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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대사 왕생집 속록(續錄)
신의형상
2022. 7. 16. 15:06
왕생집 목록(往生集目錄)
서문
제1권 비구의 왕생(沙門往生類)
제2권 왕과 신하의 왕생(王臣往生類)
제3권 처사의 왕생(處士往生類)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속록(續錄)
1. 요즘 왕생한 분
2. 모든 성인(聖人)이 한 곳으로 돌아감
3. 대략 존숙(尊宿)들의 법과 살아서 감응을 얻음
4. 총론과 전적(典籍), 발원문
● 속록(續錄)
1. 요즘 왕생한 분
요즘 왕생한 분으로서 내가 직접보고 들은 것을 이어서 기록한다. 그래서 2권의 끝에 붙이고 부류(部類)나 앞뒤를 나누지 않는다.
• 본명(本明)스님
대명(大明)의 본명은 통주(通州) 정가사(靜嘉寺)의 스님이 평소 고상한뜻이 있고 범행(梵行)이 청정했으며 강학(講學)에 전념했던 분이다. 나중에는 강학을 버리고 정토(淨土)에 전심하여 매일 예념(禮念)하는 일을 오래토록 거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경미한 병이 들자 스스로 때가 이른 것을 알고는 대중(大衆)에게 고별하고 편안히 갔다 기이한 향기가 7일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 주강소부(朱綱少府)
대명(大明)의 주강(朱綱)은 경도(京都)사람이다. 유업(儒業)을 익혀 향거(鄕擧)에 뽑혔고 세 번이나 춘관(春官)에 올랐으나 뽑히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부(二府: 중서성추밀원)의 벼슬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 나와서는 정토를 전수(專修)하여 하루에 염불 3만번을 15년동안 조금도 게으름 없이 실행하였다 임종에는 걸상에 앉아 두 손에 염주를 들고 염불을 끊이지 않더니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자 아미타부처님이 오셨다하고는 연신 염불하며 갔다.
• 우(于)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우(于) 할머니는 북경 평창부(平昌府) 소촌(邵村)의 우귀(于貴)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염불(念佛)로 공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깨끗히 빨아 입고는 아들에게 내가 이젠 정토에 왕생해야겠다 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때가 되자 책상을 들어내 마당 가운데 놓고는 책상위에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와 하늘 음악을 온 마을사람들이 다 들었다.
• 고(顧)거사
대명(大明)의 고원(顧源)은 금능(金陸)사람으로 자호(自號)는 보당 거사(寶幢居士)다. 어려서부터 시(詩)를 지을 줄 알았고 초서(草書)를 잘 썼다. 중년에는 한결같이 정업(淨業)에 뜻을 두었다. 나중에 경미한 병이 들어 승속의 도우(道友)를 모우고 열 번의 아미타불을 염(念)하고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하였다. 누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하고 세계는 금색인데 부처님이 가사(袈裟)로 나를 덮어주시니 나의 몸이 이미 연화(蓮華)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하였다
그 때 온 대중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슬피 울기를 마지않으니 거사가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다. 이곳에 만약 분명하면 어느 곳인들 확실하지 않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서 사람들을 물리치며 여러 말을 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 공중에서 부처님이 나를 맞이하신다. 삼고(三鼓)에는 가련다하였다. 그 시각이 되자 편안히 웃음을 머금고 갔다. 소종백(少宗伯) 예부시랑(禮部侍郞)인 은추명(股秋溟)선생이 이러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찬(讚)
폼이 이미 연꽃 속에 있었다 하니 왕생(往生) 하기는 반드시 왕생했을 것이요,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라 하니 가는 것이 실제로는 가는 것이 아니리랴. 거사의 왕생은 당연히 중하품(中下品)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 방(方)씨
대명(大明)의 방(方)씨는 생원(生員) 오웅도(吳應道)의 부인이었다. 30세에 홀로되어 절개를 지키며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정토를 전수 하였다. 한 노파(老婆)가 있었는데 이이도 재계(齊械)하며 20년 동안 그를 따랐다. 만력(萬歷) 을유(乙酉)에 그때 나이가 50세이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병(病)이 들었다.
노파를 불러 서로 마주보고 한마디 말이나 그 외 잡무도 일체 멀리하고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하루 전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다음날 새벽에 향을 피워 예불(禮佛)하고 자리에 앉아서 갔다. 아들 용선(用先)은 진사(進士)에 급제한 이로 결코 거짓말할 자가 아니다 나에게 시말(始末)을 이렇게 말해 주었다
• 장(張)군의 어머니
대명(大明) 장(張)군의 어머니인 도(陶)씨는 장수(長水) 수약거사(守約居士)의 후처였다. 거사가 불법을 신봉했으므로 장군의 어머니도 거사에게 감화 되어 하루에 예송(禮誦)을 정해놓고 어김없이 실행하였다. 거사(居士)가 보타산(普陀山)으로 기도 차 떠난 사이에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나는 평생 이 마음이 부처가 되니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하는 두 마디 말을 참구(參究)하여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초 4일날 나는 간다하였다.
그날이 되어 단정(端正)히 앉아 갔다. 다음날 거사가 돌아와 시신을 염습을 하였는데 잠시 후에 관 위에 청연화(靑蓮華)다섯 송이가 피었다 거사가 매우 놀라며 늘 같이 지내면서도 그의 도행(道行)이 이런 줄 알지 못했다하며 부끄러워하였다. 원근(遠近)에서 이 사실을 보고 들은 자들이 찬탄하고 경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조향(祖香)
대명(大明)의 조향(祖香)은 강서(江西) 신유(新喩) 사람으로 산동(山東) 용담사(龍潭寺)에서 정업을 정수(精修)하였다. 왕걸(王傑)어라는 거사가 암자를 짓고 그를 맞이해 갔으므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얼마 후 왕걸(王傑)에게 말하기를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겠소 하였다. 대중이 더 머물러 주기를 간청했더니 안양(安養)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하였다. 그날이 되어 자리를 펴고 서(西)쪽을 향해 앉아 갔다. 감실(龕室)을 들고 산으로 들어갔더니 불이 일어나 저절로 다비가 되었다.
• 곽대림(郭大林)
대명(大明)의 곽대림(郭大林)은 탕음(場陰)사람이다 평소 성품이 단정하고 소박하여 늘 세상을 떠날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마침 어떤 스님에게서 염불의 가르침을 받고 일심으로 정토(淨土)를 생각하였다. 나이 76세에 하루는 자식에게 내일 정오(正午)에 가련다하고 고별(告別)하고는 그 시각에 앉아서 갔다.
• 유통지(劉通志)
대명(大明)의 유통지(劉通志)는 경도(京都)사람으로 염불(念佛)에 온 정성을 기울였던 분이다. 나이 52세에 병을 얻었으나 염불을 더욱 간절히 하였다. 그 때 이웃 사람인 이백재(李白齎)라는 자가 먼저 죽었는데 유통지(劉通志)가 아침에 숨이 넘어갔다가 정오가 되어 다시 소생하여 가족(家族)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마침 배 한척을 발견하였는데 정토(淨土)로 간다 하더군. 배에는 서른여섯 사람이 타고 있었어. 이백재(李白齎)도 있었고 나도 그중 한사람 이고 그런데 의복이 깨끗지 못하고 염주(念珠)를 가져 오는 것을 잊어버렸어. 그래 내가 그랬지 옷을 갈아입고 염주를 가져 올 테니 잠시 배를 기다려 달라고. 가족들이 황급히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었더니 잠시후에 갔다.
• 손(孫)씨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중관(中官)인 손명(孫名)의 어머니는 일생 재계(齋戒) 하며 염불(念佛)하던 분이다. 나이가 연로하여 경미한 병을 앓았는데 스스로 때가 이른 것을 알고는 그의 아들에게 앉아서죽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슬피 울며 만류하자 부득이 감실(龕室)을 준비하게 하였다. 때가 되어 감실에 들어가 편안히 앉아서 죽었다.
• 당체여 문학(康體如 文學)
대명(大明)의 당정임(唐廷任)은 절(浙)의 난계(蘭溪) 사람으로 호는 체여 거사다. 부모에게 효양(孝養)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천성이 출중하여 소시에 학교에서 배울 적에는 명성이 높았다. 얼마 후 세상이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불법(佛法)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어 운서(雲棲)에 참예(參詣)하여 염불삼매를 배웠다 그리하여 힘써 행하여 무릇 13 년 동안을 하루같이 오직 서방(西方)으로 돌아갈 것에만 뜻을 쏟았다.
만력(萬歷) 계묘(癸卯) 나이 예순 살 나던 해 11월 초하룻날 문득 자식들에게 신춘(新春)11일 날 나는 간다하였다. 며칠 전까지 예송(禮誦)을 평시와 같이 하고 그날이 되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손으로 결인(結印)을 하고서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는 웃음을 머금고 갔다. 마치 선정(禪定)에 든듯하였다.
찬(讚)
거사가 입멸(入滅)하려 하자 자식들이 아버님께서 임종(臨終)하시는 여러 가지 정황을 운서사(雲棲寺)에 알려 왕생전(往生傳)에 올리오리까하고 여쭈었다.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반드시 우리스님에게 말씀드려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꾸미려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한다.
왕생전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스님께서 스스로 견해가 계실 것이니 절대 왕생전에 오르지 않았다 하여 언짢은 표정을 짓거나 언짢은 마음을 먹지 마라. 아 ! 이것으로 평소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을 것이요 평생 정토(淨土)를 깊이 신앙하였고 웃음을 머금고 갔으니 왕생을 어찌 의심하랴
• 양가의 문학(楊嘉禕 文學)
대명(大明) 양가의(楊嘉禕)의 자는 방화(邦華)니 태화(泰和)사람으로 세족의 자손이었다. 13세에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켜 벼룩이나 이도 죽이는 법이 없었고 23세에 남옹(南雍)에서 공부하다 얼마 후 병이 나서 만력 을사(乙巳) 11월 19일에 죽었다. 죽기 전에 꿈에 지옥(地獄)을 여행하다 명양전(冥陽願)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친견하고 꿈에서 깨어나서는 모든 생명을 방생(放生)하고 스님을 맞이하여 경(經)을 읽고 염불하였다.
어느 날 사람들에 게 나는 가야겠다. 푸른 연(蓮)꽃이 내 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정토의 경계(境界)가 아니겠는가"하고는 밤낮으로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촛불을 끄게 하고는 너희들은 촛불을 의지해야만 밝게 생활할 수 있지만 나는 촛불이 필요(必要)없다. 늘 광명(光明)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고 물으니 네 가지 색깔의 연(蓮)꽃이 피어있었다 하였다.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했습니까? "아미타부처님께서 천장(千丈)의 몸을 나타내신 것을 보았다. 관세음보살은 몸이 아미타부처님과 같았다. 대세지보살은 뵙지 못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는 갑자기 일어나 향(香)을 들고 연거푸 소리하기를, 아미타경(阿彌陀經)의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이루 말할 수 없다 ! 이루 말할 수 없다 !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하고는 고요히 갔다.
찬(讚)
방화(邦華)는 성품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여러 전적(典籍)을 원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이미 내전(內典)에 골몰한 이후에는 유독 내전의 정토법문에만 전념하였다 그가 임종에 아미타경의 공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고 세 번 부르짖은 것은 직접 본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말도 절실했던 것이다. 그의 중형(中兄)인 가조(嘉祚)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면서, "제가 거짓말을 했다면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질 것입니다"하고 맹서한 것은 그도 역시 직접 본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말도 절실했던 것이다. 정토를 믿지 않는 자는 생각해 보라.
• 학희재 문학(郝熙載 文學)
대명(大明)의 학희재(郝熙載)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법명은 광정(廣定)이다. 평생 충직하고 진실하여 학교에서 덕행으로 이름이 났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좌선과 예송(禮誦)으로 밤낮을 잊었다. 만력(萬歷) 신해(辛亥) 봄 2월에 병이 들었는데 매일 잠에서 깨어나서는 내가 꿈에서 부처님을 친견코자 했으나 부처님은 뵈옵지 못하고 숲속에 모여 있는 새 떼들만 보았다 하였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27일 정오에 갑자기 머리를 들어 창(窓)밖을 바라보고는 그의 아들 세한(世翰)에게, "오늘 헤어지면 이젠 그만이다"하고는 가인(家人)을 돌아보며 은전(銀錢)을 준비(準備)하게하였다. 얼마 후 내가 조금 전에는 혹시 관리를 만날까하여 미리 준비 했던 것인데 지금은 필요없게 되었다하였다. 삼고(三鼓, 오후 11시~1시)가 되자, "두 명의 동자(童子)가 와서 나를 맞이한다. 부처님의 연화대(蓮華臺)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간다"하고는 편안히 갔다.
• 주(朱)씨
대명(大明) 진(陳)군의 어머니인 주(朱)씨는 오군(吳郡) 가정(嘉定)사람으로 준천(濬川) 거사의 부인이다. 천성이 효자하여 본디부터 삼보(三寶)에 귀의하였으나 나이 81세에 그의 아들이 운서(雲樓)로 찾아와 염불왕생(念佛往生)을 지도 받게 한 이후로 정업(淨業)에 독실히 뜻을 두게 되었다. 2년이 지나 병색을 보이더니 죽기 3일전에 집 앞에서 누가 큰 소리로 주씨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그러자 주씨가 두 푸른 옷을 입은 자가 여기 있다하였다. 그 때는 이미 병세가 차츰 쇠잔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단정히 앉았다.
아들들이 자리에 눕도록 권해드렸으나 곧 그대로 편안히 갔다. 시체를 중당(中堂)으로 모셔 위를 향하여 눕혔더니 시체가 스스로 서(西)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온 식구가 깜짝 놀라며 지극한 정성으로 감응한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찬(讚)
학군의 아버지와 진군의 어머니는 모두 청의(靑衣)동자(童子)의 상서(祥瑞)가 있었으니 당연히 인천(人天)에 태어날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후 한분은 부처님의 연대(蓮臺)가 나타나셨고 한분은 서쪽을 향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 또한 당연히 정토(淨土)에 왕생하실 것 이었다. 이렇게 두 가지 모양이 동시에 나타났으니 왕생하리라는 것을 확정할 수는 없다. 설사 왕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왕생은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 서(徐)씨
대명(大明) 육(陸)군의 어머니인 서(徐)씨는 가정(嘉定) 사람으로 흘어미가 된 후로 정업(淨業)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남편이 전에 천금(千金)을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문서를 불태우고는 돌려받지 않았으며 패물(佩物)을 꺼내 남에게 보시하고는 늘 부처님 곁에서 예송(禮誦)하는 일로 날을 보냈다. 이렇게 한지 10년 만에 하루 저녁에는 심부름하는 사람을 부르더니 동방(東方)에 광명이 비치는것이 보이느냐? 내가 이젠 왕생(往生)할 때가 다가왔다. 너희들도 나를 도와다오하고는 큰소리로 염불(念佛)하고는 합장하고 갔다
• 과광태(戈廣泰)거사
대명(大明) 과이안(戈以安)의 법명은 광태로 전당(錢塘)사람이다. 성품이 매우 효순하고 평소 널리 선행을 쌓았으나 이를 감추고 남이 알아주는 것을 원(願)치 않았다. 만년에는 부처님을 섬기는 일에 정성을 다 바쳐 영지사(靈芝寺)의 현소(玄素)스님과 함께 봄가을 두 때로 염불회(念佛會)를 열었고 화엄경 등 다섯 가지의 경전을 독송하였다. 어느 날,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갈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서방(西方)으로 돌아갈 자량(資糧)을 마련해야하겠다"하고는 문을 닫아걸고 조석으로 예송(禮誦)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리 돌아갈 날짜를 그음 달 21일로 정해 두었다. 이틀 전 저녁에 모자(母子)가 둘러앉아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있으니 거사가 웃으며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무얼 슬퍼하느냐? 나는 정토(淨土)에 마음을 기울여 미타(彌陀)를 친견하였다. 너희들은 정애(情愛)에 걸려 나의 정념(定念)을 어지럽히지 말라"하고는 현소(玄素)스님에게 다정히 조념(助念)을 부탁하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는 때가되자 고요히 갔다.
찬(讚)
어떤 스님이 명부(冥府)에 들어가서 보니 거사가 고요한 방에 편안히 앉아 있는데 책상 위에는 온갖 경전들이 쌓여있었고 뜰에는 붉은 대와 바위산이 어우러져 수려하기가 마치 동천(洞天)과 같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사는 마땅히 극락에 왕생했었어야 할 것인데 어찌 하여 아직도 명부(冥府)에 머물고 있는 것 일까? 아마 평소에 송경(誦經)에 뜻이 간절하여 경전에 대한 소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으로 나중에는 왕생하리라고 여겨진다.
• 두(杜)거사(居士)
대명(大明)의 두거사(杜居士)는 순천부(順天府) 완평현(宛平縣)사람으로 서산(西山 )서광사(瑞光寺) 곁에 있는 낡은 사당(祠堂)에 숨어 집안일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30년 동안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내가 고향사람인 동광책(童廣策)에게 그를 찾아보게 한 적이 있었는데, 거사가 어디서 왔는가고 묻기에 항주라고 대답했더니, "그대가 항주 사람이라고 하니 운서굉(雲樓宏) 공(公)을 아시오?" 하였다한다.
"저의 스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거사는 합장하고 염불하며 다시 다른 말이 없었다 한다. 죽을 때가 되어 9일 동안 예참(禮懺)하여 예참문이 간절한 곳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음식을 끊고 몇 모금의 물만을 마실 뿐이었다. 그렇게 예참을 마치고서는 앉아서 갔다. 보름동안 안색이 생시와 같았고 오색구름이 지붕위에 서리고 있는 것을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 손대우(孫大玗) 거사
대명(大明)의 손숙자(孫叔子)는 법명이 대우(大玗)다. 12살 때부터 아버지인 경오(鏡吾) 거사를 따라 사십팔원(四十八願) 아미타상을 모시고 운서(雲樓)에 와서 오계를 받았다. 그리고서 집에 돌아가서는 오신채와 육식(肉食)을 끊고 교류를 자제 했으며 학문을 그만두고 염불에만 전념하여 금대(金臺)에 오르기만을 발원하며 몸과 마음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 후에 두 비구(比丘)가 연화(蓮華)를 들고 일심(一心)으로 정토(淨土)를 발원(發願)한다 고 인가(印可)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화인(化人)이 금강경(金剛經)을 밤낮으로 읽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벌떡 일어나 앉아, "미타(彌陀)와 관음(觀音)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금강권인(金剛拳印)을 맺고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고는 고요히 갔다. 그 때는 만력 신해(辛亥) [1611] 11월 11일이었다.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가 세상에 전한다. 상세한 것은 오태사(吳太史)의 서생전(西生傳)에 기록되어 있다
찬(贊)
오태사는 우리 거사를 보고 우(玗)의 집에는 해마다 상서로운 풀이 돋았고 죽은 해에는 크기가 말[斗]만한 금(金)과 같고 옥(玉)과 같고 해와 달과 같은 광명이 비쳤다. 이로 미루어 그의 왕생의 상서를 징험할 수 있다하고 이에 손숙자서생전(孫叔子西生傳)을 썼다. 태사(太史)는 허황한 말을 하지 않는 자다. 덧붙여 이런 사실을 적어 둔다.
*화인(化人) :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근기에 맞추어 일부러 모양을 변해서 사람의 몸을 나타내는 것.
• 오거사(吳居士)
대명(大明)의 오거사(吳居士)는 인화(仁和)사람으로 이름은 대은(大恩) 별호는 앙죽(仰竹)이다. 평소에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음덕(陰德) 베풀기를 좋아하여 죽어가는 생명을 방생(放生)하고 고난을 겪는 자를 구원했으며 이웃을 돕고 미납한 세금을 대신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흐리고 흙비가 내리던 중에 광명을 만나기도 했고 배가 뒤집힐 지경에서 반풍(반風)을 만나기도 하는 등 갖가지 상서로운 과보를 감응하였다. 그리고 불법에 마음을 기울여 조석으로 경을 읽고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진에 게으름이 없었다. 만력 40년 5월 3일 대중에게 고별하고 결가부좌하고 단정히 앉아갔다. 방안에 향기가 감돌고 기색이 생시와 같았다. 자세한 것은 인지엄(印持嚴)이 지은 전(傳)에 기록되어 있다.
• 오(吳)거사
대명(大明)의 오(吳)거사는 신안(新安)의 세족(勢族)으로서 이름은 계훈(繼勛) 자는 용경(用聊) 별호는 십여거사(十如居士)다. 성품이 신중하고 강직하여 질박하기는 나무덩굴과 같고 곧기는 활줄과 같았다. 갖가지 선행(善行)을 베풀기를 감로를 대하듯 좋아하였다. 만년에 내전(內典)에 마음을 기울여 왕생주(呪)를 외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명호를 부르면서 하루에 일정한 일과(日課)를 정해놓고 추위나 더위 속에서도 전혀 어김이 없었다.
일찍이 강(江)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발밑을 어떤 물건이 떠받지 듯하며 10여리를 표류하다 번쩍 배에 올라탄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등창을 앓아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걱정해 마지않았으나 거사는 태연히 담소하며 아무 병고도 앓지 않는 양하다 얼마 후에 편안히 갔다. 그의 아들인 신장(信章)은 맹자가 말한 착하고 신의있는 사람으로 결코 허탄한 말을 할 자가 아니다. 그가 말한 행장(行狀)대로 이렇게 적는다.
2. 모든 성인(聖人)이 한 곳으로 돌아감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할 것을 선택하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위제희부인(韋提希婦人)이 흐느껴 울며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世尊)이시여 원하옵건대 저를 위하여 근심과 슬픔이 없는 곳을 널리 말씀해주소서. 저는 반드시 그곳으로 가고자 하옵고 염부제(閻浮提)의 악한 세상은 원하지 않나이다. 그러자 세존이 눈썹사이에서 광명을 놓으사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제불(諸佛) 국토를 두루 비춰 그 가운데 광명이 나타나게 하였다. 그때에 위제희가 그것들을 모두 본 후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모든 불국토가 비록 청정하여 모두 광명이 있긴하지만 저는 지금 오직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처소만을 원하옵니다.
무수한 자가 왕생한다.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부처님께 이 세계에 얼마만한 보살들이 극락에 왕생하나이까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이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계에 62억의 불퇴전(不退轉)보살이 이 나라에 왕생하며 소행보살(小行菩薩)은 이루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 국토뿐만 아니다. 다른 불토(佛土)에도 멀리 불찰(佛刹)을 비치듯 180억 보살이 모두 반드시 왕생할 것이며 내지(乃至) 시방불찰(十方佛刹)에서 왕생하는 자는 매우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만약 자세히 말하려 한다면 1겁(劫)동안 설(說)하더라도 미처 말하지 못한다.
찬(贊)
이 세계와 다른 국토에서 정토에 왕생하는 자가
한량없다 하니 정토가 그들을 어떻게 모두 수용하는 것일까? 아! 바다는 온갖 냇물을 다 받아들이고 허공은 만상을 모두 머금는다. 더욱이 무변찰해(無邊刹海)도 보현(普賢)의 한 털구멍 속을 벗어나지 못함이랴. 그렇다면 정토의 바늘 끝 만한 땅에서라도 한없는 왕생 자를 수용할 수 있다. 또한 한없이 넓고 크다고 말할수 있지 않겠는가!
• 직접 미타(彌陀)를만나다
관불삼매경 (觀佛三味經)에 이렇게 말씀하였다. 부처님이 문수(文殊)에게 반드시 극락에 왕생하리라는 수기를 주시자 문수가 이렇게 발원게(發願偈)를 노래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 다하는 날 모든 장애(障礙) 없어지고 직접 미타불(彌陀佛)을 만나 안락찰(安樂刹)에 왕생하고 저 불국에 왕생한 후에는 나의 대원(大願)이 만족하여 아미타불 여래(如來)께서 현전에서 제게 수기하시오소.
• 십원(十願)으로 왕생을 구하다
화엄경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열 가지의 큰 서원(誓願)을 나열하며 널리 중생이 정토에 왕생(往生)하는 길을 찾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게(偏)를 노래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이 다하려할 때 모든 장애다 없어져 저 부처님 아미타를 직접 만나 뵙고 서방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게 하며 아미타부처님의 회상(會上) 모두 청정(淸淨)하니 제가 그때 아름다운 연꽃 속에 태어나 직접 여래 무량광(無量光)부처님을 뵈 오면 현전에서 제게 보살기(菩薩記)를 주시옵소서.
찬(贊)
문수보살는 칠불(七佛)의 조사(祖師)였으며 보현보살은 만행(萬行)의 종조(宗祖)였으나 정토에 왕생할 것을 마치 한입에서 나오듯 간곡히 타이르셨다. 진정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유능한 보좌관이며 안양(安養)의 어진 신하인 것이 분명하다. 정토를 허물하며 왕생을 원치 않는 것은 잘못이다.
• 정토를 노래하고 논술하다
천친보살(天親菩薩)은 천축(天竺) 사람으로 여러 가지 논(論)을 지을 적에 도솔천(兜率天) 내원(內院)에 올라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을 뵙적이 있었으며 또한 무량수경논(無量壽經論)과 정토게오문수법(淨土偈五門修法)을 저술하여 널리 왕생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 부처님의 모습(模襲)을 간청(懇請)하다
천축(天竺) 계두마사(難頭摩사)의 오통보살(五通菩薩)이 신력(神力)으로 안락국(安樂國)에 가서 아미타불을 뵈옵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바세계의 중생이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나 부처님의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모습을 드러내 주소서.
아미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먼저 돌아가라. 곧 바로 그곳에 나타나리라." 오통보살이 돌아오자 부처님의 모습도 곧바로 이르렀다. 한 부처님과 5천의 보살이 각각 연화(蓮華)에 자리하여 나무 잎 위에 계신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이러한 모습을 그려 유포할 수 있게 되었다. 감통전(感通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찬(贊)
사람들은 안락국은 신력이 아니면 갈수 있을까 하고 의심한다. 아 ! 한 생각만으로도 왕생하여 조그마한 힘도 필요치 않데야 어찌하랴.
• 기신론(起信論)을 짓다
마명(馬嗚) 보살은 인도(印度)의 제12조(祖)로서 일찍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저술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는 정토에 왕생하는 길을 밝히는데 가장 친절하였다.
•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왕생을 수기(授記)하다
능가경(楞伽經)에 말씀하였다 대혜(大慧)야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후 미래세에 반드시 나의 법을 부지(扶持)할만한 큰 명덕(明德)비구(比丘)가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로서 능히 유무의 종취를 파(破)하고 세간에 나의 무상대승법(無上大乘法)을 발현하여 환희지(歡喜地)를 얻고 안락국에 왕생할 것이다.
• 선행(善行)을 닦아 서방정토에 왕생하다
대비경(大悲經)에 이런 말씀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滅度)한 후 북천축국(北天竺國)에 한 비구가 있을 것이니, 이름은 기파가(祈婆伽)다. 셀 수 없는 갖가지 훌륭한 보리(菩提)의 선근을 닦아 죽은 후에는 서쪽으로 백천억세계를 지나 무량수(無量壽)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며 저 부처님의 처소에서도 갖가지 선근을 심어 나중에는 반드시 부처가 되어 이름을 무구광(無垢光)이라 할 것이다.
•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서방정토에 왕생하다
보살생지경(菩薩生地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때 마차갈(摩差竭)은 불기법인 (不起法忍)을 얻었고 오백 명의 청신사(淸信士)와 25명의 청신녀(淸信女)는 모두 불퇴전지(不退轉地)를 얻어 목숨이 다한 후에는 모두 무량수불의 청정국에 태어났다.
찬(讚)
서방(西方)에 왕생할 길을 찾는 것은 무생법인을 깨달아 불퇴지에 오르고자 하기 위해서다.
*불기법인(不起法忍): 무생법인과 같은 말.
불퇴전지(不退轉地): 악도나 이승지(二乘地)에 떨어지지 않는 지위. 보살의 지위나 법을 잃지 않는 지위.
• 모든 성인(聖人)이 서방(西方)의 한곳으로 돌아가심
그런데 이미 무생법인을 얻었고 불퇴를 얻었으면서 다시 정토에 왕생하고자 했으니 보살이 여래를 가까이 하고자하는 마음이어야만 이와 같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구박범부(具縛凡夫)가 무생법인의 힘도 충분치 못하고 퇴보하는 인연도 무한하면서 정토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 참으로 불쌍한 자라고 부르지 않을수 없다.
• 두 번째의 대원(大願)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에 말씀하였다 보살은 세 가지의 발원이 있다. 그 두 번째 발원은 내가 목숨이 다하면 아미타불앞에 왕생하는 것이다.
• 염불(念佛)로 죄를 소멸하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보살이 대반야(大般若)를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이는 악도에 떨어져 무량겁을 지내게 될 것이요, 설사 다른 수행을 닦더라도 죄를 멸하지 못한다. 나중에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을 생각하게 되어야만 죄를 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게 된다하였다.
찬(讚)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念佛) 한 마디만하면 80억겁의 생사 중죄를 멸할 수 있다는 좋은 증거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극한 마음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극한 마음이 아니면 죄도 멸하지 못한다. 성인의 말씀이 터무니없다고 말하지 말라.
• 훌륭한 모임에 서명(書名)하다
장노책선사(長蘆頙禪師)는 혜원법사(慧遠法師)의 가르침을 따라 훌륭한 염불회(念佛會)를 만들어 널리 염불을 권했던 분이다 어느 날 밤 꿈에 검은 갓에 흰옷을 차려입은 풍모가 수려한 어떤 이가 읍(揚)하며, "공(公)의 연화회(蓮華會)에 들고자 합니다. 서명(書名)을 하고 싶은데요" 하였다. 장노책선사가 이름을 물으니 보혜(普慧)라고 하였다. 서명을 마친 후 또, "저의 가형(家兄)인 보현(普賢)도 역시 함께 서명했으면 합니다" 하였다. 장노책선사가 이에 꿈을 깨어 화엄경의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두 보살의 이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그 분들로 회주(會主)를 삼았다.
찬(讚)
범승(梵僧)의 모임에 고성(古聖)께서 서명을 하시다니 훌륭하다. 정토의 작은 인연(因緣)이 아님이여! 참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출발한 일이었으므로 성인의 감응이 통한 것이다. 조그마한 허위라도 있었다면 인간 세상의 자중(自重)한 자도 하찮게 여길 것 이어든 하물며 고성(古聖)이겠는가? 근래의 소위 염불회라는 것을 장노책선사가 본다면 반드시 큰 한숨을 쉬어 마지 않을 것이다.
3. 대략 존숙(尊宿)들의 법과 살아서 감응을 얻음
백장해(百丈海) 선사는 마조(馬祖)에게서 도를 전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만세 총림(叢林)의 대종장(大宗匠)이다. 그의 입법(立法)을 보면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죽은 스님을 떠나보낼 때는 언제나 정토(淨土)로 돌아가게 하였다. 황용신선사(黃龍新禪師)는 각노인(覺老人)을 참예(參詣)하여 선지(禪旨)를 얻고는 황용(黃龍)의 자리를 계승하여 종풍을 크게 떨쳤던 분이다. 한편 정업(淨業)에도 뜻이 간절하여 염불을 권하는 글이 현재에도 남아있어 이글을 읽는 자로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진흘요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丹霞淳) 공의 법(法)을 이은 분으로 조동종(曹洞宗)계의 문하가 이 스님에 와서 크게 발현하였다. 나중에는 보타(補陀)에 암자를 지어 고절(孤絶)이라 이름하고는 서방(西方)에 전념하였다. 정토설(淨土說)을 지어 널리 대중에게 권장하기도 하였다.
자수심선사(慧受深禪師)는 장노신(長蘆信) 공(公)에게서 법(法)을 얻었던 이다.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여 수행(修行)의 첩경(捷徑)은 정토(淨土)만한 것이 없다하고 서방도량(西方道場)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大衆)에게 권고(勸告)하니 그를 따르는 자(者)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程度)였다
석지효법사(石芝曉法師)는 월당순(月堂詢) 공(公)의 법을 계승한분으로 교부(敎部)에 통철했으면서도 정업(淨業)으로 사람들을 교화 하였다. 정토에 관계한 여러 대장경을 모은 낙방문류(樂邦文類)가 세상에 전하고 있다.
적당원선사(寂堂元禪師)는 밀암걸(密庵傑) 공(公)에게서 선(禪)을 배웠던 이로 염불삼매를 독실히 행하여 금갑(金甲)의 신장(神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감응을 얻기도 했고 붉은 연꽃이 땅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온 나라에 연종(蓮宗)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중봉본선사(中峰本禪師)는 고봉묘(高峰妙) 공(公)에게서 법을 얻은 분으로 사람들이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다. 정토를 생각하는 내용의 시(詩) 백편이 세상에 널리 전하고 있다.
왕이영(王以寧) 대채(待制)는 스스로 미타(彌陀)의 제자라고 일컬었다.
조열지(晁悅之)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조자앙(趙子昻)에게 답한 편지에서, "서방정토는 진실하고 사실인 말씀입니다" 하였다.
진관(陳瓘) 대제(待制)는 연경사(延慶寺)의 정토원기(淨土院記)를 지어 염불을 극찬하였다.
우담종주(優曇宗主)는 여산동림(盧山東林)의 선법당(善法堂)에 있으면서 연종보감(蓮宗寶鑑)을 지었다. 그 후 임금의 뜻으로 판에 새겨 세상에 전했다. 정토의 중흥주(中興主)라고 할 만하였다.
찬(讚)
백장(百丈)으로부터 우담(優曇)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존숙(尊宿)들이 정토(淨土)를 받들어 행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아 성대함이여 !
천여선사(天如禪師)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요즘사람들은 정토(淨土)를 닦는 자를 무시하여 어리석은 아낙네들 이라고 업신여긴다. 이것은 문수보살(文殊菩薩)나 보현보살(普賢菩薩) 마명보살(馬鳴菩薩) 용수보살(龍樹菩薩)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많은 경전들을 모아 그의 설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보살도(菩薩道)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왕생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하고 오히려 의심한다. 아 ! 자신의 지위가 아직 묘각에 오르지 못했고 비록 등지(等地)의 대성인일지라도 하루도 부처님을 떠나지 못한다. 하물며 그 아래 사람들이랴.
작위(爵位)가 높을수록 임금을 뵈올 수 있는 기회도 더욱 많은 법이다. 저 짐이나 나르고 호미나 쥔 무리들이 어부나 나무꾼이나 벗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임금을 뵈올 희망을 버리면서 임금은 가까이 뵈올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투들 거린다면 우습지 않은가.
• 살아서 감응을 얻음
귀신이 감히 해치지 못하다
부처님 당시의 일이다 한 나라가 있었는데 나찰의 무리들이 사는 곳과 이웃하고 있었다. 나찰이 함부로 사람들을 잡아먹었으므로 임금은 집집마다 차례로 하루 씩 사람을 그들에게 바칠것을 약속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게 하였다. 외아들만을 둔 어느 부처님을 신봉하는 집이 있었다.
이번에는 이 집의 차례였다. 부모는 슬피 울며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할 것을 자식에게 당부하였다.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귀신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가서 보니 자식은 아무 탈이 없었다. 기뻐 어쩔줄 모르며 함께 돌아왔다. 이로부터 나찰의 재난이 마침내 끊어져 온 백성들이 부처님을 경모하게 되었다.
• 꿈을 꾸고 총명(聰明)과 변재(辯才)를 얻다
수(階)의 남악혜사(南岳慧思) 선사는 지심으로 부처님을 섬기더니 아미타불이 그에게 설법해 주시는 꿈을 꾸고는 이로부터 총명이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 변재도 막힘이 없었다.
당(唐)의 소표(邵彪)는 진강(鎭江) 사람이다. 사인(士人)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꿈에 어떤 공부(公府)에 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곳을 안무사사(安無使司)라고 불렀다. 잠시 후 어떤 관인이 너는 너가 급제하지 못하는 까닭을 알고 있느냐 ? 하고 물었다. 소표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소표를 이끌고 어딘가로 갔다.
잠시 후 한곳에 당도하여 쳐다보니 큰 가마솥 안에서 삶기고 있는 무수한 조개들이 사람의 말로 소표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소표가 두려워 어쩔 줄 모르다 마침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렀더니 비로소 입이 다물어지면서 조개들이 꾀꼬리로 변하여 날아갔다. 소표는 후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무사(按撫使)에 이르렀다.
찬(讚)
살생(殺生)으로 그의 벼슬이 늦어졌고 염불(念佛)로 그의 원결이 풀렸다. 요즘 사인(士人)들이 짐승을 죽여 귀신에게 바치며 도와 줄 것을 빌면서 만덕을 갖추신 위대한 이름은 부를 줄 모른다. 그들의 계책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큰 관직을 바라는 자는 이 이야기를 깊이 명심해 두라.
• 송(宋) 갈제지(葛濟之)
송(宋) 갈제지(葛濟之)는 구용(句容) 사람이다 치천(雉川)의 후예로 대대로 선학(仙學)을 섬겼으나 처妻 기(紀)씨만은 유독 염불(念佛)에 정성을 쏟았다. 원가(元嘉) 13년 베틀 위에서 베를 짜고 있노라니 갑자기 하늘이 청명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북을 던지고 하늘을 바라보니 서(西)쪽 방향에서 어떤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셨는데 보배의 수레와 깃발이 구름이 덮이 듯한 것을 보았다. 기(紀)씨는 기뻐하며 경에서 말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바로 이 분이시구나! 하며 부처님을 향해 무수히 예를 올렸다.
갈제지(葛濟之)가 놀라 급히 그에게 와보니 기(紀)씨가 부처님이 계신 곳을 가리켰다. 갈제지도 반신(半身)은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모습은 사라지시고 오색 찬란한 상서로운 구름만이 인근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불법(佛法)에 귀의한 자가 무수하였다.
• 송(宋) 진기(陳企)
송(宋)나라 진기(陳企)는 용서(龍舒)사람이다. 일찍이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는데 후에 귀신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진기는 두려워 급히 아미타불을 불렀더니 귀신이 접근하지 못했다. 이후로 염불을 끊이지 않게 되었고 귀신도 마침내 나타나지 않았다.
찬(讚)
목숨을 빼앗긴 귀신을 어떻게 염불로 물리칠 수 있을까? 아미타불의 공덕의 위신력은 불가사의하여 한번만 그의 이름을 불러도 귀신이 제갈 길을 얻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어찌 심상한 주문으로 쫓아내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 송(宋) 장계조(張繼祖)
송(宋)의 장계조(張繼祖)는 진강(鎭江)사람으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깊이 믿었다. 유모(乳母)가 죽자 그를 위해 정성껏 염불로 천도(遷度)했더니 꿈에 유모가 와서 감사해 하며, "자네의 염불 공덕으로 이미 좋은 곳에 태어났네" 하였다.
• 잠자리가 편안해 지다
송(宋)나라 유중혜(劉仲慧)는 호주(湖州) 장흥(長興)사람이다 악몽에 시달리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누가 염불을 해볼 것을 권하여 마침내 정성을 다해 큰소리로 염불 108번을 부르게 되었다. 그러한 후로는 잠자리에 들더라도 정신이 평안하여 이로부터 염불을 끊이지 않게 되었다.
찬(讚)
고인(古人)이 잠을 작은 죽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꿈속에서의 혼매(昏昧)를 죽음의 혼미(昏迷)에 비교할 수야 있을까만 잠자리에서 마음이 평안하면 목숨이 다 할 때도 거의 어느 정도 자유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선도대사(善導大師)가 사람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정관을 하게 한 것은 진실로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 눈이 다시 밝아지다
송(宋) 완념(阮念)의 셋째 형수(兄嫂)는 평범한 농부였다. 두 눈이 어두워져 늘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고서 마침내 눈이 환하게 도로 밝아졌다.
• 눈이 다시 밝아지다
자(紫)씨의 딸은 두 눈이 다 멀었다. 3년 동안 염불을 정근하고서 두 눈이 전과 같이 다시 밝아졌다.
찬(讚)
아미타 부처님의 광명은 무량하여 시방(十方)의 국토를 비춘다.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기만 하면 설사 육신의 눈은 밝아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마음의 눈은 환히 열릴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눈먼 맹인들은 가끔 무당이 되어 살생하는 업(業)을 짓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어두운데서 다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말 할 수 있으리니 끝내 밝은 하늘을 볼 수 없다. 슬프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를 온 천하의 눈먼 맹인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 학질(瘧疾)이 낫다
송(宋) 이자청(李子淸)은 오랫동안 학질(瘧疾)을 앓았다. 용서거사(龍舒居士)가 발작하기 시작하면 염불에 전념하고 그런 후에 약을 먹도록 가르쳤다. 이자청이 이 말을 믿고 그대로 실행했더니 당일 반쯤 나았고 다음날 마침내 완쾌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독실히 염불을 믿게 되었다.
• 사리(舍利)가 출현하다
송(宋)나라 공주(贛州) 염중대부(廉中大夫)의 공인(恭人)은 장육(丈六)의 아미타불을 수(繡)놓다 반쯤 완성된 상태에서 채색(彩色)의 실오리 사이에서 사리(舍利)가 출현(出現)하여 온 집안이 경탄해 마지않았다.
*공인(恭人) : 중산대부(中散大夫) 이상의 관리에 봉해진 어머니 나 처(妻)를 일컫는 말.
• 사리(舍利)가 출현하다
진주(眞州) 종리소사(鍾離少師)의 부인인 임(任)씨는 높이 4치 8푼의 아미타불상을 조각하고 감실도 매우 아름답게 장엄하여 늘 머리에 이고 행도하였다. 어느 날 불상의 미간(眉間)에서 크기가 보리 쌀만한 사리(舍利)가 출현하여 광채가 사람을 비췄다.
• 병(病)이 다 낫다
송(宋)나라 수주(秀州)의 어느 스님은 늘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사람의 병을 치료하였다. 그런데 병자가 치료해 줄 것을 간청하기만 하면 금방 병이 나았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고 따랐다.
• 포로(捕虜)에서 풀려나다
원나라 지정(至正) 15년 겨울 장사성(張士誠)이 호주(湖州)를 공격하여 강절(江浙) 승상과 싸워 40인을 붙잡아 감옥에 수감하고 관리로 호송케 하였다. 밤이 되어 서호(西湖)의 조과사(鳥窠寺)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대유모선사(大猷謨禪師)가 천천히 낭하(廊下)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포로들은 스님이 점잖고 품위있는 자태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장로여 저회들을 구해주소서"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나는 그대들을 구해 줄 수가 없소다만 지성으로 나무(南無) 구고구난(救苦救難) 아미타불(阿彌陀佛)하고 염불(念佛)하시오. 그러면 그대들을 구해 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이 그의 말을 믿고 입에서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포로들을 출발시키기 전에 칼과 족쇄(足鎖)로 바꿔 채우게 되었는데 우연히 이 세 사람에게 와서 형구가 부족하여 그대로 포승(捕繩)으로 묶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유고 심문(審問)하여 이들이 양민으로서 포로로 잡혀온 것이 판명되어 마침내 풀려났다.
찬(贊)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 혹은 칼이나 족쇄에 같히고 손과 발이 수갑에 채이더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힘으로 석연(釋然)히 풀려날 수 있을 것이며 한 것은 누구나 믿고 있으나 염불로 풀려난다는 사실은 그다지 믿으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은 보살에 비교하여 얼마나 월등하신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손발이 잘렸으나 석가여래(釋迦如來)부처님을 생각하고서 사지가 다시 자라난 사실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수족을 잘렸어도 오히려 다시 자라날 수 있거든 어찌 족쇄나 수갑 따위에 이를 믿으려 하는 자가 없는 것인가? 그래서 내가 짐짓 이런 사실을 들추어 밝히게 된 것이다.
4. 총론과 전적(典籍)
염불(念佛)은 죽은후에 돌아갈 곳을 위한 법문인줄만 알았지 살아서의 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문을 외워 영통(靈通)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금방 염불을 버리고 주문을 외고 강연(講演)으로 총명과 변재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염불을 버리고 강연을 배우려 하며 절을 짓거나 다리를 놓아 줌으로 해서 복보(福報)를 얻었다는 말을 듣거나 내지 양생(養生)으로 장수를 누리게 되었다는 따위의 말을 들으면 금방 갖가지로 마음이 변하여 아무도 염불을 집지(執持)하려는 자가 없으니 어느 누가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정업(淨業)을 성취하는 자가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짐짓 이런 사례들을 모아서 우선 요즘 사람들의 밖으로만 치구(馳驅)하여 달리는 마음을 단절하기 위하여 사실에 근거하여 이렇게 논한 것이다. 그러나 정토(淨土)에 왕생하고자 하는 것은 본래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것이요. 기왕 죽은 다음의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 어찌 생전의 이롭고 해로움을 따지겠는가.
•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반드시 정토(淨土)를 닦을것을 널리 권(勸)하다
천여(天如)의 정토혹문(淨土或問)에 요즘 선자(禪者)들 이 정토를 닦는 이를 보면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라고 비웃는다. 이렇게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라고 비웃는 것은 바로 문수보살(文殊菩薩)나 보현보살(普賢菩薩) 마명보살(馬鳴菩薩) 용수보살(龍樹菩薩)을 비웃는 것이다 하였다. 그 말씀이 이렇게 통렬하고 간절하건만 여전히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상고하여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관불삼매경(觀佛三味經)의 문수보살(文殊菩薩) 게송(偈頌)에 이렇게 발원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 다하는 날 아무런 장애없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만나 뵙옵고 안락찰(安樂刹)에 왕생(往生)하기를 원합니다.”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의 보현보살 게송에는 이렇게 발원했다. “원하옵건대 제가 이 목숨 다하려 할 때 모든 장애가 다 없어져 저 부처님 아미타를 뵈옵고 안락찰에 왕생하기를 원합니다.”
대승기신론에서 마명보살은 다음과 같이 가장 훌륭한 방편을 제시하였다. 염불에 전념하면 곧 서방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어서 마침내 아무런 퇴보가 없을 것이다.
능가경(楞伽經)에서 부처님이 대혜보살(大慧菩薩)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 명덕비구(明德比丘)가 있을 것이니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로서 초환희지(超歡喜地)를 얻어 안락국(安樂國)에 왕생할 것이다. 이상으로 대략 네 분의 보살을 열거하였다. 그 밖에 정토를 닦은 보살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여산(廬山) 혜원법사(慧遠法師)는 마하 반야(般若)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東方)의 호법보살(護法菩薩)이라고 불렀다. 종일토록 염불하여 세 번 성상(聖像)을 친견하고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하였다.
천태(天台) 지자대사(智者大師)는 법화경을 깊이 깨달아 일가(一家)의 교관(敎觀)일 뿐더러 만대의 종조(宗祖)이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서방(西方)을 향하였고 변십종의(辯十種疑) 소십육관(疏十六觀)등의 저술을 남겨 정토(淨土)를 발명하였다.
백장대사(百丈大師) 는 마조(馬祖)에게서 도를 전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천하 총림(叢林)의 공종(共宗)이었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혹은 죽은 스님을 천도(遷度)할 때는 언제나 정토로 돌아가게 하였다.
청량국사(淸凉國師)는 화엄조사(華嚴祖師)의 자리를 이었던 분으로 문수보살의 후신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바로 노사나(盧舍那)부처님 이라고 지적했으며 또한 관경(觀經)을 해석하여 서방정토를 널리 선양하였다.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先師)는 막힘이 없는 변재를 얻어 종문(宗門)의 초석이기도 한 분이다.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유독 서방정토를 예찬(禮讚)하였고 상상품(上上品)에 왕생하여 명부(冥府)에까지 공경(恭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심신선사(死心新禪師)는 황용선사(黃龍禪師)의 법석(法席)을 이어받아 종풍을 크게 떨쳤다. 정업(淨業)에 뜻이 간절하여 권염불문(勸念佛文)을 저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과 믿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진헐료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공(丹震淳公)의 법을 이어 조동종(曹洞宗)의 문하가 스님에 이르러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보타산(普陀山)에 암자를 짓고 서방에 전념하였다. 정토집(淨土集) 이 현재 세상에 전한다.
자수심선사(慈受深禪師)는 천녀(天女)의 인연(因緣)을 크게 깨달아 일게(一偈)로 오교(五敎)를 융통했던 분이다. 수행의 첩경은 정토만 한 것이 없다하고 서방 도량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에게 권(勸)하였다.
*사료간(四料簡)
선(禪)이 있고 정토(淨土)가 있으면 마치 범이 뿔을 단것처럼 현세에 인간의 스승이 되고 내생에는 불조(佛祖)가 된다.
선은 없고 정토만 있는 경우는 누구라도 닦으면 누구라도 갈수 있다 만약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면 어찌 깨닫지 못 할 것을 걱정하랴.
선만 있고 정토가 없는 경우는 열에 아홉은 길을 잘못 들어서 마경이 앞에 나타나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선도 없고 정토도 없는 경우는 지옥(地獄)에서 만겁토록 벗어날 길이 없다.
*천녀(倩女)의 인연(因緣): 천녀이혼(倩女離魂)의 공안(公案)을 말한다.
원조본선사(圓照本禪師)는 도道는 천의(天衣)를 이었고 종(宗)은 설두(雪竇)를 본받아 법의 우뢰가 천지를 진동했고 양조 송(宋)나라 신종(神宗)과 철종(哲宗)의 사표(師表)가 되기도 했던 분이다.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하여 이름이 상품(上品)에 표시되었다.
중봉본선사(中峰本禪師)는 고봉(高峰) 노인에게서 법을 받아 배우는 자들이 마치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다. 정토(淨土)를 사모하는 시(詩) 백수를 남겨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장하였다. 이상으로 대략 10인의 대존숙(大尊宿)들을 열거하였다. 그 외의 존숙이나 법사 율사로서 정토를 닦은 이는 그 수를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아미타경(阿彌陀經)․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십육관경(十六觀經)․ 고음왕경(鼓音王經), 천친(天親)의 왕생론(往生論) 이상은 정토만을 설한 경이나 논을 대략 열거한 것이다. 그 밖에 가끔씩 정토를 설한 경이나 논은 이루다 기록할 수 없다
도안(道安)의 왕생론(往生論)
회감(懷感)의 군의론(群疑論)
자은(慈恩)의 통찬(通贊)
해동미타소(海東彌陀疏)
사명(四明)의 묘종초(妙宗鈔)
자은(慈恩)의 참원의(懺願儀)
초당(草堂)의 보왕론(寶王論)
고산(孤山) 의 간정기(刊定記) 서자초(西資鈔)
대지(大智)의 관경소(觀經疏)
우담(優曇)의 연종보감(蓮宗寶鑑)
석지(石芝)의 닥방문류(樂方文類)
천여(天如)의 정토혹문(淨土或問)
대우(大佑)의 정토지귀(淨土指歸)
경도(鏡道)의 이사염불경(二師念佛鏡)
도연(道術)의 선인영(善人咏)
서재(西齋)의 정토시(淨土詩)
이상은 가장 잘 알려진 몇분을 대략 열거한 것이다. 그 외에 정토를 찬양한 분은 일일이 그 수를 다 셀 수 없다. 바라건대 낱낱이 그분들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말씀을 읽어보고 그 분들의 뜻을 생각해 보고서 모든 의심을 끊고 뜻을 결정하기 바란다.
• 정토수행(淨土修行)을 권(勸)한 여러 가지 전적(典籍)
주굉(袾宏)은 보잘 것 없는 범부로서 겨우 분수나 알고 살아갈 뿐이요, 평생에 애쓰고 노력한 것은 오직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 자일 따름 이었다. 이젠 늙었다. 만약 누가 물어오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이렇게 대답할뿐이다. 그러나 혹시(或是) 물어 볼 곳이 없어 억견(臆見)에 사로잡힐까 두렵고 더욱이 나는 이제 쇠약하고 병이들어 대답하기에도 곤란하다. 그래서 삼가 불보살(佛菩薩)이 설한 경론과 고금의 대선지식이나 대거사등의 갖가지 저술들올 그 제목과 이름을 아래에 소개한다. 보이는 대로 자세히 독람(讀覽)하고 깊이 사량(思量)하여 생각해주기 바란다. 믿고 믿지 않고는 고명한 이들만이 판단할 것이다.
• 불보살(佛菩薩)이 설한 경과 론
불설(佛說)아미타경(阿彌陀經)1권
불설(佛說)무량수경(無量壽經) 1권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불설고음왕경(佛說鼓音王經) 1권
천친보살(天親菩薩의 왕생론往生論) 1권
마명보살(馬鳴菩薩)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권
• 대선지식(大善知識)과 대거사(大居士)의 저술(著述)
지자대사(智者大師)의 관경소(觀經疏) 1권
사명(四明)의 묘종초(妙宗鈔) 3권
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1권
원효법사(元曉法師)의 미타경소(彌陀經疏) 1권
대우법사(大佑法師)의 미타약해(彌陀略解) 1권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3권
자운참주(慧雲懺主)의 정토왕생참원의(淨土往生懺願儀) 1권
정토왕생결의행원문(淨土往生決疑行願文)1권
천여칙선사(天如則禪師)의 정토혹문(淨土或問) 10권
대우(大佑)의 정토지귀(淨土指歸)
지철(智徹)의 정토현문거요(淨土玄門據要) 1권
우담법사(優曇法師)의 연종보감(蓮宗寶鑑) 1권
경도이사(鏡道二師)의 염불경(念佛鏡) 1권
도연(道衍)의 정토선인영(淨土善人咏)의 1권
사명석지사문(四明石芝沙門) 종효(宗曉) 낙방문류(樂方文類) 6권
왕일휴(王日休)거사(居士)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 1권
이상의 경론과 저술은 현재 유통하고 있음.
• 이름은 있으나 책은 남아있지 않은 것
도안법사(道安法師)의 왕생론(往生論) 6권
회감법사(懷感法師)의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 7권
도작선사(道綽禪師)의 안락집(安樂集) 3권
자민삼장(慈愍三藏)의 자비집(慈悲集) 3권
자은법사(藏恩法師)의 미타경통찬(彌陀經通贊) 1권
청량국사(淸凉國師)의 관경소(觀經統) 1권
초당비석법사(草堂飛錫法師)의 염불삼매보왕론(念佛三昧寶王論) 1권
미타경소(彌陀經疏) 1권
고산(孤山)의 관경소간정기(觀經疏刊定記) 4권
영지율사(靈芝律師)의 경소(經統)
종탄법사(宗坦法師)의 관경감로소(觀經甘露疏) 4권
무공거사(無功居士)의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
왕시랑(王侍郞)의 정토결의집(淨土決疑集) 3권
이상은 비록 남아있지는 않으나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이에 소개한다.
• 삼가 나의 비견(鄙見) 4종을 덧 붙인다.
미타경소초(彌陀經疏鈔) 4권
정토의변(淨土疑辯) 1편
정토발원문(淨土發願文)
왕생집(往生集) 1권
• 부처님이 보이신 염불의 열 가지 공덕
만약 어떤 이가 한번이라도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누구라도 현세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공덕 이익을 얻을 것이다.
❶모든 하늘의 대력신장(大力神將)과 그의 권속들이 밤낮으로 몸을 숨기고 수호한다.
❷관세음보살 등 스물다섯분의 대보살과 그 외 모든 보살들이 항상 따라다니며 수호한다.
➌늘 항상 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호념하며 아미타불이 항상 광명을 놓아 이 사람을 섭수한다.
➍야차(野次)나 악귀 등 일체 악귀가 침해하지 못하고 독사나 독용(毒龍) 독약등의 해를 입지 않는다.
❺모든 화난(火難)이나 수난 도적질 창칼 화살 감옥(監獄)에 갇히는 등의 엉뚱한 죽음과 재난을 당하지 않는다.
❻예전에 지은 죄악이 모두 소멸하고 내가 죽인 원혼(冤魂)이 해탈하여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❼평안한 잠자리를 이룰 수 있고 혹은 꿈에 아미타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뵙 옵기도 한다.
❽마음이 늘 항상 즐겁고 안색이 빛나며 기력이 충만하여 행하는 일마다 모두 길상하다.
❾항상 모든 사람들이 마치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공양하고 예배한다.
❿목숨이 다 할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올바른 생각이 충만하며 아미타불과 모든 보살 성중(聖聚)이 손에 금연화대(金蓮華臺)를 들고 와 서방정토로 인도하여 왕생케 하며 영원토록 승묘(勝妙)한 즐거움을 누린다.
• 종결(終結)
발일체업장근본득생정토신주
拔一切業障根本得生淨土神咒
나무 아미타바야 다타가다야 다지야타 아미리
도바비 아미리다 싣담바비 아미리다 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가란제 가미니 가가나 기다가례 사바하
아미타부처님의 당신님 자비한 서원으로 저를 삼계의 괴로움에서 구제하소서.
• 발원문(發願文)
나무(南無) 만(卍) 아미타불(阿彌陀佛). 사바세계는 혼돈되고 미혹함에 아득하고 아득하여 어두운 무명(無明)의 그 자체라 무엇을 의지하여 생사윤회의 괴로움에서 해탈을 기약하랴. 오!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자비의 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여래 박가범(薄伽梵)님이시여 당신의 홍서(弘誓)의 본원력에 신명을 받쳐 귀의합니다.
어리석고 몽매한 저희중생을 구원하소서. 발원하고 바라옴은 당신이 계시는 서방정토극락세계에 태어나서 당신 자비로운 진리의 아버지 아미타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팔공덕수(八功德水)의 만개한 연꽃 속에 태어나서 당신 아미타부처님의 무상(無上)하고 무비(無比)한 제일의 법문을 듣고 활연히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마정수기(摩頂受記)를 받고자 발원합니다.
이 원이 성취되오면 누겁으로 오면서 인연(因緣)맺은 다생의 부모형제 모든 군생(群生)을 불타는 화택(火宅)에서 구제하고자 맹서함이니 대승의 어진마음 어기지 않고 조재(朝裁) 영겁이 다하도록 불법(佛法)의 동량(棟梁)이 되고 다리가 되어 정토법문의 사신(使臣)이 됨이라. 아미타부처님 당신을 무한한 존경과 경의(敬意)받쳐 앙모(仰慕)하여 사모합니다.
불쌍하고 가여운 저의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거두어 모두 당신의 나라로 안치(安置)하소서. 오! 모시고 따르고 싶은 억만대(億萬代)의 사표(辭表) 영원한 귀의처 당신 대자대비하신 절대한 진리의 어버이 아미타부처님 여래 박가범(薄伽梵)께 극진한 최대의 존경과 영광을 받칩니다.
* 속록(續錄) 옮긴이 수마제 스님