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 기타에 대해서'(길희성)
'마하트마(위대한 영혼)' 간디는 英國 유학 시절 에드윈 아놀드 경의 '바가바드기타' 영문 번역서'The Song Celestial'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이 고전을 平生 자기 삶의 확고한 指針書로 삼았다.
''기타'는 나의 行動의 틀림없는 안내자가 되었으며, 모르는 영어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듯이 나는 나의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이 行動의 사전을 찾아보았다.'라고 간디는 그의 自敍傳(자서전)에서 告白하고 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산상수훈에서조차 얻을 수 없는 慰勞(위로)를 '바가바드기타'에서 發見한다. 실망이 나를 직시할 때, 그리고 외로이 한 줄기 빛도 보지 못할 때, 나는 '바가바다기타'로 돌아간다.
나는 이 구절 저 구절을 찾아보며, 나를 압도하는 비극들- 나의 삶은 외적 위기들로 가득차 왔다- 속에서도 즉시 微笑(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 비극들이 나에게 눈에 보이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 덕택이다.'
'바가바드기타'는 文字 그대로 '존귀한 자(bhagavat)의 노래(gita)'라는 뜻으로 '존귀한 자' 혹은 '지존'은 힌두교에서 가장 친근한 대중적 신앙의 대상인 비슈누(Visnu)의 화신(avatara)으로 간주되는 크리슈나(Krsna)를 가리키며, '노래'는 그의 가르침을 比喩(비유)하는 말이다.
文獻(문헌)으로서의 '기타'는 본래 引渡(인도)의 유명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제6권 '비스마파르반(Bhismparvan)'에 속해 있다. '기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대서사詩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大綱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스티나푸라(Hastinapura)에 자리 잡은 쿠루(Kuru) 족의 王權은 드르타라슈트라(Dhrtarastra)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그는 장님이었고 쿠루 족 관례에 따라 통치자가 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동생 판두(Pandu)가 王이 될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판두는 저주를 받아 곧 王國을 포기하고 드르타라슈트라를 왕좌에 남겨둔 채 그의 두 아내와 함께 은둔자로서 히말라야에 隱居(은거)했다. 판두가 죽었을 때 그의 다섯 아들, 즉 유디스트라(Yudhistira), 비마(Bhima), 아르주나(Arjuna), 나쿨라(Nakula), 그리고 사하데바(Sahadeva)는 아직 어렸다.
따라서 그들은 드르타라슈트라의 아들 100명과 함께 敎育(교육)을 받기 위해 하스티나푸라로 되돌려 보내졌다. 유디스티라가 성년이 되었을 때 그는 정식 후계자(법적 상속자)로 책봉되었다. 드르트라슈트라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장님이었고 그의 통치가 임시적이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왕권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남 두료다나의 주도 아래 판두의 아들 兄弟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해칠 음모를 꾸몄다. 5형제는 生命을 위협하는 수많은 음모를 모면한 후 나라를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들은 풍운아로 이곳저곳 王들의 궁궐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판칠라족의 王이 있는 궁궐에서 남편 선택 大會가 열리자 셋째인 아르주나가 대회에서 드라우파디(Draupadi)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드라우파디는 다툼을 피하기 위해 5형제 모두의 妻(처)가 되었다.
그곳에서 5兄弟는 그들의 위대한 親舊이자 助力者인 야다바(Yadava)족의 족장 크리슈나를 만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장님인 드르타라슈트라는 곧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자신은 왕좌에서 물러나 5형제는 현제의 델리(Delhi)에서 멀지 않은 인드라프라스타에 새로운 都邑(도읍)을 세웠다.
그러나 드르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은 이러한 해결에 만족하지 않았다. 두료다나의 삼촌인 샤쿠니는 주사위 놀이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어서 두료다나는 그의 도움으로 유디스타라로 부터 그의 兄弟들과 그들의 공통 妻를 포함한 全 王國을 얻게 되었다.
결국 타협이 이루어져 5형제와 드라우파디는 13년 동안 추방되어 살되 마지막 해에는 신분을 숨기고 지낸다는 데 동의했다. 이후 그들은 그들의 王國을 돌려받기로 되어 있었다.
13년이 지나자 그들은 두료다나에게 자기들의 신분을 밝히고 약속에 따라 王國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두료다나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5兄弟는 전쟁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인도의 王들 가운데 친구가 많았으므로 함께 거대한 군대를 모을 수 있었다. 한편 쿠루왕가(두료다나와 그의 형제들)도 군사력을 정비했다.
전 인도의 왕들, 심지어 그리스 인, 박트리아 인, 중국인까지도 이쪽이나 저쪽 편을 들어 두 거대한 군대가 쿠루 평원에 집결하게 되었다. 18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드디어 전투는 막을 내리고 5형제와 크리슈나 외에 이렇다 할 만한 족장은 한 사람도 살아살아남지 못했다. 유디스티라는 王位(왕위)에 올라 그와 그의 형제들은 수년 동안 平和롭고 榮華(영화)롭게 통치했다.
유디스티라는 왕좌에서 물러나 아르주나의 손자 카리크시트(Pariksit)를 자리에 앉혔다. 5형제는 그들의 공동 처와 함께 도보로 히말라야로 떠나 그곳에서 수미산에 올라 神들의 都市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