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왜 병이 생기나?

또 어떻게 하면 병이 없이 오래 사나?

사람의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대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몸의 병이요, 또 하나는 마음의 병이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몸의 병이 되고 몸의 병은 마음의 병을 만들어놓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을 대체로 주인과 유인(부인), 외인과 내인으로 대별한다. 이상과 같은 분류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병균이 병의 원인이 되지만 기후와 환경의 변화로 생기는 병 그리고 한의학에서는 음양허실, 한열표리의 여덟 가지로 통일하고 치료방법을 구한다. 그러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은 하늘의 한 부분이니 하늘 뜻에 맞도록 생활하면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데 사람은 그 뜻대로 따르지 않아서 병이 생기어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몸에 고통이 오고, 마음이 악화되는 병을 얻어 갖는가? 그것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잘못 쓰는 까닭이다. 그 자유가 자기 개인의 감정을 따라가게 됨으로써 지나친 욕망이 생기어 모든 것을 지나치게 행동하고 탐내는 데 모든 병약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세분하여 밝히면 여러 가지 감정생활이 있겠지만, 요약하여 말하면, 제일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탐욕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같이 몸과 마음에 해로운 자유행동을 하게 되느냐 하면 사람은 알아내는 힘이나 감정보다 뜻을 세우는 힘이 약한 까닭이다. 알면서도 지나친 욕심을 억제할 만한 뜻을 세우는 힘이 약한 까닭이다. 그 치료의 방법으로 제일 최고의 방법은 몸의 뿌리인 돌단자리(정하단전)로부터 몸 안팎을 튼튼히 하면 그 속에 잠겨 있는 정신은 저연 맑고 깨끗하여 모든 병이 물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받는 법은 강하고 굳센 뜻(의지)을 갖게 하는 법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모든 일에 뜻(의지)이 약하면 자기의 감정을 따르게 되며 지나친 욕심과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되므로 하늘의 법도를 거역하는 반역자가 되게 되니, 마음에는 고통이 오고 몸에는 병이 들어 하늘이 내린 본래의 사람 명대로 건강하게 오래 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물질문명의 고도 성장으로 우리 인간이 문명의 이기에 힘입어 문화적 생활을 향유함에 따라서 후천적인 육체가 쇠퇴하여 지는 운동부족에서 오는 병이 있다. 그리고 자연에서 일어난 생명체의 본능적 욕구는 자연을 되찾으려 하고, 자연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음식도 자연 그대로의 음식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인간은 입맛에만 맞추고 몸에 해로움을 고려치 않고 만들어낸 기호품인 가공음식물로 인하여 모든 질병을 유발케 하고 자연수가 아닌 오염된 물에서 오는 병, 몸의 균형을 망각한 과격한 운동에서 오는 병, 물질문명의 발달로 각종 공해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인 병과 몸에 직접, 간접으로 해독을 주는 병 등이 무수히 많으나 오늘날 의학의 발달로 많은 병을 고치고 있다.

그러나 마음에서 얻은 병은 오늘날 불치의 병으로 모든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의 병폐는 꼭 제거해야 하고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 그 뿌리가 이 땅에서 없어지는 날 우리 사람은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현대의학은 많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또한 많은 단점과 결점을 내포하고 있다. 생명을 한 몸으로 한 전체적 관찰방식이 의학의 본자세임을 주장하는 의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한 부분별의 국소의 구조 즉, 형태학, 해부학, 조직학 등과 기능 즉, 생리학, 생물학, 생명학 등을 파악하면 전체는 따라서 밝혀진다는 학문의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기초를 사람이 아닌 동무과 식물, 또는 시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일반 생물학 또는 물리학, 화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태도는 의학을 물리, 화학의 영역 내에 귀속 시키는 데 공헌했을 뿐 현재까지의 과학적 연구방법 자체가 곧 의학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을 물리, 화학적으로 연구하듯 분석 내지 해부한다고 하여 사람의 질병이 근본적으로 근치된다고 볼 수 없다.

 

단순한 기계라면 그 구조와 기능을 구명 함으로써 고장난 부분을 수선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그렇게 간단한 기계가 아니며 설사 기계라 할지라도 오묘 불가사의하여 과학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생명이 깃들어 있는 좁쌀 하나도 만들어내고, 죽어 가는 모기 한 마리도 살릴 수 없는데야... 그러므로 과학자라면 하늘의 현상 앞에 묵묵히 겸허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몇 천만 명 동원되어도 사람 몸의 한 부분마저도 완전히 밝혀내기는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체는 하늘의 기운을 따라 추호의 차이와 어김도 없이 대기를 따라 무시로 수없이 바뀌며 (무궁한 변화)흘러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생명체를 일정한 표현의 정의나 공식으로 단정지으려고 하는 이론적 정의론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무한히 움직이며 바뀌는 양상을 수시로 고정하며 논증할 수 없는 것이므로 존재의 영원한 변화 상태를 이론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산 생명체를 죽은 시체 다루듯 하며, 기계 다루듯 해서는 사람이 병폐를 근치시킬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의 이와 같은 판단과는 아주 달리 오랜 옛적부터 우리 조상은 홀올(음양오행)의 원리나 모두에 파묻힌(우주속) 무한한, 신묘한 비밀을 모두 밝게 깨닫고, 체득하여 밝받는 방법을 몸소 닦아 모든 병폐를 뽑아 버리는 법이 있으니 이 아니 고맙고 은혜스러운 일이 아닌가.

 

오늘날 청산이 개원한 수도장에 모든 사람들이 수도하여 모든 병이 나아져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적마다, 청산은 스승님과 조상에, 나아가 천은에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나 들어와 모든 병을 버리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 간절히 바란다. 몰라서 못하고 또 들어왔다가 인내력이 부족하여 조금하다 그만두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

저리도 왜 도심과 성심이 없을까?

그렇게 누가 만들어 놓았을까? 모든 활금과 권세는 귀한 줄 알면서 왜 내 몸 귀한 줄 모를까? 내 몸 병들어 가면 그 황금백옥과 권세가 무슨 소용인가?

남녀노소를 말론하고 아주 쉬운 정각도 단계만 닦아도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데 하며, 멀지 않은 앞날에 알 날이 오겠지 하며 기다릴 뿐이다.

 

또 각처에 단전호흡이다. 무슨 도술이다 하며 하도 많으니 맛을 다 보지 않고야 옳고 그른 것을 가랄 수 없는 심정도 이해하며 묵묵히 청산은 국선도법 수련원을 열고 국민의 체력 향상과 올바른 정신력 강화를 위하여 우리 민족 고유의 국선도법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원시적이 문화인을 지도하려는 격일는지 모르나 육체적으로 약화되고 정신적으로 악화된 현대 사람을 근본적으로 선도 하는데 있어서는 대자연의 힘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약삭빠른 고양이가 밤눈을 못 본다는 속담처럼 현대 사람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든지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약삭빠른 생각만 하고 있으나, 그 수단방법이 대자연의 법칙에 역행될 때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 멸종지환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서구문명은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자인한다. 사람은 예지적 동물이므로 물질문화를 창조함과 아룰러 정신문화도 창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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