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암세포도 생명', 임성한)
어떤 문제가 닥쳐 힘들어하고 하소연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분별하지 말고 그냥 딱 받아들여보라'고 조언하다. 사람을 비롯해 우주 모든 생명체는 스트레스를 안 받도 살 수 없다. 태양이 뜨면 너무 덥고 겨울엔 춥고 밤은 어둡고, 이치가 그렇다.
언젠가 내가 드라마에서 '비바람이 몰아칠 때 나무들이 왜 비바람이 몰아치냐고 따지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면 결국 아름드리나무가 되듯 사람도 시련이 닥쳤을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나 절망과 비탄에 잠길게 아니라 견뎌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는 내용을 썼더니, 모 여류 강사가 그 내용을 인용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방송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흔한 표현으로 책 한 권도 모자랄 만큼, 많은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해명하거나 항의나 오류를 바로잡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그냥 참고 견뎠다. 사실 억지로 참고 견뎠다면 뭔가 스트레스 병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그정도 일이나 사건엔 크게 마음 동요가 없었다. 그게 쉽냐고?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다는 제로섬 게임처럼,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환하고 편한 낮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둡고 불편한 밤이 있으며,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되뇌며 약간 과장 보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식구들이나 지인들이 기사 내용을 불만 삼으면 내가 오히려 기자 입장에서 설명하며 열 낼 필요 없다고 다독이곤 했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있고,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마음 먹은 대로 안 되는 게 있다. 방송작가가 된 건 내 뜻과 노력으로 됐지만, 누구보다 조용히 글만 쓰며 살고 싶었던 나였는데 현실은 반대가 됐다.
작가 되기 전 직장에서 나이 지긋한 분이 직원들을(?) 꽉 잡고 꽤 설치셨었다. 앞에서는 전부 고분고분하며 그분께 웃는 낯을 보였지만 뒤에서는 하나같이 안 좋은 소리들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나이 먹어도 절대 나서지 말고 살아야지 마음 먹었드랬다.
해서 작가가 된 후 배우들 앞에서도 안 나서고 오로지 글에만 집중, 인터뷰도 사양했는데 오히려 얼굴 없는 작가... 베일에 싸인 운운하며 역효과로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작가가 안됐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 없었을 것고, 작가가 됐기 때문에 갖은 논란과 악플을 겪은 것이다. 단지 드라마를 썼다는 이유로, 드라마를 썼어도 적당히 썼으면 아무도 관심 안 가졌을 것을, 최선을 다해 쓰는 바람에 시청률이 매번 잘나와(얻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악플 악평에 시달린 것이다(잃은 것). 누가 등떠밀어 된 거 아니고 내가 원해서 된 터라 얻어지는 것, 잃는 것 둘 다 받아들여야한다 생각했다. 원망 조금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