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써라

에필로그 '좀더 대담한 결론'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대담한 주장을 갖고 출발했다. 결론부터 쓰면 글을 쉽게 논리적으로 쓰는 것을 넘어서 사고방식과 커뮤니케이션 전체를 논리적으로 바꿀수 있다고 믿었다.

이 책을 써나가면서 솔직히 나는 좀 더 대담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결론부터 쓰는 논증적 글쓰기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나아가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꿀수 있다는 믿음이다.

글쓰기 교육이 사실상 전무한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논리적 사고방식과 토론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 영미식 5문단 에세이를 기본으로 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논리적 사고와 토론은 개인적 성장만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요소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지식을 소화하고 체계화해서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개인과 조직, 국가의 논리적 시고와 토론 역량에 달려 있다. 기업의 경쟁력도, 국가의 민주주의 성패도 논리적 사고와 토론의 수준이 결정한다.

 

왜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을까

나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일본과 미국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무서운 기세로 미국을 뒤쫓았다. 도요타와 혼다 자동차가 미국의 거리를 휩쓸고, 일본의 상품이 월마트를 채웠다.

일본 제저업이 미국 제조업을 압도하면서 일본 기업들은 뉴욕 맨해튼의 오래된 고층 빌딩을 사들였다.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1980년대 말에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10년에 걸친 장기 침체에 빠졌고, 그 후에도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IT 산업과 금융 산업 등 최첨단 지식 산업분야에서 발군의 역량으로 일본과의 격차를 벌려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아마존, 야후 등 1세대 기업부터 구글과 페이스북 등 2세대 기업까지 첨단 IT 산업의 선두 기업은 모두 미국에서 나왔다.

 

정치적 측면에서 두 나라 사이의 차이는 극명하다. 한때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던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은 경기 침체와 원전 사고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도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세계적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불화로 재정 적자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못해 신용 등급이 떨어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나 국제적 위기 상황에 대처 능력을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일본에 비해 훨씬 역동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왜 아시아 선두 주자 였던 일본이 미국 따라잡기에 실패했는가? 왜 인구나 경제 규모 면에서 훨씬 크지만 다인종 사회라는 갈등 소지를 안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일본보다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왜 아직도 매년 미국이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의 절반 가까이를 휩쓸고 있는가? 왜 미국의 대학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미국은 도요타의 가이젠(개선)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기능적 사고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바로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토론을 장려하는 개방적 문화다.

나는 이런 근본적 차이가 두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경쟁력을 결정짓는 잠재적 요인이라고 본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산업 패러다임이 산업화 경제에서 지식 정보화 경제로 바뀌면서 이 요인은 앞으로 더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한가? 우리는 최근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았고, 현대장동차가 미국에서 선전하고, 한류가 떠오르면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정말 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재빠른 추종자fast foll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미국이 매년 몇 개씩 받는 노벨상을 우리는 아직까지 평화상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지향점과 정책 등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하고, 일방적 선전과 선동, 거친 언사가 횡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15년간을 살다가 독일로 돌아간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군터 라인케 전 사장은 한국인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한 가지'를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말을 했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경향이다. 특히 젊은이들과 회의를 해보면 리더의 아이디어를 맹목적으로 순응하려는 모습이 확연하다.'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 60년이 넘었고, 고등학교 졸업자의 80%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논리적 사고와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 대학 수업조차도 아직까지 교수가 일방적으로 칠판에 쓰고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 적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글쓰기 교육은 내가 학교에 다니던 삼사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글쓰기 교육 자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학생들에게 글 쓰는 방법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교사마다 제각각이고 주먹구구다. 이러다보니 대학 입시에 논술 시험이 도입된지 오래되었지만 학교에서는 논술 교육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미국의 논증적 글쓰기 교육방식을 교육에 도입하자

미국의 활발하고 전통있는 글쓰기 교육에서 배워야 한다. 미국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글쓰기 교육을 철저하게 시행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서 글쓰기 교육 과정을 우리에 맞게 도입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5문단 에세이를 기본으로 하는 논증적 글쓰기 방식이어야 한다.

영미식 논증적 글쓰기 방식이 초중고학교 교육 과정에 도입되면, 단순히 글쓰기나 국어 능력 향상만이 아니라 전 교육 과정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영미식 논증적 글쓰기 교육으로 논리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에 학생들이 눈을 뜨면 사회, 과학, 역사 등 다른 과목도 잘할 수 있다.

 

논증적 글쓰기는 결국 논리적 사고방사과 토론 능력으로 이어져 학교에서 토론식 교육을 가능케 할 것이다.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이 공교육의 정상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초중고 학교에서 논증적 글쓰기를 익힌 학생들은 대학에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일 수 있다. 대학 교육에서 글쓰기는 처음이자 끝이다. 글을 읽고 강의하고 토론하고, 리포트와 논문을 쓰는 것이 대학 교육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대학생들은 대학 교육 과정에서 좌절과 시행착오를 격을 수 밖에 없다. 논증적 글쓰기는 대학 교육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대학의 학문수준을 높일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

물론 이런 효과는 논증적 글쓰기가 도입될 경우 장기적으로 나타날 효과들이다. 단기적으로 국가와 기업에서 결론부터 쓰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쉽고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이 있다.

국가기관을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작성하는 보고서의 맨앞에 요약 보거서를 붙이도록 하는 것이다. 요약 보고서에 전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용 파악이 쉬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 논리 체계를 쉽게 평가할 수 있다. 정책 보고서의 경우 그 정책에 대한 평가가 쉬워지는 것이다. 평가가 쉬워지면 제대로 된 정책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더 좋은 정책으로 이어진다.

 

이 원리는 기업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보고서 작성을 잠정적인 요약 보고서 작성에서 시작하고, 보고서 앞에 한 장짜리 요약 보고서를 붙이도록 하면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과 토론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논리에 집중하는 토론 문화가 확산되고, 논리적 사고방식이 기업 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최근 우리기업들 중 앞서가는 기업들은 조직 내에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인터넷 다음카카오는 얼마 전부터 사장부터 모든 직원들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CJ그룹은 오래전부터 이름에 직급을 붙이는 대신 '님'자를 붙여 부르도록 의무화했다. 우리나라 최대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은 모든 직원들을 '프로'라는 단일 호칭으로 부르도록 했다. 모두 우리의 경직된 수직적 소통 문화 속에서 자유로운 수평적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한 안간힘이다.

 

보고서 맨 앞에 요약 보고서를 붙이도록 하고, 나아가 보고서 작성을 잠정적 요약 보고서에서 시작하도록 해보자. 호칭의 변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논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유발할 수 있다. 기업 내에 논리적 사고와 수평적 토론 문화를 그 어느 방법보다 쉽고 단순하게 영구적으로 정착시킬수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물론 결론부터 쓰기를 조직 내의 규범이나 문화로 만드는 것은 뿌리깊은 문화적 사회적 전통과 싸우는 일이라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우리는 영미 문화권과 달리 학교에서도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조직의 최고 책임자가 확신을 갖고 결론부터 쓰기를 조직 문화로 정착하고자 할 때 그 노력에 비할 수 없는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 믿는다.

 

책쓰기를 시작할 때 내가갖고 있던, 결론부터 쓰기를 통한 개인적 성자에 관한 믿음은 책 쓰기가 끝날갈 무렵 좀더 대담한 결론으로 훌쩍 커버렸다. 잠정적 결론부터 쓰는 논증적 글쓰기 방식은 공공기관과 기업,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까지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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