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창

 

1. 나는 지난 8년 동안 집근처의 카바티 숲을 걷고 또 걸었다. 8년 중 앞의 5년은 운동화를 신고 걸었고, 나머지 3년은 맨발로 걸었다. 필자에게 앞의 5년 동안의걸음은 단순히 숲을 걷는 즐거움이자 운동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3년의 걸음은 숲과 하나되고, 그 안의 생명체와 사랑을 나누며 행해지는 생명의 걸음이었다.

맨발로 숲길을 걸음은 대지와 자연 그리고 우주를 향한 구도의 걸음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의 넉넉함, 푸른 풀과 나무들의 향연, 노래하는 새들 , 싱그러운 공기와 푸른 하늘, 그 속에 선 맨발의 나, 그 모든 자연의 실존과 만나게 되는 맨발걷기 명상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숲길의 맨발걷기는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시키고 안정된 상태로 되돌린다. 거기에는 맑은 공기가 있고, 푸른 초목이 있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있다.

신발은 대지와의 만남 자체를 차단시킨다. 신발을 신고 걷게 되면 대지의 숨결과 대지의 울림을 느낄 수가 없다.

숲길을 맨발로 걸으면 하늘로 치솟던 모든 번뇌와 고통이 머리끝에서부터 서서히 발끝으로 내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감당하기 벅찼던 번뇌와 고통의 무거움이 서서히 발끝으로 빠져나가면서 해방감과 편안함을 얻게 된다.

 

 

2. 그 할머니는 '왜, 맨발로 걸으시죠?'

'우선 맨발로 걸으면 기분이 좋아요. 다양한 지표면에서 전해지는 맨발의 감촉 자체가 아주 상쾌하고 즐겁죠. 거기다 맨발로 걷는 것은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땅 위의 흙과 그 표면에 돌출 되어있는 작은 조약돌이나 나뭇가지, 솔방울 등이 맨발바닥에 리플렉솔로지와 같은 마사지 효과를 줘서 혈액순환을 활성화시켜 줍니다. 또 모든 내장과 장기들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만병의 근원적인 치유를 가능케해주는 자연의 지압이고 마사지입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지극히 자유로운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술길에서의 맨발걷기는 몸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시키고,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약속한다.

오늘날 현대인은 신발과 양말을 벗으면 대부분 창백한 발이 드러난다. 항시 축축한 땀과 습기에 젖어 힘이 없는 발, 무좀 등의 곰팡이에 노출되어 있는 발.

그 방식이나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지언정 신발은 맨발의 자유로움과 성장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또 건강한 맨발의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현대판 전족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미국의 족부 정형외과 의사 사무엘 슐만은 그의 연구논문 '신발을 신지 않고 사는 중국과 인도 사람등에 관한 연구'에서 신발이 인간의 발에 최대의 적이라고까지 보고하고 있다. '신발을 신지 않는 사람들은 발에 관한 질병이 거의 없다. 그들의 발 동작은 괄목할 정도로 크고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구두는 건강한 발에 필요치 않고, 질병의 원인이 될뿐이다. 신발은 발의 최대의 적이다.'

 

현대인들의 많은 질병들은 혈액순환만 원활하게 해주어도 상당부문 해결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옛말에 '하루 12번씩 맨발로 문턱을 디디고 넘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함의도 바로 맨발걷기와 혈액펌핑 기능의 활성화라는 기본 전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맨발로 걷자. 맨발로 문턱도 디디고 흙도 밟고, 자갈도 밟자. 그리하여 혈액을 힘차게 뿜어 올리자. 오늘날 혈액순환의 문재와 함께 야기되고 있는 여러 현대 문명병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비법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맨발걷기의 경이로운 치유효과도 이론적으로는 상기의 리플렉소로지와 다르지 않다. 맨발로 대지를 밟게 되면 자연적으로 지표면의 모래나 자갈, 나뭇가지 등의 다양한 물질들이 발바닥의 각 부위를 눌러주어 지압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맨발걷기에서 오는 또 다른 치유의 변화는 허리근육의 강화이다. 나는 과거에 허리가 약해 자칫하면 드러눕거나 침술과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지금은 큰 무리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병원의 예방의학과장 죠안 맨슨 박사는 '규칙적인 운동은 현대의학에 있어서 마법사나 다름없다. 하루에 30분 정도 활기 있게 걷기를 하면 만성질환의 30~40%가 줄어들 것이다.'

 

 

3. 걷는 동안, 발다박의 압점들과 상응하는 온몸의 기관에 힘차게 혈액이 공급된다. 대지의 기운과 에너지가 힘차게 전달된다. 이렇게 걷는 동안 대지는 대지대로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등을 두드리며 안마해 드리면 어머니께서 '아, 시원하다' 하시듯이 대지도 시원하다 할 것이다.

까치발로 걸으며 세상 복잡한 일들로 혼탁해진 머리를 씻어내 보라. 머리 속에 가득 찬 삶의 번뇌를 모두 풀어놓고 그 속에 숲의 맑은 기운을 채워 보라. 까치발 걸음은 또 사타구니의 근육과 허리의 힘을 강화시켜준다. 발가락으로 설 때 발생하는 힘의 부하와 근육의 작용은 바로 허벅지와 사타구니를 통해 곧바로 척추와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 남자들이 오줌을 눌 때 까치발을 하면 정력이 왕성해진다고 한 모양이다.

 

 

4. 맨발을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맨발로 사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단지 기분이 좋아요(just feel good)' 라고 먼저 답한다. 발바닥과 발 밑 물체들이 접촉에서 오는 즐거움이 그들을 맨발이게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숲길이나 맨땅을 걷자는 이야기는 불행하게도 현실성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처 학교들의 운동장을 찾으면 밟을 수 있는 맨땅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굵거나 미세한 모래들이 깔려있어 맨발의 지압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또 맨발로 운동장을 걸으며 탑돌이와 같은 사색도 실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맨발로 걷는 숲길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 중 참으로 귀한 나무가 소나무이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이라고 쓰고 있다. 애국가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노래할 정도이다.

오늘날 도토리는 인간이 식품제료 보다는 다람쥐 같은 야생동물의 먹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도 가을 숲의 도토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줍고 싶은 열매이다. 어릴적 돌로 참나무의 도토리를 따던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고대 인류로 부터 내려온 채취의 본능 때문일까.

 

도심에서 맨발걷기가 가능한 공간은 일부 근린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에 맨발로 나서라고 권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대지와 맨발의 생명교감과도 거리가 있을 뿐더라 리플렉솔로지 효과를 얻고자 하는 우리의 뜻과도 맞지 않는다. 딱딱하기만 한 길은 오히려 발의 피로감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집 근처 포장도로를 걷거나 산책할 경우에는 맨발에 발 지압용 슬리퍼를 착용하는 것이 신발을 신는 것보다 그나마 낫다. 양말을 신지 않아야 상쾌하게 걸을 수 있다. 지압용 슬리퍼는 특히 겨울철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때 맨발에 지압용 슬리퍼를 착용하고 걸으면 걷는 시간을 좀더 연장 시킬수 있다.

 

 

5. 간디는 그의 저서'맨발로 갠지스강을 걷다'에서 '인도에는 갠지스강 이외에도 많은 강이 있고 강이 흐르는 매 순간마다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강가를 맨발로 걸으면서, 말없이 사색에 잠겨 강이 우리에게 나직이 말하는 교훈을 들을 여유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초기불교시대에는 불상 대신 부처님의 평발을 불교의 상징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의 수행방법으로서의 맨발걷기는 이후 동남아 승가의 전통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는데, 오늘날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지의 사원에서 모든 수도승들이 맨발로 수행하고 있는 것과 사원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맨발을 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불가에서이 맨발수행은 석가모니 부처로 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수행의 방법이었고, 이는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두타행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예수는 그의 사도들을 보내면서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가방을 몸에 지니지 말고, 신발도 신지 말아라.'(눅:10,4)

성 프란시스는 가장 대표적인 맨발의 성인으로서 맨발수행을 행하는 수도회를 청설하였고, 그 스스로 그리스도의 삶의 자취를 따라 엄격하게 맨발걷기를 고집하였다.

수년전 우리나라에 왔던 거지성자 독일인 피터 노이야르. 그는 독일 쾰른 시의 한 호숫가 숲속에서 거주하면서 한겨울 눈밭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자연을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맨발을 통하여 땅의 정기를 받아들이고 교감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고 이야기한다.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일상생활에서 맨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맨발의 느낌과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 맨발 생활을 즐긴다. 그들이 가진 공통적인 믿음은 맨발로 걷는 것이 신발을 신는 것보다 편안하고, 발 건강에 더 유익할 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도 더 즐겁다는 것이다.

 

 

6.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맨발로 이슬이 영롱한 흙길이나 풀밭을 거닐고 그런 청신한 느낌으로 자연산 채소 등의 간소한 식사를 즐긴다면, 우리의 삶에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숲길 맨발걷기는 건강과 생명의 비답이다. 맨발걷기에는 오로지 신발을 벗는 즐거움과 상쾌함이 있을뿐이다. 어떤 고통도 따르지 않는다. 자연과의 합일에 이르는 경이로운 정신의 희열이 걷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잊게 해줄 것이다.

 

지난 수년간 필자가 맨발로 걸었던 폴란드 바르샤바의 카바티 숲에 나말고도 하나 둘 맨발로 걷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죠지, 안나, 카산푸르 씨가 모두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되었다. 그들은 맨발걷기의 즐거움에 놀라고, 육체적, 정신적 치유효과를 발견할 때마다 경탄해 마지 않는다.

맨발걷기에 관한 독일과 우리의 관심은 타국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바이오필리아는 바이오(생물)과 필리아(사랑)의 합성어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뭇 생명체와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본능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고이다. 놀라운 것은 그 숲을 신발을 신고 걸을 때 보다, 맨발로 걸을 때 더 온전한 자연과의 합일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숲길을 걸을 때 비로소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자연과의 본원적 일체감, 그로부터 시작되는 경이로운 치유효과를 나는 맨발필리아라고 규정한다. 21세기 문명사회의 병폐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해법으로 삼고자 한다. 맨발필리아는 맨발barefoot에 대한 사랑philia이기도 하고, 오래 전 인류의 맨발 걸음의 원형에 대한 동경이라고도 하겠다.

 

나는 이 책에서 하루 1시간 정도의 숲길 맨발걷기가 가져오는 근원적 즐거움과 현대 문명병에 대한 경이로운 치유효과들을 이야기해 왔다. 하루 1시간의 맨발걷기는 각종 성인병과 정신적 장애들에 대한 세계보건기구가 밝히고 있는 50%를 넘어 70~80%까지도 치유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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