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국선도의 原理(국선도1)
제1절 宇宙
제2절 人間
제3절 인간과 우주
제4절 우주론과 국선도
인간이 營爲(영위)하는 행동체계에는 반드시 몇 가지 기본적인 요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로 유리한 目的이요, 둘 째는 유리한 方法이요, 셋째는 유리한 原理라고 본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구비되었을 때 그 행위는 가치 있는 유리한 행위가 된다.
그러나 우리 인간사회에는 그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지 않아도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즉 삼(三)의 조건인 原理에 있어 합리적인 이론을 완전히 구명하지는 못하여도 그 목적이 유리하고 그 방법이 유리하여 좋은 결과가 나와 그 결과가 유리하면 그 가치성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인삼과 녹용의 가치를 否認(부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험과 체득으로 얻은 방법으로 유리한 결과가 있을 때는 반드시 어떠한 합리성이 있을것이나 인간은 아직 자연의 원리를 다 解明할 능력이없다. 더욱이 인간의 생존에 대한 신비성은 현대과학으로도 완전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국선도의 원리는 우주와 인간의 生態的인 원리에 속하는 것이므로 현대의 인간두뇌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원리에 대한 해결방법은 대개 세 가지 방면이 있다. 道學的 견해, 哲學的 견해, 科學的 견해다. 국선도의 원리는 아직까지 자연과학적 견지에서는 해명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국선도는 종교적 입장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말하지면 동양 자연학적 견지에 근거를 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易理나 韓醫學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국선도에서 설명하는 단학 또는 단리의 원리에 접근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역학이나 한의학이나 단학은 결코 서구적인 과학이나 철학으로는 이해되지 아니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방전래의 철학이요 과학인 까닭이다. 서구철학 또는 과학에만 젖어 있는 머리[思考方式]로서는 동양적 철학 과학 자연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국선도를 이해하는 길은 분석이나 논리보다도 우주나 인간을 종합적이요 전체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모든 생태를 그대로 직관 또는 즉관하는 사고방식에 치중하는데 있다. 이러한 입장[思考方式]에서 국선도의 원리에 접근해보기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인간은 利(이)를 따르고 있으므로 목적이 유리하고 방법이 쉽고 간단하여 유리하고 그 결과가 극치적 체력과 정신력과 그리고 극치적 道力과 德力을 얻을 수 있어 유리하다면 비록 그 원리가 동양 자연학적이라 하여 有利點을 해득키 어려워도 한번 修練의 체험을 쌓아 이득을 보아야 하겠다는 督智性(독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우주와 인간관계의 원리로서 국선도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저 한다.
제1절 宇宙
우주본질에 대한 문제는 물리학적 인식론에 속한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원소를 성립시키는 물질을 素粒子群(소립자군)으로 想定(상정)한다.
그리고 그 소립자의 근원적인 것을 우주질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우주질은 모든 물질 구조의 근본이 되는 素粒子源(소립자원)이 된다고 봐야 한다.
여기 우주질이라 함은 질과 양으로 물질이 형성되어 소립자가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로서 하나의 철학적 가정이다.
동양학에서 말하는 無極 또는 太極의 사상과 같은 표현이다.
우주에는 物體的 현상으로 나타나기 이전에는 절대 無의 우주가 아니라 우주질이라는 것으로 充溢(충일)되어 있었다고 보며 그 우주질은 현재도 우주내에 충만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은 이 우주질로 생성되고 다시 사멸하여 우주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은 이런 정도밖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으나 더 깊이 구명하고 수도하여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좀더 이해에 접근하기 위하여 과학적 변증의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면 이 우주를 현상적으로 관찰할 때 우주는 時間的 현상, 空間的 현상, 力量的 현상, 運動的 현상, 變化的 현상의 5대 기본현상으로 인식되어 진다.
그리고 소립자군의 근원인 우주질은 현상학적 방법에 의하여 구명해 본다면 다같이 그 5대 현상인 時, 空, 力, 動, 變으로 다 각기 그 나름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동일한 질적 현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동일적인 현상으로 발현 전개되는 우주질은 이 우주라는 통일된 장[공간]에서 어떠한 시점[時間]인 존재가 될 때 그 존재[物質]는 다시 동적 존재도 되며 그것은 熱과 光과 音의 파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또한 역학적 존재인 힘의 작용으로서 원자, 전기, 자기로 나타나며 나아가 細胞, 生命, 動物 등의 창조적 세계가 전개된다.
한편으로는 태양계, 은하계, 성운계, 대우주적인 존재현상을 이루어 놓게 된다.
이 우주는 우주질로 가득 차 있고 우주질로 차 있는 우주는 음극과 양극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자장인 동시에 이 자장은 좌우[陰陽] 회전을 하고 있다.
이것이 다름아닌 우주의 통일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이 거처해 있는 태양계 우주와 은하계 우주는 한결같이 좌선성의 대회전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우선성의 대회전 운동을 하고 있는 또다른 대우주가 태양계와 은하계의 다른 쪽에 존재함으러써 이 두 거대한 우주도 역시 음양으로 통일되어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음양 양성의 회전통일 운동은 우주질의 세계에서부터 모든 대소물질과 물체에 이르기 까지의 운동 원칙이며 생성과 사멸의 원칙일뿐아니라 이 운동은 그 물질과 물체내에서 이루어지면서 이 음양운동을 하는 대우주는 또 다른 대우주와 좌우회전을 달리하는 음양작용을 함으로써 서로 존재를 지속하여 가는 것이다.
우리 태양계에서 본다면 모든 존재는 미소우주인 원자적 세계로부터, 원소군의 세계로부터, 거대한 우주인 지구는 물론 거대한 태양계우주, 은하계우주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운동과 생성의 법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주내의 모든 존재의 본질은 근원적으로 우주질이라는 동일질이다.
모든 생성변화의 현상은 時, 空, 力, 動, 變이라는 동일법칙으로 발현전개 되고 있다.
그 생성변화의 작용은 우주통일장내의 음양회전 운동에 의한 동일형태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물은 다 동일하게 우주는 宇宙質로 차 있고 우주질의 음양원리로 생성하는 아들이다.
제2절 人間
우주적 생성의 원리를 종교나 철학적으로 이해에 접근할 수도 없지 않으나 모든 사람에게 상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자연과학적 변증을 시도해본 데 불과하다.
그러나 우주의 생성원리는 인간 지능으로서는 아직 접근할 수 없는 神祕 속에 싸여 있으므로 그 원리를 다 구명해내는 일은 칸트의 말을 빌려 보지 않아도 우리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우주는 현시점에서 볼때 호화찬란한 配布(배포)를 벌려 놓고 있다.
그러나 무한한 공간, 무한한 시간 안에서 무궁무진한 우주질이 변화무쌍한 조화를 부리고 있으니 그 생성 사멸과 사멸 생성이 거듭하는 동안 어떠한 배포가 다시금 일어날는지 추측키 어렵다.
그러나 현시점을 그어놓고 볼 때 이 우주 안에는 하나의 놀랄만한 기적이 일어나 있다.
그것은 月世界를 왕래하는 로케트의 출현도 아니요, 원자폭탄의 출현도 아니요, 레이다의 출현도 아니다. 그것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인간의 頭腦인 것이다.
이 인간이라는 고급동물의 출현이야말로 우주 생활과정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우주는 무[質]에서 유[質量(질량)]로 一에서 多로 小에서 大로 無機에서 有機로 발전하는 중에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발전하였으며 따라서 下等에서 高等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인간이라는 최고등 동물로의 비약이 있었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두뇌의 新皮質(신피질)의 특수발달인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예지적 사고가 있어 이것으로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면서 자연을 지배하는 우주의 주인공, 우주의 왕자로 스스로 군림하게 된것이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물은 자연 그 자체에 불과한 것으로서 우주의 分身이다. 우주의 생성사멸의 원칙이 그 만물에서 스스로 그대로 변화작용 되고 있으므로 기계적으로 법칙적으로 스스로(自) 그렇게(然)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라 한 것이며 그것이 우주의 질서요, 만물은 그 대우주의 질서를 反할 수도 逆할 수도 없는 物理현상이요 生理현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생리현상은 비록 동물과 다름이 없는 자연현상 그대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다른 모든 물질이나 물체나 또는 생물이나 식물이나 동물이 소유하지 않는 豫知性(예지성)이 있어 모든 자연계의 원리를 파악하며 그 원리를 이용함으로써, 인간은 인간적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제2의 창조주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적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여러 가지 창조직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 활동의 모습을 대개 두 가지 방향으로 구분하여도 무방하다.
하나는 자연, 그 자연을 주물러 다르는 일이다. 이러한 외향적인 자연과학적인 탐색과 창조의 일과는 달리 내향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인생 문제가 그 둘째 일이다.
그 중에도 고급적인 일은 철학문제 혹은 종교, 도덕문제들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특이한 취향을 가진 道가 있으니 이것이 지금부터 해설하려는 國仙道이다.
이 국선도가 해결하려는 대상은 신과 인간, 영과 인간, 선과 인간, 미와 인간, 진과 인간 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그 自體의 生命과 健康問題를 도법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건강한 생명이 있은 후에 모든 문제가 문제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요약해 말하면 국선도는 인간의 실존적 생명 그 자체의 최대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도법인 동시 아울러 도덕적 인경의 기본자세를 확립코저 하는 도법인 것이다.
이 도법의 원리를 해명하기 위하여 前節(전절)에 우주의 본질과 그 생성원리를 간단히 언급하여 두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라는 소존재는 우주라는 대존재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음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즉 인간은 소우주다.
이 소우주는 그 대우주와 동질적인 존재인 동시에 지능이 발달하여 대우주의 王者로 군림하고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밝히고자 함이다.
인간은 지능은 모든 방면에서 그 왕자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거니와 인간적 자체의 생명적 존재에 대하여도 우주생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초인간적 체력과 도력을 성취해 내는 것이 국선도이다.
이 국선도의 원리는 곧 정기신 삼단 단전호흡법의 응용이다. 이제 이 法을 좀 더 자세히 해설해 본다.
제3절 인간과 우주
우주생성의 본체를 宇宙素라 했고 그 우주의 변화로 만물이 생성되었으며 인간도 만물과 더불어 생성된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우주만상은 어느 것이나 막론하고 同一質에서 나온 變化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독 인간만은 비약적인 발달을 한 동물로서 그 생명체는 자연법칙에 의하여 생성되고 사멸되는 인과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나 그 특수하게 발달한 지능적 정신은 기계적으로 자연적 질서에 순응할 수만 없는 자유의지를 갖는 것이다.
인간은 知能과 自由를 구사하여 자연의 법리를 알아내고 그 법리를 이용하고 인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자연을 지배하며 인간적 문화의 세계와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의 반역자일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은 인간의 生活場이요, 인간의 소유물이요 인간의 영토인 것이다.
發生的 입장에서 보면 우주와 인간의 관계이지만 현재 주체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 중심으로 우주를 다루어야 한다.
다시말하면 인간은 우주의 아들이나 지금의 인간은 우주의 왕자요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
히말라야山 에베레스트峰(봉)도 인간의 영토이므로 올라가봐야 하겠고 월세계나 火星 세계도 인간의 영토이므로 올라가 봐야 되겠다.
뿐만 아니라 素粒子의 적은 세계도 인간의 영토이므로 들어가 봐야 하고 원자핵이라는 작은 세계속의 비밀도 자세히 알아 봐야 하겠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인간 두뇌의 신피질이 좀더 발달하든가 또는 그 발달로 인하여 지능지수가 더 올라가 2백 3백에 달하는 인간이 많이 나든가 하여 과학적 지식이 더 발달하지 않으면 자연법칙의 그 모든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구명할 수 없으며 또한 정말 필요한 인간적 문화의 창조도 많이 할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자연의 법칙은 너무나 신비하여 인간의 지능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많으나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不知其數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대할 때 그저 '神奇하다' 하는 감탄사만 연발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입에서 신기하다는 말이 없어지고 '당연한 것이다' 하고 무엇이나 논증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야말로 우주의 참된 주인이 되었다고 자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우주에 대하여 세심하게 관찰하게 계속하고 있으며 깊이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크고 너무 작아도 관찰하기 힘들고 그리고 그 크고 작은 물체들의 작용도 극히 미묘하여 탐색해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관련되어 그야말로 신비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인 우주를 古人들은 無外라 표현한 말이그럴듯 하다. 외곽이 없다는 말처럼 무한대를 설명한 말은 없다.
현재 인간의 시야는 십억광년의 먼 거리까지 도달 되어 있다.
또 극히 미시적인 것을 고인은 無內라 표현했거니와 속이 없는 물체라면 그럴듯한 무한소의 세계에 대한 표현이 될것이다.
현재 인간의 시야는 1cm의 십조억분지일도 못 되는 원자핵 내의 소우주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작은 세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런 정도의 지능으로도 어느 정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나 아직 앞길이 요원하다.
인간은 알아낸 것도 많으나 모르는 것도 더 많다. 과학자라하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기보다 모르는 것의 장벽을 뚫어 보려고 하는 探索者(탐색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학자는 우주 앞에 겸허한 태도를 가진다.
우리도 이 謙虛(겸허)한 태도로 국선도 수련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작은 생명체내에서 그야말로 초인간적인 힘이 일어나는 현상을 目睹(목도)할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신기하다. 이 신기의 현상 앞에 우리는 겸허한 태도로 그 힘을 받아들이고 그 원리에 접근해 보려고 노력해볼 수밖에 없다.
아직 인간의 지능으로는 그것을 논증할 수 없다. 그 현상은 인간지능이 미치지 못하는 원리에서 작용되는 현상인 것이다. 현상이 있음은 원리가 있다는 것의 입증이다.
精氣神의 단법기초는 단전호흡에 있다.
맑은 공기중에 있는 산소가 肺內로 깊이 들어가 철의 성분을 가진 적혈구를 만나 산화철의 작용으로 정결한 피가 되어 그때 탄소가 분리됨으로써 일어나는 열이 에너지가 되어 생명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작용이 활발하게 될 때 전신적인 활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단법원리가 그것만인지는 모른다. 인간은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 얻은 단법의 방법에는 우리가 아직 논증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기한 작용이 첨가될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주위의 이 우주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힘이 차 있다. 이 힘들은 모든 물체에 작용하고 있다.
우주는 磁氣力의 磁場이요 만유인력의 力場이요 宇宙線의 光場이요 전기력의 電場이나 우주에는 물체로 차 있다고도 볼 수 있고 그 물체는 다 소립자의 집합체요 소립자들은 운동하고 있으며 그 운동은 力의 작용에서 오는 것이라면 우주는 힘으로 차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힘은 반드시 陰과 陽의 선회운동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므로 음양을 중요시하는 동양사상에도 일리가 없지 않으며 소립자가 형체를 이루어 92원소(현재 100개이상) 가되었으나 동양에서는 金木水火土 다섯종류로 분류하여 오행을 말하여 음양오행설을 초안으로 하는 우주생성론은 비록 소박한 철학이나 원리에 있어서는 다른 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단법으로 일어나는 인체의 생리적 현상 그 초상식적 초인간적 힘의 원천은 단순히 강력한 적혈구의 작용일까?
그렇지 않으면 우주 안에 차고 넘쳐 있는 미지의 힘과의 연락된 작용일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은 독립된 존재로 관찰할 때는 너무나도 초인간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곤란한 바가 있다.
무엇인가 인간 생명력의 볼트를 높여주는 힘의 원천이 없을 수 없으니 우리는 이것을 東洋 사상의 용어로 道力이라 해본다.
우리 인간은 이 도력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역사속에 그 도력의 현상이 많이 나타나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 도력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다. 혹은 體力으로, 혹은 智力으로, 혹은 才能(재능)으로, 혹은 創意力으로, 혹은 德力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도력은 보통 이상의 힘과 능력이다. 그리고 이 도력은 거의 예외없이 수련의 결과로 얻어진다는데 일치한다. 혹 예외가 있는듯이 보이나 남이 모르는 가운데 반드시 어떤 修練(수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道에 통하여 도력에 얻은 원리를 말할 때에는 언제나 自力과 他力(타력)의 융합을 말한다.
범아일여, 신인합일, 천인묘합이니 하여 우주와 인간이 혹은 영적으로, 혹은 생명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상입상즉적인 융합이 일치될 때 도에 통하고 따라서 도력을 얻게된 것이니 도에 통하고도 도의 力을 얻지 못한 者는 거의 없으리만치 도에는 힘이 따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주의 본질적인 소립자원은 분산이합의 작용으로 적은 물체로부터 대물질에 이르기가지, 미생물에서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생성작용을 하고 있거니와 그 작용은 특히 인간의 정신작용과 융합하여 제1차적인 자연적 현상이 아닌 제2차적인 초자연적인 작용을 할수 있다는 推理(추리)는 결코 무리한 추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제4절 우주론과 국선도
우주 자연계는 因果的 法則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들은 다만 寒暑溫冷의 영향에 의하여 생장소멸의 규칙적 반복을 되풀이 하는 것뿐이고, 개별적인 자기의지는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 정신계는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것도 절대적 요건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의지 즉 장신작용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생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나 동물은 육체와 정신의 이대형상으로서 生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상을 보유하고 생활하는 사람이나 동물은 끊임없이 形과 像사이에 모순과 대립을 나타내면서 자기를 보존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육체와 정신의 공동체적 사회생활이다.
그런데 이러한 육체와 정신의 공동생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감정과 욕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나 동물이 육체와 정신의 이원적 조직체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여기에서는 욕심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란 私慾의 主體이므로 無慾인 精神에 항상 도전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욕심은 목적의 원인이 되고 목적은 욕심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런즉 자연계는 형상이 구존하지 못하므로 단순히 기계적 운동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계는 기계적으로 정신계는 목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인과율과 목적율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전일개념이면서 다만 적용되는 대상에 차이가 있는 데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나 동물은 형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과율과 목적율이 병행되는 것이고, 자연계는 형체만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과율만이 적용되는 것이다. 혹자는 자연계는 생명을 인정하는 한 약간의 정신이라도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정신인 像이 형체인 體와 서로 대립할 만한 실력이 없을 때에 그것은 동물이 될 수 없으므로 즉 神機가 아니므로 욕심이 生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선도 수도에 있어 無慾인 정신은 통일적 작용을 하고 有慾인 육체는 동작과 正息을 하므로 사욕을 大慾 또는 公慾으로 바꾸는 고행을 하는 것이다.
사욕은 몸과 마음을 손상케 하고 대욕과 공욕은 몸을 보전 양생케 하는 것이다.
제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