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만) 시간을 투자해 보세요

 

조갑제닷컴 엄상익

입력 2017-03-23

 

 

'요즈음은 이제 남은 노년의 인생에서 어디에다 萬 시간을 투자해서 행복하게 지낼까 궁리하고 있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를 함께 다닌 고교 동기들이 모였다.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서 소주잔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還甲 고개를 넘기고서는 각자 나머지 노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까가 話頭였다. 각자들 비가 뿌리는 인생 山脈들을 잘도 넘어온 것 같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난 색소폰을 배우고 싶기도 하고 외국어를 하나 마스터하고 싶기도 해. 그런데 어떤 걸 잡든지 전문가급으로 진입하려면 기본적으로 萬 시간을 투자해야 한대. 하루에 10시간씩 하면 꼬박 2년7개월 정도 걸리고 5시간이면 5년5개월이지.”

 

나이 60에 처음 시작해도 70까지는 전문가급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들으니까 비로소 理解되는 것들이 있었다. 英語를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공부를 한 時間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에 집중해서 萬 시간을 투자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忍耐와 끈기를 요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참으며 反復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들의 재능을 테스트하는 얘기를 들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일정한 크기의 동그라미를 채우라고 宿題를 준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동그라미를 몇 개 그리다가 지겨워지면 네모를 그리기도 하고 동그라미가 무성의한 세모로 바뀌기도 한다고 했다. 도화지의 일부만 채우고 집어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심지어 아예 그리지 않고 도화지를 동그랗게 말아 다른 아이들의 머리를 때리고 다니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재능이 있는 아이는 인내하면서 도화지 안에 정확한 규격으로 동그라미를 꽉 채운다고 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人生이 그런지도 모른다. 같은 일을 끝없이 反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쿨'이란 그룹의 이재훈이란 가수가 사무실을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노래를 하나 받으면 일단 千 번을 반복해 부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노래 하나를 골라 百 번쯤 불러보라고 했다. 힘들다는 얘기였다. 그는 춤 연습도 학교 실내운동장을 빌려 밤새껏 스텝을 밟으면 운동화가 금방 닳아서 떨어진다고 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건달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어려서부터 그 방면에 數萬 시간을 투자했다고 했다.

 

가수 전인권 씨와도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척 형이 치던 통기타를 보고 반해 평생 음악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단칸셋방에서도 생활비를 벌 생각보다 기타연습을 했다. 장인이 준 월세 보증금으로 악기를 사서 연주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 오는 날 감옥 안에서 지은 노래가사를 편지에 담아 보내면서 나보고 봐달라고 했었다.

 

유명화가인 오승윤 씨도 변호사를 하면서 알게 된 인물이다. 그는 광주 변두리의 세 칸짜리 초가의 중간 방에서 밤중에도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손이 굳지 않게 하기 위해 어디서나 드로잉을 반복했다.

 

소설가 정을병 씨가 살아있을 때 소송의뢰를 받으면서 그와 친해졌었다. 이십대 시절 그는 문학을 神으로 삼고 殉敎할 각오를 세웠다고 했다. 서대문도서관이 그의 학교였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소설만 읽었다. 글쟁이에게 가난이라는 운명이 따르던 시절이었다. 그는 쌀과 김치 그리고 연탄만 있으면 생존한다고 생각하고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食事도 하루에 한 끼만 먹기로 맹세했다. 칠십대 중반까지 그는 만 시간이 아니라 그 열 배 이상을 문학에 투자했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한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소설가 정을병 씨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보면서 절망한다고 했다. 그들에 비교하면 자신은 4류나 5류소설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니까 5류작가로라도 죽을 때까지 작품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가수 전인권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는 남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뮤지션이지만 뉴욕에 가보니까 그곳 3류 밴드보다도 자신이 못하더라고 고백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온 모차르트처럼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로만킴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리사이틀에 갔었다. 줄리어드를 나온 음대교수가 사회자로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로만킴은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韓國人의 3세입니다. 그는 지금 23세에 불과합니다. 저도 30년간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만 로만킴은 파가니니 이후 100년 만에 나온 天才라고 생각합니다.”

 

소개하는 음대교수는 눈이 붉어지더니 무대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 예술가로서 천재에게 진심으로 감동한 눈물이고 동시에 좌절감의 표현인 것 같기도 했다. 로만킴의 바이올린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현에서는 멜로디가 아니라 수많은 아우성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통사람은 천재를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았다. 차라리 나는 30년 연주했다는 보통사람이 더 좋은 것 같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살아가면서 자기가 선택한 몇 가지에 萬 시간씩을 들이면 나름대로 윤택한 인생을 보낸 게 아닐까. 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재산인 시간을 어디다 투자했었나 돌이켜 본다. 고시공부를 할 때 깊은 山 암자의 뒷방에서 또 얼어붙은 강가 방갈로에서 법서 안에 萬 시간 이상을 쏟아 부은 것 같다. 신산스런 이십대의 시간을 그렇게 변호사 자격증과 바꾸었다.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린 후 나는 ‘믿음을 가진 작가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이미 萬 시간은 썼으니까 이제 믿음에 萬 시간 그리고 작가가 되는데 萬 시간을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믿음이란 배의 바닥짐 같이 내 인생의 中心을 잡아주는 역할이었다. 하나님이 믿음을 거저 던져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聖經 안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30대 중반쯤부터 고시공부하듯 매일 일정시간 성경을 읽었다. 이제 거의 30년 세월 가까이 萬 시간대는 통과한 것 같다. 예배와 기도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성경공부에 자격증은 없었다. 대신 성경구절의 상당부분이 녹아서 핏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느낌이다. 靈魂이 조금은 변화되지 않았을까 하고 정산해 본다.

 

글을 써 보기로 결심을 하고 30대 말쯤 수필원고 한 편을 써 가지고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趙甲濟 씨를 찾아갔었다. 그는 내 원고를 거절하면서 일단 시중에 나와 있는 수필집들을 구해서 다 읽고 원고지로 키만큼 글을 써 본 다음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만큼 時間을 투자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글쓰기와 독서가 시작됐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썼다. 그리고 대충 萬 시간의 벽은 통과한 것 같다.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문인협회 회원, 소설가협회 회원이 됐다. 컬럼니스트란 인정도 받았다. 고위관직을 해보지는 못했어도 또 부자는 아니어도 나의 작은 소망이었던 ‘믿음을 가진 작가 변호사’에는 접근한 셈인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미숙한 신앙의 단계다. 작가로서도 변호사로서도 3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1류가 못되는 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요즈음은 이제 남은 노년의 인생에서 어디에다 萬 시간을 투자해서 행복하게 지낼까 궁리하고 있다. 즐거움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첫째가 일하는 즐거움이다. 노인 변호사로서 영업방침을 바꾸었다. 여태까지는 품삯을 위해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즐겁기 위해 일을 할 것이다. 어제는 컬럼을 보고 찾아온 70대 노인의 얘기를 한 시간 동안 들으면서 慰勞해 주었다. 위로받은 그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솟아오르는 걸 보고 오히려 내가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들이 萬 시간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보는 聖經 속에 지난 시절 理性으로 보던 때 안 보이던 게 자주 나타난다. 靈的세계가 바로 내 옆에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껍데기 신앙이 아니라 진짜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한 萬 시간의 추가투자는 어떨까. 주기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배인 정독도서관을 찾아가 독서를 한다. 수험서를 놓고 쫓기며 공부하는 이들 옆에서 小說과 詩를 읽는 나의 모습은 젊어서부터 꿈꾸던 즐거움이다. 죽기 전날까지 읽고 쓰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작정이다.

 

해가 질 무렵 이따금씩 한강의 서래섬을 산책한다. 회백색의 한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다가 어둠이 내리면 검은 강물 위에 도심의 네온불빛들이 화려한 추상을 만들어낸다. 그 순간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산책을 하고 길거리 모퉁이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바둑을 두면서 또 萬 시간을 향해 가면 흑자인생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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