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1권
화타 김영길
책머리에
세상은 名譽와 權力과 財産의 '사냥터'이다. 도시에는 이 '사냥터'에서 얻은 획득물에 의해 그 사람의 사회적 身分이 매겨지는 독특한 도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내가 이 '사냥터'를 벗어나 두메산골인 江原道 火田民 마을에서 삶의 터전을 잡은 지 이제 12년이 되었다.
夜不閉戶(야불폐호)란 말이 있다. '밤에도 門을 닫지 않는다'는 말이다. 孔子의 이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다들 착해서 도둑이 없는 세상으로는 堯, 舜 시대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문명의 눈부신 발달은 많은 門을 만들고 이 문을 잠그는 집 열쇠, 金庫 열쇠, 自動車 열쇠 등 많은 열쇠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火田民 촌의 가옥은 울타리가 없다. 울타리가 없으니 大門도 없다. 대문이 없으니 열쇠가 필요없다. 自然 속에서의 생활은 열쇠가 필요 없다. 밤에도 문을 닫지 않고 사는 사회, 열쇠가 필요없는 사회, 이곳 생활이 孔子가 그리워하던 堯, 舜 시대의 생활이다. 지난 12년 동안 도시의 사냥터에서 많은 열쇠를 얻으려다가 難治病, 不治病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며 얻은 結論이 있다.
'누워 있다가 죽던가 걸어서 살던가.'
'人生이 비참해지는 비결은 자신이 幸福한지 불행한지를 생각할 여유를 갖는 것'이라고 버나드 쇼는 말했다. 환자가 자신의 병이 나을지 아닌지를 생각할 여유를 갖는 한, 그는 자신의 병 監獄(감옥)에서 헤어날 수 없다. 病床(병상)에 누워 있는 한 병이 나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은 病床에 누워 괴로워만 하던 不治病, 難治病 환자들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병을 이겨낸 事例를 중심으로 그 동안 내가 살아온 숲속의 生活을 기록한 것이다.
끝으로 告解聖事(고해성사)를 하나 해야겠다. 나는 革命家는 아니지만 나로 인해 혁명가 家族처럼 힘든 歲月을 보낸 아내 송자, 아들 지환, 딸 지원에게 이 책을 바친다.
눈 덮인 芳台山(방태산) 자락에서
차례
靑山에 살으리랏다
1. 병 나가라, 뚝딱!
'병 나가라, 뚝딱!'하여 간경병 고친 외교관
누으면 죽고 걸으면 산다
20년 糖尿를 한 달에 고친 新聞社 사장 부인
돈에 인생을 건 '왕소금'의 디스크 치료
女俳優의 퀸 콤플렉스 피부병
개똥이 아버지와 골다공증 貴婦人의 차이
아침 많이 먹어 비만증 없앤다
2. 飮食 궁합과 체질은 별게 아니다
失明한 할머니를 눈뜨게 한 명의
저녁을 굶으면 머리가 좋아진다
體質에 따라 藥도 毒이 된다
처방에도 戰略戰術이 필요하다
동의보감은 '엉터리 책?'
땀 흘려 勞動하면 피부병 고친다
憂鬱症은 정신병이 아니다
胃腸病에 약 먹으면 해롭다
肝氣 바로잡으면 기관지 천식 고친다
모든 병의 근원은 肝이다
3. 마음을 열면 氣가 열린다
病名 없이 아픈 사람들에게
이것이 암과 간경변 치료법이다
섣부른 의학지식이 사람 잡는다
幻想을 신념으로 착각하는 간병 환자들
편안한 치료는 죽음을 재촉한다
집에서 만드는 자연 六角水
황정계 토막집에서 하룻밤 자고 났더니
기적의 약 '가열 진통제'
물리학으로 풀어본 '氣'의 본질
단전호흡은 生活 속에서 해야 한다
4. 100일이면 부부생활이 즐겁다
80세에 아들 낳은 老人
40대 남자들의 精力 되살리기
정신적인 執着도 병이다
기운 순환 운동하면 갱년기 극복한다
치질은 '신의 은총'인가
나이와 性慾은 관계없다
냉탕반욕으로 성기능 장애 없앤다
5. 自然과 멀어지면 질병과 가깝다
우황청심원은 만병통치약?
돼지고기 먹고 癌 고친 '노새 영감'
과부와 꽁치 두 마리
中風 걸린 노인이 100일간 말고개 넘나든 사연
심한 부정맥의 팔십 노인이 아직 살아 있다
하루 한 끼로 장수하는 '里長 장모님'
煩惱 없는 생활로 암 고친 '다람쥐 아줌마'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火田民들
'백세터 집'처럼 지으면 健康하게 산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어느날 염라대왕의 使者가 찾아와서 며칠 후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웃기는 소리 말아, 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야, 더 살아야 해!"라고 소리치며 저승사자를 쫓아낼 것인가, 아니면 "예, 말씀대로 꼭 죽겠습니다." 라고 할 것인가.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은 염라대왕의 뜻은 거절할 수 없는 '運命'이라 믿는다.
이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열심히 믿는 몇 가지거 있다. 天堂, 地獄, 極樂, 하느님, 염라대왕 등이 그것이다. 現代醫學의 판단도 이 부류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대의술이 내리는 사형 선고를 염라대왕의 뜻으로 알고 무조건 따르려 한다. 그러나 숨이 완전히 끊어져 염을 하고 관속으로 들여보낸 사람도 살아나는 판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제3자의 판단에 의해 송장 행세를 하려 든다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려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환자들에게 이런 警告를 한다.
"진짜 죽기 전엔 죽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관속에 들어간 사람도 멀쩡하게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왜 송장 행세를 하는 거요."
"療養한다고 자리에 누워 있으면 반드시 죽지만 죽을 覺悟로 산길을 걷다 보면 折半은 살아날 수 있다."
침대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朴 社長 夫婦가 경남 삼천포에서 이곳 상남을 찾아온 날은 함박눈이 퍼붓는 小寒 추위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두 사람은 피난민 보따리 같은 많은 짐을 들고 천길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첫인상에서부터 전혀 希望의 눈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지막 통과의례를 기다리고 있는 가련한 모습이었다. 특히 朴 사장의 얼굴에는 저승사자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50대 초반의 朴 사장은 삼천포에서 몇 개의 사업체를 갖고 자수성가하여 그곳 상공회의소 會長을 지낸 실업가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糖尿가 있어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키며 매일매일 당뇨 수치를 측정해왔다. 糖尿라는 병 자체가 당장 죽을 병은 아니어서 조심하며 지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당의 수치가 높아져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진단 결과는 간경변 합병증이었다.
서둘러 入院하여 반 년 남짓 병원에서 지냈다. 그러면서 그 동안 左右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虛妄한 생각뿐이었다. 특히 故鄕의 淸定 海域 바다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그 동안 죽자살자 일만 한것이 抑鬱(억울)하기만 했다. 또 그렇게 해서 쌓아올린 사회적인 위치나 財産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런 희망도 기약할 수 없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江原道 산골에 살고 있는 이름 없는 한약방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는 막내딸로 부터 산속의 道人처럼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었다. '현대 의술로도 못 고치는 병을 일개 산골 韓醫가 어떻게?'라며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한번 만나 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병을 고치겠다는 것보다 일단은 갑갑한 병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안 된다는 婦人을 졸라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어떤 환자라도 오랫동안 病床에 누워 있게 되면 각종 염증이 생긴다. 몸의 면역 기능과 근육의 힘도 떨어져 결국에는 병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환자가 寢臺(침대)에 누워 있을 경우 젊은 사람은 하루에 1.5% 정도의 근육 힘이 떨어지고 노약자는 5% 가량 떨어지므로 열흘만 병상에 누워 있어도 몸의 기운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유럽 최고의 명예인 유럽 의학아카데미 위원을 역임했으며 肝膽膵(간, 쓸개, 췌장) 외구 부분에서 '아버지'로 불리는 스웨덴 룬드 醫大 외과의 벵마르크 교수는 "寢臺는 병을 고칠 수 없다. 환자들을 病床에 가두어둔 것이 서양 의학의 가장 큰 失手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첫눈에도 상태가 매우 심각한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昏睡狀態가 심해 나와 마주 앉아 있는 짧은 시간에도 수시로 혼절했으며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수전증까지 겹쳐 혼자서는 食事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는 부인이 診脈을 짚어 달라고 남편의 손을 내게 내밀었을 때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 대신 부인을 진맥했다. 부인 역시 梅核氣(매핵기)라는 신경성 질환을 십여 년 이상 앓아 왔다. 좋다는 약은 다 써 봤지만 늘 그 모양이라고 했다. 몇 군데 指壓을 하고 약 한 첩을 지어 주면서 그냥 돌아가게 했다.
독자들은 내가 왜 급한 환자는 진맥도 하지 않은채 부인을 진맥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計算된 행동이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의 '유리 동물원(琉璃 안에 갇혀 살듯 살아가는 도시인의 생활은 動物園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電光板에는 '병이 나면 반드시 누워 정양하거나 약을 먹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씌어 있고, 특히 간경병에 걸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치료에 앞서 朴 사장의 그 같은 偶像부터 부숴야 했다. 병을 오래 앓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일수록 醫師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천리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지만 '설마, 당신같은 이름 없는 산골의 韓醫가 내노라하는 유명 의사도 못 고친 병을 고치겠느냐?'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한 手 보여 준 것이다. 다음 날 꼭두새벽에 두 부부는 다시 찾아와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했다. 10여 년 이상을 苦生한 부인의 병이 약 한 첩으로 깨끗하게 치료되는 것을 밤새 확인한 결과였다.
나는 그에게 '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사는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뒤, 이제부터는 아무 飮食이나 좋다고 했다. 그는 나한테 모든 것을 맡긴다고 했으면서도 막상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하자 머뭇거렸다. 하기야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음식을 골라 먹어도 효과가 없었는데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질병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糖尿病은 식이요법을 최고로 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음식 궁합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飮食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받아들여서 에너지化시키는 몸의 效率(효율)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먹은 만큼 運動을 해주면 어느 것을 먹어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힘들여 했던 식이요법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았으니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치료 방법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말에 따르게 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 특히 糖尿 患者들은 禁忌(금기)하는 음식이 많아 소나 염소처럼 풀만 먹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당뇨에 좋다는 飮食, 藥品, 健康法은 百科事典 분량만큼 많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설사 낫는다 해도 곧 再發하는 경우가 흔하다. 오히려 어떤 약도 먹지 않고 아무 음식이나 먹고 하루 종일 運動하면서 고치는 경우가 많다. 몇 년간에 걸쳐 해오던 치료 방법으로 건강이 好轉(호전)되지 않으면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患者들은 '유리 동물원'의 電光板에 씌어 있는 대로 계속 누워 약을 먹거나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계속 헤맨다.
朴 사장 부부는 방태산 자락에 있는 광욱의 집에 거처를 정했다. 그리고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생활 또한 혁명적으로 바뀌어 졌다. 수십 년간 3보 이상 걷지 않는게 습관처럼 되어 있어서 가까운 거리도 車 없이는 다니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매일같이 내린천 미산溪谷(계곡) 다리에 있는 광욱의 집에서 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개인산 藥水터까지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海拔(해발) 1,321미터인 개인산은 가을 丹楓이 빼어난 곳이다. 그리고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약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藥水터이다. 원래 이곳은 1970년대 중반까지 수백 년 된 주목나무, 박달나무, 전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찬 原始林이었는데 '경제개발'이란 이름 아래 귀중한 自然林이 거덜이 났다. 지금 남아 있는 몇 그루의 老巨樹(노거수)들은 목재나 땔감으로 전락할 운명이었으나 나무 베기 작업에 動員된 동네 靑年들이 약수터를 보호하기 위해 伐木 명단에서 제외시켜 그나마 현재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往復(왕복) 12킬로미터나 되는 험한 비탈길의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성한 사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길을 걷는 것은 이만저만 힘들 일이 아니다. 건강한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데 평생을 '自動車 監獄'에서 보내 죽을 氣力도 없는 50대의 朴 사장이 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길을 걷다가 혼절하기가 수십 차례였다. 나는 登山 案內人 역활을 겸한 광욱에게 朴 사장의 다리가 풀려 쓰러지면 부축하게 했다. 그리고 가열순환제를 한 봉지 먹게 하여 다리에 힘이 생기면 다시 山行을 계속하게 했다.
우리가 雪嶽山을 오를 때 대청봉 頂上 가까이 갈 때쯤이면 脫盡(탈진)하여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생긴다. 이때 초콜릿 한개를 먹거나 설탕물 한 잔을 마시면 생기가 나서 힘차게 계속해서 山行을 할 수 있다. 마라톤 선수는 골인 지점에 닿기 직전에 엄청나게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진다. 이때 珍羞盛饌을 먹으면 선수는 즉사한다. 하지만 간단히 설탕물 한잔을 마시면 원기를 회복하여 무난히 골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박 사장에게 먹인 가열순환제는 雪嶽山 등반인이 먹는 초콜릿, 마라톤 선수에게 준 설탕물 한 잔과 같은 효과가 있다. 人體에는 몸의 效率의 따라 珍羞盛饌이 '007살인 무기'로 둔갑할 수 있고 설탕물 한 잔이 '루드르 기적'의 生命水가 될 수있다.
걸으면 살수 있다는 신념
朴 사장은 십여 년간 매일매일 스스로 당뇨 테스트를 해 왔는데 山行을 시작한 지 一週日이 되는 날 糖尿 테스트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절제된 식사, 당뇨약으로 잡히지 않던 당뇨 수치가 무절제한 食事를 한지 一週日 만에 正常 數値가 되었단 것이다. 10년 넘게 고생한 당뇨를 무절제한 식사로 一週日 만에 잡은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흥분했다. 누워 있으면 죽고 걸어 다니면 산다는 信念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기쁜 것은 당연하다.
그는 그 동안 運動은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으면서 치료를 했으므로 식이요법이나 약물요법 등이 모두 毒으로 作用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약을 먹는 대신 심한 運動을 했기 때문에 糖尿病이 간단하게 치료된 것이다. 이곳의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도 한몫 거들고 朴 사장의 죽어도 좋다는 覺悟와 마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그의 건강이 계속 上昇勢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온 탓에 診脈도 못할 정도의 無脈症이었다. 또 몸이 워낙 휘진 상태라 藥을 쓰는데 勞心焦思했다.
우선 氣를 補하는 약으로 가열순환제를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다리가 풀려서 쓰러지면 먹고 다시 일어나 걷게 했다. 무리한 山行으로 昏睡狀態가 자주 오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갈 뻔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으나 그는 '죽어도 산속을 걷다가 죽겠다'고 끝까지 버텼다. '산길을 가다가 죽겠다' '염라대왕도 까불면 죽이겠다'는 독한 마음은 어떤 극한 상황도 극복할 精神力을 주었다. 아마 몇 번 쓰러졌다고 포기했다면 그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당뇨를 잡았으니 肝硬變(간경변)을 때려잡자."
월드컵에 출전하는 蹴球 選手들처럼처럼 朴 사장과 그의 婦人, 광욱이와 나는 서로 손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6개월 후 그는 하루에 광욱이 집에서 약수터까지 往復 12킬로미터, 광욱의 집에서 내 약방까지 왕복 26킬로미터, 도합 38킬로미터를 옆집 마실 가듯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 100리의 산길을 힘들이지 않고 즐겁게 걸어 다닐 수 있다면 그는 그 어떤 不治病에 걸렸다 해도 건강한 사람이다.
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침대에만 누워 있으면 하루 1.5퍼센트의 氣力이 떨어져 70일이면 송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일지라도 山을 걷기만 한다면 살아날 希望이 있다는 것을 朴 사장은 行動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