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다리 벌리고 몸 흔들기
동작설명- 늘 '이것을 하기 위해 앞의 동작을 한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각별히 여기는 동작이다. 단지 몸을 양옆으로 활기차게 흔들기만 하면 되는데,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린 채로 양손은 뒷짐을 쥐고 한다. 처음에는 20번 가량도 힘들지만 숙달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50번도 괜찮다. 다리 벌리고 몸을 흔들 동안에도 무릎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다리 역시 조금씩 더 벌어지게 된다.
별스럽지 않은 듯한 동작이지만 효과는 놀랍다. 처음 따라하고도 이튿날에는 어김없이 감탄 섞인 음성으로 그 효과를 알려온다. 스스로 얻은 이익이 그런데 말린들 누가 하지 않겠는가? 재미를 붙인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하였고, 모두들 경이로운 결과에 만족해했다. 이런 일을 지켜보신 큰스님은 한 분은 '스님에게 마우래도 남모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여러 지방의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비디오테이프에 의존해서 수련한 결과는 똑같았다. 이렇게 알려지기 시작한 몇 동작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널리 전파되었다. 대체로 이것만 할 때, 세번 가량 순환 반복하면 20분 내지 30분 가량 소요된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이익은 천만금의 보배로도 비할 바가 아니다.
두 다리 뻗고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부담 없이 어디에서든 할 수 있어서 스님들도 이 동작을 꽤 좋아한다. 특히 수행에 여념이 없어서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은 수좌 스님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내게 깊은 사연이 없는 자세는 하나도 없지만 특히 이 몸 흔들기는 감회가 서린 동작이다. 군대에서 사격술 훈련을 받을 때면 총을 엎드려 쏘는 자세에서는 반드시 다리를 활짝 벌려야 자세가 안정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뻣뻣한 다리는 티를 냈다. 믿기 어렵겠지만 어깨 넓이만 벌려도 가랑이가 찢어질 듯 아팠다. 도무지 그 고통은 지금도 형용불가이다. 그런데 입산 출가해서도 끝내 애를 먹었다. 가부좌는 커녕 그냥 앉기도 힘들었고, 이 몸 흔들기를 하고파도 어깨 넓이가 고작이어서 제대로 흔들 수 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겨우 몸을 가눌 수 있는 아기부터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까지 많은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덕분에 신체의 유연성이 꼭 남녀나 노소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주 빨리 다리를 멋지게 벌린 사람은 1개월도 채 안 걸렸고, 길어도 2년 남짓한데 대체로 3~6개월이면 조기 좋을 만큼 벌릴 수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2년 걸려 벌린 각도가 종이 장판 모통이에 딱 맞는 데 불과했다. 가장 큰 불행이 만족을 모르는 것이눚ㄹ 알면서도 20년 벌리고 벌린 다리가 아직고 그저 그런 수준이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확실한 변화는 분명히 있다. 그때는 넓적다리 안쪽에 팔뚝보다 더 굵고 단단해서 꼭 뼈로 착각되기 알맞은 것이 만져졌었는데, 지금은 주간지 한 권의 두께밖에 안 될 정도로 얇아졌으니 천지가 개벽한 셈이다.
실제로 몇몇 사람에게는 다리를 벌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런 다리를 좀더 유연하게 하는 방법으로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몸을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흔들려면 우선 다리를 벌려야 가능하다. 신체가 뻣뻣한 사람들은 대개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허리부터 착 꼬부라진다. 정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허리는 되도록 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상체를 흔들면 된다. 꼭 다리를 최대한 벌리고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동작이지만 복부에 강력한 압력이 생기므로 오장육부가 자극을 받아 활기를 되찾는다. 또한 자율 신경 계통에도 영향이 미쳐, 깨졌던 인체의 조화와 균형감각이 회복되어 일상에서 느끼던 불쾌감 따위를 사라지게 한다. 내장의 자연스런 마찰력은 장청소를 시원하게 해서 숙변을 배출하는 효과가 대단하다. 그럼으로써 오래된 노폐물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던 유해가스의 근원지는 소멸되고, 무익한 기생충과 세균들도 그 서식지를 잃게 됨은 물론이다.
흔드는 동작이 전신 조직에 확장과 수축, 긴장과 이완 등의 운동력을 증가시키므로, 신진대사를 도와 세포마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피부로 하여금 항상 싱싱한 탈력감을 잃지 않게 한다. 당연히 노화현상은 현저히 둔화된다. 또한 어께부터 등과 배, 허리와 다리에 이르기까지 굳고 긴장된 근육은 이완시키고 지나치게 풀어진 근육은 적당히 단련햇 균형 있는 몸매로 가꿔주며, 근력이 강화되어 힘든 노동에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여준다. 하지만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에겐 고역스럽기 그지없으나 열심히 하다보면 힘도 붙고 금방 자세가 좋아진다. 어느덧 50번 정도를 거뜬히 할만하면 예전과 달리 쉽게 지치거나 피로를 느끼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인체의 기둥인 척추의 이상을 무리 없이 교정하거나 회복시키기까지 하므로, 그 효과를 이처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한참 동안 각기 다른 사연을 들고 와서 조언을 구하더라도 어김없이 이 동작만 가르쳐 보냈다. 언젠가 두 중연 부인이 함께 찾아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전화선을 타고 전해진 소식은 불면증에 시달리던 부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는 것이었고, 아주 바싹 여위었던 부인은 자기 생전에 병기를 그처럼 가득 채우기는 처음이었는데, 뱃속 어디에 그런 것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색깔이 탁하고 냄새가 지독했노라며 수다를 떨었다. 사실 참선요가교실에서는 언제부턴가 그런 일은 화젯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날마다 듣는 말이니 신통할 까닭도 없었기 때문이다.
효혐에 대해 별로 확신도 없어서 마지못해서 한두 가지씩 일러주던 무렵의 일이다. 한 부부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이런 운동법이 있는데 한번 해보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권했다. 운동법과 인연이 있었는지, 곧 오랜 지병이 확실히 개선되었다며 고마워했다.
그리고 두어 해쯤 지났을 때 장모님이 별세하셨다. 깔끔하신 성격 탓에 피붙이들이 지척에 있었으나 먼저 가신 영감님과 평생을 지내셨던 초라한 농가에서 여생을 보내시다가 임종을 맞으셨다. 평 반 남짓한 방에 시신을 모시고 향로 초대 등ㅇ의 제기를 벌려 놓으니, 겨우 문상객 한 사람이 엎드려 절하기도 비좁았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서 철이 다 난 사위와 딸 자식이 희안한 짓을 날마다 한 것이다. 그 비좁은 방에서 사위와 따님이 날마다 한 일은 바로 참선요가였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수십 리 밖에서 전해 들으신 분의 귀뜸으로 안 일이다.
그때 바깥 분은 사십 중반이었는데, 연례행사처럼 매년 디스크 증세로 두어 달씩 심한 고초를 겪었다. 발목도 시원치 않아서 내내 절뚝거리며 지냈는데, 이 동작을 익히고 나서 확실히 완치가 되었으니 이미 믿음이 견고했던 까닭에 생긴 일이었다. 그 훨씬 뒤에 하시는 말씀이 '스님, 이 나이에 제 배만한 사람은 목욕탕에서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군대 간 아들녀석보다 제가 훨씬 날씬합니다.' 했다.
옆에 있던 부인도 예전엔 올챙이처럼 배만 볼록하여 이웃 보기가 영 민망했노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하여간 이 두 내외는 시간만 있으면 몸을 좌우로 흔들어댔다고 했다. 텔레비젼을 보면서도 흔들고, 밥상차리는 시간에도 흔들고, 이부자리 위에서도 흔들어 댔단다. 엄마 아빠가 그러니 집안 식구 모두가 흔드는 것이 일이었다.
역시 그 무렵이었다. 대체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근력이 유달리 약한 듯싶은데, 피아노를 전공한 아낙이 그러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몸이 워낙 쇠약하여 임신에 어려움이 있다기에 이미 몇 동작을 가르쳐주었다. 항상 체기를 달고 있어서 밀가루 음식은 손도 대지 못 했고 한여름에도 냉수 한 모금 마음놓고 마신 적이 없는데, 동작을 익힌 지 보름도 안 돼서 벌써 예전의 증상들이 말끔히 사라졌다며 희희낙락이다.
그 당시 내 토굴은 해발 900m가 넘는 아주 가파른 산 속에 있었다. 두어 달쯤 지났을 때 등산을 하자고 했더니 남편은 아내가 갈 수 없다며 기겁이다. 본인도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미 수련을 시작한지 제법 되었으므로 자신의 변화를 확인시키는 일도 무의미하지 않을 듯하여 억지를 써서 강행하였다. 아내는 학창 시절에도 소풍조차 가본 적이 없다며 몇 걸음 걷다말고 주저앉았다. 달래길 거듭해서 결국 산에 올랐는데,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단련된 자신감에 제법 앞장을 섰지만 하산 길엔 혼자 뒤쳐지고 말았다.
다음날 혹시나 해서 안부를 물었더니, 남편은 몸져누웠지만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며 명랑하게 떠들어댔다. 이런 뛰어난 효과는 누구만의 경험이 아니다. 다만 노력 여하에 달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