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론'ㅡ 맨발로 걸어 잠재된 힘을 깨워라
이재학
책머리에
지난 8년여에 걸친 필자의 맨발 걷기와 맨발 登山 체험에 비춰보건데, 맨발 걷기는 우리 안에 잠재된 엄청난 에너지를 복원시켜 건강은 물론이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더불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자부한다.
맨발 걷기를 통해 우리 안에 찌들어 있는 물질적 정신적 노폐물을 排出시켜 비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비워진 공간에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여 더 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란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野性으로의 복귀가 필요하다고 본다.
차례
1. 걷기예찬
2. 절름발이 현대인들
3. 맨발 체험기
4. 발의 신비
5. 인간의 삶과 맨발론
1. 걷기예찬
황수관 박사의 강연
그는 시청자들에게 일주일에 나흘 이상 하루에 한두 시간씩 꾸준히 걸으라고 주문했다. 건강에는 도보가 최고이고 최상의 효과를 발한다고 역설했다. 스포츠 의학자로서 임상적으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원지중학교를 하루 너덧 시간이나 걸어서 통학했다는 경험담을 소개하기도했다. 걷기가 자신의 體力에 바탕이 됐고 精神力까지 강화시켜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것이다.
황박사의 주장처럼 매일같이 걷되 한 걸음 더 나아가 맨발로 걸으라고 권하고 싶다. 신발과 양말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맨발로(bare-footed)걷기, 더 나아가 맨발로 오르내림과 굴곡이 있는 山을 걷는다면 황박사의 건강 비법보다 서너배 이상은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A그룹 B회장의 건강 회복기
필자는 한 때 그를 근거리에서 모신적이 있다. 그를 보필하던 2002년 당시 B회장의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칠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그는 장장 하루 7시간의 한겨울 강원도 오지 山行을 일주일 내내 완수해냈다. B회장의 건강회복에는 걷기, 즉 도보가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령과 병마에 이미 쓰러지다시피 한 사람도 걷기시작하면서 정상인이 된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처음부터 맨발로 걸으라고 말하고 싶다. 신체적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정신에너지를 보강하는 데에는 맨발 걷기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2. 절름발이 현대인들
균형이 깨진 현대인들의 병리현상
靑少年이나 어른, 노인들까지도 발달장애, 공황장애, 성격장애, 불면증,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장애에 노출돼있는 것이 현대인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러한 정신장애가 주로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이란 신경전달물질의 비정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각종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으로 心身의 노폐물이 제 때 방출되지 못하면 심신이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울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安息處(안식처)는 찾기 힘들다. 가정마저도 위태롭다. 그렇다고 술, 담배, 마약이 해법이 될수는 없다. 타락은 더한 타락을 낳는다. 그렇가고 애착을 가질 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호소할 곳도 없을 뿐더러 자신의 무력감이나 열등감을 어루만져줄 대상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모두 자신을 돌보기에 힘이 달려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은 깨진 心身의 균형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중 몇 시간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돼야 한다. 하루에 단 십분이라도 고기를 낚는 강태공이 돼야 한다.
단순한 휴식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하계휴가를 해변이나 산으로 떠나본 사람이라면, 단순한 휴식이 오히려 피로와 피곤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알것이다. 진정한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려면 휴식이 생활의 일부분이 돼야 한다. 필자가 추천하는 것은 걷기이며, 맨발이면 더욱 좋고 맨발로 山을 오르면 최상이다. 초기에는 발바닥이 아프고 따끔거리더라도 한 달이면 적응할 수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걷기를 습관화하고 그 강도를 높여가라. 맨발로 걷고 더 나아가 맨발 등산 까지 한다면 상황은 현저히 달라진다. 자신이나 타인의 잘못이 자연스레 판정되며, 자신의 오류와 소심함을 뉘우치고 대범해질 것이다. 내일의 과제가 떠오르고 생활스케줄이 합리적으로 수립될것이다. 걷기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과거 수십년의 세월을 回顧(회고)하게되고 장기적인 미래를 구상하기도 한다.
3. 걷기를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났을 때, 제법 몸의 균형이 잡히는 듯했다. 문득 맨발로 걸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났다. 언젠가 대중목욕탕에서 발은 제2의 심장이고 모든 신체 장기가 발바닥과 연결되어 있다는 홍보물을 본적이 있어서였다.
맨발로 걷거나 맨발 登山을 시작한 지 수개월이 지난 다음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학교 운동장 같은 공공 시설물이나 공원으로 지정된 山은 관리자가 따로 있고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이어서 발바닥에 상처를 줄 만한 못이나 유리조각 등은 거의 없다.
맨발 登山의 경우에도 山 초입에서는 조심해야겠지만 정작 등산로에 들어서면 발을 다칠 염려는 거의 없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발로 걸은지 일주일 가량 지나자 그런대로 견딜만하고 적응이 됐다. 8년여를 맨발로 걷고 등산을 했지만 발을 다칠만한 이물질에 대한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의 경험이다. 발에 밟히는 흙이나 돌, 나무토막의 氣運이 전신에 느껴진다. 땅과 몸이 일체화된 느낌이다. 땅의 精氣가 다리를 타고 척추를 지나 머리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맨발로 걷고 登山한지 2~3개월이 경과하자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오히려 답답했다. 무좀도 깨끗이 나았고 허리의 통증도 없어졌다. 허벅다리는 전봇대처럼 단단해졌다. 성인 한 두 사람 정도는 너끈히 해치울 수 있을 만한 근력도 생겼다. 태권도 고단자처럼 사람의 급소가 어딘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민첩해지고 자신감도 충만해졌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밤 9시든 11시든 퇴근 후 아들을 데리고 산을 찾았다. 동네 野山이라도 오르내리는데 꼬박 2시간이 걸린다. 사시사철 예외를 두지 않았다. 등산후에는 눕자마자 1분이 지나지 않아 바로 골아 떨어졌다. 숙면을 취하게 되니 서너 시간만 자고도 너끈히 피로가 회복되었다.
등산으로 下體를 단련하고 보니 새로운 과제, 즉 상체 훈련을 해야겠다는 발상이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윗몸일으키기, 물구나무를 선체 팔굽혀펴기를 하기도 하였다. 큰 소나무에 기대어 물구나무를 선채 10회 가량의 팔굽혀펴기도 거뜬히 해냈다. 한번은 맨발로 北漢山을 오른 적이 있다. 2시간 내내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맨발로 정상까지 달려 올라갔다. 맨발 등산을 통해 잠재된 無限한 힘을 발견한 것이다. 대략 3년 만의 일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육체적인 연단을 통해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스트레스 해소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더 큰 자신을 발견하라.
맨발 登山 후에는 확연히 달라졌다. 서너 시간을 연속으로 얘기해도 힘이 부치는 줄 모랐고 말에도 힘이 넘쳐났으며 기억력도 또렸해졌다. 창백했던 발에는 핏기가 돌았고 발바닥 허물이 깨끗이 없어졌으며 허벅다리는 쇠 덩어리처럼 단단해졌다. 얼굴은 生氣로 가득 차 훨씬 젊어졌으며, 걸음걸이는 거볍고 탄력이 생겼으며, 동작이 민첩해져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허리와 어깨가 쭉 펴져 제자리를 잡았다. 몸 구석구석 에 피곤함과 통증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온몸이 상쾌해졌다.
맨발 登山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뭐니뭐니 해도 思考의 변화였다. 남을 容恕하게 되고 심적 갈등이 덜해졌다. 登山과 하산의 과정에서 마음이 정돈되었고 매사 계획적으로 임히게 되었다. 易地思之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판단하게 되었다. 일찍 귀가하여 저녁식사 후 걷거나 등산으로 기분을 풀고, 되도록이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타인과의 여간한 불화나 갈등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時間이 지나면 해결될 것을 고민해봐야 마음의 상처만 입을 뿐이다.
세상사람들에게 感謝하고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다. 혹 남에게 욕을 먹어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세상이 두렵가나 내일이 걱정되지 않았다. 登山은 최상의 불면치료제다. 숙면하면 잠자는 시간이 짧아도 아침이 개운하다. 약 2년간 사시사철 등산을 같이 했던 아들도 표정이 밝아졌고 활달해졌다.
홀로 맨발 걷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과의 對話를 나누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 한층 발전된 자신을 발견하라. 그런 연후에 가정과 사회에 복귀해보라. 맨발로 걷기 시작하면 자신만의 비움의 대상이 생겨나고 그 빈 공간에 자연스레 새로운 충만이 자리 잡는다. 맨발 걷기는 양적으로는 마음의 체적, 즉 부피를 확대해가는 과정이다. 마음의 부피를 크게 하면 마음의 공간이 켜져 자기 마음속에 있는 물순물들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농도를 낮추는 과정이다. 외부에 기인한 발전은 자기 것이 아니어서 오래가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으나, 자기 스스로 이뤄낸 발전은 영구적이며 승리감과 행복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마음의 부피와 강도를 키우면 사물이나 세상이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4. 히포크라테스도 걷는 운동이 두뇌 회전에 가장 좋다고 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교 通路(통로)와 올리브나무 그늘을 걸으면서 思索(사색)하고 수업을 했다고 하여 소요학파라고 불리고있다.
5. 발가벗은 맨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고등학교 때 실시한 IQ검사에서 84를 받은 한 친구는 현직 부장검사다. 그 친구는 사법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지금도 법조계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意欲과 熱情은 있는지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 자기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몰입하고 즐긴다면 그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서울교대 서예교수. 그는 천부적인 서예에 재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루 200개를 구멍 냈고 붓 두 가마니를 버릴 만큼 노력했다고 했다.
서예가 왕희지 "저 논에 가득 담긴 물을 보아라. 저 물을 모두 벼루에 넣고 먹물을 갈아 없어질 때까지 연습해라."예술도 자신과의 싸음이고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다. 맨발 걷기나 맨발등산은 신체의 강건함과 정신의 고요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예배당, 법당에서 두 손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맨발 걷기 또한 지속성, 습관성을 겸비하지 않으면 몸에 제대로 체화되지 않는다.
필자의 17년간 과외로 學生들을 지도하면서 느낀바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식을 희생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필자의 교육경험을 소개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지식을 전달하기에 앞서 우선 가정환경을 살폈다. 삶이 무엇이고 왜 일을 하고 학습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면 아이는 건전하게 자라서 홀로서기를 한다. 육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감내하고 극복하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국내 명문대학에서도 고학년이 될수록 지방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우월하다는 통계가있다. 성인이 되어 사회의 큰 일꾼 국가의 동량이 되고자 한다면, 자연과 인간의 攝理(섭리)를 이해하고 자신을 극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네 마트에서 일하는 50대 아주머니가 있다. 근무시간 내내 서있어야만 하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무릎이 아파 일을 그만둘까를 고민하던 터였다. 그 분에게 맨발걷기를 권했다. 수개월후, 아파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주머니는 반갑게 내게 달려와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평지에서나마 맨발걷기를 해보니 정말 살맛난다는 얘기였다. 마트에서 하루종일 서있어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무릎이 아픈 것도 씻은 듯이 없어져 콧노래를 부르면서 재미있게 일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