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데까지 간 의사·한의사 충돌 漸入佳境
매일경제 신찬옥
입력 2018.09.12
⚫한의사협회, 전면전 선포
⚫의사·한의사 면허 통합
⚫일원화합의 일방폐기 발끈
⚫의사독점구조 타파하려면
의사·한의사정원 확대해야
대한한의사협회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협회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지난 10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3년간 보건복지부·한의사협회와 함께 만든 한의정협의체 합의안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발표하자 크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의사협회에 따르면 한의정협의체는 2030년까지 의사와 한의사 양성교육과정과 면허제도를 통합하는 '의료 일원화'를 논의하고 있었다. 통합면허를 통해 의사와 한의사가 양방과 한의학을 모두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골자다.
한의정협의체는 2015년 처음 결성될 당시 한의사의 의료기기 허용 논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의사협회 요구로 '의료 일원화' 논의기구로 바뀌었다. 이번에 의사협회가 거부 입장을 밝힌 합의안은 의학과 한의학 교육통합과 의사·한의사 면허통합 등을 함께 모색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저와 보건복지부에 '이 정도면 의협 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마지막 수정 합의안을 준 게 최대집 회장"이라며 "그런 최 회장이 불과 며칠 후 실무자 의견이 반영된 가안일 뿐이라며 합의문을 폐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대집 회장은 지난 10일 서울 용산 의협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의안 가안은 절대 수용 불가해 폐기하겠다"며 "기본 원칙에 의한 새로운 안을 만들어 조만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해 의과대학으로 단일한 의학교육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며 "한의과대학을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내 11개 한의대는 전 세계 의과대학 목록에조차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방은 역사적 유물이 될 수는 있어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의학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혁용 회장은 "세계 의과대학 목록에 중국 중의대, 몽골 한의대도 들어가 있다"면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원래 등재돼 있던 국내 한의대를 목록에서 빠지게 만든 것이 의사협회인데, 이제 와서 목록에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語不成說"이라고 지적했다. 한의대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3명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고 한의사를 제외하면 1.7명에 불과하다"며 "의사든 한의사든 정원을 늘려 국민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맞는 방향인데, 의사협회는 독점구조라는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해 의대 定員(정원)을 늘리자는 주장을 묵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의사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한국형 표준질병사인 분류(KCD)에 입각해 진단하고 치료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치료비를 받고 있다. 현대 한의학은 통합의학일 수밖에 없고 11개 대학에서도 통합의학을 가르치고 있다"며 "의사 독점구조가 깨져야 의료 불균형이 해소되고 공공의료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정부에 "한의정협의체에서 합의가 불가능해진 의료법 개정안을 다시 국회로 보내고 이원화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를 즉각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뜨거운 감자인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서는 복지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 책임자'에 한의사를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최근 잇따른 의료사고와 관련해서도 양측은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의사협회는 한의원에서 蜂鍼(봉침) 시술을 받고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킨 환자를 응급 치료하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피소된 사건을 들어 "한방 부작용 폐해가 심각하다"며 "앞으로는 어떤 한방 부작용 치료에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의사협회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 수술을 시켜 환자가 사망하는 등 양방 독점의 폐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맞섰다.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은 때아닌 역사논쟁으로도 번졌다. "한의학은 일제강점기 유물일 뿐"이라는 최대집 회장 주장에 최혁용 회장은 "한의학은 원래 이 땅의 유일한 의학이었는데 양방의학이 도입되면서 중국처럼 새로운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日帝가 한의사를 의생으로 격하시키는 등 한의학 말살 정책을 펴면서 지금 같은 의사 독점구조가 공고히 지켜져 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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