.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이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는 제거되어야 한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가 제거되었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8.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이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실현되었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9.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이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닦여져야 한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닦여졌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10.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나의 앎과 봄이 세 번 굴린 열두 가지의 형태로 있는 그대로 완전히 청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하게 깨달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나의 앎과 봄이 세 번 굴려서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청정해졌기 때문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언했다. 나에게 ‘나는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라는 앎과 봄이 생겨났다.”
11.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의 말씀에 환희하고 기뻐했다. 또한 그 가르침을 설할 때에 존자 꼰당냐에게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라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12. 1) 세존께서 이와 같이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실 때에
땅위의 신들은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2) 땅위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3)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4)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축복 받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5) 축복 받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6)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창조하고 기뻐하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7) 창조하고 기뻐하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다른 신들이 만든 것을 누리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8) 다른 신들이 만든 것을 누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세계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13. 이와 같이 그 찰나, 그 순간, 그 잠깐 사이에 하느님(梵天)의 세계에 까지 소리가 미쳤다. 또한 이 일만 세계가 움직이더니 흔들리고 크게 진동했다. 무량하고 광대한 빛이 신들과 신들의 위력을 뛰어넘어 세상에 나타났다.
14. 이 때 세존께서는 감흥어린 말로 이와 같이 ‘꼰당냐는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 꼰당냐는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라고 읊으셨다. 그래서 존자 꼰당냐는 앙냐 꼰당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Dhammacakkappavattana suttaṃ- 가르침의 수레바퀴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56:11, S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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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전법륜경(佛說轉法輪經)
2022. 3. 19. 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